세계 조선업의 과거와 미래
19세기 영국 →1950년대 일본 →2000년대 한국
글로벌 패권의 관건은 기술 혁신
글로벌 조선업의 주도권이 영국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다시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데는 기술 혁신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19세기 중반 영국이 세계 조선업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은 선박의 재료가 목재에서 철강으로 바뀌면서이다. 영국은 리벳 공법을 이용해서 강철로 만든 대형 선박을 건조했는데 경쟁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 해군이 가장 먼저 전함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는 등 혁신을 선도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엔 미국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전쟁물자를 수송하던 수송선을 대량으로 건조해 잠시 영국을 앞질렀다. 하지만 곧 일본에 주도국의 위치를 내주게 된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중 함정을 대량으로 건조한 경험을 활용해서 조선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일본의 핵심 기술은 블록 건조 공법과 용접 기술이었다. 미리 제작한 블록 형태의 선체를 용접으로 붙여 시간을 단축했기 때문에 리벳을 이용한 영국에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1950년대에 임금이 상승한 영국, 서독 등을 제치고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노르웨이 등이 신흥 조선국으로 떠올랐지만 결국 세계 시장을 장악한 것은 용접 기술을 가진 일본이었다. 일본은 1956년 세계 1위의 조선국으로 부상했고, 세계 조선 시장의 50% 가까이를 점유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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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서 육상건조를 하고 있다./ photo 현대중공업
일본의 뒤를 이은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은 1973년 현대중공업이 선진국 규모의 조선 설비를 갖추고 세계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한진중공업의 증설, 대우조선·삼성중공업의 도크 완공 등을 거치면서 1970년대 말부터는 세계 2위의 조선국으로 부상했다.
1970년대 초반 조선업이 폭발적 호황을 맞으면서 세계 조선 시장에 참가한 나라는 한국 외에도 브라질, 대만, 싱가포르 등이 있었다. 하지만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세계 시장의 강자로 안착한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한국은 1980년대에 과잉 설비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불어온 세계 경제의 훈풍을 맞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시장의 40%를 점유하는 세계 1위의 조선국으로 발돋움했다.
한국이 세계 1위가 되는 데엔 역시 기술이 바탕이 됐다. 대형 선박 건조는 기본적으로 1개당 200~300t의 블록 100개 내외를 만들어 도크 안에서 블록을 조립한 뒤 바닷물을 넣어 배를 띄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한국 조선업체들은 2000년 이후 ‘배는 도크에서 짓는다’는 상식을 깨는 신(新) 조선공법을 만들어냈다. 현대중공업은 맨땅에서 배의 블록을 조립하는 ‘육상 건조 공법’을 개발했고, 삼성중공업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바지선에서 블록을 조립하는 ‘플로팅 도크 공법’을 개발했다. 삼성중공업은 블록 수를 100개 내외에서 10개로 줄인 ‘메가블록 공법’, 3개로 줄인 ‘테라블록 공법’도 개발했다. 한진중공업은 도크보다 긴 배를 만들 때는 아예 도크 밖의 바닷속에서 용접을 하는 ‘댐 공법’을 만들었다.
한국 조선 업체들은 LNG선 등 고부가가치의 대형 선박이나 특수 선박 건조에 있어서도 기술력을 뽐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LNG선 건조 기술은 ‘2005년 한국의 10대 기술’에 선정됐고, 삼성중공업의 쇄빙유조선은 ‘2006년 한국의 10대 기술’에 선정됐다.
때문에 최근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기는 했지만 중국이 세계 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기술 혁신을 하지 못하는 한 가격경쟁력만 가지고 한국을 따라잡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의 조선업의 현재
세계 10대 업체 중 1~5위 석권, 시장점유율 40%… 日 제치고 1위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2000년대에 들어와 세계 조선 시황 호조에 힘입어 견실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일본을 제치고 35~40%의 높은 세계시장 점유율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해외 전문연구기관의 발표에 의하면 세계 10대 조선소에 현대중공업을 선두로 우리나라 조선업체가 5위까지 차지하고 총 7개 조선소가 포함되어 굳건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2007년에 총 3250만t을 수주하여 이미 4년치가량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들 물량 중 80%가량이 가스운반선, 초대형컨테이너선, 부유식 원유생산저장용 해양구조물(FPSO), 시추선(Drillship) 등 고부가가치 선종이다. 또한 선박 건조량도 1180만t으로 매년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데 대부분 수출선이다.
