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경남의 재발견_03 양산

醉月 2012. 8. 2. 06:44

볼거리에 담긴 양산의 역사와 문화

통도사·가야진사 등 곳곳 애틋한 전설 가득

'양산'이라는 말 뒤에 '통도사'가 따라붙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양산에는 통도사IC가 별도로 있다. 통도사로 안내하는 시내 곳곳 이정표도 불편함 없게 되어 있다.

이곳에서 통도사에 대한 각별함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통도사 산내 암자만 19개며, 말사는 밀양 표충사·밀양 만어사·마산 정법사 등 경남에만 60개가 넘는다. 양산은 도내 지자체 가운데 지정문화재가 151개(국가지정 43개·도지정 78개·문화재자료 30개)로 가장 많다. 이 가운데 통도사에서 관리하는 것이 81개며, 말사까지 포함하면 100개 가까이 된다.

이를 두고 '통도사 없었으면 너무 심심한 곳이었을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반대로 '통도사라는 대명사가 있었기에 그 외 것들은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실제 통도사 아닌 것에 눈 돌리면 두 가지 말 모두 수긍된다.

이곳 사람들은 지역 대표 인물로 신라 충신 박제상, 아동문학가 이원수를 거론한다. 그래도 그 흔적이 별스럽지 않다.

박제상(363~419)은 신라 눌지왕 때 충신이다. 상북면 소토리에는 생가·초상화·석비로 이뤄진 '박제상 유적 효충사(경상남도 기념물 제90호)'가 있다. 자동차가 겨우 들어갈 만한 마을 좁다란 길을 따라가면 너른 터에서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주변과 크게 조화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사당 문도 잠겨 있어 그 기운을 느낄 틈이 부족하다.

     

애국가보다 많이 불린다는 동요 '고향의 봄' 노랫말을 만든 이원수(1911~1981) 흔적은 북정동 생가터, 교동 춘추공원 노래비 정도다.

혹자는 "박제상은 울산에, 이원수는 창원에 빼앗겼다. 양산은 문화콘텐츠를 많이 잃은 곳"이라고 말한다. 박제상 후손들이 한때 사당을 지으려 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고, 박제상 부인 망부석은 울산 울주군에 들어섰다. 이원수를 놓고도 이야기를 담아보려는 노력이 오랜 시간 있었으나, '이원수' 하면 '창원'이 더 떠올려지는 분위기다.

가야진사(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7호)는 삼국시대~조선시대에 낙동강 뱃길을 순조롭게 해달라며 제사 지내던 곳이다.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이곳 제당 역시 개방해 놓지 않아 낙동강과 마주하는 것으로 눈을 달래야 한다.

임경대는 최치원 선생이 낙동강 물에 비친 산 모습을 보고 마치 거울 같다며 시를 읊었다는 곳이다. 원동면 화제리 어느 산길을 따라 들어가야 하는데, '그 위치가 정확하지는 않다'는 단서가 달려있다.

눈을 조금 더 넓혀 자연에 시선을 고정하면 이곳 양산이 다시 보인다. 산·강·천이 저마다 장면을 만들어 배내골·내원사계곡·천성산·천태산·홍룡폭포 같은 8경을 선사한다.

이 가운데 천성산(922m)은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온 스님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해 모두 성인이 되게 하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지율 스님' '도롱뇽' 같은 단어도 함께 떠오른다. 천성산터널은 2010년 10월 개통했고, 지금은 명칭이 원효터널로 바뀌었다. 천성산은 20여 개 습지를 품에 두고 있다. 원형 보존이 가장 잘 돼 있었다는 밀밭늪은 조금씩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그것이 천성산터널, 아니 원효터널과 연관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보는 이들에 따라서는 천성산 습지는 변화된 게 없다고도 한다. 도롱뇽과 그 알을 봤고 못 봤고 역시 중요한 것은 아닌 듯하다.

   

도심에서는 또 양산의 활력 넘치는 모습을 대하게 된다. 해가 지면 양산타워·양산천상 구름다리·영대교와 음악분수가 이곳을 매혹적인 빛의 도시로 만든다.

두 마리 백조가 마주하는 양산천상 구름다리는 단지 아름다운 형상만 뽐내지 않는다. 양산이 신라와 가야 경계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사연을 담고 있다. 양산천은 신라·가야를 가르는 강이었는데, 신라 청년이 가야 여인을 만나려 천을 헤엄치다 불어난 물에 익사했다는 얘기가 남아있다. 이를 담아 누구나 천을 쉽게 건너도록 다리를 놓았고, 신라 청년·가야 여인은 다리 위 백조가 되어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다.

