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저널리스트 알렉산드라 로빈스는 애닐 윌너와 공동 집필한 저서 <인생 1/4분기에 맞는 위기(20대에 맞는 특이한 도전들)>에서 ‘청년 위기’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로빈스는 부모와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20대가 냉혹한 현실 사회를 만나면서 겪은 좌절감과 불안, 그로 인한 일탈을 청년 위기로 표현했다. 한국 사회의 20대 역시 견고한 장벽에 막혀 허우적대고 있다. 보장되지 않는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는 만성적인 공황 증세까지 안겨주었다.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경제 위기는 ‘청년 위기’를 더욱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당장 올해 2월 대학 졸업자 60만명가량이 고용 시장으로 쏟아져나온다. 지금까지 취업에 성공한 이는 10만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대학 졸업자 가운데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이도 30만명이 넘는다. 지금 80만명이 넘는 대학 졸업자들이 취업이라는 좁은 문 앞을 서성이고 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직후의 대규모 청년 실업 사태가 재연될 조짐이다.
외환위기 당시 대졸자의 대량 실업 사태는 사회 불안 요인으로까지 비화했다. 10년 전 그 시대 청년들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이라고 불렸다. 세계 경기 위기 여파로 찾아온 불황은 이제 제2의 잃어버린 세대를 양산하려 한다. 청년 위기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국지적 현상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청년 위기가 빚은 사회의 왜곡 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년 위기는 한 세대가 살다 보면 한 번쯤 겪는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여파가 크다. 좌절과 비탄은 사회 전반을 가라앉게 한다. 또, 나라 경제의 미래 성장 잠재력까지 잠식한다. 위기의 시대를 사는 청년들의 우울증과 불안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될 이유이다. <시사저널>은 10년 만에 또다시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청년위기의 실상을 알아보고, 이 위기가 한국 사회에 미칠 파장과 함께 대응책을 찾아보았다.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예정자 ㄱ씨는 텔레비전을 켜놓고 잔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면 온갖 잡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잠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소화불량 증세가 심해져 내시경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탈모 증세도 심하다. ㄱ씨는 비슷한 증세를 호소하는 친구들과 함께 집 근처 내과를 찾았다. 담당 의사는 스트레스가 과도한 탓이라고 했다. 스트레스의 직접적 원인은 취업 문제이다. 올해 2월 졸업하는 ㄱ씨는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지난해 10차례가 넘게 입사 원서를 냈지만 아직 서류 전형을 통과한 곳이 없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고용 시장이 위축된 탓이라 자위하지만 하루하루 불안과 초조함은 더해간다. 회사마다 최소 100 대 1이 넘는 경쟁률에 숨이 막힌다. 지원자 중에는 자기보다 훨씬 나은 조건을 가진 이가 수두룩하다. 미국 유학자, 석사학위 소지자, TOEIC 고득점자가 다수 지원했다는 후문을 들으면 아예 합격을 포기할 때도 있다. ㄱ씨는 한때 명문대에 다닌다고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제는 ‘명문대 출신이 아직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나’라는 시선이 느껴진다. 평소 딸을 자랑스러워하던 부모마저 잔소리가 늘었다. ㄱ씨는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인해 사회로부터 거부되고 있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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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경제 위기 여파로 서울지방노동청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를 찾는 20대가 늘어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
올 대졸자 중 취업 확정자는 15%도 안 돼
ㄱ씨의 학교 친구 ㄴ씨는 자살까지 고려했다. 수차례 면접 전형에서 떨어지자 실망감과 자괴감이 커진 탓이다. 게다가 명문대 출신으로 평소 ‘똑똑하다’고 평가받던 ㄴ씨는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자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 딸을 더없이 자랑스러워하던 부모에게서까지 잔소리와 핀잔을 들어야 했다. 불합격 소식을 확인할 때마다 상처는 갈수록 깊어갔다. ‘이제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취업을 포기하고 자살까지 마음먹었다. 그를 구한 것은 합격 통지서였다. 기대하지 않았던 공기업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ㄴ씨는 “사회에 진입하기도 전에 냉혹하기 그지없는 현실 사회의 밑바닥까지 경험했다”라고 말했다.
경제 위기로 인해 취업의 문은 좁아지고 있다. 기업마다 신규 인력 채용 수를 줄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 침체가 속도나 깊이 면에서 늘 예측을 넘어서고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마저 올해 사업 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다. 경기 예측이 힘들어지면 신규 고용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외환위기 직후 대규모 인원 조정이 미래 수익 가치까지 해쳤다는 반성 탓인지 기업들은 지금 기존 인력을 대량 해고하는 것은 삼가고 있다. 하지만 신규 인력 채용은 다르다. 신규 인력을 채용해도 당장 생산 현장에 투입하지 못한다. 인건비에 교육·훈련 비용까지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경력직 채용은 가끔 있지만 대기업 공채를 제외하고는 신규 인력 채용 공고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하지만 2월 졸업 시즌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올해 2월 신규 대졸자 60만명가량이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대면하는 것은 넘기 힘든 진입 장벽이다. 장벽 너머 사회에 안정적으로 들어서려면 취업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 좁은 문으로 수많은 대졸자들이 몰린다. 입사 창구마다 수백 대 1이나 되는 경쟁률이 예삿일처럼 되어버렸다.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체념하는 대졸자가 수두룩하다. 지난 1월 말까지 신규 대졸자 가운데 취업이 확정된 비율은 15%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산된다.
취업 포털 사이트 커리어가 지난 1월24~30일 올해 2월 졸업예정자 4백44명을 조사한 결과, 취업률은 13.5%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분의 1에 불과하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올해 2월 대학 졸업예정자 50만명 이상이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한 셈이다. 게다가 지난해 대졸자 53.8%도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대졸자 80만명가량이 취업 전선에 내몰린다. 이 가운데 취업에 실패한 이는 좌절과 불안에 휩싸일 것이다.
취업에 이르는 길은 험난하다. 눈물겨운 고난을 겪어야 취업에 성공한다. 서류 전형에 10번 이상 떨어져야 어떻게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지 깨닫는다고 한다. 법률회사 입사를 꿈꾸는 김 아무개씨(27)는 “지난해 10번가량 서류전형에서 고배를 마신 후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시행착오 끝에 올해부터 서류전형에 합격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하지만 면접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2차 전형 과목인 영어 면접 탓이다. 법률회사 사무직 사원에게 영어 회화까지 유창하게 구사해야 하는 것을 요구한다. 국내 법률회사 가운데 외국인 고객을 보유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입사 지원자들은 외국인 고객이 없는 법률회사마저 굳이 영어 면접까지 거쳐 직원을 선발해야 하는지 의아스러워한다. 입사 경쟁이 치열해지자 기업들은 단지 TOEIC 성적으로 입사 지원자의 영어 실력을 평가하지 않는다. TOEIC 점수 9백40점이 넘는 지원자가 수두룩하다 보니 TOEIC 점수가 변별력을 갖지 못한 탓이다.