외환위기 이후 조선산업은 국내 산업 중 4위 내지 5위의 효자 수출산업으로서 국가기간산업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7년 한 해에도 약 280억달러의 수출로 250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고 올해에도 총수출 규모가 약 430억달러로 추정되어 약 350억달러 이상의 흑자가 기대된다.
대기업들 각축하며 대형선박 생산체계 구축
수요자 맞춤형 설계 능력도 세계 최고 수준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업계를 비롯한 연구기관, 정부 등 관련 구성원의 노력이 있었는데, 몇 가지 주요한 요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 조선사업 분야에 진출하여 대형설비를 중심으로 생산체계를 구축한 점을 들 수 있다. 해외 선주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대형선박을 건조하는 데 유리해짐으로써 일본을 압도하게 되었다.
둘째, 업계를 중심으로 한 끊임없는 연구개발이다. 사업 초기에는 해외선진기술을 모방하고 응용하는 캐치업(catch-up) 방식을 통해 건조기술을 확보하였으나 다종·다량의 선박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건조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제는 독자적으로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향상되었다. 2000년대 들어와 개발돼 해외선주로부터 주목 받고 있는 기술 분야로는 일반적인 LNG선과 육상LNG인수기지 역할을 통합한 재기화시스템 탑재 LNG선(LNG-RV), 컨테이너 9000개 이상을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설계, 육상건조공법, 수중용접에 의한 건조공법 등 다양한 선종과 신공법이 있다.
셋째, 선박에 탑재되는 각종 기계류(조선기자재)에 대한 정부의 국산화 정책과 성능·품질 개선을 위한 산업계의 노력을 들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선박용 장비의 자급률은 80~90%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국내 조선소의 적극적인 구매 등에 힘입어 성능·품질의 향상과 함께 대외신뢰도가 높아지고 있다.
넷째, 우수한 인적자원의 풍부한 공급체계이다. 우선 저임금·고숙련 인력의 풍부한 공급을 통해서 일본과의 가격경쟁 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2007년 말 현재 상위 16개 조선소의 고용인력은 총 14만4000명 수준인데, 신조 활황으로 인해 연평균 1만~1만5000명의 신규 인력 수요가 발생하고 있어 일자리 창출 효과 측면에서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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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00년 이후 우리나라 조선업체가 일본에 비해 높은 경쟁력을 보이는 분야가 설계 분야이다. 20여개 대학의 조선해양 관련학과에서 석·박사 인력을 포함하여 연간 800~900명의 기술인력이 꾸준히 배출되어 절반가량이 조선소의 설계부서에 배치되고 있다. 이러한 풍부한 설계인력을 중심으로 일본과 달리 해외선주들의 다양한 설계주문에 대응할 수 있는 수요자 맞춤형 설계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 세계 조선 불황기를 거치면서 표준선형을 개발하여 이들 선형에서 선주가 선택하는 수요자 선택형 설계체계를 유지하였으나 인력 부족으로 인해 해외의 까다롭고 다양한 선주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세계 노후선박 비중 20%… 물동량도 계속 증가
조선 경기 최근엔 주춤, 중장기적 전망은 밝아
올해 들어와 세계 조선 경기는 세계 금융위기, 유가상승 및 원자재 가격상승 등의 영향으로 주춤하고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볼 때 세계 조선 경기는 2000년대 초반 수준으로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최근 세계조선시장을 둘러싼 환경요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를 중심으로 한 세계 해상 물동량이 연평균 3%씩 꾸준히 증가했으며 향후 단기적으로 해상 물동량의 감소도 예상되나 여전히 선박 신조 발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계 선복량 구조를 보면 선령 20년 이상된 노후선박의 비중이 전체의 20% 이상으로 잠재적인 대체수요가 상존하고 있다. 또한 과거의 해상기름유출사고로 인해 해양환경 관련 국제규정이 강화돼 기존 노후 선박의 운항을 금지하거나 관련시설의 탑재 요구도 신조를 부추기고 있다. 현존 단일 선체형 탱커는 2010년까지 퇴출되거나 이중 선체형으로 개조하고, 신조 탱커는 이중 선체형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고유가에 따른 심해저 시추의 경제성이 증가되고 대체에너지원인 가스수송 수요로 인해 다양한 해양구조물 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해운경제성 측면에서 선형 대형화, 고속화 및 컨테이너 수송 확대 등의 분위기도 세계 선복량 구조 재편을 촉진하고 있다.
