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로호-화천 양구 -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안보·생태관광 특구
- | 파로호 | 평화의 댐 | 양구선사유적 | 한반도섬 | 박수근미술관 | 국토 정중앙점 | 두타연 트레킹 | 해안분지 |
조국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염원하게 되는 6월. 파로호에 일렁이는 물결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용사의 넋인 듯, 그때 당신들이 입었던 그 군복처럼 초록의 물결이 온 산하를 뒤덮은 6월. 파로호 품고 있는 화천·양구의 산하를 거닐다 보면 조국의 평화통일을 소망하게 되리니.
북한강 상류의 호수인 파로호 여행이라 하더라도 결국 화천과 양구의 명소 답사가 여행의 중심이 된다. 그리고 이 명소들은 대부분 유명한 안보·생태관광지로 꼽힌다.
파로호 일대를 둘러보는 데는 1박2일 정도면 적당하다. 그렇지만 첫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서지 않는다면 의외로 일정이 빠듯해 꼼꼼하게 살펴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아예 일정을 2박3일로 넉넉하게 잡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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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에서 열목어가 가장 많이 서식하는 두타연. 비무장지대 안쪽에 있어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야 탐방할 수 있다.
- 첫날 아침 일찍 출발했다면 현재 동홍천까지 개통된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해 춘천으로 나오는 게 낫다. 그 다음 파로호를 구경하면서 일대를 둘러본다. 안보전시관과 그 앞 호숫가에 있는 시조시인 이태극의 시비도 둘러보자. 또한 승용차로 20여 분 거리의 동촌리에 있는 태극문학관에도 들렀다 가자.
이어 460번 지방도를 타고 평화의 댐으로 간다. 길은 굴곡이 매우 심하다. 초보운전자는 조심하자. 해산전망대는 호수 조망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잠시 쉬었다 가기 좋다.
평화의 댐에 도착하면 자연스레 댐 위쪽부터 둘러보게 된다. 먼저 세계 평화의 종과 비목공원 등을 살펴보고, 댐 아래쪽으로 이동해 종공원 등을 둘러본다. 이런저런 구경을 하는 데 넉넉잡아 1~2시간 정도 걸린다.
평화의 댐을 벗어나면 길은 양구로 이어진다. 방산면의 방산자기박물관, 호숫가 상무룡리의 선사유적지 등이 옷깃을 붙든다. 방산자기박물관에서 460번 지방도를 따라 20여 분 달리면 두타연이지만, 개인적으론 출입이 불가능하다. 최소 2일 전에 양구군청을 통해 신청한 뒤 양구읍내 양구명품관에서 군청 소속의 인솔자를 따라가야 한다.
- 양구읍엔 들를 곳이 많다. 여정에 알맞은 동선을 따라 한반도섬·박수근미술관·국토중앙지점 등을 찾아볼 수 있지만 첫날 일정이 넉넉지 않다면 문 닫는 시간이 정해진 박수근미술관부터 들르는 게 좋다. 국토중앙지점은 오후 늦게 찾아가서 살펴보고, 해가 진 뒤 그 앞에 있는 천문대에서 별자리를 관찰하면 된다.
이튿날 두타연으로 가기 위해선 아침 9시까지 양구명품관 앞에 모여야 한다. 여기에서 9시30분에 출발해 이목정 초소의 검문을 거쳐 10시쯤 두타연 주차장에 닿는다. 두타연에선 12시까지 2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있다.
이어 460번 지방도~31번 국도~453번 지방도를 타고 펀치볼이라 불리는 해안분지로 간다. 을지전망대 출입신청 시각은 오후 4시까지다. 두타연과 마찬가지로 늦으면 출입이 불가능하므로 꼭 시간을 맞춰야 한다. 을지전망대와 제4땅굴 등을 둘러보는 데 2시간 정도 걸린다.
해안분지를 벗어날 땐 들어올 때 통과했던 돌산령터널보다 돌산령 옛 고갯길을 지나며 도솔산전적비도 살펴보자. 이어 산양증식복원센터, 팔랑리 곰취마을의 팔랑민속관, 생태식물원, 후곡약수 등을 둘러보며 귀갓길에 오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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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로워 보이는 파로호 풍경. 그렇지만 6·25전쟁 당시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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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이 땅 어느 곳인들 이념 갈등의 흔적이 없으랴만, 특히 남한의 최북단 인공호수인 파로호는 ‘화천호’라는 본명조차 바꿨을 정도로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그리고 진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그리하여 파로호를 껴안고 있는 화천·양구 접경지역은 요즘도 팽팽한 긴장이 감돈다.
올 듯 말 듯 애태우던 봄이 성미 급하게 훌쩍 지나가고 여름이 오는 길목. 이 계절에 파로호로 발길이 끌린 이유는, 요즘 천안함 때문에 남북 관계가 위태롭지만 결국은 동족상잔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적으로 이뤄야 할 남북통일을 간절히 기원하기 위해서다.
파로호
피가 튀고 뼈가 으스러지던 전투의 현장
현재 동홍천까지 뚫려 있는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가장 빠르다. 이어 춘천나들목으로 나와 곧장 46번 국도를 타고 배후령을 넘은 뒤 461번 지방도를 연결해 간동면을 거치면 파로호에 닿는다. 구만리 선착장 근처엔 파로호 안보전시관이 있다.
파로호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남북 분단과 밀접한 호수로 각인돼 있다. 이 땅에서 이 파로호만큼 온몸으로 남북 분단의 상흔을 껴안고 있는 호수도 드물 것이다. 호숫가에 서면 그 때의 아우성이 바람결에 들려온다.
1951년 5월, 국군은 중공군 제10연대, 제25연대, 제27연대와 해병 1연대를 화천저수지(파로호의 옛 이름)에 수장시켰다. ‘파로호전투’라 불리는 이 전투가 끝난 뒤 호수 일대는 중공군 시체로 뒤덮여 국군이 불도저로 시체를 밀어내면서 전진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와서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라 명명하고, 친필 휘호까지 썼다. 이름의 유래조차 전장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은 아무래도 파로호의 운명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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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파로호전투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운 파로호 전적비. / 2 파로호 구만리 선착장. 유람 카페리 ‘물빛누리호’를 타면 차량으로 평화의 댐까지 갈 수 있다. / 3 중공군을 무찌른 파로호전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파로호 안보전시관.
