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봉신연의(封神演義)_15

醉月 2011. 3. 9. 08:59

15장 곤륜산에서 강자아가 하산하다

삽화 권미영

 

 

 

崑崙山곤륜산 玉虛宮옥허궁에서 闡敎천교의 도법을 관장하고 있던 元始天尊천시천존은 문하의 열두 제자가 세속의 재앙을 범하였으므로 책벌이 자신의 몸에 이르렀다. 때문에 옥허궁의 문을 닫고 도법 강론조차 멈추었다.

 

또한 昊天上帝호천상제는 뛰어난 신선 열두 명에게 복종을 명했다. 그리하여 3교가 나란히 담론을 벌여 이에 闡敎천교 ․ 截敎절교 ․ 人道인도 등 3교가 모두 365위의 成神성신을 편성하고, 또 八部팔부로 나누었다.

 

상4부는 雷火瘟斗뇌화온두이고, 하4부는 群星列宿군성열수이다. 三山五岳삼산오악은 비를 내리고 구름을 일으키는 善惡之神선악지신이었다.

 

이때는 바로 成湯성탕의 천하가 멸망하고, 주나라 왕실이 흥하려고 하는 때였다. 신선이 계율을 범하는 일이 생겼고, 원시천존이 封神봉신을 하고, 또한 姜子牙강자아가 將相장상의 복록을 누리려고 하는 그 운수와 공교롭게 맞아 떨어졌으니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소위‘5백 년이면 새로이 왕이라 하는 자가 일어나고, 그 가운데는 반드시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자가 있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연고 때문이다.

 

어느 날 하루 원시천존이 八寶雲光座팔보운광좌 위에 앉아 백학동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는 사숙 姜尙강상을 불러 오너라.” 백학동자가 桃園도원으로 가서 강자아를 청했다. “사숙, 천존께서 부르십니다.”

 

강자아가 서둘러 보전 앞으로 다가와 예를 올렸다. “제자 강상, 천존을 알현합니다.” 원시천존이 물었다. “그대가 곤륜산에 올라온 지 몇 년인가?”

 

자아가 대답했다. “제자가 32살에 곤륜산에 올랐습니다. 헛되게 세월을 보내다가 이제 72세가 되었습니다.”

천존이 말했다. “그대는 박복한 명을 받고 태어나 선도를 이루기도 어렵다. 그러나 인간의 복을 받을 수는 있도다. 成湯성탕의 운수가 다하고, 周室주실이 장차 일어나려고 한다.

 

그대는 나를 대신하여 封神봉신하고 하산하여 밝은 군주를 보필하여 몸이 將相장상이 된다면, 그대가 곤륜산에 올라 수련한 사십년의 공이 헛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곳은 그대가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니, 속히 준비하여 하산하도록 하여라.”

 

원시천존의 명령이 떨어지자 강자아가 애걸했다. “제자는 진심으로 출가하였고, 고행하면서 많은 세월을 보냈으며, 여전히 남은 세월이 있습니다. 수행이 비록 고난의 연속이지만 천존께서 크신 자비를 베푸시어 미혹함을 지적하여 깨달음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여주십시오.

 

제자는 산에서 고행하는 것을 진심으로 원하오며, 감히 세상속의 부귀를 탐하지 않습니다. 사존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천존이 대답했다. “그대 운명의 인연이 이와 같다. 반드시 하늘의 명을 들어야하는데, 어찌 거스르려고 하느냐?” 

자아는 차마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南極仙翁남극선옹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여보게 자아, 기회란 만나기 어려우며 때를 잃어서는 안 되네. 하물며 천수가 이미 정해졌는데, 스스로 몸을 피할 수는 없다네. 그대가 비록 하산하지만, 그대가 공을 이루는 그때를 기다려, 다시 산에 올라올 날이 있을 것이네.” 

 

이에 자아는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자아는 거문고와 劍검을 행낭 속에 챙겨 넣고, 몸을 일으켜 천존께 무릎을 꿇고 울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제자가 사존의 法旨법지를 받고 하산하오니, 장래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는지요?”

