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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살아남는 길

醉月 2013. 7. 3. 01:30

정치 시녀 ‘정보공룡’에서 날렵한 대북 전담기관으로

남재준號 국가정보원이 살아남는 길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 국정원은 왜 자꾸 ‘정치의 시녀’로 전락할까
● 전현직 직원들의 정보 누설과 정치 관여
● 정권교체, 원장교체 때마다 몸살 앓는 ‘정보공룡’
● 北 급변사태 대비하는 북한 전문정보기관으로 바꿔야
● CIA의 분명한 정보 목표…국정원장은 원칙만 고수할 것인가
● 위기관리 시스템 부족한 지휘구조
● 대통령 대신해 국가정보 총괄할 DNI 만들어야

 

 

1부_ 정치 격변기마다 내란에 휩싸인 국정원

“나는 자랑스러운 국가정보원의 직원으로서 보안이 나와 우리 원(院)의 생명임을 명심하고 업무상 취득한 내용은 어떠한 경우에도 누설하지 않을 것을 엄숙히 다짐합니다.”

 

국가정보원 직원은 누구나 외우고 있다는 보안선서다. 정보기관은 첩보의 수집과 정보의 생산, 그리고 공작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정보활동을 하면서 접하게 된 일을 밖으로 알리지 않는 보안에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정·첩보와 공작 활동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보안이기에 이들은 행사 때마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이 선서를 반복한다.

 

국정원 직원의 보안 의식은 법으로도 강요된다. 국정원 직원이 되는 자는 국가정보원직원법 제15조에 따라 원장 앞에서 “본인은 국가안전보장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으로서 투철한 애국심과 사명감을 발휘하여 국가에 봉사할 것을 맹세하고, 법령 및 직무상의 명령을 준수·복종하며, 창의와 성실로써 맡은 바 책무를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다짐한다.

 

다짐은 이 법 17조에 의해 다시 강요된다. 17조 1항에 ‘직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도 본의 아니게 재판이나 수사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그때 이 조항을 근거로 증언을 거부하거나 거짓 증언을 하면 불이익을 받거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한 때에는 원장의 허가를 받아 진술을 한다. 국정원직원법은 17조 2항과 3항, 4항 등에서 원장은 군사, 외교, 대북관계 등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증언을 허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현직을 막론하고 국정원 직원은 허가받지 않은 내용을 유출해선 안 된다.

 

정치권으로 새나가는 정보

이렇게 보안을 강조하지만 국정원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정치 풍향에 춤추는 직원이 나오고 정치권으로 정보가 새나는 현상이 일어난다. 과거에는 원장을 비롯한 정무직 간부들이 이 조항을 위반하는 사례가 많았다. 대부분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를 돕기 위해서였는데, 다음 정권에서도 한 자리를 하려는 의도였다. 더 오래전에는 정보 예산으로 여당 후보의 당선 확률을 알아보는 여론조사를 실시해서 어디를 더 공략하라는 등의 판단 의견을 달아 갖다 바치기도 했다. 노골적인 정치 관여였다.

 

요즘은 공채 출신인 하급 직원들도 정치 관여를 한다. 이들은 제대로 정보교육을 받았지만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정보를 유출한다. 이러니 국정원은 큰 선거가 있고 나면 지탄을 받고, 내적으로는 ‘정치의 시녀’로 전락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지난해 18대 대통령선거 직전에 일어난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그런 사례다.

 

이 사건을 단순히 국정원 소속 여직원이 정치에 관여한 것으로만 보면 단견이다. 첫 수사를 맡았던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의지로 그런 쪽으로 흘러간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권 과장의 수사에 대해 경찰 밖은 물론이고 안에서도 “무리한 수사” “권 과장이 오히려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차 진급하고 계급정년 걸려

여직원 사건 뒷면에 정치 진출을 꾀한 전직 국정원 직원이 관련돼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권은희 과장의 수사에 대해 분노하는 국정원 직원들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스스로 부끄럽게 여긴다. 이 사건은 너무도 명백한 정치 관여이다. 여직원 사건은 이 사건 때문에 발생했다. 이 사건을 상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9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DJ) 후보가 당선된 것은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때까지 대한민국 권부(權府)는 영남 출신 중심으로 운영돼왔다. 정보기관과 군, 검찰, 국세청, 경찰청, 감사원, 청와대 등 권력 기관의 요직에는 영남에서 태를 끊은 사람들이 즐비했다. 여타 지역 출신은 그 나머지를 나눠 가져야 했다.

 

그에 저항한 것이 호남 세력이었다. 호남은 인구가 많은 데다 유명 정치 지도자인 김대중이 있어 영남 권력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에 대해 영남 세력은 ‘호남 대 비(非)호남’ 구도를 만들어 그들을 고립시켰다. 이 구도를 깨기 위해 김대중 세력은 ‘영남 독식’을 비판하며 충청의 리더인 김종필(JP)과 손잡고 DJP 연대를 이뤘다. 영남을 고립시키는 ‘비(非)영남 대 영남 구도’를 만든 것인데, 이것이 성공을 거둬 DJ가 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권 교체의 여파는 권부 중의 권부인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도 몰아닥쳤다. 안기부의 중심 세력이 영남에서 호남 또는 친(親)DJ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김영삼 정권과 가까웠던 1급들은 대거 안기부를 떠나게 됐다. 1급은 직업공무원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이지만 계급정년이 없기에 해임되면 자동 해직으로 이어지는 공로연수 대상자가 된다. 그 자리를 호남 또는 친DJ 인사들이 차지했다.

2급 이하들도 물갈이가 됐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안전기획부직원법(現 국가정보원직원법)에 의해 정년을 보장받는다. 따라서 바로 해직은 되지 않고 한직으로 밀려나 계급정년이나 연령정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안기부의 세력 교체는 두 단계로 이뤄졌다. 1단계는 출신 지역과 성향에 따른 교체였다. 2단계는 해외공작(대북공작 포함)과 해외정보(대북정보 포함), 대공수사 분야를 축소하고 햇볕정책을 추진할 쪽을 강화하면서 교체됐다.

