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촌(村)의 가치
‘촌스럽다’는 말이 있다. 촌스러워 죽겠네, 촌스럽게 왜 그래, 촌스레 굴지 마라…. 흔히 사용하는 말이지만 도시적 세련미에 목숨 건 사람에게 잘못 쓰면 주먹이 날아들 욕이 될 수 있다. 그만큼 촌스럽다는 말에는 상대방을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촌스럽다’나 ‘촌사람(촌놈)’이란 표현은 비속어가 아니라 국어사전에 당당하게 올라 있는 표준어다. 사전은 촌스럽다를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 촌사람을 ‘견문이 좁고 어수룩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물론 촌사람의 원뜻은 ‘시골에 사는 사람’이다).
‘촌(村)’은 단순히 ‘시골’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촌에 대한 인식은 이처럼 부정적이다.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므로 부정적인 촌의 개념과 가치를 만들어낸 이는 어쩌면 ‘교양 있는’ 도시인일지 모른다. 그런데 농어촌 사람들도 이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농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근원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스럽다는 말이 적어도 조선시대, 구한말까진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촌스럽다는 말은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돼 도시와 농촌의 경계가 명확해진 1960~7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한다. 사실 촌스럽다는 말엔 농촌에 대한 도시인의 경계의식과 경멸이 묻어 있다. 따라서 도시 외곽에서 몇백m만 걸어가면 논밭이며 과수원이 나오던 50년대까지는 이 말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실제로 그 무렵엔 ‘촌스럽다’거나 ‘촌놈’이라는 표현은 전혀 쓰지 않았다는 게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말이다.
농어촌에 대한 이런 부정적 가치관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조선시대 농민은 ‘천하의 가장 큰 근본’으로 일컬어졌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반상(班常)의 차별 아래 농사를 짓는 주체로 늘 가난하고 천시되던 계층이었다. 본격적으로 근대화가 시작된 일제강점기를 거쳐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화하던 1960년대 중반까지도 우리 농촌에는 춘궁기가 있었다. 세 끼를 다 먹는 사람이 드물었고 초근목피로 끼니를 대신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굶는 것은 도시 하층민이나 농민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일제의 수탈에서 벗어난 이후인 1949년부터 정부에 의해 농업증산 계획이 실시됐지만 전쟁과 정치적 혼란 중에 식량 증산은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5·16군사정변 이후 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농민과 도시민의 삶을 분리해놓는다. 이때부터 도시민과 시골사람은 ‘세 끼 쌀밥 먹는 사람’과 ‘보리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으로 뚜렷하게 나뉜다.
이런 상황은 ‘통일벼 혁명’(1970년)이 일어나 사상 처음으로 쌀 생산이 3000만석, 4000만석을 돌파하던 1970년대 중반 이후에도 계속됐다. 하지만 그 양상은 달랐다. 80년대까지 풍작이 거듭되자 이번엔 쌀값이 폭락한 것. 정부가 나랏돈으로 쌀을 사들여 매년 800만~1400만석씩 창고에 쌓아두는 일이 이때부터 벌어진다. 덕분에 도시민은 밥걱정을 하지 않게 됐지만 농민은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자 농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하소연하기에 이른다. 도시 학생들은 너무 쌀밥만 먹는다고 분식이 강요됐지만, 농촌 학생들에겐 분식이 사치였다. 도시민은 농민을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바라보며 ‘되지도 않을 일을 비효율적으로 해서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촌스럽다’ ‘촌놈’ ‘촌닭’…. 촌은 가난하고 비능률적이며, 주변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뭔가 불결해 보이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품게 된다.
도시민에게 농사는, 도시생활에 실패하면 언제든 시골로 돌아가 할 수 있는 일로 치부된다. ‘안 되면 농사나 짓지’라는 것이다. 농업이 ‘놀면서 하는 일’쯤으로 전락한 것이다. 도시가 경제성장과 민주화 바람을 타고 고도 발전을 이루는 동안 농촌에선 청년들이 도시로, 도시로 물밀듯 빠져나갔다. ‘촌스런’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웰빙으로 부활하는 村의 가치
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엔 세계화(우루과이 라운드)와 농촌 공동화(空洞化)가 심화하면서 농업부문의 물리적 구조조정이 강요됐지만, 도시민에겐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농민 스스로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반성과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쌀에 집중된 농가소득 작목이 하우스 재배 바람을 타고 다양하게 확대됐으며, 각종 연구개발(R·D)을 통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농산물도 속속 탄생한다.
차츰 농촌에도 부농(富農)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도시 소비자도 깨끗하고 안전하며 친환경적인 고품질 우리 농산물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농촌의 인식을 바꿔간다. 이 무렵 촌은 규모화, 전문화, 조직화에 총력을 기울이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우리 농산물이 해외로 수출되는 것도 흔한 일이 됐다. 농업이 농촌에만 머무는 낙후한 1차산업이 아니라 식품산업과 연계된 2차산업이자, 도시민에게 여가와 휴식을 제공하는 관광·서비스업으로서 3차산업의 면모도 갖춰갔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도시민이 농어촌의 가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농촌이 원래부터 가진, 그러나 그간 잊고 지내온 가치, 즉 환경과 자연, 공동체적 삶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전 지구적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와 반성은 농촌의 전통과 경관, 삶의 스타일을 경계하고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보호하고 발전시켜야 할 무엇으로 바꾸었다.
이런 변화는 농민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도시 소비자의 요구가 ‘웰빙(참살이)’에 맞춰지면서 농민도 유기농 농산물을 비롯한 환경친화적 농산물을 배우고 연구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그러면서 농민 스스로 자신이 살고 있는 자연과 환경이 얼마나 소중한 미래 자산인지를 절감하게 됐다. 고도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도시민은 생활이 각박해질수록 농촌과 맞닿은 자연이 주는 여유와 정, 깨끗하고 맑은 공기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국가 자원이자 미래 가치임을 깨닫는다. 1990년대 이후 몰아닥친 귀농 열풍은 무턱대고 귀향했다 실패하던 과도기를 거쳐 ‘공부하는 귀농’으로 변해가고 있다. 협성대 도시·지역학부 윤원근 교수는 ‘농촌계획의 여건 변화와 방향 정립’이라는 논문에서 촌의 개념과 가치 변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종래 농촌계획의 지향가치가 경제제일주의 또는 성장우선주의에 입각했다면 현재의 가치는 지속가능성의 추구로 변화하고 있다. 농촌지역 자원의 이용도 환경용량의 범위 내에서 보전을 우선시하는 환경주의 가치에 따라야 한다. 농촌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처럼 식량을 생산하는 데 중요한 공간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가치 있는 자원을 보유하는 장소로서 역사성과 문화성, 농업과 농촌의 독특한 경관미를 가진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주는 긍정적인 공간이라는 인식이 요구된다.”
농업은 그린산업이자 녹색성장의 엔진
이런 변화상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9월 도시민과 농민을 대상으로 농업과 농촌에 대한 국민의식을 조사했더니 도시민의 85.9%가 ‘농업이 지금까지도 중요했고 앞으로도 중요할 것’이라 답했고, 7.9%는 ‘지금까지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중요할 것’이라고 답했다. 도시민의 대다수가 미래 국가경제와 자신의 삶에서 농업과 농촌이 절대적으로 중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많은 도시민은 농어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농촌지역에 특별한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85.6%가 동의했고, 자신이 낼 세금이 늘어날 것임에도 농촌 복지예산 증액에 73.3%가 찬성했다(반대는 4%에 불과했다). 국산 농축산물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8.8%에 그쳤으며, 친환경 농산물을 구입해본 경험이 있는 도시민은 78.5%에 달했다. 농업인 스스로도 자신감을 되찾았다. 농민 10명 중 6명이 수출농업의 가능성을 인정했다(60.2%). 자신이 생산하는 농축산물에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 농림수산업의 현주소는 정확히 어디고, 미래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지난 1월 대통령 산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발표한 농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따르면 현재 우리 농업과 농업인은 조직화, 전문화, 규모화의 여정에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저탄소 녹색성장’과 수출농업을 이뤄내고 있다. 어쩌면 탄소를 흡입해 산소를 배출하는 과정에서 열매를 맺는 농림수산업이야말로 그린산업의 핵심이자 21세기 녹색성장의 동력이 아닐까. 농림수산식품부 미래전략팀 이충원 팀장(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과장)은 우리 농업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규모화, 전문화, 조직화 등 산업화 시대의 고전경제학적 패러다임에 근거한 경쟁력 강화 노력을 지속하는 한편, 후기 산업사회 지식기반 패러다임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화, 지식정보화, 고령화, 여성화, 다문화, 기후변화, 지속가능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 ‘담론’ ‘소통’ ‘가치’ ‘존재와 인식’ 등 포스트모던 패러다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골다움의 이야기, 자신감 있는 소통형 브랜딩, 물질적 ‘부’를 축적한 이후 단계를 고민해야 한다.”
‘촌스럽다’ 뜻 개정 청원운동도
이 사이트에는 가까이 있어 오히려 잊고 지내던 소중한 것들, 그래서 고맙고 미안한 가슴 한쪽의 이야기와 우리 삶의 근간이 되는 농어업·농어촌, 이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CF와 이벤트 형태로 녹아 있다. 희망, 여유, 사랑의 세 가지 스토리로 구성된 ‘세상에서 가장 촌(村)스러운 이야기’ CF는 공감 댓글이 5258건이나 달렸다.
촌스러움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촌티 타임’ 코너에서 누리꾼들은 촌스럽다는 뜻을 ‘지극히 정겨운 당신과 나 사이’ ‘마음이 포근하고 정감이 가는 어투와 차림새’ ‘마음이 따뜻하고 이해타산에만 치중하지 않으며 순박하다’ ‘고향, 믿음, 포근함, 순수함, 생명의 근원’ ‘세상에서 가장 물들지 않고 순수하며 깨끗하다’라는 식으로 바꿔놓았다.
‘촌스러워 고마워요’ 캠페인 사이트와 연계해 다음 아고라에서는 ‘촌스럽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바꾸자는 청원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2월26일 현재 1600여 명이 동참했다.
이 서명을 주도하는 농촌정보문화센터는 촌스럽다는 말을 ‘따뜻한 정이 넘치고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곳’ ‘신선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해주는 곳’ 등으로 바꿀 것을 제안하고 누리꾼들에게 새로운 좋은 뜻을 찾아달라고 호소한다.
이와 관련해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청원이 들어온다고 촌스럽다의 사전적 뜻을 바로 고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실제 많은 사람이 그 말을 사전과 다르게 쓰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면 그 뜻은 자연스럽게 고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말하는 村의 문화 코드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요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가 전 국민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팔순 농부와 마흔 살 난 소의 우정을 그린 이 작품은 국내 다큐영화 사상, 또한 독립영화로는 처음으로 100만 관중을 뛰어넘었다.
그런데 정작 ‘워낭소리’의 흥행에 불을 지핀 건 장년층이 아니라 20, 30대 관객이었다. 농촌의 현실에 대해 고민해본 적 없었을 이들이 이 영화를 보며 울고 웃는 이유는 뭘까. 영화 전문가들은 영화의 주제가 소와 농부의 우정, 팔자타령만 하는 농부의 아내라고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사라져가는 농촌의 풍광과 농민의 삶, 그리고 그 배경인 자연이다. 날로 각박해지고 권모술수가 판치는 도시에서 관객은 대자연과 어우러진, 또 거기에 순응하는 농촌과 농민의 순박한 모습을 스크린에서 마주하며 잔잔한 감동을 느낀다.
그래서 ‘워낭소리’의 흥행 성공은 잊혔던 농촌과 농민의 가치에 대한 도시민의 새로운 인식 또는 재발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21세기 문화·산업적 화두로 떠오른 ‘그린(Green)’, 환경친화적 ‘자연’은 사실 우리 옛 농촌의 모습 그 자체다. 과연 21세기 우리 농촌이 지닌 문화적 가치는 무엇일까. 한평생 촌에서 살며 촌아이들을 가르치고 촌에 대한 시를 써온 ‘섬진강’ 시인 김용택(61) 선생에게 그 실체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농촌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도시인들, 사라진 원형질에 대한 향수
“우리 농촌엔 우리만이 가진 고유한 문화와 정서가 있습니다. 사실 자연의 생태와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농촌과 농민의 삶은 굉장히 세련됐죠. 같이 먹고 같이 일하는, 일과 놀이가 섞여 있는 삶입니다. 그걸 공동체라고 하는데, 그 안에는 어떤 일도 공동체가 책임지는 문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개인주의로 나만의 욕심을 채우는 사람은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어요. 그들은 자연과 생태의 순환을 체득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죠. 사실은 농민들의 삶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원형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녹색성장이라든지 자연친화 개념을 그들은 지금껏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아왔던 거죠.”
도시인들이 영화 ‘워낭소리’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요.
“도시인의 피 속에도 농촌에 대한 정서나 향수가 DNA로 남아 있다고 봐야죠. 제가 쓴 동시들은 농촌 정서를 담고 있는데, 도시 아이들도 금방 이해를 하고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촌스럽다는 말은 우리 일상에서뿐 아니라 사전에도 부정적으로 정의돼 있더군요.
“1970년대에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고 산업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전통적인 농촌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었죠. 80년대 들어오면서 대규모 이농으로 인한 농촌 공동화 현상으로 공동체 문화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도시인의 해석일 뿐입니다. 서구적 가치로 농촌을 들여다보면서 생겨난 거죠. 자연과 생태의 순환, 공동체의식, 일과 놀이의 통합… 이런 농민들의 삶이 도시화, 산업화 속에서 무시되고 그들의 삶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겁니다. 돈과 지식이 농촌사회를 왜곡해버린 거죠. 허리 굽혀 땅 파고 씨 뿌려서 농사짓는 농민정신이야말로 인간 본래의 정신이자 중심입니다. 도시의 삶이 각박하고 광포해질수록 도시인은 자신의 원형질인 농촌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농촌에 대한 최근의 인식 변화도 인간 원형질로의 회귀라고 볼 수 있겠군요.
“물질문명의 발전, 즉 산업화는 자연을 파괴하는 과정입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곧 농촌과 농민을 함부로 하는 겁니다. 그건 나를, 우리를 함부로 하는 것이죠. 우리 삶이 삭막해져 어디 하나 마음 앉을 자리가 없는데 자연의 소리가, 자연의 풍광이 화면으로 나타나자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거기에 달려들 수밖에 없는 거죠. ‘우리도 저렇게 산 시절이 있는데…’ 하면서. 사라진 자기 원형질에 대한 향수라고나 할까요.”
농촌의 문화적 가치를 다시 살릴 방법이 있다면?