천존이 대답했다. “자아가 하산함에 있어, 내가 여덟 구절의 게송을 주노니, 후일에 징험이 있을 것이다.” 게송은 이러했다.

 

“20년간 삶이 궁색하고 급급하였으나, 인내하고 분수를 지켜 편안했었네.

磻溪반계의 돌 위에서 낚시를 드리우면, 자연 덕이 높은 현자의 방문을 받으리라. 聖君성군을 보필하여 相父상보가 된다면, 93살에 將帥장수가 되어 병권을 잡으리라. 제후들 회합하는 戊申무신년 甲子갑자일이 되면, 98세에 封神봉신하고 다시 4년이 지나리라.”

 

게송을 다 읊은 천존이 한마디 던졌다. “비록 그대가 지금 떠나나, 다시 산에 오를 날이 있을 것이네.”

강자아가 천존께 하직인사를 올리고, 또 여러 도우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행낭을 걸머지고 옥허궁을 출발했다.

남극선옹이 麒麟崖기린애까지 따라 나와 자아를 전송하며 분부했다. “자아, 부디 앞길에 몸 보중하시게!”

 

자아가 남극선옹과 헤어지고 스스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위로는 백부와 숙부, 형과 형수도 없고, 아래로도 동생이나 조카도 없는데, 내가 어디로 가란 말이냐? 마치 나는 새가 숲을 잃고 깃들 가지하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朝歌조가에는 의로서 맺은 어진 형인 宋異人송이인이 있으니, 그에게 몸을 의탁하는 것이 좋겠다.”

 

자아는 토둔법을 써서 몸을 감추고 순식간에 조가에 도착했다. 남문에서 35리 떨어진 宋家莊송가장에 이르렀다. 

자아는 대문과 정원도 옛날 그대로이고, 푸른 버들이 길게 자란 것을 보자 탄식했다. “내가 이곳을 떠난 지 40년인데, 風光풍광은 여전 그대로이나 사람의 얼굴은 그때와 같지 않구나.”

 

                                                                                    삽화 권미영                                                                                              

 

강자아가 송이인의 대문 앞에 도착해서 문지기에게 물었다.

“주인어른인 송 원외께서 집에 계시는가?”

 

문지기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자아가 대답했다.

“옛 친구인 강자아가 찾아왔다고 전하라.”

 

문지기가 송 원외에게 문 밖에 옛 친구가 찾아왔다고 보고했다. 송이인은 장부를 계산하고 있다가 자아가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고 자아를 맞이하기 위해 서둘러 대문 밖으로 나왔다.

“어진 아우여, 어떻게 수십 년간 소식 하나 없었는가? 늘 몹시 그리웠는데, 오늘 다시 만나다니, 다행이구만! 천만 다행이야!”

 

자아가 대답했다.

“어진 형과 헤어지고난 후 사실 세상을 벗어나 속세를 초탈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연분이 얕고 박복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곳 형의 莊園장원에 와서 다시 어진 형과 만나게 되니 이 강상의 행운입니다.”

 

송이인이 가솔들에게 음식을 준비하라고 분부하고 또 물었다.

“현제는 채식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육식을 좋아하는가?”

 

자아가 대답했다.

“이미 출가했으니 어찌 술을 마시고 육식을 하겠습니까? 아우는 채식을 하겠습니다.”

 

송이인이 말했다.

“술은 瑤池요지의 옥액이고, 洞府동부의 瓊漿경장이므로 신선들도 ‘서왕모가 요지의 천도복숭아가 익을 때 신선들을 모아서 베푸는 잔치’인 磻桃會반도회에 모였을 때 술을 마시니, 술을 조금 마셔도 무방할 것이야.”

 

자아가 대답했다.

“인형의 가르침에 따라 이 아우는 명을 받들겠습니다.” 두 사람은 재회의 기쁨 속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송이인이 물었다.

