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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평균인은 희망이다

醉月 2009. 10. 9. 08:47

대한민국 평균인은 희망이다

‘이 시대에 평균이란 어떤 의미인가.’

<시사IN> 기자들이 지난 한 달간 머리 맞대고 고민한 주제였다. 몇몇 기자는 양극화가 점점 더 깊어가는 이때 평균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한가한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평균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해치는 퇴행적 발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럼에도 <시사IN>은 대한민국 평균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소득·성별·지역·연령·이념으로 갈가리 찢긴 우리 사회에서 그 평균점에 선 사람들을 찾아보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사IN 사진부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가 평균인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변화의 기운이 충만했던 때였다. 1984년 한국일보가 ‘보통 사람들’ 10명을 처음 추출한 이래 1989년과 1991년, 1996년 <시사저널>이 세 차례에 걸쳐 ‘평균 한국인’ 3명을 선정했다. 독재의 시대가 기울면서 ‘보통’과 ‘평균’이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이들 매체는 ‘보통 사람들’ ‘평균 한국인’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움직임이 민주의 시대를 앞당긴 원동력이었고, 앞으로 우리 사회의 가능성을 가늠할 핵이라며 이들에 주목한 이유를 밝혔다.

그로부터 10년. <시사IN>은 다시 우리 시대 평균인에 주목하고자 한다. 너도나도 ‘서민’을 자처하는 이때 진짜 서민이 발 딛고 있는 자리는 어디인지, 이들의 고민과 관심사는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이다. 소통이 막힌 사회, 특히 위가 아래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사회는 활력을 잃는다. 이들 평균인의 삶, 그리고 이들이 가진 보통의 생각[常識]에 지금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 평균인, 어떻게 조사하고 선정했나
대한민국 평균인을 선정하는 과정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먼저 몇 사람을 뽑을지부터 고민이었다. 모든 통계치를 단순 결합해 한 사람을 뽑는 방식은 처음부터 배제했다. 소득·연령·지역·성별 따위 다양한 조건에 따라 이미 분화될 대로 분화된 한국인이 그렇게 뽑힌 평균인을 보며 공감할 여지가 적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신 20~60대까지 연령대별로 대표 평균인을 한 사람씩 선정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지역이나 소득분위를 기준으로 평균인을 선정하는 방식도 고려했다. 그렇지만 <시사IN>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기준은 나이, 곧 세대였다. 한국 사회에서는 세대가 소득·지역 못지않은 사회문화적 격차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었다. 최근 <생애의 발견>을 펴낸 문화인류학자 김찬호씨(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말마따나, 지금 한국의 모든 세대는 생애의 단계마다 위 세대가 경험하지 않았던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다. 이른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 ‘정보화 세대’ 간 격차는 아득할 만큼 넓고 깊다. 이것이 경제적 지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40~50대에 가로막혀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20대를 두고 ‘세대 착취’까지 거론되는 판이다.

   

연령대별로 평균인을 선정하는 1차 임무는 여론조사기관인 미디어리서치가 맡았다. 흩어져 있는 통계 자료를 추리고 합산하는 작업이 선행됐다. 그런 다음 △직업 △급여 △근로시간 △17대 대선 투표 여부 △18대 총선 투표 여부 △지지 정당 △신장(키) △체중 △최종 학력 △혼인 여부 등 10개 지표를 최종적으로 선별해 이를 기준으로 연령대별 평균인 자료를 만들었다(표 참조). 이 중 정치 관련 통계치는 중앙선관위원회 자료(대선·총선 투표율)와 윈지코리아·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최근 자료(정당 지지도)를 활용했다. 신장과 체중 평균값은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가 5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인체치수 자료’(2004년)에서 따온 것이다. 나머지 5개 지표의 평균값은 통계청 자료를 갖다 썼다. 이 자료를 보면 세대 간 삶의 조건이 얼마나 다른지 실감할 수 있다. 60대는 초등학교 졸업 이하가 평균인 데 비해 20~30대는 대졸 이상이 평균이다.

그 다음 작업은 이 평균값에 들어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미디어리서치 측은 자신들이 보유한 패널 7만여 명의 데이터베이스를 성·지역·연령별로 1차 분류한 뒤 조건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패널 1000여 명에게 자기 기입식 설문지를 이메일로 배포했다고 밝혔다. 이 중 10개 지표의 평균값을 가장 가깝게 충족시키는 53명이 2차로 선정됐다. 이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평균인으로 적합한지를 재차 검증하고, 인터뷰에 응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것은 <시사IN> 기자들의 몫이었다. 개중에는 ‘사생활을 노출하기 싫다’며 매몰차게 요청을 거절한 이도 있었고, 인터뷰까지 마쳤는데 숨겨둔 소득이 따로 있어 평균인에서 제외된 이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조사기관 명단에는 없지만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판단되는 인물이 기자들의 취재망에 걸리기도 했다.

여기 소개할 5명은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추려진 평균인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평균’이라 부르는 것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평균인이야말로 대한민국 대표”라고 당당해하는 이도 있었다. 이들의 인터뷰를 따라가다보면 독자들 또한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타인의 삶을 이해할 기회를 얻을 것이라 믿는다. 각 기사 제목은 이들이 직접 자기 연령대의 삶을 요약한 문구이다. 평균인들이 각자 친필로 쓴 좌우명도 함께 실었다.