2단계 교체로 해외공작과 정보, 대공수사 분야에서 일해 온 많은 실무자가 한직으로 밀려나 정년을 기다리게 됐다. 일부는 과거의 비위로 면직됐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국사모(국가정보원을 사랑하는 모임)’를 만들어 햇볕정책을 펼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소송을 걸고 충돌했다. 2단계 교체를 통해서도 역시 호남세력과 친DJ 계열이 약진했다.

 

정치 택한 공채 출신 전직 직원

이러한 물갈이는 내부 정보가 있어야 가능하다. 국정원 내부에서 협조하는 사람이 있어야 좌천할 사람과 면직할 사람을 추려낼 수가 있다. 이른바 ‘살생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 작업에 적극 협조한 이는 이어진 인사에서 중용된다. 그때 국정원 공채 출신인 김○○ 씨가 당시 동기 가운데 1차로 4급으로 진급하며 이목을 끌었다.

그는 퇴직 후 자전적 에세이집을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광주광역시 출신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진급은 거기까지였다. 영남 출신인 노무현-이명박 정권 시절 계속 제자리걸음을 했기에 그는 계급정년에 걸릴 신세가 됐다. 국정원은 일반직원이 퇴직할 때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한 급수를 올려준다. 2009년 그는 3급으로 국정원을 퇴직했다. 한 국정원 간부는 그가 계급정년으로 퇴직한 이유를 “DJ정부 때 국정원의 살생부를 만드는 데 관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자에게 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후 김 씨는 민주당에 가입했다. 현직 국정원 직원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은 국정원법 위반이지만, 전직은 불법이 아니다. 과거에도 공채 출신의 안기부 전직 직원이 국회의원이 된 예가 있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후보로 경주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된 고 서수종 의원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가 18, 19대 총선 때 경북 김천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후보로 공천돼 연속 당선된 이철우 의원이다.

 

김○○ 씨는 타향에 둥지를 틀었다. 2012년 19대 총선이 다가오자 민주당 경기 시흥갑에 예비후보를 신청한 것. 예비후보 신청을 앞둔 2011년에는 자전적 에세이를 내며 자신이 국정원 출신임을 강조했다. 그는 DJ계열을 선택했는데, 시흥갑에는 친노(親盧)의 백원우 의원이 있었다. 그는 백 의원과의 공천 경쟁에서 졌다. 그러나 백 후보는 본선에서 새누리당 함진규 후보에 패배했다.

 

김 씨가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면 그는 국정원 공채 출신으로는 최초로 야당 국회의원이 되는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19대 총선이 끝난 후 바로 18대 대선 체제로 접어들었다. 그 무렵 김 씨는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일어나는 단서를 만들었다.

국정원의 한 간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18대 대선이 다가오자 김○○ 씨는 국정원 후배인 정△△ 씨에게, 국정원이 18대 대선에 개입하는 것을 추적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 씨는 산업스파이 분야를 담당해온 사람으로 역시 진급을 하지 못해 계급정년을 기다리는 처지였다. 정보기관에서는 ‘차단의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되기에 요원들은 자기 분야가 아닌 쪽 일은 잘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정씨 역시 타 부서 일은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김 씨의 부탁을 받은 그는 내부 조직을 살피다가 심리전국 요원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북한 글 출현을 막아라

국정원은 심리전 조직을 2급이 이끄는 단(團·심리전단)으로 운영해왔다. 그런데 북한이 한국의 인터넷을 통한 대남 심리전을 강화하자 2011년 심리전국(局)으로 승격시켰다. 동시에 국정원은 사이버팀을 신설했다. 사이버팀이 바로 북한의 대남심리전에 대응하는 조직이었다. 국정원은 북한의 대남심리전이 국내 종북세력의 협조를 받아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파악했다.

 

정부는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국내 포털로는 ‘우리민족끼리’나 ‘구국전선’ 등 북한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게 해놓고 있다. 그러나 해외 포털을 이용하면 접속할 수 있다. 국내의 일부 네티즌은 이런 방법으로 북한 사이트에 접속해 그곳에 있는 글을 국내 몇몇 사이트에 올려놓는다. 그러한 사이트 중의 하나가 ‘□□□’다.

 

□□□에 북한 글이 올라오면 그 글을 추천하는 ‘광(狂)클’이 일어난다. 많은 추천이 이뤄지면 이 글은 □□□와 연결된 다음이나 네이버에 화제의 글 등으로 올라간다. 이것이 북한 사이트의 글이 한국 포털사이트에 올라오는 일반적인 과정이다. 사이버팀 업무 중의 하나가 그것을 막는 것이었다. □□□ 등에서 북한 글이 베스트 추천을 받지 않도록 반대 의견을 다는 것이다.

 

이 일을 그 여직원이 했다. 그런데 특정 IP에서 계속 반대하는 글을 올리면 북한의 정보기관은 그 IP를 추적해 국정원이 공작을 하고 있다고 시비를 걸 수가 있다. 그래서 국정원은 직원들에게 업무용 노트북을 집으로 갖고 가서 반대 댓글 다는 작업을 하게 했다.

당시는 대통령선거가 가까웠으므로 북한 사이트는 여권 후보를 비난하는 글을 많이 올렸다. 사이버팀은 이것에 반대하는 글, 다시 말해 여권 후보를 옹호하는 글을 올리게 됐다.

 

국정원 등의 주요 기관은 내부 통신망을 외부 통신망과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인터넷에 있는 국정원 사이트는 국정원 내부망과 분리돼 있기에 DDOS 공격을 퍼부어 다운시켜도, 바이러스를 집어넣어도 내부 통신망을 무력화하거나 내부 통신망에 있는 정보를 캐내지 못한다.

 

“왜 업무용 노트북을?”

