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작가 백영옥의 발칙 선언) 재난방지 차원 ‘이혼학’ 강의 개설 어떠하오리까?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봤다. 아나운서들이 나와 생방송 중에 겪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토크 프로그램이었는데, 입사 3년차에서 입사한 지 21년이나 된 부장급 아나운서까지 다양한 연차의 남녀 아나운서가 함께 출연했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제의 발언을 듣게 됐다.
“우리 부장님은 결혼 안 하셨어요!”
꽤나 의외였다. 뉴스에서도 종종 보던 지긋한 나이의 아나운서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단 소리에 잠시 고개를 돌려 말을 꺼낸 젊은 남자 아나운서를 보았다. 그런데 이 아나운서, 난데없이 이렇게 덧붙이는 게 아닌가.
“‘돌싱’이거든요!”
맙소사. 순간 내 귀를 후볐다. 온 국민이 다 보는 방송에 나와서 직장 상사가 이혼남이란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대담함이라니. 나로 말하면 자유분방한 문단과, 자유롭기로만 따지면 ‘안드로메다급’이라 할 수 있는 패션계에 몸담은 터라 ‘돌싱’은 물론, 돌아왔다 다시 제 짝을 찾아간 사람도 꽤 많이 봤다.
하지만 그럼에도 개그맨이 아닌 아나운서가, 그것도 신입이 부장 바로 앞에서 ‘이분, 돌싱이세요~’라고 말하는 그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이혼’이 예전과는 다른 층위를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바야흐로 우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해성사를 하는 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다를 떨 듯 이혼을 말할 수 있는 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이혼이 별건가. 생각해보면 4년도 못 살고 헤어지는 커플은 의외로 많다. 이런 사실은 통계가 보여주고, 오랜만에 간 동창회가 증명하고, 휴대전화와 문자를 타고 넘어온 친구들의 메시지가 입증한다.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손예진이 “아, 그거? 한 번 했었어, 예전에”라고 이혼을 에둘러 말하기 이전부터, ‘한 번 갔다 온 분’이라는 말이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통용되곤 했다. 개그맨 김국진이 ‘돌싱’의 아이콘이 되고, 이경실이 재혼한 남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길 웃으며 하는 것도 그런 증거일 것이다.
오래전, 기가 막힐 정도로 연애를 잘하는 한 남자 선배에게 그 비결을 물어본 적이 있다. 선배의 경우, 회식하던 호프집 옆자리에 앉은 여성이나 이른 퇴근길 한가한 지하철 4호선에서 만난 여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거나 그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일이 거짓말처럼 일어났다. 그는 그리 잘생기지도, 그렇다고 키가 크지도 않았다. 돈이 많거나 좋은 차를 타고 다닌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주변엔 여자가 끊이지 않았는데, 나는 그 초유의 비법이 대체 무엇인지 늘 궁금했다. 나로선 연애를 비롯해 도무지 되는 게 하나도 없던 암울한 시절의 이야기다.
“간단해!”
선배는 커피를 마시며 꽤나 시큰둥한 얼굴로 바라보더니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남겼다. “여자를 만나려고 열 번쯤 시도하거든. 내가 성공하는 건 그중 한 번이나 두 번뿐이야. 넌 내가 퇴짜 맞는 걸 한 번도 못 본 거지. 좀 싱겁나?”
선배가 피식 웃었다. 싱겁기로 말하면 맹물보다 더 싱거운 소리였다. 사실 비법이랄 것도 없는 그의 성공은 무수한 실패를 담보로 한 것이었다. 문제는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성공의 초석으로 삼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사람의 인생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하면 된다’라는 말에 뒤따르는 ‘아님 말고!’가 가진 진정한 포기와 자기 인정의 미학을 어떻게 완성시키느냐 하는 것 말이다. 노력만 하면 모든 게 잘될 것이라 가르치는 이 시대의 긍정적 문화는 이로운 점도 많지만 심각한 부작용도 낳는다. 노력했는데 왜 안 되는 것이냐고 밀어붙이면 결국 실패의 원인은 ‘내’가 아니라 ‘남 탓’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혜롭게 헤어지는 법 고민할 시기
또 자신의 실패를 ‘노력 부족’이라 믿는 서글픈 영혼들은 어쩌랴. 타고난 재능 때문에, 운이 없어서, 애초에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어서 실패했을 수많은 가능성을 천천히 되씹어보는 여유를 그런 막가파식 믿음은 쓸어버린다.
하지만 씁쓸하게도 인생엔 정말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 결혼의 실패인 이혼 또한 그러한 것이리라. 이쯤 되면 ‘결혼학’이 아닌 ‘이혼학’도 개설해볼 만하다.
사실 잘 만나는 것보다, 잘 헤어지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혼학’이 있다면 꼭 들어보고 싶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궤변이냐고 할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이혼이란 말하자면 인생의 ‘실패’ 목록 중 가히 대표급이라 할 수 있다.
사업 실패, 취직 실패, 이직 실패, 친구와의 불화 등 인생의 여러 실패 중 인간의 스트레스 지수를 가장 높이,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다름 아닌 ‘이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사실상 ‘결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이혼의 의미나 그 결과에 대해 알려주는 강의도 없다. 이혼하고 싶어서 결혼하는 사람 없듯이 사람들은 대부분 이혼이나 사고를 겪는 끔찍한 일은 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알지 않는가. 내가 제안하는 ‘이혼학 강의’는 이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재난방지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나무로 만든 ‘관’에 누워보는 건, 죽기 위해서가 아닌 더 잘 살기 위한 몸부림이란 걸 너무나 잘 안다.
전신마비 장애를 겪은 대니얼 고틀립 박사가 쓴 ‘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한 남자가 집 앞 가로등 아래에서 열쇠를 찾고 있는 걸 이웃이 발견한다. 이웃은 그를 도와 함께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열쇠가 보이지 않자 이웃이 말한다.
“마지막으로 열쇠를 본 곳이 어딘가요?”
“현관문 근처요,”
이웃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런데 왜 여기 가로등까지 나와서 찾고 있는 거죠?” 남자는 대답한다.
“여기가 더 밝잖아요!”
고틀립 박사의 말처럼 우리는 어떤 답을 찾으려고 할 때, 무의식적으로 더 밝은 곳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더 어두운 곳으로 가야 할 때도 있다. 인생의 심연을,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선 열쇠를 잃어버린 그 지점으로 스스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때때로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잘 사는 것보단 잘 죽는 것을, 멋지게 만나는 것보다 지혜롭게 헤어지는 법을 천천히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2009 요지경 결혼시장 트렌드
앞서 이 세상을 살았던 현인(賢人)들은 결혼의 본질을 이렇게 간파했다.
“결혼은 새장과 같다. 밖에 있는 새들은 안으로 들어가보려 애쓰고, 안에 있는 새들은 밖에 나가보려고 애쓴다.”(몽테뉴)
“결혼은 겁쟁이라도 할 수 있는 유일한 모험이다.”(볼테르)
“서둘러 결혼하면 천천히 후회한다.”(영국 속담)
성급히 결정할수록 후회가 쌓인다는 인륜대사 결혼.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이 역사적 ‘빅 이벤트’의 트렌드가 유독 한국사회에서는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를 전하는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들은 결혼 상대자의 최고 ‘스펙’도 항목별로 부동(不動)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일부 집단을 제외하고는 매년 발 빠르게 새로운 선호도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A업체가 경영난에 빠졌다’ ‘B업종에 대한 미래 전망이 밝아졌다’는 등의 기사 한 줄만으로도 결혼상대 이상형 그래프가 코스피지수 움직이듯 광란의 춤을 추는 시대다. 결혼 적령기의 대한민국 젊은 남녀가 그만큼 ‘세상 이치’에 밝고 영악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2009년 대한민국의 결혼 트렌드는 지난해 글로벌 경기침체를 계기로 또 다른 변곡점을 맞았다. ‘안정지향적 직업’ ‘부동의 자산’ 등을 화두로 ‘평생직장을 담보할 수 없는 현대사회에서 오랫동안 풍족히 먹고살 만한 안정된 자산을 가진 사람’을 ‘1등 신랑감’ ‘1등 신붓감’으로 꼽는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 선우, 메리티스, 에스노블의 대표와 베테랑 커플매니저 30인에게서 광속으로 변해가는 최신 결혼 트렌드를 들어봤다.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이들의 상당수가 ‘조건’과 ‘스펙’에 큰 가중치를 두는 만큼 연애지상주의자들에게는 이들이 추구하는 결혼 트렌드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듯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솔직하게 내거는 ‘조건’에는 대한민국 현대사회의 트렌드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진화하는 사회적 가치관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 결혼시장의 ‘불편한 진실’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Father-in-law 남편보다 시아버지 ‘스펙’이 더 중요
몇 달 전, 한 결혼정보회사를 찾은 명문대 출신 치과의사 A씨는 커플매니저에게 시아버지의 직업과 경제력을 최우선 조건으로 내걸었다.
“남편 직업이나 학력은 어디 내놔서 창피하지 않을 정도면 돼요. 대신 시아버지가 주택 마련이나 자녀교육 등에 도움을 많이 주실 수 있으면 해요.”
A씨는 원하던 대로 ‘웬만한 수준’의 4년제 대학에, ‘웬만한 수준’의 중견기업에서 대리로 근무하는 B씨를 만나 결혼에 성공했다.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로 알려진 B씨의 부모는 학벌, 직업이 사회적 통념상 자신의 아들보다 훨씬 나은 상대와 결혼해 기쁘다며 만족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명문 여대 출신의 회계사 C씨 역시 지방대학을 졸업한 띠동갑 남성과 최근 결혼에 골인했다. C씨의 결혼 조건도 ‘결혼 상대자의 스펙보다 시아버지의 스펙이 훌륭할 것’. ‘알부자’로 소문난 C씨의 시부모는 ‘명문대 출신의 어린 전문직 며느리’를 봤다며 싱글벙글했다.
전문직 전문 결혼정보업체 메리티스의 권량 대표는 특히 고학력 여성들 사이에서 시아버지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위치를 꼼꼼히 따져 결혼하려는 ‘실속파’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집안, 학벌, 외모, 직업 등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남자들은 일찌감치 ‘품절남’이 됐거나 여자 쪽에 엄청난 혼수를 요구하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이미 간파한 것. 다른 조건 하나를 양보하는 대신 ‘달걀노른자’ 같은 실속은 챙기겠다는 심리가 엿보인다.
“여자들이 정말 똑똑해진 거죠. 요즘 1등 신랑감은 상위 10위권 수준의 4년제 대학 출신 + 100대 기업 정규직 직원 + 서울시내 주요 지역에 본인 명의의 30평형대 아파트 소유 + 유산 20억~30억’의 조합이라고 하거든요. 모든 걸 다 갖춘 남편에게 시집가봤자 기 펴고 살 수 없으니 한두 조건을 희생해도 확실한 길을 택하겠다는 뜻입니다.”(권 대표)
Trophy Husband ‘내조형 외조’ 해줄 ‘예쁜’ 남편 찾아요
‘주간동아’가 입수한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객관적 배우자 지수 구성’ 자료에 따르면 결혼 상대자를 평가하는 세 가지 큰 기준은 사회경제지수(직업·학력 등), 신체매력지수(인상·체형), 가정환경지수(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등)다. 이 세 기준에 각기 매겨진 가중치와 회원의 점수를 곱한 뒤 이를 합산한 것이 객관적 배우자 지수가 된다.
눈여겨볼 부분은 남녀별로 기준별 가중치가 달라진다는 대목. 가중치의 총점을 1점으로 봤을 때 여성의 신체매력지수는 0.495로 사회경제지수(0.278)나 가정환경지수(0.227)보다 훨씬 높고, 반대로 남성의 신체매력지수는 0.243으로 사회경제지수(0.521)보다 훨씬 낮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 특히 전문직이나 이에 준하는 직업을 가진 ‘똑똑한’ 여성들 가운데 남성의 외모라는 ‘옵션’을 강조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 커플매니저들의 공통된 귀띔.
듀오 노블레스팀 김미정 커플매니저는 “여자 의사들 가운데 미남 선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전했다. 그는 “남자가 예쁜 여자를 선호하는 것처럼 여자에게도 잘생긴 남자에 끌리는 ‘본능’이 있는데, 과거에 비해 이를 더 적극적으로 표출하게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전문직 여성 가운데는 학교와 도서관만 오가느라 제대로 연애를 못해본 사람도 많죠. 그래서 결혼 상대를 연애 상대처럼 고르고 싶어 해요. ‘잘생긴 사람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조르는 회원들도 있죠.”(김 매니저)
아직까지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트로피 허즈번드(trophy husband)’를 원하는 여성도 종종 눈에 띈다. 성공한 남성이 선택한 젊고 예쁜 전업주부 아내를 일컫는 신조어 ‘트로피 와이프’에서 파생된 ‘트로피 허즈번드’는 성공한 아내를 위해 가사와 육아를 대신 책임지는 남편을 뜻한다. 듀오 노블레스팀 장현정 커플매니저는 “전적으로 살림을 맡지는 않더라도 가사를 적극 분담하고 일하는 아내를 지지해주는 잘생기고 상냥한 남편을 원하는 여성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선우 대전센터 김은정 커플매니저도 “사회활동 증가로 경제력을 갖춘 여성이 늘면서 남성의 경제력, 학벌에 매달리지 않고 오히려 외모나 나이(되도록 젊은 남성)를 따지는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혼정보업계에서는 바쁜 커리어우먼이 ‘내조형 외조’를 해줄 결혼 상대자를 찾는 현상을 ‘워크홀릭녀와 머슴남의 만남’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Minimize Risk 예술 전공자, 해외유학파 기피
몇 해 전만 해도 음악이나 미술을 전공한 부잣집 딸들은 전문직 남성의 1등 신붓감으로 주로 거론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예술 전공 여성들의 인기가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다. 남성 회원의 상당수가 의사인 메리티스는 회원가입 조건에 ‘3無’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첫 번째는 해외 전문직 출신, 두 번째는 해외 대학 학부 출신, 마지막이 예체능 출신이다.
영상의학과 전문의이기도 한 메리티스 권량 대표는 ‘불확실한 조건’을 가진 상대는 피한다는 일종의 ‘리스크 매니지먼트’ 차원에서 △해외 전문직의 경우 해외에서 취득한 자격증이 국내에서 통용되기 힘들거나, 국내에서 취업 또는 창업을 하더라도 학연으로 얽힌 국내 업계에서 ‘왕따’가 되기 쉽다 △해외 학부 출신이거나 해외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 중 상당수는 ‘도피성 유학’이어서 지적 능력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가입을 우회적으로 거절한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예술 전공자들은 왜 ‘3無’에 포함됐을까.
“과거 전문직 남성들이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예술 전공 여성을 찾았던 이유는 이들이 옷 입는 센스나 매너가 뛰어나다는 점 외에도 괜찮은 집안 배경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력 있는 집안인 데다 예쁘고 성격까지 좋다면 이미 비슷한 경제적 배경의 ‘이너 서클’ 안에서 소화됐겠죠. 이렇게 자연 흡수되고 남은 처자들 가운데 찾자니 뭔가가 부족한 상대일 가능성이 많고, 막상 결혼하고 보면 씀씀이가 남다르다는 얘기를 선배들에게서 많이 들었던 탓에 이들을 꺼리게 된 겁니다.”(권 대표)
선우 강남센터 조정연 커플매니저 역시 입사 초기인 6년 전만 해도 남다른 인기를 누리던 예술 전공 여성들에 대한 선호도가 급락해 남성 회원들을 통해 그 이유를 조사해봤다며 “대개 프리랜서로 일해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감수성이 예민한 만큼 성격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커플매니저는 “재테크니 자녀교육이니 엄마들의 능력이 중시되는 시대라서 그런지, 예술 전공자들은 이러한 능력을 발휘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선입견을 가진 남성도 많아 적잖이 놀랐다”고 했다.
Office Women “여의사도 싫어, 1등 신붓감은 대기업 사원!”
25~42세 남성 의사들이 가입하는 인터넷 사이트 ‘스카이닥터’를 통해 메리티스가 지난해 11월21일~12월20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남성 의사들이 선호하는 결혼 상대자 직업 1위는 대기업 직원이었다. 총 408명이 참여한 이 조사에서 대기업 직원에 외모까지 수려한 결혼 상대자를 원하는 응답자는 전체의 47%로 전문직 여성을 선호하는 비중 26%보다 높았다.
△본인의 능력이 다소 부족하나 집안이 윤택한 상대를 원하는 경우는 10% △본인의 능력은 다소 부족하나 수려한 외모를 갖춘 경우는 7%를 차지했다. 배우자의 사회적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남성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결과다. 대기업 직원이 전문직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는 이들의 지적, 사회적 능력과 외모가 어느 정도 검증됐다고 믿기 때문.
까다롭게 직원을 선발하는 대기업의 잣대를 통과할 정도면 웬만한 학벌에 호감을 주는 외모를 갖춘 것은 물론, 남편의 사회생활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회성까지 갖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조직문화를 경험해봤기에 인간관계와 불가피한 갈등상황에 익숙하고, 이를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능력까지 체득한 여성이라면 시댁과의 관계는 물론 결혼생활 속 크고 작은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깃들어 있다.
선우 강남센터 강나영 커플매니저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취업의 대안으로 결혼을 선택한 ‘취집족’이나 특별한 목적 없이 ‘가방끈’만 늘리는 여성을 기피하는 남성이 많다”고 전했다. 프리랜서나 학원강사, 교사처럼 직업은 있지만 동료 집단이 없거나 활동범위가 매우 제한적인 경우, 같은 이유로 기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대기업 직원에 비해 전문직을 덜 선호하는 것은 수입의 불안정성 때문이라고 권 대표는 해석했다. 그는 “심지어 여의사는 국공립병원에 들어가거나 대학병원 교수가 되지 않는 한 40대 중반에 일찌감치 정년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 의사가 적지 않다”며 “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브랜드가 되는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여성의 경우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잔존하는 사회구조상 오랫동안 안정된 수익을 낼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Double Income 맞벌이 동상이몽
맞벌이에 대한 남성들의 수요는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여성들도 결혼 후까지 커리어를 유지하는 것을 결혼의 제1조건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19년 전 결혼정보회사를 설립한 선우 이웅진 대표는 지난 19년간 가장 크게 변화한 결혼 트렌드로 맞벌이를 꼽았다.
“19년 전만 해도 대다수의 여성이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뒀고, 남성도 이를 요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남자 혼자 버는 수입으로 생활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남자 쪽에서 먼저 맞벌이를 요구하는 일이 많아졌죠. 가장으로 집안 경제를 모두 책임져야 했던 남자는 여성의 협력을 얻은 대신 권위를 잃었고, 여자는 평등을 얻은 대신 노동의 고통을 분담해야 된 셈입니다.”
커플매니저들은 그러나 최근 여성 가운데 오히려 결혼과 함께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고 전한다.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여성 회원 중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할 의지가 있던 사람 가운데서도 막상 결혼 상대자가 적극적으로 맞벌이를 원하거나, 남편의 연봉이 적어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생계형’이라면 이를 기피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듀오 김미정 커플매니저는 “반면 남성은 집안 살림만 하겠다고 선언한 아내가 자신에게 집착할까봐 또는 외모 등 자기관리에 소홀하면 매력이 떨어질까봐 등의 이유를 내세워 아내의 사회생활을 적극 찬성한다”고 말했다.
Dragon Man? 전문직 ‘개룡남’은 기피대상 1위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친 지난해 이후, 결혼시장에서 주가가 급하락한 대표적인 직업은 한의사와 변호사다. 한의대만 다녀도, 사법연수원에만 있어도 곧장 ‘1등 신랑감’으로 통했던 이들의 ‘봄날’이 사라진 셈. 집안은 어려워도 입신양명에 성공한 전문직 남성과 이들을 내조하며 ‘사모님’으로 살고 싶은 부잣집 딸의 조합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완벽한 커플로 여겨졌다.
“경기침체에 개업한 변호사와 한의사들이 큰 타격을 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런 직업의 ‘리스크’를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이죠. 요즘 젊은 여성들은 선배 세대들의 사례를 통해 이미 간접적인 학습효과로 무장한 경우가 많아요.”(선우 조정연 매니저)
듀오 장현정 매니저는 현재는 사법시험보다 행정고시 출신이 훨씬 더 ‘1등 신랑감’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검사, 판사로 임용되거나 10대 로펌에 입사하지 못하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시 출신과 달리, 행시 출신은 안정된 공무원 신분으로 연금까지 보장되기 때문. 장 매니저는 “의대나 법대 졸업 자체가 결혼의 성공을 보장하는 ‘보증수표’인 세상은 지났다”며 “요즘은 치과, 성형외과, 피부과, 이비인후과처럼 구체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전공인지, 또 판·검사 임관 가능성이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선우 이웅진 대표는 ‘개룡남(개천에서 용 된 남자)’ 사위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든 것 역시 ‘개룡남’ 기피 붐에 불을 지폈다고 진단했다. 돈은 많은데 학벌과 사회적 지위가 낮은,
1970년대 ‘졸부’들이 이후 아낌없는 투자로 자녀교육에 성공하면서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됐다는 것이다.
“자녀를 통해 이미 집안의 약점을 극복했으니, 사무실을 차려주는 등 거액을 투자하면서까지 사위를 모셔올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 겁니다.”