“나의 20대는 선물이다” 대학 졸업이 다가올수록 20대는 초조해진다. ‘백수’ 또는 ‘88만원 세대’라는 단어가 일상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래도 대학 2년생 김하씨는 아직 큰 걱정이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 평균 20대 김하
출생:1988년 강원도 원주시에서 1남2녀 중 장녀
현재 거주지: 강원도 춘천시(대학교 기숙사)
키:159cm
몸무게:52kg
직업:대학생(강원대 분자생명과학과 08학번)
예상 은퇴 연령:?
월평균 소득: 용돈 10만원
월평균 근로시간:?
최종 학력:대재
동거 가족 수:독립
종교:기독교
TV 시청 시간:기숙사라 거의 못 봄
즐겨 읽는 신문: 없음 (인터넷 네이버 뉴스 정도)

   
ⓒ전문수
즐겨 하는 여가생활:인터넷 서핑(싸이월드 등)
외식 횟수:일주일에 한 번
좋아하는 음식:삼겹살
좋아하는 문화예술인/연예인:그룹 2PM
좋아하는 가수/노래:권지용/하트브레이커
좋아하는 정치인:김대중
좋아하는 정당:없음
좋아하는 나라:오스트레일리아, 스웨덴
싫어하는 나라:분쟁 국가(중동)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회적) 사건:
이라크·쿠웨이트 파병
현재 관심사:신종플루
스스로 매긴 행복점수:90점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가족>건강
(본인 또는 자녀가) 외국인과 결혼한다면?그럴 가능성 거의 없다
(친구 또는 자녀가) 동성애자라면?
친구가 동성애자라면 멀어질 것 같고
자녀가 그렇다면 고치라고 할 것이다.
내일 전쟁이 난다면?군인인 아빠와 함께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데,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

“운동도 공부도 열심히!” 대한민국 평균 20대로 선정된 김하씨(21)가 책상 위 달력에 써놓은 문구이다. 9월27일 날짜에는 ‘토익 시험일’이라고 동그라미를 쳐놓았다.

공부도, 취미생활도, 휴식도 김씨는 대학 기숙사에서 해결한다. 김씨가 다니는 강원대는 한 학기 80여 만원에 33㎡(10평) 남짓한 2인용 방과 하루 세 끼 식사를 제공한다. 2008년 분자생명과학과에 입학한 김씨는 기숙사 자신의 방 안에서 대학 과제를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노트북으로 싸이월드 방명록을 확인한다. 이마트에서 계산원 아르바이트를 하던 방학을 제외하면, 김씨는 지난 2년간 학교 강의실과 기숙사를 왕복하는 생활을 유지해왔다.

김씨는 학생이라는 신분과 정치성향, 신체조건 등이 고려돼 ‘대한민국 평균 20대’로 선정됐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대 전체에서 가장 높은 직업 비율은 학생이다. 20대 남성의 26.7%, 여성의 19.5%가 학교를 다닌다. 정치 무관심 또한 20대의 대표적인 성향이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키와 몸무게로도 김씨는 거의 평균치이다. ‘2005 한국인 인체지수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20대 여성 평균 키는 160.0cm, 몸무게는 54.1kg인데 김씨는 159cm, 52kg이다. 신체조건 외에도 김씨는 확실히 다른 세대에 비해 ‘젊다’. 신문은 안 봐도 SBS <뮤직뱅크>, KBS <인기가요>, MBC <쇼 음악중심> 등 방송 3사 음악 순위 프로그램은 꼭꼭 챙겨보고, 그룹 2PM의 재범이와 우영이 혹은 가수 비처럼 ‘야성적이면서도 귀여운 남자’를 좋아한다.

세대가 달라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장남·장녀의 경우 책임감이 강하고 의젓하다는 점일 것이다. 1남2녀 중 맏이인 김씨도 속이 깊다. 집안 형편이 궁핍한 건 아니지만 직업 군인인 아버지 월급으로 자신과 두 살 터울의 대학생 여동생, 다섯 살 터울의 고등학생 남동생을 함께 공부시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걸 알기에 “최대한 내 생활비를 줄여보려고” 애를 쓴다. 한 달 용돈도 10만원이면 충분하다. 다만 한 학기 등록금 250여 만원은 김씨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다. 국립대라 등록금이 사립대에 비해 적은 편이고 아버지가 직장(군대)에서 제공하는 무이자 대출로 등록금을 마련해주고 있지만 결국은 갚아야 하는 빚이기에 김씨 마음은 편안하지 않다. 그래서 김씨가 가서 살고 싶은 나라는 “등록금 복지가 잘돼 있다는” 스웨덴이다. 

신종플루와 다이어트가 최대 근심거리

가족에 대한 사랑도 애틋하다. 매주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가족이 사는 원주로 향한다. 김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정부가 행한 ‘이라크 파병’을 ‘본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회적 사건’으로 꼽았다. 당시 아버지가 본인 의사에 상관없이 쿠웨이트로 파병됐는데, 그 6개월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전문수

김하씨(위)는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책상 앞에는 군대 간 남자친구 사진을 붙여놓았다.

 

의젓한 장녀이지만 부모님 속을 썩인 적이 없지는 않다. 김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친구인 황재윤씨(21)와 교제를 시작했다. 부모님은 고3인 딸에게 교제를 끊으라고 요구했지만 김씨는 반항했다. 수능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서울에서 학원을 다니며 재수 생활을 할 때가 김씨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

지금, 김씨는 행복하다. 가족과 사이가 좋고 대학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기에 행복지수 100점 만점에 90점을 부른다. 10점을 깎아먹는 요소는 최근 유행하는 신종플루와 다이어트에 관한 걱정 정도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세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보고 난 뒤부터 김씨는 자신도 신종플루에 감염될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생각날 때마다 손을 열심히 씻는다. 대한민국 평균에 거의 들어맞는 신체조건이지만, 대다수 여성이 그렇듯 김씨도 만족도 50점을 줄 만큼 자신의 몸에 만족하지 못한다. “좀 통통하다고 생각해서” 일주일에 네 번 정도 기숙사 앞 운동장에서 걷기와 줄넘기를 한다.

