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호흡

고(苦)에 대한 낙서

醉月 2008. 4. 6. 11:10
 

수련을 하다 보면 크고 작은 苦가 따른다.

물론 수련을 안 해도 고가 따른다. 그렇다면 고란 무엇일까?

 뻔한 것을 묻는 이유는 고가 꼭 고난과 제약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용히 고에 대해 사색해 보면 고의 형태는 묘한 것임을 알게 된다.

현실적으로 겪게 되는 고의 특징과 대처 방법에 대해 하나 하나 열거하며 살펴 보고자 한다.


 첫째, 모든 일이 최고치, 극대치가 강력한데 고는 그렇지 않다.

 

고는 전성기보다 초기 발생시가 강하고, 한번에 닥치는 고보다 약한 듯 부족하고

미완성적인 고가 더 강력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로, 뼈가 부러질 때보다 탈골되거나 금이 갔을 때가 더 고통이 심하다고 하며

또한 극심한 고통이 오려는 순간에는 고통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먼저 기절해 버리거나

공포심 때문에 고통을 실제로 못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를 맞을 대도 맞기 전에 겁나지,

막상 맞고 나면 순간적인 고통으로 끝나 버릴 뿐 아니라 안도의 한숨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몇 가지 예로써 고는 클수록 별 볼일 없음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둘째, 정고(精苦)< 기고(氣苦)< 신고(神苦) 순으로 고가 오고 또한 견디기 어렵다.

 

물질적, 경제적 고가 정신적인 고보다 견디기 쉽다.

정고(精苦)는 물질적인 대상만 있어 소위 몸으로 때우면 되지만,

기고(氣苦)부터는 고를 인식하는 주체가 두 명 이상으로 상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고는 정고(精苦)에서 기고(氣苦)로, 氣苦에서 신고(神苦)로 진행하기도 한다.

물질적인 돈을 빌리는 순간부터 언제 갚을까, 빚 독촉은 하지 않을까...

등등 물질적인 精苦로부터 정신적인 氣苦가 생기기 시작하면 점차 견디기 어려우므로 물질적인

고가 닥칠 때 고를 해결하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라 할 것이다.

수사도 초기수사가, 화재도 초기진화가 중요하듯이 초기 대처는 매사의 기본인 것이다.

 

 셋째, 고는 사람 차별을 한다.

 

똑같은 유형의 고일지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처신하는지에 따라 후유증이 다르므로

차별을 받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고를 받는 연습을 해야 한다.

똑같이 아프더라도 건강한 사람이 먼저 회복되므로 평소에 운동을 하는 등

몸 관리를 잘 하는 것이 고를 받는 연습이라 할 수 있다.

고의 연습 중 정기신 고의 종합적 대처 연습으로 괜찮은 것이 수련이고 수련 중 괜찮은 것이 행공임을 말하고 싶다.

고로 열 났을 때 행공은 할 수 있어도 본수련은 어렵다.

 

 넷째, 타인이 주는 고가 견디기 어렵다.

 

고는 대부분 스스로 만들기 때문에 대처를 잘하면 슬기롭게 넘길 수 있다.

그러나 남이 불시에 주는 고는 견디기 어렵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고를 받는다면 빠르게 자기 고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

자기 고로 만드는 방법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어려운 일을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면 된다.

실제로 자기에게 고를 줄 수 있는 상대는 가까운 사람이 대부분이므로,

약간의 의지만 가지면 자신의 일처럼 쉽게 고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고는 망각을 먹고 산다.

 

사람은 보통 고가 닥치면 피하려고 한다.

술을 먹고 괴로움을 달래며 잊어버리려고 하지만 더욱 기승을 부린다.

그것은 고가 망각을 먹고살기 때문이다. 실수를 기억하는 한 똑같은 고는 오지 않는다.

망각하기 때문에 고가 온다.

그러므로 고가 오면 억지로 망각하려고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면 저절로 사라진다.

수련 중에 발생하는 망각의 늪은 불필요한 고가 사라지고 있다고 여기면 된다.

 

 그러면 수련을 하면 고가 적어지거나 쉽게 해소될 수 있는 것인가?

 수련을 하면 고가 오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가끔 그런 의식을 갖는 수련자들을 보게 되는데 이는 수련을 수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초능력이나 신비주의의 수단으로,

개인이 잘 되려는 기복적인 대상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므로 수련을 하는 이유로 나에게 행운이 오리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수련의 보람은 보답을 바라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수련은 정상과 보람으로 진전하는데 반대급부를 바라는 욕심이 들어가는 순간 수련의 효과는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련을 하면 고가 늘어난다.

수련이라는 새로운 일이 생겨서 고가 따라서 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수련 자체가 고를 포용하고 고를 겪어가면서 배우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일월성법 이상의 법 수련에서 그러함을 깨달을 수가 있는데 이때는 자신의 고 이외에 일월성의 고,

천지 대자연의 고, 타인의 오욕칠정까지도 포용하여 수련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선인법 수련시에는 여러 사람의 감정을 당겨서 느껴보는 회수가

자신이 평생동안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수십 배 이상의 회수가 된다.

즉 수련을 하지 않으면 겪지 않거나 생기지 않을 감정상태를,

남의 감정까지 끌어다가 슬퍼하고 화를 내게 되는 등 남의 고까지 사서 겪는 결과가 법 수련인 셈이다.

그러므로 법 수련은 갈등과 고를 많이 느끼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법 수련단계의 수련자들은 자칭 수심기간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수련을 하게 되면 타인의 고를 내가 느낌으로서 일체감이 형성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생긴다.

더욱 성숙해진 자신을 느끼게 된다.

비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수심이 되면서 마음이 굳건해지고,

고를 이겨내는 힘은 커진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고의 강도를 적게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초등학생이 소유하고 있는 천 원과 어른의 천 원은 같은 액수의 돈이지만

소유주가 생각하는 가치는 초등학생의 돈이 훨씬 크듯이,

고에 의한 심리적인 느낌의 강도는 받아들이는 주체의 수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수련자는 고가 닥쳐도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는 이상과 현실의 갭이다.

꿈속에서는 되는 일이 현실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가 고라는 갭이 있기 때문이다.

수련으로 양신을 만들어서 이상의 세계로 가는 갭인 고를 뛰어 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현실과 이상은 동일하게 된다.

고가 다하면 즐거움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甘이 道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결국 인간이 고를 벗어나려면 무고무도(無苦無道) 통자무고(通者無苦)의 수련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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