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스로 깎아내리고, 부정하고, 자학하나
“이놈의 나라 지긋지긋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여러 번 들어본 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나라를 ‘씹는’ 게 일상사가 돼버렸다. 과연 그럴까? 정말 한국은 형편 없는 나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반대로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이념갈등, 지역분열, 빈부격차 등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문제는 어느 나라나 갖고 있는 골칫거리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우리에겐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좋은 점들이 적지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품과 서비스, 그리고 편리한 법과 제도가 수두룩한데도 우리는 이를 사실대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자기비하 풍조 때문이다.
주간조선은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광복 및 정부수립 후 60여년간 우리 한국인이 이룩한 업적을 분야별로 나눠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대부분 해외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도 우리만 모르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온 것들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기본 관념이 ‘자기 학대’였다면 이제부터는 ‘자랑스러운 한국인(Proud Korean)’으로 바꿔야 한다. 주간조선은 앞으로도 우리 사회를 보다 정확히 설명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기획을 해나갈 계획이다. 지난 60여년간 대한민국이 이룩한 업적은 수없이 많다. 이들 업적을 압축하면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함께 달성한 것’으로 귀결된다. 2차대전 후 지구상에 수많은 신생국가가 출현했지만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2차대전 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로 독일과 일본도 빠지지 않고 거론되지만 이들 나라는 경우가 다르다. 독일과 일본은 2차대전 전부터 강대국이었는 데다 각각 마샬플랜과 한국전쟁이라는 특수(特需)에 힘입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이들 나라 입장에서 보면 고도성장은 부흥(復興)인 셈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달랐다. 지구상에서 가장 악질적인 제국주의 국가였던 일본의 식민지로 가혹한 수탈을 당했던 데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남북으로 분단됐고 1950년에는 2차대전 후 최대 전쟁인 한국전쟁까지 발발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대부분의 신생국가는 가난했지만 한국처럼 3년간의 전쟁을 치러 폐허가 된 나라는 없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던 1960년대 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은 희망이 없는 나라’였고 어디서나 무시당하는 존재였다.
그랬던 나라가 지금은 세계 15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로 우뚝 솟아 있다. 그것도 최근 수년간 랭킹이 뒷걸음질쳤는데도 이 정도다. 민주화는 또 어떤가? 언론의 자유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미국과 유럽 못지않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 또한 세계적 수준이다.
TV·에어컨·휴대전화·IT… ‘세계 1위’의 나라
우선 경제성장부터 살펴보자. 한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한국은 수출로 경제규모를 키워왔고 실제로도 수출대국이다. 올해는 10대 수출대국에 진입했고 3분기에는 사상 최초로 세계 9위권 도약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의 질은 더 좋다. 반도체,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골고루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2위 국가인 일본과 주요 분야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경쟁을 보이고 있는 유일한 신흥국가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기업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무대에서 가장 극적인 광경의 하나로 소니(SONY)의 몰락을 들 수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세계 최고의 가전왕국’ 소니를 몰락시킨 주인공은 한국기업 삼성전자다. 삼성 휴대전화는 세계 2위까지 올라섰고 1위 등극도 시간문제로 간주된다. TV도 삼성전자가 3년째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LG전자의 에어컨은 10년째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굴러다니는 광고판인 자동차 부문에서의 선전(善戰)도 눈부시다. 현대·기아차는 올해 상반기 세계 판매 순위에서 처음으로 4위에 올랐다. 소비재는 아니지만 포스코도 세계적인 철강회사의 반열에 올라 있다.
한국은 세계적인 IT(정보기술)강국이기도 하다. 한국은 인터넷보급률과 속도에서 세계 1위 국가다. 적극적인 소비자가 많고 상호 의견교환이 활발해 한국은 세계 최고의 테스트 마켓으로 떠오르고 있다. 수준 높은 한국 소비자 밑에서 단련된 한국기업들은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내 시장을 철통같이 방어하고 있다. 월마트, 까르푸, 네슬레, P&G 등 세계적 소비재 기업들이 한국시장에서 고배를 마신 것이 단적인 예다.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로 치부되고 있다. 올해 칠레의 한 와인업체는 한국시장을 겨냥한 신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과거에는 “일본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였던 것이 지금은 “한국에서 통해야 세계에서 통한다”가 됐다.
