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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어잡이 홍석남의 30년 ‘참치 인생’

醉月 2009. 7. 23. 08:20

다랑어잡이 홍석남의 30년 ‘참치 인생’
“참다랑어 활어 맛요? 안 먹어봤으면 말을 마세요” 다랑어잡이 홍석남은 욕지도에서 한국 최초로 참다랑어를 양식한다.

30년 동안 그를 먹여 살린 참다랑어는 등 푸른 보석이다. 어부들은 참다랑어가 팔려나갈 날을 기다린다. 조바심을 낸다. 목이 빠진다.

그는 바다의 개척자(開拓者)다. 늘 프런티어에 서 있었다.

“경남 남해군에서 태어나 바다 너머 세계를 동경하며 자랐어요. 그런데 푸른 바다는 없더군요. 바다에서 보는 바다는 잿빛 일색입니다.

노동의 바다, 투쟁의 바다가 있을 뿐입니다.”

바다를 동경하며 자란 ‘소년’은 15척의 원양어선을 거느린 회사의 ‘전문경영인’이 됐다. 인성수산 홍석남(55) 사장.

그는 경남 통영시 욕지도에서 참다랑어를 키운다.

한국에서도 참다랑어를 양식한다는 걸 안 건 지난해 여름휴가 때다.

욕지도에 놀러갔다가 망망대해에 떠 있는 가두리(물고기를 가둬 키우는 양식장)를 보고 “저게 뭐냐”고 어부들에게 물었다.

“욕지도 참치 양식장 아잉교.”

어부들은 지난해 230마리가 넘는 참다랑어를 잡았다. 무게 1~3kg의 녀석들은 가두리로 옮겨졌다. 9t짜리 어선에서 일하는 이일기(53)씨는 “참치가 올해에도 떼로 올라왔으예. 더 알고 싶으면 홍석남 사장에게 물으소, 그분이 전문갑니더”라고 말했다.

 

노동의 바다, 투쟁의 바다

그로부터 11개월 뒤 서울 강남의 한 횟집에서 그를 만났다. 수산업체 사장보다는 교사가 더 어울려 보이는 얼굴이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참다랑어에 얽힌 일화를 쏟아냈다. 시중에서 팔리는 ‘참치통조림’에 불만이 많은 듯했다.

“다랑어에는 참다랑어 눈다랑어 황다랑어 날개다랑어 백다랑어 가다랑어가 있어요. 그중 최고인 참다랑어가 ‘참치’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동원산업이 가다랑어, 황다랑어를 통조림에 구겨 넣어 팔면서 ‘참치통조림’이란 이름을 붙였죠.

참치통조림은 70%가 가다랑어, 25%가 황다랑어로 만든거예요. 날개다랑어, 눈다랑어, 드물게는 몽치다래도 들어갑니다.”

 

▼ 사전을 찾아봤더니 참치는 참다랑어를 가리키는 강원도 말이더군요. 가다랑어가 맛이 더 좋지 않나요.

가다랑어를 말려 갉아낸 게 국물맛 좋기로 소문난 가쓰오부시….

그가 마뜩찮은 표정을 짓는다. 뭘 모르는 소리를 한다는 투다.

“가다랑어는 참다랑어보다 가격이 훨씬 싸죠. 격이 달라요. 한 번에 수백 t씩 잡히거든요. 그물로 대량 어획하는 터라 초저온처리를 못해요. 소금물로 목욕시켜서 냉동하죠. 그러면 횟감으론 못 씁니다. 횟감으로 쓰는 참다랑어는 낚시로 잡아서 피를 뽑고 초저온처리를 합니다.

혼슈, 홋카이도 사이의 쓰가루 해협에서 낚시로 잡은 참다랑어 1마리가 1억원이 넘은 적이 있습니다.

가다랑어, 황다랑어와는 비교가 안 되죠.”

그는 낚시는 물짐승과의 질긴 대화(對話)라고 말했다. 시운을 놓쳐서도 긴장을 잃어서도 안 된다.

줄이 온전히 단단해져 팽팽한 긴장이 느껴질 때가 바로 시운이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찰나, 단번에 끌어당겨야 한다.

▼ 참다랑어의 매력은 뭔가요?

“바다에서 제일 잘생긴 고기예요. 헤엄치는 속도가 바다에서 가장 빠르고, 어군도 바다에서 제일 큽니다. 크고, 맛있고,

많이 잡혀서 돈도 되고요.”

