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로 존재하는 자마틴의 소설 속<우리들>과 4800만 사람들을 줄 세우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우리들>은 닮은 꼴이다.
자마틴의 <우리들> |
1920년 완성된 공상과학소설(SF)로 소련전체주의에 대한 풍자 때문에 오랫동안 출판될 수 없었다. 이 작품은 29세기 하나의 세계로 통합된 단일제국이 무대다.
이 제국은 녹색 벽으로 외부와 단절된 채 ‘은혜로운 분’이 다스리며 제국에 존재하는 ‘우리’는 ‘나’라는 정체성을 빼앗긴 채 번호로만 살아간다.
번호들은 24시간을 완벽하게 짠 ‘시간율법표’에 따라 기계들처럼 움직이며 보완요원이 엄격하게 감시하는 유리벽으로 된 집에서 생활한다.
성규제법에 따라 적절한 번호끼리 제국에 등록해야 하며, 성행위조차 허가를 받아야한다. <우리들>은 우주선 인테그랄 호의 조선 담당기사인 D-503이 기록한 수기형식으로 되어 있다. 수기 첫 기록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자유란 미개한 것이고 압제에 대한 복종만이 행복을 보장해 준다.
-‘SF부족들의 새로운 문화혁명, SF의 탄생과 비상’에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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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D-503보다 8세기나 앞선 21세기 대한 민국에 출현한 L-747이다. ‘1퍼센트 인간을 위한 특별한 대한민국 건설’이란 슬로건을 내건 사람들이, 그 기틀을 잡아달라고 씨이오(CEO) 출신 불도저 기사인 나를 불렀다.
나는 첫 단계로 과감하게 대한민국 사람들 뇌 구조를 바꾸는 작업에 돌입했다. 판단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에 ‘돈이면 다 돼’라는 특수 아이콘을 심었어. 돈이 전부인 1%가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예비 작업이지.
가끔가다 ‘평화’,‘나눔’이니 ‘자연’,‘사랑’ 따위를 떠벌리는 변종이 나타나지만, ‘피눈물 제거’란 간단한 수술로 돈을 향한 일관된 집념을 지닌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으로 되돌려놓는다.
불도저 기사로 사람을 부린 경험을 돌이켜보면 목표가 분명해야 일사불란하게 돌아간다. ‘돈이면 다 돼’는 사람을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최고의 목표이자, 그네들 삶을 움켜쥐고 흔들 수 있는 나만의 주문이기도 하다.
1% 인간과 99%등등으로 이루어진 천국, 대한민국
둘째로 취한 조치는 호칭이다. 대한민국은 48만 번째 안에 든 ‘인간’과 그 뒤를 허둥지둥 좆는 ‘등등’만으로 이루어진다. 1% ‘인간’으로 불리든지, ‘등등’으로 자리매김하든 오롯한 자기 몫이다. 나, L-747은 1년 남짓 동안 통치기반을 닦은 셈이다. 이제 남은 일은 공정한 경쟁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운영하는 일 뿐이다.
나, L-747의 능력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불도저 기사 30년 비법이 고스란히 담긴 무한경쟁 시스템, ‘L-747 컨베이어 3종 세트’를 보면 누구나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내용은 간단해. 컨베이어에서 떨어지면 탈락하고 모두 3번의 기회를 가져. 너나할 것 없이 의무적으로 타야하니 ‘공정성’에 대한 군말은 없지 싶어." 자기 몸에 맞게 속도조절기능까지 갖추었으니 여기서 떨어지면 ‘등등’이 아니라 ‘등신’으로 불리어도 변명을 할 수 없게 되어있다.
'L-747컨베이어 1종'은 뱃속에 든 아기부터 20세 전후의 성인용이다. 이용자가 원하는 대학까지 시속 200km 속도로 돌아간다. 어린 아이들이 걱정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어. 속도조절기능을 갖추었다니까! 보통 6세 된 어린이 1명이 대학까지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달리려면 2억190만원의 코인만 넣으면 된다. 들어가기만 하면 ‘1% 인간’들이 사는 담장 앞까지 데려다 준다는 하늘(SKY)대학은 몇 곱절의 코인이 더 있어야 다다를 수 있다.
대학까지 완주하려면 2억1905만원 코인을 준비하라!
'L-747컨베이어1종'에서 탈락한 90%의 사람은 바로 ‘등등’으로 분류되지 않고 'L-747컨베이어2종(정규직으로 가는 길)‘으로 옮겨 타면 된다. 1% 인간의 위력과 코인의 힘을 절감한 사람들은 드디어 복종심과 경외감을 갖기 시작하는 것도 이 때다.
‘L-747컨베이어 2종’에서 당분간 인간이길 포기하고, 2년만 버티면 정규직(1% 인간으로 편성되기 위한 필요조건)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1% ‘인간’들이 “너무 자주 심사를 하다보면 1%사회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강력히 항의해서 심사기간을 4년으로 늘릴 작정이다.
"이도저도 안되는 ‘등등’을 위한 막바지 길이 'L-7473종 컨베이어'야. 1%로 가는 길은 사실상 멀어졌지만 아파트, 자동차, 해외여행, 외식 따위 <선착순 무한소비 레이스>를 펼쳐서 이긴 1명에게 <대한민국 명예 1%시민 배지>를 달아주지. 무늬만 대한민국 1% 인간인 ‘등등’이야. 이마져 얻으려고 두 다리가 대꼬챙이가 될 때까지 뛰다 저 멀리 컨베이어 벨트 너머로 사라지는 ‘등등’을 보면, 무한경쟁을 지켜보는 쾌감과 함께 'L-747컨베이어3종 세트'의 우수성을 가슴 뻐근하도록 느껴!"
눈에 뵈는 것이 없다 내일이 없으니까!!
가끔씩 컨베이어를 들어내려고 하는 과격한 ‘등등’이 출몰하지만 ‘시장경쟁’이란 백신 한 방이면 평정된다. 어디나 있을 법한 말 많은 ‘등등’에겐 ‘너는 정치적이야!’라는 <무뇌 프로그램>을 주사하면 바로 입을 닫는다.
대한민국 1%에겐 다음 세대나 다가올 세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 L-747이 누구말도 듣지 않고 4대강을 개발하고, 등등의 당연한 권리를 ‘떼법’으로 몰아세우며 사람들을 들이치는 힘이지.
내일이 없는 인간에게 무서움이란 없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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