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仙所傳_유안[劉安]
유안(劉安)은 전한(前漢 : 前179-122년)시대 패군(沛郡), 풍(豊 )사람이다. 현재의 강소성(江蘇省) 풍현(豊縣)이다. 유안은 한 고조 유방(劉邦)의 손자이며 회남(淮南), 여왕 유장(劉長)의 아들이다. 한 문제(漢 文帝) 6년, 유장이 모반을 모의하고 나라의 법령을 지키지 않아 죄를 받고 촉군(蜀郡), 엄도 땅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로 가는 도중에 음식을 먹지 않아 굶어 죽었다.
유장이 죽은 지 2년이 지나자, 한 문제는 유장의 네 아들을 제후로 봉했다. 이때 유안은 부릉후(阜陵侯)로 봉해졌다. 문제 16년(前 164)에 문제는 유장이 나라를 잃고 요절한 것을 애통히 여겨 회남국(淮南國)을 3등분하여 유장의 네 아들 중, 요절한 아들 하나를 제외하고 세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유안, 회남왕으로 봉해지다
특히 유안에게는 그 아버지 유장의 작위인 회남왕(淮南王)을 계승하게 했다. 유안은 글 읽기를 좋아하고 거문고를 잘 타며 문장에 뛰어났다. 유안은 회남국에서 널리 손님과 방술가(方術家)들을 초청했는데 천하의 술사들이 잇따라 찾아와, 한창 문전성시를 이룰 때에는 수천 명이 되었다.
유안은 소비(蘇飛), 이상(李尙), 좌오(左吳), 전유(田由), 뇌피(雷被), 모피(毛被), 오피(伍被), 진창(晉昌) 등 여덟 명과 유학자들인 대산(大山), 소산(小山)의 무리들과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내서’(內書: 즉 회남홍렬淮南鴻烈 또는 회남자淮南子라고 부름) 21편을 저술하였다. 외서(外書)는 더욱 많으며 또한 중편 8권이 있다. 그러나 ‘외서’와 ‘중편’은 실전되었으며 지금은 내서(內書)만 남아있다.
당시에는 마침 한 무제(武帝)가 황제자리에 있었다. 무제는 예술과 문학을 즐겨하였다. 무제(武帝)는 그의 숙부이자, 널리 배워 학문이 넓고 분별력이 뛰어나며 재주와 생각이 영민한 유안을 몹시 존중하고 좋아하였다.
한 무제와 고금을 담론하다
유안이 일찍이 한 무제에게 그가 편찬한 내편(內篇)을 헌상하자, 무제는 매우 기뻐하였다. 한번은 무제가 ‘이소전’(離騷傳)을 짓도록 명하자, 유안은 이른 새벽에 명을 받아 아침 먹을 때 쯤 이미 다 지었다고 하였다.
유안이 매번 무제를 알현할 때, 정치의 득실과 방술(方術), 글(賦) 등을 담론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날이 어두워져서야 그만둘 때가 많았다. 그러나 유안은 줄곧 자기 아버지인 ‘유장’이 유배되어 죽은 데 대해 마음속으로 원한을 품고 있었다. 또 무제가 젊었을 때는 자식이 없어서, 무제가 죽은 후에 황제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마천의 사기(史記: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58권)에 따르면 ‘더욱 무기와 공격용 기구를 수리하였고’(愈益治器械攻戰具), ‘군국의 제후와 유사 그리고 기이한 재주를 가진 인재들에게 금전을 모아 뇌물을 보냈다’(積金錢賂遺郡國諸侯游士奇材)고 하였는데 황제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모의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모반 계획이 탄로나 자살하다
기원전 124년, 한 무제는 유안의 수하중 하나인 뇌피(雷被)가 종군해서 흉노족을 토벌하겠다는 것을 유안(劉安)이 가로막았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가 다스리던 두 곳의 현을 빼앗았다. 이에 유안은 위기를 느껴 모반하려는 뜻을 더욱 굳혔다.
밤낮으로 수하인 오피, 좌오 등과 지도를 펴놓고 군사를 일으키려면 어느 지방으로 출병해야 하는지를 점검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들통 나 유안은 원수(元狩)원년(前122년)에 자살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사건과 연루된 사람은 수천 명이 넘었다.