“평균 30번은 응시해야 합격”
김씨는 이제 영어 면접에 대비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들과 함께 영어 회화 스터디그룹까지 만들었다. 최근 스터디그룹 구성원 6명 가운데 3명이 입사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김씨는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합격한 이들은 모두 남자들이었다. 아직 합격하지 못한 3명은 여자였다. 성차별이라는 장벽까지 넘어야 한다는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그나마 김씨는 낫다. 아예 면접마저 보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씨는 1주일에 2~3차례까지 면접전형에 참석한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휴대전화를 가까이 두고 산다. 면접을 본 기업에서 언제 합격 통지를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취업 포털 커리어에 따르면, 신규 대졸자는 평균 30여 차례 이상 응시해야 최종 합격한다. 김씨는 이제 20차례도 보지 않았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앞으로 김씨는 10차례 더 좌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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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위기를 사는 20대는 좌절과 불안에 휩싸여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
흔치 않지만 합격이 취소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박 아무개씨는 국내 부동산서비스업체에 지원해 최종 면접을 통과했다. 서울대 졸업자인 데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 100 대 1이 넘는 경쟁을 뚫고 합격한 것이다. 인사 담당 임원과 연봉 협상까지 마치고 난 뒤라 합격 통보와 출근 날짜만 기다렸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경제 위기 여파로 부동산 서비스 시장이 위축되자 신규 채용 계획을 전면 수정한 것이다. 그는 지금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당초 부동산 분야에서 2년 이상 실무 경험을 쌓은 후 미국 MBA(경영학 석사 과정) 과정을 밟으려는 당초 계획을 수정해야 할 형편이다. 박씨는 “경제 위기 파장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만큼 미래 계획을 수립하기도 쉽지 않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기회가 오면 잡을 수 있게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스트레스 탓에 소화불량 예사
힘겹게 직장을 구한 20대도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일이 잦다. 경제 위기 여파로 회사가 문을 닫거나 형편이 어려워져 불가피하게 전직해야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 아무개씨(26)는 지난해 초 외국계 금융 기관에 취업했다. 국내에 첫 진출한 외국계 투자운용사여서 처우도 좋았다. 이씨는 회사 핵심 부서인 투자전략팀에 배속되어 대학 동기생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이씨도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 좌절해야 했다. 쓰러질 때마다 영어·일어·인터넷을 비롯해 하나씩 ‘스펙(specification 약자)’을 쌓아갔다. 스펙은 취업에 필요한 갖가지 자격증이나 역량을 일컫는 은어이다. 그 결실로 취업에 성공했으나 채 1년이 지나기 전에 회사가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했다. 회사 사업 실적이 당초 기대에 크게 못 미치자 본사가 사업 철수까지 고려한 탓이다.
이씨는 경력이 채 1년이 되지 않아 경력직으로 전직하기가 쉽지 않다. 금융 경력 2~3년이 넘은 사원들은 이미 다른 회사로 빠져나갔다. 따라서 이씨는 경력직과 신입직 가리지 않고 입사 원서를 제출하고 있으나 연락이 오지 않는다. 다시 취업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최근 소화불량이 심해져 먹은 것이 없어도 헛구역질이 심하다. 내시경 검진을 받았지만 위는 정상이었다. 이씨는 최근 정신과 상담까지 받고 있다. 정신과 의사는 ‘현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겹쳐서 신경성 위염으로 발전했다’라고 진단했다. 이씨는 “주위 친구보다 자기 계발이나 업무에 헌신했는데 왜 이렇게 현실이 힘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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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종합고용센터 구인·구직 컨설턴트가 실직자를 상대로 구인·구직 상담을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
20대 30%는 비정규직
그나마 이씨는 정규직이라 사정이 낫다고 하면 잔인할까. 통계청이 지난 1월14일 발표한 고용 동향 자료에 따르면, 20대 전체 고용 인구 3백54만7천명 가운데 정규직 종사자는 2백44만6천명에 불과하고 비정규직 종사자 수는 1백10만명이나 되었다. 전체 20대 취업 인구 가운데 31%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17쪽 도표 참조). 고용 여력이 있는 국내 대기업이나 공기업은 인턴사원 충원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청년 실업 해소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한정되어있다. 경제 위기로 촉발된 세계 불황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게 그에 상응하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가 양산한 ‘88만원 세대’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외환위기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빚은 특이한 현상으로 치부되었다. 이 불안한 현상은 이제 경제 위기와 부적절하게 결합하면서 현실로 변태하고 있다. 청년 위기는 아주 위험한 상태로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제 역량을 펼칠 기회마저 박탈당했다고 생각한 세대가 한국의 미래 고객이자 생산 주체가 된다. 한국은 좌절과 자괴감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청년들에게 미래를 맡겨야 하는 처지이다. 누구도 원치 않은 현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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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과 충격에 부대끼다 지쳐 |
‘트라우마 세대’로 불리는 20대의 일생 / 주요 시기마다 대형 사건…‘내적 외상’ 상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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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임준선 |
금융 위기로 인한 경제 불황은 지금의 20대에게 좁은 취업문을 뚫고 나가야 하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들을 일컫는 ‘트라우마 세대’라는 말도 등장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명명했다. 중·고교 시절 외환위기를 맞아 부모의 실직과 부도를 간접 경험한 20대 중·후반 세대가 이번에는 금융 위기로 취업 대란에 직면한 것을 심리적 외상으로 설명한 것이다.
‘트라우마 세대’의 삶의 궤적이 처음부터 험난했던 것은 아니다. ‘트라우마 세대’의 큰형님이 태어난 1981년은 제24회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해이다.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일본의 나고야를 제치고 거둔 승리였다. 1981년 9월30일 서독 바덴바덴에서 사마란치 전 IOC 의장이 외치는 “쎄올”이라는 말에 온 국민은 희망에 부풀었다. 이 장면은 후에도 방송·광고 등을 통해 반복해서 등장했다. 서울올림픽 개최와 함께 태어난 ‘트라우마 세대’는 이때까지만 해도 ‘희망의 세대’라고 불렸다.
올림픽에 취하고 ‘개구리 소년’에 놀라고…
20대는 88 서울올림픽과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희망의 세대에게 주는 선물이었을까. 서울올림픽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한국 국가대표팀은 14개의 금메달을 안기며 4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서울올림픽은 한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하는 계기였다. 초등학생이던 ‘트라우마 세대’는 매스게임이나 단체 관람으로 올림픽을 경험할 수 있었다.