My House 집 한 채는 기본?
선우 조정연 매니저는 본인 소유의 집 한 채는 가지고 있어야 결혼상대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요즘 젊은 여성들의 심리에 격세지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5~6년 전만 해도 직업이 괜찮으면 자가 주택 보유 여부를 크게 따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집이 있는지부터 물어요. 결혼 적령기의 30대 초반 남성이 서울 시내에 집을 구입한다는 것은 자기 힘만으로 불가능한 일인데, 이것 또한 집안의 배경을 먼저 본다는 뜻이겠죠.”
에스노블 이윤희 대표는 “재력을 갖춘 상류층일수록 결혼 상대자의 재산 정도를 중시한다”고 덧붙였다. “요즘 강남 집값이 얼마나 비싸요. 월급만으로 몇 억을 모으기가 쉽지 않으니까 부모님 재산에 기대려고 하는 거죠.”(이 대표) 선우 이웅진 대표는 이를 핵가족화와 분가(分家) 현상이 빚은 사회 트렌드로 해석했다. 부모 형제와 함께 사는 대가족 체제에서는 시쳇말로 ‘수저 한 벌’만 더 놓으면 손쉽게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으나 분가가 확산되면서 따로 살 집 한 채가 필요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Re-born 날아라 ‘리본’족 … 죽지 않은 ‘돌싱’ 인기
이혼 경험이 있는 ‘돌싱(돌아온 싱글)’ 남성은 재혼 상대자로 이왕이면 초혼 여성을 선호하지 않을까. 결혼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아이가 없는 재혼의 경우, 능력만 있으면 원하는 상대는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초혼, 재혼 케이스를 모두 만나볼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생각하죠. 30대 후반의 나이에 결혼도, 제대로 된 연애도 한번 못해본 여자는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잠시 ‘갔다 왔더라’도 젊고 예쁘다면 ‘돌싱’을 훨씬 선호합니다.”(에스노블 이윤희 대표)
메리티스 권량 대표는 좀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재혼남들의 ‘돌싱’ 선호 현상을 설명했다. “처녀장가 들었다는 이유로 아내에, 또 처가에 저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게 싫은 거죠. 골드미스들이 나이가 들면서 ‘돌싱남이라도 한번 만나주지’라고 눈높이를 한 단계 낮추는데, 정작 남성들은 이런 상대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으니 또다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일어납니다.”
양가 어른만 모셔놓고 간단히 예식을 치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재혼식도 초혼 때와 비슷한 규모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만큼 재혼을 ‘특이하고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듀오웨드 고미란 실장은 “하객 수 정도만 조금씩 차이를 보일 뿐, 재혼식과 초혼식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트렌드”라고 전했다.
Gold Miss 골드미스 vs 골든 에이지 27세
혼기 꽉 찬 고소득 커리어우먼을 일컫는 ‘골드미스’의 확산은 이미 대세다. 궁합도 안 보고 결혼한다는 ‘4살 차’ 룰을 적용한다면 35세 노처녀는 39세 노총각과, 38세 노처녀는 42세 노총각과 결혼해야 마땅하나 남자들의 기준치는 세월이 흘러도 27~28세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문제다.
“남자들은 25세에는 연상녀의 매력에 빠져 27세 여성을, 27세 때는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동갑 여성을 좋아하고 30대, 심지어 40대에 접어들어서도 어린 27세 여성을 결혼 상대자로 선호해요. 연예인들이 띠동갑과 결혼했다는 소식이 종종 전해지면서 남성들에게 ‘어린 여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판타지를 심는 데 일조한 것도 있고요.”(듀오 장현정 매니저)
골드미스 가운데는 직업, 학벌, 외모 등 모든 ‘스펙’을 따져 결혼하려다 혼기를 놓친 경우도 적지 않다. 메리티스 권량 대표는 이를 결혼시장의 ‘룰’을 잊은 ‘한가한 생각’이라고 일축했다. 특히 골드미스들이 선호하는 전문직 수준의 남성들은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 진출과 맞물려 그 수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의대만 해도 현재 남녀 학생 비율이 6:4 정도로, 8:2 안팎이던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고 전했다.
“상대방 출신 학교까지 가리는 전문직 골드미스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가톨릭의대 출신 의사를 만날 확률을 계산해봅시다. 한 해 이 네 학교에서 배출되는 인력 약 530명, 그중 남자 60%, 그 가운데 태생적으로 전문직 여성을 꺼리는 인원 30%, 과 커플로 맺어져 일찌감치 ‘품절남’이 되는 경우 20% 등을 가려낸 뒤 확률상 나를 좋아할 만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추려내면 불과 10명 안팎이에요. 문제는 이들을 놓고 ‘젊은’ 여성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점이죠.”(권 대표)
대한민국 미혼남녀 설문조사 “내 고민에 귀 기울여줬으면…”
미혼남성은 ‘낭비벽과 과시욕이 있는 여성’을, 미혼여성은 ‘키스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드는 성적 무매력 남성’을 최악의 결혼 상대자로 꼽았다. 또 결혼의 가장 큰 목적으로 남녀 모두 ‘평생의 동반자 확보’를 선택했으며, ‘부부가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위로, 격려하는 모습’을 결혼 후 가장 이상적인 장면으로 꿈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초혼이지만 돌싱(돌아온 싱글, 즉 이혼남)과 결혼할 수 있다’고 답한 여성의 비율이 ‘불가능하다’고 답한 것보다 높아, 이혼과 재혼에 대해 달라진 사회 인식을 반영했다. ‘주간동아’가 결혼정보회사 듀오와 듀오 홈페이지(www.duo.co.kr)를 통해 9월9~ 20일 미혼남녀 463명(남성 211명, 여성 2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최악의 결혼 상대자’를 묻는 질문에 남성의 35.5%는 ‘외모가 빼어나도 낭비벽과 과시욕이 있는 여성’을, 23.2%는 ‘경제적·정서적 측면에서 배우자에게 심하게 의존할 것 같은 여성’을 꼽았다.
반면 여성의 경우 34.9%가 ‘조건이 완벽해도 키스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안 드는 성적 무매력 남성’을, 16.2%가 ‘이성 사이에서 인기가 지나치게 높은 사람’을 선택했다. 배우자 선택에서 남성은 경제관념과 책임감 등 좀더 이성적인 잣대로, 여성은 좀더 로맨틱하고 정서적인 잣대로 판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남성의 85.8%, 여성의 80.6%가 결혼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평생의 동반자 확보’를 꼽았다.
결혼 이후 가장 기대하는 장면으로 남성 61.6%와 여성 48%가 ‘배우자의 고민에 귀 기울여주고 서로 다독이며 위로, 격려하는 모습’을 꼽았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는 여성 21.8%가 ‘배우자의 번듯한 직장 또는 직업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을 꼽은 반면, 남성은 ‘배우자와 배낭여행을 떠나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모습’(17.5%)과 ‘배우자와의 만족스러운 잠자리 후 가볍게 키스를 나누는 모습’(13.3%) 등을 꼽았다. 이는 남성보다 여성이 ‘경제적 능력이 있는 배우자를 통해 결혼생활의 만족감을 얻고자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로, 앞서 배우자 선택에 관한 조사 결과와 대치된다는 것이 이채롭다.
평생의 동반자 확보가 목적
또한 ‘본인과 경제적 격차가 큰 상대와 결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여성의 85.3%가 ‘나보다 경제력이 높을 경우만 가능하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단지 1명(0.5%)만이 같은 답변을 해, 배우자의 경제력에 대한 남녀 간 시각차를 보여줬다. 맞벌이에 대해선 남녀 모두 긍정적인 시각이었지만 남성의 상당수는 ‘(배우자가) 가사, 육아에 지장이 없을 정도까지의 맞벌이’를 원한 반면(69.2%), 여성은 ‘조건 없이 맞벌이 찬성’의 비율이 더 높았다(47.2%).
하지만 여성의 20%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일함’을 택했고 5.6%는 ‘무조건 맞벌이가 싫다’고 밝혀, 어떤 이유에서든 ‘맞벌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비율도 여성이 남성보다 높았다. 남성의 경우 ‘(배우자가)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일함’이 1.9%, ‘무조건 맞벌이가 싫다’가 0.5%에 불과했다.
맞벌이 남녀 모두 긍정적 시각
또 ‘장인 장모·시부모가 갖췄으면 하는 점’에 대한 질문에 남성은 (장인 장모의) ‘교양과 매너’를 압도적으로 선택한 반면(66.8%), 여성은 (시부모의) ‘지나친 관심 자제!’(45.6%)와 ‘경제적 능력’(31.7%)을 많이 꼽았다. 한편 ‘초혼인 나, 돌싱과 결혼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서 ‘상대 배우자의 자녀만 없으면 가능하다’고 답한 여성의 비율(47.6%)이 ‘무조건 불가능’이라고 답한 비율(46.4%)보다 높아 눈길을 끌었다.
‘정말 사랑한다면 조건 없이 가능’이라고 답한 비율(6%)까지 합하면 ‘가능’이 ‘불가능’보다 꽤 높아, 이혼했어도 조건이 좋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재혼도 가능하다는 인식의 변화를 반영했다. 반면 남성은 ‘무조건 불가능’(46.9%)이 ‘정말 사랑한다면 조건 없이 가능’(37.9%)과 ‘상대 배우자 자녀 없으면 가능’(8%)을 합한 것보다 다소 높았다.
여성 응답자 3분의 1 “혼전동거 가능”
경제 불황이 거듭되면서 남성 배우자에 대한 여성의 경제적 기대치가 더욱 높아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또 ‘맞벌이 여부’를 묻는 질문에 경제 위기가 닥치기 시작한 2008년, 여성이 ‘맞벌이를 원한다’고 답변한 비율이 47.6%로 2001년 이래 가장 낮은 것도 흥미롭다.
‘혼전동거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남성의 65.9%가 ‘가능하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66.2%가 ‘불가능하다’고 대답해 남녀 간의 확실한 시각차를 보여줬다.
하지만 여성 응답자의 3분의 1(30.9%)은 ‘가능하다’고 대답한 점도 눈길을 끈다.
혼인신고 시기에 있어서도 남녀 간 차이가 있다.
남자는 ‘신혼여행 후 바로’를 가장 많이 꼽은 반면(50.3%), 여자는 ‘결혼 후 1년 이내에’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51.9%).
미혼남녀 4인, 결혼과 배우자감에 대한 ‘리얼 토크’
남자도 여자도 약아졌다. 남자는 맞벌이하면서 자식도 잘 챙기는 ‘슈퍼우먼’ 아내를 원하는 반면, 여자는 결혼생활을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휴지기’로 만들고 싶어한다. 남자는 아내가 ‘처녀’이길 바라는 대신 미리 속궁합을 맞춰 결혼 후 있을지도 모를 ‘분란’을 막고자 하고, 여자는 살짝 흠집 난 ‘중고 벤츠’(일명 ‘돌싱’)를 만나는 게 비리비리한 ‘신차’보다 나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남녀의 같고도 다른 꿈. 부동산업체 대표 채훈(남·37) 씨, 여행사 과장 김태연(여·34) 씨, 컴퓨터 프로그래머 이기남(남·31) 씨, 보험회사 직원 유진(여·28) 씨 등 20대 후반~30대 후반 미혼남녀 4명이 ‘속살’까지 까발리는 생생 방담을 펼쳤다.
채훈(이하 채) 다들 현모양처가 좋다고 말하지만, 저는 생활력 강하고 자기 생활이 확실한 여자가 좋아요. 오랫동안 혼자 살아서 그런지 제 생활을 간섭하고 억압하는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은데, 자기 주관이 뚜렷한 여자는 그런 성향이 덜할 것 같아요. 제가 아프거나 문제가 생겨 잠시 일을 못하게 되더라도 저만 바라보지 않고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김태연(이하 김) 저는 남자가 대놓고 생활력이나 경제력 강한 여자를 원한다고 말하는 걸 증오해요.(웃음) 요즘은 오히려 결혼 후 아내에게 더 의지하는 남편이 엄청 많더라고요. 그렇게 맞벌이를 원하면서도 가사분담이나 육아는 여자에게 맡기려고 하죠.
이기남(이하 이) 여자친구가 결혼 후 가사와 육아에만 전담하겠다고 하면 솔직히 아쉬울 것 같아요. 그만큼 수입이 줄어 생활이 각박해지는 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아내가 싫다는데 굳이 일하라고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그 대신 제가 벌어오는 돈에 대해 이런저런 잔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옆집 남자의 월급과 비교한다거나 하는 건 질색이죠.
유진(이하 유) 일을 평생 하고 싶고, 연애도 좋지만 결혼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아요. 아무리 남편이 잘해줘도 엄마만큼 해줄 것 같지는 않거든요. 20대 후반이라 다른 부모라면 슬슬 결혼 얘기를 할 법도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안 그러세요. 아빠는 대놓고 “우리 딸을 벌써 보내고 싶지 않다. 몇 년은 더 있다 시집가라’고 하시는 걸요. 또 신혼집이 지금 사는 집만큼 쾌적한 환경도 아닐 것 같고요.(웃음)
채 여자들은 이상한 게 자기는 결혼생활에서 돈이 무척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남자가 막상 돈 얘기를 꺼내면 싫어해요. 물론 남자도 여자의 ‘경제력’을 봐요. 하지만 남자들은 결혼할 시점에 여자에게 돈이 많으냐 하는 ‘경제력’보다, 결혼 후 얼마나 낭비 없이 살림하고 재테크를 잘하느냐 하는 ‘경제적 능력’을 더 중요하게 보죠.
“미래의 경제력” vs “지금의 경제력”
김 지금은 헤어졌지만 3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제 자산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이 상했죠. 저는 장녀인 데다 평소 알뜰한 편이고 15년간 직장생활을 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한 경제적 기대치가 있었던 거예요. 한번은 부동산사무소에서 상담을 하는데, 공인중개사 아주머니에게 대놓고 “우리 태연이가 모아놓은 돈이 많은데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실제로는 많지도 않았는데….(웃음) 물론 저는 집을 사거나 혼수를 마련하는 데 있어 남자가 돈을 더 많이 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함께 비용을 지불할 마음도 있고요. 하지만 남자가 대놓고 그 부분을 바라는 건 좋지 않다고 봐요. 물론 솔직히 말하면, 남자에게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제가 그 부분을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게 더 좋겠죠. 또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결혼생활을 남편에게 ‘묻어가며’ 인생 이모작을 도모하는 휴지기로 삼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유 사람들은 흔히 돈 많은 집안에 시집가는 것보다 남편 될 사람의 능력을 보라고 권하잖아요. 하지만 든든한 집안이 뒤에서 받쳐준다면 살아가는 게 훨씬 수월할 거예요. 부잣집에 시집간 친구를 보니 확실히 여유가 있더라고요.
이 저희 부모님은 늘 “‘못난 아가씨’를 데려와라. 그래야 네가 살기 편하다”고 말씀하세요. 저는 아직까지 여자를 선택할 때 경제력을 먼저 고려해본 적은 없어요. 성격이나 외모가 더 중요하죠. 외모가 중요하다고 해서 꼭 예뻐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제가 끌리는 외모면 돼요.
채 20대엔 외모를 많이 봤고, 솔직히 지금도 안 본다고 말하긴 힘들어요. 하지만 예전엔 ‘3초’ 만에 모든 걸 판단했다면, 지금은 외모가 제 스타일이 아니어도 조금씩 친해지면서 여자로 느껴질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 같아요.
유 저도 외모나 스타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평생 살 건데 그 부분이 늘 불만이라면 어떻게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꾸려갈 수 있겠어요?
채 저는 ‘필(feel)’만 통한다면 연상이나 ‘돌싱’도 괜찮아요. 20세도, 45세도 만날 수 있죠.
이 저는 여자가 저보다 나이가 많으면 일단 선을 긋는 것 같아요. 김태연 씨도 처음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저보다 나이가 많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누나’로 선을 그어버렸어요.(웃음)
김 저는 남자가 어려도 상관없는데….(웃음) 저보다 어리고 모아놓은 돈이 없어도 생활력 강하고 가족을 잘 챙기는 사람이면 배우자로 손색없다고 봐요. 즉, 남자에게 생활력과 경제력이 잠재돼 있어야겠죠. 반면 돌싱은 큰 문제가 없다고 봐요. 사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총각도 많은데 웬 돌싱?’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먹을수록 만날 수 있는 괜찮은 남자가 줄더라고요. 연상연하 커플이 많아진다고 해도, 연하들은 더 어린 여자에게 빠져 있고. 친구들끼리 ‘흠집 난 중고 벤츠가 비리비리한 신차보다 낫다’는 농담도 해요.
유 그래도 저는 ‘돌싱’은 싫을 것 같아요. 사별한 게 아니라 이혼한 돌싱이라면 더 꺼림칙해요. 분명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혼한 게 아닐까 싶거든요. 사소한 문제로 이혼하진 않을 것 같아요. 나이는 연상이든, 연하든 상관없어요. 단, 연하라면 관계를 리드할 수 있는 강한 남자가 좋겠어요. 물론 독선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은 싫지만, 배려한다는 이유로 모든 걸 여자한테 맞추려는 사람도 답답해요.
채 남자들이 여자와 데이트할 때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바로 그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하면 ‘독선적’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여자를 배려해 “하고 싶은 대로 데이트 코스를 짜라”고 하면 “그런 것도 알아서 못하냐”며 짜증을 내죠. 여자들이 정확히 의사표현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또 여자들은 불필요한 상상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소개팅한 자리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여자에게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아, 내 얼굴이 보기 싫어서 극장에 가자고 하는구나’라며 제멋대로 상상하곤 하죠. 자연스럽게 손을 잡거나 스킨십을 유도하기 위해 극장에 가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웃음)
김 스킨십이란 말이 나왔으니 연애와 결혼생활에서 성적(性的)인 부분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얘기해볼까요.
채 아주 중요하죠.(웃음) 저는 결혼 전에 성관계를 가져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솔직히 20대 초반에나 아내가 순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지금 나이에 아내가 처녀이길 바란다는 건 말도 안 돼요. 물론 제가 관계 갖기를 원해도 사랑하는 여자가 거절한다면 결혼까지 기다려야겠지만…. 그런데 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양자가 전혀 다르다면 결혼한 뒤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저는 성을 종족번식의 도구이면서 남녀관계를 돈독히 하는 사랑의 행위이자 유희로 봐요. 그런데 여자 쪽에서 단지 아기를 낳기 위한 행위로만 본다면 결혼 자체를 망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혼전 성관계는 물론, 혼전 동거도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맞지 않아 관계를 청산한다고 해도 결혼했을 때보다 심플할 수 있잖아요.
김 결혼 후 아내가 과거에 다른 남자와 동거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불쾌하지 않을까요?
채 음…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아내가 처녀가 아닌 것에 대해서도 똑같이 불쾌해야 한다고 봐요. 그런 부분을 굳이 알려고 할 필요도 없고,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 저 역시 아내가 처녀이길 바라진 않아요. 남자 여자 모두 똑같은 사람인데, 여자한테만 순결을 요구한다는 건 불공평하잖아요. 요즘엔 그런 남자 거의 없어요. 하지만 연애에서 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진 않아요. 결혼하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대화로 풀어가면서 서로 맞출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봐요.
김 저는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그런 요구를 거부한 적이 있어요. 깊은 성관계는 결혼할 사람과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안 그러면 미래의 배우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요. 너무 보수적인가요? 몸과 마음이 원해도 그런 신념으로 꾹 참았죠.(웃음) 한번은 남자친구가 스킨십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난 진도가 늦은 편이고, 결혼할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더니 “헉!”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30분쯤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유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불같은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내 모든 걸 다 줄 만한 사람을 못 만났어요. 앞으로 만날 내 사랑에게 미안할 것 같은 일은 하지 않으려고요.
채 이제 대화를 정리하면서 이성의 신체 부위 중 어느 부분을 가장 유심히 보는지 말해볼까요? 순전히 재미로 말이죠! 저는 몸매보다 얼굴. 인상 좋고 오목조목 예쁜 스타일.
유 저는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답답하게 생긴 얼굴은 너무 싫어요.
이 전체적인 사이즈를 보는 편이에요. 내 품에 쏙 들어오는 스타일?
김 V라인 얼굴. 그런데 결혼한 여자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얼굴보다 중요한 게 몸이고, 특히 허벅지라고 하던데요.(웃음)
“나랑 비슷한 사람”=“손해 보기 싫거든”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최근 미혼남녀 6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 응답자가 말한 ‘평범한 남성’의 기준은 키 174.4cm, 연봉 4334만원이었다. 연봉은 통계청 기준 ‘평균 남성’(대한민국 남성 평균 초혼연령인 31.7세 기준)의 2994만원보다 1300여 만원이나 많고, 키도 평균치인 173cm보다 1.4cm 컸다. 또 남성 응답자가 말한 ‘평범한 여성’의 기준 역시 키 162.6cm, 연봉 2808만원으로 통계청 기준 ‘평균 여성’(28.3세 기준)의 키 161cm, 연봉 2103만원보다 높았다. 다만 ‘평범한 남성’보다 격차가 크진 않았다.
