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봉신연의(封神演義)_26

醉月 2012. 6. 6. 06:25

달기가 계략을 세워 비간을 해치다

비간은 황제 헌원의 무덤 돌구멍에서 불에 타죽은 여우의 껍질을 골라서 무두질을 하고 정제하여 도포와 저고리 한 벌을 만들었다. 엄동설한이 오면 황제께 바칠 생각이었다. 이때가 9월이었는데, 순식간에 세월이 흘러갔다. 세월은 손가락을 한번 꼽는 것 같아서 어느덧 한겨울이 다가왔다. 주왕은 달기와 함께 녹대위에서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그날 붉은 구름이 짙게 덮이더니 삭풍이 불어 매섭게 추었다. 눈이 하얀 배꽃처럼 어지러이 날리며 천지가 은빛으로 덮였는데, 바로 분분히 瑞雪서설이 내려 조가성이 온통 눈으로 가득했다.

 

상서로운 눈이 내리는 정경은 다음과 같았다. 
“공중에서 은구슬이 어지러이 뿌려지는데, 하늘에서 하얀 버들 솜이 동시에 겹쳐서 휘몰아치는 것 같다. 행인이 소매를 떨치니 흰 배꽃이 난무하는 것 같고, 나뭇가지 위에는 온통 하얀 銀은으로 덮였구나. 한가한 公子공자들은 화롯가에 둘러앉아 술을 나누고, 仙翁선옹은 눈을 쓸고 차를 다린다. 지난밤 내내 삭풍이 창 너머로 불어오는데, 내리는 것이 눈인지 매화인지 모르겠다. 바람의 싸늘한 냉기가 사람에게 파고들고, 날리는 꽃잎이 땅을 덮는데… (중략)

 

눈이 천지를 뒤덮고 있는데, 다만 강줄기만 푸르게 이어져 있다. 이 눈이 내리는 가운데도 부유한 자도 있고, 존귀한 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고, 천한 자도 있다. 부귀한 자들은 붉게 활활 타오르는 화로에 숯을 집어넣으며 따뜻한 집안에서 양고기를 굽어 먹으며 지내는데, 빈천한 자들은 부뚜막에 쌀이 떨어지고 부엌에 땔나무조차 없구나. 하늘이 하늘의 뜻을 직접 전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사람을 죽이는 칼(刀)은 내릴 것이다.

 

매섭게 찬 기운에 안개 더욱 어지러운데, 나라의 상서로움이 눈이 내리는 것처럼 분분히 떨어지고 있다. 잠깐 사이에 사방의 들판조차 분간하기 어렵고, 순식간에 온 산이 모두 구름으로 덮였다. 길에는 왕래하는 사람 끊어지고, 공중에는 너울거리며 내리는 눈이 무리를 이루었다. 이 눈이 밤 삼경 이후에도 내리게 되면, 금년 풍년은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말한다네.”

 

주왕과 달기는 잔치를 즐기며 눈을 감상하고 있는데, 시어관이 아뢰었다. “비간이 어지를 기다리옵니다.” 주왕이 말했다. “비간을 녹대에 오르라고 하라.” 비간이 올라와 예를 마치자, 주왕이 말했다. “눈꽃이 섞여 날리고, 눈이 어지러이 휘날리는데, 황숙은 관사에서 술을 마시며 추위를 녹이지 않고, 무슨 상주할 것이 있기에 눈을 무릅쓰고 이곳에 왔습니까?” 비간이 아뢰었다. “녹대는 높아 하늘에 닿을 듯한데, 눈바람이 휘몰아치는 엄동입니다. 신은 폐하께서 용체에 추위를 느끼실까 우려되어 특별히 도포와 저고리 한 벌을 바치옵니다. 폐하께서 이 옷을 입으셔서 냉기를 막고 한기를 몰아내신다면, 신으로서는 작은 정성을 다하는 것이옵니다.” 

 

주왕이 대답했다. “황숙은 연세가 높으신데, 당연히 집에 두고 황숙께서 입으셔야 합니다. 이제 짐에게 이것을 진상하다니, 그 충성과 사랑을 족히 증명할만하오.” 좌우에 명하여 가져오라고 한다. 비간이 대에서 내려가 붉은 소반을 높이 받들어 올리니, 겉은 크고 붉었으며 안쪽은 털빛이었다. 비간이 손수 털옷을 털어 펼쳐서 주왕에게 입혔다. 주왕이 웃으며 말했다. “짐은 천자가 되어 부유하기로는 四海사해를 소유했는데, 실로 추위를 막을 이 옷이 없었구려. 이 털옷을 진상한 황숙의 공로로 말하자면 세상에서 이보다 큰 것이 없을 것이오.”  