“지금 농촌엔 자연만 있고 문화가 없죠. 농촌 문화를 되살리자는 운동이 있기는 한데, 귀향운동이나 귀농운동 같은 것은 너무 미미합니다. 저는 이걸 국가 차원에서 벌여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삶의 원형이자 정신적 고향, 문학과 철학, 종교의 고향인 농촌의 모습을 각 군에, 안 되면 각 도에 몇 개라도 보존했으면 합니다. 몇 개의 마을을 박물관화하자는 겁니다. 그것에서부터 문화 가치를 복구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촌의 문화 자체를 산업화할 방법은 없을까요.
“그건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라고 봅니다. 지역별 특성에 맞는 브랜드화가 필요해요. 경남 하동군, 전남 구례군의 차는 그 지역의 오랜 다(茶)문화가 바탕이 된 덕분에 브랜딩에 성공했죠. 하지만 무분별한 관광지화는 안 됩니다. 난개발이 심해요. 그건 농촌을 더 피폐하게 합니다. 이제는 마을 단위별로 연구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농촌의 자연친화적인 삶, 생태문화적인 삶을 복원해가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볼거리, 체험거리가 됩니다. 생태관광지를 만든다면서 옛집을 허물고 콘크리트 건물 짓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외국에선 관광지를 만들 때 새로 지어올리는 일이 드물어요. 집 자체가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보존할 것과 개발할 것의 구분도 제대로 못하는 형국이에요. 영화 ‘워낭소리’는 좋아하면서 ‘워낭’과 상관도 없는 집을 자연의 한복판인 농촌에다 지어대는 게 이 시대 도시민의 이중성입니다.”
김용택 시인은 ‘워낭소리’에 감동받는 도시민에게 따끔한 충고 한마디를 건네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솔직히 무척 걱정됩니다. ‘워낭소리’ 쵤영지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온갖 ‘가든’이 들어설까봐요. 이젠 정말 촌에 걸맞은 촌스러운 농촌문화에 대한 정식적, 조형적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2012년 100억 달러 수출 야심 … 김치는 기본 오징어까지 입맛 공략
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역대 장관 가운데 농수산식품 수출을 가장 크게 늘린 장관, 또한 그 토대를 만든 장관으로 국민의 기억에 남고 싶습니다.”
연초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장관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런 그의 희망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2008년 농림수산식품 수출액은 총 44억 달러로 전년 대비 17.1% 증가했다. 2008년 전체 수출 증가율 13.7%보다 높은 수치다.
주요 수출 품목은 김치, 인삼, 파프리카, 화훼, 김 등이며 주요 수출 국가는 일본(32.9%) 중국(12.2%) 미국(10.0%) 러시아(6.4%) 홍콩(3.9%) 대만(2.8%) 등이다(그림 참조). 또한 동남아시아가 신흥 수출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전년 동기(8월 기준) 대비 동남아시아 수출은 51.3% 증가했다.
농식품부는 “농림수산업을 수출 산업화하겠다”며 올해 수출 목표액을 지난해의 44억 달러보다 20% 늘어난 53억 달러로 잡았다. 또한 “15개 주력 품목과 30개 유망 품목이 향후 수출을 주도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15개 주력 품목으로는 김치, 인삼, 파프리카, 돼지고기, 배, 면류, 주류, 과자류, 참치, 오징어, 김 등을 꼽았다. 또한 앞으로 발굴 육성할 30개 유망 품목은 삼계탕, 버섯, 유제품, 유자차, 천일염, 화훼, 전복, 넙치, 굴 등이다.
농식품부는 먼저 한식 세계화 사업과 연계해 김치 수출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프랑스의 와인처럼 김치를 국가대표 수출 품목으로 육성하겠다는 것. 김치 수출 시장의 다변화를 꾀하면서, 특히 중국에서는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고급 백화점 등에서 명품 김치 마케팅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동남아시아와 미국 등지에서는 한국요리교실, 한식당, 현지 문화행사 등과 연계해 김치의 우수성을 지속적으로 홍보해나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2008년 5월 김치수출협의회를 설립했다.
100억 달러 수출의 핵은 식재료
파프리카는 대표적인 일본 수출 성공 사례다. 10여 년 전 선진국에서 배운 기술로 재배를 시작해 2003년 수출을 시작한 이후 파프리카는 일본에서 농업 강국 네덜란드를 제치고 수입농산물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60%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 기세를 등에 업고 향후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 파프리카를 수출할 계획이다.
장 장관은 지난해 8월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2012년까지 농수산식품 수출 목표를 100억 달러로 정했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우리 쌀로 만드는 ‘햇반’, 막걸리 같은 고부가가치 가공식품의 수출을 확대한다는 게 농식품부의 복안이다. 신선식품의 경우 검역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그에 대비하는 시간, 노력, 비용 부담이 크다. 그에 비해 가공식품은 저장 및 검역의 부담에서 여유롭다. 그뿐 아니다. 가공식품이 신선식품보다 수출 단가도 높다. 예를 들어 가공된 돈육의 수출 단가는 9.5달러/kg로 신선육 수출 단가(3달러/kg)보다 3배 이상 비싸다. 따라서 신선식품을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수출하면 여러 면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농식품부 식품산업진흥팀 변상문 사무관은 “농림수산식품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의 핵심은 식재료 수출”이라면서 “해외에 있는 한식당도 주요 판로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7311개 기업이 아시아, 미주, 유럽에 진출해 있는데 먼저 이들 기업체의 식당에 식재료를 공급한다는 계획. 그는 또 “100억 달러 수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외교부와 협력, 재외공관을 통한 농수산식품 홍보사업을 계속 벌여나갈 것”이라고 전한다. 특히 ‘한식의 세계화’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지난해에는 캐나다 정부가 주관한 오타와 튤립 축제 기간에 한식 부스를 운영한 것을 비롯해, 일본 브라질 홍콩 등 20여 곳의 재외공관에서 한식 홍보 행사를 열었다. 이어 올해는 멕시코 콜롬비아 UAE 이집트 등으로 한식 홍보 행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수출 확대 핵심은 식재료 … 한식 세계화에 진력
농수산식품 수출을 늘려가려면 경영 규모화를 통한 수출 경쟁력 확보도 필요하다. 그런데 2007년 정부로부터 물류비를 지원받은 253개 업체 가운데 연 500만 달러 이상을 수출한 업체는 13개 업체에 불과하다. 이처럼 대부분의 수출업체가 영세할 뿐 아니라 가격이나 품질 면에서도 경쟁력이 약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 이에 농식품부는 중소 수출업체의 품목별 조직화와 규모화를 이뤄낼 방침이다. 그 방편으로 수출특화단지 조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또한 품목별 공동 마케팅에 대한 지원 확대로 업체 간 통합을 유도할 계획이다.
‘2012년까지 농수산식품 수출 100억 달러’라는 농식품부의 목표는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변 사무관은 “희망적”이라고 자신한다. 세계적으로 농림수산식품 시장은 4조 달러 규모로 반도체 시장의 16배에 이른다. 그는 “농림수산식품 시장은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의 시장”이라며 “그 속에서 틈새시장을 잘 찾아 활용한다면 100억 달러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누구 하나의 힘만으로는 그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부디 2012년 우리 모두가 웃을 수 있길 기대한다.
“없어서 못 팔아요”
“접목 선인장 재배를 하기 전 농산물 무역회사 선인장 파트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접목 선인장의 생산량이 늘 적어 주문량을 못 맞추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원하는 품질이 나오지 않아 안타까웠죠. 왜 그게 안 될까, 내가 직접 생산하면 낫지 않을까 싶어 회사를 나와 접목 선인장을 재배하기 시작한 겁니다.”
지금도 생산량이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하는 실정은 마찬가지. 현재 주요 수출국은 네덜란드(60%) 미국과 캐나다(25%) 동남아시아(15%)지만, 그 밖에도 개척할 시장은 무궁무진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하지만 시장 개척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시장을 개척하는 것보다 생산량을 늘리는 일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판로나 가격 폭락 걱정이 없고, 생산만 하면 100% 판매 가능한 접목 선인장 재배에 농가들이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것은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 때문이다. 3300㎡(1000평)를 기준으로 2억원 정도 드는데, 거기에 어린 종자가 자라 기반을 잡을 때까지 1년 반 정도의 기간에 수익이 없음을 고려한다면 2억5000만원은 손에 쥐어야 엄두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앞으로는 무엇보다 접목 선인장을 재배하는 농가가 늘어나야 하고, 단지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수출은 개인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죠. 단지화를 통해 체계화하고 규모화하면 연 수출액이 지금의 5배인 1500만 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을 겁니다.”
녹색국민총생산으로 질적인 성장 … 지열 냉난방, 가축 분뇨 전력 생산 농업이 앞장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구온난화와 당면한 에너지 및 환경 위기는 미래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선제적 대응 전략을 요구한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 새로운 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의 개념이 제시된 것도 그 때문이다. 녹색성장은 생태적, 경제적 건전성 확보를 통해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질적 성장’의 개념이다.
녹색성장은 환경오염을 처리하는 사회적 비용 증가와 그에 따른 후생 분야의 성장을 국민소득에 반영하는 녹색국민총생산(Green GNP)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정부는 녹색성장을 ‘환경오염과 온실가스를 최소화하면서 신(新)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성장’으로 규정한다. 녹색성장의 작동 원리는 성장 패턴과 경제구조의 일대 전환을 통해 환경과 경제성장 간 악순환 구조를 선순환 구조로 전환하는 것. 따라서 녹색성장은 생산 과정에서 녹색자본(녹색기술, 녹색지식)을 투입해 환경오염을 줄이고 자연자본(에너지, 환경자원)을 확충해 생산력을 지속적으로 높여가는 국가발전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농업은 땅을 이용해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해 인간의 식량원을 공급하는 산업이다. 토양, 물, 공기 등 환경요소에 의존하는 산업으로, 자연환경을 이용하기도 하고 역으로 자연환경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따라서 농업부문의 녹색성장은 환경 용량을 고려한 재배기술과 농법 전환, 환경친화적 저탄소 농업을 통한 성장을 의미한다.
농업부문에서 시행되고 있는 녹색성장의 대표적 사례로 친환경농업 육성을 꼽을 수 있다. 친환경농업은 2000년 이후 매년 연평균 70% 정도의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적극적인 친환경농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농업부문에서 친환경농업의 비중(2008년 기준)은 약 10.5%까지 상승했다. 친환경 농축산물의 생산 및 유통 활성화가 그 중심이다. 아직 유통 인프라 구축은 미흡하지만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생산 비중을 크게 늘려야 하는 상황에 와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유기 재배 및 무농약 재배 비중을 확대해 2012년까지 친환경농수산물 생산 비중을 현재의 4%에서 9%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환경농업지구, 친환경농업단지 조성, 친환경농산물 물류센터 건립 확대, 친환경인증제 도입 등이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향후 친환경농업은 안전성과 환경성을 중시하면서 농업부문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녹색기술 개발도 녹색성장 추진의 중요한 키워드다. 특히 에너지 절감형 친환경 기술 개발 사례가 주목되는데, 그중에서도 시설농업의 보온시설 및 장비(온풍기) 활용과 관련된 지열(지열 히트펌프), 공기열(공기식 히트펌프), 태양열 활용 기술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미래 청정 에너지원으로서 지표면의 토양, 지표수, 지하수, 용암 등에 저장된 열을 이용하는 지열의 경우 12∼25℃의 지하수 열을 히트펌프에서 변환해 여름철에는 10∼15℃, 겨울철에는 45∼50℃의 온도를 유지함으로써 냉난방에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지열 활용의 대표적 사례로 경남 진주시 사봉면 소재 육묘농장을 꼽을 수 있다. 농장의 지열 히트펌프 시범운영 결과에 따르면, 시설원예 난방비 절감 효과는 78%에 육박해 난방 면적 10%(1300ha) 보급 시 연 1458억원을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오매스 활용 기술 개발도 빼놓을 수 없다. 바이오매스는 동식물, 균체 등의 생물 유기체와 가축 분뇨, 음식쓰레기 같은 생물에서 나오는 폐기물 자원을 총칭한다. 말 그대로 재생 가능한 생물자원이다. 축산부문의 바이오매스인 가축 분뇨를 이용한 바이오가스 플랜트 활용 사례가 특히 눈에 띄는데, ㈜이지바이오시스템의 바이오가스 플랜트는 하루 100t(돼지 분뇨 70t, 기타 유기물 30t)의 축산부문 바이오매스를 처리한다.
친환경농업 연 70% 성장세
㈜이지바이오시스템은 2007년 5월 순수 민간자본 약 48억원을 투입해 경남 창녕군 대지면에 설치 공사를 착수, 2008년 4월 발전소 허가를 취득했다. 2008년 10월부터는 한국전력공사에 전력을 판매(140원/kW)해 월 2500만∼3000만원의 전기료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바이오가스 플랜트 사업은 축산부문의 유기성 폐기물을 자원화해 에너지와 유기질 비료로 사용함으로써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산림의 목재 부산물을 활용하는 대체에너지 개발 사업도 첫 단추를 꿰었다. 지난 1월 산림조합중앙회가 연 1만2500t의 펠릿을 생산할 수 있는 제조시설을 경기 여주에 세운 것. 펠릿은 목재 부산물을 톱밥과 함께 작은 입자로 분쇄하고 건조한 뒤 성형한 난방연료다. 연간 생산된 펠릿은 경유 600만ℓ를 대체하고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이처럼 친환경농업과 기술개발 활성화를 중심으로 한 녹색성장 패러다임은 미래 농업발전의 모멘텀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동력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적절한 실행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된다면 농업은 환경친화적 국토와 온실가스 관리의 녹색산업, 그리고 안전한 농림수산식품 공급의 생명산업을 주도하는 미래 효자산업으로 거듭날 것이다.
김창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축산·환경팀장
친환경 영농, 녹색성장 이끈다
음악 들으며 사계절 자라는 유기농 미나리 생산
“농약이며 화학비료는 절대 안 쓰지, 영양분 골고루 주지, 한창 신나게 자랄 때 좋은 소리까지 들려주지…. 말이 식물이고 열매지 어린아이 키우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이제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돼요. 하찮게 보이는 농작물도 화학비료를 주면 말 안 듣고 성질내거든요. 열 받으니 해로운 것을 쏟아낼 테고요. 친환경적 농산물을 얻으려면 이들이 원하는 자연 그대로의 것들을 세심하게 살펴서 제공해야 해요. 그게 친환경이고 녹색성장이에요. 그러면 내 마음까지 정화돼요.”