- 파로호 주변은 안보전시관(033-440-2563)에 주차를 하고 둘러보는 게 좋다. 전시관 바깥에는 8인치 견인포·지휘용 장갑차 등 전투장비가 전시돼 있고, 안쪽에는 파로호 전투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는 기록물 등이 보인다. 전시관에서 길을 건너면 당시 조국을 위해 산화한 군인 장병들을 기리는 전적기념탑이 반긴다. 여기엔 장병들이 남겼다는 마지막 말이 새겨져 있다. “길손이여, 자유민에게 전해 다오. 우리는 겨레의 명령에 복종하여 이곳에 누웠노라고.”
부드러운 분위기 전해주는 ‘월하 시조비’
지금도 여전히 전운(戰雲)이 남아 있는 것 같던 호수의 분위기를 바꿔주는 것은 ‘월하시조비’다. 고갯마루에 우뚝 선 전적기념탑 왼쪽으로 나 있는 호숫길을 따라 50m쯤 들어가면 시조비가 보인다. 우리나라 시조계의 거목인 월하(月河) 이태극(李泰極·1913~2003) 시조시인은 화천 동촌리 태생이다. 월하는 1960년 조종현과 함께 시조 전문지 <시조문학>을 창간함으로써 한국 시조가 일대 중흥을 이루는 계기가 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작가다. 작품으로는 ‘서해상의 낙조’ ‘삼월은’ ‘산딸기’ ‘교차로’ 등이 있다. 이 시조비엔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정갈한 문체로 노래한 ‘산딸기’란 시조가 새겨져 있다.
- ‘골짝 바위 서리에 빨가장이 여문 딸기 / 가마귀 먹게 두고 산이 좋아 사는 것을 / 아이들 종종쳐 뛰며 숲을 헤쳐 덤비네 // 삼동(三冬)을 견뎌 넘고 삼춘(三春)을 숨어 살아 / 되약볕 이 산 허리 외롬 품고 자란 딸기 / 알알이 부푼 정열이사 마냥 누려 지이다.’
이제 곧 여름이 되면 비무장지대 철책 옆에도 산딸기가 열려 초병들의 헛헛한 입안에 침을 돌게 하겠지. 전쟁 때 격전지였다는 살벌함이 이 시조 한 수로 많이 부드러워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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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4년 화천댐을 만들면서 준공한 화천수력발전소. 등록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됐다. (왼쪽) / 파로호 호숫가에 세워진 이태극 시조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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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근 시조시인의 고향인 동촌리에 태극문학관(033-440-2228, www.itaegeuk.com)이 문을 열었다. 그간 달랑 시조비 하나만 보고 스쳐가야 했던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게 됐다. 시조비가 있는 안보전시관 앞에서 승용차로 20분쯤 걸려 도착한 태극문학관에선 월하의 작품 세계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 내친 김에 월하문학관에서 추천하는 시조 한 번 들어보자. 지난 봄의 추억이 아랑아롱 솟아날 테니.
‘아롱아롱 뻗어난 꿈 / 금잔디에 얹어 두고 / 아스라 하늘 저편 / 연처럼 띄우는 정 / 하고한 세월을 비껴 / 불러보는 이 봄아 // 고사리 손 여린 줄기 / 망울망울 터지는 소리 / 아플사 보듬어서 / 보조개 짓는 모습 / 헝클은 길손의 가슴에도 / 푸른 빛이 고이네’
-시조시인 이태극의 ‘이 봄아’
숙식>> 파로호 전시관 부근의 구만리선착장(033-442-3127)엔 호수횟집(033-442-3232), 뱃터횟집(033-442-2236), 서울횟집(033-442-5016), 파로호횟집(033-442-3123), 강변횟집(033-442-5007) 등 민물고기 전문식당이 있다. 잡고기·메기매운탕 소(2~3인분) 3만 원, 중(3~4인분) 4만 원, 대(4만~5만 원). 쏘가리회(1kg) 10만 원.
화천댐 하류의 구만교 부근에도 대붕회가든(033-442-5706), 평화가든(033-442-2660), 화천댐가든(033-442-6850), 비목쉼터(033-442-0322) 등 민물고기 전문횟집이 많다. 언덕위에 하얀집(033-442-0024), 어룡동민박(033-442-4409) 등의 숙박시설도 있다.
파로호 선착장에서 읍내 방향으로 4km 정도 떨어진 화천읍 대이리 평양막국수(033-442-1112)의 초계탕은 화천의 여름 별미. 2인분(기본) 2만5,000원, 3~4인분 3만8,000원, 닭무침 1접시(3~4인분) 1만5,000원, 막국수 1인분 5,000원.
평화의 댐
코흘리개 아이들도 평화통일 기원하는 명소
월하의 시조 덕분에 분위기가 제법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이도 잠시뿐. 다시 길손은 우리 민족이 겪어온 고통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파로호 상류, 즉 북한강 본류를 거슬러 올라가다 해산터널을 지나서 만난 평화의 댐. 북한강 수계 최상류 댐인 화천댐보다 위쪽에 위치한 이 평화의 댐은 1986년 북한이 착공한 금강산댐(임남댐)이 유사시 수공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89년 건립된 댐이다.
