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단장(斷腸)과 유예(猶豫)

醉月 2008. 8. 15. 09:12

 
"단장"과 "유예"란 말은 모두 원숭이와 관계된 말이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합니다"

"단장" 이란 글자 그대로 창자가 끊어진다는 말이다.
진(晋) 나라 때 《수신기(搜神記)》란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임천(臨川) 동흥(東興)에 사는 어떤 사람이 산에 들어갔다가 원숭이 새끼를 얻어 데리고 돌아왔더니,
원숭이 어미가 나중에 혼자 그 집까지 쫓아왔다.
그 사람은 원숭이 새끼를 뜨락의 나무 위에 묶어 두고 이 모습을 보게 하였다.
그러자 그 어미는 사람을 향해 제 뺨을 치면서 제발 돌려 달라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그래도 놓아 주지 않고 마침내 그 새끼를 쳐서 죽였다.
어미 원숭이는 구슬피 부르짖으며 제 몸을 던져 죽었다.
그 사람이 배를 갈라 살펴 보니 창자가 마디 마디 끊어져 있었다."

 
또 《世說新語》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桓公이 蜀 땅에 들어가 三峽을 지나는데,
부하 한 사람이 원숭이 새끼를 잡아 끌고 갔다.
그러자 그 어미가 강 가를 따라 슬피 부르짖으며 백 여리를 가도록 쫓아 왔다.
마침내 배 위까지 뛰어 올라 와서는 힘이 다하여 죽었다.
그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마디 마디 끊어져 있었다.
桓公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그 사람을 쫓아버렸다.  

새끼를 잃은 어미 원숭이의 "애 타는" 마음은 마침내 그 창자를 마디 마디 끊어 놓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뒤에 "단장" 이란 말은 혈육지친 간의 슬픈 이별이나 지극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흔히 우리 말에 "애가 끊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 "단장"을 옮긴 말이다.
이 밖에 "애가 탄다", "애간장이 녹는다", "애 먹었다", "애 썼다"는 등의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때 "애"는 바로 `창자`의 순 우리말이다.

 
유예(猶豫)란 말은 사전을 찾아보면,
"시일을 늦춤,
망설여 결행하지 않음"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흔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결정을 내리지 못함을 일컫는 말이다.

 
당나라 때 공영달(孔穎達)은 《오경정의(五經正義)》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猶)는 원숭이의 일종이고,
예(豫)는 코끼리의 일종이다.
두 짐승은 진퇴에 의심이 많은데,
의심이 많은 사람들이 꼭 이 짐승과 같다.
그래서 유예라고 한다.

"또 안사고(顔師古)란 이는 《한서(漢書)》의 주석에서 "유(猶)는 나무를 잘 타는 짐승이다.
이 짐승은 의심이 많아 산중에 있으면서 홀연 소리가 들리면 사람이 와서 해칠까 두려워 하여
번번이 미리 산에 올라가고,
사람이 없으면 그제서야 내려왔다가 잠깐 뒤 다시 올라가곤 한다.
이러길 한 두 번 하는 것이 아니므로,
결단내리지 못하는 것을 두고 [유예]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 "유예"란 말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여러 설이 분분했는데,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후인들이 글자를 보고 뜻을 새긴 견강부회의 결과로 보아,
위와 같은 풀이를 잘못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설사 그것이 후인들의 견강부회라 해도 옛 사람들의 상상력의 한 자락을 들여다 볼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흥미롭다.

 
또 흔히 "독(獨)"이란 말은 "홀로", 또는 "고독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독(獨) 또한 원숭이의 일종으로 원숭이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더 크고,
원숭이들 처럼 무리지어 살지 않고 혼자 외따로 떨어져 산다.
이 독이란 짐승은 원숭이를 잡아 먹고 산다고 하는데,
새벽녘 외로이 어슬렁거리다가 한번 울음을 토하면 뭇 원숭이들은 그만 무서워 숨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렇듯 글자 하나, 단어 하나에도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지혜의 자취가 서리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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