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지평선, 그리고 낙조
미적 체험 조건인 지리적 거리두기를 갯벌이 담당
다대포는 낙동강이 드디어 바다에 몸을 푸는 곳에 있는 작은 포구다. 나는 이 포구에서 서쪽 하늘을 발갛게 물들일 노을을 볼 것이다.
월 초의 다대포 바다는 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내륙 깊숙한 곳에서 새어나온 강물은 긴 여정의 마지막 무렵에 와서는 아주 천천히 바닷물과 몸을 섞고 있었다. 모래가 끝난 부분에서 갯벌이 저 멀리까지 펼쳐졌다. 늦은 오후, 어슷하게 조사(照査)하는 태양광이 그 갯벌 위에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서쪽 하늘에 떠 있던 태양은 고도를 갑자기 낮추고 있었다. 태양이 지평선에 가까이 다가서면서 그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해는 곧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질 것이다. 지평선으로 다가가면 그 뒤에 숨어 있는 해를 볼 수 있을까.
한 가운데까지 한참이나 서려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문득 지난해 봄, 땅끝 마을을 찾았을 때가 떠올랐다. 동쪽에서 서쪽의 끝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은 생각보다 지루했다. 늦은 오후에야 겨우 해남을 지났다. 강진의 평야를 지나 서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 서쪽 산마루에 걸려 있는 해를 보게 되었다. 석양이다. 하지만, 발갛게 홍조를 띠고 있던 해는 순식간에 산 뒤로 숨어버렸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를 태운 차가 그 산마루에 걸린 고개를 넘어서자 거기에는 아까 산 너머로 숨어버린 해가 다시 먼 산 위에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때부터 땅끝 마을로 향하는 우리와 해는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처럼 달아나고 그 뒤를 쫓는 격이 되었다. 우리가 있는 이 곳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산 뒤로 해가 넘어가자 우리는 차를 달려 다시 그 산마루로 쫓아갔고, 하지만 이미 그 해는 우리가 달려온 것보다 더 멀리 있는 지평선으로 달아나는 식이었다.
우리는 그 날 지는 해를 몇 번이고 보았다. 어린 왕자처럼 석양을 쫓는 이 놀이는 이윽고 해가 땅끝 마을 앞으로 펼쳐지는 바다 저 멀리로 넘어가서야 끝났다.
지평선 바깥으로 사라지는 해
해가 고도를 낮추고 서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눈에 띄게 붉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갯벌에 고인 물웅덩이가 바람에 일렁이자 그 물위에 비친 석양이 심하게 흔들렸다. 마치 바람결에 나부끼는 붉은 비단 자락처럼 윤기를 내며 일렁이고 있었다. 드디어 서쪽 지평선 가까이에 있는 해는 백색광을 잃어버리고 황색으로 변해갔다.
‘우리는 영원히 지평선을 넘을 수 없다.’
오토 프리드리히 볼로(Otto Friedrich Bollow)의 《인간과 공간(Mensch und Raum)》에서 이 글을 읽었을 때는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땅끝 마을로 가면서 서쪽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지던 해를 쫓아가던 그 때 비로소 이 말의 의미를 납득했다. 지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앞에는 여전히 지평선이 그만큼 더 멀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평선은 무엇인가. 지리학자들은 ‘천공(天空)이 대지에 접하고 있는 곳을 상정하는 선’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를 부연하면 이렇다. 대지는 나를 중심으로 동심원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나를 덮고 있는 하늘은 투명한 천구(天球)로 지각된다. 그 투명한 면이 대지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 지평선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공을 반으로 자른 절단면과 같은 대지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으로, 그 대지 위는 투명한 반구(半球)의 천구(天球)가 뒤덮고 있는 것으로 지각한다.
그런데 내가 움직이면 이 천구와 대지도 따라 움직여, 언제나 나를 이 대지의 중심에 두게 한다. 내가 천구의 가장자리인 지평선에 가까이 가는 것은 그래서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절망감은 오히려 다행한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이 대지 속에 들어 있게 되기 때문이다. 지평선에 떨어지는 해를 보는 석양 풍경의 감상이란 이와 같이 아늑한 내부 공간에서 그 외부로 사라지는 해를 보는 것이다.
