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민삿갓의 팔도기행_ 전남 고흥

醉月 2010. 12. 21. 08:48
전남 고흥 - 남도의 꽃, 우주를 향해 피어나다
남양 월정마을 | 능가사&팔영산 | 나로우주센터&봉래산 삼나무숲 | 발포&천등산 금탑사 | 소록도

가도 가도 천리 길. 고흥은 멀고도 먼 남도 땅이다. 지난해 나로도에서 발사된 로켓 나로호 덕분에 심리적 거리는 조금 가까워졌지만 아직도 큰맘 먹기 전엔 일정 잡기가 쉽지 않은 먼 고을임에 틀림없다.

봄이 오는 길목, 머나먼 남도 땅 고흥으로 떠난다.
▲ 고흥의 대표적 명산인 팔영산 정상에서 바라본 일출. 다도해를 붉게 물들이는 장관이 펼쳐진다.
전라남도 고흥은 멀고도 먼 고을이다. 서울에서 접근하는 데만 6시간이 걸린다. 해 짧은 계절엔 하루 낮을 꼬박 바쳐야 도달할 수 있다. 지난해 나로도우주센터에서 나로호가 발사된 덕분에 관광지로 급부상한 고흥은 볼거리도 적지 않다. 여덟 개의 암봉이 손짓하는 팔영산은 고흥의 얼굴로 대접받는 명산이다.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조망할 수 있는 나로도 봉래산 중턱에 조성된 삼나무숲도 장관이다. 예전엔 금단의 섬이었으나 이젠 일반인의 출입이 허락된 소록도 등을 비롯해 곳곳에 아름답고 사연 많은 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너무 멀기 때문에 단단히 벼르고 2박3일 정도로 떠나야 한다. 첫날 아침 일찍 출발했다면 고흥에 들어섰을 땐 얼추 점심 때일 것이다. 곧장 팔영산을 향해 갈 수도 있지만, 고흥의 바닷가에서 주민들이 널배라고 부르는 도구를 타고 꼬막 잡는 광경을 구경하려면 남양면 월정리로 가야 한다. 작업 장면은 물론 물때가 맞아야 구경할 수 있다.


▲ 팔영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쪽 조망.

월정리에 다녀온 다음엔 팔영산 기슭으로 달린다. 소박한 절집 능가사 구경은 필수다. 숙소는 능가사 입구의 민박집이나 팔영산자연휴양림이 무난하다. 만약 오후 시간이 여유롭다면 팔영산 일몰 산행(3~4시간 소요)에 나선다. 아니면 이튿날 새벽 일출 산행에 나서도 좋다. 능가사 쪽이든 자연휴양림 쪽이든 모두 원점회귀산행이 가능하지만, 산 중턱에 자리한 자연휴양림을 베이스캠프로 삼는 게 여러 모로 더 낫다.

이튿날 휴양림을 빠져나와 남열해안도로를 한 바퀴 돈다. 영남 용바위, 일출이 아름다운 남열해수욕장이 있다. 이후 77번 국도와 15번 국도를 번갈아 타며 나로도로 향한다. 도중에 해창만 간척지, 내나로도 해안 풍광, 외나로도 상록수림 등의 볼거리가 있다. 나로우주센터에선 우주과학관을 방문한다. 설명을 들으며 차분하게 둘러보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삼나무숲과 나로도 주변 다도해 조망이 일품인 봉래산 산책(2시간30분 소요)도 빼놓으면 아쉽다.

▲ 고흥 들머리에서 만난 간판. 우주로 향한 고흥의 꿈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둘째 날도 숙소를 자연휴양림으로 정해놓았다면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가면 되지만, 이 경우 동선이 겹치는 바람에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하는 단점이 있다. 우주과학관 앞 등 나로도의 민박집을 이용해도 괜찮다.

마지막 날은 나로도를 빠져나와 77번 국도를 타고 소록도로 방향을 잡는다. 도중에 도화면의 발포도 잠깐 들러본다. 이순신 장군이 근무한 적 있는 항구다. 옛 성벽 근처에 충무사라는 사당이 있다. 도화면소재지를 지나면 천등산이 보인다. 그 북동쪽 기슭에 자리한 금탑사의 비자나무 숲도 좋지만, 오가는 동선이 겹친다. 일정이 빠듯하다면 굳이 들르지 않아도 괜찮다.

소록도는 녹동항에서 소록대교를 건너면 된다. 소록도 중앙공원을 둘러보는 데 보통 1시간 정도 걸린다. 귀갓길에 풍양면의 유자공원, 고흥 읍내의 천경자미술관에 들른 뒤 고흥의 일몰 명소인 남양에서 고흥 여정의 마무리를 한다. 소록도에서 나왔을 때 시간이 넉넉하다면 고흥만 방조제 쪽으로 방향을 잡아도 괜찮다.

만약 1박2일로 고흥 일정을 잡았다면 능가사~팔영산~팔영산자연휴양림(숙박)~나로도 우주과학관~봉래산~소록도~귀가 코스가 무난하다.

남해안에 위치한 전남 고흥은 동쪽엔 순천만(여자만), 서쪽엔 보성만(득량만)을 거느리고 있는 고흥반도와 그 주변의 유인도 38개, 무인도 122개로 이뤄진 고을이다. 반도를 이어주는 북부는 폭이 아주 좁다. 지금은 간척작업으로 폭이 4km 가까이 되지만, 원래는 2km가 채 안 되는 좁은 폭으로 육지와 연결된다. 그럼에도 남북의 길이가 약 95㎞에 이른다. 따라서 일정이 머릿속에 명확히 서 있지 않으면 복잡한 반도 안에서 이리저리 헤매다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다.


