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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박사 이태형의 별별 낭만기행_06

醉月 2013. 6. 29. 01:30

아내 잃은 오르페우스의 구슬픈 하프 가락

견우와 직녀의 사랑 품은 거문고자리

 

이태형 | 우주천문기획 대표 byeldul@nate.com

 

여름철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은 직녀별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별이 속한 거문고자리를 놓고 견우와 직녀의 애잔한 사랑 이야기를 그려냈다. 서양에서도 거문고자리는 슬픈 사랑으로 통한다.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가 아내 잃은 슬픔에 죽자 그가 연주하던 하프는 밤하늘로 올라가 별이 됐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별을 보기 시작했고 대학원에선 도시행정을 전공했다. 별과 도시행정.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지만 나는 별과 도시를 연관시킬 방법을 찾다 시민천문대라는 것을 기획했다. 내 고향은 강원도 춘천이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여러 지역에서 서울을 본떠 놀이시설과 관광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태백’이라는 잡지에 ‘강원도에 천문대를 지어 강원도의 가장 좋은 자산인 맑은 공기와 별을 자원화해보자’는 글을 기고했다.

 

1996년 여름 강원도 영월의 일선 공무원이 연락해왔다. 영월에 천문대를 지어 관광자원으로 삼자는 것이었다. 그는 수년 전 ‘태백’에 실린 내 글을 스크랩해놓았다고 했다. 나와 그는 영월에 천문대를 짓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과학기술부에서 예산을 타냈고,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별 보는 행사를 수차례 열었다. 산 정상에 말뚝을 박을 수 없다는 어르신들을 설득하기 위해 ‘아폴로 박사’ 조경철 박사를 모시기도 했다. 조 박사가 “천문대를 세우는 것은 말뚝 박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기를 영월로 모으는 것”이라고 설득해 어르신들은 마음을 바꿨다.

 

 

 

 

한국의 그리피스, 한국의 로웰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영월은 우리나라 최고의 별마을로 자리 잡게 됐다. 당시 영월은 단종의 고장이자 물고기 쉬리가 서식하는 땅이었다. 이제 별은 영월의 중요 아이템 중 하나다. 맑은 물과 별이 있는 고장. 영월의 ‘별마로천문대’는 지금도 필자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작품’이다.

 

영월천문대가 완공된 다음해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군수가 바뀌었다. 새 군수는 천문대를 가장 먼저 문제 삼았다. 수십억 원을 투자했으니 최소 수억 원의 수익이라도 나와야 한다고 했다. 결국 나와 함께 일한 그 공무원은 한직으로 밀려났고, 천문대를 운영하던 나도 쫓겨났다. 그 군수는 재선에 성공 못하고 물러났지만, 나는 지금껏 영월천문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유명해진 경기도 양주의 송암천문대 역시 나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2004년 어느 날, 모 유수 기업의 상무란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회장님께서 사회사업으로 천문대를 세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2년 동안 수십 번 현장을 방문하며 천문대 건설에 대한 자문을 했다. 회장님은 매번 천문대 건설과 운영을 도와달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양주시를 설득해 현장으로 도로를 내도록 했고, 천문대 설계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회장님 자제분들 눈에는 내가 회장님을 꼬드겨 돈도 안 되는 천문대를 짓게 한 나쁜 사람으로 비친 모양이다. 나는 결국 그곳을 떠나게 됐다. 하지만 지금도 그 근처를 지날 때마다 멋진 천문대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 다만 이용료를 저렴하게 해 사회에 환원하겠다던 회장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 것은 아쉽다.

 

내가 미국에 갈 때마다 되도록이면 찾는 곳이 로스앤젤레스의 그리피스천문대와 그랜드캐니언 근처의 로웰천문대다. 그리피스천문대는 그리피스라는 사람이 거액을 기부해 세운 곳으로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LA 최대 관광명소다. 로웰천문대는 20세기 초 화성에 대한 본격적인 관측이 시작된 곳으로, 명왕성이 이 천문대에서 발견됐다. 역시 로웰이란 사람의 기부로 세워진 곳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서울에 시민천문대를 짓고자 한다. 공해가 없는 시골에선 맑은 날이면 언제나 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천문대에 가지 않고는 별을 보기 힘들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천문대를 ‘별 보는 곳’으로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천문대는 별을 매개로 가족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고 젊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리피스천문대를 찾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LA의 야경을 감상하고 사랑을 약속한다. 그래서 천문대에 오는 사람들 중엔 학생보다 일반인이 더 많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피스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그에게 감사한다.

 

‘If all mankind could look through that telescope, it would change the world.’ 그리피스천문대 중앙홀에 쓰여 있는 문구다. ‘모든 사람이 이 망원경을 통해 별을 볼 수 있다면 세상은 바뀔 것이다’라는 의미로 그리피스가 한 말이다. 천문대는 별만 보는 곳도 아니고 돈을 버는 수단도 아니다. 우주 속에서 인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미래에 대한 꿈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곳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 중에 한국의 그리피스나 로웰이 되고 싶어 하는 분이 있길 바란다.