IMF·글로벌 금융위기 비켜! 위기에 강한 나라
강인한 회복력도 한국경제의 특장(特長)이다. IMF 외환위기도 한국이 가장 먼저 극복했다. 한국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IT 투자 등을 통해 경제를 빨리 회복시켰다. 특히 IMF 때 전 국민이 동참한 ‘금 모으기 운동’은 세계적으로 찬탄의 대상이 됐다.
지난해 9월 전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경제위기도 한국이 가장 먼저 극복했다.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아 경제 회복이 상대적으로 늦어질 것으로 예견됐으나 이번에도 보란 듯이 위기를 이겨내고 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한국의 경이로운 회복력을 평가하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이 민주화다. 1980년대 초반까지 경제성장에 주력했던 한국인들은 1987년 6·10항쟁을 계기로 민주화에도 눈길을 돌리게 된다. 한국인들은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대한민국을 완전한 민주국가로 진입시킨다.
문민지배로의 전환 이후 여야 정권 교체도 평화적으로 이뤄졌다. 정세가 불안할 때마다 간간이 나돌았던 ‘군부쿠데타설’은 이제 과거 이야기가 됐다. 쿠데타 위험 제로 국가가 된 것이다.
가장 무서운 법은 국민정서법… 여론이 강한 나라
한국은 기본적으로 문민지배의 전통이 있고 여론이 존중되는 나라다.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가 군복을 벗고 대권에 도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한국 사회에 문민지배의 전통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이는 군인들이 군복을 입은 채로 집권한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와 대비된다.
대한민국은 위정자들이 여론을 극도로 존중할 수밖에 없는 나라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서운 법은 국민정서법”이라는 말도 있다. 한국에선 그 누구도 여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에서 여론을 무시한 위정자들은 예외 없이 불행한 말로를 걸었다. 보급률 100%에 가까운 인터넷은 여론의 힘을 극대화하고 있다.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들도 인터넷에 여과 없이 뜨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영국이 300년 걸린 일을 30년에 이룬 ‘기적의 나라’
한국이 이룩한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기적’의 바탕에는 교육이 있었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자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입시지옥과 엄청난 사교육비 등으로 한국의 교육은 국내에선 늘 비판의 대상이지만 해외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의 사교육은 효율성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거의 해마다 공교육 제도를 바꾼 것도 국내에선 비판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국가 발전 열망이 강하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 들어 수차례 “한국의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최근 ‘대한민국의 기적’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8월 초 한국을 방문한 존 던컨 미 UCLA 한국학연구소장은 한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영국이 300년 걸린 걸 한국은 30년 사이에 이뤘다”며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민주화를 쟁취해냈고 교육 분야도 많은 성장이 있었으니 한국은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는 “선진국치고 부정적인 자기인식을 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며 “신생국가에서 이만한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은 칭찬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나라이니 국민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교과서에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생활로 본 한국
편리하고 빠르고 친절… 우리만 모르는 우리들 자랑거리
‘물은 셀프(self), 반찬은 공짜. 이 ‘리빙 인 코리아(living in Korea)’라는 것이 참 좋다야. 비빔국수, 제육볶음, 쌈밥, 김밥… 배불러 넉넉한 한국에서. 세금 낮은, (집) 전세 하는, 세계 김치 허브인 대한민국이니까. 살기 좋은, 마약 없는 대한민국이니까. 물은 셀프, 반찬은 공짜. 이 ‘리빙 인 코리아’라는 것이 참 좋다야.’
