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영지 순례]복과 지혜 양손에 쥔 천관보살이 머무르는 장흥 천관사
조용헌 강호동양학자
▲ 천관산은 천관보살이 머리에 쓰고 있는 관의 모습과 흡사하다. photo 조용헌 |
가보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못 가본 산이 있다. 인도의 아루나찰라산이다. 높이는 대략 700m급.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이 산에서 금세기 최고의 성자라고 일컬어지는 라마나 마하르쉬(Ramana Maharshi·1897~1950)가 평생 떠나지 않고 살았다. 라마나 마하르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저서로 유명하다. 필자도 20대에 가장 탐독했던 책이 마하르쉬의 이 책이었다. 마하르쉬는 아루나찰라산에서 300여㎞ 떨어진지역에 살다가 17세 때 갑자기 깨달음이 왔다. 특별히 도를 닦지 않고 일상생활을 했지만 ‘진아는 죽지 않고 영원하다’는 깨달음이 갑자기 온 것이다. 죽음은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렇다면 죽는 것은 무엇인가. 가아(假我)이다. 진아는 죽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는다. 불생불멸이고 부증불감이라는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내면에서 계속 ‘아루나찰라, 아루나찰라’라는 소리가 올라왔다. 이때부터 아루나찰라산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이 산 이곳저곳에서 살았다. 그가 처음 아루나찰라산에 들어갔을 때 그 기쁨과 법열에 빠져서 밥먹는 것도 잊고 잠자는 것도 잊은 채 몇 날 며칠이고 삼매 상태에서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산 전체가 명산이고 기도처이고 성스러운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종교적인 명상이 잘되고 기도가 잘되는 산이 특별히 있기는 있다. 바로 바위가 많고, 바위 속에 철분이 많이 함유된 산이다. 인체의 혈액도 헤모글로빈이 주성분이고, 이 헤모글로빈의 주성분이 바로 철분이다. 암석의 철분과 인체 혈액의 철분이 서로 감응 작용을 하는 것이 기도나 종교적 영험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철분이 많은 산은 약간 불그스름한 빛을 띤다. 특히 석양 무렵이 되면 햇볕에 철분 기운이 반사되어 산 전체가 붉은 산으로 비친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문경 봉암사가 있는 희양산의 바위암벽도 붉은빛으로 보인다. 영암의 월출산도 번개가 많이 친다. 번개가 많이 친다는 것은 철분이 많다는 뜻이다. 미국 세도나에 범휴(梵休·63) 스님 토굴이 하나 있는데, 이 토굴의 뒷산 이름이 ‘선더 마운틴’이다. ‘천둥번개산’이라는 뜻이다. 실제 번개가 많이 친다. 여기도 역시 산이 붉다. 철분이다. 하여튼 아루나찰라산은 평지에서 이 산 하나가 돌출되어 있는데, 멀리서 보면 붉은 산으로 보인다고 한다. 인도의 아루나찰라산 주변에서 몇 달간 거주해본 경험이 있는 어느 스님에 의하면 산을 한 바퀴 도는 데 길이가 14㎞이고, 산 전체 모양이 삼각형처럼 바위가 뾰쪽해서 불꽃처럼 보인다고 한다. 풍수적으로 보면 화체(火體) 산에 해당한다. 화체 형태의 산이 기도발이 영험하다. 문필봉으로 보이기도 한다. 철분이 많고 화체이면 ‘따따블’이다. 아주 종교적인 영험이 강하다.
아루나찰라산 정상에 불을 피울 때
아루나찰라산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일주일 정도 불을 피운다. 산 정상의 바위에다가 버터기름을 몇 톤 정도 부어서 불을 피우는 것이다. 산 정상에 불을 피워 신의 영험함을 찬양하는 축제이다. 사주팔자에 불이 많은 사람들이 기도발도 잘 받는다. 신령함은 불꽃으로 표현되는 게 맞는다. 이 신령스러운 아루나찰라산이 인도의 동남부 타밀라두주(州)에 있다. 스리랑카와도 가까운 지역이다. 바다를 건너면 바로 스리랑카이다. 인도에서는 이 산의 영험함을 5000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힌두교에서는 시바신이 화현한 산이라고 여겨왔다. 인도 고대의 명산, 힌두교의 명산이기도 한 동남부의 아루나찰라산이 시간이 흐르면서 불교에 편입된다. 화엄경 ‘보살주처품’에 ‘동남방에는 천관보살이 1000여명의 대중과 상주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천관(天冠)은 하늘의 관을 쓰고 있는 보살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동남부라는 위치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없다. 종교적 성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간판을 바꿔 리노베이션하는 경우가 많다.
