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비즈니스 매너’의 정석
“이명박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함께 하는 만찬 자리에서 건배할 때 상대방 눈이 아닌 잔을 쳐다보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많이 봤다. 고개를 숙이는 경우도 꽤 된다. 글로벌 비즈니스 자리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고개를 들고 상대방 눈을 쳐다봐야 한다. 이건 기본 중 기본이다. 그리고 이 대통령이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손을 잡고 파안대소하는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서구에서는 동성 간 손을 잡거나 춤추는 것은 ‘동성애’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의원 글로벌 매너 낙제점?
글로벌 리더십 아카데미 안경환 원장은 “특히 대통령이나 총리, 재벌 그룹 총수 등이 글로벌 비즈니스 자리에서 매너를 지키지 못하면, 그 피해가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황식 총리,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등 정재계 거물이 글로벌 비즈니스 자리에서 행한 각종 실수담을 ‘증거 사진’과 함께 자신의 블로그(mrahn.kr)에 빼곡히 정리했다. 1970~80년대 수출입은행에서 일하며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를 배우고 익혔다는 안 원장은 관련 강연만 20여 년 해온 전문가.
안 원장은 “정상회담을 할 때 이명박 대통령의 자세는 글로벌 매너 관점에서 논란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통 정상회담 때 양국 정상은 양쪽에 팔걸이가 있는 1인용 소파에 앉는다. 이때 상대방 쪽으로 몸을 돌려 한쪽 팔걸이에 기대 앉은 채 손은 앞으로 모아 경청하는 태도를 취하는 게 글로벌 매너인데, 이 대통령은 양쪽 팔걸이에 두 손을 올리고 ‘당당하게’ 앉았다는 것. 이 경우 상대방은 무의식적으로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 “백령도 천안함 사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 이 대통령의 의상 선택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검은색 가죽재킷에 옅은 색 바지를 입었다. 단호한 리더십을 보여주려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기지를 방문했을 때의 오바마 미국 대통령처럼 상하의 모두 짙은 의상을 입었어야 했다는 것.
대통령실 김창범 의전비서관은 이런 지적에 대해 일일이 해명했다. 먼저 건배할 때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사진을 찍는 각도에 따라 시선 위치가 다르게 보일 수 있고, 특히 건배 후 잔을 본인 앞으로 가지고 올 때 눈이 잔으로 가는 건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 대통령이 양쪽 팔걸이에 두 손을 얹고 당당히 앉은 자세는 단호함이나 결연함을 보여준다. 반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거나 경의를 표할 때는 손을 모으고 상대방을 바라보는 등 다른 자세를 취한다”고 했다.
또 이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은 빈번한 만남을 통해 격의 없는 친구가 됐기 때문에 두 정상이 손을 잡고 파안대소한 것은 ‘서구사회의 터부’를 넘어선 끈끈한 우정과 우의의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김 비서관은 “사진 한 장으로 대통령의 전체적인 움직임이나 자세 등을 평가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때 양산 통도사로 갔었다면
반면 유엔 차석대사를 지낸 국가브랜드위원회 서대원 국제협력분과위원장(‘글로벌 파워 매너’저자)은 “대통령이나 총리, 재계 총수 등은 자국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인’인 만큼 사진에 찍힌 자신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면, 이를 고치려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며 “사진은 평소 태도와 행동 등 매너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2010년 5월에 있었던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회담 이후 당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중국의 양제츠 외교부장과 일본의 오카다 가쓰야 외무대신을 ‘호국의 상징’인 불국사로 ‘모신’ 것도 아쉬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안 원장의 말이다.
“그때 우리는 천안함 폭침 사태에 대한 양국, 특히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을’의 위치에 있었다. 그렇다면 불국사가 아닌 양산 통도사에 갔어야 했다. 그곳에는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이 직접 쓴 현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중국 측 인사들의 마음이 흔들렸을 테고, 원하는 바를 더 많이 얻어냈을 것이다.”
