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봉신연의(封神演義)_20

醉月 2011. 9. 27. 07:16

20장 산의생이 비중과 우혼에게 은밀히 뇌물을 쓰다

삽화 권미영

 

 

지난 줄거리: 백읍고가 연주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주왕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달기는 거문고 가락 속에 임금을 비방하는 말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백읍고를 끌어내려 한다. 이때 백읍고가 한 단락이 남았다며 ‘여색을 멀리해 천하를 태평케 하시라’는 의미로 노래한 후 거문고를 달기가 앉아 있던 연회상에 힘껏 내리쳤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주왕은 좌우의 시어관에게 명령해 백읍고를 채분 속으로 집어넣게 한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분이 풀리지 않은 달기는 백읍고의 수족에 못질하고 칼로 잘게 썰어 젓갈을 만들게 했다. 주왕이 이를 독사에게 먹게 하자, 달기는 육젓으로 떡을 만들어 백읍고의 아버지인 희창에게 먹게 하되, 먹지 않으면 죽이자고 말한다. 서백후 희창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데···.

 

 

서백후 희창이 羑里城유리성에 갇혀 있었는데, 지금 행정구역으로는 河南하남 相州상주 湯陰縣탕음현이었다. 매일 문을 닫아걸고 죄를 기다렸다. 그때를 이용하여 伏羲八卦복희팔괘를 공부하였는데, 팔괘를 변화시켜 八8×八8 64괘를 만들고, 64괘를 거듭 변화시켜 384효를 만들었다. 안으로는 음양이 사그라지고 멈추는 기미를 고찰하고, 하늘이 주기적으로 운행되는 도수의 오묘함을 살피어 周易주역을 만들었다.

 

희창은 마침 한가롭고 일이 없어 울적한 김에 거문고 한 곡조를 타고 있는데, 뜻밖에 거문고 줄 중에 큰 줄에서 홀연히 사나운 殺聲살성이 일어났다. 서백후가 놀라서 말했다. “이 살기 띤 소리는 무슨 괴이한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 서둘러 거문고 켜는 것을 멈추고, 황망히 동전을 꺼내어 점을 치고서는 그 연유를 알게 되었다.

 

서백후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내 아들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고, 몸이 가루로 부수어지는 화를 만났구나! 오늘 만약 자식의 육신을 먹지 않으면, 내 몸이 죽게 되는 재앙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자식의 육신을 차마 어찌 먹을 수 있단 말인가! 내 마음이 칼로 에는 듯 아파도 감히 슬퍼하며 울 수조차 없구나. 이 기밀이 누설된다면 나의 몸조차 보존하기 어렵겠구나!”

 

희창은 다만 슬픔을 머금고 눈물을 참고 있는데, 감히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이 마음을 詩를 지어 탄식했다.
“외로운 몸이 충성과 의리를 가슴에 품고, 만 리 밖에서 아버지가 감금 되어 있는 재앙의 현장을 찾아왔다. 羑里城유리성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먼저 은나라 주왕을 알현했다. 거문고를 타다가 요부(달기)를 제거하기 위해, 순간 노한 마음에서 거문고를 달기에게 던졌다. 애석한 젊은 나그네, 영혼조차 낙심하여 식은 재가 되어 허공을 떠도는구나!”

 

희창이 시를 다 지었는데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희창의 심사를 몰랐으며, 모두가 묵묵히 말이 없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주왕의 사자가 도착해서 어지를 전달 했다. 희창이 흰색의 상복을 입고 어지를 봉명했다. “황제 폐하, 죄를 범한 신하, 죽어 마땅하옵니다.” 희창이 어지를 받아 읽기를 마쳤다. 使命官사명관이 용봉이 새겨진 찬합을 벌려놓았다.

 

사명관이 말했다. “주상께서는 현후께서 유리성에 오fot동안 구금되어 계시는 것을 보고, 聖心성심이 편치 못하십니다. 어제 성상께서 사냥을 가시어 사슴을 잡았기에 그것으로 肉餠육병을 만들어 특별히 현후께 내리셨습니다. 이에 명을 받고 왔습니다.”