中·日 등 경쟁국 맹추격… 차별화 전략 필요
고부가가치 선박용 핵심원천기술 확보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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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드릴십. / photo 삼성중공업
그러나 외부 환경요인들이 중장기적으로 호전되어도 중국 등 경쟁국의 추격을 고려해 볼 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누려왔던 가격경쟁력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최근 일본에 비해서도 임금수준이 높게 나타나고 있어 중국과의 경쟁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그 해법은 차별화된 기술경쟁력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조선소의 기술경쟁력은 대체로 선박설계능력과 생산기술력 측면에서 비교우위에 있으나 산업원천기술 측면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최근 세계 발주량의 80%를 차지한 LNG선의 경우 핵심원천기술인 화물창기술에 대한 기술료가 한 척당 1000만달러 이상으로 2008년 6월 현재 건조해야 할 LNG선이 80여척에 달해 적어도 8억달러 이상의 부가가치가 그대로 빠져나가게 된다. 그래서 2005년부터 국내 조선소와 가스공사가 공동으로 한국형 화물창(KC1)을 개발하고 있으나 1호선 건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 외에 고부가가치의 고기술 분야라 할 수 있는 쇄빙상선, 크루즈선, 각종 해양구조물 분야의 산업원천기술도 부족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향후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로는 이들 고기술 분야에 대한 기술경쟁력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앞서 지적했듯이 향후 세계 조선시장에서는 심해저 개발, 대체에너지원인 가스수요 확대, 북극항로의 활용성 증대 등으로 인해 이들 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수요가 확대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일반적 견해이다. 즉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지속적으로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들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연구개발을 확대하여 경쟁국과 차별화된 기술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착실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양성과 산학협력을 통한 지속적인 연구개발 확대가 중요하다. 이를 통해서만이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지속적인 국제경쟁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현재 의 무역수지 적자를 조기에 흑자로 전환하는 데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생각된다.
역대 선박 건조 세계 2위… 해양플랜트도 강점
2009~2011년 영업이익 3조원 넘을 듯
세계 경제는 배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원유운반선과 벌크선(포장되지 않은 원목, 시멘트 등 원자재를 수송하는 선박)이 원유와 원자재를 중국, 인도 등 세계 곳곳의 공장으로 실어 나르고 있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공산품은 컨테이너선에 실려 전세계 시장으로 운송되고 있다. 조선 산업은 세계 경제와 함께 성장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조선업계의 최강자 중 하나이다. 대우조선해양은 건조능력 기준으로 매년 533만DWT(선박에 적재 가능한 화물 무게 척도)를 건조할 수 있는 세계 3위의 조선업체이다. 지난 3년간 420억달러의 수주를 받아 수주 기준으로도 세계 3위이다. 역대 선박 건조량으로는 세계 2위이다. 세계 바다를 누비는 원유운반선 9대 중 1대, 컨테이너선 12대 중 1대는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배인 셈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을 건조하는 회사이다. 건조경험과 기술력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큰 배 또는 특수한 배를 설계해서 건조할 수 있으며, 고객에게 약속된 시일에 선박을 인도해왔고, 건조한 선박 품질의 신뢰성도 뛰어나다. 이러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대우조선해양은 2008년 115억달러의 수주를 받았고, 수주잔고만 449억달러어치로 3년치의 일감을 확보해 둔 상태이다.