유안은 사실 중국 역사상 특수한 지위에 있었던 중요한 작가였으며, 저명한 편집 주간이었다. 그가 편집을 주간하여 편찬한 ‘회남자’(淮南子)는 내용이 도가 학설을 위주로 하고 유(儒), 법(法), 음양가(陰陽家) 등의 사상들이 망라되어 있으며, 그 소재나 내용이 풍부하고 다채롭다.
이 ‘회남자’ 책속에 있는 여와 이야기, 태양을 활로 쏘아 재앙을 제거하는 이야기, 상아가 달나라로 달아났다는 이야기 등 아름다운 신화 전설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으며, 수많은 신화 자료들이 이 책을 통해 세상에 전해져 내려온다.
죽은 후 신선으로 봉해지다
옛날에 신선을 독실히 믿었던 유명한 사람들은 죽은 후에 신선으로 받들어졌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형태로 신선으로 봉해진 사례가 매우 많았다. 회남왕 유안이 신선으로 된 것은 그의 생전 경력, 저작, 끼친 영향력 등이 남달랐으며, 더욱이 집안에 드나들었던 문객들 중의 많은 방술가(方術家)들과 연관이 있다.
유안에 대한 이러한 신적(神跡) 고사들을 문자로 남겨 놓은 것 중, 잘 알려진 것이 진(晉)나라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이다. 이 신선전의 기록은 유안의 출신, 일생, 대부분의 경력, 저작 등을 묘사하고 있는데 기록 대부분이 사서(史書)와 서로 합치한다.
팔공이 유안을 제도하다
신선전에 실린 주요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문객으로 찾아왔던 팔공(八公)이 유안을 제도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고사이다. 대략 소비(蘇飛), 좌오(左吳) 등 여덟 사람과 유안이 연계되어 변화 발전된 것이며, 부연하여 설명한 것이 매우 생동감 있고 사실 같아 몹시도 흥미롭다.
젊은 시절, 다른 공자나 왕손들이 가무, 여색, 개 사육, 승마, 사냥 등의 잡기에 푹 빠져 있을 때에도, 유안은 유일하게 하잘 것 없는 선비들에게조차 자신의 신분을 낮추어 처신했다. 유학을 독실하게 공부했고, 점술이나 방술(方術)도 깊이 연구했다. 유안은 천하의 뛰어난 인재들을 널리 끌어 모아, 드나드는 문객이 수천에 이르렀다. 유안과 문객들은 황백술(黃白術)인 신선가의 일을 담론하였고, 아울러 이러한 내용들을 모아 책을 만들었다.
각처를 다니면서 도에 관한 서적(道書)을 얻으면 책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방술이 뛰어난 술객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찾아가 공손히 청해 왔다. 유안이 이렇게 하는 것이 소문나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그 당시 살던 사람치고 유안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여덟 노인이 문객으로 찾아오다
어느 날 이른 새벽녘에 노인 여덟 명이 회남왕부에 자진해서 찾아와 대문을 두드리면서 회남왕 유안을 만나겠다고 한다. 문지기가 그들 여덟 명 노인들의 면모를 한 사람씩 살펴보니 다들 늙어서 뼈만 앙상하고 수염과 눈썹이 새하얗게 쇠었다. 문지기는 이런 쓸모없는 늙은이들이 찾아와 귀찮게 한다는 듯한 불만의 표정을 지었다.
문지기는 주인인 회남왕께서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는 여덟 노인들을 문간방 응접실에 잠시 앉아 있도록 하였다. 문지기는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 몰래 회남왕 유안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이 일을 다 듣고 난 유안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문지기에게 “네가 나를 대신해서 여덟 분 노인들과 이야기를 한 번 나누어 보고 그들의 반응을 살펴본 후, 다시 와서 보고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문지기는 여덟 명 노인(팔공:八公)이 앉아 있는 응접실로 돌아와 일부러 친한 것처럼 하면서 말을 건냈다.
장생불로 술을 우선적으로 구하다
“여러 어르신들께서는 일찍이 우리 회남왕을 만나 보신 적이 있습니까?” 팔공이 “아직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하였다. 문지기가 “우리 회남왕께서 한결같이 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팔공이 “모른다”고 답변하였다.
그 말에 문지기는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군요. 우리 회남왕께서는 가장 먼저 장생불로(長生不老)의 도를 구합니다. 그 다음으로 박학다식하고 유학의 깊고 오묘한 이치에 통달한 큰 선비를 구하며, 마지막으로 세발 달린 큰 솥을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세고 용력이 남달라 호랑이와 표범을 대적할 만한 천하장사를 구합니다.