북한의 수공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에 빠져 온 국민이 뜻을 담아 성금을 모았으나 이 댐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당시 집권층이 북한의 수공을 정략적으로 과장해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큰 홍수가 났을 때 이 댐이 수량 조절 기능을 하면서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평화의 댐이 ‘남북 분단의 비극적 상황에서 탄생한 희극적 냉전 구조물’인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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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세계 분쟁 지역의 탄피를 녹여 만든 ‘세계 평화의 종’. 남북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왼쪽) / 북한의 수공에 대응하기 위해 1989년에 건립한 평화의 댐. (오른쪽)
- 댐을 짓게 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와 자그마한 비목공원 외엔 볼거리가 마땅치 않던 평화의 댐 주변에 얼마 전 의미 있는 일이 생겼다. 댐 위쪽에 ‘세계 평화의 종’이 건립된 것이다. 무게는 1만관(37.5t), 폭 3m, 높이 5m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가장 큰 범종이라고 한다. 범종 장인인 중요무형문화재 112호 원광식씨가 1년 넘게 걸려 제작한 이 범종은 장인의 솜씨답게 종소리가 깊고 웅혼해 멀리 북한 쪽에서도 들린다고.
무엇보다 이 범종은 여느 범종과 의미가 다르다. 우선 들어간 재료에서 차이가 난다. 그냥 구리가 아니고 6·25전쟁 당시 남·북한군, 유엔군, 중공군 등이 사용한 탄피를 DMZ 일원에서 수거해 사용했다. 또 중국·태국·필리핀·에티오피아·요르단·이스라엘 등 전 세계 분쟁지의 탄피도 기증받았다. 지구촌 분쟁 지역의 탄피들을 녹여 한반도 분단 극복을 염원하는 평화의 종을 만든 것이다.
이 때문일까? 종 꼭대기 부분의 장식인 용뉴엔 전통적인 용이 아니라,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4마리가 장식돼 있다. 이 중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비둘기의 한쪽 날개가 없다. 통일되는 그날 붙이기 위해 따로 떼어 종각 옆에 보관 중이다.
여기에서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우리나라 3대 애창곡으로 불리는 가곡 ‘비목(碑木)’의 발상지임을 알리는 비목공원이 보인다. 한명희 작사, 장일남 작곡의 ‘비목’이 바로 여기에서 탄생했다. 1963년 당시 이곳 수색중대 소대장이었던 육군 소위 한명희는 어느 날사병들과 백암산 비무장지대로 순찰을 돌다 양지바른 산모퉁이에서 돌무덤을 발견했다. 녹슨 철모, 카빈 소총 한 자루, 거기에 묘비처럼 꽂혀 있던 썩은 나무 등걸, 그리고 아픔을 잊고 피어난 새하얀 산목련(함박꽃). 소위 한명희는 6·25전쟁 때 산화한 용사의 넋을 달래기 위해 그 자리에서 시 한 편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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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목공원 언덕에 서 있는 비목. 이곳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곡 ‘비목’의 발상지다.(왼쪽) / 가곡 ‘비목’이 새겨져 있는 시비.(오른쪽)
-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댐 아래쪽엔 최근 평화와 상생을 바라는 뜻에서 건립한 ‘종공원’이 있다. 이곳엔 세계 30여 나라로부터 기증받은 60여 개의 종이 전시돼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투투 주교, 북아일랜드의 코리건, 달라이 라마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 12명이 보내온 메시지와 핸드프린팅해 각인한 명판도 눈길을 끈다. 그리고 평화의 종을 만들고 남은 탄피 20여t, 6·25전쟁 당시 사용한 무기, 어린이들이 쓴 평화의 편지 등도 전시됐다.
평화의 댐 구조물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마루엔 특이하게도 나무로 만든 종이 걸려 있다. 나무로 만들었으니 당연히 울리지 않는다. 남북 통일이 되면 쇠로 만들어 통일이 됐다는 기쁘고 즐거운 소리를 들려줄 계획이라고 한다. 문의 화천군청 관광정책과 033-440-2543
양구 선사유적지
호수에 잠들어 있던 선사 유물의 ‘보물창고’
평화의 댐에서 계속 460번 지방도를 따르면 길은 양구(楊口) 땅으로 이어진다. 양구는 어떤 고을일까? 먼저 산줄기로 짚어보자. 양구 북동쪽엔 백두대간의 매자봉(1,144m)에서 뻗어 내린 ‘도솔지맥’의 가칠봉(加七峰·1,242m)·대우산(大愚山·1,179m)·대암산(大巖山·1,304m)이 이어지고, 중앙부엔 지혜산(智惠山·1,024m)·봉화산(烽火山·875m), 서쪽엔 어은산(魚隱山·1,277m)·백석산(白石山·1,142m)·사명산(四明山·1,198m) 등을 연결하는 산줄기가 이어지는데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이 즐비한 험준한 산간지역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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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에서의 어려움을 상징하던 군생활의 이 넋두리는 인제·원통 지역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이 겪는 고생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 군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주눅이 들곤 했다. 그렇지만 인제·원통 병사들도 바로 이곳, 양구에 배치된 병사들이 나타나면 살짝 꼬리를 내렸다 한다.
지금은 양구가 오지 중의 오지라지만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양구는 한양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목이었다. 큰길이 지나갔으므로 강원 내륙의 산간지역이긴 해도 지금처럼 확고한 오지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쟁 때문에 남북 분단으로 접경지가 되면서 오지로 뒤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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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선사시대의 미소’로 불리는 가오작리 선돌. 양구선사박물관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2 파로호 선사유적지와 양구 일대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모아놓은 양구선사박물관. 3 양구선사박물관 외부에 전시돼 있는 고인돌. 양구는 ‘선사시대의 보물창고’라고 할 정도로 많은 선사 유물이 발견됐다.
- 다른 원인도 있다. 1943년 화천댐 건설로 북면 전체가 물속에 잠겼고, 1973년엔 소양강댐이 생기면서 소양강 주변의 널따란 농토도 잠겼다. 당연히 물줄기를 따라 이어져 있던 옛길도 함께 묻혀 버렸다. 결국 양구는 더더욱 먼 길이 됐다. 춘천에서 양구로 이어지는 46번 국도는 배후령·추곡령을 넘고 호수를 따라 굽이도는 아주 험난한 구절양장이 됐다. 그래서 양구란 지명이 구절양장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진짜처럼 들릴 정도다. 토목기술의 발달로 최근 추곡터널·웅진터널이 생기고 배후령터널 공사도 진행 중이라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다지만 아직도 양구는 멀게 느껴지는 곳임에 틀림없다.
