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史관련

군사전문 작가 김경진의 한·일 독도 전쟁 시나리오

醉月 2008. 9. 12. 21:51
피투성이된 마산함장의 절규, “쏴! 쏴! 빨리 시라네를 죽여!”
김경진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늘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둬라.” 이는 전쟁에 관한 가장 보편타당한 명제일 것이다. 독도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 간의 갈등이 정점에 달한 2008년 여름, 누구도 전쟁을 바라지는 않는다 해도 극단적인 상황을 짚어보는 작업은 그래서 의미 있다. 가까운 시일 안에 독도에서 무력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지만, 최악에 최악의 상황이 겹칠 경우 이는 과연 어떤 식으로 번져나갈까. 한국 해군과 한일 양국의 무력분쟁 관련 작품을 다수 집필하며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작가 김경진씨가 이와 관련해 생동감 넘치는 시나리오를 ‘신동아’에 보내왔다. 총체적인 해상전력은 일본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독도의 지리적 위치와 한국 해경·해군의 대비태세 등으로 인해 실제로 대형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에는 승산이 높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일본의 이지스함 기리시마(7500t급)

최근 수년간 이어진 한국 측의 전력 확충이 만만치 않다는 것. 만에 하나 일본 측이 대한해협 진격 등 확전을 불사한다 해도 결코 불리한 싸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시나리오를 이제부터 시작한다.

 

1. 독도 상륙작전

“도쿠도눈, 이루본, 탕이무니다.”

“다케시마와 니혼노 에토데스.”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아침, 일본인 청년들이 독도 선착장에서 어쭙잖은 한국말과 일본말로 구호를 외쳤다. 동행한 일본 언론 취재진 10여 명이 방송카메라와 위성통신장비로 청년들의 행동을 일본 전역에 생중계하고 있었다.

계획과는 달리, 극우단체 회원인 청년들은 당당하게 구호를 외치지도, 일장기를 꺼내 흔들지도 못했다. 이들은 불안스레 눈동자를 굴리며 바로 앞에서 총을 겨눈 독도경비대원들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일본 극우진영이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역사적인 현장’에 어울리지 않게, 예의바른 청년들은 독도경비대원들에게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냥 돌아가십시오. 안 돌아가면 강제로 저지하겠습니다!”

독도경비부대장 김상수 경사가 자동소총의 총구를 까딱이며 경고했다. 경상북도경찰청 소속 울릉경비대 예하 독도경비대원이 일본어로 통역을 해줬으나 일본 청년들은 들을 겨를이 없어 보였다. 태풍을 뚫고 바다를 건너온 이들은 생명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판단이 든 다음 순간 구토하느라 정신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웨엑! 꾸에엑!”

2007년 건조된 한국 최초의 이지스함 세종대왕함(7600t급)

태풍이 치는 동해에서 작은 어선을 타고 열 시간 넘도록 풍랑에 시달렸고, 독도에서 12해리 떨어진 바다에서 RIB보트로 갈아타고 독도에 접안을 시도한 지 세 시간 만에 겨우 도착했다. 독도경비대원들이 총을 쏠 줄 알았으나 뜻밖에 경고에 그치자 청년들의 몸은 뒤늦게 그동안의 지독한 뱃멀미에 반응하고 있었다. 사실 이들이 독도에 상륙할 수 있었던 것도 태풍 덕분이었다. 평소 같았다면 한국 해경 함정들에게 막혀 되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저들이 타고 온 RIB보트가 부서졌습니다, 부장님!”

2분대장 김용선 수경이 독도경비대 부소대장에게 보고했다. 일본인들이 접근코스를 잘못 잡아 암초가 많은 선착장과 부채바위 사이로 들어온 때문이었다. RIB단정은 배밑 용골이 깨지고 스크루도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독도에 상륙한 일본 극우단체원들을 당장 돌려보낼 길이 막힌 것이다.

“최대한 빨리 대구로 호송해야겠군. 일단 체포해!”

김상수 경사가 명령하자 독도경비대원들이 일본 청년들을 간단히 포박했다. 저항할 체력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은 일군의 일본 청년들을 체포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독도경비대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일본 해상보안청과 해상자위대가 나서기 전에 극우단체원들을 최대한 빨리 뭍으로 호송해야 했다. 그러나 지나간 태풍의 여파가 컸다. 사흘 전부터 해경은 물론 해군 함정들도 동해에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인들을 호송할 수단은 헬리콥터밖에 없었다.

“이런 날씨에 헬기가 뜰 수 있나?”

김상수 경사가 통신기를 개방해 독도경비대장과 통화했다. 경비대장은 독도경비대 막사 상황실에서 감시카메라를 통해 체포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장님! 도경이나 해경에 헬기 지원을 요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상상태 때문에 헬기는 힘들다고 합니다. 현재 해경 경비구난함들이 세 시간 거리에 있으니 구난함으로 옮기는 게 빠르겠어요.”

한국 정부는 일본 극우단체원들이 시마네현 사카이에서 출발해 오키섬을 거쳐 독도로 오는 여정을 그동안 빠짐없이 감시하고 있었다. 새벽 3시에 이미 한국 해경 경비구난함들이 출항했다. 5001함 삼봉호를 비롯해 해경 구난함 네 척이 5m 가까운 파도를 넘어 달려오고 있었다.

문제는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들도 독도로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해상보안청이 사주한 극우단체원들은 미끼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들은 이미 출동준비를 하고 있었다.

   

2. 해경 경비구난함 vs 해상보안청 순시선

“영해선 안쪽까지 들어왔군. 차단 기동 실시!”

5000t급 경비구난함 삼봉호에서 동해지방해양경찰청장이 함정들에 지시했다. 삼봉호와 해경 구난함들이 횡렬진을 전개해 일본 순시선들을 밀어붙였다.

동해 묵호항에서 출항한 동해지방해양경찰청 소속 경비구난함 네 척은 오전 11시에 독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거의 동시에 일본 순시선 네 척도 독도 해역에 도착했다. 평상시 배치대로라면 동해시 묵호항에 모항을 둔 한국 해경 구난함 네 척이 조금 일찍 도착해야 했고, 순시선들은 사카이에 모항을 둔 두 척, 또는 8관구 해상보안본부의 최대급 순시선 다이센까지 포함해 최대 세 척이 와야 했다. 그러나 순시선들은 전날 오키섬에 집결하고 있다가 한꺼번에 독도에 들이닥쳤다. 한국 공군의 조기경보기 ‘평화의 눈’에서 추가로 순시선 두 척이 독도를 향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독도에 대한 도발을 1차적으로 저지할 임무를 수행하는 해경 경비구난함들은 일본 극우단체원들을 호송할 여유가 없었다. 다만 순시선들이 독도 선착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데 치중했다.