1991년 발생한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은 한창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트라우마 세대’에게 찾아온 첫 번째 재난이었다.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은 ‘트라우마 세대’와 그 부모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개구리를 잡는다며 동네 뒷산에 갔다가 실종된 5명의 어린이를 찾는 데 경찰과 국민이 총동원되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사건 발생 11년 뒤에 유골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범인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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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입학한 1994년에는 영원히 살 것만 같았던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 남북 관계에 대한 불안과 희망이 공존했지만, 그 당시와 현재의 남북 관계에 큰 변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해빙 무드와 경색 국면이 반복될 뿐이다. 최근 벌어진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으로 다시 회자되고 있는 지존파 살인 사건이 벌어진 해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터져버린 IMF 구제금융 사태는 ‘트라우마 세대’의 본격적인 수난기를 알리는 서곡이었다. 외환위기로 인한 대규모 정리해고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이들의 부모들이었고, 고등학생이었던 ‘트라우마 세대’는 ‘돈’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경기가 다시 활성화된 후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트라우마 세대’에게 각인된 경제력의 중요성은 대학 문화를 바꾸어놓았다. 대학생들은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학점 쌓기에 몰입하고, 운동권이 몰락하며 비운동권 학생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 어학연수를 떠나고 자격증을 따내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것이 필수 코스가 된 것도 ‘트라우마 세대’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나타난 풍광이다. 불황을 타지 않는 직업에 대한 선호도 뚜렷해졌다. 서울대 공대의 서열이 전국 모든 대학의 의대·한의대에 밀린다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 광풍도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트라우마 세대’는 2002년 월드컵을 대학 생활이 한창일 때 맞이했다.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믿을 수 없는 성과에 온 국민이 흥분하고 열광했지만, 에너지와 열정이 가장 폭발적인 20대 초입에 월드컵을 맞이한 이들만큼 축제의 열기를 만끽한 세대가 있었을까. ‘트라우마 세대’는 여러모로 대형 스포츠 이벤트와 인연이 많다. 스포츠 이벤트로 ‘트라우마 세대’의 연대기를 쓴다면 즐겁고 명랑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 집회와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지난해에도 베이징올림픽에서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으니 말이다.
군대 시절에는 ‘GP 총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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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우마 세대’는 일찍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가장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시사저널 유장훈 |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던 ‘트라우마 세대’는 제대할 즈음에 GP 총기 난사 사건을 목도했다. 2005년 경기도 연천군에 위치한 GP에서 근무하던 김동민 일병이 내무실에 수류탄을 던지고 전우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부대원 8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이 열악한 병영 시설과 억압적인 군 문화가 개선되는 시발점이 되기는 했지만, 군 복무에 대한 공포심을 키워준 것 또한 사실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스펙 올리기에 열중하던 ‘트라우마 세대’에게 경제 한파는 치명타를 날렸다. 경제 위기로 좁아진 취업문에 들어갈 자리의 절대치가 낮아지니 실패하는 자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실패했다고 무능하다거나 노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도 없다. ‘트라우마 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오랫동안 취업을 준비해왔다. 대입이 끝나자마자 취업 시험이라는 또 다른 입시에 돌입했다. 입시 경쟁에서 쉰 적이 없는 것이다.
‘트라우마 세대’는 이제 취업 실패에 대한 좌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트라우마 세대’라는 용어가 얼마나 생명력을 가질지는 미지수이다. ‘저주받은 94학번’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인생의 첫 갈림길인 대입에서 어려움을 겪은 1975년생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수학능력시험 도입의 첫 대상이 되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실험평가를 보아야 했다. 본고사도 피해갈 수 없었다. 군대를 가지 않은 1975년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니 외환위기가 닥쳐와 취업에서도 난관을 겪었다. 인생의 두 갈림길에서 먹물을 뒤집어 쓴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트라우마 세대’라는 말도, 그런 말이 있었나 싶게 새롭게 규정한 말이 빠르게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다. |
일본이 보는 한국의 ‘88만원 세대’ |
젊은 층의 실업 문제가 사회 문제화하고 있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젊은이들이 정규 취업 대신 프리랜서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라이프스타일이 등장했다. 이웃 일본에서 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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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호] 2009년 02월 11일 (수) |
이철현 경제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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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기사가 실린 <도요게이자이> 지면. |
‘88만원 세대는 한국 젊은이의 대명사로서 정착되었다. 한국 청년 세대의 현실을 고발해 2007년에 베스트셀러가 된 경제학자 우석훈씨의 책에서 이 단어가 비롯되었다.’
88만원이란 비정규직의 평균 소득이 월 1백10만원(약 8만 엔), 20대의 평균 소득이 그 윗세대의 약 73%인 점에서 ‘88만원(약 6만 엔)’으로 산출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한국,의 최저 임금은 시급 3천7백70원(약 2백62 엔), 주 40시간 노동에 78만7천9백30원(약 5만5천 엔)으로 88만원은 최저 임금보다 조금 많을 뿐이다.
‘일본에서는 1시간 일하면 식비가 나온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는 빅맥(맥도날드 햄버거)도 못 먹는다.’ 한국 청년들의 사정을 잘 아는 작가 아메미야 소린 씨는 이 말을 듣고 무척 놀랐다고 한다. 아메미야 씨는 “젊은이를 둘러싼 상황은 이미 한계에 왔고, 빈곤도 사회 구조적인 것인데도 ‘내 잘못이다’라고 자책하는 것이 일본과 비슷하다”라고 동정한다.
‘모든 원흉은 1997년의 외환위기’라고 모두가 인정한다. 미증유의 경제 위기가 된 1997년 IMF 위기에서 당시 김대중 정권은 ‘정리 해고법’ ‘노동자 파견법’을 제정해 비정규 노동자를 대거 양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극단의 길로 나뉘는 노동자의 계층화가 심화되었다. 현재 청년의50~60%는 비정규 노동자이며 더욱이 삼성, LG 등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올해 대졸자는 불과 5%라는 계산도 나와 있다. 현재도 청년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보다 높다.
한국 경제가 전문인 타카야스 유이치 츠쿠바 대학원 부교수는“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고용주들 사이에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생겨나서 그것이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 같다”라고 지적한다. 최근까지도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로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해고 통지를 보내는 일이 빈발했던 것도 이런 공포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이명박 대통령은 ‘비정규 노동자의 해소’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2007년 7월 제정한 ‘비정규직 보호법’에 대해 ‘악법’이라는 비판이 자자하다. 2년 이상 근무한 파견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그 전에 비정규 노동자의 해고가 빈발해, 있으나마나한 조항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제 신분 상승은 꿈꾸지 않는다” |
20대 한국 청년 라이프스타일 / 부모에게 의지하며 성장해 소비 성향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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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형건 | 일본의 20대도 취업 문제로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지 일본의 월간지 <도요게이자이>가 최근호에서 20대 남녀 1천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소개한다.
설문에 응한 1천명의 월평균 수입은 15만4천5백 엔이다. 이들은 20대 초반에 부모와의 동거 비율이 75%를 넘기 때문에 집세 등 고정 비용 지출이 적어 오히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은 다른 세대에 비해 많다고도 할 수 있다. 그중에서 매달 저축이나 투자에 2만 엔 이상을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20대 소비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잡화’ 소비이다. 소비가 대량화하면서 값싼 물건을 자기 나름대로 사모으는 것으로 만족한다. 지금의 20대에게는 고액 상품을 사는 소비 행동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고액 상품 구매, 극단적으로 줄여
덴츠 광고연구소의 리서처 다나카 리에 씨는 “최근의 20대는 신분 상승을 꿈꾸지 않고 있다”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잡지 모델 등 목표로 하는 대상이 있어 그것을 향해 단계적으로 다가서는 소비 행동이 주류였다. 그러나 지금의 20대에게는 롤 모델이 없다. 신분 상승을 꿈꾸지 않으니까 현실에 만족한다. 따라서 소비 활동이 더 늘어나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최근에는 20대를 중심으로 그 아래 위 계층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의 20대는 소비 면에서도 ‘로스트 제네레이션’이 되고 있다. 향후 그들이 인생에서 돈을 많이 쓰는 30~40대가 되었을 때 일본의 내수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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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도 문화 생활은 한다 |
20대 한국 청년 라이프스타일 / 부모에게 의지하며 성장해 소비 성향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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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형건 | 원래 20대는 일생에서 나름으로 원대한 희망과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원기 왕성하게 도전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요즘 25~29세의 젊은이들이 원하는진로를 찾아가기에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성공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좌절과 고통,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앞서 인생의 동력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현실 사회와 부딪치고 있다. 날로 움츠러들고 있는 한국의 20대는 지금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가 실시한 ‘2008 대한민국 라이프스타일 조사’에 따르면 20대, 그중에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입하는 25세에서 29세까지의 젊은이들이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역시취업 문제이다.