 

희창이 탁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찬합 뚜껑을 열면서 말했다. “聖上성상께서 말을 타고 사냥하시는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으시고, 도리어 죄를 지은 신하에게 사슴고기로 만든 떡을 하사하시어 맛보도록 하였사옵니다. 폐하의 깊으신 은혜에 감사드리오며 만수무강을 기원 합니다!”

 

주왕에게 감사를 표하고 연달아 떡 3개를 먹고 찬합 뚜껑을 닫았다. 사명관은 희창이 자식의 육신으로 만든 떡을 먹는 것을 보고 조용히 탄식했다. “사람들은 희창이 능히 先天神數선천신수를 알아 길흉을 잘 안다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 자식의 육신으로 만든 떡을 보고도 모른 채 신속히 먹어치우고 맛있다고 하니, 소위 음양을 안다 길흉을 미리 안다 하는 것도 모두 헛된 말일 뿐이었구나!”

 

한편, 희창은 자식의 육신임을 명확히 알았으나, 고통을 참아 머금고 감히 슬퍼할 수도 없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추슬러 사명관에게 말했다. “흠차대인, 죄를 지은 신하로서 몸소 폐하의 은덕에 사례할 수 없습니다. 감히 대인께서 번거롭겠지만 이 희창이 폐하의 은덕에 오직 감사할 뿐이라는 것을 전달하여 주십시오.”

 

이어서 희창은 엎드려 절을 하며 외쳤다. “성상의 은혜와 영광을 입었사오며, 또 이곳 유리성에까지 널리 비치옵니다.” 사명관은 조가성으로 돌아갔다. 희창은 자식을 생각하며 괴로움에 빠져 감히 울지도 못하고 조용히 詩를 지어 탄식할 뿐이었다.

 

“西岐서기를 떠나 이곳에 왔는데, 일찍이 강과 관문을 넘어 찾아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어리석은 임금에게 조공이나 바칠 것만 알았지, 임금을 만나 임금의 안색을 살펴 간언하는 것을 몰랐다. 젊은 忠良충량이 공연히 비참하게 되었으니, 눈물이 흐르다가 빗물처럼 흘러내린다. 떠도는 한 점 혼백이 어느 곳으로 돌아갈 것이며, 靑史청사에 그 이름을 올리는 것을 어찌 등한히 하랴?”

 

희창이 시를 다 짓고 나자 자기도 모르게 우울함에 빠져 침식을 폐하고 유리성에 틀어박혔다. 사명관은 조가성으로 돌아가 복명했다. 그때 주왕은 현경전에서 비중. 우혼과 함께 바둑을 두고 있었다. 좌우의 시어관이 아뢰었다. “사명관이 어지를 기다리옵니다.” 주왕이 현경전에 올라 보고하라고 어지를 내렸다. 사명관이 아뢰었다. “신이 어지를 받들어 백읍고의 육신으로 만든 肉餠육병을 유리성에 가져가 희창에게 전달하였사옵니다.”

 

사명관이 계속해서 희창의 동태를 보고했다. “희창이 폐하께 감사를 드리면서 말했사옵니다. ‘희창은 죄를 지은 신하로서 마땅히 죽어야 하오나, 성은을 입고 사면되어 다시 살아나 먼 곳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이제 황상께서 몸소 말을 몰아 사냥하시는 노고를 마다치 않으시고, 죄지은 신하를 위해 사슴고기 육병을 하사하시었사옵니다. 성은이 호탕하시어 감읍할 뿐이옵니다!’ 이어서 땅바닥에 꿇어앉아 찬합 뚜껑을 열고 연달아 3개의 떡을 먹었사오며,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며 폐하의 은혜에 감읍하였사옵니다.