파로호에 잠겨 있던 선사시대 유적들
파로호는 두 개의 물줄기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평화의 댐이 있는 북한강 상류, 다른 하나는 동쪽의 양구에서 흘러와 북한강과 합류하는 서천(西川) 줄기다. 북한강의 본류가 남북 분단의 상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물줄기라면, 지류인 서천은 선사유물의 ‘보물창고’다. 여기에선 구석기시대 유적이 15곳 발견됐고, 합수 지점 부근에서도 여러 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또 청동기시대의 고인돌도 40기쯤 찾아내면서 당시 고고학계를 흥분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파로호 선사유적지가 발견된 과정을 보면 아쉽다. 학술적인 절차로 차근차근 진행된 게 아니고, 1986년 평화의 댐을 건설하기 위해 하류의 파로호 물을 빼내려 화천댐 수문을 열자 호수 바닥에 잠겨 있던 유물들이 노출되면서 조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화천댐이 지어진 1942년 당시 일제는 수몰 대상지역에 분포돼 있는 문화유적에 대한 조사를 일절 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던 것이다. 일제가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멸시하고 천대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1986년 파로호의 물을 빼내자 수만 년 전의 선사시대는 물론이요, 댐이 생기기 직전인 1942년까지 이 강변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 모두 드러났다. 그건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파로호의 역사를 그린 소설 오정희의 <파로호>
파로호가 안고 있는 역사를 그린 문학작품으로는 오정희의 소설 <파로호>가 있다. 주인공 혜순이 향토사학자를 좇아 선사유적지를 돌아보며 발견하는 인간의 위선과 역사에 대한 몰이해, 실향민의 애타는 심정 등을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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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사시대 체험을 위해 복원해놓은 선사 주거지. (왼쪽) / 양구선사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향토사료관. 양구 지역의 전통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오른쪽)
- 낯선 미국으로 이민 갔던 혜순이 겪었던 심리적 갈등을 섬세하게 풀어가면서 파로호의 이승만 별장이 있던 언저리에서 벌어지는 선사유물발굴단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혜순은 유물발굴단이 발견한 여자 얼굴 모습의 돌에서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간절함을 보게 된다. 수만 년의 세월 뒤에 흙을 털고 일어난 여인의 눈을 통해 파로호를 본 것이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유물들 역시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양구선사박물관으로 터전을 옮겼다. 어떻게 보면 원래 자리를 떠나온 이 유물들 역시 원치 않는 실향민이 된 주민들의 신세와 다를 바가 없다. 이 유물들도 푸른 물 굽이쳐 흐르던 옛 강가의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을 터. 1986년 파로호의 물이 빠져나갔을 때 몰려와 자신들이 살던 집터를 애타게 찾아보던 실향민들처럼 말이다.
이런 유물들을 자산으로 해 개관한 양구선사박물관은 선사시대 양구의 흔적을 짚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엔 양구읍 상무룡리 구석기 유적과 고대리·공수리 고인돌 유적, 해안면 현리 청동기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와 토기 등에 이르기까지 양구 선사유적지에서 출토된 500여 점의 유물이 있다. 이 중에 무엇보다 꼭 찾아봐야 할 것이 있다. 아니 어쩌면 만나봐야 할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바로 ‘선사시대의 미소’를 보여주는 가오작리 선돌이 그것이다. 이 선돌은 사람처럼 생긴 돌의 얼굴 부분에 눈·코·입 등을 새겼는데, 웃는 듯하면서도 화난 것 같기도 하고, 또 장난스럽기도 한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선사시대의 표정을 만나는 일은 정말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원래 가오작리엔 이 선돌을 포함해 많은 고인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68년 유사시 적을 방어할 목적으로 탱크방어선을 구축하면서 주변의 고인돌들을 가져다 썼던 것이다. 나중에 강원대 조사팀이 이곳에서 덮개돌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고인돌 17기와 사람 닮은 선돌 1기를 발견하게 됐다. 이후 고인돌들은 가오작리 길가에 그대로 보존하고 있고, 선돌만 이곳 선사박물관 광장으로 옮겨 방문객들을 맞이하게 됐다.
입장료(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는 당분간 받지 않는다. 주차도 무료. 문의 033-480-2677
숙식>> 방산면 송현리 청수골(033-481-1094)은 민통선 깊은 산속에서 채취한 싱싱한 산나물을 이용한 산채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 산채비빔밥 6,000원, 토종닭 3만5,000원. 남면 가오작리의 광치막국수(033-481-4095)도 주민들이 많이 찾는다.
방산면 소재지인 송현리에 귀빈장여관(033-481-5348), 두타연펜션(033-481-5249), 사랑채펜션(019-322-3017), 그리고 오미리에 산골나그네펜션(033-481-3975), 강낭골집펜션(033-481-5442), 르씨엘펜션(033-482-6272), 산내음들내음펜션(033-481-6403), 웰컴투오미골펜션(033-481-1949) 등의 숙소가 있다.
방산자기박물관
양구 방산면 지역은 백자를 만드는 양질의 백토가 다량 매장돼 있어 고려시대부터 20세기까지 600년간 백자를 생산해온 곳이다. 방산 백토는 몸에 해로운 성분이 들어 있지 않고, 도자기의 백색도가 탁월해 조선왕실 백자 생산에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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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500년의 백자 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방산자기박물관. (왼쪽) / 방산자기박물관 외부에 조성해놓은 전통 가마. (오른쪽)
- 2006년 방산면 현리의 수입천 직연폭포 근처에 문을 연 방산자기박물관은 조선왕조 500년의 백자 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 전시실과 체험장, 소성실, 뮤지엄숍, 전통·현대식 가마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시실엔 양구의 방산 지역에서 제작·출토된 300여 점의 백자를 비롯해 도편 등 3185점이 전시돼 있다. 관람료는 일반 1,000원, 청소년 700원, 초등학생 500원. 관람 시각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문의 033-480-2664, www.bangsanm.or.kr
‘한반도섬’
파로호 상류 인공 습지에 조성한 인공섬
이른 새벽, 양구읍내 산책길에 나섰다. 양구는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산책코스를 제법 넉넉하게 가꿨다. 양구읍내를 적시고 흐르는 서천 주변에 조성해놓은 ‘양구 희망의 다리’는 주민들을 위한 산책로다. 또 서천이 흘러드는 파로호 최상류 지역의 인공습지에 흙을 돋워 ‘한반도섬(4만2,000㎡)’을 만들어놓았는데, 외지에서 온 탐방객들은 주로 이곳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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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반도섬 강원도 부분엔 강원도의 상징인 반달가슴곰 조형물이 있다. 2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한반도섬. 파로호 상류의 인공습지에 조성한 인공섬이다. 3 제주도에 조성돼 있는 돌하르방과 돌담은 제주도민들이 직접 보내준 현무암 실물이다.