20대는 일자리를 찾는 데 대기업 선호도를 뚜렷이 나타냈다. 청년 실업률과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며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일부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허덕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젊은이들의 극단적인 대기업 선호현상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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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취업 포털 사이트 인크루트가 실시한 설문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인크루트는 지난해 업종별 10대 기업 1백30개사에 지원했다가 낙방했거나 진행 중인 구직자 5백33명을 대상으로 내년에도 다시 응시하겠는지를 질문한 결과 85.9%가 내년 공채를 준비하겠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재수를 해서라도 사회생활의 시작을 대기업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취업을 대기업 입사를 위한 전 단계로 생각하는 20대들도 많다. 인크루트가 지난 1월14일에서 21일까지 중소기업 3백4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8년 입사한 신입사원의 36.6%가 직장을 그만두었다. 회사 관계자들은 퇴사의 이유로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38.4%)를 첫 손에 꼽았지만 조건이 더 좋은 회사에 합격되어 떠났다는 응답도 15.7%였다. 취업 이후에 더 좋은 직장을 찾아 대기업 입사시험에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2008 라이프스타일 조사’에서 20대의 63%가 ‘기회가 주어지면 다른 직장으로 옮기고 싶다’라고 답했다. ‘직업을 선택할 때 급여보다 안정성을 우선으로 고려한다’라는 응답자가 다른 세대에 비해 적게 나온 결과에 수긍이 간다.
외환위기도 10대 후반에 맞아 잘 몰라
20대가 가만히 앉아서 익은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취업 전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사투는 그야말로 험난하다. 그렇다 보니 대학 입학 때부터 취직 경쟁에 내몰려 낭만을 잃어버린 세대가 바로 이들이다. 대표적인 징표가 영어실력이다. 1학년 때부터 취직용 영어 시험에 몰두하다 보니 TOEIC의 경우 8백점대를 넘기는 고득점자를 양산해냈다. 결국, 영어의 변별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문화 생활에 대한 높은 관심은 20대를 특징 짓는 또 하나의 주요한 키워드이다. 지금의 20대는 문화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이들이 10대를 보낸 1990년대는 서태지가 등장했고, 한국 영화의 부흥기가 도래하며 대중문화를 풍성하게 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어놓은 2000년대에 20대를 맞이해 시대 흐름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10대 후반에 맞이한 외환위기는 이들에게 큰 충격은 아니었다.
지난 1월2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최근 소비 행태의 변화와 시사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황에도 20대 가구는 문화·레저 비용을 거의 줄이지 않았다(2.7%). 30대의 28.1%, 40대의 16.0%, 50대의 19.3%가 문화·레저 비용을 먼저 줄인 것에 비하면 큰 대조를 보인다.
홍성태(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20대의 소비 성향이 외부의 충격에도 잘 줄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국식 자녀 교육법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심지어 자녀가 취업한 뒤에도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쓰는 경우가 있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래서 젊은 층의 경제 관념이 부족하고 경제난 등 외부의 충격이 커져도 소비 성향이 잘 변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25~29세 층이 돈의 소중함을 모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최신형 휴대전화를 사는 데는 주저하지 않지만, 이를 위해 점심을 편의점에서 때우며 돈을 아낄 줄도 안다. ‘2008 라이프스타일 조사’에 따르면 ‘할인기간을 이용해 제품을 구매’하고 ‘쿠폰이나 마일리지를 이용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빈도도 20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 연구소의 이승현씨는 “19~24 세대는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무조건 사는 경향이 있지만, 25~29 세대는 쿠폰이나 할인 혜택을 꼼꼼히 챙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30~39 세대에도 없는 특징이다”라고 밝혔다.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어 살고 있는 20대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결국, 소비 여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승현씨는 “제품을 파는 기업 입장에서 25~29 세대가 매력적인 소비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교수는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해 소비 활동을 하던 20대가 스스로 경제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30대 백수로 넘어가고 금융 대란으로 부모 세대의 경제력 마저 흔들릴 경우 심각하게 사회 문제화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는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것은 부자 시절의 소비성향이 3년 간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어려서부터 경제 관념이나 생활관 등을 전반적인 사회 구조 차원에서 바람직하게 이끄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할 필요가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 | |
“대기업 선호 그만 버려라” |
양대 취업 포털 사이트 대표 대담 “중소기업 중에도 연봉·복지 후한 곳 많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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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석 대표(왼쪽), 김화수 대표(오른쪽). |
현재의 청년 실업 문제를 취업 전문가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리고 해결책은 무엇일까. <시사저널>은 취업 사이트 인크루트의 이광석 대표과 잡코리아의 김화수 대표의 대담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았다.
▒ 취업 시장의 현황은?
이광석 : 지난해 이맘때에는 상장 기업의 80%가량이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는 38%만이 신규 직원을 채용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채용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한파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청년 실업 문제가 장기화할 경우 인적 자본의 결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된다. 특히 한창 돈을 벌어야 할 나이에 소득이 없는 젊은이들이 늘어난다면 그렇잖아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이는 더 나아가 근로소득 과세 대상 및 세액 감소로 이어져 정부 재정이 줄어들고 결국, 온국민이 타격을 받는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
김화수 : 우리 역시 전체 채용 시장의 약 25%에서 30%가 줄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잡코리아의 실적이 전년 대비 20% 가까이 하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채용시장이 얼어붙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인·구직 사이트의 매출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특히, 지난 1월의 경우 설이 끼어 있다 보니 기업들이 채용을 추정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이로 인해 1월 채용 건수도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 향후 취업 전망은?
이광석 : 채용 시장 위축이 본격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30대 취업자가 처음으로 1천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기업이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경비를 줄이고 인력 정비를 비롯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파가 채용 시장에 미치면서 일자리가 점차 줄어들며 취업난의 악순환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 인쿠르트 자체의 분석에 의하면 전체 일자리의 5분의 1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화수 : 취업 시장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전망이 그다지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글로벌 금융 경색이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해부터 기업들은 채용을 줄여왔다. 미리대비를 해왔던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취업 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더 큰 충격이 없는 한 현재 수준을 유지하다 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전망된다.
▒ 고용 시장의 미스매칭 어떻게 봐야 하나?
