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으로 갔습니다. 가을 단풍의 행로를 따라 한반도의 남쪽 끝 전남 해남까지 내려간 길입니다. 두륜산 대흥사로 드는 숲길의 마을에 붙여진 이름이 해남군 구림리 ‘장춘동(長春洞)’입니다. 차량들은 그 길이 굽어서, 걷는 이들은 길이 거느린 숲이 아름다워서 좀처럼 속도를 낼 수 없습니다. 가을볕 환한 그 길을 느릿느릿 걸어갑니다.‘봄이 길다’는 이름을 가졌으되 그 길에 긴 게 어찌 봄뿐이겠습니까. 걸음도 느리고 계절도 느리니 그 길은 한없이 길 따름입니다. 지금 그 길에 환한 볕의 가을이 오래 머물고 있습니다. 대흥사를 품고 있는 두륜산은 다시 땅끝을 향해 달마산의 지맥으로 이어집니다. 두륜산은 거대한 품으로, 달마산은 창끝처럼 날카로운 암봉으로 서서 제각기 발치에 대흥사와 미황사를 품고 있었습니다. 푸근하고 깊은 정취의 대흥사. 그리고 맑고 향기로운 느낌의 미황사. 이 두 절집은 모두 사람들의 발길과는 멀어진 산중에 고즈넉한 암자를 거느렸습니다. 뒤로 멀찌감치 물러 앉아서 수도와 정진으로 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곳. 사람들의 발길이 띄엄한 땅끝의 산중 암자야말로 세상과의 문을 닫아걸고 스스로 유배를 자처하는 자리입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적요한 땅끝의 암자를 찾아가는 여정을 권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숲의 끝에서 손바닥만 한 마당과 그 너머로 따스한 남쪽 바다를 두르고 있는 곳. 속세에 등돌려 앉아 무심하게 가을을 보내는 암자로 향하는 길입니다. 절 밖의 세상과 생각을 주고받는 큰 절들이야 편히 오갈 수 있지만, 수도의 공간인 암자로 가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신우대 청정한 산길을 오래 걸어야 하고 바위로 이어진 아슬아슬한 구름다리도 건너가야 합니다. 허벅지가 저릴 정도로 팽팽하게 일어선 오름길도 있고, 아찔한 암봉 사이를 조마조마 건너가야 하는 길도 있습니다. 이렇게 찾아간 암자의 마당에서 만날 수 있었던 건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오래 머물던 가을이 단풍과 함께 져가는 모습. 수도자의 오랜 손길로 닳은 나무기둥. 부도에 게와 물고기를 새긴 이의 마음. 무심하게 세월을 건너가고 있는 노스님과의 차 한잔. 암봉 끝으로 둥실 떠오르는 달…. ‘지심귀명래(至心歸命禮).’ 불교 예불문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입니다. ‘지극한 마음을 다 바쳐서 귀의한다’는 뜻이지요. 귀의하는 것이 어찌 사람뿐이겠습니까.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모두 다 돌아가는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신록과 녹음을 지나온 나무들은 이제 무성한 잎을 붉은 정염으로 불태운 뒤 내려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 내려놓고는 빈손이 됩니다. 늦가을의 여정으로 암자행을 권하는 건, 거기서 ‘텅 비어 있음’의 시간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실타래 같은 산길을 따라 서걱이는 낙엽을 밟으며 암자로 가는 길. 세간의 욕망을 벗어나고, 큰 절의 분주함에서도 떠나와 당도하는 길 끝의 암자는 지금 비어 있음으로 충만하답니다.