그러나 외부 인터넷과 연결된 노트북에 꽂았던 USB를 내부 통신망과 연결된 컴퓨터에 꽂을 경우, 해커들은 그 USB에 바이러스를 넣어 내부 통신망을 파괴할 수가 있다. 2011년 이란의 핵시설인 부셰르 발전소의 내부 통신망이 외부 인터넷과 연결됐다가 오염된 USB를 꽂는 바람에 바이러스 공격을 받아 다운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국정원에서는 아무나 업무용 노트북과 USB를 갖고 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댓글을 다는 사이버팀은 노트북을 갖고 나가 일하게 했다. 그리고 사이버팀엔 정보통신 분야에 정통한 직원만 배치해왔다. 선배의 부탁을 받은 정 씨는 사이버팀이 업무용 노트북을 갖고 나가 외부에서 정치행위를 하고 있다고 봤다. 그리고 외부에서 작업을 하니 그 정치 개입 행위를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사이버팀 요원 가운데 5명을 주시하다 여직원을 최종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이 여직원의 본가는 서울 도봉구에 있다. 도봉구에서 강남구 내곡동의 국정원까지 출퇴근하기가 힘들어 역삼동의 오피스텔에 거주했다. 정 씨가 여직원이 오피스텔에서 혼자 사는 것까지 알고 그를 대상으로 꼽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정 씨는 국정원에 의해 정치 관여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됐고,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5월 중순 정 씨를 소환해 조사하고 있다.

 

18대 대선이 임박한 어느 날 정 씨는 여직원이 차를 몰고 퇴근하자 그 뒤를 따랐다. 국정원은 보안을 위해 도처에 CCTV를 설치해 놓았다. 그리고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직원들이 누구와 휴대전화로 통화하는지 추적한다. 국정원법 3조는 국정원에 대한 보안과 국정원 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 수사는 국정원이 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통신보호비밀법에 따라 통화 내용을 감청하지는 않는다. 감청은 직원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그날 국정원의 CCTV엔 퇴근하는 여직원의 차를 뒤따라가는 정 씨의 차가 선명하게 찍혔다. 정 씨가 휴대전화로 김 씨에게 전화를 건 사실도 확인됐다. 국정원 청사 밖에서는 김 씨가 차를 타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 차도 CCTV에 찍혔다. 여직원의 차가 국정원 청사를 나온 다음부터는 김씨가 그 뒤를 쫓은 것이 그후 국정원 조사에서 확인됐다. 김 씨는 여직원의 ‘수상한 행태’를 민주당에 제보했다.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터져 나온 당일인 지난해 12월 12일 민주당 박영선 공동선대본부장은 평화방송 인터뷰에서 “저희 당에 제보된 게 며칠 전이어서 일주일 정도 그 오피스텔에서 잠복근무를 했다” “여직원은 아침에 국정원에 출근했다가 오피스텔로 돌아와 그 일을 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한 간부는 그날 정 씨가 김 씨에게 여직원 차량의 차종과 번호를 휴대전화로 알려줘 김씨가 미행해 오피스텔을 확인한 것이 수사과정에서 밝혀졌다고 말했다. 국정원법 3조는 국정원 직원에 대한 수사는 국정원이 하도록 돼있으니 정씨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는 적법하다.

 

민주당에 국정원 문서 전달

민주당은 이 오피스텔을 여직원을 비롯한 국정원 대선팀이 비밀리에 사용하는 사무실로 본 듯하다. 그러나 잠복은 했어도 여직원이 몇 호에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문제의 12월 12일 여직원이 오피스텔로 퇴근하자 민주당 관계자 70여 명이 이 오피스텔로 몰려가 고의로 여직원 차량과 접촉사고를 낸 뒤 여직원을 내려오게 해 호수를 알아냈다.

 

사건이 불거진 후 국정원은 이 호실을 공개해 국정원 대선팀이 외부에서 정치공작을 한 아지트가 아니라 여직원 거주지임을 밝혔다. 여직원이 갖고 다니던 노트북도 수서경찰서에 제출했다. 그러나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여직원이 정치 관여를 했다고 보고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자 국정원도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민주당에 여직원 오피스텔을 제보한 사람이 김 씨라는 것이 금방 포착됐기에 김씨와 통화한 사람들을 추적해 정 씨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그리고 정씨 차량이 여직원 차를 뒤따라가는 장면이 찍힌 CCTV 화면도 찾아냈다. 한 순간에 정씨는 국정원법을 어긴 배신자가 된 것이다.

 

국정원은 그의 파면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징계위원회를 준비했는데, 그 직전에 정씨가 국정원 문건을 유출했다. 국정원의 내부 통신망에는 원장이 부서장회의에서 한 말을 직원들에게 알려주는 ‘원장 지시사항’이라는 문건이 떠 있다. 이 문건을 보거나 출력하려면 자신의 ID를 입력해야 한다. 징계위원회를 앞둔 시점에서 정씨는 자신의 ID를 입력하고 이 문건을 인쇄했다. 그리고 그가 파면된 뒤인 올해 3월 18일 민주당의 진선미 의원이 이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 중에는 ‘젊은 층 우군화 심리전’이라는 것이 있었다. “세종시 반대하는 좌파단체에는 정공법으로 대응해야” “우리 원이 앞장서서 대통령님과 정부 정책(4대강 사업을 지칭)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도 있었다. 19대 총선 직후 만들어진 문서에는 “선거 결과 다수의 종북 인물이 국회에 진출함으로써 국가정체성 흔들기가 예상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진 의원은 이 문건을 원세훈 당시 원장이 정치에 관여한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파면이 확실시되자 정씨가 국정원법과 국정원직원법을 어기며 내부 정보를 빼내는 보안 누설과 정치 관여를 한 것으로 본다. 이 문건은 정 씨의 ID를 넣고 출력한 것이기에 국정원은 그와 김 씨를 국정원법과 국정원직원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민간인으로 두 사람 사이에 매개자 역할을 한 장 모씨도 고발).

이 사건도 권은희 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송치한 여직원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에 배당됐다. 특별수사팀은 민주당이 고발한 국정원 여직원의 정치 관여와 국정원이 고발한 전·현직 직원의 보안 누설과 정치 관여 사건을 함께 수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여직원 사건 이면에 깔려 있는 국정원 직원의 또다른 정치 관여 사건이다.