   

양산은 한편으로는 급속한 도시화·산업화에 매몰돼 있다 '환경'에 눈 돌린 흔적을 두고 있다. 160m 높이 양산타워는 자원회수시설(재활용되지 않는 가연성 폐기물 소각처리시설) 굴뚝을 활용해 만들었고, 수질정화공원은 하수종말처리장 터를 활용했다. 어곡동에는 도내 최초 상업용 풍력발전기 2기를 가동하고 있다. 높이가 70m며 지름 77m인 회전자가 바람을 타고 돌아가고 있다.

양산에는 '경남·부산·울산 노동자 성지'도 있다. 하북면 답곡리 솥발공원묘역으로 노동운동의 아픈 역사가 잠들어 있다. 부산 구덕고에 몸담으며 전교조 합법화 투쟁 중 위암으로 숨을 거둔 고 신용길 선생이 1991년 이곳에 묻혔다. 이를 시작으로 경남·부산·울산에서 노동운동하다 명을 달리한 노동자 한 명 한 명 잠들면서, 2006년 지역 민중단체가 '영남권 열사묘역'으로 만들었다. 2007년 열린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노동자통일대회'에서 북측대표단이 보슬비 속에 이곳을 찾아 배달호 열사 등 민주노동열사 8기에 참배하기도 했다.

 

양산 가면 놓치지 않고 둘러봐야 할 곳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 국보 제290호로 통도사 여러 건물 가운데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대웅전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석가모니 진리사리를 모신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있기 때문이다. '계단'이란 계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라는 의미다. 금강계단 가운데 종 모양 석조물에 사리를 보관하고 있다. 위치: 하북면 지산리 583

◎호계리 마애불·석굴암 = 조선 중기 마애불로 자연석 바위에 높이 2m 20cm 규모로 새겨져 있다. 바위 밑에는 석굴암(경남도 문화재 제96호) 굴법당이 있는데, 그 안에 약수가 흐른다. 가는 길이 가파르지만, 저속 기어를 사용하면 차량이 힘겹게 오를 수 있다. 위치: 호계동 404

◎홍룡폭포 = 천성산 중턱에 상층 23m·중층 10m·하층 8m인 3단 구조로 되어 있다. 바로 옆 관음전 앞에 서 있으면 물줄기 바람과 경쾌한 소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위치: 상북면 대석리 1

◎오봉산 임경대 = 1022호 지방도 아래 산길 따라 4~5분가량 들어가면 낙동강·산·들이 펼치는 장관과 마주하게 된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강물에 비친 산 모습이 거울 같다하여 시를 읊었다는 곳이다. 위치: 원동면 화제리 산72-4 일대

       

통도사 금강계단.  

◎신전리이팝나무 = 천연기념물 제234호로 이름에 대한 사연은 두 가지다. 꽃이 필 때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여 이밥, 다시 말해 쌀밥과 같다 하여 붙여졌다는 얘기가 있다. 또한, 여름 시작인 입하에 꽃이 펴 입하목이라 하다 이팝나무로 불렀다고도 한다. 한 나무지만 밑동이 둘로 갈라져 두 그루처럼 보이며 정확한 나이는 밝혀지지 않았다. 위치: 상북면 신전리 95

◎북정리고분군 = 20여 고분이 있으며, 신라 김유신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 묘로 추정되는 부부총이 있다. 이곳에서는 금조족 등 유물 1700여 점이 나와 중요 역사 유적지로 평가되고 있다. 위치: 북정동 697

◎천성산 = 해발 922m로 빼어난 경치에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렸다. 봄에는 진달래·철쭉, 가을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위치: 상북·하북면, 웅상 평산동·소주동

◎배내골 =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가지산 고봉들이 둘러싸며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계곡 옆으로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라 이천동(梨川洞), 우리 말로 배내골이라 불리게 됐다. 영남알프스라는 말을 의식한 듯 곳곳에 유럽풍 펜션이 자리하고 있다. 위치: 원동면 대리·선리

◎양산타워 = 자원회수시설 굴뚝에 건립한 타워. 높이 160m로 서울남산타워(236m)·대구우방타워(202m) 다음으로 높다. 베이커리 북카페(책 1200여 권)인 5층 전망대, 360도 회전하는 6층 전망대로 되어 있다. 입장료는 없다. 위치: 동면 석산리 양산물금택지개발지구 65B-1L

◎양산천상 구름다리 = 백조 두 마리가 마주보며 물위에 떠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총길이 257m로 발 아래 양산천이 보이는 투명재질 구간 및 출렁다리가 있어 잠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위치: 양산대로 849(양산종합운동장~춘추공원)

       

양산천상 구름다리.  