서쪽 하늘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석양은 지평선으로 다가가면서 선홍색을 띠고 있었다. 녹산 방면의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이 발그레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석양은
아아,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녹산벌 뒤에 실루엣으로 서 있는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어처구니없게 훌쩍 넘어갈 때도 있지만 오늘은 달랐다. 가쁜 숨을 몰아쉬듯 힘들게 넘어가고 있었다. 서쪽 하늘에 간간이 떠 있는 구름의 왼쪽 뺨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해는 계절에 따라 그 낙일(落日)의 지점을 조금씩 바꾼다. 하지 무렵에 가장 서쪽으로 지는 해는 그 때부터 조금씩 남쪽으로 낙일 지점을 바꾸어 드디어 동지 무렵에는 거의 남서쪽에 가까운 지평선으로 몸을 숙인다. 나는 다대포에서 보는 석양이 언제나 아름답지만, 굳이 그 우열을 따지자면 여름 무렵 김해 평야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을 넘는 해보다는 갯벌 저 너머에 어렴풋이 서 있는 녹산의 낮은 산을 넘어가는, 동지를 얼마 남기지 않는 12월 중순 무렵의 석양이 더 좋다.
해가 먼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이 곳에서 가장 먼 곳으로 해는 넘어가고 있었다. 해가 넘어가고 있는 그 곳이 바로 지평선이 있는 곳이다. 가장 먼 곳이다. 해가 넘어 가는 이 광경이 아름다운 이유를 미학적으로 말하면 ‘대상을 거리를 두고 보기‘라고 하는 미적 체험의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풍경을 맹목적으로 미화하는 시간적인 거리나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두고 온 산하를 그리워하는 심리적인 거리도 풍경을 미적으로 체험하도록 부추기지만, 조망 대상을 멀리 떼어놓고 바라보는 지리적인 ’거리 두기’도 미적 체험의 필수 조건이다.
그래서 눈앞의 산마루나 건물 뒤로 꼴딱하고 넘어가는 석양보다는 전경(前景)에 갯벌이나 들이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 곳에서 저 멀리 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는 것이 더 아름답다. 어느 석양인들 아름답지 않으랴마는 내가 특히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보는 이 석양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도 갯벌과 넓은 하구에 고요히 흐르는 강물이 끝간데 없이 펼쳐지는 풍경이 멀리 사라지는 석양을 넉넉히 관조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는 해와의 거리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약간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편이 더 낫다. 다대포 해수욕장을 남쪽으로 감싸안고 있는 몰운대(沒雲臺)나 해변에 가까이 다가서 있는 고층 주택에서 보는 낙조가 각별히 인상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자연미
산 너머로 해가 넘어가 버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늘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서쪽 산언저리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하늘 한복판은 푸른색을 띠고 있지만 지평선 가까운 곳의 하늘은 선연한 붉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랬듯이 노을은 눈부신 햇살을 거느리던 해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깊숙한 곳에서부터 타는 불이 은근히 배어 나오듯이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동쪽 하늘이 어두워진 후에도 서쪽 하늘을 자주색으로 물들이며 오래도록 미련처럼 남아 있는 태양의 잔영을 보는 것은 죽은 자의 추억처럼 애틋하고 또 허망하다.
노을에 누구나가 가슴 저미는 애틋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죽는다고 하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자명한 사실을 각성하기 때문이 아닐까. 태어나고 성장하고 허물어지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소멸하는 것은 자연계에 속한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자연스러움을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것이 자연미의 미적 태도라고 한다면 노을이야말로 자연미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난 후 다대포 서쪽 하늘은 선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나를 잊지마. 나를 잊지마. 이렇게 말하듯이 붉은 노을이 하늘 한 가운데까지 한참이나 서려 있었다.
ㆍ기고자 :강영조 동아대학교 도시계획·조경학부 교수 yjkang@mail.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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