또 신하에게 말했사옵니다. ‘죄 지은 신하 희창이 폐하를 뵐 수 없다’고 하면서 다시 8번 절을 하였사옵니다. 이어서 폐하께 이러한 사정을 전달해 달라고 하였사옵니다.” 주왕이 사명관의 말을 듣고, 비중에게 말했다. “희창이 본래 이름이 높았으며, 先天선천의 술법을 잘 추산하여 길흉의 예측이 정확하고 禍福화복에 대한 조금의 차이가 없다고 하였소.

 

이제 비록 자기 자식의 고기를 먹고도 몰랐으니, 사람들이 하는 말을 어찌 다 믿을 수 있으랴! 짐이 생각해보니 희창이 구금된 지가 어느덧 7년이나 되었으니 사면해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데, 두 분 경의 뜻은 어떠하시오?”


비중이 아뢰었다. “희창의 길흉예측이 정확한 것으로 알고 있사온데, 자식의 고기를 먹었사옵니다, 자식의 육신을 먹지 않으려고 하였사오나 살육을 당할까 두려워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었사옵니다. 이것은 몸이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계책으로 부득이하게 먹었을 것이옵니다. 폐하께서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사온데, 자칫 간교한 술책에 빠질까 염려되옵니다.”

 

주왕이 말했다. “희창이 자식의 육신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결단코 먹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오. 희창이 큰 현인이라고 하는데, 어찌 차마 자식의 살을 씹을 수 있겠소?” 비중이 아뢰었다. “희창이 밖으로는 충성스러운 것 같으나, 안으로는 간교함을 품고 있어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속고 있사오니, 지금처럼 유리성에 가둬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치 호랑이가 함정에 빠진 것 같고, 새가 조롱에 갇혀 고생하는 것 같은 형세에도, 비록 살기를 드러내지 않았으나 그 날카로운 기운을 연마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하물며 지금 동남 두 군데 방향에서 이미 반란이 일어났으나, 아직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이제 희창을 서기로 돌아가도록 석방하면 우환이 하나 늘 뿐이옵니다. 폐하께서는 이를 염두에 두시옵소서.”


주왕이 말했다. “경의 말이 옳도다.” 이것은 아직 서백후 희창의 재액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고, 헐뜯고 아첨하는 자들의 방해 때문이었다. 이 장면을 읊은 詩가 남아 있다. “유리성에 구금되어 재액이 끝나지 않았는데, 비중이 주왕 곁에서 희창을 참언했다. 만약 서기성의 대부인 산의생의 계책이 없었더라면. 어찌 文王문왕 희창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랴!”

 

한편, 주왕이 희창을 사면하지 않았는데, 백읍고와 함께 조가성에 온 시종들은 주왕이 백읍고의 육신을 잘게 썰어 육장을 담근 것을 알고는 밤을 틈타 도망쳤다. 서기성으로 돌아가 두 번째 공자 姬發희발(나중에 周武王주무왕)을 알현했다. 희발이 어느 하루 정전에 올랐는데, 문을 지키는 관리가 와서 보고했다.


“공자 백읍고를 따라 조가성에 갔던 시종들이 뵙기를 청하옵니다.” 희발은 이 보고를 받자 조가성에서 돌아온 시종들을 서둘러 정전으로 불러들였다. 시종들이 울면서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리자, 희발이 그 연유를 물었다. 그들이 아뢰었다. “공자께서 조가성으로 가서 공물을 바치고, 유리성에 계시는 어른(희창)을 찾아뵙지 않은 채, 먼저 주왕을 알현하였습니다. 상세한 내막을 모르겠사오나 동자께서는 육신이 잘게 썰리어 육장(젓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희발이 그 말을 듣고, 정전에서 크게 목 놓아 우는데,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양쪽에 시립해 있던 문무관원들 중에서 대장군 南宮适남궁괄이 고함을 질렀다.

