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걷기 여행의 즐거움을 처음 우리에게 알려준 게 제주의 올레길입니다. 빼어난 제주의 아름다움, 그 한복판으로 난 올레길은 아직도 명실상부한 최고의 걷기 코스입니다. 그 길을 처음 만든 이는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 그에게 물었습니다. “제주 빼고 육지에서 가장 좋은 걷기 코스가 어딥니까?” 추호의 망설임 없이 되돌아온 답이 대구의 ‘불로동 고분길’이었습니다. ‘불로동 고분’. 낯선 이름입니다. 불로동은 대구 도심의 북쪽 변두리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펼쳐진 거대한 고분은 삼국시대 무렵 조성된 자그마치 31만7350여㎡(약 9만6000평)의 묘역공간입니다. 10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건너온 무덤만 남아있을 뿐, 거대한 고분군은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언제 조성됐으며, 누가 묻힌 무덤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수수께끼로 가득한 214기의 옛 무덤들 사이로는 두어 뼘 남짓의 오솔길이 나 있었습니다. 아득한 시간의 태엽을 감으면서 물음으로 가득한 오래된 시간 사이로 이어진 길입니다. 누군가의 삶이 무덤으로 남은 자리여서일까요. 그 길은 ‘저무는 시간’이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계절이 저물어가는 가을날, 해가 설핏 기울어갈 무렵이 그 길을 걷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자취가 가을날 저물 무렵의 쓸쓸함과 가장 어울렸으며, 기울어가는 해를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고분의 유연한 곡선도 아름다웠습니다. 대구에서 저물 무렵 찾아가면 좋은 또 한 곳이 대구 북구 산격동의 방천시장입니다. 신천대로 둑길 아래 쇠락해가는 시장을 끼고 있는 자그마한 골목이 ‘김광석 길’입니다. 18년 전 세상을 떠난 가수 김광석이 어린 시절을 보낸 시장골목 옹벽에다 2009년 지역의 화가들이 그를 추억하는 벽화를 그려넣은 뒤로 그를 추모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입니다. 가수 신해철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199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상실감과 애통함을 불러왔다면, 그들보다 10년쯤 앞선 이른바 486세대들에게는 김광석이 그랬습니다. 청춘의 시기를 까닭모를 죄책감 혹은 아픔으로 기억하는 중년 이상의 세대라면 그곳이 왜 저무는 시간이 어울리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 수수께끼로 가득한 무덤 사이를 걷다 대구의 북구 불로동. 아니 불(不)자에 늙을 노(老)자를 쓴다. 팔공산 일대에서 벌어진 동수 전투에서 견훤에 패한 왕건이 이 마을을 찾았더니 전쟁 통에 어른들은 다 죽고 애들밖에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불로동에는 고대국가의 옛 무덤인 고분군이 있다. 이름하여 ‘불로동 고분군’이다. 대구의 불로동 고분군에는 누가 묻혀 있을까. 거대한 고분들만 시간을 건너와 남아있을 뿐, 자료나 기록은 전혀 없다. 그저 삼국시대에 대구 일대를 지배하던 세력들의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불로동에만 크고 작은 고분 214기가 있다. 여기다 인접한 봉무동, 단산동, 도동의 것까지 합친다면 300기가 훨씬 넘는다. 고분군 앞에 서면 일단 규모에 놀라게 된다. 지름 20m가 넘는 거대한 것부터 일반 무덤만 한 것까지 봉분 수백 기가 구릉을 따라 펼쳐져 있다.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덤 같은 구릉이 도시 변두리에서 섬처럼 여태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 길의 매력은 봉분이 그려내는 부드러운 선에 있다. 거기다가 고대국가의 무덤 사이로 난 길을 걸을 때 느끼게 되는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훌륭하다. 이 길을 ‘최고의 길’이라며 추천했던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도 “불로동 고분길을 걸으면서 1000년이 훨씬 넘는 아득한 시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고 했다. 불로동 고분 사이로 난 오솔길은 고분공원 주차장을 끼고 있는 문화관광안내소 뒤편에서 출발한다. 고분군의 기슭에는 짧은 구간에 나무 덱을 놓고 자그마한 연못과 습지를 자연스럽게 조성해 두었다. 연못은 고분의 유려한 선을 수면 위의 반영으로 받아낸다. 고분 길은 걷는 내내 거의 평지와 다름없이 순하다. 구릉 위로 올라서는 길이 경사가 좀 있지만, 워낙 짧아 오르막이라 할 것도 없다. 