두 시간이 지나서 독도 해역에 일본 순시선 두 척이 추가로 도착했다. 이제 순시선은 여섯 척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한국은 포항과 울산에 모항을 둔 경비구난함 세 척을 추가로 동원했다. 7대 6. 동해를 관장하는 대형 경비함정은 한국 해경에 한 척이 더 많았다. 한국 해경과 일본 해상보안청의 10여 년에 걸친 치열한 건함(建艦) 경쟁은 2008년 한국 해경의 승리로 끝났고, 결국 이런 숫자상의 차이로 나타났다.

일본은 선진국이며 해양국가인 만큼 EEZ(배타적 경제수역) 면적과 해양산업 종사자, 입출항하는 선박 숫자로 비교하면 한국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해상보안청의 규모 역시 한국 해경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배수량이 큰 최신형 순시선 다수, 값비싼 고정익 항공기와 각종 첨단장비, 해상보안학교와 해상보안대학을 졸업하고 다년간 실무경험을 쌓은 전문인력, 오랜 전통으로 안정된 시스템 등을 감안하면 종합적인 전력은 당연히 그 이상 차이가 날 터.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를 같은 열에 두기 어렵듯, 선진 해양국가인 일본의 해상보안청과 한국 해양경찰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일견 무리일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2006년 4월 포항 앞바다에서 일본 선박의 독도 영해 침범 항로저지 등을 위해 열린 해양경찰청 해상종합훈련.

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지나간 옛이야기에 불과하다. 해상보안청은 인원, 1000t 이상 또는 이하 함정 숫자, 항공기 보유 숫자 등에서 2007년 기준으로 한국 해양경찰청의 딱 두 배에 불과하다. 더욱이 해경 소속 전투경찰까지 합하면 인원은 일본의 75%에 달하고, 대형 함정끼리 비교하면 숫자는 적더라도 단일 함정의 배수량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 해경은 민간자본을 활용해 계획보다 6년 빠른 2009년에 노후 함정 교체사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덕분에 현재 시점에서는 일본 순시선들보다 오히려 신형이다. 한국 해경이 최근 10년간 급격히 세력을 확충했기에 이런 비교가 가능하다.

척수와 배수량, 화력에서 밀린 8관구해상보안본부는 주변 7관구와 9관구에 증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 사이 한국도 증원을 서둘러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소속 대형 경비구난함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유사시 증원체제가 잘 갖춰진 한국 해경이 독도해역에 스물네 척을 집결시킨 사이, 일본 해상보안청은 단 한 척도 증원하지 못했다. 일본 해상보안청이 보유한 대형 순시선 숫자가 한국의 두 배가 넘지만, 담당한 EEZ가 워낙 넓어서 집결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한일 양국 해양경찰 세력이 일정한 시간을 정해 집결한다면 당연히 일본이 우세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즉시 집결시켜 일정한 시간 독도해역을 지키는 데는 한국 해경이 훨씬 유리하다.

“한국 순시선들이 왜 이리 많은 거야? 일본이 왜 이리 약해진 건가. 이건 모두 일본을 한국에 넘기려는 아사히신문, NHK 같은 좌파 언론과 정계를 장악한 재일조선인의 음모 탓이야!”

8관구 해상보안본부 간부들이 울분을 토했다. 순시선 여섯 척은 독도 기점 영해선 12해리에 이어 접속수역 24해리까지 물러섰다. 일본영토인 독도에서 한국 경찰에게 불법 납치된 일본인들을 구출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출동한 해상보안청 입장에서는 더 이상 밀릴 수 없었다.

“개정된 해상보안청법에 따라 어서 경고사격을 실시해!”

수화기 건너에서 해상보안청 본청의 넘버3이자 제복조의 수장인 경비구난감이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나 8관구 해상보안본부장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자위대와 해상보안청, 경찰은 실사격은 물론 경고사격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법적 제한이 촘촘히 가해져 있다. 인질사건이 발생해 범인이 총기를 쏴도 대응사격을 못하는 경찰기동대에 대한 비난은 일본에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해상보안청법 20조1항에 의한 경찰관 직무집행법 7조 준용 규정 때문에 해상보안청도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발포가 가능하다.

“일본 영토에서 일본인을 납치하려는 흉악 범죄에 어서 대응하라고!”

   

경비구난감이 연신 재촉했다. 해상보안청 장관이 인정하는 요건을 충족시키면 ‘불심선(不審船·불심검문을 거부한다고 해서 붙여진 용어)’이라 불리는 북한 공작선을 정지시킬 목적으로 실사격을 가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한국 정부기관인 해양경찰의 경비구난함이었다.

해상보안청 장관이 인정하는 일정한 요건이란, ▲외국 선박이 일본 영역 내에서 무해통항이 아닌 항행을 하는데 ▲방치하면 장래 반복될 개연성이 있으며 ▲일본 영역 내에서 중대한 흉악범죄를 준비한다는 혐의가 있거나 ▲해당 선박을 정선시켜 출입국 검사를 하지 않으면 중대 흉악범죄를 예방할 수 없는 경우 네 가지다. 자위대법에도 ‘해상경비행동시’라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긴 하지만 해상보안청법과 비슷하게 무기사용 조건을 완화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일본에 잠입하려는 북한 공작선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경고사격 실시!”

8관구 본부장이 어쩔 수 없이 다이센의 함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3000t급 대형 헬기탑재 순시선 다이센에서 20mm 벌컨 기관포를 발사했다. 푸른 바다 위로 시뻘건 줄을 그으며 20mm 탄환 다섯 발이 삼봉호 앞에 떨어졌다. 솟아오르는 물기둥. 한국 해경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퉁! 퍼벙!

부산해양경찰서 소속 1005함이 76mm 함포를 발포했다. 굉음이 터져나오자 순시선들이 혼비백산했다. 북한 공작선 사건 이후 일본 해상보안청이 의욕적으로 도입한 신형 고속 고기동 순시선 키소(きそ)는 그 뛰어난 기동력을 발휘해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8관구 해상보안본부장이 새끼손가락을 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함교에 부상자 발생!”

“8관장! 어떻게 된 거야?”

경비구난감의 성화에 8관구 본부장이 새끼손가락을 어루만지며 통신기를 잡았다.

“한국 해경의 발포로 다이센에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경고사격에 부상자가 발생하다니, 엄살이 너무 심한 것 아냐?”

“제 손가락이 골절된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한국 해경의 사격에 의한 부상이라 이거지. 좋다! 일단 퇴각해! 뒤는 내가 맡는다.”

