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당뇨병 아우성
한국인 혈당조절능력 서양인의 30% 불과 …
40대 이하, 마른 환자가 절반 이상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 1지난 7월 중순 KBS 의학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에선 한때 ‘홈런왕’과 ‘철벽수비’의 대명사로 통하던 전 국가대표 야구선수 심성보(37) 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그는 삼성 라이온즈의 간판선수로 활약하던 2003년 10월 ‘일신상의 이유’라며 갑작스레 은퇴했다. 당시 31세. 그로부터 6년 만에 그는 ‘일신상의 이유’가 당뇨병이었음을 고백했다.
더욱 충격적인 소식은 그가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25세 때부터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 당뇨병은 운동으로 다져진 180cm, 75kg의 탄탄한 근육질 남자조차 피해가지 않았다. 현재 심씨의 몸무게는 63kg으로 선수시절보다 12kg이나 줄었고, 당뇨합병증인 당뇨병성 망막증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 2서울성모병원 당뇨병 집중치료 클리닉 ‘인크레틴 센터’. 30세의 이모 씨는 이곳에서 당뇨병 치료를 받은 지 3년이 넘었다. 170cm, 61kg으로 조금 마른 편인 그는 27세 때 당뇨병 판정을 받았다. 평소 식후 혈당이 치솟아 밥만 먹으면 바로 운동을 했지만 혈당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 세 번, 한 번에 한 시간 이상의 운동 또한 몸이 불편한 그에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씨에게 인슐린 분비 기능이 조금 남아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의료진은 지금껏 투여하던 인슐린 주사를 끊고 신체 스스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도록 도와주는 인크레틴 제제(30쪽 기사 참조)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치료제를 바꾸고 3개월이 지나자 식후 혈당은 정상범위로 뚝 떨어졌다. 운동을 하루에 한 번만 하거나 가끔은 전혀 하지 않아도 혈당 수치는 더 올라가지 않았다.
왜 하필 한국인을 괴롭히는가
당뇨병 환자 500만명 시대, 성인 100명 중 8명이 당뇨병에 걸리는 시대가 왔다. 2030년에는 10명 중 2명이 당뇨병 환자가 되고, 인구의 15%가 넘는 700만명이 당뇨병에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당뇨병에 대한 인식이 낮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지금도 당뇨병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국가 중 한국이 2위다. 흔히 당뇨병은 비만일수록, 나이가 들수록 잘 생기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상식이라면 한국인보다 비만인구가 많은 서양인에게 당뇨병이 훨씬 많아야 하고, 노인 인구가 많은 일본이 ‘당뇨병 대국’이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심 선수와 이씨의 사례는 일부러 마르고 젊은 당뇨병 환자만 골라낸 것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당뇨병을 앓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마르고 젊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꼼꼼한 성격에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은 체질량지수(BMI·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 ㎏/㎡)가 25 이상인 비만인구가 60%인 데 반해 한국은 10~20%에 불과하다. 하지만 양국의 성인 당뇨 유병률은 7~8%(2005년 통계)로 거의 비슷하다. 한국인의 경우 살찌지 않은 당뇨병 환자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당뇨학계 권위자인 연세대 의대 허갑범 명예교수는 “한국의 당뇨병 환자 중 60~70%는 마르거나 정상 체형이면서 배만 불룩 나온 사람이다. 심지어 10%는 의학적으로 저체중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최근 대한당뇨병학회는 일반인의 상식을 깨는 또 하나의 통계를 발표했는데, 국내 전체 당뇨병 환자 중 40세 이하가 41%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자의 경우 40세 이하 환자가 거의 절반에 가까운 49%였다(여자는 33%).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결과도 이런 통계를 뒷받침한다. 한국의 30대와 40대의 당뇨 유병률은 각각 4%와 6%로 서양인보다 10배 정도 높다는 것.
당뇨병이 대부분 발병 10년 후부터 합병증이 생겨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창 일할 나이인 40, 50대에 당뇨합병증으로 경제활동을 그만둬야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환자 본인과 가족이 입는 직접적 피해는 물론, 국가 차원에서의 사회적, 경제적 손실도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미 국민건강보험 전체 재정의 20%가 당뇨병과 그 합병증 치료에 쓰이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에만 마른 당뇨와 젊은 당뇨 환자가 넘쳐나는 것일까.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조재형 교수는 “마른 사람의 경우 비만한 사람보다 췌장 베타세포의 양이 적다. 한국인은 베타세포의 기능 이상이나 양적 감소가 조기에 발생하면서 젊은 나이에 당뇨가 발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 내분비내과 안철호 교수도 “현재 진료하는 환자 중 절반 이상이 비만하지 않다.
오히려 저체중인 경우도 있으며 이는 인슐린 분비 능력을 좌우하는 췌장 베타세포 양이 한국인의 경우 서양인보다 70~80%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췌장 베타세포에 뭔가 해답이 있는 것 같은데 쉽지 않은 의학용어다. 의학자들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뇨병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를 전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음식물을 먹으면 소화기관에선 이를 분해해 탄소화물, 지방, 단백질 등 영양소의 형태로 간에 보내고, 간은 그중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만들어 각 혈관으로 내보낸다. 이때 혈액 속에 녹아든 포도당을 혈당이라 하는데, 신체 각 세포는 혈당을 흡수한 후 이를 각 기관을 움직이는 에너지로 사용한다. 이때 혈관에 있는 당을 녹여서 신체 세포로 들어가게 만드는 호르몬이 바로 췌장에서 만들어지는 인슐린이다. 인슐린이 ‘혈당조절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순환구조가 제대로 이뤄지면 간은 적절한 시점에서 당 생산을 중단하며, 세포에 흡입되지 않은 여분의 혈당은 혈관을 타고 내려가 신장에서 걸러진다. 당뇨병은 세포에 흡수되지 않고 남은 혈당이 혈관에 지나치게 많이 돌아다니면서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혈관에 혈당이 남아도는데도 간은 계속 포도당을 만들어 혈관으로 내보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혈관 속에서는 그야말로 ‘포도당 대란’이 일어난다.
당뇨합병증에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 미세혈관 질환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최근 들어 혈당치(공복 측정 시 126㎎/㎗, 임의 측정 시 200㎎/㎗ 이상이면 당뇨병 진단)와 함께 당화혈색소의 개념이 강조되는 이유도 이런 사정에서 비롯된다. 당화혈색소는 적혈구 내의 혈색소(헤모글로빈)가 포도당과 결합하면서 생성된 것으로, 혈당조절이 안 되면 이 수치가 증가한다(한국은 6.5% 이하, 서양은 7% 이하가 정상).
요즘은 혈당조절의 궁극적 목표가 당화혈색소의 감소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혈당이 정상 범위로 떨어졌다고 해도 당화혈색소가 그대로이면 나아진 것은 없다.
당화혈색소는 혈관 질환의 원인이 되고, 이는 결국 환자의 사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혈관으로 들어가 ‘사고’를 치지 않은 여분의 당은 신장으로 내려가는데, 그 양이 지나치게 많으면 신장에 과부하가 걸려 만성신부전을 일으킨다.
당뇨병 환자가 물을 많이 마시고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도 혈관에 돌아다니는 여분의 당을 소변으로 배출하려는 신체의 절박한 요구에서 비롯된다. 만성신부전에 이르면 환자는 평생 투석치료를 받아야 한다.
인슐린 적은데 기름진 음식 많이 섭취
결국 당뇨 발병 여부는 혈액 속 혈당을 줄이는(세포로 흡수되게 만드는) 인슐린의 분비량과 그렇게 분비된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하는지에 달렸다. 이때 인슐린 분비량을 늘렸다 줄였다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췌장 베타세포다. 췌장에 있는 베타세포는 혈관 속에 당이 많으면 인슐린 분비량을 늘리고, 적으면 그만큼 줄인다.
베타세포의 숫자와 비만도는 대부분 비례하는데, 마른 사람은 비만한 사람보다 베타세포의 양이 50% 정도 적다. 즉, 마른 사람은 인슐린을 분비할 수 있는 능력(인슐린 분비 능력)이 비만한 사람보다 그만큼 떨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살이 찌는 만큼 베타세포의 수가 불어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기엔 유전적 성향이 크게 작용하리라 추측할 따름이다.
그런데 최근 의학계는 한국인의 경우 비만 여부에 관계없이 서양인보다 췌장 베타세포가 70~80% 적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인슐린 분비 능력이 서양인의 20~3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한국인은 미국인과 비슷한 식사를 해도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혈당조절 능력은 한정돼 있는데 그보다 많은 당이 만들어지면 혈관 속에 남아도는 당의 양도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 작은 컵에 물을 많이 부으면 넘쳐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이 ‘컵’(췌장 베타세포)은 매우 약한 재질이라 충격(많은 포도당)이 자주, 그리고 크게 가해지면 조금씩 부서져 결국엔 깨지고 만다. 췌장 베타세포가 손상을 받아 조금씩 수가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는 뜻인데, 이는 곧 인슐린 분비 능력의 감소 또는 박탈을 의미한다. 문제는 췌장 베타세포의 수를 줄이고 기능을 손상시키는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가 비만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1980년대 이후 서구형, 즉 비만형 식습관이 확산되면서 당뇨병 환자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췌장 베타세포가 근본적으로 적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당이 공급됐기 때문이다. 췌장 베타세포의 수가 살이 찌는 만큼 늘어나는 게 아니므로 한국인에게 비만은 당뇨병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젊은 당뇨병 환자가 많은 이유도 췌장 베타세포가 청년시기부터 혈당조절의 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손상되기 때문이다.
한국형 당뇨병 치료제에 거는 기대
의학적 분류에 따르면 췌장 베타세포가 없어 인슐린 분비가 전혀 되지 않는 당뇨병을 제1형(주로 소아당뇨병) 또는 인슐린 의존형 당뇨병이라 하고, 췌장 베타세포의 인슐린 분비 능력이 모자라거나 분비는 충분히 되지만 인슐린 자체가 혈당조절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인슐린 저항성) 당뇨병을 제2형 또는 인슐린 비의존형 당뇨병이라고 한다. 제1형 당뇨병은 유전적 성향이 매우 강하며, 인슐린이 전혀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허갑범 교수를 비롯한 일단의 의학자들은 제2형 당뇨병 중 인슐린 분비 능력이 조금 남은 마른 당뇨를 ‘제1.5형 당뇨병’으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결국 한국인에게 젊고 마른 당뇨병, 다시 말해 한국형 당뇨병이 많은 것은 서양인의 20~30%에 불과한 췌장 베타세포 수의 부족, 인슐린 분비 능력(혈당조절 능력)을 벗어난 ‘상대적 비만’(의학적으로 비만은 아니지만 인슐린 분비 능력을 고려했을 때의 비만)이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이들 가운데 체질량지수는 정상인데 아랫배가 볼록한 복부비만이 많고, 배가 전혀 나오지 않았지만 근육량이 지방보다 적은 사람도 적지 않다. 말랐거나 살이 쪘거나 모든 당뇨병 환자에게 식이·운동 요법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운동은 근육과 지방조직의 각 세포에 있는 당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혈관 속의 당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종국에는 비만을 해소함으로써 췌장 베타세포에 대한 부담을 급격히 감소시켜 인슐린 분비 능력을 되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금껏 한국형 당뇨병 환자에게 가장 많이 사용된 치료제가 췌장 베타세포를 강제로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기전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제1형 당뇨병은 인슐린 제제를 직접 주사). 아니면 간에서의 포도당 생산을 막는 기전의 약품들이 사용됐다. 그런데 이들 약물은 저혈당, 체중 증가, 빈혈, 인슐린 생산 기능 마비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당뇨병 전문의의 철저한 관리 아래 처방이 이뤄지는 형편이다.
이런 와중에 각종 부작용 유발의 가능성을 줄인 인크레틴 계열 약물이 지난해 말 개발됐다. 이들 약물은 췌장 베타세포를 쥐어짜고 괴롭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기존 치료제들과 달리, 췌장 베타세포의 인슐린 분비 기능을 돕고 손상된 부분을 복구시켜 기대를 모으고 있다(30쪽 기사 참조).