경기 수원에서 유기농 미나리를 생산하는 우성영농조합법인 고기성(63·왼쪽 사진) 대표. 영농 31년 경력의 이 베테랑은 미나리를 재배하면서 느낀 점으로 친환경 녹색성장의 정의를 내렸다.
농림수산식품 분야의 녹색성장은 이명박 정부가 수립한 미래 국가발전 전략 가운데 가장 심도 있게 논의되는 이슈. 이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을 “60년간의 새로운 국가발전 패러다임”이라고 못 박았다. 정부가 제시하는 녹색성장 비전은 자연을 자연으로 돌리는 순환구조에서 환경, 경제, 사회로 연결짓는 국가 지속가능 발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 대표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친환경 유기 재배 방식으로 미나리를 생산해 호응을 얻고 있는 고 대표는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의 녹색성장 계획에 제시된 녹색성장 3단계 중 첫 번째인 기반구축 단계(2009~2012년)의 핵심 과제를 실천에 옮긴 사례다. 친환경 농업 확대를 위한 녹색기술 개발이 그것.
고 대표는 독특한 재배기술을 발전시켜 미나리 연중 재배에 성공했다. 그간 경기 지역은 남부지방보다 평균기온이 낮아 미나리 연중재배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고 대표는 먼저 환경부터 바꿨다. 비닐하우스를 연동 2중식으로 만들어 외부 기온이 비닐하우스 내부 기온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것.
또한 미나리의 습성을 파악해 그 생태도 세심하게 바꿨다. 미나리는 늦여름에 스스로 ‘월동준비’에 들어가려는 습성이 있는데, 고 대표는 이를 역이용해 미나리 종자를 한여름에 저온창고에 넣어 겨울잠을 미리 재우는 종자처리 기술을 개발했다. 이른바 냉온재배법. 수년간 실패를 거듭한 끝에 여름철에 겨울잠을 미리 잔 종자는 겨울이 와도 봄이라 인식하고 성장을 계속했다. 이런 미나리는 다음 해 초여름까지 성장했다. 그리고 다시 여름에 새 종자를 저온창고에서 겨울잠을 재우면 늦가을이나 겨울에도 미나리 재배와 수확이 가능하다.
그는 미나리의 성장 발육을 향상시키기 위해 미나리에게 ‘자연의 것’들을 되도록 많이 제공한다. 화학비료 대신 천연 유기 비료를 직접 개발해 사용한 것도 한 예. 쌀겨와 뽕나무를 먹고 사는 누에의 배설물을 주기도 했고, 이를 다시 황태 뼈와 껍질을 혼합해 끓인 뒤 그 액을 분말로 만들어 비료로 쓰기도 했다. 나중엔 미나리의 녹색을 더 진하게 하기 위해 아미노산이 많이 함유된 어분도 첨가했다. 심지어 생장을 촉진하기 위해 미나리에게 음악을 들려주기도 한다.
“미나리는 아침에 슬슬 운동을 시작하는데 기지개를 펴는 오전 6시에서 9시 사이에 바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등 자연의 음향을 들려줬어요. 뿌리 부위의 영양분 흡수 속도가 빨라지고, 줄기(대공) 발육 상태도 눈에 띄게 좋아지더라고요.”
고 대표는 미나리 병충해인 진딧물과 청벌레를 없애기 위해 농약 대신 천연 한방 기피제를 직접 만들어 쓴다. 때죽나무, 가래나무, 코스모스 등에 여뀌 같은 한약재가 들어간다. 이렇게 친환경 방식으로 재배된 미나리는 일반 미나리보다 칼슘, 인, 섬유소, 칼륨, 비타민A 등의 함유량이 4~5배 더 많다.
조개껍데기 칼슘 흡수한 친환경 사과 수확
경북 의성 김재인(54) 한국사과협회 회장의 과수원에서는 국내 최초의 친환경 사과가 재배된다. 이온화된 칼슘이 풍부하게 함유된 무농약 고칼슘 사과다. 시중에는 사과즙에 인공 칼슘을 첨가한 음료가 팔리고 있지만, 이제는 천연 칼슘이 첨가된 사과를 접할 수 있게 된 것.
원래 칼슘은 작물에 잘 흡수되지 않는다. 직접 열매에 뿌려도, 땅에 비료 형태로 공급해도 흡수율이 높지 않다. 그간 칼슘사과를 재배하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외부에서 사과로 자연 칼슘이 원활하게 흡수되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아 상품화에 이르지 못했다.
김 회장은 일본인 사과 재배 전문가를 불러들여 작물이 칼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실험에 돌입했다.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듭한 뒤 마침내 칼슘 흡수율이 높은 칼슘사과 개발에 성공했다. 칼슘 공급처는 다름 아닌 천연 조개껍데기.
“조개껍데기를 빻아서 써봤는데 처음에는 잎이 떨어지고 과일도 굵지 않은 등 난리도 아니었어요. 고민 고민하다 조개껍데기를 1200℃에서 구운 다음 분말로 만들어 열매에 살포했는데 흡수가 잘되더라고요. 사실 보통 사과에도 미량의 칼슘이 들어 있긴 해요. 하지만 이 사과는 달라요. 여느 사과보다 칼슘 함유량이 2~3배 많죠.”
김 회장이 생산한 칼슘사과의 칼슘 함유량은 kg당 40~50mg이나 된다. 최근에는 아미노산 천연 비료를 섞어 칼슘 함유량뿐 아니라 비타민C와 E 성분도 증강시킨 ‘비타칼’이라는 기능성 사과도 생산하고 있다. 2006년 고칼슘 사과 재배 방법으로 특허를 따낸 김씨는 지난해 ‘비타칼’ 사과 재배 방법으로도 특허를 취득했다. 생산량도 해마다 증가해 요즘은 연간 20kg 상자 1500개 정도의 고칼슘 사과를 수확한다.
“아토피 환자와 의사들도 많이 찾아요. 그냥 화학비료를 주고 키우면 열매도 크고 색도 잘 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으니 저야 좋죠. 친환경농업을 해봤자 친환경 직불제 지원을 받는 것 말고는 별 혜택도 없어요. 그래도 그건 아니다 싶었죠. 소신껏 밀어붙인 결과 칼슘사과도 잘되고 과수원 주변 환경도 좋아졌어요. 어느새 과수원 주변에 무당벌레가 생겨났다니까요. 지렁이도 늘어나고 개구리도 자주 보이고…. 그만큼 토양이 좋아졌다는 얘기 아닐까요. 이게 저에게는 작은 녹색성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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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로 만든 천연 소독제 · 국내 최초의 축분 발전
저탄소 녹색성장의 기반구축 단계인 지금, 친환경 농업기술 개발만큼 활발한 연구와 실용화가 진행되는 분야가 바이오매스다. 바이오매스는 농산 부산물, 목재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 유기성 자원을 말한다. ㈜바이오미스트테크놀로지의 식물 화학물질을 이용한 천연 소독 시스템 개발이 바이오매스 활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화에서 식물성 천연 원료인 피레트린(pyrethrin)을 추출해 천연 소독제를 개발했다. 피레트린은 곤충 등 냉혈동물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하지만, 사람이나 온혈동물에게는 독성을 나타내지 않아 구충제 성분으로 이용된다.
피레트린을 이용한 천연 소독제 개발은 축사 자동 무인소독 시스템 개발로 이어졌다. 식물에서 얻는 바이오매스로 친환경 보호 시스템까지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미 이 시스템은 경상북도의 20여 개 농장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는데, 소의 만성 소모성 질병 예방은 물론 축사 악취와 질병 매개체인 파리, 모기 등 해충을 제거하는 데 큰 효과를 보이고 있다.
축산 분뇨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충남 청양의 여양농장은 미래 저탄소 배출 및 신(新)재생 에너지 생산 기반 체제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대표적 인프라. 국내 최초의 바이오가스 전력 생산시설이다. 지난해 3월부터 바이오가스 플랜트 시설을 활용해 돼지 축분을 친환경 처리, 시간당 40kW의 전력을 생산한다. 여양농장 최명복 사장은 “분뇨에서 얻을 수 있는 나머지 찌꺼기를 액비로 활용하는 기술 개발이 남은 숙제”라고 전했다. 그동안 농식품부, 농촌진흥청 관계자가 수차례 방문했고 지난해 말에는 환경부 장관까지 현장을 찾아왔을 정도로 관심이 쏠려 있는 곳이다.
지역소비 촉진, 친환경, 일자리 창출 … 판로와 유통망 확보가 관건
식품안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로컬푸드는 말 그대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를 지역 소비자가 소비하는 것. 자신이 먹는 식품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됐는지를 알 수 있고, 복잡한 유통 마진을 줄여 값이 싸며, 근거리 운송이라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조금 어렵게 말하면 ‘특정 지역의 사회적 건강, 환경, 경제 향상을 목적으로 지속가능한 생산, 가공, 분배, 소비를 촉진하고자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노력’ 정도로 정의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로컬푸드 운동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농수산물이 1차산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생산하고 일정 부분을 소비하며 나머지는 가공처리해 2차, 3차산업에서도 부가가치를 높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로컬푸드의 개념과 일치한다. 식품산업 발전에 대한 이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는 대단하다. 농림수산부가 농림수산식품부로 이름을 바꿔 단 것도 그 때문이다. 농식품부 권재한 식품산업정책팀장은 “로컬푸드의 개념과 사례를 분석해 지역 농민, 지방자치단체, 지역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국내 로컬푸드 운동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2월17~19일 3개 지역의 로컬푸드 현장을 찾아 현실을 파악했다. 그들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한 걸음 앞서(?) 실행하고 있었다.
주부 15명이 만드는 ‘콩비지 버거’
“오늘 2호점 오픈한다고 하객들과 먹을 파전을 부치고 있어요. 드실래요?”
2월19일 오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청주YWCA 회관 지하 1층은 버거 패티(patty)와 파전 부치는 냄새, 그리고 사람 사는 냄새가 고소했다. 인심 후한 아주머니들이 내준 파전 한 접시를 후다닥 먹어치우고는 1층 ‘올리 버거’ 매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2007년 9월 청주YWCA에서 일하던 ‘㈜생명살림 올리’ 이혜정 대표가 직원 5명과 함께 문을 연 ‘콩비지 버거’ 가게.
“단백질과 섬유소가 풍부한 콩비지를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곳(봉명동) 주민들 생활수준에 맞고 건강에도 좋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찾은 ‘작품’이죠.”
이 대표는 가게를 내면서 ‘올(All)리(利)’라는, 영어와 한자를 섞은 브랜드도 론칭했다. ‘모든 생명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깊은 뜻’이 담긴 상호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신선한 식자재 사용을 이 사업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콩비지는 지역 장애인협회에서 매일 제공받고 양배추와 상추, 양파 등은 청주 인근 농장과 직접 계약해 공급받는다고. “어렵지만 원칙을 정했죠. 지역 친환경업체의 농산물을 기본으로 하고, 구하기 어려우면 저농약 농산물이라도 구매하자고요. 이것도 안 되면 생협(농협 등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매장에서 구입하는 걸로요. 누가 재배한 농산물인지 알 수 있어 믿을 수 있고, 또 신선하잖아요.” 올리는 로컬푸드 운동을 지향하지만 빵은 전남 순천에서 사온다. 청주 지역에서 우리밀 버거 빵을 생산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버거 맛의 핵심은 역시 패티. 퍽퍽한 콩비지를, 씹는 맛이 나면서도 건강에 좋은 패티로 ‘변신’시키기까지는 수십 번의 실험을 거쳐야 했다. 처음엔 맛을 내기 어려워 돼지고기를 갈아 넣었지만 실험 끝에 땅콩과 서리태, 유정란 등으로 고기 맛을 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올리 버거(1900원) 외에도 스테이크 버거(2800원), 해물라이스 버거(2800원) 등 다양한 메뉴를 개발했다.
올리 버거가 알려지면서 청주지역 어린이집과 학교, 각종 행사장, 가족단위 손님이 늘었고 지난해 10월 한 달에만 1만개 넘게 팔았다. 직원도 15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4월에는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아 최대 2년간 직원들의 최저임금을 지원받는 길도 열렸다. 제법 성공했지만 이 대표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친환경 농산물만 쓰다 보니 원자재 가격이 매출의 65% 정도를 차지합니다. 다른 가게는 30% 정도죠. 패티 제조를 기계화하면 대량생산도 가능하지만, 사회 공익기업으로서 ‘공익적 가치(일자리 창출)와 경영’이라는 두 줄 타기를 잘해야 하거든요.”
수익을 직원 퇴직금과 수당으로 적립하고 나면 ‘내 돈 없이 시작하는 어려움’이 팍팍 느껴진단다. 그래도 그는 이날 2호점까지 열었으니 내친김에 더 달려볼 생각이란다.
“주부들이 다국적기업의 대표 음식인 버거를 ‘재디자인’해 지역 먹을거리로 활용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죠. 하지만 맛있고 신선하니까요.”
슬로푸드로 ‘달팽이 삶’ 추구하는 팔당올가닉푸드
“우리나라는 길어야 이틀이면 모든 농수산물을 집에서 받을 수 있어요. 전국 농산물이 로컬푸드인 셈이죠. 로컬푸드와 슬로푸드, 푸드마일리지 운동은 모두 같은 말이에요.”
팔당올가닉푸드㈜ 김병수(50) 대표는 우리나라처럼 좁은 지역에서의 로컬푸드 운동은 한반도 전체로 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유전자 조작 식품이나 인스턴트식품과 달리 자연의 속도에 의해 생산된 슬로푸드가 진정한 로컬푸드라고 말한다.
서울 도심에서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팔당올가닉푸드(경기 남양주시 조안면)는 지역 농민과 소비자들이 출자해 10억원으로 시작한 유기농 음식물 전문 기업. 농민 82명과 소비자 28명이 돈을 대 자본금 10억원과 자산 43억원(정부지원금 17억원)으로 2005년 설립했다.
주요 생산품목은 우리밀 제과·제빵 40여 종과 유기농산물 반찬 20여 종. 제과·제빵은 유기농 밀에 유정란과 버터를, 반찬은 제철 농산물과 해산물로 우려낸 육수를 사용한다. 당연히 쇼트닝이나 화학첨가물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유기농산물은 남양주와 인근 하남시 등에서도 들여온다.
“슬로푸드는 달팽이가 상징이에요. 대개 달팽이를 보면 느리다고 생각하죠? 그건 사람이 자기 속도로 봤을 때 그렇죠. 달팽이는 자기 속도로 가고 있거든요. 생각해보세요. 송아지를 400kg짜리 소로 키우려면 보통 3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각종 성장제를 주면 1년 반이면 됩니다. 로컬푸드라고 해도 이런 속성재배(사육) 농축산물을 사용하면 안 됩니다. 슬로푸드가 진정한 로컬푸드인 거죠.”
