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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洋大國의 꿈’이 시작되는 곳

醉月 2009. 10. 13. 08:50

대한민국 최남단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를 가다  ‘海洋大國의 꿈’이 시작되는 곳     

 제주도에서 헬기로 1시간, 배로 10시간 거리, 大洋 한가운데 있는 과학기지로 세계 최대 규모

⊙ 제주도 남쪽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km, 중국 위산다오(余山島)에서 북동쪽으로 287km,
    일본 도리시마(鳥島)에서 서쪽으로 276km 지점에 위치
⊙ 이어도 과학기지에서 수집한 각종 해양 정보와 대기 정보 세계와 공유
   

 徐喆仁 月刊朝鮮 기자  (ironin@chosun.com)

<100m 상공 헬기에서 내려다본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제주공항 인근의 海警(해경)항공대에서 러시아제 카모프 헬기가 굉음을 내며 이륙했다. 조종사와 부조종사 외에 필자와 玄鏡柄(현경병) 의원, 작곡가 김창환씨 등 총 7명이 헬기에 탑승했다. 조종사는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까지 1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안내 멘트를 했다.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이하 ‘이어도 기지’로 표기)는 제주도 남쪽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km, 중국 위산다오(余山島)에서 북동쪽으로 287km, 일본 도리시마(鳥島)에서 서쪽으로 276km 지점에 위치한 無人(무인) 기지다. 이 지역은 한반도로 유입되는 태풍의 40%가 통과하는 ‘태풍의 길목’이며, 연간 25만 척의 배가 통과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다.
 
  1995년 첫 삽을 떠 2003년 6월에 완공한 이어도 기지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태풍의 진로와 규모를 실시간으로 관측·예보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완공 직후인 2003년 9월, 태풍 매미의 한반도 상륙을 10시간 전에 정확히 예보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기지는 기상 관측이나 예보뿐만 아니라 韓·中·日(한·중·일) 선박들의 등대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이어도 기지가 들어서 있는 해역은 한·중·일 3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겹치는 곳이다. 일본이나 중국보다 한국 연안에서 가까워 유엔 해양법협약에 따라 중간선 원칙을 적용해도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들 가능성이 많은 해역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어도를 ‘쑤엔자오(蘇岩礁)’로 부르며 “중국의 EEZ에 있는 암초에 기지를 건설한 것은 불법”이라고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올림픽이 열린 2008년 8월에는 중국 해양국의 공식 사이트인 ‘해양신식망(新息網)’에 이어도를 自國(자국) 영토로 소개한 글을 올렸다가 한국 국민들로부터 ‘제2의 東北工程(동북공정)’이라는 비난이 일자 슬그머니 내린 적도 있다.
 
  국내 학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향후 한국이 이어도 해역에 대한 해양영토 관할권을 적극 행사하기 위해서는 이어도 기지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어도를 국토 최남단으로 만들자
 
  이날 헬기에 동승한 현경병 의원은 “이어도를 국토의 최남단으로 만들어 해양영토 주권을 강화해야 한다”며 지난 7월 ‘이어도 포럼’을 창립, 출범시켰다. 정부 관련 부처와 국책연구소를 비롯해 해양 전문가와 학자, 국제법 전문가, 언론인 등 100인의 회원이 이 포럼에 참여하고 있다.
 
  현 의원은 “우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어도 제대로 알기 운동을 펼치고, 후일에 대비해 이어도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는 중”이라며 “이어도 관련 노래를 만들기 위해 김창환 작곡가와 함께 현장 탐방에 나서게 됐다”고 소개했다.
 
  항공대를 출발한 헬기는 제주도를 벗어나 망망대해 상공을 순항했다. 고도 330m를 240km의 속력으로 비행하고 있었지만 맑고 잔잔한 바다와 푸른 하늘 때문에 높이나 속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조종사는 “제주도 남쪽 바다가 오늘처럼 잔잔한 날은 1년에 며칠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 李淸俊(이청준)의 소설 ‘이어도’는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제주도 사람들에게 이어도는 삶과 죽음의 경계이자 척박한 현실을 견디게 하는 彼岸(피안)의 땅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가 그리고 있듯이 이어도는 오래 전부터 어딘가에 있으나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전설의 섬’이자 ‘환상의 섬’으로 전해져 왔다. 이 전설의 섬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은 1900년 영국 상선 스코트라호가 남해 항해 중 수중 암초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영국 측은 이 암초에 ‘스코트라 암초’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수중 암초가 이어도의 실체였던 셈이다.
 
