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산천초목에 대한 사랑이 가슴속에 들끓는 신선처럼 산다.
도시인의 삶에서 자연이 사라지는 생태맹(生態盲) 현상을 우려하면서….
경북 포항시 청하면에 가서 희한한 어른을 만나고 돌아왔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어린왕자가 말했던가. 세상이 암만 망가져도 여태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곳곳에 이런 보배 같은 사람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고 그 숲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이는 낯빛이 선사처럼 맑다. 기청산(箕靑山)식물원의 이삼우(李森友·70) 원장은 2만5000평의 땅에 40년 넘게 토종나무와 풀을 심어 길러온 사람이다.
우리 토양과 성정에 맞는 나무와 풀들이 사라지고 속성으로 자라는 외래종들이 온통 범람하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그리고 웬만한 사람들은 그걸 제대로 알지조차 못한다. 그동안 우리는 오직 잘사는 것만이 시급했다. 돈만 된다면 까짓 나무와 풀쯤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무와 꽃과 풀은 그저 거기 있는 듯하지만 실은 우리 정서와 기질을 암암리에 지배한다. 뿌리가 얕고 우듬지만 큰 나무는 대수롭지 않은 바람에도 휙휙 넘어간다.
수명이 100년이 채 안 되는 나무는 인간에게 하늘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한다. 노거수(老巨樹·오래되고 큰 나무)가 서 있는 마을이라야 큰 인물이 태어난다. 뿌리 얕은 나무를 보고 자란 이가 심지가 굳기를 바라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나무에 관한 이런 언설들을 나 또한 모르지 않았다. 믿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평생 나무 한 그루 심지 않고 살아왔다. 시간 나면 산에 올라 거기 공으로 자라는 놈들을 목마르게 껴안기나 했을 뿐.
그런데 이 원장은 우리 죄를 대속하듯 멸종돼가는 토종나무와 풀의 씨앗으로 낙원을 만들어낸 분이다. 모두 몇 그루냐 물으니 그루 수는 세어보지 않아 알 수도 없단다. 종류만 따진다면 나무와 풀이 각각 1000종이다. 이 중 9할이 순 토종이다.
멸종 위기 식물 41종 길러
기청산식물원을 천천히 걷는다. 멸종위기 식물이 41종이나 있어 환경부는 6년 전 이곳을 희귀멸종위기 식물 보전기관으로 지정했다.
“환경부는 수지 맞은 거요. 이걸 나랏돈 들여서 키우려고 했어봐. 그 인력과 비용이 도대체 얼마겠소?”
선사 같은 낯빛이지만 일단 입을 열면 유쾌하고 진지하고 신랄한 담론이 줄줄 흘러나온다. 볕은 맑고 바람은 청결하고 대기는 달고! 기청산은 과연 낙원이었다. 겨울에 식물원엘 가서 볼 게 뭐 있으랴 싶던 내 예상은 완전히 뒤집혔다. 키 큰 나무들은 수형이 그대로 드러나 늠름했고 키 작은 관목들은 그들대로 잔가지들의 조형이 놀랍도록 섬세했다. 대나무 밭은 청청하게 푸르렀고 멀구슬나무의 노란 열매를 쪼아 먹으려고 직박구리들이 온통 몰려와 재깔거렸다. 낙엽 위 군데군데 산비둘기의 잿빛 털이 잔뜩 뽑혀 있어 사투의 흔적을 짐작게 했다.
“새매의 짓이라오. 맹금류가 깃들인다는 건 여기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지.”
참느릅나무, 감태나무, 꽝꽝나무, ‘연아소나무’, 보리수, 참나무, 월계수, 풍향수 밑동을 쓰다듬고 안아보며 지나간다. 나무마다 이야기가 넘쳐난다. 이 원장이 죽 뻗은 참느릅나무를 올려다보며 “날더러 하나를 고르라면 이 나무처럼 되고 싶어”라고 고백처럼 말했다. “왜요?”라고 내가 얼른 그 말을 낚아채자 “뿌리가 깊잖소?”한다. 대답은 간결하나 곁에선 참느릅나무의 훤칠한 기품과 균형 잡힌 수형과 정다운 수피가 이미 충분한 설명을 해준다.
또 감태나무 아래선 가로수로 심기에 최적인 토종나무라 조경수 개발운동까지 벌였지만 다들 외면하다가 그럭저럭 헐값에 팔고나면 그제야 불이 붙더라는 울분이 터지고, 꽝꽝나무 앞에선 불에 넣으면 소리가 꽝꽝거려 붙여진 이름이라는 명칭고(考)가 나왔으며, 아이스 스케이터 김연아 선수가 얼음판에서 허리를 뒤로 휘는 형태로 서 있는 ‘연아송’ 앞에선 우리 젊은이의 역량과 가능성에 흥분했다. 보리수 앞에선 ‘인도의 보리수는 깨달음의 보리(菩)인데 토종 보리수는 씨앗이 보리(麥)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며 염주를 만드는 구주피나무도 곧잘 보리수로 혼용하고 있다’는 혼란도 짚어냈다.
“사실은 가곡 ‘보리수’는 ‘성문 앞 샘물 곁에 서 있는 구주피나무’라고 불러야 해. 하하하.”
유토피아의 알갱이
▼ 기청산식물원의 기(箕)가 무슨 뜻이지요?
“난 청산이란 말이 좋은데 그냥 청산이라고 부르면 싱겁잖소. 기란 곡식 까불 때 푸는 키요. 쭉정이는 날려 보내고 알곡만 남기는 도구지. 청산은 유토피아거든. 유토피아의 알갱이만 모아놓은 곳이란 소리지.”
