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의 장

고수를 찾아서 <30> 조성직 부산지방경찰청 무도총연합회 회장

醉月 2011. 1. 16. 09:00

고수를 찾아서 <30> 조성직 부산지방경찰청 무도총연합회 회장
"힘없는 경찰은 시민을 보호하지 못한다"
현장에서 범인 검거에 효과적인 체포술 개발·발전에 진력
"무술실력 바탕으로 한 자신감 있어야만 참 민중의 지팡이"

가상상황 하나. 길을 가는데 한 불량배가 시비를 걸어온다. 이럴 때는 '오늘 일진이 좋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며 재빨리 자리를 뜨는 게 최선. 하지만 이 불량객이 놓아주지를 않는다. 추태도 만만찮다. 게다가 얼핏 보이는 팔뚝의 문신과 우람한 체구. 말로 쉽게 해결하기는 힘들겠구나. 자칫하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는 일. 더 방법이 없다. 경찰을 불러야지. 다행히 신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현장에 도착한다. 이제 됐구나라며 한시름 놓으려는데 웬걸, 불량배의 행패가 더 기승을 부린다. 더 황당한 건 경찰관조차 이를 말리지 못한 채 쩔쩔매는 것. 불량배에게 완력에서 밀린 경찰관이 오히려 불쌍해 보일 지경이다. 슬쩍 의문이 든다. 정말 '민중의 지팡이'가 맞나.

경찰에 대해 일반인들이 가지는 생각은 천차만별. 개인의 경험에 따라 좋고 싫음이 나뉜다. 특히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경찰이란 아주 달갑지 않은 의미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든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한 축이 경찰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 싫든 좋든 사정이 급하면 경찰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근데 민생치안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 일컬어지는 경찰이 질서침해 사범 한 명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다면 시민들은 망연자실하게 된다. 경찰이 이럴진대 과연 누구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부산지방경찰청 무도 교관인 정보과 조성직 경위. 그는 이런 상황에 대해 단호한 어투로 결론을 내린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자신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정말 우스운 일"이라고.


 
  날카로운 발차기를 선보이고 있는 조성직 부산지방경찰청 무도총연합회 회장. 아래 사진은 경호관련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범인 체포술 시연.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힘이 있어야 범인을 잡는다

겉으로 보기에 조 경위는 무도인의 인상을 풍기지 않는다. 주먹의 정권에 박힌 굳은살을 유심히 보지 않았다면 평범한 사회인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처음 취재를 부탁했을 때도 "고수라고 신문에 소개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조 경위는 태권도 7단에 유도 2단, 검도 초단의 실력자다. 게다가 부산경찰청 내에서 경찰관 교수 체육지도자 등으로 구성된 무도발전연구회를 이끌 정도로 이론 개발에도 열심이다.

조 경위는 부산지방경찰청 무도교관 및 상무관(부산경찰청 내 도장) 관장, 무도총연합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현재 조 경위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날로 흉폭화되고 있는 강력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경찰의 실전체포술. 경찰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범인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압해야 하며 그러려면 다양한 기술개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무도연구회 활성화에 힘을 쏟는 것도 이런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다. 이는 부산지방경찰청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경찰무도의 일상화와도 일맥상통한다.

"경찰들은 현재도 실전체포술이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완해야 할 점도 많지요. 그래서 삼보나 주짓수(브라질 유술) 이종격투기 등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그 무술들의 기술을 응용한 실전체포술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조 경위가 보건대 경찰이 무도로 무장을 해야 하는 당위성은 지극히 간단하다. 경찰이 범인에게 밀리면 시민들은 더 이상 경찰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더 있다. 경찰의 탄탄한 무술실력은 자신감을 불러 오고 그건 곧바로 상황을 쉽게 마무리지을 수 있는 힘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조 경위도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민생침해사범 단속을 나갔을 때의 일화. 척 보기에도 거친 삶을 살았음직한 한 시민이 경찰의 출현에도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다. 말도 거칠었다. 반말은 예사고 욕설도 마다않았다. 좋게 해결하려던 조 경위가 마침내 열이 올랐다. 윗옷을 벗고 상대의 멱살을 잡았다. 순간 상대방이 움찔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기가 꺾였다. 그리고는 말도 공손해졌다. 나중에 그 시민은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뭔가 다른 것 같더라"고 고백을 했다. 한때 주먹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그 방면에서는 대개 준프로 수준. 한 번 보면 상대방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승산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게 본능이 아닌가.

"경찰이 무도를 익히게 되면 우선 자신감이 생깁니다. 물론 그 자신감은 믿는 데가 있어야 나오는 거지요. 그래야 범인을 만나더라도 정신적으로 위축이 되지 않습니다. 범인 앞에서 기가 꺾인다면 검거의욕이 떨어지게 되고 결국 경찰로서의 직무수행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렇다고 조 경위가 무력을 예찬하는 것은 아니다. 힘의 사용은 최후의 수단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때문에 조 경위는 정신적으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이 경찰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라고 여긴다. 물리적 충돌이 없이 사태를 무리없이 처리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한 경찰의 자세라는 생각에서다.

실전체포술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조 경위의 이런 자신감은 지난 2003년 부산경찰청 외사과 근무시 일본의 간부급 범죄자 검거 때도 빛을 발했다. 당시 이 일본인은 자국에서 저지른 모종의 범죄로 인해 인터폴에 국제수배를 당한 상태. 도주를 계속하다 홍콩 등을 거쳐 한국에 잠입했다. 일본 경찰은 용의자의 행방은 확인했으나 구체적인 소재를 알 수 없어 노심초사하던 상황. 조 경위는 일본경찰과의 공조 아래 집요한 추적과 탐문 수사를 펼친 끝에 범죄자를 붙잡아 일본 경찰에 넘겼다. 조 경위는 이 공로로 동료들과 함께 일본으로 가 일본 경찰청의 공식 감사장을 받았다.