남양 월정마을
여자만 개펄에서 건져 올린 고흥 꼬막


▲ 남양 월정리 선정마을 주민이 여자만 개펄에서 꼬막을 채취해 돌아오고 있다. 고흥도 벌교 못지않은 꼬막 생산지다.<사진 고흥군청>

고흥반도의 들머리가 되는 북쪽엔 보성의 벌교가 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요즘엔 꼬막 생산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이 고을이 고흥반도로 들어서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꼬막 하면 벌교를 연상하는데, 이웃한 고흥도 알아주는 꼬막 생산지다. 동쪽의 남양면 일대 망주리, 월정리 등 해안가 마을 주민들은 널배(뻘배)를 타고 개펄에 나가 꼬막을 잡는다. 이렇듯 남양면 바닷가에 접한 마을은 대부분 꼬막을 잡는데, 그 중에서도 월정리 선정마을이 가장 유명하다. 고흥 입구의 자그마한 갯마을이지만 꼬막에 관한 한 제법 내로라하는 마을로 꼽힌다. 널배를 타고 나가는 꼬막 채취작업이란 게 물때가 맞아야만 하기 때문에 항상 구경이 가능한 게 아니다.

방풍림 아래 줄지어 있는 널배들, 그리고 개펄에 남아 있는 널배의 자국은 생활을 견뎌내는 우리 어미들의 주름 같은 삶의 흔적이다. 오랜 세월 바다에 기대 살며 갯것들을 잡아 삶을 이어온 어미들의 한숨과 웃음이 이 개펄에 새겨져 있다.

월정리의 해안방풍림(전라남도기념물 제116호)도 가벼운 산책이 가능하다. 길이 약 400m, 너비 25m 정도로 규모가 그리 크진 않은 편이다. 1500년대에 신창 맹씨와 동북 오씨가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조성한 것이라 한다. 이팝나무와 팽나무가 주종. 수령이 200년 이상인 아름드리 나무들도 여러 그루다. 큰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신목으로 하여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에 마을 주민들이 별신제를 올린다.

▲ 매월 4·9·14·19·24·29일에 장이 서는 고흥 5일장. 해안지방이라 수산물이 푸짐하다.

선정마을엔 꼬막을 직접 채취해 파는 집이 여럿 있다. 선정수산(061-834-8295, 011-9035-8295), 월정수산(061-833-1885, 011-623-1257), 솔이수산(061-833-1870, 010-4117-1870) 등이다. 꼬막은 1망(5kg)에 5만 원 정도 한다. 요즘 전국적으로 꼬막 생산량이 많이 줄어들어 값이 올랐다. 선정 꼬막마을 홈페이지 www.kkomak.co.kr

숙소>> 월정리 선정공원(061-833-1752, 019-617-1752, www. sjpark. co.kr)은 선정마을의 외딴 곳에 바다와 맞닿아 있는 바닷가 펜션이다. 6실의 방, 카페, 그리고 200평 정도의 잔디정원도 갖추고 있다. 해돋이펜션(061-835-2232, 010-4798-2234, www.sunminpak. com)도 있다. 왕주마을의 은혜횟집(061-833-1844, 019-610-1844)에선 자연산 어류와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자연산 활어회(4인 기준) 5만~6만 원. 꼬막을 차리는 식당은 없다.

 

능가사&팔영산
팔영산에 기대 있는 소박한 절집

▲ (위)팔영산 여덟 봉우리와 잘 어울리는 능가사. 소박한 맛이 있는 평지형 사찰이다. (우)보물로 지정된 능가사 동종. 김애립이 1698년 주조한 이 종은 17세기를 대표하는 범종으로 꼽힌다.

팔영산 북서쪽 기슭에 자리한 능가사(楞伽寺)는 416년(신라 눌지왕 1년)에 아도화상이 보현암(普賢庵)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오는 절집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4년(인조 22년) 벽천대사가 지금의 자리에 중건해 능가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팔영산에 기대 있긴 하지만 산지형이 아니라 평지형 절집이다.

능가사로 들어가는 길은 소박하다. 일주문이 없어 사천왕문만 지나면 곧바로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고흥 최고의 명산 기슭에 있는 절집으로서 한때는 호남의 4대 사찰로 꼽혔다는 권위가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소박해 친근감이 든다. 한 무리의 등산객이 우르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정적에 잠기는 이 절집의 매력이라면 전각의 용마루와 어우러진 팔영산 여덟 봉우리다.

능가사를 지키고 있는 목조사천왕상(지방유형문화재 제224호)은 1666년(현종 7년)에 조성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어 우리나라 사천왕상 연구에 귀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사천왕상을 보면 동방지국천이 비파, 남방증장천이 칼, 서방광목천이 뱀을 쥐고 있는데, 이는 청나라를 통한 라마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 한다. 남해안에 자리하고 있는 고흥이 중국과 교류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범종각이 보인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능가사 동종(보물 제1557호)이다. 이 종은 조선시대 주종장 가운데 김용암·김성원 등과 더불어 사장계를 대표하는 김애립이 1698년(숙종 24년)에 조성한 작품이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17세기의 대표 범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능가사 대웅전(보물 제1307호)은 선비처럼 단아한 자태가 돋보이는 조선 후기의 건물이다. 다포계 팔작지붕인데, 특이하게도 건물 방향이 절의 입구 때문인지 북향으로 돼 있다. 능가사는 벚꽃 피고 동백꽃 지는 봄 풍광이 예쁜 절집이다. 능가사 061-832-8090

▲ 선정마을 널배. 주민들은 여기에 삶을 싣고 여자만 개펄을 드나든다.

