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김선자의 소수민족 신화기행_02

醉月 2009. 11. 9. 08:55

윈난 이야기① - 나시족의 창세기

神의 딸 아내 삼아, 인간세상 풍요롭게

일년 내내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해발 5596의 위롱(玉龍) 설산이 있는 곳에 리장(麗江)이라는 오래된 도시가 있다. 1922년, 미국 국적의 오스트리아인 식물학자 조지프 로크(Joseph F. Rock, 1884~1962)가 식물채집을 위해 그곳을 방문했다. 지금은 너무 많이 알려져 고즈넉함과는 거리가 먼 곳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그곳은 ‘위대한 민족’ 나시족(納西族)의 땅이다. 로크는 그 땅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무려 27년 동안 그곳에 머물며 윈난의 오래된 나시왕국을 서방에 소개했다. 우리에게도 이젠 ‘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이름으로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곳, 그곳에 하얀 색을 숭배하는 나시족이 산다.

노인들이 우아하고 장중한 선율의 나시고악(古樂)을 연주하고 있다.

‘나시’의 ‘시’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나’는 ‘검다’는 뜻이다. ‘검다’는 것은 ‘크다’는 것과 통하는 의미이므로 ‘나시’는 ‘위대한 민족’이라는 뜻이다. 지금 나시족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하얀 알에서 나왔다고 믿는다. 원래 검은 색을 숭배하던 나시족 사람들이 하얀 색을 숭배하게 된 것은 티베트 불교가 나시족의 땅에 들어온 이후일 것이라고 한다.

하얀 알에서 나온 나시족의 조상 총런리언(崇仁利恩)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나시족의 창세기, ‘총판투(崇盤圖)’(‘인류 이주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총런리언에게는 다섯 형제와 여섯 자매가 있었다. 그들이 서로 혼인을 하자 인륜을 어겼다며 노한 천신이 인간 세상에 홍수를 내려 인간을 모조리 없애버린다.<이것은 ‘총판투’가 지식을 소유한 계층인 동빠(東巴), 즉 동빠교(東巴敎)의 제사장들에 의해 기록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때 자애로운 동신(董神: 미리동아푸)이 멧돼지를 보내 미리 소식을 알려준 덕분에 총런리언은 다행히 화를 면한다. 동신은 또 그를 도와 나무로 인간과 말을 아홉 개씩 만들어 땅에 묻어둔다.

“아흐레가 지난 뒤에 가서 보거라.”

그러나 호기심을 참지 못한 인간 총런리언은 미리 가서 보았고, 결국 나무인간들은 온전한 인간이 되지 못했다. 동신은 나무인간을 부숴 산과 숲, 냇물에 버렸고 그것들은 각각 메아리, 산귀신, 물귀신 등이 되어 인간세상을 어지럽혔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으니 어떻게 할까. 자애로운 동신은 총런리언에게 짝을 찾아주기로 했다. 동신이 말했다.

“천성고암(天星高岩)에 가면 천녀 둘이 있다. 세로 눈을 가진 여인은 예쁘긴 하지만 마음씨가 곱지 못하니 아내로 삼으면 안 된다. 가로 눈을 가진 여인은 못생기긴 했지만 마음씨가 고우니 아내로 삼을 만하다. 알겠느냐, 가로 눈을 가진 여인을 선택하여라.”

과연 총런리언은 동신의 충고를 들었을까? 아니, 총런리언은 세로 눈을 가진 여인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선택했고, 결국 뱀, 호랑이 등의 동물을 낳게 된다. 그때서야 총런리언은 가로 눈을 가진 천녀 천홍바오바이(紅褒白)를 택해 비로소 인간을 낳는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가치를 중시하는 나시족의 심미의식을 보여준다고 말하지만 신계에서 태어난 총런리언이 결국은 ‘인간’임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또한 아름다운 여인은 유혹자로서 남성을 망칠 수 있다는 후대의 관념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신이 세상 만물에게 수명을 주는 이야기를 보면 총런리언은 더욱 ‘인간’적이다. 천지 만물에게 수명을 주는 날, 동신은 역시 총런리언에게 미리 귀띔을 해준다.

“내일 수명을 나눠줄 거야. 그러니까 깊이 잠들지 마라. 가시나뭇가지를 이불로, 돌을 베개로 삼고 자야 일찍 일어날 수 있어.”

하지만 총런리언은 담요를 깔고 편안한 이부자리에서 푹 자느라 신의 부름을 듣지 못했다. 결국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은 돌이 1억년을, 흐르는 물과 나무는 1000년의 수명을 받았고 늦게 도착한 총런리언은 120년의 수명을 받았다. 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인간에게 그래도 120년의 수명을 준 동신은 너그러운 천신이다. 동신의 아내 써신(塞神: 미리써아푸) 역시 인간을 돕는 착한 여신이다. 그들의 상징물은 하얀 돌이다. 나시 사람들이 대문 앞 양쪽에 놓아두는 하얀 돌 두 개는 언제나 인간을 돕는 동신과 써신의 상징물이다.
리장에서 따리로 넘어가는 길의 풍경.

호기심 많고 신의 말을 듣지 않는 총런리언이 천녀 천홍바오바이와 혼인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늘나라 천신 쩌라오아푸(遮勞阿普)는 자신의 딸이 인간세상의 남자와 혼인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게다가 천홍바오바이는 이미 천신 미루커시커뤄(米汝柯西柯洛, 인류와 천신들의 외삼촌)와 혼담이 오고가는 처지였다. 그래서 쩌라오아푸는 온갖 심술궂은 조건을 내걸며 그것을 다 해결해야 딸을 주겠다고 말했다. 하루 밤 사이에 아흔아홉 군데 숲의 나무를 다 베어오고 아흔아홉 군데의 땅에 씨앗을 다 뿌리라고 하며, 호랑이 젖 세 방울을 구해오라고 한다. 천녀의 도움을 받은 총런리언은 그 시험을 성공적으로 끝냈고, 결국 천홍바오바이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낸다.

쩌라오아푸는 남편을 따라 인간세상으로 가는 딸에게 좋은 말과 밭을 갈 소는 물론 호랑이 가죽옷과 갑옷, 보검, 금 바지와 은 치마, 세 명씩의 남자 하인과 여자 하인, 경을 잘 읽는 동빠, 가축과 오곡의 씨앗 등 많은 선물을 준다. 아이를 낳게 해주는 생육신의 문도 열어준다. 그러나 고양이와 순무 씨앗을 주지 않으니 둘이서 몰래 그것을 훔쳐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 천신이 그 사실을 알고 화가 나서 고양이에게 밤이면 울게 해 인간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고 순무는 삶으면 물이 되어버리게 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못하게 했다. 연인을 빼앗긴 미루커시커뤄는 그들이 인간세상으로 내려가는 길을 내내 방해했고 그들의 후손인 인간에게 병을 내리는 등 지금도 여전히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의식을 거행할 때 그를 제단의 가운데 앉혀놓고 제물을 바쳐 노여움을 풀라고 기도한다.

동빠 박물관 마당의 돌 무늬 장식.
총런리언은 또한 인간을 위해 하늘나라에서 장생불사약을 가져온다. 리상칸미껀(里爽堪米根)이라는 신비로운 동물의 달콤한 쓸개 세 개가 바로 장생불사약이다. 그 중 두 개가 너무나 무거워 총런리언은 그것을 들고 오지 못하고 하늘과 땅에 각각 놔두었다. 인간 대신 불사약을 갖게 된 하늘엔 찬란한 별들이 생겨났고 땅엔 초목이 가득 찼다. 겨우 들고 온 자그마한 쓸개 하나는 인간을 죽지 않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병을 치료할 수는 있었다. 총런리언은 그밖에도 많은 다른 것들을 갖고 왔다.

해 옆을 지날 때엔 따스한 햇살을/ 달 옆을 지날 때엔 달의 세 방울 유즙을/ 바위굴을 지날 때엔 메아리를/ 은하수를 지날 때엔 은하수 거품을/ 숲을 지날 때엔 꽃을/ 초원을 지날 때엔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을

동빠들이 사용하는 오폭관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리하여 인간세상은 좀더 풍요로워진다. 게다가 동신과 써신의 딸인 파종의 여신 헝구라러밍(亨古拉勒命)은 뭇 신들이 신들의 거주지인 쥐나스뤄(居那什羅) 산을 만들고 있을 때에 인간을 위해 그 산위에 은으로 만든 하늘사다리를 세우고 올라가 하늘 밭에 별 한 줌을 뿌려 환한 하늘을 만들어준다. 대지에 씨앗을 뿌려 초원을, 산에 씨앗을 뿌려 숲을 만들고 물 한 줌을 골짜기에 뿌려 맑은 시냇물도 만들어준다. 세상은 이렇게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놓은 곳이다.

한편 인간 세상에 내려와 3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자 총런리언은 하얀 박쥐와 회색 개를 하늘로 보내 천신에게 아이 낳는 비방을 알아오도록 한다. 천신이 알려줄 리가 없는 비방을 박쥐와 회색개가 몰래 엿듣고 와서 총런리언에게 알려주었고, 둘은 마침내 세 아들을 낳는다. 말을 못하던 세 아들은 박쥐와 회색개의 도움으로 티베트, 나시, 바이白족의 말을 하게 되었으나 천기를 누설한 죄로 박쥐는 천신에게 벌을 받았다.

총런리언이 약을 구해오는 이야기가 동빠 문자로 기록돼 있다.
오늘날 박쥐의 코가 납작하고 발가락이 세 개 밖에 없는 것은 그때 천신이 발가락 두 개를 부러뜨렸기 때문이다. 나시족에게 하얀 박쥐는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 비방이 적힌 경서를 하늘나라의 착한 여신 판주사메이(盤祖薩美·치유의 힘을 가진 여신)에게서 얻어오기도 한 지혜의 상징이다.