나무는 인간의 역사와 언어를 고스란히 기록한다. 시간의 눈금을 나무만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젊어서 죽지 않는 한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시간은 가차없이 젊음을 지운다. 가차없다는 것은 잔인하다는 말이 아니라 공평하다는 의미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해 어처구니없이 저쪽 세상으로 가버려 우리를 억장 무너지게 했던 이윤기 선생이 생전에 말했다. 세월에 방울을 달아놓으라고! 처음엔 보잘것없는 쇠방울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게 은방울이 되고 금방울이 될 것이라고!
물론 그 방울 달기는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꾸준히 계속하란 권유일 것이나 선생은 보다 구체적으로 시간에 방울 다는 법을 제시했다. 그게 바로 나무 심기였으니 회초리만한 묘목 위로도 시간은 공평하게 흘러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면 나무는 스스로 거목이 된다는 것이다. 거목이 된 나무는 아연 존재감이 달라진다. 저 홀로 의연하게 서서 사람을 마주 바라볼 줄 알게 된다. 나는 언제부턴가 인생의 정답은 ‘나무 심기’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내가 그저 들은 풍월로 그런 말을 한다면 이삼우 어른은 평생 동안 그걸 뜨겁게 실천해온 사람이다.
우린 걷다가 멈추고 멈췄다가 다시 걷는다. 나무 심기는 과연 시간에 방울을 달아놓는 일이로구나. 그 방울이 기청산 여기저기서 자랑자랑 울린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세월이라면 사람은 당연히 나무를 심어놓고 세월을 보내야 한다. 그걸 새삼 절감한다. 38년 전 묘목을 심었다는 은행나무 아래선 동행한 친구와 ‘오링 테스트’도 했다. “그건 숫나무요. 오른손으로 둥치를 잡아봐. 아마 왼손가락에 힘이 확 들어갈 걸.” 과연 내 왼손 엄지와 검지는 친구가 도저히 뗄 수 없게 강력해졌다.
나무(木)의 아들(子)인 이(李)씨
▼ 나무와 대화를 하시나요?
“나무의 말을 알아듣는 듯도 하지만 솔직히 아직 대화할 수준은 못되오. 언젠간 그리 되겠지. 하긴 내 이름자부터가 운명적이긴 하지. 항렬을 넣어 지은 ‘參雨’(삼우)를 나무를 심으면서 ‘森友’(삼우)로 바꾸었거든, 하하하. 성(李)부터 나무(木)의 아들(子)아니오? 한국의 사립식물원 원장 대다수가 성이 이씨라오, 재밌지 않소?”
눈앞의 한 그루 나무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구상이지만 동시에 추상이다. 그의 수명이 인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고 육안으로 안 보이는 숱한 비밀을 간직하기 때문이고 안에 품은 생명력이 사람의 생명력과 무시로 교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린 나무의 시간과 비밀과 생명력을 콘크리트로, 경제논리로 처발라버렸다. 그래놓고 노상 헛헛해한다. 그가 “왜 나무를 사랑해야 하는지 아시오?”라고 묻는다. 나는 “오래 사니까. 그리고 아름다우니까!”라고 말했다. 내 대답은 빈곤해서 썰렁하다. 그가 스스로 답한다.
“나를 온전하게 이 우주에 묶어주는 것이 나무라오. 사람이 이 세상에 온전하게 존재하려면 나와 주고받은 사랑의 고리들이 얽히고설켜 우주 공간에서 균형을 이뤄야 하거든. 그 사랑의 고리가 많으면 존재의 안정감이 높아지고 반대면 불안해지지. 사랑의 대상이 어디 사람뿐이겠소. 식물도 동물도 심지어 물건까지 포함되는 거겠지. 다만 생체의 연륜과 덩치, 질에 따라 인연의 끈이 굵거나 가늘 수는 있을 거야. 흔히 노거수를 해치고 해를 입곤 하는데 나는 그것도 같은 이치라고 봐. 수백 년 그 나무를 사랑하던 사람들과 인연의 고리가 단번에 끊어지니 순식간에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거지.”
“….”
“이게 미신 같소?”
“아니요. 온갖 생명이 우주와 인드라망(불교에서 말하는 제석천의 보배 구슬 그물. 모든 게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상징)으로 연결돼 있다는 철학이로군요.”
우리는 함께 웃고 그 웃음은 나무를 타고 하늘로 퍼져나갔다.
‘어려운 귀조경’
지붕 얹은 쉼터에는 모닥불이 지펴져 있다. 자연스럽게 모닥불가에 둘러앉는다. 불 위로는 찻물 담긴 까만 솥이 매달려 있는데 끈을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려놓았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묻지 않아도 알겠다. 두충나무 잎으로 끓인 차는 뜨겁고 구수한데 바로 곁에서 직박구리가 드높게 우짖는다.
“저 녀석은 봄에 짝짓기할 때만 예쁜 소리로 울고 겨울엔 아주 시끄러워. 조경은 이목구비가 고루 갖춰져야 해요. 그래야 불구가 안 되거든. 식물을 대할 때 눈으로 빛과 형태를 보고 입으로 맛을 보고 코로는 향을 맡고, 귀로 소리를 듣는 건데 그중 귀조경이 제일 중요하고 또 어려워.” 귀조경? 처음 듣는 말이다. 새를 의도해서 불러 모은다는 것인가.
“물론이오. 아마 전국 수목원 중 단위 면적당 새 분포량이 가장 많은 곳이 이곳일 걸? 새를 불러들이려면 우선 새의 생태를 알아야 해. 까치나 까마귀는 키 큰 나무에 깃들이고, 참새나 붉은머리 오목눈이 같은 작은 새는 키 작은 관목에 깃들이지. 멀구슬나무 열매를 먹으려고 겨울에는 직박구리가 몰려들고! 새들의 특급 서식처가 바로 참느릅나무요. 이렇게 뿌리가 깊고 가지가 무성한 나무에는 고급 새가 깃들어. 하긴 고급이란 게 인간의 잣대이긴 하지만, 털빛이 예쁘고 생김이 곱고 소리가 맑은 최고의 새가 뭔 줄 아오?”
