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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인간의 친구인가, 敵인가?

醉月 2009. 9. 6. 10:32

로봇은 인간의 친구인가, 敵인가?

2030년 인간의 지능 초월하는 로봇 등장.
기계에 대한 인간의 통제력이 상실되는 것은 시간문제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안녕과 복지를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연구 방향을 정립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李仁植
⊙ 1945년 광주 출생.
⊙ 광주제일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 월간정보기술 발행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 저서: <미래교양사전> <지식의 대융합> <나는 멋진 로봇 친구가 좋다> 등 30여 권 저술.
⊙ 수상: 제1회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공학기술문화확산 부문),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저술부문),
    서울대 자랑스런 전자동문상 수상.
   

李仁植 과학문화연구소장

특수조명을 이용, 로봇으로 분장한 <마음의 아이들>과 <로봇>의 저자 한스 모라벡.

 

1997년 1월 12일 미국 일리노이州(주) 출생, 우주선 디스커버리 호의 여섯 번째 승무원, 우주선의 두뇌 기능 수행, 사람과 자연언어로 대화하며 체스 시합에서 사람을 이길 수 있음.

 
  공상과학 소설 애호가라면 이쯤에서 ‘할(HAL)9000’을 떠올릴 것이다. 아서 클라크의 소설 <2001년:우주여행>에 나오는 컴퓨터다. 이 소설은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클라크와 함께 만든 同名(동명)의 영화로 더욱 유명해졌다. 1997년 미국에서는 할9000의 생일을 기리는 행사가 개최되기도 했다.
 
  할9000은 광기에 사로잡혀 우주선의 승무원을 살해한다. 선장만 간신히 살아남아 할의 목숨을 끊는다. 할의 종말은 제아무리 영리한 기계일지라도 사람이 전원만 차단하면 어쩔 수 없이 쇳덩어리가 되고 만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로봇의 生死(생사)여탈권이 사람의 손안에 있으므로 사람보다 영리한 기계가 나타날지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개발된 PR2 로봇은 그러한 생각이 옳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난 6월 9일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바퀴가 달린 PR2는 시속 1.25마일로 달리며 방의 문 10개를 열고 지나갈 수 있다. 특히 한 시간도 안되어 방안의 소켓 10개에 플러그를 끼워 재충전하기도 했다. PR2는 방문을 반복해서 열 뿐만 아니라 소켓을 찾아내 스스로 재충전할 수 있는 최초의 로봇으로 평가된다. PR2의 등장은 로봇의 생사여탈권이 사람의 손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로봇자동차가 달려온다
 
아서 클라크의 소설 <2001년:우주여행>에 등장하는 컴퓨터 ‘할(HAL)9000’의 형상.

  생물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를 꿈꾸어 온 인류의 숙원을 해결하기 위해 출현한 분야가 로봇공학이다. 로봇을 개발하는 공학기술이 태동한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컴퓨터와 반도체 소자가 발명됐기 때문이다.
 
  로봇공학의 발전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미국 국방부(펜타곤)가 개최한 로봇자동차 경주대회다. 로봇자동차는 펜타곤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하는 無人(무인)지상차량(AGV·Autonomous Ground Vehicle)이다. 1985년부터 개발된 AGV는 戰場(전장)에서 사람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굴러다니면서 스스로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장애물을 피해 나가면서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로봇자동차다.
 
  펜타곤은 로봇자동차의 개발을 지원하고 독려하기 위해 ‘다르파 위대한 도전(DARPA Grand Challenge)’대회를 세 차례 열었다. 펜타곤의 다르파(방위고등연구계획국)는 전쟁에 필요한 첨단기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민간기관에 연구자금을 지원하는 부서다.
 
  2004년 3월 13일 열린 첫 번째 대회의 출전 자격은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여 속도와 방향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장애물을 피해 갈 줄 아는 무인차량에만 주어졌다. 미국 서부의 사막에서 483km를 10시간 안에 완주하는 무인차량에는 우승상금 100만 달러가 수여될 예정이었다. 상세한 코스는 대회 시작 두 시간 전에 공개됐다. 25종의 로봇자동차가 출전했으나 결승선을 통과하기는커녕 코스의 5% 이상을 내달린 차량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2005년 10월 8일 다시 열린 두 번째 대회는 미국 서부의 사막에서 10시간 안에 212km를 횡단하는 경주였다. 우승상금은 200만 달러로 올랐다. 23종의 로봇자동차가 출전하여 무려 5대가 결승선에 도착했다. 우승은 평균 시속 30.7km로 6시간54분 만에 완주한 ‘스탠리’에게 돌아갔다. 스탠퍼드대학에서 만든 스탠리는 폴크스바겐을 개조한 것으로 지구위치측정위성(GPS) 시스템 수신기, 레이저 거리 측정장치, 레이더, 스테레오 카메라, 각종 센서와 함께 랩톱 컴퓨터 7대가 장착됐다.
 