 

정치 격변기마다 몸살

전·현직 직원의 보안 누설과 정치 관여 사건은 두 사람이 의지를 갖고 정치에 관여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국정원이 수많은 선서와 의식, 법조문으로 보안을 강조해도 한쪽으로 기운 직원의 정치적 선택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면 국정원은 헤어 나오기 힘든 정치 소용돌이에 말려든다. 덩달아 해외공작과 대북공작, 대공수사를 해야 하는 팀들도 태풍에 말려들까봐 업무를 느슨하게 하는 태업(怠業)에 들어간다.


 

국정원은 이러한 소동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겪고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를 놓고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격돌했을 때 박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국정원 문서가 유출됐다. ID 추적 등을 근거로 문서 유출자가 국정원 직원 P씨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후보가 박 후보를 제치고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되고, 이어 17대 대통령선거에서도 이기자 사건 조사를 하지 않았다. 덕분에 P씨는 국정원을 안전하게 퇴직하고 모 기관의 임원을 지냈다.

 

더 큰 격변은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바뀐 시절에 일어났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15대 대통령선거가 있기 전, ‘흑금성’이라는 별칭을 가진 국정원 에이전트 박채서 씨가 정동영 국민회의 의원 등을 만나 정보를 제공했다.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다음 국정원에서 피바람 부는 청산작업이 일어날 것 같자, 이대성 당시 해외공작실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야당(국민회의) 관계자가 제3국에서 허가 없이 북한인을 접촉한 자료를 만들어 정대철 의원 등 DJ 세력에 제공하며 자신들의 선처를 요구하다 실패한 사건이 있었다.

 

이대성 실장팀이 작성한 이 문건은 언론에 공개됐는데, 여기에 안기부가 주도한 대북공작도 실려 있어 흑금성 공작이 만천하에 폭로됐다. 그리고 권영해 당시 안기부장이 김대중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해 아말렉 공작-오대산 공작 등을 했다는 것도 밝혀져, 권 부장 등이 구속되는 북풍(北風)사건이 일어났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가 여당 후보(이회창)의 당선을 돕기 위해 북한에 판문점에서 총격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예단하고,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총풍(銃風)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근거 없는 예단이었다. 그런데도 안기부의 과잉 충성파들은 증거를 잡기 위해 용의자로 지목한 장석중 씨를 구타하는 등 고문을 했다.

 

장석중 씨를 통한 총풍 사건 구성이 실패하자 또 다른 충성파들은 중국 선양(瀋陽)에 나와 있는 북한인 최인수를 납치해 총풍 사건을 파악하려고 했다. 그러나 최인수도 충성파가 기대한 총풍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다 안가 관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최인수가 안가를 탈출한 다음 모 신문사로 가 서울로 납치된 과정과 납치 후 고문당한 것을 털어놓았다.

이 신문사가 최 씨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안기부에 문의하자 안기부는 그제서야 최 씨가 사라진 것을 알고 그를 데려갔다. 안기부는 이종찬 당시 부장을 비롯한 모든 간부가 나서서 “대북공작을 하다 실수로 데려온 북한인을 놓쳤다. 배려해주기 바란다”라고 호소해,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넘어갔다.

 

국정원은 정권 교체뿐만 아니라 원장이 교체될 때에도 바람을 탄다. 계급정년 등에 걸려 퇴직이 확정된 직원은 퇴직 1년 전에 공로연수에 들어가는데, 원장이 바뀌면 공로연수를 하던 이가 요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남재준 신임 원장도 공로연수 중인 이를 요직으로 롤백시켰다. 공로연수에 들어간 이들 중에는 능력이 뛰어난데도 견제를 받은 억울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를 살려내면 직원들은 정치권 또는 원장과 눈이 맞으면 기사회생할 수 있다고, 보고 정치권 등 외부와 선을 대기 위해 애를 쓰게 된다.

 

이런 일에는 업무상 정치권과 접촉이 잦은 직원들이 유리하다. 그들이 일신영달을 위해 정치권에 눈 맞추기를 하면 국정원의 비밀은 줄줄이 정치권으로 넘어간다. 국정원의 정치 시녀화 현상이 급물살을 탄다.

 

악순환을 끊어 낼 수 있을까

국정원이 본연의 임무를 잊고 노골적으로 정치에 종속된 때가 DJ-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다. 당시 국정원은 북한과 대화하는 데 주력했다. ‘국정원의 통일부화(化)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로 인해 안보의식이 무너지는 등 해가 심각했다.

국정원은 정치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국정원다워야 한다. 남재준 원장은 국정원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정보가 거듭해서, 그리고 자발적으로 정치에 예속되는 악순환을 남재준 신임 원장은 끊어낼 수 있을까.

 

2부_ 국정원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지난 3월22일 제31대 국가정보원장에 박근혜 대통령의 ‘안보 멘토’인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 취임했다.

그는 육군총장 시절 인사문제와 관련해 원칙주의자임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가 원칙을 지키자 그를 시기한 세력들은 그를 음해하는 문서를 뿌리는 비열한 공작까지 저질렀다.

 

2004년 그는 군 검찰을 독립시켜 군을 장악하려는 노무현 정부와 강하게 충돌했다. 군은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기에, 지휘관 중심의 ‘독재체제’를 이루고 있다. 입법-사법-행정이 분리되는 3권 분립이 아니라, 과거의 왕처럼 지휘관이 모든 권력을 행사한다. 이 때문에 지휘관은 전복 행위(쿠데타)를 할 우려가 있어 국가는 기무사와 헌병을 통해 지휘관의 동태를 항시 감시한다.