화엄경에서 천관보살이 상주한다는 곳은 인도의 아루나찰라산을 모델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보살주처품에서 동남방에 있다고 묘사한 천관보살의 상주처는 중국으로 넘어가 푸젠성 민둥(閩東) 지방의 산이 지제산으로 비정되었다. 한자로 지제산(支提山)으로 음역되었다. 한자의 ‘支提’는 산스크리트어의 ‘cetiya’를 중국어 발음으로 음사한 것이다. ‘cetiya’는 탑, 또는 보관(寶冠)이라는 뜻이다. 중국 동남부에 있는 지제산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전남 장흥의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성립되었다. 천관산의 형태가 탑처럼 생겼으면서도 동시에 천관보살이 머리에 쓰고 있는 관(冠)의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천관산을 다른 이름으로는 지제산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지제’나 ‘천관’이나 같은 의미이다. 인도에서 시바신의 화현이라고 여겨졌던 아루나찰라산이 중국 푸젠성으로 넘어와 지제산이 되었고, 다시 한국으로 넘어와서는 전남 장흥군의 천관산(지제산)으로 재현된 셈이다. 아루나찰라산의 손자뻘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이 천관산에 천관보살이 머무르고 계시다는 것이 불교적 신앙심이다.
복과 지혜를 다 주는 천관보살
천관보살은 어떤 주특기가 있는 보살인가? 복과 지혜를 다 준다는 것이 주특기이다. 복이 있으면 지혜가 부족할 수 있다. 반대로 지혜가 많은 사람은 복이 적은 편이다. 사람이 머리가 좋으면 너그럽지 못하고 잘 베풀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약간 멍청한 듯한 사람들이 잘 베풀고 손해도 보고 그래서 나중에는 복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복과 지혜는 같이 지니기가 사실 어렵다. 천관보살은 이 두 가지를 다 준다는 보살님이다. 강원도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산이고, 금강산은 법기보살이다.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는 관음보살이 머무른다는 도량이고, 고창 선운산 선운사는 지장보살이다. 기도처로 유명한 대구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은 약사여래라고도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머리에 네모진 관을 쓴 걸로 봐서 미륵보살 같기도 하다.
장흥 천관산의 천관사는 천관보살의 도량이다. 천관보살은 삼국시대에 유행했던 보살신앙으로 보인다. 지금은 천관보살이라는 이름이 낯설다. 잘 모른다. 머리에 화려한 관을 쓴 이미지가 관음보살과 겹친다. 천관보살 신앙은 인도도 그렇지만 푸젠성이나 전라남도 장흥의 천관산 위치를 보았을 때 남쪽지방에서 유행했던 신앙이 아닌가 싶다. 즉 바닷길 해로를 타고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해상불교 루트를 타고 전래된 불교이다. 고대의 고속도로가 바닷길이다. 육로로는 장거리 여행이 아주 어려웠다. 배를 타고 순풍에 돛을 달면 그대로 직행이다. 천관산은 이 고대의 해상무역에서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하던 산이었다. 나침판과 이정표가 없던 시절에 해안가 주변의 큰 산을 보고 뱃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구나’ 하는 감을 잡았다.
▲ 천관산 정상에는 여러 개의 입석 바위들이 마치 치아처럼 서 있다.
남해안 해상 교역로의 요지를 품은 곳
천관산은 그러한 고대 뱃사람들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던 산이었다. 바닷가에서 바로 보이는 큰 산이다. 높이는 723m라서 그리 높지는 않지만 해안가 수평선에서 바라다보면 높은 산이다. 더군다나 천관산의 정상에는 바위들이 솟아 있다. 마치 왕관의 상부에 있는 장식과 유사한 바위들이 솟아 있는 모습이 아주 특이하다. 멀리서 보아도 이 정상의 바위들이 관처럼 보인다. 천관산의 모습은 정상에 있는 바위 모습에서 유래된 것이 분명하다. 이 바위들의 모습이 화엄경을 연구한 불교 승려가 보기에는 천관보살이 쓰고 있는 관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해상무역을 하던 고대 무역상들도 이 천관산의 특이한 모습을 보고 하나의 이정표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천관산 아래쪽 바닷가에는 고대부터 국제 무역항으로 기능하였던 회진항(會鎭港)이 있다. 고대의 국제 무역항이었을 것이다. 이 회진항을 통해서 중국의 남방지역과 바다 무역이 이루어졌지 않았나 싶다. 한국에 전래된 불교도 북쪽의 실크로드와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불교도 있지만, 남쪽의 바닷길을 통해서 들어온 불교가 더 빠르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한국불교남래설이다. 육지보다 바닷길을 통해서 불교가 먼저 들어왔다고 보는 시각이다. 예를 들면 가야 김수로왕의 허황후가 1세기 무렵에 바닷길로 들어왔다. 우리나라 남서해안 일대에는 배를 통하여 불상과 경전이 실려 왔다는 설화들이 많이 전해진다. 회진항을 통한 천관산의 천관사도 이와 유사한 케이스로 보인다.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해상항로, 해상무역의 주요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하롱베이 또는 중국 남쪽 지방의 상인들과 교역이 있었을 것이고, 상인들이 왕래하다 보면 그다음에는 승려들이 왕래하게 되어 있다. 상인을 따라서 승려는 온다. 바다의 풍랑을 겪어야 하는 바다 상인들은 운을 중시한다. 항로의 안전을 이끌어 주는 행운과 돈이야말로 상인들의 의지처이다. 이 두 가지를 보장해주는 신이 인도 힌두교에서는 락슈미(Lakshmi) 여신이다. 돈과 행운. 머리에 관을 쓰고 붉은색 인도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돈과 행운을 가져다 주는 락슈미 신이 인도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인기가 있다. 가장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신이다.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매우 추상적인 신념체계이지만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점에서 아주 현실적이다.