- ▲ 지하철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시민들.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이동식 초고속 인터넷이 상용화됐다. / photo 조선일보 DB
이마가 시원하게 드러난 외국인이 만돌린처럼 생긴 작은 현악기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제목은 ‘리빙 인 코리아’. 2007년에 유튜브에 올라온 그의 동영상에는 2년이 지난 지금도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진지한 표정으로 “한국이 좋다”고 노래하는 쩌우 먼델로씨의 모습에 ‘재밌다’는 반응이 대부분. 하지만 “새삼스레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걸 알게 됐다”거나 “어디에도 없는 한국만의 문화가 자랑스럽다”는 진지한 댓글도 눈에 띈다.
당연하게 누렸던 한국만의 편리함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빠르고 정확한 지하철, 택시도 카드로 탈 수 있는 신용사회,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 별게 다 배달되는 편리함, 기다릴 필요 없이 인터넷으로 해결 가능한 민원 업무, 다른 나라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초고속 인터넷까지. 생활 속에 숨은 ‘편리함’을 찾아보면 쩌우 먼델로씨의 노래처럼 “한국에 사는 것이 참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생활편의
24시간 편의점 택배에 햄버거까지 집으로… 배달 천국
얼마전 광복절을 맞아 특집 방송된 버라이어티 쇼에서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고국으로 가져가고 싶은 것”을 조사했다. 1위는 휴대전화, 2위는 초고속 인터넷. 하지만 3위는 다소 의외였다. ‘IT 코리아’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배달 음식’이 차지한 것. 방송에 출연한 미국인 브리안나씨는 “한국의 다양한 배달 음식을 사랑한다”면서 흥분했다. 그는 “미국에서 피자를 시키면 2시간이나 걸린다”면서 “한국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아 금방 가져다줘서 신기하다”고 말했다.
- ▲ 빠르고 다양한 배달음식.
대한민국은 ‘배달의 나라’라고 부를 만하다. 물품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배달이 가능하고 서비스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빠른 배송을 원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택배업체들은 살인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빠른 배달에 편의성까지 고려한 ‘편의점 택배’는 전국 8000여개 편의점에서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택배사원을 기다릴 필요 없이 편의점 직원에게 맡기기만 하면 된다. CJ GLS에서는 무인 택배 서비스도 제공한다. 서울시내 지하철 역사에 있는 무인 택배 보관함에 오후 2시까지 상품을 넣어놓으면 다음날 배송해준다. 추가요금을 더 내면 휴일 택배 서비스도 가능하다.
외식업체의 배달 서비스도 다양하다. 중국음식, 치킨, 피자, 족발 등은 배달 음식 세계에서 ‘전통의 강호’라 할 수 있다. 새롭게 나타난 다크호스는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들이다. 점심 때 30분씩 줄 서서 기다려야 하는 패밀리레스토랑이 배달 서비스로 문턱을 낮췄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종로점은 인근지역에서 4인분 이상 주문할 때 배달이 가능하고 서울대점에서는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을 위해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면 20%를 할인해준다.
콧대 높은 커피전문점도 예외는 아니다. 스타벅스는 커피와 케이크, 쿠키 등을 50만원 이상 구매할 경우 케이터링 서비스를 해준다. 커피빈, 스무디킹도 3만원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 직접 커피를 배달해준다. 패스트푸드 역시 배달받아 집에서 편리하게 먹을 수 있다. 맥도날드는 서울·경기 등 주요 도시 80여개의 매장에서 24시간 배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신용사회
현금 없어도 택시 타는 나라… 1인당 3.7장, 카드 천국
비자카드(Visa) 한국법인인 비자코리아의 제임스 딕슨(Dixon·49) 사장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음식점, 주유소는 물론이고 택시 안에서도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나라”라며 “세계 어딜 가도 이만한 곳이 없다”고 감탄했다. 한국에 와서 처음 발급받은 신용카드로 커피전문점에 갔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서명도 하지 않고 10초 남짓한 시간에 신용카드 결제를 끝내더라”면서 “한국은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에서 특히 앞서가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 ▲ (위) 현금보다 많이 쓰이는 신용카드. (아래)신용카드사의 할인서비스.