나른하던 6월 어느 날의 오후 시간. 부산지방경찰청의 상무관에 일단의 젊은 남녀들이 들어섰다. 대학에서 경찰경호를 전공하는 학생들. 조 경위에게 실전체포술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도복을 입고 나선 조 경위가 몸풀기를 시작한다. 양다리가 간단히 일자로 찢어진다. 그리곤 가슴이 곧바로 바닥에 닿는다. 쉰을 넘은 나이를 생각한다면 대단한 유연성. 스무 살 남짓한 대학생들의 몸이 오히려 더 뻣뻣하다.

경찰 실전체포술은 범인에게 가급적 큰 충격을 주지 않고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기술. 그래서 목감아돌리기나 허벅지 차기 등 실전에서 가장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다른 무술들처럼 화려한 동작은 없다. 범인과 대면했을 때의 화려함이란 곧 도망갈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목감아돌리기는 범인의 얼굴을 아는 경찰이 잠복지에서 그와 맞닥트릴 경우 아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 서로를 스치는 순간 번개처럼 목을 감아 상대를 제압한다. 허벅지 차기는 상호 대결자세에 섰을 때 상대의 저항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허벅지 안쪽을 강하게 맞으면 어떤 천하장사라도 항거불능의 상태가 된다.

조 경위가 이날 선보인 허벅지 차기의 백미는 '파워킥'. 일명 빗차기다. 발 뒤축으로 범인의 허벅지 안쪽을 가격하는 것. 태권도 등 무술을 조금이나마 배워본 사람은 알지만 상대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서 있으면 웬만한 발차기는 큰 효과가 없다. 앞차기를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짧고 돌려차기도 십중팔구 방어에 걸리게 된다.

"이때는 파워킥이 가장 최선입니다. 앞차기 형식으로 다리를 내밀다 발뒤축을 이용해 상대의 허벅지를 때리는 것이지요. 발등으로 차는 것보다 위력이 배 이상됩니다."

실전체포술을 배우러 온 한 학생이 조 경위의 파워킥을 맞았다. 연습인 만큼 사정을 봐줬음에도 아픈 기색이 역력하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날 배운 것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기술이라며 감탄을 한다.

무술은 앉아서 가르칠 수 없다

중학교 1학년 때 태권도에 입문한 조 경위는 요즘도 수련을 빼놓지 않는다. 매일 새벽 부산경찰청 내 상무관에서 몸을 푼다. 매주 실시되는 경찰보수교육에서 실전체포술을 가르치는 것도 조 경위의 몫이다.

오는 연말께는 실전체포술에 관한 책을 펴낼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기존에 나온 이론에다 사건 현장에서 느낀 점들을 종합해 명실상부한 경찰 실전체포술 지침서로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에서다. 이는 평소 수백 번 연습한 동작도 막상 범인과 부닥치게 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조 경위는 부산경찰청 무도총연합회 회원들과 함께 뒹굴며 땀을 흘리고 있다.

"20년 이상 경찰관에게 무도를 가르치는 교관생활을 했습니다. 지도자 입장에서는 선수 때의 경험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반면 교수강의법도 비중이 큽니다. 실전체포술은 실제 업무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기술 아닙니까. 앉아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조 경위에게 경찰 생활 중 무도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일까. 자기자랑같이 보인다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과거를 회상했다.

신임 경찰 시절, 일선 파출소에서 근무할 때 한 사내가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현장에 가보니 웃통을 벗은 채 팬티 차림인 건장한 남성이 한 손에는 식칼을, 다른 손에는 깨진 음료수 병을 들고 도망간 부인을 찾아내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상대방에게 자극을 주지 않으려 경찰 제복을 벗은 조 경위는 구경꾼들 틈에 끼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흉기를 휘두르던 사내가 숨을 고르는 찰나 조 경위의 번개 같은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순간 고꾸라지는 상대. 하지만 쉽게 굴복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특수부대 출신. 조 경위는 그에게 수갑을 채우기 위해 5분가량이나 격투를 벌였다.

"힘이 얼마나 좋던지 제압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근데 서운한 것은 주위에 구경꾼들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군요. 대신 잡고 나니 엄청난 박수를 칩디다. 하하."

조 경위는 인터뷰 내내 경찰의 무도일상화를 강조했다. 동시에 새로 임용되는 경찰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내비쳤다. 취업난으로 인해 경찰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높다보니 아무래도 무도를 전문으로 한 자원들의 합격률이 떨어진다는 것. 이는 곧 현장에서의 범인 검거에 허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조 경위의 생각이다. 신임 경찰은 경험이 부족해 초창기에는 정신적으로 범인에게 위축되는 경향이 강한데 무도를 통해 단련한 자신감마저 없으면 상황은 더욱 힘들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 부산지방경찰청에서는 경찰들을 대상으로 한 무술대회를 주기적으로 연다.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는 제1회 부산경찰청장배 태권도대회가 개최되고 7월에는 검도대회, 8월에는 일선 경찰서 대항 무도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우승자들은 10월 경찰의 날 기념 전국대회에 부산대표로 참석한다.

"앞으로도 무도는 계속할 것이고 퇴직 후에는 후배양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하고 있는 실전체포술을 갈고 다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죠. 그래서 부지런히 고수들을 찾아다니면서 경찰에게 정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