 

말단 선원의 고단한 삶

그는 남해수고 기관과를 졸업했다. 연근해 어선의 기관사로 일하면서 번 돈으로 부산수산대(현 부경대)에 진학했다.

대학에 진학한 건 선장이 되고 싶어서였다.

“졸업식 때 부른 고등학교 교가가 떠오르네요. ‘우리들의 이상은 바다를 개척, 조국에 헌신하는 젊은 우리들’이란 대목이 있어요.

그 대목을 부를 때 얼마나 울컥하던지….”

그는 대학을 마치고 원양어선을 탔다. 미국 스타키스트(Starkist)의 다랑어 선망선.

▼ 왜 미국배를 탔나요?

“가난했어요. 돈을 벌어야 했죠. 스타키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참치통조림 회사였죠.

1981~82년 펄세이너(선망선)에서 갑판원으로 일했어요.”

가두리의 참다랑어는 새우 오징어 전갱이를 먹는다.

▼ 갑판원이라면….

“국제 노가다(막노동)판인 원양어선의 말단 선원이죠. 일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한국배에서는 25명이 일하는데,

 미국배에는 17명이 탔습니다. 고되기로 소문났었죠. 처음엔 배가 1t의 어획고를 기록할 때마다 1달러를 받았습니다.

 1000t을 잡으면 1000달러가 되는 거죠. 처음엔 t당 1달러를 받다가 나중엔 t당 6달러를 받았습니다.”

▼ 다랑어잡이 배만 탔나요?

“다랑어 선망선만 탔어요. 뉴기니 근해에서 주로 조업했죠.

솔로몬제도 미크로네시아 뉴질랜드 그리고 날짜 변경선 근처의 키리바시에서 일했어요.

선장이 된 뒤엔 대서양의 가나 토코 나이지리아 해역에서 아프리카 흑인들이랑 참다랑어를 잡기도 했고요. 인도양만 못 가봤습니다.”

▼ 미국배를 타면서 돈은 많이 벌었나요?

“많이 못 벌었어요. 2만달러를 벌어서…. 집이 가난해서 부모 형제가 다 가난했으니까, 큰집에도 좀 주고, 돈이 남을 턱이 없었죠.”

그가 왜소한 몸으로 고단한 바닷일을 견딘 게 신기했다.

“바닷일요? 몸이 아프면 배에서 못 견뎌요. 생선을 얼릴 때 소금물에 담근다고 좀전에 말했죠. 소금 한 포대가 42kg인 거 알죠?

 미국 녀석들은 힘이 좋아서 양 팔뚝에 소금포대를 하나씩 얹고 사다리를 올라가요. 갑판원은 일을 잘하면 t당 8달러까지 받을 수 있었어요. 배가 만선을 이루면 1달러, 8달러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지죠. 그러니 체구가 작더라도 그 녀석들과 똑같이 84kg씩 들고 올라가야죠.

한 번도 아니고 한나절 내내 소금포대를 나르니 골병이 드는 겁니다. 골병 드는 것도 모르고 참으면서 일했죠.

그런데 요즘 똑똑한 친구들은 사나이 기질이 없어요. 동원산업 김재철 회장 같은 엘리트 청년은 배를 안 탑니다. 알죠?

김 회장이 원양어선 탄 거. 그분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원양어업은 대가 끊기게 생겼습니다.

고급 인력은 이젠 배를 안 타죠. 귀한 아드님 나서 누가 바다로 보내겠어요.”

그는 한국에 돌아온 뒤 다랑어잡이 원양어선의 ‘선장’이 됐다. ‘국제 노가다판’에서 흘린 구슬땀, 비지땀이 결실을 본 것이다.

“꿈을 이뤘죠. 기관사는 체질에 맞지 않았어요. 미국배를 탄 것도 돈도 돈이지만 선장이 되고 싶어서였죠.”

▼ 다랑어잡이의 개척자라고 해도 되겠네요.

“그런 셈이죠. 아니요. 아니요.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개척자는 저보다 위 선배들이죠.”

그는 백세주 1병을 주문한 뒤 다랑어잡이의 특징과 역사를 길게 설명했다.

