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들과 인간의 싸움 중국판 해리포터, 평요전(平妖傳)
▲ 일러스트 이철원 |
중국 첫 판타지 소설… 나관중 작품
‘평요전’의 작가는 ‘삼국연의’로 유명한 나관중(羅貫中)이며 처음에는 20회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300여년 뒤인 명 말에 이르러서 ‘삼언(三言)’ 등으로 유명한 풍몽룡(馮夢龍)이 이 책을 구입하여 민간의 요괴 이야기를 추가하는 등 증보 개정하면서 40회본의 ‘신(新)평요전’이 생겨났고, 그 후로는 주로 40회본이 유행하게 되었다. ‘삼언’에 대해서는 앞서 다룬 바 있다. 현재 알려진 것으로는 명 태창(泰昌) 원년(1620) 판본과 명 숭정(崇禎) 연간(1628~1644)의 금창가회당(金?嘉會堂) 판본이 있다.
한 여우 요괴가 도에 뜻을 두고 요술을 연마하였다. 그에게는 미색을 밝히는 아들 호출아(胡黜兒)와 천성이 음탕한 딸 호미아(胡媚兒)가 있었다. 호출아는 민간의 부녀자를 희롱하다가 칼에 왼쪽 다리를 찔려 목숨이 위태했지만 신의(神醫)의 치료를 받고 살아난다. 그러나 다리를 절게 되어 왼발 절름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여우 요괴는 도술을 완성하기 위해 아들딸과 함께 길을 떠나지만 아들 때문에 여의치 않자 설산(雪山)의 한 도관에 아들을 맡기고 떠난다. 어느 날 여우 요괴는 꿈에 무측천(武則天)의 계시를 받는다. 그리고 딸 호미아는 무측천의 연인이었던 장창종(張昌宗)의 현신이며 자신은 패주(貝州)의 왕씨(王氏) 집에 왕칙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음을 밝힌다. 꿈에서 깨자 딸은 사라지고 없었다. 여우 요괴는 무측천의 계시대로 양춘(楊春)의 집에서 성고고(聖姑姑)란 이름으로 3년을 지낸다.
한편 30여년을 수행하던 처녀가 거위를 보고 잉태하여 알을 낳으니 그가 태어나 단자화상(蛋子和尙)이 되었다. 백운동(白雲洞)에 비법이 담긴 천서가 있음을 듣고 3년간 연마하였지만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없자 성고고에게 책을 보여준다.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성고고는 아들 호출아를 데려와 단자화상과 함께 천서에 담긴 비법을 연마한다.
한편 호미아는 바람에 날려가던 중 비몽사몽간에 하늘의 계시를 받고 마침 도술 실력이 출중한 충소처사(?宵處士) 장란(張鸞)에게 떨어진다. 장란은 호미아의 미모를 보고 궁녀로 판단하여 잘 보살핀다. 때마침 궁녀 선발의 명을 받은 뇌태감(雷太監)이 호미아의 미모에 반하여 강제로 아내로 삼는다. 그러나 호미아는 요술을 부려 뇌태감의 접근을 막는다. 어느 날 밤, 호미아는 궁전을 돌아다니다가 잠든 황제를 발견한다. 음심이 동한 호미아가 황제의 옷을 벗기려 하자 황제를 지키던 천신(天神)이 그녀를 공격하여 여우 요괴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황제는 원래 적각대선(赤脚大仙)의 현신이었다. 호미아는 염라대왕에게 애원하여 다시 호원외(胡員外) 집의 딸인 영아(永兒)로 태어나 미인으로 성장한다.
