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소리로 명복 빌고 선소리에 망자의 가르침 싣고상엿소리
▲ 누구든 피해 갈 수 없는 주검, 체온이 채 식기도 전에 만지는 것은 물론 보기조차 꺼려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든 죽은 다음엔 이렇듯 관속에 들어갑니다. | |
ⓒ 임윤수 |
아무리 가깝던 사이였더라도 죽은 사람으로 시체가 되어있으면 그 사람 만지기를 꺼려합니다. 죽은 지 오래되었다면 살점이라도 썩어 문드러질지 모르지만 체온도 채 떨어지기 전인 사망의 순간부터 원인 모를 거리감이 생깁니다.
심한 경우에는 부모와 자식 사이도 임종과 운명의 고비를 넘어서는 순간 생전의 관계에 아랑곳없이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죽은 사람은 잊고, 살아있는 사람 편안하게 잘 살라고 정 떼고 떠나려 일부러 무섭게 보이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죽은 사람을 무서워하고 시체 만지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에게 정작 그 이유를 물어보면 '미생물학적 요인, 사체로부터 박테리아 등에 의한 질병 감염에 대한 우려나 심리적 요인' 등을 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싫거나 무섭고, 기분이 나쁘거나 꺼림직 해서라는 정도입니다.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군대를 가기 전까지만 해도 상가(喪家)엘 가면 비위가 거슬려 끼니조차 거르곤 했습니다. 그냥 죽은 사람이 있는 집이란 생각에 먹는다는 게 꺼림직 했고 속까지 메슥대거나 울렁거리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일 먹어서 그런지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는 대로 먹고 상황에 따라 움직이며 모자라면 찾아다 먹을 만큼 적극적일뿐 아니라, 그래야 된다면 주검조차도 기꺼이 만지려합니다.
꽃상여 앞에서 요령 흔드는 선소리꾼
지금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옛날 같으면 상가의 궂은일 중 하나인 상여메기는 천민들의 몫이거나 역할이었습니다. 시신을 수습해 장사를 치른다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 상여는 이승에서의 고단한 삶을 마친 누군가를 저승으로 옮겨주기는 운반수단이기도 하지만 영가를 위한 마지막 꽃단장이며 치장이기도 합니다. 상여를 메는 사람들은 상여꾼 또는 향도꾼이나 상두꾼이라고도 합니다. |
ⓒ 임윤수 |
대개 사람들이 그렇게 피하고 싶어 하는 그 일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장의업을 하거나 그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는 호소는커녕 눈길로도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주검이 된 한사람의 마지막을 조금이라도 덜 허망하게 잘 갈무리 해드리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주저하거나 꺼리는 궂은일이기에 서툴지만 기도하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그런 일들을 맞아들입니다.
상두꾼들의 발놀림 따라 너울너울 춤추며 구불구불 흘러가듯 집 떠나고 있는 꽃상여, 알록달록 꽃송이 나풀거리는 상여 앞에서 딸랑딸랑 요령 흔들고 이러쿵저러쿵 선소리 넣으며 요령잡이를 한 지 어언 1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 언뜻 두부장수가 흔들거나 자선냄비와 함께 연말에만 등장하는 종모양이지만 꽃상여 앞에서 사용하는 요령입니다. 장례식장에서조차 점차 듣기 어려운 상주들의 곡소리를 대신해 딸랑거리는 요령소리로 영가된 이의 명복을 빌고 선소리를 빌어 망자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습니다. | |
ⓒ 임윤수 |
어렸을 때 동네 어르신 중 누군가가 돌아가셨다는 말이 들리고 3일이나 5일 후쯤이면 볼 수 있었던 상여 행렬은 장관이었습니다.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흉물처럼 동구 밖 상엿집에 보관되었던 상여가 장삿날이 되면 날이 밝기도 전부터 상가의 마당으로 옮겨져 조립되고 꾸며집니다.