 

“백읍고 공자께서는 서기 땅의 어린 주인이신데, 이제 주왕에게 공물을 바치러 가서 도리어 육신이 잘게 썰리는 참화를 당하였습니다. 우리의 주공께서는 유리성에 갇혀 계시는데, 주왕이 비록 어리석고 혼란하나, 우리들이 君臣군신으로서의 예절이 있으므로, 기꺼이 先王선왕에 대해 충성을 저버리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공자께서 무고하게 살육을 당하였는데, 가슴이 아프고 뼈가 잘리는 것 같습니다. 군신의 의리는 이미 끊어졌고, 기강과 常道상도의 구분이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이제 동남 두 군데에서 일어난 반란에 대해 고전을 면치 못한지가 여러 해이고, 우리는 나라의 법을 받들어 신하로서의 도리를 지켰으나 이제 이와 같이 되었습니다.”

남궁괄은 노기등등하여 주왕의 무도함을 성토해 나갔다. “어찌하여 문무양반을 통합하고, 나라를 기울려 군사를 일으켜서 먼저 五關5관을 확보하고, 조가성으로 쳐들어가 어리석은 임금을 토벌하여, 다시 현명한 군주를 세우지 않습니까? 바로 소위 재앙과 어지러움을 평정하여 세상을 태평하게 하는 것도 역시 신하된 자의 도리를 잃는 것이 아니라 생각되옵니다!”

 

양쪽에 늘어선 장군들은 남궁괄의 말을 듣고 있었고, 또 신갑 ․ 신변 ․ 태전 등 四賢4현 八俊8준과 희창의 아들 희숙도 등이 일제히 고함을 질렀다. “남장군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여러 문무관원들이 이를 갈며 어금니를 깨물고, 화가 나서 눈썹을 치켜세우며 눈을 부릅떴다. 일곱 칸의 전각에서는 여러 신하들의 웅성거리며 떠들어대는 소리만 들리는데, 희발 조차도 마음을 결정할 수 없었다.


그때 산의생이 화가 난 듯 음성을 높이며 말했다. “공자께서는 분분한 의견에 흔들리지 마소서, 신에게 아뢰올 말씀이 있사옵니다!” 희발이 말했다. “상대부께서는 지금 무슨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산의생이 대답했다. “공자께서는 刀斧手도부수에게 명령하여 먼저 남궁괄을 남문으로 끌어내어 참수를 한 후에 다시 국가 대사를 논의하셔야 합니다.”


희발과 여러 장군들이 물었다. “선생은 무엇 때문에 먼저 남 장군을 참수하라고 하십니까? 이렇게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여러 장군들로 하여금 불복하게 하고 있습니다.” 산의생이 여러 장군들에게 말했다. “이 亂臣賊子난신적자는 주군을 불의에 빠뜨리고 있사오니, 당연히 먼저 참수하고 다시 국사를 재론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다만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드는 것만 아는데, 그러한 용기는 무모할 뿐입니다. 이들은 주군 희창께서 신하로서의 절개를 갖추어 충심이 두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굳게 지키고 계시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비록 유리성에 구금되어 계시지만 마땅히 원망하는 말이 없습니다.


남궁괄 등이 경솔하게 분별없는 짓을 하면, 군대가 다섯 관문에 닿기도 전에 먼저 주군께서 불의의 죽음에 빠질 것이 뻔한데, 이것은 참으로 무슨 마음입니까? 그러므로 먼저 남궁괄을 참수하고 난 후 다시 국사를 논해야 옳다는 말씀입니다.”

 

공자 희발과 여러 장군들은 묵묵히 산의생의 말을 듣고 말이 없었다. 산의생이 말했다. “그때 백읍고 공자께서 이 산의생의 말을 듣지 않아서 오늘 몸이 죽게 되는 재앙을 당하였습니다. 옛날 대왕(서백후 희창)께서 조가성으로 가시던 날 先天數선천수로 점을 치시고는 ‘7년의 재앙이 있는데, 재앙이 다 끝나면 자연히 영광스럽게 돌아올 날이 있으니, 반드시 사람을 보내 접촉하려고 하지 말라’하는 말씀이 오히려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은데, 공자께서 듣지 않으시고 이러한 재앙을 만났습니다.