- 양구선사박물관 앞에서 1km 정도 하류로 더 내려간 지점에 한반도섬 주차장이 갖춰져 있다. 이곳에서 나무다리를 건너 ‘한반도’로 들어서면 폭 2m, 길이 2㎞의 산책로가 바깥쪽으로 이어진다. 강원도 상징인 반달가슴곰 앞에서 출발해 한 바퀴 돌면서 평안도·함경도·전라도·경상도·충청도 등을 차례로 둘러볼 수 있다. 섬인 제주도와 울릉도·독도까지 만들어놓았으며, 백두산에서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과 한강과 낙동강 등도 꾸몄다.
제주도엔 돌하르방도 갖추고 돌담도 꾸며 놓았는데, 이는 제주도 현무암이다. 제주도민들이 뜻을 모아 제작해 보내온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다른 지방의 상징물들이 거의 갖춰지지 않아 부족한 점이 많다. 양구군에서는 지자체에 계속 협조를 요청 중이라는데, 각 지자체의 협조만 잘 이뤄진다면 이 한반도섬은 나름대로 우리 국토에 대한 이해를 키울 수 있는 명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섬 곳곳에 섬잣나무·주목·은행나무·산수유 등의 나무를 심어놓았으나 아쉽게도 아직 그늘이 많지 않아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엔 무리다. 따라서 챙이 넓은 모자나 양산을 준비해야 고생하지 않는다. 아니면 이른 새벽, 안개에 휩싸인 호수를 구경하며 걷는 것도 괜찮겠다. 보통 어른 걸음으로 30분, 넉넉하게 돌아본다 해도 1시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주차료, 입장료 모두 없다.
한반도섬 전경을 한눈에 담으려면 승용차를 이용해 호수 맞은편 언덕의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서천의 가장 하류에 걸린 하리교를 건너면 ‘한반도섬 전망대’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고, 우회전해 403번 지방도를 따라 2.5km 정도 달리면 한반도섬 전망대가 보인다.
박수근미술관
양구의 산하를 닮은 ‘국민화가’의 옛 고향
올해는 가장 한국적인 현대 화가로 평가받는 박수근(1914~1965) 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 45주기가 되는 해. 박수근 화백의 고향은 양구읍 정림리, 지금 박수근미술관 자리가 바로 생가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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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대표적인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 생가 터에 세운 박수근미술관. 박수근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박수근의 집안은 부친이 농사를 짓고 상업도 겸해 비교적 부유한 편이었다. 그러나 7세 때 부친이 광산 개발에 손을 댔다가 큰 손해를 보았고, 그해 여름 홍수가 들면서 농사도 망치게 되자 집안 형편은 급속히 기울었다. 양구보통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림 재주가 돋보였던 소년 박수근은 12세 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깊은 감명을 느껴 그런 화가가 되기 위해 기도했다. 이듬해 졸업했지만 중학교엔 진학할 수 없었다. 가난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수근은 포기하지 않고 독학으로 계속 습작을 했다.
당시 소년 박수근의 스케치 대상은 양구의 산천과 그 산골에서 만나는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소년은 날마다 가까운 산과 들로 다니며 스케치를 하고 수채화를 그렸다. 소년이 수도 없이 스케치했던 나무, 농가, 일하는 여인, 나물 캐는 소녀, 빨래터 등은 바로 양구의 옛 모습이다. 지금도 양구교육청 뒷동산엔 300년 수령의 느릅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소년 박수근이 보통학교 시절에 자주 스케치하던 나무라고 한다. 읍내 양구교육청 안쪽 주차장에서 ‘박수근 나무’ 이정표를 따라 계단을 50m 정도 오르면 오른쪽으로 두 그루의 나무가 보인다.
화강암처럼 거친 마티에르에 소박하게 표현한 그림
18세가 되던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이른 봄의 농가를 그린 수채화 ‘봄이 오다’가 입선하면서 박수근은 큰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었다. 설상가상으로 21세 때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부친이 금강산으로 들어가자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청년 박수근은 춘천·포천·서울 등지로 떠돌며 빈곤한 생활을 하면서도 작품에 대한 열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26세 때 춘천에서 결혼한 후 평안남도 도청 사회과의 서기로 취직하자 평양으로 떠나게 된다. 거기에서 8·15 광복을 맞았고, 6·25전쟁 때 남하했다. 1953년 지금의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던 미8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렸는데 수입이 제법 괜찮았다. 박수근은 이때 모은 35만 환으로 창신동에 조그마한 판잣집을 마련하고, 작은 마루를 작업실 삼아 창작에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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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박수근미술관 외부 풍경. 2 박수근미술관 뒷동산엔 박수근 묘소가 있다. 화가가 즐겨 그렸던 아이 업은 여인의 소박한 모습을 확대해 새긴 묘화비가 눈길을 끈다. 3 광치령 고갯길 근처에 자리한 광치자연휴양림.