상여를 에둘러 선 상제들, 누런 빛깔의 삼베상복에 짚으로 꼰 새끼줄 허리띠를 두르고 굴건제복을 한 상제들이 '애고'거리며 곡들을 합니다. 죽은 이가 살던 집을 떠나 북망산천이 되는 묘를 향해 떠나갈 준비가 되어있음이 상가의 울타리를 넘어 온 동네에 알려집니다.
발인제가 끝나고 영가된 이가 집을 떠날 때쯤이면 기다란 장대 끝에 매달려 사람들의 손에 들린 명정과 만장들이 바람결에 나풀대고, 선소리꾼이 흔들어대는 요령소리가 '딸랑딸랑'들려옵니다. 요령소리를 신호로 12명의 상두꾼들이 양쪽으로 6명씩 나뉘어 무릎을 쪼그리고 앉습니다. 어깨에 상여에 매여 있는 광목 끈을 걸머메고 무릎 펴고 허리를 곧추세우면 꽃상여가 일어섭니다.
상두꾼들의 어깨위로 올라선 상여가 12명의 상두꾼 발놀림 따라 일렁이듯 흐느끼듯 조심스레 좌로 우로 움직입니다. 마당 한가운데서 발걸음 따라 너울춤이라도 추며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고하듯 처마 끝에 기대 높은 하늘을 향해 한바탕 슬픈 몸짓들을 합니다. '어~허'거리는 상두꾼소리와 '애고'거리는 상제들의 곡소리가 한바탕 뒤섞이면 흔들어대는 요령소리에 박자 맞춰 애간장 우려낼 듯 청승스럽고 애달프기까지 한 선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렸을 때 들었던 요령잡이의 선소리는 마냥 구슬프고 처량해 듣기만 좋은 소리인줄 알았는데 이제야 생각하니 그렇지 않습니다. 요령잡이가 하던 선소리는 죽은 자에 대한 예송이며 그가 살아간 한평생을 희로애락으로 농축한 삶의 고백이며 위령의 노래, 영가를 위한 진혼곡이었습니다. 이승에서의 삶을 기승전결로 정리했고 저승세계서 받게 될 심판내용까지 담겨있어,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가르침이기도 했지만 대사(大事)를 치르기 위한 커다란 지혜였습니다.
▲ 요령에서 울려나오던 딸랑 소리는 상두꾼들의 힘을 돋우는 응원의 소리며 흔들리지 않게 균형을 잡기위한 중심 추의 소리입니다. 요령도 이렇듯 그 크기가 다르니 울려나오는 소리도 다릅니다. |
ⓒ 임윤수 |
상엿소리는 진혼곡이며 좁다란 길을 걷게 하는 지혜의 중심 추
좁은 길로 올라선 양쪽 상두꾼들은 서로 의지해 길 가운데로 발은 모으고 어깨 쪽이 벌어지는 V자 대열로 몸을 기울여만 논두렁 외길을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때 요령에서 울려나오던 딸랑 소리와 선소리,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차곡차곡 이어지던 상두꾼들의 후렴소리는 힘을 돋우는 응원가며 균형을 잡아주는 중심추가 되어 외나무다리에서도 발걸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게 하는 지침의 소리였습니다.
선소리와 그 후렴은 무게가 만만치 않아 어깨를 짓누르는 상여의 무게를 잠시 덜거나 잊게 해주는 환각의 역할도 했지만 죽은 이가 마지막 가는 길에 커다란 흔들림 없도록 상두꾼들이 사뿐한 발걸음으로 고이 모시게 하는 안무가 같은 구령이기도 합니다.