최근 대통령 특사로 유럽을 순방하고 돌아온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글로벌 매너 측면에서 논란 대상이 됐다. 특히 귀고리를 하지 않고 공식 모임에 참석한 점을 거론하는 사람이 많다. 안 원장은 “서구 상류층 사회에서는 여성이 귀고리를 하지 않고 공식 모임에 참석한다는 건 속옷 차림으로 공공장소에 나가는 것과 다름없다고 받아들인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는 “여성의 귀고리는 남성의 넥타이처럼 착용하는 게 ‘정석’이긴 하지만, 남성의 넥타이만큼 공식적인 자리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 원장은 “그렇다고는 해도 박 전 대표가 한 번도 귀고리를 하지 않은 것은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의 이춘상 보좌관은 “박 의원은 원래 귀고리를 안 한다”며 “평소 안 하는데 서구의 누구를 만나려고 귀고리를 하는 것은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오랫동안 외교를 해온 만큼 박 전 대표는 스스로 자신의 옷차림을 코디한다”며 “항상 예의에 맞춰 정장을 입고, 옷 모양새에 따라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매너는 정계 인사만 지켜야 하는 게 아니다. 안 원장은 “2009년 포스코가 베트남 호치민 시 인근에 지은 냉연강판 공장 준공식 자리에서 정준양 회장이 ‘한자’로 사인한 것도 상대국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주장했다. 베트남과 중국은 역사상 사이가 좋지 않은 데다 1979년엔 국경에서 전쟁을 벌인 적도 있기 때문.
이런 매너에 맞지 않는 행동이 경제적 관점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2007년 프랑스 거대 기업과 서명 직전까지 갔던 합작 프로젝트가 한국적 기준으로 볼 때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 예도 있다. 프랑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연 저녁 모임에서 한국 기업 측 인사가 CEO의 부인이 정성을 다해 준비한 스테이크 소스의 맛은 보지 않고 “혹시 A1 소스 있나요”라고 묻고, 다른 이들도 “저도요” “저도요” 한 게 화근이었다.
서양음식은 소스가 요리의 정수다. 식사 초대를 한 호스티스가 음식 솜씨를 가장 뽐낼 수 있는 것도 바로 소스. 그런데 ‘사모님표’ 요리의 정수를 ‘무시’한 채 공장에서 다량으로 ‘찍어낸’ 미국산 소스를 찾다니…. 한국 측 인사들의 ‘무매너’에 프랑스 ‘사모님’이 노발대발했고, 그것으로 프로젝트의 운명은 정해졌다.
지금 비즈니스 전쟁터는 전 세계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매너를 갖추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인도에서는 ‘글로벌 매너’를 가르쳐주는 이른바 ‘교양 학교’가 성업 중이다. 국내 대기업도 임직원을 대상으로 테이블 매너, 와인 교육, 만찬장에서의 화술 등을 교육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 전문가들은 “매너는 단순히 사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돈과 직접 연결된 비즈니스의 필수적 요소”라고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글로벌 비즈니스 자리에서 매너를 지키지 못하면 주요 계약을 따내지 못하거나, 제대로 된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해 가격 협상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등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성문화된 법 또는 에티켓이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이라면, 매너는 그러한 규범을 드러내는 방법에 가깝다. 상황이나 상대방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게 매너다. 이에 매너는 ‘있다’ 또는 ‘없다’라고 하지 않고, ‘좋다’ 또는 ‘나쁘다’라고 표현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관련 책이나 선배들은 ‘외국인에게 나이나 결혼 여부 등 사생활을 묻는 건 실례’라고 조언했고, 나는 이를 철칙으로 여겼다. 그런데 몇 차례 만난 외국인 바이어가 가벼운 잡담을 나누다가 ‘최근 전처와 다시 데이트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서 조심스레 ‘언제 이혼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마치 물어봐주길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결혼 및 이혼 과정, 전처와 다시 만나게 된 이유 등을 시시콜콜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내 연애 여부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후로 급속히 가까워졌다. 도저히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외국인 비즈니스 파트너를 대하는 일이다.”(무역회사 근무 김모 사원)
이처럼 매너에 ‘철칙’이란 없다. 격식을 차리는 게 좋은 매너지만, 때론 격식을 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또 통상 ‘유럽이나 북미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기준을 글로벌 스탠더드라 하며 이를 따르라’고 하지만, 실제로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로컬 스탠더드’를 따라야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글로벌 비즈니스에 적합한 매너를 갖추는 건 중요하다. 매너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요상한 녀석이라지만, ABC는 있다. 좋은 매너를 갖추려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 배려, 배려, 또 배려하라! 소재 부족 땐 날씨와 도시 풍광 이야기를상대방에 호감이 곧 실력…매너 좋은 사람 성공 확률 높아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 ABC는
국가브랜드위원회 서대원 국제협력분과위원장은 “매너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서 위원장의 설명.