‘풍요 속의 빈곤’, 당뇨병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 걸리는 병이란 뜻에서 사용되는 말이지만 근본적으로 당뇨병에 취약한 체질을 가진 한국인에겐 그 의미가 각별하다. 우리는 조금 잘살게 됐다고 전통 식습관을 저버린 죄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아직도 음식을 두고 질보다 양에 목숨 거는 사람이 있다면 당뇨병으로 인해 정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30년 새 환자 6배 급증 400여 만명 … 2030년 세계 1위 ‘당뇨국’ 우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
“30년 전에 당뇨병 환자가 입원하면 의사들이 신기하다며 환자를 구경하러 갔다. 지금은 가족 중에 당뇨병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국민병’이라 할 만하다.”(연세대 의대 신촌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차봉수 교수)
“예전에는 300병상의 병원에 2, 3명이 고작이던 당뇨병 환자가 지금은 1000병상에 130명이 넘는다.”(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
국내 당뇨병 환자의 증가세는 이렇듯 가히 폭발적이다. 대한당뇨학회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07년 한국인 당뇨병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당뇨병 환자는 6배 급증했다. 20~79세 인구 기준 국내 당뇨병 유병률은 7.7%(269만4220명, 전체 환자는 286만명)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12~14위다.
이런 추세라면 2010년에 351만명(전 인구 추계 기준 7.08%), 2029년 455만명(8.97%), 2030년 545만명(10.85%)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에는 한국인 10명 중 1명이 당뇨병 환자가 된다는 얘기인데, 이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 이 연구보고서가 2003년 병원을 찾은 환자 수를 기준으로 한 것임을 감안하면, 병원을 찾지 않은 환자까지 포함한 국내 당뇨병 환자는 현재 약 400만명으로 추산된다.
우울한 뉴스는 또 있다. 최근 서울성모병원 윤건호 교수 등이 참여한 ‘아시아 지역의 당뇨-유행병학, 위험요인 그리고 병리생리학(Diabetes in Asia-Epidemiology, Risk Factors, and Pathophysiology)’ 논문은 2007년 2억4000만명이던 세계 당뇨병 환자가 2025년에는 3억8000만명으로 급증하며, 그중 60% 이상이 아시아 환자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의 주요 사망원인은 동양인의 경우 뇌졸중과 만성신부전이며, 서양인은 심혈관계 질환이다. 아시아인 환자에게 미세혈관 합병증(만성신부전, 당뇨망막증)이 주로 나타나는 것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당뇨병이 발생해 오랜 기간 노출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또 당뇨 환자는 비당뇨 환자보다 유방암, 자궁내막암, 췌장암, 간암 발병률이 30~40% 높았고, 당뇨가 있는 암 환자는 당뇨가 없는 환자보다 40~80% 높은 사망위험률을 보였다.
1970년 총인구의 1% 미만으로 추정되던 국내 당뇨병 환자가 30년 사이에 이처럼 급증한 까닭은 무엇일까. 왜 유독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 ‘당뇨병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일까. “의사들끼리는 ‘당뇨 치료는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다’고 말한다. 당뇨 약 투여와 효과가 사람마다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같은 환자라도 의사마다 처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만큼 당뇨 유발요인은 다양하다.”
차봉수 교수의 말처럼 당뇨병 환자가 폭증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당뇨병 환자들을 통해 그 원인을 추정할 수 있다. 윤건호 교수는 아시아 각국에서 당뇨병 환자가 급증한 이유로 서구화한 식생활과 트랜스 지방 섭취 증가, 도시화 및 산업화에 따른 신체활동 감소, 과도한 스트레스와 수면시간 부족, 흡연인구 증가 등을 꼽는다.
“보통 1인당 GDP가 4000~5000달러인 나라에서 당뇨병이 급격히 늘어나고, 4만 달러가 되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5000달러 수준의 나라는 국민들이 마음먹고 먹으면 양껏 먹을 수 있는 경제력이 있다. 우리나라도 4000~5000달러 시대인 1980년대에 당뇨 환자가 급격히 늘었고 2000년 들어 합병증 등으로 인한 내원 환자가 폭증했다. 우리는 그때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15년 이상을 사실상 방치한 거다.”
경제력에 힘입어 먹고 마실 게 많아졌지만 이를 소모하지 못해 ‘인덕(人德)’이 쌓이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우스갯소리지만 ‘바람 난 남편 빨리 죽이는 방법’으로 기름진 음식과 설탕을 매일 먹인다는 것도 틀린 말이 말이다.
복부 등에 체지방이 쌓이면 췌장에서 인슐린이 활발히 분비되고,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돼도 기능이 떨어져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 결국 췌장은 과로로 점점 기능이 약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발도상국 초입병 … 시·군 환자 증가세
평소 탄산음료나 정크푸드 등 ‘비만 유발 음식’을 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최근에 포도 한 송이를 먹었을 때와 30년 전 포도 한 송이를 먹었을 때는 당 섭취량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지난 30년간 품종개량으로 포도는 꾸준히 당도를 높였다. 어디 포도뿐이랴. 그만큼 환경이 ‘살찌는 환경’으로 변한 것이다.
대한비만학회지에 실린 논문(‘한국인의 10년간 비만 수준의 변화 양상 : 1997~2007’)에 따르면 ‘뚱뚱한 한국인’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한국인 남성의 경우 과체중군과 비만군이 1997년에는 각각 26.3%, 21.6%였지만 2007년에는 29.5%, 33.4%로 증가했다. 여성은 1997년 19.1%, 17.2%에서 2007년 각각 23.0%, 23.6%로 늘었다.
“당뇨를 흔히 ‘부자병’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개발도상국 초입병’이라고 할 수 있다. 탄산음료와 지방질 섭취는 늘지만 교육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서울 강남지역 당뇨 환자의 수가 감소 추세를 보이는 반면, 시·군·구 지역 환자들은 증가세를 보이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단순하게 비만이 당뇨병의 주범이라고 한다면, 서구에 비해 비만도가 훨씬 낮은 우리나라에서 당뇨병 유병률이 비슷하게 보고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윤 교수를 비롯한 다수의 연구진은 민족 또는 인종적 특성으로 눈을 돌린다. “아시아인에게는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의 양이나 기능이 약하거나, 혹은 기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
현재 아시아인은 서양인보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베타세포 양이 적어 당뇨병에 취약하며, 약간의 당 부하만 발생해도 베타세포의 기능이 조기에 심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 당뇨병학회는 ‘아시아인은 당뇨병 위험 인종’이라고까지 경고한 바 있다. 결국 한국인은 선천적으로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설상가상으로 식생활의 서구화와 운동량 부족으로 서양인보다 복부비만이 쉽게 쌓이고, 이렇게 쌓인 복부비만이 인슐린 저항성을 유도함으로써 당뇨병의 급속한 증가를 초래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스트레스와 흡연, 음주와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차 교수의 설명이다. “스트레스는 몸에 위기상황이라는 경고를 보내 몸으로 하여금 에너지를 만들어내게 한다. 결국 스트레스는 호르몬을 통해 혈당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일반적으로 중·후진국은 급격한 사회적 변화로 스트레스와 분노를 많이 받는다.”
‘만병의 근원’으로 꼽히는 흡연과 음주도 당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담배는 몸의 교감신경을 자극해 인슐린 저항성을 올릴 수 있고, 술자리는 음식 조절 등 ‘셀프 케어’가 어렵기 때문에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그렇다고 당뇨가 ‘죽음의 쓰나미’만은 아니다. 관리를 잘하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돈을 적게 벌어도 규모 있게 쓰면 되듯, 아시아인이 인슐린 분비 능력이 떨어진다면 거기에 맞게 생활하면 된다.
안경 쓰듯 관리 … U-헬스케어 기반 필요
“고교시절에 열심히 공부하면 평생을 잘 살 수도 있듯이 발병 초기에 관리를 잘하면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다만 합병증으로 전환되는 등 증상을 느끼는 시점에서 병원을 찾으면 늦다.” 윤 교수는 평균수명 60세일 때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은 문제 되지 않지만, 평균수명 80세에 육박하는 요즘은 건강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30, 40대에 당뇨병이 생겼다 해도 합병증이 올 때쯤인 60대에 죽어도 억울할 게 없다. 하지만 요즘은 100세까지 살게 하려고 치료를 한다. 당뇨 환자 중에는 비싼 약을 처방한다고 가끔 항의하는 사람이 있는데, 제때 투약하지 않아 심장병이라도 생기면 당뇨 약값의 4배는 더 든다. 당뇨는 안경을 쓰는 개념이다.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듯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윤 교수는 당뇨 같은 만성질환자가 늘면서 진료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환자와의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수시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U-헬스케어’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당뇨병이 없다면 사람은 끝없이 뚱뚱해지고 몸속의 혈관은 다 망가질 수 있다. 당뇨로 당이 빠져나가면서 그나마 체중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하느님이 인슐린 분비 세포를 몸속 장기 한 곳에서만 나오게 한 것은 사람들이 설마 이렇게 뚱뚱해질 줄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가난한 집 ‘소심남’이 당뇨병 잘 걸린다?
미국 포틀랜드주립대 보건간호대 시오반 매티 박사팀은 1965~99년 캘리포니아주 알라미다 카운티에 거주한 17~94세 5913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34년 동안 307명이 당뇨병에 걸렸는데, 이 중 65%가 가난한 집에서 자란 사람들이었다.
2007년 한국인 당뇨병 연구보고서 결과도 비슷하다.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입원하거나 사망할 확률이 높으며, 성인이 돼 과체중이나 비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져 적극적인 관리와 치료에 나서지 않았을 수도 있다. 차 교수는 또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가설이지만, 신생아 때 어떤 필요에 의해 인슐린 분비 능력이 결정된다고 본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은 어렸을 때 당을 거의 섭취하지 못해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 기능이 불필요했을 수 있다. 인슐린 분비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이 들어 살이 찌면서 인슐린 수요가 급증했을 때는 부하가 생겨 그만큼 인슐린을 공급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나 더. 스웨덴 카로린스카 의학연구소 앤더스 에크봄 박사팀은 남성 2127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심리적 고통’이 높은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제2형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2.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여성은 해당되지 않았다. 에크봄 박사팀은 여성들은 고민에 비교적 잘 대처하지만 남성들은 술이나 약물, 다른 활동으로 대처하는 등 스트레스 대처 방법이 다르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심장혈관, 신부전, 뇌졸중, 암 등 가리지 않고 파상공세
이진한 동아일보 교육복지부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세종은 당뇨병 때문에 시력이 약화되는 와중에도 훈민정음 창제에 심혈을 기울이다 결국 당뇨 망막병증을 초래했다고 그려졌다.
세종은 이 밖에도 두통, 이질, 부종, 수종다리, 풍증, 수전증 등 잔병을 달고 살았으며 족부가 썩어들어가는 당뇨병성 족부궤양까지 앓았다. 세종은 “한 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 가지 병이 또 생기매 나의 쇠로함이 심하다”고 말하며 합병증의 괴로움을 한탄했다고 한다.
당뇨병은 세종이 언급한 것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실은 그것이 유발하는 합병증 때문에 더욱 무서운 질환이다. 흔히 당뇨병을 고혈압과 비교하는데, 알고 보면 당뇨병이 훨씬 위험하다.
고혈압은 혈압을 잘 조절하면 큰 문제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지만, 조절하지 못하면 뇌혈관 질환인 중풍, 심혈관 질환인 심근경색·협심증 등을 일으킨다. 그런데 당뇨병은 고혈압으로 인한 합병증에 더해 신경계에까지 문제를 일으켜 통증을 유발하고 각종 장기를 손상시킨다. 그러다 결국 목숨까지 위협한다.
당뇨병 환자는 대부분 암에 취약
최근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를 포함해 미국 일본 중국 등의 대표자 7명이 연구에 참여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는 전립선암을 제외한 대부분의 암에 더 취약하고 사망률도 더 높다(20쪽 기사 참조).
물론 당뇨병으로 인한 직접적 합병증으로 볼 순 없지만, 당뇨병 환자가 대부분의 암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연구는 혈당이 암의 위험성을 높이는 주범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뇨병이 아니더라도 공복과 식후 2시간 혈당이 높을수록 암 발생의 위험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돼 암 발생에 당 대사와 인슐린 저항성이 일부 원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홍콩에서 발표한 한 연구에선 7000명의 2형 당뇨 환자를 조사한 결과, 당뇨병 진단 후 10년 이내에 환자의 30%가 사망하거나 암, 심혈관 질환, 말기 신부전(ESRD), 뇌졸중과 같이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는 질환에 걸린다고 밝혔다. 당뇨병이 무서운 것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합병증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특히 콩팥과 눈에 생기는 질환은 대표적인 당뇨합병증으로 생명에도 위험한 영향을 미친다.