배후는 따로 있지만, 이번 사태의 기획자이자 실행자는 경비구난감이었다. 일본은 한창 선거 중이고, 뇌물사건으로 사퇴한 중의원 지역구에 내려간 총리와 관방장관은 보궐선거를 돕고 있었다. 총리관저를 지키며 긴급 사태에 대처해야 할 관방장관이 자리를 비운 틈에 경비구난감이 적당히 과장을 섞어가며 독도해역에서 발생한 사건을 총리관저에 보고했다. 총리관저는 마이즈루(舞鶴)에 기지를 둔 해상자위대 제3호위대군과 호위함대 직할 14호위대 함정들을 출동시켰다.

그 사이 한국 해경은 일본 극우단체원은 물론 일본 기자들도 동해시로 호송했다. 이들은 출입국관리소로 이송돼 조사를 받은 다음 일본으로 추방될 예정이었다. 한국 방송과 신문에서 긴급기사로 이를 타전했지만, 일본 해상보안청은 청년들이 여전히 독도에 있다고 우겼다.

 

3.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독도 집결

“또 왔냐? 제발 가라, 가!”

광개토대왕함 함장이 전투지휘상황실의 전술지휘 화면에 나타난 일본 함정들을 확인하며 투덜거렸다. 일본 함정이 독도에 접근할 때마다 긴급 출동해야 하는 1함대 입장에서는 이제 지긋지긋했다. 그러나 이번에 온 일본 함정들은 다른 때보다 조금 많았다. 사실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았다. 함장은 못내 불안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한국과 일본은 해군 함정들을 출동시켰다. 대한민국 해군1함대 소속 대형 수상함정들이 30노트로 달려 독도에 집결했다. 1함대 기함인 광개토대왕함과 울산급 호위함 세 척, 포항급 초계함 여섯 척을 합해 총 열 척이었다. 광개토대왕함을 제외하면 방공능력이 약하고 작은 전투함들이지만, 북한을 상대하려고 건조된 함정들인 만큼 속도가 빠르고 함포 화력은 평균적인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들보다 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일본 해상자위대 3호위대군과 14호위대, 15호위대의 연합이었다. 이지스함 두 척을 비롯해 대형 함정만 열네 척이었다. 반면 일본 측에도 문제는 있었다. 3호위대군 예하 3호위대의 다카나미급 마키나미(まきなみ), 7호위대의 무라사메급 호위함 유우다치(ゆうだち), 기리사메(きりさめ), 아리아케(ありあけ)까지 네 척은 마이즈루가 아니라 규슈 북서쪽 사세보(佐世保)가 모항이었다. 3호위대 아사기리급 세토기리(せとぎり)는 혼슈 북쪽 끝 오미나토(大湊)가 모항이었다. 3호위대군의 기지가 독도에 가까운 마이즈루에 있어도, 예하 함정들의 모항이 제각각이다 보니 집결하는 데 큰 문제가 생겼다. 호위함대 직할 15호위대도 오미나토에서 오려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렸다.

   

일본 함정들이 집결하는 사이 한국은 해군 작전사령부 직할 5전단 소속 51대잠전대를 보냈다. 51대잠전대는, 명칭이 전대일 뿐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과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6척, 울산급 호위함 1척, 포항급 초계함 2척, 동해급 초계함 2척으로 구성돼 있다. 함정 수로만 따져도 총 12척인데다 화력과 배수량을 따지면 독도해역에 집결 중이거나 이미 도착한 일본의 해상전력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독도를 결승점으로 두고 한국과 일본 함정들이 치열한 경주를 펼쳤다. 결과적으로 일본 전투함정 14척이 미처 독도해역에 도착하지도 못했는데 한국 해군함정 1함대와 5전단 20여 척이 먼저 도착해버렸다. 만에 하나 일본이 도발할 계획을 갖고 있더라도 독도 해역에 차례로 도착하는 일본 함정들은 한국 해군에 의해 각개 격파의 대상이 될 뿐이다. 3호위대군에는 이지스가 두 척이고 한국에는 한 척뿐이라지만, 충무공이순신급 6척의 위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항공자위대는 서둘러 F15J 전투기와 F2 지원기를 독도 상공으로 출동시켰다. 이에 대응해 한국도 F15K와 KF16 전투기를 대량으로 출동시켜 독도 상공에서 견제했다. 게다가 독도 인근 상공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 KADIZ 내부라서 일본 항공기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3호위대군 사령은 눈물을 뿌리며 독도해역으로부터 퇴각을 명령했다.

개연성만을 따라가자면, 사실상 여기서 분쟁은 끝이 나야 옳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독도를 두고 전쟁이 일어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일본 헌법 9조가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력보유와 교전권도 인정치 않는다. 전력 보유를 금한 헌법 규정을 피해 군대가 아닌 자위대를 보유했지만, 일본이 헌법 9조를 개정해 보통국가화하지 않는 동안에는 독도를 무력으로 점령할 시도는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국제정세도 변할 수 있다. 일본이 헌법개정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현재의 평화헌법 체제에서 군사분쟁을 절대 일으키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 한국 정부가 무력충돌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 일본 정부가 오판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해군 수상 함정들을 중심으로 무력충돌이 발생했다고 가정하자. 대한민국 해군 1함대와 5전단의 연합전력은 매우 강하다. 반면 일본 해상자위대 3호위대군을 중심으로 하는, 초기에 독도해역에 투입할 수 있는 일본의 해상 전력이 한국 해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전체적으로는 한국 해군이 약하다 해도 지난 수십년 동안 증강을 거듭해 일정 시간 독도를 지킬 수준은 된다. 반면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은 너무 넓게 분산돼 있다. 최악에 최악의 상황이 계속된 끝에 5전단은 두 시간 늦게 출동하고 해상자위대 15호위대는 일찍 출동했다고 가정하고 다음 상황을 이어나가보자.

 

4. 일본 해상자위대 행동의 법적 근거

한국 해군1함대 소속 대형 수상함정들은 2007년에 1전단이 해체됨에 따라 1함대 직할로 편입됐다. 각 전대는 울산급 1척, 포항급 초계함 2척으로 구성돼 있고 3개 전대가 출동했다. 1함대의 기함 광개토대왕함까지 합치면 총 10척이었다. 이에 반해 3호위대군은 3호위대 네 척과 7호위대의 방공호위함 묘코 (みょうこう), 그리고 마이즈루에 기지를 둔 호위함대 직할 14호위대 세 척, 합해서 여덟 척이 한국 해군과 대치했다.

척수는 많지만 함정의 규모가 작은 1함대 함정들은 밀리고 밀린 끝에 독도 밖 4km까지 밀려났다. 해상자위대는 한국 함정들에 충돌을 불사하며 마구 밀어붙였다. 한국 해군은 어쩔 수 없이 해상자위대 함정들에 경고사격 1발을 가했다.