하물며 또 뇌물을 쓰는데 실패 하였는데, 지금 주왕이 총애하는 비중과 우혼 두 간신에게 뇌물로 줄 예물을 휴대하지 않아 그래서 공자께서 몸을 잃는 재앙을 당하였습니다.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신 한 명을 뽑아 많은 뇌물을 가지고 조가로 가서 비중과 우혼에게 상납하여 사사로이 통하게 하고, 그래서 안팎이 서로 상응하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 신이 비중과 우혼에게 보내는 간절히 애걸하는 편지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두 간신이 뇌물을 받는다면 반드시 주왕의 면전에서 좋은 말로 변호할 것이옵니다.

 

그러면 노대왕께서는 자연히 귀국하게 될 것이고, 그때 덕을 닦고 어짐을 베풀며, 주왕의 악행이 가득차기를 기다려 다시 천하의 제후들과 함께 무도한 주왕을 징벌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때 고생하는 백성을 위로하고 죄 있는 통치자를 징벌하는 군사를 일으키면, 천하가 자연히 호응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군주를 폐하고 다시 도 있는 자를 옹립하면 인심이 기쁘게 복종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갓 패망하는 길을 택하게 되어 더러운 이름을 후세에 남겨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희발이 말했다. “선생의 가르침은 몹시 훌륭하여 저로 하여금 일시에 도리를 깨닫게 하였으니, 진실로 금옥과 같은 논리입니다. 먼저 어떤 예물을 써야할지 또 누구에게 뇌물을 주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선생께서는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시오.”

 

산의생이 대답했다. “뇌물로는 明珠명주 ․ 白玉백옥 ․ 채색비단 ․ 황금 ․ 玉帶옥대 등으로 하고, 예물을 둘로 똑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는 太顚태전을 사신으로 하여 비중에게 보내고, 또 하나는 閎妖굉요를 사신으로 하여 우혼에게 보내십시오.

 

두 장군으로 하여금 한밤중에 다섯 개의 관문을 통과하고 장사치로 변장하여 몰래 조가성으로 들어가도록 하십시오. 비중과 우혼이 만약 이 예물을 받는다면, 대왕(서백후 희창)께서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귀국할 것이니, 자연히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희발 공자는 산의생의 고견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서 예물을 마련했다. 산의생이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두 장군을 사신으로 삼아 조가성으로 가도록 했다. 태전과 굉요 두 장군은 장사꾼으로 변장하고 뇌물을 휴대해서 몰래 밤을 틈타 汜水關사수관으로 갔다. 관문을 통과하는 데는 검색이 엄격하였으나 두 장군은 무사히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어서 그들은 가는 길에 아무런 제약도 없이 界牌關계패관을 지났고, 80리를 가서 穿雲關천운관을 통과하였으며, 또 潼關동관을 지났다. 120리를 가서 臨潼關임동관에 이르렀다. 㴐池縣면지현을 지나고 황하를 건넜다. 곧 孟津맹진에 도착하여 바로 은나라의 도성인 조가성으로 들어갔다. 두 장군은 감히 관역에 편안히 머물지 못하고 객점에 투숙하여 쉬면서 몰래 예물로 건네줄 뇌물을 수습했다. 태전은 비중의 저택으로 가서 서신을 전하였고, 굉요는 우혼의 저택으로 가서 편지를 전했다.


한편, 비중은 저물어서야 조정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문지기가 주인인 비중에게 아뢰었다. “서기 땅 상대부인 산의생의 사신이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 말에 비중이 웃으면서 말했다. “늦었구나! 그더러 들어오게 하여라.” 태전이 대청 앞에 이르러 절을 올리고 마주했다. 비중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이리 늦은 시각에 나를 보려고 하시오?” 태전이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소장은 바로 서기 땅의 神武신무대장군 태전입니다. 오늘 상대부 산의생의 명을 받들어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비중 대부께서 저희 주군이신 서백후의 생명을 보전케 해주셨고, 다시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그 은혜는 높고 깊어 그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매번 조그마한 보탬도 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여 지금 특별히 소장을 파견하여 문안편지를 올리게 했습니다.”

