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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채용한 한국인들

醉月 2009. 9. 2. 08:53

취업 빙하기 글로벌 채용시장 노려라
각국 ‘일자리 보호주의’로 심각한 구직난 … 장기적으론 ‘국적’보다 ‘능력’ 우선 ‘틈새 고용’ 확대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간만에 채용공고가 뜨더라도 ‘US Citizen only’라는 조건이 꼭 붙어 있습니다. 채용공고를 보러 유학생끼리 모였다가 한숨만 푹 쉰 뒤 뿔뿔이 헤어지곤 합니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MBA 과정에 재학 중인 한 한인 유학생은 요즘 현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지구촌 곳곳에서 실업자가 대거 쏟아지고 신규 일자리 또한 얼어붙으면서 ‘일자리 보호주의’가 어느덧 세계 각국의 대세가 돼버렸다. 자국민이 해고되는 상황에서 외국인에게 줄 일자리는 없다는 논리다. 이어지는 이 한인 유학생의 얘기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아이비리그 유학생도 현지 취업이 봉쇄된 상황입니다.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들의 외국인 채용을 사실상 금지해버렸거든요. 그러니 월스트리트에서 외국인을 채용할 여력이 있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올해는 남아도는 미국 취업비자 H-1B

글로벌 브랜드의 미국 본사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는 김모(30) 씨는 “회사 처지에서는 지금이야말로 고급인력을 싼값에 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전했다.
“신입 디자이너를 뽑는다는 채용공고를 내면 하루 100장의 이력서가 날아오는데, 대부분이 경력 디자이너라고 해요. 이런 상황에서 취업비자 지원까지 해줘가며 굳이 외국인을 채용할 이유가 없는 거죠.”

구제금융을 받지 않았더라도, 자국민 노동력을 충분히 구할 수 없더라도 ‘눈치가 보여서’ 외국인을 채용하기 어려운 실정이기도 하다. 지난 1월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례적으로 “상당수의 외국인 직원을 해고했다”고 발표했다. MS는 학사 이상의 외국인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취업비자 H-1B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대표기업으로 꼽혀왔다.

빌 게이츠 회장도 여러 차례 “미국이 기술산업 노동력을 충분히 확보하길 원한다면 H-1B 연간 할당량(quota)을 폐지해야 한다”며 의회를 설득한 바 있다. 그런 MS가 ‘외국인 직원 해고’를 자랑(?)한 것은 자국민의 일자리를 먼저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을 의식한 조처로 해석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 사이에서 취득 경쟁이 치열하던 취업비자 H-1B가 올해는 남아도는 형국이다. 그동안에는 연방이민서비스국(USCIS)이 매년 4월1일부터 H-1B 접수를 시작하면 열흘도 되지 않아 6만5000개의 연간 할당량이 동이 나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8월 말 현재까지도 H-1B 할당량이 남아 있는 상태다.

   

취업 기회 자체가 드물 뿐 아니라, 미국 기업들이 외국인 채용을 꺼리기 때문.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09 연례 이민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외국인 근로자 실업률은 약 10%로 자국민 실업률 9.4%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위기 이전과 반대되는 추세다.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도 취업 관문은 더욱 좁아졌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모(44) 씨는 “과거에는 프랑스인과 결혼하고 2년만 지나면 영주권이 나왔는데, 지금은 4년이 지나야 한다”며 “이처럼 결혼이민조차 통제하는데 하물며 외국인의 취업 가능성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영국에 유학 중인 최모(28) 씨는 “세계적인 명문 옥스퍼드대를 나오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취업연수팀에 따르면, 2007년 일본 취업연수생의 취업률은 75%였지만 2008년에는 41%로 떨어졌다. 취업연수팀 일본담당 박성희 과장은 “올해는 상황이 더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300만~350만 엔대의 초임 연봉을 낮춰야 그나마 취업 가능성이 열리는 형편”이라고 일본 채용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귀국 유학생 급증 ‘취업전쟁’ 가세

5월 뉴욕 컬럼비아대 MBA 과정을 졸업한 송기영(31) 씨는 최근 서울 여의도의 사모펀드 회사에 취직했다. 외국계 전략 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유학을 떠난 2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꿈은 월가의 금융맨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월가 사정은 너무 나빴다.

“MBA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직장 찾기에 나서요. 저도 2007년 11월부터 인턴 채용 인터뷰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전인데도 조짐이 좋지 않았어요. 인턴으로 채용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취소하는 사례도 많았고, 2008년 여름부터는 아예 채용공고가 나오질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월가 인턴십을 구하지 못해 2008년 여름방학 때 현재 채용된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했고, 정규직을 제의받아 귀국하기로 결심했다.

송씨는 “최종면접까지 간 월가의 금융회사 중에는 현재 망한 회사도 있다”며 “원하던 업종의 회사에 취업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털어놨다. 송씨처럼 취업이 확정된 상태에서 귀국한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많은 유학생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상태로 귀국해 ‘취업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취업·인사정보 사이트 인크루트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 대학 출신 구직자들의 신규 이력서 등록건수가 최근 들어 급증했다.

올 2분기 등록건수는 599건으로, 전년 동기(409건) 대비 46%나 증가한 것. 북미(50%), 유럽 및 오세아니아(41%), 아시아(34%) 순으로 등록건수 증가율이 높아 선진국 유학생일수록 현지 취업이 더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미국 뉴욕의 패션회사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는 박모(36) 씨는 “여덟 군데 이력서를 제출해 한 군데에서 합격한 나는 정말 잘된 경우”라며 다행스러워했다. 물론 그도 학생비자로 일할 수 있는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정규직을 구해 취업비자를 받지 못하면 미국을 떠나야 한다.

“수십 군데에 이력서를 제출하고도 인터뷰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유학생들이 부지기수예요. 불법이지만 무급으로 인턴을 채용하려는 회사도 많고요. 그런데 그런 자리를 놓고도 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취업에 실패하거나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돼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이 많다 보니,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의 월세도 많이 내렸어요. 룸메이트 구한다는 광고물도 엄청나고요.”

   

그러잖아도 언어와 비자 문제로 어려운 해외 취업이 글로벌 경기침체가 낳은 ‘일자리 보호주의’ 때문에 더욱 힘들어진 상황이다. 해외 취업은 전 세계 청년들이 더 이상 넘봐서는 안 될 성역(聖域)이 되고 만 것일까. 이런 우문(愚問)에 OECD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주 근로자에 대한 각국의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현답(賢答)을 내놓았다.

OECD는 2009 연례 이민보고서에서 최근 세계 각국이 외국 출신 근로자들의 이주를 막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동시에 장기적 관점에서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실제 영국의 경우 1997년 이후 늘어난 일자리의 70% 이상을 외국인 근로자들이 채워왔다. 세계 각국 정부도 지금이야 사정이 좋지 않지만, 해외 인재가 자국에 ‘수혈’될 필요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호주 이민당국은 8월 언론을 통해 “최근 경기침체로 외국인 근로자 수가 감소했지만, 호주는 여전히 특정 분야에서 해외 인력을 필요로 한다”고 밝혔다. 특히 헬스케어 산업과 광산업에 종사할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 캐나다 이민성 제이슨 케니 장관도 최근 “정부는 외국인 숙련노동자가 캐나다 노동시장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이는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강한 캐나다’를 건설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좀더 빠르게 캐나다 고용주는 인력 공백을 채우고, 외국인 근로자는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새로운 로드맵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론 해외 인재 ‘수혈’ 확대

국내 사정을 고려해도 한국 청년들의 해외 취업은 적극 독려할 일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방하남 연구위원은 “한국 경제는 청년 인력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데다 고급인재들에게도 걸맞은 대우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계무대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법무법인 한중의 문상일 미국변호사는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고 있어 이들 기업, 그리고 한국 시장과 거래하는 현지 회사들의 한국인 채용 욕구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학 대비 현지 취업 비율이 낮다는 점에서도 적극적인 해외 취업은 장려돼야 한다.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통계국에 따르면, 2008년 현재 한국 출신의 미국 유학생은 12만7185명(전체의 14.8%)으로 국가별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H-1B를 발급받은 한국 출신 취업자는 1만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취업자(15만4726명)가 유학생(8만5067명)보다 2배가량 많은 인도와 뚜렷하게 대비되는 ‘실적’이다.

무역을 통해 자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품을 해외에서 들여오듯, 노동력 또한 넘치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이동하게 마련이다. 각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기에 점점 더 인재의 국적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추세다. ‘주간동아’는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으로 해외 취업에 성공한 한국 청년들을 만났다(33쪽 참조). 그리고 능력, 열정, 성실함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인재는 해외 취업의 좁디좁은 문을 충분히 뚫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유림(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주간동아 대학생 인턴기자 신지나(경희대 언론정보학부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해외인턴, 빛 좋은 개살구 될라
야심찬 추진 불구 해외취업 결실 불투명 … 철저한 계획과 프로그램 내실화 필요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1990년대 초반 서점가를 뜨겁게 달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책 제목이다. 좁은 한국시장을 벗어나 세계와 경쟁하자는 그의 주장은 20년 세월을 건너뛰어서도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미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좁은 국내시장의 한계는 늘 우리의 눈을 밖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98년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상황에 처했을 때도 우리 경제의 탈출구는 ‘안’이 아닌 ‘밖’이었다. 그리고 결국 해외시장을 겨냥한 수출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게 한 일등공신이 됐다. 위기가 왔을 때, 세계라는 넓은 시장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만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발(發) 경제위기로 제2의 외환위기가 터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 아래 세계경제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그 여파로 최근 2년 새 국내 실업률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난 6월 기준 실업자는 96만명으로 1년 전보다 20만명 가까이 늘었다. 2005년 2월 실업자가 98만9000명을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로, 3.9%에 이르는 실업률이다. 특히 청년실업자 증가세는 위험수위. 15~29세 청년층 실업자는 37만2000명으로 실업률은 무려 8.4%에 달해 일반 실업률의 2배를 넘는다.

해고의 경직성, 고용 없는 성장 등으로 새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 가운데, 청년실업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청년실업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는 이런 위기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세계’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1월 신년 국정연설에서 청년 일자리 만들기를 올해의 국정목표로 강조한 뒤 7만개의 청년인턴, 글로벌 청년리더 프로그램과 함께 한미대학생연수취업(WEST)을 액션플랜으로 제시했다.

해외 취업과 해외 인턴을 청년실업의 돌파구로 삼은 것. 이는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2008~2012년 해외 취업 5만명, 해외 인턴 3만명, 해외 봉사 2만명 양성을 목표로 삼고 추진하는 ‘글로벌 청년리더 10만명 양성 계획’의 일환이다. 현재 해외 인턴사업은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여성부,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 농촌진흥청 5개 부처와 청에서 9개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표 참조).

   

2009년도 예산은 190억4000만원으로 전년도 33억6400만원 대비 약 5.7배 증가했다. 이 가운데 교과부와 지경부 예산이 전체 사업 예산의 88%를 차지한다. 지원인원도 전년도 882명에서 3695명으로 4.2배 늘었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정부가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의욕적으로 해외 인턴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계획과 관리 면에서 부실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해당 부서들이 대통령 눈치를 살피며 겉으로 드러나는 실적 보이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은 외교부의 WEST이다. 2008년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돼 올 초부터 시작한 WEST 프로그램은 ‘Work’ ‘English Study’ ‘Travel’의 앞글자를 따 이름을 붙였다. ‘미국에서 일하며, 영어를 배운 뒤 여행을 하다 돌아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 국무부의 ‘교류방문자(Exchange Visitor) 프로그램’ 범주에서 운영되며 어학연수 5개월, 인턴취업 최장 12개월, 여행 1개월로 구성된다(상자기사 참조).

WEST, 이렇게 신청한다
WEST 프로그램의 선발과정은 크게 5단계다. 접수 공고가 뜨면 온라인으로 지원 신청을 한다. 참가신청서, 계획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뒤 영어성적과 전 학년 성적증명서, 재학 혹은 졸업 증명서 등을 스캔해 첨부한다. 자격요건을 갖춘 신청자를 대상으로 영어말하기와 면접을 실시해 정부 추천 대상자를 뽑는다.
정부 추천 대상자로 선발된 지원자는 자신이 참여할 스폰서와 어학연수기관을 선택한다. 스폰서는 WEST 프로그램 수행 및 참가자 관리를 위한 미국 측 기관으로, J1비자 신청을 위해 필요한 DS-2019 서류발급 및 어학연수 프로그램 운영, 인턴업체 발굴 및 소개, 학생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즉 스폰서는 선발된 학생이 ‘인턴직을 수행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미국 정부에 보증하는 것이다.
스폰서가 지정되면 WEST 프로그램 참가자는 참가신청서(참가비용 포함)를 스폰서 또는 글로벌 인턴지원단에 제출한다. 스폰서의 심사 후 J1비자 발급을 위한 DS-2019 서류를 발급받는다. 기존의 어학연수로는 미국 현지에서 근로를 통해 비용을 충당하거나 실질적인 업무 경험을 쌓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WEST 프로그램 참가자에게는 인턴 취업이 가능한 J1비자가 발급된다. 미국 비자를 발급받은 참가자는 항공권을 구매해 어학연수과정 시작 전, 미국으로 출국하면 된다.

지난 3월 말 제1기 WEST 프로그램 참가자 190명이 출국한 뒤, 4월 말 제2기 참가자 선발을 마쳤다.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어학연수, 실무경험, 여행 기회를 한꺼번에 경험함으로써 참가자들이 청년실업을 극복하고 글로벌 인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아직 초기이긴 해도 여기저기에서 빈틈이 보인다. 상당수 참가 학생은 8000달러가 넘는 적지 않은 참가비를 내면서도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프로그램 중간에 다른 업체를 통해 인턴 자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고, 업체가 구해준 일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인턴을 포기하면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스폰서와 WEST 참가 학생 간에 갈등이 빚어져 학생이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됐을 때도 뾰족한 해결방법이 없다.

 

WEST 액션플랜 결과는 “글쎄?”

기존의 해외 인턴사업을 이름만 바꿔 재탕해 생색내기 수준에 머문 경우도 발견된다. 지난 4월29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표한 ‘해외 인턴사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실행 중인 정부의 해외 인턴사업 중 상당수가 과거에 폐지된 해외 인턴사업의 문제점을 전혀 개선하지 않은 채 유사한 사업으로 신규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경부의 ‘글로벌 무역전문가 양성사업’은 옛 산업자원부(현 지경부)의 ‘청년 무역인력 양성사업’과 유사하다. 청년 무역인력 양성사업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평가 결과 ‘해외 인턴 파견 업체가 대기업 중심으로 편중돼 있고 공공지원 및 정부지원의 필요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 2007년 폐지됐다. 그런데도 지경부는 이런 지적 사항을 반영하지 않은 채 청년 무역인력 양성사업처럼 대기업 중심으로 해외파견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지경부 무역정책과 최영학 사무관은 “일부러 중소기업에 파견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파견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해외지사는 ‘1인 지사’인 경우가 많은데 인턴까지 오면 부담스러워한다”며 “그래도 2기가 출발하는 9월부터는 중소기업도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기존 사업 재탕에 부실한 인력관리

또한 이 보고서는 교과부에서 4년제 대학생 및 최근 졸업생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대학생 글로벌 현장학습 사업’도 노동부가 추진하다 폐지한 ‘해외 인턴사업’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한다. 노동부의 ‘해외 인턴사업’은 대졸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6개월간 해외 현지 인턴근무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턴 참여자 및 파견 대상자 500명 가운데 회사원, 교육종사자, 공무원 등의 참여율이 40%나 됐다. 심지어 졸업 후 취업률이 100%에 이른다는 한국기술교육대학(KUT) 재학생 34명이 포함되는 등 인턴 파견 대상자 선정이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돼 2007년 사업이 폐지됐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대학생 글로벌 현장학습 사업’ 대상자의 선정 기준으로 참여 학생의 어학능력 및 학업성적만을 평가해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에 대해 교과부 글로벌인재육성과 고계석 사무관은 “노동부 사업은 취업을 하지 못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었고, 지금 교과부의 사업은 재학생을 중심으로 우수학생에게 인턴 기회를 부여해 해외취업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사업으로 차이가 있다”며 “예산을 마련해 저소득층을 배려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며, 해당 인턴들이 귀국하면 전수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회예산처는 “해외파견 인원수라는 양적 지표를 무리하게 목표로 삼기보다는 비록 소수라도 인턴 기간의 합리적 조정, 민간업체 참여 유인책 마련 등을 통해 사업운영의 내실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인턴에 대한 사전 수요조사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는 점도 문제. 민간기업의 참여를 통해 해외 인턴사업을 수행할 경우 현지 기업들이 실제 얼마만큼 해외 인턴을 필요로 하는지 수요 예측이 선행돼야 하지만, ‘숫자 채우기’에 급급해 이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예컨대 지경부의 ‘플랜트 해외 인턴사업’은 3월20일 기준 해외 플랜트업체가 필요로 하는 인턴은 18명 수준인데 정부가 파견하기로 한 인원은 100명에 달했다. 그러다 보니 목표에 숫자를 거꾸로 끼워 맞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플랜트 해외 인턴사업을 통해 러시아에서 4개월간 해외 인턴으로 일한 대학생 김태연(27) 씨는 “현지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턴 정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일단 보내고 보자는 식으로 추진하는 바람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때우다 들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부실한 인력관리도 도마에 올랐다. 교과부 ‘전문대학 해외 인턴십사업’의 경우 무비자로 파견된 인턴이 조기 귀국하거나 일시 귀국 후 재출국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전문대학 해외 인턴십사업’으로 4개월간 일본에서 해외 인턴으로 일한 김종환(30) 씨는 “막상 일본에 도착하고 보니 현지 생활과 인턴 활동을 안내해주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며 “다행히 학교에서 협력업체를 통해 인턴 자리를 알아봐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정부로부터는 일부 경비 지원 외에는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허술한 관리를 틈타 해외 인턴십 참가 학생들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 연수비를 받아 챙기는 일도 벌어졌다. 8월10일 감사원의 교과부 기관운영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문대학 해외 인턴십사업’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인턴십 미수행자와 중도 포기자에게 지급된 국고보조금 8567만원이 회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과는 무관한 여행 비용, 어학연수 비용에 국고보조금을 사용하거나 인턴십 프로그램을 완료하지 않고 조기 귀국한 사례도 적발됐다.

정부가 의도한 대로 해외 인턴을 마친 뒤 이 경험이 실제 해외 취업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이 부분은 2006년 KDI가 정부 의뢰를 받아 실시한 ‘해외 취업지원 사업 심층평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 보고서는 “해외 인턴사업이 성과는 거의 없고 해외여행 및 어학연수 등으로 잘못 이용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인턴 수료 후 실제 해외기업으로 취업한 비율은 20%에도 못 미쳤다.

 

20% 못 미치는 취업률 그나마 3D업종

현재 상황은 더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탓에 밖으로 나간다 해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노동부 등의 자료에 따르면, 해외 취업 연수 이수자의 취업률은 2006년 67%(취업자 1196명)에서 2008년 19%(취업자 370명)로 급감했다. 10명 중 8명은 1년 연수를 받아도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얘기.

지난 5년간 해외 취업이 가장 많았던 일본 연수취업자도 2007년 487명에서 2008년 25명으로 급전직하했다. 지난 5년간 해외 인턴 등을 통한 해외 취업자는 4700여명에 그치고 그 수가 해마다 줄어드는 상황에서 향후 5년간 5만명을 내보내겠다는 정부의 호언장담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나마 해외 인턴으로 활동한다 해도 업무 분야는 열악한 3D 업종이 대다수다. 청소, 호텔 룸서비스 등 잡일도 부지기수. 전문자격증이 없는 구직자가 단지 해외 인턴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번듯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이럴 경우 해외 인턴에서 단순한 ‘경험’ 이상의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고용정보원 관계자는 “해외 인턴이든 해외 취업이든 상당수 인력은 결국 경쟁력 없는 부분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내국인이 3D 업종에서 일하지 않으려 하니까 외국인이 유입되는데, 다른 나라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겠느냐”고 반문했다.