제가 보건대 이곳에 계시는 선생님들께서는 이미 연로하시고, 늙음을 되돌려 젊어지는(返老還童) 비결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으며, 또한 용맹한 장수처럼 뛰어난 무술과 괴력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고시대의 삼황오제에 관한 옛 전적들을 깊이 연구하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문지기인 제가 안으로 들어가 설사 손님이 온 것을 알려도, 우리 회남왕께서는 선생들을 만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였다.
외모만 보고 문전박대를 해서야…
팔공이 문지기의 장광설을 다 듣고 난 후 빙그레 웃으면서 한마디 던졌다.
“우리들은 회남왕이 겸손하면서도 정성이 남다르다고 들었다. 어진 사람을 목마른 듯 사모하고, 한 가지 재주만 있어도 찾아와 몸을 의탁할 수 있다고 했다. 옛날 사람들은 이미 죽은 말의 뼈를 사들여서 천리마를 구한다고 하였다. 우리들이 비록 나이가 많아 기운이 쇠약하고 재주가 못 미치고 배운 학문이 얕아 회남왕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우리들은 성심성의를 다해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찾아왔다.
설사 회남왕에게 유익한 점이 없다 하더라도 해로운 점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이 늙었다고 해서 문전박대 당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만약 회남왕이 나이가 젊으면 곧 도(道)가 있고, 나이가 많은 연로한 사람은 도가 없어 우매하다고 하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돌을 파헤쳐 옥을 캐내는 도리를 알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 다시 말해서 늙은 우리들이 나이가 젊은 어린아이로 변하고자 하면 그것이 무슨 어려운 일이겠는가?” 하였다.
백발 노인들, 팔공(八公)이 십사오세 아이들로 변하다
“늙은 우리들이 젊은이로 변하는 것이 어찌 대단한 일이겠는가!”하는 말이 끝나자마자 팔공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어린아이로 변했다. 많아야 십사오세에 불과하게 보였다. 머리는 새까만 머리칼로 덮여있고, 머리카락은 잘 빗어 묶었고, 얼굴은 복숭아꽃처럼 발그레 하고, 하얀 살 속에서 붉은 빛깔이 배어 나오는 투명한 피부를 하였으며, 천진난만한 표정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문지기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이 광경에 깜짝 놀라면서 두 눈을 비볐다. 마치 꿈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문지기는 얼른 안으로 뛰어 들어가 회남왕에게 보고하였다.
회남왕, 팔공을 스승으로 모시다
회남왕 유안이 이 사실을 듣고는 신도 신지 않고 맨발로 손님들이 거처하는 객청으로 달려가 팔공을 영접하였다. 회남왕 유안은 여덟 늙은이들이 일제히 사선대(思仙臺)에 오르도록 청하였다.
유안은 사선대의 비단 장막을 걷어 올리며 팔공이 상아로 만든 침상과 의자위에 앉도록 하고, 금과 옥으로 만든 소반위에 백가지 향내가 나는 향을 피우고, 정성을 다해 공손하게 제자의 예의를 차렸다. 이에 남쪽을 향해 앉아 있던 팔공이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유안이 팔공에게 “소생 유안은 범속한 재주에 불과하여 밤낮으로 천지신명께 목마른 듯이 기원하였습니다. 이제 신선들(道君)께서 존귀함을 굽혀 이렇게 강림하셨으니 유안은 삼생(三生:과거, 현재, 미래)의 행운입니다. 원컨대 오직 신선들께서 미천한 저를 깨우쳐 주십시오.” 하였다.
유안이 절을 마치고 막 머리를 드는데 조금 전까지 십사오세 동자였던 여덟 명이 갑자기 백발이 성성한 늙은이로 변하였다. 팔공은 유안에게 “우리들은 당신이 어진 이를 예의와 겸손으로 대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는데 당신이 어떤 요구조건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하였다.
이에 유안은 “스승님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유안은 도를 배우기를 원할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팔공의 경천동지할 재주들
그러자 팔공 중에서 서쪽에 앉아 있는 분이 한 사람씩을 가리키며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도술을 하나씩 소개하였다.
일공은 앉아서 비와 바람을 마음대로 부르고, 일어서면 구름과 안개가 일어나며, 땅을 한번 그으면 강과 내를 만들 수도 있고, 한 움큼의 흙을 가지고 능히 산을 이룰 수도 있다.