쾅! 퍼엉!

신형 이지스 방공호위함 아타고(あたご)의 함수 정면에서 물기둥이 솟았다. 3호위대군 사령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령은 바로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영해 내에서 자위대 함정에 대한 타국 함정의 공격이다! 전 함정은 반격태세를 갖춰라! 전신장은 즉각 호위함대에 보고하라!”

“아직 방위출동 명령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정당방위로써 행동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광개토대왕함에서 경고사격할 것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3호위대군 막료들은 일단 사령에게 반대의견을 제기했다. 사전에 구체적으로 역할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7월30일 동해에서 열린 독도방어훈련. 완벽한 독도 방어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실시된 이날 훈련에는 해군 및 해경 함정과 해상초계기, 공군 F15K 전투기 등이 참가했다.

“천만에! 무기 등의 방호를 규정한 자위대법 95조에 의거,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이라는 무기체계를 지키기 위해 무기사용을 명령한다!”

이 말은 고스란히 출동일지에 기록됐다. 자위대는 무엇을 지키는가. 호위대군은 무엇을 호위하는가. 일본 사회는 이를 두고 격론을 벌인 끝에 ‘자위대는 스스로를 지키고 호위대군은 다른 함정을 호위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위대의 무기 사용에 대한 법적 뒷받침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영토 및 영해 방위를 위한 무력 사용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2000년을 전후해 벌어진 북한 공작선 침투, 일명 불심선 사건도 영향을 끼쳤다.

1999년 3월21일, 노토(能登)반도에서 괴전파가 수신되자 해상자위대는 9시간, 10시간 만에 괴선박 두 척을 포착해 추격했다. 그러나 해상자위대는 영해 경비임무에 대한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에 전파를 연구한다는 구차한 명목으로 괴선박을 졸졸 따라다니다가, 괴전파 수신 37시간 만에 해상보안청에 통보했다.

드디어 사법경찰관 권한을 가진 순시선이 15척이나 출동했다. 그런데 본격적인 혼란상은 이 단계에서 발생했다. 순시선들이 괴선박을 포착하는 데는 시간이 한참 걸리고 대형 순시선은 속도가 느려 괴선박을 추격하지 못하자, 소형 순시선은 연료가 떨어져 되돌아가게 되었다. 해상자위대 호위함과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당연히 괴선박에 도청될 것을 각오하고 어업용 민간 주파수를 통해 음성으로 통신하다가 조업하는 어선들 사이의 교신과 혼선되는 등, 온갖 사건사고가 만발했다.

며칠 동안 일본 근해를 들쑤시고 돌아다니며 총리관저와 해상자위대, 해상보안청, 도쿄경시청 등을 온통 뒤집어놓은 괴선박은 중간에 정선해서 호위함 하루나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엔진을 고치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호위함과 초계기의 추격 및 경고사격을 뿌리치고 한 척이 3월24일 오전 3시20분에, 다른 한 척이 오전 6시6분에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넘어 청진으로 도망갔다.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45년 만에 처음으로 외국 배에 위협사격을 가하고, 총리가 해상보안청의 상급기관이자 국토교통성의 수장인 운수대신의 요청과 당시 방위청 장관의 요구에 의해 일본 역사상 최초로 자위대에 해상경비행동 발동을 승인한 보람이 없었다. 오히려 위협사격을 가한 법적 근거가 겨우 어업법 위반이었다는 점에서 법적 책임에 비해 과잉대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기사용 기준이 대폭 완화되는 방향으로 해상보안청법이 개정되고 해상자위대와 해상보안청의 공동 대처 매뉴얼이 작성된 이후인 2001년 12월, 일본 순시선들은 동지나해에서 북한 공작선을 격침시켰다. 이때도 갖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괴선박을 촬영한 해상자위대 초계기는 대부분의 다른 초계기들처럼 화상전송 기능이 없어 기지에 착륙해야 했고, 사진을 가노야(鹿屋)기지의 전용 통신회선을 통해 해상막료감부에 송신 완료했다. 이 과정이 무려 세 시간 걸렸다. 분석과 통보에 시간이 더 지연되어 괴선박이 발견된 후 해상보안청에 통보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도합 9시간이었다.

반면 총리관저에서 모든 기관을 통합 지휘해야 할 아베 신조 당시 관방장관과 직원들은 그 사이에 모두 퇴근해버려서 이후 해상자위대와 해상보안청, 경시청 사이의 업무협조 라인이 완전히 마비되는 사태에 처했다. 관방장관은 그전에 이미 미군과 기카이지마(喜界島) 통신감청소로부터 북한어 암호통신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아 북한 공작선이라고 단정할 만한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었음에도 중국 밀항선이라고 판단해버렸다.

영해를 침범한 북한 공작선을 정선시키는 것도 법적 근거가 부족해서, 또는 대응절차가 없어서 하지 못한 해상자위대와 해상보안청이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 정부 선박인 해군 함정을 공격한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독도경비대에 체포된 일본인을 구출한다는 명분으로 총리대신에 의해 자위대 설립 이후 최초로 방위출동이 발동돼 해상자위대 함정들이 선제공격을 가한다고 가정해보겠다. 보통 때 같으면 한국 및 일본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미국이 양국 정부에 압력을 가해 무력충돌을 방지하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미국은 중립을 선언하고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또한 계속 대치 중이기 때문에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 대함(對艦)미사일의 최소 사정거리 안쪽에 이르렀기 때문에 미사일 공격은 불가능하고, 그 발사권한도 양국 정부에 의해 금지된 채 교전을 시작한다고 가정한다. 상황이 여기까지 전개되면 해경 함정들과 순시선들은 이미 어느 정도 물러서 있을 것이다.

   

5. 해상자위대의 선제공격

“전 함정, 반격 준비태세를 확립하라! 전투 중에도 전대별 진형을 고수한다!”

1함대 사령관 김준식 소장이 꿀꺽 침을 삼켰다. 일본 함정들의 선제공격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사격통제레이더가 127mm 함포를 통제해 한국 함정을 겨누고, 추적레이더 전파가 한국 해군함정들을 강하게 때렸다. 독도 동쪽 4km 바다에서 일렬로 대치한 한일 함정들은 전투 직전이었다.

“1함대 전 승조원에게! 우리는 대한해군이다. 최선을 다하라. 무운을 빈다!”

콰앙!

이지스 방공호위함 아타고의 함수 127mm 함포가 1함대 기함인 광개토대왕함의 함교를 직격하면서 해전은 시작됐다. 이와 동시에 일본 함정들이 한국 해군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배수량이 크고 화력이 강한 울산급 함정들을 집중 공격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무력충돌을 우려해 소극적인 지시를 내린 까닭에 한국 해군 함정들은 일단 맞고 시작해야 했다. 해전에서 선제공격의 효과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매우 불리한 출발이었다.