청년실업 해소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시작한 해외 인턴사업. 좋은 의도로 실시한 정책이지만 무작정 해외로 나간다고 글로벌 인재가 양성되고 청년실업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치밀한 준비 없이 무분별하게 해외 인턴을 양성하다가는 그 후유증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청년들에게 ‘해외로 눈을 돌려라’라고 외치기 전에 철저한 계획 수립과 프로그램 내실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해외 인턴 경험자가 말하는 ‘해외 인턴십’
“세상 보는 눈 키웠지만 무급, 짧은 기간 아쉬움”


대덕대 관광항공철도승무과 2학년 서누리(20) 씨는 교과부가 총괄하는 ‘전문대학 해외 인턴십’을 통해 지난 4월부터 4개월간 호주에서 해외 인턴으로 활동했다. 그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몇 가지만 보완하면 더욱 많은 학생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해외 인턴십을 지원한 계기는?
“영어 공부도 하고 싶었고, 외국생활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마침 정부와 학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전문대학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을 알게 돼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호주에서 무슨 일을 했나.
“전공을 살려 유스호스텔에서 일했다.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 체크아웃 업무를 맡으며 유스호스텔에 머무르려는 세계 각국 사람들의 예약 서비스를 담당했다.”
해외 인턴십이 많은 도움이 됐나.
“비록 4개월의 짧은 기간이지만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정부와 학교에서 지원을 한다고 하지만 많은 돈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항공권과 4개월에 420만원을 받았는데, 호주의 비싼 물가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더욱이 무급으로 일하기에 부모님께 어느 정도 의존해야 하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일단 호주에서 일을 해보니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며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혔다. 이번 해외 인턴십을 계기로 해외 취업을 목표로 삼게 된 점도 큰 성과다.”
아쉬웠던 부분이라면.
“기간이 짧다는 점이다. 현지에서 특별한 관리가 없었던 점도 아쉬웠다. 집을 구하거나 어학연수 후 산업체를 배정받을 때 모든 것을 내가 직접 해야 했기에 어려움이 컸다. 좀더 관심을 가지고 인턴들의 현지 생활을 관리해줬으면 한다. 그래도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독립성을 키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해외 인턴십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현지 생활에 대해 숙지하고 가길 권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다른 문화에서 생활하게 되기에 문화적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미리 알고 가면 실수도 줄이고 금방 적응할 수도 있다. 무급으로 일하기 때문에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여러 노하우를 익히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해외 인턴을 통해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배우는 자세로 임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청년들이여, 해외취업 문 두드려라!
심각한 청년실업 돌파구 기대 … “한국인 프로의식 최고” 현지 기업도 능력 인정
정진영 한국산업인력공단 해외취업국장 jy314@hrdkorea.or.kr
 
 

현재 세계경제는 2008년 하반기에 발생한 미국발(發) 금융위기의 충격으로부터 다소 회복해 최악의 경기침체 국면에선 어느 정도 벗어난 형국이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보호무역주의 확대로 정책을 전환하면서 자국민 고용시장 우선 보호, 외국인 노동력 도입 억제 등을 가속화하고 있다.

국내로 눈을 돌려봐도 취업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고용 없는 성장’이 날로 심각해지며 고용 불안, 비정규직 양산 등 취업시장의 사정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88만원 세대’로 상징되는 청년실업의 현주소는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를 암담하게 한다.

이처럼 나라 안팎으로 취업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 청년들이 실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정부 또한 청년실업을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며 미래의 성장엔진으로 활약할 젊은이들의 취업 문제를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우리 청년들이 해외 기업들에서 근무하면서 그간 쌓아올린 우수한 평가는 세계적인 경기불황이 닥쳤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우리 청년들은 해외 현지 기업들로부터 인재의 좌우 날개라고 할 업무 능력과 인성(人性) 부문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해외 취업 현장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격찬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랍에미리트연합국의 글로벌 항공사 에미레이트항공에는 90여 개국 7000여 명의 항공승무원이 근무한다. 이 중 한국인 승무원은 300~400명으로 호주, 영국 출신 다음으로 많다. 이 항공사의 인사채용 담당자 멜리사는 “한국 승무원들은 직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친절하고 따뜻한 태도로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최선을 다해 매우 인상적”이라고 호평했다.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트에 소재한 미용업체 센트릭스 헤어(Centrix-Hair)는 최근 세계기능올림픽대회 은메달리스트 등 우수한 한국인 미용사 3명을 채용했다. 이 회사 고용주는 “ 이들 한국인 직원이 기존 캐나다 직원들의 미용기술과 스타일을 모두 바꿔버렸다”면서 “고객들 또한 한국인 미용사만 찾는다”고 놀라워했다.

미국의 대형 한인 유통업체 H-Mart의 정원상 인사담당 이사도 “한국 출신 근로자가 필리핀이나 멕시코 출신, 심지어 미국 현지인보다 훨씬 높은 성실성과 직무충실도를 보여 매년 한국을 방문해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 일각에서는 우수 청년인재의 해외 취업을 이른바 ‘두뇌유출’이라 보고, 국내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청년 해외취업 중 상당수가 3년 미만의 ‘단기 취업’에 머물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해외취업은 항구적 인적 자원의 유출이라고 할 ‘취업이민’으로 연계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 통상 취업이민은 학력, 경력, 취업직종, 소득수준 등의 항목에서 높은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설령 일부 청년이 취업이민을 해 해외에 정착한다 해도 요즘 같은 세계화시대에는 이들을 지구촌의 한국 맨파워이자 핵심 한인 네트워크로 보는 것이 더 맞다. 더욱이 청년들이 희망하는 해외 진출 분야는 주로 전문직, 서비스직으로 국내에서 극심한 구인난을 겪는 중소제조업 분야와는 중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 청년들의 해외 도약은 개인적으로는 글로벌 문화 체험, 영어 등 외국어 능력 향상, 선진기술 습득 등 세계인으로서의 역량을 배양하는 기회로 여겨야 한다. 국가적으로는 수출주도형 경제체제를 가진 우리의 국가경쟁력을 더욱 높이고, 고질적인 국내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 구실을 할 것이다.

그러나 해외 취업은 준비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기회다. 해외 취업이 국내 취업보다 많은 정보와 구체적인 청사진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해외 취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명심해야 할 해외 취업 10계명을 소개한다. 두루 참고하길 바란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해외 취업 10계명

 

첫째, 내게 유리한 국가와 직종을 찾아라.
전 세계 많은 일자리가 젊은이들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고, 이를 놓고 세계 젊은이들이 치열하게 경쟁한다. 갈팡질팡하지 말고 자신의 관심 국가와 직종을 결정하는 것이 해외 취업의 첫걸음이다.

둘째, 직장 연수(internship)를 통해 정규직을 잡아라.
해외 현지기업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면 정규직 전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인턴십 기간이 경력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셋째, 반드시 취업비자를 받아라.
일단 관광비자로 출국한 뒤 취업비자를 신청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관광비자로 취업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불법이다.

넷째, 해외 취업은 장기전이다.
국내에서 해외 취업을 준비할 경우 입사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거쳐 근로계약을 맺은 뒤, 취업비자를 받고 출국하기까지 최소 3개월에서 최대 3년이 걸린다. 성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다섯째, 전문기관에서 꾸준하게 상담을 받아라.
한국산업인력공단 같은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헤드헌터와 수시로 상담하며 업계 동향이나 취업 정보를 얻는 것이 큰 경쟁력이 된다. 상담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분야나 경력 관리에 대한 조언도 받을 수 있다.

여섯째, 근무할 기업의 담당자와 직접 상담을 하라.
취업 확정 통보를 받으면 근무할 나라와 기업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아보고 직접 기업 담당자와 e메일 등으로 연락을 취해 기업 위치, 생활 조건 등을 알아보도록 한다.

일곱째, 능력 이상의 높은 임금은 일단 의심하라.
전문적인 지식·기술이나 경력이 적은데도 능력 이상의 연봉과 혜택을 보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는 낮은 연봉을 받으며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단순 업무를 하는 일자리일 수도 있다.

여덟째, 업무나 부서 전환의 기회는 없다.
일단 아무 자리나 취업에 성공한 뒤 현지에서 원하는 분야로 바꾸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처음부터 관심 분야를 선택해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홉째, 선금만 요구하는 알선업체를 조심하라.
최근 선금만 받고 사라지는 알선업체의 사기가 늘고 있다. 정보 제공, 구인업체 소개 등을 명목으로 선금을 요구하는 곳은 유의한다.

열째, 노동부에 등록된 업체를 이용하라.
믿을 수 있는 알선업체를 찾는 가장 안정적인 방법은 노동부 워크넷(www.work.go.kr)이나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등록된 국외 유료 직업소개소를 이용하는 것이다.

 

찾았다! 해외취업 지름길
한국산업인력공단 해외연수·알선 프로그램 이용하는 법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어느 곳에서든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큰돈 들이지 않고 해외취업에 도전할 수 있는 방법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사장 유재섭·이하 공단)은 1998년부터 정부 차원의 공공 해외취업사업을 벌여왔다.

해외취업 알선과 해외취업을 위한 연수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사업. 해외취업 알선은 해외에 소재한 국내외 기업들이 한국 인력을 구할 때 중개 구실을 하는 것이다.

1998년 싱가포르에 건설·토목 인력 11명 등 13명이 공단 알선으로 해외취업에 성공한 이후 취업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한 해 200여 명의 해외취업자를 알선했다.

2004년 해외 연수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공단을 통한 해외취업자가 크게 늘었다. 2004년 571명으로 늘더니 2005년에는 1621명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후 공단은 매년 1400~1500명을 해외취업에 성공시키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단순히 해외취업을 알선하는 것보다 해외 기업들이 원하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직종별 특성화 교육프로그램을 통과한 인력을 소개하는 것이 취업 성공률 면에서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취업자 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직종별 특성화 교육 취업 성공률 높여

공단이 집계한 2009년 4월까지의 해외취업 현황을 보면, 일본이 2849명으로 가장 많고 중국 2478명, 아랍에미리트 650명, 미국 516명, 호주 267명, 사우디아라비아 235명, 싱가포르 130명 등 8200여 명이 공단의 알선이나 연수프로그램을 통해 해외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주요 취업 분야는 정보통신(IT), 의료, 건설·토목, 사무·서비스, 기계·금속, 전기·전자 등 제조업과 서비스업이다.

이들의 취업 직종은 알선이냐, 연수프로그램이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알선을 통한 취업 직종은 건설·토목공, 이·미용사, 주방장과 조리사 또는 주방보조원, 정육가공원, 각종 기계조작원 또는 수리원, 용접공 등 3D 직종이 많았다. 반면 연수프로그램을 통한 취업 직종은 학원강사, 간호사, 치과기공사, 항공사 승무원, 소프트웨어 개발 및 프로그래머, 경영·금융·무역·사무 관련 종사자, 호텔 관련 사무 및 서비스 종사자 등 전문 직종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과정이나 해외취업 준비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예로, 지난 6월 국내 취업난과 경기불황을 피해 해외취업을 결심한 A씨는 공단 알선으로 미국 뉴욕에 있는 회사에 지원해 합격 통보를 받았다. A씨는 비자를 받으려고 공단이 추천한 중개업체에 수수료 5000달러를 건넸는데, 그 후 연락이 두절되고 말았다. A씨는 공단이 추천한 중개업체라서 의심하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공단 측은 “피해자가 고소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답해왔다.

   

지난해 9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실시한 캐나다 취업설명회에 해외취업 희망자들이 대거 몰렸다.

지난해 7월에는 2004년부터 4년간 공단 간부와 연수기관 관계자가 공모해 연수기관 지원예산을 횡령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공단 간부 권모 씨는 이모 씨가 운영하는 항공사 승무원 양성학원을 해외취업 연수기관으로 선정하고 수억원의 지원금을 불법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가 외국계 항공사에서 한국인 승무원 380여 명의 명단을 빼내 마치 자신의 학원에서 배출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 해외취업 지원금을 신청했고 권씨는 이를 눈감아줬다는 것이다.

이씨가 2004년부터 받아간 지원금은 12억여 원. 이 과정에서 공단의 전직 임원 이모 씨는 재임 시절 연수담당 직원으로부터 지원금이 부당하게 집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묵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다른 공단 간부 최모 씨는 학원대표 이씨에게 술과 식사 등 수백원대의 향응을 제공받았다.

그 이전부터도 공단의 해외연수 지원금을 둘러싼 문제는 자주 지적돼왔다. 연수기관들이 연수생 수를 부풀리거나, 연수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까지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해 지원금을 챙겨간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공단은 지난해 사건을 계기로 이 같은 문제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연수시스템을 전면 개편했다. 연수생 부풀리기나 연수 미자격자의 교육을 차단하고, 정상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되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위해 ‘지문인식시스템’을 도입했다. 즉, 연수생들이 교육장에 입·퇴실할 때마다 일일이 확인하는 것. 이 기록은 실시간으로 공단에 전송돼 대리 출석은 물론, 조작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지난 1월부터는 해외취업 연수기관에 대한 관리규정도 대폭 강화했다. 해외에 취업정보 습득이나 직업소개소를 차려놓지 않은 채 국내에서 연수비만 챙기는 사기업체를 솎아내기 위해 연수기관 신청 시 ‘국외 직업소개소 등록증’을 반드시 첨부하도록 했다. 문제를 일으킨 항공사 승무원 양성학원 등에서 주로 진행하던 ‘해외취업 맞춤 및 특별 연수프로그램’도 폐지했다. 이 프로그램은 취업 실적에 따라 지원금과 별도의 성과금을 받는 것이었다.

재학생이나 재직자 등 연수 대상자가 아닌 사람들이 편법적으로 교육받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확정된 연수생을 대상으로 고용보험 이력도 조회하기로 했다. 또 해외에서 연수한 경우에는 출입국 기록을 조회해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는 것이 강화된 공단 방침이다.

연수기관 관계자들은 공단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한 연수기관 관계자의 얘기다. “솔직히 과거에는 돈만 벌기 위해 신청하는 연수기관들이 많았어요. 저도 한 1년만 돈 벌고 그만두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공단 담당자를 보면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굉장히 적극적으로 문제를 보완하고 해외취업자를 늘리려고 애쓰니까 저희도 안 뛸 수 없죠. 이제는 허위로 연수생을 늘리거나 문제를 일으켰다가 걸리면 곧바로 퇴출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연수기관은 거의 다 사라진 것 같아요.”

   

공단이 연수기관들로부터 그만큼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7월1일 현재 공단이 선정한 해외취업 연수기관은 모두 127개. 이들 기관이 공단으로부터 승인받은 연수프로그램은 267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지원한 연수생이 없어 63개가 폐강됐고, 204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거나 연수생을 모집 중이다.

 

1인당 최대 360만원까지 연수비 지원

연수프로그램은 연수기관에 따라 전액 무료에서부터 일정액 자비부담까지 다양하다. 자격 조건은 만 29세 이하의 미취업자. 남자는 군필 및 면제자에 한한다. 다만 연수기관이 해외 구인업체로부터 취업 약속을 받는 등 조건에 맞으면 30세 이상도 정원의 30% 내에서 모집 가능하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연수기간에 졸업이 예정된 경우에만 연수 대상에 포함된다.

1인당 연수비는 최대 360만원까지 지원된다. 현재 모집 중인 연수프로그램은 공단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월드잡’(http://worldjob.hrdkorea.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수를 받지 않고 곧바로 해외취업을 희망하는 경우에는 해외취업 알선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해외 구인정보는 ‘월드잡’에 수시로 업데이트된다. 관심 있는 구인정보가 올라오면 인터넷으로 지원하거나 공단을 방문해 상담받은 뒤 지원할 수 있다. 자신의 이력서(국·영문)는 물론, 희망직종과 조건 등을 등록해놓을 경우 적당한 구인정보가 접수되면 공단 측에서 직접 알선해주기도 한다.

해외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실력을 쌓는 일이다. ‘월드잡’에 접속하면 연수 및 채용정보를 알리는 팝업창과 함께 해외취업 희망자에게 전하는 정진영 해외취업국장의 글이 뜬다. 해외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눈여겨봐야 할 내용이다.

“일반 사무·서비스직은 물론이고 기술·건설 인력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어학 실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높아진 희망 구인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취업 희망 국가의 어학 능력 향상 등 부단한 자기계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어학 능력은 단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의 꿈을 실현하시기 위해서는 꾸준히 어학공부를 하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세계가 뽑은 한국 인재 26명을 만나다
 
 

샌프란시스코 구글 본사 직원, 뉴욕의 언더웨어 디자이너, 일본 유수기업의 해외영업 담당자, 영국의 다국적 석유회사 마케터, 프랑스 광고회사 아트디렉터, 호주 건축사, 뉴질랜드 한인경찰….

해외 각국에서 인재로 인정받으며 ‘꿈의 직장’에서 근무하는 한국 청년들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이들은 모두 국내에서 최소 고등학교를 졸업한 ‘토종’ 한국인으로, 젊은이다운 열정과 패기, 노력으로 언어 및 비자 장벽을 뛰어넘고 현지 취업에 성공했다.

지난 2월부터 8월까지 ‘주간동아’ 기자 5명이 미국, 캐나다, 일본, 영국,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7개 국가를 찾아가 모두 26명의 해외 취업 한국 청년을 만났다. 이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겪은 경험담과 애환, 그리고 성취감은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실전투입 맞춤인재 상한가 능력이 대접받는 ‘기회의 땅’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미국 기업, 그중에서도 기술·디자인·예술·의학 등의 분야에서 전문직이나 ‘화이트칼라’ 직원으로 근무하는 한국인 가운데 상당수는 현지 유학을 통해 취업에 골인했다.

미국에선 직장 연수(Internship)가 취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은데, 유학생일 경우 관련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고 기업들 역시 학교가 이미 한번 선발한 이들이라는 점에서 유학생을 ‘검증된 인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업이나 기관들이 인정하는 전문자격증 취득을 통해 취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일정 기간의 인턴십이나 ‘워킹 인터뷰’(일정 기간 회사에서 직원들과 일하면서 업무 역량을 평가하는 것)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인터뷰는 임원이나 상사뿐 아니라 지원한 팀에서 함께 일한 동료들까지도 지원자를 평가한다.

그만큼 미국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은 ‘잠재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직무에 투입하면 곧바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사람’이다. 미국 기업에 채용될 때 필요한 취업비자나 영주권을 신청하는 과정에는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 이는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

미국에서 이직을 위해 헤드헌터들과 접촉한 경험이 있다는 그래픽 디자이너 정희현 씨는 “취업비자 취득을 위한 회사의 후원(Sponsorship)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난감해하는 분위기였다”며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는 만큼 헤드헌터부터도 꺼리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정씨는 결국 혼자 발로 뛴 덕에 이직에 성공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심혈관 전문 의료기기 회사 ‘카디카(Cardica)’의 브라이언 노델 부사장은 “외국인 채용 과정이 기업이나 구직자 모두에게 고통스러운(painful) 경험이 될 수 있는 게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특히 기술 관련 회사에서는 직원 채용의 첫째 조건을 국적이 아닌 능력으로 삼는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아깝지 않을 만큼 능력이 뛰어나고 오랫동안 회사에 기여할 인재라는 확신을 갖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외국인 채용에 적극적인 직종은 IT가 대표적이다. ‘다양한 구성원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생명인 만큼 취업비자, 영주권 소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오픈 투 올’(Open to All·모두에게 문호 개방) 정책을 쓰기 때문. 소비재 관련 업체나 생산 업종보다 현지 취업을 위한 H-1B비자도 쉽게 나오는 편이라고 미국 현지 유학생과 취업자들은 입을 모은다. ‘구글’ 신사업개발팀 매니저 김현유(미키 김) 씨는 “취업 인터뷰 과정에서도 ‘신분’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 인상적이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실력”이라고 말했다.

미국 취업의 문은 좁다. 취업에 성공했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쉽게 해고당할 수 있다거나, 인간적인 끈끈한 정 없이 ‘공식적인’ 관계만 유지하는 동료들과의 생활에 좌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로지 능력만으로 평가받으며, 세계 초일류 시장에서 일하는 경험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미국을 ‘기회의 땅’이게 한다.

“자유가 많은 만큼 책임도 커 긴장과 도전정신을 늦추지 않고 살고 있다”는 한국인들을 지난 6월 만났다. 미국 뉴욕, 샌프란시스코 인근 도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업종에서 활약하는 이들은 취업 노하우와 ‘취업 그 후’에 대해 속속들이 들려줬다.

   

외국인에게 유리한 분야 철저히 사전조사

헤지펀드사 ‘엘링턴’ 애널리스트 김혜연

 

미국 동부 코네티컷주에 있는 모기지 헤지펀드회사 ‘엘링턴(Ellington)’에서 약 3년간 애널리스트로 근무해온 김혜연(30) 씨는 신용파생상품(Credit Derivative) 등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2대의 모니터를 하루 종일 띄워놓고 수시로 오르내리는 ‘숫자’를 째려보는 일이 지겨울 듯하지만, 인터넷으로 즐겨 보는 한국 TV 프로그램 ‘무한도전’ 출연진이 코믹한 포즈로 등장한 탁상 달력을 벗 삼아 점심시간에도 자리를 지킨다.

“회사 네트워크를 통해 온라인으로 인근 식당의 점심 메뉴를 주문할 수 있어 굳이 밖에 나갈 필요가 없거든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이렇게 점심을 간단히 책상머리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세대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한국 HSBC은행에서 약 1년간 근무한 김씨는 경제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유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뉴욕주립대 버팔로(SUNY-Buffalo)와 시카고대에서 각각 경제학과 금융수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원래는 경제학으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할 요량이었지만 ‘궤도 수정’을 감행했다. 이왕이면 현지 취업에 유리한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

“경제학으로 박사과정까지 마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여유 있게 공부할 여건이 안 됐던 만큼 외국인으로서 취업에 유리한 학위를 중점적으로 찾아봤고, 금융 분야 중에서도 미국 학생들이 유리한 소프트한 영역보다는 수학 감각을 요구하는 정량적(quantitative)인 영역이 낫겠다고 판단했지요.”

김씨는 대학 시절부터 해외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외국어고 출신인 데다 어려서부터 영어에 자신 있었기 때문. 외국 생활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그는 세계 금융의 중심인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려는 꿈을 가지고 유학을 결심하는 한국인들에게 되도록 ‘명문대’에 진학할 것을 추천했다.

“우리 회사만 해도 하버드대 등 아이비리그 출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합니다. 미국 금융회사들의 명문대 출신 편애가 무척 심한 편이거든요. 그리고 아무래도 지리적으로 월가와 가까운 동부 쪽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취업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데 유리하고요.”

