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仙小傳_약왕[藥王]_손사막[孫思邈]
병약함을 이기려고 의술에 심취
중국 우정국에서는 1961년 중국 고대 과학부문에서 공로를 세운 위인들을 기념하는 우표를 발행했다. 그 기념우표 가운데 2매가 醫學家의학가 孫思邈손사막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손사막은 의학, 약학에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백세 이상까지 장수한 사람이다. 四庫全書 總目사고전서 총목 제 103권, 新舊唐書신구당서 및 노조린이 쓴 病梨樹賦병리수부라는 문장 등을 추론해 보면 손사막은 102세까지 살았다.
隋 文帝수 문제 開皇 元年개황 원년(581)에 태어나서 唐 高宗 당 고종 永淳 元年영순 원년(682)에 죽었다. 이렇게 백세 이상 장수한 손사막도 어려서는 오히려 신체가 약하고 병이 많았으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발심하여 의술을 깊이 연구하였다.
손사막은 京兆 華源경조 화원(현재 陝西省 耀縣섬서성 요현)사람이며 배움을 즐겨 나태하지 않았다. 널리 經史경사와 諸子百家제자백가의 학문을 두루 섭렵하였음은 물론 불교경전(佛典불전)에도 통달하였다고 한다.
천금요방을 저술하다
수나라, 당나라 조정에서 일찍이 여러 차례 관직을 내려 불렀으나 핑계를 대고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손사막의 주요 의학저서로는 ‘備急 千金要方’비급 천금요방이 있으며, 간략히 불러 ‘千金要方’천금요방이라고 하는데 모두 30권이다.
그는 사람 목숨은 지극히 중요하기 때문에 천금보다 귀하고, 한번의 처방으로 목숨을 구제할 수 있으므로 그 덕으로 말하자면 천금이 넘는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을 千金천금으로 하였다고 한다. 손사막의 나이 100세 때 또 한번 ‘千金翼方’천금익방 30권을 저술하였는데, ‘천금요방’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부의 저술은 7세기 이전의 중국의학을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新唐書신당서 藝文志예문지에 따르면 손사막의 千金髓方천금수방 20권이 더 있다고 하는데 원래의 저작은 전해지지 않았으며, 조선시대 醫方類聚의방유취라는 의서에 그 중 일부가 남아있다.
기존의 의학을 집대성하다
손사막의 의학저서는 그 내용이 박대정심하고, 의사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醫家의가의 덕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의학과 약학의 각 방면에서 이론과 임상지식이 들어있다. 따라서 후세인들에게 임상의학의 백과전서라는 호칭을 들었다.
손사막은 전 시대의 의학 성과를 연구해서 종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창업정신 또한 풍부하였다. 한마디로 중국 고대의학에 있어서 커다란 혁신과 공적을 남겼다. 손사막은 한나라 시대의 名醫명의 張仲景장중경 학설의 범위를 돌파하였으며 환자를 진단함에 內景내경에 구속받지 않았고, 藥약을 쓰는 데에서는 神農本草신농본초에 구애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합리적인 것들을 흡수하고, 광범위하게 민간의 성과를 거두어 이용하였으며 臨床實驗임상실험을 철저히 하여 혼자 힘으로 의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의료효과는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뛰어났다고 한다
止痛穴지통혈을 찔렀으나 효과가 없어
손사막과 같은 마을에 노인 한 사람이 있었다. 이 노인은 온 몸에 통증이 수일간 계속되어 앉아있기도 어렵고 누워있을 수도 없어서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였다. 한의사를 청해서 치료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의사가 하는 말이 요사한 마귀에게 씌었다고 한다.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였으나 낫기는커녕 통증이 더 심하였다.
마침 공교롭게도 손사막은 외지에 나가 의료 활동을 하고 돌아오고 있었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왕진 부탁을 받았다. 손사막이 환자를 보고 바로 針침을 한 번 놓았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시 한번 고통을 멎게 하는 止痛穴지통혈을 찾아 찔렀으나 환자는 전과 다름없이 통증 때문에 아파하며 움직이지 못했다.
의학서적에 기재되어 있고 또한 자신이 그동안 실행한 의료행위를 통해 입증된 혈도를 찔렀으나 이번에는 효력이 없었다.