대학교 2학년이라 취업 걱정은 그리 크지 않다. 막연히 “연구원을 하고 싶다”라는 정도로 진로를 생각해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토익 공부는 일찌감치 시작했다. 주변에는 서울까지 가서 친구 자취방이나 고시원 등에 살며 토익학원을 다니는 친구도 여럿 있다. 이번 학기에 수강하는 ‘진로 탐색’ 수업에서 KT에 입사한 대학 선배가 특별 강사로 초빙된 적이 있는데, 그때 절박하게 질문을 쏟아내는 취업준비생 선배들을 보고 김씨는 ‘취업이 보통 일이 아니구나’라고 실감했다. 애초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대학원 가봤자 취직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라는 조언을 많이 해 김씨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할 계획이다.

관심 있는 이슈는 열심히 본다 김씨는 지난해 4월9일 치른 제18대 총선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인터뷰 도중 옆에 함께 앉은 학과 동기가 “왜, 투표한다고 학교 쉰 날 있잖아”라고 하니 그제야 “아, 그날!”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 20대 대부분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20대 61.6%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이다(2008년 12월31일 경향신문·현대리서치 조사). 제17대 대선과 제18대 총선에서 20대 후반(25~29세)의 투표율은 각각 42.9%와 24.2%에 그쳤다. 20대 전반(20~24세) 역시 대선과 총선 때 각각 51.1%와 32.9%만 투표에 참여했다.

20대가 모든 정치 이슈에 완전히 관심을 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나름의 정치적 판단 기준을 세워놓는다. 김씨는 “제17대 대선에 박근혜가 이명박 대신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면 투표를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남자 국회의원보다 싸움을 덜 하는 여자 정치인이 좋기 때문”이다. 김씨는 여자 후보라면 어느 당에서 나오든 지지할 의향이 있다.

최근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는 김씨에게 꽤 큰 영향을 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면서도 ‘싫어하는 정치인’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꼽았다. 인터넷에서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실수”라고 말했다는 뉴스를 보고 나서이다. 최근 김씨가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은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씨는 어머니와 함께 지난 8월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 분향소에도 다녀왔다.

“나의 30대는 소운 맘이다” 30대의 양대 과업은 결혼과 구직이다. 두 고개를 성공적으로 넘은 김미라씨는 좋은 엄마 못지않게 인정받는 직장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30대 여성은 커리어우먼과 전업주부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든다.

 

대한민국 평균 30대 김미라
출생:1979년 울산광역시에서 1남1녀 중 차녀
현재 거주지:울산광역시(자가/아파트)
키:164cm
몸무게:60kg
직업:연구원(자동차 설계)
예상 은퇴 연령:36세 또는 정년퇴직
월 평균 소득:220만원
월 평균 근로시간:200~240시간
최종 학력:대졸
동거 가족 수:1명(자녀 1명)
종교:없음
TV 시청 시간:하루 3시간
즐겨 읽는 신문:인터넷
즐겨 하는 여가생활:강좌 찾아 듣기, 운동
외식 횟수:주 1회
좋아하는 음식:벌집 삼겹살
좋아하는 문화예술인/연예인:박지성
좋아하는 가수/노래:바비킴/고래의 꿈
좋아하는 정치인:박근혜
    좋아하는 정당:없음
좋아하는 나라:영국
싫어하는 나라:일본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수능시험
현재 관심사:육아, 재테크
스스로 매긴 행복점수:90점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배우자>경제적 요인>주변인
(본인 또는 자녀가)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수용할 수 있다
(친구 또는 자녀가) 동성애자라면?
말리겠지만 안 되면 수용한다
내일 전쟁이 난다면?
최대한 안전한 곳을 찾아 가족과 함께하겠다

아파트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핑크빛 아기 사진이 거실 이곳저곳을 장식하고 있다. 대한민국 평균 30대로 선정된 김미라씨(30)의 생후 18개월 된 딸(김소운) 사진이다. 그런데 정작 아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주말에만 아기를 집에 데려오고 평일에는 소운이를 경주에 있는 시댁에 맡겨 키우기 때문이다.

또래 30대 여자들이 그렇듯 김미라씨의 최대 관심사는 육아다. 대학 진학이며 취업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풀렸다. 남편 김남규씨(32)를 만난 것도 대학에서였다. 캠퍼스 커플로 7년 교제 끝에 결혼했다. 김미라씨가 졸업하던 2001년에는 취업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자동차 부품과 산업설비를 주로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입사했다가 우연히 자동차 설계를 담당하는 기술연구소로 배치됐다. 일반 사무직 220명 중 여직원은 겨우 15명. 그중에서도 설계 쪽 여성은 김씨가 유일했다.

올해로 경력 9년차. 김씨는 살아남았다. 설계가 처음이지만 노력과 오기로 버틴 덕이었다. 업종 특성인지, 여직원이 적기 때문인지 회사 분위기는 보수적인 편이었다. 입사 6년차에 결혼할 때도, 이듬해 애를 낳을 때도 주변 상사와 동료들은 인사말처럼 “이제 그만두겠네” 했다. 그럴수록 이 악물고 버텼다. 야근·특근도 남자 동료와 똑같이 했다. 시댁 사정으로 아기 돌볼 사람이 없어 월차를 내야 할 때면 아프다는 핑계를 댔다. “아이 때문에 월차 낸다는 말은 절대 하기 싫었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그러나 연차가 높아질수록 김씨는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현재 김씨의 연구소 내 직책은 주임이다. 남자 동기 거개가 대리로 승진한 것에 비하면 2~3년이 처진다. 자신의 예상 정년을 몇 살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36세 또는 정년퇴직’이라 적었다. “중역까지는 아니더라도 40대에 차장도 안 달아주면 내가 알아서 그만둬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김씨는 말했다. 만약 마흔 이전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작은 프랜차이즈 자영업에 도전해보고 싶단다.