한편 성고고는 천서에 기록된 73개의 도술을 완전히 익히고 때가 되면 패주에서 만나 난을 일으킬 것을 기약하면서 단자화상과 아들 호출아와 헤어진다. 성고고는 장란의 명망을 듣고 찾아갔다가 딸의 소식을 접한다. 성고고는 딸에게 도술을 가르쳐 주기 위해 일부러 호원외의 집을 빈한하게 만든 다음 딸에게 쌀과 돈을 만드는 도술을 터득하게 만든다. 호원외는 딸이 점차 요술에 빠져드는 것이 두려워 몇 차례 해치려 했지만 실패하자 그녀를 바보에게 시집보낸다. 그러나 영아는 그 집에서 빠져나와 성고고와 함께 길을 떠난다. 이렇게 해서 성고고, 단자화상, 왼발 절름발이 호출아, 장란, 영아는 함께 다니며 도술을 연마하면서 각종 요술을 부린다.
송대 ‘왕칙(王則)의 난’이 소재
그즈음 패주에는 패악하지만 인의를 갖춘 왕칙(王則)이 인근 지역을 활보하고 있었다. 왕칙은 행동이 거칠고 음탕했지만 돈이 있으면 베풀고 돈이 없을 때에도 절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성고고는 영아를 패주로 보내 초를 파는 척하면서 왕칙에게 접근시킨 다음 왕칙과 반란을 모의한다. 그리고 왕칙과 영아를 혼인시킨다. 이로써 무측천과 장창종은 결국 부부로 맺어지게 된다. 패주의 책임자인 지주(知州)는 지독한 탐관오리라 6000명의 군인들에게 3개월 동안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백성들을 함부로 해치는 등 원성이 자자하였다. 호출아와 장란과 단자화상은 자신들이 마련한 자금을 왕칙에게 주어 군심을 얻게 하고, 악명 높은 지주를 제거한 뒤 왕칙을 새로운 지주로 삼았다. 왕칙은 성고고 무리의 도움을 받아 점차 세력을 키워 조정을 놀라게 하였다. 조정에서는 급히 군대를 보내 왕칙의 무리를 진압하려 했지만 각종 도술의 도움을 받는 왕칙의 군대를 물리칠 수 없었다.
조정에서는 포청천(包靑天)에게 왕칙의 난리를 수습하라는 중책을 맡긴다. 포청천은 문연박(文延博) 장군으로 하여금 10만 대군을 이끌고 출전하게 한다. 또한 여자를 밝히는 왕칙을 위해 사방에서 미녀를 소집한다. 한편 호출아와 호영아는 본성을 드러내 사방으로 민가의 여성과 남성을 위협하고 다닌다. 단자화상은 난리 이후 왕칙의 곁을 떠났고, 장란도 무리를 떠나 산수를 유람하다가 마침내 득도하여 신선이 되었다. 백운선군(白雲仙君)은 천서를 잃어버리고 이 일이 화(禍)를 불러올까 두려워 구천현녀(九天玄女)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래서 단자화상에게 요술에 대항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치고 조요경(照妖鏡)을 내주어 문연박을 돕게 한다. 결국 조정은 반란군을 진압하고 왕칙을 죽음으로 다스린다. 호출아와 영아는 뇌신(雷神)에게 죽임을 당하고, 단자화상은 득도하여 신선이 되었으며, 성고고는 포로가 되어 백운선군에게 넘겨져 백운동 안에서 천서를 지키는 일을 맡게 된다. 이때부터 그들은 세상과 격리되어 각자의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평요전’은 왕칙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인간과 요괴의 싸움이라는 비현실 세계를 다루고 있다. 역사에서는 왕칙이 두 달 남짓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소설에서는 5년6개월을 다스린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작품 속의 인물과 사건은 대부분 허구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통해 원대와 명대의 풍속과 인정을 반영하고 있다. 현대의 유명한 중국학자 첸종수(錢鍾書)는 ‘평요전’을 명대 최고의 소설로 평가하였다.