◎풍력단지 = 도내 최초 상업용 풍력발전단지로 2기가 2011년 10월 가동됐다. 연간 발전량 7884㎿, 1600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높이 70m로 직경 77m인 날개가 바람을 타고 돌아가는 모습이 웅장하게 다가온다. 위치: 어곡동 2091-3번지 일원

◎솥발산공원묘원 = 경남·부산·울산에서 노동운동하다 세상을 떠난 열사 30여 명이 잠들어 있는 노동운동 성지라 할 수 있다. 지난 2007년에는 남북노동자통일대회 북측대표단이 찾아 참배하기도 했다. 위치: 하북면 답곡리 산173

 

 

아직은 좀 외로운 랜드마크 양산타워

'양산 랜드마크' 하면 또 통도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통도사를 빼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양산타워'가 랜드마크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양산 외곽도로를 지날 때 우뚝 솟은 양산타워를 보면 '지금 양산을 지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양산시 동면 석산리 신도시 지구에 있는 양산타워는 2008년 1월 준공됐습니다. 자원회수시설 굴뚝을 전망타워로 만든 것인데요. 높이 160m로 서울 남산타워, 대구 우방타워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탑입니다. 2층으로 구성된 전망데크는 1층이 개방형 도서관, 2층이 전망대인데요. 2층 전망대는 양산시 홍보관으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이 있던 자리에는 예전에 레스토랑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도서관이고 안에 간단한 음료를 사먹을 수 있는 시설이 있습니다.

양산시를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선 개방형 도서관은 참 매력적인 시설이었습니다. 공간 구성도 쾌적했고 가족들이 부담 없이 들르기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규모를 고려하면 책이 좀 적은 듯했지만, 계속 책을 들여놓을 것이라고 하니 그 부분은 따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전망데크 1층에 있는 도서관입니다.  


       

전망데크 2층에 있는 양산시 홍보관입니다.


2층 전망대는 타워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갈 수도 있고, 도서관에서 내부 계단으로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창을 통해 양산시 전체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고 내부는 양산시 역사와 관광지 등을 안내한 홍보관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아기자기한 소품도 많았는데, 한 번씩 들러서 구경할 만 하다 싶었습니다.

양산타워 시설은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고 쾌적했습니다. 특히 따로 요금을 내지 않더라도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데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시민들에게 개방적인 이 공간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타워 주변에는 그럴듯한 시설이 없었는데요. 이는 양산타워에 꼭 가야할 사람이 아니라면 구태여 이곳에 올 이유가 없다는 말도 됩니다.

그렇다면, 양산타워가 반드시 늘 가고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공간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가까이 있으면 늘상 들르기는 좋지만, 양산타워만 갈 생각으로 이곳을 찾기에는 조금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주변에 다른 시설과 자연스럽게 연계가 되면 더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아직은 '외로운 랜드마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산의 명물 신전리 이팝나무의 비밀

양산 상북면 신전리에 있는 '이팝나무'를 찾아갔습니다. 지역을 돌다 보면 나무 한 그루가 명소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마다 두 가지 감정이 엇갈리는데요. 참 좋은 나무다 싶은 게 하나고, 나무 한 그루 보려고 동선을 조정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신전리 이팝나무는 참 재밌는 나무입니다. 언뜻 보면 분명 두 그루인 게 분명한 나무가 사실 한 몸뚱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이팝'이라는 이름도 재밌는데요. 여름이 시작될 시기인 입하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고 부르다가 '이팝나무'라고 부르게 됐다는 설 하나. 꽃이 필 때 나무 전체가 하얀꽃으로 뒤덮여 이밥, 즉 쌀밥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 하나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하얀꽃이 쌀밥 같아서 붙였다는 게 더 정겹기는 합니다. 그 꽃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만….

       

아무리 봐도 두 그루인 이 나무가 한 몸이랍니다.  
어쨌든 높이 12m, 둘레 4.15m에 이르는 나무와 만남은 그런대로 흐뭇했습니다. 이런 귀한 나무를 볼 때마다 오래 오래 제자리에서 튼튼하게 버텨주길 바랍니다. 물론 신전리 이팝나무를 또 보자고 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함께 다니면 뭐든지 얘깃거리가 되는 사람들과는 귀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자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이팝나무를 보면서 거슬렸던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팝나무를 등지고 도로 건너 보이는 산을 봤을 때인데요. 그곳은 골프장 건설이 한창이었습니다. 산이 그야말로 푹 파여서 흙만 보이는 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주변에 짙은 녹음과 견줘 그 황량함은 더했는데요. 골프장 건설이 이 지역에 얼마나 큰 득을 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만히 두어도 너무나 매력적인 산을 저런 식으로 건드는 것은 영 마뜩찮았습니다. 어여쁜 이팝나무를 등지고 구경하기에는 더욱 거슬리는 장면이었지요.

       

한쪽에 자그맣게 보이는 사람이 남석형 기자입니다. 나무 크기가 짐작되나요?

 

통도사 16만 대장경을 아시나요?