“꾀꼬리!”
나는 퀴즈대회라도 나온 듯 얼른 소리친다.
“하하 그렇소! 참느릅나무엔 꾀꼬리가 날아오지. 난 그놈을 ‘조수미’라고 불러. 새벽마다 새소리에 잠을 깨는 기쁨을 어찌 다 말하겠소. 노거수에 날아와 우짖는 새소리를 사시장철 듣고 사니 삶의 질이 높을 수밖에요.”
그는 젊어서는 과학도였으나 나이 들면서 차츰 철학자가 돼갔다. 철학 중에서도 오행철학을 신봉하게 됐다. 숲에 묻혀 그 안에서 생성되고 이우는 식물의 이치를 가만히 응시하다보니 절로 대자연의 섭리를 깨친 듯하다.
“모든 물질은 곁에 있을 때 서로 닮아가거든. 꽃의 형태나 빛깔이 우리 대뇌 속에 들어와 사람의 정서에 관여하지. 급기야 유전인자까지 바꿔놓을 수도 있어. 빛깔도 ,소리도, 장기도,감각기관도 오행에 따라 달리 작용하는데 그중 가장 예민한 것이 소리거든. 소리는 파장이라 우리 몸의 액체에 미묘한 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단 말이야. 이름이 중요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봐. 어떤 소리로 불러주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거든. ‘이삼우’라는 내 이름은 발음이 좀 허약해. 그래서 호는 격음이 든 ‘아촌’으로 쓰기로 했지. 싹이 돋는 마을(아촌·芽邨)이란 의미도 좋잖소. 하하.”
예술 재능 빼어나
아촌은 이곳 청하에서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 아버지가 이미 46세였다.
“당시 46세면 요즘으로 치면 66세일걸. 난 순전히 우연으로 태어났어. 어머니는 41세였는데 둘째누나도 같이 임신을 했으니 남세스럽다고 소쿠리로 부른 배를 가리고 다니셨대요.”
선친은 영일군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유한 살림을 꾸리셨지만 막내아들에겐 인색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경성공업전문학교 출신인데 젊은 날엔 개마고원 측량기사로 일했나봐. 초등학교 운동회 날 20원을 받은 것과 대학 입학 후 정구 라켓을 받은 것 외엔 아버지께 특별히 용돈을 요구해서 받은 게 거의 없어요. 막내라 식구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으면서도 또 가장 푸대접 받았달까. 연아무공(憐兒無功)이고 증아득력(憎兒得力)[애지중지 키운 아이는 공이 없고 구박 주며 키운 자식은 힘을 얻는다]이라고, 일부러 그렇게 막 굴리면서 키웠던 것 같아.”
그러나 그는 기질상 수줍음이 많고 섬세했다. 몸 또한 병약해 그걸 감추려 소년시절을 짐짓 사내다운 척하면서 보내야 했다. 대구중 3학년 무렵이었다. 방학숙제가 음악은 작곡, 미술은 모자이크였다. 그는 열심히 숙제를 해갔다. 모자이크는 달걀 껍질을 구워 보름에 걸쳐 하루 한두 시간씩 핀셋으로 집어 요리조리 짜 맞춘 작품이었다.
“음악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내 작곡숙제를 극찬했어. 그런데 날 부르더니 다짜고짜 어느 노래를 모방했느냐고 따져 묻는 거야. 나는 얼굴이 잘도 빨개지는 내성적 성격이었어요. 그날로 음악에 흥미를 잃어버렸지. 미술도 마찬가지였어. 다른 반에선 내 모자이크를 앞에 걸어놓고 칭찬했다던 선생이 우리 반에 와서는 ‘이 작품 네가 한 거 아니제? 누가 해준 거지?’하며 심문조로 공격하더라고. 그날 이후 미술에도 흥미를 싹 잃어버렸어요. 우리 가족이 다들 예술적 재능이 있어요. 큰형은 화가, 둘째형은 음악가, 둘째누님은 가수 기질이 있는 예능 혈통이었는데 운명이 그렇게 호락호락 자기 소질대로 가게 놔두질 않더라고.”
노거수회 이끌어
아촌이 그림에 재능을 가진 것은 요즘 하는 일에서 확실히 증명된다.
그는 지역의 역사현장을 찾아다니는 향토사학자이기도 하다. 영일군 향토사연구회장을 맡아 ‘영일군사’를 편찬하면서 밟아보지 않은 골짜기가 없다.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엔 숲만 보였어!” 그 숲을 찍은 사진은 이미 아마추어의 경지를 훌쩍 벗어나 보였다. 영일군의 송라, 죽장, 흥해, 기계, 동해, 구룡포, 장기면엔 숲도 많고 노거수(老巨樹)도 많았다. 그런데 수령 300~400년, 많게는 500년된 나무들이 사람들의 발길로, 콘크리트 떡칠로, 뿌리 훼손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걸 살리기 위해 아촌이 조직한 것이 지금 18년째 이어오고 있는 ‘노거수회’다. 포항·영일·영덕·흥해의 수백 년 묵은 나무를 찾아다니며 그 가치를 되새기고 홍보하고 연구하고 더 깊이 사랑할 방도를 논의하는 모임이다. 매년 회지도 낸다. 이번에 나는 얄팍한 노거수회 회지를 10여 권 받아와서 읽었는데 그 어떤 서적보다 구체적이고 유용한 정보로 가득했다. 그걸 보니 노거수회는, 창립 이듬해에 이미 영일군내 느티나무, 팽나무, 음나무, 소나무 24그루를 보호수로 지정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모임은 수몰위기에 든 600년 묵은 느티할배 살리기, 노란꽃이 초롱처럼 매달리는 희귀한 모감주나무 군락지 찾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 화진불 근처의 해당화 자생지 찾아내기, 바닷가 모래밭에서 임란 당시 의병들의 의총(義塚)을 찾아 매년 현충일에 위령제 지내기 등 소규모 동호인 그룹이 해내기 버거운 일들을 그간 숱하게도 펼쳐왔다. 그 중심에 역사와 나무라면 물불 안 가리는 아촌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의사들이 복 받는 게 왜 그런 줄 알아? 아픈 이들이며 죽을 사람 살려내서 그 고마움이 모여서 되돌아오기 때문이거든. 나도 그간 나무들을 어지간히 살려냈으니 그 나무들이 꽤나 고마워할걸. 친구들은 새벽과 한밤중을 마다않고 농장에 나가 일하는 나를 자꾸 부럽다고 해쌓는데 아마 복 받은 모양이야, 일 복, 하하.”