1981년 어머니가 남양주 보건소에 일하면서 이곳과 인연을 맺었다는 김 대표는 3년여 동안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농사를 시작했다. “열심히 일했는데 못사는 건 마찬가지더라고요. 그래서 ‘유기농’ 하자고 했죠. 이곳이 팔당 상수원 보호지역이라 ‘이미지’도 괜찮았고요.”
반신반의하던 지역민도 수익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나자 하나둘 유기농을 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농가당 4000여 만원의 순수익이 났고, 도시에서 60여 가구가 귀농할 만큼 이곳은 ‘유기농 농촌’으로 알려졌다. 남양주시청도 부처명을 ‘농정과’에서 ‘유기농업과’로 바꿨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인식. 이는 판로와 직결된 문제였다. 인터넷과 생협 매장을 통해 판매하지만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했다. “2007년 신축 건물을 완공하면서 건물 2층을 아예 슬로푸드 체험관(문화원)으로 만들었어요. 인식이 바뀌어야 슬로푸드 판로도 뚫린다는 생각에서죠. 지난해에는 서울 강남지역에 슬로푸드 전문음식점 ‘달팽이밥상’ 두 곳도 문을 열었어요.”
도시민에게 유기농산물 밥상을 ‘직판’한다는 전략. 비빔밥 한 그릇에 1만원으로 다소 비싸지만 슬로푸드 마니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옆에 있던 슬로푸드 문화원 박성자 사무총장이 한마디 거든다.
“포도가 칠레에서 우리나라에 오려면 4개월 반이 걸립니다. 양파는 중국에서 들어오기까지 20~40일이 걸리죠. 이 기간을 거치려면 방부제로 ‘요술’을 부려야 합니다. 슬로푸드의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그는 △소비자 전문 교육기관의 활약 → △판매 증가 → △생산농가 고소득 보전 → △가공유통업체의 안정적 정착이라는 순환고리가 계속돼야 로컬푸드, 슬로푸드 운동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보너스는 못 주지만 그래도 20명 직원의 일자리가 생겼잖아요. 슬로푸드 운동을 하다 보면 생활도 슬로 라이프로 바뀌는가 봐요. 다 좋게 생각하고 천천히 가렵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로컬푸드로 주민 자활 돕는 전북 완주군
전북 완주군은 지방자치단체로는 드물게 지난해 11월 완주지역자활센터 내에 로컬푸드사업단을 출범시켰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주민을 자활사업에 참여시키고 지역 농산물도 판매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발상이다. 인건비와 사업비 등 8000여 만원의 예산은 국비(80%), 도비(10%), 군비(10%)로 마련했다.
“완주군의 콩과 깨 재배면적이 800ha가 넘어요. 대개 노인들이 조금씩 농사를 짓죠. 그래서 연중 판매가 가능한 참기름과 들기름, 메주, 표고버섯 등을 1차 로컬푸드 사업 품목으로 정했죠.”
자활센터 최종식 팀장의 말이다. 민간 업자보다 1000원 정도 웃돈을 얹어 수매하는데, 수매할 때 마을 이장이 참석하기 때문에 중국산이 섞일 가능성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 이장이 어느 집에서 깨 농사를 짓는지 알기 때문이다. “6명이 생산, 판촉, 마케팅을 담당합니다. 지난해에는 150가구에서 들깨 2000kg과 참깨 600kg을 수매했죠.”
가격은 참기름 1병(350ml)에 2만원, 2병에 3만7000원, 들기름 1병에 7000원, 2병에 1만3000원. 시중의 수입산 참기름(1만~1만5000원)보다는 비싸지만 슈퍼마켓에서 파는 국산 참기름보다 싸다. 문제는 판로였다.
“완주 모악산 등산로에서 주말마다 팔았어요. 자활센터 관계자들이 입소문을 냈고, 지역 언론에 소개도 되면서 서서히 판매량이 늘더라고요. 지금은 쇼핑몰 홈페이지를 만들고 있어요.”
군으로서는 일종의 ‘아웃소싱’ 개념이지만,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직거래 장터를 여는 등 홍보와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 팀장은 “걸음마 단계지만 앞으론 된장, 고추장 등으로 품목을 늘려갈 생각”이라면서 “생산자 이력제로 주민이 믿고 찾는 먹을거리를 만들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텃밭서 생산‘100마일 다이어트 운동’활성화
비영리 생협 ‘한살림’ 자료에 따르면, 미국산 수입밀 1kg을 소비하면 우리밀 소비보다 15배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미국산 수입밀을 소비하는 사이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해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수입산 농수축산물의 경우 장거리, 장시간 운송에 따라 신선도도 떨어진다. 또한 지역 농수산물을 구입하면 이를 생산하는 농어업인뿐만 아니라, 생산에 관계된 기자재 산업, 그리고 이를 가공·유통하는 산업 종사자들의 고용 안정에도 크게 기여한다. 시쳇말로 ‘꿩 먹고 알 먹고’라고 할 수 있다.
로컬푸드 운동 중 ‘100마일 다이어트 운동’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100마일(약 161km) 이내에서 생산된 농산물만 사용한다는 뜻이다. 캐나다 밴쿠버의 한 부부가 시작했는데, 미국 뉴욕에서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면서 활성화됐다. 참가자들은 9월(뉴욕 주에서 가장 농산물 수확량이 많은 달) 한 달간 뉴욕 주에서 생산된 농산물만 먹는 운동에 참여한다.
영국 런던에는 시장 직속으로 ‘런던 푸드’라는 먹을거리 위원회가 100마일 다이어트 운동을 돕고 있다. 이 위원회는 주말마다 직거래 농민장터를 열거나 병원 급식에 유기농 식재료를 공급한다.
하버드대 등 미국 유명 대학들은 대부분 인근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급식재료로 사용한다. ‘농장에서 대학으로(Farm to Colleg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이 운동에 동참한 대학만 400여 개. 이 프로그램으로 학교당 평균 16만 달러어치의 지역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는 밴쿠버(950여 곳), 몬트리올(8000여 곳), 토론토(3000여 곳) 등에서 공터를 활용한 텃밭 조성을 장려하고 있으며, 저렴한 수수료(연 20달러)를 받고 텃밭을 빌려주기도 한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비정부기구(NGO)를 중심으로 ‘지역생산-지역소비’라는 뜻의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이 펼쳐졌다. 2005년부터는 정부가 자연산 먹을거리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국내 일부 지자체도 지산지소 운동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다수확 절전 LED, 멸종위기 나도풍란 대량생산 등 곳곳서 눈부신 성과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의 한 재배하우스. 3300㎡의 공간에 꽃이 만개한 풍란이 가득하다. 이곳 주인인 허민수(48) 씨는 그 귀하다는 ‘나도풍란’을 멸종위기에서 구해낸 주인공. ‘대엽풍란’으로도 불리는 나도풍란은 꽃이 아름다워 관상식물 중 가치가 가장 높은 식물로 꼽힌다. 환경부가 무분별한 채취를 막기 위해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희귀식물이다. 번식을 시키기도 힘들어 하우스 재배는 그간 번번이 실패해왔다.
그런 나도풍란을 끊임없는 연구 끝에 대량생산에 성공한 이가 바로 허씨다.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니면서 기술을 익혔고 해외연수 등을 통해 형질전환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침내 허씨는 방사선 등을 이용해 변이체를 유도하고, 개체가 다른 풍란과의 교배에 성공하면서 새 품종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신지식 농업인’에 선정됐다. 현장의 땀방울이 이룬 결과물이자 농업 연구개발(R·D)이 거둔 쾌거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주말마다 이런 농가를 찾는다. 그가 현장에 나갈 때마다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은 ‘강한 농림수산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미래 농림수산업의 핵심 키워드는 기술발전이고 그 근본은 R·D라는 뜻. “틈만 나면 농림수산업 연구개발에 대한 정책적 구상을 가다듬고 거기에 온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2012년 R·D 기술, 세계 최고 수준
이와 관련해 농식품부는 지난 1월29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농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확정, 보고했다. ‘농업 분야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선 근본적인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투자 유치를 강화하고 농업의 고품질,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성장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는 게 골자.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농업 분야 R·D 사업 방안이었다.
사실 농업 분야의 R·D는 농업을 미래형 첨단산업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기능적·정책적 어젠다로 과거 정권에서도 강조돼왔다. 그 결과물이 기술혁신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투자 또는 운용 전략에 관한 정책과 사례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많은 논의와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그동안 총괄조정과 평가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게 사실. 예산 투자 및 농업 현장의 연구 수요와 신기술 개발 사례는 늘고 있으나, 이를 보급하고 활성화하는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못했다.
농식품부도 이번 보고에서 “그간 R·D 정책의 효율적 관리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산하기관 간 사업 추진이 중복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R·D 사업이 국·공립 연구기관에서 주로 기획, 집행되는 바람에 현장 실수요자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게 솔직한 반성이다.
이 같은 관리체계의 혼선을 막기 위해 농식품부는 지난해 3월 농업정책국에 기술정책과를 신설하고 농업 R·D 분야 정책 업무 전반을 조정토록 했다. 기술정책과 김상경 서기관은 “농수산 분야 연구개발 정책의 수립, 시행 단계에서부터 농수산 과학기술 육성 관련 법 제정과 제도 운용 및 중장기 계획 수립 시행, 국내외 공동연구기반 구축 운영에까지 관여한다”며 “비효율적인 기존 체계를 하나로 묶어 사업 추진 방향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 보고서의 R·D 혁신 방안에는 R·D 성과의 객관적 평가 기능을 확대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신설되는 농림수산식품과학위원회와 농림수산식품기술평가원이 기존 농식품부 내 농림기술관리센터와 농업진흥청, 산림청에 분산돼 있던 R·D 사업의 투자 방향 설정, 예산 편성 및 평가 등의 업무를 통합 관리토록 한 것.
DNA 유전정보 한우 유통과정에 도입
이러한 개편 내용은 지난해 11월 농식품부가 국회에 제출한 ‘농림수산식품과학기술육성법’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농식품부는 국회 계류 중인 이 법이 통과돼 시행되면 2012년까지 R·D를 통한 기술발전이 현재의 42~44%에서 68~82%로 향상돼 세계 최고 수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농식품부 총예산 대비 R·D 예산도 2008년 4.1%(6554억원)에서 2012년 7%(1조2679억원)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R·D 분야는 세부적인 틀이 갖춰지는 과도기에 있지만, 이미 각 기관과 현장에서 이뤄낸 기술혁신 사례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1994년부터 R·D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농림기술개발사업 분야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 농식품부가 국회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농림기술개발사업 현황에 따르면 2007년까지 4027개 과제에 5514억원이 지원됐고, 지난해에도 400여 과제에 800억원이 투입됐다.
최근엔 농가보급형 LED(발광 다이오드) 장치에 대한 R·D 사례가 호응을 얻었다. LED는 반도체에 전압을 가할 때 생기는 광선을 이용한 제품으로 다른 산업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장치.
그간 농업재배 현장에선 형광등이나 백열등 같은 전구가 이용됐는데, 광전환 효율이 낮고 전력 소모량이 많아 ‘애물단지’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농촌진흥청이 내놓은 대안이 광효율 높은 LED였다. 지난해 특허출원한 이 장치는 농가보급형으로는 세계 최초. 농촌진흥청은 2월 ‘농가보급형 LED 광처리 장치’를 광(光)응용기 전문업체인 비엘텍에 기술 이전했다. 비엘텍 홍수열 대표는 “기존 농가에선 2.5㎡당 1개씩 백열등을 설치할 경우 495㎡를 기준으로 하루 60~100W의 전력이 소모됐는데, LED를 이용하면 10W 미만으로 줄일 수 있어 막대한 에너지 절감효과를 낸다”고 했다.
7가지 형태, 35가지 강도로 조정 가능한 이 장치는 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농작물의 생리반응 특성까지 파악하는 수확도 얻었다. 예를 들어 자웅동주(雌雄同住) 과일인 참외는 LED로 파장이 긴 초적색 빛을 특정 시간대에 쬐어주면 암수가 재빠르게 바뀌며 많은 과일이 열리는 특성이 발견됐다. 또한 낮에 잘 자라는 딸기는 자정부터 1시간만 LED 적색 빛을 쬐어주면 주변 환경을 낮으로 판단하고 움직인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따라서 새벽에도 성장을 계속하게 해 굵은 딸기를 수확할 수 있게 된 것. LED 장치는 기술이전 단계를 거쳐 현재 실용화 연구에 들어가 있다.
이 밖에 인천 강화군에서 자생하는 쑥(사자발쑥)의 향균효과를 이용해 천연방부제를 개발하고, 버섯 중 베타글루칸(세포조직의 면역기능을 활성화해 암세포 증식과 재발을 억제하는 성분)을 함유한 꽃송이버섯 대량 인공재배에 성공한 것, 소의 생산이력 및 DNA 유전정보가 담긴 정보통신망을 한우 유통과정에 도입한 연구성과도 R·D 투자 성공사례로 꼽힌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농식품부는 R·D 관련 기술과제를 지원하기 위해 1월 2009년도 농림기술개발 사업시행 계획을 공고했다. 채소 종자의 바이러스 무독화기술 개발 같은 신품종 분야와 전통 발효식품의 기능성 표준화 연구 등 연구개발 분야에 434억원의 연구비가 지급된다.
“(농부는) 높기로는 선비만 못하고, 이익으로는 장사만 못하며, 편안하기로는 공업만 못하니 누가 농사를 짓겠습니까. 따라서 농사는 편히 지을 수 있어야 하고(便農), 수지가 맞아야 하며(厚農), 농업의 위상도 높아야 합니다(上農).”
1798년 농업정책을 제시하라는 정조의 교지에 응해 다산 정약용이 올린 ‘응지론농정소(應旨論農政疏)’는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와 농업인에게 깊은 지혜를 준다. 다산의 3농(三農)을 가슴에 새겼음일까. 글로벌 위기에도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나선 성공 농업인들이 있다. 스스로 3농 정책을 펼치는 농업인 6명을 만났다.
강화 약쑥 삼계닭 길러 대박 행진
인천 강화군 형제농장 안창회 씨
일반 삼계(삼계탕용 닭)는 35~48일 기르는 데 비해 ‘웅추삼계’는 최적의 육질이 만들어지도록 농장에서 50~57일 기른 후 출하한다. 일반 삼계보다 보름 정도 더 길러야 하는 만큼 사육비와 인건비 부담이 높아 일반 농가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웅추삼계를, 그것도 아주 특별하게 키우는 사람이 있다. 인천 강화 형제농장의 안창회(53) 씨가 그 주인공.