- 이런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도 화폭에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표현하고자 일생을 바친 박수근. 우리 산하에 흔하디흔한 화강암처럼 거친 마티에르(질감)로 소박하게 표현한 박수근의 그림은 시공을 초월해 감동을 주었고, 그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서민적인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2002년 생가 터에 세운 박수근미술관에는 아쉽게도 박수근 화백의 유명 작품이 없다. 호당 1억을 훌쩍 넘는 고가의 유화를 예산이 한정된 지자체에서 구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나마 스케치 50여 점, 수채화·판화 10여 점, 그리고 박수근이 자녀를 위해 직접 글을 쓰고 그린 동화책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비롯해 생전에 사용하던 안경·연적, 편지와 도서 등 작가의 손길이 담겨 있는 유품 200여 점을 감상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미술관 뒷동산에 있는 박수근 화백과 부인의 합장묘도 들러 보자. 붉은 철쭉이 안내하는 예쁜 산길을 3분쯤 오르면 아담한 묘가 나타난다. 원래 경기도 포천 동신교회 묘지에 있던 묘를 2004년 이곳으로 이장했다. 묘지에 세워진 묘화비(墓畵碑)는 박수근이 즐겨 그렸던 아이 업은 여인네의 소박한 모습을 확대해 새긴 것이다.
미술관 관람시각 09:00~18:00(매표는 17:00),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주차는 무료. 문의 033-480-2655, www.parksookeun.or.kr
숙식>> 양구와 원통을 잇는 31번 국도의 광치령 고갯길에 있는 광치자연휴양림은 숲속의 휴양 공간이다. 산림문화휴양관(8평형) 성수기·주말·휴일 5만 원/비수기·평일 4만 원, 숲속의집(10평형) 7만 원/5만 원. 주차료 3,000원/2,000원. 야영데크 4,000원/3,000원. 입장료 2,000원. 문의 033-482-3115, www.kwangchi.or.kr
KCP호텔(033-482-7700)은 양구읍 서천변에 자리 잡고 있는 1급 호텔. 터미널 옆엔 센츄럴모텔(033-481-2121), 명지모텔(033-481-2953) 등 숙소가 많다. 읍내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의 고대리에 있는 스타펜션(033-482-6004)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학조리의 ‘양구재래식 손두부(033-482-4475)’는 양구군이 자랑하는 맛집. 양구산에서 나는 콩만을 고집해 장작불로 직접 순두부를 만들어낸다. 순두부·모두부·들기름두부구이 5,000원. 두부전골 6,000원, 청국장 5,000원.
양구읍 상리 풀향기(033-481-6669)는 싱싱한 나물로 맛을 낸 산채정식을 잘한다. 하리의 별채막국수(033-481-5511)와 고대리의 샘터막국수(033-482-7428)의 뽕잎막국수가 별미로 꼽힌다. 1인분 5,000원.
국토정중앙지점
평화통일 씨앗 잉태한 우리나라의 배꼽
양구 여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바로 국토정중앙지점. 예전엔 양구가 워낙 오지로 인식된 바람에 양구 주민들은 때로 주눅 들기도 했지만, 양구가 우리 국토의 중심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부터 양구 주민들은 우리 국토의 정중앙에 살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져왔다. 그렇다. 양구는 지리학자들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우리 국토의 정중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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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국토정중앙지점 가는 길. 약간 오르막 산길이지만 양구군에서 잘 다듬어놓아 어린이도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다. 2 우리 국토의 정중앙지점인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48번지엔 휘몰이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3 국토정중앙점 들머리에 있는 국토정중앙천문대. 정중앙점 답사와 연계해 별자리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 섬을 포함한 우리나라 영토의 동서남북 네 극지점, 즉 울릉군·독도 동단의 극동(동경 131°52′20″), 평북 용천군 마안도 서단의 극서(동경 124°11′45″), 남제주군 마라도 남단 극남(북위 33°6′40″), 함북 온성군 유포 북단의 극북(북위 43°35′)의 사방위를 기준으로 볼 때 그 한가운데가 양구라는 의미다. 즉 이를 기준으로 한 중앙 위선(38°03′37.5″)과 중앙 경선(128°02′02.5″) 두 선을 종횡으로 그었을 때 만나는 지점이 바로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48번지, 좌표로는 동경 128°02′02.5″, 북위 38°03′37.5″이다.
- 양구군에서는 이곳에 국토정중앙점을 찍고, 이를 상징하는 휘몰이 조형물을 세웠다. 정중앙엔 맑은 샘물도 솟는다. 한쪽에 설치된 음향시설에선 차분한 음악도 반복적으로 흘러나온다. 그렇지만 정중앙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는 그리 단순치 않다. 국토의 배꼽인 옴파로스(Omphalos), 생명,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남한과 북한의 완벽한 평화통일…. 국토정중앙이란 의미는 외연이 이렇게 계속 확장된다.
국토정중앙지점 답사는 국토정중앙천문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뒤 10여 분(800m) 가량을 가볍게 산책 삼아 다녀올 수 있다. 산길이지만 양구군에서 잘 다듬어 놓아 어린이도 안전하다. 원래 예전엔 군부대 사격장 안에 있어서 휴일에만 출입이 가능했지만, 최근 군부대와 협의를 통해 평일에도 답사할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주말이 아닌 평일엔 야간사격도 이뤄지므로 밤엔 접근하지 말라는 게 담당자의 충고다.
정중앙지점 진입로에 위치한 국토정중앙천문대 구경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1층은 국토정중앙의 개념에 대한 설명과 우리나라 시대별 영토 변화에 따른 국토정중앙점의 변천사, 세계 주요 국가들의 국토정중앙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2층은 망원경을 사용한 천체 관측에 중점을 둔 체험 공간이다. 3층 주관측실엔 독일에서 특수제작된 800㎜ 경위대식 천체망원경이 비치돼 있다. 고성능 카메라를 이용해 관측하고 있는 별자리의 모습을 대형 화면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천문대는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문을 연다. 천문대라는 특성상 밤에 들러야 하므로, 가능하면 해가 지기 전에 국토정중앙점 산책을 다녀오는 게 좋다. 그런 후 정중앙 배꼽마을 입구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어둑해졌을 때 다시 천문대를 찾으면 별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양구의 밤하늘을 망원경으로 실컷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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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국토정중앙점에서 솟는 샘물. 2 막국수. 3 양구 두타연을 찾은 탐방객들. 비무장지대 안쪽에 있어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 천문대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개장시각은 15:00~23:00. 월요일은 휴관. 문의 033-480-2586 www.ckobs.kr
숙식>> 국토정중앙지점 들어가는 길목의 정중앙 배꼽마을(http://jeongjungang.invil.org)에 숙식할 곳이 여럿 있다. 마을 초입에 있는 도촌막국수(033-481-4627)는 외지인도 많이 찾는 맛집이다. 막국수 5,000원, 편육 1만 원, 감자부침개 4,000원. 국토정중앙민박(033-481-1675), 거멍바우펜션(033-481-7761)이 민박을 친다. 승용차로 10분쯤 떨어진 남면 심포리에 봉화펜션(033-481-1976) 등의 숙소가 있다.
