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大邱 불로동고분&김광석 길

醉月 2014. 11. 13. 10:36


삼국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214기의 봉분들이 거대한 하나의 무덤을 이루고 있는 대구의 불로동 고분군 모습. 고분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 길 위에서 만나는 풍경은 해가 저무는 늦은 오후에 가장 아름답다.


본격적인 걷기 여행의 즐거움을 처음 우리에게 알려준 게 제주의 올레길입니다. 빼어난 제주의 아름다움, 그 한복판으로 난 올레길은 아직도 명실상부한 최고의 걷기 코스입니다. 그 길을 처음 만든 이는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 그에게 물었습니다. “제주 빼고 육지에서 가장 좋은 걷기 코스가 어딥니까?” 추호의 망설임 없이 되돌아온 답이 대구의 ‘불로동 고분길’이었습니다.

‘불로동 고분’. 낯선 이름입니다. 불로동은 대구 도심의 북쪽 변두리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펼쳐진 거대한 고분은 삼국시대 무렵 조성된 자그마치 31만7350여㎡(약 9만6000평)의 묘역공간입니다. 10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건너온 무덤만 남아있을 뿐, 거대한 고분군은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언제 조성됐으며, 누가 묻힌 무덤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수수께끼로 가득한 214기의 옛 무덤들 사이로는 두어 뼘 남짓의 오솔길이 나 있었습니다. 아득한 시간의 태엽을 감으면서 물음으로 가득한 오래된 시간 사이로 이어진 길입니다.

누군가의 삶이 무덤으로 남은 자리여서일까요. 그 길은 ‘저무는 시간’이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계절이 저물어가는 가을날, 해가 설핏 기울어갈 무렵이 그 길을 걷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자취가 가을날 저물 무렵의 쓸쓸함과 가장 어울렸으며, 기울어가는 해를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고분의 유연한 곡선도 아름다웠습니다.

대구에서 저물 무렵 찾아가면 좋은 또 한 곳이 대구 북구 산격동의 방천시장입니다. 신천대로 둑길 아래 쇠락해가는 시장을 끼고 있는 자그마한 골목이 ‘김광석 길’입니다. 18년 전 세상을 떠난 가수 김광석이 어린 시절을 보낸 시장골목 옹벽에다 2009년 지역의 화가들이 그를 추억하는 벽화를 그려넣은 뒤로 그를 추모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입니다. 가수 신해철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199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상실감과 애통함을 불러왔다면, 그들보다 10년쯤 앞선 이른바 486세대들에게는 김광석이 그랬습니다. 청춘의 시기를 까닭모를 죄책감 혹은 아픔으로 기억하는 중년 이상의 세대라면 그곳이 왜 저무는 시간이 어울리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지난 1996년 세상을 뜬 가수 김광석이 유년시절을 보낸 대구 방천시장 골목에 조성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여행자들이 모여들면서 명소가 된 이 골목에 김광석 그림이 다시 그려지고 있다.




# 수수께끼로 가득한 무덤 사이를 걷다

대구의 북구 불로동. 아니 불(不)자에 늙을 노(老)자를 쓴다. 팔공산 일대에서 벌어진 동수 전투에서 견훤에 패한 왕건이 이 마을을 찾았더니 전쟁 통에 어른들은 다 죽고 애들밖에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불로동에는 고대국가의 옛 무덤인 고분군이 있다. 이름하여 ‘불로동 고분군’이다.

대구의 불로동 고분군에는 누가 묻혀 있을까. 거대한 고분들만 시간을 건너와 남아있을 뿐, 자료나 기록은 전혀 없다. 그저 삼국시대에 대구 일대를 지배하던 세력들의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불로동에만 크고 작은 고분 214기가 있다. 여기다 인접한 봉무동, 단산동, 도동의 것까지 합친다면 300기가 훨씬 넘는다. 고분군 앞에 서면 일단 규모에 놀라게 된다. 지름 20m가 넘는 거대한 것부터 일반 무덤만 한 것까지 봉분 수백 기가 구릉을 따라 펼쳐져 있다.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덤 같은 구릉이 도시 변두리에서 섬처럼 여태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 길의 매력은 봉분이 그려내는 부드러운 선에 있다. 거기다가 고대국가의 무덤 사이로 난 길을 걸을 때 느끼게 되는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훌륭하다. 이 길을 ‘최고의 길’이라며 추천했던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도 “불로동 고분길을 걸으면서 1000년이 훨씬 넘는 아득한 시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고 했다.

불로동 고분 사이로 난 오솔길은 고분공원 주차장을 끼고 있는 문화관광안내소 뒤편에서 출발한다. 고분군의 기슭에는 짧은 구간에 나무 덱을 놓고 자그마한 연못과 습지를 자연스럽게 조성해 두었다. 연못은 고분의 유려한 선을 수면 위의 반영으로 받아낸다. 고분 길은 걷는 내내 거의 평지와 다름없이 순하다. 구릉 위로 올라서는 길이 경사가 좀 있지만, 워낙 짧아 오르막이라 할 것도 없다. 구릉에 올라서면 봉긋봉긋 솟아있는 고분들이 부드러운 곡선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게 된다.