중국 장편 애니 ‘천서기담’ 낳기도
1983년에는 이 ‘평요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중국의 3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인 ‘천서기담(天書奇譚)’이 만들어졌다. 천궁에 있는 원공(袁公)이 천서를 세상에 전달하고 단생(蛋生)에게 도술을 전수하여 백성들을 이롭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천궁의 ‘비서각(秘書閣)’ 집사인 원공은 옥황상제가 연회에 간 틈을 타서 석문을 열고 천서를 빼돌려 운몽산(雲夢山) 백운동(白雲洞) 석벽 위에 내용을 새겨 넣는다. 원공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평생토록 석벽을 지키는 벌을 받는다. 어느 날 원공은 단생을 만나 천서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향로를 피워 주위에 연막을 친 다음 단생에게 백지로 석벽의 내용을 탁본하도록 시킨다. 단생은 원공의 분부대로 내용을 탁본한다. 원공은 단생에게 내용을 열심히 연마하여 백성들을 도울 것을 당부한다. 이에 단생은 원공의 부탁을 그대로 실천한다. 여우 요괴는 단생이 자신을 방해하자 천서를 훔칠 음모를 꾸미고 관청과 결탁하여 백성을 괴롭힌다. 단생은 천서를 지키기 위해 여우 요괴와 여러 차례 싸움을 벌인다. 둘이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원공이 나타나 천서를 거두고 품에서 흰색 석경(石鏡)을 꺼내 여우 요괴를 비췄고, 여우 요괴는 결국 운몽산 아래에서 죽게 된다. 원공은 하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리라 예상하고 천서를 단생에게 건넨 뒤 내용을 모두 암기토록 시킨다. 그 후 원공은 천서를 불태워 없애고 하늘로 불려가 벌을 받는다.
이처럼 ‘천서기담’은 고전에 기반하여 희극적 색채가 충만하고 전개가 빠르며 오락적 요소가 다분하다. 그래서 디즈니와 일본의 애니메이션과는 구별되는 색다른 느낌을 전해 준다.
한편 타이완(臺灣)의 게임업체인 즈관(智冠)에서는 ‘평요전’을 바탕으로 RPG (Roll Playing Game)를 만들어 시판함으로써 게이머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스토리 모드와 전투 모드가 있으며 다른 게임과 달리 레벨 업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7종의 종족 중 하나를 선택하여 단독 또는 합동으로 다른 종족과 대전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도세자가 남긴 화첩에도 언급
‘평요전’은 당시 조선에도 소개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자료가 얼마 전 공개되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즉 사도세자의 최후 친필로 확인된 화첩 ‘중국역사회모본(中國歷史繪模本)’ 속에 ‘평요전’에 대한 언급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최후 친필이 기록된 날짜는 1762년 윤5월 9일로 사도세자의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에 따르면 사도세자가 왕과의 갈등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다소 한가로운 글을 쓴 것은 불안한 정신 상태에서 다소나마 위안을 찾으려 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평가하였다. 사도세자는 화첩 서문에 서유기, 평요전, 수호지 내용을 소개한 뒤 “한 고조가 발에 화살을 맞는 것과 송강(宋强)의 충의와 백아(伯牙)가 지기를 알아보는 것은 오랫동안 귀감이 될 만하고 위공(衛公)이 학을 좋아하다 나라를 망치고 항적(項羽·항우)이 오강에서 스스로 목을 베고, ‘평요전’의 미아(媚兒)가 요괴로 변하고 팔계가 술을 좋아하고 색을 밝히는 것은 100년 뒤라도 경계할 만하다.… 이 한 권에 여러 시대가 다 있으니 봄날과 겨울밤, 병과 외로움을 치료하고 소일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썼다. 극도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평요전’과 같은 신마소설을 읽으며 마음을 달랬을 사도세자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 하겠다.
이처럼 ‘평요전’은 조선 후기에 이 땅에서도 널리 읽혔고, 근현대까지 전해졌다. 1953년에는 중국탐정소설로 소개되어 손창섭 번역으로 국내에 출간되기도 하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주요 출판사의 소년소녀 세계명작 시리즈에 ‘평요전’이 빠지지 않고 실릴 정도였다. 그만큼 환상문학과 판타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었으나 근래 들어 서구의 판타지 소설들이 속속 소개되면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점차 외면당하고 있다. 독자들의 균형 잡힌 책읽기도 필요하겠지만 출판사들도 잊혀 가는 작품들을 되살리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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