즉 ‘평범한 사람을 원한다’는 미혼남녀의 말에는 ‘모든 것을 두루 갖춘 평범하지 않은 인재를 원한다’는 속내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결혼 또는 이성에 대한 미혼남녀의 포장된 말 속에 숨겨진 진심은 무엇일까. 친구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그에 맞는 이성을 소개시켜줬다가는 두고두고 원망의 화살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 ‘포장’과 ‘진실’을 사례별로 살펴봤다.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으면 해.” 말이나 대화가 통하는 이성이란? 지적, 문화적 수준이 자신만큼 또는 그 이상 높은 배우자여야 한다는 뜻.
“얼굴 팔아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외모가 무슨 상관이야.”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두 부류다. 외모를 안 본다고 하면서 ‘스타일’은 보는 부류와 외모를 덜 중요하게 여기는 대신 다른 조건이 자신보다 월등히 높기를 바라는 부류. 첫 번째 부류라면 장동건 김희선을 원하는 게 아닐 뿐 스타일리시한 훈남 또는 훈녀를 찾고 있다. 두 번째 부류는 단지 얼굴 하나에만 너그러울 뿐 나머지 조건은 완벽하길 바란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자신과 비슷한 거주지, 학력, 가정환경을 갖춘 배우자를 찾는 부류는 무엇 하나 손해 보기 싫은 ‘치사빤스’형에 속한다. 이런 유형은 보통 비슷한 생김새나 취향을 가진 이성을 소개받지만, 이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비슷한 조건’이다.
“착하면 그만이지.” 본인은 노력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받고만 싶다는 뜻.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내 몸을 편하게 해주는 경제력, 내 정신을 편하게 해주는 유머와 재치,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포용력을 두루 갖춘 ‘완벽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성실하기만 하면 되지.” 여성들이 주로 하는 표현.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성실한 남성이란? ‘밖에서 돈도 성실히 벌어오고, 집에서는 내 일을 성실히 도와주며, 주말에는 가족과 성실히 나들이도 하는 남성’은 아닐까.
자료 제공 : 듀오
결혼시장, 남녀 최고 배우자감을 찾는다!
결혼시장에서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남녀 배우자의 ‘스펙’은 어떨까? 결혼정보회사 ‘듀오’와 ‘선우’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 2008년 발표한 ‘이상적 남녀 배우자상’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최고 배우자상’을 그려봤다. 하지만 이를 재미로 볼 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여전히 여자들은 ‘백마 탄 왕자님과 결혼’을 꿈꾸고 남자들은 ‘아름다운 무희들이 춤추는 하렘 속의 왕’이 되고 싶은 것처럼, 이상적 배우자상은 단지 우리가 꿈꾸는 ‘이상’일 뿐이니 말이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나이 33세
키/몸무게 178.4cm/72kg
얼굴 달걀형 얼굴, 숱이 많고 두꺼운 눈썹, 속쌍꺼풀이 있는 보통 크기의 눈, 오뚝한 코, 혈색 좋은 피부
스타일 짧은 커트 · 세미 정장
학력 대학원(석사) 졸업
직업 금융 관련 공기업
경제력(연봉) 7000여 만원
개인 자산 규모 2억원 상당
집안 부친 사업가, 모친 약사, 형제 변호사
부모 자산 규모 50억원 상당
신혼 주거지 본인 명의 아파트, 부모와 공동출자로 마련
나이 28세
키/몸무게 167.9cm/53.1kg
얼굴 달걀형 얼굴, 초승달형 눈썹, 속쌍꺼풀 있는 보통 크기의 눈, 오뚝한 코, 혈색 좋은 피부색
스타일 어깨 길이 생머리 · 세미 정장
학력 4년제 대학 졸업
직업 정부부처 공무원(행정고시 패스)
경제력(연봉) 3500여 만원
개인 자산 규모 1억원 상당
집안 부친 교수, 모친 교사, 형제 대기업 연구원
부모 자산 규모 20억원 상당
결혼정보회사 회원가입 신청서로 본 배우자감 ‘셀프 체크리스트’
결혼정보회사 회원들의 요구가 구체화, 세분화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공개해야 할 정보의 수위 또한 높아지고 있는 것이 결혼시장의 첫 번째 트렌드다. 통상 ‘스펙’이라 부르는 객관적 정보(학력, 재산 정도, 직업 등) 외에 각 개인의 취향을 수평적으로 드러내는 주관적 정보(성격, 성향 등)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게 두 번째 트렌드.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휴먼라이프연구소’가 최근 부부 280쌍을 대상으로 결혼생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부부의 성격 유형이 비슷할수록 결혼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도 이러한 트렌드를 뒷받침한다. 인정 욕구, 집착 등 ‘애착 유사성’과 감성 표현, 성향 등 ‘정서 경험 유사성’이 비슷할 경우 부부간 마음이 잘 통할 가능성이 높다. ‘듀오’의 회원 가입신청서 가운데 ‘상대 희망조건’과 ‘성격 성향 테스트’ 내용을 일부 발췌한다. 물론 간단한 미니 체크리스트만으로 결과를 점수화해, 결혼시장에서의 내 좌표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그저 본인의 ‘스펙’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 요소들을 통해 역으로 ‘결혼 상대자’로서의 나를 객관적으로 한번 바라보자는 의미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번 호 ‘주간동아’ 커버스토리 곳곳에서 내 ‘몸값’을 추정할 단서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오빠, 연애는 다른 여자랑 해도 결혼만큼은 나랑 해”
이혜민 기자의 ‘10월의 신부’ 9년 프로젝트
‘드디어’는 이럴 때 쓰는 단어다. 드디어, 결혼한다. 9년 전 터키 이스탄불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를 보고 ‘이 사람과 결혼하는 여자는 참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여자가 바로 내가 됐으니 말이다.알게 된 지 5개월째.
수십 번이나 함께 밥을 먹으며 그렇게 눈치를 줬건만 이 곰, 반응이 없었다. “선택받지 말고 선택하는 여성이 돼라”는 교수님 말씀이 떠올라 용기를 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얼음 동동 뜬 사이다 한 잔을 벌컥 들이켠 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오빠! 연애는 다른 사람이랑 하더라도 결혼만큼은 나랑 해. 결혼할 때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테니까 각자 연애하다 결혼 적령기 때 다시 만나자. 괜히 오래 연애하다 깨질 수도 있잖아.”
대학 2학년, 내 나이 스무 살이었다. 그렇게 고백을 쏟아부은 게 부끄러워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한 달 뒤. 비행기 도착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르면서 아침부터 나와 기다렸다는 그를 보니 ‘귀여운 곰돌이 푸우! 생각 정말 잘했어(^_^)’ 싶었다(‘푸우’는 내가 붙여준 그의 애칭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 이별과 재회를 반복했지만, 지금도 그의 이름만 들으면 배시시 웃음이 번지는 걸 보면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 하긴 12년 연애 끝에 결혼한 친언니가 “(9년 연애한) 너희 정도면 한창 뜨거울 때”라고 말했으니 설렘은 당연한 것일 수도.
예단…예물…시부모님과 협상테이블에 앉다
고백의 후유증은 컸다. 그가 조금만 섭섭하게 해도 날 좋아하지 않으면서 만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따라서 진심이 담긴 프러포즈만큼은 반드시 받아야 했다. 수시로 “프러포즈 받아야 상견례한다”고 세뇌를 시켜놓아선지 올 2월 설날, 그는 케이크를 사들고 집에 찾아왔다. 반지는 내 예상과 달리 케이크 안이 아닌 흰 리본으로 묶인 보석상자에 담겨 있었지만, 그런대로 ‘짜고 치는 고스톱’의 재미를 느끼며 결혼을 허했다.
자연스러운 절차로 상견례 날을 보름 뒤로 잡았다. 3월1일, 내 생일이었다. 그러나 그전에 시부모님과 ‘협상’을 해야 했다. 9년째 내 집 드나들듯 하며 ‘이 부모님이 내 친정 부모님인지, 내 친정 부모님이 시부모님인지’ 헷갈릴 정도로 살갑게 지낸 사이이기에 어른 어려운 줄 모르고 용기를 냈다. (예비) 시어머님, 시아버님과 식탁에 마주앉아 협상학 수업 내용을 수십 번 떠올렸다.
“예단은 드리기 어렵습니다. 딸만 셋을 둔 저희 부모님은 한 번도 받지 못할 예단을 시부모님께만 드릴 수 없어요. 그 대신 집을 마련하는 데 보태겠습니다. 예단을 받으시겠거든 저희 집에도 예단을 주세요. 저희 쪽에도 인사받을 친척 계십니다.”
“예물은 안 받겠습니다. 워낙 잘 잃어버리기 때문에 해주셔도 부담스러워요. 신부한테만 잘해주시면 팔려가는 기분이 듭니다.”
“장손 며느리가 되는 게 겁나요. 장손 며느리치고 안 아픈 사람이 없더라고요. 우리 옆집 아줌마도 그렇고. 1년에 여덟 번 있다는 제사, 야근 잦은 직장에 다니면서 꼬박꼬박 챙길 자신이 없습니다. 휴가를 내서라도 명절과 할아버지 제사는 챙길 테니 나머지는 그렇게 못하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시어른들 행사는 할머니,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일에만 가겠습니다. 시어머님 6남매, 시아버님 6남매, 아빠 7남매, 엄마는 이모가 둘인데 대소사 챙기다 보면 제 일상은 없어집니다.”
“결혼식 주례는 누구보다 저희를 잘 아는 부모님이 해주시면 더 의미 있을 거예요.” 이 모든 것이 속사포처럼 이어진 나의 ‘요구사항’이었다. 화룡점정 격으로 이어진 마지막 질문.
“아이를 낳게 되면 양육은 어느 정도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정색하며)” 유순한 시부모님의 표정이 바뀌는가 싶더니 침착하신 시어머님이 말씀하셨다.
“그건 나도 생각했던 거다. 그렇지만 새로 들어온 사람의 흉을 덮어준다는 이불은 꼭 했으면 싶다. 나만 좋은 것 덮을 수 없으니 택선이(예비 남편의 이름)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것도 해드려라. 그리고 혜민이의 할머님들이 다 돌아가셨으니 택선인 혜민이 부모님께 이불 해드리고.”
“예물은 안 해줄 수가 없다. 며느리가 둘도 아니고 딱 너 하나인데 어떻게 안 해주겠니. 반지 하나만은 해줄 테니 받아라. 안 그럼 화낼 거다. 조상님들 생각해서 제사를 줄일 수는 없지만 네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해라. 가족이 많으니 부담 될 거야. 그것도 너희들 편한 대로 하렴. 주례는 나는 못하겠고 아버지들께서 상의해서 하시면 되겠다. 아기를 낳으면 혜민이 어머님이랑 도와줄 거야. 한데 그 얘길 왜 벌써부터 하는 거니?(웃음)”
이렇게나마 대화를 하고 나니 결혼이 겁나질 않았다. 물론 남자친구 집에서 그 뒤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모른다. 이럴 때는 입 무거운 그의 장점이 반짝반짝 빛난다. 상견례 가는 길에 예쁜 난 사들고 엄마 아빠를 모시러 온 남자친구가 정말이지 믿음직스러웠다. 어른들이 영업시간이 끝나도록 화기애애하게 말씀을 나누다 엄마가 말한 날로 결혼식 날을 정한 뒤부터는 모든 게 평탄했다. 양가 어른이 주례를 서는 일도 긍정적으로 진행됐다.
양가 어머니께 생애 첫 명품백 선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5월. 결혼식장을 잡아야 했다. 주변 어른들과 친구들의 평을 종합해 서너 군데 돌아다니다 한 곳을 택했다. 계약금은 반반 부담했다. 양가 어머니도 결혼식장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만끽하며 흐르는 시간을 즐겼다.
간간이 사람들이 “결혼 준비는 잘 되니?”라고 물을 땐 피식 웃었다. 그때만 해도 결혼 준비가 쉬운 줄 알았다. 결혼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한 선배 덕분이었다. 선배는 내 결혼과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는 예단은 안 하더라도 시어머니 선물은 꼭 해드리라고 강조했다.
특히 핸드백을 사드리면 무척 좋아하신다고 하니 안 할 수가 없었다. 시어머님은 내 ‘제안’에 흔쾌히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고 하셨다. 평소 내가 아는 시어머님이라면 거절하실 줄 알았는데 살짝 당황스러웠다. 기왕 선물하는 것, 시어머님께만 사드릴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 우리엄마 아닌가.
그리고 기왕 선물을 드리는 거라면 ‘노 세일’ 브랜드를 택해야 했다. 웬만한 브랜드 제품들은 시간이 지나면 세일 시즌 매장이나 아웃렛 매장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니, 언제 사도 손해 보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고르고 싶었다.
그 유명한 C사 매장에서 생애 첫 명품 백을 고르는 양가 어머니는 놀이공원에 간 아이처럼 행복한 모습이었다. 핸드백을 든 채 요리조리 자태를 비춰보는 양가 어머니의 모습에 괜스레 눈가가 뜨거워졌다. 잊고 살았지만 엄마도 여자였다. 문제는 착한 딸, 착한 며느리 놀이하는 건 무척 즐거웠으나 석 달치 월급이 몽땅 사라졌다는 것. ‘푸우’ 역시 나 따라서 양가 어머니의 선물을 사느라 몇 달간 빈털터리 신세였다.
“결혼, 다시 생각하자”
미국의 유명한 아웃렛 타운 ‘우드베리’에 들러 결혼에 필요한 각종 혼수를 구입하기로 했다. 알뜰한 시어머님은 지난해 쓴 영수증 뒷면에 사야 할 제품들을 또박또박 적어놓으셨다. 리스트에는 시계, 코트, 정장, 반지, 속옷 3벌, 화장품이 적혀 있었다. 언니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함께 온 친정식구들은 우드베리 앞 모텔에 머물면서 1박2일 쇼핑이란 걸 해봤다.
시댁 식구들의 선물도 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을 위해 뭔가를 고른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렇게 예물로 주고받을 물건까지 이틀간의 쇼핑으로 웬만큼 장만할 수 있었다. 그러곤 한동안 잠잠하게 보냈다. 그런데 결혼을 위해 구입한 물건들을 집 안에 들여놓는 바로 그 시점,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얼른 시집가! 이렇게 어지르지 말고 시집가서 사!” 아빠도 섭섭하신지 괜히 “가져갈 짐은 미리 싸놓아라”며 냉랭하게 말씀하셨다.
3 청첩장에 속지 붙이려 둘러앉은 아빠, 엄마, 막내 돌이(탁자 위의 강아지). 4 주례 준비하느라 턱시도 입어보신 (예비)시아버지.
‘한 해에 딸 둘을 시집보내느라 힘드신가 보다’ 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급격히 변하는 감정을 추스르던 때, 결국 일이 터졌다. 집 문제 때문이었다. 감정 관리가 잘 안 되는 내가 그만, 남자친구가 보여준 집을 보고 인상을 쓴 것. 남자친구가 구해놓은 낡은 집을 보니 포커페이스를 연출하기 힘들었다. 아이들 대여섯이 어질러놓은 듯한 집 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열흘 뒤 “전셋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니 당장 계약해야 한다”는 시부모님과 “오늘은 (기사) 마감이라 갈 수 없고, 사는 사람이 보지 않은 상황에서 계약할 수 없다”는 나의 의견충돌이 있자 순진한 ‘푸우’가 폭군으로 변신했다.
“내가 이렇게 마련하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 넌 더치페이 한다면서 작은 것만 하지, 집 문제에선 그렇지도 않잖아! 아픈 우리 엄마가 나가서 계약하시겠다는데 왜 못하게 해? 그럼 네가 와서 하든가. 넌 하지도 못하면서 왜 요구만 하는 거야!(엉엉)”
남자친구는 내가 자기 부모님을 신뢰하지 못한다고 해서 화가 난 상태였다. 사실 신뢰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닌데…. 어찌됐든 ‘푸우’가 지난 9년간 이만큼 화낸 적이 없던 터라 겁이 나긴 났다. 홧김에 나도 오밤중에 시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으니…. 다음 날 평화롭게 마무리되긴 했지만 그 상처가 아물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입 무거운 남자친구는 5년쯤 흐른 뒤 소주를 한두 병 마셔야 그때 왜 글렇게 화가 났는지 구구절절 말할 것 같다.
물론 50년이 지나야 화가 풀릴 수도 있다. 어찌됐든 내가 본 다른 집을 고르는 것으로 문제는 일단락됐다. 다음은 신혼여행지를 고를 차례였다. 배낭여행 중에 만난 사이라 그런지 여행에 대한 느낌이 각별해 여행만큼은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푸우는 지구본을 돌리다 찾았다는 크로아티아에 가고 싶다고 했다. 유럽 사람들이 많이 가는 휴양지라면서 짠돌이인 내게 “가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지, 비용은 여느 신혼여행객들이 쓰는 것보다 20%쯤 적게 든다”며 꼬드겼다.
출장 갈 기회가 적기 때문인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릴 적부터 신혼여행지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무대를 생각하던 나는 비싼 비행기표 탓에 그 꿈을 고이 접고 남자친구의 의견을 존중했다. 늘 어깃장만 놓던 내가 오랜만에 고개를 쉽게 끄덕여서인지 푸우는 어리둥절해했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며, 펜션을 고르며 한동안 즐거워하는 그를 보자 여행의 참맛은 뭐니 뭐니 해도 준비하는 맛이다 싶었다. 다시 찾아온 평화.
그런데 또다시 문제가 터졌다. 생각지도 않았던 청첩장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현대적이고 심플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남자친구와 클래식하고 전통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내가 하나의 청첩장을 선택한다는 게 무리였다. 남자친구는 내가 고른 청첩장을 보고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오빠의 말을 반영해주겠다”는 내 꾐에 넘어가 “솔직히 말해 촌스럽다”고 털어놨다.
난 또 어김없이 화를 냈고 “그렇게 촌스러우면 각자 골라! 오빠는 고르지도 않으면서 왜 평가만 해!”라며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 청첩장 마감일이 다가오자 이번에도 ‘푸우’가 양보했다.청첩장 문구를 쓰는 데도 두 달은 족히 걸렸다. 마침내 마감일. 글이 오죽 안 써졌으면 라디오에 사연을 다 보냈을까.
평소 즐겨 듣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청첩장 글쓰기가 너무 힘들다’는 사연과 함께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를 신청했다. 내 사연은 전파를 타고 전국에 방송됐다. 문구와의 사투는 결국 5시간 만에 끝났다. 마침표를 찍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이제는 청첩장을 받으면 그 문구부터 눈여겨보게 될 것 같다.
평화롭고 나른한 주말은 다시 올까?
일본에 사는 이모가 알려준 한복집에서 한복을 맞추는데, 이번에는 엄마의 취향 문제가 불거졌다. 양가 어머니가 세트로 입고 싶어하셨지만 취향이 다르니 한복을 고를 수 없었다. 이번에도 너그러운 시어머님이 양보하셨다. 딸 시집보내는 친정엄마 마음을 잘 안다고 하시면서….
그 뒤로는 틈만 나면 가구단지에 들렀다. 물건 잘 못 고르는 내가 선뜻 나서진 못했다. 냄비도 보러 가고, 가전도 보러 다녔지만 값이 비싸 미뤘다.
그런데 이렇게 이것저것 보러 다니면서도 정작 결혼식의 꽃인 웨딩드레스 고르는 일은 뒷전으로 미뤘다. 평소 허리라인이 ‘완만’해 고민이던 나는 웨딩드레스가 어울리지 않을 거라 체념하고 있었다.
드레스 안에 달린 복대로 배를 가까스로 눌렀지만 별 차이가 없었다. 무슨 드레스가 그렇게나 작은지…. 게으른 탓에 결국 예식장에서 드레스를 맞추고, 급기야 2개의 속옷과 한복 속바지를 입고서 억지스러운 S라인을 만들고 나니 조금은 흡족했다.
다행이었다. 까칠한 나를 이해하느라 9년간 서서히 20kg이나 불어난 남자친구에게 어느 날 심각하게 말했다. “우리 인생 최고의 날을 위해 몸 한번 만들어보자.” 그러나 외침은 선언으로 끝났다.
도리어 강박관념 탓에 폭식하는 습관만 생겼다. 동생이 살 빼는 크림과 롤러를 사다 날랐지만 바르는 것이 겁나 여태껏 사용 한번 해보지 못했다. 9월21일 웨딩 촬영을 위해 메이크업 받던 날.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예식 전까지 피부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가 일러준 방법은 간단했다.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을 얼굴에 대고 있다 때가 나오도록 살살 문지를 것. 그 후 차가운 물에 적신 수건을 얼굴에 댔다가 뗀 뒤 수분크림을 평소의 2배로 바를 것. 하루 실천해봤는데 주변 여자 선배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자 빨랫줄에 걸린 낡은 속옷처럼 사는 게 고단하다. 대단한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고르는 일 자체가 힘들다. 웨딩 촬영을 하면서 다른 커플과 똑같은 포즈로 웃음 짓자니 그 피곤함이 더해진다.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홍삼액을 마셔도 고3 이후 처음으로 생긴 구강 내 염증은 커져만 간다. 당장 이번 주 토요일에는 미국에서 산 이불을 들고 분당으로, 일죽으로 배달을 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애석해하실 것 같다. 손녀사위에게 이불을 받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이 마음을 헤아리셨는지 시어머님은 엄마에게 이불 한 채를 더 해주셨다. 고마운 분이다. 웨딩 촬영을 마쳤다고 하니 먼저 결혼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어제 힘들었지? 결혼식은 더 힘들어. 사는 건 그보다 더 힘들고.” 꼭 한 달 남은 결혼식, 얼른 치르고 싶다. 그래야 그전처럼 평화롭고 나른한 주말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설마 그 주말이 다시 오지 않는 건 아니겠지?