두타연
평화통일 기원하는 생태계의 보고
양구의 대표 트레킹 코스 중 하나인 두타연으로 가려면 최소 2일 전에 양구군청을 통해 신청해야 한다. 이렇게 군부대의 신분 조회를 거쳐 허가가 떨어져야 출입할 수 있다. 그리고 신청한 날짜와 시간에 맞춰 양구읍 양구명품관으로 가야 한다. 이곳에서 두타연 주차장까지는 군청 직원의 선도 차량을 일렬로 따라간다.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양구의 명소들은 대부분 ‘민족의 화합, 조국의 평화통일’을 상징한다. 비무장지대 안쪽에 있는 두타연은 여기에 생태가 추가된다. 즉 두타연은 ‘평화 지향의 생명지대’라는 PLZ(Peace&Life Zone)다. 이는 비무장지대(DMZ)와 인근 민통선 인접 지역을 모두 포괄하는 비무장지대의 발전적 개념인데, 현재 남한 지역에서 PLZ의 대표 지역으로 꼽을 수 있는 양구는 산양·멧돼지·노루·너구리, 금강초롱·제비동자꽃·비로용담·끈끈이주걱·개느삼 등 희귀 동·식물이 다양하게 서식·분포하고 있어 학자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생태적으로 보면, ‘양구에 오면 10년은 젊어진다’는 양구군의 슬로건이 빈말이 아니다. 산천은 강원도 특유의 깨끗함을 자랑하거니와 비무장지대를 끼고 있기 때문에 강원도의 여느 고을보다 오염도 훨씬 덜하다. 당연히 물과 공기가 맑다. 초여름엔 별빛 같은 반딧불이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 두타연은 친환경 생태관광(eco-tourism)의 표준모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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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타연으로 흘러드는 두타폭포 상류 부분. 수량이 많을 땐 한반도 지형이 나타난다.(왼쪽) / 두타연 생태탐방로를 거닐다보면 이렇듯 6·25전쟁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오른쪽)
- 양구8경 중 제1경이기도 한 두타연은 수입천 두타폭포 아래 형성된 넓은 소(沼)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높이 20~30m의 바위 사이를 지나면서 폭포를 이루고, 폭포 아래엔 널따란 소가 형성돼 있다. 수심은 20m 정도라 한다. 두타연으로 흘러드는 폭포수는 수량이 풍부할 땐 마치 통일을 열망하듯 한반도 형태를 띤다.
두타연 주변의 바위와 어우러진 경치가 빼어나다. 강원도 특유의 짙은 숲 내음, 그리고 1급수 맑은 계류에서 풍기는 물비린내가 가슴을 뛰게 한다. 물속엔 맑고 시원한 물에서만 사는 열목어들이 헤엄친다. 그 옛날 금강산 가는 길목이었으니 당시 나그네들은 이곳에서 또 얼마나 마음을 빼앗겼을까.
두타연 주변엔 생태환경길이 조성돼 있어 탐방객들이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다. 산책길 한쪽으론 포탄 탄피 등 찌그러진 쇳조각들을 군데군데 모아놓았다. ‘지뢰’라는 글귀도 선명하다. 다른 데에선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 글귀를 모른 체(?)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선 절대 금물이다. 걷기만 한다면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이면 넉넉하지만, 중간중간 마련된 나무의자나 바위 턱에 앉아 쉬엄쉬엄 즐기면서 걷다 보면 2시간도 짧다.
최근 두타연에 ‘자전거길’이 조성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부의 접경권 초광역 개발계획사업 중 친환경 관광투어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자전거 O2길’이다. 이번 6월 달에 공사를 시작해 11월까지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비포장 자전거길, 숲속 자전거길, 자전거 휴게소 등이 조성되면 자전거를 타고 두타연의 자연과 생태환경 자원을 감상할 수 있다. 2004년까지 민간인은 얼씬도 못하던 곳인데, 이젠 자전거로도 돌아볼 수 있다니 꿈만 같다.
두타연은 민간인 출입통제선 이북에 위치하기 때문에 최소한 출입 2일 전에 전화나 인터넷으로 양구군청 경제관광과에 신청해야 한다. 정해진 날짜에 양구명품관 앞으로 오전 9시까지 집합한 뒤 군청 소속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9시30분에 출발한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초등학생 1,000원, 주차료는 없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 문의 033-480-2251, 팩스 033-480-2522
해안분지
6·25전쟁 당시의 처절한 아픔 간직한 ‘펀치볼’
두타연을 나온 뒤 초소를 벗어나 백석산전적비를 지나면 곧 460번 지방도를 만난다. 여기에서 좌회전해 달리면서 30번 국도와 453번 지방도를 번갈아 타면 돌산령터널을 지나 해안분지로 들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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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을지전망대에서 바라본 해안분지. 화채 그릇(Punch Bowl)을 닮았다 하여 6·25전쟁 당시 ‘펀치볼’이라 불렸다. 2 을지전망대에서 북녘 산하를 바라보는 관람객들. 왼쪽의 남성이 바라보는 지점이 바로 선녀폭포다. 3 강원도의 여느 산골처럼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 해안분지. 4 돌산령 고갯마루의 도솔산 전적지. 미 해병대가 포기한 도솔산지구 탈환에서 우리 해병대가 크게 승리하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무적해병’이란 휘호를 하사했다.