“아우는 곤륜산에 올라가 얼마나 있었는가?”

“사십년 있었습니다.”

 

이인이 탄식했다.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아우는 그래 곤륜산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자아가 대답했다.

“무엇을 배우기는 배웠는데?”

 

이인이 물었다.

“어떤 도술을 배웠는가?”

 

자아가 대답했다.

“물 져 나르기, 소나무에 물주기, 복숭아 심기, 불 때기, 화로에 부채질하기, 단약 만들기 등 이지요.”

 

이인이 자아의 대답에 웃으면서 말했다.

“이것은 잡부들의 노역인데, 입에 올릴 것이 못되지 않은가? 오늘 현제가 왔으니 마땅한 일거리를 찾아봐야 하지 않겠소? 어찌 출가하는 일을 하겠소?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며, 다른 곳에 갈 생각은 하지 마시오. 나와 그대는 각별한 사이이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오.”

 

자아가 이인의 말에 따르겠다고 한다. 송이인이 말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불효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후사 없는 것이 가장 크다’했소. 아우여, 나는 이제 그대와 함께 지내게 되었으니, 내일 그대와 함께 우리 일족들과 혼인을 의논합시다. 자식이라도 한 둘 둔다면 강씨 성의 후사가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오.”

 

자아가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인형, 그 일은 다시 의론토록 하시지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늦도록 계속되었다.

 

송이인은 다음날 일찍 일어나, 나귀를 타고 자아의 혼사를 논의하기 위해 馬家莊마가장으로 갔다. 송이인이 마가장에 도착하자 문지기가 마 원외가 에게 알렸다.

“송 원외 어른께서 찾아왔습니다.”

 

마 원외가 크게 기뻐하면서 문을 나와 영접했다.

“원외께서 무슨 바람이 불어 우리 집에 오셨습니까?”

 

이인이 대답했다.

“소제가 어르신의 따님과 혼사를 의논하기 위해 특별히 왔습니다.”

마 원외는 크게 기뻐하면서 예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차를 한잔씩 나누자 마 원외가 물었다.

“송 원외, 내 딸 아이를 어떤 사람과 혼인시키려고 하시오?”

 

이인이 대답했다.

“예, 그 사람은 동해 許州허주 사람이고, 성은 姜강 이름은 尙상이며, 자는 子牙자아이고 별호는 飛熊비웅이며, 소제와는 친밀하게 지내는 막역한 사이입니다. 이로 인해 마가 일문과 혼인하면 썩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마 원외가 물었다.

“송 원외께서 혼인을 주관하면, 착오가 없으리라 보오.”

 

송이인이 백금 4錠정으로 혼인의 예물로 삼으니, 마 원외가 백금을 거두고 서둘러 술좌석을 마련하여 송이인을 접대했다. 술자리는 밤이 깊어서야 끝이 났다.

 

한편, 자아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송이인이 보이지 않자 머슴에게 물었다.

“원외께서는 어디에 가셨느냐?”

“아침 일찍 대문을 나섰는데, 아마 빚 독촉하러 가셨을 겁니다.”

 

얼마 되지 않아 송이인이 돌아왔다. 자아가 송이인이 말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대문에서 영접했다.

“형께서는 어디 갔다가 돌아오십니까?”

 

이인이 대답했다.

“아우, 축하하네!”

 

자아가 물었다.

“소제가 왜 갑자기 축하를 받아야 합니까?”

 

이인이 말했다.

“오늘 그대를 위해 혼사를 논의하러 천리 밖에 가서 혼인의 인연을 맺고 왔다오.”

 

자아가 대답했다.

“오늘 시진이 좋지 않습니다.”

 

이인이 말했다.

“음양은 꺼릴 것이 없으며, 吉日길일은 하늘이 돕는 법이오.”

 

      삽화 권미영

 

자아가 송이인에게 물었다. “어느 집 여식입니까?” 이인이 대답했다. “馬洪마홍의 딸이며, 재주와 용모를 겸비했으니 바로 賢弟현제의 좋은 배필이 될 것이오. 이 여식의 나이는 금년에 68세인데, 아직 숫처녀로 있다오.”