“잠 한번 푹 자보는 게 소원”

김씨는 커리어우먼과 전업주부 사이에서 위태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30대 여성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결혼 고개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해도 육아 고개에서 미끄러지기 일쑤다. 올 초 여성부가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여성 3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9.2%가 ‘결혼~첫아이 출산’ 시기에 일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당장 상황이 나아질 기미도 없다. 출산율 낮다고 호들갑 떠는 나라치고 육아지원책은 믿기 힘들 만큼 한심한 수준이다. 그나마 김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안심하고 아이 맡길 데가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김씨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김씨 스스로는 골병이 든다. “주말에 잠 한번 푹 자보는 게 소원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주중에는 일하느라, 주말에는 애 보느라 맘 편히 쉴 날이 없다.

   

김미라씨와 남편 김남규씨가 딸 소운양(액자 사진)과 화상통화를 하고 있다.

 

그래도 김씨는 스스로의 행복 점수를 100점 만점에 90점이라 매겼다. 20대 김하씨와 더불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행복지수다. 행복경제학을 연구하는 조승헌 박사에 따르면 일반인의 행복지수는 20대에 최고조에 달했다가 30대부터 하락하기 시작한다. 김씨의 경우 30대의 가장 중요한 양대 과업, 곧 결혼과 구직을 성공적으로 해결한 데 따른 안정감이 행복지수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비록 양가 부모에게 목돈을 빌리기는 했지만 신혼 초에 일찌감치 집도 장만했다. 지금 사는 32평 아파트다.

김씨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배우자와의 관계를 꼽았다. 양쪽 집안의 문화격차 때문에 가끔 신경전을 벌일 때만 제외하면 김남규씨는 좋은 남편이다. 회식으로 밤늦게 귀가해도 싫은 소리 한번 하는 법이 없다. “힘들게 맞벌이시키는 게 미안해서”라고 남편은 말했다. 그러나 김미라씨는 돈 때문에 맞벌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스스로 일하는 게 좋고, “우리 딸은 연구소에 다닌다”라며 뿌듯해하는 부모님 보는 것이 기쁘다.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 근무하는 남편 김씨가 주·야간 교대근무를 할 때는 부부간에 간혹 갈등할 때도 있었다. 서로 얼굴 볼 시간이 없다보니 대화가 뜸해지면서 말에 가시가 박혔다. 그러나 한 달 전 남편 근무 시간대가 주간으로 바뀌면서 부부간 삶의 질이 현격하게 높아졌다. 일찍 퇴근해 딸과 휴대전화로 화상통화를 할 때면 두 사람 얼굴에는 화색이 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한테는 관심이 많다는 김씨. 그녀가 소개한 삶의 좌우명은 “나와 내가 싸워 나를 이기자!”였다.

30대 여성은 왜 MB를 싫어할까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남녀 구분을 두지 않았을 때 30대가 가장 많이 종사하는 직업은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다. 김미라씨도 이 분류에 따라 평균 한국인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통계청 조사를 성별로 나누면 결과가 달라진다. 30대 남성 중에는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가 가장 많지만 30대 여성 중 가장 많은 것은 비경제활동인구, 그중에서도 육아 종사자다. 그 다음이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 사무직 순이다.

본래 30대의 정치 성향은 20대와 비슷한 편이다. 무당층(35.4%)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민주당(28.5%), 한나라당(19.4%), 민주노동당(7.5%) 순이다(2009년 7~9월 윈지코리아·KSOI 조사 평균). 그런데 대통령 지지율에 관한 한 30대 여성은 데이터가 크게 ‘튄다’. 최근 여론조사 기관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율이 전반적으로 치솟는 속에서도 30대 여성 지지율이 반토막 수준인 데 주목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찍었다는 보수 성향인 김미라씨 또한 이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갑자기 회사에서 영어회의를 한다고 난리를 칠 때부터 못마땅하더니 요즘은 이 대통령이 ‘아침형 인간’이라는 것도 싫단다. 비인기 시간대에 텔레비전에서 주로 방영하는,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찍 잠드는 대통령은 아예 접하지 못할 것 같아서라고. 30대 여성의 ‘혐박(嫌博)’ 추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고용·출산·보육에서 겹겹이 고통받아 온 ‘30대 여성의 반란’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나의 40대는 열정이다” 한국의 40대 남성은 가족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유예시키곤 한다. 자녀 교육을 최대 관심사로 꼽지만 정작 자녀와 원활하게 소통하는 40대는 드물다.