 

주왕이 어지를 내렸다. “술을 하사하노니 녹대에서 함께 즐기도록 하시오.” 그때 달기는 비단 주렴 안에서 바라보니, 그 옷이 모두 제 피붙이의 가죽이었다. 그것을 알고는 갑자기 칼로 폐부를 도려내는 듯하고 간장이 불에 타는 듯했는데, 그 고통을 누구에게 말하리오! 마음속으로 욕을 해댔다. “비간, 이 늙은 도적놈! 나의 피붙이가 황제의 술좌석에서 즐긴 것이 너 늙은 도적놈과 무슨 상관이 있더냐? 네 놈은 분명 나를 기만하고, 가죽털옷으로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려는 것이겠지. 내가 너 늙은 도적놈의 심장을 도려내지 않으면, 이 나라의 황후라고 할 수 없으리라!” 달기의 눈에서 눈물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주왕이 비간에게 술잔을 건네주자, 비간은 술을 사양하고 천자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녹대를 내려갔다. 주왕이 털옷을 입고 안으로 들어가자 달기가 맞아들였다. 주왕이 말했다. “녹대가 춥다고 비간이 털옷을 진상하였으니, 심히 짐의 마음을 헤아린 것 같소.” 달기가 아뢰었다. “첩의 어리석은 말을 폐하께서 가히 용납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달기가 재상 비간이 주왕에게 여우 털옷을 진상한 사실에 대해 계속 아뢰었다.


“폐하께서는 龍體용체이시온데, 어찌 이 여우 털옷을 입으시겠사옵니까? 온당치 않은 처사로 용체로서의 존귀하심을 몹시 훼손하는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주왕이 대답했다. “황후의 말이 옳도다.” 털옷을 벗어서 창고에 보관하라고 하였다. 이는 곧 달기가 자신의 동족인 여우 털로 만든 그 털옷을 보고 마음이 상한 끝에 참을 수 없어 그러한 말을 하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달기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 ‘옛날 녹대를 지으려고 할 때, 琵琶비파 자매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였는데, 어찌 이곳에서 이런 말썽거리가 생겨 나의 자손인 여우들이 모두 죽게 될 줄을 알기나 하였겠는가?’


마음속으로 몹시 원통해 하며, 한마음으로 복수를 위해 비간을 해치려고 하였으나 당장 어찌해 볼 계략이 없었다.


세월이 쉼 없이 흘러갔다. 어느 날 달기는 녹대에서 벌어진 잔치에 참석했다가 돌연 한 가지 계책이 떠올랐다.
달기는 몸단장을 등한시했고 예전의 요염함을 잃어갔다. 이전에는 첫 꽃망울을 터뜨리는 목단, 바람을 맞는 작약, 봄비에 젖은 배꽃, 태양에 취한 해당화와 같이 몹시 매력이 있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전혀 딴판으로 활기가 없었다.


이때 주왕은 술을 마시다가 달기를 한참 동안 찬찬히 살펴보니, 달기의 용모가 이전과 크게 달라졌는데, 생기가 없었다.


달기가 말했다. “폐하께서는 천한 첩의 화장기 없는 얼굴을 어찌하여 자꾸 돌아보십니까?” 주왕이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달기가 떼를 쓰며 그 이유를 묻자 주왕이 말했다. “짐이 사랑스런 그대의 용모를 보니 참으로 교태로운 꽃이나 아름다운 옥과 같고, 사람으로 하여금 같이 지내고 싶도록 만들며 손에서 떨어지지 않게 한다오.”   


달기가 대답했다. “첩에게 무슨 용모의 아름다움이 있겠습니까? 성은으로 총애를 받았음에 불과하옵니다. 첩에게 의자매로 사귀는 胡喜媚호희미라고 하는 동생이 하나 있는데, 지금 紫霄宮자소궁에 출가하여 속세를 떠나 있습니다. 첩의 용모는 그녀의 백분지일에도 미치지 못하옵니다.”