아픈 곳을 눌러 穴位혈위를 정하다
손사막은 환자한테 찔러놓은 침을 빼내 닦으면서 정신을 집중해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손사막은 몸을 구부리면서 환자의 몸 위 아픈 곳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환부 주위를 누르면서 "이곳이 가장 아픕니까?", 환자는 "그곳이 아닙니다. ". 다시 누르면서 "이곳 입니까?" 환자는 그곳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흔든다. 손사막이 다시 다른 부위를 누르기 시작하는데 환자가 돌연 참지 못하고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아(阿) 그곳입니다(是這兒)!"한다.
그래서 그곳을 침으로 찔렀다. 단지 환자가 가볍게 한번 경련을 일어키더니 顔色안색이 점점 밝아지면서 붉은 기운이 감돈다. 이에 맞추어 손사막이 은침을 뽑는다. 환자는 빰 위에 맺힌 땀방울을 닦고는 다리를 이리저리 한번 움직여 보았으나 더 이상 통증이 없고 아무 이상이 없다.
곧 환자가 벌떡 침상에서 일어나는데 종래 아팠던 사람 같지 않았다. 손사막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면서 한편으로는 "선생님은 정말 신묘합니다. 조금 전에 찔렀던 그 혈이 도대체 무슨 穴혈 입니까?"묻는다.
손사막은 웃으면서 "당신이 막 '아(阿), 시(是)'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곧 그 혈을 '阿是穴'아시혈 이라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한다.
후세의 의학가들은 아시혈을 天應穴천응혈 또는 不定穴부정혈이라고 하였다. 이때 손사막이 창안한 아픈 곳을 눌러 혈위를 정하는 방법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臨床임상에서 응용되고 있다.
죽은 임산부를 진맥하다
어느 때 한번 손사막이 산에 올라 약초를 캐고 있는데, 어느 집안 사람들이 막 죽은 임산부를 매장하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직업상 습관으로 말미암아 손사막은 앞으로 나아가 정황을 물어보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 집안사람들이 임산부가 아이를 낳다가 難産난산하여 숨이 끊어진지 반나절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손사막은 임산부 치마위에 여기저기 선홍색의 피가 아직 마르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는 정신을 집중하여 診脈진맥을 하기 시작했다.
ⓒ 삽화 박영철
죽은 임산부가 살아나다
難産난산으로 사망하여 막 매장하려고 하는 임산부를 진맥하던 손사막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외치면서 즉시 침을 꺼내어 한번 찌르고 환약을 꺼내어 온수로 녹여서 입을 벌리고 입안에다 부어넣었다.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奇跡的기적적인 일이 발생했다. 죽었다던 임산부가 점차 깨어나더니 고통으로 신음하기 시작했다. 손사막은 임산부 가족들에게 조용히 지시를 내렸다. 즉 임산부가 解産해산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준비를 빨리 마치도록 하였다. 해산준비를 모두 끝내자 바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다.
한번 침을 놓아 두 명의 생명을 구한 이 사실에 가족들은 그 기쁨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고, 눈앞의 이 신묘한 의사에 대해 감격할 뿐이었다. 손사막의 이러한 起死回生기사회생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신속하게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다양한 처방으로 질병 치료
사실 손사막이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한 사례는 매우 많다. 예를 들면 千金要方천금요방 중에는 태어나면서 소리를 내지 못하여 假死가사상태에 빠진 아이들에 대한 많은 구급처방이 나와 있다. 또 손사막은 대파 대롱을 이용하여 배뇨곤란증 환자의 오줌을 터 주어서 환자가 사망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다.
이런 것 이외에 흔히 보이는 질병들에 대한 연구와 치료에서도 똑같이 온갖 방법을 궁구하여 독창적인 방법을 찾았다. 예를 들면 사람들로 하여금 비타민 A가 비교적 풍부한 동물의 간을 먹게 하여 야맹증을 치료하였다. 양의 목 부위 고기를 먹게 하여 갑상선종도 치료했다. 살구씨, 수유 등으로 각기병(脚氣病)을 낫게 하는 등 여러 사례가 많았다. 손사막이 살던 시대를 세계사에 견주어 봤을 때, 위에서 열거한 질병들을 완전히 치료한다는 것은 과학적 인식하에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손사막은 숭고한 구세 의료정신, 풍부한 실천경험 등으로 과학적 방법과 일치하는 많은 의료방법을 창안하였는데 이것은 매우 대단한 일이었다.