양산을 빛나게 하는 문화 유적은 누가 뭐래도 불보사찰 통도사입니다. 양산은 경남에서 등록 문화재가 가장 많은 곳인데요. 150여 개 문화유적 가운데 86점이 통도사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취재에서 통도사만큼 매력적인 곳이 바로 통도사 주변 암자였습니다. 통도사가 양산을 빛나게 한다면, 통도사를 빛나게 하는 것은 주변 19암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통도사에서 처음 찾은 암자가 '서운암'이었습니다. 서운암에 들어서면 길게 늘어선 장독을 볼 수 있는데요. 그 모습이 참 평화롭고 넉넉했습니다. 통도사는 큰 절답게 사찰음식도 나름 유명한데요. 이곳 절에서 나오는 유명한 장류는 대부분 서운암에서 제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길게 늘어선 장독 풍경이 평화롭고 넉넉합니다.  
장독대를 지나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면 16만 대장경을 보관한 장경각이 나옵니다. 대장경 하면 당연히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떠오르는데요. 목판인 팔만대장경과 달리 16만 대장경은 흙을 구운 도자기 판 위에 대장경을 새긴 것입니다. '16만'이라고 해서 '8만'보다 내용이 두 배는 될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똑같은 내용을 새긴 것이라고 합니다. 다만, 8만 대장경은 양면에 새겼고, 16만 대장경은 한 면에 새긴 차이입니다.

       

서운암에서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보이는 장경각입니다.
장경각은 건물 전체에 옻칠을 해 검은색을 띱니다. 덕분에 매우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보입니다. 건물 앞에 서면 완만하게 늘어선 영축산 자락이 넉넉한 눈맛을 제공합니다. 그날 비가 와서 분위기가 더욱 좋았습니다. 장경각 안에는 판을 보관한 장을 미로처럼 배치했는데 그 사이를 거니는 재미도 은근히 쏠쏠했습니다.

       

16만 대장경을 보관한 장경각 안입니다.
아! 서운암에서 장경각을 올라가는 길에 재밌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남석형 기자가 가는 길에 서 있는 거위를 보고 저에게 "오리입니까?"라고 물었는데, 마치 거위가 그 말을 들은 것처럼 지나가는 남석형 기자에게 맹렬한(?) 공격을 가했습니다. 남석형 기자는 깜짝 놀라 도망쳤고요. 남 기자에게만은 거위는 그냥 조류가 아니라 '맹금류'가 아닐지 싶습니다.

양산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뭡니까?

'경남의 재발견'을 떠나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꼭 묻는 게 있습니다. 이번 양산 취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양산 하면 뭐가 떠오릅니까?"

역시 통도사가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배내골이라는 답도 있었지만, 통도사가 압도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질문은 다시 이어집니다.

"양산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뭡니까?"

그런데 답이 여기서 막힙니다. 함양 가기 전에는 '흑돼지', 통영 가기 전에는 '다찌' '꿀빵' 같은 답이 나왔는데요. 몇 번 같은 질문을 해도 선뜻 답을 내놓는 사람이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양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들어야 할 답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막상 양산에서도 먹을거리 질문에 대한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양산을 제법 잘 안다는 사람조차도 양산 음식, 양산 음식문화에 대해서는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양산시청을 찾았습니다. 그래도 시청에서는 억지로 뭔가를 하나 만들어내지 않을까 했습니다.

양산시 관광과를 가니 이형군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형군 선생님은 양산이 지닌 문화적 자산에 대해 유명한 것은 물론 숨어있는 것까지 설명해줬습니다. 이 선생님은 처음에 취재 의도를 잘 몰라서 준비를 잘 못했다고 했지만, 취재팀이 던지는 질문 하나하나에 기대 이상으로 설명을 해줬습니다. 덕분에 양산은 통도사만 있는 도시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이형군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음식이었습니다. 양산을 대표하는 음식에 대해 묻자 이형군 선생님이 답을 망설였습니다. '원동 매실', '원동 딸기' 정도를 처음에 말씀하셨지만 이 마저도 지금은 그렇게 내세울만한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딱히 양산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는 게 없는 것 같다는 말에는 상당한 아쉬움이 묻어났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이형군 선생님 입에서 '웅어회'라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웅어회? 취재팀에게는 상당히 낯선 이름이었습니다.

"웅어회가 양산에서 유명합니까?"

"낙동강 하구둑 생긴 뒤로 웅어가 잡히지는 않지만, 옛날에는 이맘 때 꼭 웅어회를 먹는다고 했어요. 남편도 즐겨 먹었는데요. 지금도 물금에 가면 웅어회 하는 식당이 있을 겁니다."

그날 저녁 목표는 그렇게 정해졌습니다. 그래도 웅어회 취재에 대해서는 약간 미심쩍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양산시지(梁山市誌)를 구하고자 이 선생님과 함께 양산문화원으로 갔습니다.