하여튼 그런 일을 하자니 남에게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줘야만 할 일이 자주 생기곤 했다. 그림이 자신이 발로 밟은 등성이나 골짜기 지형과 위치를 설명하기에 가장 효율적이었다. 그런 목적으로 달력 뒷장에 그려놓은 아촌의 그림은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나는 세상에 이런 분이 다 있을까 싶어 내내 그 달력을 만지작거렸는데 그는 내가 넓적한 책상에 반한 줄 알고 이렇게 말했다.
“그 책상 맘에 들지요? 버리는 문짝 둘을 주워와 사과궤짝 위에 얹은 거요. 포철 회장 지낸 박태준씨도 그걸 보고 자꾸 좋다고 만져쌓데(만지작거리데). 굴지의 재벌이 촌부의 책상을 부러워하다니 우습지. 하하.”
나무가 살려달라고…
1950년대 후반 경북고는 영남 인재가 많이 모여드는 명문고였다. 아촌은 입학할 때 성적이 상위 17% 정도였다고 한다. 1,2학년 때는 수영 배구 농구 야구 축구 등 운동에 빠져 성적이 신통찮았으나 3학년이 돼서는 학급 수석을 차지했단다. 그 정도 성적이었으면 대개 법대나 상대를 지원했는데, 그는 농대 임업과를 택했다. 진작부터 결심해둔 일이었다. 교실에 앉으면 눈앞에 비슬산이 바로 보였다. 헐벗어 속살이 드러난 산이었다. 그 산을 푸르게 만드는 일에 일생을 바치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산이 좋아 청하 뒷산으로 해서 보경골짜기로 넘어 다니곤 했으니까. 그때 청년들은 객기랄까 애국이랄까 다들 나라를 위해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곤 했지.”
서울대 농대 수원 캠퍼스는 그의 성격에 딱 맞는 전원학교였다. 기숙사도, 교수도 다 그의 마음에 들었다. 소심했던 그는 차츰 긍정적이고 활달한 인간형으로 변해갔다.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있던 자형의 사택으로 놀러 다니면서 생도들의 씩씩한 걸음걸이를 닮아갔고 학교 정구부 부장을 맡게 되고 곱상한 얼굴과는 달리 웃음소리도 호탕해졌다.
“억지로 그런 게 아니라 웃음은 우리 아버지를 닮은 유전성이었지. 하하.”
졸업 무렵 그는 귀농의 꿈을 꾸고 있었지만 한 행정학과 교수에 이끌려 잠시 연구실 조교를 맡게 된다. 그런데 그 교수가 농촌교육학과를 신설하라는 대학본부의 명을 받고 미국으로 장기연수를 가는 바람에 그는 조교직을 그만두게 됐다. 그는 그걸 농촌으로 돌아가라는 계시로 받아들이고 청하로 돌아온다. 금의환향은 아니었지만 쓸쓸한 선택도 아니었다. 당시 아버지는 넓은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아름다운 솔숲으로 둘러싸인 청하중을 인수해 이사장직도 맡고 있었다. 아름답고 씩씩하던 농대생은 패기만만한 청하 농부가 됐다. 그의 곁엔 농촌의 삶이 힘들어도 농부의 아내로 살고 싶다는 여자 친구도 있었다. 둘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혼인해 청하에서 새살림을 꾸렸다.
귀농 첫해 그는 학교에 딸린 3000평의 밭에서 수박, 참외, 고추 같은 농사를 지었다. 그 시절 이미 농사는 홀대받기 시작했고, 사농공상의 서열이 상농공상으로 바뀌고 있었다. 농사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이듬해부터 학교의 영어, 수학 강사를 맡았다. 재단 과수원을 직영하고, 서무과장 일도 동시에 맡았다. 그러면서 학교 곁에 붙은 땅을 조금씩 사들인다. 그의 목적은 농사가 아니라 나무 심기였으니까! 그는 나중에 하마터면 남의 손에 넘어갈 뻔한 아버지의 학교도 사들이고, 그 주변의 땅도 사들여 오늘의 기청산을 만들었다. 이 부분에서 그는 아주 신중해졌다.
“사정 모르는 이들은 학교를 아버지께 물려받은 줄 알지만 내막은 그렇지가 않아요. 우리 가문에 누를 끼칠까봐 두려우니 말 않는 게 좋지만 분명한 건 지불할 건 다 지불하고 인수했다는 거지. 지금 생각하면 청하중의 관송이 살려달라고 나를 불러들였던 것 같아. 노거수엔 신비한 힘이 있어 자기를 살려줄 사람을 끌어당기게 마련이거든. 저 숲이 세종 때 청하현감 민인이 왕명을 받아 만든 숲이거든. 소나무 800여 그루가 당시 거의 죽어가고 있었어. 돈이 한 푼도 없었는데도 어찌어찌 학교를 맡아 꾸려나갔지. 대신 잠 안 자고 필사적으로 소나무를 살려냈어.”