볼 수도 안 볼 수도 없는 ‘궁합 딜레마’ … 내 사주 살펴 상대방 품어야 행복
“올 하순부터 내년 초순까지에서 길일을 잡아주세요.” 딸의 결혼 날짜를 잡아달라는 60대 초반 부부의 주문사항이다. 딸과 예비사위의 사주를 내놓으며 내친김에 하나 더 묻는다.
“그런데 아이들 궁합은 어때요?”
“이미 결혼시키려고 날짜를 잡는데 궁합이 뭐가 궁금하세요? 궁합이 나쁘면 이제라도 승낙 안 하시려고요?”
“그래도 잘 살지, 못 살지 궁금하잖아요. 나쁘다면….” 노부부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린다.
결혼 시즌인 요즘 철학관에서는 이런 상담 광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한 결혼정보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미혼 기독교(개신교)인 남녀의 13%, 가톨릭교인 남녀의 22.1%, 불교인 남녀의 47.8%가 궁합을 본다. 기독교인이나 가톨릭교인에게는 궁합 보는 행위가 비신앙적인 일인데도 이 같은 수치가 나오니 비신앙인의 경우엔 말할 것도 없다.
결혼을 앞둔 남녀나 부모에게 궁합은 계륵(鷄肋)과도 같다. 보자니 그렇고 안 보자니 뭔가 아쉽다. 다행히 좋게 나오면 안심이 되지만, 행여 나쁘게 나오면 갈등의 씨앗이 된다. 부모 처지에선 궁합이 나쁘다고 결혼을 노골적으로 반대하자니 시대착오적인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괜찮다’는 표정을 짓기도 힘들다.
궁합이란 말이 처음 거론된 것은 중국 명나라대 임소주란 사람이 쓴 ‘천기대요’란 책에서다. 궁합의 궁(宮)은 ‘’와 ‘呂’를 합한 것으로 ‘집 실(室)’을 의미하고, ‘합할 합(合)’은 ‘그릇과 뚜껑을 서로 맞춘 형상’을 뜻한다. 문자를 해석해보면 ‘집안의 결합’이 되는데 ‘한 집, 한 방에서 만난다’는 뜻이 담겼다. ‘집 실’을 ‘아기 궁(宮)’으로 해석한다면 ‘합하여 아기를 낳을 수 있는가’의 뜻도 된다.
궁합은 ‘혼인 점’에서 출발한다. 과거의 혼인은 남녀 간의 행복한 결혼이 아니라 장자, 장손으로 이어지는 가족질서에 편입되는 엄격한 의례행위였다. 그래서 혼례의 절차 중에 중매쟁이가 여자 쪽의 부모와 신부의 생년월일을 묻는 ‘문명(問名)’의 절차가 있었다. 신부의 생년월일을 입수하면 남자 쪽 부모는 사당에 가서 ‘여자의 덕’에 대해 마땅한지, 아닌지 점을 쳤다. 이런 절차가 이뤄진 근저에는 혼인에 제사권, 재산상속 등의 문제가 긴밀히 연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혼인 점에서는 시집오게 될 며느리가 자손을 잘 낳아 집안을 번성시키고 조상의 제사를 잘 모실지에 대해서만 길흉을 점쳤다. 그런데 사주 명리학이 등장하면서 음양오행 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궁합법이 생겨났고, 좀더 세밀한 방법으로 궁합을 보게 됐다. 우리나라는 고려 말에 사주 명리학이 도입됐다. 조선 초에 왕족이나 일부 계층에서 암암리에 사주로 궁합 보는 법이 통용되다 중기부터 일반 민중에게도 퍼졌다.
천생배필은 하늘이 점지?
서울 양천구에 사는 주부 황모(40) 씨는 12년 전 궁합 때문에 연인과 헤어졌다. 당시 연인의 어머니가 “궁합이 나쁘다”며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 어머니는 황씨를 불러 “네게 백호(흰 호랑이에 물려 피를 흘리고 죽는다는 나쁜 기운)가 있어 결혼하면 내 아들이 죽게 되는 궁합이다. 아들을 사랑한다면 제발 헤어져달라”는, 협박에 가까운 간청을 했다.
결국 연인과 헤어진 뒤 지금의 남편과 만나 잘 살고 있다. 지인을 통해 가끔 옛 연인의 안부를 듣는데, 그도 다른 여자와 결혼해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황씨는 ‘그때 만일 우리가 우기고 결혼했다면 그 사람이 죽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내게 연인을 죽게 하는 기운이 있다면, 지금의 남편도 갑자기 죽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인연은 상대적인 것이라 A와 맞지 않아도 B와는 맞을 수 있다. 황씨와 옛 연인의 궁합은 황씨의 백호살이 강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는 반면, 황씨와 남편의 궁합은 황씨의 백호살이 약화되는 궁합일 수 있다. 궁합은 이처럼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주 명리학의 고서인 ‘적천수’에는 ‘부처인연숙세래(夫妻因緣宿世來)’라는 말이 나온다.
부부의 인연은 오랜 생전의 인연, 즉 하늘에서 정해진 것임을 시사한다. 흔히 하늘에서 정해준 인연을 ‘천생배필’이라고 한다. 조선 예종 때 남이 장군은 요괴를 보는 신통력이 있었는데, 어느 날 요괴가 앉은 홍시 광주리를 이고 좌의정 권람의 대문으로 들어가는 처자를 보았다.
불길한 마음에 따라갔다가 홍시를 먹고 죽어가는 권람의 넷째 딸을 구했는데 그 인연으로 혼담이 오가게 됐다.
권람이 홍계관이라는 장안의 이름난 술객에게 궁합을 물었더니 ‘천생배필’이라고 말했다.
“25세에 병조판서에 오르고 28세면 죽을 것이지만, 대감의 딸은 그보다 단명하고 후사도 없을 것이니 이보다 더한 배필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 홍계관의 말대로 권람의 딸은 남이 장군보다 단명했고, 남이 장군 역시 28세에 모함을 받아 죽었다.
이 고사는 궁합이 맞느냐, 안 맞느냐를 논하기 전에 내게 맞는 인연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와 맞는 천생배필과는 어떤 궁합인지, 그것만 찾아 잘 맞추면 고민할 것이 없다. 문제는 궁합 보는 방법을 딱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방법도 다양하고 풀이하는 학자마다 주안점이 다르다. 사주로 궁합을 보는 방법 중 널리 이용되는 몇 가지를 추려보자.
첫째는 ‘납음오행법’이다. 육십갑자의 음(音)을 인간 세상에 배속해 우주 자연의 전개 과정을 설명한다. 갑자(甲子)·을축(乙丑)생은 해중금(海中金), 병인(丙寅)·정묘(丁卯)생은 노중화(爐中火)라는 식의 원칙에 따라 남녀를 막론하고 갑자생과 을축생은 오행이 금(金), 병인·정묘생은 오행이 화(火)가 된다.
납음오행법은 이런 오행을 가지고 남녀의 상생·상극 여부를 따져 인연이 맞고 맞지 않음을 판단한다. 이를테면 남녀가 태어난 해의 간지가 각각 ‘목(木)과 화(火)’(목생화), ‘화(火)와 토(土)’(화생토), ‘토(土)와 금(金)’(토생금), ‘금(金)과 수(水)’(금생수), ‘수(水)와 목(木)’(수생목)이 되면 상생관계의 좋은 궁합으로 본다. 반면 ‘목(木)과 토(土)’(목극토), ‘토(土)와 수(水)’(토극수), ‘수(水)와 화(火)’(수극화), ‘화(火)와 금(金)’(화극금), ‘금(金)과 목(木)’(금극목)은 상극관계를 이뤄 좋지 않은 궁합이라고 판단한다.
水 넘치는 그녀, 火 기운 강한 마틴에 ‘깨갱’
그런데 ‘할리우드의 킬러’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화려한 남성편력을 자랑하던 팰트로도 한 남자 앞에서 날개를 접고 안착했다. 상대는 그룹 ‘콜드플레이’의 리드싱어인 크리스 마틴. 우연히 콜드플레이의 공연장을 찾았다가 다섯 살 연하의 로커에게 마음을 빼앗긴 팰트로는 자신의 일도 접고 매일같이 공연장을 쫓아다니며 애정공세를 펼쳤다. 마틴조차 팰트로 같은 대스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을 정도. 팰트로는 2003년 12월, 극성스런 파파라치들을 따돌리기 위해 산타바바라의 한 리조트 방갈로에서 10분 만에 결혼선서를 끝내는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초특급 매력남들과 사귀며 염문을 뿌리면서도 막상 결혼은 회피하던 그가 이렇게 서둘러 결혼한 까닭은 뭘까. 대답은 사주에 숨어 있다. 팰트로는 가을에 태어났고 물(水)이 많은 여자다. 물은 흘러가는 속성이 있다. 어쩔 수 없는 기질 때문에 팰트로는 결혼 전 이 남자 저 남자를 섭렵했다. 하지만 이런 남성편력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피곤함이 따른다. 어디로 트일지 모르는 물꼬가 제 길을 찾아줄 제방을 절실히 원한다. 특히 마음이 외로울 때 더욱 그렇다. 그가 마틴을 만난 것은 부친 사망 후,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워줄 정신적 지주가 절실했을 무렵이다.
그런데 마틴의 사주를 보면 나이는 어리지만 튼튼한 성곽을 가졌다. 타이밍도 절묘했다. 팰트로는 마틴을 만나기 전에 브래드 피트를 사귀었는데 피트의 사주는 야들야들한 화초목 같아서 팰트로의 야성(野性)을 보듬어주기엔 충분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틴은 강한 화(火)기를 품고 있어 가을철의 차가운 물을 데워줄 수 있는 조화의 묘가 있었다.
‘속궁합’과 ‘겉궁합’은 하나
그런데 상극이라도 남자의 간지가 여자의 간지를 극하는 상황이면 크게 나쁜 것으로 보지 않는 반면, 여자가 남자를 극하면 좋지 않게 여긴다.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시대에 ‘여극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시대에 뒤처진 측면이 있다. ‘납음오행법’은 ‘겉궁합’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널리 유포돼 있다.
둘째는 ‘연지법’이다. 남녀 사주의 연지(태어난 해의 지지)와 연지끼리 어떤 배합관계인지 알아보고 판단하는 방법이다. 삼합(三合·서로 화합하는 지지 3개가 만나는 것. 원숭이·쥐·용, 돼지·토끼·양, 호랑이·말·개, 뱀·닭·소가 해당)이나 육합(六合·서로 화합하는 2개의 지지가 만나는 것. 쥐·소, 호랑이·돼지, 토끼·개, 용·닭, 뱀·원숭이, 말·양 6개가 해당)은 좋은 배합으로 본다.
연지끼리 상극이면 불리한 배합이고 상생이면 좋은 배합이다. 다만 충(서로 대립하는 지지가 만나는 것으로 연지끼리 충을 하면 뿌리를 뽑아버리는 형상과 같게 돼 흉하다고 본다. 쥐·말, 소·양, 호랑이·원숭이, 토끼·닭, 용·개, 뱀·돼지가 해당)이나 원진(서로 안 볼 때는 그리워하다가도 막상 만나면 으르렁거리며 미워하는 기운. 쥐·양, 소·말, 호랑이·닭, 토끼·원숭이, 용·돼지, 뱀·개가 해당) 관계면 상생이라도 불리한 배합으로 본다(상자 기사 참고).
셋째는 ‘일간법’이다. 남녀 사주의 일간(태어난 날의 천간)과 일간끼리 어떤 배합관계인지를 보고 판단하는 방법이다. 삼합이나 육합이면 좋다고 본다. 넷째는 ‘일지법’이다. 남녀 사주의 일지(태어난 날의 지지)와 일지끼리 어떤 배합관계인지를 판단하는 방법으로, 연지법에 준해서 길흉을 본다. 일명 ‘속궁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심층판단이 아니라 단식판단이다. 사주에 나타난 두 사람의 글자를 비교해보고 공식에 맞추듯 대입하는 방법으로는, 단순한 옛 사회라면 몰라도, 현대사회의 결혼생활에서 필요나 요구사항의 충족도를 정확히 판단해내기 어렵다. 또 궁합을 속궁합과 겉궁합으로 나눠 속궁합이 좋아야 화목하게 잘 산다는 말도 되짚어봐야 한다.
물론 속궁합, 이른바 잠자리 궁합이 좋으면 좋겠지만 다른 불만이 산적한데 잠자리 궁합만 좋다고 해서 그 결혼이 언제까지 온전할지 장담하긴 어렵다. ‘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 역시 속설에 불과하다. 네 살 차이는 삼합에 해당하는 궁합으로, 남녀가 만나서 화합할 확률이 높다. 가치관이 맞고 대화가 잘 통할 가능성은 있지만, 이것만으로 무조건 좋은 궁합이라고 단정하긴 힘들다.
일찍이 청나라 시대의 명리가인 장남은 궁합의 모순을 간파한 뒤 ‘명리정종’이란 책에서 “오늘날 혼인을 택하고 그 명을 선택하는 일은 모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불과하다”며 궁합을 맹신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인연을 알아볼 수 있을까. 답은 ‘내 사주 안에 있다’다. 사랑하는 남녀가 내 안에 너를 품듯, 내 사주에 배우자가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사주 여덟 글자에 배우자가 어떤 사람일지 암시돼 있다. 약한지, 강한지, 탁한지, 청한지가 예견돼 있다. 먼저 이를 잘 살펴보고 무리한 욕심은 내지 않는 것이 좋다. 내 사주 모양은 뒤로한 채 무조건 배우자만 잘 만나면 된다는 식의 태도는 곤란하다. 내 사주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필요한 음양오행의 기운이 무엇이지 점검하는 게 우선이다.
예를 들어 물의 기운이 부족하면 물의 지혜를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을, 불의 기운이 부족하면 불의 따스함을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상대가 나타나면 각자의 성격, 금전이나 직업 등에 대한 가치관, 자녀계획, 건강, 잠자리 궁합, 후천적인 운의 흐름 같은 조화 여부를 면밀히 따져 평생 살아가면서 무엇이 문제 될지 체크해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한 궁합법이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엔 한 번 기도해도 좋지만, 결혼을 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이 기도에는 상대방에 대한 요구사항만 있는 게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헌신도 있다. 천생배필의 찰떡궁합은 이런 때 얻어지는 것이다.
원진관계 두 동물은 왜 으르렁거릴까
소와 말이 싫어하는 것은 소는 부지런한데 말은 게으르기 때문이다. 소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하며 제 반경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말은 주인을 태우고 산으로 들로 쏘다니기가 다반사고 들어와서는 풀이나 뜯고 놀기만 하니 밉상으로 보인다.
호랑이와 닭의 관계가 좋지 않은 건 호랑이가 닭의 울음을 아주 싫어하기 때문. ‘꼬끼오’ 하고 닭이 울면 호랑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토끼와 원숭이는 서로 토끼의 빨간 눈과 원숭이의 빨간 엉덩이를 못 견뎌한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섹시 포인트’도 될 수 있지만, 둘은 빨간 눈과 빨간 엉덩이에 타인의 시선이 머무는 것을 마땅찮아한다. ‘왜 꼬리를 치는지’ 내심 끙끙거리다가 사사건건 따져 물으며 의처증, 의부증 증세를 드러낸다.
용과 돼지는 용이 돼지의 가장 못생긴 부위인 코를 닮아서 자존심 상해하기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다. 상상 속 동물인 용은 지상 동물들의 장점만을 갖춰 만들어졌다.
‘최고’라고 자부심이 대단한데 돼지코를 얼굴 한가운데 달고 있으니, 눈엣가시이자 스타일을 구기는 원흉이라 여기는 것이다.
뱀과 개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는 뱀이 개 짓는 소리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기 때문. 뱀은 고막이 없어서 ‘컹컹’ 짓는 소리에 유달리 신경이 거슬린다. 뭔가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명확하지 않아 더 괴로워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으로 본 배우자 선택 이론 … 초기 만남에선 ‘동질감’에 강렬한 반응
“새내기 직장인 시절에는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 배우자를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경제적으로 안정된 배우자를 만났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경제력만 중요하다고 여기지는 않아요.”
5년째 기업 홍보업무를 맡고 있는 박주연(30) 씨는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서 결혼관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연봉이 높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남성이 배우자감으로 좋지만, 여기에 더해 집안 문제를 편하게 상의할 수 있도록 다정다감한 마음씨도 지녀야 한다는 것. 그 옆자리에 앉은 8년차 직장인 이현숙(33) 씨는 한 걸음 더 나간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벌면 얼마나 벌겠어요. 저도 벌고 있으니, 경제력보다는 평생 저랑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요즘 이런 생각을 하는 ‘골드미스’나 결혼 적령기 여성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탄탄한 경제력을 가진 직장여성 중 이처럼 배우자 선택기준이 다양해진 경우가 적지 않다. 몇 년 전만 해도 진리로 통하던, ‘결혼은 최고 유전자와 안정된 환경을 추구하는 현대적 자연선택’이라는 진화심리적 공식이 깨진 것일까.
돈만 버는 남자는 자연선택으로 퇴출?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은 ‘결혼, 즉 짝짓기는 유전자가 세대를 거치면서 자신의 복제본을 더 잘 전파하는 유전자를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짝짓기’는 암수가 합의하에 서로를 선택한다는 느낌을 주지만, 자연계에서는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자기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인간의 짝짓기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남녀가 서로 판단해 선택한다.
대개 남성은 여성 배우자를 선택할 때 배우자의 가치 중 나이나 신체적 매력에 유난히 관심을 둔다. 신체 요인은 어떤 여성이 얼마나 자식을 잘 낳을 수 있는지 직간접적으로 알려주기 때문. 반면 여성은 남성의 외모보다 경제적 능력이나 지위, 신뢰감을 더 따진다. 남녀가 함께 자식을 기르도록 진화한 인간 사회에서 가족을 충실하게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의 짝짓기 과정에서 여성은 훨씬 까다롭게 남성의 이모저모를 살핀다.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이 같은 짝짓기 기준은 현대인의 결혼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몇 해 전만 해도 미혼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남성은 주로 여성의 외모와 성격, 직업(경제력) 순으로, 여성은 직업과 성격, 가정환경 순으로 배우자를 골랐다. 배우자의 직업에서도 남성은 보육과 가사를 안정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교사나 공무원을 일반 사무직 여성보다 선호한다고 답했다.
남성은 여성을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는 자원(資源)으로 생각하고, 여성은 보호 능력의 척도인 경제력과 지위를 중요시하는 것과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최근 배우자의 선택기준이 조금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그저 돈 많이 벌고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남성이 최고였다면, 이제는 다정다감하고 가정생활에 충실한 남성이다. 여성 배우자상도 ‘현모양처’에서 자신의 일을 갖고 있고 직장인의 고충을 이해해주는 같은 사무직 여성으로 바뀌고 있다.
배우자 여성의 직업도 교사, 공무원보다는 대기업 직장여성을 선호한다는 남성들도 생겨났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의 변화가 종전의 배우자 선택 이론에서 크게 벗어나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다만 최상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사회·경제적 환경이 바뀌면서 정교해지고 복잡해진 것뿐이다. 여성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자.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상당수 여성은 경제력을 비롯해 사회적 지위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삶의 질을 더욱 고민하게 되면서 엇비슷한 경제력과 지위를 갖춘 배우자 후보 중에서 좀더 차별화한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예전에는 경제력에 주목했다면 이젠 그보다 한 걸음 나아간 가치, 즉 유머 감각이나 인간적 면모를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이는 남성의 경제력과 지위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한 여성의 지위에 맞는 새로운 기준이 추가됐다는 것을 뜻한다. 또 ‘졸부형’ 남성이 ‘자연선택’을 통해 추방되기 시작했다는 것도 의미한다.
남성들 역시 여전히 배우자를 선택할 때 신체적 매력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남성이 누리던 경제사회적 지위가 흔들리고 ‘가장’이라는 위치마저 위태로워지면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도 바뀌고 있다. 이상적인 배우자 기준에 여성의 경제력이나 이해심 등을 포함시키게 된 것. 이 같은 배우자관은 여성에게서 출산과 육아, 가사, 직장생활의 성공을 모두 추구하는 ‘알파걸’ 신드롬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전통적 짝짓기 기준이 흔들리면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기현상이 생겼다. 반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전통적 시각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여성들도 존재한다. 최근 20대 여성 대졸자의 ‘취집(취직 대신 시집을 선택하는 것)형’ 조혼(早婚)이 느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백년해로할 동반자로 삼는 이성은 어떤 사람일까. 최근 남녀 간 사랑과 배우자 선택을 다룬 10년간 연구의 공통적인 키워드는 ‘동질감’이다.
남녀 간 짝짓기, 사랑에 관한 상당수 심리학적 연구는 첫인상이나 단기간의 반응에 집중돼 있다. 반면 동질감은 진화심리학적으로, 또 유전학적으로 튼튼한 근거 위에 서 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비슷한 타입의 이성을 계속 만나는 이유를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과 유사한 사람을 만나면 옥시토신이 활성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익숙한 얼굴에 친밀감을 느끼는 것과도 같다.