“초면에 나이와 결혼 여부를 묻거나 외모를 평가하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이는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위한 만남이라 해도 결국 서로 친해지는 게 목적이다. 적절한 시기에 사생활을 묻는 센스도 필요하다. 그러면 상대방은 ‘땡큐 포 애스킹(Thank you for asking)’이라며 마음의 벽을 걷어내고 속내를 이야기할 것이다. 가까워졌는데도 사생활에 대해 전혀 모른 척하는 건 좋은 매너가 아니다. 이런 매너는 결국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국제화, 이문화 교육 전문기업 ‘글로비쥬’ 마여실 대표도 “그쪽 나라 및 문화권의 특성에 대해 알아두는 것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예를 들어, 남미 문화권 국가는 비즈니스를 위한 첫 만남에서도 포옹과 가벼운 볼 키스를 할 정도로 스스럼없이 대한다. 그런데 이런 행동에 깜짝 놀라거나 부담스러워한다면, 상대방 역시 무척 당황할 것이다. 마 대표는 “상대방 나라의 언어로 된 명함을 건네면 비즈니스 미팅을 한결 부드럽게 시작할 수 있다”며 “그 나라 언어로 된 명함을 건네는 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비법”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리더십 아카데미 안경환 원장은 “넥타이 하나를 매더라도 그 나라 국기 혹은 상징물을 대표하는 색깔이나 무늬를 선택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중국인과 미팅할 때는 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 넥타이를, 유럽인과 만날 때는 그들 나라 국기의 3배색을 연상케 하는 넥타이를 매는 게 좋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꿈보다 해몽이 중요하다는 것. 자신의 이런 노력을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직간접적으로 귀띔해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 몸에 배도록 익혀라!
“비즈니스 자리에서는 상대방 눈을 쳐다봐야 하고, 고개와 허리를 숙이지 않은 채 바른 자세로 있어야 하며, 긴팔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은 웬만한 비즈니스맨이라면 다 안다. 하지만 평소 우리나라에서 했던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눈을 피하고, 악수를 하면서 고개와 허리를 숙이며, 특히 여성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반팔 의상을 입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평상시에도 글로벌 매너를 배우고, 이에 맞게 행동하면서 몸에 익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 원장은 “매너는 머리가 아닌 몸이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글로벌 비즈니스에 맞는 매너를 공부하고 단단히 ‘무장’한 채 미팅에 임한다 해도, 잠깐 ‘정신줄’을 놓으면 평소시 태도와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모습은 사진을 찍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 콘텐츠를 보유하라!
“부서원들과 영화를 본 후 회식을 했는데, 평소처럼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꽃을 활짝 피웠다. 재미있는 문화 콘텐츠 하나가 다소 서먹서먹하던 부서원 간 대화를 이처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출판사 근무 박모 씨)
우리나라 회식 문화에서 ‘폭탄주’를 애용하는 이유는? 딱히 서로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서 위원장은 “우리나라 비즈니스맨은 대부분 업무에 관한 대화는 곧잘 하지만, 업무를 떠난 사교적인 대화에는 약하다”며 “문화 관련 콘텐츠가 무척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을 위한 스몰토크(small talk)를 제대로 하려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장전’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매우 약하다는 것. 서 위원장의 설명이다.
“깊은 조예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악, 미술, 건축, 대중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걸쳐 조금씩은 알아야 한다. 최소한 클래식을 들을 때 고전주의 음악인지, 낭만주의 음악인지 정도는 알면 좋다. 또 유명 화가의 특성 및 대표작과 건축 양식에 대해서도 알아두는 게 좋다. 서양인은 특히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무척 많이 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 스타나 영화배우에도 관심을 가지면 좋다. 이 역시 한순간에 이루기 어렵다. 평소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게 중요하다.”
△ 한국 스탠더드도 당당히 보여줘라!