구릉에 올라서면 봉긋봉긋 솟아있는 고분들이 부드러운 곡선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게 된다. 불로동 고분이 그려내는 곡선을 가장 잘 보려면 오후 서너 시 이후에 가는 것이 좋겠다. 그 시간이라면 내내 해를 등 뒤에 두고 걷게 되는데,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붉게 물들어 가는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먹으로 그려낸 듯한 고분의 곡선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늦은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부드럽게 고대인의 주검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 고분들이 건너온, 저무는 시간을 헤아려보면 자못 아득할 따름이다. 고분의 곡선 너머로 아득하게 대구 도심의 빌딩들이 이뤄낸 숲이 눈에 들어온다. 고대 국가의 고분과 지금의 도시가 10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의 간극을 지우고 하나의 장면 속으로 들어오는 셈이다. 불로동의 고분은, 너무 잘 다듬어져 위엄으로 가득한 신라의 왕릉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신라 왕릉이 어쩐지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라면, 이곳 불로동 고분은 동네 아이들이 놀이터로 삼을 정도로 편안하고 자유분방하다. 걷는 내내 마음이 푸근한 건 이런 분위기 때문이겠다. 고분을 따라가는 길은 초지 같은 오솔길이 대부분인데 아주 잠깐 숲길을 거치기도 한다. 이 구간에는 탱자나무가 울타리처럼 심어져 있다. 이즈음 익어서 노랗게 떨어진 탱자의 상큼한 향기를 맡으며 걸을 수 있다. # 측백수림 앞에서 풍류의 기억과 만나다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측백수림 일대의 경치가 아주 빼어났던 모양이었다. 조선 초기 학자 서거정이 ‘대구의 경치 좋은 열 곳’ 중에서 여섯 번째로 이곳을 뽑았으니 말이다. 서거정은 이곳을 일러 ‘북벽향림(北壁香林)’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절벽 앞 불로천의 물이 깊고 푸르렀고 숲도 울창해서 풍류객들이 자주 찾아들었다고 전한다. 이곳은 또 대구에서 영천이나 경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해서 길손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걷기여행을 하는 이들이 거기서 쉬어간다. 측백수림 가까이에 바람에 뎅그렁거리는 풍경소리를 들으면서 쉬어갈 수 있는 절집 관음사가 있는데 구경 겸 쉴 겸 해서 찾아가도 좋겠다. 이쯤에서 불로동 고분길을 걸을 때 참고해 둘 이야기 한 가지. 불로동 고분군 지척에 공군비행장이 있다. 공군 전투기가 수시로 뜨고 내리는데 최신형 전투기가 내는 소음의 크기가 보통이 아니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익숙해져서 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지만 외지인들은 엄청난 소음에 머리가 다 어찔어찔할 정도다. 짜증스러운 건 걷기의 사색 사이사이로 전투기의 소음이 마치 예의없는 손님처럼 불쑥불쑥 끼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길을 걸을 때 좋아하는 음악과 이어폰을 가져가는 편이 낫겠다. 무슨 일이든 나쁜 점이 있다면 좋은 점도 있는 법. 지금은 소음 때문에 짜증이 나지만 사실 불로동 고분군이 사방이 탁 트인 자리에서 제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는 건 한편으로는 공군비행장 덕이기도 하다. 비행장이 들어서면서 고도제한 조치로 일대에는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없었고, 그래서 불로동 고분군이 빌딩 숲 안에 갇히지 않고 오히려 도시를 굽어보는 자리를 여태 지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 쇠락한 시장의 골목에서 지나간 시간과 만나다 대구에서 저물 무렵 들를만 한 또 한 곳이 방천시장을 끼고 있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김광석 길)이다. 대구 북구 산격동의 방천시장은 한때 대구의 3대 시장 중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위세가 당당했지만, 지금은 한눈에도 쇠락한 시장이다. 시장 안쪽의 낡은 건물의 상점은 절반쯤이 아예 문을 닫았고, 마늘 몇 단과 고추와 고구마 따위를 좌판에 펼치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들도 하품으로 하루를 보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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