영국 세인트앤드루대 인지심리학자인 데이비드 페렛 교수팀은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200여 명의 남녀 실험 참가자에게 자신의 얼굴을 반대 성(性)으로 만든 사진을 다른 이성 사진과 섞어 보여준 뒤, 그중 호감이 가는 사진을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상당수의 참가자는 자신을 닮은 반대 성의 사진을 골랐다. 또 대부분의 남성이 자신의 어머니를, 여성은 아버지를 닮은 배우자를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심지어는 체취에서도 동질감을 찾는다.
미국 시카고대 마사 매클린톡, 캐롤 오버 박사 연구팀은 여성은 아버지와 유사한 냄새를 가진 남성을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를 유전학 전문 학술지 ‘네이처 지네틱스’에 발표하기도 했다. ‘부부는 살면서 닮는다’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다수 사람이 배우자를 고르는 과정에서부터 자신을 닮은 이성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자신이나 부모를 닮은 배우자를 찾는 것은 유전학적으로는 미스터리다.
유전적으로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는 것은 후손에게 좋지 않은 열성유전자를 물려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 부모 또는 자신과 유사한 배우자를 선택할 경우 특정 환경에 잘 적응한 유전자를 보존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연구도 있긴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명확히 비밀이 풀리지는 않았다. 사랑이라는 뇌의 작용이 복잡하게 얽힌 데다, 어느 때보다 사회현상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배우자 선택의 메커니즘은 여전히 알쏭달쏭한 영역이다.
남녀 연애칼럼니스트의 ‘속궁합’ 조언
“결혼 결심한 그대, ‘해’보았는가?” 名器, 페니스 환상보다 ‘취향 확인’이 먼저
최근 ‘혼인빙자간음죄(婚姻憑藉姦淫罪)’ 존폐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나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법률은 없어지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런 법이 있다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삶에 대책이 없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혼인빙자간음죄라는 한자어를 21세기식 우리말로 바꾸면 ‘결혼을 염두에 두고 섹스를 한 후 결혼하지 않는 죄’가 된다.
이 죄목에 대한 유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재판장에서 오갈 대화만 생각해도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다. 아니, 평생을 함께 살 배우자를 고르는데 섹스도 안 해보고 고른다고? 정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면, 연봉이나 가정 배경 외에 침대에서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이 잘 맞아떨어지는지도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이 유교사상 충만한 조선시대도 아니고, 현대의 대한민국에서 그런 발상을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20대 대학생이나 30대 초반의 결혼 적령기 남녀까지 갈 것 없이, 요즘 고등학생들이 글을 남기는 인터넷 사이트에만 가봐도 ‘혼전순결’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알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섹스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 건 나이 들어서 해라” “결혼하고 나서 해야지”라는 건 자식과의 사고 격차를 더 벌리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섹스할 때 조심할 점이라든지, 충동을 억제하는 법을 알려주는 편이 맞다. 아니면 아예 콘돔을 쥐어주거나. 정확히 말하면 예나 지금이나 청춘남녀가 섹스를 나누는 건 마찬가지인데, 요즘 아이들은 좀더 솔직해졌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그들은 각자의 본능에 충실할 줄도 알고, 적어도 기성세대보다 자신들의 행위에 책임질 줄 안다. 헤어진 남자친구를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하겠다는 20대 여성이 있다면, 우선 주변 친구들이 배를 잡고 웃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으면서 “딸 가진 부모는 그런 소리 못한다”는 속 터지는 얘기하는 분도 계시리라. 그러나 ‘혼전 섹스’는 어떤 의미에서 여자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전통적인 우리 사고방식(혹은 고정관념)에 따르면, 남녀는 결혼을 하고 첫 성관계를 맺는다. 그럴 경우 남자는 생리학적으로 첫 관계부터 쾌감을 얻을 수 있다. 남자의 쾌감은 사정을 통해 느껴지는 것이니, 어떻게든 사정만 하면 쾌감은 100%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어떤가. 고통과 어색함 속에 첫 경험을 한 후, 꽤 오랜 시간과 경험이 쌓여야 섹스의 즐거움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섹스에 관해 꽉 막힌 사회에서는 십수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 시기가 오면 이미 남편은 성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뒤다. 아내는 “예전에는 그렇게 밝히더니 애정이 식은 거냐”며 닦달하고, 남편은 집에 들어가기 무섭다는 말을 하는 낯익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난센스 같은 시차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수십 년 반복돼왔다(신부가 연상인 경우가 많던 조선시대는 오히려 현명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속궁합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자들은 조선시대 우화에나 나올 법한 ‘명기(名器)’를 찾고, 여자들은 커다란 페니스에 대한 환상을 늘어놓는다. 예전처럼 부모님이 혼사를 결정하고 결혼식 날 평생 배필의 얼굴을 처음 보는 시대였다면야 모르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아직도 속궁합을 확인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건 일종의 미스터리다.
언제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이혼 사유가 ‘성(sex)격차’여야 하는가. 결혼 후에 더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려면 서로의 섹스 취향이 맞는지 알아보는 게 현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의 과거에 집착하는 남자들의 태도도 바뀌어야 하고, 질질 끌려가듯 원치 않는 섹스를 반복하는 여자들의 수동적인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번식이 아닌 쾌락을 위해 섹스를 하는 유일한 동물, 인간으로 태어나 그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모든 일이 마찬가지지만, 경험은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 결혼 전 속궁합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은 남자뿐 아니라 여자의 삶도 긍정적으로 바꾼다. 경험이 많은 커플은 만약 나이가 들어 육체적인 능력이 떨어져도, 어떻게 하면 서로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금실이 좋을 수밖에 없다. 여자의 ‘첫 경험’을 고집하는 남자나, ‘혼인빙자간음’으로 남자를 협박하는 여자는 정말 덜 떨어진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신동헌 남성지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섹스칼럼니스트 drag@kayamedia.com
“헉, 내가 ‘수컷’을 잘못 골랐나?” 새색시들이여 느긋이 기다려라!
여자의 아파트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차창에 습기가 차오르도록 뺨을 비벼대던 두 사람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뿐이다. ‘같이 있고 싶다, 헤어지기 싫다’. 싸우고 토라지는 날도 많았지만 사랑한 날이 더 많았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사랑하며 보내고 싶은 그들이었다. 남녀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 극에 달하는 관계는 목청껏 사랑찬가를 부르짖는 연인 사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명백한 착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꾸 신경이 쓰이는걸’ ‘오호라, 당신도?’의 다리를 건너 구름 위를 걷는 황홀경에 이르면 두 사람은 각자의 감정과 그 감정이 상대방에게 주는 영향에 집중한 나머지 주야장천 ‘생각’과 ‘착각’을 오간다. 그런 그들이 첫 키스의 긴장감과 두근거림을 지나 한마음이 되는 순간! 그것은 익숙하고 평화로운 스킨십을 나눌 때다. 이런 설렘과 안정감이 반반으로 녹아드는 시점이 되면 결혼 말고는 사랑이라는 화학작용을 공식적으로 풀어낼 방법이 없다.
그들은 결혼하면 거리낌 없이, 더욱 뜨겁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종종 이러한 착각과 함께 예상치 못한 동상이몽의 뼈아픈 밤이 시작된다. 결혼 전 눈빛만 마주쳐도 동공과 입술이 벌어지던 그들의 잠자리는 뭔가 어긋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데, 신혼일 경우 여자의 머릿속엔 ‘내가 ‘수컷’을 잘못 골랐나?’ 싶은 경박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척’하면 ‘빠직’하고 들어맞을 줄 알았던 섹스는 오리무중이요, 갓 결혼한 새댁의 속은 타들어간다.
속궁합의 문제다. ‘속궁합을 맞추다’라는 표현은 절묘하고 야하면서 정중하다. ‘우리 한번 하자’ 같은 경박함에 댈 바가 아니다. 되도록 결혼 전에 속궁합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바, 무엇보다 끙끙대며 교전하듯 치르는 ‘신혼 초-서로의 몸에 길들이기’ 과정에서 오는 오해를 불식할 수 있어 좋다. ‘애걔, 이 정도밖에 안 돼?’ ‘이 여자, 내숭이었군’ 같은 거 말이다.
하지만 밤을 지내보지 않은 상태로 결혼하는 커플의 동상이몽은 차라리 건강하다. 함께 노력하면 어느새 광명의 빛이 비추리니, 남자는 서두르지 말고 여자는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뜻밖의 난관은 결혼 전 ‘할 만큼 한’ 커플이 결혼한 지 반년이 안 돼 섹스리스 커플에 동참하게 되는 경우다. 여자가 밀어내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문제는 남자에게서 비롯된다.
이건 성차별이 아니라 오히려 성차이를 인식하는 차원인데, 결혼이라는 인륜대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여성의 스트레스보다 남성의 스트레스는 존중받지 못했다는 대목이 첫 번째다. 결혼과 동시에 여자친구는 더 이상 여자친구가 아니라 안주인이 돼 있고, 그녀의 위풍당당한 지위와 반대로 자신은 책임감만 잔뜩 주어져 있더라는 고백은 먼 얘기가 아니다.
아이 같은 칭얼거림이 아니다. 남자는 사회제도에 깃들수록 자신감 한 덩이씩을 내놓아야 하는 유약한 존재라는 인식이 두 번째다. 이런 속마음을 알 길 없으니 여자는 답답하다 못해 서러울 지경이다. 시쳇말로 안 해본 것도 아니고, 달뜬 숨결로 품고 안아주더니 이게 웬일이냐 싶다. 이 경우 여자는 안방마님 놀이를 접고 결혼 전 여자친구처럼 굴어줄 일이다. 남편의 늘어진 자존심을 ‘빳빳하게’ 풀어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겉보기에 사이좋게 닮아가는 오누이 같은 신혼커플에겐 종종 이런 속사정이 숨어 있다. 신혼이니 당연히 줄기차게 ‘하면서’ 살 줄 알았던, 그들의 머리맡에 옅은 한숨이 늘어가는 이유다. 이들에게 예식과 이사, 신혼여행, 2배로 불어난 친척 어른에게 인사하기 등 결혼 절차를 조금 덜 공격적으로, 가볍게 준비하라고 권하고 싶다. A커플, B커플 할 것 없이 결혼 준비는 롤러코스터처럼 격렬하게 진행되고, 정작 두 사람의 마음은 뒷전에 밀려나 있다.
젊은 부부들이여, 나는 당신들이 베개 사이에 딴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완벽하게 속궁합을 맞추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 세상 모든 신부의 얼굴에 탐스러운 복사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안은영 연애칼럼니스트·‘여자생활백서’ ‘이지연과 이지연’ 작가 eve0524@empal.com
비용편익 분석으로 본 ‘결혼경제학’ 사랑 한꺼풀 벗기면 냉철한 이해득실 행위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들 한다. 누군가는 ‘결혼은 연애의 무덤’ ‘결혼은 미친 짓’이라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래도 이런 표현은 계산기를 들이대고 주판알 튕겨가며 “이 결혼은 수지가 안 맞아”라고 내뱉는 것보다는 차라리 애교스럽다.
사람들은 신성한 결혼을 돈이라는 세속적인 가치로 평가하는 데 거부감을 보인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속으로는 ‘빛의 속도’로 계산기를 두드린다.
어떻게 보면 가장 세속적이고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결혼인지 모른다. 결혼이라는 사회문화 현상을 경제학의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결혼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 바라보는 ‘미시적 분석’, 결혼시장을 하나의 산업으로 바라보는 ‘거시적 분석’이 모두 가능하다. 결혼시장은 국가 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산업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상자기사 참조).
결혼과 경제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결혼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 못지않게 경제가 결혼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예컨대 불경기 때문에 결혼을 미루면 그 여파로 결혼시장의 규모가 줄어든다. 이렇듯 결혼은 한 꺼풀 벗겨보면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경제적으로 해석된다.
결혼前 : 수요-공급, 편익-비용 메커니즘
결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단계부터 경제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시카고대 게리 베커 교수는 “결혼은 거래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합리적인 인간은 결혼에서도 냉정하게 이해득실을 따지게 마련이라는 것. 그는 “결혼을 하는 이유는 결혼을 통해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익이 결혼 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라며 비용-편익분석의 틀을 결혼에도 적용한다.
미혼으로 남거나, 훌륭한 배우자를 찾기 위한 노력과 시간이 결혼생활로 얻는 편익보다 크면 결혼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는 결혼이 주는 경제적 이익과 심리적 안정감 등 무형적 편익이 결혼의 비용보다 크다고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에는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데서 또다시 경제적인 선택에 부딪힌다. 혼수 문제 때문에 결혼식도 올리기 전 파혼을 맞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스스로 생각하는 몸값에 비해 상대의 ‘스펙’이 모자란다고 판단되면 결혼은 성사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이 결혼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혼중매업체에서 직업, 재산, 학벌, 집안 등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비슷한 조합끼리 매칭하는 것도 같은 맥락. 합리적인 판단으로 결혼을 결정한 것과 결혼 뒤의 경제생활은 또 다른 이야기다.
물론 결혼이 경제생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개인마다 다르다. 하지만 결혼이 경제생활의 출발점이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한다. 많은 이가 “결혼해야 돈을 모을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씀씀이가 큰 남자들이 여성들에 비해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 자산관리 전문가들은 “결혼을 통해 가정을 구성함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단위경제로 인정받게 된다”고 한다.
결혼後 : 공동소비로 저축 늘어 富 축적 가능
결혼 3년째 접어드는 직장인 길모(29) 씨는 “결혼을 통해 경제관념에 눈떴다”고 고백한다. 취업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결혼을 서둘렀기에 모아둔 돈은 거의 없었다. 결혼 전에는 월급을 술값 등 개인적인 지출로 다 써버리기 일쑤였다. 막상 결혼을 준비하게 되자 부모에게 돈을 빌리고 은행문도 두드려야만 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몰랐죠. ‘친구들 만나 쓰는 몇만원이 큰돈도 아닌데’ 싶었죠. 하지만 그런 지출도 합쳐보니 큰 부담이 되더군요. 지출관리라는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죠.”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아니 결혼을 생각하게 된 순간부터 사람들은 경제적 인간으로 변모한다. 금리 0.1%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은행계좌를 옮겨 다니고, 재테크에 유별난 관심을 보인다. 우리투자증권 광화문웰스매니지먼트센터 전용준 센터장은 이렇게 말한다.
“결혼 전에는 돈을 모아야겠다고 막연히 생각은 하지만, 그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가장이 됐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가정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생기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함부로 돈을 쓸 수도 없고, 미래를 고려한 저축과 소비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혼과 함께 경제적 관념에 눈을 뜨면 구체적인 실천은 소비와 저축으로 나타난다. 불필요한 소비는 줄이고 저축은 늘린다.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겠다’가 아니라 ‘저축하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겠다’는 식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다. 최근 결혼한 회사원 서문원(32) 씨는 “결혼 후 소비 패턴이 바뀌었다”며 “나 혼자에게 필요한 물건보다 아내와 내가 함께 필요로 하는 물건이 소비의 우선순위가 된다. 덕분에 안 해도 되는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서울대 경제학과 김대일 교수는 “부부가 공동소비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저축의 여지가 커진다. 그만큼 다른 곳에 투자해 경제적으로 부유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특히 내구재에서 두드러진다. 예컨대 결혼 전 남녀가 각각 1대의 TV를 봤다면 결혼 후에는 ‘공용’으로 1대만 있으면 된다. 가구, 냉장고, 자동차 등도 마찬가지.
물론 결혼을 한다고 모두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혼 뒤에도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고 합리적인 지출계획 및 재테크가 이뤄지지 못하면, 오히려 결혼은 경제적으로 독이 될 수 있다. ‘1+1’이 0이 되기도, 3이 되기도 하는 것이 결혼경제학이다.
연 30조원 시장 GDP 3%… 내수시장 1등 공신?
통계청의 2008년 혼인통계에 따르면 전체 혼인 건수는 32만7700여 건. 쌍춘년이던 2008년에 33만여 건에 이르기도 했지만, 대략 한 해 30만 쌍의 결혼커플이 만들어진다. 한 쌍의 결혼비용을 1억원 안팎으로 잡으면 전체 결혼시장의 규모는 연 30조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2008년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024조원. 결혼산업 규모는 GDP의 3%에 육박한다. 이는 같은 해 한국의 총 연구개발비(R&D) 34조4981억원과 비슷한 수준.
주택구입 비용을 뺀 혼수물품비 등 실질적인 혼수시장은 대략 10조원대에 이른다. 신혼부부가 기본적으로 구입하는 물품은 TV, 냉장고, 김치냉장고, 홈시어터, 세탁기 등 가전제품.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혼수 가전시장은 연간 2조~3조원이다. 가전회사의 1년 매출이 혼수시장에 달렸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그 밖에 혼수가구 시장은 8000억~1조5000억원, 혼수 예물시장은 1조~1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결혼시장은 대규모적이고 일시적인 구매 패턴을 갖는다. 매년 새로운 커플이 생겨나는 만큼 안정성과 성장성을 함께 갖춘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외환위기 때도 결혼시장은 중저가 시장을 중심으로 활성화해,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소폭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결혼시장은 혼수시장 같은 직접적인 시장 외에 연관 산업도 발달했다. 웨딩드레스, 사진촬영, 웨딩플래너, 웨딩컨설팅, 결혼중매 업체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진다.
맞벌이 신혼부부의 재무 플랜…미래 설계 가치관 공유가 최우선
[# PART 1 일반론] “통장 계좌만 합칠 게 아니라 마음도 합쳐라”
부부는 한 방향을 보고 나아가는 관계다. 재테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부부간에는 소득과 지출을 합치고 투명하게 이를 운영하는 ‘룰’이 필요하다.
물론 서로 다른 경제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공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한 지갑’을 유지하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따라서 깨가 쏟아지는 신혼 초기에 재테크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정한 신혼 재테크는 통장의 계좌만 합치는 게 아니라 마음을 합치는 것에서 출발한다. 단, 의욕이 너무 앞서 모든 것을 100% 공유하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특히 가정 이외에 직장이라는 각자의 사회공간이 있는 맞벌이는 더하다. 서로 합의를 통해 정한 개인적인 용돈 또는 지출의 범위 내에서는 그 내역에 대해 모른 척해주는 센스도 필요하다.
결혼 이후 두 사람은 새로운 가정의 주체가 된다. 예컨대 지금까지 직접 지불해본 적 없는 관리비며 우유값, 신문대금이 생활비에 포함된다. 연애시절에 사용하던 용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두 사람만의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데 쓰는 생활비가 두 사람 전체 수입의 약 50%를 차지하게 된다. 연애시절처럼 무분별하게 지출하면 안 된다. 연애가 낭만이라면 결혼은 현실이다. 지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가계부 작성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출 내역을 상세히 기록하고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자. 부부가 함께 작성한다면 서로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발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해본다. 옷을 많이 사고 술을 많이 마셨다는 이유로 부부싸움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서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얘기하라는 것이다. 특히 지출 통제는 신혼 초반, 젊은 시절부터 습관화하지 못하면 중년에는 교육비 등 더 많은 돈이 필요해 통제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부부 각자 및 공동의 목표 설정이 가능해진다. 목표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해결 방안도 찾을 수 있다. 작은 목표를 달성하는 시점에 서로에게 부상(副賞)을 줘 이런 대화나 목표 자체가 부부에게 재미있는 게임이 되게 할 수 있다면 훨씬 효과적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재테크도 시작이 중요하다. 신혼 초 3년 이내, 특히 출산 전은 소득보다 지출이 적어 소득 대비 비중으로만 보면 인생에서 저축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시기다.
적어도 소득의 50% 이상을 저축한다는 각오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아끼고 저축만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모든 계획은 목표의 유무, 또 목표가 얼마나 구체적이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결혼 서약을 통해 둘이 만들어나갈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렸다면 출산과 교육, 내 집 마련, 은퇴 후 준비 등 그 과정에서 발생할 여러 재무적 이벤트를 예측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벤트별 필요금액과 저축기간을 구해야 한다.
먼저 출산 및 교육은 재무적 비용이 처음부터 크게 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혼과 동시에 적은 금액이라도 떼어 꾸준히 저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찍 시작할수록 복리효과 덕분에 적은 불입액으로 목돈을 마련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렇지만 가족 중에서 육아를 맡아줄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부부 중 한 명이 직장생활을 포기하거나 육아를 타인에게 맡김으로써 예상을 크게 초과하는 육아비용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출산에 앞서 이 부분도 꼭 고려해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
저축과 투자를 통해서만 재산이 증식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우선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테크 관련 서적을 읽어 재테크의 개념을 잡아본다. 매일같이 접하는 신문, 잡지의 경제면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재테크 정보는 은행, 보험사, 증권사의 상품에 가입하면 좀더 쉽게 얻고 관심을 유지할 수 있다. 각 금융기관의 상품에 가입해 그 상품만이라도 제대로 알면 다른 상품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쉬워진다.