 

이인이 자아와 술좌석을 마련하여 자아를 축하했다. 두 사람이 술자리를 마칠 즈음 이인이 말했다. “좋은 날을 가려서 혼례를 치르도록 합시다.”


자아가 이인에게 사례했다. “형님의 보살핌을 받았는데, 이 덕을 어찌 잊겠습니까?”

이어서 좋은 길일을 선택해서 馬氏마씨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송이인은 술좌석을 베풀고, 앞뒷집 이웃사람과 사방의 친구를 초대해서 혼인을 축하해 주었다. 그날 마씨가 시집와서 신혼 방에 화촉을 밝히고, 부부가 되었다. 바야흐로 하늘의 인연은 우연인 것 같으나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를 읊은 시가 남아있다.
“곤륜산을 떠나 朝歌조가로 왔는데, 자아가 오늘 아내를 맞이했다. 이들은 68세의 숫처녀요, 72세의 신랑이었다.”

 

자아는 혼례를 치른 후에도 종일토록 곤륜산을 그리워하고, 大道대도를 이루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마음이 늘 기쁘지 아니했다. 이러한 마음 때문에 마씨와는 그다지 유쾌하게 보내지 못했다. 

마씨는 자아의 심사를 모른 채 자아를 무용지물이라고 여겼다. 막 신혼 2개월이 되었는데, 마씨가 문득 남편 자아에게 물었다. “송 백부님과 당신은 고종 형제간이라지요?”

 

자아가 말했다. “송 형은 나와 의로 맺은 형제라오.” 

마씨가 말했다. “원래가 그랬군요. 한 부모 밑의 형제도 흩어지게 마련입니다. 지금은 송 백부님이 계시니 우리 부부는 편안하고 한가롭게 지낼 수 있습니다. 만약 송 백부님이 계시지 않으면, 저와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겠어요? 사람이 천지간에 태어나 생계를 영위할 생업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장사라도 하기를 권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부부의 뒷일을 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아가 대답했다. “그렇소, 부인의 말이 옳소.” 마씨가 물었다. “당신은 살아갈 방도로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자아가 말했다. “나는 32세부터 곤륜산에서 도를 공부했기에 세상의 장사 따위를 모르며, 다만 대나무로 조리를 엮을 줄 안답니다.”

 

마씨가 말했다. “조리 장사도 좋을 듯합니다. 마침 후원에는 대나무가 있으니 이것을 베어서 가늘게 쪼개어 복조리를 만들어 조가성에 가서 판다면 어쨌든 모두가 장사가 아니겠습니까.” 

자아는 그 말을 받아들여서 대나무를 쪼개어 한 짐이 될 만큼 복조리를 만들어서 걸머지고 조가로 와서 팔았다. 아침 일찍부터 정오까지, 이어서 오후 4시까지 팔았으나 한 개도 팔지 못했다.

 

자아는 하늘을 보고 4시가 넘어 해가 곧 진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조리를 둘러메고 35리 귀가 길을 재촉했다. 밥을 먹지 않아 배에서는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발길을 서둘렀다. 한번 왔다 갔다 하는데 무려 70리나 되었고, 어깨는 통증으로 욱신거렸다. 

 

자아가 돌아와 대문 앞에 섰을 때, 마씨는 조리를 한 짐 지고 갔다가 한 짐 그대로 지고 돌아오는 자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씨가 그 연유를 물으려 할 때, 자아가 먼저 마씨에게 말을 꺼냈다. “부인, 당신은 어리석군. 당신은 내가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보기 싫어 조리를 팔게 하였소. 그러나, 조가성에서는 조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소. 하루 종일 팔았지만, 단 한 개도 팔지 못했다오. 다만 어깨만 욱신거릴 뿐이오.”

 

마씨가 대답했다. “조리는 천하의 모든 곳에서 통용되는 물건인데, 당신이 장사할 줄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원망만 늘어놓는구려!”