 

기무사와 헌병은 기소권이 없다. 그러나 군 검찰은 기소권과 함께 수사권, 기무사와 헌병을 지휘하는 권리까지 갖고 있다. 따라서 군 검찰을 독립시키면, 군 검찰은 지휘관을 한 순간에 움켜잡을 수 있다. 그러한 군 검찰 인사권을 청와대가 장악하면 대통령은 군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 군의 정치 시녀화 현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된 군은 적을 바라보지 않고 청와대의 눈치만 보기에 유사시 힘을 못 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육해공군의 모든 지휘관이 반대했다. 덩치가 큰 육본의 반발이 외견상 가장 강해 보였다. 그러자 청와대 측은 남 총장을 중심으로 한 육본 수뇌부가 회의에서 ‘정중부의 난’ 운운했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 한 신문이 이를 보도해 과연 ‘정중부의 난’토론이 있었는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러한 논의는 없었다. 청와대 측이 남 총장을 흔들어 군 사법 개혁을 관철하기 위해 그러한 소문을 퍼뜨린 것이었다. 이 소동은 조사에 나섰던 청와대 측이 그런 논의가 없었다고 밝힘으로써 일단락됐다. 그리고 그해 가을 남 총장과 청와대는 두 번째로 맞닥뜨리게 됐다. 10월에 있었던 육군의 대령→준장 진급자 선발이 계기였다.

 

원칙주의자 남재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장군 인사를 앞두면 여러 곳에서 청탁이 들어온다. 육군총장은 이 가운데 받아들여야 할 것은 수용해 추천위와 선발위에 전달해 그를 진급자로 추천하게 한다. 남 총장은 그러한 관례를 금지했다. 오로지 인사자료를 근거로 진급자를 결정하게 했다.

그러자 청와대 측이 영남-호남-충청 출신의 비율이 맞아야 한다며 몇몇 추천자를 바꾸라고 했다. 남 총장은 거절했다. 국방부 차관보가 한밤중에 헬기를 타고 계룡대를 오가는 등 소동이 일었지만 남 총장의 원칙을 꺾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원안대로 인사안을 결재하면서 “내가 군 최고통수권자”라고 했으나, 남 총장은 “군 통수권자라도 법과 원칙에 맞게 인사를 해야 한다”고 받아쳤다. 결국 그는 육군총장을 끝으로 더 이상 공직에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8년 정도 박근혜 대통령의 안보 멘토 노릇을 하다가 국정원장에 올랐다.

 

국정원이 정치의 시녀가 된 첫째 원인은 인사에 있다고 본 그는 국정원 인사제도를 육군처럼 바꿨다. 즉 갑·을·병 3개 추천위에서 모두 추천받은 이는 진급을 확정 짓고, 나머지는 2개 추천위에서 추천받은 사람을 놓고 선발위에서 심사해 결정하게 했다. 원장은 개입하지 않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공정한 인사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렇게 인사제도를 개혁하면 국정원의 고질인 정치 시녀화 현상은 사라질까. 원세훈 원장 시절의 국정원은 친MB 일변도였다. 원 원장 자신이 ‘이명박맨’이었으니 부하들도 MB 사람 일색으로 구성됐다. 전직 국정원 직원들은 원 원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MB와 너무 가까웠다는 것을 지적한다. 원 원장이 국가를 위한 정보활동보다는 MB를 위한 정보활동을 더 중시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편승한 이들은 진급을 했고, 떨어져 나간 이들은 야당을 기웃거리다 절대 금물(禁物)인 정보 누설을 하게 됐다.

 

남 원장은 군 출신이지만 전역 후 10년 가까이 박근혜 대통령의 안보 멘토를 했으니 정치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그의 주변에도 박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직원들이 몰려드는 정치 시녀화 현상이 일어나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야당에 줄을 대려는 직원이 생겨날 수 있다.

 

정보기관의 견제와 균형

정보기관을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정보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그런 미국의 정보체계에서 배울 만한 것을 따라가는 것이 정보기관의 선진화를 앞당기는 길이다. 국정원 1급 출신의 한 인사는 “인사제도 개혁만으로는 국정원의 정치 시녀화를 막을 수 없다”며 “국정원을 CIA처럼 해외·대북 정보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국내외를 상대로 정보활동을 하는 종합 정보기관이다. 경찰청, 기무사, 777부대, 정보사, 관세청, 국세청 등은 부문 정보기관에 해당한다. 국정원은 이들을 지휘한다.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특정 기관이 정보를 종합하면 ‘정보 공룡’이 생겨나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본다.

 

29세 때 FBI 국장에 올라 48년간 재임한 존 에드거 후버(1895~1972)는 1972년 사망할 때까지 FBI 국장으로 있으면서 8명의 미국 대통령을 보좌했다. 대통령이 8명이나 바뀌었는데도 후버가 FBI 국장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FBI의 정보력으로 대통령의 약점을 잡은 것이 거론된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했으니 어떠한 대통령도 그를 내칠 수 없었다. 이러한 역사가 있어 미국은 특정 정보기관이 정보를 독점하지 않게 했다. 즉 정보를 여러 부문으로 나눠 여러 정보기관에 맡김으로써, 정보기관 사이에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 일어나게 한다.

 

미국은 국외 정보는 CIA, 국내 정보와 수사는 FBI, 통신감청은 NSA(국가안보국), 국방 정보는 DIA(국방정보본부)를 중심으로 한 각군의 정보사령부 식으로 16개 정보기관이 나눠서 맡게 했다. 그런데 견제와 균형을 중시하다보니 16개 기관이 생산한 정보를 융합하고 교류하게 하는 기관이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당한 것이 2001년의 9·11테러였다.

그 후 미국 정부와 의회는 이 사건을 정밀 조사할 블루리본 위원회를 운영했다. 그리고 몇몇 정보기관에서는 알카에다가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하리라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테러를 막는 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라 밀쳐뒀다는 것을 알았다.

 

정보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정보가 곧 힘’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필요 없지만 다른 정보기관에는 중요할 수 있는 정보를 구해도, 이를 주지 않는 속성이 있다. 제2차 연평해전 후 원인 조사에 나섰던 한국도 감청 전문 정보부대인 777부대와 정보사가 경쟁심 때문에 정보 교환망을 끊어놓고 있었던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제야 미국은 16개 정보기관이 생산한 정보를 종합하고, 각 기관이 생산한 정보를 다른 기관으로 보내주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DNI(국가정보국)을 만들었다. DNI는 직접적인 정보활동은 하지 않고 CIA를 비롯한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며 이들이 생산한 정보를 종합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정보를 각 기관에 고루 나눠주는 임무도 한다.