▲ 영가된 이 마지막 가는 길에 흔들림 없고 너울춤이라도 추듯 사뿐히 모시려, 자박자박 내딛는 상두꾼들의 발걸음을 고르게 하기위해 움켜쥔 요령을 위로 흔들고 아래로 흔들며 박자를 맞춰줍니다. |
ⓒ 임윤수 |
목소리는 물론 요령을 흔들던 손까지 떨리던 그때, 처음으로 선소리를 넣던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요령을 흔들기 전이면 지극한 마음으로 가시는 길 고이 모시겠다는 서원을 합니다. 상두꾼들을 모으기 위해 마구잡이식으로 한바탕 요령을 흔들고, 상두꾼들이 모여들면 발맞추고 입(소리) 맞추기 위해 두세 번 정도 후렴구인 '어~허~'소리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상두꾼들과 주고받으며 이산 혜연선사의 발원문을 빌어 발원의 선소리를 시작합니다.
'시방삼세 부처님과' '어~허~어~허~'
'팔만사천 큰법보화' '어~허~어~허~'
'보살석문 스님네께' '어~허~어~허~'
'지성귀의 하옵나니' '어~허~어~허~'
'자비하신 원력으로' '어~허~어~허~'
'굽어살펴 주옵소서' '어~허~어~허'
발인 날자와 영가(죽은 이)된 이의 본관 성명, 생전 거주지를 들어 모든 정령들께 누군가가 꽃상여를 타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향하고 있음을 지극한 마음으로 고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모여든 친빈(親賓)들에게 망자 생전에 맺었을지도 모를 악연이나 서운함, 미운감정이나 서운했던 일, 다퉜던 일, 화났던 일 모두 잊어버리고 명복만을 빌어달라는 당부의 말도 한풀이 하듯 빼놓지 않습니다.
▲ 사람들의 손에 들린 기다란 장대 끝에는 보내는 이의 마음, 살아남은 자들의 서럽고도 애통한 마음이 담긴 만장들이 한풀이라도 하듯 나풀나풀 흔들리고 있습니다. | |
ⓒ 임윤수 |
'천년만년 살 거라고' '어~허~어~허~'
'먹고픈 것 아니 먹고' '어~허~어~허~'
'가고픈 곳 아니 가고' '어~허~어~허~'
'입고픈 것 아니 입고' '어~허~어~허~'
'쓰고픈 것 아니 쓰며' '어~허~어~허~'
'동전 한 닢 아껴가며' '어~허~어~허~'
'아등바등 살았건만' '어~허~어~허~'
'인생이란 일장춘몽' '어~허~어~허~'
'공수래에 공수거라' '어~허~어~허'
넋두리 같고 하소연 같은 선소리가 몇 소절 이어지다 보면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이별의 소리가 들려오고, 찔끔찔끔 흐르는 눈물 닦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회심곡과 명심보감, 채근담은 물론 여기저기서 듣고 기억하는 좋은 말들을 상황에 맞도록 딸랑딸랑 요령소리에 맞춰 선소리로 꾸며갑니다.
상제들의 울음과 덩달아 훌쩍거리는 문상객들의 비통함이 자박자박 내딛는 상두꾼들의 발걸음에 저승 가는 노잣돈으로 돗자리처럼 펼쳐집니다. 여한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한바탕 축원 같은 선소리가 끝나면 꽃상여,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고 있는 망자를 태운 꽃상여를 둘러멘 상두꾼들은 돌아오지 못할 그 황천길을 향해 자작자작 걸어갑니다.