향후 주변 환경은 위협적이다. 2009년 실물경기 침체로 인해 신조선 발주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조선사들은 정부의 지원하에 대규모 투자를 하며 추격해오고 있다. 그러나 경기침체에 따른 업황 하락 충격은 벌크 선종 중심으로 성장 중인 중국 및 한국의 중소형 조선사들보다 상대적으로 덜하다. 대우조선해양은 모든 선종에서 수주경쟁력이 우위에 있어 건조능력 정도의 수주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며, 향후 대우조선해양이 경쟁우위에 있는 대형선박을 중심으로 꾸준한 발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해양은 대우조선해양의 미래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수주금액의 36%를 차지한 해양플랜트 사업을 통해 신조선 시장의 업황 하강을 보완할 수 있다. 해양 유전 개발사업이 근해에서 심해로 확장되면서, 원유 및 가스를 시추하는 드릴쉽과 생산 및 저장하는 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부유식 원유 저장 설비) 등 해양플랜트 시장이 커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상선보다 더 강력한 수주경쟁력으로 해양플랜트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기 때문에 해양플랜트 사업은 상선 부문을 보완할 또 다른 성장 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선장 없는 배가 되었지만 경쟁력은 훼손되지 않았다. 이제 대우조선해양이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의 관리를 벗어나 새 주인을 만나게 된다. 매력적인 인수대상인 만큼 한화는 우여곡절 끝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주식시장이 폭락하며 2007년 말 10조원에 육박했던 시가총액도 3조원으로 급락했기 때문에 새 주인은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대우조선해양의 조타를 잡게 되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은 2009년에서 2011년까지 3년간 3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황에 따라 굴곡은 있겠지만 조선과 해양플랜트를 두 축으로 2011년 이후에도 꾸준한 수익을 창출하며 성장할 회사이다.
좋은 새 주인을 만나서 다시 오너십을 가지고 적시 투자를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으로 기대한다.
- M&A 승부사 김승연 한화 회장
- '제2창업' 선언하며 인수전 올인, 6개월 만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김승연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과 뚝심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지난 10월 9일 오후 4시50분쯤 서울 장교동 한화 본사에 “포스코와 GS가 50 대 50으로 손을 잡았다”는 긴박한 소식이 전해졌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최종 입찰일(10월 13일)을 나흘 앞두고 갑자기 강력한 경쟁자였던 두 그룹이 제휴한다는 소식에 실무자들은 낙담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고를 받고 10분쯤 후에 전해진 김 회장의 메시지는 의외였다. “이제 됐다. 마타도어(흑색선전)를 삼가고, 한화의 강점을 적극적으로 알려라.” 포스코-GS 컨소시엄의 결성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감(感)을 받은 것이다. 막상 최종 입찰일이 되자 강력한 인수 후보였던 포스코-GS 컨소시엄은 결렬됐고, 그 결과 포스코가 자격 미달로 탈락하면서 인수전은 사실상 한화의 독무대가 됐다.
김 회장은 어떻게 두 경쟁자가 손을 잡을 것을 보고 승리를 예감했을까? 그간 수많은 M&A를 진두지휘 했던 김 회장은 ‘50 대 50으로 공동 경영한다’는 조건에 숨겨진 약점을 간파했던 것이다. 한화 관계자는 “한국적 풍토에서 50 대 50의 공동 경영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 조건으로 투자만 받는다면 모를까 정서가 다른 두 기업이 서로 경영을 주도하려고 하면 불협화음이 생기게 마련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포스코와 GS는 인수 가격 차이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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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사업전략회의를 주재하는 김승연 한화 회장. / photo 한화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의 승리를 두고 누군가 “김 회장, 운이 좋다”고 하면 김 회장은 “운도 실력이다”란 말로 대꾸한다고 한다. ‘운도 실력이다’라는 건 김 회장의 평소 지론이다. 그는 골프를 예로 들면서 “100타를 넘게 치는 사람이 홀인원을 할 수는 없다. 80~90타를 치는 실력이 있어야 홀인원을 할 수 있는 것이다”고 말하곤 한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든 것도 김 회장의 결단에서 비롯됐다. 김 회장이 대우조선해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은 2005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수 위주의 사업 구조로는 성장에 한계를 느낀 김 회장은 M&A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국내외 회사를 대상으로 M&A 가능성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그 결과 김 회장은 지난 4월 16~18일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에서 열린 ‘한화 글로벌 경영전략회의’에서 “‘한화그룹의 제2창업’이라는 각오로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하면서 공식적으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포스코·GS 등 오랜 기간 인수를 준비해 온 경쟁자에 비해 한화는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시장에 비쳐졌다.
