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 반바지 차림은 내원동 촌장님이다.
이들은 상하지도 않기에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부피도 작아 장기산행에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땀을 많이 흘리고 난 다음에 염분 섭취하기 쉬운 것들이어서 체력 유지에도 효과가 만점이다.
탄광에서 갱도 붕괴사고로 갱에 갇혔다가 15일 9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출되어 당시로서는 매몰사고 최장 기록을 낸 양창선 씨가 살아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도시락 반찬으로 가져간 무장아찌였다고 한다. 비상시는 예기치 않게 온다. 뒤처져가다 길을 잘못 드는 경우도 있고, 갑자기 찾아오는 신체적 이상으로 낙오되는 경우도 있고, 폭우나 폭설 등 기후 급변으로 인해 고립되는 경우도 있고, 낙석에 맞아 다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친구의 자일을 끊는 경우는 없다할지라도 산에서 예상할 수 있는 평화는 없다. 그래서 산을 과신하는 일은 금물이다.
당뇨를 앓는 사람이 혈당 수치가 갑자기 낮아져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 이때 특효약은 초콜릿이다. 당분을 공급해 줌으로써 일시적으로 혈당치를 높여 원상태로 몸을 회복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저혈압인 사람에게 산을 오를 때 한 잔의 술은 효과가 있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 산행에 탈진했을 때는 사탕보다는 염분을 섭취토록 해야 한다. 특히 죽염이나 아니면 짱아치를 먹이고 물을 섭취하게 한 뒤 그늘에서 쉬게 하면 이내 회복된다. 이렇듯 산은 경험이 위험을 피해갈 수 있게 한다.
산 아래 핀 꽃을 꺾었을 때
하얀 피가 흘러 내렸다
나는 깜짝 놀라 꽃을 보았다
그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몰라주었던 이름, 오랑캐꽃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내가 탈진했던 기억은 덕유산을 종주할 때였다. 돼지평전을 오를 때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주저앉고 말았다. 아침을 시원찮게 누룽지로 먹고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고 비에 젖은 텐트를 짊어지고 종일 걸어서 향적봉을 오르는 데 그만 탈진하여 쏟아지는 폭우에도 불구하고 바위틈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내가 가진 것은 사탕 몇 알 뿐이었다. 반대편에서 또 기진한 한 사람이 가까이 와서 곁에 앉았다. 그도 거의 탈진 상태였다. 서로 인사 나눌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미숫가루가 남아 있다고 하면서 봉지째로 내게 건넸다. 나는 답례로 사탕 몇 알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바위를 타고 흐르는 빗물에 개서 마셨다. 그때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빗속에서 탈진한 상태로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산이 완료될 때까지 남겨야 하는 것은 비상식과 물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산이다. 그러므로 비상식은 늘 남겨야 하며 개인적으로 지참해야 한다. 아무리 급박해도 이 둘은 집에 돌아올 그 순간까지 붙들고 있어야 하는 거다. 당일 산행이야 위험한 일이 발생할 이유가 별로 없지만 원거리 산행이나 큰 산을 갈 때는 철저한 준비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그저 산행을 아름다운 산보 정도로 인식해서는 곤란을 겪게 된다.
가지산을 얕보고 아침 해장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물통만 달랑 들고 올라갔다가 쌀바위를 지나 9부 능선쯤에서 허기를 만나 되돌아서야 했던 기억이 있다. 산을 다 오르지 못한 것은 실패가 아니다. 준비 없이 산을 올랐다는 것이 실패다. 이런 어리석은 일은 한 번이면 족하고 그 경험은 산에 대한 외경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