마 대표는 “외국에서 비즈니스를 할 경우 글로벌 스탠더드에 철저히 따르더라도, 외국 손님을 국내에서 맞을 때는 한국 스탠더드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삼성, LG 등 글로벌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고 우리나라 국격이 높아진 상황에서 우리만의 좋은 매너를 버릴 이유는 없다는 것. 하지만 이 같은 행동은 상대방 문화를 무시한다거나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마음의 문을 여는 ‘스몰토크 비법’ 비즈니스 파트너 국가 공부는 기본 …
대기업 해외사업부에서 근무하는 강모(38) 씨는 지금도 쇼팽의 피아노곡만 들으면 등골이 서늘하다. 동유럽에 제품을 수출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강씨는 2010년 초 폴란드를 방문해 주요 바이어와 미팅을 했다.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비즈니스에 들어가기 전 클래식 음악이 대화 소재로 떠올랐다. 그러자 바이어가 눈을 반짝이며 “어떤 음악가를 좋아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차이코프스키”라고 대답했다. 차이코프스키를 딱히 좋아하기보다 그냥 평소 익숙하던 그 이름이 떠올랐던 것.
“그 순간 바이어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시종일관 차가운 분위기에서 비즈니스 이야기만 했습니다.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죠. 2010년이 폴란드 건국 이래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손꼽히고 모든 폴란드인이 자랑스러워하는 쇼팽 탄생 200주년인 해라는 사실을 말이에요. 게다가 오랫동안 폴란드를 식민통치한 러시아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다는 것도요.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바이어가 좋아하는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말한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괜히 분위기 좋게 대화를 이끌려다가 오히려 망친 셈이 됐죠.”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비즈니스 이야기부터 하지 말고 스몰토크(small talk)로 대화의 물꼬를 트라고. 하지만 강씨처럼 대화 소재를 잘못 선택했다간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이 아니라, 미팅 자체를 브레이킹할 수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 미팅에 나서는 경우, 분위기를 살리고 대화도 편안하게 이어갈 수 있는 스몰토크 소재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 파트너 나라에 대해 공부하라!
국제화, 이문화 교육 전문기업 글로비쥬 마여실 대표는 “파트너 나라에 대해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소개한 강씨도 방문한 나라 및 미팅 파트너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봤다면, 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 적어도 방문한 나라의 역사는 어떤지, 어떤 유명 스타를 배출했는지, 어떤 스포츠를 즐겨 하는지, 최근 그 나라의 주요 이슈는 무엇인지 등을 알고 가야 한다.
여기에 방문 지역의 특징까지 안다면 금상첨화. 이탈리아에 30년간 거주하며 비즈니스 전문 통역을 맡아온 김경해 씨는 “이탈리아인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크다”며 “지역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면서 관광하고 싶다고 말하면, 파트너인 이탈리아인이 직접 안내에 나서겠다고 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가 통역을 담당한 한 한국인 사업가는 거래처 사장에게 “베네치아를20번 이상 스쳐갔지만, 워낙 바빠 제대로 관광한 적이 없다”고 떠벌리곤 했다. 그 사업가의 속내는 ‘워낙 비즈니스가 잘되다 보니 관광 같은 데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 하지만 이탈리아 사장 눈에 그는 자신의 고장을 하찮게 여기고, 문화나 역사에 전혀 관심이 없으며, 돈만 아는 기업인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미팅 파트너 개인에 대해 알아보고, 그가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를 미리 파악해 이야깃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좋다. 마 대표는 “스몰토크용 소재를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이는 의무라기보다 파트너에 대한 배려의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 준비한 게 없다면 날씨, 여행, 음식 이야기를 해라!
비즈니스 파트너에 대해 미리 공부하는 게 좋지만,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는다. 미팅이 급하게 잡혀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날씨, 여행, 음식 이야기를 하는 게 가장 무난하다. 특히 출장도 일종의 여행인 만큼 여행 자체에 대한 이야기, 즉 여행 중에 겪은 일, 흥미롭게 본 사람들, 도시 풍경과 건물에 대한 느낌을 솔직하게(하지만 긍정적으로) 말하면 분위기가 좋아진다.
파트너가 남성이라면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도 괜찮다. 유엔 차석대사를 지낸 국가브랜드위원회 서대원 국제협력분과위원장은 “해당 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를 대화 소재로 삼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파트너가 여성이라면 옷차림을 가볍게 칭찬하는 것도 좋다.
