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길인 데다 걷기 힘든 돌바닥 길이어서 맨발이 아니라 신발을 신고 걷고 있는 중이다.
그들이 염려하는 건 위험 때문이다. 맨발로 산을 걷는 것은 생각해보면 위험하다. 날카로운 돌부리에 찍혀 상처가 날 수도 있고 가시덤불에 긁혀 피가 흐를 수도 있고 뱀에게 물려 치명상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은 스스로 그 위험을 용케 피해서 잘 다치지 않는다.
맨발 산행이 위험을 안고 있음에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대지의 살과 자신의 살을 직접 부비기 때문이다. 대지가 간직한 부드러움 혹은 딱딱함을 발바닥으로 느끼며 걸을 수가 있다. 발바닥 지압으로 인해 가져오는 건강은 부차적인 수확이다. 맨발로 걸어보고도 그 느낌을 설명하기 어려운 길은 진흙길이었다. 늪지대를 통과할 때 발가락 사이로 전해오는 진흙의 부드러움은 전신에 쾌감을 준다. 이런 맛에 맨발 산행을 한다.
맨발로 산길을 걸으니 산이 좋아 한다
살과 살을 맞대니 흙이 좋아 한다
온몸이 열려 길이 스스로 밝아진다
황홀한 오감의 축제가 펼쳐진다
잠 든 풀과 나무들이 깨지 않게
소리 내지 않고 맨발로 산길을 가니
작고 못난 돌맹이까지 발가락 간질이며
함께 사랑하자 한다
맨발 산행은 오르막이나 능선길에서 한두 시간 정도 하는 것이 좋다. 너무 오래하면 체력에 무리가 오고 긴장감이 지속되어 오히려 정신이 날카로워 질 수도 있다. 초보자는 길게 이어지는 내리막이나 하산길에서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산길은 지쳐있게 마련이고 다리가 풀려 자칫하면 골절이나 뾰족한 돌부리에 발가락을 다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맨발 산행은 사철 언제든지 가능하다. 눈밭을 걸으면 시원함이 온몸을 사로잡는다. 걸을수록 발바닥에서부터 뜨거움이 전달되어 온다. 눈이 가진 차가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끼는 묘미가 있다.
맨발 산행은 익숙한 이들에게는 어떤 산이라도 가능하겠지만 가까운 곳에서 비교적 안전하고 감촉이 좋은 곳으로는 금정산 능선, 성지곡에서 금정산 남문까지, 신불산에서 영취산 가는 길, 재약산 사자봉에서 능동산에 이르는 길, 천성산, 그리고 지리산 정령치에서 바래봉가는 능선길 등 많다.
문제는 첫발을 내딛는 용기다. 맨발 산행에 대한 방법론도 많이 탐구되었고 안내하는 곳도 많다. 맨발 산행을 알리고 개척한 분 중에 신남석 씨가 있다. 그에 대한 이론과 더불어 널리 퍼뜨려 동호인을 많이 일구어냈다. 그는 양복을 입고 맨발에 구두를 신고 시내를 다닐 정도로 맨발 예찬론자다.
맨발은 고행을 상징한다. 인간의 영혼을 구제한 성인들도 맨발로 걸었다. 에티오피아의 마라토너 아베베도 올림픽에서 우승할 때 맨발이었다. 산에서 맨발은 여유인 동시에 도전이다.
구도자가 아니더라도 산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산과 가져보는 스킨십이 산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고 황홀경에 빠져드는 차원 높은 산행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맨발 산행을 가로막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이 있다면 남들의 시선에 뒤따르는 쑥스러움이다. 시선 의식하지 않고 과감하게 신발을 벗고 발에게도 자유를 주어 행복한 도전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