입사를 위한 인터뷰는 철저히 실무 중심으로 이뤄졌다. 직속 상사나 임원뿐 아니라 해당 팀의 팀원 전체를 일대일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실제로 신용파생상품 등을 취급할 능력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특정 상품을 예로 들어 가격 책정 방법을 물어보고,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확인하는 식으로 철저히 검증하더군요.”

김씨는 7명의 임직원과 일일이 인터뷰한 뒤 마침내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력서 제출부터 채용 통보를 받을 때까지 약 3개월이 소요됐다. 기다림은 길었지만 합격 후에는 취업비자 취득 문제를 회사가 나서서 전폭적으로 도와줬다. H-1B비자가 발효되기 전, 외국인 유학생이 전공 관련 회사에서 학생비자로 일할 수 있게 하는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 기간이 만료되고 말았는데 법률적 문제를 검토한 뒤 그 기간 동안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근무하도록 배려해주기도 했다.

김씨는 미국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서바이벌 노하우’의 하나로 ‘자주, 그리고 정확하고 자세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것’을 강조했다.
“상사의 직함이 아닌 이름을 부르면서 미주알고주알 하고 싶은 말 다 하느라 바쁜 시간을 쓴다는 것이 저를 포함해, 한국 정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미국인들은 자주 질문하고 내가 원하는 바와 의견을 자세히 설명하는 걸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미국에서는 ‘미국식’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죠.”

뉴욕=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산골소녀에서 뉴욕 ‘패션피플’로 우뚝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디자이너 박경희

 

미국을 대표하는 유명 패션브랜드 ‘캘빈클라인’의 멘즈(men’s) 언더웨어팀에서 유일한 한국인 디자이너로 일하는 박경희(31) 씨는 패션의 중심 뉴욕에 입성하기까지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경북 영천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뉴욕의 화려한 패션계에서 일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지금껏 패션(fashion)에 대한 열정(passion)을 잃지 않고 한길을 걸어온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박씨는 경북대 의류학과 재학 시절부터 크고 작은 패션디자인 관련 콘테스트에 6회 이상 참가하는 등 취업을 위한 ‘스펙’을 키운 덕에 무사히 서울 ‘입성’에 성공했다. 그리고 2001년부터 약 6년간 ㈜이랜드를 포함, 국내 언더웨어 전문 브랜드들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당시 프랑스 독일 일본 등으로 자주 출장을 다녔는데, 보고 듣는 게 늘어날수록 해외 유명 브랜드 본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갈망도 커졌습니다. 해외 취업의 중간 단계로 유학부터 도전하기로 했지요.”

유학을 결심한 이후에는 야근, 주말 근무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쪼개 차근차근 준비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뉴욕의 유명 패션스쿨 FIT의 패션머천다이징 매니지먼트 과정에 합격, 2006년 8월 난생처음으로 뉴욕 땅을 밟게 됐다. 박씨는 학교에서 지원하는 인턴십 제도를 활용한 것이 현지 취업의 꿈을 이루는 데 큰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혼자 발로 뛰며 인턴십을 구하는 것보다 학교를 통하는 것이 합격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인턴십을 통해 취업에 골인하는 사례가 많아 더욱 신경을 썼지요.”
그는 인턴십 담당자와의 미팅 때도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철저히 준비했다. 포트폴리오 역시 예술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크리에이티브 버전’, 기술적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테크니컬 버전’으로 나눠 대표 작품들과 언론에 소개된 기사 등을 꼼꼼히 정리했다.

결국 3개의 유명 브랜드로부터 ‘러브콜’을 받았고 그는 캘빈클라인 언더웨어를 만드는 패션 대기업 ‘와나코’사를 선택했다. 캘빈클라인은 그가 평소 ‘꿈의 브랜드’로 동경하던 터. 인턴십 중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제의를 받아 1년간 프리랜서로 근무한 뒤 2008년 마침내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그는 한국인 특유의 성실성, 민첩성 등은 미국 회사에서도 돋보이는 장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종종 주말 근무에 야근까지 하며 업체 미팅하랴, 선배들이 맡긴 잡일하랴 바쁜 한국 회사 분위기에 익숙해서인지 웬만한 일은 힘들지 않게 느껴졌어요. 멀티태스킹에 능하고 손재주가 뛰어난 것도 한국인만의 강점입니다.”

현재 박씨는 한국에서보다 2배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 미국 회사들이 주 40시간 근무를 철칙으로 하는 덕에 야근도 없고 그만큼 여유도 많아졌다. 그러나 마음의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미국에서는 해고를 정말 쉽게 해요. 경제위기가 닥친 뒤로는 더욱 심해졌죠. 누구나 언제라도 해고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며 실력을 쌓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 회사에서 근무한 지 이제 2년이 지났다. 지난 5월, 잠시 귀국해 모교인 경북대 후배들에게 뉴욕 현지 취업 경험담을 강의하기도 했고 취업 경험담을 책으로 내자는 제의도 받았다. 박씨는 “지금까지는 꿈을 이뤘다는 기쁨에 마냥 즐겁기만 했지만 조금씩 고민도 생겨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제 꿈은 미국의 언더웨어 시장에서 ‘아시안 마켓 디자인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하는 거예요. 하지만 현지 취업한 한국분들이 어느 정도 직급이 올라가면 언어 문제, 문화 장벽에 부딪히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 시기가 올 때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깊이 생각하고 착실하게 준비해나가려고 합니다.”

뉴욕=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10배 더 긴장해 자기관리, 명사 접촉도 활발”

뉴욕 ‘러시 필런스로픽 예술재단’ 조은영

 

조은영(29) 씨가 미국 힙합 음악계의 거장이자 뉴욕의 대표적인 셀레브리티로 꼽히는 러셀 시몬스를 만난 곳은 친구와 함께 간 자선행사장이었다. 당시 뉴욕대의 예술대학인 티시(Tisch)스쿨 공연예술 석사 과정을 밟던 조씨는 그를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

“흑인인 데다 빈민가 출신이라는 한계를 딛고 자수성가한 그분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10번이나 읽었거든요. 만나서 영광이라고 인사를 건네니 학생이냐고 묻더라고요. 전공을 듣더니 ‘언제 우리 예술재단을 방문해달라’고 했습니다.”

조씨는 그 후 시몬스가 주최하는 또 다른 자선 경매행사에 초대받았다. 소문난 부자들, 유명인들이 참석한 경매를 지켜본 뒤 집에 돌아와 소감과 제안점을 담은 e메일을 보냈다.

“제안 내용이 마음에 들었는지 예술재단에서 일단 인턴으로 일해보라고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 역시 금융계에서 기금 조성(펀드레이징) 관련 일을 하시고, 어머니는 화가라 예술재단 일이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8개월의 인턴십이 끝난 뒤 2007년 10월, 드디어 시몬스가 운영하는 ‘러시 필런스로픽 예술재단(Rush Philanthropic Arts Foundation)’에 정식 직원으로 입사했다.

“미국에서는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네트워킹하고 원하는 분야에서 주류(主流)로 통하는 사람들과 자주 어울릴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미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고 미국인들과 어울리지 않고 위축되다 보면 절대로 좋은 기회를 만날 수 없어요.”

한양대 성악과 출신인 조씨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영어 실력을 보충하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면서 ‘스파르타식’ 교육을 자처했다고 전했다.

“영어에 대한 ‘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친구들도 되도록 만나지 않고 가족에게도 영어를 썼을 정도였어요. 미국 드라마를 반복해 보면서 생활영어는 물론 미국인들이 즐겨 쓰는 은어도 익혔지요. 한 번에 붙지 못하면 유학 보내주지 않겠다는 부모님 으름장에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서울 동부이촌동 집에서 압구정동의 유학 준비 학원을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 학원 근처 고시원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독하게 공부한 끝에 GRE와 토플 등 유학에 필요한 시험 점수를 3개월 만에 확보했다. 이렇게 유학길에 올랐지만 수업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특히 유려한 작문 솜씨를 요구하는 예술비평 과목이 문제였습니다. 유학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같은 반 친구들의 도움으로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교포로 오해받을 만큼 영어 구사능력이 일취월장했다는 평가를 듣는다는 그는 현재 5명의 미국 친구와 함께 만든 브랜드 컨설팅사 ‘비저너리 크리에티브 그룹(VCG)’에서 프로듀서로도 활동한다. 최근에는 루이비통, 불가리, 크리스찬 디올 등 명품 브랜드의 의뢰로 아시아 국가들에서 사용될 잡지광고 비주얼을 만들었고 해외 유명 뮤지션의 공연도 기획하고 있다. 예술재단 역시 명사들과 접촉할 일이 많은 사업의 특성상 업무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 별도로 일하는 것을 용인해줬다.

“모델이 될 유명인사 섭외에서부터 그 스타와 ‘궁합’이 잘 맞는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촬영 콘셉트까지 정합니다. 샤를리즈 테론과 스위스 시계 브랜드 ‘레이먼드 웨일’ 광고 촬영을 진행하기도 하고, 캐서린 제타 존스를 이탈리아의 고급 주얼리 브랜드 ‘디 모돌로’에 활용하기도 했죠.”

그는 174cm의 훤칠한 키에 돋보이는 미모를 갖췄음에도 “한국에서보다 10배쯤 더 긴장하며 자기 관리에 충실하려 애쓴다”고 말했다.

“미국, 그중에서도 뉴욕에서 성공하려면 실력이나 지적 능력은 물론, 외모까지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제가 일하는 분야에서는 피부, 머릿결, 패션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룩’을 갖춘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뉴욕=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영어실력보다 사람과 동물 사랑이 먼저”

‘아든우드’ 동물병원 수의사 박지영

“대학 선배들에게서 미국 현지 취업에 대한 정보를 많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수의사 면허를 따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영어시험, 수의사 국가고시, 미국 내 대학에서의 실습, 미국 주(州)별 시험 등의 과정이 까마득하게 느껴졌지만 넓은 세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레몬트의 ‘아든우드(Ardenwood)’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는 수의사 박지영(31) 씨는 서울대 수의학과 재학 시절, 방학 중 틈틈이 미국 수의사 시험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내 영어실력으론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한 선배가 운영하는 로스앤젤레스 인근 동물병원에서 미국 수의사들의 생활을 간접 체험하고 현지 취업한 선배들을 만나 얘기를 들으면서 도전의지를 다졌다.

6년 과정의 수의학 학부 과정을 졸업한 뒤 2006년 드디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해 겨울 코넬대 수의학과에서 한 달간 실습생(extern)으로 근무했고, 이후 학교 인근의 동물병원 3곳에서 1년간 실습하며 경험을 쌓았다.

미국 수의사 자격증을 따려면 미국의 수의대 4학년생들과 1년간 현장실습을 하거나 이를 대체할 시험을 봐야 한다. 이론도 중요하지만 현장 경험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박씨는 실습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2008년 7월, 드디어 미국 수의사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 정식 수의사로서의 첫 직장은 애리조나주의 한 동물 병원.

“애완용 강아지, 고양이 같은 소(小)동물과 소, 말 같은 대(大)동물을 모두 다루는 병원에서 근무하며 경험을 쌓고 싶었는데, 마침 이런 조건을 갖춘 곳에서 구인 공고를 냈기에 지원했습니다.”

6개월간 근무하며 자리를 잡으려던 찰나, 결혼과 함께 지난 1월 캘리포니아주로 이사 오게 됐다. 남편이 다니는 학교가 있는 팔로알토 인근 병원을 찾아보던 중 아든우드 동물병원을 알게 됐다. 원장은 이틀간 병원에서 일하며 능력을 평가하는 현장 인터뷰(working interview)를 요구했다. 수의사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고객과 동물에 대한 상담 및 진료 태도도 평가하겠다는 의미였다. 박씨는 이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고 지난 2월부터 출근을 시작했다. 박씨가 꼽은 최대의 스트레스는 역시 영어.

“직업 특성상 말을 많이 해야 하는데 고객들이 내 영어를 잘 알아듣는지 걱정됐어요. 그러나 대부분은 의사의 발음이나 언어 구사력보다는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병을 얼마나 잘 고칠 수 있는지를 더 중시하더군요. 경험과 함께 신뢰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22년 전 아든우드 동물병원을 연 테드 루 원장은 “수의사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구사 능력보다 사람과 동물에 대한 애티튜드(attitude)”라고 강조했다. 그는 “박씨가 친절함과 세심함을 ‘무기’로 하고 있어 고객들의 평가가 아주 좋다”고 추켜세웠다.

박씨가 꼽는 해외 취업의 장점은 ‘보스와의 수평적 관계’. 고용주라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거나 권위를 부리지 않아 대등한 관계에서 일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경쟁력을 키워나가겠다는 결심이 없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 모른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뚜렷한 목표를 가진 다음에 해외 취업에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 일단은 병원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는 박씨는 앞으로의 포부 중 하나로 동물침술 전문의 자격증 취득을 꼽았다.

“동양인으로서 차별점을 갖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수의사로서 경쟁력을 키워 당당히 경쟁하겠다는 뜻이 더 큽니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더 큰 전문성을 쌓고 싶습니다.”

프레몬트=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엔지니어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필수”

의료기기회사 ‘카디카’ 엔지니어 박진훈

 

“최종 인터뷰 과정이 참 흥미로웠어요. 후보자 2명을 남겨두고 프로젝트 하나를 준 뒤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라는 것이었죠.

대학원에서 같이 수업을 들은 미국인과 최종에 올랐는데 결국 제가 합격했습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려 애쓴 저와 달리 그 친구는 자기 의견만 강조해 낮은 점수를 받았어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레드우드시티. 이곳에 자리한 심혈관 전문 의료기기 회사 ‘카디카(Cardica)’에서 R·D 엔지니어로 일하는 박진훈(30) 씨는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와 미국 스탠퍼드대 기계공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후 2007년 5월 이 회사에 입사했다.

대부분의 공대 유학생이 교수가 되겠다는 포부 하나로, ‘막연히’ 박사과정까지 진학하는 데 비해 그는 석사학위만 받고 취업했다. “제가 관심 있는 분야에는 따로 박사과정이 없을뿐더러, 관정장학재단으로부터 이미 장학금을 받은 상태라 박사과정을 통해 실험실 일을 하며 학비를 충당해야 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목표가 뚜렷했던 만큼 망설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가 현지 취업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국내엔 의료기기 개발 전문회사가 많지 않아 꿈을 펼칠 기회가 적었기 때문. 엔지니어에 대한 처우도 미국이 훨씬 나았다. 12년 전 창립한 카디카는 직원 수 50여 명의 중소기업이다. 그럼에도 국내 대기업은 물론 미국 대기업 수준 못지않은 연봉을 주며 엔지니어들에게 자유로운 연구 환경을 제공한다는 게 박씨의 설명. 그는 이례적으로 외국인 취업비자 H-1B가 아닌 영주권을 받고 회사에 입사했다.

“H-1B비자는 해마다 할당량이 있어 할당량이 떨어지기 전에 모든 신청 절차를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회사가 이전에 외국인을 고용한 사례가 없다 보니 관련 정보가 많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나서서 비자 관련 진행사항을 귀띔해줬는데 회사는 변호사와 상의 끝에 취업비자 대신 영주권을 곧바로 내주겠다고 했습니다.”

박씨를 선발한 브라이언 노델 부사장은 “회사에서 일일이 점검하기 힘든 비자 관련 제반 사항을 지원자가 나서서 알아봐주고, 관련 정보를 업데이트해줘 큰 도움이 됐을 뿐 아니라 그런 적극적인 태도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박씨가 의료기기 분야에 관심을 갖고 유학까지 결심한 것은 스탠퍼드대에 교환교수로 다녀온 뒤 의료공학 관련 수업을 개설한 한 서울대 은사에게 영향받은 바 크다.

“수업 내용도 흥미로웠고 앞으로 개발 여지가 많은 분야라고 생각해 호기심이 커졌습니다. 또 2000년 서울대에서 주최한 제1회 모의 벤처 경영대회에서 ‘캡슐형 내시경’을 주제로 대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이 학문을 연구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수상 실적을 인정받아 2005년 교육인적자원부가 선정하는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로 선발되기도 했다.

마케팅이나 홍보 영역보다 언어의 장벽이 낮고, 수학 감각이 잘 발달한 이들에게 유리한 분야라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하는 한국인 수가 적지 않다. 그러나 박씨는 “일단 회사에 입사하기로 결심했다면 ‘혼자 말없이 고뇌하는 지식인’ 이미지로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카디카가 최종 면접에서 지원자끼리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한 이유도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팀워크를 살려 원활히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터뷰 때 “이 회사의 아시아 본부나 한국지사가 설립되면 지사장으로 부임하고 싶다”고 말해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박씨는 “외국인 고용에 따른 회사 측의 부담이 적지 않은 만큼 ‘투자’ 대비 ‘효용’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 좋다”며 “회사와 함께 ‘롱런’하겠다는 의지와 야심찬 포부를 강력히 어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레드우드시티=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네트워킹’ 통한 기회 창출이 관건”

오그든 코스타 크리에이티브 그룹’ 그래픽디자이너 정희현

 

2005년 뉴욕의 프랫(Pratt)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 패키지 디자인 석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디자인회사 ‘MZ 버거 · 컴퍼니’에 입사할 무렵만 해도 현지 취업의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온라인으로 이력서를 제출하고 몇 번의 인터뷰를 거친 다음 ‘덜커덕’ 채용통지서를 받았기 때문.

그래픽디자이너 정희현(30) 씨는 라이선스 브랜드 제품들의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도맡아 하는 이 디자인회사에서 3년 동안 그래픽디자인, 패키지디자인 및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영역을 경험했다.

“결혼 후 남편의 진학 문제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인근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어려움이 생겼어요. 3년이면 어느 정도 경력도 쌓았고 변화도 필요한 시점이라 이직하기 좋은 때라고 생각했는데, 하필 경제위기가 미국을 덮쳐 구인하려는 회사가 크게 줄었거든요.”

인터뷰 기회만 노심초사 기다린 지 6개월째. ‘앉아만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결국 발로 뛰기로 결심했다. “평소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남의 말에 상처도 잘 받는 성격인데, 정말 큰 용기를 낸 셈이죠. 구인을 하는 회사는 물론이고 평소 가고 싶었던 회사 담당자들과 통화하고 직접 찾아가 제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부지런히 전달했습니다.”

실망과 기대를 반복하며 기다리던 차, 샌프란시스코 외곽 도시 플레즌턴의 디자인회사 ‘오그든 코스타 크리에이티브 그룹(Ogden Costa Creative Group)’에서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포트폴리오로 본 작품들이 모두 마음에 든다. 일단 2주간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막상 첫 출근을 해보니 또 다른 지원자가 있었다. 둘을 비교해본 뒤 한 명만 선발하겠다는 요량이었다. 둘만의 경쟁에서 당당히 승리한 정씨는 지난 4월 이 회사에 입사해 AT·T, 디즈니, 시스코 등의 고객사들과 작업해왔다. 한동대에서 그래픽디자인과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정씨는 서울에서도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의 한 호텔에 입사해 홍보 브로슈어와 포스터, 초청장 등을 만드는 일을 했다.

“한국에서의 직장생활과 비교해볼 때 일 자체만 놓고 보면 차이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미국 회사 직원들은 사생활 얘기나 잡담을 거의 하지 않죠. 처음엔 어색했지만 오히려 인간관계와 관련된 스트레스도 덜 받고 퇴근 후 자유시간이 늘어 좋아요.”

해고의 공포를 늘 안고 살아야 한다는 점은 큰 단점 중 하나. 해고 결정 당일에 짐을 싸서 떠나라는 통보를 받고 당황해하는 동료들의 ‘마지막 모습’도 심심치 않게 목격했다. 그래픽디자이너로 현지 취업을 꿈꾸는 한국인들이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뭘까. 정씨는 가장 먼저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업계에서는 사람 뽑을 일이 있으면 헤드헌터를 찾거나 구인 공고문을 올리기 전에 직원들에게서 추천받는 경우가 많거든요. 전 직장에서는 직원의 추천을 통해 입사한 사람이 3개월 이상 재직하면 추천자에게 500달러를 인센트브로 주기도 했어요. 디자인 관련 커뮤니티에서 주최하는 이벤트나 사교모임에 부지런히 참가하고,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만약의’ 상황과 ‘기회’에 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플레즌턴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겸손하게 자랑하는 기술을 익혀라!”

‘구글’ 신사업개발팀 김현유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구글 본사. 스무 채도 넘는 나지막한 건물이 띄엄띄엄 흩어진 광경이 마치 대학 캠퍼스를 연상케 했다.

아니나 다를까, ‘구글 캠퍼스’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는 애완견을 데리고 여유롭게 사무실로 들어서거나 소파가 있는 라운지에서 내 집 안방에서처럼 편안한 자세로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구글’은 미국에서도 ‘신의 직장’으로 불린다. 지난 5월 경제전문지 ‘포천’은 설문조사 결과 이 회사가 3년 연속 ‘미국의 비즈니스스쿨 경영학석사(MBA)과정 재학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 하는 직장’으로 꼽혔다고 보도했다.

UC버클리의 MBA과정을 마치고 2008년 구글에 입사한 김현유(미키 김·33) 씨 역시 유학을 결심할 때부터 ‘구글 입성’을 목표 1순위로 삼았다. 김씨는 특히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UC버클리 MBA과정 내 ‘테크 클럽’ 회장을 맡아 활동한 것이 꿈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각 기업 담당자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이 클럽은 회원 수가 한 학년 학생의 절반인 120여 명에 달한다.