신용카드는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카드의 미래는 한국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9년 미국에서 태어난 신용카드는 한국에 상륙한 지 올해로 40년을 맞았다. 1969년 신세계백화점에서 처음으로 발급한 신용카드는 2008년 현재 1만5612개 가맹점에서 통용된다. 1인당 카드 보유 수가 3.7장으로 미국(5.3장)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 수준이다. 규모 면에서도 발전을 거듭했다. 소비지출에서 카드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50%를 넘었다. 카드가 현금을 앞지른 것. 일반 결제와 할부·현금서비스까지 포함한 연간 카드대금은 445조3024억원(2008년 기준)에 이른다.
한국의 신용카드 서비스는 업계에서 최고로 평가된다. 자장면 한 그릇을 배달해도 휴대용 카드리더기로 결제가 가능하다. 후불제 카드는 지하철, 버스를 탈 때 미리 충전할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현금 없이 카드로 택시를 탈 수 있는 것도 ‘크레디트 코리아’에서 가능한 특권이다. 대학등록금, 진료비, 보험료도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카드 1장만 있으면 생활이 가능한 유일한 나라”로 손꼽힐 만하다. 실제로 국내 카드산업은 중국·동남아·중남미 등의 벤치마크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카드회사의 다양한 고객서비스도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대학생 김준희(여·26)씨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미국인 친구는 ‘무이자 할부’에 감동하더라”면서 “인터넷 쇼핑을 할 때 2~3개월 무이자할부는 기본이라고 생각했는데 외국인이 보기에는 신기했던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특별한 조건 없이 무이자할부를 제공하거나 몇 퍼센트씩 할인해주는 혜택은 해외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처럼 혜택이 다양한 이유는 현금 대출보다 신용 결제 비율이 2 대 8 정도로 높은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이용 구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신금융협회 장형덕 회장은 “미국은 리스크가 큰 리볼빙 위주지만 국내는 일시불결제 위주의 안정적인 수익구조와 비교적 안정적인 연체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교통
카드 하나로 버스·지하철 다 환승… 수출하는 교통카드
서울에 ‘지능형교통시스템(ITS)’이 도입된 것은 2004년 7월의 일이다. 이때 스마트카드를 활용해 버스와 지하철의 연계성이 높아졌고, 거리비례요금제가 도입됐다. 인구 1000만이 넘는 ‘거대 도시’에 지하철·버스·택시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교통카드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해외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도입 초기 혼란이 많았지만 현재는 외국에서 성공적인 교통시스템으로 벤치마킹할 정도로 자리잡았다. 실제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시에서는 오는 12월 완공을 목표로 지능형교통시스템(ITS) 구축 작업이 한창이다. 서울의 교통망이 중앙아시아로 수출된 것. 아제르바이잔 ITS 사업은 국내 IT서비스 수출로는 최대 규모인 765만달러짜리다.
- ▲ 해외로 수출하는 교통카드.
최근 KBS ‘미녀들의 수다’에서 외국인 출연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의 자랑거리는 무엇입니까.” 1위는 이미 세계 최고로 통하는 휴대전화. 하지만 2위는 의외로 교통카드였다. 카드 한 장으로 지하철·버스·택시를 모두 이용할 수 있고 환승까지 가능하니 신통하다는 게 출연자들의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외국인들도 교통카드의 편리함을 인정한 셈이다.
우리 교통카드는 바다 건너 뉴질랜드에서도 사용된다. 지난해 한국스마트카드가 뉴질랜드 웰링턴시에 티머니(T-money) 교통카드시스템을 수출한 것. 현재 웰링턴시에서 운행 중인 버스 300여대와 유통 가맹점 150곳에서 통용된다. 해외 곳곳에서 교통카드 시스템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현재 한국스마트카드는 러시아·마카오 등의 해외 지방자치단체와 수출 협상을 진행 중이고 멕시코와 말레이시아의 교통카드시스템 구축 사업 입찰에도 참여하고 있다.