주왕은 원래 술과 여색을 탐하였는데, 호희미의 용모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자 자신도 모르게 기쁜 마음이 일어나며 마음이 동하였다.


주왕이 웃으면서 물었다. “사랑하는 황후에게 아우가 있다고 하니, 짐에게 한번 보여줄 수 있겠소?” 
달기가 아뢰었다. “의자매 희미는 규방의 처녀로 어려서부터 출가하여 스승을 모시고 도를 배웠습니다. 신선이 거처한다는 명산의 洞府동부인 紫霄宮자소궁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데, 당장에 어찌 올 수 있겠사옵니까?”
주왕이 말했다. “사랑하는 황후의 도움이 있고, 만나는데 무슨 곡절이 있다하여도 짐에게 한번 보게 해준다면, 또한 그대의 노고가 헛되지는 않을 것이오.”


달기가 대답했다. “첩이 처녀 때 冀州기주에 있을 당시 같은 방에서 바느질을 하였는데, 희미가 출가하게 되자, 첩과 작별을 하였습니다.


그때 첩이 눈물을 뿌리며 울면서 말했습니다. ‘이제 아우와 작별하면, 영원히 서로 볼 수 없을 것이오!’
희미가 대답했습니다. ‘단지 스승을 모신 후, 만약 5행의 술법을 습득하게 되면 내가 소식을 전한다는 信香신향을 언니에게 보내주겠습니다. 언니가 제가 보고 싶다면 이 신향을 불사르면 제가 즉시 올 수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동생이 떠난 지 1년 후에 과연 신향 한 묶음을 보냈습니다. 그 후 2개월이 지나지 않아 성은을 입게 되어 수도인 이곳 朝歌조가로 오게 돼 폐하를 좌우에서 모시게 되었으므로 줄곧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폐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으면 첩 또한 감히 여쭙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왕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사랑하는 황후는 어찌 신향을 속히 불사르지 않는가?”
달기가 말했다. “아직 이릅니다. 희미는 仙家선가에 몸담은 사람으로, 凡俗범속한 사람들과는 다르옵니다.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달빛아래 다과를 진설하고, 첩이 목욕재계하고 신향을 불살라 희미를 맞이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사료됩니다.”


주왕이 대답했다. “황후의 말이 옳도다. 상대의 명예를 더럽혀서는 안 되오.” 말을 마친 주왕은 달기와 더불어 잔치를 즐기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이날 밤 삼경이 되어 주왕이 잠들자, 달기는 여우의 본 모습을 드러내어 궁궐을 나와 마침내 軒轅헌원의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꿩의 요정인 雉雞精치계정이 달기를 맞이하면서 泣訴읍소했다. “언니!  어린 여우들이 언니가 마련한 술좌석에 갔다가 피붙이들이 모두 죽었으며, 그들의 가죽조차 모두 벗겨졌는데, 언니는 모른단 말이오?”
달기 역시 슬프게 울면서 말했다.


“동생! 나의 자손들이 이런 원통한 일을 당했으나 그동안 복수할 방도가 없었소.”

술상이 차려지자 달기와 호희미가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야기의 나래를 폈다. 등불아래 그 모습이 요염하기 짝이 없었다.


주왕이 주렴 뒤에서 희미를 바라보니 진실로 신선이 살고 있는 蕊宮예궁의 선녀와 같았으며, 月宮월궁의 嫦娥항아와 같았다. 


주왕의 魂혼은 3000리를 넘실대며 떠도는 듯하고, 魄백은 산하를 10만 겹으로 둘러싸는 듯한데, 함께 배석해서 이야기하며 한 입에 그녀를 먹어치울 수 없음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주왕은 자신의 귀를 잡아당기고 뺨을 손으로 긁적거리며, 앉았다 섰다 불안해하며,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조바심이 일어난 주왕은 참을 수 없어 마른기침을 어지러이 뱉어낼 뿐이었다.


달기는 이미 주왕의 뜻을 눈치 채고, 눈을 찡긋하면서 희미를 바라보고 말했다.
“희미 동생, 나에게 자네를 모독할 수도 있는 부탁이 하나 있는데, 동생이 가히 받아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
희미가 대답했다. “언니 무슨 분부할 것이라도 있어요? 빈도에게 가르침을 내리세요.”