똥신과 써신이 세상 만물을 배치할 때 세상엔 진(眞)과 실(實), 허(虛)와 가(假)가 존재했다. 진과 실이 합쳐져 태양이 되고 허과 가가 합쳐져 달이 되었다. 이것들에서 하얀 기운과 검은 기운이 생겨났고, 하얀 기운과 아름다운 소리와 합쳐져 이꺼와꺼(依格窩格)라는 선신이, 검은 기운과 시끄러운 소리가 합쳐져 이구띵나(依古丁那)라는 악신이 생겨났다. 여기에서 각각 하얀 알과 검은 알이 생겨나고 거기서 동족(董族)과 수족, 즉 선과 악을 대표하는 두 개의 집단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피 튀기는 복수와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것이 바로 ‘흑백전쟁’이다

 

윈난 이야기② - 나시족 흑백전쟁

나시족의 신화에는 수없이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그 신들을 두 개의 계보로 나눈다면 하나는 티베트의 토착종교인 뵌교에서 온 외래 신 딩바스뤄(丁巴什羅), 다른 하나는 나시의 토착신인 충런리언이다. 천신의 딸과 혼인한 충런리언이 영웅적 인간이라면 티베트 뵌교의 시조였던 딩바스뤄는 둥바교의 신이 되었다.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고, 어머니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으며 악마에게 잡혀갔지만 오히려 그 악마를 물리친 딩바스뤄는 인도신화의 인드라와 많은 점에서 비교된다. 둥바교의 위대한 시조 딩바스뤄는 다른 선신(善神)들과 더불어 성스러운 산 쥐나스뤄(居那什羅)에 산다. 쥐나스뤄는 올림푸스산이나 쿤룬산(昆侖山)과 같은 나시족의 성산(聖山)이다. 높이 솟아올라 하늘을 떠받치는 이 산에는 또한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우주목, 한잉바오다(含英寶達) 나무가 자란다. 뭇 신들이 사는 이 산을 통해 영웅 충런리언이 천신의 딸 천훙바오바이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산의 남쪽, 녹색 세상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둥바교의 신로도(神路圖)가 새겨진 길. 길을 경계로 한쪽은 하얀 알에서 나온 선, 다른 쪽은 검은 알에서 나온 악의 세계를 보여준다.

충런리언은 미리둥주(米利董主·약칭 ‘둥주’)의 후손이다. 선신족인 미리둥주와 악신족인 미리수주(米利術主·약칭 ‘수주’)가 벌이는 백과 흑의 전쟁, 그 거대한 서사가 기록되어 있는 책이 바로 ‘둥안수안(董岩術岩)’(‘둥’과 ‘수’의 원한과 복수라는 뜻. ‘흑백대전’(黑白大戰)으로 번역됨)이다. 악과 선을 대표하는 흑과 백의 전쟁은 원래 중원의 것이 아니다. 흑과 백의 선명한 대조, 그것이 상징하는 어둠과 광명, 악과 선이라는 것은 서아시아의 전통에 오히려 가깝다. 나시족 신화에 들어있는 티베트 뵌교의 요소들이 서아시아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면 아후라마즈다를 숭배하던 조로아스터교의 관념이 윈난 지역에 살고 있는 민족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진(眞)과 실(實)이 합쳐져/ 밝은 태양이 생겨났고/ 가(假)와 허(虛)가 합쳐져/ 차가운 달이 생겨났네/ 태양빛이 변하여 터키석이 되고/ 터키석이 변하여 하얀 기운이 생겨났네/ 하얀 기운이 변해 아름다운 소리가 되었고/ 아름다운 소리가 변하여 이꺼와꺼 선신이 생겨났네/ 달빛이 변하여/ 흑보석이 되었고/ 흑보석이 변하여 검은 기운이 생겨났지/ 검은 기운이 변하여 시끄러운 소리가 되었고/ 시끄러운 소리가 다시 변하여 이구딩나 악신이 생겨났네

나무로 조각한 나시족의 신상들.
그렇게 생겨난 선신 이꺼와꺼는 하얀 알로 변했고 하얀 알이 하얀 닭을, 하얀 닭이 아홉 쌍의 하얀 알을 낳았으며 그 알에서 많은 착한 신들이 태어나고 마침내 선신족인 둥족(董族)이 태어난다. 악신 이구딩나는 검은 알로 변했고 그 알에서 검은 신조(神鳥)가 태어나며 그 신조가 아홉 쌍의 검은 알을 낳는데 그 알에서 무수한 요괴들이 나와 선신들과 대립한다. 그리고 악신족인 수족(術族)이 나타난다. 동족의 우두머리 둥주와 수족의 우두머리 수주, 마침내 그들 사이에 얽히고 설킨 전쟁과 사랑의 장엄한 서사가 시작된다.

둥주는 빛과 정의를 상징하는 반인 반신의 영웅이다. 그의 시대에 하늘과 땅이 열리고 마을도 생겨났으며 아이가 태어나기 시작했고 농사도 시작되었다. 신의 세상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아들 아홉과 딸 아홉을 낳아 마을을 만든 그가 있는 곳은 하얗고 환한 세상이었다. 태양도 달도 하얀색이었으며 산도 나무도 모두 하얀색이었다. 둥주와 수주의 마을 경계에 미리다지(米利達吉) 바다가 있었고 하늘사다리 역할을 하는 한잉바오다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검은 알에서 태어난 악신족의 우두머리 수주는 어두운 세상에 살고 있었다. 태양도 달도 검은색이었으며 산도 나무도 모두 검은색이었다. 수주는 빛을 원했다. 그는 하얀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는 해와 달을 훔쳐오고 싶어 했다. 해와 달을 차지하려는 경쟁은 창세신화에서 낯설지 않은 모티프이다. 수주는 신수(神樹)인 한잉바오다 나무를 베어버리려고 했다. 나무에 상처가 나자 동주는 불사약을 뿌려주어 나무의 상처를 낫게 했다. 한잉바오다는 금꽃과 은꽃, 옥으로 된 과일이 열리는 신비로운 나무였다. 그 나무에 매달린 초록색 잎은 젊은이들의 생명, 노란 잎은 노인들의 생명을 의미한다. 천신 미리둥아푸가 노란 잎을 지팡이로 걷어내면 세상의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나무로 대표되는 자연은 나시족에게는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한 신수에 난 상처는 둥족과 수족의 처절한 전쟁을 예고한다.

나시족 여성의 뒷모습. 동그란 7개의 장식은 북두칠성을 뜻한다.
수주의 아들 안성미우(安生迷吾)는 둥주의 아들 둥뤄와루(董若瓦路·약칭 ‘와루’)에게 자기 마을에 와서 하얀 세상에 있는 것과 같은 해와 달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와루의 아버지 둥주는 악신들의 땅에 태양을 만들어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아들인 와루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태양과 달을 거꾸로 걸어놓고 재물을 챙겨 자기 마을로 와버렸고, 안성미우는 와루를 추격해 둥주의 땅으로 들어왔다가 그들이 미리 설치해놓은 철 가시나무에 찔려 죽게 되었다.

분노한 수주는 둥주의 마을로 쳐들어왔다. 둥주 마을의 해와 달을 빼앗아와야 했고 아들의 원수를 갚아야 했다. 둥족의 와루는 바다 밑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다. 그것을 알아낸 수주는 딸 거라오츠무(格饒茨姆)를 보내 와루를 유혹하게 했다.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서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빛나는 어깨와 하얀 몸을 드러낸 채 노래를 부르는 거라오츠무의 유혹에 빠진 와루는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오빠의 원수를 갚으려는 일념에서 시작된 유혹이었지만 이를 어쩌나, 거라오츠무 역시 와루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결국 둘은 도망쳐서 쌍둥이 남매를 낳게 된다. 아버지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러나 가엾은 거라오츠무의 가슴에 격렬한 갈등의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집안의 원수와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그녀의 깊은 슬픔과 고통을, 사랑의 감정 때문에 아픈 밤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하리라. 그녀는 선택을 해야 했다. 어쩔 것인가. 결국 그녀는 핏줄을 택한다. 거라오츠무는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사랑하는 사람을 흑과 백의 경계지역으로 유인해 내고, 와루는 검은 바다에서 죽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남매를 둥주의 나라로 보냈다. 그 사실을 안 수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둥주의 나라를 향해 총공세를 벌인다.

동주가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수주의 단단한 방어선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결국 둥주는 하늘로 올라가 천신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천신들은 그에게 하늘나라의 용감한 장수들, 즉 유마(優麻)와 둬거(多格)를 내려 보낸다. 360명의 유마는 사자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전쟁의 신이며, 360명의 둬거는 매의 날개를 가졌으며 선과 악을 분명히 판별할 줄 아는 정의의 신이다. 하늘의 힘을 가진 전쟁의 신들이 둥주를 도와주니 판세는 금세 달라졌다. 수주의 마을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흑과 백의 전쟁은 빛과 정의, 선을 상징하는 백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에서 이긴 둥주는 수주의 내장을 꺼내어 승리신들, 즉 유마와 둬거에게 바쳤다. 비장하고 처절한 흑과 백의 서사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하늘의 장수인 승리신과 그 상징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이 이야기는 나시족의 조상들이 거쳐 온 투쟁의 역사를 반영한 것으로 읽히기도 하고 위대한 영웅들에 대한 장엄한 송가로 읽히기도 한다. 학자들은 또한 흑과 백의 투쟁이라는 구도에서 이원적 세계관과 이원 대립구조를 읽어내기도 한다. 이원 대립구조에서 승리하는 것은 언제나 선이며 정의이고 광명이다. 그것은 이원적 구조를 가진 다른 나라의 영웅 신화들과 별로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사실 이 신화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프는 하얀 해와 달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경쟁이다. 흥미로운 점은 검은 세상에 태양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에게도 검은 태양은 있다.

그렇다면 왜 태양은 하얀 태양과 검은 태양으로 나뉜 것일까? 태양은 여기서 자연의 상징이다. 자연은 언제나 두 가지 얼굴을 가진다. 나시족의 다른 신화에 보면 아홉 개의 태양이 나타나니 너무 뜨거워서, 아홉 개의 달이 나타나니 너무 추워서 한 개씩만 남기고 나머지를 제거하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은 인간을 품어주는 자애로움을 갖고 있지만 때론 혹독한 시련을 주기도 한다. 하얀 태양과 검은 태양은 자연이 갖고 있는 이중성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때 태양은 하얀색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조화를 무너뜨릴 때 태양은 검은색이 된다. 한잉바오다나무가 인간의 생명과 관련이 있다면 뱀의 몸을 하고 있는 둥바교의 자연신 수(署) 역시 자연을 형상화한 존재이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 자연도 인간을 보호해준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 뱀 모양의 자연신 수는 무지막지한 벌을 내린다. 이원적 대립 구조를 보여주는 하얀 태양과 검은 태양의 이야기가 전하려는 진짜 메시지는 어쩌면 인간과 자연의 화해가 아닐까.

윈난이야기③ - 바이족의 창세기

아득한 옛날의 하늘과 땅 지금도 존재하고
아득한 옛날의 해와 달 지금도 존재하며
아득한 옛날의 산과 강 지금도 존재하지만
아득한 옛날의 인간, 지금은 존재하지 않네
묵직한 잠언처럼, 바이족(白族)의 창세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낮게 깔리는 노래는 계속된다.
아득한 옛날, 나무는 길을 걸을 수 있었지/ 당신은 믿을까?
아득한 옛날, 나무는 길을 걸을 수 있었어/ 나는 믿지
돌도 길을 걸을 수 있었어/ 정말일까, 거짓일까?
돌은 길을 걸을 수 있었어/ 정말이야, 거짓이 아니지
소와 말도 말을 할 줄 알았어/ 정말일까, 거짓일까?
소와 말은 말을 할 줄 알았지/ 정말이야, 거짓이 아니지….
비가 내린 얼하이의 저녁.

