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낭폭포와 멍우리협곡’ 한탄강 최고의 지질명소 현무암협곡 아래 걸린 장엄한 폭포, 영화 촬영지로 각광 숲길·출렁다리·청보리 강변… ‘벼루길’ 구간이 대표코스 금주산 좁은 협곡에 숨은 ‘금룡사’엔 18m 높이 미륵불 거대한 바위에 수백개 불상 들어앉은 모습도 ‘장관’ 조선3대 명승지 손꼽힌 정자 ‘금수정’, 물길과 어우러져 #화산이 만든 돌은 어디 쓰였을까. ‘한숨을 쉬며 탄식한다’는 뜻의 ‘한탄’과는 전혀 관계없다. 크다는 의미의 순우리말 ‘한’에 ‘여울 탄(灘)’의 ‘한탄’인데, 굳이 ‘한나라 한(漢)’을 붙여 ‘한탄강(漢灘江)’으로 쓴다. 즉 ‘큰 여울의 강’이란 뜻이다. 지질과 용암이 만든 강(江). 경기 포천과 연천, 강원 철원 땅을 지나는 한탄강은 수십만 년의 세월 동안 불과 물이 깎은 현무암 협곡 사이로 여울을 이루며 흐르는 강이다. 한탄강은 다른 강과는 사뭇 다르다. 거의 대부분 구간에서 바닥이 푹 꺼진 주상절리의 직벽 아래로 흐른다. 사람이 사는 땅 저 아래에 강이 있다. 강변으로 가려면 ‘내려가야’하는 이유다. 한탄강 일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지질공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와중이어서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 7월 지정됐다. 44개 나라의 161곳이 세계지질공원이 됐는데, 한국이 가진 세계지질공원은 여기 한탄강을 포함해 제주, 청송, 무등산 등 모두 4곳이다. 포천의 대표적인 지질명소인 비둘기낭폭포 인근에는 한탄강지질공원센터가 있다. 그럴듯한 커피숍까지 편의시설로 갖추고 있는 지질공원센터는 짜임새 있다. 말하자면 ‘선진국형’이다. 딱딱하고 지루한 교육자료로 가득할 거란 걱정일랑 접어둬도 좋다. 의외다. 지질의 형성과정에 대한 소개가 흥미진진하다. 지질의 특성이 눈과 귀에 쏙쏙 들어온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이런 얘기. 포천에서 나는 화강석은 포천석과 운천석으로 나뉘는데 포천석은 국회의사당, 대법원, 세종문화회관 건축에, 운천석은 청계천 광통교 복원에 사용됐단다. 이런 식으로 어디에서 캐낸 화강석이 어떤 건축물에 쓰였는지를 설명한다. 경북 문경에서 캔 문경석은 외환은행 본점과 연세대 박물관 표석으로, 경남 함양 마천면에서 나는 마천석은 인천공항 제2청사의 의자로, 경북 상주 화북면의 화북석은 서울시청 청계광장 조성에 쓰였단다. 따분한 광물 성분의 화학기호보다 이런 쓰임새에 관한 얘기가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물과 불이 만든 비밀스러운 폭포 한탄강지질공원의 지질명소는 모두 15곳. 한탄강 물줄기가 지나는 철원과 포천, 연천이 각각 5개씩 지질명소를 사이좋게 나눠 갖고 있지만, 한탄강 지질관광의 거점은 단연 포천이다. 한탄강지질공원센터가 포천에 있는 건 그래서다. 포천의 지질명소 중 목적지로 삼기에 가장 좋은 곳이 ‘비둘기낭폭포와 멍우리협곡’이다. 다른 14곳의 지질명소는 딱 한 장소를 지목한 것인데, ‘비둘기낭폭포와 멍우리협곡’은 한탄강을 끼고 이어지는 제법 긴 구간 전체가 하나의 지질명소다. 비둘기낭폭포는 화산 분출로 만들어진 수직 절리 현무암이 침식하면서 만들어진 폭포. ‘비둘기낭’이란 이름은 비둘기들이 폭포 협곡의 동굴과 수직 낭떠러지에 둥지를 틀어 붙여진 것이란 얘기도 있고, 동굴의 지형이 비둘기 둥지처럼 움푹 들어간 주머니 모양이라 그렇게 부른다는 설도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군사지역 내에 있어 5군단 휴양지로 사용돼 3사단 백골부대와 6사단 청성부대, 8사단 오뚜기부대 사단장이 드나들었다. 어느 해에는 여름에 비둘기낭폭포를 찾아온 사단장의 별 개수를 다 더하면 11개나 됐다던가. 수직의 현무암 협곡 저 아래 내걸린 비둘기낭폭포는 비밀스럽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하다. 