개통한 지 35년째를 맞은 지하철 역시 세계적인 수준이다. 서울메트로는 지난 3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5회 메트로 레일(Metro Rail) 2009’ 국제회의에서 ‘도시철도 수송 효율화’ 부문 최우수 운영기관으로 선정됐다. 높은 수송비율과 열악한 여건 속에서 안전하고 효율적인 수송을 이뤄내고 서비스 수준이 향상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 국제회의는 전세계 도시철도 운영기관장들과 철도 전문가, 시스템과 차량 공급사의 사장들이 참석하는 행사로서 도쿄지하철, 런던지하철, 파리교통공사 등 51개국, 78개 지하철 운영기관이 참여했다.
통신
초고속인터넷 가구보급률 세계 1위, 통화성공률 99.7%
초등학교에서 영어강사로 근무하는 영국인 로버트 메튜(32)씨는 “한국에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문화적인 충격을 받는다”고 했다. 메튜씨는 “지하에 있으면서도 휴대전화 통화가 전혀 끊기지 않는 게 신기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휴대폰 안테나부터 뽑아들고 DMB를 시청하는 모습이 재밌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집에서도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즐길 수 있지만 특히 지하철 안에서 인터넷 하는 걸 봤을 땐 정말 감탄했다”면서 “인터넷과 휴대전화 때문에 ‘코리아’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난다”고 했다.
- ▲ 언제 어디서나 이용가능한 와이브로.
요즘은 해외에 나가도 어렵지 않게 한국인을 만나고 한식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속도’ 때문에 한국이 그리웠던 경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의 시장조사 전문업체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한국이 초고속 인터넷의 가구보급률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초고속 인터넷 ‘가구보급률’ 1위가 지닌 의미에 대해 SA 측은 “광대역(Broadband) 인터넷 보급률 순위는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며 “가구보급률이 100명당 보급률보다 더욱 적절한 조사 방법”이라고 밝혔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2008년 기준으로 광대역 인터넷의 가구보급률이 95%에 육박했다. 한국에 이어 싱가포르가 2위(보급률 88%)를 차지했고 네덜란드(85%), 덴마크(82%), 대만(81%)이 뒤를 이었다. 일본은 64%로 전체 조사대상국가 58개국 가운데 16위, 미국은 60%로 20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DMB는 이동하면서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삼성전자는 2003년 2월 세계 최초로 위성 DMB 칩을 개발하고, 그해 9월 지상파 DMB 칩 개발에 성공했다. 이듬해 3월 SKT는 세계 최초로 DMB 위성 발사에 성공해 본격적인 ‘DMB 시대’를 열었다. 등산이 취미인 회사원 신재웅(45)씨는 “주말에 가까운 청계산에 가는데 산 중턱에서 DMB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면서 “산에서 휴대전화(전파)가 이렇게 잘 터지는 것만으로도 외국인들은 놀랄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통화품질은 어느 정도일까. 통화성공률에 대한 전세계적인 공동 조사는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SK텔레콤과 KTF는 각각 99.66%와 99.35%의 통화성공률을 기록했다. 통화를 시도했을 때 100%에 가까운 완벽한 품질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장소·날씨·시간 등에 따라 전파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1∼2% 정도의 오차를 고려하면 휴대전화 통화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세계적 석학인 하버드대 스피로 폴라리스 교수는 최근 SKT를 방문해 다양한 통신서비스를 체험한 뒤 “미국보다 한국이 이동통신 발전 속도가 더 빠르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공공서비스
24시 콜센터·안방서도 민원처리… 세계 최고 전자정부
빨리 주민등록등본을 떼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정답은 ‘컴퓨터’. 업무시간에 맞춰 주민센터(동사무소)로 찾아가서 수수료 350원을 낸 다음 주민등록등본을 받아오는 시대는 지났다. 어디서나 컴퓨터만 있으면 전자민원 사이트(www.egov.go.kr)에 접속해 공인인증서로 본인을 확인한 다음 발급받을 수 있다. 수수료도 없다. 365일, 24시간 이용할 수 있어 맞벌이 부부나 직장인들은 사무실에서도 민원업무를 볼 수 있게 됐다.