       

정연주 양산문화원장입니다.
양산문화원에서는 마침 정연주 문화원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원장님은 갑자기 들이닥친 취재진을 반기며 양산시지(梁山市誌)를 구해주시면서 차를 한 잔 권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양산을 대표할 만한 음식을 물었지요. 허허 웃으시던 원장님이 또 웅어회를 말합니다.

"먹을 것 자랑할 만한 것이 별로 없지만, 옛날에 물금에서 이맘 때 웅어회를 먹었지요. 그리고 호포 쪽에는 민물 매운탕을 많이 하고요."

웅어회와 매운탕. 그래도 양산 음식이라고 내세울만한 것은 이 두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산 먹을거리 취재 시작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양산의 또 다른 면을 보게 한 배내골

양산하면 떠오르는 게 뭐냐고 주위에 물으면 대부분 '통도사'를 언급했습니다. 그보다는 덜하지만 '배내골'을 언급하는 이도 적지 않았습니다.

'경남의 재발견'을 위해 저희가 양산에 머무른 시간은 4일이었습니다. 공단이 즐비한 도시적인 모습, 관리 측면에서 아쉬운 유적지가 반복되자 조금 지치는 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3일째 오후 만나게 된 배내골은 저희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좀 더 눈을 사로잡는 산새, 그리고 맑은 공기와 계곡 물소리는 양산을 또 달리 보게 했습니다. 이러한 면을 미처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하기까지 했습니다.

'배내골'은 맑은 내 옆으로 야생 배나무가 많이 자라 그리 이름 지어졌다 합니다. 가지산 고봉이 둘러싸고 있으며 봄에는 고로쇠 수액도 채취할 수 있어 이를 위한 발걸음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전 지역이 상수도보호구역으로 돼 있어 물놀이·취사 같은 것은 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펜션.  

문득 잊고 있었던 '영남의 알프스'라는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지나치게 의식해서인지 여기저기 들어선 유럽풍 펜션은 오히려 눈의 즐거움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래도 좀 비싼 돈을 치르고 하룻밤 묵어가면 각자 기억 속에는 오래 남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배내골에서 하룻밤을 보내야했던 저희는 그래도 배내골과 좀 더 어울리겠다 싶은 한옥 민박집을 잡았습니다. 방을 잡고 창을 여니 물소리가 시원히 들렸습니다. 민박집에서 내놓은 백숙까지 더하며 일은 잠시 잊고 그 분위기를 즐겼습니다.

'경남의 재발견' 취재팀 3명 모두 남자인데, 각자 다른 누군가와 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습니다. 

       

시원한 물소리는 귀를 타고 온 몸을 차갑게 한다. /박민국 기자

 

 


 

양산에 가면 맛봐야 할 음식

◎민물매운탕

△호포옛날할매집 = 메기·붕어매운탕 소 2만 원·중 3만 원·대 4만 원, 빠가사리매운탕 소 2만 6000원·중 3만 9000원·대 5만 1000원, 참게+메기매운탕 소 3만 원·중 4만 4000원·대 5만 7000원, 붕어찜 소 2만 8000원·중 4만 1000원·대 5만 3000원/양산시 동면 가산리 1091-16/055-384-3357

△왕개미집 = 메기매운탕 소 1만 9000원·중 2만 8000원·대 3만 6000원, 민물장어 1인분 2만 5000원/양산시 동면 가산리 1121-4/055-384-2120

△포구나무집 = 메기매운탕 소 1만 8000원·중 2만 7000원·대 3만 7000원, 참빠가사리 매운탕 소 2만 7000원·중 3만 7000원·대 4만 7000원, 참게매운탕 소 4만 원·중 5만 원·대 6만 원, 참쏘가리매운탕 소 6만 원·중 9만 원·대 11만 원/양산시 동면 가산리 1049/055-369-9194

        호포매운탕  

◎웅어회(3월 중순~6월)

△물금시장횟집 = 웅어회 소 3만 원·중 4만 원·대 5만 원, 향어회(국산) 소 3만 4000원·중 5만 1000원·대 6만 8000원, 모둠회 대 3만 5000원, 웅어회덮밥 7000원, 메기탕 소 2만 원·중 3만 원/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392-40/055-381-3848

◎산채비빔밥

△옛날 부산식당 = 산채비빔밥 6000원, 표고덮밥 7000원, 산채정식 8000원, 더덕백반 1만 원, 더덕구이 1만 원, 도토리묵 7000원, 버섯요리 7000원/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6-4/055-382-6426

△경기식당 = 산채비빔밥 6000원, 산채정식 7000원, 더덕정식 1만 원, 도토리묵 7000원, 산더덕구이 1만 3000원, 산나물무침 1만 3000원/양산시 하북면 순지리 537-2/055-382-7772