비가 내려야 물줄기가 걸리고, 폭포 아래로 내려서는 길이 지난여름 수해로 닫혔지만, 비둘기낭폭포는 신비스러운 물색과 기이하고 독창적인 경관을 보여준다. 비둘기낭폭포가 사극이나 영화 촬영지가 된 이유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폭포는 예외 없이 가장 극적인 장면의 배경이 됐다.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보도교인 ‘한탄강하늘다리’. 다리 위에서 강 양쪽의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낙엽 진 뒤에 협곡의 뼈대가 드러나다 비둘기낭폭포에서 멍우리협곡을 지나 한탄강 지류인 부소천까지 이어지는 길은 ‘한탄강주상절리길’의 3코스 ‘벼루길’ 구간이다. ‘벼루’는 벼랑을 뜻한다. 강 건너편에도 주상절리길 2코스 ‘가마소길’과 4코스 ‘멍우리길’이 있지만, 지난여름 수해로 길이 닫혔다. 그러니 지금 한탄강주상절리를 걷는다면 선택의 여지 없이 ‘벼루길’이지만, 아쉬울 건 하나도 없다. 수해가 없었다 해도 한탄강주상절리길의 대표 코스는 벼루길이기 때문이다. 비둘기낭폭포에서 멍우리협곡으로 이어지는 벼루길은, 억새가 물결치는 푸근한 숲길을 지나 주상절리의 벼랑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표정의 길이다. 아찔한 출렁다리를 건널 수도 있고, 협곡 사이에 강으로 내려서는 샛길도 있으며 초록의 청보리로 뒤덮인 강변 풍경도 있다. 벼루길 구간의 초입에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보도교 ‘한탄강 하늘다리’가 있다. 하늘다리는 주상절리를 이룬 강 양쪽 수직 직벽 사이에 놓은 출렁다리. 다리 한가운데에 서면 강 이쪽저쪽의 주상절리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다리 바닥 일부를 투명유리로 마감해 유리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강물이 아찔하다. 벼루길 전체를 통틀어 하이라이트는 멍우리협곡 일대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협곡은 문화재청이 지정하는 어엿한 ‘명승’이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란 관광안내판의 문구는 실소가 나오지만, 그래도 전국의 명승 114곳 안에 꼽힌 곳이니 그 값을 한다. 멍우리협곡의 경관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는 U자로 굽이치는 강변 벼랑에 세운 전망대다. 벼루길 어깨쯤에다 나무로 짠 덱 위에 서면 협곡의 경관이 시야 가득 펼쳐진다. 비둘기낭폭포에서 부소천까지는 6㎞ 남짓. 딱 한군데 목제 계단만 빼면 전 구간이 거의 평지와 다름없다. 느린 걸음으로 왕복한다면 3시간 남짓. 부소천까지 다 가지 않고 멍우리협곡 전망대까지만 다녀오면 1시간쯤을 줄일 수 있다. 포천의 금주산에 깃들인 절집 금룡사 법당 뒤 바위벽에 감실을 파서 부처와 나한상을 모셔놓았다. 이런 식으로 조성한 ‘천불감실’은 다른 절집에서는 본 적이 없다. 직벽 바위 위쪽에는 산 아래를 굽어보는 18m 높이의 거대한 미륵불을 세워놓았다. #바위마다 들어앉은 천불(千佛)과 미륵 이번에는 포천의 낯선 얘기. 여행자들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절집과 부처, 그리고 미륵 이야기다. 포천 북쪽 영중면에 금주산이 있다. ‘금주(金珠·금구슬)’란 이름 그대로 금이 났던 산이다. 예로부터 “산에 금 아홉 덩이가 묻혀 있는데, 아들을 아홉 둔 이라야 그 금을 캘 수 있다”는 얘기가 전해왔는데, 실제로도 금주산에 일제강점기 때 개발한 광산에서 최근까지도 금을 채굴했다. 금주산 허리쯤에는 절집 금룡사가 있다. 좁은 협곡 사이에 발뒤꿈치를 든 듯 아슬아슬한 자리에 열다섯 칸이 넘는 거대한 법당이 앉아 있다. 금룡사는 다른 절집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금룡사는 미륵을 모신다. 