천지의 시작에 관한 문답은 이렇게 계속 이어진다. 그 시절엔 농사도 잘 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통통하게 살이 올랐으며 몇 백 년의 수명을 누렸다. 그런데 세상에 홍수가 일어났다. 홍수의 시작에는 판구(盤古)와 판성(盤生) 형제가 있다. 판구와 판성 형제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어머니를 받들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묘장왕(妙庄王)이 점을 쳐주며 말했다.

“진사강(金沙江) 강변에 가서 고기를 잡으렴. 세 마리 붉은 물고기가 잡힐 텐데, 앞의 두 마리는 놓아주고 세 번째 물고기를 잡아야해. 알았지, 그가 바로 용왕의 아들이야. 그걸 잡거든 시장에 가서 팔아. 그러면 용왕이 와서 비싼 값에 살 거야.”

아들을 잃은 용왕이 직접 와서 흥정을 해 아들을 살렸고, 용왕은 그가 보통 점쟁이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를 찾아가 점을 쳤다. 그리고 묘장왕의 점괘가 틀렸음을 보이기 위해 세상에 비를 내리게 했는데 그것이 그만 지나쳐 온 세상이 물에 잠겨버렸다. 세상엔 하늘도 땅도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판구와 판성이 나섰다. 그들은 각각 하늘과 땅으로 변했다. 문답은 계속 이어진다.

다리 산골 마을의 겨울 풍경.
하늘과 땅의 크기가 서로 같았나?/ 하늘과 땅의 크기가 달랐지/ 하늘과 땅은 어째서 크기가 달랐나?/ 땅이 하늘보다 넓었어/ 어렵네, 어려워, 지금은 어떤가?/ 걱정하지 말게, 땅을 좀 줄였으니/ 어렵네, 어려워, 땅에 주름이 잡혀 평평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게, 높은 곳은 산이 되었으니/…/ 어렵네, 어려워, 세상 천지에 아무 것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게, 무스웨이(木十偉)를 찾아왔으니….

무스웨이는 판구와 판성의 화신이다. 눈이 그릇만 하고 입이 대야만큼 큰 무스웨이의 온 몸이 세상 만물로 변한다.

왼쪽 눈은 태양이, 오른쪽 눈은 달이 되고 배꼽은 다리(大理)에 있는 호수인 얼하이(海)가 되며 왼쪽 발은 창산(蒼山)이 된다. 손톱은 집의 기왓장이 되고 심장은 샛별이 된다. 거대한 창산과 바다만큼이나 큰 호수인 얼하이가 있는 다리의 창세기는 이렇게 끝없는 문답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태양과 달의 기원, 인간의 기원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판구와 판성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낯익은 거인화생형(巨人化生型) 신화라면, 라오타이(勞泰·시조 할머니)와 라오구(勞谷·시조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창세신화는 우주가 막 생겨날 때의 원초적 느낌을 그대로 전해준다.

세상이 혼돈 상태였을 때 하늘과 땅 사이에 거대한 바다가 있었다. 끊임없이 몸을 뒤채며 펄펄 끓고 있던 바닷물이 치솟아 오르니 하늘에 구멍이 뚫렸고,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두 개의 태양이 나타났다. 두 개의 태양이 하늘에서 부딪치며 생겨난 불꽃들은 별이 되었다. 작은 태양의 껍데기가 깨지면서 달로 변했는데 그것이 바다로 떨어져 9만 리 파도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마침내 하늘과 땅이 갈라졌다. 바다에 떨어진 작은 태양 때문에 바닷물이 끓어오르니, 바다 속 깊은 곳에서 곤히 잠자던 황금용이 놀라 깨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잠을 깨운 그 고약한 작은 태양을 찾아 삼켜버렸다. 그러나 불덩이가 뱃속에서 마구 요동을 쳤고, 용은 견디지 못해 그것을 토해내려 했지만 오히려 목구멍에 걸려버렸다. 마침내 뜨거운 태양은 큰 살덩이가 되어 용의 뺨을 뚫고 튀어나와 높다란 루어펑산(螺峰山)에 부딪혀 조각조각 부서졌다. 하늘로 튀어 오른 살덩이는 구름이 되었고, 공중으로 올라간 것은 새가, 산으로 들어간 것은 짐승이, 바다로 들어간 것은 물고기가 되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간 살덩이가 땅에 닿으니 왼쪽 반은 여자가, 오른쪽 반은 남자가 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최초의 인간인 라오타이와 라오구이다. 태양의 정기를 받았으며 동시에 땅의 기운이 합쳐져 생겨난 것이 인간인 것이다.

신을 모시는 날 사람들은 붉은 꽃과 향을 신에게 바친다.
그들 둘이 혼인하여 열 쌍의 남매를 낳았는데 언제나 딸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아들이 나왔다. 말들이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고 벌이 꿀을 가져다주었으며 개똥지빠귀가 자장가를 불러주었고 나비가 춤을 추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났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작은 동굴은 너무 비좁게 느껴졌다. 결국 아이들은 부모를 떠나 ‘행복’을 찾아 멀리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얀 학들이 그들을 보호해주며 같이 길을 떠났다. 라오타이와 라오구는 아이들의 출발을 말리지 않았다. 아버지인 라오구는 아들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막 솟아오른 죽순과 같다. 아직 태양이 얼마나 뜨거운지 모르지. 하지만 작은 어려움이 있다고 돌아서면 안 된다. 행복을 찾게 되면 바로 돌아오너라.”

어머니인 라오타이는 딸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갓 태어난 작은 새와 같아. 아직 비바람을 견디기 힘들지. 고통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멀리 높은 산을 바라보고 나아가렴, 좋은 것을 발견할 수 있겠지.” 그러나 어머니는 한 마디 덧붙인다.

“만일 길을 잃게 되면 지나가는 새들에게 전해주렴, 우리가 찾으러 갈게.”

그렇게 든든한 부모님의 믿음과 격려에 힘입어 아직 어린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간다. 첫 남매인 ‘붉은 구름’(누이)과 ‘큰 산’(동생)은 가는 길에 원숭이들과 친구가 되어 화살을 쏘고 사냥하는 법을 배웠다. 둘째인 ‘싱싱한 꽃’과 ‘독수리’는 넝쿨에 감겨 죽기 직전에 있던 봉황을 구해주고 불씨를 얻었다. 셋째인 ‘샘물’과 ‘큰 바위’는 제비들이 집을 짓는 모습에서 깨달음을 얻어 집짓는 법을 배웠다. 넷째인 ‘작은 별’과 ‘큰 바다’는 누에에게서 실을 뽑고 옷감 짜는 법을 익혔다. 다섯째인 ‘계수나무 꽃’과 ‘바람’은 개미가 나무를 타고 강을 건너는 것과 거미가 거미줄 짜는 것을 보고 배를 만들고 그물 만드는 법을 배웠으며, 여섯째인 ‘하얀 새’와 ‘검은 참새’는 딱따구리와 지렁이에게서 농사짓는 법을 배웠다. 일곱째인 ‘금계’와 ‘황룡’은 다람쥐의 도움으로 꽃과 나무를 기르는 법을, 여덟째인 ‘검은 호랑이’와 ‘밤나무’는 나비와 벌에게서 술 만들고 벌치는 법을, 아홉째인 ‘활’과 ‘천둥’은 온갖 독초를 먹어보고 인간을 위한 약초들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막내들인 ‘번개’와 ‘귀염둥이’는 새와 나비들에게서 노래와 춤을 배웠다.
다리 시저우 마을에 있는 어느 주택의 대문

라오타이와 라오구의 아이들은 ‘흐르는 물처럼 먼 곳까지 갔고 하늘을 나는 기러기처럼 높은 곳까지’ 가서 ‘나뭇잎보다 더 많은 산을 오르내렸고 하늘의 구름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만났다. 그러나 길은 아이들을 키운다. 그들은 드디어 그 머나먼 길에서 ‘행복’을 찾았다. 그리고 그 ‘행복’을 가르쳐 준 것은 바로 자연이다. 바이족의 신화 속에서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행복을 가르쳐주는 스승이다. 파랑새를 쫓던 치치르와 미치르가 찾아낸 행복과 바이족 아이들이 찾아낸 행복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바이족의 신화는 ‘모두를 이롭게 할 것’을 말한다. 그들은 욕심 부리지 않는다. 멀고 거친 길, 두려움으로 가득 한 낯선 길을 향해 용감하게 떠난 그들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 한 가지씩을 배워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이 배워온 것을 남들에게 알려줘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든다. ‘널리 남을 이롭게 하는 것’, 그것은 또한 우리의 단군신화가 품고 있는 중요한 가치가 아니던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임을 바이족 조상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윈난이야기④ - 신나는 신들의 세계
‘천의 얼굴’ 지닌 수호신들
김용(金庸)의 무협소설을 읽으면서 가슴 뛰었던 기억이 있는 분들이라면 ‘남조국(南詔國)’이나 ‘대리국(大理國)’, 단씨(段氏)라는 고유명사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제목조차 잊어버렸지만 어린 시절에 읽었던 숱한 무협지들 속에서 다리국의 단씨들은 어쩌면 그렇게 신비롭고 멋진 검객들이었는지. 칭기즈칸의 군대가 내려오기 이전까지 다리(大理)의 바이족(白族)은 중원의 한족 왕조와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고유의 문화를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었고, 다리국 단씨들은 바로 그 왕조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 자리를 내어준 지 이미 천년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바이족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살아있다.
바이족 사람들이 본주신을 모시고 사당을 떠나 마을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남조국의 위대한 대장군이었던 단종방(段宗榜)은 다리 지역에서 가장 많이 모시는 본주이다. 본주란 마을의 수호신이다. 다리 지역의 본주만 해도 무려 1000여 명에 달하니, 거의 마을 하나에 본주가 하나씩 있는 셈이다. 본주는 그 마을 사람들의 모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하여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마을 사람들의 모든 일상은 본주와 연결되어 있다. 좋은 일이 생겨도 궂은 일이 생겨도 사람들은 본주를 찾아간다.

흥미로운 것은 그 본주들이 참으로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그들을 모두 통괄하는 최고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얀 돌이나 황소, 나무 같은 동식물에서부터 민족을 재난에서 구한 영웅에 이르기까지, 온갖 본주들이 각 마을의 본주 사당에 모셔져 있지만 그들은 모두 평등한 신격을 지닌다. 도교의 영향으로 옥황상제가 이야기 속에 등장할 때도 있지만 그가 모든 신들을 총괄하는 최고신은 아니다. 이야기 속에서 옥황상제는 재미있고 떠들썩한 인간세상이 천상 세계보다 즐거워 보이는 것을 질투하여 인간 세상에 역병을 퍼뜨리라는 명령을 내리는 괴팍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을 정도이니까.