이공은 높은 산을 무너뜨릴 수도 있고, 깊은 샘물도 막을 수 있으며, 사나운 호랑이와 표범도 부릴 수 있고, 교룡(蛟龍)도 마음대로 하고, 귀신조차도 조종할 수 있다.
삼공은 뜻에 따라 몸을 천만으로 나눌 수 있고, 용모를 마음대로 바꾸고, 맑은 하늘을 깜깜한 밤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수만의 군대도 은신시켜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
사공은 구름을 타고 공중을 밟고 갈 수 있으며, 바다를 뛰어넘고 파도를 마음대로 탈 수 있으며, 숨 한 번 쉬는 찰나지간에 천리 먼 길을 갔다가 되돌아 올 수 있으며, 아무리 앞을 가로막아도 어디든 갈 수 있다.
신선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깊고 깊은 도술을 하나씩 소개해 나가는데 유안은 그 경천동지할 재주들에 대해 망연자실한 채로 그저 듣고 있을 뿐이었다.
몸에 창칼이 들어오지 않다
서쪽에 앉아있던 노인이, 한참 동안 네 명의 신선들이 가지고 있는 경천동지할 술법들을 소개하다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잇는다.
다섯 번째 신선(오공:五公)은 불길 속에 들어가도 불이 범접하지 못하며, 물에 들어가도 물이 몸에 젖지 않으며, 칼과 창으로 찔러도 상해를 입히지 못하고, 엄동설한에도 추위를 모르며, 아무리 무더워도 땀이 나지 않는다.
육공은 천변만화를 마음대로 하고, 마음에 쫒아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바, 산을 옮기고 바닷물을 뒤집을 수 있는 등 못하는 것이 없다.
칠공은 손가락을 돌에 살짝 대어 금을 만들고, 아연을 가지고 은을 만들며, 물을 가지고 팔석(八石: 각종 보석류) 만들기도 하며, 공중으로 높이 날아올라 바람을 타기도 하고, 용을 부리기도 하며, 저 하늘 높은 곳에 있는 선경(仙境)인 태청경(太淸境)까지 왔다 갔다 한다. 유안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는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다.
유안, 팔공을 모시고 2년 반 만에 도를 이루다
이때부터 유안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팔공에게 경건하게 절을 하고, 술과 육포를 올리고 정성스럽게 모셨다.
아울러 팔공 한분 한분에게 세세히 가르침을 청하였으며, 진지하게 훈련을 받았다. 팔공의 뛰어난 술법을 유안은 일일이 몸소 시험하였으며 그 효과가 즉시 나타났다. 마침내 팔공이 가진 천변만화의 술법을 다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자 팔공은 36권으로 된 '옥단경'(玉丹經)을 유안에게 주었다. 유안은 단경에 쓰여 있는 대로 주야로 수련에 힘써 3년이 경과하게 되자 단약(丹藥)을 마침내 연성해냈다.
공교롭게도 이때 유안의 신변에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세자 유천(劉遷)이 검술을 몹시 좋아해서 스스로 천하에 적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한번은 수하인 낭중(郎中) 뇌피(雷被)가 세자와 검술을 겨루면서 장난을 치다가 조심하지 않아 세자에게 상처를 입혔다.
뇌피 등 수하가 유안을 무고하다
세자 유천이 이에 크게 화를 내게 되었고, 뇌피는 이로 인해 세자에게 살해당할까 두려워하여, 흉노족 토벌을 위해 변방으로 가기를 청하였다. 유안은 뇌피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으며, 뇌피는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래서 뇌피는 조정에다 "유안이 자신의 흉노 토벌대 자원을 방해하였다. 그 죄는 마땅히 죽임을 당해야 한다."면서 밀고하였다.
한 무제, 유철은 줄곧 유안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단지 유안에게 봉지 중에서 두 개현을 삭감하는 처벌을 하였을 뿐 이었다.
뇌피는 유안이 자신을 가볍게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오피'(伍被)를 찾아가 한 통속이 되어 암암리에 유안을 해칠 궁리를 하였다. 이때 오피 또한 일찍이 유안에게 죄를 지었는데, 유안은 줄곧 기회가 생기면 오피를 정리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뇌피, 오피 등 두 명은 작당하여 유안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무고하였다. 이에 한 무제는 사건 전모를 파악하기위해 사신을 파견하여 조사처리토록 명령했다.