2남2녀의 장남인 안씨는 3남매가 양계업을 하는 ‘닭 가족’.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양계 일을 하면 잘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1983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수원으로 내려와 부모의 양계장 일을 도맡아 했다. 당시 1만 마리 정도이던 닭의 수와 수익은 매년 늘어갔다. 그러다 복합 축산업이 대세인 당시의 흐름에 따라 한우를 함께 길렀다. 그런데 1984년 1차 쇠고기 파동이 일면서 타격을 입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따로 하고 있던 사업까지 부도를 맞았다. 그의 표현대로 “쫄딱 망해서” 빈털터리 무일푼으로 수원을 떠나 부모님이 계신 고향 강화로 갔다. 그의 부모는 2년 앞서 강화에서 양계장을 하고 있었다. 강화에서 그는 임대 하우스 세 동에서 3000마리를 밑천으로 또다시 양계 일을 시작했다. 마침 군에서 제대한 동생이 도와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고수익을 올리기 위해선 차별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강화 인삼이다.
“처음에는 호응이 좋았어요. 인삼 먹인 닭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도매상과 대형 유통업체들에서 주문이 계속 들어왔고, 저절로 판로가 닦였죠. 그런데 어차피 삼계탕에는 인삼이 들어가잖아요. 소비자들은 또 다른 차별화를 요구하더라고요.”
그는 가까이에서 대안을 찾았다. 사자발약쑥. 사자발약쑥은 강화도에서만 자생하는 쑥으로 무기질과 비타민A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화군 농업기술센터와 협력해 사자발약쑥 달인 물을 웅추삼계에게 먹였다. 물과 약쑥을 100대 4 비율로 중탕하는데, 중탕기는 기술센터의 지원을 받고 약쑥은 직접 재배한다. 약쑥의 약발 때문일까. 일반 농가의 닭 폐사율이 5~7%인 데 반해 약쑥 먹인 닭의 폐사율은 1~2%에 그쳤다.
폐사율이 줄면서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게 됐고, 그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도 톡톡히 봤다. 이후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는 웅추삼계라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으며, 그 덕에 2008년에는 한 대형마트에 납품돼 ‘올해의 히트 상품’으로 선정됐다. 이후 3000마리의 닭이 17만 마리로 늘었고 ‘닭장’도 첨단 자동화 설비로 바꿨다. 그러자 수익률이 2배 정도 올라 연평균 1억원을 벌게 됐다고.
“사료 급여와 급수는 물론 난방과 환기를 모두 자동화 설비로 관리하다 보니 하루에 두 번 정도만 축사를 돌보면 돼요. 그 덕에 저희 부부만으로도 양계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됐죠. 동생들은 근처로 분가시켰어요. 웅추삼계를 브랜드화해 전국 직영 매장을 여는 것이 목표예요. 할 수 있어요.”
야생초는 내 운명 … 세계 석권 꿈꾼다
충북 청원군 태극화훼농원 한현석 대표
야생초가 좋아 국내외를 오가며 자료를 찾고 공부하다가 결국 대박을 터뜨린 ‘야생초 사나이’가 있다. 태극화훼농원 한현석(49) 대표. 마음씨 좋은 시골 아저씨의 인상이 야생초를 닮았다 싶었는데, 얘기를 듣다 보니 그의 삶도 야생초다.
용접 부문 국제 1급 자격증을 취득해 20대 초반 중소기업의 공장장이 될 정도로 기술이 뛰어났던 한 대표는 스물두 살의 어느 날 ‘용접인생’을 접고 ‘화훼인생’을 시작했다.
“저보다 훨씬 나이 많은 분이 밑으로 들어왔어요. 제가 직급이 높아 이것저것 지시하다 보니 ‘나이 들면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싶은 거예요. 그래서 돈 적게 들여 시골에서 죽을 때까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방법을 찾았는데, 화훼가 생각나더라고요.”
경기도 일대에서 일을 배운 뒤 지금의 충북 청원에 터를 잡았다. 터를 일궈가던 어느 날 국내 최대 종묘회사에서 씨(종자)를 샀는데, 알고 보니 모두 일본산이었다. 그래서 국내산 화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야생초’에 눈을 뜬 것이다.
“야생초 산업이 발달한 일본으로 무작정 날아갔어요. 당시 우리나라에는 야생화 재배 시장이 거의 없었거든요. 일본의 현실을 직접 보니 부럽기도 하고 배도 아프고…. 우리도 야생초에 대한 인식만 달라진다면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판단했죠.”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야생화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 자료는 부족했고 정보도 모을 만한 게 거의 없었다. 결국 스스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귀한 것을 싸게 공급하면서 오래 잘 키우는 비결’이 필요했던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잖아요. 야생초도 이런 분위기를 탔죠. 2000년 들어 산행만 1년에 150일가량 했어요. ‘병아리난초’를 발견하고 씨를 받은 뒤 사진을 찍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진 적도 있어요.”
내친걸음이었다. 1년에 대여섯 번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해외로 나가 새로운 수종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해서 한 대표가 보유한 품종만 200여 종. 충북 청주 지역에서 야생초 사진전만 수차례 열었고 야생초 책자도 출간했다.
“1년에 8000부 정도의 홍보 소책자를 배포해요. 물론 야생초를 알리는 데 홈페이지도 활용하고 있죠. 야생초 시장 확대를 위한 일종의 투자인 셈이에요. 그렇다고 판매만을 위해 홈페이지를 운영하진 않아요.”
한 대표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는 두 종류로 하나는 야생화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를 담는 순수 야생초 홈페이지, 다른 하나는 야생초 쇼핑몰이다. “홈페이지에는 광고가 없어요. 회원 모두가 주인이기 때문에 글을 올리고 삭제하는 일 모두 회원들이 직접 할 수 있죠.”
회원들의 로열티는 ‘묻지마’ 수준이라고. 기르다 죽으면 똑같은 야생초를 무료로 다시 보내준다. 이른바 ‘무한 애프터서비스(AS)’인 셈. 그렇다고 홈페이지를 통한 판매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화훼시장, 야생화 전문점, 조경업체 등에서의 판매가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야생초를 닮은 인생 아니던가. 지금의 궤도에 오르기까지 네 번의 실패를 맛봤다. 2004년에는 폭설로 하우스가 무너지면서 한순간에 1억4000만원을 날렸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야생초를 보니 제가 죽겠더라고요. 얼른 삽을 들고 눈으로 덮어줬죠. 야생초는 눈으로 덮어주면 살거든요.”
자신이 새로 발견한 야생화 ‘비비추’에 붙일 이름도 이미 정해놓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각종 규제가 심해 야생화 품목 등록이 까다로웠지만 내년부터는 한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비비추는 보통 진분홍색인데 흰색을 발견했거든요. ‘미리내’(은하수의 옛말)로 정했어요.”
수입에 대해 묻자 소이부답(笑而不答), 말을 아꼈다. “하우스가 무너졌을 때 복구비(1억4000만원)를 모두 제 돈으로 댔어요. 뭐 그 정도로….” 지금 그는 도시 아파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토종 야생초를 외국의 길거리에서도 볼 수 있는 종묘 수출 생각에 푹 빠져 있다.
친환경+문화예술로 명품쌀 마케팅
경기 가평군 피부호 씨
“자식들의 건강, 합격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정성으로 만들어진 쌀인 만큼 품질이야 당연히 합격이죠.” 경기 가평군의 피부호(54) 씨는 2002년 직접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쌀을 ‘물 맑은 세상 합격쌀’이란 자체 브랜드로 탄생시켰다. ‘물 맑은 세상’은 가평군의 상징. ‘합격쌀’은 자연환경, 재배 및 관리 기술이 합격 기준에 적합하다는 뜻이다. 일반 브랜드 쌀이 10kg, 20kg 단위로 판매되는 것과 달리 합격쌀은 광목자루에 정성스럽게 포장돼 4kg, 8kg 단위로 판매된다.
가평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집안의 장남인 피씨는 군 제대 후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했다. 쌀농사를 지으면서 버섯을 재배하고 과수원과 목장 일을 병행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이 발효되면서 앞으로는 쌀농사만 짓겠다고 결심했다.
“농사꾼으로서의 사명감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쌀은 우리 민족의 생명인데 그마저 외국에 의존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그는 멀리 내다봤다. 수입 쌀보다 고품질의 쌀을 생산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 해답을 친환경 농법에서 찾았다. 그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이다. 그렇게 2001년 오리농법을 시작했고, 2004년부터는 우렁이농법으로 전환해 쌀을 재배하고 있다. 우렁이농법으로 고독성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논의 잡초를 제거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우렁이의 배설물로 토질까지 높이는 효과를 얻었다.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경우 자치단체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까지는 우렁이를 100% 무상으로 지원받았지만 올해부터는 70%만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수확 후 건조, 저장, 도정, 포장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철저히 관리한다. 자연 바람을 이용한 상온 통풍방식으로 건조시키고, 가평군 종합미곡처리장(RPG)에서 그때그때 필요량만 완전미로 도정해 저온창고에 보관한다. 가평군 종합미곡처리장은 고품질 쌀 생산의 마지막 단계인 완전미 생산을 위해 그가 2003년 7억원(국고 4억원, 자비 3억원)을 들여 만든 공장이다.
생산에서 관리까지 체계적으로 접근한 결과 그의 ‘합격쌀’은 2003~05년 경기도 쌀 품평회에서 우수, 최우수, 대상을 받았다. 또한 지난해에는 ‘한국일보’가 주최한 대한민국 우수특산품 대상을 받으며 맛과 질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고품질 쌀을 생산한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는 점. 그는 “아무리 좋은 쌀을 생산해도 안 팔리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한다. 관건은 판로 개척이라는 것.
“웰빙, 웰빙 하는 요즘, 우렁이농법 등 친환경 농법으로 쌀을 재배하는 농가는 많아요. 그래서 친환경이라는 점만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지죠. 1600여 개나 되는 쌀 브랜드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발로 뛰어다니며 판로를 개척하는 ‘명품 마케팅’이 필요해요.”
‘합격쌀’의 판매 방식은 일반 공판장 등의 유통과정을 거쳐 판매되는 것과는 다르다. 그는 고객층을 먼저 정한 뒤 ‘VIP 마케팅’을 펼쳤다. 가평군의 골프장, 기업체, 백화점, 명품 숍의 문을 수없이 두드리며 선물용 상품으로 손색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전박대 당하기도 여러 번. 다른 지역에서 판로를 개척한다는 것은 몇 배 더 힘이 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은 채 판로를 열어갔고, 그 결과 정부나 농협 수매에 의존하던 이전보다 수익률이 30% 정도 올랐다. 현재 생산과 유통을 포함한 ‘합격쌀’ 브랜드의 연 매출액은 3억원 정도.
그의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브랜드 인지도를 구축하기 위해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소비자와의 정서적 교류도 시도했다. 또 하나의 마케팅 전략인 셈.
“비가 오면 농사꾼들은 쉬잖아요. ‘우중명절(雨中名節)’이죠. 5년 전인가, 친한 사람 열둘이 모여 ‘다락방(茶樂房)’이란 모임을 만들었어요. 차를 마시면서 뜻있는 시간을 보내자는 의도였죠. 지역 농가들의 협업을 이끌어내자는 생각도 있었고요. 저 혼자(농사 면적 6만6000㎡)만으로는 ‘합격쌀’ 브랜드를 유지하기는 힘들어요.”
이 모임을 통해 그는 서예, 미술, 음악, 사물놀이 등 각종 문화예술 활동을 전개하면서 농가 간 협업을 유도했다. 그렇게 형성된 네트워크는 자연스레 쌀 판매에 접목됐다. 그는 “사람들의 입소문만큼 강력한 마케팅은 없다”며 “농업도 비즈니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성공 요인은 바로 생산과 마케팅의 결합이었던 것이다.
블루베리 시장 개척, 연 6억 버는 뚝심 농부
경북 영천시 진우권 씨
로하스(Lohas)족을 겨냥한 선진국형 과수 재배로 연 매출 5억원 이상을 올리는 농가가 있다. 경북 영천시 북안면의 블루베리 재배 농사꾼 진우권(47) 씨. 블루베리에는 눈의 피로 회복을 돕는 안토시안, 항산화 작용을 하는 플라보노이드 폴리페놀류, 비타민, 아연과 망간 등의 미네랄이 다량 포함돼 있다. 장 건강에 필수적인 식이섬유도 바나나보다 배 이상 많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칼로리는 100g에 50~60kcal로 낮은 편. 진씨가 국내 최초로 블루베리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소득 대비 먹을거리가 10년 주기로 변화해왔어요. 1970년대 사카린, 80년대 설탕, 그리고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단 성분을 먹지 않는 경향이 생겼죠. 특히 컴퓨터 사용이 일상화하면서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현대인의 눈은 쉽게 피로해지고 칼로리가 낮은 음식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됐죠. 블루베리는 이러한 현대인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안성맞춤 과일이에요.”
블루베리는 외국에선 널리 알려진 과일이지만 진씨가 처음 묘목을 심던 2004년만 해도 국내에서는 재배 기술을 익힐 수 없어 시행착오도 많았다. 일본에서 구입한 300주의 묘목 가운데 3분의 2가 고사하는 아픔도 겪었다.
결국 진씨는 일본의 블루베리 재배 전문가에게 수천만원의 기술 이전비를 지급하고 2년간 진씨의 농장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블루베리 재배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익혔다. “실패 이유는 블루베리가 pH 4.5의 강산성 토질에서만 자란다는 특성 때문이었어요. 우리나라 과일의 주종인 사과, 포도가 pH 6.7~7.5의 알칼리성 토질에서도 잘 자란다는 점과는 다르죠.”
그래서 캐나다와 독일에서 수입하는 피트머스라는 유기 퇴적물(거름의 일종)을 이용해 식재를 시작했고, 2007년 6월 첫 수확의 기쁨을 맛봤다. 이에 앞서 진씨는 ‘스몰킹 블루베리’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꾸준히 브랜드 이미지 광고를 통해 블루베리를 알렸다. 그 덕에 첫 판매를 시작한 날 홈페이지 방문자 수가 2864명에 이르러 순식간에 제품이 동났다. 다음 해에 재구매한 고객 비율은 전체의 97%에 달했다. “전자상거래를 하다 보니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감성 교감이 없더라고요. 재래시장에서는 흥정도 하고 덤을 주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농가에서 재배되는 콩이며 옥수수를 덤으로 얹어 보내줬죠. 감사 전화는 물론 선물을 보내오는 고객도 생겼어요.”