김화수 : 요즘 학생들을 만나보면 우리나라에 100개의 회사만 있는 줄 안다. 그만큼 특정대기업만을 선호하고 중소기업은 염두에 두지않는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매출은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종업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대학 졸업생들이 이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취업 시장을 들여다보면 직업의 절대량이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이트만 보아도 현재 이력서보다 채용 공고가 약 2.5배 더 많다. 이 중 일부 회사는 지원자가 넘쳐나지만, 일부는 지원자를 한 명도 받지 못하는 곳이 많다. 이런 미스매칭만 줄일 수 있어도 실업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광석 : 그렇다. 취업난이 극심한데도 중소기업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뽑기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특히 지방의 중소기업일수록 더욱 어렵다고 한다. 몇몇 기업들은 대기업과 채용이 겹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를 해 신입사원을 모집하고 있지만 만족할 만한 충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보면 고용 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날로 심해지는 것이 청년 실업의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 물론 연봉이나 근로 조건 등에서 큰 차이가 나고, 구직자들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생겨난 현상일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에도 대기업 못지않은 연봉을 주거나 복리후생을 갖춘 곳이 많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업무 전반의 일처리를 빠르게 체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 구직자들이 시야를 좀더 넓힐 필요가 있고, 취업에 대한 생각도 바꾸어야 한다.
: 지난해 이맘때에는 상장 기업의 80%가량이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는 38%만이 신규 직원을 채용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채용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한파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청년 실업 문제가 장기화할 경우 인적 자본의 결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된다. 특히 한창 돈을 벌어야 할 나이에 소득이 없는 젊은이들이 늘어난다면 그렇잖아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이는 더 나아가 근로소득 과세 대상 및 세액 감소로 이어져 정부 재정이 줄어들고 결국, 온국민이 타격을 받는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 : 우리 역시 전체 채용 시장의 약 25%에서 30%가 줄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잡코리아의 실적이 전년 대비 20% 가까이 하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채용시장이 얼어붙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인·구직 사이트의 매출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특히, 지난 1월의 경우 설이 끼어 있다 보니 기업들이 채용을 추정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이로 인해 1월 채용 건수도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 채용 시장 위축이 본격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30대 취업자가 처음으로 1천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기업이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경비를 줄이고 인력 정비를 비롯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파가 채용 시장에 미치면서 일자리가 점차 줄어들며 취업난의 악순환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 인쿠르트 자체의 분석에 의하면 전체 일자리의 5분의 1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 취업 시장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전망이 그다지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글로벌 금융 경색이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해부터 기업들은 채용을 줄여왔다. 미리대비를 해왔던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취업 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더 큰 충격이 없는 한 현재 수준을 유지하다 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전망된다. : 요즘 학생들을 만나보면 우리나라에 100개의 회사만 있는 줄 안다. 그만큼 특정대기업만을 선호하고 중소기업은 염두에 두지않는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매출은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종업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대학 졸업생들이 이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취업 시장을 들여다보면 직업의 절대량이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이트만 보아도 현재 이력서보다 채용 공고가 약 2.5배 더 많다. 이 중 일부 회사는 지원자가 넘쳐나지만, 일부는 지원자를 한 명도 받지 못하는 곳이 많다. 이런 미스매칭만 줄일 수 있어도 실업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그렇다. 취업난이 극심한데도 중소기업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뽑기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특히 지방의 중소기업일수록 더욱 어렵다고 한다. 몇몇 기업들은 대기업과 채용이 겹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를 해 신입사원을 모집하고 있지만 만족할 만한 충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어떻게 보면 고용 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날로 심해지는 것이 청년 실업의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 물론 연봉이나 근로 조건 등에서 큰 차이가 나고, 구직자들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생겨난 현상일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에도 대기업 못지않은 연봉을 주거나 복리후생을 갖춘 곳이 많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업무 전반의 일처리를 빠르게 체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 구직자들이 시야를 좀더 넓힐 필요가 있고, 취업에 대한 생각도 바꾸어야 한다.
: 지난해 이맘때에는 상장 기업의 80%가량이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는 38%만이 신규 직원을 채용할 계획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채용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한파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청년 실업 문제가 장기화할 경우 인적 자본의 결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된다. 특히 한창 돈을 벌어야 할 나이에 소득이 없는 젊은이들이 늘어난다면 그렇잖아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이는 더 나아가 근로소득 과세 대상 및 세액 감소로 이어져 정부 재정이 줄어들고 결국, 온국민이 타격을 받는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다. : 우리 역시 전체 채용 시장의 약 25%에서 30%가 줄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잡코리아의 실적이 전년 대비 20% 가까이 하락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채용시장이 얼어붙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인·구직 사이트의 매출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특히, 지난 1월의 경우 설이 끼어 있다 보니 기업들이 채용을 추정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이로 인해 1월 채용 건수도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 채용 시장 위축이 본격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30대 취업자가 처음으로 1천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기업이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경비를 줄이고 인력 정비를 비롯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파가 채용 시장에 미치면서 일자리가 점차 줄어들며 취업난의 악순환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 인쿠르트 자체의 분석에 의하면 전체 일자리의 5분의 1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 취업 시장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향후 전망이 그다지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글로벌 금융 경색이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해부터 기업들은 채용을 줄여왔다. 미리대비를 해왔던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취업 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더 큰 충격이 없는 한 현재 수준을 유지하다 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전망된다. : 요즘 학생들을 만나보면 우리나라에 100개의 회사만 있는 줄 안다. 그만큼 특정대기업만을 선호하고 중소기업은 염두에 두지않는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매출은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종업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대학 졸업생들이 이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취업 시장을 들여다보면 직업의 절대량이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이트만 보아도 현재 이력서보다 채용 공고가 약 2.5배 더 많다. 이 중 일부 회사는 지원자가 넘쳐나지만, 일부는 지원자를 한 명도 받지 못하는 곳이 많다. 이런 미스매칭만 줄일 수 있어도 실업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그렇다. 취업난이 극심한데도 중소기업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뽑기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특히 지방의 중소기업일수록 더욱 어렵다고 한다. 몇몇 기업들은 대기업과 채용이 겹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를 해 신입사원을 모집하고 있지만 만족할 만한 충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어떻게 보면 고용 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날로 심해지는 것이 청년 실업의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 물론 연봉이나 근로 조건 등에서 큰 차이가 나고, 구직자들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생겨난 현상일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에도 대기업 못지않은 연봉을 주거나 복리후생을 갖춘 곳이 많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업무 전반의 일처리를 빠르게 체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 구직자들이 시야를 좀더 넓힐 필요가 있고, 취업에 대한 생각도 바꾸어야 한다. |
대학문 나서자마자 ‘막장’ 인생 |
IMF 세대가 말하는 지난 10년 / “이 직장 저 직장 전전하다 잃어버린 세월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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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환위기 이후 취업난에 시달려야 했던 IMF 세대들이 당시 구인 광고를 실은 신문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10년은 내 살길을 찾아 헤매던 시간이었다.” 91~92학번(남), 94~95학번(여)들은 98~99년쯤 졸업을 했다. 이때는 사상초유의 국가 부도 사태를 겪은 IMF 관리 체제였다. 그래서 이들을 IMF 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직장을 골라잡을 수 있었던 선배들과는 달리 첫출발부터 줄어든 일자리 때문에 살벌한 경쟁에 내몰렸고 이후 떠돌이 인생처럼 이 직장 저 직장을 전전하며 살아남은 첫 세대이다.