“학교가 유명 IT 회사들의 본사가 자리한 실리콘밸리와 가까워 직접 회사 관계자를 초청해 취업설명회를 듣기도 하고, 특별강좌를 열기도 합니다. 그렇게 회사들과 자주 접촉하다 보니 각 회사의 정보도 얻고 네트워크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IT 기업에 취업하려는 한국인들에게 김씨가 강조하는 첫 번째 당부는 입사를 원하는 회사는 물론 동종업계 경쟁사와 그 신제품까지 꿰는 정보력을 갖추라는 것. 그는 “구글의 입사 면접 중에도 ‘우리 회사 제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뭐냐’고 물어본 뒤 그 제품과 관련해 전략적 제휴를 맺는다면 어떤 회사와 왜, 어떻게 맺고 싶으냐고 묻는 질문이 많았다”며 “전략적인 판단력뿐 아니라 업계에 대한 정보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IT 업계에는 컴퓨터나 첨단 기기에 푹 빠진 이들을 일컫는 ‘테크노 기크(Techno-Geek)’가 유난히 많다. 김씨는 “동료 모두가 휴대전화, 노트북 등 IT 관련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곧바로 구입하고 함께 모여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전했다. 그만큼 IT 관련 신제품과 최신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가 많다는 뜻이다.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 약 4년 반 동안 이스라엘 휴대전화 시장을 담당한 그는 MBA 재학 중 구글에서 인턴십을 하고 난 뒤 곧바로 인터뷰 제의를 받았다. 면접은 신사업개발팀원들과의 일대일 인터뷰로 치러졌다. 다른 회사로부터 이미 입사 제의를 받은 상태여서 이를 ‘무기’로 인터뷰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했다. 그리고 약 한 달 만에 같은 학교 MBA과정 학생 중 처음으로 입사가 확정됐다.

‘IT 트렌드의 첨병’ 격인 한국 출신이라 유리한 점은 없을까.
“한국 시장의 트렌드 변화 속도가 남다른 만큼 회사 측에서도 한국 관련 정보를 더 많이 얻고 싶어 합니다. 한국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는 프로젝트는 제게 많이 맡기는 편인데, 저로서도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지요.”

이제 구글 직원, ‘구글러’가 된 지 1년째. 한국의 회사생활과 비교해볼 때 해외 취업의 장단점은 뚜렷하다.
“특히 구글에서는 예기치 않은 업무가 쏟아지거나 잡일에 시달리는 일이 거의 없어요. 회의나 사적인 모임도 미리 온라인으로 약속하니 ‘예측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지요. 연봉도 높은 편이고요. 대신 동료들과 끈끈한 정을 쌓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가 속한 신사업개발팀은 회사의 미래 성장동력을 구상하고 신사업과 관련된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는 부서로 회사내에서 핵심 조직으로 통한다. ‘엘리트 집단’에서 일하며 느낀 미국에서 직장인으로 성공하기 위한 노하우 중 하나는 ‘겸손하게 자랑(show-off)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 “내가 한 일을 누가 저절로 알아주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미국에서는 자기가 한 일, 아는 것을 끊임없이 알리는 등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해야 살아남습니다.”

마운틴뷰=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창의력, 적극성, ‘소통의 힘’을 기억하라!”

‘구글’ 통계학자 박미영

 

서울대 통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통계학과 박사과정을 마친 박미영(30) 씨는 졸업 후부터 현재까지 약 3년간 ‘구글’ 본사의 통계학자로 근무하고 있다.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고, 신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통계 정보를 제공하는 박씨는 박사 과정 시절 3개월간 이 회사에서 인턴십을 경험한 것이 입사를 결심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인턴십은 회사가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개인도 자기에게 맞는 회사인지 시험해보는 기회로 쓸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인턴십 때의 좋은 경험을 잊지 못해 지원을 결심했습니다.”

회사가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유학생활을 통해 학교 주변에 익숙해진 만큼 또 다른 환경에서 좌충우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

“실제로 미국 내에서도 동부에서 공부한 사람은 동부 쪽 회사에, 서부에서 공부한 사람은 서부 쪽 회사에 둥지를 트는 사례가 많아요. 현지 취업 목적으로 유학을 떠난다면 이 점도 염두에 두는 게 좋을 듯합니다.”

구글은 출퇴근이 자유롭고 직원들에게 많은 재량권을 주는 대표적인 회사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재택근무를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가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유에 대한 ‘결과’를 확실히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일은 없을까. 그는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고 했다.

“여러 나라의 인터넷 문화를 진화·확장시키는 것이 구글의 목표인 만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의 경험을 존중하는 분위기입니다.”

외국인 취업비자인 H-1B 역시 회사의 지원에 힘입어 비교적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다. ‘미국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 소지자만 지원 가능’ 등으로 취업 자격에 제한을 두는 다수의 다른 미국 기업과 달리 국적에 상관없이 문호를 개방하는 ‘오픈 투 올’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

지원한 팀의 팀원들과 한 명씩 돌아가며 하루 종일 얘기를 나누는 입사 인터뷰에서는 특정 프로젝트를 주고 다양한 상황에 맞춰 시뮬레이션을 하라는 질문도 있었다. 입사 후 박씨 역시 인터뷰어로서 이런 질문을 즐겨 낸다.

“침착하게 문제에 접근하는 자세, 배경지식, 팀워크에 적합한 성격 등을 평가하기 위해서죠. 인재를 뽑는 조건은 한국과 미국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성실하고 일 잘하고, 성격 좋은 사람은 어디서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기업 입사를 희망하는 이들이 염두에 둬야 할 두 가지 덕목은 창의성과 적극성. 또한 박씨는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소통하는 ‘오픈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마운틴뷰=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미국 취업비자 안내
미국은 이민비자 및 비(非)이민비자를 각각의 목적에 맞게 세분해놓고 있다. 이 중 미국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이민비자 중의 취업이민(EB)비자와 비이민비자 중 취업(H)비자 등이다. 비이민비자 중 O비자 또한 자격이 까다롭긴 하지만 취업 희망자에게 활용될 수 있다.

취업이민(EB)
고용을 근거로 이민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우선 미국 고용주로부터 채용 제의(Job Offer)를 받아야 하며, 제의받은 업무와 기존의 직장 경력, 학교에서의 전공이 일치해야 한다. 또한 고용주가 미국 시민이나 미국 영주권자 중에서 적합한 직원을 구하지 못할 때만 신청이 받아들여진다. EB 비자는 종사 분야에 따라 EB-1(특별한 재능), EB-2(고학력 전문가), EB-3(전문가 및 비숙련직 종사자), EB-4(성직자 등 특수이민) 네 가지로 세분된다.
취업(H)비자
미국 정부는 적합한 자국민 인력을 구하지 못할 경우 외국인을 고용할 능력을 입증한 기업에 한해 외국인 고용을 허가한다. H 비자는 H-1(전문직), H-2(단순직), H-3(직업연수)로 나뉜다. H-2는 농촌 지역 취업자나 매표원, 청소부 같은 단순노무직 종사자에게, H-3은 미국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 회사가 한국지사 직원을 잠시 미국에서 연수시키고자 할 때 발급되므로 진정한 미국 취업을 할 수 있는 비자로 보긴 어렵다.
H-1B비자
학사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비자로, 단기 취업자 및 연수생 신분의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비자다. 미국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통계국에 따르면 2008년 현재 미국에는 총 110만1938명의 단기취업자와 연수생이 있는데, 이 중 40만9619명이 H-1B비자를 갖고 있다. 채용 제의를 받은 피고용인의 업무가 본인의 학력이나 경력과 일치해야 하며, 취업기간은 3년으로 최대 6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연간 6만5000개의 H-1B비자 할당량을 두고 있다(단, 석사 이상 학력 소지자를 위한 별도의 2만 개의 할당량이 있음).
O-1비자
취업과 관련해 H비자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발급하는 비자로 주로 과학자, 예술가, 체육인, 연예인, 최고 주방장 등 특별한 재능이나 업적을 가진 사람에게 발급된다. 패션 디자이너와 같은 직종도 예술가로 분류돼 O-1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OPT
‘Optional Practical Training’의 약자로 미국에서 정규 학위를 마친 유학생들에게 전공과 관련된 분야에서 실습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발급되는 1년 한도의 비자다. 그러나 지난해 관련 규정이 다소 바뀌어 OPT를 발급받은 지 90일 이내에 고용주를 구하지 못하면 OPT가 중단된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비자·영주권 취득 미국보다 수월 워킹홀리데이로 先경험해볼 만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단풍나무와 겨울 스포츠로 유명한 캐나다는 중국과 미국, 일본 다음으로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나라다.

현재 시민권자를 포함해 22만3000여 명의 한국인이 토론토와 밴쿠버를 중심으로 캐나다 전역에 퍼져 있다.

유학생 규모도 날로 증가하는 추세. 현재 캐나다 유학생은 2만2300여 명으로 미국 유학생(10만5000여 명)의 5분의 1에 이른다.

미국 거주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한인들도 주로 자영업에 종사한다. 밴쿠버 한인 10만명 중 자영업 종사자는 4만5000여 명. 반면 회사원은 1만2000여 명에 그친다. 그러나 유학생과 단기 취업연수생이 증가하면서 캐나다에서 직장을 구하는 한국 청년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캐나다는 미국보다 일자리가 적다는 단점이 있지만, 비자와 영주권 취득은 좀더 용이하다. 유망 직종으로는 간호사, 치위생사, 임상병리사 등 의료 분야와 자동차·항공 정비, 조경, 원예, 게임 개발, 디자인, IT(정보기술) 등이 꼽힌다.

현지 유학 후 취업할 경우 취업비자를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으며, 이러한 기술 직종에 1~2년 근무하면 영주권 신청 자격이 주어져 취업비자 만료 이전에 영주권으로 전환할 수 있다. 캐나다 유학·취업 알선업체 ‘리크루트 캐나다’ 김진현 대표는 “캐나다는 4년제 대학 문과 출신보다 전문대학 출신 기술직 종사자가 연봉이나 영주권 자격 등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는다”며 “특히 캐나다 간호사의 40%가 50대 이상이어서 앞으로 인력 부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앨버타주 캘거리 현지 회사에 취업한 김태훈(30) 씨는 “곧장 취업을 시도하는 것보다 현지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며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고 유망 직종과 관련한 학과에 진학하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통해 캐나다에서의 생활과 문화, 근로환경 등을 미리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캐나다는 한국에서 연간 800명에게 발급했던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올해 2010명씩 두 차례에 나눠 선발했다. 주한 캐나다대사관 측은 “앞으로도 해마다 이 비자 발급 인원을 4020명 규모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한국인들에겐 다소 낯선 앨버타주에서 현지 취업에 성공한 두 한국 젊은이를 만났다. 앨버타는 한반도 3배에 이르는 면적에 석유, 광물, 농축산물 등이 풍부하게 생산되지만 인구는 360만명에 불과한 ‘기회의 땅’이다. 약 2만명의 앨버타 거주 한인들은 “풍부한 부존자원을 기반으로 날로 성장하는 앨버타가 밴쿠버나 토론토 등 대도시보다 오히려 기회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학위와 경력으로만 취업비자 받아

캐나다 ‘마마베어 데이케어센터’ 유아교사 최미정

 

“그날은 이유 없이 기분이 착 가라앉고 한국에 계신 엄마 생각이 나더라고요. 교실 한쪽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네 살짜리 밸러리(Valoire)가 다가와 꼭 안아주면서 자기도 아빠가 보고 싶다며 따라 울었어요. 그날 이후 밸러리가 울음을 터뜨리려고 할 때마다 ‘저번에 선생님이 울자 네가 따라 울었지? 이번에 네가 울면 선생님이 따라 울 것 같아’라고 말해줘요. 그러면 눈물 뚝 그치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최미정(29) 씨는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에서 유아교사로 근무하고 있다(48쪽 상자기사 참조). 5세 미만 유아들을 돌보는 비정규 교육기관인 ‘마마베어 데이케어센터(Mama Bear Day Care Center)’에는 최씨를 포함, 4명의 한국인 교사가 있다. 데이케어센터란 우리나라로 치면 보육시설인 ‘어린이집’에 해당한다. 한국에서 전문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뒤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그는 2005년 영어 연수차 캐나다에 왔다가 해외취업까지 하게 됐다.

“앨버타 주정부에서 관련 학위와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 유아교사 자격증과 2년짜리 취업비자를 내준다는 걸 알게 됐죠. 가장 높은 등급인 레벨3 자격을 얻어 2008년 10월부터 지금의 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민사회인 캐나다는 외국인 채용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낮다. 실제로 유아교사 중에도 이민자나 외국 국적 소유자가 적지 않은 편. 특히 한국인의 성실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한인 교사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최씨는 “한국인 교사들의 꼼꼼한 종이접기 실력 등이 인기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취업을 위해서는 영어 및 보육 실력을 고용주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다.

최씨는 “센터에서 두세 달 동안 무급으로 일하며 유아교사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보여줘 정식 채용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최씨의 근무시간은 오전 8시~오후 4시. 주당 35시간을 일한다. 급여는 시간당 16.5캐나다달러(센터가 12.5달러, 정부가 4달러를 나눠 지급)로 월 2500캐나다달러(약 290만원)쯤 된다. 고소득이라고 할 순 없지만, 최씨는 급여조건에 매우 만족하는 편이다.

“한국에서 유치원 교사 월급은 120만원에 불과하고 매일 야근하기 일쑤거든요. 하지만 여긴 야근이 전혀 없는데도 급여가 더 좋고, 영어실력까지 늘릴 수 있어 1석3조라고 생각합니다. 또 10월부터는 정부보조금이 4달러에서 6달러로 증액될 예정이에요. 사실상 급여가 인상되는 거라 기쁘지요(웃음).”

현재 최씨는 3, 4세 반 담임을 맡고 있다. 14명의 유아를 다른 담임교사와 함께 돌본다. 아이들은 대부분 캐나다인이며, 한국 중국 인도 러시아 멕시코 등 이민자 가정의 자녀가 더러 있다. 국내 어린이집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놀이 및 생활지도를 한다. 유아들의 사회성을 길러주고, 정서 발달을 도모하며, 기본적인 생활습관을 익히게 하는 것이 주요 임무. 일의 만족도를 묻자 그는 “내게 살금살금 다가와 ‘I love you’라고 속삭이는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린, 블루, 브라운, 헤이즐넛…. 눈동자 색깔이 다양한 만큼 아이들 성격이나 기질 또한 다양합니다. 이런 아이들과 눈 맞추며 놀고 이야기하고 다투고 화해하며 지내요. 저는 아이들에게 노래와 춤, 생활습관을 가르치지만, 아이들은 제게 인생을 가르쳐줘요.”

   

한국에서 유치원 교사로 일한 경력이 있다고 해서 캐나다에서 유아교사로 일하기가 처음부터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언어와 환경이 다른 것은 물론, 교육목표나 학부모와의 관계도 한국과 차이가 났다. 아이들의 영어이름 외우기, 이유 없이 울거나 소리 지르는 아이들을 다루기 또한 쉽지 않았다. 최씨는 “초심으로 돌아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대학이 무료로 제공하는 유아교육 수업을 들었고, 관련 미팅이나 세미나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캐나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영어 동요를 MP3 플레이어로 들으며 외웠고요.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공립도서관에 가서 영어 동화책을 빌려다 읽습니다.”

최씨의 희망은 좀더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어린이교사가 되는 것. 이를 위해 2010년 가을까지 마마베어 데이케어센터에서 근무한 뒤, 캐나다 대학에서 아동심리학을 전공할 계획이다. 캐나다에서도 매일 두 시간씩 인터넷 강의를 들은 덕분에 내년 2월에는 한양사이버대 실용영어학과를 졸업한다. 학업을 마치는 2012년 즈음엔 캐나다에서 유치원 교사로 ‘승격’하거나, 한국으로 돌아가 영어유치원 교사나 유아영어 과목을 가르치는 대학강사가 되고 싶다. 최씨는 이런 청사진을 위해 매달 1000캐나다달러 이상을 차곡차곡 저축하고 있다.

최씨는 캐나다에서 유아교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먼저 분명한 목표의식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다면 춥고 긴 ‘겨울의 도시’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캘거리=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웰컴, 한국인 유아교사!”
캐나다는 보육기관 데이케어센터에 근무하는 유아교사(Early Childhood Educator)가 만성적으로 부족한 나라다. 때문에 외국인 유아교사의 자국 취업을 환영한다. 캐나다 대학의 유아교육 관련 학과에서 1년 이상 공부한 뒤 자격시험에 합격한 이에게 최대 3년의 취업비자를 발급해주는 것. 영어구사 능력에만 문제가 없다면 취업도 수월한 편으로 알려졌다.
한편 밴쿠버가 속한 브리티시컬럼비아(BC)와 앨버타주는 캐나다 내 교육기관에서 공부하지 않은 외국인에게도 유아교사면허(Day Care Center Staff Qualification Certificate)를 발급하고 있다. 한국에서 취득한 유아교육 관련 학위와 경력만으로도 캐나다 현지 취업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유아교사 면허를 취득하면 밴쿠버는 1~3년, 앨버타는 2년의 취업비자를 내준다. 특히 석유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급증하면서 이들의 자녀를 돌볼 유아교사가 많이 필요한 앨버타주는 최근 교육학과, 사회복지학과 등 유사 학과 출신에게까지 면허를 발급해주고 있다.
유아교사로 취업한 지 6개월~1년(지역마다 다름)이 지나면 영주권 신청자격이 주어진다. 캐나다 유아교사 취업을 알선하는 ‘비전투자이민’ 관계자는 “취업비자를 얻으면 자녀가 캐나다 공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기유학이나 이민을 희망하는 기혼자 사이에서 캐나다 유아교사 취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2년제 유학 후 기술 직종 노린 게 주효

‘폴라리스 엔지니어링’ 프로젝트 매니저 김태훈

 

석유공학기술(Petroleum Engineering Technology)을 전공한 석유가스 엔지니어링 회사 ‘폴라리스 엔지니어링(Polaris Engineering)’의 설비부서(Facility Department) 소속 프로젝트 매니저.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에서 만난 한국 청년 김태훈(30) 씨의 전공과 직장은 이처럼 낯설었다.

“앨버타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러시아 다음으로 많습니다. 우리 회사는 셸, 허스키 등 다국적 석유회사의 의뢰를 받아 광구(鑛區)에 천연가스를 뽑는 기계 설비를 설치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프로젝트를 추진, 관리하는 프로젝트 매니저고요.”

김씨가 먼 타국에서 이색 직업을 갖게 된 것은 한국의 취업난 때문이다. 지방대 출신(조선대 재료공학과)인 그에게 괜찮은 직장을 얻을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대학 동기 중 대기업에 취직한 이는 두어 명에 불과하고, 대다수가 식당이나 PC방 등 자영업에 나선 게 현실. 연봉 2000만원에 불과한 중소기업 취직은 대개가 꺼린다. 이에 김씨는 국내 취업을 포기하고 대학원 진학에 앞서 캐나다로 영어연수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캘거리에서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이민을 생각했습니다. 전망 좋은 기술직종에 종사한다면 좋은 일자리도 구할 수 있고, 이민도 수월하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그래서 SAIT (Southern Alberta Institute of Technology)에 입학했습니다. 4년제 대학 나와서 다시 2년제 대학에 들어간 셈이죠.”

캐나다의 전문직업학교(Institute of Technology)는 엔지니어 출신 교수들이 이론과 실전을 동시에 가르치는 수준 높은 고등교육기관. 학생 중에는 김씨처럼 이미 대학을 졸업했거나 관련 직종에서 근무하다 입학하는 이가 많다. 졸업 후에는 4년제 대학 문과 출신보다 많은 연봉을 받기 때문에 입학 경쟁률도 높은 편. 김씨가 SAIT에서 공부한 석유공학기술은 유전 탐사·개발, 광구 설계, 굴착 등 석유산업 기술 전문가를 양성하는 학과로, 석유 및 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한 앨버타에서 전도유망한 분야다. 김씨는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며 “2년간 3500만원가량의 학비와 책값을 썼다”고 했다.

SAIT를 졸업한 김씨는 2008년 5월, 유일한 한국인 직원으로 폴라리스에 취직했다. 연봉은 5만5000캐나다달러(약 6200만원)지만 세금을 제하면 우리 돈으로 4000만원이 조금 넘는다. 그는 “캐나다는 봉급에서 세금으로 거둬가는 비중이 매우 높다”며 “연말 보너스가 3000~5000캐나다달러인데 세금으로 절반 정도를 뗀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12월에 신청한 영주권은 곧 나올 예정이라고.

“캐나다에서 대학을 나온 뒤 관련 분야에 취업을 하면 주 정부가 보증을 서줍니다. 저는 독립기술이민을 신청했습니다. 현재는 3년짜리 취업비자 상태인데, 취업비자만으로도 건강보험 등 복지 혜택을 다 받을 수 있어 생활에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김씨는 캐나다에서의 직장생활에 대해 “개인이 지는 책임이 크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하루 정확히 8시간을 근무하므로 한국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퇴근 후에는 동료들과 맥주를 한잔 하거나 골프를 치러 간다. 캐나다에서도 골프가 비즈니스 요소로 즐겨 활용되기 때문에 골프를 배우는 건 필수나 다름없다고.

   

“앨버타에는 다국적 석유회사와 이들과 협력하는 폴라리스 같은 중견 석유회사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대기업과 중견기업 간의 급여 차이는 거의 없어요. 연봉은 매년 본인의 성과에 근거해 결정되고요.”