- ▲ 전화 한 통화로 민원처리가 가능한 콜센터.
지난해 열린 ‘세계전자정부시장포럼’에서 서울시는 세계 100대 도시 전자정부 평가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세계 35개 도시 시장·부시장이 참석하고 UN 경제사회국(DESA)과 미국행정학회(ASPA)가 후원한 권위있는 행사에서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로 인정받은 셈이다. 또한 서울시는 모스크바·하노이·나이로비 등 주요 도시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국내 기업이 해외 도시 전자정부 구축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 인프라와 전자정부시스템을 바탕으로 ‘전자정부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전화 한 통화로 해결되는 민원’을 표방하며 콜센터 서비스도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각종 민원 처리, 국민 제안 등을 전문적으로 상담하기 위해 콜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관세청, 국민권익위원회, 보건복지가족부, 외교통상부, 특허청 등이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 수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물론 해외에서도 정부의 콜센터 운영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주중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24시간 운영하는 콜센터는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120 다산콜센터 역시 365일 24시간 운영되며 청각장애인을 위한 화상 수화 상담과 문자 메시지 상담까지 제공한다. 다산콜센터는 서울의 관광 명소나 버스 노선, 수도·전기 요금 등 다양한 질문이 가능하다. 외교부는 2005년 4월부터 영사 콜센터를 운영하며 해외에서의 사건·사고를 24시간, 연중 무휴체제로 알려주고 있다.
문화예술·스포츠
비보이·영화·김치·골프·피겨… 원더풀 코리아! 세계가 환호
국민의 자부심을 높이는 데 문화예술과 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대한민국은 세계무대에서 이 분야의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보이, 영화, 한류, 김치 등은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한국 문화·예술의 키워드들이다. 대한민국 비보이들은 잇따라 세계대회를 석권하고 있고, 한국 영화는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자국 영화 점유율 4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 골프는 세계 최정상권에 진입한 지 오래다. 부자나라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수영, 피겨 스케이팅에서도 겁 없는 젊은 코리안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 ▲ 비보이 공연
영화
한국영화 점유율 42%… 40% 이상은 미·일 등 4개국뿐
최근 한국영화 ‘해운대’가 1000만, ‘국가대표’가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에 힘입어 7월 한국영화 점유율은 51.2%를 기록했다. 2008년 한국영화 관객 수는 1억5083만명이었고, 한국영화 점유율은 42.1%였다. 2007년 50.0%보다 하락한 수치였지만, 2009년 상반기 37.2%였던 점유율이 하반기 들어 빠르게 회복되며 40% 지지선을 확보했다. 2007년을 기준으로 자국 영화 점유율이 40%가 넘는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서 미국, 인도, 일본 등 4개국뿐이다.
한국영화는 내수시장에서만 강세를 보여온 것이 아니다.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 더욱 환영받고 있는 김기덕 감독은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칸이 사랑하는 감독 박찬욱은 2004년 ‘올드보이’로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2009년 ‘박쥐’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이창동 감독은 2002년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고 2007년 ‘밀양’으로 여자 주인공 전도연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줬다. 임권택 감독은 2002년 ‘취화선’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비보이
4대 비보이 배틀 우승 휩쓸며 ‘세계 최강’ 군림
지난 8월 8일 한국 비보이팀 ‘라스트 포 원’ 멤버 신영석씨가 대한민국 비보이로서는 처음으로 ‘옥타곤 배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 뉴욕에서 열린 이 대회는 ‘비보이계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다이나믹 로커스와 에일린 네스가 주관하는 행사이다. 신씨는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플래닛 비보이’(감독 벤슨 리·10월 국내 개봉 예정)를 통해 이미 많은 미국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그는 세계 4대 비보이 대회 중 독일 ‘2005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와 영국 ‘2005 UK 비보이 챔피언십(U.K B-Boy Championship)’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신씨가 속한 비보이팀 ‘라스트 포 원’도 2002·2004·2005·2006년 ‘배틀 오브 더 이어’에 참가했다. 2005년에 우승을 하고 2006년에는 준우승을 했다. 이 대회에서 2007년에는 한국 비보이팀 ‘익스트림 크루’가 우승을 차지했다. 역시 한국의 비보이팀인 ‘갬블러’는 2003·2004·2005년 세 번 연속으로 ‘배틀 오브 더 이어’에 참가해 2004년 대회에서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세계 4대 비보이 배틀이란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비보이 배틀의 월드컵’이라고 여겨진다), 영국 ‘UK 비보이 챔피언십’, 미국 ‘프리스타일 세션’과 국가를 옮기면서 개최되는 ‘레드불 BC onE’을 말한다.