여덟 봉우리 돋보이는 고흥의 제1경

팔영산(八影山·609m)은 낙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고흥지맥’ 중에서 최고 봉이면서 동시에 고흥의 얼굴로 대접받고 있는 명산이다. 죽순처럼 솟은 여덟 암봉이 돋보인다. 암봉과 암봉의 연결은 위태로운 산길로 이어지고,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솟은 다도해의 풍광 조망도 매우 뛰어나다. 물론 철계단과 밧줄 등이 위험한 구간마다 잘 설치돼 있고, 우회로도 나 있어 초보자도 비교적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다.

능가사 사천왕상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팔영산이란 이름의 유래에도 중국과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어느 날 세숫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의 그림자를 보고 감탄한 중국의 위왕이 그 산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신하들은 조선의 고흥 땅에서 이 산을 발견하게 된다. 원래는 팔전산이었는데, 그 다음부터 산 이름을 팔영산으로 고쳐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팔령산(八靈山), 팔형산(八兄山), 팔봉산(八峰山)도 팔영산의 다른 이름이다. 여덟이란 숫자만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여덟 암봉의 상징을 읽을 수 있다.

▲ 제8봉 적취봉에서의 조망. 팔영산은 능선 어디에서든지 이렇게 조망이 좋다.

여덟 봉우리는 모두 고유 이름을 갖고 있다. 고흥군에서는 1998년 각 봉우리의 고유 이름을 표지석에 새겨 등산객이 쉽게 알 수 있게 했다. 1봉 유영봉, 2봉 성주봉, 3봉 생황봉, 4봉 사자봉, 5봉 오로봉, 6봉 두류봉, 7봉 칠성봉, 8봉 적취봉이다. 정상은 8봉에서 동남쪽으로 500m 정도 떨어져 있는 깃대봉인데, 여덟 개의 봉우리엔 속하지 않는다.

벼르고 별러 떠나온 머나먼 고흥 여행에서 고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팔영산 산행을 빼놓으면 정말 섭섭하다. 산행 내내 해창만 일대를 포함한 고흥반도와 그 주변 다도해 조망을 실컷 즐길 수 있다. 일출과 낙조가 참 아름답다. 해뜰 녘이나 해질 녘 암봉에 올라 붉게 물들어가는 다도해를 바라보면 잠시나마 세상의 근심을 잊을 수 있다. 중턱에 있는 휴양림을 숙소로 삼으면 산행이 수월하다.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선다. 산행 출발점은 자연휴양림 종합휴양관 건물 200m 정도 아래에 있는 ‘산막1동’ 바로 아래 지점이다. 이 갈림길에서 왼쪽은 제8봉, 오른쪽은 제2봉·제6봉으로 이어진다. 깃대봉 일출 산행의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여기서 왼쪽 길을 따른다.

휴양림 시설지구에서 능선 안부까지는 20~3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처음에 조금 가파르긴 해도 위험하진 않다. 여덟 개의 봉우리는 오른쪽, 정상은 왼쪽에 따로 외롭게 떨어져 있다. 안부에서 왼쪽 길로 ‘깃대봉’ 이정표를 따라 10분쯤 오르면 정상. 도중의 바위에 표지석이 있지만, 진짜 정상은 100m 정도 더 간 지점의 고흥경찰서 무선국 시설 바로 뒤편의 바위다. 이곳에 서야 일출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 (위)고흥을 대표하는 명산으로 사랑받고 있는 팔영산. 어디서든지 여덟 암봉이 도드라져 보인다. (아래)팔영산 북쪽 기슭에 터를 잡은 팔영산자연휴양림. 고흥 여행은 물론 팔영산 산행의 베이스캠프로 삼기 좋은 곳이다.

태양은 북쪽으로는 순천만(여자만), 남쪽으로는 해창만 바다를 끼고 그 사이에서 솟는다. 동쪽으로는 여수반도 끄트머리, 그리고 낭도·개도·금오도 등 섬들이 연꽃처럼 떠 있는 다도해가 화사하다. 바다와 농토가 사이좋게 펼쳐진 남쪽의 해창만 너머로는 우주의 꿈을 피워 올리는 외나로도, 내나도로가 아련하다. 나로대교의 모습이 마치 성냥개비처럼 가냘프다. 남해에 수많은 일출 명소가 있지만 이렇게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도 많지 않다.

일출을 감상한 다음엔 팔영산 여덟 봉우리를 만나보자. 깃대봉에서 되돌아와 만나는 휴양림 갈림길 안부에서 직진하면 곧 8봉이다. 팔영산의 암봉들은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여덟 개의 봉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조망이 좋은데 그 중에서도 제2봉, 제4봉, 제6봉이 제법 돋보인다. 물론 으뜸 조망은 제6봉이다.

이렇게 조망을 즐기며 걷다 제2봉을 내려서면 갈림길. 직진하면 제1봉을 지나 능가사 쪽으로 내려서게 된다. 휴양림으로 가려면 오른쪽 길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목적지가 휴양림이라면 제1봉에 오른 뒤 다시 이곳 갈림길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제1봉에서 계속 내려가면 능가사로 빠지게 된다.

