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잘난 매화냐
매화가지에 달 걸렸다. 달빛 내린 매화가 희여검검하다. 구새 먹은 몸통은 가운데가 쩍 갈라졌고, 긴 가지는 구불구불 벋나갔다. 사람 눈 홀리는 매화 시늉은 두 종류다. 외가지 꼿꼿이 치켜든 일지매-딴 마음 품지 않는 지조가 하늘을 찌른다. 잔가지 드레드레 늘어진 도수매(倒垂梅)-반가 규수가 입은 스란치마 끝단마냥 살랑거린다.
이 매화는 꼬락서니 촌스럽다. 뒤틀리고 구저분한 모양새가 처신사납다. 그린 이야 좀 날린 화가가 아니다. 조선의 화성(畵聖) 정선 앞에서 붓을 다잡았다는 현재 심사정이다. 꽃나무를 그리면 벌 나비가 꾀일 정도로 능란했던 그다. 지조는커녕 교태마저 저버린 이 매화는 화가의 어수룩한 붓장난일까.
옛 사람의 입방아는 매화 앞에서 수선스럽다. ‘얼음 같은 살결, 옥 같은 뼈대’란다. 어떤 이는 매화와 달과 미인이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다며 요란을 떤다. 대나무는 달그림자로 보고 미인은 주렴 사이로 봐야 하는데, 매화는 어느 틈으로 볼지 몰라 안달하는 문인도 있다. 그 잘난 매화 타령을 모으면 장강대하가 넘친다.
지금 남도로 가면 홍매, 백매, 청매 흐드러져 꽃멀미 난다. 모두들 은은한 향기를 탐내고, 차가운 미색을 반기고, 고고한 기품을 따진다. 궁벽한 시골 허름한 담장 위로 잘나지도 않은 낯짝을 들이민 심사정의 밤 매화가 큰 소리로 외친다. “나도 매화!”
외할머니의 외할아버지
옛날 인장이다. 그림 대신 웬 인장을 들고 나왔나 하는 분도 있겠다. 예부터 시서화에 두루 솜씨 있는 사람을 ‘삼절’이라 했다. ‘사절’은 ‘인(印)’을 넣어, ‘시서화인’이다. 그림은 높이 치고 도장 파는 일을 하찮게 보면 윤똑똑이 소리 듣는다. 돌이나 나무에 글 그림을 새기는 전각은 어엿한 예술이다.
전각의 새김질은 두 가지다. 붉은 글씨의 돋을새김과 흰 글씨의 오목새김이 있다. 지금 보이는 것은 ‘주문방인(朱文方印)’이다. 붉은 글씨에 네모난 도장이란 뜻이다. 흔히 이름은 백문(白文), 호는 주문으로 새긴다. 이 인장은 아호인(雅號印)일 텐데, 무슨 호가 이토록 길다는 말인가.
해석부터 해보자. ‘청송 심씨, 덕수 이씨, 광산 김씨, 은진 송씨, 해평 윤씨, 연안 이씨, 남양 홍씨, 안동 권씨가 오로지 조선의 큰 성씨이다. 나의 내외가(內外家) 팔고조(八高祖)가 여기서 나왔다.’ 호가 아니라 집안 성씨를 밝힌 인장이다. 이를테면 ‘인장에 새긴 가계도’라 할까. 여기 여덟 성씨에 드는 독자는 반갑겠다.
가문의 내력을 엉뚱스레 인장에 새긴 이는 누군가. 18세기 문인 심사검이다. 그는 잘난 성씨를 뻐기려고 인장을 만들었을까. 천만에, ‘팔고조’를 추념하기 위해서다. 조선에서 양반 축에 들려면 여덟 분의 고조까지 올라가는 가계를 욀 줄 알아야 했다. 조부의 조부 외조부, 조모의 조부 외조부, 외조부의 조부 외조부, 외조모의 조부 외조부가 팔고조인데, 부모까지 합쳐 서른 분이다. 손꼽기도 벅찬 조상들을 옛 어르신은 아랫대에 조곤조곤 일러주셨다.
게걸음이 흉하다고?
봄동이 언제 맛있느냐고 물었더니 시골사람 왈, “동백꽃 필 때지” 한다. 꽃게 철이 언제냐고 미식가에게 물었더니, “모란꽃 피었다 질 무렵이 절정”이라고 한다. 이토록 맛있게 대답하는 이는 여간내기가 아니다. 동백꽃, 모란꽃의 붉은 아름다움이 곧장 혓바닥에 들어오니까.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게는 꽃게가 아니다. 갈대밭에 있으니 참게나 말똥게쯤 될까. 게 맛은 갈대 피는 철과 무관하다. 그럼, 게가 갈대꽃을 꽉 물고 있는 그림은 무슨 뜻일까. 갈대 ‘로(蘆)’ 자는 말 전할 ‘려(月盧)’ 자와 발음이 비슷하다. ‘려’ 자가 들어간 단어에 ‘여전(月盧傳)’이 있는데, 이름이 불린 과거 급제자가 임금을 알현한다는 뜻이다. 게의 껍질은 ‘갑(甲)’이라는 글자여서 ‘일등’과 통한다.