 

달기가 말했다. “전에 천자의 면전에서 동생의 큰 덕을 찬양하였더니, 천자께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오랫동안 仙顔선안을 한번 보고 싶어 하셨다네. 오늘도 그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데, 흔쾌히 이렇게 동생이 강림하였으니, 실로 천만다행이라네. 


어진 동생이 천자께서 애타게 그리워하는 심정을 알아채고, 허리를 숙여 한 번 자리를 같이해주면 큰 복과 지혜를 얻었다고 여겨 한없이 감격할 것이오! 이제 감히 당돌하게 직접 그대를 알현하지 못하고, 첩에게 부탁하여 소개토록 하였으니, 동생의 뜻은 어떠한지 모르겠소?”


희미가 대답했다. “저는 여자의 몸으로, 하물며 출가하여 수도하므로 낯선 속인들과는 만날 수 없답니다. 게다가 남녀 사이라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또 남녀가 친척이 아니면 마주앉아서 주고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어찌 가히 같은 자리에 대면하여 내외의 예절을 구분하지 않겠어요?”


달기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동생은 이미 출가해서 원래 ‘三界삼계 밖으로 초월하고, 五行오행중에 있지 않다’고 하는데, 어찌 세속의 남녀분별을 가지고 논할 수 있겠나?


하물며 천자는 하늘로부터 명을 부여받은 하늘의 아들로서 만 백성을 다스리시고, 부유하기로는 四海사해를 소유하였으며 모든 병사와 신하를 거느리셨으니, 신선이라도 마땅히 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이야.


하물며 나와 너는 어려서부터 맺어 사귀어 왔고, 의리로 보아서는 실로 같은 배에서 나온 친자매와 다를 바가 없다. 곧 자매의 정으로 천자를 뵙는 것이니, 역시 친척의 도이며 이것은 무방하다고 생각되는구나.” 
희미가 말했다. “언니가 분부하신다면 천자를 청해서 뵙도록 하시지요.”


주왕은 주렴 뒤에서 천자를 청한다는 소리를 듣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곧바로 밖으로 걸어 나왔다. 
주왕이 여도사를 보고 몸을 한번 숙이자 희미도 한차례 절을 하며 서로 예를 주고받았다. 희미가 “천자께서는 앉으시옵소서.”


주왕은 그녀들 옆 좌측으로 앉았고, 달기와 희미 두 요괴는 도리어 아래위로 앉았다.
등불 아래서 희미가 두 세 차례 붉은 입술을 벌리니 바로 한 점 붉은 앵두와 같은데, 앵두 같은 입에서 색색 토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단의 和氣화기였다. 또 요염한 추파를 던지는데, 두 물굽이를 흐르며 살아서 움직이는 물과 같았으며, 희미가 내보내는 눈길은 교태가 뚝뚝 흐르는 만 갈래 바람기를 품은 정분이었다.


주왕의 마음은 원숭이와 같이 산란하였으며, 뜻은 고삐 풀린 망아지와 다를 바 없었는데, 급기야는 정욕에 눈이 멀어 온몸에 땀이 흥건히 배었다. 달기는 주왕이 욕망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눈치 채고,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막을 수 없음을 알았다. 이때 달기는 옷을 갈아입겠다고 하며 몸을 일으켜 자리를 피하려 하였다.


달기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말했다. “폐하께서는 이곳에서 함께 계시옵소서. 첩은 옷을 갈아입고 오겠사옵니다.” 
이 말에 따라 주왕이 다시 아래로 앉으며, 위를 향하여 얼굴을 마주하며 술잔을 권했다.


주왕이 등불 아래서 눈을 찡긋하면서 정분을 내보내자, 여도사 희미도 얼굴에 홍조를 띠며 미소를 보냈다. 주왕이 술잔을 채워 두 손으로 여도사에게 받들어 올렸다. 여도사는 술을 받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답례했다. “감히 폐하를 수고롭게 하다니, 황공하옵니다!”  


주왕이 기회를 틈타 여도사 희미의 손목을 꼬집어도, 여도사는 아무 말도 없었는데, 주왕의 혼백은 하늘 높이 구천으로 나는 듯했다.   


주왕은 이때다 싶어서인지 말을 던졌다. “짐이 여도사와 함께 녹대 앞에서 달을 감상하는 것이 어떻겠소?”
희미가 말했다. “폐하의 가르침을 받겠나이다.” 주왕이 호희미의 손을 잡아끌고 달을 감상하기 위해 녹대를 나왔는데, 희미는 사양하지 않았다. 주왕은 마음이 동하여 희미의 향내 나는 어깨에 몸을 기대고, 달 아래서 꼭 껴안으니 정감은 더욱 짙어만 갔다.