김택호씨(가명·92학번)는 3수를 하는 바람에 인생이 꼬였다. 김씨는 “1997년에 대학을 졸업한 고등학교 동기들은 버젓한 직장에 쉽게 들어갔다. 나는 졸업과 동시에 정부가 지원하는 인턴 제도의 도움을 받아 한 지역 케이블방송 인턴기자로 겨우 채용되었다. 처음에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회사에 이용당했을 뿐이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가 하루 15시간씩 일하고 받은 돈은 월 50만원. 그래도 배울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1년4개월을 일했다. 하지만 건질 것이 없었다. 김씨는 “회사 선배들 학벌이 나보다 훨씬 낮았다. 물론 학벌로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체계도 잡혀 있지 않은 조그마한 방송국에서 배울 것은 전혀 없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2000년 회사를 나온 김씨는 치과대학을 목표로 편입 공부를 시작했다. 학구열 때문이라기보다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한 도전이었다. 그렇게 2년을 공부와 씨름했지만 결과는 낙방. 결국, 집에 손을 벌려 조그마한 컴퓨터 가게를 하나 차렸다. 그 일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창업 당시에는 월드컵 특수를 맞아 1~2년간은 장사가 잘되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매출이 1억원도 되지 않는다. 김씨는 “2명 있던 직원들도 다 잘랐지만 여전히 적자이다. 사업을 접고 싶어도 권리금과 투자금을 생각하면 접을 수도 없다”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김씨는 2007년부터 투잡에 나서고 있다. 과외 선생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아내를 도와 함께 과외 선생으로 나선 것이다. 그러다 2007년 8월에는 여동생이 운영하던 학원을 넘겨받아 운영 중이다. 물론 사업 자금은 은행 대출과 아버지에게 빌린 돈으로 충당했다. 김씨는 “원래 목표는 마흔 살이 되던 해부터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 내가 일을 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돈을 벌어주도록 만들어놓는 것이었다. 결국, 목표를 10년 뒤로 늦췄다. 이렇게 따지면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시간이었던 셈이다”라고 말했다.
임지용씨(가명·92학번)도 지난 10년간 여섯 번을 이직했다. 1999년 7월에 졸업한 임씨는 처음부터 중소기업으로 눈을 낮췄다. 덕분에 졸업과 동시에 영어 교재를 판매하던 벤처기업에 입사했다. 하지만 2년 뒤 회사는 부도 처리되었고, 곧바로 의료기기 해외영업직으로 이직했다. 또다시 2년 뒤 자판기 내 지폐 식별기를 생산하는 제조업체로 옮겼다. 그리고 2년 뒤 의료기기 회사로 옮겼고, 지난해 7월부터는 아예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를 차렸다.
우여곡절 겪으며 “강해졌다”
임씨는 “이직을 반복했던 이유는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처음 들어갈 때는 월 1백20만원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월 3백80만원까지 받았다. 대신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해야 하는 탓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라며 힘들었던 지난 10년을 술회했다.
당시 졸업생 가운데 전공을 살려 취업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체육교육학을 전공한 송창민씨(가명·91학번) 역시 지금은 에어컨 판매를 하고 있다. 송씨는 “4학년 때 IMF 사태가 터지고 나니 교사 채용 인원이 5분의 1로 줄었다. 과거 10 대 1이던 경쟁률이 70 대 1까지 치솟았다. 선후배 할 것 없이 교원 임용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라고 전했다. 송씨 역시 임용시험을 포기하고 스포츠센터 수영 강사로 2년 정도 일하다 영업사원으로 전향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고통의 10년을 보낸 이들이지만 이구동성으로 ‘후회는 없다’라고 말한다. 김씨는 “우여곡절을 겪은 만큼 강해졌다. 지금은 어떤 일이 닥쳐와도 이겨낼 자신감이 생겼다. 내 사업이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것도 인생 경험으로 채득한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후배들도 열심히 살면 희망이 보인다는 점을 명심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기 바란다”라고 조언했다.
외환 위기 때보다는 나은 편이라는데… |
그때는 채용 자체가 없었다, 지금은 규모가 작으나 공채는 살아 있다.
정부가 1997년 12월, IMF로부터 긴급 구제금융을 받고 난 이후 기업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있던 사람들도 정리하던 판에 신규 직원을 뽑을 리 만무했다. 1998년 상반기 신입사원을 뽑은 대기업은 LG그룹 3백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무했다. 그해 20대 실업자가 57만명으로 1997년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1999년 2월에 졸업한 김택호씨(가명·92학번)는 “1998년 하반기에 취업 원서를 내려고 해도 뽑는 곳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굴렀다. 졸업 동기 40명 가운데 3명만이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다. 그것도 정부가 지원하는 인턴 제도를 통해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정식 채용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반기로 넘어가니까 경기가 조금씩 풀리면서 공채가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채용 상황이 다소 나은 편이다. 채용 인원이 대폭 줄기는 했지만 채용 공고가 꾸준히 나오고는 있다. 예비 졸업생들은 이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 심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올해 졸업하는 이영화씨(가명·04학번)는 “‘옆집 아이는 취업했다더라’는 말을 들으면 나뿐만이 아니라 부모님까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그래서 더욱 죄송한 마음이 든다”라고 털어놓았다.
취업난, 그때는 졸지에 당했으나 지금은 알면서 당하고 있다.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91~92학번(남), 94~95학번(여)들은 원서만 넣으면 취업하는 선배들을 보며 대학 생활을 했다. 선배들 역시 ‘3학년 때까지 놀다가 4학년 때 잠깐 준비해도 취업할 수 있다’는 충고 아닌 충고를 해주기도 했다. 조민형씨(가명·92학번)는 “졸업할 무렵 기업에서 토익 점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뿐만이 아니라 졸업 동기 가운데 토익 공부를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학연수도 잘사는 집 친구들만 가는 호사였다”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지금은 토익 9백점 이상, 어학연수 경험은 필수이다. 입학과 동시에 학점 관리, 경력 관리에 여념이 없다. 그러고도 취업난에 시달리다 보니 자신감은커녕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이다. 토익 9백20점, 학점 3.9점, 각종 봉사 활동과 인턴기자 경험을 가진 황지영씨(가명·04학번)는 “될 만한 친구들도 취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기가 죽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 | |
“상대적 박탈감이 날 슬프게 해” |
취업 대란 속 ‘예비 백수군단’들의 하소연 / “당장 눈을 낮출 생각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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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대학의 예비 졸업생들이 진로를 고민하며 최근 겪었던 취업 관련 경험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류석규 제공 |
올 2월에 졸업하는 대학생 대부분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적게는 10군데, 많게는 30여 군데에 원서를 넣었지만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입학과 동시에 취업 준비에 나선 그들이지만 사회로 진출하는 길은 여전히 꽉 막혀 있다. 최악의 취업 대란을 맞이한 한 지역 국립대학 신문방송학과의 예비 졸업생 9명으로부터 답답한 속내를 들어보았다.