 

 

 

 

 

직녀, 견우, 제우스

연중 해가 가장 높이 뜨고 낮이 가장 긴 때가 6월이다. 6월에 하지(夏至)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밤이 가장 짧아 별 볼 기회가 가장 적은 때가 6월이다. 6월은 밤이 짧기도 하거니와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라 더욱 별 보기가 힘들다.

 

비록 별 볼 기회는 많지 않지만 6월은 은하수와 더불어 화려한 여름 별자리들이 등장한다. 이제부터 여름철 별자리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여름에는 누구나 바닷가에 가고 싶어 한다. 여름철 바닷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몸매 좋은 예쁜 여인일 터. 여름 밤하늘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별도 예쁜 여인의 별이다. ‘견우와 직녀’ 전설에서 직녀는 하늘나라 공주답게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여름 해변에서 하늘을 보면 머리 위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 바로 그 별이 직녀다.

 

옛날 하늘나라 옥황상제에게 직녀라는 아리따운 딸이 있었다. 직녀의 아름다움은 서양에까지 알려져 제우스 신도 직녀를 만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를 눈치 챈 옥황상제는 직녀를 견우와 혼인시켜버렸다. 훗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게 되자 이 소식을 들은 제우스는 몰래 백조로 변신해 동양의 하늘로 날아왔다. 그러고는 직녀가 견우를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백조의 목을 길게 늘어뜨려 둘 사이를 반으로 갈라놓았다.

 

그래서 여름 밤하늘에는 직녀와 견우, 그리고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가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칠석날 비가 오는 것도 둘 사이를 제우스가 방해하기 때문이다. 칠석에 비가 오는 건 정말 제우스의 질투 탓일까. 이상은 내가 여름철 별자리를 재미나게 설명하기 위해 만든 상상의 이야기니 독자들은 오해 없길 바란다.

백조자리는 제우스의 바람기를 고려한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제우스는 당연히 직녀와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다. 직녀와 가장 가까운 밝은 1등성, 이 별이 바로 제우스가 변신한 백조자리의 으뜸별로 백조의 꼬리에 해당하는 ‘데네브’다.

 

 

 

칠석 축제를 부활시키자

그렇다면 견우는 어디에 있을까. ‘남남북녀(南男北女)’란 말이 있다. 견우는 우리나라 전설에 등장하는 잘생긴 남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직녀의 남쪽에 위치한다. 직녀에서 남쪽으로 가장 밝게 보이는 별이 바로 견우다. 견우와 직녀, 그리고 데네브는 ‘여름철의 대삼각형’이라고 불린다. ‘적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이 있다. 직녀를 정점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별이 백조자리의 데네브이고, 조금 멀리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 별이 견우다.

 

한여름 소나기가 지나간 뒤 맑게 갠 밤하늘의 은하수 옆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직녀이고, 직녀가 속한 별자리가 거문고자리다. 이 별자리는 우리의 전통악기 거문고와는 특별한 관련이 없다. 서양의 하프가 우리말로 번역되면서 거문고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한다. 거문고자리에는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을 한,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Orpheus)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랑하기 때문에 견우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직녀가 서양에서도 ‘슬픈 사랑’으로 전해지는 걸 보면 별에 대한 감성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는 생각도 든다.

 

거문고자리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직녀를 꼭짓점으로 하는 작은 삼각형과 평행사변형으로 이뤄진 거문고자리를 찾으면 된다. 이는 ‘리라(Lyra)’라고 불리던 고대 그리스 시대의 작은 하프를 나타낸다. 그러나 별들이 놓인 모습만 보면 어린아이들이 타고 노는 목마가 생각난다. 삼각형이 목마의 머리이고 나머지가 목마의 몸 같다. 직녀가 어린 시절 목마를 타고 놀았고, 목마의 머리 위에 있는 손잡이 부분이 반질반질해져서 빛나는 것이 직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 상상이 좀 과한 걸까!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에 만난다는 건 단지 전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상당한 과학적 근거와 오랜 세월에 걸친 관찰의 결과로 얻어진 결론이다. 해와 달이 뜨고 질 때 커 보이는 것처럼, 두 별 사이의 거리도 지평선에 가까이 있을 때가 머리 위에 있을 때보다 더 멀리 떨어져 보인다.