사해 용왕이 동해에 가서 얻어왔다는 하이차이로 만든 탕. 얼하이에서 자라는 유일한 식물이라고 한다.
본주들은 초자연적 신력을 지닌 신이지만 천상 세계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받드는 인간들과 같은 마을에 산다.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본주들은 마을 처녀나 다른 마을의 여성 본주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재산 많고 힘 있는 용왕에게 시집가라는 자기 말을 딸이 듣지 않는다고 화를 내기도 한다. 완벽한 신이 아니라 수시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자기를 받드는 마을 사람들과 장기를 두기도 하는, 그러나 남의 마을에서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부탁해오면 비가 들어있는 요술조롱박을 선뜻 빌려주기도 하는 마음 따뜻한 본주들. 그들은 때로 마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역병을 퍼뜨리라는 옥황상제의 명을 차마 수행할 수 없었던 대흑천신(大黑天神·불교의 마하깔라다)은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역병 약을 그냥 자기가 먹어버려 얼굴이 검게 타고 부스럼투성이의 몰골을 갖게 된다. 황소 본주는 인간들을 홍수에서 구하기 위해 자기 몸으로 물을 막아 마을로 들어오는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죽기도 한다. 바이족 사람들은 그런 황소를 본주로 모신다. 인간과 동물의 차별 같은 것은 바이족의 신화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자기들을 공격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내려왔던 당나라의 장군 이복(李宓) 역시 본주로 모셔진다. 비록 적이지만 이복은 자신의 왕조에 충성을 다한 장군으로 다리에서 죽어갔다. 바이족 사람들은 그 역시 본주로 모신다. 수시로 변하는 다리의 날씨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는 가지각색의 성격을 지닌 다리의 본주들, 그들이 엮어가는 유쾌한 세계는 너그럽고 온화한 바이족 사람들의 성품을 그대로 담고 있다.

바이족 여성의 꽃신.
돌은 바이족 사람들이 아주 오래 전에 숭배했던 자연물 중의 하나이다. 양들의 수호신인 하얀 돌(백암천자), 농사가 잘 되게 해주는 붉은 돌(홍사석대왕), 농사 지을 물줄기를 찾아내게 해준 거대한 돌(석보대왕) 등 돌 본주에 얽힌 이야기들은 땅의 생명력이라는 돌의 신화적 상징성을 잘 보존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다리의 자연환경과 관련된 본주들도 많다. 4000 높이의 창산(蒼山) 위를 감도는 검은 구름과 아무 때나 내리는 비는 태양을 삼킨 이리(狼)라는, 전 세계 신화에 매우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모티프를 만들어냈다. 아광(阿光) 부부는 창산 창랑봉(滄浪峰) 아래에서 농사짓고 옷감을 짜며 행복하게 살아갔다. 어느 날 개처럼 생긴 황소만한 이리가 나타나 태양을 삼켰고 그때부터 세상의 어둠이 시작되었다. 아광은 태양을 되찾아오기 위한 여행을 떠났고 꿈속에 나타난 노인의 계시로 자신들의 조상인 ‘염제(炎帝)’를 찾아간다.(여기서 ‘염제’라는 호칭은 후대에 변형된 것으로 여겨진다) ‘머리카락 숫자만큼이나 많은’ 시간이 지나 아광은 마침내 염제를 찾아가 태양이 사라지게 된 사정을 이야기했고, 신은 손에 신의 나뭇가지를 들고 나타나 검은 구름을 흩어지게 했으며 태양을 삼킨 이리를 활로 쏘았다. 마침내 태양은 다시 나타났고 아광은 태양신 본주로 모셔지게 되었다. 이런 유형의 신화는 인간 세상의 권력 관계를 묘사한 은유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수시로 창산의 정상을 휘감는 검은 구름을 지켜보고 있자면 그 지역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반영된 신화로 읽히기도 한다. 한편 얼하이(海)라는 큰 호수는 숱하게 많은 용왕 본주 신화와 바이족의 개국신화인 구륭(九隆) 신화를 만들어냈다. 사해(四海) 용왕은 차이촌(柴村)의 본주이다. 비와 바람을 다스리는 용왕에게 온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자기들의 소망을 쏟아놓는다.

“보리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비가 계속 내립니다, 비 좀 그치게 해주세요.”
“벼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비가 너무 내리지 않네요, 비 좀 내리게 해주세요.”
“저는 하관(下關)에 가야 하는데 북풍이 안 불어요, 북풍 좀 불게 해주세요.”
“저는 상관(上關)에 가야 하는데 남풍이 안 불어요, 남풍 좀 불게 해주세요.”

바이족 여성의 뒤편으로 보이는 연극 무대에서는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공연이 열린다.
사해용왕의 신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지만 인간들의 이 수많은 소망을 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러나 용왕은 총명하다.

“아침에는 남풍, 저녁에는 북풍이 불 것이다. 밤엔 비가 내릴 것이고 낮에는 해가 날 것이다.”

이렇게 지혜로운 용왕의 이야기도 많지만 얼하이의 물이 언제나 잔잔한 것은 아니듯이 용에서 형상이 변한 구렁이 역시 자주 등장한다. 초록 복숭아를 먹고 임신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단적성(段赤誠)은 사람을 괴롭히는 구렁이를 없애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칼들을 온몸에 두르고 구렁이 뱃속으로 들어가 구렁이를 죽인다. 그러나 단적성은 살아남지 못했고 사람들은 그를 기려 본주로 모셨다. 저우청(周城) 마을 나비샘물(蝴蝶泉) 근처에는 거대한 구렁이가 나타나 가축을 잡아먹고 처녀 둘을 잡아갔다. 용감한 사냥꾼 두조선(杜朝選)이 그 구렁이를 죽이고 처녀 둘을 구해냈으며 마을 사람들을 재앙에서 구해준 공로로 본주로 모셔진다. 남조국이 육조(六詔)를 통일하기 이전, 오조(五詔) 중의 한 나라 왕비였던 백결(柏潔)부인은 남조국 왕의 계략에 빠져 억울하게 불타 죽은 남편의 원수를 갚고 본주로 모셔진다. 그녀가 생전에 불타 죽은 남편의 뼈를 거두기 위해 뜨거운 재를 헤치느라 손가락 열 개가 짓물러 피가 흘렀다. 그들을 기리기 위해 행해지는 횃불축제날, 바이족 여성들은 그녀를 기억하며 봉숭아 꽃잎으로 손톱 열 개를 붉게 물들인다.
유채꽃이 만발한 초봄의 다리 풍경.

그러나 모든 본주가 다 이렇게 고결하고 희생적인 품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 근엄한 남조의 대장군 단종방도 이야기 속에서는 다른 마을의 술 빚는 아가씨에게 마음을 빼앗겨 두 마을을 왔다 갔다 하는 본주가 되며, 학경(鶴慶) 지역의 동산노야(東山老爺) 본주는 소교장촌(小敎場村) 본주인 백저(白姐)와 사랑에 빠져 밤이 되면 그녀에게 갔다가 새벽에 담을 넘어 돌아오느라 본주사당의 담이 닳아 없어질 정도였다. 어느 날, 백저 곁에서 깊은 잠에 빠진 동산노야가 새벽닭이 우는 바람에 혼비백산해서 자기 마을로 돌아왔다. 동산노야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점잖게 본주사당에 앉아 사람들의 배알을 받았다. 그러나 경건하게 향을 바치던 사람들은 동산노야의 발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본주의 왼발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장군의 군화가 신겨져 있었지만 오른발에는 여인의 꽃신이 신겨져 있었던 것이다. 소교장촌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졌으니, 늘 단정하고 아름다운 백저의 오른발에 장군의 군화가 신겨져 있었다. 본주에게 절을 하던 마을 사람들은 근엄한 본주의 얼굴과 우스꽝스러운 본주의 신발을 보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

영험한 신통력을 가진 마을의 수호신들도 이렇게 인간과 똑같은 결점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아는 바이족 사람들, 열린 마음으로 자신들과 다른 존재들에 대한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오늘도 유쾌하게 신들과 인간의 세계를 넘나든다.
윈난이야기⑤ 지눠족
영혼으로만 맺어질수 있는 금지된 사랑
한없이 이어지는 노래를 부르네
나의 바스 연인이여
신들의 세상 페이모 여신이 우리를 만드셨지
그대, 나의 마음속에 들어와
살아서도 죽어서도 잊지 못하네....

사람과 돼지가 함께 한가로이 노니는 지눠족 마을의 풍경.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슬픈 연인들의 길고긴 노래가 시작된다. 윈난성 남부 시솽판나(西雙版納) 부근 지눠족(基諾族) 마을에 전승되는 오래된 이야기. 그들의 가슴 저린 이야기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류이(劉怡)의 글, ‘지눠산 절창(基諾山絶唱)’에서였다. 류이가 오랜 현지 답사를 통해 소개한 지눠족 연인들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는 나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그 슬픈 연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죽은 여인은 여신이 되어 이승으로 자신의 연인을 찾아온다. 그 기나긴 사연을 읊은 노래가 바로 ‘조가비의 노래(貝殼歌)’이다. (이 노래는 선차(沈洽)가 채록했다)

미소가 아름다운 지눠족 여성.
총 인구가 2만명도 안 되는 지눠족은 1979년, 중국 정부에 의해 중국의 제56번째 민족으로 등록되었다. 지금은 길이 잘 뚫려있어 마을들이 길가로 나와 있지만 그들이 모여 사는 지눠산(基諾山)은 구불구불한 란창강을 지나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울창하고 깊은 열대우림지대에 자리하고 있었다. 외부와 격리된 지눠족 마을에서는 한씨족이 대나무로 만들어진 큰 집인 ‘대장방(大長房)’에서 살기도 했는데 무려 70~80명이 한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고립된 씨족마을에서 함께 자라던 아이들은 때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마을의 법칙에 의해 엄하게 금지되었다. 씨족 내부의 근친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아는 마을 장로들은 엄격한 법을 정해 씨족 내의 혼인을 막았다. 그러나 외부 사람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마을, 젊은 남녀 사이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었고 그런 경우 마을에서는 그들을 마을 공동체에서 내쫓아버렸다. 하지만 금기는 늘 위반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아무리 가혹한 처벌을 한다 해도 씨족 내부의 연인들은 언제나 생겨났다. 결국 장로들은 그들에게 비상구를 마련해주었다. 서로를 가슴 속에 품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인정해주되 외부인과 혼인해야 하는 것이다.

열대우림 속에 위치한 지눠족 마을에는 겨울에도 화사하게 꽃이 핀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자신들이 정성껏 만든 정표(남자가 직접 깎아 만든 ‘구현(口弦)’이라는 작은 하모니카 같은 악기, 여자가 직접 수놓은 허리띠 등)를 주고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평생 간직하다가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날, 함께 묻어달라고 한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은 저승에서 이루어진다. 그들의 영혼이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맺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조건이 있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하다가 자살이라도 하게 되면 그 영혼은 조상들의 땅으로 갈 수 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아픈 사랑을 한다고 해도 절대 자살해서는 안 된다. 이승에서보다 더 긴 삶이 저승에 남아있는데, 그곳에서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려면 이승에서의 삶을 함부로 끝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죽지도 못하는 사랑. 그런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연인들은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평생을 견뎌낸다. 그리고 1년에 한번 열리는 축제날, 그들에게는 서로의 손을 잡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날만은 남편도 아내도, 자신들의 사랑과 손잡는 것을 간섭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날,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그렇게도 애절했다고 한다.