일단 서류 통과부터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35군데에 입사 원서를 넣은 조준용씨(가명·02학번)는 “서류 통과율이 10%도 채 되지 않는다. 최종 면접까지 딱 한 번 올라가봤다. 토익이다 학점이다 신경을 많이 썼지만 계속 떨어지니까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몰려들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실력이 쟁쟁한 동기들이 줄줄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위기의식은 한층 고조된다. 신동민씨(가명·01학번)는 “될 만한 친구들도 안 되는 것을 보면 ‘나는 입사 응시의 기회조차 갖기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목을 죄어온다”라고 털어놓았다.
더 높이 뛰기 위해 움츠리는 과정이라 ‘위안’
서류 심사를 통과했다 하더라도 필기 시험에서 곧장 떨어지기 일쑤이다. 황지영씨(가명·04학번)는 “서류는 20군데 정도 통과했지만 필기 시험에 통과한 적은 한 번밖에 없다. 하루 동안 3군데에서 필기 시험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2008년은 자신감 상실의 시기였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당장 눈을 낮출 생각은 없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자신의 가능성을 지레 저평가할 필요성은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서지유씨(가명·04학번)는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 절박한 마음에 중소기업이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제 막 졸업하는 마당에 바로 눈을 낮추지는 않겠다”라고 말했다.
벤처 제약업체에 합격하고도 가지 않았다는 박준형씨(가명·02학번)는 “일은 대기업처럼 힘겹게 하고 연봉은 절반 수준인 데다 미래가 불확실해 포기했다. 회사가 나를 키워줄 여력이나 비전이라도 있었다면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찾아볼 수 없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고생을 모르고 살아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오히려 더 불행한 세대라고 말한다. 이동재씨(가명·02학번)는 “힘들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아버지 세대가 절대적 빈곤에 시달렸다면 우리 세대는 상대적 빈곤과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왔다. 대학 캠퍼스의 낭만은커녕 입학과 동시에 또다시 취업 경쟁에 내몰렸다. 다른 사람들한테 꿀리지 않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언론사를 꿈꾸면서도 남의 눈이 있으니 빨리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에 기업에도 원서를 쓰는 등 현실과 타협하게 되더라”라며 씁쓸해했다.
사회가 그들을 국가 경쟁력으로 이끌어내야
취업난 때문에 한 우물을 팔 수도 없다. 한 곳만 바라보다 채용 공고가 나지 않으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진대성씨(가명·01학번)는 “지난해까지는 언론사 시험에만 응시했는데 올해에는 기업에도 원서를 넣을 것이다. 언론사 채용 규모는 점점 줄어드는데 마냥 언론사만 바라보기에는 경제적인 사정이 여의치 않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짧게는 반년, 길게는 수년 동안 냉혹한 취업 시장에서 이리저리 치일 그들이지만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다. 그것만이 자신들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조씨는 “지난해 삼성화재 최종 시험에서 떨어지고 좌절감이 컸다. 하지만 좌절하기 시작하면 좌절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긍정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박씨 역시 “한 발짝 늦게, 천천히 가는 덕에 나를 되돌아보고,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더 높게 뛰기 위해 좀더 움츠리는 과정이라 생각한다”라고 털어놓았다.
예비 졸업생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실력을 쌓아가는 것이 그들의 몫이라면, 이들을 국가 경쟁력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
떨려난 ‘낀 세대’도 “오라는 데가 없다” |
중장년층 실업급여 신청 22% 증가…재취업은 1.4% 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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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21일 새벽 성남시 태평역 부근 인력시장에서 사람들이 일감을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
“경제가 많이 안 좋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대기업 출신이나 의사, 약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까지 자주 눈에 띈다.”
지난 2월4일 서울 중구 장교동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에서 만난 한 상담사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실업급여 신청자의 절반 정도가 낯이 익은 사람들이었다. 비정규직으로서 계약이 갱신될 때마다 정기적으로 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그러나 올해 들어 많이 달라졌다. 실업급여 신청자들 중 80% 이상이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한다.
“실업급여 신청자 80%가 새 얼굴”
그는 “언론에서는 IMF 위기 때보다 실업자 수가 적다고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40대만 되어도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훨씬 많다”라고 말했다.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가 지난해를 기점으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6년과 2007년 60만명대에서 2008년 83만8천7백83명으로 전년 대비 22%(15만1천명)나 증가했다. 실업급여 신청률도 지난 2006년 52.5%, 2007년 54%에서 지난해 64.65%로 8.6% 늘었다. 그러나 재취업률은 1.4% 증가하는 데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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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시간이 갈수록 취업 시장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승연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실물 경기 악화로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실업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실업 사태는 시작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로 대변되는 중·장년층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취업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으면서 재취업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이다.
헤드헌팅 업체인 브레인허브 김재헌 대표는 “얼마 전 한 기업이 임원을 뽑은 적이 있다. 응모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대상자가 흘러넘쳤다. 모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원서를 낸 것 같다. 일자리 수요보다 공급이 지나치게 많아 중·장년층의 실업 문제는 현재로서는 해결할 방도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에게는 이미 10여 년 전 외환위기를 몸소 견뎌낸 경험이 있다.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에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았던 세대이다. 그러나 부양 가족을 안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다시 길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하게 되자 이전보다 한층 큰 불안감에 싸여 있다.
최근에 만난 한 대기업 퇴직자는 “공기업들도 경영 합리화를 한다고 해서 40~50대 정규직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20~30대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고 있다. 상황이 그러니 어디 발 붙일 곳이 없다. 그동안 비슷한 연봉의 직장을 구하기 위해 여러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요즘은 중소기업을 찾아 재취업 가능성을 알아보고 있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라고 토로했다.
그나마 눈높이를 낮추어 일자리를 찾아보는 경우는 나은 편이다. 중소기업 종사자들의 경우는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회사가 문을 닫으면 마땅히 갈 곳조차 없다. 실업자 신세가 되면 정부에서 지급하는 실업급여로 어렵게 버티지만 이마저 끊기면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있는 일자리를 보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현실이다. 정부가 실직자들에게 맞춤형 일자리를 지원하고, 전업 자금으로 2백만원을 미리 지급하는 한편, 저소득층을 위한 취업 패키지 지원제를 실시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윤정진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 취업지원과 팀장은 “실업급여 수령 기간을 현재의 8개월에서 최고 12개월까지 연장하는 방안과 함께 구직을 지원하는 제도를 많이 내놓고 있다. 전문 상담직 공무원이 개별 면담을 통해 실직자의 고민을 해결해주거나, 정부가 직접 구인 활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사업이 아직 초기이기는 하지만, 본 궤도에 접어들면 중·장년층의 재취업을 늘리는 데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 “실업급여 수령 기간 연장 검토 중”
그러나 당장 일자리가 없어 헤매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소리가 여전히 남의 일처럼 들린다.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 ‘잡 카페’에서 만난 한 구직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센터를 들르지만 큰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이력서를 넣을 만한 마땅한 곳이 없다”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한 50대 구직자는 “정부가 4대강 살리기 등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일자리가 생긴다 해도 젊은 층에게 돌아가지 우리가 할 일이 있겠느냐. 우리 같은 장년층은 별도의 대책이 없는 한 항상 소외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실업 대책에 대한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영업자나 신규 실업자가 많은 우리나라의 노동 시장 특성을 감안할 때 현재의 실업 대책에는 허점이 많다. 저소득층 대책과 겹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업 인력을 효율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주도면밀한 설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특히 직장을 떠난 중·장년층이 대거 자영업으로 쏠리고 있는 현실은 큰 문제로 지적한다. 그는 “재취업이 어려운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월 소득이 낮은 자영업으로 내몰리면 그 자체가 상당한 사회적 부담이 될 수 있다. 노동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자영업 지원책은 선별된 일부 취약 계층으로 한정시키고 40~50대를 위한 항구적인 일자리를 확보하는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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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원 정책‘고용’에 맞춰라 |
일자리 나누기는 대기업 위주로 해야 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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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호] 2009년 02월 11일 (수) |
정재훈 (인하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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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장교빌딩에 있는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 사무실 유리벽에 비친 구직자들의 모습.