주법당이 미륵전이고, 미륵전 뒤에다 18m 높이의 거대한 순백색 미륵불을 세워뒀다. 미륵불은 1970년에 세운 것이라는데, 점안식에 미륵이 현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절에서 눈에 먼저 띄는 건 미륵이지만, 미륵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있다. 수직의 바위 벼랑에다 오목한 감실(龕室) 수백 개를 파서 그 안에다 주먹만 한 작은 불상과 나한상을 넣었다. 거대한 바위에 저마다 굴을 파고 부처가 들어 있는 형상이 장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본 적 없는 이른바 ‘천불감실’이다. 말하기로는 ‘천불’이지만, 실제 불상 숫자는 그 절반쯤 될 듯하다. 금룡사에는 스님이 없다. 과거에 주지 소임을 맡았던 스님이 산 아래에서 기거하고 있긴 하지만, 5년 전부터 금룡사는 스님 없는 사찰이다. 그 연유는 이렇다. 금룡사는 고종 때인 1865년 창건 후 작은 암자로 명맥을 유지하다 1960년대 말쯤 출가한 군 출신이 암자를 사들여 불사를 크게 일으켰다. 1970년에 미륵불을 세웠고, 1974년에 법당을 지었다. 그때의 기록이 법당의 주춧돌에 있다. 금룡사는 본디 태고종 소속 사찰이었다. 그러나 불사를 일으켰던 스님이 세상을 떠나고 절집의 형편이 어려워져 급기야 5년 전 금룡사는 경매에 부쳐졌다. 금룡사를 경매로 사들인 건 산 아래서 미륵박물관을 운영하는 ‘구천미륵회’다. 증산교 계열의 구천미륵회는 대웅전 현판을 미륵전으로 바꿔 걸었고 스님 대신 관리인이 절을 지키게 했다. 금룡사에서 내려다보면 신철원으로 가는 37번 국도변에 우뚝 솟은 거대한 미륵불이 보인다. 거기가 구천미륵회가 있는 미륵박물관이다. 말만 박물관이지 별다른 관람시설은 없고,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28m 높이의 석조미륵불과 거대한 법당, 그리고 마당에는 나한상부터 성모상까지 종교를 초월한 석물이 가득하다. 이곳이 증산교 계열이라는 걸 안 건 미륵박물관 입구에 걸린 ‘미륵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현수막에 적힌 ‘음력 9월 19일’로 유추한 것. 증산교를 창시한 강일순의 생일이 음력 9월 19일이다. 어찌 됐든 종교야 저들의 일. 여행지로 들른 미륵박물관은 다양한 석물의 독특한 배치로 제법 흥미롭다. #조선의 3대 명승지가 포천에 있다 포천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곳 하나 더. 영평천변의 정자 ‘금수정(金水亭)’은 지금은 아는 이가 거의 없지만, 한때 ‘조선의 3대 명승지’ 대접을 받았던 곳이다. 포천은 ‘내(川·천)를 안고(抱·포) 있는’ 도시다. 안고 있는 물길 중 대표적인 것이 산내천과 영평천이다. 두 개의 물길이 빚어놓은 여덟 곳의 수려한 경관을 일러 ‘영평 8경’이라 했다. 백로주, 선유담, 와룡암, 창옥병…. 우거진 숲, 맑은 물, 기암괴석에다 이름을 얹은 8경에는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금수정은 영평 8경 중 제2경이다. 정자의 본래 주인은 고려말의 학자 김구용이다. 친명파였던 그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모함을 받아 중국에서 병사했고, 금수정은 김구용의 후손 안동김씨 가문으로 내려오다가 조선 4대 서예가로 꼽히던 양사언에게 넘어왔다. 양사언은 안동김씨의 외손이었는데, 어떤 연유로 외손에게 정자가 넘어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찌 됐건 양사언은 영평천 물길과 어우러지는 정자의 그윽함을 노래하는 글을 절벽이며 천변 바위에다 새겼다. 암각문 한석봉의 글씨도 보인다. 금수정은 정자에 들어서 보는 경관보다 물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게 훨씬 더 운치 있다. 