클래식
조수미·신영옥·홍혜경… 세계적 프리마돈나 수두룩
- ▲ 성악가 조수미
한국의 성악가, 지휘자, 연주자 등도 세계 최고로 극찬 받고 있다. 성악가 중의 대표 주자는 역시 조수미씨. 그녀는 이탈리아 유학 2년 만에 나폴리에서 개최된 존타 국제 콩쿠르를 거머쥐었고, 이어 이탈리아 시칠리안·베로나 국제 콩쿠르, 스페인 바르셀로나 비냐스 국제 콩쿠르 등에서 1등을 차지했다.
신영옥씨는 미국 줄리아드음대를 졸업했고, 1989년 스폴레토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역으로 정식 데뷔했다. 1991년에는 세계 3대 오페라극장의 하나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리골레토’의 질다 역을 맡아 프리마돈나가 됐다.
두 사람의 선배는 홍혜경씨. 줄리아드음대를 나온 그녀는 198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티토왕의 자비’의 세르빌리아 역을 맡아 프리마돈나가 됐다.
정명훈·정명화·정경화로 이뤄진 ‘정트리오’는 세계적인 클래식 남매이다. 정명훈씨는 프랑스 국립바스티유오페라단 음악감독 겸 상임 지휘자, 이탈리아 로마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등을 거쳐 현재 서울시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지휘자를 맡고 있다.
한류
아시아 넘어 할리우드로… 이병헌·원더걸스 질주
대한민국의 한류는 배우와 가수를 중심으로 계속 흐르고 있다. 이제는 일본과 동남아를 넘어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일본 시장을 이미 석권한 가수 보아는 미국까지 진출해서 선전을 하고 있다. 동남아 시장을 장악한 비, 세븐, 원더걸스도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데 이들 중 원더걸스의 반응이 가장 좋다.
- ▲ 원더걸스 / 영화 ‘지.아이.조’에 출연한 이병헌(오른쪽에서 두 번째).
원더걸스는 최근 폭스TV의 ‘웬디 윌리엄스 쇼’에서 히트곡 ‘노바디(Nobody)’를 부르며 미국 시청자들에게 생방송으로 인사를 했다. “아시아의 센세이션이자 빅스타의 첫 미국 TV무대”라는 웬디 윌리엄스의 소개와 함께 무대에 오른 원더걸스는 영어 버전의 ‘노바디’를 열창했다. 원더걸스는 3인조 그룹 ‘조나스 브라더스’의 전미 콘서트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며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배우 중에서는 현재 미국과 한국에서 상영 중인 영화 ‘지.아이.조’에 스톰 쉐도우 역으로 등장한 이병헌이 미국 시장 공략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손꼽힌다. 시에나 밀러, 데니스 퀘이드 등이 함께 출연한 ‘지.아이.조’는 미국 개봉 첫 주말에 4007개 상영관에서 5620만달러를 벌어들여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는 개봉 16일 만에 200만명을 동원했다. 세계 최대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인 IMDB에서 이병헌은 배우 검색 인기순위 ‘스타미터(STARmeter)’에서 23위에 올랐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국내 배우 중 가장 높은 순위다.