 

비중은 태전에게 몸을 일으키라고 하며, 편지를 뜯고 읽어 내려갔다. “서기 땅의 비천한 관리 산의생이 머리를 조아리고 백번 절을 올리면서 상대부 비중 공께 편지를 올립니다. 오래도록 큰 덕을 앙모하였지만 아직 문을 두드리지 못하였으니, 스스로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있었고, 그간 지도편달을 받을 인연이 없었는데, 꿈속에서라도 특별히 목마른 듯이 그리워하였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아뢰옵니다. 저희들의 주군인 희백은 무모한 말로 임금의 뜻을 거스르게 하였는데, 그 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께서 구원해 주신 은혜로 생명을 온전하게 얻게 된 것에 대해 깊이 감동하고 있습니다. 비록 유리성에 구금되어 계시지만, 실로 대부께서 여생을 다시 주신 것과 같습니다. 대단히 다행스러워 그밖에 또 무엇을 감히 바라겠습니까? 소직들은 편벽된 시골 한 모퉁이에 거처하는 까닭에 아직 은혜를 갚지 못하여 밤낮으로 다만 황제가 계시는 황도를 바라보면서 멀리서나마 만수무강을 빌 뿐입니다.

 

오늘 일부러 대부 태전을 파견하여 변변찮은 작은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백옥 두 쌍, 황금 백 鎰일, 채색비단 80자 등으로 서방 여러 士民사민의 작은 성의를 조금이나마 표시할까 합니다. 부디 공손치 못하다고 나무라지 마십시오. 다만 저의 주공은 몸이 쇠약하고 남은 생애가 얼마 되지 않는데, 오래도록 유리성에 구금되어 있으니, 실제 정황이 실로 가엾게 여길만합니다. 하물며 마을 어귀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는 노모와 어린 아들과 외로운 신하들은 밤낮으로 그리워하며 모두 모여 앉기를 희망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어진사람 군자가 모두 가엾이 여길만한 것입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은인께서 크게 자비를 베풀고, 법 밖에 어짊을 행하여 임금께 한 말씀 아뢰어 사면하여 귀국하도록 해주신다면, 은인의 덕은 바다와 같고 어짊은 산과 같아서 서기 땅의 많은 백성들은 자자손손 대대로 은혜를 마음속 깊이 간직할 것입니다. 편지를 올림에 임하여 무서워 떨면서 명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가 올립니다.”

 

비중은 편지와 예물을 살펴보더니 혼자 가만히 생각해본다. “이 예물은 가치로는 만금인데, 지금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태전에게 분부했다. “그대는 돌아가 산의생 대부에게 감사를 표시해 주시오. 그리고 나는 금방 회답을 줄 수는 없다고 전하게. 내가 조만간 기회를 틈타 자연스럽게 당신들의 주군이 귀국하도록 하겠으니, 결코 그대의 대부께서 부탁하신 정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오.” 태전은 감사의 절을 올리고 하직했다. 또 얼마 되지 않아 굉요 장군도 우혼에게 편지와 뇌물을 전달하고 돌아왔는데, 두 사람이 서로 말한 것이 한결 같았다. 두 장군은 크게 기뻐하면서 서둘러 행장을 수습하여 서기 땅으로 돌아갔다.


한편, 비중은 산의생의 예물을 받고나서 우혼에게 묻지 않았으며, 우혼도 비중에게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각기 서로 모르는 체했다.

 

어느 날 주왕은 적성루에서 비중과 우혼 두 신하와 바둑을 두었다. 주왕은 두 판을 연달아 승리하였기에 크게 기뻐하며 어지를 내려 주연을 마련하라 했다. 비중과 우혼이 주왕의 좌우에서 시중들면서 술잔을 바꾸어 가며 술을 주고 받았다.