유안, 마침내 팔공과 함께 승천하다
한 무제는 유안이 모반을 꾸미고 있다는 밀고를 받고 사신을 파견해서 조사하도록 했다. 이 사실을 접하자, 팔공은 회남왕 유안에게 “이제 인간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사실 하늘에서 회남왕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하였다.
그리고 팔공은 유안에게 명산에 올라가 하늘에 큰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땅에다 금을 묻어 의식을 마쳤다. 이제 모든 준비를 끝낸 유안이 단약(丹藥)을 꺼내어 복용하자, 순식간에 온몸이 가벼워졌다. 다리 밑에서 구름과 안개가 서서히 일어나더니 곧 유안을 공중으로 밀어 올리기 시작하였다. 이때 팔공도 함께 산꼭대기에서 바람에 나부끼듯이 날아오른다.
유안과 팔공이 승천했던 이 산을 나중에 ‘팔공산’(八公山)이라고 불렀으며, 승천하던 그 당시의 팔공과 유안의 자취가 선명하게 바위에 모두 남아 있다고 한다. 유안과 팔공은 곧장 승천하여 신선들이 살고 있는 ‘현주’(玄洲)에 도착했다.
유안, 수하들을 불러 신신세계를 유람시키다
현주는 북쪽 바다 가운데 있으며 북방인 술해(戌亥) 방위에 있는 땅이다. 둘레가 칠천이백 리이다. 현주 위에는 도읍인 대현도(大玄都)가 있는데 하늘 궁전인 천궁(天宮)의 서북문이 멀리서 우뚝 바라다 보인다고 한다. 이곳은 삼천군(三天君)이 친히 다스린다.
현주 위에는 각양각색의 풍격을 갖춘 태현선궁(太玄仙宮)과 궁전들이 번화하게 자리 잡았고, 황금과 옥으로 장식한 건축물들과 기화요초들로 인해 모든 곳이 장관이었다. 한 마디로 몹시 장엄하면서 웅장하고도 기묘하였다.
하늘 궁전의 장엄한 모습에 압도당한 유안은 과거 인간세상의 친구들을 이곳에 데려와 한 번 보여주고 싶었다. 팔공에게 친구들을 데려와 구경시켜 줄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보니 좋다고 한다. 그러나 다섯 사람이 넘으면 안 된다고 하였다.
며칠 후, 좌오(左吳) 등 유안의 심복이었던 다섯 명을 ‘현주’로 데려왔다. 유안은 다섯 명을 데리고 하늘나라 선경(仙境)에서 마음껏 유람하였다. 유람을 마친 좌오 등 다섯 명은 다시 인간 세상으로 되돌아갔다.
유안, 속기를 못 버려 ‘떠돌이 신선’(散仙)에 머물다
회남왕 유안은 인간 세상에 있을 때, 줄곧 높은 지위에서 부유한 생활을 누린 사람이다. 하늘 세계인 이곳 ‘현주’에 온 후 많은 선배 신선들을 만났을 때 유안은 상하 존비(尊卑)의 예절을 잘 몰라 거만한 행동을 한다거나 큰 소리로 함부로 떠들었다. 심지어는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인간세상의 속기가 그대로 남아 스스로를, 왕이 자신을 칭하는 ‘과인’(寡人)이라고 하였다.
선배 신선들은 무례한 유안의 행동거지에 화가 나서 대표를 삼천군(三天君)에게 보내 “유안이 크나큰 불경죄를 범했다. 다시 유안을 인간 세상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며 고소장을 제출하였다.
이때 다행스럽게도 팔공이 앞으로 나와 유안을 위해 사과하고 인정에 호소해 처벌만 면해 달라고 사정하여 유안은 비로소 관대한 처분을 받았다. 유안은 무례를 범한 죄로 화장실을 3년간 돌보아야 하는 벌을 받았다.
유안은 벌을 받은 후 떠돌이 신선(散仙)이 되어 불로장생을 하였으나 하늘나라의 직책(天職)은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方外之士' 카테고리의 다른 글
列仙小傳 _소선공[蘇仙公] (0) | 2009.10.12 |
---|---|
列仙小傳_이소군[李少君] (0) | 2009.09.29 |
列仙小傳_마명생[馬明生] (0) | 2009.09.12 |
列仙小傳_약왕[藥王]_손사막[孫思邈] (0) | 2009.09.07 |
列仙小傳_장삼풍[張三豊] (0) | 2009.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