 

주왕은 호희미에 대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정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말했다. “仙姑선고는 어찌하여 이 도가수련을 포기하지 않으시오? 언니 달기와 함께 궁궐에 머물면서, 도가의 맑고 깨끗함을 버리고 부귀를 누리도록 합시다. 아침저녁으로 즐기고 四時사시 환락에 젖어 살면 어찌 즐겁지 않겠소! 인생이 살면 얼마인데, 이렇게 수도하면서 스스로 힘들게 사시오? 여신선인 그대 仙姑선고의 뜻은 어떠하오?” 희미는 말이 없었다.

 

주왕은 희미가 핑계를 대며 피하지 않는 것을 보자, 이어 손으로 희미의 풍만한 젖가슴을 더듬었다. 살결이 부드러워 솜과 같고, 따뜻하고 윤기 나는 매끈매끈한 배 가죽에 손이 닿자 희미는 반은 밀쳐 내는 듯 반은 못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주왕은 희미의 이런 모습을 보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두 팔로 희미의 허리를 꽉 껴안고 편전에서 즐거움을 맛보는데, 침상위에서 나뒹굴며 몇 차례 雲雨운우의 정을 나누고서야 비로소 천자의 손을 멈추었다. 

 

막 일어나 옷을 바로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달기가 나타났다. 달기는 희미가 삼단 같은 검은 머리칼을 어지러이 흩트린 채 가쁜 숨을 쌕쌕 몰아쉬는 것을 보고 말했다. “동생은 어찌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가?” 주왕이 말했다. “사실대로 속이지 않고 말하겠소. 방금 희미와 부부의 인연을 나누었소. 하늘에서 부부의 인연으로 붉은 줄(紅線)인 赤繩적승을 내리셨으니, 언니와 동생 자매가 짐의 옆에 있으면서 아침저녁으로 기쁨을 나누고 함께 무궁한 복을 누릴 것이오. 이것은 역시 사랑하는 그대가 희미를 천거해준 공이니, 짐의 마음은 기쁘기 그지없으며, 감히 그 공로 잊지 않으리다.” 주왕이 즉시 명을 내려 주안상을 새로 차리게 하여 세 사람이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새벽녘 5경이 되어서야 술자리를 파하고 녹대위에서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이 장면을 읊은 시가 남아있다.
“나라가 망하려하니 요기가 나타나고, 가정이 망하려함에 주왕이 더욱 어리석었다. 군자의 간언은 들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아첨하는 간신의 말만 받아들였다. 먼저 여우가 변신한 달기를 사랑하다가, 또 꿩의 요정인 雉雞精치계정을 총애하였다. 재상 比干비간이 이 괴상한 일을 만나게 되었고, 결국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한편, 주왕이 몰래 호희미를 받아들인 것을, 바깥 조정에서는 몰랐다. 천자는 국사를 돌보지 않았고, 깊은 궁궐 속에서 방탕은 그 도를 더해 갔다. 바깥 조정과는 단절되었으며, 진실로 조정과는 만 리나 떨어진 것 같았다. 이때 무성왕 황비호가 대원수의 권한을 장악하고, 수도 조가성의 48만 병력을 지휘하여 도성을 지키고 있었다. 비록 나라를 위해 붉은 충심뿐이었으나 종내 천자의 얼굴을 알현하고 올바른 간언을 올릴 방도가 없었다. 피차간 얼굴을 맞대고 정사를 논할 통로가 단절 되었으니 어찌할 방도가 없어 다만 장탄식을 할 뿐이었다. 

 

어느 날 하루 보고가 올라왔다. 東伯侯동백후 姜文煥강문환이 병력을 나누어 野馬嶺야마령을 공격하면서 陳塘關진당관을 손에 넣으려는 속셈이라고 하였다. 이에 황총병이 魯雄노웅에게 10만 명의 병사를 거느리게 하여 야마령을 지키라고 하였다는 보고였다. 이때 주왕은 호희미를 얻게 된 것을 스스로 만족하며, 날마다 남녀지간 雲雨운우의 정을 나누고, 밤마다 술을 마시며 흥겨워 노래하니, 社稷사직의 일이 무어 그리 중하게 여겨질 수 있었겠는가? 