하지만 김 회장은 강력한 인수 의지를 표명하면서 인수추진팀에 힘을 실어줬다. 김 회장은 8월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아무리 잘 만든 배도 프로펠러가 부실하면 거친 파도를 헤쳐나갈 수 없다”며 “한화야말로 대우조선해양의 강력한 프로펠러가 될 수 있다”라며 다시 한번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한화 관계자는 “김 회장은 지난 6개월간 대우조선해양 인수 건에만 전념했다”며 “중요한 순간마다 수시로 팀장 회의를 주재해서 그룹의 방침을 확정했기 때문에 돌발 상황에 대해 경쟁사에 비해 효과적이고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인수 가격도 김 회장의 선택이었다. 김 회장은 그룹이 감당할 수 있으면서도 매각사가 만족할 수 있는 가격을 산정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산업은행은 “한화가 제시한 가격은 예정가격을 상회했다”고 이례적으로 밝힐 정도로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 정확한 가격은 M&A 관례상 본계약 전까진 공개가 되지 않지만 시장에선 6조~6조5000억원 정도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조선(造船)강국 코리아' 재도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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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의 도전으로 조선업계 지각변동, '2017년 매출 35조… 세계 1위'선언
- 세계 3위의 조선업체인 대우조선해양이 한화그룹의 손에 넘어갔다. 지난 10월 24일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지분 31.26% 보유)인 산업은행은 한화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12월 체결 예정인 본계약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지만 산업은행의 매각 의지와 한화의 인수 의지가 워낙 강해 계약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화는 인수 과정에서 2017년까지 대우조선해양을 확고한 세계 조선 1위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이에 따라 조선업계에 한바탕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세계 조선업계의 순위는 지난 6월 말 수주량 기준으로 현대중공업(1478만t), 삼성중공업(1125만t), 대우조선해양(1099만t) 순이다. 국내 순위도 작년 매출 기준으로 현대중공업(15조5330억원), 삼성중공업(8조5190억원), 대우조선해양(7조1048억원) 순이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의 매출을 2012년까지는 20조원으로 끌어올려 1위 기업과 경쟁을 하고 2017년에는 35조원으로 뚜렷한 세계 시장의 1위를 차지한다는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을 그룹 주력기업으로 키우고
자원개발·해양도시개발 등 새 수익원도 창출”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실물 경제도 악화되고 있어 2000년 이후 세계 해운 호황에 기댄 조선업의 활황세는 한풀 꺾이지 않겠냐는 예상이 많다. 이에 대해 한화 관계자는 “선박 수주에도 신경을 쓰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자원개발, 해양도시개발, 해양환경사업 등 신사업으로 다각화해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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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 조선소 야경. / photo 조선일보 DB
이런 한화의 계획은 한화가 제시한 대우조선해양의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사업 분야는 조선 73%, 석유 시추 시설 등 해양 플랜트 24%, 기타 3%로 구성돼 있는데, 2017년까지 자원·해양도시개발·해양환경사업 등의 신사업 비중을 23%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반면 조선의 비중은 49%로 줄게 된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조선 부문의 규모는 2.8배로 늘어난 17조원으로 현재 현대중공업보다 덩치가 더 커지게 된다.
한화는 또 대우조선해양을 ‘인수 후 주력기업화 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면서 미리부터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화는 작년 1월 태국 방콕에서 ‘해외사업진출전략회의’를 열고 ‘2011년까지 매출 45조원, 해외 매출 비중 40%’라는 전략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작년 매출이 27조원인 한화그룹은 작년 매출 7조원의 대우조선해양을 품으면 매출 30조원대 중반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대우조선해양이 핵심 기업으로 성장하지 않는 한 한화의 비전은 빛을 바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화그룹으로선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함으로써 재계 순위가 올라가 그룹 위상도 올라가게 된다. 민영화된 공기업인 포스코, KT를 포함할 때 공정거래위원회 기준으로 한화는 현재 재계 12위에 올라있다. 인수 후엔 금호아시아나와 한진을 제치고 10위에 올라가게 된다.