  국제법상 이어도는 섬이 아니다.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 제1항과 2항에 따르면 ‘수면 위에 자연적으로 형성돼 있고 바다에 둘러싸인 섬’만이 대륙붕과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질 수 있고 ‘인간의 거주 또는 독자적 경제생활을 지탱할 수 없는 암석’은 영해와 접속수역만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암초나 인공적으로 조성된 섬은 영토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협약대로라면 일본의 오키노도리시마(沖の鳥島)는 대륙붕이나 200해리 배타적 경계수역을 가질 수 없는 섬이다. 오키노도리시마는 일본 도쿄로부터 17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가로 2m, 세로 5m, 높이 0.7m의 암초다.
 

기지 상층부 국기 게양대 앞에 선 일행. 우측으로부터 작곡가 김창환씨, 현경병 의원, 헬기 조종사, 필자.
 
  이어도의 육지화 주장도 나와
 
  일본은 만조 때 겨우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이 암초에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지름 50m의 원형 벽을 쌓아 올리고 콘크리트를 부어 섬의 면적을 확장했다. 그리고 이 섬을 기점으로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설정, 일본 국토 면적(38만㎢)보다 넓은 43만㎢ 면적의 공해를 해양영토로 편입시켰다.
 
  이후 일본은 오키노도리시마를 섬으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이의제기에 맞서기 위해 이곳에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한 해양리조트를 건설하겠다고 선포한 상태다.
 
  이 같은 선례를 알고 있는 金柄烈(김병렬) 국방대학원 교수는 1996년 해양수산부가 이어도 과학기지 건설 계획을 발표했을 때 “과학기지는 훗날 시빗거리만 될 뿐 영토 확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니 흙으로 메워 육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89년부터 지속적으로 이어도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고, 1997년에는 이어도를 육지화해야 하는 이유를 저서 <이어도를 아십니까?>에 담아 정치권과 해양 전문가들에게 배포했다.
 
  그런데 그의 주장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이어도 육지화는 좌초됐다. 김 교수의 육지화 주장 배경은 이렇다.
 
  “한국은 1974년 일본과 협정을 맺어 제주도 남쪽과 일본 규슈(九州) 서쪽의 해역을 공동개발구역(JDZ·2028년까지 유효)으로 정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시작된 대륙붕이 도리시마 서쪽 해구에서 단절돼 있다는 점, 즉 1958년 제1차 유엔해양법회의에서 채택된 자연연장설에 근거한 협정이었죠. 이후 제7광구로 불리는 이 대륙붕 지역에서 양국이 공동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매장량 조사를 벌여왔습니다.
 
  그런데 1982년 새로운 유엔해양법협약이 발표되면서 일본은 대륙붕 개발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새 협약은 대륙붕 영유권을 해저 지형이 아닌 거리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일본이 도리시마 연안을 기점으로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설정할 경우 한국은 제7광구에 대한 개발권을 80% 가까이 일본에 양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만약 이어도를 육지화했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죠. 일본이 국제법을 어기고 오키노도리시마를 기점으로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설정한 선례를 남긴 만큼 우리도 이어도를 기점으로 경제수역을 획정하겠다고 하면 되니까요. 참고로 이어도에서 도리시마까지는 149해리(276km)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金燦奎(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는 “국제법상 오키노도리시마는 영해와 접속수역을 가질 수 있는 섬이고, 이어도는 섬이 아닌 수중암초라는 차이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오키노도리시마는 작은 암초이긴 하지만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 1항과 2항을 충족시키는 섬입니다. 이 암초가 거친 파도에 마모돼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콘크리트 원형 벽을 쌓았다는 것이 일본 측 주장인데, 설사 그렇다 해도 원래 섬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은 인공섬이라고 할 수 없죠. 이어도의 경우 수중암초에 불과해 이곳에 흙을 메우더라도 인공섬이 될 뿐입니다. 국제법상 인공섬은 반경 500m 이내에 안전망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것 외에 그 어떤 권한도 가질 수 없지요.”
 