# 가을이 가장 오래 머물다 지나는 숲길에 들다 전남 해남의 두륜산 아래 대흥사로 이어지는 ‘장춘동(長春洞)’의 숲길을 걷는다. 언제 걸어도 계곡의 물소리 청아한 길이다. 지금 그 길은 가을의 단풍빛으로 환하고, 우수수 떨어져 떠내려온 단풍잎으로 계곡물은 붉게 물들었다. 숲길을 걸어 해남의 두륜산 아래 그윽한 절집 대흥사를 건너간다. 1500여 년 내력의 대흥사야 익히 알려진 거찰. 서산대사의 의발을 모셔둔 채 법맥을 이으며 위세를 키워왔고, 구불구불 자란 소나무를 대웅전 기둥으로 삼았으며, 내로라하는 당대 문사들의 현판을 받아걸고 있는 절집이다. 이런 대찰을 지나서 두륜산으로 들어간다. 대흥사의 그윽함이야 굳이 말을 보태지 않아도 다들 알 일. 대흥사를 무심히 건너서 두륜산으로 들었던 건 이 때문이다. 대흥사가 두륜산에 거느리고 있는 산내 암자의 빛나는 아름다움은 아는 이들만 안다. 백화암, 청신암, 관음암, 진불암, 상관암, 일지암, 북미륵암, 남암…. 두륜산의 산길에서 마주치는 암자만 해도 이 정도다. 여기다가 이름을 감추고 속세에 알리지 않은 거친 토굴도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다. 산 아래 큰 절이 속세와 교류하는 공간이라면, 스스로 멀찍이 물러앉은 암자는 눈빛 형형한 스님들의 수도와 정진의 공간. 거기서는 화려한 꾸밈이나 운치보다는 정갈하고 담백한 기운을 느껴볼 일이다. 남녘의 땅끝, 두륜산과 달마산의 암자를 찾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가을 풍경은 다른 곳과는 사뭇 달랐다. 동백나무와 난대림의 반질반질한 이파리가 가을볕에 반짝이는 사이 단풍이 물들고 또 떨어진다. 낙엽 다 떨궈 시린 나무들만 서 있는 산길에도 푸른빛이 성성한 신우대가 무리지어 우거져 있다. 가을이 다 지나간 뒤에도, 겨울이 당도한 이후에도 이쪽의 숲은 여전히 초록빛이다. 같은 초록이되 이즈음의 초록빛은 다른 계절의 것과는 다르다. 초록의 색감이 차갑고 또 맑다. # 두륜산의 산길을 따라 암자를 둘러보는 길
두륜봉 아래 암자 중에서 발길을 오래 붙잡는 곳이 옛 만일암터다. 두륜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가련봉 아래 자리 잡았던 만일암은 한때 두륜산 불법의 중심이었다. 산 아래 큰 절인 대흥사의 시작도 바로 이 암자였다. 지금은 다 허물어져 덩그러니 빈터만 남아 있지만 만일암은 여전히 산내 암자의 중심이다. 북미륵암과 남암의 이름에 쓰인 ‘남’과 ‘북’의 방위도 다 만일암을 기준으로 했다. 만일암의 북쪽이라 북미륵암이고, 남쪽이라 남암이라 했는데,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사라진 것’이 ‘있는 것’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암의 빈터는 텅 비어진 공간으로 오히려 충만하다. 암자 자리에는 본래는 7층이었으나 지금은 5층만 남아 있는 석탑이 대숲을 두르고 서 있다. 날렵하고 훤칠하게 솟은 석탑은 그 너머의 가련봉 암봉을 지붕으로 삼고 있다. 석탑 아래쪽에는 마른 가지로 활개를 치고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무도 수도를 하는 것일까. 산 아래 마을의 느티나무처럼 풍성하고 화려하지 않고, 성마르고 단단하다. 이름하여 ‘천년수’인데 실제 나이는 1000년에다 200년쯤을 더했다. 천년수에는 ‘해를 매달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천상의 세계에서 계율을 어겨 쫓겨난 천동(天童)과 천녀(天女). 이들이 하늘나라로 되돌아가려면 하루 안에 미륵불상을 조각해야만 했다. 거대한 바위에 불상을 조각하기에 하루란 시간은 턱없이 짧았다. 고심 끝에 천동과 천녀는 해를 여기 천년수에 매달아서 지지 않도록 해놓고 불상을 새겼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천년수는 시간을 붙잡아 매단 나무였던 셈이다. 