 

용감한 도전

한국은 1971년 미국 선망선 3척을 인수해 처음으로 다랑어잡이에 나섰다. 로열스타 서병규 선장(부산수산대 어로과 59학번),

웨스턴스타 주용 선장(부산수산대 어로과 63학번), 이스턴스타 노수길 선장(부산수산대 어로과 66학번)이 다랑어잡이의 개척자다.

그들은 용감했으나 무모했다. 콜롬비아 해역에서 웨스턴스타가 전복했고(1974년) 로얄스타는 대서양을 건너다가 침몰했다(1975년).

이스턴스타만 살아 남았는데, 이 선망선이 우여곡절 끝에 서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어장에 출어한 때가 1978년.

그는 부산수산대 어업학과 76학번으로 개척자 3명의 새까만 대학 후배다.

“다랑어 선망선에서 제일 많이 쓰는 게 쌍안경입니다. 쌍안경으로 새떼가 보이는 거리가 12마일(약 19.2㎞)이에요.

새떼가 있으면 그 아래 다랑어떼가 있죠. 수평선에 새떼가 나타나고 그쪽으로 4마일쯤 배를 몰면 수평선이 하얗게 일어납니다.

 다랑어떼죠. 버드 파인딩(bird finding) 레이더라는 것도 있어요. 이 녀석은 굉장히 센서티브해서 18마일 떨어진 곳에 새가 두 마리 날고 있어도 포착합니다. 망원경보다 다랑어떼를 먼저 찾죠. 우리는 헬리콥터로 다랑어떼를 추적했습니다.”

선망은 유영하는 다랑어떼를 찾아서 아주 큰 어망으로 포위해 잡는 어법이다.

“본선 1척과 투망할 때 어망의 한쪽 끝을 잡는 1척의 스키프, 어군을 모는 스피드보트 3~4척, 워킹보트 1~2척, 헬리콥터 1대를 투입합니다. 초기엔 돌고래를 이용해 다랑어를 몰았다고 합니다. 혹시 ‘추바스코(Chubasco)’라고 1960년대 영화 본 적 있어요? 영화로 제작될 만큼 선망어업은 다이내믹하고 익사이팅해요.”

▼ 어군을 먼저 찾으려는 경쟁이 치열하겠습니다.

“싸움도 일어나죠. 고기가 가라앉았다가 수면 쪽으로 떠오를 때 투망해야 합니다. 그게 선장의 노하우죠. 어군을 조심스럽게 몰아가고 있는데 일본배가 느닷없이 나타나 대각선으로 들어오면서 투망을 해버린 적이 있어요. 비키지 않으면 너희들이 어쩔 거냐는 투였죠. 배짱 대 배짱으로 버텼어요. 투망은 시작하면 정지하지 못 해요. 일본놈들이 고함치고 난리가 났죠. 결국 일본배의 어망이 우리 배를 둘러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배가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놈들 그물 다 찢으면서 나가버렸죠. 얼마나 통괘하던지. 하하.”

수중에서 촬영한 욕지도 참다랑어.

▼ 선장으로는 언제까지 일했나요?

“1992년까지요. 딱 10년 했네요.”

▼ 한번 출어하면 집엔 얼마 만에 돌아오나요?

“2년요. 괌 기지에는 6개월에 한 번씩 들어갑니다. 한번 나가면 6개월 동안 배에 있는 거죠. 집에는 2년에 1번씩 들어가고요.”

 

얼굴살이 횟감으로 최고

▼ 빵점 남편이네요.

“아내는 부산사범대를 나와 교사로 일했는데 바다생활이 어떤 건지 잘 모르고 저랑 결혼했죠. 결혼 두 달 만에 배를 타고 떠났는데….

황당했을 겁니다. 선장 일을 그만둔 것도…. 가족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바다가 그리워요.

 몇 년 전만 해도 꿈속에서 고기를 잡았어요. 어획량은 선장의 역량에 좌우됩니다. 선망은 사냥하듯 물고기를 잡아요.

찰나에 승부가 갈립니다. 한 마리 잡으면 다 잡는 거고, 아니면 다 빠지기 때문에 조업할 때는 정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요. 그래야 이깁니다. 익사이팅하게 젊은 시절을 보냈으니 때로는 적적하죠.”

웨이트리스가 참다랑어회를 서비스로 내왔다. 백세주 1잔을 들이켠 뒤 회를 삼키는 표정이 꼭 어린아이 같다.