외래종에 대한 식물사대주의 우려
동행했던 친구와 나는 기청산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이야기보따리가 풀린 아촌에게서 들어둬야 할 말이 너무 많았다. 이튿날 아침 새소리로 눈뜨고 싶었다. 이번 길에 우린 전에 듣지 못한 특급주를 맛봤다. 쇠비름을 설탕에 재워 발효시켰다가 나중에 소주를 부었다는 쇠비름술! 흔한 잡초인 줄만 알았던 쇠비름에서 그처럼 기막힌 향과 빛이 배어나올 줄이야. 게다가 혈당과 혈압을 낮추고 젊음을 되찾게 만드는 약성 또한 빼어나다고 했다. 화제는 각 지자체가 정해놓은 제 고장 상징나무와 상징꽃에 관한 것이었다. 듣고 있자니 한탄과 울분을 감출 수가 없다.
“여기 포항을 우선 보자고. 시목(市木)은 곰솔이고 시화(市花)는 장미거든. 곰솔은 흑송, 해송이라 해서 그 미적 가치나 가격 면에서 적송의 10분의 1도 못 따라가는 나무야. 장미는 외래종이고. 그까짓 시목, 시화가 무슨 상관이냐고? 그게 그렇지가 않아요. 한 언론인이 통계 낸 것 보니 244개 지방자치단체 중 장미를 상징화로 지정한 곳이 20여 곳이나 돼. 당위성도 희소성도 없는 거지. 장미 꽃말이 애무, 정조 없음, 정열적인 프러포즈, 질투 같은 성적 무드를 조성하는 것이란 걸 까마득히 모르고 지정한 걸 거야. 장미를 시화로 지정한 곳에 ‘러브호텔’이 많은 것은 우연일까? 코스모스나 해바라기 같은 외래식물을 지정한 곳도 아주 여러 곳이더라고. 옥잠화, 초롱꽃, 매발톱, 금낭화, 구절초, 개미취, 꽃향유, 해국, 패랭이 등 꽃말이 그윽한 각양각색 우리 꽃이 얼마나 많아? 그게 절로 자라 나부끼는 우리 땅의 고마움을 모르고 늘 서양 꽃만 좋은 줄 알지.”
포항엔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있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모감주나무 아래는 환자가 없다고 ‘무환자나무’로 불릴 정도로 약성이 좋고 꽃이 드문 한여름에 노란 꽃을 주렁주렁 매다는 희귀하고 유용한 나무다. 가로수로 쓰기에도 그만이다. 그런데도 포항 시화를 일본에서나 대접받는 곰솔 대신 모감주로 바꾸고, 외래종 장미 대신 바닷가에 무더기로 피는 맑디맑은 해국으로 바꾸자는 아촌의 주장은 다른 목소리에 묻히고 만다.
우린 산천 곳곳에 느티나무, 느릅나무, 팽나무, 적송, 산벚나무, 왕버들, 은행나무 등등 수백 년 묵은 우람하고 의젓하고 아름다운 노거수들을 가진 나라다. 자귀나무, 회화나무, 말채나무, 이팝나무, 층층나무, 철따라 꽃이 피고 멀리서도 향이 나는 소박하고 정다운 나무들을 셀 수 없이 키우는 산이 있다. 그 아래서 철철이 무심코 피어나는 야생화들은 또 어떤가. 얼레지, 현호색, 노루귀, 족도리풀, 처녀치마, 뻐꾹채, 범부채, 참으아리 같은 어여쁜 우리 꽃은 이제 낯선 이름들이 되어버렸다. 여기저기 개망초, 돼지풀, 미국자리공 같은 외래종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데, 공지나 화단에 돈 들여 가꿔놓은 놈들도 어김없이 팬지, 사루비아, 루드베키아, 베고니아, 아프리칸 바이올렛, 메리골드 같은 외래종 일색이다.
기품 있는 무궁화 품종 길러야
“북한은 1978년에 함박꽃을 나라꽃으로 정했어요. 함박꽃은 산속에 자라는 목련과 교목으로 자태가 퍽 고상하고 정갈하거든. 김일성이 이에 혹해 상징화로 내세웠겠지만, 이 나무가 커다란 약점을 가졌다는 것을 모르고 한 짓이지. 함박꽃 나무는 가뭄이나 홍수 같은 기상이변에 잘 버티질 못해. 나약하지! 다른 강인한 나무 곁에 심어두면 경쟁을 못하고 서서히 쇠진해간다고!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그들이 국화를 바꾼 후부터 나라 경제가 기울기 시작했거든.”
▼ 무궁화는 어때요? 상징화가 될 만한가요? 진딧물이 많이 끼고 나무도 어째 신통찮아 보이던데?
“바로 봤어요. 조달청 고시단가를 보면 무궁화는 한눈에 싸구려 나무임을 알 수 있거든. 그간 좋은 품종은 전혀 심질 않고 행정 명령에 따라 억지로 마구잡이 식재만을 해왔어. 그러니 막상 길거리는 최저질 무궁화들의 진열장이 되어버린 거요. 그것들이 꽤 자라서 전성기에 접어들었으니 더더욱 꼴이 볼품없을 수밖에! 반드시 여름에 우리 기청산에 다시 와서 무궁화를 한번 봐요. 정말 아름답고 고상한 무궁화 품종을 접해본 대한민국 사람들은 천에 한둘뿐일 걸. 일본은 버젓이 국영으로 무궁화연구소를 운영해 고급품종을 장려하는데 우리는 최저질 싸구려 무궁화만 골라 심고 있으니 제 나라 꽃을 푸대접하는 이상한 나라 아니오? 배달계, 아사달계, 단심계의 고상하고 기품 있는 무궁화 품종이 숱하건만 시들 때 추태를 가장 많이 부리는 새한이라는 싸구려 겹무궁화만 무진장 심어놓고 다들 나라꽃 흉만 보거든.”