△산촌 = 산채비빔밥 7000원, 산채정식 1만 원, 연잎밥 정식 1만 3000원, 더덕구이 정식 1만 5000원, 메밀국수(여름) 5000원, 도토리묵 1만 원, 더덕구이 1만 원/통도사 매표소 바로 옆/055-382-1177

◎약선요리

△죽림산방 = 약선연밥정식 1만 5000원, 죽림상 2만 2000원, 장수상 3만 2000원, 용궁상 4만 5000원, 어린이영양세트 7000원, 약선오리떡갈비(4판) 2만 5000원, 왕대하·인삼튀김 3만 5000원, 약선모둠회 소 3만 원/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393/055-374-3392

        죽림산방  

△옥전산방 = 산야초정식 1인 기본상 1만 3000원, 오리 한 접시 1만 원/양산시 하북면 백록리 565/055-383-0235

◎현지인 추천 식당

△우정식당(민물매운탕·촌된장찌개 전문) = (1인 기준) 촌된장찌개 6000원, 메기매운탕·피라미매운탕·피라미조림 1만 원, 빠가사리조림·빠가사리매운탕·중태기매운탕·중태기조림 1만 2000원, 피라미튀김 1만 원, 은어튀김 2만 원/양산시 상북면 석계리 22-7/055-375-6738

△울렁도 모밀국수 = 모밀국수 1판 4000원, 사누끼우동(가을·겨울) 5000원/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11/055-381-1229

        울렁도 모밀국수  

△태평양분식 = 칼국수 소 3000원·대 3500원, 비빔칼국수 3500원, 보리밥 3500원, 선지국밥·쇠고기국밥 4000원/양산시 중부동 423-5 남부시장 내/055-382-0199

△양산기사식당 = 정식·두부찌개·손두부 6000원, 메기매운탕·은어회·은어구이 중 2만 원·대 3만 원/양산시 원동면 원동리 원동읍버스정류장 앞/055-382-5036

◎통도사 공양

조공 오전 6시·오공 오전 11시 30분·약석 오후 5시부터 1시간

 

 

먹을거리에 담긴 양산의 역사와 문화 낙동강 따라 늦봄 진미 '웅어'...녀석 성질도 급하다

양산을 잘 안다 하는 여럿에게 "이 지역 대표 먹을거리가 뭐냐"고 물으니 반응이 다들 마땅찮다. 굳이 내세우자면 한두 가지 없을까마는, 외지 사람에게 시원스레 말할 만한 게 그다지 떠오르지 않는 듯하다.

실제 이 지역 음식문화가 그리 유난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전해지던 향토음식·특산물 가운데 사라진 것들이 제법 있고, 즐겨 먹는 것 가운데도 주재료를 외지에서 들여오기도 한다.

그 까닭을 지리적·사회적 환경과 연결해 보면 몇 가지 들 수 있는 게 있다.

그곳만의 독특한 음식문화가 발달하려면 지형적으로 폐쇄된, 유배지 같은 곳이 오히려 더 득이 되는 편이다.

이에 비춰 보면 양산은 천성산·천태산·토곡산 같은 높은 산이 있기는 하지만, 바깥과 단절하는 역할까지는 아니다. 양산은 서북쪽으로 밀양, 서남쪽으로 김해, 동북쪽으로 울주, 동남쪽으로 부산에 안겨 있다. 바깥보다는 오히려 양산 내 남북으로 정족산맥이 형성돼 있어 동북쪽 웅상지역은 부산·울산에 가까운 이질적 문화를 안고 있다.

양산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고집할 지형적 구조는 이래저래 아닌 듯하다.

여기에다 양산 주변부가 부산 등 인근 지역으로 넘어갔다 돌아왔다를 여러 번 경험하는 울타리 변화가 많았다. 특히 1970년대 이후부터는 부산 팽창을 흡수하는 역할을 안았다. 주머니 사정이 좀 넉넉한 사람들은 부산으로 넘어가 먹을거리를 즐기는 것에 마음 두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렇다고 향토음식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여기서는 사회적 환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급속한 산업화·4대강 사업 같은 것들이다.

       

 

젓가락 듬뿍 

     

초장에 슥슥 한입에 꿀꺽  

양산은 낙동강을 품은 덕에 민물고기를 쉽게 접하며 음식에 활용했다. 이 가운데 무채에 민물 치어를 통째로 넣어 고추장과 섞어 먹는 회가 유명했다고 전해지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금 웅어회는' 그 명맥을 잇고 있기는 하다. 웅어는 멸칫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인데, 4~6월 산란을 위해 하천을 찾는다. 성질이 급해 잡히면 바로 죽어버려 냉동이 필요한 놈이다. 한철이라는 귀한 음식이다 보니 조선시대에는 진상에도 올랐다 한다. 이곳 어른들은 보리 익을 무렵이면 웅어회를 늘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1987년 낙동강 하굿둑이 만들어지면서 이곳에서 웅어를 찾아보기는 어렵게 됐다. 그래도 여전히 물금읍 몇몇 횟집에서는 웅어회를 내놓는다. 섬진강 변 하동이나 목포 같은 곳에서 들여온 것들이다.