  2007년 11월 3일 열린 세 번째 대회는 특별히 ‘다르파 도시 도전(Urban Challenge)’이라고 명명됐으며, 그 무대를 사막에서 대도시로 옮겼다. 무인자동차들은 도시를 흉내 내서 만든 96km(60마일) 구간을 6시간 내에 완주해야 했다.
 
 
  2030년 무인 자동차 등장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 1950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기계의 지능을 평가할 수 있는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제시했다. 현재 컴퓨터는 여전히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만한 지능을 갖지 못한 상태다.

  실제 도로처럼 코스에는 건물과 가로수 등 장애물이 나타났는데, 다른 차량들과 뒤섞여 교통신호에 따라 주행하면서 제한속도를 지키는 등 교통법규도 준수하고 잠깐 동안 주차장에도 들어가야 했다. 사람이 거리에서 차를 운전할 때와 거의 똑같은 조건이 주어진 것이다.
 
  35개 차량이 예선전을 치렀으며 상금도 3등까지 수여되어 경쟁이 치열했다. 우승자는 200만 달러, 2등은 100만 달러, 3등은 50만 달러를 받게 됐다. 6대가 완주에 성공했으며 우승은 카네기멜론대학의 ‘타탄 레이싱’(Tartan Racing)이 차지했다.
 
  로봇자동차 대회는 운전하는 즐거움을 자동차에 양보해야 하는 세상이 머지않았음을 보여주었다. 2030년쯤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거리를 누비는 승용차가 나타나게 되면 운전대를 잡을 필요가 없으므로 출퇴근을 하면서 차 안에서 다른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인 지상차량의 출현은 전투 자동화 또는 무인화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미국 의회는 2015년까지 지상 전투차량의 3분의 1을 무인화하도록 법률로 규정했다. 머지않아 싸움터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감정이 없는 무자비한 로봇병기가 주역으로 등장할지 모른다.
 
  이처럼 군사 활동의 컴퓨터 의존도가 증대함에 따라 자동화된 병기에 대한 인간의 통제가 불가능해질수록 그만큼 작전사령관도 모르는 사이에 컴퓨터의 지시로 전투가 발발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무공훈장이 병사보다 로봇공학 전문가, 나아가 싸움터를 누비는 살인로봇의 몫이 될 것이라고 비꼰다.
 
  로봇의 지능이 인간 수준에 육박함에 따라 사람처럼 영리하고 이동할 줄 아는 로봇이 언제쯤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지능지수처럼 기계의 지능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을 처음 제시한 인물은 영국의 앨런 튜링(1912~1954)이다. 1936년 24세에 컴퓨터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이론을 창안한 튜링은 1950년에 역사적인 논문 <계산하는 기계와 지능>을 발표했다. 논문의 첫 문장을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면서 그 대답으로 ‘모방 게임’이라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튜링 테스트
 
  모방 게임은 남자, 여자 그리고 질문자 등 세 사람에 의해 진행된다. 질문자는 남자이건 여자이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질문자는 다른 두 사람과 떨어진 방 안에 머문다. 질문자는 두 사람을 X와 Y로 알고 있을 뿐이다.
 
  모방 게임은 질문자가 던지는 다양한 질문에 대해 두 사람이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반드시 질문자에게 판단 착오를 일으킬 수 있는 답변을 시도해야 한다. 가령 질문자가 X로 알고 있는 사람이 남자일 경우에는 질문자가 “당신의 머리카락 길이는 얼마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면 X는 질문자가 자신을 여자로 잘못 알도록 하기 위해 “가장 긴 머리카락은 20cm입니다”라는 식의 대답을 해야 한다. 요컨대 모방 게임의 목적은 질문자가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남자이고 누가 여자인가를 가려내는 것이다.
 
  튜링은 이러한 모방 게임에서 여자(또는 남자) 대신 기계를 방 안에 갖다 놓는 경우를 제안했다. 질문자는 남자(또는 여자)와 기계 중에서 어느 쪽이 남자(또는 여자)이고 어느 쪽이 기계인가를 알아내야 한다. 남자는 질문자에게 자신이 사람이고 다른 쪽이 기계라는 사실을 납득시키기 위해 충실한 답변을 한다. 그러나 기계는 거꾸로 질문자가 자신을 사람으로 생각하고 남자를 기계로 착각하도록 답변한다.
 