 

밤새 주색을 즐기고 난 어느 날 아침, 달기와 호희미 두 요괴가 녹대위에서 막 조반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달기가 큰 소리를 지르면서 땅바닥에 넘어졌다. 주왕은 깜짝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두려워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달기는 땅바닥에 쓰러져 입에서 피를 내품으면서 두 눈을 꼭 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얼굴색이 검붉은 자주색으로 변했다.
 
주왕이 말했다. “황후, 그대는 짐을 따른 지 이미 여러 해, 이러한 질병이 없었는데, 오늘 어찌하여 이러한 흉악한 병증을 얻었단 말이요?” 희미가 일부러 머리를 끄덕이며 탄식하듯이 말했다. “언니의 옛날 질병이 발병했구나!” 천자가 물었다. “호미 미인, 어찌하여 황후에게 이러한 묵은 옛날 고질병이 있단 말이오?” 희미가 아뢰었다. “옛날 冀州기주에 있을 때, 우리 둘은 규중의 아가씨였습니다. 그때 언니에게는 늘 심장에 통증이 오는 질환이 있었는데, 한번 발병하면 거의 죽다시피 했습니다. 기주에 의사 한 분이 있었는데, 張元장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의사는 약 처방이 아주 신묘하였는데, 玲瓏心영롱심이라는 약 한 조각을 끓여서 먹으면 이 질환이 즉시 나았습니다.”

 

주왕이 말했다. “어지를 내려 冀州기주 의사 張元장원을 대령하게 하라.” 호희미가 아뢰었다. “폐하의 말씀이 잘못 되었습니다! 조가에서 기주까지 지가 얼마나 먼 길 입니까? 한번 갔다 오는데도 한 달 여가 걸립니다. 날짜를 지체한다면 어찌 황후를 구할 수 있겠나이까? 조가에서라도 만약 玲瓏心영롱심이 있다면, 한 조각을 구해서 즉시 달여 먹으면 구할 수 있사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곧 죽을 것입니다.” 주왕이 물었다. “영롱심을 누가 가졌는지 알 수 있는가?”  희미가 대답했다. “소첩이 일찍이 스승을 모시고 배운 적이 있어, 점을 칠 줄 아옵니다.” 주왕이 크게 기뻐하며, 희미에게 빨리 점을 치라고 명령했다.

 

치계정 희미는 일부러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점을 추산하더니, 아뢰었다. “조정 중에 오직 대신 한 분이 있는데, 관직이 顯貴현귀하여 대신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폐하께서 이 사람을 아끼시느라 언니를 구해내지 못할까 두렵사옵니다.” 주왕이 재촉했다. “도대체 누구이냐? 빨리 말하라!” 희미가 말했다. “오직 아상 比干비간만이 심장이 玲瓏心영롱심이고, 심장에 구멍이 일곱인 玲瓏七竅영롱칠규의 심장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주왕이 대답했다. “비간은 황제의 숙부이고, 우리 문중의 嫡子적자인데, 설마 황후가 고질병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한 조각 영롱심을 빌려주지 않겠는가? 속히 황제의 편지를 보내어, 비간을 들라고 하라!”

 

어지를 전달하는 관리가 나는 듯이 승상부로 갔다. 이때 비간은 일이 없어 한가로이 있으면서 나라가 쓰러질 위험에 처해 있고, 조정이 마땅함을 잃고 있어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계책을 세우고 있었다. 갑자기 堂候官당후관이 운판을 두드리면서 御札어찰을 전달하고 속히 입궐하라고 했다. 비간이 황제의 어찰을 접수하면서 예를 마치고 물었다. “천자의 사신인 天使천사는 먼저 돌아가시고, 궐문에서 만납시다.” 비간은 생각해본다. “조정 중에 일이 없는데, 어찰이 어찌 이리 심히 재촉하는가?”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또 어찰이 이르렀다고 보고가 전해졌다. 비간이 다시 접수했다.

 

얼마 되지 않아 연달아 다섯 차례 어찰이 전해졌다. 비간은 의혹이 들었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어찰을 다섯 차례나 보내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데, 또 보고가 왔다. “어찰이 또 이르렀습니다!” 어찰을 가지고 온 자는 봉어관 陳靑진청이었다. 비간은 어찰을 접수하고 나서 진청에게 물었다. “무슨 긴급한 일이 있기에 어찰을 여섯 차례나 보내고 있소?”      