대문을 나선 상여는 생전의 오욕칠정, 부귀명세 모두 놓아버리고 훠이훠이 장지를 향해 떠나갈 뿐입니다. 그렇게 길을 가다 도랑이라도 나오면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몸부림이라도 하듯 한바탕의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생전이야 마음대로 건네던 다리였지만 이제는 다시 건네지 못할 다리니 그냥 갈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 만장에는 추모의 글도 있지만 삶을 예찬하고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진리의 글도 담겨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설움을 적은 글들도 있습니다. | |
ⓒ 임윤수 |
'이승에서 맺은 악연' '어~허~어~허~'
'이승에서 쌓은 악업' '어~허~어~허~'
'남김없이 끊으라는' '어~허~어~허~'
'저승 가는 세심굔가' '어~허~어~허~'
'속세번민 인생팔고' '어~허~어~허~'
'벗어나는 해탈굔가' '어~허~어~허~'
'능파교간 극락굔가' '어~허~어~허~'
'이 다리를 건너가면' '어~허~어~허~'
'이제다신 못 올 텐데' '어~허~어~허~'
'애달고도 설운지고' '어~허~어~허~'
장지에 도착할 때까지 몇 십 분에서 한두 시간 정도 이렇듯 선소리와 상두꾼들의 후렴소리가 반복됩니다. 선소리에는 동지섣달 긴긴밤을 홀로 지새우며 청춘의 뜨거움을 홀로 식혀야 했던 청상과부의 한숨소리와 애환이 들어있을 수도 있고, 딱하고도 급급하기만 했던 홀아비의 궁상맞은 삶의 얘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착하게 살던 사람이 대접받으며 살아나갈 내세이야기도 들어있지만 악하게 살던 사람이 고통 받게 되는 저승세계 지옥이야기도 들어있습니다.
발원하며 돌이키고, 축원하며 영가의 명복이라도 빌다보면 상여는 어느덧 장지에 도착합니다. 지관이 잡아준 천하길지 명당에 좌향(坐向) 맞춰 반듯하게 파진 금정(金井)에 영가된 이가 들어있는 널을 조심스레 안장합니다. 그리고 흙을 다지는 달구(회다지)를 할 때 다시 한 번 선소리를 넣으면 선소리꾼 요령잡이의 역할은 마무리 됩니다.
선소리와 후렴구로 불러주는 삶의 노래, 망자의 노래는 한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 모두의 가슴에 아름아름 내려앉습니다.
선소리꾼은 망자 돕는 '염라국 변호사'
망자가 불러주는 삶의 노래 달구질소리
산소자리에 앉아 눈앞에 펼쳐지는 산세 흐름을 휘둘러보는 것도 참 재미있습니다. 산 능선이 솟았다 가라앉기를(上下起復) 수 없이 반복하고, 좌로 휘어지고 우로 구부러지며(左右屈曲) 구불구불 흐르기 또한 무한히 반복됩니다.
불끈 솟으며 봉우리를 맺기도 하지만 사라지기라도 한 듯 홀연히 가늘어지기 또한 끝없이 거듭되니 산세의 흐름은 마치 커다란 용이 승천이라도 하려고 꿈틀대기라도 하는 듯합니다. 그러기에 풍수에서는 산을 산이라 말하지 않고 용(龍)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 운구를 하는 동안에는 요령을 흔들고 상엿소리를 하지만 달구질을 할 때는 요령을 흔들지는 않습니다. 요령을 대신해 삽이나 괭이자루를 짚고 묘 자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봉분 뒤쪽에 올라섭니다. | |
ⓒ 임윤수 |
명당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지는 모르지만 후손들이 마음 편안해 하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는 장소를 명당이라고 생각하면 그곳이 명당 아닐까 생각됩니다.
산 사람이 사는 집을 양택(陽宅)이라고 하듯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묘를 음택(陰宅) 또는 유택(幽宅)이나 잔디집이라고도 합니다. 지역적 풍습이나 가풍에 따라 이운된 상여에서 관을 꺼내고, 관에서 시신을 꺼내 시신만을 매장하는 곳도 있지만 관(棺) 채 매장 하는 곳도 많습니다.
달구질은 땅 속에 매장한 사체에 물이 스며들지 않고, 장사를 지낸 후 많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분묘의 형태가 변하거나 뭉개지지 말라고 차곡차곡 다져주는 것입니다. 그냥 흙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생석회를 흙에 섞어서 다져주기도 하기 때문에 달구질을 '회다지'라고 부르는 곳도 있는 가 봅니다.