두 별은 봄부터 동쪽 하늘에 보이기 시작해 칠석 무렵의 한밤중에 하늘 높이 올라간다. 이때 두 별은 가장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칠석 무렵이 지나면 두 별은 다시 서쪽 하늘로 기울어 다시 멀어진 것처럼 보인다. 옛사람들은 봄부터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가까워지다가 멀어지는 두 별을 보며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선녀와 나무꾼

 

 

 

1980년대 초부터 청소년들 사이에 널리 퍼진 사랑의 축제 밸런타인데이를 대신하는 우리의 ‘칠석 축제’를 부활하는 게 어떨까. 매년 2월 14일이 ‘초콜릿데이’로 변질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상인들의 상술을 나무라기보다는, 우리 전통 속에 살아 있는 칠석을 부활해 의미 있는 만남과 선물을 개발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사랑과 만남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칠석을 한국의 밸런타인데이로 바꿔보자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직녀별은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로도 알려져 있다. 지상에 내려와 목욕을 하다 나무꾼에게 날개옷을 빼앗겨 하늘로 오를 수 없게 된 선녀는 결국 나무꾼과 결혼해 두 명의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어느 날 나무꾼이 숨겨둔 날개옷을 발견하고는 하늘나라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지 못해 아이들을 안고 하늘로 올라가버리고 만다. 직녀와 엡실론(ε)별, 그리고 제타(ζ)별이 이루는 작은 삼각형이 바로 직녀가 두 아이를 안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물론, 이 전설은 훗날 나무꾼도 하늘나라로 올라가 선녀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 이야기다.

 

세 개의 별을 가리켜 ‘짚신할매’라고도 불렀다. 짚신을 삼는 할매가 다소곳이 다리를 오므리고 있는 모습이 바로 이 삼각형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견우와 그 옆의 두 별을 합쳐서 집신 할배라고도 한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할배가 다리를 쫙 벌리고 집신을 삼는 모습이 바로 견우와 그 양옆의 두 별이라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거문고자리는 오르페우스가 연주하던 하프다. 이 하프는 제우스의 아들이던 헤르메스(Hermes)가 거북 껍질로 만든 것으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였다고 한다. 헤르메스는 이 하프를 태양의 신 아폴론에게 가져가 신의 전령의 표시인 카두세우스(Caduseus·두 마리의 뱀이 감긴 꼭대기에 두 날개가 있는 지팡이)와 바꾸어 전령의 신이 되었다. 아폴론은 헤르메스에게서 얻은 하프를 음악의 천재인 아들 오르페우스에게 줬는데, 오르페우스가 연주하는 하프 음색은 신과 인간은 물론 동물까지 넋을 잃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바람과 강물의 흐름도 멈추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오르페우스는 물의 요정이던 에우리디케(Eurydice)를 아내로 맞아 열렬히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우리디케가 악당에게 쫓겨 도망치다 뱀에 물려 죽었다. 하지만 죽음마저 오르페우스에게서 아내를 빼앗아 갈 수 없었다. 오르페우스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지하 세계로 에우리디케를 찾아 떠났다. 지하 세계를 지키던 보초는 오르페우스를 쫓아 보내려고 했지만 하프의 음색에 취해 길을 열어주고 말았고, 지옥문을 지키던 개도 머리를 숙이고 짖는 것을 멈추었다.

 

오르페우스는 지하 세계의 지배자인 하데스(Hedes)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Persephone) 앞에서 하프를 뜯으며 아내 에우리디케를 돌려줄 것을 눈물로 간청했다. 하프 소리에 감동한 하데스는 오르페우스가 지옥문을 떠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조건으로 에우리디케를 살려주기로 했다. 오르페우스는 대단히 기뻐하며 이승을 향해 곧바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윽고 지옥문이 보이고 밝은 빛이 들어오자 오르페우스는 아내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그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 찰나에 슬픈 비명이 들리며 에우리디케는 지옥의 어두운 길로 다시 돌아가버렸다. 오르페우스는 지옥문을 붙잡고 통곡했지만 한 번 닫힌 문은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았다.

 

밤하늘의 하프 연주

실의에 젖은 오르페우스는 하프를 타며 트라케(Thrace)의 언덕을 방황했다. 트라케의 많은 처녀가 그의 음악에 반해 유혹을 해왔지만, 아내와의 추억에 빠진 오르페우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오르페우스의 태도는 트라케 여인들의 원한을 사기에 충분했고, 결국 그는 얼마 후 그녀들의 활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러나 주인을 잃은 하프는 그의 품에서 멈추지 않고 슬프고 아름다운 음악을 계속 연주했다.

 

오르페우스의 하프 소리에 매료된 제우스신은 그의 하프를 하늘에 올려 모든 사람이 영원히 그의 음악을 기억하게 했다. 그 후 이 하프는 땅에서 사람들을 매혹시켰듯이 하늘에서도 여전히 부드러운 선율로 올림포스의 신들을 매혹시키고 있다고 한다.

 

사랑이 메마른 현대인들은 한 번쯤 음미해봐야 할 신화인 것 같다. 더운 여름밤, 거문고자리를 바라보면 아내를 극진히 사랑했던 오르페우스의 구슬픈 하프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올여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거문고자리를 찾아서 영원히 변치 않을 사랑을 약속해보는 것은 어떨지. 물론 아직 혼자라면 별을 핑계 삼아 사랑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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