김치
‘세계 5대 건강식’… 이제 세계인의 식탁에
대표적인 한국 음식인 김치는 이제 세계적인 건강음식으로 대접 받고 있다. 미국의 건강전문지 ‘헬스’에 의해 ‘세계 5대 건강음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헬스 인터넷판(www.health. com)에서는 “발효식품인 김치에는 소화를 향상시키는 유산균, 섬유소, 비타민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으며 암세포의 성장을 막아주고 체중증가를 방지하는 저지방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면서 스페인산 올리브오일, 그리스 요구르트, 일본 두부 등 콩식품, 인도 렌틸콩과 함께 5대 건강음식으로 선정했다. 5대 건강음식 중 3개(김치, 일본 콩식품, 인도 렌틸콩)는 아시아 식품이며, 2개는 발효식품이다.
스포츠
선진국형 종목인 수영·피겨 급성장… 골프는 한국 천하
- ▲ 김연아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이 아시아 수영계를 호령하고 있을 즈음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미국의 마크 스피츠가 세계 신기록 7개를 작성하며 금메달 7개를 휩쓸었다. 조오련의 기록은 스피츠에 비하면 비교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마크 스피츠의 신기록 행진을 지켜본 한국인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했다. “올림픽 수영은 선진국 백인들 잔치야. 한국인은 안돼!”
그로부터 36년 뒤. 박태환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각각 한 개씩 땄다. 그 순간 모든 국민은 박수를 치며 울먹였다. 불가능한 줄로만 알았던 수영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박태환이 너무 고맙고 기특해서였다.
수영은 전형적인 선진국 스포츠다. 어려서부터 실내수영장에서 물을 익히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야만 세계적 수준에 오를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도시에는 동마다 실내수영장이 있다. 지방의 자치단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실내수영장에서 ‘미래의 박태환’을 꿈꾸는 수영 꿈나무들이 물살을 헤치고 있다.
수영과 함께 또다른 선진국형 스포츠는 피겨스케이팅이다. 1980~1990년대만 해도 피겨스케이팅은 유럽과 미주 선수들의 전용 공간이었다. 카타리나 비트, 일레인 자야크, 도로시 하밀, 미셸 콴 등. 아시아에서는 2000년대 들어 일본 선수만 겨우 이름을 올릴 정도였다. 하지만 2008~2009년 세계 피겨스케이팅의 스타는 한국의 김연아. 지난 3월 김연아는 LA세계선수권 대회의 쇼트프로그램에서 세계 신기록을 기록, 우승을 차지했다.
김연아는 과천실내빙상장에서 스케이트를 배운 토종 피겨스케이터다. 김연아가 2009년 세계선수권에 이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당분간 김연아의 시대가 지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전망이다.
프로골프도 일찌감치 그 장벽이 무너졌다. 이미 LPGA는 한국여성 골퍼의 독무대가 된 지 오래다. 한국 여성골퍼의 강세가 지속되다 보니 LPGA 주최 측은 이를 막아볼 속셈으로 별의별 잔꾀를 내고 있을 정도다. 지난 8월 16일 양용은이 PGA 대회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은 결정판이었다.
월드컵 7회 연속 본선 진출! 한국축구가 이룩한 위업(偉業)이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5개국만이 7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한국인 중에는 월드컵 7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에 대해선 큰 감동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2002 월드컵 4강이라는 훈장 때문이다. 이제 한국인은 한국축구가 월드컵 본선에 나가 ‘몇 강(强)에 진출하느냐’에만 관심이 쏠려있다. 1970~1980년대 한국축구가 최종예선에서 패배해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지 못했을 때 나라 전체가 침울해 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는 변화다. 불과 20여년 만에 벌어진 현상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7개로 종합 13위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금메달을 수확한 종목이다. 우리나라가 종주국인 태권도를 제외하면 야구, 유도, 수영, 양궁, 사격, 역도, 배드민턴이다. 육상에서만 메달을 땄다면 선진국형 메달 분포라 할 만하다. 복싱을 비롯한 격투기 종목의 퇴조는 상징적이다. 베이징올림픽 메달 분포는 ‘국력 15위’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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