'민물매운탕'은 호포지역 중심이다. 붕어·메기·빠가사리·참게·쏘가리 민물매운탕을 다루는 예닐곱 식당이 호포지역에 형성돼 있다. 하지만 수입 메기 같은 것도 종종 눈에 들어온다.

특산물은 좀 더 전국적인 명성을 안고 있었다. 매실·딸기·수박·당근·감자·달걀·임나물·산나물 같은 것들이다.

양산은 인근 공항·항구까지 30분 거리에 있어 물류비용을 아낄 수 있는 산업 입지 조건이다. 그러다보니 1978년 양산지방산업단지를 비롯해 웅상농공단지·어곡지방산업단지·산막일반산업단지, 소주공업지구·북정공업지구가 줄줄이 들어섰다. 공장이 들어서던 초기에는 난개발 형태를 보였는데, 이런 속에서 임산물·산나물 생산은 급속도로 줄었다.

원동면은 딸기·수박 재배지로 유명했다. 원동면 남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이를 따라 철길이 들어서 있다. 이 철길 너머 낙동강 쪽은 모래땅 아래에서 물이 자연스레 올라와 딸기·수박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4대강 사업 정비로 딸기·수박 농가는 사라졌다. 한해 수백억 원이 오갈 때 원동지역의 활력 넘치던 모습도 과거형이 됐다. 보상받은 이들 가운데는 외지인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를 두고 이곳 사람들은 '양산의 부가 유출됐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현지인 중 일부는 보상금으로 원동면 내 철길 안쪽 서룡리 같은 곳으로 옮겨 딸기·수박 하우스를 이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모래땅이 아닌 논땅이라서 그리 신통치는 않은 듯하다.

물금읍 증산리 낙동강 둔치에서 100여 농가가 정성 쏟던 '물금 모래 감자'도 옛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물 빠짐이 좋은 낙동강 변 땅 덕에 수분 적은 타박 밤 맛으로 이름을 높였지만, 4대강 사업 생태공원 조성으로 지난 2009년 명맥이 끊어졌다.

4대강 사업과 무관한 영포마을 중심 '원동 매실'은 양산 특산물로 계속 자리하고 있다. 온화한 기후·충분한 일조량 같은 재배특성에 들어맞아 100여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토종은 개량되지 않은 알이 작은 것으로 장아찌보다는 진액, 그리고 술 담그는 데 사용된다. 올해는 가뭄 탓에 씨알이 굵지 못하다. 파는 이들은 손님 올 때마다 "올해는 좀 비싸다"는 말부터 전제한다.

원동면과 접한 상북면은 달걀 생산지다. 오경농장을 비롯한 60여 농가가 도내 생산량 70%를 책임지고 있다.

다시 음식으로 돌아와 맺어보자면, 유명 사찰 주변이 그러하지만, 양산은 특히 통도사라는 삼보사찰이 있는 곳답게 산채비빔밥·약선요리·스님들 특식이기도 한 국수 같은 것에서는 이곳만의 정성과 특별함을 묻어 내기도 한다.

 

 

'그 맛을 아는 사람은 안다' 호포 민물매운탕

양산에서 낙동강을 끼고 있는 동면 가산리 호포지역은 일찍이 민물고기 매운탕으로 이름 알렸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호포 민물매운탕'이 한 단어로 묶였습니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6~7개 식당이 모여 있습니다. '33년 전통'이라는 곳도 있어 이 지역 민물매운탕 역사를 짐작하게 합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호포 민물매운탕에 대한 여러 기억을 전할 만큼 양산이 내세우는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30년 넘은 민물매운탕 전문점 '호포옛날할매집'.

낙동강 하굿둑이 만들어지고 중국산도 들어오면서 원산지 기준이 바뀐 지는 오래된 듯합니다. 이 지역에서 잡은 것인지 외지에서 들여온 것인지가 아니라, 국내산이냐 수입산이냐가 그 기준입니다.

어느 집은 차림표에 '국내산'이라고 강조해 놓았지만, 한쪽에는 또 '메기-수입산 양식'이라고 작게 표시해 놓기도 했습니다.         

걸쭉한 국물에는 수제비가 들어있다.

메뉴로는 붕어·메기·빠가사리·참게·쏘가리 탕 혹은 찜입니다.
일반적으로 식당 가격 단위는 3만 원·3만 5000원·4만 원 이런 식인데, 여기는 2만 8000원, 4만 1000원, 5만 3000원 같이 되어 있습니다. 시세에 맞게 가격도 세분화해 매긴 흔적입니다.