이렇게 휴양림~깃대봉~제8봉~제1봉~휴양림 원점회귀 코스가 3시간30분 소요, 휴양림~깃대봉~제8봉~제7봉~휴양림 회귀 코스는 2시간 정도 걸린다. 일출만 감상하는 휴양림~깃대봉~휴양림 원점회귀는 왕복 1시간~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또 능가사~마당바위~제1봉~제8봉~샘터~탑재~능가사 원점회귀 코스는 4시간~4시간30분 소요. 이 회귀 코스는 여덟 봉우리를 모두 둘러볼 수 있으면서도 휴양림을 들머리로 할 경우 지불할 주차료와 입장료를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팔영산은 험한 암봉이라 산길이 좁고 교행이 어렵다. 등산객이 몰리는 주말엔 엇갈린 방향으로 가는 등산객들 때문에 정체되기도 한다. 따라서 일출 감상 산행이 아니라 주말 낮 산행이라면 많은 등산객이 이용하는 일반적 코스인 제1봉에서 제8봉으로 순서대로 연결하는 게 좋다. 그래야 정체된 산길에서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다. 팔영산 관리사무소 061-835-9566

▲ (위)고흥반도로 깊숙이 들어온 해창만. 오른쪽으로 고흥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간척지가 펼쳐져 있다. (아래)내나로도에서 만난 아담한 포구. 외국의 유명 휴양지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이다.

숙식>> 팔영산자연휴양림은 팔영산 자락 해발 400m 고지에서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있는 휴양 시설이다. 산막 뒤편으로는 팔영산 암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숙박시설로는 8개의 방을 갖춘 휴양관 1동과 산막 9동이 있다. 인터넷(www.paryeongsan.com)으로 예약을 받는다. 시설 이용료는 산막 5만~12만 원, 산림문화휴양관 5만~10만 원, 야영장 4,000원. 야영테크 1만 원. 주차료 승용차 3,000원.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600원, 어린이 400원. 관리사무소 061-830-5386, 매표소 061-830-5453

능가사 위쪽의 팔영산장가든(061-833-8080, 017-243-0320)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능가사 주차장 옆엔 추어탕, 도토리묵, 회무침, 라면 등을 차리는 시골집식당(061-834-1292)이 있다. 영남면 금사리 일성식당(061-834-7016)의 중화요리도 맛있다. 해물짬뽕 6,000원, 전복해물짬뽕 9,000원.

팔영산 남동쪽의 남포미술관(061-832-0003~4, http://nampoart.co.kr)은 남도 화단 작가들의 작품을 상설전시하는 미술관인데 펜션도 갖추고 있다. 1실 8만~12만 원. 이외에도 포두면 오취리에 삼해팬션민박(061-832-3141), 영남면 양사리에 영남알프스민박(010-2274-8907) 등 숙박시설이 있다.

 

나로도 가는 길
바다 모퉁이 돌 때마다 펼쳐지는 다도해 풍광 일품

▲ 봉래산에서 내려다본 조망.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인다.

77번 국도와 15번 국도를 타고 나로도로 향하는 길. 남열리해안도로 드라이브도 빼놓을 수 없다. 아름드리 해송 가득한 남열마을 일출도 아름답다. 만약 노약자가 있거나 사정 때문에 팔영산 일출을 감상하지 못했다면 이곳 남열 일출 구경도 괜찮다. 고흥군에서 팔경의 하나로 정해놓은 일출 감상지다.

남열마을 북쪽의 우천리 용암마을엔 용바위가 있다. 수백 명이 동시에 서 있을 정도로 널찍한 반석 옆으로 암벽이 솟아 있다. 먼 옛날 남해의 해룡이 하늘로 승천할 때 이곳 암벽을 타고 기어 올라갔다고 한다. 암벽에 뚜렷한 흔적은 용이 오를 때의 자국이라고. 등용문이라는 상징 덕에 자식들의 중요한 시험을 앞둔 부모들이 치성을 드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영남면소재지로 되돌아 나와 77번 국도를 타고 나로도 방면으로 달린다. 사도진성(蛇渡鎭城)이 있던 금사리 해안이 아담하고, 고흥 사람들의 곡창인 너른 해창만 간척지를 보면 가슴이 시원해진다.

마복산(538.5m)을 지나고 남성리에서 좌회전해 15번 국도를 바꿔 타면 길은 내나로도를 거쳐 외나로도로 이어진다. 나로1대교를 건너기 직전 오른쪽으로 ‘전망 좋은 곳’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언덕엔 큼직한 나로대교 건설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렇지만 굳이 이곳에 들를 필요는 없다. 이곳보다 더 좋은 조망지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일면 백양리의 동포마을 풍광은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포구다. 아직 명소로 이름나진 않았지만, 작은 포구와 섬들의 조화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동남아의 유명 해안 풍광에 뒤지지 않는다.

▲ 나로도의 우주과학관 전경. 오른쪽 언덕을 넘어가면 나로우주센터가 나오지만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돼 있다.

나로도 지명의 유래가 예쁘다. 바다에서 보면 바람에 날리는 비단 같다고 하여 나로도(羅老島)라 했다고 전한다. 또 조선시대 나라에서 운영하는 말을 키우는 목장이 여러 군데 있어 불리던 ‘나라섬’이 변한 지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나로2대교를 건너면 나로도항도 들러보자. 축정항이라고도 불리는 나로도항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삼치 파시로 유명세를 떨치던 항구다. 나로도 앞바다는 쿠로시오난류의 영향권이라 8∼12월이면 삼치 떼가 몰려든다. 남도에서 한참 외진 항구임에도 일제강점기에 벌써 전기가 들어올 정도로 부자 마을이었으며, 한때는 고흥군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의 3분의 1을 충당했을 정도라고 한다. 요즘은 예전보다 못하지만 아직도 나로도항은 삼치잡이 대표 항구로 통한다. 지금도 어선 수백 척이 들어설 수 있는 부두, 넓은 상가 등이 잘 조성돼 있다. 큼직하게 느껴지는 수협 위판장에선 삼치는 물론 자연산 생선 및 수산물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이곳에서 나로도 유람선이 출항한다. 수려한 경치가 바다와 어울려 절정을 이루는 곳! 나로도의 아름다운 해상 경관을 구경하기 위해 유람선을 타면 나로도항에서 출발해 섬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다시 나로도항으로 돌아온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외나로도의 해안은 꼭두녀, 카멜레온 바위, 사자바위, 용굴, 쌍굴, 마침머리, 부처바위 등 해안 절경이 계속 이어진다. 지난해 나로호가 발사됐던 우주센터 전경도 구경할 수 있다. 두 시간이 걸리고 요금은 1만7,000원으로 두 척의 유람선이 운행된다. 나로도 관광유람선 011-629-6905, 061-833-6841

나로도해수욕장엔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70여 종이 거센 해풍을 맞으며 버티고 있는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362호)도 있다. 숲에 들어서면 너무 짙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옆에는 아름드리 해송 숲이 모래 해변을 따라 뻗어 있다.