△ 종교, 정치, 인종, 사생활은 금물, but 나라별로 조금씩 달라
비즈니스 미팅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치, 종교, 인종을 대화 소재로 삼는 것은 좋지 않다. 또한 초면에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금물. 하지만 이것들은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스라엘, 인도 등 종교적 갈등이 심한 나라에서는 ‘절대로’ 종교 또는 종교에 기반한 정치 이야기를 꺼내선 안 된다. 개인별로 정치 성향이 매우 분명한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위험하다. 이탈리아의 경우 ‘마피아’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터부시한다. “당신은 마피아야”라고 하면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할 수 있을 정도. 그러나 아시아권이나 남미권 국가에서는 이런 대화 소재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사생활 부분 역시 나라별로 조금씩 다르다. 서 위원장은 “미국이나 캐나다 등 북미권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탈하며, 조금만 친해지면 자기 자신을 잘 드러내기 때문에 조금씩 사생활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괜찮다. 반면 유럽 사람은 사생활 공개에 훨씬 더 보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마 대표도 “유럽 중에서도 북유럽은 격식을 무척 따지고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어려운 반면, 남미나 아프리카 국가 사람은 쉽게 친해지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 모르면 물어라!
스몰토크 중 모르는 소재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자신이 잘 모르는 골프나 와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섣불리 아는 척하기보단 파트너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대방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기에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음악 문외한이면 교향곡이나 협주곡이 무난
상대방의 취향에 따라 심포니, 콘체르토, 독주회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초청할 사람이 러시아 사람이라면 차이코프스키, 무소르크스키 같은 음악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을 선택하고, 프랑스 사람이라면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나 백건우 리사이틀에 초청해도 좋다. 백건우는 프랑스에 상주하면서 프랑스 곡을 많이 연주했다. 체코 사람이라면 드보르자크나 스메타나, 노르웨이 사람이라면 그리그, 핀란드 사람이라면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음악회를 고른다. 물론 폴란드 사람이라면 쇼팽이 단연 최고다.
음악 초심자라면 교향곡이나 협주곡을 고르는 것이 무난하다. 음악회에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실내악 연주는 피해야 한다. 음악을 잘 모르면 졸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초심자에게는 지휘자가 ‘요란하게’ 지휘하거나 1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가 나오는 게 흥분도 되고 좋다.
*참고서적 ; ‘글로벌 파워 매너’(서대원, 중앙북스)
같은 문화권에 속해도 나라별로 중요하게 여기는 예의범절은 다를 수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이스라엘, 호주, 인도, 중국에 거주하는 ‘주간동아’ 해외 통신원이 나라별로 반드시 지켜야 할 매너를 정리했다. 이 정도만 알아도 그 나라 국민에게 호감을 얻을 뿐 아니라, 비즈니스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프랑스
저녁식사는 15분 늦게…비즈니스 미팅은 10분 일찍
프랑스에서 집으로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면 약속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도착한다. 식사를 준비하는 안주인에게 마지막으로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게 예의이기 때문. 하지만 병원, 학교, 공공기관에서 하는 비즈니스 관련 미팅일 경우 10분 정도 일찍 도착하는 게 좋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해야 한다. 또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저녁에 전화 연락을 하는 것도 금기 사항이다.
비즈니스 미팅에서 간혹 선물이나 기념품을 주고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 자리에서 선물을 바로 열어보는 것은 좋지 않다. 내용물을 굳이 보고 싶다면(혹은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금 열어봐도 되겠느냐”고 반드시 물어야 한다.
프랑스에선 가볍게 볼을 갖다 대며 입으로 쪽 소리를 내는 인사를 하지만, 공적인 일로 만났을 때는 반드시 악수를 한다. 미팅 파트너가 여성일 경우에는 남성이 먼저 악수를 청해야 한다. 만약 미팅 파트너가 남성이고 자신은 여성이라면 상대가 먼저 악수를 청하기를 기다리는 게 바람직하다.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을 위해서는 날씨나 최근 화제가 되는 뉴스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장 무난하다. 사생활 등 개인적인 부분에 호기심을 표출하는 건 절대 금물. 상대방이 여성일 경우 옷이나 소품을 가볍게 칭찬하는 것도 좋다.