- 백석산, 도솔산, 크리스마스고지, 대우산, 가칠봉,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펀치볼……. 양구에 속한 이 지명들은 모두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다. 이 중에서도 가칠봉(1,242m), 대우산(1,178m), 도솔산(1,148m), 대암산(1,304m) 등 1,100~1,300m를 넘나드는 높은 산봉우리로 이어진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는 해안분지를 일컫는 ‘펀치볼’은 6·25전쟁 당시 피아 간에 처절한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펀치볼(Punch Bowl)이란 이름은 6·25전쟁 때 종군하던 외국인 기자가 해안분지에 운해가 떠 있는 풍경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펀치볼은 포도주에 과일 따위를 섞어 만든 ‘펀치’라는 칵테일을 담는 화채 그릇을 일컫는다. 운해 낀 광경을 보려면 아침 일찍 올라와야 한다.
해안분지가 강원도 산골에 있다고 해서 규모가 작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남북 7.5㎞, 동서 5.5㎞, 면적 44.7㎢로 제법 널찍한 타원형이다. 이 분지는 원래 커다란 호수였는데, 지각변동으로 물이 빠져나가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됐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 뱀이 많아 주민의 피해가 심했는데, 어느 날 도승이 나타나 돼지를 많이 키우면 뱀의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돼지를 키우자 뱀이 없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뱀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이곳 지명이 돼지 ‘해(亥)’자와 편안할 ‘안(安)’자를 써서 해안(亥安)이 됐다는 유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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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분지의 분위기는 강원도의 여느 산골과 비슷하다. 논농사도 짓고,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기도 한다. 최근엔 사과 농사도 짓는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해안분지에서도 사과 농사가 되는데, 심한 일교차 덕분에 당도가 최고란다.
해발 1,049m의 을지전망대에 오르면 해안분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5월 중순에 오른 을지전망대. 남녘의 산하는 신록으로 물들기 시작했건만 아직 군사분계선 이북의 산하는 이제야 칙칙한 겨울색을 벗어나는 중이다.
눈 밝은 이들은 망원경을 쓰지 않고 육안으로도 북한군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망원경으로는 직접 경작하는 밭에서 채소나 곡식을 키우는 북한군의 모습도 보인다. 남한의 전파를 막기 위한 철탑이 있는 무산 너머로는 금강산도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 배치된 해설사는 가칠봉의 내력부터 풀어나간다.
“저 왼쪽으로 가칠봉이 보이죠. 거기 네모 난 건축물이 있지요. 그게 바로 수영장입니다. 그곳에서 대북 심리전을 위해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를 하기도 했답니다. 1992년 이곳에서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를 했을 때 탤런트 이승연이 미스코리아 미로 당선됐답니다.”
가칠봉 수영장은 북한 쪽에선 탈의실이 보이도록 3면을 투명하게 했다. 초소를 지키던 북한의 젊은 병사들은 잠 못 드는 밤이었을 것이다. 이에 북한은 가칠봉에서 마주 보이는 비무장지대 북측 지역 운봉(일명 스탈린고지, 해발 1,358m)과 매봉(일명 모택동고지, 해발 1,290m)에 있는 20m 높이의 폭포 아래에서 여군이 목욕하는 방법으로 남한의 미인계에 대응했다고 한다. 이런 일 때문에 그 폭포의 이름도 ‘선녀폭포’라 불렸다. 한 중년 남성이 망원경에 슬그머니 눈을 대고 선녀폭포를 한참 응시하더니 짓궂게 한 마디 던진다. “아직 추워서 그런지 오늘은 안 나왔네.” 남북이 대치된 비극적인 상황에서 펼쳐진 이 희극적인 미인계도 평화통일이 된다면 서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는 을지전망대다.
해안분지는 출입이 자유롭지만, 을지전망대와 제4땅굴을 관람하려면 해안면 월산리에 위치한 양구통일관에서 출입허가서를 작성하고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입장료 어른 2,500원, 어린이 1,300원. 주차료 승용차 2,000원. 입장 시각 09:30~16:00. 문의 033-480-2674.
숙식>> 해안면 중심가인 현리에 있는 정주골한정식(033-481-6777)은 한정식 1인 1만 원, 2인 이상 주문 가능. 각종 산채 등 14가지 기본 반찬에 더덕·황태구이, 된장찌개가 올라온다. 시래기고등어조림 1인 8,000원. 남원식당(033-481-0804)은 더덕구이백반을 차린다.
현리에 동부여관(033-481-0687), 펀치볼민박(033-481-0878), 평화펜션(033-481-5672), 해안황토민박(033-481-8009, 6777), 박정자민박(033-481-8009) 등의 숙소가 있다. 곰취마을로 유명한 동면 팔랑리의 풀하우스펜션(033-481-0422)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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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서식하는 고산식물과 북방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양구 생태식물원.
- 양구 생태식물원
남한의 최북단에 조성된 양구 생태식물원은 양구군이 남북한 생태계 복원센터로 육성하려고 2004년 문을 연 식물원. 이곳에선 한국 특산종이자 환경부 보호종인 금강초롱꽃·깽깽이풀·개느삼을 비롯해 DMZ와 대암산 일대에서 서식하는 고산성 식물과 북방식물 등 400여 종의 희귀 식물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입장료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매주 월요일 휴관. 문의 양구생태식물원 033-480-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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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곡약수는 톡 쏘는 맛이 좋은 탄산수다.
- 후곡약수
대암산 남서쪽에 있는 후곡약수는 철분과 불소가 많이 들어 있고 탄산가스가 풍부한 탄산 약수다. 위장병에 특효며, 피부병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약수정엔 두 개의 샘이 나란히 있다. 위장에 좋은 탄산이온, 규산이온 및 치아 건강에 좋은 불소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다. 이 약수로 밥을 지으면 푸른빛이 감돈다. 약수터 앞엔 민박을 치는 식당이 여럿 있다. 주차 시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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