숙식>>  봉래면소재지 나로도항 주변에 프라자모텔(061-833-6599), 동백장여관(061-835-0100), 진보각(061-833-6415)과 순천횟집(061-833-6441, 834-6291) 등이 있다.

신금해수욕장, 염포해수욕장 부근에도 민박집과 식당이 있다.

나로도항의 별미는 삼치회다. 삼치는 흔히 구이로 알려져 있지만, 남도 사람들은 회를 더 많이 찾는다. 그물보다 채낚시로 잡아 올려 얼음에 1∼2시간 재워 뒀다가 회로 먹으면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3~5kg짜리가 맛이 좋다고 한다. 어획량에 따라 가격 차가 있으나 보통 한 접시(4인 기준) 4만~5만 원 정도다. 아쉽게도 가을이 제철이라 요즘은 맛볼 수 없다.


나로우주센터&봉래산 삼나무숲
우리나라 최초로 건설된 인공위성 발사장

▲ (위)우주과학관 야외 전시실에 세워져 있는 로켓. (아래)우주과학관은 대한민국 항공우주과학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공간이다.

교동마을에서 15번 국도는 끝이 나고 길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나로우주센터로 들어가는 길이고, 우회전하면 낙조가 아름답다는 염포해수욕장에 닿는다. 왼쪽 길로 10분쯤 달리면 드디어 나로우주센터.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로 건설된 인공위성 발사장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우주 발사에 필요한 첨단 장비와 시설을 갖춘 세계 13번째 국가가 됐다.

그리고 나로도는 지난해 8월 대한민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 발사로 전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나로호가 위성임무궤도 진입에 실패하면서 우주의 꿈을 다음으로 미뤄야만 했다. 정밀조사 결과 실패 원인은 페어링(위성보호덮개) 분리구동장치에서 발생된 고전압 전류가 페어링 분리장치로 공급되는 과정, 그리고 페어링 분리기구의 작동과정에 문제점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우주의 꿈을 어찌 접을 수 있을까. 현재는 오는 5~6월로 예정된 나로호 2차 발사 준비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나로우주센터도 설 연휴가 끝난 뒤부터 본격적인 발사 모드에 들어가 있다. 물론 일반인들은 나로우주센터 출입을 할 수 없다. 대신 입구에 조성해놓은 우주과학관에서 우주에 대한 궁금증을 알아볼 수 있다. 이곳은 우주과학기술 전시·교육 기능 및 우주센터·방문자센터 기능을 수행한다. 로켓, 인공위성, 우주공간 등을 소재로 한 전시품 총 59종과 야외전시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나로우주센터 영상 상영 및 과학관 소개 1일 6회(10:40, 11:40, 13:40, 14:40, 15:40, 16:40) 상영. 소요시간 약 20분. 이 중 1·3·5회(10:40, 13:40, 15:40)는 해설사가 동행해 설명해주는 시간(11:00, 14:00, 16:00)과 바로 연결해서 관람할 수 있다. 이 경우 총 1시간30분쯤 소요된다. 자유 관람도 가능하다.

관람시각 10:30~17:30(입장 17:00). 매주 월요일, 공휴일 다음 날, 신정·설날·추석 연휴 휴관. 요금은 어른 3,000원, 청소년(7~19세) 1,500원. 주차 무료. 나로우주센터 061-830-8700

▲ 봉래산 능선에서 내려다본 서쪽 조망.

향긋한 내음 가득한 봉래산 삼나무숲 산책 일품

우주과학관 관람 전후에 꼭 하고픈 일이 있다면 바로 봉래산(蓬萊山·410m) 산행이다. 봉래산은 우주센터를 마치 두 품으로 안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따라서 과학관 쪽에서 보면 별다른 특성 없이 바닷가의 흔한, 그냥 그렇고 그런 산(?)으로만 여기기 쉽다. 그렇지만 다도해 조망과 봉래산 북동쪽 기슭에 조성된 삼나무숲에서의 휴식은 쉽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만하다.

특히 삼나무숲이 장관이다. 어른 두 명이 팔을 합쳐야 할 만큼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대부분 수령이 80여 년에다 키도 30m가 넘는다. 이 삼나무숲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 무렵, 삼나무의 생육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 조림했다고 알려져 있다. 66만여m²(20여만 평)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3만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멀리서 보면 짙푸른 군락이 장관이다.

▲ 봉래산 산행 중 가장 큰 즐거움을 얻게 되는 삼나무숲.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솟은 삼나무숲 속에서의 휴식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산길은 삼나무숲 한가운데를 통과한다. 중간 중간 숲속으로 들어가는 작은 샛길들도 보인다. 숲 그늘엔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도 만들어두었다. 산행 마무리에 삼림욕을 즐기며 여유 있게 쉬어가기에 이처럼 좋은 곳도 드물다.