휴우~,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족성을 가꾸는데 식생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오. 사람의 마음이란 한결같지 않고 주변 여건에 따라 하염없이 변하게 마련이거든. 식물과의 관계에서도 그게 뚜렷이 나타나게 돼 있어요. 장미를 자주 보면 장미를 닮는 감응현상이 생기고, 느티나무를 자주 접하면 기풍이 느티나무처럼 늠름하게 감화되지. 무궁화는 뿌리, 줄기, 잎, 꽃, 열매가 모두 약재로 쓰이고 꽃이 귀한 한여름에 두 달 넘게 날마다 화려한 꽃을 피우고, 단독으로 심어놓으면 수형도 단정하고 아름다워. 진딧물은 담뱃진만 두어 번 뿌려줘도 없어질 거고. 그토록 크고 아름다운 꽃을 그토록 오랫동안 피우는데 거름도 한두 차례 해줘야 할 것 아니요. 내버려둬 놓고 성질이 나쁘다고 비웃기나 해서 되겠소. 우리는 신라 때부터 외국에 보낸 국서에 근화향이라고 써서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숭상했어요. 4000년 전 ‘산해경’에도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 의관을 정제히 하고 짐승을 먹이며 호랑이를 곁에 두고 부리며 다투기를 싫어하는 겸허의 덕성이 있다, 그 땅에는 무궁화라는 꽃이 많아 아침에 피고 저녁에 시든다고 기록되어 있거든.”
‘참나무가 진짜 나무’
▼ 민족성이나 지역의 기질이 식생에 따라 달라진다는 게 근거가 있는 소립니까?
“사람도 자연이니까! 인간성을 이루는 실체가 바로 자연 아니겠소? 그 땅에 자라는 식물은 은근하고 줄기차게 사람의 기질을 간섭하거든. 우리가 본디 이화세계(理化世界)와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이념으로 하는 순후하고 예의 바른 민족이란 건 이 땅에 자라는 나무들 때문이오. 우리 땅엔 예로부터 참나무가 자라왔거든. 참나무는 ‘진짜 나무’야. 진짜 인간, 진인(眞人)을 기르는 나무! 그런데 언제부턴가 참나무를 잡목 취급하면서 마구 베어내고 있거든. 우리 땅에 외래산 속성수가 판을 치고 지자체의 과반수가 상징 식물을 외래 도입종으로 정해놓고. 그 통에 사람도 양은냄비같이 조갈증후군에 걸려버렸어. 그런데 그걸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어. 내가 정말 분통이 터져서 원! 대구에는 길가에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한다고 개잎갈나무(히말라야 시다)를 잔뜩 심어놨어. ‘개’자 든 것치고 옳은 게 없거든. 그게 어릴 때는 좋지만 밑뿌리가 약해서 나이 많아지면 쉽게 넘어간다고! 수차 경고해도 듣지 않더니, 지난 태풍 매미가 왔을 때 4000여 그루가 한꺼번에 쓰러졌잖아.”
▼ 참나무 이야기를 좀 더! 저도 여태 참나무가 잡목인 줄만 알았어요.
“참나무는 동서를 막론하고 ‘정말’ ‘진짜’ 좋은 나무(fine tree)거든. 학명인 라틴어 Quercus의 ‘Quer’가 좋다는 뜻의 ‘fine’이란 켈트어라오. 오랜 옛날부터 참나무는 나무 중의 진짜였다는 거요. 독일에선 일반 나무는 110살에 베어도 참나무만은 230년 이상 돼야 베도록 법령으로 못을 박아뒀어. 참나무 한 그루가 벤츠 승용차 한 대 값이래요. 그렇지만 경제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게르만 민족성을 위대하게 가꾸기 위해 참나무(oak)를 소중히 가꾸는 거지. 그런데 우리에게 참나무는 잡목이야. 잡목이란 싸구려니 푸대접해도 괜찮다는 거잖아? 우리 산에 그 흔하던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가 다 참나무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것들을 쓱싹 잘라버리고 그 자리에 낯선 외래종 수목들을 심거든. 해마다 큰 경비를 들여 인공식재를 하고 있다고! 다행히 다람쥐가 여기저기 옮겨줘서 참나무는 저절로 번식을 하지. 참깨, 참나물, 참꽃, 참나리, 참당귀, 참마, 참빗살나무, 참중나무, 참느릅나무 같은 참자 붙은 식물들은 모두 인간에게 아주 유익한 것들이거든.”
‘영특하지 못한 임업 정책’
▼ 세상에 그때 행정학 공부하셔서 산림청장 하시지, 그랬으면 우리 삼림이 좀 달라졌을 텐데요.
“하하. 국운도 사람의 운명도 정해져 있지. 나는 요즘 ‘세상사 분기정인데 부생공자망(世上事 分己定 浮生空自忙)’이란 명심보감의 말이 좋아. 세상만사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뜬구름 같은 인생들이 공연히 바쁘게 설쳐댄다는 게 맞는 소리거든. 산림과 국운 사이에 묘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걸 아시오?”
▼ 산림이 무성하면 나라가 흥하고 그 반대면 나라가 쇠한다?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산야에 참나무가 거덜나면 어김없이 나라가 망한다는 거요. 산사태가 일어나 하천이 범람하고 흉년이 겹치는 게 흡사 하늘이 짜놓은 각본 같다는 거지. 그렇게 황폐해진 산야엔 솔씨가 자라거든. 솔은 무성한 산림 속에서는 결코 싹을 틔우질 못해. 초기엔 소나무숲이 주종을 이루다가 나라의 틀이 잡히면 혼효림이 됐다가 전성기에 들면 참나무림이 주종을 이루는 변천을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해 왔다는 거거든.”