콩팥에 생기는 질환으로 당뇨병성 신증을 들 수 있다. 당뇨병 발병 후 15년 정도가 되면 콩팥에 손상이 생겨 소변으로 단백질이 빠져나가는데, 이것이 심해지면 부종이 발생하고 더욱 진행되면 콩팥에서 노폐물이 배설되지 않아 만성 신부전이 된다. 결국은 요독증에 빠져 혈액투석을 하거나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따라서 평소 감기에 걸리거나 임신 중 과로를 하면 신장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 또한 자극성이 강한 음식을 즐기거나 과음, 과식, 단백질 과잉 섭취를 하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눈에 생기는 질환으로는 당뇨병성 망막이 있다. 정맥의 혈관벽이 약해져서 꽈리처럼 늘어나는 미소 정맥류와 혈관에서 나온 진물이나 출혈, 신생혈관의 증식 등이 망막에 발생해서 생기는 질환이다. 일단 당뇨병으로 진단받으면 정밀한 안과검진을 받아야 하며, 최소한 6개월에 한 번은 안저 검사를 받아 혈관증식성 변화를 감시해야 한다.
발, 다리 썩는 신경병증
당뇨합병증 가운데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20년 이상 당뇨병을 앓은 환자의 50~90%에서 발생할 정도로 흔하다. 매년 1만명 정도가 당뇨병성 신경병증으로 발과 다리를 잘라낼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합병증에 대한 당뇨병 환자의 인식은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 대학병원을 찾은 환자 216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니, 환자의 75%가 당뇨병성 신경병증 진단에 필요한 발 검사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당장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데다 초기에는 가벼운 이상 징후만 나타나기에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말초신경, 특히 발과 발가락의 신경이 손상되는 과정에서 극심한 통증 같은 감각이상을 나타낸다. 감각이상이 생기면 따끔거리거나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전기충격이 오듯 찌릿찌릿하기도 한다. 환자 중에는 발바닥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하다거나 발이 저리거나 지글지글한 느낌, 고춧가루를 뿌린 것 같은 느낌이 온다고 하는 이도 있다.
이러한 통증은 특히 밤에 심하다. 당뇨 통증의 큰 문제가 되는 것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환자도 25%에 이른다는 점. 먹먹함이나 무감각, 마비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스스로 질환을 깨닫기가 쉽지 않다. 이와 반대로 외부 자극을 느끼지 못해 상처가 나거나 뜨거운 것이 닿아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발에 생긴 작은 상처가 발을 절단해야 할 만큼 큰 상처로 악화되기도 한다. 따라서 다리 감각이 줄어든 당뇨병 환자는 매일 발을 잘 살피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환자가 신경병증으로 오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민간요법을 사용하다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킨다. 때문에 전문의와 상담해 적절한 통증치료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약물치료로 통증 완화와 통증으로 인한 수면장애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통증이 당뇨병성 신경병증의 시발점이라면 궤양과 절단은 종착점이다. 발은 심장에서 멀기 때문에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신경병증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굳은살, 무좀, 습진, 발톱이 파고들어 생긴 상처 등이 궤양으로 악화되는 수가 많다. 상처가 생기면 고혈당과 혈액순환 장애 등으로 회복이 더디거나 아예 낫지 않는다. 이런 상처에 추가로 감염이 생겨 상처가 크게 곪을 수 있다.
발에 궤양이 생기면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 시간을 지체하면 살과 뼈가 모두 썩어들어가는 ‘당뇨발’이 돼 결국 절단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궤양이 생기면 환자의 상태에 따라 외과 처치와 항생제 처방 등을 한 뒤 압력이 가해지지 않도록 발을 쉬게 해야 한다. 또한 당뇨병으로 진단을 받았다면 별다른 증상이 없어도 당뇨병성 신경병증 검진을 규칙적으로 받는 것이 좋다.
끝이 뾰족한 바늘을 수검자의 발바닥에 찔러 신경반응의 이상 유무를 알아보는 모노필라멘트 검사나 진동감각 검사로 신경병증을 조기 진단하면 혈당과 통증관리를 통해 발을 절단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시력장애나 배뇨장애, 소화장애 등 다른 증상이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처럼 ‘당뇨 대란’이 코앞의 현실로 다가오자 최근에는 좀더 적극적인 조기 치료가 강조되는 추세다. 우선 당뇨병 진단 즉시 당뇨약을 복용토록 하는 것이 일반화하고 있다. 과거엔 당뇨병으로 진단되면 즉시 약물투여를 하지 않고 식이요법과 운동 등 생활습관 교정부터 들어갔다. 생활습관 교정 후 2개월이 지나도 혈당이 조절되지 않으면 그때부터 약물복용을 시작해 단계적으로 용량을 올렸다.
공복 시 혈당치 기준 낮아져 … 110 넘으면 당뇨 진단
위원회는 이번 진단기준 설정을 위해 서울 목동, 경기 연천ㆍ안산, 전북 정읍 등 전국 4개 지역에서 그동안 대규모로 실시한 당뇨병 연구결과를 종합 분석했다. 전체 분석 대상자는 6234명으로 이들의 평균연령은 51.9세(18~99세), 평균체중은 60.3kg, 평균 공복혈당은 96mg/㎗, 식후 2시간 혈당 평균치는 122.6mg/㎗였다. 연구대상자들의 당뇨병 유병률(기준치 126mg/㎗ 적용)은 10.2%로 나타났는데, 이 밖에도 전체의 7%는 공복혈당장애(공복혈당 110~125mg/㎗)가 있었으며, 13.5%는 내당능장애(식후 2시간 혈당이 140~199mg/㎗)를 갖고 있었다. 공복혈당장애와 내당능장애는 향후 당뇨병으로 진행할 수 있는 당뇨 전단계라고 할 수 있다.
위원회는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당뇨병 진단을 위한 공복 혈당 기준치를 새롭게 분석한 결과 한국인의 최적 공복 혈당 값은 110mg/㎗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임수 교수는 “그동안 당뇨병 진단기준은 당뇨병 유병률이 높은 피마 인디언이나 미국 조사자료 등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며 “한국인은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기 때문에 공복혈당이 높지 않으면서도 당뇨병 유병률은 높아지는 등의 특색이 있어 이런 인종별 차이를 고려해 진단 기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현재 공복혈당이 126mg/㎗ 이하라 해도 한국인은 110mg/㎗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적절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공복혈당을 110mg/㎗ 이하로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일본도 현재 자체적인 당뇨병 진단기준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진한 동아일보 교육복지부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약물 복용, 바로 시작하라
그러나 이화여대 목동병원 내분비내과 성연아 교수는 “이러한 방법으로는 거의 모든 환자가 혈당조절에 실패하고 합병증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며 “당뇨로 진단되면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약을 투여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최근의 치료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당뇨병학회(ADA)는 2006년 이후 당뇨병 초기단계부터 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생활습관 교정과 함께 당뇨약 복용을 권장하고 있다.
이 같은 치료 방침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우리나라 등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는 당뇨병 발병을 예방하고 합병증을 막기 위해 당뇨 전 단계인 공복 혈당장애나 내당능장애 때부터 약물투여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상자기사 참조).
공복 혈당장애는 공복 시 혈당이 100~125mg/㎗, 내당능장애는 포도당 섭취 후 2시간 뒤의 혈당이 140~199mg/㎗인 경우다. 이처럼 조기 치료 지침이 강조되면서 진단기준도 더욱 엄격해졌다.
검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공복혈당이 100~125mg/㎗일 경우 경구당부하 검사를 받거나 반복해서 공복혈당 검사를 받게 했다. 경구당부하 검사는 당뇨병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시행하는 검사다. 즉 공복 시 혈당치와 포도당 섭취 후 2시간 뒤의 혈당치를 함께 검사하는 것이다. 공복 시 혈당 검사로 대부분의 당뇨병 발병 유무를 확인할 수 있지만, 혈당 이상이 있는 사람은 경구당부하 검사의 반응성이 더 낫다.
당뇨병에서 최후의 치료수단으로 꼽히는 인슐린 투여도 초기단계에서 시행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당뇨병학회와 유럽 당뇨병학회(EASD)는 최근 제2형 당뇨병 치료에 대한 개정 권고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조기 인슐린 치료는 특히 당화혈색소(HbA1C) 수치가 8.5%를 초과하는 환자에게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 인슐린 사용은 당화혈색소 수치가 9%에 이를 때까지 지연되고 있으며, 많은 제2형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 치료를 시작할 무렵이면 이미 당뇨 관련 합병증이 진행된 상태에 있다고 미국 및 유럽 당뇨병학회는 지적했다.
국제당뇨연맹(IDF)이 2003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세계 당뇨병 환자 중 50% 이상은 조기진단과 치료시기를 놓쳐 실명, 신장병, 족부 절단과 심장혈관 질환 등 심각한 합병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인 조기 치료만이 살길이라는 학계의 목소리는 설득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이렇듯 위험한 당뇨병 합병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혈당관리와 식습관 조절이다. 다음에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강북삼성병원 당뇨전문센터의 박성우 센터장은 “당뇨병 합병증으로 인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형외과, 안과, 신장내과 심장내과 등 합병증과 연계된 진료과를 찾아 정기적으로 검사받고 합병증을 초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진료과가 많기 때문에 방문하는 시기를 잊어버릴 경우를 대비, 합병증 관리 수첩을 만들어 표시해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런 가운데 5월 한국릴리와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이 공동 판촉으로 출시한 심발타(성분명 둘록세틴)는 통증 감소에 효과적이면서 우울장애를 함께 줄일 수 있는 약이다(당뇨병성 말초 신경병증 약물로서 미국 FDA 최초 승인). 기존 치료제들이 1일 2회 혹은 3회 투약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는 데 비해 심발타는 하루 한 번(60mg) 용량을 조절할 필요 없이, 식사와 무관하게 먹으면 된다. 또 복용 후 1주 내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존 치료제보다 치료비가 낮아질 것은 당연하다. 야간통증 개선효과도 입증됐다.
이 약이 환자와 의료계의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당뇨병성 말초 신경병증 통증 환자들의 35%가 범불안장애, 28%가 중증의 우울장애를 경험하는 현실에서 통증과 주요 우울 증상을 함께 치료하기 때문이다. 국내 당뇨병성 말초 신경병증 통증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08년 4분기 1045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0%가량 증가했다.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대표적인 성인병으로 알려진 당뇨병.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성인만의 질환이 아니다. 1970~90년대만 해도 50대 이상의 중년 환자가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은 20, 30대는 물론 어린이에게서도 발견될 만큼 환자의 연령대가 낮아졌다.
당뇨병엔 성인에게 많은 ‘2형 당뇨병’과 소아에게 많은 ‘1형 당뇨병’ 두 가지가 있다. 1형은 췌장에 있는 인슐린 분비 세포가 손상돼 인슐린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발생하고, 2형은 인슐린은 만들어지지만 인체의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세포 안으로 전달하는 원래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원인(혈당조절 실패, 인슐린 저항성)이다. 요즘은 어린이에게서 ‘2형 당뇨병’도 증가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15세 미만의 당뇨병 환자가 매년 3.4%씩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5년 현재 소아당뇨로 진료를 받은 어린이가 4400여 명에 이르는데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한강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오필수 교수는 “5~7세부터 사춘기 이전의 소아의 경우는 공동생활을 해 바이러스에 감염될 기회가 많아지는 게 이유가 될 수 있고, 사춘기 연령에선 성호르몬과 성장호르몬 등 각종 호르몬이 문제가 된다.
이런 호르몬의 혈당증가 작용으로 발병 잠재성을 가진 사람에게서 당뇨병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즉 감기 바이러스나 각종 장염 바이러스 또는 풍진·볼거리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를 막기 위해 신체의 자가면역 기전이 활성화하고, 자가면역은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을 적으로 파악해 공격, 파괴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춘기엔 이와 달리 신체 변화, 스트레스의 증가 등으로 성호르몬을 비롯한 각종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면서 혈당을 올린다는 것.