 
  이어도 기지는 3400t의 철골 구조물
 

메인 데크 입구에 부착돼 있는 준공 기념 현판.
  1958년 제1차 유엔해양법회의에서 채택된 자연연장설이란 대륙붕 조약을 말한다. 이 조약에 따르면 대륙붕의 영유권은 그 대륙붕이 시작된 나라에 귀속된다. 중국은 이 이론을 근거로 서해가 온통 자국의 바다라고 억지 주장을 편 바 있다. 서해 해저가 중국 쪽에서 흘러간 퇴적물로 형성돼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대해 朴龍安(박용안) 서울대 해양학과 명예교수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오히려 우리 쪽 퇴적물이 서해 대륙붕을 형성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1982년에 발표된 유엔해양법협약은 연안에서 200해리까지를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정했고, 對向國(대향국)이나 인접국 사이의 바다 폭이 좁아 겹칠 경우 가상의 중간선을 그어 경계를 삼도록 규정하고 있다.
 
  헬기가 이륙한 지 50분쯤 지났을까. 보기 드물게 視界(시계)가 깨끗한 날이어서인지 아직 20km 이상 남았는데 수평선 멀리 3400t의 철골구조물로 된 이어도 기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도는 가장 얕은 곳이 해수면 아래 4.6m이며, 수심 40m를 기준으로 할 경우 남북으로 약 600m, 동서로 약 750m 뻗어 있다. 이 암초는 10m 이상의 높은 파도가 쳐야 頂峰(정봉)이 보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섬을 본 사람은 모두 섬으로 가버렸다’는 전설이 생겨났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김병렬 교수는 1997년 출간한 저서 <이어도를 아십니까?>에서 이어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한류와 난류 세력이 교차하는 곳으로 짙은 안개가 자주 발생하여 조난이 잦기 때문에 예부터 제주도의 어민들이 커다란 피해를 입었고, 수면하 4.5m에서 15m까지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이루고 있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흰 포말형태의 파도를 발생시키고 있다. 이 흰색 포말형 파도 때문에 제주도민들은 예부터 이어도를 흰색 섬으로 표현하였다.>
 
  기지는 이어도 정상으로부터 700m 떨어진 수심 41m 지점에 세워져 있다. 이어도 부근 해역은 중국 연안의 난류와 태평양의 한류가 만나는 지역이어서 플랑크톤이 풍부한 황금어장으로 알려져 있다.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이사장 高忠錫 前 제주대 총장) 자료에 따르면 이곳은 ‘병어, 꽃게, 물가자미, 조기, 고등어, 갈치, 오징어 등의 월동 및 산란해역으로 연중 한국·중국·일본 어선들이 몰려들어 조업을 하고 있는 곳’이다.
 
 
  중국 어선들이 어장 싹쓸이
  기지 상층부에 설치된 등대. 이 해역을 지나는 연간 2만5000척 선박의 바다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어선 한 척 보이지 않았다. 필자가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자 헬기 조종사가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에는 옥돔 밭이라고 했을 정도로 고급 어종이 많았는데, 중국 어선들이 쌍끌이로 바닥을 훑어버려 어장이 갈수록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물가자미나 고등어 등 값이 저렴한 어종만 잡히니까 한국 어선들로서는 생산성이 떨어져 조업을 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기름값이나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어선들만 수십 척씩 조업하곤 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중국 어선들도 보이지 않네요.”
 