금정(광중)에 관을 넣고 둘레의 빈 공간을 고운 흙으로 채우고 폐백을 드리고 횡대라고 하는 두툼한 송판을 덮고 상주들이 취토를 합니다. 취토란 나중에라도 꼭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실질적으로 시신을 모신 널 자리를 표시하기 위한 표식이니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탄소성분의 재를 쓰는 것이 원칙이나 요즘엔 거의 형식적으로 주변의 흙을 뿌려주는 의례적 절차일 뿐입니다.
내 죽음을 대하듯, 복 짓듯이 울어주고 덕 쌓듯이 거둬줄 터
예전 같으면 삽이나 가래를 이용해 흙을 채웠겠지만 요즘은 굴삭기를 이용해 1차적으로 흙을 채웁니다. 그러면 5명의 상두꾼들이 연춧대(상여를 멜 때 좌우로 걸치는 묵직한 나무 각목)를 들고 메워진 광중 위로 둥글게 올라섭니다.
선소리꾼은 요령을 대신해 삽이나 괭이자루를 짚고 묘 자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봉분 뒤쪽에 올라섭니다. 일렁일렁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움직이고 박자를 맞춰가며 선소리를 시작합니다. 이때 역시 입(소리)을 맞추기 위해 '에~헤~달~구~" 하는 후렴소리를 3번 정도 선창하는 것으로 달구질이 시작됩니다.
▲ 미리 준비된 광중에 영가된 이를 모시고 빈 공간을 흙으로 채우고 폐백을 드립니다. 그리고 흙을 채우고는 달구질을 시작합니다. -사진은 화장을 하기 위해 연화대에 관을 안치한 상태- |
ⓒ 임윤수 |
달구질 할 때의 선소리와 후렴구가 운구를 할 때의 상엿소리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많이 다릅니다. 이제 어차피 새집인 음택에 모셔야 하니 그 묘 자리가 많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명당임을 믿게 해주는 게 선소리꾼의 역할일지도 모릅니다. 위령의 노래도 필요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순리로 받아 들이 수 있는 지혜의 말들도 필요합니다.
▲ 달구질을 할 때는 요령소리를 대신해 왼발과 오른발을 일렁일렁 움직이며 박자를 맞춰가며 선소리를 시작합니다. | |
ⓒ 임윤수 |
'산신 지신 정령님께' '에~헤~달~구~'
'달구 소리로 고합니다' '에~헤~달~구~'
'산기 지기 정기 흘러' '에~헤~달~구~'
'혈을 맺은 이 명당에' '에~헤~달~구~'
'선산 임씨 영가된 이' '에~헤~달~구~'
'천년만년 살아나갈' '에~헤~달~구~'
'잔디 집을 지으오니' '에~헤~달~구~'
'영가된 이 왕생극락' '에~헤~달~구~'
'세세손손 대를 이어' '에~헤~달~구~'
'발복하여 주옵소서' '에~헤~달~구~'
사람들이 양지바른 주변 여기저기에 삼삼오오 모여 있습니다. 달구소리를 들으며 먼 산을 바라보듯 허공에 시선을 맞춥니다. 그들은 들렸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는 달구소리에서 바람소리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환청처럼 듣게 되고 살아생전의 모습들을 허상 떠올리게 될 겁니다.
땅을 다지느라 박자 맞춰 내리 찍는 연춧대의 쿵쾅거리는 다짐소리와 몸동작 리듬을 유지하느라 넣는 달구꾼들의 '에~헤~달~구~'거리는 후렴소리가 이산저산에 쩌렁쩌렁 울려댑니다. 이럴 때쯤이면 묘 자리 뒤에는 새끼를 꼬아 만든 기다란 줄이 삽자루나 기다란 나무에 매달려 만국기 줄처럼 'Λ'자 형태로 내걸립니다. 망자가 저승길에서 쓸 노잣돈을 마련하기 위한 해학이며 풍습입니다.