그 덕에 매출은 지난해 5억원 이상, 올해는 6억원을 예상할 정도로 급증했다. 일본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왕실로의 수출도 확정됐다. 진씨는 올 7월 블루베리 가공공장도 열 계획이다. 이 공장에서는 블루베리 잼과 주스, 삼색송편, 블루베리 잎 녹차 등을 생산할 예정.
그는 “블루베리는 2~3년생을 심어 5년생이 될 때 수확을 시작하는데 그 사이 관상수 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황토방 메주로 제2인생 ‘장맛 달인’
전남 나주시 박은숙·나수근 부부
“오늘이 큰아들 초등학교 졸업식이라 어수선합니다.” 나무와 황토가 어우러진 황토집에서 함께 일하는 할머니 두 명과 아침식사를 하는 박은숙(44) 씨, 남편 나수근(43) 씨의 마음이 급해 보였다. 아들 졸업식도 있지만 오늘 해야 할 일이 부부의 아침식사를 재촉했다. 뜨끈뜨끈한 황토방에서 유자차를 마시며 듣는 그들의 삶은 황토 향처럼 은은했다.
“요즘 된장이 항암효과가 있고 건강식이라는 이유로 각광받고 있잖아요. 남편과 직접 콩을 재배해 된장을 만들고 있어요.”
지금은 된장, 간장, 죽염을 만들고 있지만 부부가 전통장에 처음 눈을 놀린 것은 대체의학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다. 광주에서 14년간 건강식품 사업을 했던 부부는 전원생활을 하면서 건강식품을 만드는 날을 꿈꿨다.
“일을 하면서 전통장이 약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전통장은 발효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전남 장성의 ‘발효 명인’을 찾아갔죠.”
지금은 돌아가신 기우경 옹(翁)은 흥선대원군이 마시던 ‘진고색주’를 재현한 발효의 명인. 부부가 진심으로 도움을 요청하자 발효 비법과 간장 제조 기술을 기꺼이 전수해줬다. 그 뒤 “시골에서는 전망이 없다”며 극구 반대하던 친정 부모를 설득해 2001년 현재의 나주시 반남면으로 귀농했다. 자신도 있었다. 마한의 역사를 담고 있는 반남고분 일대에 친정 부모가 내준 땅을 일궜다. 컨테이너에서 죽염메주를 만들고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어가며 메주를 띄웠지만, 습기와 온도 조절이 잘 안 돼 실패의 연속이었다.
“특수 된장과 간장도 만들었어요. 유황오리와 마늘, 죽염, 약콩 등을 넣어 만들었는데 제 맛이 안 나는 거예요. 2004년까지 정말 수백 번의 실험을 거듭했어요.”
실험 끝에 장맛이 나자 황토방을 만들었다. 황토는 온도와 습도 유지가 가장 중요한 전통장 발효에 제격이었던 것. 예상은 적중했다.
“26㎡짜리 황토방에서 메주를 띄우고 된장을 만든 뒤 지인들의 소개로 팔았어요. 워낙 조금 만들다 보니 물량이 달렸죠. 그래서 또 황토방을 지었어요.”
39㎡, 155㎡ 황토방을 또 만들 만큼 여기저기서 된장 구입 요청이 쇄도했다. 2005년 15말의 콩으로 시작했지만 2006년 50말, 지난해에는 100말로 메주를 빚었다. 메주 1덩어리가 보통 2kg인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에만 1000개의 메주를 띄운 셈.
본격적으로 장을 만들었지만 여느 개인 농가가 그렇듯 안정적인 고객 확보가 막막했다. 결국 박씨가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운영하는 e-비즈니스 과정을 수강하면서 전자상거래에 눈을 떴고 ‘선한세상’이라는 브랜드도 론칭했다. 2007년에는 전통장 홈페이지를 선보였으며, 농업박람회에도 참여해 브랜드를 알렸다. 직접 재배하는 우리밀과 콩은 무농약 인증도 받았다.
“지난해 매출이 7000만~8000만원은 됐을 거예요. 그 돈으로 집 근처 밭을 사고 옹기도 늘렸어요. 무농약 콩을 많이 재배해야 (전통장을) 많이 팔죠.”
‘아직까지는 남는 게 없다’는 표정이지만 나씨의 얼굴엔 흐뭇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된장이 ‘히트상품’이 됐지만 사실 부부가 귀농하면서 처음 손을 댄 죽염이 맏이 같은 느낌이라고.
“원재료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에 직접 담양에서 3년생 대나무를 선별해 사와요. 3년생이 수분 함유량이 적당해 흡수력도 좋거든요.”
대나무 마디를 잘라 소금을 빻아 넣고 황토로 밀봉해 1300℃ 가마솥에 10시간씩 8번을 구워낸 뒤 9번째에 비로소 녹여낸다. ‘선한세상’의 전통장이 짠맛이 덜한 것도 죽염 때문이라고. 최근의 웰빙(참살이) 식단에도 그만이란다. 요강까지 얼었다는 컨테이너에서 4년여 절치부심한 끝에 귀농 결실을 보고 있는 ‘대표님’이지만 지금도 마음은 한결같다.
“메주를 쑬 때 성공했던 방식으로 똑같이 해도 세 번 가운데 한두 번은 꼭 실패해요. 자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겠죠.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봐요.”
110억원 한우펀드 조성 축산 新패러다임 개척
충남 예산군 씨알목장 김태종 대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되면서 국내 한우산업의 붕괴 가능성까지 점쳐지던 지난해 6월, 충남 예산 복당리 씨알목장 김태종(45) 대표는 역으로 한우에 ‘올인’했다. 새마을금고연합회에서 100억원, 메리츠종금에서 10억원 등 총 110억원의 펀드를 유치해 ‘GB사모한우예찬특별자산투자신탁’ 상품(이하 한우예찬펀드)을 내놓은 것.
“큰 회사도 아니고 원금을 담보할 만한 부동산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스타 농민’도 아니었죠. 그래서 사업자등록증 하나 들고 조목조목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한우예찬펀드는 자금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축산 농가에 무상으로 암송아지 2750두를 위탁해 기르도록 한 뒤 3년 이전에 이 위탁우(어미소)가 낳은 첫째, 둘째 송아지와 어미소를 팔아 수익을 낸다. 어미소는 축산 농가가 구입할 수 있도록 우선권을 부여해 축산 농가도 보호·육성할 수 있다. 운영 기간 3년에 목표 수익률은 연 9%. ‘한우예찬’은 2004년 김 대표와 한우 브랜드화 사업에 뜻을 모은 인근 7개 농가가 함께 설립한 ‘씨알목장’이 만든 한우 브랜드. 생육 및 경영 관리, 사육 조건, 운송과 도축, 가축 분뇨 처리 등 모든 과정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2008년 7월 무항생제 축산물로 승인받았다.“‘한우예찬’은 품질이나 가격 면에서 국내 A클래스 가운데 상위권에 듭니다. 지난해 1등급 한우가 90%에 달했는데, 참고로 국내 전체 한우에서 1등급 출현율은 50% 정도입니다.”
한우의 육질은 3, 2, 1, 1+, 1++ 등급으로 나뉜다. 그중 1등급 이상을 고급육이라고 하는데, 꽃등심처럼 ‘꽃’자가 붙은 한우는 일반적으로 육질 등급 1+ 이상을 받은 고기다. 한우 품종이 단일하다는 전제 아래 1등급 출현율이 90%라는 것은 그만큼 소의 먹이나 관리, 출하 시기 등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한우예찬’이 짧은 기간에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출하 가격을 정하는 가격 보장 때문. 이로써 농가들은 시세에 신경 쓰지 않고 사육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건강한 성장과 발육을 위해 국내 최초로 ‘섬유질 배합사료(TMR, TMF)’를 주고, 소가 먹고 싶을 때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자유채식이 방식’도 도입했다. “우리 농업은 저가 외국 농산물과 경쟁해야 하고, 소득 수준이 높아진 소비자들의 다양한 트렌드도 맞춰야 합니다. 생산 이후의 과정에 따라 소득이 달라지는 상황에 직면한 거죠. 이를 극복하는 길은 유통과 소비 과정에 대한 능동적인 이해와 참여뿐입니다.”
김 대표는 서해안 간척지에 한우예찬 종합축산단지를 조성해 소들을 방목 형태로 사육하고, 분뇨를 이용한 퇴비공장을 세워 유기질 비료를 생산하는 한우종합목장을 건립할 예정이다. 아울러 10년 내에 한우예찬 레스토랑을 국내외에 선보여 한우를 수출할 계획도 갖고 있다.
중앙회장 단임제·인사권 축소가 핵심 … 의원들 입으론 개혁 뒤에선 표 걱정
“농민들은 다 죽어가는데 정치한다고 왔다 갔다 하면서…. 농협이 금융 하고 뭐 해서 돈을 몇조원씩 벌잖아. 농협이 번 돈을 농민에게 돌려주라 이거야. 농협이 돈 벌어서 사고나 치고 말이야.”
지난해 12월4일 새벽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이처럼 강한 톤으로 농협을 비판했다.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의 비리 연루 혐의가 드러나자 작심한 듯 불신과 불만을 터뜨린 것. 이 대통령으로선 순간적으로 ‘욱’했을 수도 있다. 상인의 애환을 체험하면서 “눈물이 난다”고 토로하고, 좌판에서 무시래기를 파는 할머니에게 20년 걸치고 다니던 목도리를 건넨 것을 보면.
어쨌든 이날 이후 바빠졌다. 농협 경영진이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고 사의 표명도 잇따랐다. 농협은 자체 개혁안을 발표하고, 정부는 농업협동조합법(이하 농협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일사천리. 그러나 급물살을 타던 농협 개혁은 칼자루를 쥔 국회에서 ‘일단 정지’했다. ‘시기상조’니 ‘9월 정기국회용’이니 하는 의원들의 ‘정지 발언’이 쏟아졌다. 결국 방송법 등 미디어관계법안 직권상정으로 국회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사실 농협 개혁은 정권 초기마다 쟁점화했고, 김영삼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세 차례 개정됐다. 사안은 다르지만 3명의 농협중앙회장이 영어(囹圄)의 몸이 됐으며, 농민들은 농협 얘기만 나오면 ‘아직 멀었다’는 반응이다. 국회에서 ‘일단 정지’된 농협법 개정안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읽을 수 있다.
정권 바뀔 때마다 추진하다 ‘용두사미’
농림수산식품부가 내놓은 농협법 개정안의 핵심은 농협 지배구조 개편. 신용사업 수익에 의존해온 농협 경영구조를 슬림화하고 농협 본연의 임무인 농산물 판매와 가공, 수출 등 경제사업을 강화하는 게 큰 틀이다. 거대 공룡(자산규모 206조원, 은행권 4위 규모) 농협을 분야별로 떼어내는 ‘칼’을 국회에 내놓은 것이다.
지배구조 개편은 중앙회장의 막강한 인사권이 세종증권 매각 비리 의혹 등 각종 비리의 근본 요인이 됐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중앙회장 선거는 전체 조합장의 직선(연임 제한 없음)에서 지역별 대표 대의원을 통한 간선제(단임제)로, 35명의 이사회(조합장 20명)는 30명 이내(조합장 1/2 이상 유지)의 규모로 줄였다. 중앙회장의 인사권도 축소해 대표이사, 사외이사, 감사 등을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인사추천위원회에서 후보자를 결정하게 했다. 중앙회장에게 몰린 권한을 줄이고 이사회가 실질적인 협의기구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한 것. 2006년 농협이 자회사 휴켐스를 태광실업에 매각할 당시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중앙회장의 ‘독단 경영’과 이사회의 한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이사회 규정에 따라 최소 일주일 전에는 (매각 사실을 이사들에게) 알리고 의결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그런 게 없었다. 긴급 이사회가 있다고 해서 갔더니 자회사(휴켐스)를 매각한다는 거였다.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안건 통과에 1~2분도 안 걸렸다.”(당시 농협 이사 A씨의 증언)
정 전 회장은 이후 휴켐스 헐값 매각 비리 의혹에 휩싸였다.
조합장의 권한도 제한했다. 자산 규모가 큰 조합부터 단계적으로 조합장 비상임화를 유도하고, 상임이사 임기도 4년에서 2년으로 줄이도록 한 것. 이와 함께 조합 경비로 경조사에 축의금이나 부의금품을 내는 것을 막고 임원 자격 기준도 강화했다. 기부 행위를 제한함으로써 사전선거 행위와 과열선거의 폐해를 막는다는 의도에서다. ‘촌(村)’에서 선거 출마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인물이자 경조사 ‘연락 1순위’가 조합장이란 것은 시골 출신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조합 관련 일 외에도 ‘지역 막강 파워’라는 이유로 조합장이 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며 부정선거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농협법 개정안은 또 신용사업 이익금을 경제사업에 먼저 지원하고 조합이 유통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세제 지원도 강화했다. 2007년 일선 조합의 매출 총이익 7조3000억원 가운데 인건비 등 조직 유지비는 5조7000억원. 조합장 보수는 평균 8300만원이었다. 신용사업 이익금의 상당 부분을 조직 유지비로 충당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중앙에서 내려보내는 조합 지원 자금(2007년 6350억원 규모)은 조합 경제사업 활성화에 집중 지원하도록 했다. 이 돈은 양재동 하나로클럽 같은 대형 판매장을 매년 2개씩 지을 수 있는 액수지만 그동안 조합별로 분산 사용돼 “있는 듯 없는 듯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
“농협중앙회장이 식사 제의를 하면 (국회의원) 서너 명은 참석한다. 지역구를 챙겨야 하는 의원으로선 (농협의) ‘돈줄’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원 자금의 사용처를 분명히 하면 국회의원이 중앙회장을 만나는 횟수는 확실히 줄 것이다. 정치 바람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국회 보좌관 A씨)
이 밖에 농협법 개정안에는 조합 선택권을 도(道) 단위로 확대하고, 조합공동사업법인 출자자 범위도 현행 일선 조합에서 중앙회와 농업인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은 ‘산 넘어 산’이다. 국회 파행으로 ‘시계(視界) 제로’ 상태다. 2월23, 25일 열린 공청회와 상임위에선 여야(與野) 의원 할 것 없이 농협법 개정안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당위론’은 찬성이지만 ‘각론’에선 저마다 이의를 제기했다.
모처럼 합의 →‘누더기 입법’ 가능성도
“회장 선거를 간선제로 한다고 선거 혼탁을 방지할 수 있는가”(한나라당 Y의원) “조합장의 경조사비 제한은 상부상조 전통을 끊는 것이다”(자유선진당 L의원) “농협법 개정안은 농협중앙회장을 무력화하고 있다. 상임이사는 조합원 눈치를 보지 않고 경영만 할 것이다”(민주당 C의원)….