[# PART 2 내 집 마련하고 출발한 경우] 월 소득 50% 투자해 목돈 만들기 작전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30대 초반의 A씨 부부는 양가 부모님 덕분에 수도권에 아담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해 연간 가계소득은 6000만원 정도. A씨는 “남들은 ‘집이라도 마련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하지만,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전반적인 조언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재테크 목표를 설정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주택 이전비용, 자녀 교육비 및 결혼자금, 생활비·예비비, 그리고 노후 준비자금이다. 주택은 10년 계획, 교육비는 10년 후에 발생하는 사교육비와 20년 후 발생하는 대학 교육비로 나눌 수 있다. 예비비는 비상용 자금으로 부부의 3~6개월치 급여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이는 연봉의 25% 정도로 A씨 부부의 경우 1500만원이 된다.
이 정도 액수를 CMA나 정기예금으로 확보해두는 것이 좋다. 또 생활비는 지출 통제를 통해 최적화해야 한다. A씨 부부의 월수입은 500만원 정도다. 각자 부부 총수입의 50%는 저축과 투자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목돈이 들어가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필수인데, 종신보험에 암, 수술, 입원, 질병 특약을 첨부해 가입하고, 화재보험사의 실손보험에 가입하도록 한다. A씨 부부의 경우 총 보험은 4건에 약 30만원(월 소득의 6%) 들 것이다.
또 각각 소득공제형 연금을 월 소득의 10% 정도를 할애해 가입하고(A씨 경우 각 25만원씩 50만원), 이때 가능하면 연금저축펀드를 이용해 조금이라도 공격적인 상품을 선택하길 권한다. 월 소득의 8%(A씨 경우 각 20만원씩 40만원)는 보험사를 통해 비과세형 연금(변액연금)에 가입한다.
펀드는 국내형 적립식 펀드에 가입해 월 소득의 약 10%(A씨 경우 50만원)를 만기 3~5년으로 생각하고 불입한다. 만약 총소득액의 60% 정도를 저축 또는 투자할 수 있다면 국내형 펀드와 해외형 펀드를 6:4로 나눠 가입하길 권한다. 은행에는 월 소득의 16%(A씨 경우 80만원)를 불입한다. 1년 12달을 불입하면 1년 후 원금이 약 1000만원이 되는데, 1년마다 주가가 다소 낮아졌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기존에 불입하는 펀드에다 분할해 투입한다면 좀더 높은 펀드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5년 계획을 세우자. 매달 130만~180만원의 저축과 투자를 병행한다면 5년 후 원금과 수익률을 합해 1억원 이상의 종잣돈 마련이 가능하다. 1억원의 종잣돈은 부부의 투자성향에 따라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5년씩 2회, 즉 10년 계획을 수립하면 부부는 2억원 이상의 현금성 투자자산을 마련하게 된다.
[# PART 3 내 집 없이 출발한 경우] 내 집 마련 위한 ‘시드머니’ 확보에 총력
결혼 1년차 맞벌이인 B씨 부부는 요즘 고민이 많다. 경기는 회복되고 있다는데 영 피부에 와닿지를 않는다. 결혼 후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출산을 미뤘는데, 그나마 지금 상황에선 좀더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2년 후 출산’ ‘10년 이내 내 집 마련’이 계획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할 따름이다.
집 없는 신혼부부의 1차적 관심은 언제 내 집 마련을 하느냐다. B씨 같은 생각 때문에 요즘 결혼하는 커플의 상당수가 맞벌이를 한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맞벌이라고 해서 외벌이 가정보다 많이 저축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 잘 살아보자고 시작한 맞벌이지만 돈 관리를 두 명이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새는 돈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모이는 돈은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다. 흔히 맞벌이라면 ‘2배의 수입’을 떠올리지만 그에 상응하는 ‘2배의 지출’도 따르게 마련이란 걸 잊기 쉽다.
국토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O8년 주거실태 결과에 따르면, 가구주가 된 뒤 주택을 마련하는 데 전국 평균 8년 3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니 10년 이내 주택마련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라 하겠다. 단, 신혼 초부터 꼼꼼한 계획과 함께 세제혜택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월 소득의 20~40%는 주택마련 자금, 예컨대 주택청약저축, 장기주택마련저축, 적립식 펀드 등에 불입한다.
지역에 따라 주택가격 차가 크지만, 서울 및 수도권에 주택을 마련하려면 대출 등 레버리지 활용도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청약저축은 우선적으로 가입하기를 권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주택 기간도 길어지고 출산으로 부양가족까지 생기면 청약 가점이 높아져서 청약 우선순위에서도 유리한 위치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무주택 세대주의 경우 소득공제까지 가능하고, 주택청약종합저축으로 가입하면 금리도 은행 적금보다 높으니 1석3조의 혜택이다.
청약은 우선 서민 주택안정을 위한 정책적 배려인 보금자리주택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상자기사 참조). 청약 가입기간이 2년 이상 됐지만 가입기간이 짧고 지금까지 주택을 한 번도 구입한 적 없는 무주택 세대주는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특별공급을, 자녀가 있고 결혼기간이 짧은 신혼부부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노려볼 만하다. 주택구입비용을 마련하기 전까진 장기 전세와 국민임대가 가능한 장기전세주택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장기전세주택은 서울에 사는 무주택세대주가 입주 대상인데, 주변 전세 시세의 80% 이하로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다.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특별공급이나 신혼부부 특별공급 및 장기전세주택은 소득, 혼인기간 등 청약조건이 제한되므로 자격이 되는지 사전에 체크해야 한다. 상당수가 아직 젊은 나이이므로 투자는 좀더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 전체 저축액의 50%는 적립식 펀드에 2~3개로 나눠 가입할 것을 추천한다.
특히 3년 이상 적립식으로 국내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면 비과세 혜택과 소득공제 혜택을 함께 받을 수 있다. 전 금융기관을 통합해 분기당 300만원(연간 1200만원)까지 가입할 수 있으며, 입금 금액에 대해 1년차 20%, 2년차 10%, 3년차 5%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가입시한이 2009년 12월31일이니 올해 안에 가입해야 한다. 3~5년 꾸준히 납입하면 자녀교육비는 물론 주택 구입을 위한 종잣돈이 될 것이다.
전체 저축액의 나머지 50%는 목적에 맞게 투자해야 한다. 평균수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더 이상 자녀가 ‘노후보험’이 되기 어렵다. 노후를 위한 대비도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다. 우선 전체 저축액의 10% 정도를 노후를 위한 연금보험에 가입하고, 시간이 지나 소득이 늘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금액을 조금씩 늘리는 것이 좋다. 소득공제를 더 받을 필요가 있다면 세제적격연금보험으로 분산해 가입한다.
또한 자녀교육비에 전체 저축액의 10~20%를 투자한다. 출산 전에는 10% 남짓이지만 출산 이후 점차 비중을 늘려나가게 된다. 비상 예비자금으로는 단기성 예금으로 전체 저축액의 10%를 운용하고 질병, 상해 대비 보장성 보험 등 위험 대비에 역시 전체 저축액의 10% 안팎을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10%는 아직 젊을 때니 우량주식을 매입하거나 금융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 출시되는 상품에 가입하는 등 초과수익 전략으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환경변화에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인생의 새로운 기회에 대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재테크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실천이다. 앞에서 설명한 내용은 특별한 마법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뭔가를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도 있고 ‘다 아는 얘기네’ 하고 생각에 그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자와 후자의 10년 뒤 모습은 어떨까. 꼼꼼한 계획과 꾸준한 실천으로 이 땅의 모든 신혼부부가 부자가 되는 날을 꿈꿔본다.
보금자리주택으로 내 집 마련 앞당기기
서민 보금자리주택 건설계획에 따라 건설되는 주택. 공공(주택공사, SH공사 등)이 재정 또는 기금의 지원을 받아 건설, 매입해 분양이나 임대를 목적으로 공급한다. 공급자 위주의 일방적인 공급에서 벗어나, 소득계층별 수요에 부응하는 다양한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수요자 맞춤형 주택정책이라 할 수 있다.
Q. 어떤 주택을 얼마나 건설하나.
2018년까지 10년 동안 150만 호를 건설할 계획으로 지역별로는 수도권 100만 호(66%), 지방 50만 호(34%)다. 유형별로는 국민주택규모(85㎡) 이하의 분양주택을 70만 호(47%), 장기임대주택을 80만 호(53%) 공급할 계획.
Q. 분양가 및 입주자 자금 부담은.
분양가는 용적률을 상향(200% 수준)하고, 녹지율도 합리적으로 조정하며, 공사시공 과정 합리화 등의 조치를 통해 종전 분양가상한제 가격 대비 15% 안팎의 싼 가격으로 공급한다. 주택구입 자금도 기금에서 저리로 지원하고 30년 장기대출 등의 조치로 구입 부담도 낮춰갈 계획이다. 최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임대주택 중 영구임대주택은 시중 전세가의 30%, 국민임대주택은 60~70%로 공급한다.
Q. 사전예약제란.
수요자들이 기존의 본 청약보다 1년 정도 앞당겨 인터넷 사전예약시스템을 통해 신청하면, 예비당첨자를 선정하는 방식. 인터넷 홈페이지는 10월12일에 오픈할 예정이다. 여기에서 3지망 단지까지 신청 가능하다. 다만 사전예약제를 예약 포기하거나 부적격자일 경우 최소 1년에서 2년까지 당첨에 의한 참여를 제한할 예정.
Q. 시범지구 공급 및 사전예약 일정은.
9월30일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서울 강남·서초, 고양 원흥, 하남 미사) 입주자모집공고를 냈다. 이후 10월7일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 기관 추천 특별공급을 시작으로 12일에 3자녀 특별공급, 15일에 노부모 부양자 우선공급, 20일에 생애최초주택구입자 특별공급, 22일에 신혼부부 특별공급, 26일에 일반공급 등의 일정으로 청약 접수를 실시한다.
Q. 당첨을 위한 전략은.
우선 청약 가입기간이 2년 이상 됐지만 가입기간이 짧고 지금까지 주택을 한 번도 구입한 적 없는 무주택 세대주는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특별공급을, 자녀가 있고 결혼기간이 짧은 신혼부부는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특별공급보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신청한다. 3자녀 이상의 다자녀가구는 10%까지 물량이 확대된 3자녀 특별공급을 신청하면 유리하다.
Q. 더 고려할 점이 있다면.
시범지구 4곳은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시범지구의 전매제한 기간이 7~10년으로 길다. 또한 5년 이상 의무적으로 거주해야 하는 실거주 의무기간을 둘 가능성도 있어 실수요자가 청약하는 것이 중요하다.
류정이 IBK기업은행 PB고객부 과장 rje0521@naver.com
맞벌이 신혼부부의 재무 플랜…미래 설계 가치관 공유가 최우선
김한수 벨류에셋자산관리㈜ 본부장 hansookim1@hotmail.com 류정이 IBK기업은행 PB고객부 과장 rje05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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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1 일반론] “통장 계좌만 합칠 게 아니라 마음도 합쳐라”
부부는 한 방향을 보고 나아가는 관계다. 재테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부부간에는 소득과 지출을 합치고 투명하게 이를 운영하는 ‘룰’이 필요하다.
물론 서로 다른 경제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공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한 지갑’을 유지하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따라서 깨가 쏟아지는 신혼 초기에 재테크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정한 신혼 재테크는 통장의 계좌만 합치는 게 아니라 마음을 합치는 것에서 출발한다. 단, 의욕이 너무 앞서 모든 것을 100% 공유하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특히 가정 이외에 직장이라는 각자의 사회공간이 있는 맞벌이는 더하다. 서로 합의를 통해 정한 개인적인 용돈 또는 지출의 범위 내에서는 그 내역에 대해 모른 척해주는 센스도 필요하다.
결혼 이후 두 사람은 새로운 가정의 주체가 된다. 예컨대 지금까지 직접 지불해본 적 없는 관리비며 우유값, 신문대금이 생활비에 포함된다. 연애시절에 사용하던 용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두 사람만의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데 쓰는 생활비가 두 사람 전체 수입의 약 50%를 차지하게 된다. 연애시절처럼 무분별하게 지출하면 안 된다. 연애가 낭만이라면 결혼은 현실이다. 지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가계부 작성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출 내역을 상세히 기록하고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자. 부부가 함께 작성한다면 서로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발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해본다. 옷을 많이 사고 술을 많이 마셨다는 이유로 부부싸움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서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얘기하라는 것이다. 특히 지출 통제는 신혼 초반, 젊은 시절부터 습관화하지 못하면 중년에는 교육비 등 더 많은 돈이 필요해 통제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부부 각자 및 공동의 목표 설정이 가능해진다. 목표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해결 방안도 찾을 수 있다. 작은 목표를 달성하는 시점에 서로에게 부상(副賞)을 줘 이런 대화나 목표 자체가 부부에게 재미있는 게임이 되게 할 수 있다면 훨씬 효과적이다.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재테크도 시작이 중요하다. 신혼 초 3년 이내, 특히 출산 전은 소득보다 지출이 적어 소득 대비 비중으로만 보면 인생에서 저축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시기다.
적어도 소득의 50% 이상을 저축한다는 각오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아끼고 저축만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모든 계획은 목표의 유무, 또 목표가 얼마나 구체적이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결혼 서약을 통해 둘이 만들어나갈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렸다면 출산과 교육, 내 집 마련, 은퇴 후 준비 등 그 과정에서 발생할 여러 재무적 이벤트를 예측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벤트별 필요금액과 저축기간을 구해야 한다.
먼저 출산 및 교육은 재무적 비용이 처음부터 크게 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혼과 동시에 적은 금액이라도 떼어 꾸준히 저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찍 시작할수록 복리효과 덕분에 적은 불입액으로 목돈을 마련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렇지만 가족 중에서 육아를 맡아줄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부부 중 한 명이 직장생활을 포기하거나 육아를 타인에게 맡김으로써 예상을 크게 초과하는 육아비용이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출산에 앞서 이 부분도 꼭 고려해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
저축과 투자를 통해서만 재산이 증식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우선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테크 관련 서적을 읽어 재테크의 개념을 잡아본다. 매일같이 접하는 신문, 잡지의 경제면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재테크 정보는 은행, 보험사, 증권사의 상품에 가입하면 좀더 쉽게 얻고 관심을 유지할 수 있다. 각 금융기관의 상품에 가입해 그 상품만이라도 제대로 알면 다른 상품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쉬워진다.
[# PART 2 내 집 마련하고 출발한 경우] 월 소득 50% 투자해 목돈 만들기 작전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30대 초반의 A씨 부부는 양가 부모님 덕분에 수도권에 아담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해 연간 가계소득은 6000만원 정도. A씨는 “남들은 ‘집이라도 마련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하지만,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전반적인 조언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재테크 목표를 설정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주택 이전비용, 자녀 교육비 및 결혼자금, 생활비·예비비, 그리고 노후 준비자금이다. 주택은 10년 계획, 교육비는 10년 후에 발생하는 사교육비와 20년 후 발생하는 대학 교육비로 나눌 수 있다. 예비비는 비상용 자금으로 부부의 3~6개월치 급여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이는 연봉의 25% 정도로 A씨 부부의 경우 1500만원이 된다.
이 정도 액수를 CMA나 정기예금으로 확보해두는 것이 좋다. 또 생활비는 지출 통제를 통해 최적화해야 한다. A씨 부부의 월수입은 500만원 정도다. 각자 부부 총수입의 50%는 저축과 투자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목돈이 들어가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필수인데, 종신보험에 암, 수술, 입원, 질병 특약을 첨부해 가입하고, 화재보험사의 실손보험에 가입하도록 한다. A씨 부부의 경우 총 보험은 4건에 약 30만원(월 소득의 6%) 들 것이다.
또 각각 소득공제형 연금을 월 소득의 10% 정도를 할애해 가입하고(A씨 경우 각 25만원씩 50만원), 이때 가능하면 연금저축펀드를 이용해 조금이라도 공격적인 상품을 선택하길 권한다. 월 소득의 8%(A씨 경우 각 20만원씩 40만원)는 보험사를 통해 비과세형 연금(변액연금)에 가입한다.
펀드는 국내형 적립식 펀드에 가입해 월 소득의 약 10%(A씨 경우 50만원)를 만기 3~5년으로 생각하고 불입한다. 만약 총소득액의 60% 정도를 저축 또는 투자할 수 있다면 국내형 펀드와 해외형 펀드를 6:4로 나눠 가입하길 권한다. 은행에는 월 소득의 16%(A씨 경우 80만원)를 불입한다. 1년 12달을 불입하면 1년 후 원금이 약 1000만원이 되는데, 1년마다 주가가 다소 낮아졌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기존에 불입하는 펀드에다 분할해 투입한다면 좀더 높은 펀드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5년 계획을 세우자. 매달 130만~180만원의 저축과 투자를 병행한다면 5년 후 원금과 수익률을 합해 1억원 이상의 종잣돈 마련이 가능하다. 1억원의 종잣돈은 부부의 투자성향에 따라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5년씩 2회, 즉 10년 계획을 수립하면 부부는 2억원 이상의 현금성 투자자산을 마련하게 된다.
[# PART 3 내 집 없이 출발한 경우] 내 집 마련 위한 ‘시드머니’ 확보에 총력
결혼 1년차 맞벌이인 B씨 부부는 요즘 고민이 많다. 경기는 회복되고 있다는데 영 피부에 와닿지를 않는다. 결혼 후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출산을 미뤘는데, 그나마 지금 상황에선 좀더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2년 후 출산’ ‘10년 이내 내 집 마련’이 계획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할 따름이다.
집 없는 신혼부부의 1차적 관심은 언제 내 집 마련을 하느냐다. B씨 같은 생각 때문에 요즘 결혼하는 커플의 상당수가 맞벌이를 한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맞벌이라고 해서 외벌이 가정보다 많이 저축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 잘 살아보자고 시작한 맞벌이지만 돈 관리를 두 명이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새는 돈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모이는 돈은 부족한 경우가 태반이다. 흔히 맞벌이라면 ‘2배의 수입’을 떠올리지만 그에 상응하는 ‘2배의 지출’도 따르게 마련이란 걸 잊기 쉽다.
국토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O8년 주거실태 결과에 따르면, 가구주가 된 뒤 주택을 마련하는 데 전국 평균 8년 3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니 10년 이내 주택마련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라 하겠다. 단, 신혼 초부터 꼼꼼한 계획과 함께 세제혜택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월 소득의 20~40%는 주택마련 자금, 예컨대 주택청약저축, 장기주택마련저축, 적립식 펀드 등에 불입한다.
지역에 따라 주택가격 차가 크지만, 서울 및 수도권에 주택을 마련하려면 대출 등 레버리지 활용도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청약저축은 우선적으로 가입하기를 권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주택 기간도 길어지고 출산으로 부양가족까지 생기면 청약 가점이 높아져서 청약 우선순위에서도 유리한 위치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무주택 세대주의 경우 소득공제까지 가능하고, 주택청약종합저축으로 가입하면 금리도 은행 적금보다 높으니 1석3조의 혜택이다.
청약은 우선 서민 주택안정을 위한 정책적 배려인 보금자리주택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상자기사 참조). 청약 가입기간이 2년 이상 됐지만 가입기간이 짧고 지금까지 주택을 한 번도 구입한 적 없는 무주택 세대주는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특별공급을, 자녀가 있고 결혼기간이 짧은 신혼부부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노려볼 만하다. 주택구입비용을 마련하기 전까진 장기 전세와 국민임대가 가능한 장기전세주택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장기전세주택은 서울에 사는 무주택세대주가 입주 대상인데, 주변 전세 시세의 80% 이하로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다.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특별공급이나 신혼부부 특별공급 및 장기전세주택은 소득, 혼인기간 등 청약조건이 제한되므로 자격이 되는지 사전에 체크해야 한다. 상당수가 아직 젊은 나이이므로 투자는 좀더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 전체 저축액의 50%는 적립식 펀드에 2~3개로 나눠 가입할 것을 추천한다.
특히 3년 이상 적립식으로 국내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면 비과세 혜택과 소득공제 혜택을 함께 받을 수 있다. 전 금융기관을 통합해 분기당 300만원(연간 1200만원)까지 가입할 수 있으며, 입금 금액에 대해 1년차 20%, 2년차 10%, 3년차 5%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가입시한이 2009년 12월31일이니 올해 안에 가입해야 한다. 3~5년 꾸준히 납입하면 자녀교육비는 물론 주택 구입을 위한 종잣돈이 될 것이다.
전체 저축액의 나머지 50%는 목적에 맞게 투자해야 한다. 평균수명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더 이상 자녀가 ‘노후보험’이 되기 어렵다. 노후를 위한 대비도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다. 우선 전체 저축액의 10% 정도를 노후를 위한 연금보험에 가입하고, 시간이 지나 소득이 늘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금액을 조금씩 늘리는 것이 좋다. 소득공제를 더 받을 필요가 있다면 세제적격연금보험으로 분산해 가입한다.
또한 자녀교육비에 전체 저축액의 10~20%를 투자한다. 출산 전에는 10% 남짓이지만 출산 이후 점차 비중을 늘려나가게 된다. 비상 예비자금으로는 단기성 예금으로 전체 저축액의 10%를 운용하고 질병, 상해 대비 보장성 보험 등 위험 대비에 역시 전체 저축액의 10% 안팎을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10%는 아직 젊을 때니 우량주식을 매입하거나 금융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 출시되는 상품에 가입하는 등 초과수익 전략으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환경변화에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고, 인생의 새로운 기회에 대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재테크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실천이다. 앞에서 설명한 내용은 특별한 마법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뭔가를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도 있고 ‘다 아는 얘기네’ 하고 생각에 그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자와 후자의 10년 뒤 모습은 어떨까. 꼼꼼한 계획과 꾸준한 실천으로 이 땅의 모든 신혼부부가 부자가 되는 날을 꿈꿔본다.