김씨는 앨버타에서 5년 정도 경력을 쌓은 뒤에는 ‘오일의 메카’ 중동으로 진출하기를 꿈꾼다. 그 다음에는 미국 텍사스나 아프리카 등 광구가 있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일할 계획. 최근 들어 해외광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한국 기업들을 위해 활약할 기회 또한 언젠가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혼자 나와 살다 보니 외롭고 힘든 점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그리워요. 하지만 경쟁력 있는 나만의 커리어를 쌓을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침체와 유가하락으로 최근 오일산업 분야의 일자리가 줄어들었지만, 앞으로 상황에 따라 많은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하고요. 뜻있는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캘거리=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캐나다 취업비자 안내
취업허가(Work Permit)
캐나다 취업 희망자는 반드시 입국 전에 캐나다인력자원사무국(HRSDC·www.hrsdc.gc.ca)으로부터 취업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통상적으로 ‘취업비자’로 통한다. 취업허가 기간은 보통 고용주와의 계약기간을 따른다. 취업허가가 나오는 직업군이 따로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HRSDC가 수시로 조사해 인력시장의 과부족 혹은 과잉여 직업군이 없도록 조정한다. 연간 취업허가 쿼터가 제한돼 있진 않다.
졸업 후 취업허가(Post Graduation Work Permit)
캐나다 정규대학 졸업 후 취업하길 원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최소 8개월 이상의 교육과정을 마친 뒤 졸업증명서 발급으로부터 3개월 안에 신청하면 캐나다에서 교육받은 기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장 3년까지 취업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 비자는 일종의 오픈(open) 비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고용주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발급된다.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
만 18~30세 젊은이가 캐나다에서 어학연수와 여행, 아르바이트 활동 등을 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1년간 캐나다에 머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이 중 최대 6개월간 어학연수를 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으로 취업한 젊은이들은 사무직이나 전문직보다 대부분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는데 호텔이나 리조트, 식당 등에서 판매, 계산, 서빙, 청소, 가이드 등을 한다.
도움말·주한 캐나다대사관

  

화끈한 한류 열풍 젊은 인재들이 이어간다
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주변에서 “일본 회사에 취업했다”는 얘기를 듣기는 쉽지 않다. 가뭄에 콩 나듯 일본에 취업한 사람이 있다 해도 한국 회사의 일본지사 아니면 영세 제조업, 유흥업 등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한국 젊은이들의 해외 취업에서 일본은 사각지대나 다름없다. 한국은 전자, 자동차, 건설 등 여러 산업분야에서 일본과 대등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업종에서 생산력과 기술 수준이 크게 뒤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한국 인력에 대한 수요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 기업들이 굳이 높은 위험 부담과 교육 및 회사 적응 비용을 감수하고 한국인을 데려다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한일 양국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미묘한 대립관계에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의 높아진 경제 수준과 국제적 지위, 일본 젊은이들의 지적 능력 하향 평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취업 환경요인의 변화는 일본 기업들의 시선을 한국으로 향하게 한다.

일본 최대 취업·이직 알선 서비스 기업인 리크루트 에이전트(Recruit Agent)의 에비하라 즈구오 상담역은 이러한 시기를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라고 표현했다. ‘스위트 스폿’은 테니스 라켓, 야구 배트, 골프 클럽에 공이 이상적으로 맞는 지점을 뜻한다. 공이 이곳에 맞아야 가장 좋은 타구가 나오는데, 이 상황을 여러 분야에 확장시켜 ‘충격 중심’이라는 뜻으로 쓴다. 에비하라 상담역의 말은 바로 지금이 한국 인재들이 일본으로 밀려드는 ‘충격’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 기업들은 그간 등잔 밑이 어두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만을 주요 비즈니스 파트너로 인식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한국 인재들의 매력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기존의 글로벌 공략 전략을 재편하고, 범세계적인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실감하면서 거리도 가깝고, 교육 수준이 높은 데다 국제감각까지 갖춘 한국 젊은이들을 주목하고 있다. 터닝 포인트를 맞은 것이다. 과거 한국인들은 일본에 취업할 때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감췄다. 하지만 이제는 입사지원서에 한국 이름을 써도 일본 기업들은 쇼크를 받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변화다.”

또한 에비하라 상담역은 일본 젊은이들의 학력 수준 하향세가 두드러져 앞으로 한국 인재들이 일본에서 계속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젊은이 중 상당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역사적 인물을 모르고 이탈리아가 유럽에 있는지도 모른다”며 “기본 학력 수준이 높은 한국 젊은이들은 이들과 비교되기에 일본 기업들이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항공, 조선, 기계, 토목산업을 망라하는 일본의 2~3위권 중공업 회사인 IHI(이시가와 지마하리마)그룹이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으로 한국의 7개 대학에서 일본 기업으로는 처음 취업박람회를 열고 신입사원을 선발한 것은 그냥 지나쳐볼 일이 아니다. 이 회사의 경우 지난해 선발한 신입사원들의 회사 내 평가가 매우 우수하게 나타나고 있어 앞으로 또 다른 일본 기업들이 한국 인재 발굴에 나설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특히 종합상사, 제조업, 전기, 전자 부문 등의 회사에서 한국 인재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출산율 저하로 인구가 줄어 이민 정책까지 고려하고 있는 일본의 현실이 상층 블루칼라 직종의 진입장벽을 낮추게 할 가능성도 크다. 노무, 생산관리, 판매관리 업종 등에서의 일본인 점유율이 떨어지면서 외부 인력의 수요가 절실하게 된 것. 일본 취업을 위해서는 일본어 구사 능력이 필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희망하는 일자리가 ‘천직’이 되리라는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재일교포 3세로 IHI그룹의 한국인 취업 홍보업무를 맡고 있는 ‘글로벌터치’의 권원호 대표이사는 “일본 사람들은 대개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스타일”이라며 “그처럼 여유를 갖고 한국 취업자들의 적응력을 검증하는 마당에 일본에서 경험을 쌓아 한국 기업으로 이직하려는 자세를 보인다면 일본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후배들에게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책임감을 안고 일본으로 뛰어든 두 젊은이가 있다. 깐깐한 일본 기업에서 한국 인재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는 그들의 일본 공략법을 듣기 위해 현해탄을 건넜다.

   

“입사 열망, 자기계발 열정,진심은 통했다”

 IHI그룹 해외영업전략본부 이송현

 

“도쿄 도요슈(豊洲)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대학입시에 합격했을 때처럼 가슴이 벅차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IHI그룹 해외영업전략본부에서 근무하는 이송현(25) 씨는 2009년 4월1일을 잊지 못한다. 말로만 듣던 IHI그룹 도요슈 본사에 최초의 한국인 대졸 신입사원으로 첫 출근한 날이기 때문이다. IHI는 세계적 거대기업 미쓰비시와 중공업 분야에서 선두경쟁을 벌이는 유수의 기업. 마침 만우절이라 이씨는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꽤 오랫동안 일본 문화와 친숙해진 뒤 일본 기업들의 취업 소식에 발 빠르게 대응해 ‘대어’를 낚은 경우. 고교생 때부터 일본어를 공부했고, 대학 3학년 때 게이오대 교환학생으로 1년간 유학해 적응력을 높였다. 졸업을 앞두고는 일본 기업들의 홈페이지를 드나들며 꿈을 키웠다. 이런 노력이 기회의 문을 열어줬다.

2008년 9월 IHI그룹은 일본 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고려대, 건국대, 성균관대, 연세대 등 한국 대학에서 취업박람회를 열고 한국 학생들을 공채로 모집했다. 연구개발, 개발설계, 품질관리에서 인사, 총무까지 전 분야에 걸쳐 모집했는데, 직접 부스를 찾거나 인터넷으로 지원한 학생이 약 2000여 명에 이를 만큼 관심이 높았다.

당시 언어능력 점수 기준이 주목을 끌었다. 일본어능력점수 JLPT 2급, JPT 600점 이상 혹은 TOEIC 700점 이상이 기준으로 예상보다 높지 않았다. 회사 측은 ‘응모 시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을 경우 입사 때까지 JLPT 2급, JPT 600점에 준하는 수준을 갖춰야 한다’고 명시했다. 입사 전까지 한국 학생들의 언어 부담을 덜어주는 배려를 하면서, 일본어 실력보다는 인성과 전공지식 등을 우선시해 채용하겠다는 의미였다. 이씨는 1차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선발된 40명에 포함됐다. 일본에서 치른 최종 부서책임자들과의 매칭 면담도 통과했다.

“면접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1차 면접 때는 지원자가 3명씩 들어갔는데, 제겐 유로화 강세에 대한 전망을 물어보더군요. 시사와 관련된 질문이라 좀 당황했지만, ‘시간을 조금 달라’고 하고 생각을 정리한 다음 차근차근 대답했죠. 다행히 무사통과했습니다.”

2차 면접 때는 면접관이 건네준 질문지 내용 중 어려운 한자를 읽지 못해 질문지를 돌려줄 뻔했으나 재치 있게 위기를 넘겼다.

“그 한자 아래에 제가 아는 문장이 있기에 제 마음대로 읽어버렸어요. 그러면서 개인적인 얘기도 곁들이고요. 그랬더니 인사담당자가 웃더군요. 제가 정말 간절히 입사를 희망하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마지막 면접 후 회사 측은 이씨에게 입사 의사를 타진했다. 이는 일본 기업의 취업 담당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IHI그룹 인사담당자도 ‘일본에 와서 일할 수 있는가’ ‘일본 사람들 속에서 일할 마음가짐이 돼 있는가’를 거듭 확인했다.

최종적으로 이씨를 포함해 8명을 선발한 IHI그룹은 지난해 11월 초부터 지난 3월 말까지 이들을 한국무역협회에 파견해 필요한 업무지식과 영어회화를 익히게 했다. 첫 출근 후 3~4주 동안은 공장에서 용접, 파이프 절단 등의 현장실습을 받으면서 IHI그룹 사원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현재는 해외영업 전략부문 파트에서 해외 지점 및 사무소 관리, 해외 업계의 동향, 자사 공사 진척도를 파악하는 게 이씨의 주업무다.

항공우주, 조선, 환경, 에너지 플랜트 등 사업 영역이 방대하다 보니 이런 분야의 공부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일본어를 곧잘 구사하지만, 아직 업무 전화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실수하는 경우가 있어 어학 공부도 일과에 포함시킨다. 잔업은 많지 않지만 업무시간의 업무 강도는 세다. 사적인 전화도 허용되지 않는다.

대기업이다 보니 대우도 좋은 편. 대졸자는 월 20만엔 정도의 초봉에 시간외근무, 교통수당이 추가된다. 휴가 등 복지 수준도 만족스러울 뿐 아니라 회사에선 장기취업비자 취득을 위해 적극 협조해준다. 그러나 이씨는 이런 외형적 대우만 좇는 것은 위험하다며 일본 취업 희망자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했다.

“단기간에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면 오지 않는 게 낫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부서에 배속되고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없어졌어요. 2~3년 근무해 돈을 모은 뒤 한국 기업으로 갈 요량이라면 회사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손해이고, 한국 인재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게 됩니다. 일본에서 회사를 다니려면 얻는 것뿐 아니라 잃을 수 있는 게 뭔지도 생각해서 결정해야 해요.”

이제 IHI그룹을 평생직장으로 여긴다는 이씨는 결혼한 뒤에도 일본에서 살 계획을 갖고 있을 만큼 이 회사의 첫 한국인 공채직원이라는 점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준비된 ‘무한도전’이 일본 연착륙 원동력”

니혼 폴’ 마케팅팀 아시아마케팅 담당 허여주

 

“어릴 때 아버지가 차만 타면 일본어 테이프를 틀어놓으셨어요. 지겹게 일본어를 들었는데 결국 일본에서 살게 됐네요.”

지난해 12월 여과·분리·정화·정제시스템 기술 분야의 세계적 기업 ‘폴 코퍼레이션(Pall Corporation)’의 일본 현지 법인 ‘니혼 폴(Nihon Pall)’에 입사한 허여주(27) 씨는 일본과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대학(숭실대)에서도 일본어를 전공하고, 대학 재학시절과 졸업 후에도 일본을 수시로 드나들더니 직장까지 그곳에서 구했다.

“일본을 좋아하신 아버지가 늘 ‘이제는 글로벌 시대이니 외국에서 사는 것도 좋겠다’고 하셨는데, 전 ‘외국’이라고 하면 당연히 일본인 줄 알았죠.”

부친의 영향 때문인지 허씨는 일찌감치 일본 진출을 위한 자기계발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실천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일본을 제대로 알고 실전회화를 익히기 위해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주관하는 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 서너 차례 낙방한 끝에 따냈다. 다시 얻기 힘든 소중한 기회라는 생각에 하루에 라면 가게, 패스트푸드점에서 ‘두 탕’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본 속으로 스며들었고, 일을 하면서 익힌 생활일어 실력 덕에 일본어능력시험 1급 자격까지 땄다.

졸업 후엔 한국무역협회의 청년무역인 현지 인턴십 프로그램 참가자로 선정돼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에서 6개월간 무역 실무와 일본 비즈니스 언어를 익혔다. 이는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취업 준비가 됐다.
“가장 보람이 큰 시기였죠. 무역상사들에게 법률자문을 해주면서 상식도 늘고, 그 내용을 일본어로 써주다 보니 일본어 실력도 부쩍 늘게 되더라고요.”

자신감이 충만해진 허씨는 일본 취업 전선을 자유자재로 누비고 다녔다. 국내 대기업에서도 취업 제의가 들어왔지만 안중에 없었다. 일본의 여러 리크루트 회사와 대기업에 우편이나 인터넷으로 이력서를 ‘무차별 살포’했다. 이력서를 보낼 때는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장을 집요하게 졸라 받아낸 추천서를 첨부해 다른 구직자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지망 동기에서부터 논문, 세미나·과외활동까지 자세히 기록했어요. 특히 자기 PR 대목에선 일본에서 홀로 지낸 경험을 부각했죠. 혼자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면서도 일본 기업 입사의 꿈을 버리지 않고 도전을 계속해온 점을 일본 기업들이나 취업 관계자들이 높이 평가했습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취업박람회도 빼놓지 않고 찾아가 자신을 알렸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로 이어져 현지 에이전트사의 추천과 면접을 통해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허씨는 면접에서 ‘왜 일본에서 일하고 싶냐’는 원론적인 질문에 “내가 몰랐던 생존능력을 발견하게 해준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해 기선을 제압했다고 한다. 다른 부서장이 “내가 아주 꼼꼼한 사람인데 견뎌낼 수 있겠냐”고 묻자 “그건 오히려 고마운 일”이라고 답해 웃음을 이끌어냈다.

그는 현재 아시아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제품 홍보와 시장 분석에서 파트너 선정, 브랜드 관리 등에 이르기까지 업무 폭이 넓다. 이제 업무의 흐름은 거의 완벽하게 파악했지만 자신의 전공 분야와 무관한 반도체 및 각종 화학제품과 장치, 실험법 등과 관련된 지식은 낯설어 틈만 나면 공부를 한다.

이제 입사 8개월째. 조금 느슨해질 때도 됐고 외롭기도 하지만 유일한 한국인 직원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 1등으로 출근하고, 영어 실력도 사내 최고 수준이다.

끊임없는 도전. 허씨는 자신의 경험이 다른 취업 희망자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기 바란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고, 집요한 사람에겐 당해낼 자 없어요. 일본을 구석구석 알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무한도전’하면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

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일본 취업비자 안내
일본에 취업했다고 해서 곧바로 비자가 발급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일본 회사를 통해 재류(在留)자격인정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국비유학생이나 일본 국립기관에 연구 목적으로 가는 사람에겐 대사관에서 곧장 장기 체류 목적의 비자를 발급할 수도 있다.
증명서의 유효기간은 3개월이다. 회사에서 신청한 증명서가 발급되면 취업자가 증명서를 첨부해 주한 일본대사관 영사부에 신청, 비자(기간은 1~3년. 회사 규모에 따라 비자 유효기간에 차이가 있음)를 발급받고, 유효기간 내에 일본에 입국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엔 일본 출입국 관리소에서도 비자 발급이 가능해져 중간에 한국에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일본 취업을 위해 현지에서 학업을 하거나 단기 경험을 쌓기 원하는 취업 예정자들은 워킹홀리데이 비자(관광취업비자)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1999년 시작된 한일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이 올해부터 대폭 확대됐다. 지난해까지는 매년 3600명이었으나 올해엔 7200명으로 2배 늘었고, 2012년부터는 1만명으로 확대된다. 18~25세(부득이한 경우엔 30세까지 허용)에게 1년간의 체류가 허가된다. 사단법인 일본 워킹홀리데이협회(www.jawhm.or.jp)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IT·과학·엔지니어링 분야 무한한 성장환경 매력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추락하는 영국엔 날개가 없다.’ 1980년대 대처 정부 이후 금융산업이 성장하면서 런던은 뉴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런던 금융 중심지에선 투자은행, 컨설턴트 등 금융 관련 종사자들이 수십만,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돈을 물 쓰듯 하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07년 말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는 영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금융산업이 무너지자 영국 경제는 뿌리째 흔들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68.6%인 영국의 국가 채무가 5년 뒤에는 100%에 근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업수당 수령자도 1997년 이후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었다. 2005년 GDP 순위 세계 4위이던 영국은 2006년과 2008년 각각 중국과 프랑스에 추월당하며 5, 6위로 한 단계씩 밀려났다.

영국 경제가 요동치면서 한국인이 영국에서 취업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2009년 현재 4만5000여 명의 교민이 영국에 거주한다. 이 가운데 시민권자는 3100여 명에 지나지 않고 유학생이 1만8700여 명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경제사정 탓에 유학생 대부분이 영국에서 취업할 꿈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한다.

지금까지 영국 취업을 희망하는 한국인에게 유망 직종은 단연 IT였다. 이 밖에 수학, 과학, 엔지니어링 분야도 외국인에게 개방돼 있다. 이들 분야에선 오히려 영국인이 소수자다. 특히 IT 쪽은 인도인이 주류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인이 과학, 엔지니어링, 수학 등을 기피하는 현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영국인은 전통적으로 외교관, 회계사, 변호사, 은행가, 언론인을 선호 직업으로 여겼다.

영국 통화인 파운드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돈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영국의 임금 수준은 상당히 높다. ‘더 타임스’가 발간한 ‘Top 100 Employers’(2007)에 따르면 2007년에 선정된 기업들의 대졸 신입사원 평균 초봉은 2만6400파운드로, 우리 돈으로 500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살인적인 물가를 고려한다면 급여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런던 시내 1, 2존에 웬만큼 살 만한 방 2개짜리 집을 사려면 최소한 30만 파운드(약 6억원)는 줘야 한다. 세를 얻는다고 해도 한 달에 300~800파운드(약 60만~160만원)를 지불해야 할 만큼 비싸다. 그러니 영국 직장인 사이에선 “세금 내고 모기지 상환하고, 각종 공과금 내면 남는 게 없다”는 불평도 쏟아진다.

영국에서는 보통 한 회사에서 5년 정도 근무한다. 그 이상이 되면 이직을 생각하거나 진급을 통해 다른 직급을 갖는다. 영국에서의 직장생활은 꾸준한 경력 관리가 필수. 회사가 개인에게 무조건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지만, 회사에 공헌하지 않는 개인을 회사가 무조건 받아주지도 않는다.

런던에서 고용 전문 에이전시 ‘토탈좁스(Totaljobs)’ 선임개발자로 일하는 차영호 씨는 “영국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무한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면서도 “최근의 경제위기 탓에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심해지면서 한국인의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진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막연한 환상 버리고 발로 뛰며 준비하라”

EF 런던 오피스’ 애널리스트 김소영

 

“너무 기뻐서 방에서 콩콩 뛰어다녔답니다.” 최종 인터뷰가 끝난 다음 날, 회사로부터 취업 축하를 받았을 때의 기쁨을 김소영(30) 씨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가 해외취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영국으로 날아온 지도 1년이 넘었다. 그는 지난 1년간의 경험을 통해 해외 취업이 나름의 장단점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자율적인 근무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 일과 삶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문화는 국내에선 경험할 수 없었던 부분이다. 무엇보다 다국적 문화를 경험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힐 수 있다는 게 좋았다고 한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머나먼 타향에서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부터가 쉬운 일은 아니죠. 막상 직업을 구하려 해도 선택의 폭이 현지인에 비해 좁다는 것도 단점이고요.”

현재 그는 사립어학연수 전문기관 EF 런던 오피스에서 애널리스트(Search Analyst)로 ‘삶의 제2막’을 보내고 있다. 한국 시장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온라인 마케팅 관리가 그의 업무. 각국의 시장 흐름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짜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에 오기 전, 이미 그는 서울 강남의 미국 유학생 시험 전문학원에서 토플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안정된 직장과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삶의 제1막’은 탄탄대로였다. 그럼에도 과감히 도전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막연한 동경에서 해외 취업을 준비한 것은 아니다. 그가 주변에서 해외 취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말도 바로 ‘해외 취업에 대한 강력한 확신’이다.

“해외 취업은 준비 과정부터 취업 후 생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도전과 자신과의 싸움이 이어집니다. 아무 준비 없이 환상만 갖고 나가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죠. 이도저도 아니게 시간만 낭비할 수 있습니다.”