 

한국에서는 국정원이 이 일을 맡고 있다. 국정원은 국내외 정보를 모두 맡는 종합 정보기관이면서 경찰청, 국방정보본부 등 부문 정보기관이 생산한 정보를 제공받는다. 그리고 이를 종합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정리하면 국정원은 DNI, CIA, FBI의 기능을 합쳐놓은 ‘정보 공룡’인 셈이다.

 

따라서 한국 정보 세계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정권을 잡은 세력은 국정원부터 장악하려고 한다. 그리고 정권에 가장 충성할 사람을 원장에 임명함으로써 국정원을 정치의 시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국정원에서는 5년마다, 원장이 바뀔 때마다 충성해야 할 대상이 바뀌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연줄만 잘 잡으면 기사회생할 수 있으니 자발적으로 정치에 선을 대려는 직원들이 나오는 것이다. 국정원의 정치 시녀화 현상이 폭로되면 국익을 위해 활동해온 해외 및 대북 분야도 올스톱 된다.

 

이 국정원 간부 출신은 이런 고질을 고치려면 국정원을 쪼개 국외 및 대북 전문 정보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외 및 대북 정보기관은 국내 정치 바람을 탈 이유가 거의 없다. 그는 국정원에서 잘라낸 국내 파트는 국무조정실과 경찰청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

국정원 국내 파트는 보안활동을 이유로 정부 부처와 사회단체를 살펴본다. 부처 간에 업무가 겹치면 이를 조정하는 역할도 한다. 이 일은 국무조정실에서 할 수 있다. 국무조정실에는 보안감사를 하는 공직복무관리관실도 있으니 국정원 국내 파트가 하는 일을 대신할 수 있다.

 

남재준 국정원의 정보 목표는?

국정원을 잘 아는 사람들은 남재준 원장이 ‘정보 목표’를 세웠느냐고 반문한다. CIA는 어떤 정보활동을 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유리한지를 결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전통이 있다. CIA는 국외기관이기에 공작 위주의 공격적인 정보활동을 한다.

6·25전쟁을 계기로 동서 냉전이 첨예하던 시절 CIA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국가와 투쟁하는 데 주력했다. 소련과 중국의 핵과 우주개발에 관한 정보, 공산국가가 개발한 신무기에 대한 정보 수집에 주력했다. 그때 베를린은 미국과 소련의 정보기관이 맞닥뜨리는 최전선이었다. 그로 인한 반작용이 거세도 CIA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계속 밀고 나갔다.

 

소련을 상대로 한 투쟁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본 1950년대 후반 CIA는 친미국가를 늘리는 공작에 들어갔다. 비동맹 또는 친소(親蘇) 국가가 많은 아프리카와 중동, 중남미에 있는 나라를 상대로 친미 쿠데타가 일어나게 하는 공작을 한 것이다. 그에 대한 역작용으로 남미에서 체 게바라가 영웅으로 떠오르고 쿠바가 카스트로에 의해 공산혁명을 이뤘다.

베트남에서는 베트콩의 세력이 커지면서 미군이 철수하고 공산화가 이뤄졌다.

1991년 동유럽과 소련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나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가 열리자 CIA는 미국의 패권 유지를 가장 중요한 일로 보고 미국의 첨단기술이 새나가는 것을 막는 대(對) 산업스파이 활동에 방점을 찍었다. 그리고 마약에 중독되는 미국인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약과 위조지폐 등을 막는 초국가 범죄 방지에 전력했다.

 

 

 

2001년 9·11테러를 당한 후에는 테러 세력 색출을 제1의 목표로 했다.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을 수행하면서 CIA는 많은 테러리스트를 ‘생포’했다. 그러나 미국법은 고문을 금하고 있어 미국법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쿠바에 있는 미국 조차지 관타나모에 이들을 수용하고 물고문 등을 하면서 정보를 뽑아내 다시 테러리스트를 잡는 작전을 펼쳤다.

 

그러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고문 사실이 문제가 되자 CIA는 생포에서 ‘제거’로 방향을 바꿨다. 그 대표적인 성공작이 2011년 파키스탄에 은신해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찾아내 사살한 ‘제로니모 작전’이다. CIA의 작전부대로 동원된 미 해군의 UDT/SEAL 팀은 여자 뒤로 몸을 숨긴 오사마 빈 라덴을 주저하지 않고 사살한 뒤 수장했다.

 

그런데 파키스탄이 자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특수부대를 투입해 오사마 빈 라덴 등을 사살한 것은 주권침해라고 반발했다. CIA는 파키스탄 정부에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으로 이 반발을 막았다. 그러나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사람을 투입하지 않는 제거 작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즉 프레테터 등의 무인기를 이용해 테러세력을 찾아내 제거하게 했다. 무인기를 이용한 테러리스트 제거 목표를 세운 이는 오바마 2기 행정부에서 CIA 국장에 임명된 존 브레넌이다. 브레넌은 CIA 출신으로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는 백악관으로 옮겨와 오바마의 안보정책을 보좌했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DDOS공격을 가한 뒤로는 CIA는 대(對)사이버 전도 중요한 정보목표로 설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취임을 전후한 시점에 북한은 은하-3호를 발사하고 3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3대 세습에 반대해 김일성 동상을 까부수는 모임인 ‘동까모’가 생겨났다고 한다. 김정은의 북한은 군부 책임자를 잇달아 바꾸고 있다. 최근에는 인민무력부장을 50대 중후반의 장정남으로 교체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김정은 권력이 안정되지 못했다는 증거다. 남재준의 국정원은 이러한 북한을 어떻게 다룬다는 정보 목표를 세워야 하는데, 그런 것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는 남 원장이 정보기관 업무에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다.