“통제 하나 추적 끝! 방위 145도, 거리 3412야드, 침로 315, 속력 28노트. 추적 상태 양호! 아니, 불량! 전자전(電子戰·적 전자기기의 작동을 교란, 방해하는 활동)입니다!”

“레이더가 먹통입니다!”

광개토대왕함의 전투지휘상황실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지스함 아타고를 비롯한 모든 일본 함정에서 전자전을 실시했다. 레이더 화면이 온통 누렇게 번져갔고, 전자관과 전자사들이 즉시 이에 대응했다. 1함대 함정들이 미처 반격을 시작하지 못했는데도 피해가 급격히 쌓여갔다.

쾅!

“조준 좋으면 쏘기 시작!”

“쏘기 시작!”

작전관이 지시하자 사통사가 127mm 함수 함포의 발사버튼을 눌렀다.

쿵! 쿵! 쿵! 쿵! 쿵! 쿵!

광개토대왕함은 아타고로부터 3~4초에 한 발을 맞는 대신 1.4초에 한 발 비율로 포탄을 쏟아 부었다. 해상자위대가 자랑하는 최신형 이지스 호위함 아타고의 함교 주변이 온통 섬광과 화염과 연기로 뒤덮였다. 함교 위 마스트에 배치된 각종 전자장비는 물론, 함교 좌우 측면에 배치된 위상배열레이더가 가장 먼저 박살이 났다. 아타고에 탑재된 127mm 62구경장 함포가 신형이기 때문에 사거리가 길고 다양한 함포를 발사할 수 있지만, 광개토대왕함의 함포는 오토브레다 127mm 함포로서 발사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광개토대왕함의 함수와 함미에 탑재된 30mm 골키퍼 기관포도 아타고를 향해 불을 뿜었다. 원래는 날아오는 미사일로부터 함정을 보호하기 위한 요격용 대공기관포이지만, 수상모드로 전환하면 강력한 함포가 된다. 아타고의 함교구조물에 매달린 위상배열레이더와 각종 센서류가 벌집이 됐다.

 

6. 극심한 초반 피해

광개토대왕함을 제외한 울산급 함정들이 가장 먼저 일본 호위함들로부터 선제공격을 당했다. 함령이 30년 가까이 된 낡은 시라네(しらね)는 현대 군함으로서는 어울리지 않게 인력(人力)으로 조준하는 유인함포로 무장했지만, 대구경인 127mm 유인함포가 두 문이어서 함포전에서는 매우 유리했다. 2007년 말 도쿄만에서 전투정보실이 화재로 불탄 시라네는 동급 함정인 하루나로부터 시설을 인수받고 3호위대군에 배치된 상태다.

콰앙!

마산함 함교에 직격탄이 세 발 연속 쏟아졌다. 그 사이 시라네의 두 번째 함수 함포는 마산함의 76mm 함수 함포의 바로 아래, 함수 갑판 뒤쪽 회전급탄대 부위를 직격했다. 이어서 마산함의 76mm 함포 바로 뒤 30mm 함수 기관포 주변에 포탄이 연속 작렬했다. 이 공격으로 마산함의 함교와 그 아래 전투정보실까지 화재에 휩싸였다.

마산함은 아직 단 한 발도 못 쐈는데 벌써 절반 이상이 불타올랐다. 함교, 전투정보실, 함수 76mm 함포와 30mm 기관포, 함 중앙 좌측과 함미의 76mm 함포, 30mm 함포마저 완전히 무력화됐다. 함정이 작으니 함체에 포탄이 맞기만 하면 무장이나 센서 같은 중요한 부위가 깨져나갔다. 사상자도 속출했다. 남은 함포는 함 중앙 우측 30mm 기관포뿐이었다. 그마저도 함교와 전투정보실이 피격당하면서 사통장비와의 연결이 끊겼다. 전투정보실에서 원격으로 조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함장 정상용 중령이 절뚝거리며 함교에 뛰어 올라갔다. 전투는 아직 초반이었지만 마산함은 이미 거의 벌거벗었다. 전투정보실이 피탄당할 때는 전대장도 전사했다. 그 사이 시라네는 여유를 갖고 아직 멀쩡한 마산함의 무장과 센서를 하나씩 파괴해 나갔다.

“포별 조종으로 전환해!”

함장이 수동조작을 지시하자 작동수가 뛰어가 30mm 함포에 올라탔다. 그러나 30mm 작동수 서필원 하사는 탑승하자마자 함내 전화기로 함교에 보고했다.

“구동 동력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뭐? 내가 가겠다. 몇 명 더 데려와! 부장, 함교를 맡아라.”

한국 해군의 광개토대왕함(3800t급)과 일본의 신예 이지스함 아타고(7500t급).

정상용 중령이 함포 앞문을 열고 직접 포 조종실에 탑승했다. 정상용은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몇 가지 스위치를 점검한 다음 회로차단기를 모두 끄고 스위치를 포별 조종으로 놓았다. 그리고 발 격발대를 밟아 무장 스위치를 켰다.

“서필원, 너는 크랭크 돌려!”

작동수 서필원 하사와 다른 수병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크랭크를 돌렸다. 그 사이 시라네로부터 포탄 몇 발이 더 날아왔다. 강력한 127mm 함포탄이 함교 주위에 작렬했다. 크랭크를 돌리던 수병 하나가 폭풍에 휩쓸려 주갑판으로 떨어졌지만 다행히 중상은 아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시라네의 함교구조물 상부에서 섬광이 연속 피어났다.

“오! 익산함 파이팅!”

같은 12전대 익산함이 시라네를 공격하자 그때서야 시라네는 마산함을 놓아주었다. 안동함은 신형 호위함 19DD에 초반 기습을 당한 후 마산함과 마찬가지로 수세에 몰렸다. 익산함 왼쪽의 11전대도 일본 14호위대를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다. 선제공격을 당한 효과가 너무 커서 1함대는 단 몇 분 만에 처참한 지경에 빠졌다.

마산함에서는 익산함이 시간을 벌어준 덕택에 30mm 함포를 시라네를 향해 대충이나마 조준할 수 있었다. 정상용 중령이 기관포탄에 분노를 가득 담아 발포했다.

뚜두둥! 두두둥!

조종실 좌우에 위치한 포신에서 기관포탄이 쏟아져 나갔다. 시라네 함교에 작은 불꽃과 연기가 피어났다. 정상용 중령이 신나게 쏘는데 덜컥 소리가 나며 함포가 작동을 멈췄다.