그렇게 씨족 내부에서 서로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바스(巴什)’라고 부른다. 사실 지눠족의 창세신화에도 바스 연인은 등장한다. 아모샤오보 여신이 자신이 만든 세상의 인간과 동물들이 서로 다투며 증오하는 꼴이 보기 싫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홍수를 일으킨다. 그러나 마음 약한 여신은 착한 남매인 마니우와 마헤이를 큰 북 속에 숨겨 살아남게 하고, 홍수가 지나간 후 마니우와 마헤이가 혼인하여 인류의 시조가 된다. 신화 속의 남매는 혼인하여 인류의 시조가 되지만 실제 지눠족 마을에서 씨족 내부의 혼인은 금기 중의 금기이다. 해서는 안 되는 사랑에 빠진 바스 연인들, 남자가 먼저 마을의 법칙에 따라 외부의 여성과 혼인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는 절망에 빠져 노래 부른다.

바스 낭군이여/ 당신은 이제 혼인하여/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지만/ 가련한 나/ 옛정을 잊지 못해 다른 사람 찾지 못해요/ 다른 남자들이 아무리 나를 찾아와도/ 나, 당신을 잊지 못해요/ 페이모 여신이 세상에 보내신 나/ 당신을 얻지 못해/ 마음이 이렇게 슬퍼요/ 얼마나 많은 날을 이렇게 그냥 보내야 하는지….

이런 노래를 부르며 여자는 자신의 생을 마치려고 한다. 인간은 원래 천상의 세계, 신들이 사는 세상의 여신 페이모가 만든 작품이다. 일곱 개의 얼굴을 가진 페이모 여신은 석 달에 걸쳐 인간을 만든 뒤 자신이 만든 인간의 이마와 손바닥에 검은 숯으로 무늬를 그려 그들의 운명과 생명을 새겨 넣는다. 그것이 바로 이마의 주름이며 손금이다. 여신이 그려 넣은 무늬가 아직 지워지지 않았지만 여자는 이제 그만 숨을 멈추려 한다. 어쩔 수 없이 외부의 여자와 혼인하게 된 남자는 그런 연인을 이렇게 달랜다.

자살한 영혼은 쓰제줘미(司杰卓密), 조상들의 땅으로 갈 수 없어요/ 우리가 살아서는 짝이 되지 못했지만/ 죽어서는 조상들의 땅으로 함께 돌아가야지요/ 사랑하는 나의, 가엾은 나의 연인이여/ 죽지 말아요/ 제발 그 길로는 가지 말아요/ 우리 함께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만이라도 남겨두어요, 제발….

마니우와 마헤이가 숨어있었다는 신화가 깃든 지눠족의 북.
그러나 상심에 빠진 여자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여자의 영혼은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하염없이 연인을 기다린다. 하지만 남자의 이마에 새겨진 페이모 여신의 표시가 아직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는 여전히 이승에 남아있다. 새가 된 여자는 때로 사랑하는 남자의 곁에 와서 울고 남자는 그것이 그녀의 영혼임을 안다. 그렇지만 그들은 서로 함께 할 방법이 없다. 마침내 여자는 천상의 세계, 신들의 세상에 살고 있는 대장장이 여신을 찾아가 수련을 하여 자신이 대장장이 여신이 되고, 연인의 꿈에 나타나 향기로운 풀로 만든 철화(鐵花)를 그의 귀에 달아준다.(지눠족에게는 남자든 여자든 귀에 구멍을 뚫어 아름다운 꽃 귀고리를 매다는 습속이 있다) 그러면 그는 대장장이 여신의 남편이 되어 마을의 대장장이가 된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지눠족의 축제가 ‘철을 두드리는 날’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면 그가 왜 ‘대장장이’로 선택되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고대에 철을 다루는 ‘대장장이’는 신과 통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수렵과 채집의 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들면서 대장장이는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를 만들었다. 또한 농경에 필요한 인력을 위해 종족의 번식은 필수적이었다. 씨족 내부의 혼인은 인구를 줄어들게 만들었을 것이고 그런 경험 때문에 마을의 장로들은 바스 연인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길고 긴 노래가 이제 끝나간다. 여자는 마침내 구베이(페이모), 즉 조가비의 여신이 되어 사랑하는 남자 곁에 온갖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게 한다. 가장 독특한 것은 남자가 밥을 먹을 때 그 속에 갑자기 조가비, 즉 이소우(·이것은 조개 중에서도 특히 카우리(cowry)로서 여성성을 상징한다)가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조가비 여신의 징조가 나타나면 남자는 마을 전체에 이 사실을 공개하고 지눠족 최고의 샤먼인 바이라파오(白臘泡)를 불러다가 조가비 여신과 혼인하는 의식을 거행한 후 자신이 바이라파오가 된다. 여신의 도움으로 영험한 능력을 갖게 된 바이라파오는 신의 뜻을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을 하며 그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평생을 살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사랑하는 바스 연인을 잃어버리고 그녀를 평생 동안 가슴에 품으며 살아가는 늙은 바이라파오의 가슴 속을 스쳐가는 서늘한 바람이 잠재워질까. 때론 이렇게 이성적 머리가 아닌 감성적 가슴으로 신화를 읽을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윈난이야기⑥ 하니족-온화한 여신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다
신들의 집 한가운데에
위엄에 찬 천신 어마(俄瑪)가 앉아있네
그녀는 최고의 위대한 여신
하늘과 땅의 모든 신들을 낳으셨지
세상의 모든 것들, 어마가 낳아 기르셨네

‘어’는 ‘하늘’, ‘마’는 ‘최고의 여성’이라는 뜻이니 ‘어마’는 바로 ‘위대한 최고의 여신’이라는 의미이다. 윈난의 남쪽, 산을 개간하여 한없이 이어지는 계단식 논을 일구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하니(哈尼)족 신들의 세상은 여신으로 채워져 있다. 최고의 천신 어마는 금빛 물고기여신에게서 태어났다. ‘오래된 노래 열두 갈래’라는 의미를 가진 ‘워궈처니궈(窩果策尼果)’에는 수많은 여신들이 등장하는데 그 시작에 금빛 물고기여신이 있다.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는 윈난 시상반나 하니족 마을.

하늘도 땅도 없던 아득한 옛날, ‘미우아이시아이마’라는 긴 이름을 가진 거대한 금빛 물고기여신이 있었다. 그녀가 커다란 지느러미를 펼치자 그 속에서 부연 안개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이 하늘과 땅이 되었다. 금빛 찬란한 큰 비늘을 한번 흔들자 목덜미에서는 해의 신 웨뤄(約羅)와 달의 신 웨바이(約白)가, 등에서는 천신 어마와 지신 미마(密瑪)가 나왔다. 허리에서는 인신(人神) 옌뎨(烟蝶)와 뎨마(蝶瑪)가 나왔고 꼬리에서는 지진을 일으키는 힘센 바다의 여신 미춰춰마(密嵯嵯瑪)가 나왔다.

천신 어마가 하늘로 올라가보니 하늘 나라 신들의 집이 너무 썰렁하고 텅 비어 있었다. 신들을 낳아 그곳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많은 신들이 생기게 되면 너무 시끄럽고 무질서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어마는 먼저 마바이(瑪白)와 옌쓰(烟)라는 두 딸을 낳았다. 마바이는 ‘규칙’을 의미하고 옌쓰는 ‘예절’을 의미한다. 뭇신들을 낳기 전에 먼저 ‘규칙’과 ‘예절’을 낳았다는 이 이야기는 하니족 사람들이 온화하고 겸손한 이유를 알게 해준다. 그들의 신화에는 남을 공격하여 점령하는 전쟁영웅들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 아득히 먼 북쪽 ‘후니후나(하니족 사람들이 자신들이 처음 거주했던 곳이라고 믿는 신화 속의 땅, ‘붉은 돌과 검은 돌이 쌓여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이주해온 하니족은 결코 남의 보금자리를 빼앗지 않는다. 언제나 새로운 땅을 찾아 개척할 뿐이다. 신화 속에서도 신들은 싸우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이 맡은 직책에 충실하다. 그들의 신화에는 영웅들이 보여주는 비장한 아름다움은 없어도 게임의 법칙을 지키는 신들에게서 느껴지는 우아한 향기가 있다. 그리고 그 향기는 여신들이 만들어낸다.

천신 어마는 마침내 모든 신들의 왕인 여신 아비메이옌(阿匹美烟)을 낳는다. 지고무상의 힘을 지닌 그녀는 열두 명의 신들에게 명하여 규칙을 지키지 않는 신들을 관리하게 한다. 우리가 요즘 많이 잊고 사는 중요한 덕목들인 ‘존중’ ‘겸양’ ‘평등’ ‘지혜’ 등은 하니족에게 있어서 가장 중시되는 가치이다. 메이옌은 호수의 맑고 투명한 물로 그 신들의 심장을 만들었고, 맑은 심장을 가진 그 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일을 처리한다.