 

대한민국 평균 40대 이종현
출생:1966년 강원도 삼척에서 2남1녀 중 장남
현재 거주지:대구광역시(자가/아파트)
키:172cm
몸무게:77kg
직업:자영업(발전설비)
예상 은퇴연령:65세
월평균 소득:500만원
월평균 근로시간:불규칙
최종 학력:고졸
동거 가족 수:4명(자녀 2명)
종교:없음
TV 시청 시간:하루 3시간
즐겨 읽는 신문:중앙일보
즐겨 하는 여가생활:여행
외식 횟수:주 1회
좋아하는 음식:김치, 된장찌개

   

좋아하는 문화예술인/연예인:박지성·최불암
좋아하는 가수/노래:조용필/모나리자
좋아하는 정치인:없음
좋아하는 정당:한나라당
좋아하는 나라:미국
싫어하는 나라:일본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
아버지의 사업 실패
현재 관심사:자녀 교육
스스로 매긴 행복점수:70점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가족 건강>경제적 요인>주변 사람들의 행복
(본인 또는 자녀가)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수용할 수 있다
(친구 또는 자녀가) 동성애자라면? 수용할 수 없다
내일 전쟁이 난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


대한민국 40대 남성이 가장 많이 종사하고 있는 직업은 ‘장치 기계 조작 및 조립’이다. <시사IN>이 40대 평균인으로 선정한 이종현씨(43·태광엔지니어링 대표)는 상시 고용인을 두지 않은 1인 기업 ‘사장님’이다. 섬 같은 오지를 돌며 발전설비를 설치하고 보수하는 것이 이씨가 하는 일이다.

굳이 통계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씨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40대 남성이다. 스물여덟 살 되던 해 같은 직장에서 만난 김지희씨(39)와 결혼해 1남1녀를 두었고, 결혼 6년 만에 장만한 32평짜리 아파트에 살며, 스트레스 받을 때는 고교 동창이나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푼다. 평균에서 조금 벗어나는 점이라면 홀아버지를 모시고 산다는 것, 그리고 근무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 정도이다. 직업 특성상 이씨는 1년에 서너 번씩 섬이나 오지로 장기 출장을 떠난다.

한국의 40대 남성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이씨는 유독 가장이자 장남으로서 책임감이 강하다. 개인적 체험의 영향이 컸다. 그는 강원도 태백 탄광촌에서 자랐다. 주변 이웃 모두가 가난했기에 특별히 부족함을 느낄 게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열 살 무렵 탄광촌에서 새 사업을 벌이다 실패한 아버지가 3년간 잠적하는 사건이 생겼다. 그 3년간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며 고생하는 모습을 어린 장남은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대구로 이사해 아버지와 다시 살림을 합친 뒤에도 상처는 쉬 가시지 않았다. 아버지 잠적 사건 이후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가장은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한다”라는 무의식이 자기 안에 생긴 것 같다고 김씨는 말했다. 10대 후반, 이미 그의 마음가짐은 장남이었다. 학교 공납금도 제때 못 내는 형편에 대학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일찌감치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고를 택했다.

“가장은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한다”

장기 출장을 자주 다니다보면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없어 아쉽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40대가 되면 가족보다 수입이 더 중요하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물질적인 여유가 없어지면 심리적인 여유도 없어진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다니는 섬에는 문화·여가 시설이랄 게 없다. 하다못해 변변한 술집 하나가 없다. 20~ 30대가 일하기를 기피하는 이유다. 그 외로움과 무료함을 이씨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버틴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아빠가 출장갈 때마다 모닝콜 세례를 퍼붓는 복덩어리 딸 윤정(초등학교 4학년)과의 통화로 푼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는 한국의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스스로를 도구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생애의 발견>, 인물과사상사). 가족과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행복은 일찌감치 포기하거나 먼 훗날로 보류한다. 그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기러기 아빠’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돈 버는 기계’로 마모되는 동안 가족 관계는 점점 더 불편하고 어색해지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이종현씨는 현재 가장 큰 관심사가 자녀교육 문제라고 했다. 생활비에서 가장 많이 지출하는 항목도 교육비이다. 한 달 평균 수입 400만~500만원 중 두 아이 학비와 학원비·과외비로만 150만~170만원이 나간다. 그나마 지방이고 극성 학군이 아니어서 이 정도다. 앞으로 대학 보낼 생각까지 하면 답이 안 나온다. 아이들 명의로 1000만원 적금을 들어놓은 것이 전부인데, 이 돈이면 1년 등록금 대기도 빠듯하다.

   

 ‘움직이는 사무실’이라 할 이종현씨(위)의 승합차 운전대 위에는 가족 사진이 꽂혀 있다.

 

불행한 일은,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아버지가 자녀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막상 자녀와 교감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씨 또한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양일)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사실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방법을 배운 일도 없다.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의 아버지를 떠올려봐도 ‘살가운 아버지상이 과연 있었던가’ 싶다.

노후를 떠올리면 가슴이 더 답답해진다. 자식에게 기댈 수 있었던 과거 세대와 달리 노후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마음뿐이다. 매달 20만원가량 붓는 개인연금과 국민연금 외에 뾰족한 노후 대비책이랄 게 없다. 매달 허리띠를 졸라매도 교육비로 뭉텅 돈이 나가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은퇴하고 나면 혹시나 식당이라도 해볼까’ 싶어 이씨는 출장을 갈 때마다 그 지역 특산물을 슬쩍슬쩍 곁눈질한다고 했다. “월 60만~70만원이면 노인 부부가 시골에서 살 수 있다”라는 말에 노후 귀농도 생각해봤다. 이래저래 고달픈 40대 가장의 삶을 반영하듯 이씨 스스로 매긴 행복점수는 70점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았다. ‘민심의 저울추’ 40대를 주목하라 40대는 우리 사회의 중추라고 할 수 있다. 취업 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것도 40대이고(남자 91.1%, 여자 64.5%), 가장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것도 40대이다. 2008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40대 월 평균 급여는 265만8639원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다. 월 평균 근로시간은 191시간으로 50대(196시간)에 비해 약간 짧다.