 

주왕이 비중 ․ 우혼과 함께 술자리를 즐기다가 갑자기 백읍고가 거문고를 우아하게 연주하던 일과 원숭이가 노래하던 기묘한 일을 상기하며 말했다. “서백후 희창이 스스로 자식의 고기를 먹었으니, 그가 논한 운명을 점친다는 先天數선천수라는 것도 모두 망령된 말에 불과하니, 어찌 정해진 운수가 먼저 있을 수 있겠는가?” 비중이 이 기회를 틈타 아뢰었다. “신은 희창이 평소에 반역무도하고 신하답지 못한 마음을 가졌다고 들었기에 그동안 줄곧 방비해 왔습니다. 신이 여러 날 전에 저의 심복을 유리성에 보내어 희창의 허실을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유리성의 군민들은 모두가 희창은 정말로 忠義충의가 있는 사람이며,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에는 향을 피우고 폐하와 나라의 안녕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즉 사방의 오랑캐가 엎드려 복종하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평안하며, 비와 바람이 고르고 순하며, 사농공상 백성이 그 업을 즐기고, 사직이 영원히 창성하며, 궁궐이 편안하고 조용하기를 기원한다고 합니다. 폐하께서 희창을 7년 동안 감옥에 가두어 두었지만, 한마디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신이 생각하기에도 희창은 진실로 충신이라고 여겨집니다.”

 

주왕이 말했다. “경은 전날에는 희창이 겉으로는 충성이 있는 것 같으나 내심으로는 간교함과 사악함을 품고 있는데, 앙심을 감추고 있어서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소. 어찌하여 오늘은 말을 반대로 하는가?” 비중이 또 아뢰었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희창은 혹자는 충성스럽다 혹자는 간사스러운 사람이라 하므로 구분하기가 어려워 일시에 판단할 수 없었사옵니다. 그래서 이번에 신이 몰래 심복을 보내어 그 진실을 수소문토록 하였습니다. 이제야 희창이 충성스럽고 강직한 사람임을 알았사옵니다. 소위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고, 날이 오래되어야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다’는 말 그대로이옵니다.”

 

주왕이 말했다. “우 대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우혼이 아뢰었다. “비중이 아뢰는 것이 기실 조금도 틀리지 않사옵니다. 신이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희창은 수년 동안 억류되어 힘들고 괴로웠지만, 유리성 백성을 훈육하여 만민이 덕화에 감화되어 교화가 행해지고 풍속이 아름다워졌다고 합니다. 백성은 충효와 절의는 알고 있지만, 망령된 짓과 사악한 행위는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백성은 희창을 성인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폐하께서 신에게 하문하시니, 신은 실제 있는 대로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방금 비중이 아뢰지 않았더라도 신이 역시 아뢰었을 것입니다.”  


주왕이 말했다. “두 경이 아뢰는 말이 같으니, 필경 희창은 좋은 사람임이 틀림없소. 짐이 희창을 사면하려고 하니, 두 경의 뜻은 어떠하시오?” 비중이 대답했다. “희창을 ‘사면할 수 있다, 사면할 수 없다’를 신이 감히 주장할 수는 없사옵니다. 다만, 희창에게 충효심이 있고 오랫동안 유리성에 구금되어 있었지만 조금도 원망하는 말이 없었사옵니다. 만약 폐하께서 긍휼히 여겨 본국으로 돌아가게 사면해주신다면, 희창은 죽음에서 살아났고, 나라가 없는 데서 나라가 있게 되었으니, 폐하께서 다시 살려주신 은혜에 대해 감격하여 우러러 받들 것인데, 어찌 그 은혜에 대해 감읍함이 그칠 때가 있겠습니까? 신이 생각해 보건대, 희창이 이번에 돌아가면 반드시 忠貞충정의 절의를 지켜서, 견마지로를 다하여 평생토록 보답할 것이오며, 여생을 폐하께 충성을 다할 것이옵니다.”