상복을 입은 상제들은 물론 두건을 쓰고 행전만을 찬 일가친척들이 차례차례 돈들을 꺼내 새끼줄에다 꼽습니다. 출렁거리는 새끼줄에 꼽힌 파란색 지폐들은 가슴 저미는 눈물로 비춰집니다. 살아생전 용돈 하라고 동전 한 닢 선뜻 내줄 줄 모르더니 이렇듯 망자가 되니 노자에 보태 쓰라고 지폐조차 척척 걸어 놓습니다.
정말 영가된 이가 저승 갈 때 노자 하라고 놓는 것인지 아니면 주변의 시선과 체면을 인식해 내놓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 달구질이 끝나면 다시 한 번 흙을 채우고 두 번째 달구질이 반복됩니다.
염라국 판관들 앞에서 변론하듯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변론이라도 하듯 영가된 이가 살아생전 베푼 선행이나 공덕들을 염라국의 판관들께 하나하나 고해 올립니다. 이렇듯 좋은 일 많이 했니 저세상일지라도 좋은 곳에서 잘 살게 해 달라는 후손들의 애틋한 마음과 효심을 실어 애원이라도 하듯 선소리로 엮어갑니다.
▲ 딸랑거리는 요령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면 땅을 다지느라 박자 맞춰 내리 찍는 연춧대의 쿵쾅거리는 다짐소리와 몸동작을 유지하느라 넣는 달구꾼들의 ‘에~헤~달~구~’거리는 후렴 소리는 이산저산을 울려 댑니다. | |
ⓒ 임윤수 |
'쌓은 공덕 지대하니' '에~헤~달~구'
'하나하나 읊어보세' '에~헤~달~구'
'배고픈 이 밥을 주어' '에~헤~달~구'
'아사구제 하였으며' '에~헤~달~구'
'헐벗은 이 옷을 주어' '에~헤~달~구'
'구란공덕 하였으며' '에~헤~달~구'
'목 마른이 물을 주어' '에~헤~달~구'
'급수공덕 하였으며' '에~헤~달~구'
...............
다시 한 번 흙이 채워지면 3번째 달구질을 위해 선소리를 합니다. 주변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나눠준다는 마음으로 끝맺음의 선소리를 하면 달구질은 일단 마무리됩니다. 흙과 잔디를 번갈아 쌓아 봉긋한 봉분을 만들고 나면 산역꾼이나 문상객들은 연장이나 짐들을 챙겨 집으로 들 돌아갑니다.
상제들이야 성분제(위령제)도 지내고 왔던 길 그대로 따라가는 반혼의 길도 걸어야 하지만 선소리꾼인 나는 허전함을 달래려 푸른 하늘 바라보며 두리둥실 떠다니는 흰 구름이라도 잡으려는 듯 훠이훠이 헛손질 한번 더해 봅니다.
장례문화가 바뀌면서 운구차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니 도회지는 물론 시골에서도 꽃상여는 물론 달구질 풍경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점차 줄어드는 게 현실입니다. 꽃상여를 쓰더라도 예전처럼 상두꾼들이 어깨에 걸머메고 '어~허~'거리며 가기보다는 바퀴달린 수레상여를 개발(?)해 손쉽게 운구하는 광경이 보입니다.
설사 메고 가는 꽃상여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선소리꾼이 없어 선소리가 흘러나오는 녹음테이프를 틀어놓고 가는 걸 보게 됩니다. 상여 앞에서는 선소리꾼을 대신해 누군가가 요령을 흔들고 있지만 립싱크라도 하듯 입만 벙긋거리고 있을 뿐이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 서글픈 모습입니다.
선소리를 받아 후렴구 넣으며 차곡차곡 다져가던 달구질꾼들의 역할도 이젠 굴삭기가 대신하니 살벌한 굴삭기 삽으로 한두 번만 쿡쿡 짓누르면 달구질 또한 얼렁뚱땅 끝나게 됩니다.
정말 잘해서 그러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요령을 흔들고 청승을 떨며 묘지까지 상여를 옮기고, 달구가 다 끝나면 '젊은(?) 사람이 어디서 그런 걸 배워 그렇게 잘하느냐'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하지만 여전히 쑥스럽고 민망스럽기조차 합니다.