40대는 여론조사에서 가장 주목하는 연령대이기도 하다. 민심의 저울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7~9월 윈지코리아와 KSOI 조사를 통해 나타난 단순 정당 지지도만 보면 40대 정당 선호도는 민주당(24.6%)보다 한나라당(30.3%) 쪽으로 약간 더 기운 것으로 나타난다. 민주화 세대라는 이른바 386세대가 거의 40대에 진입했음을 감안하면 의외의 수치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한 데도 40대가 큰 영향을 미쳤다. 민심 흐름에서 이들이 50~60대에 ‘동조’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실정(失政)을 범할 때면 이들의 저울추는 급격히 20~30대에 가까운 쪽으로 기울어왔다. 미디어법 파동 때가 대표적이다. 특히 ‘여론을 경청하지 않는 것’ ‘부자만을 위한 정책’에 대한 비판이 많다. 이종현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 행보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4대강 살리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4대강 살리기에 박수치는 사람은 강 주변에 땅 가진 사람뿐일 것이다. 왜 식수원인 낙동강을 갖고 그런 위험천만한 일을 밀어붙이는지 모르겠다”라고 이씨는 말했다. “나의 50대는 삶의 재발견이다” 50대는 보람이 큰 만큼 후회도 많은 시기이다.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로 일생을 보낸 김민정씨는 50대를 “삶의 여유를 갖고 모든 사물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싶은 시기”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평균 50대 김민정
출생:1955년 부산광역시에서 2녀 중 장녀
현재 거주지:서울 상계동(전세/아파트)
키:161cm
몸무게:54kg
직업: 가사·자영업(학교 물품 납품)
예상 은퇴 연령: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할 예정
월평균 소득: 300만원 이하
월평균 근로시간: 180시간
최종 학력:고졸
동거 가족 수:2명(자녀 1명)
종교:기독교
TV 시청 시간:하루 2시간
즐겨 읽는 신문:조선일보
즐겨 하는 여가생활:집안 정리

   

외식 횟수:거의 없음
좋아하는 음식:고기류(과거)/지금은 특별히 없음
좋아하는 문화예술인/연예인:
오드리 헵번·김영애·손숙·박정자
좋아하는 노래:당신은 모르실 거야
좋아하는 정치인:김홍신
좋아하는 정당:한나라당
좋아하는 나라:스위스
싫어하는 나라:없음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
10년 전 큰병치레
현재 관심사:나와 어머니의 건강
스스로 매긴 행복점수:80점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건강>자식
(본인 또는 자녀가)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사람만 괜찮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
(친구 또는 자녀가) 동성애자라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내일 전쟁이 난다면?일단 가족끼리 함께 모인다


김민정씨(54)는 ‘강하다’. 매일 아침 8시 반에 집을 나서서 하루 종일 학교에 학생 명찰·배지 따위를 납품하며 돌아다닌다. 오후 7시에 집에 돌아오면 꼬박꼬박 남편의 저녁상을 차린다. 지난 2000년 큰 병을 앓아 수술을 받고 10년간 병원을 다니면서도 이런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편으로 김씨는 ‘약하다’. 거울로 늙어가는 자신을 보면 여간 속상한 게 아니다. 키가 또래에 비해 큰 161cm인데 어째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 몸에 주름이 잡히고 머리숱도 적어진다. 아프고 난 뒤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왜 그렇게 늙었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런 날이면 집에 돌아가 울기도 많이 울었다.

 김씨는 50대 대다수가 그렇듯 전후 베이비붐 세대에 속한다. 1955년 부모님이 피란 가 있던 부산에서 2녀 중 장녀로 태어나 서울 사대문 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7년 건설회사에 다니던 남편을 만나 연애 결혼을 했고, 1년 뒤 지금 대학 다니는 외동딸을 낳았다. 가정주부로 딸과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9년 전부터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친정아버지가 하던 납품업을 물려받았다. 한 달 평균 180시간을 일하고 벌이는 3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정치에 큰 관심은 없지만 선거 날 투표를 빼먹은 적이 없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편이다. 

김씨 인생에서 가장 큰 고비는 10년 전 몸이 아팠을 때 찾아왔다. 병원비도 많이 들고 정신적인 고통도 컸다. 지금은 건강을 회복했지만 마음을 완전히 놓지는 못한다. 고기·술 따위를 끊고 현미밥과 과일을 주로 먹으면서 일 년에 4회 정도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다. 나이가 드니 그 병이 아니고도 병원에 갈 일이 점점 많아졌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심장병 검사도 주기적으로 받고, 일 때문에 하도 많이 걸어 발바닥 근막이 상하는 ‘족저근막염’을 얻어 2년째 정형외과를 다니고 있다.   

   

 김민정씨(위)는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이 크다. 해외여행과 뮤지컬 관람이 첫째 소원이다.

 

건강 문제를 겪은 뒤 김씨는 ‘유비무환(有備無患)’ 교훈을 얻고 딸 앞으로 건강 보험을 이것저것 들어놓았다. 또 어렸을 때 띄엄띄엄 나가던 교회를 매주 나가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도 얻었다. 생활에 쪼들려 힘들다면서도 김씨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모든 것이 감사하다”라고 말한다. 스스로 매긴 행복지수도 80점으로 꽤 높은 편이다.

“지금 최대 소원은 말레이시아 여행”

또래에 비해 김씨는 아이를 늦게 낳은 편이다. 그래서 자녀들의 취업과 결혼 문제를 걱정하는 친구들과 달리 자식 문제로 속 썩을 일은 없다. 다만 매일 아침 밥을 해먹이고 교육을 위해 학군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다녔는데도 김씨는 딸을 충분히 뒷바라지하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딸을 강남이나 외고로 보내 공부시키지 못한 게 여전히 아쉽다는 것이다. 딸이 교대에 진학하면서 김씨는 자녀 교육에 대한 근심을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 등록금이 싼 대학에 다니는 딸이 고마울 뿐이다.