 

對北 전문 정보기관으로

영남 정권으로 이어져온 김영삼 정부 시절의 안기부는 북한에 비밀결사체인 ‘진달래회’를 만들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민통련’이라는 조직을 비밀리에 운영했다. 안기부는 북한 붕괴를 유도하는 ‘광개토 프로젝트’를 만들어 추진하고 북한 붕괴 시 안정화 작전을 하기 위한 범정부 계획인 ‘고당계획’을 만들었다. 이러한 계획들은 DJ가 당선되면서 모두 날아가고 이 계획에 참여했던 이들은 일괄 물갈이가 됐는데 그 시작이 바로 1998년의 북풍사건이다. 남재준의 국정원은 이러한 목표를 세워놓았는가. 원세훈의 국정원은 북한을 무너뜨린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고 방첩과 이명박 대통령 보호에 치중하다 위기를 맞았다.

 

남 원장의 국정원이 정보 목표를 세워 북한 붕괴공작을 하려면 국정원을 종합 정보기관에서 해외 및 대북 정보기관으로 변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국정원은 국내 정치 바람을 타지 않고 북한 민주화에 진력할 수 있다. 대신 한국은 DNI처럼 국내의 모든 정보기관을 종합하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국정원 해외파트 출신 인사의 지적이다.

 

남재준 원장은 원칙주의자답게 법과 원칙대로만 국정원을 바꾸고 있다는 느낌이다. 국정원법은 국정원에 복수 차장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세훈 원장 때까지 국정원은 국내·해외·대북 3명의 지역별 차장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국가정보학을 다루는 전문가들은 지역별 차장제에 반대한다. 선진국 정보기관이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CIA 등은 기능별 차장제를 채택하고 있다.

 

CIA는 해외 정보기관이기에 방첩이나 보안보다는 공작을 중시한다. 따라서 공작차장을 중시한다. 공작을 하려면 정보가 있어야 한다. 정보는 정보관과 공작관이 입수해 보내주는 첩보를 분석해서 생산한다. 정보관과 공작관이 보내준 첩보를 과거의 정보와 비교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을 추려낸 후 그 첩보를 토대로 ‘앞으로 이러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라는 첩보 가설을 세운다.

 

이 첩보 가설이 현실과 들어맞으면 정보로 판단한다. 이러한 판단을 하는 것은 분석관인데, 분석관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토대로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한다. 이것이 CIA의 정보 생산인데, 이러한 정보가 나오면 공작관은 그 일이 일어날 곳과 시간에 대기하고 있다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조치를 취한다.

첩보 가설을 토대로 일어날 일을 판단해주는 분석관들을 지휘하는 것이 정보차장이다. 그러한 분석관들의 분석기법을 개발하고, 공작관이 사용할 장비와 정보관이 활용할 첩보 수집 장비를 개발해주는 과학기술 분야 차장을 둔다. 그리고 3개 부서의 활동을 예산 등으로 지원하는 지원차장이 있다. CIA는 정보-공작-과학기술-지원의 4차장제를 갖췄다.

 

명목뿐인 국정원의 기능별 차장제

그러나 남 원장의 국정원은 종합정보기관을 유지하기에 지역 차장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명목상으로는 기능 차장제를 채택한 듯 보였다.

이를 이해하려면 정보의 종류부터 살펴봐야 한다. 정보는 크게 사람이 하는 인간정보(HUMINT·휴민트)와 기술로 하는 기술정보(TECHNT·테킨트)로 나뉜다. 인간정보는 다시 상대를 뚫고 들어가는 ‘공작’과 상대의 침투를 막는 ‘방첩’으로 세분할 수 있다.

 

남 원장은 공작 중심의 적극 정보 활동을 하는 1차장, 방첩과 보안 중심의 소극 정보활동을 하는2차장을 지명했다. 그리고 3차장은 정보와 관련된 과학기술을 맡은 과학기술차장으로 지명하고, 이들을 예산 등으로 지원해주는 기조실장을 4차장 격으로 놓았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남 원장이 국가정보학 교과서가 권하는 대로 차장제를 혁신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세밀하게 살펴보면 이는 국가정보학 교과서가 권하는 차장제와 다르다. 국가정보학 교과서는 CIA 차장제를 가장 괜찮은 것으로 꼽는데, 국정원 차장제는 CIA와 다르다.

1차장은 공작을 맡았으니 북한과 외국을 상대로 활동한다. 과거 국정원은 대북과 국외를 해외로 묶어 한 명의 차장이 이끈 적이 있다. 국정원은 국외와 북한을 나눴다가 합치는 것을 반복해왔다. 합쳤을 때는 해외차장이라고 통칭하고 나누면 해외차장, 대북차장으로 불렀다. 그렇다면 지금 1차장은 과거의 해외차장이다.

 

2차장은 보안과 방첩 업무를 맡기로 했는데, 보안과 방첩 활동은 대부분 국내에서 이뤄진다. 그러니 2차장은 국내 차장이 된다. 과거 국정원은 과학기술 부문을 국 단위로 뒀는데, CIA를 참고했는지 차장이 이끄는 분야로 승격시켰다. 남재준 원장의 국정원은 원세훈 원장 때까지의 국정원과 바뀐 것이 없는 셈이다.

국정원에서 국내 파트를 떼어내지 않으면 국정원의 구조 개혁은 요원하다. 오랫동안 국가정보체제를 연구해온 국방연구원의 김철우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북한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했고, 사이버전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북한 사회는 심각한 식량난으로 흔들리고 있고,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 권부는 잦은 인사 이동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의 한국 안보는 북한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한국은 김정은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정보기관 중 어느 하나는 오로지 북한만 전담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것은 국정원이 대북 임무만 맡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 우리도 DNI 같은 조직을 만들어 여타 정보기관에서 입수한 북한 관련 정보를 종합하게 하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국정원법을 개정해야 하는 등 번거로움이 있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대통령령으로 구성된 기무사 등을 대북 전문정보기관으로 정한 후, 군뿐만 아니라 민간정보기관까지도 합세해 북한을 분석하고 핸들링하게 하는 것이다. 이 개혁은 박근혜 정부에서 빨리 이뤄지는 게 좋을 듯하다.”