초면에 나이를 묻는 것은 실례다. 상대방과 가까워졌다고 느낄 때 나이를 묻는다. 또 정치적인 이야기도 좋지 않다. 특히 프랑스는 개인마다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다. 미팅 파트너와 정치 관련 이야기를 하는데 지지하는 이념과 당파가 상반될 경우 예상치 못한 트러블이 발생할 수 있다.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이탈리아
문화재 칭찬, 축구선수 이름 꺼내면 이야기 ‘술술’
이탈리아인과 비즈니스 미팅을 할 때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대화 소재는 뭘까. 그들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하면 백발백중 실수 없이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
첫째는 문화재. 미팅 파트너가 거주하는 도시를 상징하는 문화재가 무엇인지 알면 여러모로 유용하다. 세계 문화유산의 3분의 1을 소장한 이탈리아는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등 유명 예술 도시가 아닌 지방 소도시나 작은 마을에도 몇백 년 된 문화재가 넘쳐난다. 그 지방 역사나 문화를 모를 때는 상대방에게 “체류 기간에 이 지방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 어떤 유적을 권하겠느냐”고 물으면, 이탈리아인들은 고향 문화에 자부심이 강해 성심껏 알려준다. 시간을 내 직접 안내해주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있으므로 친분을 다지는 계기도 된다. 미팅 전 한두 곳 미리 둘러보면 대화를 더 자연스럽게 풀어갈 수 있다.
둘째는 이탈리아 요리다. 이탈리아에는 ‘세부 사항은 회의실에서 거론해도 제일 중요한 결정은 식탁에서 이뤄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사를 대접하고 여유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것을 최고의 손님맞이라고 생각한다. 남성들도 저마다 비장의 레시피가 있을 정도로 요리에 대해 잘 안다. 식사 때 처음 맛보는 요리에 대해 묻거나, 제공한 와인의 역사와 배경을 질문하면 자연스레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특히 남성들은 본인이 택한 와인을 손님이 칭찬하면 최고의 찬사로 받아들인다.
이탈리아는 테이블 매너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엄격하지만 사실 간단하다. 먼저 잔과 식기, 포크, 나이프 등은 배열한 자리에 그대로 놓는 게 중요하다. 오른쪽에 있는 잔을 왼쪽으로 옮긴다거나, 포크와 나이프를 흩뜨리는 건 금물. 팔꿈치를 식탁 위에 얹거나 트림을 하는 것도 좋지 않다. 또 테이블에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언제나 ‘레이디 퍼스트’다. 한국사람은 거래처 사장만 주시하고 동석한 여성 임원에 무관심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깔끔한 테이블 매너 없이 이탈리아 요리를 스몰토크(small talk) 주제로 선택하면 도리어 역효과만 낼 수 있다.
셋째는 축구. 이탈리아인은 국가대표팀보다 프로축구 유명 클럽에 관심이 더 많다. 유명 선수 한두 명의 이름이라도 알면 대화를 쉽게 풀어갈 수 있다. “어느 팀 서포터즈세요?” “그 클럽의 올 시즌 전망이 어떤가요?”라는 질문 하나로 사업 파트너의 마음에 선제골을 넣을 수 있다. 이탈리아 축구를 잘 몰라도 걱정할 필요 없다. 이탈리아인은 축구 이야기만 나오면 너도나도 축구 전문가가 되기 때문. 상대방의 축구 논평을 들어주는 ‘인내’만 보여도 호감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대화 소재를 때와 장소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는 것. 분위기와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경솔하다는 인상만 남길 수 있다.
로마=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이스라엘
종교는 절대 금물, 지나친 칭찬도 자칫 낭패
스몰토크 소재로 가장 부적합한 것이 정치, 종교, 인종 문제라고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이 점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정치·종교적으로 복잡하게 분열된 나라이기 때문. 가령 택시를 타고 아랍인 기사에게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가는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반미, 제국주의, 민족주의, 이슬람원리주의에 대한 강의를 듣고 그 주장에 동조할 것을 강요받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비즈니스 거래 때도 마찬가지다. 가령 상대방에게 호의를 보이려는 목적으로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성경을 사랑해서 부강한 나라가 되는 복을 누리는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고 치자. 하지만 상대방은 종교인을 지극히 혐오하는 사람일 수 있다. 혹은 “이스라엘 국민은 근면하고 강인해 주변 아랍국과의 전쟁에서 번번이 승리했다”고 말했는데, 상대방이 이스라엘 시민권자인 아랍인일 수도 있다.
상대방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이 같은 주제는 아예 피하는 편이 좋다. 그냥 이스라엘의 자연이나 날씨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무난하고 일반적이다.