관념과 현실이 이렇게 얽혀 있다. 락슈미 여신이 불교로 들어와서 변형된 모습이 바로 천관보살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고대 해상항로의 거점이기도 한 회진항의 천관산에는 천관보살이 모셔질 만하다. 더군다나 산의 모습도 천관보살이 관을 쓴 것처럼 생겼다. 아마도 해상왕 장보고 시절에 회진항도 매우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장보고의 거점이었던 완도의 청해진이 천관산과 지척에 있다. 바로 바라다보이는 지점이다. 천관산은 보성만과 강진만을 좌우로 두고 남해를 바라본다. 전남 3대강의 하나인 탐진강을 품고 있는 위치이다. 중국을 상대로 하는 남해안 해상 교역로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바닷가의 교역로에 위치해 있다 보니 천관산과 천관사는 남아 있는 자료가 많이 소실되었다. 천관사의 역사는 자료 이전에도 전개되었겠지만, 시간의 풍파를 견디는 것은 역시 기록뿐이다. 아쉽지만 기록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천관사는 신라 때 원표(元表) 스님과 깊은 인연이 있다. 원표는 당나라에 유학하여 공부하다가 멀리 서역에까지 가서 불교를 공부한 승려이다. 다시 중국에 들어와 ‘80화엄경’을 구해 공부하다가 중국 푸젠성에 천관보살이 상주할 만한 산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푸젠성 지제산에서 도를 닦았다. 중국 지제산에서 수십 년 동안 도를 닦던 원표 스님이 신라 경덕왕의 귀국 요청을 받고 755년쯤에 장흥 천관산에 들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에 있는 보림사(寶林寺) 창건도 대개 이 무렵에 이루어진 일이다. 당시 인도에까지 갔다 오고 중국의 남북을 다니며 화엄경을 공부한 국제적 석학이 원표이다. 국제정세에 관한 귀중한 식견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 원표이다. 천관보살에 매료되어 있던 원표로서는 신라에 입국하여 천관산 정상에 솟은 바위 모습을 보고 이곳이 천관보살이 머물 만한 곳이라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천관산에 대한 후대의 기록을 보면 지제산이라고 표현된 대목이 여러 군데이다. 원표 이후로 역사의 풍파를 많이 겪으면서 천관사는 흥망성쇠를 겪는다. 각종 난리와 임진왜란 같은 전란에 소실되면서 여러 기록도 사라진다. 수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절이지만 이게 사라지고 없다. 파편으로 남은 기록과 정황 등을 고려해 추정만 할 뿐이다.
절들이 산 정상을 바라보고 있는 이유
천관사는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천관사 터의 특징은 천관산 정상 부근의 입석(立石·선바위)들을 바라다볼 수 있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천관보살의 관에 해당하는 바위들이다. 절의 방향은 서향이다. 지는 태양을 바라다보는 터이다. 이런 터는 아미타도량이다. 아미타불은 서쪽에 계시기 때문이다. 서쪽은 극락이다. 극락보전이 주 건물이다. 그런데 대웅전 법당 터는 서향이 아니라 방향을 휙 틀어서 천관산 정상의 관암(冠岩)들이 바라다보이는 방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왜 정상의 관암들이 바라다보이도록 터를 잡았을까.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관암에서 뻗어져 나오는 서기를 받기 위해서이다. 이 관암의 기운을 받는 것이 곧 기도발이다. 정상의 바위들은 한두 개의 거대한 암석이 아니다. 여러 개의 입석 바위가 듬성듬성한 치아처럼 서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이런 바위가 도열해 있는 모습은 다른 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
더군다나 정상에서는 남해안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장보고의 청해진이 있던 완도 일대도 바로 눈앞에서 다 내려다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낙안의 징광산, 고흥의 팔영산, 천등산, 고흥의 절이도(島), 장흥의 금당도, 평이도, 산이도가 보인다. 정남쪽으로는 강진의 조약도, 신지도, 고금도, 완도가 보인다. 천관산의 명물은 동백이다. 무려 66만㎡(20만평)에 단일수종 동백이 서식하고 있다. 2~3월에 동백이 피면 이 일대는 동백꽃 장관을 연출한다. 다른 꽃과 달리 동백꽃은 녹색의 이파리와 아주 대조되는 꽃이다. 사람 키가 넘어가는 동백나무에서 탐스러운 커다란 꽃이 숲을 이루어 피어 있는 장면은 장관이다. 봄이 되면 꼭 이 동백을 보러 와야겠다. 그래야 사는 보람이 있다. 거의 폐허처럼 있던 천관사는 현재 주지스님 지행(志行·59)이 2010년부터 중창불사를 해온 덕택에 어느 정도 사격을 갖추었다. 지행 스님의 원력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콘텐츠를 품고 있는 천관사이지만 역사와 전쟁의 풍우에 쇠퇴하다가 다시 원력을 품은 스님을 만나 동백꽃처럼 다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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