부부가 말이 오고가고 하다 보니 고함이 터지고 얼굴을 찌푸리게 되었다.

 

송이인은 자아 부부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얼른 달려와 자아에게 물었다.

 “현제, 무슨 일 때문에 부부간에 싸움을 하게 되었는가?” 자아가 조리를 팔기위해 조가에 갔다 온 자초지종을 한바탕 이야기했다.

 

이인이 말했다.

 “당신 부부 두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삼십 명의 식구라도 나는 양육할 수 있소. 당신들이 하필 이럴 것까지 있겠소?”

마씨가 대답했다.

“백부님께서 비록 이렇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지만, 다만 우리 부부 나중에 뒤에 남아 낙오가 될 수 있을 텐데, 설마 사람의 일생을 남에게 의지할 수 있단 말 입니까?”

송이인이 말했다. “제수씨의 말이야 옳소.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장사를 합니까? 우리 집 창고에는 밀이 싹이 났으니 일꾼들을 시켜 밀가루로 만들게 해서, 현제가 지고 가서 팔아 오시오. 앞으로 억지로 조리를 짜는 일은 하지 마시게.”

 

자아는 대광주리를 챙기고, 하인들은 밀을 빻기 시작했으며, 한 짐 밀을 갈아 밀가루를 만들었다. 자아는 다음날 밀가루를 지고 조가로 팔러 나갔다. 네 개 문을 다 다녔으나 밀가루를 단 한 근도 팔지 못했다.

 

아무 것도 먹지 않아 배도 고프고 짐조차 무거운데, 남문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깨에 통증이 와서 자아는 쉬려고 등짐을 내려놓고 성벽에 기대어 앉아서 잠시 쉬고 있었다. 스스로 운수가 순탄하지 못하고 때가 어그러졌음을 생각하며 시를 한 수 지었다.


“32세에 곤륜산에 올라 도의 현묘함을 찾았으나, 인연이 얕아 도를 온전히 깨칠 수 없음을 어찌 알았으랴! 홍진세상 암울하여 눈뜨고 보기 어려우니, 부평 같은 세상 분분하여 어떻게 벗어날까? 나뭇가지 하나 빌려 머무는 곳에, 금 칼과 옥 자물쇠로 얽어매는구나. 어느 날에 평생의 뜻을 완수하고, 시냇가에 조용히 앉아 老禪노선을 배울 수 있으랴?”

 

자아가 잠시 앉았다가 막 몸을 일으켰다. 한 사람이 다가오면서 불렀다. “밀가루를 파는 사람은 거기 서 있으시오!” 자아가 말했다. “첫 매수자가 오는구나.” 등짐을 내려놓았다.

그 사람이 앞으로 다가오자, 자아가 물었다. “밀가루는 얼마가 필요합니까?”
“1文문어치 주시오.” 자아는 팔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숙여 밀가루를 퍼 담아야 했다. 자아는 짐을 많이 져본 사람이 아니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어깨 짐을 길가에 내려놓고, 부대를 매는 끈을 땅바닥에 그냥 두었다.

 

당시는 주왕이 無道무도하여 동남 4백 진의 제후가 반기를 들었으므로 긴급한 보고가 전달되던 때였다.
武成王무성왕도 날마다 군사와 말을 조련하고 있었는데, 그날 포성을 울려 병영을 해산하자 그 포성에 말 한필이 놀라서 고삐가 풀려 뛰쳐나와 거리에서 날뛰고 있었다.

 

포성에 놀라 말이 날뛰는데도, 아무런 방비도 없이 강자아는 허리를 굽혀 부대의 밀가루를 퍼내고 있었다. 그때 뒤에 있던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이, 밀가루 장사, 조심하게나. 말이 달려온다네!”