김씨가 지금 삶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문화 생활에 대한 갈증이다. 주변 50대 여성들은 영화와 공연, 여행을 즐기며 삶의 여유를 만끽하는 것 같은데 자기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침울해한다. 최근 김씨의 첫째 소원은 말레이시아 여행과 뮤지컬 관람. 친한 친구가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어 주변 다른 친구들은 모두 한 번씩 놀러 가봤는데 자신은 비용도 부담스럽고 남편의 허락도 떨어지지 않아 5년째 바라만 보고 있다. 뮤지컬 관람도 비싼 비용 때문에 쉽사리 엄두를 못낸다.

요즘 50대 여성들 사이에 우스개처럼 떠도는 것이 ‘중년 여성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 시리즈다. 필요한 네 가지는 돈·친구·건강·딸이고, 필요 없는 한 가지는 남편이란다(반면 중년 남성에게 필요한 5가지는 ‘아내·집사람·마누라·와이프·처’라고 한다). 실제로 50대 들어 김씨 주변에 친구·동창 모임이 부쩍 늘었다. 그 자리에 남편과 함께 나타나는 친구는 본 적이 없다. 여기저기서 “황혼 이혼을 하고 싶다”라는 이야기가 거침없이 쏟아진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김씨는 씁쓸해진다고 했다. 가장 가까워야 할 동반자로 인해 더 외로워하는 현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자식도 품안에서 떠나 ‘빈 둥지 증후군’을 앓는 외로운 갱년기 여자, 이것이 일반적인 50대 여자의 자화상이다.

김씨 또한 “발이 아프다고 해도 한 번 주물러주지도 않고 병원만 가라고 하는” 남편이 때로 섭섭하다고 했다. 다른 세대는 50대 여성을 ‘강하고 억척스러운 아줌마들’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사실 50대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다정하게 건네는 관심과 말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아들 둔 50대 허리가 휜다 김민정씨는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해놓지 않아 걱정이 크다. 몸이 아파 더 이상 학교 납품 일을 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연금보험과 노후 보험 하나를 들어놓았을 뿐이다. 김씨는 “노후 보험에 가입할 당시 돈이 모자라 월 20만원짜리를 못 들고 10만원짜리를 들었는데 지금 크게 후회된다”라고 말했다.

자녀가 독립하고,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이 다가오는 50대에게 노후 준비는 큰 관심거리이다. 하지만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든든하게 준비해놓은 50대는 그리 많지 않다. 2008년 한경비즈니스·M&C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노후에 필요한 자산 중 50% 이상을 준비해놓았다”라고 답한 50대는 23.6%에 그쳤다. 

옛날 사람들은 ‘자식이 보험’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50대는 오히려 자식에게 있는 돈을 뺏기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여긴다. 김씨는 “예전에는 아들을 못 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지금 주변을 보면 딸만 하나 있는 것이 그렇게 속 편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아들을 장가보내는 부모들이 “집을 사달라”는 성화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2008년 통계청이 혼인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79.3%가 결혼식과 신혼집 마련에 든 비용을 부모님과 분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9.5%는 부모가 모든 비용을 부담했다고 답했다. 특히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 결혼(신혼집 마련) 비용은 1억 2850만원(2007년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자료)에 달했다. 결혼 적령기 아들을 둔 50대 부모는 시름이 깊다. “나의 60대는 인생 이모작이다” 60대의 생애는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의 압축판이다. ‘보릿고개 세대’로 자라 근대화의 한복판을 통과한 김길용씨는 스스로를 ‘낀 세대’라고 불렀다.

 

대한민국 평균 60대 김길용
출생:1943년 전남 담양에서 3남 중 막내
현재 거주지:서울(전세/다세대 주택)
키:163cm
몸무게:65kg
직업:빌라 관리인
예상 은퇴 연령:70세
월평균 소득:90만원
월평균 근로시간:250~300시간
최종 학력:초졸
동거 가족 수:1명(자녀 3명 출가)
종교:기독교
TV 시청 시간:하루 3시간
즐겨 읽는 신문:조선일보
즐겨 하는 여가생활:없음
외식 횟수:월 1회
좋아하는 음식:비빔밥
좋아하는 문화예술인/연예인:박지성·최수종
좋아하는 가수/노래:이미자/완행열차
좋아하는 정치인:조순형
좋아하는 정당:없음

   

좋아하는 나라:미국
싫어하는 나라:중국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
심근경색 발병
현재 관심사:정치권의 도덕적 잣대
스스로 매긴 행복점수:80점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종교 생활>건강>부부 금실>경제적 안정
(본인 또는 자녀가) 외국인과 결혼한다면?
수용할 수 없다
(친구 또는 자녀가) 동성애자라면?
수용할 수 없다
내일 전쟁이 난다면?최선을 다해 지킨다

김길용씨(66)와의 첫 교신은 이메일로 이루어졌다. 조사 기관에서 평균 60대 후보 중 하나로 추천한 김씨에게 취재에 응할 뜻이 있는지 물었더니 이런 답장 메일이 돌아왔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가방끈이 매우 짧은 촌로입니다. 제가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60대가 이메일을 능숙하게 쓰다니, 평균 맞아?’ 의구심을 품은 채 김씨가 근무하는 서울 성북구 한 빌라를 찾아갔다(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2009 인터넷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60대의 20.1%가 인터넷을 이용한다). 이 빌라에서 관리인으로 일한다는 김씨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껄껄 웃었다. 자신이 정보 활용에서 약간 앞선 것은 사실이나 이미 주변의 많은 60대가 인터넷을 이용하며, 다른 전반적인 조건으로 볼 때 자신은 스스로 생각해도 평균 60대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김씨는 자칭 보릿고개 세대다. 이 세대 대다수가 그렇듯 김씨의 생애 또한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의 압축판이라 할 만하다. 1943년 전남 담양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젖도 떼기 전에 어머니를 잃었다. 아마도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 때문에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는 짐작한다. 국민학교(초등학교) 1~2학년 때 6·25를 겪었다. 밤마다 식량을 약탈하러 오는 인민군 패잔병을 피해 동네 뒷산으로 피란 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포기했다. 국민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채 머슴살이를 하던 두 형님에 비하면 그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동네 지서에서 급사로 일하며 3·15 부정 선거를 겪었다. “당시 경찰이 선거 운동망을 조직하고 감시하는 걸 곁에서 지켜봤다”라고 그는 말했다. 나이 열여섯, 그는 집을 나와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탈출하고 싶었다.