ⓒ시사저널 임준선 |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청년층 고용 문제를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의 고용 동향 발표 자료(2009년 2월4일)에 의하면 특히 20~30대의 취업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20대 취업자는 2008년 3백89만4천명으로 전년에 비해 2.5%나 감소했고, 30대 역시 0.4% 줄었다. 반면, 40대 취업자는 1.0% 증가했으며, 50세 이상 취업자 역시 3.4% 늘어났다.
청년층 중 80%가 대졸자인 상황에서 이들의 취업난 가중은 당사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성장 기반의 훼손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위축된 고용 상황을 비유하는 용어도 더욱 강도가 높아져 외환위기 직후 유행했던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에서 지금은 ‘이퇴백(20대에 스스로 직장을 뛰쳐나옴)’, ‘삼초땡(30대 초반이면 명예 퇴직을 생각해야 함)’ 등으로 변했다.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고 보자’라는 급한 마음에 취업했다가 적성이나 근무 조건이 맞지 않아 조기 퇴사하는 경우가 많음을 보여주고 있다. 취업 대란의 원인을 짚어보면 크게는 세계화로 인한 기업 간 무한 경쟁 상황이 상대적으로 경력자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신규 졸업자들의 취업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무엇보다 먼저 경기 요인을 들 수 있다. 금융 위기로 시작된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기업들의 고용 창출 능력을 저하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경기 요인 이외에 구조적 요인이 대졸 고급 인력의 실업을 가중시키고 있다. 우선, 수요 측면에서의 일자리 급감을 들 수 있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면서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수출 대기업의 일자리는 거의 늘지 않고 있다. 반면, 공급의 경우 대졸자 공급은 면 단위까지 대학 설립 확산으로 인해 초과잉 공급 상태이다. 거기에다 과거 신규 졸업자 위주로 이루어지던 대기업의 채용 패턴이 경력직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되었다. 따라서 경력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신규 졸업자들의 취업난은 더욱 가중되고 있으며 기업들의 신규 졸업자들에 대한 입맛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다.
대학도 경쟁력 있는 대졸자 배출해야
이에 따라 대학 신규 졸업자들의 취업 스펙(취업 자격 요건)도 더욱 고도화·다양화되고 있다. 학점과 토익을 비롯해 아르바이트, 공모전, 사회 봉사 활동, 인턴 교육, 어학연수, 해외여행, 각종 자격증 취득 등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할 요건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4년제라고 하지만 4년 만에 졸업하는 것은 이미 옛말이다. 대부분 적게는 6개월에서부터 많게는 1년 이상 어학연수, 인턴십 등의 이유로 평균 체류 기간이 5년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개별 공급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눈물겨울 정도로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이들의 노력을 지원하는 대학의 역량 증대가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공급 과잉을 초래하는 대학 난립 해소를 위한 대학 구조조정과 대학 수준의 학생별 맞춤형 경력 개발과 품질 관리가 실시되어야 한다. 대학이 실업자 양성소라는 오명을 덮어쓸 수는 없지 않은가? 2년제를 포함한 전체 대학 입학 정원이 고교 졸업생 수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은 대학 간의 구조조정을 통한 통폐합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백화점식의 학과 나열로 경쟁력 없는 대졸자를 양산하는 운영 방식의 개선도 시급한 과제이다. 학생별 맞춤형 경력개발과 품질 관리는 입학할 때부터 졸업까지 밀착형 지도를 통해 4년 동안의 학습 과정을 전공 지식과 전공 관련 현장 학습이 합리적으로 연계된 프로그램이 되도록해 해당 분야의 준 전문가 수준까지 끌어올림으로써 기존 경력자들과의 경쟁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다. 취업 스펙의 설정과 취득도 당사자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대학 차원에서 체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인턴십의 경우를 예로 들면 각 학부 내지 학과 수준에서 개별 기업들과 학생 현장 실습을 위한 협약 체결을 통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현장 학습이 가능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대기업들의 엄살과 기존 대기업 취업자들의 제 몫 챙기기, 정부의 정책 한계가 문제로 지적된다. 대기업들은 위기 관리라는 이름으로 미리부터 명예퇴직 등을 통한 대량의 고용 조정을 예고하고 있지만 외환위기 때의 경험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고용 조정이 위기 타개의 능사가 아닐뿐더러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의 육성과 핵심 경쟁력 관련 유전 형질의 유지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일자리 나누기는 근로 조건이 열악한 중소기업들이 아니라 대기업 위주로 해야 고용 증대를 통한 소득 개선 등의 정책 효과가 얻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기업 노사는 임금 수준의 동결을 통한 재원 마련이나 근로 시간의 단축을 통한 워크셰어링 등을 통해 고용 창출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중소기업은 현재의 일자리 유지에, 대기업은 현재의 일자리 유지 및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하는 데 지원 정책의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한편에서 공공 부문의 강력한 구조조정을 주문하면서 다른 한편에서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을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정서적으로는 당사자들의 납득을 얻어내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청년층 실업 해소책의 일환으로 비정규직과 다름없는 행정인턴의 확대를 얘기하면서 지금은 고용의 질을 따질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소치가 아닌가 한다.
비정규직 문제, 청년 실업 악화시킬 수도
지금 청년 실업자들이 원하는 것은 좋은 일자리이다. 그리고 이들이 도전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도전할 기회를 갖지 못할 뿐이다. 단기적인 일자리라도 공급해야 한다는 정부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비정규직 문제가 청년 실업 문제를 악화시키는 주요한 원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으로 대학원생들을 모집하는 국회의 공고문에서 기껏 ‘월급 90만원’을 제시하면서 ‘통계에 능하고, 정책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구절이 눈에 밟혔다. 우리나라에서 통계 전문가는 정말 귀하다. 게다가 통계 전문가가 정책 마인드까지 있다면 그야말로 최상의 전문가에 해당한다. 그런 대학원 졸업자가 매일 출근해서 8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90만원을 받는다?”(<88만원 세대> 20쪽) 이럴 바에는 구직을 단념하는 편이 낫다.
청년들이 원하는 조건은 간단하다. 차별이 없을 것, 생계비가 보장될 것. 자기 계발의 기회 혹은 훈련이 제공될 것 등이다. 공조직일수록 사람값을 제대로 쳐줘야 한다. 경기 조절용으로서 비정규직 청년층을 활용해서는 곤란하며, 이런 점에서 청년층 실업 대책은 비정규직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청년 인턴제로 취업했다가는 경력 인정도 못 받고 나이만 든다’는 취업 재수생의 지적을 곱씹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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