신화속에 등장하여 역법을 만들게 해주었던 자고.
메이옌의 뒤를 이어 신들의 왕이 된 옌사(烟沙)는 남성신이다. 옌사의 신통력도 무척 컸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엔 늘 여신 메이옌에게서 해답을 구했다. 한번은 옌사가 아홉 명의 남신을 낳아 그 신들에게 짝을 지어주려 했다. 메이옌은 영원히 죽지 않는 처녀 아홉 명을 옌사에게 보내어 그들의 짝으로 맺어주라고 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그들이 결합하여 낳은 후손들이 모두 영생불사하며 죽지 않는 것이었다. 갈수록 노인들이 늘어났지만 영원히 죽지 않다 보니 1000살이 넘은 노인들이 즐비했다. 그래서 후손들은 해가 뜨면 힘 없는 노인들을 모셔다가 햇볕을 쬐게 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모시고 왔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이들은 지쳐갔고 노인들은 마치 장작더미처럼 햇살 아래 쌓여있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자 노인들의 귀에서는 하얀 목이버섯이 자라났고 몸에서는 풀이 자라났다. 노인들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들은 불사의 존재였기 때문에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견디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신은 처음엔 그 누구의 죽음도 허락하지 않았으나 마침내 마음을 바꿔 고통에 시달리는 노인들의 죽음을 허락해주었다. 다만 신의 뜻을 모두에게 전하는 임무를 가졌던 사람들이 신의 말을 깜박 잊어버리는 바람에 ‘노인들만 죽게 하라’는 신의 뜻이 ‘노인도, 젊은이도 다 죽어도 된다’로 전해지게 되었다. 죽음조차도 신의 축복으로 여기는 하니족 사람들은 또한 인간도, 동물도, 귀신조차도 모두가 하나의 조상에게서 나온 존재라고 여긴다. 그런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모든 생명의 가치는 같다. 그뿐인가, 그들은 역법(曆法)조차도 금빛 물고기여신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원래 신화의 상징체계에서 여신과 물, 물고기는 생명과 다산을 의미한다. 금빛 물고기여신에게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살아갔던 아득한 고대의 기억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금빛 물고기여신이 낳은 옌뎨와 뎨마는 새롭게 생겨난 땅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곳에 물고기여신의 금빛 비늘을 뿌렸더니 버섯류에 속하는 거대한 자고(茨)가 자라났고 거기에서 사람과 동물, 식물 등이 나왔다.(자고는 윈난 남부 사람들이 지금도 즐겨먹는, 마치 토란과 같은 맛이 나는 식물이다.) 옌뎨와 뎨마는 그것의 뿌리와 줄기, 잎의 숫자를 보고 역법을 정했다. 즉 뿌리 12개에서 12달을, 꽃송이 30개에서 30일을, 나뭇잎 360개에서 360일을 정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자고가 죽고 하늘을 가리는 큰 나무가 나타나는 바람에 사람들은 역법을 잃어버렸다. 그러자 하니족 사람들은 청년 하나를 뎨마에게 보내어 날짜를 만들 수 있는 나무를 다시 하나 심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뎨마는 금빛 물고기여신의 비늘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만들 수가 없다고 했고, 청년은 천신 어마를 찾아간다. 천신 어마에게는 마침 금빛 물고기여신의 비늘 세 개가 남아있었다. 여신은 비늘 하나를 심어 아들에게 지키고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그 비늘은 검은머리 개미가 물고 가서 자기 집을 짓는 데 써버렸고, 두 번째 비늘을 며느리에게 지키라고 했으나 역시 붉은 얼굴 암탉이 갖고 가서 자기 새끼에게 먹여버렸다. 세 번째 비늘은 어마가 직접 지켜 나무가 자라나게 했지만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온갖 동물들이 와서 나무에 발자국을 찍어 놓았다. 결국 천신 어마는 동물들의 발자국을 갖고 새로운 역법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소, 호랑이, 토끼 등으로 이루어진 ‘12간지’와 같은 역법이었다.

찰랑찰랑 소리가 아름다운 은모자를 쓴 하니족 여성.
한편 천신 웨뤄와 웨바이의 이야기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그리고 해와 달을 먹는 개의 모티프가 섞인 형태를 보여준다. 무시무시한 괴물 어뤄뤄마(俄羅羅瑪)가 누나인 웨바이, 남동생인 웨뤄의 엄마를 잡아먹었다. 그리고 자기가 엄마인 척 하며 남매를 찾아왔다.

“아무리 들어도 엄마 목소리가 아닌데?”
그러자 괴물은 목소리 톤을 높여 엄마 목소리를 흉내 내었다.
“아무리 봐도 엄마의 손이 아니야.”
그러자 괴물은 손에 난 털을 뽑아버렸다.
“우리 엄마는 손에 반지를 끼셨는데.”

그러자 괴물은 손에 풀로 반지를 만들어 꼈다. 그리고 마침내 집으로 들어가 동생인 웨뤄를 잡아먹었다. 누나인 웨바이는 동생의 손 하나를 들고 탈출, 감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바닷가로 가서 생명의 붉은 꽃으로 동생을 살리고 함께 꽃을 먹었다. 동생과 누나는 해와 달이 되어 서로 교대로 땅을 비춰 괴물 어뤄뤄마가 숨을 곳이 없게 했다. 그러나 동생은 겁이 많아 밤에 나오는 걸 싫어했고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누나는 동생에게 황금 빛 바늘을 주면서 사람들이 쳐다보면 그것으로 찌르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해를 바라보면 눈이 아픈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란다. 결국 남동생은 해가 되어 낮에 나왔고 누나는 달이 되어 밤하늘을 비췄다. 그런데 인간세상 사람들이 혼인하여 아이 낳고 사는 것을 부러워한 해와 달은 자기들도 혼인하여 작은 해와 달을 계속 낳았다. 인간들이 더위에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다 못해 하늘로 올라간 개는 작은 해와 달들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이후에도 개는 그들이 새로운 해와 달을 낳으면 즉시 하늘로 와 그것을 먹어버렸는데 그때 인간 세상에는 일식과 월식이 생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똑같이 전승되고 있지만 비슷한 사유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 이 이야기가 어디에서 먼저 시작되었는가는 중요치 않다. 하니족 신화에서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동생에게 환한 낮을 양보하고 황금바늘까지 주는 누이는 금빛 물고기여신이며 동시에 천신 어마이고 만능여신 메이옌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규칙과 예의를 중시하며 남에게 양보하고 평등하게 공존하는 지혜를 가르치는 하니족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윈난이야기⑦ 이족-천지 만들고 인간 길러낸 神은, 어머니였다
윈난성 다리(大理)에서 쿤밍으로 가는 길목에 추슝(楚雄)이라는 이족(彛族)들의 도시가 있다. 추슝을 향해 달리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마유춘(馬游村)으로 들어간다. 노란 유채꽃이 환하게 피어있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고운 마잉화(馬纓花)가 수놓아진 옷을 입고 있는 이족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이족 여성들의 옷은 화려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앵둣빛 꽃무늬가 수놓아진 찬란한 옷들은 그들의 심성 역시 그렇게 경쾌하고 밝을 것임을 추측케 한다. 길거리에서 만난 이족 할머니는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곰방대를 물고 포즈를 잡아주신다. 주름진 얼굴 가득 퍼지는 그 미소는 이족의 창세 여신 아헤시니모를 닮았다.

마유춘 입구에서 만난 이족 사람들.

금빛 바다에서 태어난 거인 여신 아헤시니모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맑은 눈을 가졌다. 금빛 바닷물을 마시고 하늘과 땅을 낳았으며 별과 달, 구름과 비를 낳았다. 소와 말 등의 동물, 풀이나 메밀 같은 식물까지 낳은 아헤시니모는 14개의 눈과 귀, 그리고 24개의 젖을 가진 천지만물의 어머니이며 그 젖으로 자신이 낳은 천지만물을 키운다. 여기서 아헤시니모의 가슴에 달린 24개의 젖에 관심이 간다. 터키 에베소에 사도 바울이 들어온 뒤 뒷방신세가 된 아데미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지역에서 다산과 풍요의 여신으로 받들어졌던 아데미(그리스신화의 아르테미스와 같은 이름이다)의 가슴에도 24개의 젖이 달려 있었다. 그녀를 위한 에베소의 신전은 파르테논 신전의 네 배나 되는 크기였다. 에베소와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아데미 여신상에는 소와 호랑이 같은 동물들도 새겨져 있다. 이것은 천지만물뿐 아니라 동물들까지도 만든 창조의 신이라는 아데미의 위대한 신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신의 가슴에 달린 24개의 젖은 ‘음탕함’이 아니라 ‘풍요로운 생명력’을 뜻한다. 바울이 들어오기 이전, 에베소의 최고신은 아데미였다. 그렇다면 기독교 문명의 도래와 함께 사라진 터키의 여신 아데미와 이족의 여신 아헤시니모 사이에 혹시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왜 그녀들의 가슴에는 똑같이 24개의 젖이 달려있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 물론 지금 당장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윈난에 사는 이족이 쓰촨성 청두(成都) 방향에서 왔을 것이라는 주장과 더불어 ‘이(yi)’라는 발음이 ‘이스라엘’의 ‘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두 여신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은 충분히 가져볼 만한 것이다.

아헤시니모/ 하늘과 땅의 어머니/
만물의 어머니/ 인류의 조상이라네
인류의 역사/ 아헤시니모 가장 길고/
인류의 나이/ 아헤시니모 가장 많다네
아헤시니모 이야기/ 엄숙하게 말해야지/
들을 때도 진지하게/ 절대 함부로 하면 안된다네

메이거 예인이 전시관 앞에서 생이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이족의 서사시 ‘아헤시니모’는 여신의 세상 창조와 인간 창조를 노래한다. 이족의 신화에는 많은 창세이야기가 있다. 그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이 ‘메이거(梅葛·‘오래된 이야기’라는 뜻)’와 ‘차무(査姆·‘만물의 기원’이라는 뜻)’인데 야오안(姚安)현의 마유춘은 바로 메이거 구연자들이 사는 마을이다. 마유춘 들어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이제 막 산을 뚫고 길을 내서 붉은 흙이 드러나 있는 산을 두 개나 넘어가야 마을이 나타난다. 마유춘에는 메이거를 노래하는 분들의 모임이 있고 그 예인(藝人)들은 마유춘 당위원회 건물에 자신들의 작은 공간을 갖고 있다.

세상의 시작과 인간의 기원뿐 아니라 자신들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길고긴 이야기 메이거는 입에서 입으로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되어 왔다. 외부인들이 “메이거가 뭐야? 마유춘에서 나오는 매실 같은 과일이야? 무슨 맛이야?”라고 물어도 마유춘 사람들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청랑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뿌리’이자 ‘족보’라고 생각하고 있는 노래를 들려준다.

아득한 옛날 하늘도 없었고/ 아득한 옛날 땅도 없었네/ 하늘을 만들어야 해/ 땅을 만들어야 해/ 무엇으로 하늘을 만들지?/ 무엇으로 땅을 만들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족 여성.
거쯔(格滋)천신이 아홉 개의 금 과일을 내놓으니 그것이 아홉 명의 아들로 변했고, 은 과일 일곱 개를 내놓으니 딸로 변했다. 아홉 아들 중 다섯 아들이, 일곱 딸 중 네 딸이 각각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 아들들은 고운 구름으로 옷을 해 입었고 딸들은 푸른 이끼로 옷을 지어 입었다. 이슬과 흙을 먹으며 그들은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 거미줄을 하늘의 바닥으로, 고사리뿌리를 땅의 바닥으로 삼아 우산 모양의 하늘과 다리 모양의 땅을 만들었다. 딸들은 쉬지 않고 열심히 땅을 만들었지만 아들들은 놀면서 만드느라 하늘을 다 만들지 못해 땅이 하늘보다 넓어졌다. 거쯔천신의 명을 받은 아푸가 세 명의 아들에게 하늘을 잡아당기라고 해서 겨우 하늘을 늘렸고, 세 쌍의 도마뱀이 땅을 둘러싸고 힘껏 조여 땅에 주름을 잡았다. 개미는 울퉁불퉁해진 땅의 가장자리를 깨물어 가지런하게 정리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아직 완전하지 못해 그만 구멍이 뚫려버렸다. 다섯 아들은 솔잎 바늘에 거미줄 실을 꿰어 예쁜 구름으로 하늘을 기웠고 네 딸은 병풀 바늘에 넝쿨 실을 꿰어 나뭇잎으로 땅을 기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땅에 거쯔천신은 만물을 채워 넣는다.