국회의원이 농협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차근차근 손질하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속마음은 조금 다른 듯하다.
“사실 농촌 관련 법안은 끝(본회의)까지 가봐야 한다. 본회의에서 뒤집힐 수도 있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농촌 출신 의원들은 ‘생색’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봐라. 농협 조합장과 관계자들은 농촌의 ‘오피니언 리더’다. 농협 개혁도 좋지만 ‘고심했다’ 혹은 ‘반대했다’는 제스처 정도는 해야 한다. 표도 신경 써야 하지 않겠나.”(국회 보좌관 B씨)
농협법 개정안이 지지부진한 진짜 이유가 이렇다면 모처럼 농민단체들까지 합의한 농협 개혁은 요원하다. ‘딜’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 원안 대신 ‘누더기 입법’이 될 수도 있다. 칼자루를 쥔 국회가 ‘농협 개혁의 칼’을 어떻게 다룰지 지켜볼 일이다.
물샐틈없는 시스템 가동 … “이제 남은 건 신뢰 회복뿐”
[1항만 등으로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선 먼저 컨테이너 봉인 상태와 수출검역증 기재 사항 등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현물검사를 위해 검역시행장으로 입고될 때도 검역관과 수의사가 수입검역물운송통보서에 기재된 컨테이너 봉인 번호와 실제 컨테이너 봉인 실(seal)에 찍힌 번호가 일치하는지를 재차 점검한다.
2컨테이너 봉인과 내부 온도에 이상이 없으면, 컨테이너를 개봉해 미국산 쇠고기를 현물 관능검사대로 이동시킨다.
3국립수의과학검역원 소속 검역관이 관능검사 전 미국산 쇠고기 상자에 표시된 품목, 유통기한이 수출검역증의 내용과 동일한지 확인한다.
4냉동 포장된 미국산 쇠고기의 색깔과 냄새 등을 검역관이 점검한다. 냉동이 제대로 됐는지, 고기 조직과 조직 사이에서 결빙이 보이는지 여부를 직접 잘라서 검사한다.
5국립수의과학검역원 서울지원 검역관이 수입정보자동화시스템을 통해 정밀검사 대상으로 분류된 미국산 쇠고기 샘플을 분류한다.
6검역원 연구원이 정밀검사 대상인 미국산 쇠고기 샘플의 잔류물질 여부를 분석하는 합성항균제 실험을 지켜보고 있다.
7정밀검사가 끝나면 합격, 불합격 여부와 함께 정밀검사성적을 전산으로 입력한다. 적합판정이 나면 검역원은 수입신고필증을 발급하고 세관에 신고한다. 불합격 처리되면 반송, 폐기된다. 수입필증을 받은 수입업자는 검역시행장에서 쇠고기를 반출해 유통시킬 수 있다.]
한우 사육 농가는 물론, 전 국민을 바짝 긴장시키며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에 수입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과학적 검역체계’ 논쟁이 뜨거웠던 만큼, 현재 미국산 쇠고기 국내 검역이 어떤 절차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확인은 국민적 관심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기자가 수입 쇠고기의 검역 전 과정에 참여해 그 내용을 확인했다.
2월19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실촌읍 수양리에 자리한 ㈜삼일냉장. 부산항에서 올라온 미국산 쇠고기 컨테이너가 하역장으로 들어서자 인부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곳은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중부지원이 관리하는 40개 축산물 전용 보관창고 중 하나로, 쇠고기 현물을 직접 검사하는 검역시행장이기도 하다. 전국에는 70개의 축산물 전용 보관창고가 있는데, 나머지 30개 창고는 서울지원과 인천지원, 영남지원에서 관리한다.
지난해 6월26일 수입위생조건 고시가 발효된 이후 12월31일까지 검역 검사에 합격해 유통된 미국산 쇠고기는 총 4만5197t. 이 중 검역 과정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아 반송, 폐기된 경우는 있어도 오염된 미국산 쇠고기가 빠져나가 유통된 사례는 없다.
항만 현장검역에서 관능검사까지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중부지원으로 들어온 미국산 쇠고기 컨테이너는 이미 항만에서 목록 확인 및 1차 현장 조사를 통과한 것들로, 1차 현장 검사에는 검역원 소속 검역관이 파견돼 항만운송통보서와 상대국 검역증, 컨테이너 봉인과 파손, 오염 여부 등을 확인한다. 여기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자 수입업체는 검역원으로부터 수입 검역물 운송통보서를 발급받고 검역시행장으로 향했다.
중부지원에선 항만에서 1차 현장검사를 마치고 검역시행장으로 운송된 쇠고기에 대해서 현장조사와 역학조사 등 더 자세한 검사가 이뤄졌다. 서류로 수입위생조건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것. 검역관은 먼저 검역증에 ‘30개월 미만 연령 검증 품질체계 평가(QSA) 프로그램’ 내용이 제대로 표기돼 있는지를 점검한 뒤, 사전에 전산 입력된 정보를 통해 수출업자가 쇠고기 수출 승인을 받은 도축장인지 확인했다. 여기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자 수입업체는 검역원으로부터 수입 검역물 운송통보서를 발급받고 검역시행장으로 향했다.
검역시행장에선 검역관과 보관창고 관리수의사가 수입물량에 대한 관능검사를 했다. 관능검사는 컨테이너 이상 유무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현물을 확인하는 과정인데, 크게 외부검사와 내부검사로 나뉜다. 먼저 미국산 쇠고기는 대부분 진공포장 형태의 냉동육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포장 수량의 3%를 무작위로 선정해 개봉하고 육안으로 색깔 등을 검사한다. 무작위 3%지만 컨테이너 안쪽과 중간, 바깥쪽을 3등분해 1%씩 검사 샘플을 선정한다.
검역관은 냉동 상태의 고기색이 암적색을 띠고 부패한 냄새가 나지 않는지 확인했다. 특히 특정위험물질(SRM)이 포함됐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외부 검사에 이어 고기 내부의 온도와 냉동 상태도 검사했다. 냉동육일 경우 -18℃ 이하로 떨어져야 정상.
다음은 내부 조직과 지방 등 고기 전체가 냉동이 제대로 됐는지 판단하는 절단 검사. ㈜삼일냉장 관리수의사인 김길준 검역실장은 “얼마만큼 빠른 시간에 -18℃까지 냉동됐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라며 “보통 24시간 안에 -18℃로 얼린 고기는 조직과 조직 사이에서 결빙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반대로 천천히 얼린 경우엔 내부의 물이 스며들어 결빙 흔적이 많다. 이런 경우를 비롯해 고기에 이상이 생기면 해동검사를 하는데, 냉동 상태의 고기를 상온 5℃까지 녹여 관찰한다. 그 온도로 녹이면 냉동하기 전 상태가 가장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혀, 내장은 컨테이너별로 3개의 상자를 랜덤으로 뽑아 조직검사를 한다. 전체 쇠고기 상자에 대해선 금속탐지기를 활용, 이물질이 있는지 확인한다. 관능검사에서도 이상이 없으면 검역 완료까지 쇠고기를 축산물 보관창고에 넣어둔다. 그 다음 관리수의사는 육류검사 성적을 전산 입력하고, 수입업체는 축산물수입신고서를 신청 등록한다. 검역원은 이를 전산으로 받은 뒤 검역검사 정보시스템(KAKIS)에 접수해 저장한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끝이 아니었다. 아직 정밀검사가 남아 있다. 정밀검사는 서울지원과 영남지원 두 곳에서 하는데, 최종적으로 다이옥신, 농약, 항생제 등의 잔류물질이 검출되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단계다. 신규 승인된 미국 육류작업장에서 생산되거나 문제가 제기된 육류작업장 물량은 작업장당 3개 상자에서 시료를 채취해 정밀검사를 한다. 이미 승인된 수입물량도 무작위 표본 정밀검사를 거친다. 검역원의 수입정보자동시스템(AIIS)에 의해 무작위로 선정된 10% 물량은 반드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숨겨진 잔류물질을 찾아라!”
정밀검사는 미생물학적 검사와 합성항균제 분석법 위주로 이뤄지는데, 지난해 검사항목이 136개에서 149개로 늘어났다. 수입 재개 이후 들어온 미국산 쇠고기 중에선 현재까지 잔류물질이 발견된 사례가 없었다. 국립수의과학연구원 서울지원 송성옥 수의사무관은 “쇠고기의 경우 단기에 도축하는 돼지고기보다 성장 기간이 길어 항생제 등이 체내에 축적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그래도 미국산 쇠고기는 정밀검사 기준을 더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밀검사에서도 이상이 없으면 검역원은 해당 물량의 수입신고필증을 수입업자에게 발급하고 관할 세관에 신고한다. 이 과정에 이르면 수입업체는 검역시행장에서 검역물을 반출, 유통시킬 수 있다. 유통 시기는 미국 도축장에서 정한 유통기한 내(24개월)에서 수입업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마침내 미국산 쇠고기가 소비자에게 유통되는 단계다.
검역 관계자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검역체계가 안전하다는 진단을 내리면서 무엇보다 광우병과 국내 검역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 실장은 특히 “광우병과 검역체계 사이에서 신뢰가 쌓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영국에선 지금도 광우병이 발생합니다. 그런데도 영국 사람들은 자국 쇠고기를 소비합니다. 그건 신뢰의 영역에서 설명될 수 있는 얘깁니다. 광우병을 막기 위한 국가 검역 프로그램을 국민이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이죠.”
“靜中動 검역 높이 평가 … 현재로서 최선”
“정말 답답했다. 일방적인 정보가 전달되는 가운데 우리 속을 내보일 수가 없었다. 당시엔 어떻게 몸부림을 쳐도 ‘뒤틀림’으로 보였을 거다. 국민에게 죄송스럽다. 공직에 몸담고 있던 사람으로서 구체적인 검역 대비체계와 활동을 미리 알리지 못해 아쉽다.”
쇠고기 수입 재개 이후 역원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나.
“검역 조건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적용하려는 검역원의 노력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미국과 국내에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수입 재개 이후 미국 현지 도축장에 4명의 검역관이 나가 있다. 4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현지의 도축과 가공유통 시스템 등에 관한 정보를 확보해서 강력한 검역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다. 민간 출신 관리수의사를 공직으로 전환한 것도 검역활동 강화 차원에서 반가운 일이다. 검역원의 노력을 보이지 않는 ‘정중동’이라 표현하고 싶다.”
그럼에도 아직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불안한 시각이 많다.
“소비자의 ‘감성’이 워낙 큰 요소이다 보니 ‘안심 수준’에 이르기가 어렵다. 단편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과학적인 시각으로 사육, 도축, 가공, 운반 등 전체 시스템을 봐야 한다. 우리가 수입하는 미국산 쇠고기는 일본 등 다른 나라에도 똑같이 수출되는 품목이다. 거의 상위 클래스 품질이다. ‘우리만 따로’라는 건 왜곡된 시각이다. 검역도 마찬가지다. 수입이 이뤄지려면 현지 우리 검역관이 정한 50개의 ‘체크리스트’에 합격해야 한다.”
일각에선 검역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준과 조건이라는 것은 현재의 경험, 과학적 지식이 반영된 최대공약수다. 현재 기준이 잘 지켜진다는 전제 아래서 기준이라는 것은 언제나 보완, 개선되고 폐기될 수 있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발견되면 기준은 당연히 바뀐다. 그러면 양국이 기술협의회를 열어 다시 기준을 조정할 수 있다. 그것이 정상적인 검역이다.”
맛있고 저렴한 ‘진짜 쇠고기’ … 생산-판매망 조직화, 연계화가 해답
올해는 기축년(己丑年) ‘소’띠의 해다. 소 하면 한우이며, 한우와 쌀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온 식품 이상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갖는다. 한우는 시골 농부가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돈줄이었으며 농사를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역우(役牛)였다. 그만큼 한우는 지금까지 농촌경제의 버팀목이 돼왔다. 한때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부른 것도 그 때문이다. 요즘 선풍적 인기를 끄는 다큐영화 ‘워낭소리’ 또한 마흔 살 먹은 역우와 농부의 이야기다.
한우의 조상인 칡소(최근 복원됐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검은색 화우(和牛)가 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한우는 값이 비싼데도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쇠고기 브랜드로 정착했다. 이제는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인, 서양인도 그 맛에 매력을 느낄 만한 세계적 브랜드가 되기 위한 여정에 있다. 소의 해, 한우에 대한 인증사업과 DNA 확정 작업이 잘 마무리돼 순종 한우의 유지와 품종개량에 성공함으로써 한우를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품종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할 때다.
한우가 세계적 브랜드 가치를 가지려면 먼저 국내 소비자에게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아무리 시장가격이 비싸도 소비자가 그 상품의 주관적 가치를 그보다 높게 인정한다면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고사(枯死)를 면할 수 없다. 소비자가 바라는 것은 우리 입맛에 맞는 맛, 저렴한 가격, 안전한 쇠고기 세 가지다. 한우에 대한 반응조사 연구 결과도 똑같이 나왔다. 한우에 대한 대표적인 반응은 ‘맛있다, 비싸다, 진짜인가’로 압축된다.
1등급 선호 부위 60%까지 올려야 경쟁력
먼저 소비자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한우고기는 등심, 안심, 갈비 등 이른바 선호 부위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양지, 사태 등은 잘 알지 못한다. 선호 부위의 맛은 A1+ 이상이면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이런 1등급 이상 선호 부위 쇠고기가 전체의 50%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 문제다. 세계와 경쟁하려면 이를 60%까지 올려야 한다. 그러려면 우수 씨수소의 두수를 늘리고 암소 개량을 위한 DB 구축 등 개량사업을 벌여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노력과 함께 한우농가의 철학과 인내가 필요한 대목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비선호 부위, 즉 저지방육 부분을 이용해 우리 입맛에 맞는 요리를 개발하는 일이다. 소 한 마리를 잡으면 ‘맛있는’ 부위는 12% 안팎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머지는 가격이 싸다. ‘잘 안 팔리는’ 부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요리전문가, 식당요리사, 식당경영자, 홍보전문가, 한우경제전문가가 한데 모여 한우고기 식문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요리와 식당의 분위기가 소비자를 매료시키면 식당은 대박을 터뜨리고 비선호 부위도 인기를 끌 수 있다. 필자는 한우 자조금이 바로 이런 곳에 투자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홍색이 신선육 … 센 불에서 짧게 구워야
육안으로 살필 때는 고기색부터 봐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는 검붉은 색을 띠는 반면, 한우는 선홍색을 띤다. 다음은 지방층. 미국산 쇠고기는 지방층이 두껍고 고르지 않은 반면, 한우는 가늘고 고르게 분포돼 있다. 한우의 지방층은 흰색이고 양도 적은 편이다. 지방층의 분포를 살펴볼 때 마블링(결지방)을 빼놓을 수 없다. 고기의 맛과 영양이 가장 좋은 한우의 마블링을 보면 좁쌀이나 비늘 모양의 지방이 가늘고 섬세하게 고깃결 속에 박혀 있다. 선 모양이 지나치게 분명하거나 옐로 톤이 짙은 마블링은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미국산 쇠고기는 살짝 언 상태에서 뼈를 발라내기 때문에 고기 표면에 뼈를 발라낸 흔적이 있고 형태가 고른 반면, 한우는 신선한 고기에서 뼈를 발라내므로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다양하다.