  튜링은 남자와 기계 사이에서 모방 게임을 할 때 남자와 여자 사이에 진행된 모방 게임에서 질문자가 남녀를 잘못 구분하는 것과 같은 비율로 판단을 잘못한다면, 그 기계는 사람처럼 지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다시 말해 기계가 사람이 사고할 때 행동하는 방법과 구별할 수 없게 행동한다면 그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모방 게임은 기계가 사람 수준의 지능을 가졌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일종의 시험이기 때문에 훗날 ‘튜링 테스트(Turing test)’라고 명명됐다. 튜링은 그의 논문 첫머리에서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고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해 “튜링 테스트에 합격한 기계는 생각할 수 있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튜링 테스트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학자들의 전폭적인 동의와 지지를 받았으며, 튜링 테스트에 합격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지능을 본뜰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하는 것이 인공지능의 궁극적인 목표가 됐다. 따라서 튜링 테스트는 인공지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걸핏하면 물고 늘어지는 공격의 과녁이 됐다.
 
 
  2030년 인간을 초월하는 기계 출현할 듯
 
2030년 전후엔 지능 면에서 기계와 인간의 구별이 사라진다고 전망한 미래학자 커즈와일.

  21세기 초반의 컴퓨터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만한 지능을 갖지 못한 상태다. 컴퓨터 이론가인 미국의 레이 커즈와일은 1999년 펴낸 저서 <정신적 기계의 시대(The Age of Spiritual Machines)>에서 20년 뒤인 2019년 컴퓨터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보고가 잇따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튜링 테스트를 합격하는 것은 아니라고 토를 달았다.
 
  10년이 경과한 2029년 마침내 컴퓨터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해 기계는 할 수 없고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 된다. 커즈와일의 전망이 앞뒤가 맞건 오류가 있건 사람과 기계, 곧 로봇의 지적 능력이 엇비슷해지는 날이 임박했다는 사실만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를테면 특이점(singularity)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특이점은 사전을 보면 ‘특별히 다른 점(singular point)’을 의미하지만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된다. 1993년 미국의 수학자이자 과학소설 작가인 버너 빈지는 <다가오는 기술적 특이점-포스트 휴먼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인간을 초월하는 기계가 출현하는 시점을 처음으로 특이점이라고 명명했다. 빈지는 생명공학, 신경공학, 정보기술의 발달로 2030년 이전에 특이점을 지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이점은 인류사회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티핑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커즈와일은 2005년 펴낸 저서 <특이점이 다가온다(The Singularity Is Near)>에서도 2030년 전후에 지능 면에서 기계와 인간의 구별이 사라진다고 전망했다. 특이점 이론가답게 커즈와일은 실리콘밸리에서 미래학 전문 교육기관인 ‘특이점 대학(singularityu.org)’을 운영하고 있다. 2008년 9월 설립됐으며 올 여름 첫 입학생으로 40명을 선발해 6월 27일부터 9주간의 과정에 들어갔다.
 
  지난 5월 초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초월적 인간(Transcendent Man)> 역시 인간과 기계의 미래를 다루고 있어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GNR 기술, 곧 유전공학(G)·나노기술(N)·로봇공학(R)의 발달로 2045년이면 사람보다 영리한 기계가 출현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2045년쯤 특이점이 온다는 뜻이다. 더욱이 커즈와일의 개인적 이야기가 뒤섞여 영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로봇의 급격한 진화
 
  커즈와일은 나치의 핍박을 받다가 사망한 아버지를 못내 그리워해서 그의 부활을 꿈꾼다. 아버지의 무덤에서 나노로봇으로 유전자를 추출해낸 다음에 아버지의 친지들로부터 그에 관한 정보를 긁어모아 추가하면 생전의 아버지 모습을 생생히 되살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1세기 로봇을 대담하게 전망하여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킨 인물은 미국의 한스 모라벡이다. 그는 1988년 <마음의 아이들(Mind Children)>을, 1999년 <로봇(Robot)>을 펴내고 로봇 기술의 발달 과정을 생물 진화에 견주어 21세기 로봇을 묘사했다.
 