불로동 고분이 그려내는 곡선을 가장 잘 보려면 오후 서너 시 이후에 가는 것이 좋겠다. 그 시간이라면 내내 해를 등 뒤에 두고 걷게 되는데,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붉게 물들어 가는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먹으로 그려낸 듯한 고분의 곡선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늦은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부드럽게 고대인의 주검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 고분들이 건너온, 저무는 시간을 헤아려보면 자못 아득할 따름이다. 고분의 곡선 너머로 아득하게 대구 도심의 빌딩들이 이뤄낸 숲이 눈에 들어온다. 고대 국가의 고분과 지금의 도시가 10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의 간극을 지우고 하나의 장면 속으로 들어오는 셈이다.

불로동의 고분은, 너무 잘 다듬어져 위엄으로 가득한 신라의 왕릉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신라 왕릉이 어쩐지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라면, 이곳 불로동 고분은 동네 아이들이 놀이터로 삼을 정도로 편안하고 자유분방하다. 걷는 내내 마음이 푸근한 건 이런 분위기 때문이겠다. 고분을 따라가는 길은 초지 같은 오솔길이 대부분인데 아주 잠깐 숲길을 거치기도 한다. 이 구간에는 탱자나무가 울타리처럼 심어져 있다. 이즈음 익어서 노랗게 떨어진 탱자의 상큼한 향기를 맡으며 걸을 수 있다.

# 측백수림 앞에서 풍류의 기억과 만나다

▲ 대구의 불로동 고분 사이로 길게 이어지는 오솔길.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이 ‘최고의 도보길’로 꼽은 길이다.

고분 사이를 다 걷고 한적한 불로동의 동네 어귀로 내려오면 금호강의 지천인 불로천 물길을 따라간다. 고분 아랫동네에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불로교까지는 아파트 단지를 마주보며 줄곧 차로를 따라가지만 차량통행이 그리 많지 않아 호젓하다. 거기서 다시 길은 도동 측백수림까지 이어진다. 도동 측백수림은 1962년 우리나라의 첫 번째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기후변화 때문인지 지금은 측백나무가 더 남쪽에도 있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당시만 해도 이곳이 측백나무가 집단 서식하는 곳 중에서 가장 남쪽이었다. 측백수림의 숲에는 굴참나무, 느티나무, 굴피나무, 물푸레나무와 어울려 자라는 1200여 그루의 측백나무가 있다. 물가의 측백나무의 초록빛도 좋지만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서 나무들이 자라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측백수림 일대의 경치가 아주 빼어났던 모양이었다. 조선 초기 학자 서거정이 ‘대구의 경치 좋은 열 곳’ 중에서 여섯 번째로 이곳을 뽑았으니 말이다. 서거정은 이곳을 일러 ‘북벽향림(北壁香林)’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절벽 앞 불로천의 물이 깊고 푸르렀고 숲도 울창해서 풍류객들이 자주 찾아들었다고 전한다. 이곳은 또 대구에서 영천이나 경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해서 길손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걷기여행을 하는 이들이 거기서 쉬어간다. 측백수림 가까이에 바람에 뎅그렁거리는 풍경소리를 들으면서 쉬어갈 수 있는 절집 관음사가 있는데 구경 겸 쉴 겸 해서 찾아가도 좋겠다.

이쯤에서 불로동 고분길을 걸을 때 참고해 둘 이야기 한 가지. 불로동 고분군 지척에 공군비행장이 있다. 공군 전투기가 수시로 뜨고 내리는데 최신형 전투기가 내는 소음의 크기가 보통이 아니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익숙해져서 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지만 외지인들은 엄청난 소음에 머리가 다 어찔어찔할 정도다. 짜증스러운 건 걷기의 사색 사이사이로 전투기의 소음이 마치 예의없는 손님처럼 불쑥불쑥 끼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길을 걸을 때 좋아하는 음악과 이어폰을 가져가는 편이 낫겠다.

무슨 일이든 나쁜 점이 있다면 좋은 점도 있는 법. 지금은 소음 때문에 짜증이 나지만 사실 불로동 고분군이 사방이 탁 트인 자리에서 제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는 건 한편으로는 공군비행장 덕이기도 하다. 비행장이 들어서면서 고도제한 조치로 일대에는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없었고, 그래서 불로동 고분군이 빌딩 숲 안에 갇히지 않고 오히려 도시를 굽어보는 자리를 여태 지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 쇠락한 시장의 골목에서 지나간 시간과 만나다

대구에서 저물 무렵 들를만 한 또 한 곳이 방천시장을 끼고 있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김광석 길)이다. 대구 북구 산격동의 방천시장은 한때 대구의 3대 시장 중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위세가 당당했지만, 지금은 한눈에도 쇠락한 시장이다. 시장 안쪽의 낡은 건물의 상점은 절반쯤이 아예 문을 닫았고, 마늘 몇 단과 고추와 고구마 따위를 좌판에 펼치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들도 하품으로 하루를 보내는 곳이다.