한우도 품질은 여러 가지다. 먼저 알아야 할 점은 ‘1등급’이 가장 좋은 품질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 쇠고기의 육질 등급은 근내지방도, 육색, 조직감, 성숙도를 고려해 1++, 1+, 1, 2, 3의 5단계로 구분된다. 따라서 1등급은 품질구분상 중간 등급인 셈. 그리고 냉동육보다는 냉장육이 좋다. 냉동육일 때는 천천히 녹여 육즙이 최대한 덜 빠져나오게 한다.
좋은 한우를 골랐다면 육즙을 지키는 일이 남았다. 고기를 잘라서 오래 두면 육즙이 빠지므로 덩어리 고기로 보관했다 조리 직전 자르는 것이 좋다. 또한 고기는 고깃결과 직각으로 잘라야 한다. 그래야 연하고 조리하기도 편하다. 다만 채썰기나 장조림 등을 할 때는 고깃결과 나란히 잘라야 부서지거나 오그라들지 않고 쫄깃한 육질을 느낄 수 있다.
고기를 구울 때 익기도 전에 자주 뒤집는 것은 금물. 육즙이 다 빠져나가 고기가 퍽퍽해지고 속은 전혀 익지 않아 고유의 맛이 사라지기 때문. 팬에 올려놓은 뒤 고기 위로 육즙이 배어 나오면 그때 한 번 뒤집었다가 익었을 때 먹어야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이때 육즙과 구수한 맛의 손실을 막으려면 센 불에서 되도록 짧은 시간에 굽는 것이 좋다.
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생산비용과 유통비 절감 ‘발등의 불’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가 많이 먹는 한우 1등급 갈비와 2008년 6~8월의 호주산 갈비를 비교하면 한우는 1kg에 3만3361원인 데 비해 호주산은 1만1035원(냉장육)으로, 우리 것이 3배 정도 비싸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소비자는 가격차가 2.5배 정도면 수입산보다 한우를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따라서 축산농가는 2배 정도 비싼 한우고기를 생산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가격 하락의 답은 생산비용과 유통비용의 절감에 있다.
생산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료와 송아지값. 우선 송아지 가격을 낮추려면 번식우에서 송아지를 생산해 이를 키워 판매하는 일관 사육경영의 확대가 최선이다. 그러나 모든 한우농가가, 특히 대규모 농가가 일관 사육경영을 하는 데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따라서 정부가 대규모 송아지 생산기지 사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간척지에 농협 중심으로 번식우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책이라 볼 수 있다. 사료비를 절감하기 위해서도 간척지 조사료 단지 조성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해외사료자원 개발사업도 유익하다. 다만 지금과 같은 간접 지원방식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려우므로 석유, 가스 개발 등 식량에너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옳다.
유통비를 줄이려면 정부가 지난해 제정한 도축장 구조조정법에 따라 도축장 통폐합이 이뤄져야 한다. 더불어 지난해부터 추진 중인 도축세 폐지가 올해 안으로 시행돼야 한다. 여기에 정부 지원이 확대돼 스스로 통폐합하려는 도축장에 되도록 많은 자금이 지원돼야 한다. 도축장은 반드시 가공시설을 병설해 부분육이 냉장 상태로 유통되게 해야 한다. 동네 정육점에서 썰어 즉석 판매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규모화한 정육점에서 포장육을 판매하는 유통 형태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수입산 쇠고기를 국내에 판매하고 있는 엑셀, 몽포드 같은 다국적기업은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의 곡물시장, 고기시장을 내려다보며 생산·수출 작업에 수많은 전문가를 동원한다. 따라서 농가 단위의 생산, 판매체제로는 이들과의 경쟁이 불가능하다. 부업 규모로 하는 경우는 농가 단위로도 좋지만, 수입육과 본격적으로 경쟁하려면 한우농가의 조직화가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한우농가 협업체 구성(140개소), 시·도 단위 광역한우사업단 구성(12개소), 이들 생산조직과 연계된 축산물 가공·유통업체 육성 정책이 성공해야 한다. 여기에 생산, 유통의 연계사업을 종축, 사료, 사육, 도축, 가공, 판매로까지 확대해 ‘쇠고기’를 입맛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을 완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육점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등심을 생산해 제공하려면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경영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소비자가 원하는 ‘스펙’을 맞출 수 없다.
이 경우 수직적 계열화로 인해 농가를 소작농화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별농가 단위가 아니고 협업체, 또는 광역 한우사업단의 연계라면 그럴 우려가 없다. 미국의 ‘파이프스톤’이라는 회사가 좋은 예다. 여기에 협동조합이 제 기능을 해야 한다. 한우는 민간자본이 들어온 경우가 별로 없어 협동조합의 기능이 그만큼 중요하다.
이렇게 연결된 각 경영체는 통일된 생산 매뉴얼을 지키고 상호간의 협약을 준수해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연결된 경영체가 갖는 이점을 잃게 되며, 특히 식품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다. 현재 사료공장, 농장, 도축장, 수송차량, 판매점에는 ‘HACCP(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 인증’이라는 위생안전장치가 정비돼 있다.
원산지 표시제 강화해야 믿고 먹을 수 있어
그런데 예를 들어 수송차량이 이를 준수하지 않는다면 소비자의 식탁에서 식품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어느 한 단계에서 HACCP가 이뤄지지 않으면 모두가 허사다. 따라서 소비자의 반복적 구매, 브랜드 가치의 유지, 식품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조직화한 한우농가와 종축, 사료, 사육, 도축, 가공, 유통이 연계돼야 하고 각각의 생산 매뉴얼을 지켜야 한다. 정부는 이와 같은 연결체에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 연결체를 통해 한우는 수입육과 차별화를 기해야 한다. 국내산 쇠고기는 지난해 ‘소 및 쇠고기 이력 추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생산·유통 전 과정의 이력 추적이 가능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현재 5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수입 쇠고기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은 쇠고기 전체의 이력 추적 시스템 전산화 작업이 시급하다.
이와 함께 누구나 한우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으려면 원산지 표시 위반 처벌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5000만원 이하의 벌금, 5년 이하의 징역’을 ‘1년 이상의 징역, 1000만원 이상의 벌금’으로 높이는 등 처벌 하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지금의 솜방망이 처벌 규정 아래에선 얼마 안 되는 벌금을 물고 나서 똑같은 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다반사다. 법을 어긴 업자는 더 이상 업계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하고, 소비자는 위반업소를 두 번 다시 찾지 않는 풍토가 정착되게 해야 한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전국 120여 곳 목
⊙ 한우리 : 서울 동작구. 유통과정의 가격 거품을 빼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한우 각 부위의 500g 가격이 모두 5만4000원. 점심시간은 뷔페식, 정육 코너에서 부위별로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02-824-7710).
⊙ 한우방 : 인천 강화. 강화도 명품 ‘강화섬 약쑥 한우’로 유명. 농장에서 직접 키운 1등급 이상 한우를 정육점 가격보다 싸게 판매한다. 한우 등심 200g에 1만1000원, 한우 생갈비 200g에 1만2000원(032-933-2263).
⊙ 문수산성 : 경기도 김포. 김포 지역 한우 농민이 즐겨 찾는 곳으로 고기 맛이 일품이다. 한우를 정육점 가격으로 판다. 1++ 등급 한우 등심 600g 6만3000원, 한우 특등심 600g 4만3000원. 제공되는 채소는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것이다(031-997-2337).
⊙ 동가래 농장 : 강원도 횡성. 셀프형 한우식당으로 싸고 질 좋은 고기 제공이 강점. 1+ 등급 이상의 한우만 제공한다. 취향에 따라 골라 먹으면 되는데, 각 부위의 가격이 대부분 100g당 1만원도 되지 않는다(033-345-8841).
⊙ 청풍호 청정한우 : 충북 제천. 금성면 한우협회 회원들이 키운 한우 암소 1등급 이상만 취급한다. 특수 부위 600g을 3만5000원의 특가로 먹을 수 있다. 약초의 고장답게 황기를 넣은 곰탕도 유명하다(043-647-9485).
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CJ제일제당 ‘우리밀 밀가루’‘우리밀 국수’ 식감 개선 소비자 호응
1990년대부터 친환경 농산물 보호 차원에서, 한편으론 국산 밀 살리기 운동 차원에서 시작된 우리밀 가공사업에 대기업 CJ제일제당이 뛰어들었다. 이로써 우리밀 농가의 소득 확대는 물론, 새로 우리밀 재배에 나서는 농가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10월 100% 국산 밀을 사용한 ‘우리밀 밀가루’ ‘우리밀 국수’ 등 신제품 5종을 선보였다. 내년까지는 밀가루와 국수 외에도 우동, 생면류 같은 다양한 면 가공품과 프리믹스 군 등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 이를 위해 우리밀 수매 목표를 6000t으로 잡았다. 이는 지난해 국산 밀 생산량 9000t의 3분의 2에 달하는 분량. CJ제일제당은 이를 통해 우리밀 가공식품만으로 연간 12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우리밀로 만든 밀가루는 신토불이 농산물임에도 식감(食感)이 떨어진다는 이유 등으로 수입산 밀가루에 한참 밀려나 있었다. 빵으로 만들었을 때의 부드러운 느낌이나 면으로 뽑았을 때의 쫄깃한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재배 농가가 적다 보니 수입산 밀을 원료로 한 밀가루보다 2배가량 비싸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그동안의 각종 보급운동에도 국산 밀 생산량은 전체 밀 수요의 0.5%(1만t)에 불과한 실정. 이런 상황에서 CJ제일제당이 우리밀 가공사업에 승부수를 던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연간 120억원 매출 기대 … 시장 폭발적 성장
“이번에 출시한 ‘100% 우리밀 밀가루’는 다년간의 연구개발(R·D) 끝에 나왔습니다. 빵과 면으로 만들어도 수입산 밀가루보다 식감이 좋습니다. 그동안 국내 밀은 소비자의 선호도는 높은 편이었지만, 가공하면 수입산 밀보다 식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죠. 그래서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벌이고 있는 원맥품질 개량사업에 발맞춰 우리가 가공품의 식감을 절대적으로 높여놓았습니다. 제분 R·D 기술력이 없었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습니다.”
CJ제일제당 측은 최근 불어닥친 웰빙(참살이) 열풍과 각종 수입산 식재료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이 우리밀 가공사업에 날개를 달아주리라 예상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이런 현실에서 엄선된 국내 밀을 100% 사용한 CJ ‘우리밀 밀가루’가 소비자의 신뢰를 받고 또 선택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라고 자신한다.
CJ제일제당이 우리밀 가공사업에 진출한 이유는 또 있다. 현재 우리밀의 시장 규모는 연 150억원에 그치지만, 최근 가정용 우리밀 시장의 연 성장률이 56%에 이르고 있다. 업계에선 ‘폭발적인 성장세’라고 표현할 정도. 이에 따라 우리밀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욱이 우리밀은 정부의 곡물 자급 강화시책과 맞물려 원료 공급, 가격의 안정성 등이 뛰어나다는 장점도 지닌다. 세계 곡물시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제품을 생산, 판매할 수 있다는 뜻. 그뿐 아니라 CJ제일제당으로선 ‘대기업이 우리밀 자급률 향상에 일조한다’는 칭찬도 들을 수 있으니 일석삼조가 아닐 수 없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 3월 우리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민·관·학계가 함께 참여하는 ‘우리밀 생산 확대를 위한 민간·정부 협의체’를 구성하고 현재 0.5%에 불과한 우리밀의 연 생산량 자급률을 2012년 5%, 2017년엔 10%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 “국산 농가를 대상으로 밀 수매 지원, 저장시설 지원, 종자 개량 및 확보 등의 다양한 투자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대기업의 우리밀 가공사업에 대한 긍정적 평가, 소비자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합쳐져 궁극적으로 우리밀 재배가 계속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리는 게 업계 측의 관측이다.
우리밀은 주로 전북 군산 이남 지역에서 재배되는데, 최근에는 각 지방자치단체들을 중심으로 밀 재배 지역이 늘어가고 있다. 주요 산지는 전북 군산·김제·부안, 전남 해남, 경남 하동. CJ제일제당 홍보실 민태중 씨는 “현재 우리밀 농협을 통해 우리밀을 공급받고 있는데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 앞으로도 우리밀 산지와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늘어갈 것”이라며 “분명한 사실은 CJ의 진출로 그동안 제자리걸음을 해온 국산 밀의 산업경쟁력이 확보되고 이에 따라 새로운 농가 소득원이 창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판단에 따라 CJ제일제당은 소비자용 ‘우리밀 밀가루’ ‘우리밀 국수’와 B2B 원료용 밀가루를 출시한 데 이어 피자, 식빵, 제과 등 다양한 맞춤형 밀가루 개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제빵 프랜차이즈 ‘뚜레쥬르’가 CJ제일제당의 우리밀 밀가루를 공급받아 우리밀 빵 5종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뚜레쥬르에서 맛 검증 끝냈다”
CJ제일제당 외에도 우리밀 관련 업계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2003년 국내 최초로 우리밀 밀가루를 선보인 사조해표가 지난해 ‘우리밀 라면’과 ‘우리밀 짜장면’을 내놓은 이후 사업 확장을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SPC, 한국동아제분 등 제분업계도 우리밀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우리밀 전문 가공업체 ‘밀다원’을 인수하면서 우리밀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 SPC는 최근 전남 해남군과 우리밀 1200t을 재배하는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계열 제빵 브랜드 ‘파리바게뜨’에서 우리밀 식빵 등의 신제품을 출시했다. 한국동아제분도 지난해 9월 우리밀 생산자 단체인 한국우리밀농협과 우리밀 산업화를 위한 업무협정(MOU)을 체결하고 우리밀 빵, 국수 등 신제품 개발에 나설 방침이다.
CJ제일제당 우리밀사업 마케팅담당 한수 과장은 “CJ가 최근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우리밀 가공사업 확대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수입 원료의 안전성 문제와 국산 곡물의 자급률 향상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밀가루 사업 외에도 다양한 가공식품과 식자재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계속 개발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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