민물고기 맛을 아는 사람들은 양산 갈 일 있으면 여전히 호포지역을 들리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 싶습니다. 

       

잔 가시가 많지만 사이사이 살을 발라 먹는 재미가 있다. 

         

밑반찬은 단출하다.

 

양산 약선요리 전문점 '죽림산방'

양산에는 유명 사찰이 있는 곳답게 '약선요리 전문점'이 몇몇 있습니다. 약선요리는 '식재료에 있는 각종 독성을 빼고, 사람마다 다른 체질을 고려해 저마다 약이 되게 하는 음식' 정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찾은 곳은 상북면에 있는 '죽림산방'이라는 곳이었습니다. 1998년 문을 열었고, 약선 전통요리전문가 김민경(68) 선생이 대표로 있는 곳이었습니다.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마을 좁다란 골목을 들어가자 넓은 마당이 있는 옛 가옥이 나왔습니다. 

       

 

약선요리전문점 죽림산방 외관. 

 

          약선요리 전문점 죽림산방 내부.  

안으로 들어가 메뉴판을 봤는데요,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저 같은 사람이 자주 먹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인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용궁상 4만 5000원, 장수상 3만 5000원, 죽림상 2만 2000원, 약선 연밥 정식 1만 5000원이었습니다.

        약선요리 전문점 죽림산방 메뉴. /박민국 기자  

저희는 약선 연밥 정식을 시켰습니다.
하나씩 음식이 나왔는데,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아 여쭤보니 친절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나온 음식을 나열해 보면, 산야초효소무침·치자떡무침·약초손두부·해물버섯찜·올방개묵·연밥과 오리떡갈비·약선반찬·효모였습니다.

때마침 손님이 많지 않은 시간이라 저희는 조용히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과 정갈함이 묻어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온 약차는 위를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정원에서 나오니 주변 경치가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치자떡무침. 
         

산야초효소무침. 
   

      

약초 손두부

          

올방개묵. 

         

해물버섯찜. 

         

따끈한 연밥. 

         

연밥과 오리떡갈비, 약선반찬. 
 

바깥 풍경은 눈맛까지 즐겁게 한다

 

스님들이 반한 맛, 울렁도 모밀국수

"글쎄, 양산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는 게…."

이번 양산 취재에서 많은 영감을 준 김명관 양산시민신문 대표에게 '양산 대표 음식'을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이었습니다.

"맛집이라고 찾아가는 곳은 있지만, 그런 음식이 양산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없이 맛집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그때 들은 식당이 '울렁도 메밀국수'입니다. 통도사 근처라고 해서 마침 통도사 취재를 했을 때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통도사 주변을 몇 번이나 돌아도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길가에 있었는데 간판이 도드라지게 보이지 않아 취재팀이 지나쳤더군요.

바로 찾지 못해서 그렇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정갈하게 자리한 간판은 사실 '모범 간판'이었습니다. '맛있으면 알아서 찾아오지 뭐한다고 간판을 큼지막하게 달겠냐'고 하던 사장님 말씀과도 매우 어울리는 모습이었지요. 어쨌든 그렇게 모밀국수를 먹게 됐습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깔끔한 간판이 매력적입니다.

 

'울렁도'는 울릉도 사람들 발음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사장님은 다른 좋은 이름도 고민했지만, 그냥 울릉도에서 왔으니 울릉도라고 붙이는 게 좋겠다 싶었고, 막상 그렇게 붙이고 나니 괜찮았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 설명에 공감했습니다.

        남석형 기자 표정이 어울리지 않게 비장합니다.

메뉴는 모밀국수 하나였습니다. 겨울에는 우동도 판다고 했지만, 주력은 역시 모밀국수였습니다. 모밀국수는 사실 복잡한 음식이 아닙니다. 면 종류 음식이 다 그렇듯 면발과 육수, 이 두 가지면 그만입니다.

'울렁도 모밀국수'는 이 두 가지를 훌륭하게 만족했는데요. '깔끔한 육수와 부드럽고 쫄깃한 면발'이라는 매우 상투적인 표현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육수에 파, 무, 고추냉이를 취향 대로 섞으면 됩니다.
사장님은 가끔 큰절에 출장도 나간다고 합니다. 큰절 스님들이 여름, 겨울에 공부를 마치면 마지막 날 국수를 먹는데 그때 울렁도 모밀국수 사장님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작정 가게를 찾으면 문이 닫혀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모밀국수만큼 깔끔한 주방과 가게 실내장식도 인상적이었는데요. 만약 양산을 찾는다면 이 집만은 늘 들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수 2개를 얹은 한 쟁반이 4000원이었는데요. 취재팀은 두 쟁반씩 먹고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사장님께서 면을 조금 더 주시더군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한 쟁반에 4000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