보금자리주택으로 내 집 마련 앞당기기
서민 보금자리주택 건설계획에 따라 건설되는 주택. 공공(주택공사, SH공사 등)이 재정 또는 기금의 지원을 받아 건설, 매입해 분양이나 임대를 목적으로 공급한다. 공급자 위주의 일방적인 공급에서 벗어나, 소득계층별 수요에 부응하는 다양한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수요자 맞춤형 주택정책이라 할 수 있다.
Q. 어떤 주택을 얼마나 건설하나.
2018년까지 10년 동안 150만 호를 건설할 계획으로 지역별로는 수도권 100만 호(66%), 지방 50만 호(34%)다. 유형별로는 국민주택규모(85㎡) 이하의 분양주택을 70만 호(47%), 장기임대주택을 80만 호(53%) 공급할 계획.
Q. 분양가 및 입주자 자금 부담은.
분양가는 용적률을 상향(200% 수준)하고, 녹지율도 합리적으로 조정하며, 공사시공 과정 합리화 등의 조치를 통해 종전 분양가상한제 가격 대비 15% 안팎의 싼 가격으로 공급한다. 주택구입 자금도 기금에서 저리로 지원하고 30년 장기대출 등의 조치로 구입 부담도 낮춰갈 계획이다. 최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임대주택 중 영구임대주택은 시중 전세가의 30%, 국민임대주택은 60~70%로 공급한다.
Q. 사전예약제란.
수요자들이 기존의 본 청약보다 1년 정도 앞당겨 인터넷 사전예약시스템을 통해 신청하면, 예비당첨자를 선정하는 방식. 인터넷 홈페이지는 10월12일에 오픈할 예정이다. 여기에서 3지망 단지까지 신청 가능하다. 다만 사전예약제를 예약 포기하거나 부적격자일 경우 최소 1년에서 2년까지 당첨에 의한 참여를 제한할 예정.
Q. 시범지구 공급 및 사전예약 일정은.
9월30일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서울 강남·서초, 고양 원흥, 하남 미사) 입주자모집공고를 냈다. 이후 10월7일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 기관 추천 특별공급을 시작으로 12일에 3자녀 특별공급, 15일에 노부모 부양자 우선공급, 20일에 생애최초주택구입자 특별공급, 22일에 신혼부부 특별공급, 26일에 일반공급 등의 일정으로 청약 접수를 실시한다.
Q. 당첨을 위한 전략은.
우선 청약 가입기간이 2년 이상 됐지만 가입기간이 짧고 지금까지 주택을 한 번도 구입한 적 없는 무주택 세대주는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특별공급을, 자녀가 있고 결혼기간이 짧은 신혼부부는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특별공급보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신청한다. 3자녀 이상의 다자녀가구는 10%까지 물량이 확대된 3자녀 특별공급을 신청하면 유리하다.
Q. 더 고려할 점이 있다면.
시범지구 4곳은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시범지구의 전매제한 기간이 7~10년으로 길다. 또한 5년 이상 의무적으로 거주해야 하는 실거주 의무기간을 둘 가능성도 있어 실수요자가 청약하는 것이 중요하다.
류정이 IBK기업은행 PB고객부 과장 rje0521@naver.com
예산 줄었어도 트렌디한 반지·시계·드레스로 최신 스타일 연출
글로벌 경제위기는 우리나라 예비부부들의 결혼 준비 가계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듀오웨드’가 경제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인 2008년 상반기에 결혼한 1523쌍과 올 상반기에 결혼한 2441쌍의 결혼비용 증감 추이를 조사한 결과 신혼여행, 한복, 예물에 사용된 평균비용이 2008년 987만4892원에서 2009년 937만5331원으로 50만원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듀오웨드 측은 올 하반기에도 상반기 수준의 평균비용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신부들이 가장 중시하는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헤어·메이크업 등 웨딩 패키지에 드는 평균비용 역시 지난해보다 감소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300만원 초중반대의 패키지 상품을 찾는 커플이 대다수였다면, 올 상반기에는 250만~270만원대의 상품을 선호하는 커플이 많았다.
달라진 결혼 예산은 예물과 패션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칠까. 예산은 줄었어도 벅차고 설렌 마음은 결코 줄지 않은 예비부부여, ‘에지’ 있는 결혼식을 원한다면 결혼 스타일 트렌드에 주목하라.
[드레스] 우윳빛 어깨 반짝반짝 드러내는 로맨틱 톱 드레스
지난 몇 시즌 동안 신부들을 열광케 했던 웨딩드레스계의 ‘핫 이슈’는 어깨선을 그대로 다 노출하는 ‘톱 드레스’다. 시댁 어른과 친지 앞에서의 과감한 노출을 부담스러워하던 수줍은 신부들조차 트렌드를 핑계로 과감히 우윳빛 어깨를 드러냈다.
최근 결혼한 방송인 박지윤과 장영란, 개그맨 정형돈의 아내 한유라 씨도 톱 드레스를 선택했다.
웨딩드레스업체 ‘블랑’의 이유숙 대표는 “목선을 우아하게 살려주는 단아하고 심플한 톱 드레스가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몸매를 예쁘게 드러내는 머메이드 스타일(인어 같은 S라인의 디자인)도 주목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올가을 불어닥친 ‘네오 로맨티시즘’ 트렌드는 좀더 장식적이고 여성스러운 패션 요소를 부활시켰다. 웨딩플래닝업체 ‘더웨딩컴퍼니’ 신수미 대표는 “한 가지 소재,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만을 내세운 지난 시즌에 비해 올가을에는 시폰, 오간자, 레이스 등의 소프트한 소재를 이용해 드레스의 볼륨감을 강조하거나, 스커트 끝단에 러플을 다는 식으로 화려하게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허리라인 또는 등에 포인트로 쓰이는 빅 사이즈의 리본이나 플라워 모티프 역시 신부들의 지지하에 인기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신 대표가 꼽은 올가을 가장 ‘핫’한 드레스 스타일은 엉덩이라인까지는 몸에 꼭 달라붙고 스커트 아랫단은 살짝 퍼지는 ‘피트 · 플레어(fit · flare)’룩. 절제된 라인이 여체의 곡선미를 극대화한다는 설명이다.
한편 남성 예복의 트렌드는 올가을 다크 네이비, 다크 그레이, 블랙 등 결혼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디셀러’ 컬러 외에 다크 브라운 컬러를 선택하는 신랑이 늘었다는 점이다. ‘맨스타’ 디자인실의 이해임 과장은 “절제되면서도 깔끔한 이미지를 주는 컬러가 대세로, 짙고 강한 이미지보다 다소 광택이 있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것이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헤어 · 메이크업] 전형적 스타일 탈피, 개성 있는 스타일로 연출
미스코리아 헤어스타일의 대명사가 ‘사자머리’라면 신부 머리의 핵심은 우아한 ‘업(up)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깨를 드러낸 톱 드레스를 입을 경우 머리카락을 위로 깔끔하게 올리는 것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내기 때문이다.
‘S휴’ 신미경 이사는 “뒷머리는 깔끔하게 위로 올리되, 컬이나 웨이브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신수미 대표 역시 “요즘에는 천편일률적인 헤어스타일에서 벗어나 각자의 얼굴형에 맞게 개성 있는 스타일을 연출하는 신부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메이크업의 경우 이목구비를 강조해 자칫 분장처럼 보이는 스타일에서 탈피, 각자의 피부톤을 살려 자연스러운 컬러로 연출하는 것이 트렌드가 된 지 오래다.
‘듀오웨드’ 손혜경 본부장은 “유명 연예인의 메이크업을 전담하는 주요 메이크업 숍들이 신부화장 부문에서도 ‘절대강자’로 자리잡은 만큼 연예인 메이크업 트렌드가 신부화장에 적극 반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서 김남주가 유행시킨 밝은 핑크색 립스틱이 그 무렵 신부화장에도 대거 활용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반지 · 시계] 심플하지만 개성 있게, 각자의 취향 존중
반지 등 예물 보석으로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예단 트렌드에 맞춰 심플한 스타일이 인기다. ‘뮈샤’ 김정주 디자이너는 “몇 해 전만 해도 커다란 보석의 원석 자체를 강조한 화려한 디자인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심플하면서도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간소한 스타일이 각광받고 있다”고 전했다.
다이아몬드 등 메인 보석으로 쓰이는 보석 값의 급상승도 이러한 트렌드에 한몫했다. 배우 이영애가 웨딩링으로 선택한 ‘참깨 다이아’ 반지가 ‘이영애 효과’에 힘입어 요즘 인기몰이 중이다.
심플한 링 위에 작은 다이아몬드 한 개가 소박하게 박힌 스타일로, 언제 어디에 끼고 나가도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개성을 중시하는 신세대답게 각 브랜드가 제공하는 일반적인 디자인 대신, 각자의 취향에 맞는 ‘맞춤 링’을 주문하는 예비부부도 적지 않다.
‘까르띠에’는 올 8월 다섯 종류의 결혼반지 디자인에서 하나를 선택한 뒤 자기 기호에 따라 캐럿, 컬러, 투명도의 다이아몬드를 주문하는 맞춤식 서비스 ‘셋 포 유 바이 까르띠에’를 선보인 바 있다.
예물시계 역시 전형적인 웨딩시계나 커플세트 스타일 대신 신랑신부 각자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추세다. ‘오메가코리아’ 홍보팀 김유정 씨는 “브랜드만 통일한 뒤 각자 원하는 디자인을 선택하기도 한다.
또한 낡고 색이 변해 ‘영원’을 상징하는 결혼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쳐놓았던 가죽밴드 시계를 선택하는 신랑신부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결혼 5년차들이 예비부부에게 들려주는 말, 말, 말
♥ “결혼 후에도 긴장의 끈을 풀지 말자”
푸석푸석한 머리, 편하게 입은 트레이닝복…. 연애시절과는 너무도 다른, 아내의 꾸미지 않은 모습이 처음엔 편안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남자로 보지 않아서 저러나’ 싶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연애시절처럼 완벽하게 치장은 안 하더라도 나를 의식하고 예쁘게 보이려 노력한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안상윤(회사원·37·결혼 5년차)
♥ “내 부모의 한계를 인정하고 들어가라”
내 어머니에 대한 아내의 불만은 결혼 준비과정부터 시작됐다. “우리 엄마가 그럴 리 없다”며 아내를 타박했지만 계속해서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은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설날 아침, 아내에게 볼일이 있어 제사 준비가 한창인 부엌에 들어갔다가 어머니와 아내의 대화를 듣게 됐고, 그곳에서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내 어머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집, 드라마처럼 며느리 앞에서만 인격이 바뀌는 시어머니 이야기가 바로 우리 집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내의 불만을 들어줘라. 물론 고부갈등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이해받지 못한다’는 아내의 외로움이나 스트레스는 풀 수 있을 것이다.
김용상(가명·교사·34·결혼 5년차)
♥ “연애시절 데이터가 결혼생활에서도 통하는 건 아니다”
캠퍼스 커플로 5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한 만큼 남편과는 모든 것을 맞추며 살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지만, 막상 결혼생활을 해보니 그렇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다. 내가 미처 모르던 나쁜 습관, 잠버릇….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라고 불평하기보단 연애 초기 서로에 대해 잘 모르던, 더 많이 알고 맞춰가기 위해 노력하던 그 시절의 마음을 되새기며 사랑을 키워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박윤수(회사원·30·결혼 4년차)
♥ “기분도 좋지만 실리를 생각하라”
결혼 준비를 하다 보면 돈 들 곳 투성이다. 준비할 항목이 많다 보니 100만원, 200만원 정도는 우습게 날아간다. 그런데 결혼 후 생각해보니 꼭 필요한 지출이었는지 후회되는 항목도 꽤 많다. 절차나 관례를 따르는 것도 좋고 평생 한 번 하는 결혼이라는 기분을 살리는 것도 좋지만, 뺄 수 있는 항목은 과감하게 빼고 결혼식 이후를 위해 돈을 남겨놓는 것도 실리적인 선택이 될 듯하다.
박수정(회사원·34·결혼 3년차)
♥ “대화가 필요해”
연애시절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만나지 못한 날이면 밤을 새우며 전화통화를 할 정도로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점점 말이 줄어들었다. 우리 부부의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 2년째에 접어들면서 남편 퇴근 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의 시간을 ‘대화 타임’으로 정했다. 처음엔 별로 할 말도 없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서로의 생활을 더 잘 알게 된 듯한 느낌이다. 아무리 둘 사이가 편해져서 말이 필요 없는 관계가 되었다 하더라도 대화는 부부의 마음을 이어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김영인(전업주부·36·결혼 4년차)
♥ “사랑은 밥상머리에서 자란다”
결혼 전 자취생활이 길었기 때문인지 ‘함께 밥을 먹어줄 사람’에 대한 ‘로망’이 컸다. 비록 맞벌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시간을 맞추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아침, 저녁 중 한 끼, 그리고 주말의 식사만큼은 둘이 얼굴을 맞대고 먹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둘이 나란히 앉아 한솥밥을 먹는 일상을 공유하면서 동지의식을 쌓아가는 것이야말로 대단하진 않아도 연인과는 다른 부부의 특권 아니겠는가.
조용우(회사원·31·결혼 2년차)
♥ “이유 없는 불안은 없다”
결혼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전에 비해 상대방의 짜증과 잔소리가 늘어났다. 주위의 결혼 선배들은 “결혼 전엔 누구나 겪는 일종의 우울증, ‘매리지 블루(marriage blue)’라며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만 참아라”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결혼을 해도 아내의 짜증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참다못한 내가 아내에게 대화를 청해 이유를 들어보니 모두 결혼 전 나의 무심한 태도와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원인이 있었다. 이유 없는 불만은 없었다. 다만 아내의 불안을 외면한 나의 무심함이 있었을 뿐이다.
정현철 (웹디자이너·36·결혼 4년차)
♥ “과잉 노력은 결혼생활의 짐”
신혼 초의 의욕으로 시부모님께 높은 점수를 딴 것은 좋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점수가 족쇄가 돼 ‘언제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내 태도가 변했다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 처음엔 낮은 점수의 며느리라고 섭섭하게 생각하시더라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100점을 만들어드리는 편이 오히려 효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김승희(교사·30·결혼 4년차)
♥ “당신이 누구 편인지 확실하게 각인시켜라”
남편은 시집과의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내 편을 들어줬다. 고부갈등이 심하던 신혼 초에는 남편이 앞서 내 편을 들어준 덕분에 나에 대한 시어머니의 대우가 많이 달라졌다. 요즘엔 “네 남편 무서워 뭐라 못하겠다”는 농담까지 하실 정도로 사이가 좋아졌다. 처음엔 남편이 나를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컸는데, 요즘엔 빨리 자기 식구로 만들려고 머리를 쓴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
이성화(플로리스트·34·결혼 3년차)
♥ “모든 것을 다 가질 순 없다, 버릴 것과 취할 것을 결정하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며 미혼시절의 생활습관까지 그대로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비습관, 교우관계, 가족관계, 취미생활, 일에 대한 욕심….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버릴 것과 지킬 것을 결정해야 할 그 순간에 당황하지 않도록 결혼 전, 미리 자신의 각오를 다져놓는 것이 좋다.
장봉준(회사원·36·결혼 5년차)
♥ “때로는 물질이 마음을 대신한다”
마음만으로 행복을 느끼기엔 결혼생활이 너무 길고 힘들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의 디너, 마음껏 쓰라며 건네주는 신용카드가 행복감을 안겨주는 순간도 있다.
신혜진(회사원·30·결혼 3년차)
♥ “듣기 싫은 말일수록 웃으며”
결혼 후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는데, 아내의 화법에 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아내는 밝은 성격이라 늘 웃으며 얘기를 한다. 시집에 대한 불만, 나에 대한 비난까지도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사실인지, 그렇게 들으면 불쾌감도 적고 ‘아, 그래?’라고 수긍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이승준(대학강사·38·결혼 4년차)
♥ “적절한 이벤트는 불안 가라앉히는 진정제”
큰아이가 태어난 후 육아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사소한 일에도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이것이 싸움으로 이어지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 기분전환을 시켜주겠다는 남편을 따라 펜션에 갔다. 그곳에서 남편이 준비해둔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라는 플래카드를 보았다. 그리고 남편이 건네준 꽃다발을 받는 순간, 그동안의 우울한 기분이 단번에 날아가는 듯했다. 여자가 이벤트를 원하는 이유는 이벤트 자체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준비해주는 남자의 마음이 좋아서라는 사실, 남자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엄태신(회사원·32·결혼 5년차)
♥ “이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 전에는 주위의 기혼자들에게 ‘누구와 결혼하든 결국 마찬가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을 해보니 다른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힘든 일, 참아야 할 일 투성이인 결혼생활에서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참고 견뎌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문혜영(회사원·35·결혼 3년차)
♥ “결혼은 수행이다”
결혼 전 친정엄마가 “수행하는 마음으로 살아라”라고 충고를 해주셨을 땐 괜한 소리라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보니 화나는 일, 짜증나는 일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상대에게 화를 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기, 불쾌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에 일일이 맞서지 않기. ‘수행’의 길은 멀고도 험했지만 먼저 참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자세가 지금의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자부한다.
장혜은(전업주부·33·결혼 5년차)
♥ “너는 다른 별에서 왔지!”
남녀의 차이가 얼마나 크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나왔을까. 연애시절에도 느꼈지만 결혼을 해보니 남편과 내가 얼마나 큰 차이를 갖고 있는지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벽에 부딪힌 느낌이 들 때면 ‘넌 어느 별에서 왔니?’라고 가볍게 넘기고 상대방을 잘 관찰해보라. 외계생물을 대하는 듯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해보라. 물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불필요한 충돌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박신애(회사원·34·결혼 4년차)
♥ “프러포즈는 확실히 받아라”
연애기간이 길어서인지 남편으로부터 따로 프러포즈를 받지 않고 주위의 흐름에 떠밀리듯 결혼을 했다. 결혼 전에는 프러포즈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결혼 후 둘 사이를 추억할 만한 거리가 없다는 것이 점점 아쉬워졌다. 특히 친구들에게 프러포즈와 관련된 자랑을 들을 때면 부러움을 넘어 억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TV에 나오는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꽃 한 송이, 말 한마디라도 좋다. 결혼을 청하던 남편의 한마디는 결혼생활 내내 꺼내보는 핑크빛 추억으로 아내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줄 터다.
정숙희(프로그래머·30·결혼 4년차)
♥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부부싸움 중 아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말 안 하면 몰라?”라는 것. 하지만 내가 점쟁이도 아닌데 말하지 않은 생각까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사실 남자의 감정은 여자만큼 예민하지 못하니, 속상하고 섭섭하고 화나는 일을 상대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 직접 말로 전달해줬으면 좋겠다. 남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단순하다.
김상훈(회사원·29·결혼 2년차)
♥ “화는 금방 풀어라”
늘 재미있게 사는 선배 부부가 있는데, 화목의 비결은 기분 나쁜 일은 그 자리에서 말해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마음속에 쌓아두지 말고 바로 풀면 작은 싸움은 되지만 큰 싸움으로 번질 일은 절대 없다는 것. 혼자 참아보려 생각했던 것이 결국 터지면서 큰 싸움이 된 경험을 몇 차례 하니 선배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강정미(회사원·34·결혼 3년차)
일본·미국·이탈리아 3色 결혼 트렌드
[일본] 축의금 27만~40만원, 정말 친한 사람만 초대
일본인인 아내와 나는 결혼 전부터 함께 살았다. 얼마 전 아내의 둘째 동생인 다쓰에게서 연락이 왔다. 10월에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다쓰와 그의 여자친구도 지금 함께 살고 있다.
올해 초 양가 어른이 모여 혼담을 주고받았는데, 그 후 두 사람이 함께 살 곳을 마련해 살림을 합친 것이다. 지금이야 결혼날짜가 정해졌지만, 이들이 동거를 시작했을 때는 사실 결혼을 언제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두 사람에게 동거를 먼저 권한 것도 예비 장인, 장모였다고 하니 동거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을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아내의 첫째 동생인 유우도 동거 중이다.
공무원인 유우는 같은 직장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올해부터 함께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아내뿐 아니라 2명의 처남 모두 동거를 하고 있거나 경험했다. 우리라면 ‘콩가루 집안’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는 동거를 결혼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과정, 서로를 더 잘 알기 위한 기회 정도로 생각한다. 동거한다는 것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 인기 개그맨 콤비 ‘다운타운’의 멤버인 마쓰모토 히토시의 결혼 발표가 화제가 됐다. 독설가와 바람둥이 이미지가 강했던 탓인지 45세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독신이던 그였다. 결혼을 절대로 안 할 것 같았기에 그의 결혼 소식은 더욱 신선하게 느껴진 듯하다. 그가 결혼 발표를 한 이유는 간단했다. 결혼할 상대 여성이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동거는 결혼으로 가는 과정
일본에서는 혼전임신이 비교적 흔하다. 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 ‘서머 스노’와 영화 ‘연애사진’ ‘철도원’ ‘비밀’ 등을 통해 한국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히로스에 료코도 2003년 결혼 발표를 할 당시 임신 5개월이었다. 하룻밤의 관계로 원치 않는 아이를 갖게 된 커플을 다룬 드라마 ‘속도위반 결혼’의 주연을 맡았던 그가 현실에서도 같은 상황에 처한 것.