운동부족 비만으로 2형도 증가세
최근엔 서구화한 식생활과 운동부족 등으로 비만 아동이 많아지면서 소아 2형 당뇨병도 증가했다. 미국에서는 1997~2003년 제2형 당뇨병에 걸린 어린이 환자가 200% 급증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제1형 당뇨병 환자가 대부분이었지만, 비만아가 증가하면서 2형 당뇨병에 걸린 어린이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1985년 이전에는 소아에서의 제2형 당뇨병 발병이 알려진 바 없으나 1996년 이후 급속히 증가해 2000년도에는 소아당뇨병 환자의 4분의 1이 제2형 당뇨병을 앓는 것으로 추산된다. 제2형 당뇨병은 95% 정도가 당뇨병 가족력이나 비만과 관계가 있다. 소아당뇨의 증상은 성인당뇨와 비슷하다. 아이가 갑작스럽게 물을 많이 마시고 소변을 많이 보면 당뇨병을 의심해야 된다.
또 많이 먹는데도 몸무게가 줄고 피곤해하는 증세도 동반된다. 당뇨병 합병증의 하나인 케톤산혈증이 발생하면 의식이 흐려지고 심한 복통, 구토 등의 증세로 병원을 찾게 되는데 이때 처음 당뇨병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한다. 어린이는 신체가 계속 성장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당뇨병 치료방법도 어른과는 좀 다르다. 어른처럼 식사량을 제한하는 등 엄격한 식사요법을 할 경우엔 성장 부진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하루에 섭취하는 칼로리는 정상 소아들과 같도록 도와준다. 다만 또래들과 어울리다 먹기 쉬운 과자나 사탕 등의 군것질을 하지 않도록 잘 교육해야 한다. 오필수 교수는 “원칙적으로 식이제한보다 적절한 성장과 발달에 필요한 영양요법이 필요하다”면서 “칼로리 구성은 탄수화물 55%, 지방 30%, 단백질 15%로 하되 탄수화물 중 70%는 전분 같은 복합탄수화물로 섭취하며 설탕 같은 단당류 섭취를 가능한 한 억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또 바른 식습관을 익힐 수 있도록 아이에게 식사일기를 쓰게 한다. 세 끼 식사와 간식 등 하루 종일 먹은 음식의 종류와 분량을 일기장에 써 부모와 함께 열량을 따져보고 부족한 영양소는 없는지,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있는지 매일 스스로 평가하게 한다. 또한 당뇨병을 앓는 소아에게 운동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혈당조절이 잘되는 소아당뇨의 경우 운동은 인슐린을 필요로 하는 장기에서 인슐린 감수성(흡수율)을 증가시켜 혈당조절에 필요한 인슐린 요구량을 감소시킨다.
일주일에 4~5일간 열심히 운동하면 혈당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지속되는데, 이는 운동으로 인한 효과가 운동 후에도 지속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전거, 배드민턴, 줄넘기, 등산, 조깅 등 과격하지 않은 운동을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배가 고플 때는 운동을 하지 않도록 하며, 혈당이 높아지는 식후 30분~1시간에 운동을 시킨다. 식후에 운동을 하면 혈당의 급격한 상승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아이가 운동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게 저녁식사 뒤 부모가 함께 나가서 운동하는 것이 좋다.
합병증 발생위험 성인보다 더 높아
하지만 아이들의 경우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심한 운동으로 저혈당이 올 수도 있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저혈당 때문에 아이가 쓰러지거나 경련 등의 응급사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장에서 잘 흡수되는 사탕이나 주스 등을 늘 지니게 해서 담임선생님이나 친한 친구들이 아이에게 먹일 수 있게 미리 알린다. 또한 학교에서 몸에 이상 징후가 있을 경우 혈당을 측정하고 인슐린 용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보건교사에게도 부탁해놓는 것이 좋다.
강북삼성병원 당뇨전문센터 박성우 센터장은 “소아당뇨는 당뇨병에 걸려 있는 기간이 성인보다 길기 때문에 합병증 발생 위험도 그만큼 높다. 아이가 심리적 박탈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부모와 함께 생활습관을 잘 만들어나가야 하며,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심리치료나 음악치료 등으로 안정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소아당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형 당뇨병의 경우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하루 3, 4회 주사를 놓는 적극적인 인슐린 치료를 하는 것이 요즘 추세다.
소아당뇨의 경우 합병증 관리도 성인보다 더 신경 써야 한다. 사춘기 이전에 발병하면 발병 5년 뒤부터는 매년 한 번씩 당뇨 합병증 검사를 해야 하며, 사춘기 때 발병하면 2년 뒤부터 매년 한 번씩 합병증 검사를 해서 합병증을 일찍 차단하기를 권장한다. 외국에는 아이들이 싫어하는 주사제 대신 코로 흡입하는 인슐린제제가 나와 있으며, 먹는 인슐린제제와 췌장 이식수술 등은 현재 임상시험 단계에 있다.
당뇨병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관해기’에 대한 것이다. 소아당뇨는 발병 초 많은 인슐린 투여를 필요로 한다. 그러다 짧게는 수일, 길게는 수개월 뒤에 인슐린 요구량이 감소하고, 인슐린을 투여하지 않아도 정상 혈당이 유지되는 시기가 온다. 이를 ‘관해기’라 하는데 이 시기를 놓고 당뇨병이 완치됐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현상은 사라지고 인슐린 요구량이 다시 증가한다. 따라서 적은 양의 인슐린이라도 지속적으로 투여해야 한다. 인슐린 공급이 중단되면 인슐린에 대한 항체가 형성되고 이 항체는 인슐린의 저항성을 키워 더 많은 인슐린을 요구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유전적 경향이 강한 1형 당뇨병과 달리 2형 당뇨병은 예방이 가능한 질환이다. 채소와 육류를 골고루 먹게 하고 아이가 표준 체중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모가 챙겨야 한다.
2형 당뇨병은 증상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고 서서히 발병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아이의 병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당뇨병 가족력이 있거나 아이가 비만하다면 정기적으로 소아과를 방문해 소변검사로 당 수치를 체크하는 것이 좋다. 또 신생아 때는 분유보다 모유를 먹이는 것이 당뇨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당뇨전문의의 소아당뇨 치료·예방을 위한 10가지 제언
2 TV나 비디오 시청, 또는 게임 시간을 하루 평균 2시간 미만으로 제한한다.
3 집안일을 거들도록 독려한다.
4 안전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도보로 이동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고, 국가는 그런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실제로 영국에서는 걷는 양을 늘리기 위해 스쿨버스를 없애려 하고 있다).
5 각급 교육기관에선 운동, 음식 섭취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
6 스포츠나 중등도의 신체적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7 방과 후 걷거나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8 사회적 레크리에이션 시간이나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9 줄넘기처럼 손쉽게 할 수 있는 적정한 운동을 격려한다.
10 가족이 함께 야외활동이나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계획한다.
당뇨병 치료의 역사는 ‘혈당과의 전쟁’이었다. 당뇨병은 신체 각 세포로 흡수되지 못한 혈당이 혈관 속을 돌아다니며 온갖 나쁜 짓을 해 발병하는 질환이다. 따라서 당뇨병 치료의 최대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 혈관 속에 남은 혈당을 제거하는 것, 즉 ‘혈당강하’일 수밖에 없다.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은 췌장 베타세포에 의해 생성되며, 혈당을 각 세포에 흡수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해서 ‘혈당 청소부’라고도 불린다. 신체가 자체 생산하는 혈당강하 치료제인 셈. 당뇨병은 인슐린이 아예 없거나, 조금 부족하거나, 있어도 몸에서 인슐린을 감지하지 못해(인슐린 저항성) 생긴다. 인슐린 분비 기능이 전혀 없는 경우를 제1형 당뇨병(인슐린 의존형)이라 하고, 나머지의 경우를 제2형 당뇨병(인슐린 비의존형)이라고 하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2형 당뇨병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1형 당뇨병 환자의 경우, 외부에서 인슐린 제제를 제때 공급하지 않으면 각종 당뇨합병증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췌장 베타세포 괴롭히는 기존 치료제
서양 최초의 당뇨병 치료제는 동물에서 유래한 인슐린 제제였다. 국내에선 당뇨병을 아직 ‘소갈증’이라고 부르던 1922년, 서양에선 이미 동물의 췌장에서 뽑아낸 인슐린을 당뇨병 환자에게 주사했다. 사람에게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도록 복잡한 정제 과정을 거쳤지만 역시 사람의 것이 아니기에 장기간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큰 효용도 없었다. 그럼에도 대안이 없었기에 이후 60년간 유일한 당뇨병 치료제로 군림했다.
그러던 1982년 인체의 인슐린과 물리화학적, 생화학적, 면역학적으로 동등한 인슐린 제제(휴물린, 일라이 릴리社)가 유전자 조작기술에 의해 탄생했다. 오랜 투병으로 인슐린 분비 기능이 상실된 제1형 당뇨병 환자들에겐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동물 인슐린 제제와 비교해 혈중 인슐린 농도의 상승이 빠르고 혈당강하 작용이 신속하며 불순물도 나오지 않았다.
지방조직 위축, 알레르기 같은 부작용도 없었다. 이후 당뇨병 환자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환자의 편의성을 고려한 여러 종류의 인슐린 제제가 선을 보였다. 문제는 당뇨병 환자의 대부분이 인슐린 분비 능력이 남아 있거나 인슐린 저항성이 있는 제2형 당뇨병이란 점이다. 그래서 이후에는 부족한 인슐린의 분비를 늘리거나 인슐린 저항성을 줄이는 치료제가 쏟아져 나왔다.
크게 나누면 췌장 베타세포를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강제하는 계열(인슐린 분비 촉진제), 그리고 간에서의 포도당 과잉 생산을 막고 근육 등 말초조직에서의 포도당 사용을 증가시켜 상대적으로 인슐린 저항성을 줄이는 계열의 치료제가 주류를 이뤘다. 국내에서는 현재까지 이들 치료제가 주로 처방된다. 지난해 국내 당뇨병 치료제의 매출액(건강보험 적용 치료제에 한정)은 3320억원으로, 그중 인슐린 분비 촉진제의 시장점유율은 32.1%, 인슐린 저항성과 간에서의 포도당 분비 감소에 관계하는 치료제의 시장점유율은 33.7%였다.
인슐린 제제의 매출은 이들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췌장 베타세포를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강제 촉진하는 계열의 치료제는 올 상반기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동기 대비 3.2%포인트 감소했다.
제약업계에서 한 약물군의 시장점유율이 이처럼 단기간에 10%나 격감하는 일은 드문 현상.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인슐린 분비 촉진제는 단기적으로 혈당강하 효과가 좋은 반면, 저체중 또는 체증 증가 같은 부작용이 적지 않고,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단점을 지녔다.
췌장 베타세포의 수를 늘려가거나 손상을 줄이면서 인슐린 분비 능력을 활성화하는 게 아니라, 인슐린을 분비하도록 계속 자극만 하다 보니 췌장 베타세포가 견디지를 못하는 것. 췌장 베타세포가 심각하게 손상되면 인체는 인슐린 분비 능력을 영원히 잃을 수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인체의 혈당강하 대사작용을 돕고, 그 시스템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치료제가 나와 인슐린 분비 촉진제 시장의 ‘틈’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한국 MSD의 ‘자누비아’와 한국릴리의 ‘바이에타’ 등 인크레틴 기반의 치료제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제2형 당뇨병 중에서도 마르고 젊은 사람이 잘 걸리는 ‘한국형 당뇨병’의 가장 적합한 치료제로 알려졌다. 앞의 기사에서도 설명했듯, 한국형 당뇨병의 특징은 인슐린 분비량을 좌우하는 췌장 베타세포의 수가 서양인에 비해 70~80% 적어 혈당조절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
그래서 마르고 젊은 당뇨병 환자가 전체 당뇨병 환자의 50~ 60%에 이른다. 이들 인크레틴 제제는 한국형 당뇨병의 가장 큰 취약점인 약한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을 향상시켜 자연스럽게 인슐린 분비를 늘리고 혈당조절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성모병원에는 인크레틴 기반의 치료를 전문으로 시행하는 ‘인크레틴 클리닉’도 생겨났다.