 

우혼이 곁에서 비중이 힘을 다해 희창을 보호하려는 것을 보고, 반드시 서기 땅으로부터 온 예물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어찌 비중이 혼자 은혜를 베풀게 하겠는가? 나도 한층 더 희창을 감격하게 해야 하겠다.’

 

우혼이 나서며 아뢰었다. “폐하께서 하늘 같은 은혜로 이미 희창을 사면하시고 다시 은전을 더해 주시면, 그는 자연히 마음을 기울여 나라를 위할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 동백후 강문환이 반역을 하여, 遊魂關유혼관을 공격했는데, 대장군 竇融두융이 7년간 고전하였으나 아직 승부가 가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남백후 악순이 역모하여 三山關삼산관을 공격하여 대장 鄧九公등구공이 역시 7년 동안 싸우고 있으나 서로 살육함이 대등합니다. 군사들은 평안히 쉴 수 없으며, 봉화는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희창에게 도리어 왕의 봉작을 더해 주고, 白旄백모와 黃鉞황월을 빌려주어 정벌을 단행토록 하여 천자를 대신하도록  하시고, 위엄으로 서기 땅을 다스리게 하소서. 하물며 희창은 본래 현명하다는 명성이 있으니, 천하의 제후들이 두려워하여 복종할 것이며, 동남 양쪽의 반역의 무리가 이를 알고는 싸우지 않고 물러날 것인데, 이야말로 소위 한 사람을 천거하여 불초한 자들을 멀리 쫓아 버린다는 것을 말하옵니다.”   

 

주왕이 우혼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우혼 공은 재주와 지혜를 갖추었으니 더욱 사랑스럽고, 비중 공은 현량들을 잘 끌어당겨 등용할 줄 아니 실로 높이 존경받을 만하도다.” 두 신하는 성은에 감사했다. 주왕은 즉시 사면령을 내려 희창이 속히 유리성을 떠나도록 했다.

 

이 장면을 읊은 詩가 남아 있다.
“천운이 순환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아, 7년 재앙이 가득 차자 조롱 같은 유리성을 벗어나게 되었다. 비중과 우혼이 뇌물을 받아먹고 간언을 하니, 成湯성탕의 사직이 운이 다했음을 나타냈다. 文王문왕에게 봉록을 더해 옛 보금자리 서기 땅으로 돌아가게 하니, 다섯 개의 관문을 지나 父子부자가 다시 만났다. 靈臺영대에는 응당 ‘나르는 곰’(飛熊비웅 : 강자아의 별호)이 이르렀다는 조짐이 있으니, 장차 渭水위수가에서 강자아가 태공(문왕)을 만나리라.”

 

사신이 사면장을 가지고 은나라 수도인 朝歌조가를 나가니, 여러 관리들이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사신은 서둘러 유리성으로 갔다. 한편 유리성에 있던 서백후는 주왕에게 육장을 당한 큰아들 백읍고의 고통을 생각하고 있다가 탄식하면서 말했다. “내 아들은 서기 땅에서 태어나 조가에서 절명했으니, 아비의 말을 듣지 않아 이러한 불의의 화를 만났다. 성인은 자식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아비가 되어 부득이 하게 씹어 삼킨 것은 權道권도의 계책을 좇은 것이다.”

 

죽은 아들 백읍고를 한창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줄기 괴이한 바람이 불어와 처마의 기와 2개가 땅에 떨어지면서 박살이 나버렸다. 서백후 희창은 놀라며 말했다. “이것 또한 기이한 징조로다!” 희창은 향불을 피우고 동전으로 팔괘를 뽑아서 그 내막을 풀어보았다. 희창은 머리를 끄덕이며 탄식했다. “오늘 천자의 사면장이 도착하겠다.” 좌우 사람들을 불렀다. “천자의 사면장이 도착하니, 행장을 꾸려서 떠날 준비를 하라.” 이 말에 수행인들은 기꺼이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사신이 어지를 전하는데, 사면장이 도착했다. 서백후가 사면장을 받고 예를 마쳤다. 사신이 말했다. “성지를 받들어 희백 대인을 사면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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