“뭐야? 급탄 불량이구만. 포장!”

“고치는 중입니다!”

함포 안에 비치된 함내 전화기로 물어보니 포장과 탄약수 등이 이미 급탄대를 고치는 중이라고 했다. 30mm 함포가 위치한 갑판 아래 급탄대 주변도 큰 피해를 보았다. 포술장이 함교에서 보고했다.

“함장님! 71포 사용이 가능합니다!”

“71포는 급탄대가 맞지 않았나? LIOD(광학조준장치)도 파괴됐고 광전자 통제 콘솔도 먹통인데 어떻게 조작해? TDS(전술자료처리장치)도 끊겼잖아.”

“다행히 TDS 하나는 단순 단락이라서 바로 연결했습니다. 사통관이 좌현 TDS에 올라가 사격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인양기가 부서져 재장전은 어렵지만 상비 탄약은 충분합니다.”

“좋았어! 서필원 하사는 안에 들어가서 손 좀 봐라. 수리되는 대로 쏴! 알았지?”

포 조종실에서 나온 정상용 중령이 함교로 뛰어갔다.

“잘됐구만, 그런데 왜 아직도 안 쏘는 거야?”

사격통제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비상시에 수동표적지시기 TDS로 함포를 조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본 호위함은 마산함에서 자동함포를 수동으로 조준해서 사격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시라네도 움직이고 마산함도 움직이고 바다는 춤을 췄다.

캉!

드디어 마산함에서 함수 함포가 발사됐다. 정상용 중령은 어제 출동한 이후 처음으로 웃었다. 그러나 포탄은 형편없이 빗나갔다. 함수 76mm 함포가 계속 단발로 발사됐으나 여간해서는 시라네에 맞지 않았다. 기껏해야 함교 우현에 맞은 두 발이 전부였다.

그 사이 익산함은 시라네의 127mm 함포탄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순식간에 익산함도 마산함과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71포, 31포, 32포 피탄, 함교와 전투정보실 피탄, 마스트 역시 피탄당했다.

익산함이 침로를 바꿔 함미 함포를 시라네에 조준했다. 마산함과 달리 익산함은 사통장비 일부가 아직 살아 있어 72포가 사격을 실시했다. 파도 때문에 명중률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시라네에 피해를 누적시켜 나갔다.

시라네의 127mm 유인함포 2문은 여전히 익산함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해상상태가 나빠 시라네의 유인함포로는 명중탄을 많이 내지는 못했다. 치열한 포격전이 이어지고, 자욱한 연기 사이로 시라네의 함수 함포 2문이 거의 동시에 발사됐다.

콰콰쾅!

“익산함이!”

   

시라네는 익산함의 함미 76mm 포를 노렸다. 그러나 정확도에 한계가 있는127mm 유인함포는 엉뚱하게도 익산함 72포의 갑판 아래에 연달아 명중했다. 127mm 포탄이 갑판과 상비탄약고 벽을 뚫고 들어가 76mm 함포 아래 급탄회전대에 명중해버렸다.

폭발 섬광에 뒤이어서 화염이 크게 솟구쳤다. 시커먼 연기가 동해바다 위로 솟아올랐다. 익산함은 함미 함포가 있던 부분에서 두 동강이 났고, 함미가 위로 솟구치더니 곧바로 가라앉았다. 72포 요원들과 기관병들이 한꺼번에 수장됐다.

그러나 익산함은 바로 침몰하지 않았다. 함미 3분의 1을 잃은 익산함은 북북서로 천천히 표류해갔다. 바닷물이 세차게 익산함 내부로 쏟아져 들어왔다. 승조원들은 함포전보다는 일단 배를 구하기 위해 바닷물을 상대로 싸워야 했다.

“쏴! 쏴! 빨리 쏴서 시라네를 죽여!”

정상용 중령이 안타깝게 소리질렀다. 사통관이 함수 함포를 다시 발사했지만 시라네의 진행방향 앞에 물기둥만 일으켰다. 방법이 없었다.

 

7. 함상전투

한국과 일본 함정들은 치열하게 싸웠다. 함수 주포가 파괴되고, 기관포가 박살 나고, 기관총 실탄이 떨어질 때까지 양국 승조원들은 처절하게 싸웠다. 급기야 승조원들이 소총을 들고 갑판에 나왔다. 21세기 미사일 시대에 한국과 일본 승조원들은 마치 임진왜란 때처럼 서로의 배를 향해 총질을 해댔다.

초반 총격전은 1함대에 유리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승조원 숫자가 많은 일본의 우세로 돌아섰다. 드디어 함정들이 접현하고, 불타는 한국 함정으로 일본 해자대원들이 뛰어들었다. 여기서부터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북한 선박을 조사하기 위해 함정마다 입입조사대(立入調査隊)라는 임검팀을 편성한 일본 측이 크게 유리했다. 조직력을 갖추고 함상전투에 대비한 훈련을 받았으며, 권총 등 함상전투에 어울리는 무장을 준비한 일본 해자대원들이 한국 해군을 밀어붙였다.

울산급과 포항급 함정 내부에서 처절한 싸움이 계속됐다. 권총과 기관단총을 쏘는 해자대에 맞서 한국 해군 승조원들은 손도끼, 지주, 몽둥이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맞서 싸웠다. 당연히 한국 승조원들의 피해가 급증했다.

2006년 10월 일본 요코하마 앞 해상에서 해상자위대의 P-3C 초계기가 잠수함 격침훈련을 하고 있다.

바로 이때 5전단 함정들이 독도에 도착했다. 5전단 함정들은 사세보에서 출항해 독도해역으로 향하던 7호위대 무라사메급 함정 세 척을 중간에서 만났다. 이들을 대공미사일을 대함공격으로 전용해 격파하느라 시간이 약간 더 걸렸다. 독도해역에서 함포전을 치른 해상자위대 함정들은 모든 무장을 사용할 수 없어 한국 해군 함정들에 모조리 나포돼버렸다. 이지스함 아타고와 묘코도 이때 나포됐다. 이지스함까지 모조리 함포전에 동원한 것은 분명 일본의 패착이었으나, 1함대보다 독도해역 집결시간이 늦은 3호위대군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각 오미나토에서 출항한 15호위대 함정 세 척도 독도 동쪽 100km까지 접근해왔다. 15호위대는 한국과 일본 함정들이 뒤섞인 독도해역을 향해 대함미사일 공격을 가할 수 없었다. 대공방어력을 상실한 일본 호위함에 더 큰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도망가는 15호위대 함정 세 척을 향해 5전단이 대함미사일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실 군사적인 판단에 따르자면 일본은 이쯤에서 백기를 들고 물러서는 것이 정상이다. 독도해역에서 함포전과 처절한 함상전투를 전개할 경우 포로로 잡힌 해상자위대원이 1000명 단위까지 늘어날 것이므로, 이들을 두고 다른 전투행위를 지속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15호위대 승조원들의 목숨도 경각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측면을 생각하자면,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이 다른 선택을 할 개연성은 있다. 총리 내각, 의회가 확전을 결의할 가능성이다. 한국보다 두 배나 많은 방위예산을 투입해온 정치인들은 국민의 비난이 두려울 수밖에 없고, 한국 해군보다 7배나 많은 예산을 쓰는 해상자위대도 승리에 목이 마를 것이다.