해외 취업 준비과정은 본인이 직접 정보를 찾고, 알아봐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료 수집도 국내 취업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인터넷에는 이런저런 자료가 많지만 정작 요긴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해외 취업을 알선하는 사이트도 있었지만 제가 원하는 일자리는 거의 없었어요. 결국 www.reed.co.uk 같은 영문 사이트에 들어가봤습니다. 해외 취업 때 내가 갖춰야 할 지원자격 요건은 무엇인지, 비자는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정보를 얻는 데 몇 달이 걸렸어요.”

현지에 왔을 때도 사전 준비는 계속된다. 일자리에 오퍼를 하고, 영어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옷차림은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유형의 시험이 있는지 준비하지 않으면 당황하기 쉽다.
“저는 해외 취업정보사이트에 가입해 그곳에서 오는 메일들을 잘 활용했습니다. 취업정보사이트에서는 인터뷰를 준비하는 방법, 옷차림, 피해야 할 표현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메일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꼼꼼히 읽으며 면접을 준비한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김씨는 특히 면접과정에서는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기를 것을 주문했다.
“면접을 보러 갔는데 갑자기 작은 시험을 본다고 얘기하더군요. 애널리스트 일에 필요한 기본적인 분석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었습니다. Case question이라는 사례시험이었는데,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시험에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동안 준비한 것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써내려갔더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준비는 취업이 되고 난 뒤에도 필요하다. 전혀 다른 문화 때문에 혼란을 겪기도 했던 만큼 탄탄한 준비과정은 필수.
“행운은 기회의 문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옵니다. 지레 어렵고 안 될 거라는 생각은 버리고,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뒤따른다면 해외 취업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런던=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남은 인생 1/3은 다양한 나라, 1/3은 사랑하는 나라에서”

다국적 석유회사 ‘로열 더치 셀’ 副마케팅 매니저 김수영

 

“정말 해외 취업 준비가 돼 있고, 실제로 구직을 하는 분만 e메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막연하게 해외 취업을 꿈꾸고 김수영(28) 씨에게 해외 취업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가는 이렇게 면박을 당할 수 있다. 그는 영국 취업을 꿈꿔본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인사가 됐다. 김씨는 영국 취업 블로그(http://blog.naver. com/cyberelf00)를 운영한다.

하루에 200명도 넘는 누리꾼이 다녀갈 만큼 인기 블로그다. 많은 사람이 똑같은 질문을 쏟아내는 탓에 ‘영국 취업과 생활’이라는 주제로 장문의 글 8개를 게재해놨다. 해외 취업의 장단점, 인터뷰 경험, 비자 문제 등 영국 취업의 ‘A to Z’가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씨는 ‘로열 더치 셸’에서 4년째 일하고 있다. 이 회사는 글자 그대로 영국(Royal)과 네덜란드(Dutch)의 합작법인이다.

석유 정제는 물론 시추, 투자, 개발까지 다루는 다국적 석유 메이저 회사다. 그는 무역 IT 분야 인턴십으로 일을 시작했다. 프로그래밍 같은 IT 실무는 인도 방갈로르에 있는 아웃소싱 업체가 담당했기에 그는 IT 관련 경영분석 일을 맡았다. 이후 인턴십이 끝난 뒤 셸 측의 취업 제의를 수락했고 노동허가증도 받았다. 현재 그는 마케팅팀에서 부(副)마케팅 매니저(assistant marketing manager)로 일하고 있다.

‘assistant mana-ger’는 대리 정도에 해당하는 직급. 그는 자신의 좌우명인 앙드레 말로의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을 꺼내며 해외 취업을 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다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엑셀 파일에 정리해봤습니다. 모두 73개나 되더군요. 각각의 소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언제쯤 이루고 싶은지를 점수로 매겨본 다음 가장 중요하고 급한 것부터 정리했습니다. 그러자 대략적인 인생의 로드맵이 보였어요.”

그때 첫 번째 순위로 선택된 것이 한국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구직활동에 들어갔다. 한국의 신입사원 공채에 해당하는 ‘graduate programme’을 인터넷으로 지원했고, 영국에 온 지 두 달째부터 본격적으로 면접을 보러 다녔다.

“몇몇 리크루팅 에이전시에 등록을 했고, 특정 포지션에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커리어 관련 박람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일단은 공부보다 구직에 열중했지요.”
정말 정성을 다해 지원한 회사가 30개에 이를 정도. 이력서만 던진 회사까지 포함하면 50개가 넘었다. 이 중 4곳으로부터 취업 제의를 받았다.

“해외 취업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제가 한국에서 구직할 때도 50군데 이상 기업에 이력서를 써보냈습니다. 대충대충 하면 되리라는 생각은 버려야죠.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진심을 담아서 에세이를 쓰고, 인터뷰도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는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난 한국인이기 때문에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볼 때가 가장 안타까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명문대 졸업장 하나만으로도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외국에서는 도통 알아주지를 않으니 몇 번 도전해보다 실패하면 금방 좌절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 이들 중 일부는 자기가 안 되니까 남들도 당연히 안 될 거라고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기도 한다.

김씨는 앞으로도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을 떠날 때 ‘인생의 3분의 1은 한국에서 보낸 만큼, 다음 3분의 1은 다양한 나라에서 살다가 마지막 3분의 1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에 자리잡고 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내년에 영국을 떠나 다른 나라 지사로 옮길 계획인데 남미, 중동 등 다양한 지역에 있는 매니저들과 네트워킹을 하면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런던=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해외인턴사업 → 해외취업’ 이상적 성공 모델

고용전문 에이전시 ‘토탈좁스(Totaljobs)’ 선임개발자 차영호

 

“최근 몇 년간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한국에서 다시 해외 인턴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저도 해외 인턴 파견을 통해 운명이 바뀐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차영호(38) 씨가 고려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할 당시는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때라 일자리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다. 취업이 뜻대도 되지 않자 IT로 눈을 돌렸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6개월짜리 인터넷 개발교육 강좌에 등록했다.

“전공은 영어지만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했습니다. 임시교사로 1년간 학교에서 근무해보기도 했지만 좀처럼 탈출구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 무렵 뜨고 있던 IT에 인생의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교육지원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1999년 KCC 정보통신을 통해 해외 인턴사원으로 영국에 파견됐다. 취업 사정이 어렵다 보니 당시에도 요즘처럼 정부에서 월급의 일정 부분을 지원하는 해외인턴 파견사업이 많이 실시됐다. 처음부터 영국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미국을 지원했지만 미국사무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얼떨결에 영국지사로 파견된 것.

처음에는 런던시에서 금융 관련 패키지 유지보수 작업을 맡았다. 이후 삼성SDS 영국법인, 기아자동차 영국법인을 거쳐 2005년부터는 고용전문 에이전시(Recruitment Agency) ‘토탈좁스(Totaljobs)’의 개발팀에서 선임개발자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 직장 구하기가 힘들지,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면 자신의 조건에 맞는 직업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삼성SDS 영국법인부터는 스스로 직장을 구한 경우고요.”

그처럼 바쁘게 살다 보니 영국에 온 지도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개발자로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쌓았다고 자평한다. 무엇보다 그는 영국 기업들의 ‘기술자 우대문화’가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자신이 개발업무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싫어도 매니저 자리를 떠맡아야 하는 한국에서와 달리, 이곳에선 나이가 많다고 어쩔 수 없이 매니저가 된다는 인식은 없다.

“제가 우리 나이로 곧 마흔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개발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제 나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아무도 묻지 않죠.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이거든요. 해외에서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합니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대우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생각만큼 심각하지는 않더라고 한다. 물론 어느 사회에나 전반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있으며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차별을 방지하는 다양한 대안이 마련돼 있다. 직장에서의 성별, 연령, 인종에 대한 여러 규정이 잘 법제화돼 있고, 이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는 보고서들이 매년 관련기관에서 출판된다.

“영국, 특히 런던에는 영국인보다 외국인 비율이 높은 분야가 많아 기본적으로 다인종, 다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외국인들이 소수자지만, 산업에 따라선 영국인들이 소수인 경우도 있습니다. IT가 대표적이죠. IT는 인도인이 주류를 이룹니다. 제가 일하는 기술개발 파트에서도 중국인 4명, 한국인 1명, 인도인 3명 등 동양인이 주류이고 영국인이 오히려 마이너입니다.”

영어도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취업에 필요한 영어라면 일반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하면 된다. 차씨는 영국식 발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BBC Learning English 웹사이트를 이용할 것을 권유했다.

“어쩌면 이제 영국에서, 특히 런던에서 영국 영어는 소수가 됐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워낙 국제적인 도시이다 보니 세계 각지 사람들이 모여들거든요. 각양각색의 발음이 있는 만큼 한국식 발음을 창피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언어 및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잊지 마세요.”

런던=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영국 취업비자 안내
영국 이민국은 45년간 유지해오던 각종 비자제도와 이민 관련 법안을 지난 5년에 걸쳐 점수제 이민법으로 바꿨다. 그 결과 2008년 11월27일부터 노동허가제도(Work Permit)가 폐지되고, 점수제(Pointed Based System, PBS) 이민법이 도입됐다. 과거에는 영국 기업이 외국인을 고용하려면 변호사 등을 통해 노동허가서를 신청해야 했다. 한번 발급받은 노동허가는 회사를 나올 경우 무효가 되기 때문에 새 직장으로 옮기려면 매번 새로 신청해 발급받아야 했다.
하지만 변경된 제도에서는 입국 목적에 따라 층(Tier)을 나눠 비자를 발급한다. 항목별로 점수를 설정해 일정 점수를 받으면 비자를 주고, 점수를 받지 못하면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것. 취업비자는 크게 T2 장기취업비자와 T5 단기취업비자로 나뉜다. 비유럽인이 영국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려면 반드시 T2G 취업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비자가 있어 자신에게 맞는 취업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이들 가운데 영국 현지 취업을 원하는 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세 가지 비자를 소개한다.


1급 일반이민비자
1급 일반이민비자(Tier1 General, T1G)는 1급 비자에 속한다. 영국에 취업한 직장이 없고 투자한 돈이 없어도 자신이 고급인력이라는 것만 증명하면 이민비자를 받아 이민할 수 있는 비자다. 과거에는 고급인력비자(HSMP)라고 불렸다. 고급인력을 영국에 이민시키고자 2002년 처음 도입됐고, 3차례에 걸쳐 개정이 이뤄졌다. 지난 3월 말부터는 자격조건을 석사 이상으로 상향조정했다.
1급 일반이민비자를 받으면 별도의 노동허가서 없이 학업·취업·프리랜스·사업 등을 자유스럽게 할 수 있다. 영국 회사에 취업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 영국 이민을 하고자 할 때 가장 유리한 이민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학력·나이·소득·경험에서 75점 이상, 영어점수 10점(IELTS6.5) 및 재정점수 10점을 받아 총 95점이 넘으면 신청할 수 있다. IELTS6.5 또는 이에 상응한 토플, 토익, 케임브리지 시험 등 14개 영어시험 점수 중 하나를 제출해야 한다.
비자 기간은 최초 3년이며, 영국에 입국한 뒤 경제활동 근거 자료 등을 기초로 한 연장서류를 제출해 승인을 받으면 2년까지 연장된다. 이렇게 5년을 체류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영주권을 받고 1년이 지나면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1급 일반이민비자는 가족도 동반자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대상자는 배우자 및 18세 미만 자녀들. 동반비자 소지자는 영국에서 회사설립, 자영업, 풀타임 취업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2급 일반취업비자
2급 일반취업비자(Tier2 General, T2G)는 과거의 노동허가서 및 취업비자 심사를 한꺼번에 받는 것으로 보면 된다. 과거보다 강화된 심사를 받는 셈이다. T2G 취업비자는 신청인이 영국 회사로부터 스폰서십 증서번호가 있는 취업제의서(Job offer letter)를 받아 신청한다.
해외에 있는 영국비자신청센터(영국대사관 혹은 영사관)에 신청할 수 있고, 영국 내에서는 영국 이민국에서 신청을 받아 발급한다. 이때 자신의 조건에 따라 신청받는 곳이 결정된다. 현재 영국에서 학생비자로 체류 중이고 영국에서 학위를 받은 자, 또는 현재 영국에서 다른 취업비자로 체류하는 자는 영국 내에서 T2G 취업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 영국에 체류한다 해도 영국 학위가 없으면 자국에서 신청해야 한다.
영국 회사에서 외국인을 고용하려면 회사 내부에서 이동하는 주재원이 아닌 경우, 반드시 공개채용을 해 영국인에게 먼저 일자리 기회를 줘야 한다. 그래도 인력을 찾지 못했을 경우에만 비유럽인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전문대 졸업자는 전공과 동일한 분야의 3년 풀타임 경력을 가진 경우에 T2G 취업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 데 비해, 학사학위 소지자는 동일 전공 업무로 취업하는 경우에 한해 경력이 없어도 신청이 가능하다. 전공과 무관한 분야로 취업하려면 3년 풀타임 경력이 요구된다.

학업후비자 학업후비자(Tier1 Post-Study Work Scheme, PSW)도 1급 비자에 속한다. 2008년 6월30일 이후 점수제 이민법에 포함됐다. 기존의 IGS(International Graduates Scheme)와 스코틀랜드의 제도이던 Fresh Talented Scotland Scheme를 대신하는 제도다. 대학(Degree)과 대학원(master degree), 그리고 대학원 학위(Certificate 또는 Diploma)를 가진 학생들이 24개월간 일을 할 수 있는 비자다. 이민국이 요구하는 점수는 영국 공식 공인 학위(20점), 정부 공인 인스티튜션(20점), 학업 시 영국학생비자 혹은 연구원비자 소지자(20점), 졸업 후 12개월 이내에 신청(15점), 영어점수(영어로 수업해서 졸업했으면 10점), 재정점수(3개월 잔고 증명 10점)로 총 95점이다.
영국에서 파트타임, 풀타임 취업이 가능하고 프리랜서 자영업 회사 설립 등을 통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대 2년까지 유효하므로 그 후에는 연장이 안 된다. 계속 체류하려면 다른 비자(T1G, T2G 취업비자, T4 학생비자 등)로 신청해야 한다.

  

‘외국인’ 신분이 장점 되는 틈새 일자리 찾아라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보스내핑(bossnapping)’.
노동자들이 회사의 구조조정에 반발해 경영자를 감금하는 사태를 일컫는 말이다. 프랑스에서 TV를 켜면 보스내핑을 보도하는 뉴스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 7월21일 프랑스 동부 몽소레민에 자리한 타이어 회사 미슐랭의 노동자 50여 명은 회사 대표를 비롯해 4명의 경영자를 사무실에 감금했다가 이튿날 오전에 풀어줬다. 회사 측이 1000명이 넘는 대규모 감원계획을 공개한 뒤 벌어진 일이다.

보스내핑은 어려워진 프랑스 경제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살인적인 실업률과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다. 프랑스 경제연구·통계기관(INSEE)에 따르면 올해 약 70만명의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4분기 실업률이 10.1%까지 치솟아, 2000년 이래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25세 이하 청년실업률은 40%를 넘어섰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이뿐 아니라 공무원 대폭 감축, 실업수당 지급기관 및 직업 알선기관 통합, 항공 및 자동차산업 지원, 연구개발 세제 지원, 중소기업 투자 감세 혜택, 환경정책, 지속가능 대체에너지 개발 등에 기록적인 재정을 투입함으로써 벌써부터 과도한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프랑스의 올해 재정적자율은 7∼7.5%로 1945년 이후 최고치로 오른 뒤 내년까지 이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선 노동근로법이 워낙 엄격해 미국식 자본주의의 ‘유연한 고용과 해고’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외국인에 대한 취업 장벽이 그만큼 높다. 또한 자국민의 높은 실업률을 감안해 외국인 직원 고용에 많은 제한을 둔다. 그러다 보니 막상 해외 취업의 기회를 잡아도 프랑스 현지 기업에서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외국인 직원 고용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취업 희망자 스스로 이런 행정 절차를 잘 파악하고 현지 기업의 불편요소를 먼저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프랑스 유학·체류 컨설턴트 ‘ARIFEC’ 대표 한은경 씨는 “프랑스를 비롯한 EU 국가 대부분이 이런 정책을 쓰고 있어 한국인들의 취업 기회가 많지 않지만, 정책적으로 외국인의 역량을 활용해야 할 분야가 분명히 있는 만큼, 늘 정책동향이나 취업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지금까지는 IT·컴퓨터 전문가, 금융보험 책임자, 기업 프로그래머 등 최첨단 시스템 구축에 기여할 수 있는 직업군에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의 고용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아시아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분야나 수출입 회사 등 외국인 고용을 할 수밖에 없는 직종도 눈여겨봐야 할 대상. 프랑스에서는 취업을 하든 창업을 하든 많이 번 만큼 세금을 내게 된다. 때문에 짧은 기간 안에 부를 축적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사회복지제도가 잘돼 있어 외국인들도 사회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프랑스 현지 취업의 가장 큰 장벽은 언어다. 프랑스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한국인들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다. 일부 다국적기업에서는 영어만 사용해도 일단 채용하지만, 채용 뒤 프랑스어 연수를 받게 한다. 로레알 비오템 아시아팀 프로젝트 매니저 김종하 씨는 “업무상으로는 영어를 쓴다 해도 조직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동료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려면 프랑스어를 익히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프랑스에 법인 등록된 한인 기업들과 지사나 사무소로 등록된 회사 중에는 프랑스어, 영어, 한국어 모두에 능통한 직원을 선호하는 곳이 많다.바늘구멍보다 좁다는 프랑스 현지 취업관문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4명의 남녀를 파리에서 만나 그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나는 남과 다르다’는 장점 시의적절하게 활용”

오길비 앤 매더’ 아트디렉터 하나진

 

“석 달 안에 일자리를 못 구하면 미련 없이 돌아간다.” 2007년 1월 파리에 다시 들어오면서 하나진(27) 씨는 반드시 직장을 구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프랑스 유학을 와서 에티엔 고등예술학교(´Ecole Sup´erieure Arts et Industries Graphiques Estienne)까지 졸업했는데 그러고도 취업을 못한다면 최소한 인턴이라도 하고 떠나겠다는 각오였다.

파리에 들어온 다음 날부터 현지 취업 사이트를 빠짐없이 뒤지며 가고자 하는 회사의 구직 현황을 체크했다. 1년에 한 번씩 만들어지는 광고, 마케팅 업체 전화번호부를 뒤지면서 해당 회사에 전화와 e메일로 연락을 취했다. “e메일에는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돌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많은 양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각 회사에 뿌렸습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두려울 것도 없었고요.”

하루에도 수십 개 기업에 전화를 걸고 e메일을 보내고 포트폴리오를 건넸다. 자신감을 갖고 접촉을 계속하다 보니 기업들로부터 답변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기회가 왔다. “야심 차게 준비한 포트폴리오 중에 ‘우주여행’이라는 콘셉트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마침 세계적 광고기업 ‘오길비 앤 매더(Ogilvy · Mather)’ 파리의 한 클라이언트가 보게 됐습니다.

그는 여행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제 작품에 호감을 보이더군요. 더욱이 바로 전에 그곳에서 일한 한국인 아트디렉터가 성실한 태도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런 행운이 얽히면서 마침내 해외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배수의 진’에서 빠져나옴과 동시에 그는 오길비 앤 매더 파리에서 루이비통 광고와 브로슈어 담당 주니어 아트디렉터로 2년째 활동 중이다. 2008년에는 Scrabble 캠페인으로 칸 라이언 은상을 받았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그는 “인턴이라도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일자리를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프랑스에서는 곧장 정규직 취업을 희망하기보다 일단 인턴이라도 하면서 경력을 쌓아가는 것이 유리하다. 정규직 취업만 고집하다가는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자기 입맛에 맞는 일자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광고를 비롯한 아트업계는 수시채용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턴을 거쳐 정규직 직원이 되는 사람이 많아요. 특히 프랑스 사회에서는 미국처럼 근로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없기 때문에 정규직 자리를 구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정규직 직원이 퇴사해야 신규 채용 TO가 생기거든요. 힘들더라도 인턴 생활을 통해 차근차근 경험을 쌓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한국인이기에 프랑스인과 다르다’는 점을 잘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해외에서 지내다 보면 현지인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사실이 스트레스가 된다. 초기에는 하씨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유학도 했지만 결국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좌절감에 힘들어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르다’는 점이 강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외국인이라는 점을 글로벌 이미지에 걸맞게 어필하면 현지인과 차별화된 이미지가 이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해외 취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재능이 있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그렇지만 “운은 노력하는 자에게 따라붙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해외 취업은 실력, 끈기, 운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질 때 이뤄질 수 있다는 것.

“최선을 다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때가 옵니다. 그렇게 해서 해외 취업을 하면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립니다. 저 또한 지금은 프랑스에 있지만 이곳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도전을 계속할 겁니다.”

파리=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미대+MBA 절묘한 조합… 취업은 또 다른 도전”

로레알’ 비오템 아시아팀 프로젝트 매니저 김종하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이 있다면 언어, 자기 차별화, 등급 높이기 세 가지를 준비하라고 당부하고 싶네요.”
김종하(34) 씨가 후배들에게 주는 조언이다. 김씨는 미술대학 출신 경영학석사(MBA)라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광고 및 그래픽디자인 회사에서 2년간 일했다.