  중국은 어업 인구가 1억명이라고 한다. 그들이 쌍끌이로 바다 밑바닥까지 헤집어 놓고 있다니 각종 어종의 산란지로 알려진 이곳의 황폐화가 한국 연안 어종의 씨를 말리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헬기는 오후 2시30분에 이어도 기지에 착륙했다. 국립해양조사원의 林官昌(임관창) 주무관이 일행을 맞았다. 임씨는 기지 운영 관리 책임자다. 그는 “2주 전 11명의 외부 전문가들과 배로 왔다가 귀한 손님들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남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도 기지는 무인 기지이기 때문에 1년에 8차례 방문해 원격조종 시스템과 각종 장비들을 관리 점검하고 있습니다. 전기, 구조물, 관측센서, 수중탐사 등 각 분야 전문가 11명이 저와 함께하고 있죠. 官用(관용) 선박으로 10시간 넘게 소요되는 거리여서 한 번 오면 보통 1~2주 정도 머물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임씨를 포함한 12명의 관리자들이 기지를 오가는 데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150t급 관용 선박이다. 속도가 10~15노트에 불과한 이 선박으로 기지까지 오는 데 제주항에서 12시간, 서귀포 화순항에서 10시간이 소요된다. 임씨는 “항해 중간에 기후가 나빠져 회항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현경병 의원은 “이어도 기지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40노트 속력의 신형 엔진이 장착된 전용 선박이 필요하다”며 “신형 관용선 제조를 위한 100억원 규모의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용 선박이 생기면 제주항에서 이어도 기지까지 2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다고 한다.
 
  임관창씨의 안내로 기지 곳곳을 둘러보았다. 해상 36m(건물 30층 규모) 높이의 기지는 두 개의 데크(갑판)와 헬기장으로 구성돼 있었다. 495.87㎡ 규모의 헬기장은 구조물의 지붕 격인 상층부에서 2m 정도 높았고, 옆으로 뻗은 날개 형상이었다.
 
  헬기장에서 본 바다는 망망대해였다. 필자가 밟고 있는 3400t의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신기루인 양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헬기장에서 상층부로 내려오며 발아래 바다를 보니 현기증이 났다. 이때 김창환씨가 “바다 위에 떠 있는 하얀 물체들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임씨는 “수온 상승 기류를 타고 올라오는 해파리 떼”라며 “이 해파리가 제주도나 부산 인근까지 올라가는 동안 엄청나게 자란다”고 답했다.
 
  큰 것은 함지박만 하고, 작은 것은 어른 손바닥만 한 해파리들이 기지 주변 바다를 하얗게 덮다시피 유영하고 있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의 대재앙이 시작된 것 같아 섬뜩했다. 임씨는 “해파리에 쏘인 조기가 하얗게 떠올라 보트를 타고 뜰채로 건져다 구워 먹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기지 건설에 8년, 연인원 7000명 투입
  임관창 국립해양조사원 주무관.
  상층부에는 기상 타워와 등대, 태양전지판, 풍력 발전기, 정수 탱크 등 부속 구조물이 설치돼 있었다. 임관창씨의 설명이다.
 
  “이곳은 전력뿐만 아니라 식수도 자체 공급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식수의 경우 해수를 담수로 바꾸는 정수 장치가 설치돼 있어 필요할 때마다 가동해 탱크에 저장해 놓고 사용하고 있지요.”
 
  메인 데크인 하층부에는 8명이 상주하며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식당과 침실 등 생활공간이 마련돼 있고, 각종 관측 데이터를 무인 시스템으로 처리하는 컨트롤 센터, 배터리 룸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임씨는 필자 일행을 회의실로 안내한 후 “이곳에서 담수화한 물로 탄 커피”라며 인스턴트 커피를 한 잔씩 돌렸다. 염분이 살짝 가미돼 있어서 그런지 커피 맛이 진했다. 임씨가 이어도와 이어도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간략하게 요약해 소개했다.
 
  이어도의 실체는 영국의 상선 스코트라호가 최초로 발견했다. 이후 1938년 일본이 학술조사를 벌여 波浪島(파랑도)라는 이름으로 수로지에 기입하고 중국 진출을 위한 중계기지를 건설하려 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중단됐다.
 
  광복 이후 한국 정부는 육당 崔南善(최남선)의 제안으로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하고자 1951년 美(미) 국무부 측에 “독도, 대마도, 파랑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당시 정부는 파랑도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李承晩(이승만) 정권은 대한민국 국무원 고시 제14호에 의해 平和線(평화선: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 연안수역 보호를 위해 선언한 해양주권선)을 세계에 공표했다.
 
