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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해진 한국인 가치관

醉月 2009. 9. 8. 08:52

각박해진 한국인 가치관 ‘가족’ 시들고 ‘돈’이 핀다    

 

한국인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길까. 또, 자신의 정치 성향은 어느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며, 사회에 대한 신뢰도와 국가에 대한 자긍심은 얼마나 지니고 있을까.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가 매년 실시하는 한국종합사회조사(KGSS)는 이러한 한국인의 의식 변화 추이를 살피는 데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9월 중 한국사회과학자료원을 통해 공개될 2008년도 조사 결과를 사전에 입수해 한국인의 사회·정치적 태도가 최근 몇 년간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보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건강’인 것으로 나타났다. 40%에 가까운 한국인이 ‘건강’을 첫 번째로 꼽았다. 지난 3년간 조사 결과에 큰 변화가 없다. 다만, 2007년에 비해 2008년 조사(7월부터 11월까지 설문조사)에서 1% 포인트 더 높아졌다. ‘건강’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웰빙’이 인생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각종 건강 보조 식품을 비롯해 봇물처럼 쏟아지는 관련 서적은 이러한 추세를 잘 보여준다.

반면, 건강을 위협하는 사회적 요소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환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4년간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 자료를 분석한 결과 ‘스트레스 질환’ 환자 수는 2005년 6만6천명에서 2008년 10만1천명으로 연평균 15.3%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남성보다 1.7배가량 많았고, 40대와 50대가 전체 환자의 39%를 차지했다. 특히 30대와 40대 남성의 경우 직장 근로자가 비근로자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았다.

전통적 가치 중 하나인 ‘가족’이 ‘건강’에 이어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가족’의 경우 2007년 31.2%에서 2008년 28.9%로 2.3% 포인트 낮아졌다. 가족 응집력이 예전에 비해 약화하고 있다는 징후는 다른 조사 결과에서도 찾을 수 있다. 통계청이 매년 발간하는 ‘한국의 사회지표’를 살펴보면, 일반 가구 수는 매년 증가하는 반면, 평균 가구원 수는 감소하고 있다.  2008년 혼인 통계에서도 전체 혼인 건수가 32만7천7백건으로 전년보다 1만5천8백건이 감소했다. 같은 해 이혼 통계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이혼 건수는 줄었지만, 20년 이상 동거한 부부의 경우 1천100건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이 가장 중요…위기에 따른 불안감이 ‘돈’ 집착 불러

주요 가치관에서 ‘돈’의 비중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06년 13.8%, 2007년 14.5%, 2008년 16.2%로 나타나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인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물질주의자의 비율이 56.9%로 급증한 뒤 2005년 36.7%까지 꾸준히 감소하다가 2006년부터 다시 대폭 증가했다. 2007년에는 50.4%로 다시 절반 이상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위기를 극복하고 대응하는 데 취약하다 보니 사람들이 물질 자원을 축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지나치게 돈에 집착하도록 만들고 있다. 학생들이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물질주의적 가치에만 치우치면 이상주의적 담론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친구’(4.1%)가 ‘종교’(2.8%)나 ‘일’(2.6%)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경향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친구’는 전년에 비해 1.7% 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어려운 때일수록 연고주의 성향이 강해지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일’은 2006년 4.6%와 비교해 2% 포인트나 낮아졌다. ‘종교’도 2007년 3.7%에서 0.9% 포인트 하락했다. 이밖에 주요 가치는 ‘여가’(2%), ‘이웃’(1.6%), ‘권력’(1.2%), ‘학력’(0.7%) 순으로 나타났다.

정치 성향에서는 ‘보수’가 ‘진보’보다 많았다. 보수와 진보의 연속선상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 질문에 ‘보수’라는 응답이 36.6%로 가장 많았다. ‘중도’가 35.6%였고, ‘진보’는 27.8%에 그쳤다. ‘보수’와 ‘진보’ 간 격차가 8.8% 포인트에 이른다. 2003년 첫 조사가 진행된 이후 줄곧 ‘보수’가 ‘진보’를 앞섰지만, 그 격차가 2003년 10.1% 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 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과 관련해 대북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보수·중도 늘고 진보 줄어…서거 정국 후 재조정되는 분위기

이명박 정부 출범 전 해인 2007년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1년 사이 변화의 폭이 상당하다. 당시에도 ‘보수’(32.9%)가 ‘진보’(30%)보다 많게 나타났지만, 격차는 2.9% 포인트에 불과했다. 지난 2004년에도 ‘보수’(36.7%)와 ‘진보’(33.8%)의 차이는 2.9% 포인트였다. ‘보수’와 ‘진보’가 모두 감소하고 ‘중도’가 증가하던 전반적인 추세에도 잠시 제동이 걸렸다. 2003년에 27.5%였던 ‘중도’는 이후 꾸준히 늘어나 2007년에는 37.2%로 ‘진보’는 물론 ‘보수’에도 앞섰다.

정치 성향 조사는 올해 들어 다시 조정되는 분위기이다. 현 보수 정권에 대한 실망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등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보수’가 하락하고 ‘진보’가 상승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7월28일 전국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중도’ 43.4%, ‘진보’ 31.7%, ‘보수’ 24.9% 순으로 나타났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선을 거치고 지난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보수·중도·진보’ 비율이 ‘4 대 3 대 3’ 정도로 형성되었다면, 올해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3 대 4 대 3’ 정도로 재조정되었다. 정치 성향에서 ‘중도’가 상당히 많은데, 이슈에 따라 유동성이 굉장히 크다. DJ 서거 이후 범민주 개혁 진영의 재결집이 가시화하면 ‘진보’ 비중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청와대·국회 등 정부 기관 신뢰도 5% 미만에서 ‘맴맴’

   

사회에 대한 신뢰도(10점 척도)는 5.26점으로 조사되었다. 2004년 4.6점에서 이듬해 5.22점으로 대폭 높아진 이후 그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2005년부터 과거에 비해 높은 수준의 신뢰도를 이어가는 데는 참여민주주의가 확대되면서 좀 더 보편적인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전반적으로 낮게 조사되었다. 정부 기관의 신뢰 수준(매우 신뢰)에서 군대와 대법원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지만 청와대, 지방자치 정부, 중앙 정부 부처, 국회는 5% 미만의 아주 낮은 신뢰를 받았다. 비정부 기관의 경우 정부 기관보다는 대체로 높은 편이지만,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도와 비교하면 마찬가지로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주목되는 부분은 ‘진보’와 ‘보수’의 의견이 확연하게 엇갈린다는 점이다. 신뢰도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정부 기관은 정권 교체 시기에 맞추어 평가가 달라졌다. ‘보수’의 경우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군대와 국회가 선두를 다투었다. 청와대는 해마다 정부 기관 중 꼴찌였다. 하지만 2008년에는 청와대가 단숨에 신뢰도 1위에 올랐고, 국회가 꼴찌를 차지한 것이다. ‘진보’의 경우 반대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줄곧 청와대가 선두였다. 이명박 정권 출범 후인 2008년에는 대법원이 1위에 올랐고, 청와대는 꼴찌로 내려앉았다. 비정부 기관에 대해서는 양측의 평가가 명확하게 엇갈린다. ‘보수’에서는 신문사와 대기업이 줄곧 1, 2위를 다투었고, 시민운동단체와 노동조합이 꼴찌를 번갈아가며 맡았다. 반면, ‘진보’에서는 노동조합과 시민운동단체가 선두 경쟁을 벌였고, 신문사가 매해 꼴찌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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