산에 호랑이가 살지/ 세상의 모든 것들 중에서 호랑이가 가장 용맹스러워/ 호랑이를 잡아와라/ 호랑이 등뼈로 하늘을 받치고/ 호랑이 다리뼈로 사방을 받쳐야지

이족은 예전에 ‘뤄뤄(羅羅)’라고 불렸다. ‘뤄’는 ‘호랑이’라는 뜻으로, 지금도 윈난에서는 사람들이 호랑이 복장을 하고 춤을 추는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용감무쌍한 호랑이는 그들의 수호신이었고, 신화 속에서 호랑이는 반고(盤古)의 온몸이 세상 만물로 변했듯이 해와 달을 비롯한 만물로 변한다. 이제 마침내 인간을 만들 시간이 왔다. 거쯔천신은 눈을 한 주먹 움켜쥐고 세상에 뿌려 인간을 만들었다. 첫 번째 뿌린 눈이 변해서 된 인간들에겐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다. 키도 아주 작아서 혼자 길을 걷지 못했고 두 사람이 서로 목을 받쳐줘야 다닐 수 있었다. 진흙과 모래를 먹던 그들은 달빛이 비치면 살았지만 햇빛엔 약해 말라서 죽어버렸다. 두 번째 뿌린 눈은 키가 엄청나게 큰 인간들로 변했다.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아데미 여신상.
그들은 산의 열매를 따먹으며 동굴 속에 살았다. 하늘에 아홉 개의 태양과 달이 나타나자 이들도 말라서 죽었다. 마침내 거쯔천신은 세 번째 눈을 뿌렸고 그것이 직목인(直目人)이 되었다. 천신이 불도 만들어주었고 곡식 씨앗도 내려주었지만 눈이 세로로 달린 이들은 게으름을 피우며 밤낮으로 논에서 잠만 자고 먹기만 했다. 게다가 곡식을 함부로 다루어 먹을 양식으로 둑을 만들기도 했고 메밀가루로 담을 쌓기도 했다.

이렇게 곡식을 함부로 다루다니/ 이놈들의 마음이 착하지 않구나/ 새로운 인간들을 만들어야겠어!

그리하여 천신은 착한 인간 남매만 남겨두고 홍수를 내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사라지게 한 후 조롱박 속에 숨은 그들을 찾아내어 둘이 혼인하게 한다. 하지만 남매는 신의 뜻을 거부한다. 산 위에서 맷돌을 굴려보아 그것이 산기슭에서 합쳐지면 혼인하라는 신의 말에 따라 맷돌을 굴렸고 그것이 산 아래에서 합쳐졌지만 남매는 “맷돌은 맷돌일 뿐이에요, 우리는 남매인데 어찌 혼인하겠어요?”라며 끝까지 혼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나, 인간은 태어나야 하는 것을. 결국 강가로 간 오빠는 상류에서 목욕하고 누이는 하류에서 그 물을 마시고 임신, 마침내 오늘날 이족의 시조이자 새로운 인간들인 횡목인(橫木人)이 탄생한다.

물론 메이거에는 이런 창세신화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유춘 사람들은 청아한 목소리로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고 슬픈 음성으로 노인들의 죽음을 노래한다. 산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노래, 그것은 그들을 살게 하는 힘이다.

메이거,
하늘의 별을 노래로 떨어지게 할 수 있고
길가의 꽃도 이야기로 피게 할 수 있어….

 
윈난이야기⑧ 이족의 즈거아루 이야기
하늘과 땅의 아들 여신의 시대를 끝내다
노르스름한 빛을 띤 엷은 갈색 종이에 그려진 오래된 그림이 있다. 윈난에서만 생산되는 특수한 면지(棉紙)인데 한 겹이 아니라 두 겹이다. 한 겹으로 된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면 먹이 번지기 때문에 반드시 두 겹으로 된 면지를 사용한다. 이족의 비모는 아무 때나 이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신을 모셔오는 경전을 조용히 읊조리면서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목적 등을 신에게 설명한다. 하늘과 땅의 신, 해와 달의 신, 조상신 그리고 신비로운 동물 신들을 모두 불러놓고 비모는 대나무 붓을 사용하여 이 그림을 그린다. 비모는 이족 사회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는 신과 통하는 사람이며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다.

(왼쪽)이족의 잔칫날, 파안대소하는 한 할머니. (오른쪽)아기를 업은 이족 여성.

바모취부무(巴莫曲布姆)는 이족의 비모 쒀모아푸(索莫阿普)가 그린 이 그림을 접하고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그림을 국내외에 소개하는 데 열정을 쏟는다. ‘신도와 귀판(神圖與鬼板·Spirits Picture and Ghost Board)’(2004)에는 그녀의 그런 열정이 들어있다. 종이 위에 그려진 신의 그림, 때로는 삼나무로 만든 나무 판 위에도 그려지는 그 신비로운 그림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머리 위에는 구리로 만든 투구를 걸쳤고 마치 엑스레이로 투시한 것 같은 삼각형의 몸 아래쪽엔 남성의 상징물이 그려져 있다. 머리의 양쪽에는 해와 달이 있고 한 손은 구리로 만든 창을, 다른 손은 구리로 만든 그물을 들고 있다. 옆에는 구리로 된 활도 보이는데 화살은 태양을 향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그가 타고 다니는 날개 달린 말이 있다. 번개가 치는 것처럼 구불구불하게 생긴 뱀을 잡아먹는 공작새 쑤리우러쯔(蘇里吳勒子)도 보이고 역시 뱀을 잡아먹는 거대한 이무기(혹은 악어라고도 한다) 바하아유쯔(叭哈阿友子)도 보인다. 공작새와 이무기를 조력자로 거느리고 있는 그가 바로 즈거아루(支格阿魯), 이족신화 속의 영웅이다.

바모취부무의 책‘신도와 귀판’에 소개된 그림. 나병을 일으키는 귀신‘추’를 그렸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윈난뿐 아니라 쓰촨, 구이저우 등 이족들이 사는 모든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 하늘에 떠오른 여섯 개의 해와 일곱 개의 달을 쏘아 떨어뜨려 사람들을 재앙에서 구해낸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다. 용족에 속하는 어머니 푸무리르()의 계보는 여성의 이름으로 이어져왔다. 그러나 커다란 나무 밑에서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고 있던 푸무리르에게 여덟 마리의 매들이 찾아오면서부터 그 계보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족 사람들에게 있어서 매는 신의 사자이다. 그중에서 가장 크고 검은 매가 세 방울의 피를 떨어뜨렸고 그것이 푸무리르의 몸에 닿았다. 그리고 임신하여 낳은 아들이 바로 즈거아루이다. 새벽에 안개가 피어올랐고 오후가 되자 즈거아루가 태어났다. 천상의 존재인 매와 지상의 존재인 용이 합쳐져 태어난 인물이 바로 즈거아루, 이제 여신들의 시대는 끝났다.

원래 이족의 신화 속에서 여신들은 문자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치유의 힘을 갖고 있는 지혜로운 존재였다.

아주 오래된 옛날/ 바람이 질병을 몰고 왔네/ 질병이 세상에 가득 찼지/ 질병은 정말 무서운 것/ 아무도 고치지 못했어/ 고치려 해도 고칠 수 없었지/ 병은 빨리도 변화해서/ 수백 번 변했어/ 여성이 병을 치료했지/ 여성이 병을 고쳤어/ 여성에겐 지식이 있어/ 모든 병을 그녀가 치료했네/ 초록색 풀로 병을 치료하고/ 나무뿌리로 병을 고쳤어/ 사람들은 그녀에게 감사했지/ 여성은 치유자였다네

그러나 이제 즈거아루는 여성을 거부한다. 태어난 첫날, 즈거아루는 어머니의 젖을 먹지 않았다. 둘째 날, 어머니와 함께 잠자려 하지 않았고 셋째 날, 어머니가 주는 옷을 입으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상한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며 즈거아루를 절벽에 내다버렸다. 즈거아루는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져 반짝이는 세 개의 돌이 있는 동굴 입구에 이르렀고, 그를 본 돌들이 말했다.

담뱃대를 물고 있는 이족 여성.
“오늘은 좋은 날이야. 영웅 즈거아루가 왔으니. 그를 잘 대해주어야 해!”

이족에게 있어서 돌은 생명의 상징이다. 즈거아루는 돌의 말을 알아들었고 석굴 속에 살았으며, 돌의 밥을 먹고 돌의 물을 마셨다. 추우면 돌 위의 이끼로 옷을 해 입었고 심심하면 돌들과 대화를 했다. 돌은 아이를 키웠다. 즈거아루는 그렇게 장성하여 13살이 되자 마침내 어머니를 찾아간다. 기이한 탄생과 버려짐, 그리고 귀환이라는 영웅신화의 전형적인 과정을 즈거아루는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냥 아들을 받아들여준 것이 아니라 모험의 과정을 다시 겪게 한다. 어머니는 길고긴 머리카락을 찾아오라는 시험을 아들에게 내렸고, 아들은 그 일을 성공적으로 끝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여인을 만나 혼인을 하게 된다. 물론 한꺼번에 나타난 해와 달을 쏘아 떨어뜨린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은 영웅의 모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러어터이(勒俄特依·‘역사의 기록’이라는 의미)’라는 이족 창세서사시에 인간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세 줄기 안개가 피어나더니 그것이 하늘로 올라갔고 곧 세 번에 걸쳐 붉은 눈이 내려 그것이 세상 만물이 되었다. 나무나 풀처럼 피를 갖지 않은 생물이 여섯, 개구리, 뱀, 매, 곰, 원숭이, 사람 등 피를 가진 생물이 여섯이었다. 그렇게 생겨난 인간들이 한꺼번에 떠오른 해와 달들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었다. 즈거아루는 삼나무 위에 올라가 활을 쏘아 해와 달을 한 개 씩만 남기고 모두 떨어뜨렸다. 하나씩 남은 해와 달은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즈거아루가 세 번이나 힘껏 부른 후에야 해와 달이 비로소 얼굴을 내밀었고 세상은 다시 환해졌다. 즈거아루는 해에게 바늘을 한 쌈지 주어 사람들이 해를 쳐다보면 찌르라고 했고 달에게는 말을 한 필 주었다. 밤에 달을 보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로 달이 즈거아루가 준 말을 타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즈거아루신이 타고 다니는 말 그림.‘신도와 귀판’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혁혁한 공적을 세운 즈거아루도 여성들과의 지혜 겨루기에서는 자주 패했다. 한 번은 즈거아루가 어떤 부인이 무척이나 총명하다는 말을 듣고 숫양 한 마리를 끌고서 부인을 찾아가 길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1년 후에 숫양과 새끼를 찾으러 오겠다고 했고 부인은 그러라고 했다. 다음 해에 즈거아루가 그녀를 찾아가서 숫양과 새끼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부인이 자기 남편에게 침대에서 신음하고 있으라고 했다. 즈거아루가 물었다. “당신 남편 왜 저러는 거요?” 부인이 대답했다. “아이를 낳고 있어요.” 즈거아루가 당황해서 말했다. “세상에 남자가 아이를 낳는 법이 어디 있다는 말이오?” 그러자 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의 숫양도 새끼를 낳는다면서요?” 즈거아루는 할 말이 없었다.