 

삽화 권미영

 

 

자아가 서둘러서 몸을 피했으나 말은 이미 다가왔다. 밀가루 짐 위의 끈이 땅에 깔려 있었으므로 말이 달려오자 끈이 말발굽에 걸려 두 광주리나 되는 밀가루가 대여섯 길 멀리 끌려가면서 모두 땅바닥에 쏟아졌다. 때마침 한줄기 돌개바람이 불어와 밀가루를 깨끗이 날려버렸다.


자아가 급히 밀가루를 주워 담으려고 허둥대는 동안 자아의 온몸은 밀가루투성이가 되었다. 밀가루를 사려고 했던 사람도 이 광경을 보고는 그냥 가버렸다. 자아는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자아는 한탄을 하면서 송 가장 앞에 도착했다. 아내 마 씨는 자아가 빈 광주리를 가지고 돌아오자 크게 기뻐했다. “조가성에는 마른 밀가루가 이렇게 잘 팔리는군요.”  
자아는 마 씨 앞에서 대나무 광주리를 내려놓으며, 욕을 해댄다. “모두가 못난 당신이 수다를 떤 탓이야!” 
마 씨가 대답했다. “밀가루를 다 판 것은 좋은 일인데, 오히려 저에게 욕을 하다니요!”
자아가 대답했다. “밀가루 한 짐을 메고 조가성에 갔지만 팔긴 뭘 팔아?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1文문어치 팔 뻔했지.”


마 씨가 말했다.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외상으로 팔았군요?”
그 말에 자아가 더욱 노기가 충천하여 말했다. “말이 고삐가 풀려, 밀가루 부대의 끈이 말발굽에 걸려 밀가루가 모두 땅바닥에 쏟아지고, 마침 돌개바람마저 불어 깨끗이 날아가 버렸소. 이 모두가 못난 당신이 야기한 일이 아니던가!” 


듣고 있던 마씨도 자아의 얼굴을 향해 쏘아 붙였다. “당신은 스스로 무능하다 하지 않고 도리어 저를 원망하는군요? 당신은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며, 밥만 축내는 식충이 무리와 같아요!”
자아는 그 말에 펄쩍 뛰었다. “천한 계집 주제에, 감히 장부를 모욕하다니!” 두 사람은 서로 엉켜서 움켜잡고 한바탕 싸웠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송이인과 그 부인 손씨가 와서 권했다. “삼촌께서는 무엇 때문에 동서와 싸운단 말입니까?” 


강자아가 밀가루를 팔면서 있었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송이인이 웃으며 말했다. “밀가루를 지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겠소? 당신 부부는 그만하고 일어들 나시오. 현제는 나와 함께 갑시다.”


자아는 이인과 함께 서재로 와 앉았다.   
자아가 말했다. “어지신 형님께서 이 아우를 자상히 보살펴 주시는데, 이런 꼴을 보여 죄송합니다. 이 아우가 시운이 좋지 못해 하는 일마다 되지 않으니, 실로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인이 대답했다. “사람은 시운이 중요하고, 꽃은 때를 만나야 핀다고 했소. 옛말에 이르기를 ‘황하도 때로는 맑아질 날이 있듯이, 어찌 사람에게 좋은 시운이 없겠는가’ 라는 말이 있소. 현제는 이와 같은 일을 할 필요가 없소. 나에게는 여러 개의 가게가 있소. 조가성에는 50개 정도의 객주집이 있는데, 모두가 나의 것이오. 내가 여러 친구들을 불러 소개시켜 주리다. 매 점포마다 아우가 하루씩 돌면서 두루 장사를 해보면 좋지 않겠소?”


자아가 말했다. “형님의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다음날 송이인은 남문의 張家장가 주점을 강자아에게 주어 개장하게 했다. 조가의 남문은 제일 요지로 敎場교장과 가깝고 여러 길로 통하는 큰길로 늘 사람으로 북적거려 떠들썩했다. 일꾼들은 돼지와 양을 잡고, 점심을 마련했다. 주점을 깨끗이 정리하자 자아가 주인으로 안쪽에 앉았다.