  한국 최초의 이어도 탐사는 전쟁 중이던 1951년 한국산악회 주도로 이뤄졌다. 이들은 해녀를 동원하고 군부대의 지원을 받아 군용 LVT(수륙양용 장갑차)를 이용해 이어도 탐색에 성공한 후 바닷속에 ‘대한민국령’이라고 새긴 동판을 가라앉혔다.
 
  이어도의 위치가 정확히 파악된 것은 1984년 ‘KBS-제주대 파랑도 탐사반’에 의해서다. 이때 학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어도 암초에 다용도의 해상구조물을 설치하자는 방안이 제시됐다.
 
  1986년 교통부 수로국(현 국립해양조사원)에서 이어도에 대한 정밀측량을 했고, 이듬해 이 해역에 등부표를 설치해 항해 선박에 경고를 하다 1995년 종합해양과학기지 건설을 시작했다. 기지는 완공하기까지 8년의 세월이 걸렸고, 연인원 7000명과 총 공사비 212억원이 투입됐다.
 
 
  大洋 한가운데 있는 해양기지로는 세계 최대
 
  임관창씨는 “이어도 기지는 연안이 아닌 大洋(대양) 한가운데 있는 해양기지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라며 “이곳에서 수집되는 모든 해양 정보는 세계가 공유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의 설명이다.
 
  “이곳에서는 염분, 수온, 유속 등의 해양 관측뿐만 아니라 대기오염도도 측정하고 있습니다. 대기중의 미세먼지를 분석해 오염 물질의 경로를 찾아내죠. 이 모든 데이터는 세계가 공유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소유의 이어도 기지가 세계 해양과학 발달을 이끌고, 실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 7월에는 SK텔레콤이 휴대폰 기지국을 설치해 이곳 반경 40km 이내에서는 세계 어디와도 휴대폰 통화가 가능하게 됐어요. 중국이나 일본 어선도 로밍만 하면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기지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느낄 것입니다.”
 
  임씨는 “기지 내 휴대폰 기지국 설치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컨테이너 항만 경쟁력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항해 중 부두 상황을 전화통화나 데이터 전송으로 체크해 하역이 가능한 시간에 항만에 정확히 진입하게 되면 영해 체재비를 줄여 결과적으로 항만 이용료가 낮아지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AIS(선박자동식별장치)의 경우 용량이 적어 공문 접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터넷 사용까지 가능한 SK 기지국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얘기다. 임씨는 “이 시스템은 여수엑스포 때 세계 사람들에게 IT강국의 면모를 과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시간여의 짧은 견학을 마치고 이어도 기지를 떠나야 할 시간. 임관창씨는 헬기에 탑승하기 전 서둘러 상층부에 있는 국기 게양대에 새 태극기를 게양했다. 바람이 심한 곳이라 1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태극기가 누더기처럼 해지기 때문에 기지에 들어올 때마다 교체한다고 했다.
 
  헬기는 오후 4시50분 이어도 기지 헬기장을 이륙했다. 이번에는 임씨까지 총 8명이 탑승했다.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바람에 방금 전 게양한 태극기가 펄럭였다. 대한민국 최남단을 지키는 상징이자 해양대국 건설을 위해 꽂은 깃발인 것 같아 가슴이 뜨거워졌다.⊙
 



  [인터뷰] 玄鏡柄 의원
 
  “이어도 주권 지키기 운동 시작할 것”
 
  ―이어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1990년대 중반 한 일간지에서 삼성이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세워 국가에 기증할 계획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삼성그룹이 이어도 기지 건설비를 기부채납 형식으로 지원하겠다고 정부에 제안했으나, “이것은 정부에서 투자를 할 사안”이라며 거절하여 국가 예산으로 건설됨-편집자 주). 이후 이어도에 관심을 갖게 됐고, 국가 운영 전략상 영토 못지않게 해양영토 관리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반도는 북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는 만큼 섬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어도는 태평양으로 가는 교두보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하는 섬이에요.”
 
  ―독도 주권 지키기 운동도 펼친 것으로 압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 독도에 대한 주권 의식이 희박하던 1980년대 후반 몇몇 知人(지인)들과 함께 ‘푸른 독도 가꾸기’ 모임을 조직해 독도 알리기 운동을 펼쳤습니다. 가수 서유석, 신형원씨와 함께 독도 관련 노래를 만들어 콘서트를 열기도 했죠. 그때 유명해진 노래가 서유석씨의 ‘홀로 아리랑’입니다.”
 