이 경우 확전을 결정한 일본 측이 취할 수 있는 군사적 조치는 대한해협 진격이다. 사세보의 2호위대군과 구레(吳)의 4호위대군, 요코스카(橫須賀)의 1호위대군에 총출동을 명령해 대한해협에 집결시키는 것이다. 한국 합동참모본부가 이에 대응하자면 3함대와 2함대를 동원하고, 독도해역에 갔던 5전단에 부산으로 귀환하라고 지시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전쟁은 이런 식으로 점점 확대돼 나갈 수 있다.

공군의 경우를 보자. 한국인들은 성능이 우수하고 숫자도 압도적인 일본 전투기들이 부산을 공격하거나 울산과 포항을 비롯해 남동임해공업단지를 폭격할까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일본 전투기들에는 장거리에서 지상목표를 공격할 수단이 없다. 전범국가인 일본은 공격무기 도입을 금지해 왔기 때문이다. 사거리 27km짜리 매버릭 미사일을 달고 있는 일본 F2 지원기들이 날아와봐야 한국 전투기와 방공부대의 미사일에 줄줄이 격추될 것이다. 대한해협 진격 결정과 함께 일본 전투기들이 부산에 접근한다 해도 한국 전투기들이 대응하면 대마도 남쪽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8. 대마도 점령

일본 1,2,4 호위대군의 총출동과 함께 대한해협에서는 전운이 피어났다. 한국 함대와 일본 함대는 대함미사일 사거리인 150km 바깥에서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일본이 30척 내외의 함정을 동원한 반면, 한국은 윤영하급 미사일고속함까지 총동원해 50척 가까이가 현장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지스 방공호위함이 일본에 네 척, 한국에 두 척 있고, 일본 측 신형 호위함인 19DD의 방공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방어력은 일본이 앞섰다. 한국과 일본 함대가 결전을 벌인다면 승패를 가늠하기 힘들었고 승부를 떠나 대공방어력이 취약한 한국 함대는 무조건 전멸한다고 봐야 했다.

양측이 동원한 이지스함은 사거리가 긴 SM2 함대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전투기는 인근 해역에 진입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함대공미사일로 무장한 전투기들이 대한해협에 진입할라치면 상대방이 요격용 전투기를 동원해 공격침로를 차단했다. 대함공격을 맡은 전투기나 지원기 주변에는 제공임무를 맡은 전투기 편대가 있으므로 공중전은 주로 전투기와 전투기끼리 이뤄졌다. 그 사이 양국 함대는 지루한 대치를 계속했다.

두다다다다!

거제도에서 이륙한 헬리콥터 수십대가 바다 위를 고속으로 비행했다. 파도에 스칠 정도로 낮게 저공비행하는 헬기들은 해병대원들을 가득 싣고 대마도로 향했다.

대마도 북쪽에는 레이더기지가 있다. 부산과 진해, 한국 해군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이 레이더기지의 존재는 한국 입장에서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마도를 통틀어 병력은 1개 중대에 불과하고 무장 수준이 낮은 대마경비대와 몇몇 분견대가 주둔할 뿐이다. 대함미사일이나 대공미사일 기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이런 대마도에 한국 해병 제1상륙사단은 1개 대대를 투입했다.

“그냥 시골 공항이군.”

대마도공항에 착륙한 헬기에서 내린 해병 대대장의 소감은 단순했다. 대마도는 산이 많고 평지가 극히 적다. 그래서 군사목표가 될 만한 곳도 적다. 상대마도와 접한 하대마도 북동쪽 쓰시마공항에 대대지휘소를 설치한 대대장에게 휘하 부대가 목표를 장악했다는 보고가 연이어 들어왔다.

북대마도인 가미아가타마치 북쪽 끝 섬에 항공자위대 레이더기지, 가미아가타마치 북서쪽과 쓰시마공항 북쪽에 해상자위대 분견대, 사스나(佐須奈)항의 북쓰시마 경찰서, 가미쓰시마마치의 히타카쓰(比田勝)항과 히타카쓰 해상보안서, 남대마도의 이즈하라(嚴源)항과 남쓰시마 경찰서, 이즈하라항 북쪽 육상자위대 쓰시마경비대, 이즈하라 남쪽 해상자위대 쓰시마 경비소. 이걸로 끝이었다. 인구 4만이 거주하는 손바닥만한 섬인데도 군사목표가 많은 편이었다.

각 기지나 주둔지에서 비상경계 중이던 자위대원들은 한국 헬기가 나타나자마자 항복하기 바빴다. 전투는 없었다. 저항해봐야 한국군이 증파될 것이 뻔했기에 자위대원들은 아예 저항을 포기했다. 자위대 주둔지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주민들의 주거지마다 해병대원들이 순찰을 돌았다. 일본 TV방송국의 생방송이 진행되자 한국 해병대원들은 일부러 발을 맞춰 걸어 점령군의 군홧발 소리를 강조했다. 한국 해병대의 기습으로 인해 일본 시민 4만1000여 명이 한국군 손에 떨어졌다.

 

9. 대한해협 해전

2호위대군 사령 다카야나기 요시히사 해장보는 고민이 많았다. 한국 해군함대와 대치하는 중인데도 총리는 먼저 쓰시마를 탈환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치인들은 4만여 명이나 되는 국민이 적국의 손에 들어간 상황을 참지 못했다. 다카야나기 해장보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나 바야흐로 대규모 해전이 벌어지기 직전인데 한국 해군을 밀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쓰시마에 접근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하겠나, 명령을 따를 밖에….”

다카야나기 해장보는 오오스미급 상륙함들을 중심에 두고 쓰시마로 접근했다. 특수전 훈련을 받은 특별경비대 3개 소대 60명을 중심으로 하는 지상병력이 오오스미에 탑승하고 있었다. 이들을 헬기로 강습시켜 쓰시마를 차근차근 탈환할 계획이었다. 호위대군 막료가 보고했다.