만약 이스라엘에 제품을 수출할 계획이라면, 교리에 부합한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공통의 성지다. 그만큼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과거 모 방송국에서 만화영화 ‘날아라! 슈퍼보드’를 이슬람 국가에 수출하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 ‘서유기’를 주제로 만든 이 만화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돼지인 저팔계였기 때문.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는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겨 먹지도 않는데, 돼지가 주인공이니 수출을 할 수 없었던 것.
초코파이도 마찬가지다. 초코파이는 돼지에서 추출한 젤라틴 성분을 함유하기 때문에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따라서 중동지역에 수출하는 초코파이에는 소에서 추출한 젤라틴 성분을 넣고, 육식을 금기시하는 인도 등지에는 아예 식물성 젤라틴을 함유한 초코파이를 수출한다. 이처럼 종교적 규범과 관습을 알고 잘 대응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애써 준비한 비즈니스 거래에서 낭패를 볼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은 공항 출입국이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나라다. 비즈니스를 위해 입국했다고 하면, 방문 업체에 대한 정보와 거래 내용 등을 상세히 묻고 짐 검색을 철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출국 때는 더욱 심하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미리 방문 업체로부터 업체 정보와 방문 경위 등이 적힌 공식 편지를 받아두는 게 좋다. 특히 고가 장비나 제품을 샘플로 소지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자칫 옷을 다 벗은 채 몸수색을 당하고, 고가 장비는 완전 해체당하는 불상사를 겪을 수 있다.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호주
침묵하면 손해…럭비와 6·25전쟁 참전 거론을
한국에서는 말이 없는 사람을 진중하거나 속이 깊다고 평가하지만, 호주에서는 말이 없으면 ‘무지한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침묵은 X이다”라는 옛말이 있을 정도. 침묵하면 그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간주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거나, 팀워크에 문제가 있는(또는 관심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기도 한다. 호주 직장에서는 개인의 능력보다 팀워크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따진다.
친목 모임이나 학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 침묵하는 사람을 무지해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거나, (수준 낮은 아랫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들 가치를 못 느끼는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라고 이분화해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침묵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말하지 않는 학생에게 점수를 줄 교수는 없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는 학생은 공부를 안 했거나 관심이 없는 학생으로 평가된다. 비즈니스 미팅에서도 침묵은 아주 위험하다. 비즈니스에 필요한 말은 당연히 하겠지만, 그것 말고도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호주인과 비즈니스를 할 때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도하는 스몰토크 소재는 다음과 같다. 먼저 럭비(사진). 호주인은 럭비 이야기가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럭비를 좋아한다. 호텔에 머문다면 “어제 텔레비전을 켜보니 거의 전 채널에서 럭비를 중계하더라. 자세히 보니 각각 다른 종류의 럭비였다. 호주에선 과연 몇 가지 럭비를 하느냐”고 물어보면 분위기가 확 살아난다. 단, 주의할 것은 럭비 이야기가 너무 진지해지면, 비즈니스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미팅이 끝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호주인의 스포츠 사랑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호주 출신 선수 중 월드스타도 많다. 골프의 그레그 노먼과 캐리 웹, 수영의 이언 소프, F1자동차그랑프리의 마크 웨버, 오토 그랑프리의 스토너, 테니스의 레이튼 휴잇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배우 멜 깁슨과 러셀 크로, 제프리 러시, 니콜 키드먼 등 연예 스타도 많다. 이들의 이름을 거론하면 ‘친호주파’로 대접받는다.
호주 지폐 이야기도 좋아한다. 이들의 지폐가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지폐고, 시인 6명의 초상화를 담았기 때문. 게다가 여성 시인이 5명이다. 최고액권인 100호주달러에 여성(넬리 멜바)의 초상을 넣었다.
6·25전쟁 때 호주군이 참전했던 사실을 말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호주인은 자국 군인이 외국 전쟁에 참전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독이 될 수 있다. 미국엔 반전주의자가 많기 때문이다.
초면일 경우, 만나자마자 명함을 건네는 것도 예의에 어긋난다. “나는 누구다. 직책이 이렇다” 등을 알리면서 바로 비즈니스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 물론 비즈니스를 위해 만났다 해도 인사를 나누고 날씨나 출장, 여행 이야기 등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 다음, 음료나 커피를 대접받으면서 명함을 주고받는 게 예의다. 특히 자리에 앉은 다음 명함을 건네야 한다. 한국인은 선 채로 명함을 건네는 습관이 있지만, 호주에서는 이 같은 태도를 무례하다고 여긴다.