혈당조절의 ‘최고사령관’ 인크레틴
인크레틴 제제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기존 인슐린 분비 촉진제들의 고질적 부작용인 저혈당, 체증 증가 같은 부작용이 적기 때문. 기존 치료제들(주로 설포닐우레아 계열)은 환자의 현재 혈당 상태와 관계없이 췌장 베타세포를 자극해 인슐린을 쥐어짜내기 때문에 저혈당을 유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환자의 혈당이 정상 상태인데 강제로 인슐린이 공급되면 혈당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혈당은 당뇨병과 반대로 혈관 속 포도당이 필요량보다 모자라는 상태(혈당치 60mg/㎗ 이하, 2007 대한당뇨병학회). 저혈당 상태에 이르면 몸 떨림, 식은땀, 불안, 가슴 떨림, 어지럼, 공복감, 심한 피로감, 집중 장애, 무기력, 혼수상태 같은 증상이 나타나며 간혹 혼수상태가 사망으로 연결되는 등 매우 위협적인 질환이다. 또 과도한 인슐린 분비는 환자의 체중 증가로도 이어진다.
인슐린은 혈관 속에 남는 포도당을 체내에 축적하는 기능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크레틴은 소장에서 분비되는 체내 호르몬으로, 췌장 베타세포의 인슐린 분비 능력을 향상시킨다. 음식이 식도와 위를 거쳐 소장으로 내려가면 인크레틴은 일단 췌장 베타세포에게 인슐린을 어느 정도 합성할지를 지시한다. 하지만 음식이 들어온다고 무조건 인슐린 분비를 명령하는 것은 아니다.
혈중 포도당을 파악한 후 혈당이 높을 때만 인슐린 분비를 명령한다. 더욱이 인크레틴은 췌장 알파세포에게 간에서의 포도당 생성을 촉진하는 글루카곤 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하게 함으로써 인슐린의 혈당조절 기능을 우회적으로 돕는다. 이와 반대로 혈당이 지나치게 낮을 경우에는 혈당을 높여 혈당의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 즉 알파세포에게 글루카곤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함으로써 포도당을 증가시키고, 베타세포에겐 인슐린 분비를 억제하도록 명령하는 것.
인크레틴 제제를 아무리 먹어도 저혈당 현상이 매우 적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야말로 혈당조절 대사의 중심에 있는 ‘컨트롤 타워’이자 ‘마에스트로’의 기능을 하는 존재가 인크레틴인 것이다. 인크레틴은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사멸을 억제시키는 데도 관여함으로써 비만 등으로 손상된 베타세포의 인슐린 생산 능력을 개선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크레틴의 ‘똑똑한’ 혈당조절 능력과 췌장세포 보호기능을 이용한 치료제가 바로 인크레틴 제제로 총칭되는 약물이다.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한국 MSD의 DPP-4 억제제 ‘자누비아’(성분명 : 시타글립틴)와 한국릴리의 인크레틴 유사체 ‘바이에타’(성분명 : 엑세나타이드)가 그것이다.
먹는 인크레틴 제제 ‘자누비아’
자누비아는 인크레틴의 활성화를 방해하는 ‘DPP-4’ 효소의 작용을 선택적으로 억제함으로써 인크레틴이 혈당조절 대사와 췌장 베타세포 보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약물이다.
DPP-4 효소는 인크레틴이 소장에서 생성되자마자 1~2분 사이에 그중 80%를 비활성화한다. 결국 식후에 분비된 인크레틴의 15~20%만이 췌장과 간에 도달해 혈당조절 기능을 하는 것. 인크레틴 분비량이 현저하게 감소돼 있는 당뇨병 환자의 경우 활성화한 인크레틴의 양이 더욱 적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자누비아는 이처럼 췌장 베타세포와 알파세포로 하여금 혈당이 지나치게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을 막게끔 한다. 따라서 이 치료제는 저혈당, 체중 증가 등의 부작용이 적거나 거의 없다. 인크레틴이 제대로 작용하면 인슐린 분비가 최적화하기 때문에 과잉 생산된 인슐린에 의한 잉여 포도당 축적 대사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인크레틴에 식욕 억제 기능이 있다는 점에서 자누비아를 비롯한 DPP-4 억제제는 체중 조절에 기여할 수도 있다.
한국 MSD 관계자는 “DPP-4 억제제는 인슐린 분비 능력이 약해진 당뇨병 환자의 췌장 베타세포를 직접 자극하지 않고 보호하는 기능을 하므로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게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임상을 통해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자누비아의 경우, 한국 중국 인도의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18주간 조사한 결과, 평균 당화혈색소가 1.03% 감소했으며 특히 한국인은 평균 1.37% 감소로 가장 높은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아직 이론적으로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DPP-4 억제제가 췌장 베타세포의 재생에 기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동물실험에선 이미 재생효과가 입증됐으며, 인체에 대해서는 각종 지표를 통해 재생에 관한 자료가 축적되는 과정에 있다. 자누비아는 국내에 출시된 다른 DPP-4 억제제가 하루 2번 먹는 것과 달리, 식사와 관계없이 하루 100mg 한 알만 복용하면 된다. 12시간 이상 약효가 지속된다는 뜻이다.
더욱이 오랜 당뇨병으로 신장 기능이 약화된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안전성도 검증됐다.
지난해 9월 유럽당뇨병학회(EASD) 연례회의에서 발표된 임상시험 분석에 따르면, 총 6139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2년간 자누비아와 위약 또는 기존 치료제를 투여한 후 이상반응을 비교한 결과 자누비아의 안전성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자누비아를 기존 치료제와 함께 복용할 경우 부작용이 줄어들고 추가로 혈당이 낮아지는 효과도 나타났다. 2009년 6월 미국당뇨병협회(ADA) 연례회의에서는 자누비아가 단독 요법 혹은 메트포민(간에서 포도당 생성 억제, 인슐린 저항성 약화)과의 병용요법을 통해 혈당이 유의미하게 강하되고, 이 효과가 최소 2년에 걸쳐 지속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한 메트포민으로 충분히 혈당조절이 되지 않은 환자에게 자누비아를 추가 투여한 결과, 다른 치료제처럼 혈당 개선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저혈당과 체중 감소 현상은 극히 드물었다. 이에 따라 한국 MSD가 지난 2월 선보인 치료제가 바로 자누비아와 메트포민을 섞어 만든 ‘자누메트’다. 자누비아와 메트포민의 장점을 아우른 약으로,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세 가지의 주된 결함, 즉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 저하, 인슐린 저항성, 간에서의 포도당 과다 생성을 한꺼번에 해결한다.
인크레틴 유사체 ‘바이에타’
당뇨병 치료의 트렌드가 인슐린에서 인크레틴으로 변화하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치료제는 2005년 릴리사(社)가 개발한 인크레틴 유사체 ‘바이에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크레틴 유사체, ‘GLP-1(Glucagon Like Peptide·글루카곤 유사 펩티드) 효현제’라고도 불리는 바이에타는 혈당이 높아졌을 때에만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기전을 통해 저혈당의 위험을 현저히 낮추고,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베타세포를 복구해 당뇨병의 근본 원인을 치유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바이에타는 자누비아 등의 DPP-4 억제제와 달리, 인체에 인크레틴과 같은 성분의 약물을 직접 주사함으로써 인크레틴이 수행하는 혈당조절과 간에서의 포도당 과잉 생성 억제 작용을 돕는다. 특히 기존의 먹는 치료제나 인슐린 주사제의 잠재적 부작용인 저혈당 쇼크, 심장발작, 고인슐린혈증, 비만 등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을 되살리는 등 좀더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해 국내외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인크레틴 계열의 당뇨병 치료제는 혈당 감소 효과는 비슷하지만 체중을 증가시키는 인슐린 제제와 달리 지속적인 체중 감량 효과도 거둘 수 있어 미국과 유럽에서 출시될 당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미국당뇨병학회, 유럽당뇨병학회가 생활습관 개선과 메트포민 복용으로 1차 치료 목표로 삼은 혈당 수치를 달성하거나 유지하지 못한 당뇨병 환자들에게 바이에타 같은 GLP-1 효현제 사용을 2차 표준 치료로 권고함으로써 새로운 치료제로 인정받았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크레틴 유사체인 바이에타는 췌장 베타세포가 부족해 인슐린 분비 장애를 겪는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게 특히 적합한 치료제.
바이에타는 힐러몬스터 도마뱀(Gila monster lizard)의 침에 췌장 기능을 되살리는 호르몬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개발됐다. 손상되거나 부족한 한국인의 췌장 베타세포를 바이에타가 복원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힐러몬스터 도마뱀은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의 사막지대에 서식하는 도마뱀으로 1년에 서너 번만 먹이를 먹고, 한 끼니에 자기 체중의 3분의 1에 달하는 먹이를 섭취한다. 이 도마뱀은 먹지 않는 기간에는 에너지를 보전하기 위해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 기능이 쇠퇴했다가 먹을 때가 되면 췌장 기능이 되살아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에타는 이에 주목, 힐러몬스터 도마뱀의 침 성분에서 ‘엑센딘-4’를 추출한 후 재합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주성분은 엑세나타이드. 아직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엑센딘-4는 힐러몬스터 도마뱀이 섭취한 영양소를 처리 및 저장하는 작용을 돕고 쇠퇴한 췌장 기능을 되살리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국내에 출시된 바이에타는 펜 타입 주사제로 5mcg와 10mcg 두 종류가 있으며, 아침식사와 저녁식사 후 하루 2차례 환자가 직접 투여하면 된다. 미국은 2005년 4월, 유럽은 2006년 11월 시판을 승인했다.
허갑범 박사의 ‘한국형 당뇨’ 맞춤 치료법 “식사·운동조절은 기본, 약물요법은 원인 따라 처방”
허갑범 허내과의원 원장·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huh7181827@hanmail.net |
우리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영양소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 섭취한 음식은 포도당과 필수영양소로 분해돼 몸속 곳곳에서 사용된다. 이때 포도당과 각종 영양소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려면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필요하다. 인슐린은 췌장에서 생성되는 호르몬으로, 당뇨병이 없는 정상인이라면 음식 섭취 후 혈당이 올라가면 췌장에서 이를 감지해 인슐린을 자동적으로 분비한다.
그러면 인슐린에 의해 혈액 속의 포도당이 우리 몸 세포 속으로 흡수돼 혈당 농도가 정상 범위로 유지된다. 그러나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 분비가 안 되거나 제대로 분비되더라도 혈당을 낮추는 기능을 하지 못해(인슐린 저항성) 혈액 속의 포도당이 에너지원으로 이용되지 못하고 혈당이 올라가게 된다. 이때 필요 이상으로 남아도는 혈당은 소변으로 나오는데 이런 상태가 바로 당뇨병이다.
당뇨병의 세 가지 분류
당뇨병 환자는 포도당 외에 아미노산을 포함한 많은 영양소가 세포 속으로 잘못 들어가 ‘풍요 속의 빈곤’ 상태(2차성 영양결핍증)에 빠지기 쉽다. 인슐린 분비의 결함이 아니라 인슐린 저항성이 원인인 당뇨병 환자는 흔히 고혈당 이외에 복부비만, 고혈압, 혈청 중성지방의 증가, 양성 콜레스테롤의 감소(이상지질혈증)를 보이는데, 이러한 복합적인 대사장애를 가리켜 ‘대사증후군’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당뇨병을 관리하려면 먼저 체내 인슐린 분비 정도에 따른 당뇨병의 병형 분류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당뇨병은 크게 제1형 당뇨병과 제2형 당뇨병으로 나눌 수 있으나,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 중에는 일부 제1.5형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제2형 당뇨병이다. 당뇨병은 초기 치료 기회를 놓치고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근본적인 치료는 물론 합병증 예방도 어려운 병이다(유물효과).
당뇨병 치료는 대부분 완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고혈당을 포함한 정상 대사 상태를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올바른 생활습관을 실천해야 하므로 환자들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치료가 어렵다. 최근 미국 의학회지(JAMA)에 실린 당뇨병 환자의 주요 사망원인을 보면 한국을 포함한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사람들은 뇌졸중과 만성신부전이 가장 큰 원인인 반면, 서양인은 심혈관계 질환으로 보고됐다.