“한 점 들어봐요. 혼마구로(참다랑어) 뱃살이에요.”

▼ 양식인가요, 자연산인가요?

“지중해산 양식 참다랑어죠. 지중해산은 양식이나 자연산이나 가격이 별 차이가 없어요. 지중해의 참치 양식은 성격이 조금 달라요. 100~200kg 나가는 녀석들이 산란하려고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몰려듭니다. 폭이 좁은 지브롤터 해협이 참다랑어를 잡는 포인트예요.

산란기 때는 개체가 크고, 기름져서 맛이 좋습니다. 지중해에서 산란한 뒤 대서양으로 돌아가는 녀석들은 기름기가 없습니다.

살이 쪽 빠지고요. 그래서 맛이 없습니다. 이 녀석들을 잡아서 살을 찌우는 게 지중해식입니다. 참다랑어는 눈 옆에 붙은 살이 가장 맛있어요. 서울에선 뱃살을 최고로 치던데 바다에선 얼굴살이 최고예요. 머리에 붙은 살은 녹으면서 선도가 떨어지죠.

그래서 뭍에선 얼굴살이 뱃살보다 맛이 떨어집니다. 참다랑어 활어 못 먹어봤죠? 참다랑어보다 회가 맛난 생선은 없습니다.”

그가 “참말로 달다” “살살 녹는다”면서 웃었다. 욕지도에서 만난 홍승표(41) 씨도 똑같이 말했다.

“2007년 10월 양식에 나선 뒤로는 참치 맛을 한 번도 못 봤심더. 값나가는 보물이다 보니 올라오는 대로 가두리로 몰어넣지예.

참치 활어 맛요? 회는 활어가 최곤기라. 맛 좋지예. 참말로 답니더. 살살 녹지예. 고구마, 감귤이 욕지도 특기인데,

앞으론 참치도 특기가 될 깁니더. 올 겨울만 넘기면 성공 아잉교. 잘 키워야지예. 겨울철 수온이 9℃까지 내려갔을 때는 참말로 아찔했지예. 바닷물이 차가우면 참치가 콱 죽어뿌지 않습니꺼. 멋도 모르고 쪽지(뜰채)로 참치를 떴다가 13마리 가운데 2마리가 죽었어예.

참치는 성깔이 더럽다 안 했능교.”

참다랑어는 농어목 고등엇과의 물고기다. “성격이 급하고, 품성이 까다롭다”고 어부들은 말한다.

뜰채에 몸이 닿거나 배로 옮기면 미친놈처럼 날뛰다 피를 토하고 곧바로 죽는다.

 

다랑어에 바친 청춘

욕지도의 참다랑어 가두리는 지름 20m, 깊이 12m로 섬에선 가깝지만 뭍에서 보면 망망대해에 떠 있다.

외해(外海)양식을 시도한 건 한국에서 인성수산이 처음이라고 한다.

“1998~99년엔 말레이시아 암차그룹에서 수산컨설턴트로 일했어요. 돌아와서 참돔 외해양식을 욕지도에서 시작했습니다.

외해양식은 국내에서 처음이었죠. 그런데 2001년 욕지도에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눈다랑어가 올라왔다고 그러더군요.

다랑어라는 소리를 들으니 설레더군요. 그런데 눈다랑어는 우리 바다에는 안 올라오거든요. 그래서 부리나케 통영으로 달려갔죠.

그런데 눈다랑어가 아니라 참다랑어였어요. 얼마나 반갑던지…. 청춘을 참다랑어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들을 우리 바다에서 만난 겁니다. 가두리에 넣어서 키워봐야겠다는 생각이 곧바로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는 일본, 호주를 수차례 오가면서 참다랑어 양식 기술을 배웠다. 참다랑어 양식은 1974년 일본이 처음으로 시도했다.

일본은 인공부화로 치어를 만들어 키우는 기술을 갖고 있다.

바다에서 잡은 참다랑어를 가두리에서 키우는 기술을 확보한 나라도 일본을 포함해 호주 스페인 포르투갈 등 10여 개국에 그친다.

“일본에 가와구치 노인이라고 참다랑어 양식 전문가가 있습니다. 가와구치어장에 갔더니 9년을 기른 참다랑어가 있었습니다.

덩치가 200㎏에 달했어요. 1992년 제주도 연안에서 잡은 참다랑어 40마리가 자란 거라고 그러더군요.