시드니=윤필립 시인·호주 전문 저널리스트 phillipsyd@hanmail.n
인도
달콤한 디저트 선물, 처음부터 친한 척하지 마라!
인도에서는 업무 시간 후 회식이나 미팅을 잡지 않는다. 회식과 미팅 모두 점심시간에 한다. 이는 가족 중심의 인도 문화 때문.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하는 저녁 시간에 비즈니스 미팅을 잡는 건 큰 결례가 될 수 있다.
또 인도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매우 흔하다. 비즈니스 미팅일지라도 현금을 건네는 일은 예삿일. 뇌물이라고 할 만큼 금액이 크지는 않다. 성의를 표할 만한 작은 선물이 오가는 경우는 매우 흔한데, 이를 거절하는 게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 특히 인도 최대의 명절인 ‘디왈리’(힌두교 최대 축제) 선물을 거부하는 것은 무례를 범하는 일이다.
인도에서 첫인상을 좋게 하려면 이들의 디저트인 ‘스위트’를 선물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첫 만남에서 자그마한 상자에 스위트를 넣어 선물한다면,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비즈니스를 달콤하게 시작할 수 있다.
종교나 정치 관련 이야기는 무조건 금물이다. 인도는 이슬람교와 힌두교 간 분쟁이 빈번하기 때문에 정치 이야기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카스트제도와 정당에 관한 것도 피해야 할 소재. 분위기를 좋게 하려다 미팅 자체를 깨버릴 수 있다.
인도인은 처음부터 너무 친한 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미팅을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하거나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벵갈루루=박민 통신원 minie.park@gmail.com
중국
인간적으로 친분 후 비즈니스, 빨간색 펜 서명은 금물
중국인은 ‘친구’ ‘형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만큼 유대관계를 원만히 해야 비즈니스도 잘할 수 있다는 얘기. 그러니 무엇보다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비즈니스 이야기를 꺼내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비슷한 의미로, 중국인의 비즈니스는 식사를 통해 주로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중국인이 식사를 대접하는 건 상대방에게 ‘친한 사람’ 또는 ‘자기 사람’이라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중국인과 자리를 하면 빠지지 않고 차가 등장한다. 이때 상대방 잔에 차를 가득 따라선 안 된다. 이는 ‘쫓아낸다’는 뜻이기 때문. 차는 컵에 적당히(3분의 2 정도) 따른다. 그런데 술은 차와 반대로 적게 따르면 쫓아낸다는 뜻으로 여기니 조심해야 한다.
중국인과 비즈니스를 하는 자리에서는 간단한 선물을 주는 것도 좋다. 다만 괘종시계나 우산은 피해야 한다. 괘종시계의 발음(鍾·#8729;zhong)이 ‘끝 또는 죽음’을 뜻하는 단어(終·#8729;zhong)와 같기 때문. 우산(傘·#8729;san) 역시 흩어지다(散·#8729;san)라는 뜻의 단어와 발음이 같아 중국인이 선물로 기피한다.
또 중국인은 짝수를 ‘길하다’고 생각하므로(단 4는 제외), 선물을 줄 땐 짝수로 준비하는 게 좋다. 하지만 두 다발의 꽃은 좋지 않은 조짐으로 생각하니, 꽃은 예외다. 만약 중국인이 선물을 주면 두 손으로 정중히 받되, 그 자리에서 뜯어봐서는 안 된다.
중국인은 자국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니, 중국 역사를 공부해두는 게 좋지만 민족 문제 등 민감한 소재는 피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인은 빨간색을 좋아한다. 빨간색은 선혈을 대표하며 위험을 몰아내는 색이라 생각하기 때문. 황색은 중국 고대 황제가 사용한 색이라 지금도 여전히 귀족의 색으로 여긴다. 반면 검은색은 반혁명, 암흑, 불법을 상징하므로 싫어한다. 그리고 흰색은 사망과 관련된 색으로 여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 하나. 중국인이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하나, 절대 빨간색 펜으로 서명을 해선 안 된다. 절교한다는 뜻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베이징=김나미 베이징대 신문방송학과 박사 ukiange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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