봉래산의 조망도 빼어나다.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산행 내내 눈길을 잡는다. 능선 어디에서나 삼나무와 대나무 숲의 푸르름 너머로 로켓이 우뚝 서 있는 우주과학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세도 부드럽고 산길도 평탄하고 부드럽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어린이도 무난히 걸을 수 있을 정도. 설치한 안내판과 이정표 등도 잘 갖춰져 있어 길을 잃을 염려도 드물다. 우주과학관에 들른 뒤 가족 산행으로 더 없이 적합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귀띔 하나. 산길 주변은 눈속에서 꽃이 핀다는 복수초 군락지다. 3월에 찾는다면 노란 꽃을 피운 복수초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봉래산 산행 들머리는 우주과학관 2km 전의 봉래산 무선국 입구다. 고갯마루에서 ‘봉래산’이나 ‘무선국 입구’ 이정표를 보고 200m쯤 들어서면 곧 무선국이 나오고, 그 뒤쪽 비포장도로를 따라 다시 100m 가량 더 들어가면 승용차 대여섯 대 주차 가능한 작은 공터가 있다. 이곳엔 대형 지도가 그려진 입간판도 있다.

길은 두 갈래. 오른쪽은 정상으로 직접 가는 길, 왼쪽은 삼나무 숲으로 가는 산책길이다. 어느 길로 가든지 한 바퀴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하다. 대부분 탐방객들은 오른쪽 길로 들어가 정상에 먼저 들른 뒤 삼나무숲을 지나 이곳으로 돌아온다. 무선국 주차장~393m봉~정상~능선~시름재~삼나무 군락지~외딴 집터~무선국 주차장 회귀 코스가 가장 무난하다. 이정표도 잘돼 있고, 갈림길이 많지 않아 길 잃을 염려가 없다. 왕복 2시간30분~3시간 정도 걸린다.

숙식>>  우주과학관 입구 마을인 예내리에 일출정민박(010-6606-6209), 예당펜션(061-833-8314~5), 대주민박(061-835-9396), 와보래민박(061-833-6331)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발포&천등산 금탑사
이순신 장군 18개월간 근무했던 포구

▲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 장군이 발포만호로 근무한 적이 있는 발포항구.

고흥에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고흥에서 제법 큰 어항으로 꼽히고 수확한 김이 대부분 이곳을 통해 들어오는 도화면 발포(鉢浦)라는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36세 때인 1580년(선조 13년) 7월 이곳 발포만호(鉢浦萬戶)로 부임해 1582년(선조 15년) 1월까지 재임했다. 만호(萬戶)란 조선시대 각 도의 여러 진(鎭)에 파견된 종4품의 무관직을 말한다. 그러나 이곳에 머문 시절이 이순신 장군에겐 고난의 시기였다. 직속상관이 사사로이 관사 앞뜰의 오동나무를 찍어다 거문고를 만들려하자 이를 막다가 모함을 받은 곳이 여기다. 이후에도 몇 차례 모함을 받다가 결국 직위에서 파면돼 18개월 만에 한양으로 돌아갔다. 성벽 위쪽에 있는 충무사(忠武祠)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1980년에 건립한 사당.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에 충무공탄신제를 거행하고 있다. 항구 한쪽엔 ‘이충무공이 머무신 곳’이란 비석도 세워져 있다.

아담한 비자나무숲에 둘러싸인 금탑사

▲ 1 발포항구 성벽 뒤쪽에 있는 충무사.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2 천등산 기슭에 자리잡은 금탑사. 절집 주변으로는 비자나무숲이 펼쳐져 있다. 3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인연이 있는 곳임을 알려주는 비석.

천등산(天燈山·553.5m)은 고흥반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천등이란 이름은 옛날 가섭존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크게 천등불사를 한 것을 이르는 것이다. 이 천등산 동쪽 기슭에 금탑사(金塔寺)가 터를 잡고 있다. 요즘 중창불사가 한창인데, 전체적으로 절집은 정갈한 편이다.

절집 주변은 한겨울에도 푸른 기운이 묻어나는데, 이는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39호) 덕분이다. 이 절집 아래쪽 입구의 계곡과 위쪽 산지의 사면에 걸쳐 3000여 그루가 분포한다. 금탑사 위쪽 비자나무의 키는 8~14m, 가슴높이 둘레는 16~121cm에 이른다. 수령은 최고 100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학자들은 천연림이 아니라 1800년대 중엽에 심은 인공림으로 보고 있다.

금탑사 입구에서 천등산 정상까지는 1시간이면 다다를 수 있다. 다시 이 길로 내려온다면 왕복 2시간이면 넉넉하게 정상에 올라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금탑사 061-832-5888

숙식>>  금탑사 주변은 숙식할 곳이 마땅치 않다. 발포해수욕장 한적한 곳에 빅토리아호텔(061-832-0100), 도로변에 햇살파크(061-835-0500) 등 숙박시설이 있다. 발포항에 다도해회식당(061-835-7693) 등 식당이 몇 있다.

소록도
‘천형의 섬’에서 벗어나 세상과 소통하고픈 아기 사슴

▲ 고흥에서 가장 큰 항구인 녹동항. 소록도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

고흥반도 남서쪽 끝자락인 녹동항 앞바다에 떠 있는 섬, 소록도(小鹿島). 섬의 형국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6년 한센병(나병) 환자들이 집단수용되면서 신조차 눈길을 주지 않는 ‘천형(天刑)의 섬’으로 바뀐 뒤 오랜 세월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야만 했다. 해협의 폭이 600m. 예전엔 통통배로 10분, 몇 년 전엔 페리호로 5분이 걸렸는데, 소록대교가 생긴 요즘엔 섬으로 들어서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는다. 비로소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 것이다.