▼ 세상에! 소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나무인 줄 알았는데?
“물론 아름답지. 그러나 솔은 소규모로 무더기 지어 있어야 해. 전체 산에 덮여선 못써. 솔은 성품이 고고하나 어질지를 못하거든. 그늘 짙은 솔숲엔 다른 식물이 자라질 못하잖소. 산을 온통 소나무 단순림으로 뒤덮는 임업정책은 영특한 게 아니오!”
우리나라는 산림녹화에 성공한 곳으로 세계가 주목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란 말인가!
“아카시, 포플러 같은 외래종 속성수가 대부분이었지. 일본산 낙엽송이며 리기다 같은 것들만 무척 심었고! 참나무 낙엽이 차곡차곡 쌓이면 무수한 작은 댐이 생기는 효과가 있소. 소나무 같은 칩엽수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높은 흡수력의 스펀지 구조물 저수지가 생기는 거지. 수년 전 포항지역은 태풍으로 엄청난 재산피해를 보았어. 팔팔한 고등학생이 둘이나 물에 휩쓸려가고. 그게 300~400헥타르 규모의 산에 자생하던 참나무림을 펄프공장에 팔아서 싹쓸이로 베어낸 탓이거든. 그래놓고도 피해액이 목재 판매액의 1000배도 넘는다는 것을 실감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 우리 산을 참나무가 주종이 되게 만들어야 해요. 참나무는 목재도 최고급이지만 산에 섰을 때도 타 수종보다 월등히 가치가 높아요.
뿌리가 깊고 튼튼해 토양을 개선하고 높이 솟아도 쓰러지지 않고 낙엽이 많아 거름 효과가 크고 퇴적층이 많아 하천 범람과 물 고갈을 막거든. 산의 수종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땅 위에 맴도는 구름의 종류가 달라져! 골짜기가 흘러드는 하천의 물고기 종류도 달라져. 참나무 퇴적물은 유기물이 풍부해서 계곡이 흘러드는 강 유역을 살찌우고 플랑크톤의 발생을 촉진해 풍어를 유도하거든. 단풍과 낙엽의 빛깔은 또 얼마나 좋아?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푸근하게 만드는 게 참나무 잎이잖소?”
아름다운 학교숲 1위
▼ 너무 평범해 보여서 가치를 몰랐어요.
“베를린 올림픽 때 히틀러가 손기정에게 씌워준 것도 참나무잎 관이었어요. 그리스에선 월계관을 씌우지만 독일에선 월계수가 자라지 않거든. 독일인은 참나무를 신성시해. 키가 백척이요, 둘레가 두 아름이 넘는 200년 넘은 참나무들로 이뤄진 숲을 자랑하는 독일과 이제 겨우 20년 자란, 홍두깨만한 참나무를 베어내서 종이로 소모해버리는 나라의 차이를 생각해보오. 시골 늙은이 말이라고 다들 우습게 여기지. 참나무가 홀대당하면 진인(眞人)도 진인 대접을 받을 수가 없게 돼. 나라 안에 참나무가 많아야 진인을 중심으로 순후하고 진솔한 시류가 흐르게 된다오.”
그는 지금 청하중학교 재단 이사장이다. 식물원 바로 앞, 솔숲에 빙 둘러싸인 학교엘 가봤다. 소나무뿐 아니라 느티나무, 산벚나무, 팽나무, 매실나무 같은 노거수들이 학교 안에 즐비하다. 아니 학교 자체가 식물원이다. 아름다운 학교숲 1위에 뽑힌 적도 있다 한다. 청하중 학생들은 입학할 때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아도 졸업할 땐 경북도내 최상위권이 된다고 한다.
“인간의 사고와 의식에서 자연이 사라지는 현상을 생태맹(生態盲)이라고 불러요. 자연의 언어를 해득할 줄 모르는 학생들은 생명에 대한 호기심이나 경외감을 가질 수가 없소. 나무를 보고 같은 생명체로서 동질감과 존중을 기르는 게 교육의 본질인 거지. 학교는 학생들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주 활동공간이거든. 학교 조경은 자라는 아이들의 성향을 결정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 그곳이 삭막하고 비자연적이면 생태맹을 양산할 수밖에 없어. 불필요한 과열경쟁, 무원칙한 집단주의, 조화를 거부하는 이기주의, 공생을 거부하는 독점, 그런 걸로 가득 찬 학생들을 길러서야 쓰겠어? 과학실, 음악실, 미술실만큼 필요한 것이 자연학습장이야. 나무가 보여주는 사철의 변화를 응시하기만 해도 그게 훌륭한 교과서지. 아마 우리 청하중 학생들은 미래에 훌륭한 리더가 될 거요. 따로 가르친 게 아니라 학교 안의 노거수들과 송림을 보면서 절로 배우는 거지.”
아촌은 모든 물질은 곁에 있을 때 서로 닮아간다고 말했다. 상징화목과 학교조경이 중요한 것도 그래서란다. 아카시 곁에선 아카시의 성질을 닮고, 느티나무 곁에선 느티나무의 질을 닮고!
“우리 몸 안의 액체가 그런 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식물이 감정을 가진다는 건 이제 여러 테스트로 증명이 됐질 않소? 노래하는 김도향도 그런 연구를 하는 것 같데. 톱을 들고 베려고 했더니 나무가 그리는 파장이 확연히 달라지던 걸. 나쁜 소리를 하면 식물들에게 그 파장이 민감하게 전달돼. 식물이 그러한데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어. 나는 정 남을 욕할 일이 생기면 쌍욕 대신 내 나름의 욕을 만들어서 써!”