당뇨병은 일단 여러 합병증이 발생하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하며, 사망률을 줄이려면 특히 심혈관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이 당뇨병 치료의 주요 목표가 된다. 이를 위해선 발병 초기부터 정상 혈당을 유지하고 고혈압을 포함한 여러 심혈관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당뇨병을 조절하는 구체적 방법에는 식사요법, 운동요법, 약물요법이 있다. 그러나 이들 치료법은 각각 혈당을 낮추는 기전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고혈당 원인을 파악해 알맞게 적용할 때 만족할 만한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실제로 제2형 당뇨병 환자는 비만증, 고혈압, 고지혈증 등을 같이 가진 경우가 많아 이를 함께 치료하는 것이 혈당조절 못지않게 심혈관 합병증 예방을 위해 중요하다.
당뇨병의 치료 원칙은 우선 병형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인슐린 분비가 거의 안 되는 1형 당뇨병 치료에서는 인슐린 투여가 필수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인슐린만으로 혈당조절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요법이 필요하다. 2형 당뇨병 환자는 절반 이상이 과체중이므로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식사요법과 더불어 운동요법이 필요하다. 이를 1~2개월 동안 철저히 시행해도 혈당조절이 잘 안 될 때는 경구혈당 강하제나 인슐린 치료를 써야 한다.
1.5형 당뇨병 환자는 체중이 적게 나가고 영양상태가 불량하며 혈당치도 중등도(공복혈당 200mg/㎗ 이상) 이상으로 높기 때문에 대부분 인슐린 투여가 필요하며, 단백질을 포함한 균형 잡힌 영양공급을 해 체중을 정상체중 범위로 늘려야 한다. 국내 당뇨병 임상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인 2형 당뇨병은 전신성 비만보다는 복부비만(대사성 비만)을 가진 환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며, 당뇨병 발병 후에 심한 체중감소를 보이는 등 임상 양상이 서구인과 크게 달라 당뇨병 발생기전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인 2형 당뇨병 환자의 60~70%는 인슐린 분비가 비만의 정도에 의해 영향을 적게 받는 대신, 나머지 30~40%는 인슐린 저항성 없이 인슐린의 분비 감소가 혈당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인슐린 저항성은 당뇨병뿐 아니라 고혈압, 이상지혈증 및 혈액응고 항진(혈전증)에도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포괄적인 혈관·대사질환의 개념(대사증후군)이 최근에 밝혀졌기 때문에 단순한 혈당관리보다는 고혈당을 일으키는 원인을 파악해 그에 맞는 치료(맞춤치료)를 하는 것이 옳다.
다음의 두 경우는 맞춤형 치료에 관한 실제 사례로, 국내에선 매우 흔한 환자 유형 가운데 하나다.
<사례 1> 비만한 2형 당뇨병
5년 전 혈당이 높아(공복혈당 240mg/㎗) 당뇨병을 진단받은 기업인 김모(55) 씨. 지난 5년간 꾸준히 인슐린 치료를 통해 혈당을 조절했지만 근래에는 인슐린 주사로도 혈당이 조절되지 않았다. 인슐린 치료를 시작할 당시에는 혈당이 잘 조절됐지만 체중이 4~5kg 늘고 배가 나오면서 조절이 잘되지 않았던 것. 병원을 찾았을 때 그의 신장은 170cm, 체중은 76kg.
체질량지수가 26kg/m²로 경증 비만증이 있었고(25kg/㎡ 이상이면 비만), 배 둘레가 96cm(정상 남성은 90cm 이하)로 복부비만이었다. 혈압은 160/100mmHg(정상치는 130/85mmHg 이하)로 고혈압이 있었으며, 혈청 중성지방은 250mg/㎗(정상치는 150mg/㎗ 이하), 양성 콜레스테롤은 35mg/㎗(정상치는 40mg/㎗ 이상)로 이상지질혈증이 있었다.
인슐린 내성 검사 결과 인슐린은 정상적으로 분비되고 있었지만 인슐린 저항성을 보였다. 경동맥 초음파 검사에서 동맥경화증도 발견됐다. 이 환자는 당뇨병 이외에 대사증후군의 모든 요소(복부비만, 고혈압, 이상지혈증)를 갖고 있고 이미 경동맥 경화증도 와 있었기에 이 상태를 유지한다면 뇌경색이나 심근경색이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다.
고혈당은 인슐린 분비 감소가 아니라 인슐린 저항성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인슐린 주사를 중지하고 인슐린 저항성을 완화하는 치료를 해야 했다. 이 환자의 인슐린 저항성의 원인은 과식과 운동부족에 따른 복부비만에 있기 때문에 엄격한 식사조절(하루 2000kcal)과 규칙적인 운동(하루 1시간 걷기)을 권장하고 인슐린 주사 대신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는 경구약(글루코파지)을 사용했다.
이렇게 치료한 지 두 달 만에 혈당은 130mg/㎗로 떨어졌고 당화혈색소도 7%로 호전됐으며, 고혈압과 혈청 중성지방 및 양성 콜레스테롤도 현저하게 개선됐다. 체중도 76kg에서 71kg으로 줄었으며 허리둘레도 96cm에서 90cm로 줄어 대사증후군의 여러 요소도 크게 호전됐다.
<사례 2> 저체중 1.5형 당뇨병
회사원 김모(40) 씨는 3개월 전 다음, 다뇨, 다식 등 당뇨병의 3대 증상이 갑자기 발생하면서 체중이 5kg 줄어 병원을 찾았다. 개인의원에서 경구혈당강하제(설폰요소제)를 처방받았으나 혈당조절이 잘 안 돼 인슐린 주사를 권고하자 필자를 찾아왔다. 내원했을 때 공복혈당은 280mg/㎗, 당화혈색소(HbA1c)는 13%였고 혈압, 중성지방, 콜레스테롤은 정상범위에 있었다.
신장은 165cm, 체중 50kg(체질량 지수 18kg/m²)로 저체중 상태였다. 과거력을 살펴보니 이 환자는 과음을 했고 육식은 좋아하지 않아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다. 인슐린 내성 검사상 인슐린 저항성은 없었으나 인슐린 분비가 심하게 감소해 있었다. 혈당강하제가 듣지 않는 게 당연했다. 이 환자는 1.5형(중간형) 당뇨병 환자로 영양결핍(특히 단백질 결핍)과 과음 탓에 당뇨병이 발병한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우선 금주와 당질, 단백질, 지방질 등 균형식을 하게 했고 종합비타민과 미네랄을 복용하게 했다. 인슐린 저항성은 없고 인슐린 분비가 잘 안 되고 있었으므로 인슐린 주사를 시작했다. 치료 2개월이 경과하자 전신 영양상태가 호전됐고 체중도 4kg 늘어 건강을 되찾았다.
위의 두 환자에게서 보듯 ‘한국인 당뇨병’은 인슐린 분비 정도와 저항성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혈당 조절에 앞서 반드시 인슐린 분비와 저항성을 평가해 각 환자의 고혈당 원인에 따라 각자에게 맞는 치료를 해야 한다.
당뇨병 조절기준
2 당화혈색소 7% 미만 유지
3 혈압, 혈청 중성지방, 양성 콜레스테롤 정상범위 유지
4 전신성 비만 해소. 정상 체중이라도 복부비만(남자 90cm, 여자 80cm 이상)이 없어야 한다.
5 만성 당뇨병 합병증(신경, 망막, 신장병과 동맥경화증)을 예방 혹은 지연시켜야 한다.
당뇨인의 ‘잘 먹고 잘 사는 법’ 탄수화물 : 단백질 : 지방 = 6 : 2 : 2로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지난 8월 초 KBS ‘아침마당’ 방송을 지켜본 시청자들은 깜짝 놀랐다. 굵은 목소리와 중후한 이미지로 낯익은 원로 탤런트 김성원(72) 씨가 1970년대 전성기 때 서른다섯이란 나이로 중증 당뇨병 진단을 받은 이후 계속 투병생활을 해왔다고 털어놨기 때문이다. 김씨는 당뇨병 진단을 받은 그때가 인생의 최대 고비라고 했다.
그 무렵 김씨는 당뇨병이 피해가려야 피해갈 수 없을 정도의 왕성한 대식가이자 애주가였다. 드라마 촬영을 마치면 늘 스태프와 술자리를 가졌는데, 맥주잔에 소주를 부어 돌리며 어마어마한 양을 마셨다. 술과 함께 육류 등의 안주도 엄청나게 먹었다. “고기를 세 번 쌈에 싸 먹으면 맥주잔 가득 부어놓은 소주가 없어졌다”고 할 정도.
생맥주 500cc 두 잔은 단숨에 마셨고, 식사는 하루 일곱 끼까지 했다. 중국집에 가면 혼자서 볶음밥, 울면, 군만두를 시켜먹어 종업원들이 혀를 내둘렀고, 고기는 씨름 선수들이 몸을 불리기 위해 억지로 먹는 양만큼을 해치웠다.
“고기는 먹어본 사람이 먹어요. 한번은 김재형 PD(‘용의 눈물’ ‘여인천하’ 연출)와 후배 김성겸(탤런트)과 한 접시에 고기를 2인분씩 구워먹는 내기를 했죠. 김 PD가 다섯 접시를 먹다가 포기했고, 김성겸은 여덟 접시를 먹고 손들었어요. 나는 열 접시, 그러니까 20인분을 먹고 내기에서 이겼습니다.”
그러던 중 후배 탤런트의 권유로 병원을 찾은 김씨는 중증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그 후 ‘이렇게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생활습관을 180도 바꿨다. 무엇보다 음식 욕심을 버렸다. 의사가 권한 대로 수수, 보리, 율무 등 열량이 낮고 섬유질이 많은 음식으로 식단을 바꿨다.
운동도 병행했다. 주로 걷기에 집중했다. 집에서 한참 걸어 나가 버스를 타고, 시간 날 때마다 동네와 촬영장 주변을 걸었다. 당뇨병에서 해방되기 위해 아내의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처럼 피나는 노력으로 당뇨합병증을 예방한 김씨는 2006년 ‘당뇨와 친구하라’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서 김씨는 “이왕 당뇨와 한 몸이 됐으니 친하게 지내면서 승패를 가려야 한다”는 자신의 ‘당뇨관’을 강조했다. 친구에게 신경 써주는 심정으로 당뇨병을 받아들이라는 것.
그 결과 김씨는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었고, 당뇨병 진단을 받고도 아직 인슐린 처방조차 받지 않은 상태로 건강하게 방송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김씨처럼 30대 초·중반까지도 과음, 과식을 즐기는 사람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식탐과 술을 자제해 몸이 당뇨병에게 한눈팔 기회를 주지 않아야 한다. 이미 당뇨병 초기 단계로 접어든 사람은 주기적인 검진과 식이·운동요법을 실천하는 게 필수.
그리고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됐다면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뇨병은 발병 원인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환자 모두에게 딱 들어맞는 예방 및 치료법은 없다.
하지만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활요법은 있다. 운동과 식이조절이 그것이다. 문제는 운동과 식이요법에도 누구나 천편일률적으로 따라할 수 있는 왕도가 없다는 점. 즉, 자신의 몸과 처지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식이요법의 가장 큰 목적은 정상체중을 유지하는 것이다. 대한당뇨병학회는 당뇨병 환자 식이요법 기준을 만들었는데, 이에 따르면 몸무게가 정상체중을 많이 넘어설 경우 하루 식사에서 칼로리 섭취량을 500kcal 줄여야 한다(성인 남성과 성인 여성의 하루 평균 칼로리 섭취량은 각각 2500kcal, 2100kcal).
밥 적게 먹고 과일 많이 먹으면 ‘말짱 도루묵’
전체적인 영양소의 균형을 유지하되 당질이 많이 포함된 음식 섭취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20대 때 먹던 버릇을 그대로 갖고 있는 30, 40대. 이들은 ‘탄수화물 덩어리’인 밥의 양은 유지하는 반면, 당을 소비하는 에너지 대사능력은 이미 하향곡선을 그리는 상태다. 따라서 남아도는 당이 지방으로 축적돼 비만이 되고 혈관 속에 남은 당은 당뇨병을 일으킨다.
이들은 먼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율을 60 : 20 : 20으로 맞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체로 밥의 양을 3분의 1 정도 줄이면 이 비율에 맞는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말이 있는데, 밥을 덜 먹는 대신 과일을 많이 먹으라는 말은 잘못 알려진 말이다. 과일에도 곡류 이상의 당분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밥을 줄이고 과일을 많이 먹으면 그 식이요법은 ‘말짱 도루묵’이 된다.