소록도의 해안선 길이는 14㎞, 면적은 4.42㎢. 서울 여의도의 1.5배 정도 되는 아담한 섬으로 모두 17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지만 외부인들은 섬 초입의 대형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야 한다. 그것도 섬 전체가 아니라 옛 병원 건물이 모여 있던 ‘중앙공원’ 구역만 돌아볼 수 있다. 공원 입구 왼쪽의 생활자료관엔 소록도병원의 역사와 환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갖가지 자료가 전시돼 있다. 이곳에선 한센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곁들일 수 있다.

소록도 중앙공원은 아름답다. 마치 ‘천국의 정원’처럼 잘 가꾸어져 있다. 히말라야삼목·동백·팔손이나무·치자나무 등 남국의 풍광을 물씬 풍기는 나무들은 물론이요, 황금편백·실편백나무 그리고 봄마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매화·진달래 등으로 육지의 이름난 공원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로 아름답다.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 쉽지 않은 이 정원은 한센병 환자들이 70여 년 전 처음으로 가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엔 환자들의 피 나는 고통이 묻어 있다.

소록도병원을 거쳐 간 여러 원장 중 최악은 바로 4대 원장이던 일본인 수호 마사토(周防正季) 원장이었다. 그는 1933년 부임해 1942년 피살되기까지 9년간 재임했는데, 이 기간은 소록도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다. 수호 원장이 발령받기 전까지만 해도 환자의 수는 700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수호 원장이 올 무렵 조선땅에서 발각된 한센병 환자는 모두 이곳으로 강제수용됐고, 마침내 환자는 5000~6000명으로 급증했다. 이들은 대부분 힘든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 (좌)소록도 감금실. 수호 원장 시절, 환자들은 이곳에 갇혀 일본인에게 모진 매질을 당하곤 했다. (우)환자가 목숨을 잃으면 시신을 해부하던 검시실. 이 단종대는 강제로 정관수술을 하던 곳이다.

이 중앙공원은 수호 원장 시절이던 1936년 12월부터 3년4개월 동안 조성됐다. 환자들은 일본인들에 의해 채찍질을 당하면서 노예처럼 일을 했다.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돌을 나르고 다듬었다. 일을 하다가 손가락 마디가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걷기도 어려운 몸으로 노동에 시달렸다. 조국도 빼앗기고, 인권도 없는 이들은 멸시와 냉대 속에 그렇게 고통받으며 살아갔다. 수호 원장은 이토록 지독한 인권유린으로 이루어진 공원 중심에 자신의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매달 20일을 자신에 대한 ‘보은감사일’로 정해 환자들을 동상 앞에 모아 놓고 절을 시켰다.

공원 입구 오른쪽엔 감금실과 검시실이 있었다. 수호 원장 시절 섬을 탈출하다 붙잡히거나 절도 등 범죄를 저지르다 걸린 환자들은 일본인들에게 심하게 매질을 당한 뒤 이곳에 감금됐다. 많이 죽었다. 힘들어서 죽고, 배고파서 죽고, 맞아서 죽고, 도망가다 바다에 빠져 죽고…. 수많은 환자가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렇게 죽은 게 끝이 아니었다.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는 일생에 세 번 죽는다고 했다. 한센병에 걸려 세상과 격리되니 첫 번째 죽음이요, 죽으면 실험용으로 해부를 당하니 두 번째 죽음이요, 해부가 끝나면 화장을 시키니 바로 마지막 죽음이다. 이들의 주검을 해부하던 검시실엔 모든 해부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병이 다 나아 출감하면 예외 없이 검시실에서 강제로 단종수술(정관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지금 검시실엔 25세 젊은 나이에 수호 원장의 명을 거역한 벌로 감금실에 갇혀 있다 풀려나면서 강제로 수술을 받은 환자의 애절한 시가 남아 있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 (위)한센병 환자인 한하운 시인의 시 ‘보리피리’를 새겨놓은 시비. 이 바위는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라고도 불린다. (아래)소록도 중앙공원 중심에 있는 구라탑. 수호 원장은 자신의 동상이 세워진 이 자리에서 환자의 칼을 맞고 죽었다.

이처럼 원생들은 낙원의 건설을 위해 계속 되는 부역에 노예처럼 끌려 나가야 했다. 결국 섬을 탈출하는 사람마저 생기게 되었다. 그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낙원에서 목숨을 걸고 도망치는 모순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착취를 일삼던 수호 원장은 결국 죽임을 당했다. 1942년 6월 20일 아침, 한센병 환자 이춘상은 ‘보은감사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연단으로 향하던 수호 원장의 오른쪽 가슴을 칼로 찔렀다. 원장은 숨졌고, 이춘상은 이듬해 일본인들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원장 동상은 태평양전쟁 물자로 징발되면서 사라졌다. 민족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춘상 사건’은 단순 살인이 아니라 강제노역과 우상화를 강요한 일본인 총독부 관리를 응징한 항일운동의 한 부분이다.

스테디셀러인 이청준(李淸俊·1939~2008)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의 수호 원장 이야기와 해방 뒤 새로 부임한 원장이, 커다란 꿈을 품고 시작했으나 외부의 편견으로 멈출 수밖에 없었던 오마도 간척공사 과정, 그리고 후일담을 쓴 것이다. 고흥으로 떠나기 전, 아니 소록대교를 건너기 전 책꽂이에서 먼지 묻은 책 <당신들의 천국>을 꺼내들고 한 번쯤 읽고 가야 할 이유다.