대우조선 인수금 6조~6조5000억원 제시설 유력
자금은 그룹 보유 현금에 대한생명 지분 등 매각해 마련
하지만 앞으로 남은 막바지 인수 과정이나 인수 후의 전망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시장의 가장 큰 우려는 ‘승자의 저주’다. 기업 M&A에 성공한 이후 자금난에 빠질 경우를 걱정하는 것이다. 실제 증시에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한화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인수 제안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장에선 한화가 6조~6조5000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화는 지난 3년간 매년 1조원 이상의 이익을 실현해서 상당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한생명 지분·부동산 매각 등으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정확한 내용을 공개할 순 없지만 입찰제안서에는 자금 조달원과의 확약서가 첨부되는 등 확정됐거나 확정적인 내용만 포함됐다”고 밝혔다.
현재 시장에선 한화가 무리하지 않고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은 5조5000억원 안팎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한화가 가진 현금 자산이 2조원 정도 되고, 대한생명 지분 21.37%를 팔아 1조5170억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은 공시했다. 여기에 연·기금, 국내 은행·증권사 등 재무적 투자자를 확보하면 최대 2조원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한화는 5600만 ㎡에 달하는 보유 부동산 중 일부를 매각해서 1조~2조원은 더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화 관계자는 “그룹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을 쓰는 게 인수 제안 가격을 제시하는 원칙 중 하나였다”며 “자금 조달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대우조선해양의 실사 후에 막바지 가격 조정 과정에서 과다·과소 계상된 수주 실적 등이 발견되면 인수 가격이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10월 24일 정인성 산업은행 부행장은 기자회견에서 “통상적으로 5~10%의 가격 조정이 있다”고 밝혀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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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노조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노조는 지난 10월 30일 고용보장과 종업원 보상 등 4개 사항을 내용으로 한 요구서를 산업은행에 보냈다.
대우조선해양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M&A 매물이자,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공기업 민영화의 첫발이기도 하다. 때문에 인수의 성패가 향후 M&A 시장의 판도를 좌우하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지난 3월 20일 전광우 금융위원장의 “산업은행을 민영화하기 위해서는 몸집을 가볍게 해야 한다”는 발언이 신호가 돼서, 일주일 후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매각 작업을 우선적으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 17일 한화가 인수전에 뛰어든다고 공식 발표했을 때만 해도 한화는 포스코, GS 등 경쟁자들에 비해 열세였다.
향후 M&A시장 성패 좌우할 최대 매물
인수전 초기의 열세를 비전으로 뒤집어
초기에는 조선업과는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한화가 인수전에 뛰어든 것을 시장에서 의아해했다. 한화는 화약, 유통, 리조트 등의 사업을 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선박의 재료인 후판을 공급하는 업체로서, 건설에 강점이 있는 GS는 해외 플랜트 건설 등에서 서로 상승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에 한화는 6월14일 경쟁사 중에선 최초로 금춘수 경영기획실 사장 등 핵심 임원이 참가한 가운데 대우조선해양 인수 전략과 인수 후 경영계획을 발표했다. 대우조선해양을 세계 1위의 조선사로 키우겠다는 비전과 그룹의 성장이 맞물려 있다는 걸 시장에 제시한 것이다. 이때부터 시장의 의구심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엔 한화가 M&A 전문 그룹이고 자금 조달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을 시장에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의구심을 갖고 있던 부분을 속 시원하게 풀어준 것이다. 한화는 △전체 매출의 75% 이상이 M&A한 기업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 △인수 때 2조3000억원이었던 대한생명의 부실을 깨끗이 해소했다는 점 △돈을 빌리지 않고도 3조원 이상을 무리 없이 마련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시장에 알렸다.
동시에 국민연금을 재무적 투자자로 유치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당초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최대 1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혔던 국민연금에 대해 시장에선 포스코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한화의 끈질긴 설득 작업에 국민연금은 인수전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된다.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하면 중립적 위치에 서게만 해도 성공인 것이다.
한화는 국민연금이 포기 선언을 한 후에 오히려 “국민연금 없이도 충분히 지금까지 확보한 재무적 투자자와 함께 인수전을 성공할 수 있다”고 밝혀 시장의 불안감을 잠재웠다.