  모라벡에 따르면, 20세기 로봇은 곤충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지만, 21세기에는 10년마다 세대가 바뀔 정도로 지능이 향상된다. 이를테면 2010년까지 1세대, 2020년까지 2세대, 2030년까지 3세대, 2040년까지 4세대 로봇이 개발된다.
 
  먼저 1세대 로봇은 동물로 치면 도마뱀 정도의 지능을 갖는다. 20세기의 로봇보다 30배 정도 똑똑한 로봇이다. 크기와 모양은 사람처럼 생겼으며 용도에 따라 다리는 2개에서 6개까지 사용 가능하다. 물론 바퀴가 달린 것도 있다. 평평한 지면뿐만 아니라 거친 땅이나 계단을 돌아다닐 수 있고, 대부분의 물체를 다룰 수 있다. 집 안에서 목욕탕을 청소하거나 잔디를 손질하고, 공장에서 기계부품 조립하는 일을 척척 해낸다.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을 테고, 테러범이 숨겨 놓은 폭탄을 찾아내는 일도 잘한다.
 
  2020년까지 나타날 2세대 로봇은 1세대보다 성능이 30배 뛰어나며 생쥐 정도로 영리하다. 1세대와 다른 점은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부엌에서 요리할 때 1세대 로봇은 한쪽 팔꿈치가 식탁에 부딪히더라도 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미련스럽게 계속 부딪힌다. 그러나 2세대 로봇은 팔꿈치를 서너 번 부딪히는 동안 다른 손을 사용해야 한다고 판단하게 된다. 주위 환경에 맞추어 스스로 적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3세대 로봇은 원숭이만큼 머리가 좋고 2세대 로봇보다 30배 뛰어나다.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와 함께 그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갖고 있다. 요컨대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 부엌에서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3세대 로봇은 여러 차례 머릿속으로 연습을 해 본다. 2세대는 팔꿈치를 식탁에 부딪힌 다음에 대책을 세우지만, 3세대 로봇은 미리 충돌을 피하는 방법을 궁리한다는 뜻이다.
 
 
  2050년 이후 지구의 주인은?
 
  2040년까지 개발될 4세대 로봇은 20세기의 로봇보다 성능이 100만 배 이상 뛰어나고 3세대보다 30배 똑똑하다. 이 세상에서 원숭이보다 30배 이상 머리가 좋은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 말하자면 사람처럼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기계인 셈이다.
 
  일단 4세대 로봇이 출현하면 놀라운 속도로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기 시작할 것이다. 모라벡에 따르면, 2050년 이후 지구의 주인은 인류에서 로봇으로 바뀌게 된다. 이 로봇은 소프트웨어로 만든 인류의 정신적 유산, 이를테면 지식·문화·가치관을 모두 물려받아 다음 세대로 넘겨줄 것이므로 ‘자식’이라 할 수 있다. 모라벡은 이러한 로봇을 ‘마음의 아이들’(mind children)이라 부른다.
 
  인류의 미래가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혈육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물려받은 기계, 곧 ‘마음의 아이들’에 의해 발전되고 계승될 것이라는 모라벡의 주장은 실로 충격적이다. ‘마음의 아이들’은 자신들도 사람 대접을 받아야겠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말하자면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후반, 사람보다 훨씬 영리한 기계인 로보 사피엔스(Robo sapiens)가 지구의 주인 노릇을 시작하면 구태여 사람 취급을 받으려고 하지 않을지 모른다. 아마도 사람은 없어도 되지만 로봇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세상이 될 것 같다.
 
  21세기 후반, 그러니까 2050년대 이후부터 우리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하는 로봇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사람과 로봇이 맺게 될 사회적 관계는 대충 세 가지로 짐작된다.
 
  첫째, 로봇이 오늘날처럼 인간의 충직한 심부름꾼 노릇을 하는 주종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둘째, 로봇이 사람보다 영리해져서 인간을 지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끝으로 호모 사피엔스(지혜를 가진 인류)와 로보 사피엔스(지혜를 가진 로봇)가 공생 관계를 형성하여 서로 돕고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은 인간의 피조물인 로봇이 미래에도 오늘날 산업 현장의 로봇처럼 사람 대신에 온갖 힘든 일들을 도맡아 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기계가 인간보다 뛰어나서 인간이 기계에 밀려날 것이라는 공포감은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표출됐다.
 
 
  로봇이 인간을 지배할 수도
 
2199년 인공지능 기계가 인간을 자신들의 에너지 공급원으로 이용하는 시대를 그린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1818년 영국 여류작가 메리 셸리가 발표한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자와 그가 만든 괴물이 모두 파멸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소설은 인간이 자신의 피조물을 거부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닮은 기계에 대한 인간의 공포심을 드러낸다.
 