대신 채소는 많이 섭취할수록 좋다. 채소를 먹는다고 고지방 드레싱을 곁들이면 곤란하다. 콩, 옥수수, 두부, 배추, 죽순, 미나리, 참나물, 김, 미역, 토마토 등은 당뇨병에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꿀, 콜라, 사이다, 껌, 쿠키, 초콜릿, 케이크 등은 당뇨병을 부추길 수 있다. 1998년 마흔다섯의 나이에 당뇨합병증인 만성 신부전증으로 사망한 탤런트 손창호 씨는 생전에 콜라를 하루 10병 이상 마셨다고 한다.
단백질은 고기가 아닌 콩, 달걀흰자, 저지방 우유 등으로 섭취하는 게 좋다. 육류를 섭취하려면 기름기가 없는 부위를 하루에 5~6점, 생선은 1토막, 두부는 6분의 1모가 적당하다. 가금류는 껍질을 제거한 뒤 먹고, 빵은 통밀빵과 보리빵이 좋다. 곰탕, 설렁탕에 밥을 말아 먹을 때는 국물은 조금만 마시고, 반찬은 아예 채소만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정식을 먹을 경우 젓갈류나 장아찌류를 멀리한다면 조금 양을 늘려 먹어도 괜찮다. 중국음식은 지방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단무지를 반찬으로 먹기 때문에 염분 섭취가 많아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음식을 조금만 먹고, 단무지는 되도록 적게 먹는 것이 상책이다. 술은 두말할 필요 없이 가급적이면 피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예방 차원이라면 술을 적당하게 줄이면 되지만, 일단 당뇨병 환자가 됐다면 무조건 끊거나 주량을 1~2잔으로 줄여야 한다. 당뇨병 환자 중 인슐린을 투여하는 사람이라면 먹는 시간도 중요하다. 되도록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고, 식사약속이 늦어진다면 예의에 좀 어긋나더라도 미리 과일이나 밥 등을 먹는 게 좋다. 각종 치료제 투여로 일어날 수 있는 저혈당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혈당강하제나 인슐린을 오래 투여하거나 약에 민감한 환자는 혈당이 지나치게 떨어지면서 쓰러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유산소운동은 최고의 혈당조절법
당뇨병 환자에게 식이요법보다 중요한 게 바로 운동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운동이 어떤 치료제보다 당뇨병 예방과 치료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심혈관계 질환, 미세혈관 질환, 고혈압 등 주로 당뇨병 환자에게 죽음을 몰고 오는 당뇨합병증을 운동이 많은 부분 예방해주기 때문이다.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 운동은 식이요법의 보완수단이다.
위축되기 쉬운 근력을 키울 수 있고 혈전증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당뇨병 환자는 오래 같은 자세로 있으면 일반인보다 다리 혈관에 혈전(피떡)이 생기기 쉽다. 만약 큰 혈전이 혈관을 따라 움직이다 폐동맥을 막으면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폐색전증을 일으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따라서 당뇨병 환자는 되도록 많이 움직여야 한다. 이는 환자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도 있다.
매일 규칙적으로 할 수 있는 유산소운동은 당뇨병 환자는 물론 증세가 예상되는 사람에게도 좋다. 걷기, 계단 오르기, 자전거 타기(일주일에 3∼4회, 하루 30분 이상 1시간 미만) 등이 대표적이다. 다리 근력도 키우면서 혈액에 산소를 공급해줄 수 있는 운동들이다. 혈당조절이 잘되는 환자라면 배드민턴, 테니스, 축구 같은 구기종목도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괜찮다.
식이요법만 하는 당뇨병 환자라면 식전과 식후 어느 때 운동을 해도 무관하지만, 경구혈당강하제나 인슐린을 사용하는 경우엔 식후 30분 정도에 하는 것이 좋다. 식사 전에 운동을 하면 저혈당 현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 또한 식후에 운동을 하면 식사로 한껏 올라간 혈당을 조절하는 효과도 있다. 따라서 이런 환자는 혈당이 떨어진 새벽 운동은 피하는 게 좋다.
장기간 이런 약을 투여해온 환자는 운동할 때 저혈당 증세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운동 전에 비스킷, 사탕 등을 먹거나 늘 휴대해야 한다. 식간에 운동을 하려면 인슐린이나 혈당강하제의 혈당강하 효과가 최소로 낮아지면서 혈당이 최대한 높아질 즈음에 하는 게 좋다. 이때 인슐린 주사 부위를 자극하는 운동은 삼간다. 하지만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상황에서 등산, 수영 등 격렬한 운동을 하면 오히려 혈당이 올라간다.
따라서 혈당치가 300mg/㎗ 이상으로 올라가는 환자에게 운동은 금물이다. ‘당 오줌’(케톤)이 심하게 분비되면서 급성 신부전증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자는 혈당치를 250mg/㎗로 떨어뜨린 후 조심스럽게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당뇨합병증이 심하거나 간이 나쁜 경우, 동맥경화증을 함께 앓는 환자는 뛰거나 빨리 걷는 등의 격한 운동 또는 숨찬 운동은 피해야 한다.
고혈압을 막으려면 필히 소금의 주성분인 나트륨 섭취를 낮춰야 한다. 하루 섭취량을 5~10g으로 맞춘다. 조개, 새우, 게 등은 소금이 많이 든 식품. 식사를 하는 도중에 간장이나 소금을 더 넣는 습관도 좋지 않다. 대신 식초나 레몬을 이용한다. 스포츠 음료도 나트륨이 들어 있어 경계 대상이며, 생선은 조림보다 구이로 먹는 게 좋다.
비만성 제2형 당뇨병 환자 80~90% 완치 효과 … 아직 검증은 안 끝나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
당뇨병을 수술로 치료한다는 말을 들어본 일반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서울성모병원, 여의도성모병원을 비롯한 몇몇 병원에서는 수술로 당뇨병을 치료하고 있다. 배리아트릭(Bariatric.비만대사수술) 수술이 바로 그것.
위를 인위적으로 일정량 잘라내고 소장과 연결함으로써 먹는 음식의 양을 줄이는 이 수술은 원래 초고도 비만 환자(체질량지수 37kg/㎡ 이상)의 마지막 치료 수단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뜻밖에도 당뇨병이 있는 수술 환자 중 80~90%에게서 당뇨병이 치료되는 효과가 나타나자 체질량지수가 32~37kg/㎡인 고도비만 환자의 당뇨병 치료에 쓰게 된 것.
최근 당뇨병 환자에 대한 임상수술을 진행한 서울성모병원 측은 이에 대해 커다란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비만외과 이상권 교수는 “고도비만 환자가 많은 서양에서는 1980년대 이후 비만대사수술을 시행하면서 체중 감소뿐 아니라 대사질환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더구나 예상치 못한 당뇨 완치 효과가 알려지면서, 비만한 당뇨 환자의 획기적인 치료 방안으로 떠올랐다”고 밝혔다. 이 병원은 제2형 당뇨병이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비만형 당뇨 환자의 치료에 이 수술이 희망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비만대사수술은 1980년대에 비만 치료를 위해 시행한 이후 수술 건수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비만치료 측면에서 볼 때 50~70%의 부가 체중감소 효과가 나타나 기존 치료법보다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욱이 비만과 동반돼 나타나는 성인병, 즉 고지혈증, 고혈압 등의 대사성 질환이 함께 개선되는 효과를 보이자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특히 제2형 당뇨병 완치 실적은 만성병, 즉 관리형 질병이라는 당뇨병의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수술 후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저항성이 줄어드는 동시에 고지혈증, 고혈압이 호전되자 이런 기대는 더욱 커졌다.
수술 결과 섭취하는 음식섭취량이 줄어들자 비만이 해소되고 그 결과 당뇨병 등 대사성 질환이 호전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눈에 띄는 점은 수술 후 혈당 강하 효과가 체중 감소 현상 수일~수주 전에 일어난다는 사실. 이 때문에 비만 해결의 결과 혈당이 떨어진 게 아니라 비만 해결과는 다른 기전이 당뇨병 치료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당뇨 환자와 체중을 줄인 당뇨 환자를 비교해본 결과, 수술을 한 당뇨병 환자의 혈당강하 효과가 더욱 극적인 것으로 나타나 이런 추측에 무게를 더했다.
살도 빼고 당뇨도 완치
임상연구 결과, 수술의 혈당강하 효과는 소장 점막에서 나오는 인크레틴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크레틴은 음식이 들어가면 소장 점막에서 분비돼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의 일종(30쪽 기사 참조). 더욱이 인슐린 분비에 50~60%의 기여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 호르몬이다. 배리아트릭 수술 후의 급속한 혈당강하 효과는 수술로 음식물의 우회로를 만듦으로써 인크레틴의 주요 분비 장소인 소장에 음식물(영양분)이 더 빨리, 강하게 도달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기전은 아직 더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혈당강하 효과가 인크레틴의 작용 때문이며 당뇨병과 대사질환에 큰 효과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여러 동물실험과 임상실험으로 뒷받침된다. 이와 관련, 여의도성모병원은 7월28일 국내 최초로 당뇨병·비만 수술센터를 열었다.
이 센터에서 실시하는 배리아트릭 수술은 루와이 위 우회술, 조절형 위 밴드 삽입술 등으로 체중의 감소와 유지는 물론, 조절되지 않는 제2형 당뇨병을 외과적 수술로 치료한다.
센터에 따르면 루와이 위 우회 수술을 받은 제2형 당뇨병 환자 대부분의 평균 혈당치와 당화혈색소치가 정상치에 가깝게 돌아왔다는 것. 이 센터에서 루와이 위 우회수술을 받은 제2형 당뇨병 환자 36명 중 31명이 모든 당뇨 경구약과 인슐린 주사를 끊게 됐는데, 이들은 수술 전 평균 혈당치 204mg/㎗, 당화혈색소치 8.8%에서 수술 12개월 후 각각 113mg/㎗, 6.5%(정상치 7%)가 됐다.
또한 조절형 위 밴드 삽입술을 받은 제2형 당뇨병 환자 17명 중 6명은 수술 약 3개월 후부터 당뇨 경구약과 인슐린 주사를 중단했으며, 수술 전 평균 혈당치 185mg/㎗, 당화혈색소치 8.3%가 수술 12개월 후 각각 116mg/㎗, 6.6%로 떨어졌다. 여의도성모병원 관계자는 “제2형 당뇨병으로 진단받은 지 5~10년 된 환자들의 경우 수술 후 혈당조절이 더 잘됐다”고 설명했다.
모두에게 가능한 수술은 아니다
이 두 수술은 전체를 개복하지 않고 복강경 수술로 시행할 수 있어 회복 속도가 빠르고 수술 후 통증이 적은 것이 큰 장점이다. 입원 기간은 수술 후 2~5일. 수술 다음 날부터 거동이 가능하고, 음식 섭취는 위와 소장을 연결해놓은 부위가 검사를 통해 온전한 것이 확인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데 대개 수술한 다음 날부터 가능하다.
18~65세의 비만성 당뇨병 환자는 수술 대상이 되지만 비만을 초래하는 내분비 질환(고인슐린 혈증, 쿠싱증후군, 다낭성 난소증후군 등)이 있는 사람이나 심한 정신과적 질환이 있으면 수술이 불가능하다. 물론 전신마취가 불가능할 만큼의 성인병이 있는 사람이나 임신부도 수술이 불가능하다.
서울성모병원 이상권 교수는 “국내 성인의 9.8%에 해당하는 약 300만명이 제2형 당뇨병 환자로 추정되며 복부비만이 많아 대사성 질환의 위험도가 높은 한국인에게 대사성 질환 치료 및 합병증 예방에 획기적인 외과적 치료방법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내 성인 비만 유병률이 31.8%에 달한다는 점(20세 이상 기준, 2005년)과 서구와 비교해 당뇨 유병률이 높다는 점, 당뇨병 환자가 정상인보다 비만한 비율이 높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인 비만성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 비만대사수술은 희소식이 될 듯하다.
당뇨병에 관한 오해와 진실
당뇨병은 우리 몸의 여러 장기와 조직에 동시다발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며, 결과적으로는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한다.