방천시장이 신천대로의 옹벽과 만나는 끝에 ‘김광석 길’이 있다. 높은 담벽을 끼고 이어지는 300m가 채 안 되는 골목이 지난 2009년 가수 김광석의 벽화를 그려넣은 골목으로 탈바꿈한 건 쇠락해가는 방천시장을 살리기 위해 문화를 덧입히는 사업의 일환이었다. 벽에는 지난 1996년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가수 김광석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특유의 웃음을 짓는 모습부터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있고, 생전에 나이 사십이 넘은 뒤에 갖고 싶다던 오토바이를 탄 모습도 있다. 허름한 미용실과 대장간을 끼고 있는 골목 담벽에 포장마차의 주인으로 그려져 오가는 이들을 맞이하기도 한다.

급작스러운 가수 신해철의 죽음이 199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30∼40대들에게 커다란 상실감으로 다가왔다면 이 이전의 세대들에게는 김광석이 있었다. 화려한 청춘이 아니라 ‘시대의 고통’으로 젊은 날을 추억하는 40∼50대들을 따뜻한 노랫말로 위무했던 김광석은 각별했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질 것 같았지만, 모두에게 저마다의 청춘이 잊어질 리 없듯이 그의 존재는 지금도 또렷하다. 마찬가지로 신해철도 그와 젊은날을 함께했던 세대들에게는 각자의 청춘과 함께 오래 기억되리라.

김광석 길을 차지한 건, 그러나 의외로 20대 젊은이들이었다. 젊은이들은 김광석의 옛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 길을 오갔고, 벽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골목을 중심으로 이곳저곳에 젊은이들 취향의 카페와 분식점, 화랑 등이 빠르게 들어서고 있었다. 쇠락한 시장이 근사한 카페골목으로 변화해가는 속도에 현기증이 다 날 정도다. 김광석 노래의 아날로그식 통기타 곡조와 노랫말이 18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힘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쯤에서 김광석 길에 얽힌 뒷얘기 한 토막. 당초 옹벽에 그려질 벽화의 주인공으로 가수 김광석과 함께 김우중 전 대우 회장과 야구선수 양준혁 이 물망에 올랐단다. 김 전 회장은 6·25전쟁 당시 방천시장에서 신문배달을 했던 인연이 있었고, 양준혁 선수는 방천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부모님과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들 세 명이 후보로 올라와 경합을 벌인 끝에 이 골목은 김광석 길이 됐다. 김광석 길이 어쩌면 김우중 길이나 양준혁 길이 될 뻔했던 셈이다.

김광석 길은 생전에 그가 남긴 노래도 노래지만, 죽음으로 건너간 이를 추억하는 곳이어서 더 각별한 것일지도 모른다. 불로동 고분군에 남아있는 무덤들이 생전의 영광이 아니라 죽음으로 더 아름답게 남아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가을날의 늦은 오후에 그 길 위에서 마주치는 질문은 이런것일지도 모르겠다. 저무는 시간을 어떻게 건너갈 것인가, 남아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 불로동 고분군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도동분기점에서 익산∼포항 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팔공산나들목으로 나간다. 팔공산·이시아폴리스 방향으로 우회전해 GS동원주유소 못미쳐 우회전해 직진하면 불로동 고분군이다. 고분군 앞에 주차장이 잘 갖춰져 있다. 김광석 길이 있는 방천시장은 대구지하철 2호선 경대병원역에서 가깝다. 경대병원역 3번 출구로 나와 수성교 쪽으로 350m쯤 걸으면 오른쪽으로 방천시장이다. 김광석 길의 주소는 ‘달구벌대로 450길’이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불로동 고분군에서 복합산업단지 이시아폴리스가 가깝다. 이시아폴리스에는 호텔이시아(050-7900-8651)가 있다. 대구국제공항의 호텔에어포트(053-260-0001)와 신암4동의 호텔타임(053-953-9500)도 고분군에서 멀지 않다. 대구에는 의외로 맛집이 많은 편이다. 따로국밥, 동인동 찜갈비, 납작만두, 복어불고기를 비롯해 대구의 10가지 대표 메뉴를 ‘대구 10미(味)’라고 부르기도 한다.

각 메뉴별로 손꼽히는 맛집으로는 따로국밥의 국일따로국밥(053-253-7623), 매운찜갈비의 벙글벙글식당(053-424-6881), 생고기 뭉티기의 녹양식당(053-257-1796), 납작만두의 미성당납작만두(053-255-0742), 복어불고기의 미성복어(053-767-8877), 무침회의 푸른회식당(053-552-5040), 논메기매운탕의 산정식당(053-582-2566), 야키우동의 중화반점(053-425-6839) 등이다. 막창구이는 경북대 북문 서부정류장 옆의 ‘안지랑골목’에 늘어선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달성 현풍백년도깨비시장의 현대식당(010-3822-4634)은 수구레국밥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누린다. 소의 가죽에서 떼어낸 지방육으로 칼칼하게 국밥을 끓여낸다. 진흥반점(053-474-1738)은 이른바 ‘전국 5대 짬뽕집’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곳이다. 제과점 삼송베이커리(053-254-4064)의 구운고로케, 통옥수수빵은 간식으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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