우리 어장에서 잡히는 참다랑어도 ‘된다’ 싶었죠. 그런데 양식을 곧바로 시작하지는 못했어요.

2002년, 2003년 루사, 매미가 온 바다를 휩쓸버린 거 알지요? 좌절도 그런 좌절이 없었어요. 어장이 쑥대밭이 됐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2007년부터 양식을 시작할 수 있었죠.”

2007년 10월 욕지도어장에서 잡힐 때 두 살배기로 몸무게가 5㎏에 그치던 참다랑어 11마리는 두 번의 겨울을 넘기면서 35㎏까지 자랐다.

지난해 7월 잡은 3.5㎏짜리 참다랑어 280여 마리도 겨울 추위를 극복하고 8~10㎏까지 몸을 불렸다.

양식 참다랑어는 일본에서 ㎏당 5만원 안팎에 거래된다.

 

홍승표 씨가 바다에서 잡아 올린 참다랑어를 뽐내고 있다.

“내년 여름쯤엔 2007년 잡은 녀석들의 몸무게가 60㎏을 넘습니다. 그러면 마리당 300만~400만원은 거뜬히 받을 수 있죠.

올 여름부터 참다랑어를 제대로 잡을 겁니다. 한 해에 2000마리 넘게 참다랑어를 잡은 적도 있습니다.

당시엔 시설을 갖추지 못해서 양식을 못했죠. 그동안 정치망으로만 잡아 올렸는데 앞으로는 낚싯배도 이용할 겁니다.

낚싯배 양쪽으로 낚싯대 2대를 전개해서 유영하는 참다랑어를 낚아올리는 거죠. 낚싯대는 2대지만 바늘은 4개예요.

일본에선 낚시로 하루에 40~50마리씩 잡습니다.”

▼ 뜰채로 떠도 죽을 만큼 성격이 강퍅하다는데 낚시로 잡으면 참다랑어가 죽지 않나요?

“낚시로 잡은 참다랑어를 살리는 기술이 있어요. 아주 빠른 속도로 떠서 섬세하게 활어통에 넣는 겁니다.

고기에 손이 닿으면 곧바로 죽어버리죠. 호주에선 선망으로 잡은 참다랑어도 살립니다.

선망에 참다랑어가 들어오면 가두리를 그쪽으로 끌고 가 조심스럽게 몰아넣는 거죠. 지중해에서 참다랑어 뜨는 기술자들이 한국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손재주가 좋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이 지금 한국에 있습니다.”

▼ 참다랑어 1000마리를 잡아 3년을 키우면 30억~40억원어치가 되는 거네요?

“1만 마리를 키우면 300억~400억이죠.”

 

어장 > 광산> 노름

▼ 시쳇말로 대박입니다.

“속담에 1.어장 2.광산 3.노름이라고 있어요. 그게 무슨 순서인 줄 알아요?”

▼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 순서 같은데요.

“맞아요. 어장은 불확실합니다. 성공하는 때보다 망하는 때가 더 많죠. 일확천금을 노리고 일하면 망하기 십상이죠.”

▼ 로또 수준은 아니잖아요?

“돈을 벌 때는 로또 수준이죠. 선장으로 일할 때 하루에 가다랑어를 650t 잡은 적이 있어요. 고기 올라오는 걸 보면서 눈이 돌아갈 정도였죠.”

▼ 650t이면 값이 얼만데요?

“요즘 돈으로 10억원!”

인성수산은 40억원을 투자해 우루과이에서 비막치어(Patagonian toothfish) 어장을 개척했다.

비막치어는 농어목 남극암칫과의 물고기로 ‘메로’라고 불린다.

“얼음물 밑으로 2000m를 내려가 메로를 찾았어요. 만약에 실패했다고 생각해보세요. 메로는 참다랑어 못지않게 비쌉니다.”

▼ 메로가 일식집에서 찬으로 나오는 생선 맞죠? 그게 그렇게 비싼가요?

“잘 살펴보고 먹어야 해요. 횟집에서 나오는 건 기름치가 많아요. 그거 사람이 먹는 거 아닙니다. 몸에 해로워요.

왁스 재료로 쓰이는 물고기죠. 대만 원양어선이 참다랑어 잡다가 걸린 기름치를 횟집용으로 한국에 수출합니다.