“사령! 한국 해군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조기경보기 E767에서 전해준 정보가 전술화면에 끊임없이 갱신됐다. 그 순간, 다카야나기 해장보는 한국이 대마도를 점령한 것은 해상자위대 함정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술책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때가 이미 늦었다. 독도해역에서 선제공격을 당한 것에 분풀이하듯 이번에는 한국 해군이 선제공격을 가했다. 레이더에 등장하는 대함미사일 숫자가 초당 10여 발씩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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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 반격하라!”

다카야나기 해장보가 휘하 2호위대군과 4호위대군, 1호위대군, 11호위대, 12호위대, 13호위대 함정들에 지시했다. 헬기호위함 휴우가(ひゅうが)와 오오스미급 상륙함을 제외한 전 함정이 SSM1B 대함미사일, 또는 하푼미사일을 발사했다. 한국 해군이 발사한 하푼과 해성 대함미사일이 시시각각 해자대 함정들에 접근하고 있었다.

“쓰시마에서 대함미사일 공격입니다!”

호위대군 지휘통제실에서 막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대한해협은 물동량이 많은데도 한국과 일본 함정들이 대치하느라 대한해협 서수도(西水道)를 전쟁해역으로 선포해 선박의 통항을 막지 못한 것이 실책이었다. 한국 해군은 전차상륙함 네 척을 총동원해 대함미사일 발사차량을 쓰시마로 실어 날랐다.

지대함미사일은 발사지휘차량, 레이더차량, 대함미사일 발사차량 2대, 미사일 운반차량 1대로 한 팀이 구성된다. 최소 다섯 팀이 해성 대함미사일과 하푼을 40발이나 퍼부었다. 이충무공급 구축함,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울산급 호위함은 물론 포항급 초계함과 윤영하급 유도탄고속함도 미사일을 8발씩이나 발사했다.

이것만 해도 일본의 계산을 훌쩍 넘어선 엄청난 숫자였다. 그런데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은 해성 대함미사일을 16발씩 발사하고, 여기에 더해 천룡 순항미사일 32발씩 추가로 발사했다. 400발에 가까운 대함미사일의 물결이 해상자위대 함정들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쇄도했다.

“방어력은 우리가 훨씬 우세하다.”

다카야나기 해장보는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러나 그도 자신은 없었다. 함재기부터 이지스 순양함과 이지스 구축함으로 겹겹이 방어막을 쌓은 미국 항모전단의 대공방어력은 대함미사일 200발 이하로 평가된다. 그러나 날아오는 미사일은 대함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합해 400발에 달했다. 게다가 그것으로도 끝이 아니었다. 부산으로 이동 배치된 대함미사일 발사차량들이 공격에 동참했다. 대구에서 날아온 F15K 전투기들도 하푼을 발사했다. 수평선이 온통 미사일로 새까맣게 뒤덮힐 지경이었다.

해전은 전자전으로 시작됐다. 레이더 고도계가 교란당한 미사일은 곧 추락하고 탐색기가 교란된 미사일은 전자전을 실시한 함정을 향해 직진했다. 주로 1980년대에 도입된 미제 하푼 대함미사일이 전자전에 취약해 많이 추락했다. 그러나 양국의 주력 대함미사일인 해룡과 SSM1B는 큰 타격을 받지 않고 순항고도에 접어들었다.

대함미사일이 상대방 함대에 접근하면서 앞부분의 탐색기를 가동시켰다. 그전에 양국 함대의 이지스함들은 장거리에서부터 대함미사일 요격을 실시했다. 미사일과 미사일이 만나자 붉은 불꽃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났다.

그러나 대함미사일은 너무 많았고, 이지스함이 구성한 방공망을 마구 뚫고 들어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개함방공능력을 갖춘 범용 호위함들도 대함미사일 요격전에 참가해 날아오는 미사일 숫자를 차근차근 줄여나갔다.

해성 대함미사일이 표적을 탐색한 다음 해면밀착비행에 들어갔다. 해성 대함미사일은 바다 표면을 배경 삼아 이지스함을 제외한 함정들의 요격임무를 곤란케 했다. 뱀처럼 꾸불꾸불 기어가듯 수시로 방향을 바꾸는 종말회피기동을 한 해성 대함미사일은 20mm 벌컨 팰렁스의 탄막을 뚫고 각자 목표에 돌입했다. 미사일에 피격당한 호위함들이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미끼로 발사된 천룡 미사일은 수많은 변침점이 설정되어 마치 대함미사일처럼 움직임으로써 일본 이지스함의 대공방어능력을 포화상태로 만들었다.

일본 함대는 외곽에 배치된 함정부터 하나하나 대함미사일에 피격되기 시작했다. 끝까지 싸우던 이지스함들도 결국은 피격됐고, 마지막에는 헬기호위함 휴우가와 오오스미급 상륙함들도 대함미사일 서너 발씩을 맞아 거친 현해탄에 침몰했다. 미사일 서너 발에 피격돼 전투력을 상실하고 표류하던 함정은 물론 침몰 중인 함정도 끊임없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방어력을 압도하는 과도한 대함미사일 공격을 받은 결과였다.

한국 해군도 마찬가지 과정을 밟았다. 대공방어력이 약한 울산급과 포항급 함정들부터 미사일의 비를 맞아 침몰해갔다. 상대적으로 대형인 일본 호위함들이 대함미사일 서너 발을 맞아야 침몰한 반면, 작은 한국 해군함정들은 한두 발에 침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함정보다 중요한 숙련된 승조원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한국 해군에서 이지스 구축함 두 척과 충무공이순신급 네 척, 광개토대왕급 한 척은 살아남았다. KD시리즈 함정들은 대공방어력이 우수한데다 RCS(레이더전파반사면적)이 작고 적외선을 적게 방출하는 디자인이 적용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KD시리즈보다 구형인 함정들에 일본의 대함미사일 공격이 집중됐다.

살아남은 전력은 일본 측의 잔존 수상함 세력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뒤늦게 일본 해상초계기들이 대함미사일로 무장하고 날아왔다. 그러나 한국 공군 전투기들과 이지스함들이 초계기들을 학살했다. 하늘에서는 한국과 일본 전투기들이 여전히 팽팽히 대치했으나,

김경진
1964년 전남 여수 출생
대표작 : ‘독도815’ ‘동해’ ‘남해’ 등 해전소설, ‘3차대전’ ‘데프콘’ 등 전면전 소설
바다는 완전히 한국 것이 되었다.

해전이 끝난 직후 한국은 규슈에 상륙하려는 제스처를 취했고, 일본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결국 미국이 개입해 중재에 나섰다. 한국 해병대가 대마도에서 퇴각하는 조건으로 일본은 막대한 배상금을 한국에 물어야 했다. 해상세력이 재건되는 날까지 일본 호위함과 순시선들은 독도에 감히 얼씬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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