물 건너편은 공장과 축사로 온통 어지러운데도, 물가로 내려서면 천변의 둥글둥글한 바위며 백사장과 어우러지는 정자의 모습이 제법 근사하다. 지금은 쇠락했지만 금수정은 조선 후기 선비들 사이에서 금강산, 도봉산과 함께 ‘3대 명승지’로 손꼽혔다. 객관적인 옛 명승의 목록을 담은 문헌을 토대로 조선 후기 최고의 명승지를 가려낸 결과다. 금수정이 당대에 얼마나 빼어난 이름이었는지는 정자 안에 걸린 시판을 보면 알 수 있다. 벽면이 좁아 시판에는 양사언을 비롯해 한음 이덕형, 농암 김창협, 서계 박세당의 시만 걸어놓았는데, 현판의 금수정기(金水亭記)에 적어둔 금수정을 노래한 시를 쓴 당대의 내로라하는 선비들 이름은 읽기조차 숨 가쁘다. 박순, 이수광, 허목, 이익, 채제공, 유득공, 이서구…. #전통주의 풍류, 그리고 찜질방 포천을 오고 가는 길에 들러보라고 꼭 권하고 싶은 곳이 ‘산사원’이다. 전통주 생산업체인 ‘배상면주가’가 운영하는 산사원은 지난 1996년 개관한 술문화박물관. 평생 전통주를 빚는 데 헌신해 ‘누룩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우곡 배상면의 양조철학이 깃든 곳이다. 산사원에서는 술을 만드는 과정과 술의 종류 등을 관람하고 시음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입장료만 내면 무제한 가능한 시음체험이 만족도가 높다. 시음 주류의 종류는 스무 종에 가까운데, 한 병에 2만9000원짜리 ‘쌍화주’도 있으니 시음은 ‘남는 장사’다. 지금은 수도권 거리두기 격상으로 시음체험이 중단됐고, 대신 매장에서 술을 사면 가격을 깎아주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와인이나 맥주에는 없는, 전통술에만 깃든 게 ‘풍류’다. 산사원에서 본 술을 설명한 한 편의 시(詩) 같은 문장에서 그 풍류를 본다. “술은 뜨거운 것이고 물은 찬 것입니다. 현대인의 술은 뜨거움만 강조해 폐해를 낳고 있습니다. 우리 술은 달처럼 차고, 달만큼만 따뜻합니다. 그것은 술의 근본이 물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산사원이란 이름은 ‘산사나무가 있는 정원’이란 뜻. 그 의미에 맞게 실외 공간도 잘 꾸며져 있다. 정원에서 눈길을 끄는 건 ‘밭 전(田)’ 자 모양의 회랑으로 이뤄진 공간인 ‘세월랑’. 회랑을 따라 65도짜리 술이 익어가는 600ℓ가 넘는 커다란 술독이 늘어서 있다. 정원에는 전북 부안의 만석꾼 집 쌀 창고를 뜯어다 세운 누룩 전시공간인 ‘부안동’, 운악산을 마주 보는 2층 누각 우곡루, 전남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을 본떠 지은 정자 ‘취선각’도 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시대에 가족과 다녀오기 딱 좋은 곳을 덧붙인다. 신북면의 ‘IM힐링타운’. 1만3000여 평의 부지에 건물 9개 동이 들어섰는데, 동마다 각각 8개의 찜가마 겸 숙소가 있다. 직경 3m의 돔형으로 만든 황토 찜가마가 객실당 하나씩 있으니 온천의 가족탕처럼 가족만 이용할 수 있는 ‘가족찜질방’인 셈이다. 찜가마 겸 숙소에는 개별 야외 바비큐 시설도 있다. 객실은 좀 좁은 듯하지만, 찜질방이나 온천조차 마음 편히 가지 못하는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2인 숙박 기준 7만9000원)에 가족과 함께 안심하고 찜질을 즐기며 묵어갈 수 있다. ■ 포천의 술 문화박물관 ‘산사원’ 전시실에서 마주한 인상 깊은 문장 한 구절. “술은 뜨거운 것이고 물은 찬 것입니다. 우리 술은 달처럼 차고, 달만큼만 따뜻합니다. 그것은 술의 근본이 물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뜨거운 줄로만 알았던 술이, 물의 차가운 본성에서 나왔다는 가르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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