일본 최고의 인기 여가수이자 당대 문화 아이콘이었던 아무로 나미에, 드라마 ‘프라이드’ ‘런치의 여왕’ ‘장미가 없는 꽃집’ 등에서 활약한 다케우치 유코 등 임신 후에 결혼을 발표한 연예인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일반인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임신 후에 결혼하는 것을 ‘데키찻타 겟콘’(できちゃった結婚, ‘できちゃった’는 ‘(아이가) 생기고 말았다’는 뜻) 혹은 줄여서 ‘데키콘’이라 부른다. 히로스에 료코가 주연한 드라마 ‘속도위반 결혼’의 일본어 제목도 바로 ‘데키찻타 겟콘’이었다.
‘속도위반’ 다반사, 임신에 거부감 없어
명함 한 장 주고받은 사이라도 결혼식에 초대하는 곳이 한국이라면, 이와 반대로 친하지 않으면 절대 초대하지 않는 곳이 일본이다. 일본 결혼식에도 우리의 축의금과 비슷한 것이 있다.
바로 ‘고슈기(ご祝儀)’. 일본에서는 이 고슈기로 친구 사이라면 2만~3만엔(27만~40만원), 가족이라면 5만~10만엔(67만~135만원)의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이런 이유로 축의금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친한 친구만을 결혼식에 초대한다.
초대하는 사람의 처지에서도 피로연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물론 참석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주는 선물, 즉 ‘히키데모노(引き出物)’ 또한 비교적 고가이기 때문에 이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친한 사람만 초대한다. 일본 결혼식에서는 초대 손님이 많아야 100명을 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혼식은 일본 전통종교인 신도(神道)의 사원이나 교회에서 많이 열린다. 식이 끝나면 호텔과 같은 곳에 모여 식사를 하며 신랑, 신부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슬라이드쇼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피로연이 끝나면 고마움의 표시로 방문객에게 히키데모노를 나눠준다.
선물로는 식기, 시계, 꽃병이나 조미료, 건어물, 술, 전통과자 등이 애용되는데 최근에는 물건이 아니라 기프트북을 주는 것이 트렌드다. 기프트북은 일종의 상품권 개념으로, 원하는 것을 직접 골라 구입하라는 뜻이다. 물론 기프트북에 소개되는 모든 상품은 가격이 동일하다. 답례도 공평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도쿄=김동운 여행작가 dogguli@hotmail.com
[미국] 1년간 준비, 그들만의 행복한 ‘프리 스타일’
미국에서도 결혼식은 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예비 신랑·신부에게 결혼식이란 단순히 하나 됨을 알리는 예식이 아니라 평생 가장 오래도록 기억할 하루, 또 언젠가 세월이 지나 부부의 정이 식더라도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는 추억의 바탕이 된다.
미국인들은 프러포즈가 이뤄진 날을 기점으로, 보통 1년 동안 결혼식 준비에 힘쓴다. 1년이면 지나치게 긴 시간 같지만 미국 결혼식의 현실을 알면 그것도 결코 많은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혼식 장소 정하기를 시작으로 청첩장 준비,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구입, 신랑과 신부의 들러리 결정, 음악을 맡아줄 밴드와 DJ 선정, 꽃장식과 실내장식 준비, 예식과 리셉션 일정 짜기 등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은데, 대부분의 커플이 웨딩플래너 없이 이 모든 절차를 둘이 준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본인들이 직접 준비하는 결혼식이기에 그들만의 개성이 묻어나게 마련이다. 얼마 전 참석한 미국인 친구 달린과 마이크의 결혼식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바닷가 야외에서 진행됐다. 신랑·신부가 어릴 적 살았던 바닷가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어 결혼식 장소로 그곳을 택했다고 했다. 동료들과 만든 이탈리아 해산물 요리를 대접하는 요리사 신랑과 그동안 모아온 조개껍데기를 하객에게 선물하는 신부를 보니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으로 ‘교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또 뉴저지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 게리와 르네는 유난히 영국식 펑크록을 좋아하는 그들답게 결혼식장을 펑크록 댄스장으로 만들었다. 예식은 두 사람이 현재 함께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바닷가에서 치르고, 바로 이어서 2부 파티를 인근 컨트리클럽에서 열었다. 2부 파티는 펑크록 음악이 흐르는 댄스파티였는데, 같은 음악을 즐기는 동호회 친구들이 옷을 맞춰 입고 서로 몸을 부대끼며 강렬하게 춤을 췄다.
결혼예식과 리셉션 스타일 역시 천편일률적인 한국에 비해 무척 자유롭다. 다국적, 다문화 출신 이민자들이 ‘멜팅폿(melting pot)’을 이루는 국가적 특성 때문인지 결혼식마다 그 결혼식만의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종교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문화의 차이가 큰 두 나라 사람이 만나 결혼하기도 하므로 이들의 결혼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미국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결혼문화를 창조한다.
펑크록 콘서트장, 미술관, 말농장 등서 추억 만들기
미술관을 좋아하는 수전과 마이크의 결혼식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적한 미술박물관 뒤뜰에서 열렸다. 부모가 각각 독실한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인 수전과 마이크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결혼식은 두 종교의 ‘화해의 장’ 같은 인상을 풍겼다. 두 종교를 대표하는 목사와 랍비가 차례로 앞에 나와 예식을 지휘하고 두 가족도 이에 맞춰 엄숙하게 결혼식을 이어갔다.
결혼을 앞두고 집안의 반대가 심했던 커플인 만큼 이들의 결혼식을 지켜보는 친구들의 마음이 뭉클했다. 필자 역시 얼마 전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말농장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맞이했다. 유년기를 동물농장에서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는 우리 커플은 일찌감치 야외 농장을 식장으로 점찍어두었다. 더군다나 신랑은 체코에서, 나는 한국에서 자랐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결혼식은 두 나라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퓨전식’이어야 했다.
체코의 전통 동요에 맞춰 신랑·신부가 춤을 췄고, 이어진 신부 아버지와 신부의 춤은 우리 동요 ‘꽃밭에서’로 이어갔다. 이질적인 두 문화가 결혼을 매개로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최근 미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경제위기 때문에 결혼식 절차가 예전보다 훨씬 간소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간소하지만 개성 있는 결혼식을 선택해 평생의 ‘이벤트’를 만끽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오히려 적은 예산으로 결혼식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마련하는 커플이 늘어나면서 한층 창조적인 결혼식 문화를 빚게 된 것이다.
뉴욕=이혜은 인테리어디자이너 h@studiogaia.com
[이탈리아] 사랑의 세레나타 … 로맨틱 판타지 경험
이탈리아 결혼식은 격식 있고 패셔너블하면서도, 절제되고 화려하다. 유럽과 미국, 호주, 일본에서도 이탈리아에서 웨딩마치를 올리고 싶어 하는 이들의 원정 결혼이 이어지는 게 트렌드가 될 정도. 이탈리아 결혼식은 무엇보다 ‘자연스런 품격’과 ‘심플한 우아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순수함이 없는 과시나 허영, 자연스럽지 않은 인위적인 격식은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결혼의 시작인 청첩장과 피로연 초대장 문화부터 남다르다. 청첩장과 피로연 초대장을 따로 인쇄한다. 청첩장만 받은 경우 축전만 보내면 되므로 받는 이의 부담이 없고, 피로연 초대장이 동봉돼 있으면 미리 전화로 참석 여부를 알린 후 선물을 보낸다.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축의금을 주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혼살림에 필요한 혼수를 신랑·신부가 특정 상점이나 백화점을 방문해 결혼선물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으로 마련한다. 이는 미국, 프랑스 등 다른 서구에서도 관행이 된 풍습이다. 결혼선물 리스트 ‘리스타 디 노체(Lista di Nozze)’를 작성하면 친구나 친지들이 이 상점을 방문, 리스트에 있는 아이템 중 각자 예산에 적합한 선물을 고른다. 다른 사람이 이미 구입한 제품에는 표시가 되므로, 중복되지 않게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어 실용적이다.
리스트에서 고르지 않을 경우 결혼선물로 보통 은제품을 많이 한다. 은 장식품, 은그릇 등을 선물하는 것이 이탈리아식 전통이다. 요즘은 수년간 동거한 후 결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기본 살림을 갖춘 커플이 많다. 그래서 한 사람이, 또는 십시일반으로 신혼여행 패키지를 선물하기도 한다. 한때 사라졌다 다시 살아나고 있는 ‘세레나타’도 이탈리아 결혼식의 특징이다.
결혼식 며칠 전에 예비 신랑은 밴드를 동원해 신부에게 ‘세레나타’를 바친다. 커플에게 의미 있는 세레나타를 3, 4곡 신부에게 선사한 뒤 커플댄스로 로맨틱한 밤을 마무리한다. 이탈리아 법에 따라 결혼식은 성당이나 시청에서만 올릴 수 있으므로 이탈리아에는 예식장이 따로 없다. 결혼을 앞둔 커플이 선망하는 성당은 동화 속에 나올 듯한 작고 아담한 중세 마을 또는 전원에 자리잡은 곳이다. 로마 근교에 있는 ‘산타마리아 인 첼자노’ 성당은 2년 반은 기다려야 할 만큼 대기 명단이 긴, 가장 인기 있는 결혼 명소다.
유명 드라마 속 결혼식 촬영도 자주 한 곳인데 실제로 가보면 정말 아담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동화의 나라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듯한 ‘판타지’를 경험할 수 있다. 결혼식 때 하루만 입는 웨딩드레스. 하지만 이 하루를 위해 나만의 웨딩드레스를 맞추거나 자신의 취향과 개성에 맞는 드레스를 구입해 평생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할머니나 엄마가 딸에게 물려주는 빈티지 드레스는 그래서 더 가치 있다. 색다른 것은 예비 신랑이 신부 드레스를 미리 보면 불길하다고 믿기 때문에 웨딩드레스를 예비 신랑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결혼식 전날 자정부터 예비 신랑 얼굴을 보지 않는 풍습도 이 때문이다. 이 전통 또한 서구 다른 나라들도 지키고 있는 일종의 ‘서양식 미신’이다.
최고의 피로연장은 고풍스러운 전원빌라에서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피로연. 결혼식장이 시청이나 성당으로 제한돼 있어 피로연 장소는 당연히 다른 곳으로 정해진다. 모던한 호텔 연회장 같은 곳은 ‘역사가 없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다는 것이 우리와 사뭇 달라 특이하게 느껴진다. 이탈리아 커플이 꿈꾸는 피로연은 중세 성이나 귀족의 전원 빌라에서 여는 파티다. 인생의 가장 ‘역사적인’ 이벤트인 결혼식을 올리는 곳으로 역사가 깊은 곳을 찾겠다는 뜻이다.
대도시 근교의 중세 성이나 귀족의 전원빌라는 고풍스럽고 귀족적인 실내와 자연경관이 뛰어난 정원을 갖춰 최상의 로케이션으로 꼽힌다.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와 케이티 홈스도 로마 근교 브라차노 호수가 내다보이는 ‘오르시니성(城)’에 반해 원정 결혼식을 올렸다. 이탈리아는 기후가 좋고 여름이 길다 보니 오후 6시께 결혼식을 올리고 피로연을 이브닝 파티로 하는 일이 흔하다.
이곳 피로연은 적어도 3~4시간 진행된다. 수백명의 하객을 초대하는 북새통 피로연은 남부 시골에서나 볼 수 있고, 대부분은 엄선된 하객과 신랑·신부가 함께 즐기는 이벤트 피로연을 연다. 신랑·신부는 개성과 취향에 맞는 맞춤형 파티를 기획한다. 이탈리아인은 테이블 세팅부터 메뉴, 음악과 데커레이션 등에 두 사람의 취미나 라이프스타일을 은근히 반영하는 재주가 뛰어난 것 같다.
결혼식과 관련한 이탈리아 풍속으로, 행복한 결혼을 상징하는 하얀 ‘콘페티’ 사탕을 흰 레이스나 망사에 포장해 하객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이 있다. 이때 답례품도 선물하는데, 주로 작은 도자기나 은제품으로 고가 선물은 피하는 게 에티켓이다. 이탈리아엔 ‘비 맞은 신부는 행운이 있다’는 속담이 있어 결혼식 날 비가 와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식장을 나오는 신랑·신부에게 쌀을 뿌리는 것은 풍성하게 살라는 바람이 담긴 또 하나의 풍속이다.
예식에 참여하는 하객은 피로연 장소나 파티 성격에 따른 드레스 코드를 따라야 한다. 유럽에서 가장 패셔너블하다는 평을 얻는 이탈리아인들답게, 결혼식 패션에도 한껏 신경을 쓴다. 하나의 ‘룰’은 순백색 의상은 신부 외에 절대 입지 않는 것. 이전에는 금지됐던 블랙 드레스는 저녁 피로연이 성행하면서 요즘은 괜찮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양가 부모와 직계 가족도 패션 스타일을 미리 정한다.
각자 제멋대로 멋 내기가 아니라 적당히 통일감 있으면서 개성 있는 스타일로 조율한다. 형제, 자매가 같은 디자이너의 패션을 입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식 들러리처럼 똑같은 드레스는 금물이다. 남자의 경우 넥타이 기본 색을 정하고 각자 컬러 톤과 패턴이 다른 넥타이를 맨다. 간단한 선택이지만 깔끔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주인공인 신랑·신부를 중심으로 한 폭의 ‘명작’을 완성하는 데 조연인 가족들의 패션 역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미남 스타 조지 클루니가 쇼걸 출신 이탈리아인 엘리자베타 카날리스와 결혼한다는 소식이 최근 보도돼 이탈리아 전역이 떠들썩하다. 파파라치들을 따돌리기 위해 초호화 크루즈에서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는데 이 또한 이탈리아식 웨딩답다.
로마=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결혼, 소설과 영화로 끊임없이 창작 … 최근엔 여성의 주체성과 자부심 강조
문학, 미술, 영화, 음악 등 거의 모든 예술 장르에서 사랑과 결혼만큼 자주 다루는 소재는 드물다. 사랑과 결혼이라는 주제를 금지한다면 인류의 문화활동이 정지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특히 소설과 영화 장르가 그렇다. 일단 한 여자와 한 남자를 설정하고 나면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온다는 어느 소설가의 창작 노하우(?)는 결코 헛된 말이 아니다. 결혼을 다룬 작품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결혼의 풍경이 있겠지만, 그 다채로운 풍경 가운데 몇몇을 살펴보자.
야마모토 후미오의 ‘지혼식’(창해)은 8편으로 이뤄진 결혼 연작소설이다. ‘지혼식(紙婚式)’은 본래 결혼 1주년을 이르는 말로, 이날 종이로 된 선물을 주고받으며 기념하는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8편의 작품 가운데 깨가 쏟아지는 닭살 부부의 이야기는 ‘물론’ 없다.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는 일종의 예방주사가 될 수도 있고, 결혼생활 중인 이들에게는 공감을 느끼며 부부로 산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돌이켜보게 만들기도 하는 작품이다.
‘결혼이란 그럼에도 혼자이길 선택하지 않는 것’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상대의 일과 친구 이야기를 그다지 흥미롭게 듣지 않게 되었다. 고민을 털어놔봐야 적극적으로 상담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지 않게 되었고, 둘이 외출해도 즐겁지 않았다.
휴가를 맞추는 번거로움도 포기했다. 남편은 이미 나의 일부이다. 타인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있어도 외로워한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타인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표제작 ‘지혼식’ 중에서)
그 흔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가 각별한 작가 에쿠니 가오리. 그의 많은 작품이 소개됐지만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소담출판사)는 자전적 에세이와 소설의 중간쯤 되는 분위기로 결혼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매력은 결혼에 관한 촌철살인의 단상, 상념, 그리고 성찰에 있다.
“결국 결혼이란 그럼에도 혼자이길 선택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있지 않는 편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있는 것.” “나는 남편과 함께 본 도치기의 별밤과 나가노의 고추냉이밭만큼이나 내가 보아온 풍경과 남편이 보아온 풍경을 사랑한다. 항상 같은 사람과 밥을 먹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먹는 밥의 수만큼 생활이 쌓인다.”
오정희의 중편소설 ‘바람의 넋’(문학과지성사)에서 결혼 초 전업주부인 주인공이 남편에게 묻는다. “당신이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내가 뭘 하고 있을까를 생각해보기도 하나요?”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여자들의 일상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대답이 궁했다. 남자들이 나간 집에서 여자들은 설거지, 청소, 빨래를 하고, 이런 일을 마치면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이거나 가벼운 클래식 소품과 자잘한 생활 주변의 일을 담은 사연으로 꾸며지는 라디오의 여성 프로를 듣고 저녁 찬거리를 생각하고 시장에 갈 것이라는 정도가 기껏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아내의 하루였다.”
주인공 여성은 결국 ‘바람의 넋’이 되어 떠돌게 된다. 스티븐 비덜프는 ‘우리는 사랑을 배우기 위해 결혼했다’(북하우스)에서 모든 사람의 자아 속에서 어린아이 부분, 부모 부분, 어른 부분이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말한다. 그러한 다른 목소리들이 배우자의 자아 속 다른 목소리들과 어떻게 부딪치느냐에 따라 결혼생활의 유형이 결정된다는 것. 예컨대 어떤 때는 어른-어른으로 의젓한 대화를 하다가, 때로는 아이-아이로 만나 토닥거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다른 사람이 아닌 이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했을까?’ 하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비덜프에 따르면, 우리가 특정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우리 내부에 장착된 일종의 ‘사랑 조정장치’ 때문이다. 그 장치는 겉으로는 공통점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사실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서로 많이 닮은 상대, 즉 나 자신과 닮은꼴인 상대에게 빠져들게 만든다.
결혼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역사적인’ 제도이자 관습이다. 초기 인류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를 통해 다양한 문화권의 결혼관은 어땠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 스테파니 쿤츠의 ‘진화하는 결혼’(작가정신)이다.
우리가 결혼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 예컨대 사랑을 기반으로 이뤄지며 가능하면 남자가 생계를 책임지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서의 결혼상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 이후부터 시작됐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시기 동안 결혼은 낭만적이지도 가슴 뭉클하지도 않은 정치 행사이자 사회 행사였다. 결혼은 이권과 생존이 걸려 있는 중요한 계약이었고, 사람들은 결혼을 자신과 집안의 사회, 경제, 정치적 지위를 획득하거나 강화하는 발판으로 삼았다.
이제 영화 속 결혼 풍경을 살펴보자. 어릴 때부터 결혼식을 지독히도 좋아했던 주인공 제인. 지금은 지인들의 결혼식 들러리만 서는 처지다.
짝사랑하던 남성도 여동생에게 빼앗긴 그녀는 좋게 말하면 천사표,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착한 사람 콤플렉스 덩어리인 셈. 앤 플레처 감독의 ‘27번의 결혼 리허설’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주인공이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남성과 사랑을 시작하리라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여성 가운데 자신이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이가 적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이기 전에 사랑에 관한 진정한 자아를 찾는 일종의 성장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랑은 무엇이고 결혼은 또 무엇인가
조엘 즈윅 감독의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그리스 전통 문화를 고집하는 가정에서 살아온 여성 툴라가 미국식 청교도 가정에서 자란 미국 남성 이안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문화적 갈등과 사랑 이야기다. 그리스식 가족주의와 미국식 개인주의의 문화적 차이가 영화의 중요한 배경을 이룬다. 상대방의 이름도 제대로 발음 못할 정도로 이질적인 두 사람은 어떻게 그 이질성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말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문화적 이질감과 차이를 심각하게 증폭시켜 그려내기보다는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가벼운 터치로 해소시켜버리지만, 결혼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얼굴짱 몸짱이 아니라 얼굴꽝 몸매꽝인 주인공 뮤리엘은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산다. 제대로 데이트 한 번 못해보고 부케를 받고도 결혼과는 거리가 멀기만 한 그녀는 시드니에 정착한 뒤 데이트도 하고 키스도 경험한다.
여전히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사는 그녀. 급기야 호주 국적을 취득하려는 미남 수영선수에게 위장결혼 제의를 받고 꿈같은 결혼식을 올리지만 곧이어 찾아오는 비극. P. J. 호건 감독의 ‘뮤리엘의 웨딩’은 스스로에 대한 거짓이나 환상이 없는 당당한 주체성과 자부심이 여성의 삶에서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사랑과 결혼에서도 분명 그러할 듯.
결혼은 좋은 조건의 상대와 하고 연애는 겉궁합, 속궁합이 맞는 사람과 할 수 있다면? 지적이고 매너 좋은 연애지상주의자인 대학 강사(감우성 분)와 섹시하고 당돌한 조명 디자이너 여성(엄정화 분)의 사랑. 여성은 돈 많은 의사와 결혼하고 남성은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며 각자의 욕망을 서로에게서 충족시킨다.
이른바 불륜. 그런데 둘 사이의 불륜 관계가 진정한 사랑에 바탕을 둔 결혼생활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사랑은 무엇이고 결혼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작가 이만교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한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단정적인 제목과 달리 결말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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