이후 프랑스 에섹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석사를 마친 뒤, 2005년 ‘로레알’에 인턴으로 입사했다가 사원으로 정식 채용됐다. 로레알 파리에서 아시아존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비오템 옴므’ 프로덕트 매니저를 거쳐, 현재는 맨·보디·선제품 등을 다루는 비오템 아시아팀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해외 취업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미대를 졸업했지만 미술계통에서 일할 마음이 없었기에 다른 분야 공부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실과 타협한 것이 경영학석사였습니다. 국내 대학원 진학도 고민했지만 해외에서 공부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학교를 2년째 다니던 중에 로레알에서 제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해와 전화 인터뷰를 하고 그 다음 주에 만났는데 덜컥 인턴이 돼버렸습니다.”

회사 측은 인턴 말기에 향후 한국으로 돌아갈 건지 프랑스에 남고 싶은지를 물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 일단 도전이나 해보자는 마음에 프랑스에 남겠다 하고 정식 채용을 위한 인터뷰를 다시 가졌습니다.”

인터뷰는 5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거듭되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오기가 생겼고, 한 단계를 넘을 때마다 ‘이렇게 고생해놓고 떨어지면 얼마나 억울하겠나’라는 생각에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비즈니스 계획표를 짜고 예상 가능한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다. 무엇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미술대학과 비즈니스 스쿨의 조합이라는 자기 차별화였다. 김씨는 ‘럭셔리 제품 마케팅’으로 자신을 부각했다.

“마케팅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학부시절에 미술 공부한 것을 사장하는 게 아쉬웠습니다. 럭셔리 제품은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 발달한 산업이니, 경영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한 마케팅을 여기에 접목한다면 남들보다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제 생각에 회사도 큰 관심을 보였고요.”

김씨는 한국인을 필요로 하는 산업의 틈새시장을 노린다면, 해외 취업이 좀더 용이하다고 조언했다.

“해외 취업의 첫 관문은 ‘아시아 사람을 필요로 하는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외국인을 채용하는 게 아닙니다. 현지인들은 나를 아시아인으로 보지, 한국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다른 아시아인과 경쟁하는 구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때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의 이점을 활용해야 합니다. 한국이 지닌 경쟁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 분야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는 4년 넘게 프랑스에서 일하면서 해외 취업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임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해외 취업의 꿈을 이뤘다고 해서 평생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서 일할 수도 있고,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돌아가 일할 수도 있습니다. 해외에서 일하며 얻은 언어 능력, 자신감, 국제적 사고, 전문성을 활용한다면 어디에서든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파리=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1인기업 창업으로 결실

프랑스 유학·체류 컨설팅社 ‘ARIFEC’ 대표 한은경

 

한은경(43) 씨는 한마디로 프랑스에서 잔뼈가 굵었다. 유학, 취업에서부터 창업까지. 그가 프랑스에서 겪은 일들을 글로 쓴다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다. 해외 취업의 기회는 우연하게 다가왔다. 1989년 홍익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중소기업체 해외영업부 및 영자신문사 홍보마케팅 담당으로 직장생활을 할 때만 해도 해외에서, 그것도 프랑스에서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1991년 6월의 결혼이 전환점이 됐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에서 공부하며 평범한 가정을 꾸려나가던 한씨가 프랑스에서 취업을 한 것은 96년 2월. 파리 주재 OECD 한국대표부 사무소에서 특수편집요원으로 단기계약 근무를 했다. 이때만 해도 그저 유학 중에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해외 취업을 고려한 것은 1997년 11월 한국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부터. 한국으로부터의 송금이 끊기면서 한씨 부부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했다. 이후 프랑스 현지 기업과 한인 기업을 오가며 여러 해 경험을 쌓다가 2002년 초 현지 보험회사 정식 영업관리직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일을 시작했지만 이를 통해 쌓은 경험과 노하우는 결코 적지 않았다. 한씨는 해외에서 일하고 생활한 경험을 공유하자는 생각에 2002년 10월 ‘1인기업’ 경영자로 변신했다. 현재 그가 운영하는 ARIFEC은 프랑스 체류·인재양성 전문 컨설팅회사. 프랑스에서 교육·체류·취업·창업 등을 원하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각종 비자발급 지원, 인재 발굴 및 양성, 기업홍보 등 맞춤형 컨설팅 업무를 제공한다.

분쟁요소가 생기면 1차 중재에 나서기도 한다.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 취업이나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을 줄 만한 멘토들이 없어 아쉬웠던 자신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선 물론 그 후에도 다양한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적지 않지요. 이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더욱이 혈혈단신 혼자 떨어져나와 사는 해외에서는 작은 인연의 끈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진실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해외 취업은 물론 이후 해외에서 생활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그는 해외 취업을 마음먹었다면 실무 경험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처음부터 ‘홈런’을 치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진루’라도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 현장 실무체험은 조직 속에서 인간관계를 평가받고 실무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2001년 둘째 아이가 5개월이 됐을 때, 프랑스 대형 마트 Champion에서 카운터 직원으로라도 일하려고 했어요. 남편은 제가 찾은 일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반대했고, 결국 취업을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처럼 학력만 믿고 자신을 과대평가해 취업 기회를 아예 얻지 못했던 적이 많습니다. 때로는 취업의 눈높이를 한 단계 낮춰 실무를 접해보는 게 필요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아직 대학생이라면 정부에서 운영하는 해외 인턴십 제도를 활용할 것을 추천했다. 단기계약직 혹은 무급 인턴의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좋은 기회로 받아들여 해외 근무 경력을 쌓으라는 것. 그는 “긍정적인 사고로 용기를 잃지 말고 도전하라”는 말로 해외 취업 준비생들을 격려했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많은 경험을 쌓아보세요. 목표 없는 선택이나 실천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단기, 장기 인생 목표를 세워두고 그것을 실행해가기 위한 실행 점검표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확인하세요.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곳에서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가꿔나가기 바랍니다.”

파리=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현지 교육과정 이수,다양한 인턴십 경력 어필

루이비통모엣헤네시그룹 ‘크리스찬 디올’ 마케팅 인턴사원 김태희

 

벌써 시간은 오후 9시. 오후 7시 반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2시간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날 오전부터 학교 수업이 있어서 온몸은 녹초인 상태. 피곤하다 보니 프랑스어로 말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웃는 얼굴로 면접을 마쳤습니다. 그 시간까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면접을 진행한 면접관도 보통이 아니었죠.”

김태희(28) 씨는 그렇게 취업을 위한 심층면접을 통과했다.

“프랑스 기업에선 한국 대기업에서와 같은 집단 면접이 매우 드뭅니다. 개인 면접이기 때문에 면접관과의 ‘화학적 교감’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지원한 분야에 대한 열정을 짧은 시간 안에 잘 드러내야 해요.”

김씨는 4년 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왔다. 외국어고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기에 예전부터 프랑스에서 공부를 계속하며 일도 하고 싶었다. 그는 로레알 본사에서 브랜드 로레알 파리(L’Oreal Paris) 아시아존 스킨케어 마케팅 인턴으로 반년 넘게 일했다. 이후 제일기획 프랑스지점에서 삼성전자 광고전략 업무를 6개월간 맡는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최근에는 파리 고등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마케팅 마스터 과정을 수석으로 마쳤다. 지난 7월 말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그룹에서 크리스찬 디올 향수와 화장품 마케팅 인턴십을 마치고, 현재 정식 채용을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김씨는 해외 취업의 어려운 점으로 프랑스 사회의 ‘의외의 폐쇄성’을 꼽았다. 그는 “한국보다 프랑스에서 학벌을 더 따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학연주의는 ‘네트워킹’이라는 표현으로 포장돼 있다.

“프랑스에서는 학사학위 소지자와 석사학위 소지자의 지위가 천지 차이입니다. 한국에서 얻은 학부 학위만으로는 원하는 곳에 취업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요. 인턴을 하다가 파리 고등정치대학에 들어간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해외 취업을 원한다면 자신이 일하려는 나라에서 조금이나마 교육을 받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김씨는 “해외에서 일한다는 것이 멋지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며 섣부른 동경을 경계했다.
“해외 취업은 오히려 광야처럼 힘들고 끝없는 도전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한 번쯤은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요. 막연한 동경은 버리되 두려워하지만 말고 일단 도전해보세요.”

파리=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프랑스 취업비자 안내
프랑스 내 글로벌 기업들은 취업자의 비자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해준다. 보통 취업을 위한 인터뷰 단계에서부터 회사 소속 전문변호사가 비자 문제를 상담한다. 서류는 본인이 준비하지만 비자 신청에서부터 발급까지는 회사가 책임진다. 하지만 중소 규모의 현지 기업들은 외국인 고용절차가 복잡하다 보니 외국인 채용을 귀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취업자 스스로 외국인 직원 고용절차를 숙지할 필요가 있다.

체류증
체류증은 크게 1년 유효기간의 임시체류증과 10년 유효기간의 장기체류증으로 나뉜다. 각각 1년 혹은 10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임시체류증에는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외국인들에게 발급되는 학생체류증과 임금근로자에게 주어지는 근로자체류증이 있다. 학생체류증을 소지한 자는 법정연간노동시간의 60% 이내(964시간/년)에서 노동이 허가된다. 이를 초과하면 체류증이 철회된다. 근로자체류증은 프랑스 노동법에 규정된 조항에 합치하는 근로계약 권리자에게 주어진다. ‘능력과 재능 체류증(carte comp´etences et talents)’도 있다. 경제성장에 이바지하거나 국위선양에 기여하는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체류증으로 지식인, 과학자, 문화인, 스포츠인 등이 해당한다. 3년 유효의 체류증이며 갱신할 수 있다.
장기체류증은 프랑스 내에서 지속적으로 3년 이상 거주한 사실을 입증했을 때 행정당국이 신청인의 생계능력, 정착 동기를 고려해 결정한다. 장기체류증을 받으면 체류자격은 인정되나 참정권은 부여되지 않는다. 하지만 취업과 의료보험 혜택 등에서는 프랑스 국민과 동등한 자격을 가진다.

워킹홀리데이비자(관광취업비자)
지난해 10월20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필립 티에보 주한 프랑스대사가 ‘대한민국 정부와 프랑스공화국 정부 간의 취업관광사증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2009년부터 매년 2000명의 한국 청년들이 워킹홀리데이비자를 받고 프랑스를 방문할 수 있게 됐다. 프랑스 워킹홀리데이는 관광을 목적으로 최대 1년 프랑스에 체류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현지 취업을 허용한다는 것이 골자.
만 18세 이상 30세 이하로 왕복 항공권(또는 그러한 항공권을 구입하기에 충분한 자금)과 초기 체재비용(약 2500유로, 약 400만원)을 소지한 자에 한해 프로그램 신청이 가능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비자발급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 1년 기간의 복수비자로,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신청하면 된다. 이 비자를 받으면 별도의 취업허가 없이 입국 후 바로 취업할 수 있으며 수시 입출국이 가능하다. 한국의 경우 워킹홀리데이 참가자에 대한 체재기간 연장 및 체류자격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다. 프랑스도 원칙적으로 이를 허용하지 않으나 ‘능력과 재능 체류증’ 발급조건을 충족하는 자에 한해 체류기간 연장과 체류자격 변경을 허용한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한국어 교사, 치과의사, 치기공사 최근 유망직종 급부상
시드니=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호주는 분명 기회의 땅이다. 호주의 가장 큰 장점은 다문화 국가라는 점이다. 인종이나 직업에 대한 차별이 없고,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사회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당한 처우나 불이익을 당할 염려가 그만큼 적다는 얘기다.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급상승하기 전까지만 해도 호주에는 영국인이나 인도인이 많이 이주해왔다.

가까운 뉴질랜드에서도 많게는 매주 1000명 가까이 호주로 건너왔다. 2008년 한 해에만 4만8000여 명의 뉴질랜드인이 호주로 이주했다. 그 정도로 일자리가 풍부하다는 얘기다. 호주 정부는 수시로 인력이 필요한 부족직업군을 발표한다. 가장 대표적인 부족직업군은 정보통신(IT), 의사 및 간호사 등 의료, 용접, 호텔 및 관광, 미용 등이다.

이 가운데 의사나 간호사 같은 전문 분야는 언어 문제 때문에 한국인의 진출이 쉽지 않지만, 그 밖의 직업군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진출하고 있다. 호주의 언론인이자 시인인 윤필립 씨는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 영국 인도 뉴질랜드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방법. 호주 시드니의 ‘워킹홀리데이 서포팅센터’에 따르면, 6월 현재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들어온 한국인은 3만5000여 명에 이른다. 이곳의 김석민 센터장은 “문화체험과 여행이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의 주목적이지만, 호주 전역에 퍼져 있는 커뮤니티센터나 무료 영어교육센터 등을 활용하면 영어를 배우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다녀간 한국인 중 취업이나 이민을 위해 다시 호주를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김 센터장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다녀간 한국인 가운데 다시 호주로 돌아온 경우가 20%에 이르고, 그중 절반 정도가 호주 영주권을 취득한다. 이런 경로를 통해 지난해에는 4000명이 영주권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특히 현지인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들에게는 호주 주류사회로의 진출 기회 또한 얼마든지 열려 있다.

다양한 분야가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한국어 교사가 가장 전망 있는 직종으로 꼽힌다. 호주 정부를 이끄는 케빈 러드 총리가 지난해 각 학교의 주요 아시아 언어과목으로 일본어, 중국어, 인도네시아어와 함께 한국어를 선정하면서 앞으로 4년간 6240만 호주달러(약 640억원)의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계획은 이미 실행에 들어갔다.

어느 학교든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이 일정 수가 되면 교장이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정할 수 있는데, 이때 당장 필요한 게 한국어 교사다.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의 김숙희 교육자문관은 “호주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국 학생만 해도 3000여 명이나 되는데, 이들이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지를 보일 경우 당장 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정식 교사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호주에 한국어 교육 바람이 일면 한국 학생뿐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호주 학생들까지도 가르쳐야 하므로 한국어 교사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호주 정부가 경기부양책의 하나로 노인에게 치과치료 비용을 지급하면서 치과의사와 치기공사도 새로운 유망 직종으로 급부상했다. 호주 정부의 정책이 취업과 직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치과 인력 태부족…‘월드 시티즌’ 마인드로 도전하라”

시드니 이스트우드 ‘예인치과’ 원장 이흥기

 

호주 시드니 외곽의 이스트우드 지역은 한국 교포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시드니 시내에서 급행전철로 30분 남짓 걸리는 이곳은 무척 한적하고 조용하다. 이흥기(40) 원장이 운영하는 ‘예인치과’도 이곳에 있다.

지난해 호주치과협회 뉴사우스웨일스지부 이사로 선출된 이 원장은 요즘 이래저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 4개국 치과협회의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국제 업무지원에, 호주 이민을 희망하는 한국과 일본의 치과의사가 늘면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정부가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저소득층 노인에게 치과치료 비용을 지급하면서 병원을 찾는 환자도 부쩍 늘었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 새 치과를 개원하는 일까지 신경 쓰다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래도 싫은 기색은 아니다.

이 원장은 1986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치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졌고, 다음해 경희대 의대로 진로를 바꿨지만 또다시 낙방의 쓴맛을 봤다. 3수를 준비하던 88년 가을, 부모가 신청한 호주 투자이민이 받아들여지면서 결국 호주로 이민을 왔다. 그 나이에 고등학교 2학년 과정에 들어갔다. 언어장벽을 허물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같은 반 현지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어렵사리 친해진 남학생 한 명하고만 자주 어울리다가 동성연애자로 오해받기도 했죠.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가능하면 호주 학생들과 어울리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힘들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원장은 1991년 시드니대학 치대에 입학했다. 호주의 치대는 5년제다. 정규과정을 거쳐 95년 말 졸업한 이 원장은 96년 9월 치과병원을 개원했다. 지금의 병원 자리에 둥지를 튼 것은 99년 12월24일로, 올해로 만 10년째다. 한국인이 모여들기 시작한 1995~96년만 해도 이스트우드 지역의 한인 점포는 10여 개에 그쳤지만, 지금은 100여 개로 불어났다.

거주민의 60~70%가 한국인이며, 나머지도 주로 일본 중국 인도인이다. 호주 현지인들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이 지역의 치과병원은 현재 20개 정도다. 이 원장은 호주에서 치과의사는 장기적으로 절대부족군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호주에는 최근 생긴 3곳을 포함해도 치대가 8곳밖에 없다. 1년에 배출되는 졸업생이 400명 안팎이고, 해외에서 들어오는 외국 치과의사가 100~150명(90%가 인도인)이다.

이들을 다 합쳐도 1년에 500~550명의 치과의사가 늘어나는 셈인데, 길게 보면 이 정도 증가로는 수요를 충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현재 호주에는 시드니 같은 일부 대도시의 중심부에만 치과병원이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어요. 시 외곽으로 조금만 나가면 치과병원이 턱없이 부족하죠. 이민 등 해외에서 유입될 인구를 예상하면 아직도 많은 수의 치과의사가 부족한 실정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이 원장은 한국 치과의사들이 서둘러 호주로 진출하길 희망했다. “인도나 필리핀 치과의사도 많이 들어오는데, 그들보다 실력이 뛰어난 한국 치과의사들이 못 들어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국내 대학들도 해외 진출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글로벌 시대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글로벌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초등학교 5학년인 제 딸이 다니는 학교가 개교 100년이 넘은 곳인데, 그 학교의 모토가 ‘월드 시티즌(World Citizen)’이에요. 이제 우리도 월드 시티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해요. 마찬가지로 호주로 이민 온다는 것은 호주 사회로 진출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해야 성공할 수 있어요. 호주의 한국 교민사회만 염두에 두고 호주로 오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시드니=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목표 세우고 노력하면 그 이상으로 보상받는 사회”

Allen Jack · Cottiers Architects’ 건축디자이너 남현규

 

호주 린필드 한글학교는 정부 예산을 일부 지원받긴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순수 민간교육기관이다. 현지에 파견된 기업 상사원이나 한인 자녀에게 우리글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다. 호주의 유명 건축설계회사 ‘Allen Jack · Cottiers Architects’의 건축디자이너 남현규(31) 씨는 매주 토요일이면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바쁜 직장생활 탓에 봉사활동을 하기 힘들었던 차에 이곳을 알게 돼 지난해 7월부터 시작했다. 그의 임무는 보조교사, 가끔 교사대행도 한다.
“가나다라도 제대로 모르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완전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정말 신기해요. 아이들이 한 주, 한 주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그것이 주말마다 저를 이곳으로 이끌죠.”

일요일에는 건강을 위해 야구를 한다. 그는 한인야구단에서 2루수를 맡고 있다. 주말에는 이처럼 자원봉사와 운동을 즐기고 다시 한 주가 시작되면 회사 업무로 복귀한다. 남씨는 회사에서 인테리어, 조경, 도시계획 등 건축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다. 지금은 중국의 다목적 주거단지를 설계하고 있다. 건축디자이너는 남씨의 오랜 꿈이었다.

“중학생 때 캐나다 토론토의 스카이돔 야구장 사진을 봤는데 정말 멋있었어요. ‘저런 건물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외국의 고층건물을 보면 어떤 디자인, 어떤 과정으로 지어졌는지도 궁금했고요. 언젠가는 제 이름으로 된 건물을 꼭 짓고 싶었어요.”

남씨가 호주에 온 것은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1997년 4월. 함께 온 부모는 외환위기가 터지자 곧장 한국으로 돌아갔다. 부모는 함께 돌아가자고 했지만 호주에서 대학 진학을 하고 싶어 혼자 남았다. 대학 입학 후 잠시 갈등도 겪었다. 이국땅에서 혼자 학교를 다니는 일이 생각보다 외롭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 후회도 됐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도와준 것이 어려운 이웃에게 예쁜 집을 지어주는 TV 프로그램 ‘러브하우스’였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학창시절 그는 한국과 호주의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여러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중간평가’도 계속했다.

2002년 제15회 대한민국 인테리어 대전에서 입선한 것이 유일한 수상경력이지만, 그런 경험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호주의 건축설계회사에 들어가려면 학교 성적이나 수상실적보다 실무능력과 경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남씨는 2007년 자신이 희망하던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직장생활을 해보지 않아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호주는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면 그 목표만큼, 때론 그 이상의 결과를 반드시 얻었거든요. 저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고, 특히 심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어 정말 행복해요.”

시드니=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안정된 직장은 기본 ‘친한파’키우는 보람도 커”

뉴사우스웨일스 마스덴 공립학교 한국어 교사 이주윤

 

“교장이 한국어에 무척 관심이 많아요. 3~4년 전까지는 학생들이 유럽권 언어만 제2외국어로 선택할 수 있었는데 2~3년 전부터 일본어, 중국어 등 아시아권 언어로 바뀌더니 지난해부터 7학년에 일본어 대신 한국어 강의가 신설됐어요. 학생들이 중국어보다 한국어에 관심이 더 많고 배우는 것도 재미있어 해요.”

호주에서 명문교로 꼽히는 마스덴(Marsden) 공립학교의 한국어 교사 이주윤(35) 씨는 교사라는 직업의 안정성은 두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호주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현재 이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은 초등학교(primary school) 7학년 4학급 중 2학급. 학급당 30명씩이니 60명 정도가 배우고 있다. 나머지 2학급은 중국어반이다.

일반적으로 호주의 학교에서는 7~8학년(호주의 고등학교인 ‘High school’ 과정은 8학년부터) 2년간 제2외국어를 필수로 배워야 한다. 9~10학년으로 올라가면 선택과목으로 바뀐다. 이씨는 “7학년 학생들이 9학년에 올라갈 때 어떤 과목을 선택할지 두고 봐야겠지만, 한국어를 선택할 학생이 많을 것 같아 고학년에도 한국어 강의가 신설될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했다.