▲ 인류의 역사와 존재한 것이 인간이듯 인간이 존재하는 한 죽음은 그치지 않을 것이기에 어떤 형태로든 장사는 지속될 것입니다. |
ⓒ 임윤수 |
2005년 1년 동안 요령잡이 5번
올해도 요령잡이를 5번 했습니다. 궂은일이지만 이왕 할 거면 얼치기 수준을 벗어나 좀 더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장례관리사를 공부했고 자격시험도 보았습니다. 경험이 쌓이고 실력이 갖춰지면 정말 남들이 싫어하는 그일, 죽은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이 조금이라도 덜 서럽고 허무하지 않도록 정성으로 치장하고 마음으로 칭송하는 선소리꾼이 되어 상례(喪禮)에 깍듯한 그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요령을 잡기 전이면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듯 내가 흔들어댄 그 요령소리, 갸우듬히 고개 젖힌 채 한 서리고 시름에 젖은 듯 하염없이 외쳐대던 그 선소리가 영가된 이를 편안하게 모시는 인로왕보살의 인도 소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이 꺼리는 일, 반듯하게 수습한 사체(死體)를 깔끔하게 목욕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 흔들림 없이 입관 하는 일, 남들에게는 광대 같을지라도 누구나 가야 할 망자의 길을 위해 꼭 필요한 게 선소리라면 딸랑딸랑 요령 흔들며 목청껏 뿐 아니라 온 마음 다해 정성껏 소리하는 선소리꾼이 되려 합니다.
▲ 바람 따라 흔들리는 만장만큼이나 인생이란 것도 이리저리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네가 흔들리는 게 아니고 세상이 흔들리는 거라고 착각도 해볼 만합니다. |
ⓒ 임윤수 |
'인간백년 다 살아도' '어~허~어~허~'
'병든 날과 잠든 날과' '어~허~어~허~'
'걱정근심 다 제하면' '어~허~어~허~'
'단 사십도 못 살 인생' '어~허~어~허~'
품바타령을 부르며 동구 밖으로 쫓겨나던 각설이처럼, 비럭질하던 쪽 바가지까지 깨진 비렁뱅이처럼 제 설움 못 이겨 선소리를 빌어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고 삶의 근본을 이야기하렵니다. 흐느낌 같은 한을 토하고 통곡이라도 하듯 애간장 녹여 만든 선소리지만 결국 자신의 감정이며 광대 같은 삶의 독백일 뿐입니다.
내가 흔들던 요령소리와 청승을 떨던 선소리가 듣는 이들에게 저승사자의 울부짖음으로 들렸을지 아니면 영가된 이를 애도하고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인로왕보살의 인도 소리로 들렸을지는 알지 못합니다.
▲ 올해도 5번이나 요령잡이를 했습니다. 요즘은 요령도 1회용이기에 들고 온 요령이 3개나 됩니다. 앞으로 몇 번이나 요령잡이를 할지 모르지만 내 죽음을 대하는 마음으로 복 짓듯이 울어주고 덕 쌓듯이 거둬주렵니다. |
ⓒ 임윤수 |
인간이 백년을 산다 해도 정작 사는 기간은 사십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덧 인생의 절반 고개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 절반 동안 몇 번이나 시체를 거둬주고 요령 흔들며 선소리꾼 역할을 해줄지 모르지만 내 죽음을 대하듯, 더불어 가는 길이려니 하며 복 짓듯이 울어주고 덕 쌓듯이 거둬주렵니다.
'문화&사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제학_공작산 수타사 (0) | 2011.04.22 |
---|---|
차길진_못다한 영혼이야기_끝 (0) | 2011.04.21 |
임윤수_뚜벅뚜벅 산사기행_02 (0) | 2011.04.18 |
김호기_시대정신과 지식인_04 (0) | 2011.04.18 |
윤제학_가야산 해인사 (0) | 2011.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