  1921년 체코의 작가인 카렐 차페크(1890~1938)가 발표한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 역시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마찬가지로 로봇을 먼저 파괴하지 않으면 결국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반란을 일으킨 로봇 지도자는 여자 주인공에게 “당신들은 로봇만큼 튼튼하지 않다. 당신들은 로봇만큼 재주가 뛰어나지도 않다” 고 외치면서 동료 로봇에게 모든 인간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1999년 부활절 주말에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매트릭스>의 무대는 200년 뒤인 2199년 인공지능 기계와 인류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다. 마침내 인공지능 컴퓨터들은 인류를 정복하여 인간을 자신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노예로 삼는다. 땅속 깊은 곳에서 인간들은 매트릭스 컴퓨터들의 배터리로 사육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오로지 기계에 의해, 기계를 위해 태어나며 생명이 유지되고 이용될 따름이다.
 
  로봇 공학자 중에도 인류가 기계의 하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영국의 케빈 워릭은 1997년 펴낸 저서 <로봇의 행진(March of the Machines)>에서 21세기 지구의 주인은 로봇이라고 단언한다. 워릭은 2050년 기계가 인간보다 똑똑해져서 지구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2050년 인류의 삶은 기계에 의해 통제되고, 기계가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놓인다. 남자들은 포로수용소 같은 곳에서 노동자로 사육된다. 노동자들은 육체적으로 불필요한 성적 행위를 하지 못하게끔 거세되며, 두뇌는 재구성되어 분노, 우울, 추상적 사고와 같은 부정적인 요소가 제거된다.
 
  여자들은 사방이 벽으로 막힌 인간 농장에 수용된 채 오로지 아이를 낳기 위해 사육된다. 한 번에 세 명의 아기를 낳는다. 12세쯤 출산을 시작해서 30대가 되면 쓰레기처럼 소각로에 버려진다. 여자들은 평생 동안 50여 명 정도 아기를 낳는다.
 
  사람과 로봇이 맺을 수 있는 세 번째 관계는 서로 돕고 사는 공생이다. 한스 모라벡은 <마음의 아이들>에서 사람의 마음을 기계 속으로 옮겨 사람이 말 그대로 로봇으로 바뀌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아실로마 회의에 담긴 뜻
 
2008년 12월 경기도 과천시 국립과천과학관을 찾은 가족 관객들이 로봇들의 춤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많은 로봇 과학자와 미래학자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로봇과 인간의 주종관계가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지적 능력을 능가하는 로봇이 워릭의 주장처럼 인류를 파멸시킬 것인가, 아니면 모라벡의 시나리오처럼 인류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현재 내놓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로봇이 인간 수준의 지능에 도달했을 때 예상되는 문제를 감안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로봇 개발에 매달릴 일만도 아니다.
 
  지난 7월 26일자 <뉴욕타임스>에 “과학자들은 기계가 인간보다 영리해지는 것을 걱정한다”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가 특별한 주목을 받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기사는 인공지능의 발전이 초래할 충격에 대해 전문가들이 본격적인 관심을 표명한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미국의 ‘인공지능 진흥협회’의 후원으로 인공지능 전문가, 로봇공학자, 윤리학자, 법률학자 등 25명이 인공지능 발전과 관련된 쟁점들에 관한 토론을 시작했다. 2008년 중반부터 전화나 원격화상회의로 의견을 주고받았으며 2009년 2월 25일 처음으로 회동을 가졌다.
 
  비공개리에 진행된 토론 내용은 7월 15일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된 ‘국제 인공지능 합동회의’에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고서에서 전문가 전원은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가능하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고 밝혔으며, 인공지능 발전에 따라 기계에 대한 인간의 통제력이 상실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2월 25일 회의가 개최된 장소는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아실로마(Asilomar)다. 이곳은 태평양에 닿은 해안의 하얀 모래, 키 작은 나무숲, 멋진 골프장이 어우러진 휴양지로 유명하다. 1975년 2월 17개국의 생물학자 140명이 이곳에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가능성과 위험성에 관해 사흘 밤에 걸쳐 토론을 벌이고 유전공학 관련 연구의 지침을 마련하고 안전대책을 제시했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유전공학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회의가 개최된 아실로마를 일부러 선택한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 역시 인공지능이 인간의 안녕과 복지를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연구 방향을 정립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그들의 최종 보고서가 올해 내에 발간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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