   

김길용씨(위)는 10년째 빌딩·공동주택 관리인으로 일한다.

 

그러나 가진 것 없는 그에게 서울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군대를 갔다. 운전병으로 차출돼 ‘빳다를 맞아가며’ 운전을 배웠다. 북한의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했을 때는 살벌했다. 어려서부터 신앙을 가진 덕에 군종하사 노릇도 했다. 제대하니 입대 전 사귀던 여성이 아들을 낳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 최흥규씨(63)다. 고향으로 내려갈까 잠시 고민했으나 산업화에 접어들던 그 시기 농촌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직 먹고살기 위해 낯선 탄광촌(강원 함백)으로 식솔을 이끌고 떠났다. 그곳에서 탄부로 13년간 근무하며 딸 둘을 더 낳았다.

병마 닥친 뒤 건강·신앙 소중함 깨달아

그가 서울로 돌아온 것은 1979년이었다. 큰아이가 6학년이 되니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도시에서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김씨는 회고했다. 그 뒤 닥치는 대로 일했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 구멍가게를 해보려다 사기도 당하고, 트럭 한 대 몰고 다니며 달걀장사도 해봤다. 고달팠다. 그래도 아이들 커 가는 게 보람이었다. 가장 공들인 아들은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입사했다. 딸 둘은 여상을 나와 평범한 남자와 결혼했다. 1994년에는 20평(66㎡)대 단독주택도 하나 장만했다.

그런데 만 쉰두 살이 되던 1995년, 병마가 그를 덮쳤다. 심근경색이었다. 대수술을 마쳤는데 5개월 뒤 병이 재발했다. 생애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였다. 그 뒤 김씨는 건강과 신앙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몸이 약해지니 험한 일을 할 수 없었다(2006년 심근경색은 세 번째로 재발했다). 일반 사무실·대학·아파트 등을 돌며 경비 생활을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이다. 병원비를 대느라 집도 팔아야 했다. 현재 김씨는 아내와 함께 5500만원짜리 반지하 전셋집에 산다.

김씨는 “자식들 뒷바라지에 모든 것을 퍼붓느라 노후 준비를 전혀 해놓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가족은 ‘낀 세대’인 60대에게 상처이자 위안이기도 하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김씨는 결혼 이후 부모를 잘 찾지 않는 아들이 야속하다. 그렇지만 심근경색으로 앓을 때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됐던 것 또한 가족이었다. “할아버지, 배꼽 맞추기 놀이하자”라며 달려들던 외손녀의 재롱이 그를 웃게 했다.

그는 현재 경비 월급 80만원과 국민연금 8만원으로 매달 근근이 살아간다. 생활비 40만원에 각종 공과금 10만원, 통신비 10만원, 병원비·약값으로 15만원가량을 쓰고 나면 살림은 늘 빠듯하다. 집과 일터 두 군데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다보니 전체 살림 규모에 비해 통신비 비중이 큰 편인데, 그래도 인터넷은 포기할 수 없다. 나이가 더 들어 경비마저 못하게 되면 인터넷으로 뭔가 먹고살 방법이 없을까 궁리 중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는 현재 ‘도메인 인터넷 마케팅’을 시험하는 홈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준비 없이 노후 맞은 세대 김길용씨는 60대를 ‘낀 세대’라고 규정했다. “죽으나 사나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키워야 했던 마지막 세대로서 노후 준비를 할 여력이 없었던데다 자식의 봉양마저 기대할 수 없는 첫 세대”라는 것이다. 김씨는 자기 노후를 준비한다며 보험 들고 재테크를 하는 요즘 젊은 부모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60대 평균 최종 학력은 초졸 이하(36.8%)이다. 중졸은 13.7%, 고졸은 15.3%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 문턱을 아예 밟아보지 못한 사람도 26.4%에 이른다. 대학 진학률이 84%에 달하는 현재와는 천양지차다.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며 어렵게 성장한 이 세대는 산업화의 한복판을 통과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 만큼 애국심 또한 최고 수준이다. ‘내일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김길용씨는 “최선을 다해 (나라를) 지키겠다”라고 답했다. ‘가족과 함께 안전한 곳을 찾겠다’는 젊은 세대와 대조된다. 정치 성향 또한 안정 지향적이다. 60대의 47.7%가 여당인 한나라당을 지지한다. 전 세대를 통틀어 한나라당 지지도가 가장 높다.

그러나 이들의 현재는 힘겹다. 60대 남성의 38.3%, 여성의 60.9%는 실업 상태이거나 준실업 상태에 있다. 취업한 60대도 주로 단순 노무직(남성 17.0%, 여성 15.0%)에 종사한다. 그 다음이 농림어업 종사자로 남녀 각각 14.0%, 11.1%에 달한다. 부실한 사회안전망을 감안할 때 이들의 삶이 곤궁할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수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