 

진청이 대답했다. “승상께서 위에 계시지만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바야흐로 지금 국가의 세력은 점차 쇠하여 가는데, 녹대에는 또 새로 호희미라는 여자 신선을 받아들였습니다. 오늘 조반 때에 황후마마께서 우연히 심장병이 도져 기절하셨습니다. 호희미가 진언하기를 영롱심 한 조각을 얻어 달여 먹으면 곧 낫는다고 하였습니다. 황상께서 ‘영롱심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고 묻자, 호희미가 괘로 점을 치더니 승상께서 바로 영롱심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여섯 차례나 어찰을 보내시어 비간 승상의 심장 한 조각을 빌려 급히 황후 마마를 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다급해 하시는 것입니다.”


비간이 듣고는 간담이 다 떨어지는 듯 놀랐는데, 스스로 생각해보니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고 말했다. “진청 공, 당신은 남문에서 기다리시오, 내가 곧 갈 것이오.” 비간은 안으로 들어가 부인 孟氏맹씨를 보고 후사를 부탁했다. “부인, 당신은 살아서 아들 微子德미자덕을 잘 돌보아 주시오! 내가 죽은 뒤에 당신 모자는 살아남아 우리 가훈을 지키고, 결코 경솔해서는 아니 되오. 이제 조정에는 사람하나 없게 되었소!”

 

말을 마치자 비간의 눈에서는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맹씨 부인은 크게 놀라서 물었다. “대왕, 어떠한 연고로 이러한 불길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비간이 대답했다. “어리석은 임금이 달기가 고질병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내 심장을 떼어내어 탕약을 만들겠다고 하니 어찌 살아날 도리가 있겠소!” 맹씨 부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벼슬이 재상의 지위에 계시고, 거짓말로 남을 속인 적도 없으며, 위로는 천자께 죄를 짓지 않았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貪酷탐혹함이 없었습니다. 대왕의 忠誠節孝충성절효는 온 세상에 드러나 있습니다. 무슨 죄악이 있어 어찌 심장을 도려내는 참혹한 형벌에 처해진단 말입니까?” 

 

아버지 비간과 어머니 맹씨 부인이 나누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 微子德미자덕이 울면서 말했다. “父王부왕이시여, 걱정하지 마십시오. 방금 이 아이에게 옛날 강자아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미자덕이 말을 이었다. “옛날에 姜子牙강자아가 부왕의 기색을 살피시다가 앞날이 좋지 않다고 하시면서 簡帖간첩 하나를 남기고 갔습니다. 글방에서 읽어보았는데,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위급한 어려움이 다가와 進退兩難진퇴양난의 길이 없는 지경에 처했을 때 서간을 펴보시면 구해줄 수 있을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비간이 문득 깨닫고 말했다. “아! 하마터면 깜빡 잊을 뻔 했구나!” 서둘러 글방 문을 열고 벼루 밑을 살펴보니 서간 하나가 깔려 있었다. 얼른 꺼내어 읽어보니 비책이었다. 비간이 말했다. “빨리 불을 가져오너라.” 물 한 사발을 떠오자 강자아가 남긴 부적을 물속에서 불사르고, 비간이 그 물을 마셨다. 그리고 서둘러 관복을 입고 말에 올라 대궐 남문으로 갔다.

 

한편 진청이 여섯 차례 御札어찰을 내려 비간을 불러들인 내막을  발설하자, 성 안의 모든 軍民군민과 관리들이 놀라게 되었으며, 비간의 심장을 취하여 탕약을 만들려고 한다는 사실도 모두 알게 되었다. 이때 무성왕 황비호는 여러 대신들과 함께 궐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비간이 말을 타고 나는 듯이 와서 궐문에서 말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 백관이 황망히 그 연고를 물었다. 비간이 봉어관 진청의 말에 따라 자초지종을 말했다. 백관이 비간을 따라 대전에 이르렀고, 비간 곧 녹대로 가서 어지를 기다렸다.