▼ 한번 욕해 보세요.
“말 오줌에 밥 말아먹을 놈. 하하.”
지금 기청산에서 일하는 사람은 열여섯쯤 된다. 농대 임업과 후배인 사위 강기호씨가 생태조경연구소 일을 맡고 있고 젊은 후배 이동고씨는 교육부장으로 식물원을 안내하고 설명하는 일을 맡고 있다. 운영은 잘되는 걸까.
“한 해 인건비만 3억원 넘게 드는데 입장료 수입은 1억원 정도지. 나무를 팔기도 하고 조경 컨설팅도 해서 나머지 비용을 감당하긴 하지만 늘 빠듯해. 그걸 때우려고 내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잠 적게 자고 일하는 거지. 농지는 융자를 안 해줘서 그게 제일 큰 고민이오.”
나무 기르기는 전쟁
그는 새벽시간을 사랑한다. 기청산 식구들에게도 늘 태양보다 늦게 일어나지 말라고 가르친다.
“새벽은 어둠에서 밝음으로 전환되는 시간이거든. 불행에서 행복으로 넘어오는 시간이지. 이때는 기도도 달라지고 착상도 달라져. 남들은 나를 신선 같다고 말하지만 농업은 전쟁과도 같아. 일꾼을 시켜놓고 뒷짐지고 서 있어서는 죽도 밥도 안 돼. 같이 뛰어들어 땀에 젖게 일해야지. 내가 지금 일흔이 넘었어도 일을 할 땐 비호 같지. 굴삭기도 몰고, 트레일러로 땅을 파고. 정치도 행정도 마찬가지거든. 우두머리가 현장에 나가야지 탁상공론을 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되는 거라고! 독가촌에 오래 살아 그런지 난 평생 수잠을 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서 일을 하지. 대신 낮잠을 달게 자는 편이야. 난 그게 좋아.”
식물원 관찰로 숲길에는 여러 편의 시가 걸려 있었다. 시무나무 아래는 김삿갓의 시 ‘二十樹下(시무나무 아래) 三十客(서러운 객이) 四十家中(망할놈의 집에서) 五十食(쉰밥을 먹노라)’가 붙어 있었다. 김삿갓의 위트를 가져온 것은 그의 도저한 유머가 아니랴. 아촌 또한 시인이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아름답고 뜨거운 에세이를 쓴다. 그가 쓴 ‘한 농부가 바라본 얄궂은 세상’이란 책에는 내가 탄복하며 그은 밑줄이 봄날 산에 피는 참꽃처럼 온통 불그죽죽하다. 향토역사의 현장과 노거수가 뿌리내린 곳을 종횡무진 발로 뛰어다녔으니 할 말은 봇물 같고 산야에 뿌리박고 우주를 호흡하는 거목의 노기와 사랑에 감염됐으니 억누른 분노와 애정 또한 활화산 같다. 그래서 그의 글은 이 땅 산천초목과 순박한 사람들에 대한 격정으로 사무치기 일쑤다. 흡사 김삿갓처럼!
요즘 그의 큰 낙은 해질 때 막걸리 한 초롱을 데워 마시면서 노을지는 나무들을 내다보는 것이다. 나무들도 아촌만큼 음악을 좋아하니까!
“오늘처럼 말벗이 곁에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지. 난 이 세상에서 사랑한 것이 정말 많았어. 미워한 것도 많았지만 사랑한 것이 수백 배 많지!”
수천그루 나무 속에서도 아촌은 조금 적막해 보인다. 하긴 적막이야말로 노거수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거목으로 자랄수록 나무는 더욱 고독해진다. 괜히 눈시울이 뜨뜻해져 부러 농담을 던진다.
▼ 하하, 전쟁하는 신선이로군요. 세상사 달관한 게 아니라 가슴속에 산천초목에 대한 사랑이 들끓는 현역 신선!
“옳아. 예까지 오는데 희비쌍곡선이 유별났지. 신선도를 보면 신선들이 대개 대머리잖소? 그 이유가 나처럼 이런저런 걱정이 너무 많아서, 속이 썩어서, 열에 받혀서 그럴 거라고 믿어. 속이 썩어서 머리칼이 다 빠져야 비로소 신선 자격이 생기는 게지, 하하.”
아닌 게 아니라 그에게선 슬쩍 기인 기질이 엿보인다. 예민한 오관이 우주만물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고 잠재된 예술혼이 덤덤하고 얼빠진 삶을 견딜 수 없게 했으리라. 그리고 아마도 그런 기질이 현재의 기청산을 이루게 했을 거다.
이튿날 새벽 어스름, 과연 귓가에 가득 우짖는 새소리를 들었다. ‘귀조경이 으뜸’이라던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만했다. 아촌이 거처하는 방엔 막내아들에게 유난히 인색했다던 선친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선대가 일군 학교와 농장은 우여곡절 끝에 이제 그 막내아들에게 와 있다. 우람한 숲과 더불어! 그는 매일 그 사진 앞에서 공들여 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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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느님도 믿고 부처님도 흠모해. 그러나 나무말고는 따로 모시는 신이 없어. 허공에 대고 절하기도 멋쩍으니까 아버지께 절을 올리는 거라오. 108배를 할 적도 있지만 주로 36배를 하지. 하하. 저 사진이 일흔 무렵이시니 딱 지금 내 나이지. 우리 아버지하고 나하고 누가 더 젊은 것 같소?”
대답하기 어렵다. 사진 속 아촌의 선친은 눈에 소년 같은 우수가 어렸고 눈앞의 아촌은 소녀처럼 홍조를 띠고 있는데 내 어찌 한 분을 짚어낼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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