마침내 즈거아루가 세상을 떠날 시간이 다가온다. 두 명의 아내들 중 하나가 즈거아루가 타고 다니는 비마의 날개를 부러뜨려놓았고, 그것도 모르고 하늘로 날아오른 즈거아루는 바다로 떨어져 죽었다. 물론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질투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어쩌면 회귀를 꿈꾸던 여신들의 반란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구리로 만든 투구를 쓰고 구리로 만든 무기를 손에 든 즈거아루는 부권사회의 상징이다. 즈거아루는 바다에 빠져 죽었지만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비모의 그림 속에서 즈거아루는 인간을 지켜주는 강력한 신으로 부활했다.

비모의 그림에 등장하는 공작새와 이무기가 잡아먹고 있는 뱀은 이족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나병을 일으키는 귀신들, ‘추(初)’를 의미한다. 추는 무시무시한 귀신들이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우르릉거리며 비가 내리면 거대한 나무에서 추들이 생겨난다.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남자 추도 있고, 머리를 일곱 갈래로 땋은 여자 추도 있으며 발이 하나, 눈이 하나 혹은 귀가 하나인 어린 추들도 있다. 그래서 즈거아루는 손에 구리로 만든 창과 활을 들고 우레신을 제압한다. 구리는 번개를 피할 수 있다. 우레신을 제압하면 세상엔 나병귀신 추가 생겨나지 않는다. 즈거아루가 바다 속에 들어가 항복시킨 거대한 이무기도 즈거아루를 도와 뱀의 모양을 하고 나타난 추들을 먹어치운다. 즈거아루, 그는 여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면서 장엄하게 등장한 이족사람들의 든든한 수호신이다.

윈난이야기⑨ 문자-하늘의 신이 인간에게 준글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언어가 없다면, 그리고 문자가 없다면 우리는 그런 애타는 마음을 어떻게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을까. 아무리 간절한 몸짓으로 표현한다고 해도 그 마음은 언어나 문자가 아니면 전달하기 힘들 것이다. 사랑의 노래도 언어가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니던가.

나시 동바문으로 쓰인 경전.
그러나 동서양의 많은 학자들은 문자는 언어를 다 담지 못하고 언어는 마음 속의 뜻을 다 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건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그 애틋한 마음을 어찌 ‘사랑한다’는 단어 하나에 다 담아낼 수 있겠으며, 다하지 못한 가슴 속의 말을 어찌 짧은 편지 한 장에 다 담을 수 있겠는가. 밤새도록 사랑의 말을 담은 글을 써서 상대방에게 보내고 난 후, 아침에 깨어나 그 글을 다시 읽었을 때 “아, 역시 명문이야”라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아무리 멋진 글, 달콤한 말이라고 해도 결국 다하지 못한 말은 가슴 속에만 남아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장자는 통발을 버렸고 비트켄슈타인은 사다리를 치웠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 있어, 그리고 글이 있어 ‘사랑한다’는 마음의 한 자락이라도 상대방에게 내보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언어와 문자는 존재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득한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과 하루 종일 함께 일을 하고 돌아온 저녁, 모닥불 가에 모여앉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할 그 어떤 도구도 그들에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총명한 자들을 뽑아 먼 곳으로 보내어 언어와 문자를 찾아오게 했다. 하지만 언어와 문자를 가져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늘에 있는 천신이 인간들의 그런 간절한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들에게 언어와 문자를 나눠주기로 했다. 하늘나라 사신들이 지상으로 와서 알렸다.

“천신께서 언어와 문자를 나눠주려 하시니 정해진 날짜에 대표를 보내시오.”

영혼의 길을 밝혀주는 이족의 경전.
사람들은 무척이나 기뻤다. 이족 사람들 역시 총명한 청년 하나를 뽑아 대표로 보냈다. 청년은 81개의 산을 넘고 49개의 강을 건넜으며 64개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 마침내 천신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천신은 가장 먼저 온 청년을 기특하게 여겨 그를 잘 기억해두었다. 문자를 나눠주는 날, 천신은 쪄서 말린 둥근 메밀떡을 준비하여 그 위에 문자를 새겨서 각 민족 대표에게 주었다. 그리고 가면서 먹으라고 다른 메밀떡을 하나씩 더 주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왜 신은 하필이면 ‘먹을 수 있는’ 메밀떡 위에 글자를 새겨주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신은 언제나 유혹자이다. 신은 늘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한다. 물론 그 시험을 이겨낸 자에겐 신의 은총이 따른다. 메밀떡은 바로 그 시험이다.

문자를 받아든 사람들은 기뻐하며 길을 떠났다. 이족 청년 역시 씩씩하게 고향으로 향했다. 그러나 도중에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 바람에 신이 준 메밀떡을 다 먹어버렸다. 길은 아직 멀었는데 양식은 떨어지고, 청년은 그만 기력을 잃고 쓰러지게 되었다. 시냇물을 마시며 버티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자신을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과 미소 짓는 천신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손에 닿는 차가운 느낌이 이상해 눈을 떠보니 자신의 두 손에 송곳과 망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자애로운 천신께서 나를 도와주시는구나.”

청년은 기운을 차리고 돌판 위에 송곳과 망치로 글자를 새겼다. 메밀떡 위에 새겨진 글자를 돌판 위에 그대로 새겨 넣고 몇 번을 대조해본 뒤 청년은 드디어 문자가 새겨진 메밀떡을 먹고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청년은 무사히 마을로 돌아왔고 이족 사람들은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와 문자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시솽반나 부근에 있는 따이족 사원.

비슷한 내용의 따이족(族) 신화에서는 하니족의 희생 덕분에 문자가 전승된 것이라고 말한다. 한족은 종이에, 따이족은 패엽(貝葉)에, 하니족은 소가죽에 각각 신이 주신 문자를 받았는데 돌아오는 길이 험해 모두들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하니족이 스스로를 희생해 소가죽을 구워 다른 사람들에게 먹인 덕분에 문자가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 신은 인간의 언어를 빼앗기도 한다. 언어와 문자는 지혜의 상징이다. 언어를 잃어버리면 지혜도 사라진다. 아득한 옛날엔 인간과 동물 모두가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모두가 말을 하니 좋지 않았다. 그래서 신은 정해진 시간 내에 오는 자들에게 ‘지혜의 샘물’을 주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것은 마시면 언어를 잃어버리게 되는 물이었다. 동물들은 먼저 그 물을 마시려고 앞 다투어 달려갔고 동작이 좀 느렸던 청개구리가 뒤에 처졌다. 늦게 그 소식을 들은 인간은 맨 나중에 허둥지둥 달려왔는데 오다보니 개구리 한 마리가 느리게 가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불쌍해서 인간은 청개구리를 안고 달려갔다. 그러자 청개구리는 감격하여 인간에게 샘물의 비밀을 일러준다. 결국 모든 동물들이 그 샘물을 마시는 바람에 언어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샘물을 마시지 않은 인간만이 지혜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동바문자로 입춘첩을 쓰고 있다.
한편 이족에게는 여신이 문자를 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아득한 옛날, 문자가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나무에 새기거나 매듭을 지어 기록했다. 세월이 오래 지나다보니 나무 조각과 매듭이 넘쳐 집안에 보관할 장소가 없게 되었다. 천신 무즈모가 그 모습이 안타까워 문자의 여신을 불러다가 인간에게 문자를 주라고 했다. 여신은 금 씨앗과 은 씨앗을 들고 지상으로 내려와 높고 험한 절벽에 씨앗을 뿌리고 매일 비를 내리게 해 물을 주었다. 한달이 지나자 싹이 트고 금잎과 은잎이 자라났으며 금꽃과 은꽃이 각각 3000송이씩 피었다. 향기가 천리 밖에 퍼졌고 호기심에 찬 사람들이 몰려왔다. 여신은 그들 중에서 자신의 남편을 고르겠다고 했고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에 많은 남자들이 구애했다. 벼슬이 높은 자가 금과 은이 가득 찬 상자를 들고 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하늘엔 별들이 천만개, 우리 집엔 금과 은이 별처럼 많지/ 그대 내게 시집오면 금과 은으로 평생을 즐겁게 해주리라.

그러나 여신은 비웃으며 그를 거절했다. 이번엔 돈 많은 자가 비단을 들고 나타났다.

하늘엔 흰 구름 가득, 우리 집엔 비단이 구름처럼 많지/ 내게 시집오면 평생 비단으로 휘감을 수 있게 해주지.

여신은 역시 코웃음을 치며 그를 거절했다. 권세 있고 돈 있는 자들이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터, 가난한 자 누가 감히 나설 것인가? 그러던 어느 날, 활을 들고 칼을 찬 멋진 사냥꾼이 왼손에는 대숲에 사는 새의 깃털을, 오른손에는 붉은 흙을 한 줌 들고 나타났다.

목판에 경전을 새기고 있는 티베트 노인.
금은은 드리지 못하고/ 붉은 진흙 한줌 드립니다/ 내 부지런함의 상징이지요/ 새의 깃털을 드려요/ 사냥꾼의 선물이지요.

여신은 웃으며 그를 받아들였고 둘이 혼인하여 니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니스는 그림을 잘 그렸다. 해와 달, 산과 물, 꽃과 나무 등 무엇이든지 보는 대로 그렸지만 이상하게도 금꽃과 은꽃만은 잘 그릴 수가 없었다. 답답해진 니스가 어머니에게 물으니 어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금꽃과 은꽃 6000송이는 바로 6000개의 글자란다. 한 송이씩 따서 그려봐, 비슷하게 그릴 수 있을 거야.

니스는 아빠가 엄마에게 주었던 선물인 새의 깃털로 엄마가 짠 옷감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금나무와 은나무의 꽃을 따 그대로 보고 그렸더니 글씨들이 금꽃처럼 예쁘고 고왔다. 그렇게 금나무와 은나무에 매달린 6000송이의 꽃을 보고 글자를 다 썼을 때 여신은 하늘로 돌아갔고, 남겨진 남편과 아들 니스는 이족 마을에 글자를 퍼뜨렸다.

지혜로운 인간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소수민족 신화에서 문자는 하늘의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로 묘사된다. 자애로운 신들 덕분에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감사한 마음 때문에 최초의 문자들은 대부분 신의 뜻을 전하는데 사용되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