인수전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10월 9일 포스코와 GS가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는 소식이었다. 한화는 내부적으론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했으나 표정 관리를 했다. 10월 13일 입찰 당일 포스코-GS 컨소시엄이 결렬되자 즉각적으로 포스코의 입찰 자격 문제를 제기하고 다양한 법률적 검토 작업을 벌이면서 압박 전략을 구사했다. 결국 포스코가 탈락하고 한화가 인수전에서 승리하게 됐다.
한화석화·한화갤러리아·한화리조트·대한생명…
모두 인수해 주력기업으로 키운 M&A 대표 기업
한화그룹은 국내에서 M&A로 성장한 대표적 기업이다. 한화그룹의 태동도 인수로 시작됐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화약공판에서 일하던 창업주 고 김종희 회장은 일본인이 떠나면서 조선화약공판을 지배인 자격으로 인수해 그룹의 발판을 만들었다.
1981년 8월 김승연 회장이 제2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난 후엔 M&A로 한 단계 도약하게 된다. 현재 한화그룹의 주력 기업인 한화석유화학의 전신인 한양화학과 경인에너지를 인수한 것이다. 이로 인해 1980년 7300억원 규모이던 그룹 매출이 1984년 2조1500억원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1980년대 중반 한화그룹은 M&A를 통한 사업 다각화에도 나섰다. 중화학 공업에 편중된 사업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유통과 관광·레저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1986년 한양의 부도로 M&A 시장에 나온 한양유통(현 한화갤러리아)을 인수했다. 같은 해 역시 부도가 났던 정아그룹을 인수해 한국국토개발(현 한화리조트)로 사명을 변경하고 리조트, 테마파크 등의 사업에 진출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과감한 매각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역(逆) M&A’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수많은 기업이 도산할 때 한화는 한화바스프우레탄, 한화NSK정밀, 한화GKN 등 합작법인의 지분을 처분하고 빙그레와 경향신문을 계열 분리했다.
위기가 지나간 후엔 다시 M&A로 그룹을 키웠다. 2001년 대우전자 방위산업 부문을 인수했고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했다. 특히 대한생명을 3년 만에 정상화시켜 금융업을 그룹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만들었다.
한화그룹은 올해 안에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마무리 지은 후 집중 육성해서 2017년엔 그룹 매출의 50%를 차지하는 주력사로 키울 계획이다.
한화그룹은 재계 12위의 대형 그룹이다. 그렇지만 한화에 대해 일반인이 잘 모르는 사실이 몇 가지 있다. 한화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 5가지를 뽑아 봤다.
1. 한화는 한글 이름이다.
그룹명 ‘한화’는 한자 표기가 없다. 1992년 한화로 개명하면서 화약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 진출해 있다는 의미로 한글로 이름을 지었다. 영어론 ‘Hanwha’, 중국어론 ‘韓華’로 표기한다.
2. 한화는 최루탄을 만든 적이 없다.
1980년대에 한화가 최루탄을 만든다는 소문이 퍼진 적이 있다. 하지만 최루탄을 생산한 적은 없다. 최루탄을 만들던 대표적 회사는 삼양화학이었다.
3. 총알을 생산하지 않는다.
한화가 탄약을 생산하긴 하지만 총알을 만들지는 않는다. 한화는 산업용 폭약이 주력이다. 총알을 생산하는 대표적 기업은 풍산이다. 군용탄을 수출까지 하는 풍산은 올해 방위산업 수출 최초로 1억달러를 넘기기도 했다.
4. 다이너마이트도 국내에선 만들지 않는다.
한화 창업자 김종희 회장은 다이너마이트(니트로글리세린)의 국산화에 성공해 ‘다이너마이트 김’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선 다이너마이트를 생산하지 않는다. 기술은 중국으로 이전됐다. 대신 국내에선 에멀전 폭약 등 첨단 폭약을 생산하고 있다.
5. ‘세계 불꽃 축제’의 주최자다.
매년 10월 서울 여의도에서 ‘서울 세계 불꽃 축제’가 열린다. 2000년 시작된 이 축제는 국내 최초의 세계 불꽃 축제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시와 같은 자치단체가 주최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론 한화가 주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