낙엽이 깔린 만일암 주변의 정취는 다시 한번 천년수에 시간을 묶어놓고 싶을 만큼 빼어나다. 만일암을 거쳐 당도하는 북미륵암에서는 마애여래좌상이 압권이다. 용화전 안에 모셔진 불상은 높이만 4.85m에 달해 규모에서도 보는 이를 압도하는 데다, 단단한 화강석을 마치 무른 비누처럼 깎아낸 솜씨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봉긋 솟아오른 눈두덩이며 형형한 빛을 뿜는 눈, 부드러운 선을 가진 여래상의 얼굴은 도무지 1000년 전에 돌로 깎은 것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또 한 곳, 두륜봉 들머리 쪽의 관음암은 해질 무렵 두륜산 암봉 위로 솟는 탐스러운 달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딱 이맘때쯤 해질 무렵에 관음암 마당에서 가련봉과 두륜봉 사이로 둥실 떠오르는 달을 만날 수 있다. 암자의 이름을 ‘관음(觀音)’이 아닌 ‘관월(觀月)’로 쓰는 게 더 어울릴 듯하다. # 죽음 끝에 세운 암자와 하늘 끝에 세운 암자
그런데 해가 갈수록 절집 안에 건물이 빼곡해졌다. 10여 년 동안 중창불사가 계속되면서 승방과 선원, 수련원, 요사채, 누각이 세워졌다. 천왕문도 한창 짓고 있는 중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새로 놓인 건물들도 뽐내지 않고 반듯해서 절집의 옛 정취를 크게 흐뜨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헐거웠던 공간이 좀 더 단단해지면서 나름의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미황사가 품고 있는 암자는 부도암 단 하나다. 불붙은 화관 같은 달마산 암봉을 두르고 있는 절집이 거느린 암자가 하나뿐이라니 어쩐지 좀 서운하기도 하다. 부도암은 이름 그대로 부도밭을 거느리고 있는 암자다. 탑이 부처의 사리를 모셨다면, 부도는 고승의 사리를 담은 자리. 다 버리고 떠나는 죽음의 공간을 넘어가면 거기 피안의 세상이 있으니, 부도암의 죽음의 끝과 피안의 처음에 서 있는 셈이다. 부도전 곁에 세워진 부도는 놓아둔 그대로 조형예술품이다. 문양 하나하나가 빼어난 그림 같아서 찬찬히 둘러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서산대사의 제자였던 고승들의 부도탑에는 게와 물고기, 거북이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미황사 대웅전 기둥 돌받침에 돋을새김된 게, 거북이와 쌍을 이룬다. 다 두고 빈손으로 돌아간 고승의 자취에다 위엄 있는 조각 대신 왜 슬며시 미소를 머금게 하는 게와 거북이를 쪼아두었을까. 이유는 미황사의 창건설화 때문이다. 인도에서 화엄경과 불상을 실은 배가 달마산 아래 포구에 닿았고, 이런 연유로 미황사가 지어졌단다. 그래서 부도에도 위엄으로 치장한 용이 아닌 게와 거북이 새겨진 것이다. 이런 소박한 조각에서는 권위로 제압해 사람들을 물러서게 하는 엄격함보다 미소로 다가오게 하는 따스한 힘이 느껴진다. 달마산에는 우리 땅의 암자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자리에 세워진 암자 도솔암이 있다. 암자 아래 미황사가 있지만, 도솔암은 뜻밖에 두륜산 대흥사의 암자다. 도솔봉까지 차로 올라서 공룡의 등줄기 같은 암봉 능선을 20분쯤 따라가면 거기 도솔암이 있다. 도솔암으로 드는 길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왼쪽으로는 진도 앞바다를, 오른쪽으로는 완도의 바다를 끼고 있는 이 길에 접어들면 마치 하늘을 딛고 걷는 듯하다. 거친 벼랑의 봉우리 끝에다가 어찌 저런 암자를 세웠을까. 아슬아슬한 암봉을 축대로 막아 그 자리에 전각을 세우고 손바닥만 한 마당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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