  ―현 의원은 내륙 지방인 경북 영천 출신이면서 바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제가 해군 장교로 군 생활을 한 데다 해양수산부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해양 관련 지식을 쌓은 덕입니다.”
 
  ―독도에 비해 이어도의 존재는 아직 많이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육지 중심인 대한민국 지도를 해양영토까지 포함된 해양전도로 바꾸어 지도층 인사들부터 이어도를 우리 국토의 최남단으로 인식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올해 안으로 이어도 관련 책자를 중·고등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엮어 배포할 것이고, 이어도를 뱃길로 탐험하는 ‘이어도 뱃길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또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마라도에 이어도 기념관을 지어 이어도의 존재를 알릴 예정입니다. 이미 서귀포시에서 1000평의 부지를 내놓겠다고 약속했어요. 이 모든 사업은 ‘이어도 포럼’ 회원들과 함께 의논하며 진행해 나갈 생각입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이어도 포럼의 회원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해양 관련 전문가와 학자들 외에 지질학자이자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 위원 및 부의장인 朴龍安(박용안) 서울대 명예교수, PCA(국제상사중재재판소) 재판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金燦奎(김찬규) 경희대 명예교수, 탐험가 최종렬씨,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의 박기태 단장, 가수 김건모씨와 개그맨 남희석씨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입니다.”
 

  [인터뷰] 高忠錫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 이사장
 
  “목소리가 아니라 ‘논리’로 대응해야”
 
  ―이어도연구회와 이어도포럼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어도포럼이 전 국민에게 이어도 알리기 운동을 펼치는 대외적 홍보 단체라면 우리는 이어도의 인문과학적, 자연과학적 측면을 다차원적으로 연구하는 학술단체입니다. 지난해 정식으로 출범했는데 올해 여의도에 사무실을 마련했으며, 현재 20명의 학자들이 활동하고 있죠.”
 
  ―이어도연구회의 탄생 과정을 설명해 주시죠.
 
  “제가 제주대 총장으로 있던 2007년 당시 해수부 장관이었던 金成珍(김성진) 한경대 총장의 제안이 이어도연구회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김 전 장관께서는 독도 문제를 지켜보며 ‘우리는 독도에 대한 외침과 울림만 있고 체계적인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을 통감했다고 하더군요. 일본은 이미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출할 각종 연구 자료와 데이터를 조용히 모으고 있는데 말이죠. 장관께서는 앞으로 있을 중국의 ‘이어도 공정’에 대비하려면 민간 차원의 전국적인 이어도 연구 모임이 필요하다며 제가 중심이 돼 만들어 보라고 권하셨죠.”
 
  ―그동안 실적이 있습니까.
 
  “중국은 이어도를 ‘쑤엔자오’라며 중국의 주권 내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을 최초로 한 사람은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생 왕젠싱입니다. 그는 ‘쑤엔자오’라는 명칭이 BC 475~BC 221년경부터 나온다며 <山海經>(산해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했는데, 우리 쪽 학자가 그 구절을 살펴본 결과 순전히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중국 측 학자도 말을 못했습니다. 이밖에 지난해 첫 번째 연구 보고서가 나왔고, 올 10월에 두 번째 연구 보고서가 나옵니다.”
 
  ―최근 들어 중국이 이어도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중국은 이어도 해역을 분쟁 지역으로 만들어 공해상으로 남기고 싶어 합니다. 어차피 중국 어선들의 활동이 활발한 곳이어서 공해로 남으면 자동적으로 자기네 해양영토가 될 것이라는 계산에서죠. 그 때문에 한중어업협정 당시에도 이어도 부분은 의도적으로 남겨 놓고 협상을 매듭지었습니다. 한국으로서는 이어도를 분쟁 지역으로 남겨 놓으면 손해입니다.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면 상호 협상해서 나누는 것이 유리하죠. 우리는 중국이 상호협상에 응하지 않아 이 지역이 한중 간의 국제적 분쟁에 휩싸일 경우를 대비해 논리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