강자아는 萬神만신의 우두머리이고, 그해가 庚年경년이었으므로 운수가 불리했다. 그리하여 아침부터 巳時사시(11시)가 될 때까지 귀신조차 주점 출입구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정오가 되자 세숫대야를 쏟아 붓듯이 큰 비가 내렸다.


황비호의 군대도 훈련을 하지 않았고, 날씨마저 찌는 듯 무더워 삶아 놓은 돼지와 양고기가 상해서 퀴퀴한 냄새를 풍겼으며, 술도 쉬었다. 하루 종일 멍청히 앉아 있다가 일꾼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이 술과 안주를 모두 먹어치우시오. 이번에도 기회를 놓치다니 애석할 뿐이구나!” 


자아는 스스로를 한탄하며 시를 지었다.
“하늘이 홍진세상 속에 나를 낳았는데, 허송세월하며 세간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네. 鵬붕새가 날갯짓하여 때로는 만 리를 날아올라, 첩첩이 아홉 구비의 깊은 산(九重山)을 날아 지나가야만 하네.”


그날도 자아는 늦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송이인이 물었다. “현제, 오늘 장사는 어떠하였는가?” 자아가 대답했다. “형님 뵙기가 부끄럽습니다. 오늘은 본전도 없어지고, 하나도 팔지 못했습니다.”
송이인이 탄식했다. “현제, 너무 고민하지 마시게, 때를 지켜 명을 기다리는 것이 군자일세. 손해 본 것 다해봐야 그리 크지 않으니, 다시 방도를 찾아보세.”


송이인은 자아가 괴로워할까 염려되었다. 그래서 은자 50량을 주어 젊은 하인들을 데리고 장터에 나가서 소, 말, 돼지, 양을 팔게 했다. 설마 살아있는 짐승들이야 상하여 냄새를 풍기겠느냐는 심정이었다. 

자아는 행장을 꾸려 소, 돼지 등을 몰고, 그날따라 많은 돼지, 양을 팔 아볼 생각으로 조가까지 갔다.
이때는 은나라 紂王주왕이 실정을 하고 있었고, 妲己달기가 잔혹하게 생령을 해치고, 간신들이 정권을 잡아 이리와 늑대 같은 자들이 조정에 가득하였으므로 천심조차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서 가뭄과 비가 고르지 못하여 조가에는 반년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다.


천자는 백성들에게 기우제를 지내도록 하고, 짐승을 도살하는 것과 술파는 것을 금지했다. 그 포고 내용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 각 성문마다 방을 붙였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자아가 성 안으로 짐승들을 몰고 들어가는데,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들이 고함을 질렀다. “금령을 위반한 저 범법자를 붙잡아라!”
그 고함소리에 놀라 강자아는 몸을 돌려 도망쳤다. 소, 말 등을 버려둔 채로 달아났으므로 짐승들은 모두 관부로 귀속되었다. 자아는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송이인은 자아가 당황하여 얼굴색이 누렇게 뜬 것을 보고, 급히 자아에게 물었다. “현제, 무슨 일로 그리 당황하시오?”
자아가 길게 탄식을 했다. “여러 차례 어진 형님의 후한 은덕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하는 장사마다 되지 않았고, 손해만 보았습니다. 오늘 돼지, 양을 팔러갔다가 또 잘못되었습니다. 천자가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도살과 술파는 것을 금한 줄도 모르고, 조가 성으로 들어갔다가 짐승들은 모두 관부에 빼앗기고, 몸만 겨우 도망쳐 나왔습니다. 본전마저 모두 날렸습니다. 이에 강상은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꼴을 어찌해야할지!”


송이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깟 은자 몇 량이 관부에 압류 당했을 뿐이오. 무엇을 그리 고민하시오? 오늘 술 한 동이 데워서 아우와 함께 근심을 풀고 싶으니, 우리 집 뒤 화원으로 가세.”
이날 강자아는 때가 오고 운이 오게 되자, 송이인의 집 뒤 화원에서 먼저 다섯 방향의 신(五路神)을 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