 

주왕은 비간이 오기를 서서 기다리다가 비간이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고, 녹대위로 올라오라고 명을 내렸다. 비간이 천자에 대한 예를 올리자 주왕이 말했다. “황후가 우연히 고질병인 심장병이 발병했는데, 오직 영롱심 만이 낫게 할 수 있다고 하오. 皇叔황숙께서 영롱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한 조각 빌려주어 탕약을 만들어 고질병을 치료하여 만약 낫게 한다면 그 공로는 막대하다 할 것이오.” 비간이 물었다. “玲瓏心영롱심이라는 것에서 心심이 무슨 물건이옵니까?” 주왕이 대답했다. “바로 황숙의 뱃속(腹內)의 心臟심장이오.”

 

비간이 노하여 아뢰었다. “심장이란 한 몸의 주인으로 폐 안에 숨어있고, 여섯 잎(6葉)이고 두 귀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백가지 악독이 침범하지 못하며, 한번 침입하면 곧 죽습니다. 심이 바르면, 수족이 바르며, 심이 바르지 못하면 곧 수족도 바르지 못하옵니다. 심은 곧 만물의 신령한 싹이며, 四象사상(태양 ․ 태음 ․ 소양 ․ 소음)변화의 근본이옵니다. 저의 심에 상함이 생기면, 어찌 살아갈 길이 있겠사옵니까? 이 늙은 신하는 죽는 것이 아깝지 않으나 단지 社稷사직이 폐허가 되고 어질고 재능있는 신하가 다 끊어질까 염려되옵니다. 이제 혼미해진 주군께서 새로 받아들인 요부 호희미의 말을 듣고, 저의 심장을 떼어내는 재앙을 내리시다니, 다만 비간이 있어야 강산이 있고, 비간이 존재해야 사직이 존재합니다!” 

 

주왕이 말했다. “황숙의 말은 옳지 않소! 단지 심장 한 조각 빌린다고 하여, 일신에 해를 끼치는 것이 없는데, 하필 그래 말을 많이 하는 것이오?” 비간이 매섭게 고함을 지르며 말했다. “이 어리석은 임금이여! 그대는 주색에 혼미해진 흐리멍덩한 개도야지로구나! 심장 한 조각을 제거하면 나는 곧 죽소. 비간이 심장을 도려내는 죄를 범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이러한 무고한 재앙을 당한단 말이오!”

 

주왕이 노해서 말했다. “군주가 신하에게 죽으라고 하면, 죽지 않으면 충성이 아니오. 녹대위에서 임금을 헐뜯거늘 신하로서 절개가 있다고 하겠는가! 짐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무사들이 끌어내게 하여 심장을 취해 오도록 하겠다!” 비간이 주왕을 크게 꾸짖었다. “달기 이 천 한 것아! 내 죽어 지하에 가서 선대 제왕을 뵙더라도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비간이 좌우에 대고 외쳤다. “검을 내게 가져오너라!”

 

주왕을 모시는 호위장이 검을 비간에 건네주었다. 비간이 검을 받아 손에 쥐고, 역대 황제들의 사당인 太廟태묘를 바라보며 큰 절을 8번 올리고, 울면서 말했다. “은나라의 시조이신 成湯성탕 선왕이시여! 주왕 殷受은수가 성탕의 28대 천하를 끊어버릴 줄을 어찌 알았으리오! 이는 신의 불충이 아니옵니다!”

 

이어서 허리띠를 풀고 몸을 드러내고, 검을 배꼽 가운데로 찔러 넣고 배를 갈랐으나 피가 흐르지 않았다. 비간이 손을 배 속으로 집어넣고 심장을 끄집어낸 뒤 아래를 향하여 집어 던졌다. 그리고 옷으로 가리고 아무 말이 없었으며, 얼굴은 창백한 누런색이 되어 녹대를 내려갔다.

 

여러 대신들이 대전 앞에서 비간의 일을 서로 묻고 있었다. 여러 신하들은 분분하게 천자의 失政실정을 의론하고 있는데, 대전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황비호 대원수가 뒤를 바라보니 비간이 나오고 있었으므로 마음속으로 크게 기뻤다. 황비호가 물었다. “비간 전하!, 사정이 어떻게 되었나이까?” 비간은 말이 없었다. 백관들이 영접하러 나아갔다.

 

비간은 머리를 숙이고 바삐 걷는데, 얼굴은 노란 종잇장과 같았으며, 곧장 구룡교를 지나 궐문을 나섰다. 항상 따르는 시종은 비간이 조정을 나서는 것을 보자, 말을 대기시켰다. 비간이 말에 올라 북문 쪽으로 갔다. 비간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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