 

 

 

위기 대비 CIA 지휘구조

남재준 원장의 국정원을 CIA와 비교해보면 다른 허점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위기를 많이 겪어봤기 때문에 조직을 만들 때는 위기관리를 염두에 두고 구성한다. 위기는 사건이나 사태가 일어났을 때 고조되지 않는다. 진정한 위기는 그 기관을 이끌며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기관장이 유고일 때 발생한다. 따라서 미국은 중요 기관의 기관장은 복수로 임명한다.

 

미국 부통령은 대통령과 같은 일을 하지만, 평시에는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니 대통령이 하는 일을 지켜보기만 한다. 그러다 대통령이 유고 상태가 되거나 해외 순방을 가면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다. 전쟁이 발발하면 대통령과 부통령은 둘 중 한 명이 유고 되더라도 남아 있는 사람이 미국을 지휘할 수 있도록 각기 다른 곳에 위치한다. 9·11테러 때 미국은 대통령과 부통령이 다른 곳에 위치한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국무총리는 미국의 부통령과 다르다. 미국의 부통령은 ‘대통령 유고 시를 대비한 대통령’이지만, 우리의 국무총리는 ‘대독(代讀)총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대행하는 자리에 가깝다.

국무총리는 대통령 일을 하지 않고 국무조정이라는 고유의 임무를 해야 한다. 한국은 대통령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국무총리를 교체해 위기를 돌파한다. 그러나 미국의 부통령은 대통령과 함께하기에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한다.

 

미국은 주요 부처에 복수의 기관장을 둔다. 장관 밑에 같은 일을 하면서 장관 유고시에 대비하는 부(副)장관이 있다. 부장관은 우리의 차관과 다르다. 우리의 부처 중에는 복수 차관을 둔 곳이 있는데, 복수 차관은 고유의 임무가 있다. 물론 장관이 유고되면 선임 차관이 대행을 하겠지만, 그는 국무총리처럼 고유의 임무가 있기에 부처 전체의 일을 한 순간에 파악하기 어렵다.

 

CIA도 이 전통을 받아들여 국장(Director) 밑에 같은 일을 하지만 평시에는 실권이 없는 부국장(Deputy Director)을 둔다. 그리고 CIA의 일상적 업무를 총괄하는 국장보(Executive Director)를 둔다. 국장(부국장 포함)과 국장보가 하는 일은 명확히 구분돼 있다.

정보 책임자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정보를 사용할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국장(부국장)은 DNI 국장을 상대로 이 일을 해야 하니 CIA의 일상적인 일에서는 벗어나 있어야 한다. CIA의 일반적인 일은 국장보가 맡는다.

CIA는 이렇게 상부구조를 위기에 대처할 수 있게 안정적으로 만들어놓고, 그 아래 정보-공작-과학기술-지원 차장을 뒀다. 기능 위주의 날렵하고 심플한 조직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위기대응 구조 약한 국정원

국정원은 다르다. 국정원에는 원장 유고 시에 대비한 직책이 없다. 원장 유고 시 선임 차장이 대행을 한다지만, 국정원은 기본적으로 복수 차장제이기에 선임 차장에게는 고유의 임무가 있다.

현행법상 국정원장은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므로 일상적인 국정원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CIA의 국장보 같은 직책을 둬야 하는데 국정원법은 그러한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가 벌어졌는데 원장이 유고라면 국정원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대통령은 국정원 내부나 외부에서 인물을 뽑아 새 원장을 임명하겠지만, 그는 국정원 일을 전체적으로 지켜봐온 사람이 아니니 위기에 대처하기 어렵다. 아무리 유능해도 그는 상당 기간 국정원 상황을 익혀야 업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니, 그 사이 국정원은 제대로 기능을 하기가 어렵다 .

남재준 원장은 북한 급변사태를 염두에 둔 국정원 개혁, 정보 개혁을 해낼 수 있을까. 이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북한 급변사태 시 한국은 많은 것이 뒤엉키는 위기를 맞게 된다.

 

종합적인 정보 틀 만들어야

국정원법 등이 현직 직원의 정치 관여와 전·현직 직원의 보안 누설을 금지하고 있으니 이 법만 잘 지키면 국정원이 정치에 휘둘리는 위기를 맞지 않을 수 있다. 남재준 원장은 원칙주의자이니 법과 원칙 준수를 강조한다면, 그가 이끄는 국정원에선 정보 누설과 정치 관여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개혁은 남 원장이 국정원을 떠나는 순간 원위치 할 수가 있다. 남 원장 시절 소외된 세력이 신임 원장을 상대로 온갖 자료를 제공하면 기사회생하는 사람이 나오면서 물갈이가 되는 것이다.

남 원장 재임 중에만 무탈을 보장하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 정보는 미래의 사실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니, 정보 개혁은 미래의 안보 위협 요소인 북한 급변사태를 대비한 것이라야 한다.

 

북한 급변사태는 군을 이끄는 국방부가 무겁게 대처하는 것보다는, 특수부대를 이끄는 정보기관이 날렵하게 대처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국방과 정보를 양축으로 미래의 안보 불안에 대처해야 한다.

안보는 헌법에 규정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해 종합적으로 대처한다. 정보는 미국의 DNI 같은 기구를 만들어 종합 대처하게 하고 국정원은 오로지 북한을 상대하는 정보기관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 지휘구조도 위기 대처를 잘할 수 있도록 개편해야 한다. 이러한 개편은 국정원법 개정을 전제로 한 것이니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 개혁은 국정원을 정부 여당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니 야당도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육군총장 시절 원칙을 지켰다가 그를 비난하는 괴문서가 뿌려지는 공작을 당했던 남 원장은 정치로부터 국정원을 구해내야 한다. 그리고 불안한 김정은의 북한을 어떻게 하겠다는 분명한 정보(활동) 목표를 세워야 한다.

 

남재준 원장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정보 개혁을 박 대통령에 제시할 수 있을까. 그가 박 대통령의 진정한 안보 멘토라면 국정원법과 국정원 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안보와 연결된 큰 틀에서 국가 정보체계를 개혁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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