특히 제2형 당뇨병 환자는 당뇨병이 없는 사람보다 심혈관계 질환 발생률이 2~4배나 높다. 심혈관계 질환은 당뇨병 환자 사망원인의 65~70%를 차지하는데, 구체적으로는 광범위한 동맥경화, 그중에서도 관상동맥질환, 심근허혈, 심근경색의 유병률이 높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당뇨병으로 인한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 주요 원인은 당뇨병에 대한 지식 부족, 대체식품만으로 당뇨를 조절하려는 태도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시중엔 당뇨병과 그 치료에 관한 잘못된 ‘상식’이 퍼져 있다. 일반인 사이에 오해를 빚기 쉬운 당뇨 상식을 정리해봤다.
#당뇨병은 생활습관만 개선하면 치료된다?
당뇨병으로 진단받기 전 우리 몸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혈당조절 능력을 잃어간다. 당뇨병이 확진될 때는 인슐린이 혈당의 상승에 대응할 능력을 이미 잃거나 상당히 줄어든 상태다. 즉, 혈당을 정상 수준으로 유지하는 인슐린의 기능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다는 얘기. 이럴 경우에는 생활습관만 고쳐서 당뇨병을 치료한다는 게 사실상 어렵다(좀더 정확히 말하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분해되지 않고 혈액에 남은 여분의 당은 독이 돼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더욱 저해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인슐린 분비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췌장의 손상을 막으려면 혈당을 낮추는 약물치료를 반드시 해야 한다. 적극적인 약물치료를 통해 혈당을 원하는 수준으로 감소시키고 췌장의 기능이 회복되면, 식이요법과 운동치료의 효과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운동과 식이요법은 전 당뇨 단계에서 상승한 당을 낮추기 위한 가장 중요한 치료방법. 그러나 이미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의 기능이 많이 소실돼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상태라면, 운동과 식이요법은 혈당을 정상 수준으로 조절하는 방법이라 말하기 어렵다. 어디까지나 혈당을 낮추는 능력을 보조하고 당뇨병 치료제의 효과를 배가하는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뇨병 치료제는 한 번 복용하면 평생 복용해야 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들로부터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당뇨병 치료제는 한 번 복용하면 계속 복용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가 이 말을 하는 데는 당뇨병 치료제를 복용하지 않으려는 ‘저항감’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어떻게든 약물을 복용하지 않으려는 게 그들의 바람이다. 환자들은 당뇨병 치료제의 부작용에 대해 막연하고 근거 없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고혈압과 마찬가지로 당뇨병은 평생 치료해야 하는 병이다. 당뇨병 치료제를 복용하지 않고 운동과 식이요법으로만 혈당을 조절하겠다는 생각은 당뇨병에 대한 오해와 지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당뇨병 치료제를 반드시 계속 복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적극적인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혈당이 조절되는 환자도 있고, 경구혈당 강하제를 복용하다가 혈당이 잘 조절돼 약을 끊는 환자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환자의 경우 운동과 식이요법만으로 혈당을 정상 수준으로 유지시키기란 쉽지 않다. 이런 까닭에 환자의 대부분은 당뇨병 치료제를 복용해야 한다. 당뇨병 환자들은 공복에만 혈당을 체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식후 혈당은 대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실제로 식후 혈당을 포함해 24시간 동안의 혈당 추이를 살펴보면 금세 운동과 식이요법만으로는 혈당 조절이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최근 발표된 연구결과를 보면 당뇨병 약 중에는 혈당을 낮추는 효과 외에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해 환자의 몸에 이로운 효과까지 주는 것들이 있다. 따라서 초기부터 운동 및 식이요법과 함께 경구혈당 강하제를 이용해 혈당관리를 시작하는 게 옳은 선택이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만 당뇨병에 걸린다?
‘단 오줌을 싸는 병’이란 뜻의 ‘당뇨병(糖尿病)’은 한자의 뜻만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그럴듯하게 들리는 명제다. 실제로 일반인에겐 당뇨병이 설탕 같은 단것 때문에 생기는 질병으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당뇨병은 단것을 먹는다고 해서 유발되지 않는다. 달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혈중 당의 농도가 높아지고 비만을 일으켜 간접적으로 당뇨병을 유발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단 음식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당뇨병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단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뇨병은 혈당을 낮춰주는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거나, 분비되더라도 비만 등으로 혈당을 처리하는 능력이 손상돼 나타나는 질병이다. 오히려 당뇨병의 원인으로는 유전, 비만, 스트레스 등을 들 수 있다.
혈당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양소는 탄수화물(당질)이다. 탄수화물은 즉각적으로 혈당을 올리기 때문이다. 탄수화물은 식후 5분~3시간에 섭취량의 100%가 포도당으로 전환된다. 단백질이나 지방도 많이 먹으면 몸무게가 늘어 혈당조절을 어렵게 하는데 단백질은 3~6시간 후 58%, 지방은 8시간 후 10% 정도가 포도당으로 바뀐다.
우리가 탄수화물을 주로 얻는 음식은 밥, 빵, 국수, 떡, 감자, 고구마, 옥수수, 묵 등의 곡류와 과일이다. 이 밖에 설탕, 꿀, 시럽 등이 다량 첨가된 식품, 이를테면 과자와 사탕, 음료수에도 탄수화물이 함유돼 있다. 당뇨병 환자에게 한 끼에 한 공기 이상 먹지 말고 단맛이 강한 음식은 되도록 피하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젊어서 당뇨병에 걸리면 무조건 합병증이 온다?
젊은 나이에 당뇨병이 생겼다고 합병증이 올 확률이 높은 것은 아니다. 당뇨병 합병증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 두 가지는 혈당 조절의 정도와 당뇨병의 유병기간이다. 즉, 젊은 나이에 병을 얻었다고 해도 혈당조절을 잘하면 합병증 위험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당뇨병의 유병기간이 길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젊은 나이에 당뇨병이 생겼을 때는 좀더 엄격하게 혈당조절을 해야 한다. 특히 초기의 혈당관리가 장기적인 합병증 예방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당뇨병 예방 생활 속 실천 10계명
병은 예고가 없다. 때를 맞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징후라는 게 있지만 그건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것.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병하는 당뇨병은 더 감지하기 어렵다. 초기엔 뚜렷한 증상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그러나 어느 정도 증세가 진행된 경우엔 치료에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다른 병보다 예방의 중요성이 더 크다. 더욱이 당뇨병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가지 원칙만 지키면 적어도 후천적 당뇨병의 공격은 피할 수 있다.
정상 체중을 유지하라
비만은 모든 질환에 나쁜 영향을 주지만 특히 당뇨병의 주요 발병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인슐린 저항성을 증가(인슐린의 혈당조절 기능이 감소하는 경우)시켜 고혈당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본인의 체중이 과체중이거나 비만이라면 당장 감량을 시작해야 한다.
핀란드의 한 당뇨병 예방 관련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도 비만이 있는 환자 중 2년간 식사와 운동으로 평균 3.5kg을 줄인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4년 후 당뇨병 발생률이 58% 낮았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일흔이 넘은 고령에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재임 기간에는 잘 짜인 식단과 운동 프로그램으로 체중을 철저히 관리해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었다.
명심해야 할 것은 비만한 사람은 공복 시에도 혈당 수치가 높아진다는 점. 24시간 내내 체내 혈액에 당이 넘쳐난다는 얘기다. 74~100mg/㎗가 정상 범위의 혈당치인데, 이를 넘어서면 관리 정도가 아니라 초기 치료 단계를 고려해야 한다.
하루 30분 이상 빠르게 걸어라
체중 감량과 별개로 운동은 당뇨병 발생 위험을 크게 감소시킨다. 일주일에 500kcal의 에너지 소비는 당뇨병 위험을 6% 떨어뜨린다는 보고도 있다. 하루에 30분 넘게 주 3회 이상 운동하길 권장한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어려운 사람은 평소 신체활동을 늘리는 습관이 필요하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고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등의 방법도 좋다.
운동을 하면서 체질량지수와 허리둘레를 수시로 점검해봐야 한다. 체질량지수는 비만을 측정하는 대표 지표로 키의 제곱을 체중으로 나눈 수치. 이 수치가 27 이상이면 비만이다. 또한 허리둘레로 복부(내장)비만을 알 수 있는데 남성은 90cm 이상, 여성은 80cm 이상이면 비만이다. 체질량지수는 정상인데 복부만 나온 당뇨형도 있으므로 운동으로 복부비만을 줄이는 데 신경 써야 한다.
평소 혈압을 체크하고 무조건 낮춰라
지금 당신의 혈압은 얼마인가. 여기에 답하지 못한다면 당장 점검하라. 고혈압과 당뇨는 함께 찾아오는 경우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수축기 혈압이 130mmHg, 또는 이완기 혈압이 85mmHg보다 지속적으로 높다면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을 의심해야 한다. 고혈압 외에 다른 위험인자는 없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대사증후군이란 내당증장애(당뇨의 전 단계로 공복혈당이 100mg/㎗보다 높은 상태),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등의 질환이 한꺼번에 오는 경우를 말한다. 즉 고혈압이 있다면 다른 증상을 일으키는 인자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혈압이 높은 본태성 고혈압 가운데는 인슐린 저항성이 원인이 돼
나타난 경우도 있다.
고지혈증이 심하면 약물을 써서라도 잡아라
고지혈증도 당뇨와는 뗄 수 없다. 고지혈증은 지방성분인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이 혈액 내에 정상보다 많이 분포한 상태다. 보통 콜레스테롤 수치가 240mg/㎗ 이상이면 고지혈증을 의심한다. 고지혈증은 당뇨로 이어져 심장혈관계 질환까지 일으킬 수 있다. 역시 인슐린 저항성이 있는 사람에게서 잘 발생한다. 동맥경화까지 이어질 수 있으므로 진단을 받으면 식사요법과 운동을 하고 그래도 조절되지 않으면 적절한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
탄수화물은 식사 열량의 절반으로 줄여라
당뇨병이 염려되는 사람이라면 탄수화물 섭취에도 주의해야 한다. 포도당은 꼭 필요한 영양소지만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면 체중이 늘고 중성지방이 상승하기 쉽다. 탄수화물은 하루 총 섭취열량의 45~65% 이하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싱겁게 먹어라
반찬도 세심하게 살펴 섭취해야 한다. 한국인은 젓갈, 장아찌 같은 절인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짜게 먹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습관은 혈압을 상승시킬 수 있다. 하루 염분 섭취량을 1.8g 줄이면 2~4mmHg의 혈압을 낮춰 고혈압 발생을 20% 감소시킬 수 있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라면이나 칼국수 같은 음식은 탄수화물 비중이 높을 뿐 아니라 소금도 많이 들어 있다.
거친 음식을 통해 충분한 섬유질을 섭취하라
매일 신선한 채소와 과일로 섬유질을 보충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섬유질은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낮춰 고지혈증을 개선한다. 섬유질을 매일 25g(토마토 150g 기준 5개) 이상 섭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위험인자를 확인하고 정기적으로 검사하라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당뇨병 발생이 높은 인종에 속한다. 40세 이상이면서 위험인자가 없으면 2년마다 당뇨병 선별검사를 시행한다. 아래의 위험인자가 있는 경우라면 매년 검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체질량지수 ≥ 23kg/m²
● 당뇨병 가족력이 있거나 고혈압(혈압≥140/90mmHg)일 경우
● 전 당뇨병이 있는 경우(공복혈당≥100mg/㎗ 또는 75g 당부하 검사상 2시간째 혈당이 140~199mg/㎗)
● 이상지질혈증(저밀도 콜레스테롤≤35mg/㎗ 중성지방·#51377;250mg/㎗)
● 임신성 당뇨병을 진단받았거나 4kg 이상의 거대아를 분만한 적이 있는 여성
금연하라
흡연은 암 발생률뿐 아니라 당뇨병 발생률도 높인다. 흡연이 인슐린 저항성과 내장지방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하루 담배 한 갑을 피우는 사람은 전혀 피우지 않는 사람보다 당뇨병 발생 위험이 1.7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절주하라
술도 당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가벼운 음주를 하는 사람에게서 당뇨병 발생률이 낮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음주 문화는 대체로 ‘가벼운 음주’를 허락하지 않는다. 술자리가 있으면 보통 과음, 과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심각하다. 당뇨병을 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떤 핑계를 대든지 맥주 석 잔, 소주 두 잔이 넘는 과음은 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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