풀이하자면 장원급제해서 임금을 뵈라는 기원이 이 그림에 숨어 있다. 단원은 거기서 한술 더 뜬다. 그림에 써넣기를, ‘바다 용왕이 있는 곳에서도 옆걸음친다’고 했다. 이 말이 무섭다. 게걸음은 옆걸음이다. 조정에 불려가더라도 “그럽죠, 그럽죠” 하지 말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행세하라는 주문이다. 게의 별명이 ‘횡행개사(橫行介士)’다. ‘옆걸음 치면서 기개 있는 선비’란 말이다.
모두 ‘예스’라고 할 때 혼자 ‘노’라고 말하는 야무짐이 벼슬하는 자의 기개다. 게가 맛있는 철이 돌아온다. 관리들이여, 게살만 발라먹지 말고 게의 걸음걸이도 떠올릴지어다.
저 매는 잊지 않으리
원 세조 쿠빌라이는 매 사냥을 즐겼다. 사냥 길에 7만 명을 동원했다고 마르코 폴로가 증언했다. 그 호들갑에 고려왕조가 시달렸다. 원나라에 사냥 매인 해동청을 바치려고 온 산야를 뒤졌다. 조선의 매 사냥도 성했다. 나라님이 화원들에게 전국의 매를 그리게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선 후기 화원인 정홍래는 매 그림에 능란했다. 그는 우뚝한 바위에 앉은 바다의 매를 여러 점 그려 조정에 올렸다. 놀치는 물보라 위로 댕댕한 바위 솟구쳤는데, 열보라 한 마리가 고개를 외로 꼰 채 응시한다. 깃을 펼치면 구름 낀 하늘이 가깝고, 눈을 굴리면 참새가 사라진다는 그 매다. 앙다문 부리와 부둥킨 발톱이 냉갈령이라 이글거리는 해가 무색하다.
그림의 배경이 어딜까. 다들 동해 일출을 그렸다고 말한다. 그런가. 조선의 매는 해안 절벽에 둥지를 트는 텃새다. 옛 기록을 보면, 해주목(牧)과 백령진(鎭)에 서식하는 매를 으뜸으로 쳤다. ‘흰 깃털의 섬’이 백령도다. 백령도의 매! 서쪽 바다를 물들이는 비장한 일몰, 들끓으며 뒤척이는 너울성 파도, 용맹 담대한 기상을 자랑하는 매…. 이 매가 누구의 화신인가.
백령도 앞바다가 통곡한다. 홀연히 서해로 날아든 매. 못다 핀 임들의 꿈을 저 매인들 차마 잊겠는가.
문벌 자랑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조선을 ‘네트워크 사회’라 한다. 선조들은 가문의 그물코를 넘나들며 문안 여쭙고 마음에 뫼셨다.
요즘 고조부의 함자를 잊은 작자도 있다. 그런 반거들충이들이 희한하게도 친이계, 친박계, 친노계는 주르륵 꿴다. 괘꽝스런 일이다.
선비 집안의 인테리어
선비의 망중한을 그린 작품이다. 온갖 물건을 바닥에 늘어놓은 선비가 비파를 뜯는다. 볼 사람, 들을 사람 없으니 버선을 벗어던진 맨발차림이 좋이 홀가분하다. 단원 김홍도는 그림 속에 선비의 심사를 써놓았다. ‘종이로 창을 내고 흙으로 벽을 발라 한평생 베옷 입어도 그 속에서 노래하고 읊조리리’
가난이 가깝고 벼슬이 멀지만 시 짓고 노래하는 풍류야 오롯이 내 몫이다. ‘논어’도 맞장구친다. ‘거친 밥 먹고 물 마시며 팔 구부려 베게 삼아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지 아니한가.’ 맘 내키면 움막도 보금자리요, 흥 돋으면 바람 소리가 콧노래로 들린다. 이것이 도(道)에 뜻을 두고 예(藝)에서 노니는 경지다.
선비의 인테리어를 구경해보자. 파초 잎은 색상과 생김새가 시원해서 장식용이다. 붓과 벼루, 책 꾸러미와 종이 뭉치는 문자속 깊은 이의 벗이다. 도자기 병에 꽂힌 영지버섯은 불로장생을 뜻하고, 발치에 놓인 생황은 봉황을 본뜬 악기다. 칼은 지혜와 벽사의 상징이고, 호리병은 육체를 떠난 정신의 자유로움을 나타내는 신선의 휴대품이다. 구슬픈 비파 소리는 청렴을 일깨운다고 했다.
옛 선비는 비싼 돈 안 들이고 잘 놀았다. 청풍명월은 값이 없고, 풍류는 돈으로 못 산다. 멋 부리기는 하기 나름이니 빈 주머니 탓할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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