대만인, 일본인은 절대로 안 먹죠. 그걸 일식집에서 ‘쓰키다시’로 주는 거예요. 절대로 드시지 마세요.

메로는 탄력이 있는 반면 기름치는 푸석푸석합니다. 꼭 구별해서 먹어야 합니다.”

남해에서 참다랑어가 올라오는 건 지구온난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바닷물 온도가 오르면서 한류성 어종(명태 대구 청어)은 감소하고 난류성 어종(참다랑어 전갱이 갈치 고등어 멸치)은 늘었다.

제주도 해역에선 아열대성 어종도 잡힌다. 지난해 5월엔 선망어선 1척이 참다랑어 7000여 마리를 잡은 적도 있다.

 

“사나이 기질 없는 귀한 아드님들”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그러는데, 나는 생각이 조금 달라요. 오래전부터 참다랑어가 남해에 서식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아요.

존재하는지를 몰랐고 적극적으로 잡으려고 안 했기 때문에 못 잡은 거예요. 욕지도 어장에선 가을에도 참다랑어가 정치망에 걸립니다.

선망으로는 겨울에도 올라오고요. 봄에도 올라오는 곳이 있고요.”

▼ 1.어장 2.광산 3.노름이라고 했잖아요. 참다랑어 양식이 성공할까요?

“겨울철 저수온과 태풍, 적조가 장애물이에요. 저수온은 참다랑어들이 견뎌냈습니다.

가두리 재질을 바꿔서 태풍에도 견딜 수 있을 것 같고요. 적조 대비도 하고 있습니다. 참다랑어 양식을 크게 3단계로 나눠서 진행하고 있어요. 1단계는 참치를 성공적으로 키워보는 것입니다. 1단계는 성공했다고 봐야죠. 일본은 3년 반을 키운 참다랑어를 시장에 내놓습니다.

욕지도 참다랑어는 성장 속도가 빨라서 만 3년이면 몸무게가 족히 60kg을 넘을 것 같아요. 2단계는 양산 체제를 구축하는 겁니다.

올해엔 5000마리를 가두리에 넣는 게 목표예요. 조만간 치어의 인공부화도 시도할 생각입니다.

3단계는 어민에게 양식기술과 치어를 보급하는 겁니다. 참다랑어 양식과 관련해서 국가의 지원도 받게 됐습니다.

나라에도 보답해야죠. ‘바다를 개척해서 조국에 헌신하겠다’는 교가처럼요. 개척자들의 피와 땀 덕분에 다랑어잡이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인명의 손실이 적지 않았어요. 선배들의 노력을 후배들이 불굴의 투지로 계승해야죠. 그런 사명감을 갖고 참다랑어를 키우고 있습니다.”

‘불굴의 투지’란 말을 참 오랜만에 들었다. 한국 원양어업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육순, 칠순 넘은 선배들의 기상은 아직도 녹슬지 않았습니다. 도전을 두려워하는 귀한 아드님들이 문제예요.

우수한 인재가 바다에 뛰어들면 어업의 미래는 전도양양할 겁니다. 젊은이들의 기개가 부족한 나라는 절대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웨이트리스가 참다랑어회를 더 내왔다. 입 안에서 회가 살살 녹는다.

▼ 참다랑어 활어로 뜬 회는 냉동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나요?

“안 먹어봤으면 말을 마세요.”

▼ 참다랑어 활어를 파는 곳이 한국에 있나요?

“활어는 있어요.”

▼ 어디에요?

“욕지도요. 하하.”

 

그는 한국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붉바리가 가장 맛있다면서 민어 준치 돔에 대해서도 길게 설명했다.

“한국 생선은 붉바리가 가장 맛있어요. 눈골대도 귀하고요. 자바리, 고바리도 맛이 좋죠.

제주도에서 다금바리라고 부르는 물고기가 자바리예요. 진짜 다금바리는 따로 있고요.”

섬에서 태어나 항도(港都)에서 공부하고 원양으로 나아간 그는 참다랑어 양식의 개척자로 기록될 것이다.

그를 먹여 살린 참다랑어는 등 푸른 보석이다. 에이코사펜타엔산, 셀레늄이 풍부해 몸에 좋다. 머리칼과 피부결을 부드럽고 반짝이게 한다. 욕지도의 어부들은 참다랑어가 팔려나갈 날을 기다린다. 조바심을 낸다. 목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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