사실 10년 전에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적지 않았다. 호주 사회에 한국인이 크게 증가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자연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도 늘었던 것. 하지만 제도라는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호주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한국 학생들이 증가하면서 대학입시에서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호주 학생들로서는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했다간 손해를 보게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부족했을뿐더러 마땅한 교재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다행히 호주 정부가 지난해 한국어 등 4개의 아시아권 언어에 대한 지원에 나서는 한편, 호주 학생이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할 경우 한국 학생과는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기로 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한국어 교사와 교재. 호주에서 고교 과정의 한국어 교사가 되려면 일정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 먼저 대학에서 한국어를 포함해 최소 2과목 이상을 가르칠 수 있는 교직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호주의 고등학교에서는 영어 수학 과학 교사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의 교사들은 2과목 이상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

호주에서는 한국의 교사자격증도 인정된다. 단, 보완교육을 받고 호주 정부의 국제공인영어시험(IELTS)에서 6.5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현재 호주에는 이 자격 조건을 갖춘 한국어 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뉴사우스웨일스 김숙희 교육자문관은 “호주에서 정식 한국어 교사 임용조건을 갖춘 사람은 15명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 수업은 대부분 임시교사가 맡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이주윤 씨는 그 ‘15명’ 가운데 한 명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2월 부모를 따라 호주로 건너온 이씨는 대학에서 일본어와 중국어를 전공하고, 일본과 중국에 연수도 다녀왔다. 한국어와 영어까지 합치면 4개 국어에 능통한 것. 이씨가 보기에도 한국어 교재는 문제가 심각하다.

“교재라고는 재외교포용밖에 없어요. 그것도 오래전에 만들어진 구닥다리죠. 외국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재는 전무하다시피 해요. 하는 수 없이 교사들이 교재를 직접 만들어서 쓰고 있어요. 어떨 때는 힘이 부쳐 좌절감에 빠지기도 하죠.”

이씨는 “언어교육은 곧 문화교육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은 ‘친한파’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어의 입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한국에 대한 호주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그러면서 한국어 교사도 더 많이 필요하게 돼 호주 취업의 길도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드니=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호주 취업비자 안내
호주의 가장 대표적인 취업비자는 ‘457비자(subclass 457 visa)’. 고용 의사를 밝힌 호주 현지 회사가 고용 계약기간에 스폰서가 되는 것으로, 일종의 ‘임시 거주비자’라고 할 수 있다. 계약기간에는 다른 회사에서 일할 수 없다. 유효기간은 1~4년. 호주 이민성에서는 회사의 신뢰도, 고용주가 해당 외국인을 고용해야 하는 사유, 비자 취득자의 자격 요건 등을 따져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비자기간이 끝나면 영주권으로 갱신할 수 있다.
그동안 457비자는 합법을 가장한 ‘노예계약’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악덕 고용주가 영주권을 미끼로 급여를 당초 계약보다 적게 주거나 과도하게 일을 시키는 등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4월1일 호주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457비자 프로그램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최저 연봉 수준을 상향 조정하고 기술심사제를 도입하는가 하면, 근로자 고용 및 고용차별에 대한 강력한 조사 등 고용주의 조건을 대폭 강화했다. 이와 함께 비자 신청자의 영어능력 기준인 국제공인영어시험(IELTS) 점수를 4.5점에서 5점으로 높였다.
기술도 있고 영어 실력도 갖췄다면 ‘175비자(subclass 175 visa·독립기술이민비자)’를 받으면 된다. 이 비자를 받으려면 신청자가 갖춘 기술이 호주 정부가 발표하는 ‘기술직업군목록’(SOC)에 포함되고, IELTS 점수가 기능직은 5점, 전문직은 6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나이는 만 45세 미만으로 제한된다.
자산이 25만 호주달러(약 2억5700만원) 이상일 경우에는 ‘163비자(subclass 163 visa)’와 ‘164비자(subclass 164 visa)’를 이용하면 영주권을 쉽게 취득할 수 있다. 163비자는 투자(사업) 이민비자이고, 164비자는 정부 고위공무원이나 중소기업 임원급 이상의 간부들에게 허용되는 비자로 매우 제한적이다.

 

요리사·원예사 자격증 각광 물욕 버리면 취업문 넓어
오클랜드=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많은 돈을 벌기보다는 시간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살기 좋은 곳입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주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김은성 코리아비즈니스센터장의 말이다. 김 센터장에 따르면 뉴질랜드 기업의 대졸자 초임은 3500뉴질랜드달러. 우리 돈 2800만원 정도다. 뉴질랜드에서 좋은 직업을 얻으려면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 정도 실력이라면 차라리 미국이나 호주 등 선진국으로 진출하는 게 직종에서든 연봉에서든 여러 가지로 낫다고 한다.

뉴질랜드의 주축산업은 낙농과 조림(造林) 등 1차산업이다. 제조업 등 2차산업은 소규모 축산물 가공산업 정도 외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나마 있는 제조업체들도 동남아시아 저개발국가로 옮겨가고 있다. 관광, 서비스 등 3차산업도 그리 발달하지 못했다. 실업률도 높은 편.

김 센터장은 “매년 4~4.5%의 실업률을 기록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6%, 일각에서는 7~8%, 심하게는 10%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의 경쟁력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EIU)가 내놓은 올해 뉴질랜드 실업률 전망도 7%대다. 그러다 보니 매년 뉴질랜드에서 가까운 호주나 홍콩, 싱가포르 등지로 빠져나가는 젊은 층이 적지 않고, 올 들어서는 더욱 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인이 뉴질랜드로 진출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취업시장도 작고 정부에서 발표하는 ‘부족직업군’도 수시로 바뀐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 달리하면 뉴질랜드만큼 매력적인 나라도 없다. EIU가 영국 경제평화연구소와 지난 6월2일 발표한 국가별 ‘세계평화지수(GPI)’에서 뉴질랜드는 조사대상 144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살기 편하고 평화롭다는 뜻이다. 뉴질랜드는 남태평양에 자리한 섬나라. 인구는 약 400만명으로 유럽계 정착민과 마오리족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2만9000달러 정도. 기대수명은 79.9세로 80대에 육박한다. 현재 뉴질랜드 거주 한인은 3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2만명이 오클랜드 지역에 산다. 한인이 진출한 업종은 주로 청소업이나 음식업 등 자영업 분야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부족직업군인 요리사와 원예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건너온 한인이 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이들 부족직업군이 뉴질랜드를 이끄는 주류사회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 뉴질랜드는 한국 사회에 비하면 직업에 대한 차별이 적지만 그래도 주류사회는 엄연히 존재한다. 변호사와 회계사 등 전문직종으로 진출한 한인도 적지 않지만, 이들은 주로 한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한다. 바로 언어장벽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어라는 장벽을 극복한다면 어떨까? 재(在)뉴질랜드 한인회 정애경 이사는 “외형상 다른 나라보다 기회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물질적 욕심만 버린다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차별이 적고 문호가 넓은 곳이 뉴질랜드”라고 말했다.

   

“매력적인 다문화사회 기회는 항상 열려 있어”

오클랜드 뉴마켓경찰서 경찰관 이진범

 

“한국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뉴질랜드는 그런 분위기를 거의 못 느껴요. 직업의 귀천도 없고, 차별도 없어요. 언어소통에만 문제 없으면 누구나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될 수 있을 만큼 관대한 사회입니다. 대신 다문화를 포용하지 못하면 살아가기 힘들죠. 직장에서든 사회에서든 차별 발언을 하면 곧바로 징계를 당합니다.”

오클랜드 뉴마켓경찰서 수사팀에서 근무하는 이진범(35) 씨는 인종과 빈부, 직업, 지위 등 사회적 귀천을 따지지 않는 다문화사회에 산다는 데 더없이 만족한다. 그래서 뉴질랜드에 관심 있는 친구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취업이나 이민을 적극 권한다.

이씨는 뉴질랜드의 한인 3호 경찰관. 경기고,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한국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대학을 졸업하던 2001년 11월 이민 겸 취업을 위해 뉴질랜드로 향한 것은 앞서 뉴질랜드에 정착한 부모, 동생 등 가족 때문이다.

가족초대비자로 입국한 이씨가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직업이 필요했다. 첫 6개월간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한 그는 청소용역이나 세차 등 잡일을 하면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운이 좋았던지 1년 만에 영주권이 나왔다.

그 후로도 적성에 맞는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해 많이 방황했다. 1년 정도 미니 식당(테이크아웃 식당)을 운영하다 적자가 누적되면서 양념통닭 배달서비스도 해봤고, 3~4개월간 어학원에서 일하다가 다시 유학원으로 옮겨 1년 반을 보내기도 했다. 한인신문사에서 6개월간 기사도 쓰고 광고영업도 해봤다. 불규칙적인 업무에 월급도 적어 실망스러웠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사이 영어실력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이씨는 이때부터 뉴질랜드의 주류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고민했다. 그러던 2005년 어느 날 우연히 경찰 모집공고를 보았다. 고교 졸업 이상의 학력에 언어소통이 가능하고, 신체가 건강하면 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영어와 수학, 추리 등 각종 시험과 체력 테스트 등 통과 관문이 적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영어실력을 집중 평가하는 심층 인터뷰를 마치고야 실습단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루 10시간씩 나흘 밤을 실습하면서 이씨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영어 때문이었다.

“경찰차를 타고 2인1조로 현장을 돌았는데, 라디오를 틀어놓고 경찰들끼리 대화하면서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까지 동시에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말의 빠르기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비슷한 시기에 건너온 한국 사람 가운데 그래도 영어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다행히 평가가 좋게 나와 이씨는 실전 체력테스트 단계에 들어갔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 중엔 100kg이 넘는 거구가 많아 웬만한 체력으로는 제압하기 힘들기에 과연 현장 배치가 가능한지를 테스트하는 최종 단계였다.

이 모든 단계를 통과하려면 보통 6~12개월이 걸리는데, 이씨는 단 2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통과하고 그해 10월25일 경찰대학에 입학했다. 교육기간은 5개월. 2006년 3월 졸업하고 2년의 수습기간을 거쳐 2008년 3월 정식 경찰관으로서 부임하면서 정부와 영구계약을 맺었다.

평화로운 나라 뉴질랜드에서도 경찰은 위험한 직종이다. 현장배치 첫 주에 범인을 검거하면서 얻어맞고,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목격하고, 위험천만한 추격전도 벌였다. 그래도 보람 있는 직업이라는 게 이씨의 말.

근무 여건은 한국 경찰과 천지차이다. 14일 단위로 7일 근무 4일 휴식, 7일 근무 3일 휴식을 번갈아가며 일하고 초임연봉은 5만8000뉴질랜드달러다. 우리 돈 4800만원 정도로 웬만한 대기업 연봉보다 많다. 올해 이씨의 연봉은 6만 달러로 올랐다.

복지 수준도 최상급이다. 일반 휴가 6주에 병가 2주, 기타 휴가 1주까지 합하면 1년에 2개월 정도 휴가를 얻을 수 있다. 뉴질랜드 경찰복무 규칙상 휴가기간에는 물론 근무 중간의 휴식기간에도 업무상 전화는 아무리 긴급한 사항이라도 못하게 돼 있다. 그래서 이씨는 휴가기간에 가끔 한국을 찾는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이젠 한국에서 못 살 것 같다”며 “뉴질랜드 주류사회 진입이 쉽지는 않지만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오클랜드=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한국에선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네요”

뉴질랜드 농림부 검역부 검역관 김태헌

 

청정 생태계 국가인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제일 철저하고 까다로운 검역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국제공인 규격에 인정된 검역시스템을 갖춘 유일한 나라다. 공항이나 항만을 통해 국외에서 입국하는 모든 짐은 하나도 빠짐없이 검색대를 거친다.

다른 국가의 수장이 방문할 때도 예외가 없다. 다만 외교적 예우 차원에서 뉴질랜드 검역관이 직접 해당 국가를 방문해 사전 방역과 검역을 실시한다.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이 뉴질랜드를 공식 방문했을 때도 뉴질랜드 검역관이 미리 한국에 와서 대통령 특별기의 방역은 물론 모든 수화물에 대한 검역을 마쳤다. 그때 한국을 찾은 검역관이 바로 김태헌(알렉스 김·31) 씨다.

김씨는 뉴질랜드의 농림부인 MAF(Ministry of Agriculture and Forestry)에서 검역 및 통관 업무를 담당하는 Biosecurity New Zealand(검역부) Clearance Services(통관서비스)팀 소속 공무원이다. 그의 주업무는 오클랜드 국제공항 내 보세구역(Biosecurity Control Area)에서의 입국카드 심사와 수화물 검역과 엑스레이 검사, 항공기 방역심사 및 내부검역 등이다. 4일 근무 후 4일 휴식을 취하고, 휴가는 매년 2개월 정도.

“저는 참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제껏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제가 이루고자 맘먹은 것은 다 이뤘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한국에서라면 이런 기회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뉴질랜드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1월. 1997년 중앙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1학년을 마친 뒤 군에 입대해 2000년 초 제대했다. 복학하기 전 좀더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으면서 영어를 익히기 위해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결국 어학연수와 여행을 목적으로 적당한 나라를 찾다가 뉴질랜드를 선택하게 됐다.

김씨가 뉴질랜드를 선택한 것은 지구촌 곳곳에서 만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에게서 얻은 정보가 바탕이 됐다. ‘안전하고 깨끗한 나라’ ‘인종차별이 적고 마음씨 좋은 백인과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사는 나라’ ‘지구상의 마지막 지상낙원’ 같은 이야기가 그를 매료시켰다. 2002년, 뉴질랜드에서의 1년은 김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그는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현지인과 함께 집을 빌려 같이 생활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현지 문화를 익혔다. 얼마 후 미국과 캐나다 친구들이 합류하면서 그의 영어실력은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나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발견한 것은 더없는 행운이었다. 다음 해인 2003년 2월 김씨는 뉴질랜드 매시대(Massey University) 비즈니스학과에 입학하고 3월에 곧바로 결혼했다. 한순간에 뉴질랜드에 정착을 하게 된 것이다. 김씨는 한국에서 다닌 대학 기간을 인정받고 노력한 덕분에 매시대를 2005년 2월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었다.

그의 첫 직장은 오클랜드 ‘노스쇼어 타카푸나 골프장’. 그곳에서 사무 및 운영관리자로 일했다. 뉴질랜드의 공무원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내의 권유 때문이었다.
“골프장에서 일하면서 뉴질랜드 현지 사회에 좀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그러려면 정부기관 같은 곳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아내가 MAF를 권유해서 결국 지원했죠.”

뉴질랜드에서는 영주권만 있어도 공무원이 될 수 있다. 시민권이 필요한 곳은 내무부 등 뉴질랜드 국민의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극히 일부 부서뿐이다. 2006년 11월 MAF에 임용됐을 때 그가 처음 지원한 분야는 사무 및 검역 보조관리직이었다. 그러다 4개월 후 시험을 통해 검역관으로 승진했다. 뉴질랜드에서 공무원 승진은 내부 지원자는 물론 외부 지원자가 함께 시험을 보고 통과해야 가능하다.

다만 내부 지원자에게는 약간의 혜택이 있다. 김씨도 이런 혜택 덕분에 검역관이 될 수 있었다. 검역관이 되려면 관련 학과의 학위를 소지해야 하지만, 김씨에게는 교육부 인증코스 1년을 추가로 마치는 조건으로 검역관으로 승진시켜준 것이다. 김씨는 올해로 검역관 3년차다. 근무시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의 올해 연봉은 최대 7만 뉴질랜드달러로 우리 돈 5800만원에 해당한다. 그는 “처음 뉴질랜드에 왔을 때 목표는 영어 잘하기였는데, 그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다”면서 “이제 아이들이 자라서 같이 골프도 치고 낚시도 가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오클랜드=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뉴질랜드 변호사 자격증은 호주, 영국에서도 통해”

법무법인 ‘필립 리’ 변호사 이관옥·양광모

 

뉴질랜드의 법률시장은 과포화 상태다. 등록된 변호사만 1만명이 넘는다. 뉴질랜드 전체 인구가 400만명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니 변호사가 인구 400명당 1명꼴로 있는 셈이다. 현재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거주하는 2만여 명의 한인 교포를 대상으로 활동 중인 한인 변호사는 50명 정도. 한인 교포 400명당 한인 변호사 1명꼴로 뉴질랜드 전체 비율과 비슷하다. 뉴질랜드 법률시장에서의 서비스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이야기다.

법무법인 필립 리의 이관옥(37·사진 오른쪽), 양광모(38) 변호사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한인 변호사들이다. 법인 이름 필립 리는 이 변호사의 영문 이름으로, 지난 1월 사무실 문을 열었고 3월 양 변호사가 합류했다. 두 사람은 오클랜드대 로스쿨을 다니면서 알게 된 사이. 한국에서 대학도 다르고 고향도 다른 두 사람은 이전까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전북 출신인 이 변호사는 전북대 자연과학대 분자생물학과 92학번. 한국 대학가에 어학연수 붐이 일던 1996년 1년간 뉴질랜드에서 보낸 시간은 그에게 많은 아쉬움을 갖게 했다. 결국 그 아쉬움은 귀국 1년 후인 98년 다시 뉴질랜드로 향하게 했다. 뉴질랜드에서 그의 첫 직장은 오클랜드의 한 이민회사였다. 주로 한인들의 이민 수속을 대행하거나 상담해주는 일을 맡았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주권도 취득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계가 느껴졌다.

“법률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고객에게 조언을 해주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마침 로스쿨에 다니던 회사 사장으로부터 정보도 좀 얻고, 고객은 물론 저를 위해서도 로스쿨에 다니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결심했죠.” 2000년 로스쿨에 입학한 이 변호사는 2004년 12월 졸업해 13주의 교육연수를 받고 2006년 1월 현지 로펌에 들어갔다.

강원도 춘천 소재 한림대 법대 출신인 양 변호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 제대 후인 1997년 영어 어학연수를 위해 뉴질랜드에 왔다가 곧바로 자리를 튼 케이스. 오클랜드대에서 인터넷법을 전공으로 2년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다시 2년간 로스쿨 과목을 이수한 뒤 2003년 초 변호사시험에 통과했다. 그해 9월 연수를 마치고 다음해 4월부터 로펌에서 일했다. 양 변호사는 “솔직히 제대 후 취업 준비를 하다가 안 돼서 어학연수를 결심했는데, 그게 계기가 돼 변호사까지 됐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의 로스쿨 과정도 결코 쉽지 않다.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나오기도 어렵다. 과포화된 뉴질랜드의 법률시장을 보면 그다지 매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로스쿨과는 다른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뉴질랜드의 로스쿨은 4년제다. 수업료는 유학생의 경우 1년에 1만5000~2만 뉴질랜드달러(약 1250만~1670만원)로 꽤 비싸지만 영주권을 취득하면 6000~7000달러(500만~600만원) 선으로 내려간다.

뉴질랜드의 변호사 자격증은 호주나 영국에서도 인정받는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뉴질랜드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호주 변호사 자격증은 곧바로 받을 수 있고, 영국에서도 기본 1개 과목(법 원리)만 수강하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도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는다. 영어는 물론 한국어에 능통하면서 호주와 뉴질랜드는 물론 미국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한다면 한국이 법률시장 개방을 앞둔 상황에서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는 셈이다.

이 변호사도 “앞으로 국가 간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대비해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5년 후 한국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오클랜드=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뉴질랜드 취업비자 안내
뉴질랜드에서 일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에서 취업비자(Work Visa)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 비자는 뉴질랜드 고용주로부터 고용을 약속한 편지와 고용계약서, 고용주가 뉴질랜드 이민국으로부터 받은 외국인 고용승인서 등을 함께 제출해야 발급된다.
하지만 사전에 취업비자를 받지 않고도 뉴질랜드에서 취업 가능한 방법이 있다. 한국과 뉴질랜드는 비자 면제협정을 맺어 비자 없이 방문이 가능한데, 일단 무비자로 들어간 뒤 현지에서 취업허가(Work Permit)를 받으면 합법적으로 신분을 바꿀 수 있다.
영주권 취득이 상대적으로 쉬운 비자로는 ‘탤런트 비자(Talent Visa)’와 ‘장기 인력부족 직종 취업비자’가 있다. 탤런트 비자는 뉴질랜드 정부가 2002년 4월29일부터 세계 각지의 재능 있는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도입했다. 조건은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인가받은 고용주가 연간 4만5000뉴질랜드달러(약 3700만원)의 급여를 제공하면서 2년간 고용하는 것. 이 비자는 뉴질랜드 이민성이 요구하는 수준 이상의 재능과 평판 또는 기록을 보유한 사람에게만 한정되므로 발급받기 쉽지 않다.
장기 인력부족 직종 취업비자는 해당 직종이 정부가 발표한 장기 부족직업군에 포함돼야 받을 수 있다. 관련 직종의 경력과 학력도 필요하다. 고용주는 최소 2년 이상, 주당 30시간 이상 근무를 조건으로 고용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단 55세 이상은 받을 수 없다.
뉴질랜드에서 사업을 하려면 ‘장기 사업비자’를 받으면 된다. 이 비자를 받으려면 사업계획서와 사업자금 규모, 배우자 및 자녀를 부양할 수 있는 자산증명서 등을 첨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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