수호 원장의 동상이 있던 자리엔 구라탑(救癩塔)이 들어서 있다. 한자를 풀이하면 ‘나병으로부터 구한다’는 뜻을 지닌 탑이다. 하단에 ‘한센병은 낫는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이 탑은 1963년 국제워크캠프 대학생 133명이 오마도 간척공사 근로봉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미카엘 천사장이 악마인 한센균을 창으로 박멸하는 모습이다.

공원 언덕엔 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韓何雲·1920~1975) 시인의 ‘보리피리’ 시비도 보인다. 거기엔 슬픈 봄에 천형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시가 새겨져 있다.

‘보리피리 불며 / 봄 언덕 / 고향 그리워 / 피ㄹ 늴리리 // 보리피리 불며 / 꽃 청산 / 어린 때 그리워 / 피ㄹ 늴리리 // 보리피리 불며 / 인환의 거리 / 인간이 그리워 / 피ㄹ 늴리리 // 보리피리 불며 /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 눈물의 언덕을 지나 / 피ㄹ 닐리리’

그런데 시비가 세워진 게 아니라 누워 있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이 바위의 다른 이름은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다. 예전 환자들이 공원을 조성하면서 완도에서 바위와 돌을 운반해왔는데, 당시 일본인들의 채찍이 얼마나 모질던지 목도를 메면 허리가 부러져 죽고 목도를 놓으면 맞아서 죽었다고 하여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서 있지 못하고 누워 있는 ‘보리피리’ 시비.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좌절과 절망을 씹으며 시를 읊던 시인의 고통이 아로새겨진 듯하다. 물론 이곳엔 또 일본인이면서 조선 환자들을 가족처럼 아껴주며 헌신적으로 보살핌으로써 ‘소록도의 슈바이처’라 일컬어지는 하나이 젠키치(花井善吉) 원장의 창덕비 등도 남아 있다. 국립소록도병원 061-840-0500·0506, 도양읍사무소 소록출장소 061-830-5617

숙식>>  소록도엔 편의시설이 없다. 숙박이 금지돼 있고, 식당도 없다. 오후 6시 이전에 육지에서 나와야 한다. 소록도 입구이기도 한 녹동항은 숙식할 곳이 아주 많다. 고흥 전체에서 가장 숙식이 수월한 곳이기도 하다. 라바모텔(061-842-6300), 삼미모텔(061-844-8686), 호텔썬비치(061-844-7661), 로얄장(061-842-3825), 미도장(061-842-2795), 호수장여관( 061-844-2633), 로얄장(061-842-3826) 등 숙박업소가 가장 많다. 녹동신항에 호수장여관(061-844-2633), 스카이모텔(061-843-0014) 등이 있다.

식당도 많다. 미래식당(061-842-3844), 가람정(061-842-5050)은 복탕 전문집이다. 1인 1만5,000원. 대진횟집(061-842-0003), 어촌회관(061-842-2628) 등에선 싱싱한 생선회를 맛볼 수 있다. 생선회 4인 기준 5만~8만 원.

 

에필로그
득량만을 붉게 물들이는 중산 일몰

▲ 1 고흥의 대표적인 일몰 명소로 꼽히는 남양 일몰.<사진 고흥군청> 2 남양 일몰 전망대엔 넓은 주차장과 팔각정자가 있다. 3 고흥종합문화회관 한쪽에 마련된 천경자전시관. ‘꽃과 여인’으로 잘 알려진 천경자 화백의 고향은 고흥이다.

소록도를 보고 나왔다면 이제 고흥 여행은 얼추 마무리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일정은 남은 시간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 77번 국도를 곧장 따르면 고흥의 특산물인 유자를 주제로 꾸며놓은 유자공원을 지난다. 공원 한쪽엔 특산품 전시판매장도 있다. 유자주스, 유자청 등 유자 가공식품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고흥 읍내엔 ‘꽃과 여인’으로 잘 알려진 천경자 화백의 전시관이 있다. ‘목화밭에서’ ‘꽃다발을 안은 여인’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등의 작품에선 원죄의 굴레와 여인의 한(恨)을 읽을 수 있다. 천 화백은 1998년 이후 현재까지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이 아담한 전시관은 천화백이 고흥 출신이란 인연으로 2007년 조성했다. ‘탱고가 흐르는 황혼’ ‘윤사월’ ‘꽃과 여인’ 등 판화 11점과 드로잉 55점이 전시돼 있다. 관람시각 09:00~18:00. 매주 월요일 및 국경일 휴무. 전시관 061-830-5520

한편 고흥만 방조제 드라이브를 하려면 27번 국도상 도덕면소재지에서 좌회전해야 한다. 엇비슷한 반농반어의 마을들을 지나면 이윽고 고흥만 방조제가 길게 펼쳐진다. 고흥군 도덕면 용동리에서 두원면 풍류리까지의 득량만 바닷길을 막아 축조한 이 방조제는 1998년에 준공됐다. 길이는 2,873m에 이른다. 간척지 내부에 경비행장과 항공센터가 건설 중이다. 학꽁치가 많이 잡히는 봄철엔 낚시꾼들이 많이 모여든다.

소록도를 나와 고흥만 방조제든 고흥 읍내든 어디를 들렀다 해도 고흥을 벗어나려면 고흥반도의 목줄기에 해당하는 남양면을 반드시 다시 지나게 된다. 귀갓길은 아무래도 저녁 무렵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고흥군이 고흥팔경의 하나로 자랑하는 ‘중산 일몰’을 감상하며 머나먼 천리 길 여정을 마무리해보자. 우도 등 자그마한 섬들이 떠 있는 득량만 너머로 번지는 붉은 노을이 아름답다. 3월의 고흥 지역 일몰 시각은 오후 6시30분에서 6시50분 무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