고상한 인품, 숭배의 대상
손사막은 늘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사방으로 다니면서 의료행위를 하였고 또 고개를 넘고 절벽을 기어오르면서 약재를 채집하여 직접 햇볕에 말려서 가공하여 긴급한 수요에 대비하곤 하였다. 손사막의 이러한 부단한 외부활동이 한편으로는 그가 건강하게 장수하는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천금익방 가운데에는 약물 팔백여 종과 그 효능을 기록하였는데 그중 적지 않은 것들은 당나라 이전의 의학서적에서는 기재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약들이었다.
의사로서 고상한 덕목, 정심한 의술과 휘황한 성취, 그리고 그가 장수하면서 건강했던 모습 등에 그 당시 사람들은 존경과 숭배의 대상으로 우러러 받들었다. 손사막이 죽은 후에도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심지어는 그가 영원히 세상 사람들을 위해 질병의 고통을 없애 주기를 기원하는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약왕으로 받들어지다
손사막은 의사로서 도덕이 높고 고상하여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숭배를 받게 되어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손사막을 神明신명한 존재로 받들게 되었다. 따라서 일찍이 인간세상에서의 上界상계 藥王약왕으로 되어 사람들은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때부터 손사막에 관한 많은 神話故事신화고사가 널리 퍼져 나갔다.
손사막은 성품이 매우 인자하여 사람들에게 의료행위를 하였을 뿐 아니라 때때로 가축이나 동물에게 까지 그의 손길이 미쳤다.
어느 때 한번 손사막이 길을 가고 있는데 목동이 작은 뱀 한 마리를 잡아 돌멩이를 들고 때리고 있었다. 땅위에는 피 흔적이 낭자하다. 이를 본 손사막은 "그 뱀을 놓아 주어라!"한다. 그러나 목동이 말을 듣지 않자 손사막은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을 벗어서 목동에게 건네준다.
뱀을 치료하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나에게는 지금 돈이 없다. 너는 이 옷을 가지고 가서 사탕과 바꾸어 먹어라."한다. 목동은 이때서야 비로소 작은 뱀을 땅바닥에 집어던지고 사라진다.
손사막이 약 광주리에서 약을 꺼내어 뱀이 입은 상처에 발라주자 피가 멈춘다. 그리고 난후 그 뱀을 수풀 속에 놓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손사막은 그 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한 참이 지난 어느 날, 손사막이 환자를 診脈진맥하고 귀가하는데 앞에서 흰 옷을 입은 소년 하나가 말을 타고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다. 손사막은 그 소년에게 길을 양보하려고 하는데 그 소년이 손사막의 면전에서 말을 멈추고 말에서 내린다.
아주 공손하게 예절을 다하여 절을 한 후 "저의 동생이 선생님의 치료를 받고 이제 완쾌하였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報答보답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한다. 이에 손사막은 웃으면서 대답한다. "병자가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보답이다. 이밖에 달리 무엇을 구하겠는가?"한다.
그 말을 받아서 그 소년은 "저의 집은 이곳에서 멀지 않습니다. 선생님께 따뜻한 밥 한 그릇, 맑은 차 한 잔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잠시 좀 쉬어 가시면 어떻겠습니까?"한다.
龍宮용궁으로 안내되다
손사막은 이 소년이 정성스럽게 간절히 청을 하자 그렇게 하자고 한다. 소년이 손사막을 자기의 말위에 태우자 그 말은 질풍처럼 민첩하게 뛰어간다. 잠깐 만에 커다란 성문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도처에 꽃나무와 수목이 가득하고, 건축물들은 황금빛과 푸른빛이 휘황찬란하여 완전히 다른 세계에 온 듯하다.
소년이 손사막을 모시고 큰 대문으로 들어가자 앞쪽에서 마주하여 빠른 걸음으로 한 사람이 다가오는데 옷차림이 화려하면서도 품격이 있고 은은히 풍겨나오는 그 氣品기품 또한 예사롭지 않다. 그 사람이 손사막을 보자 허리를 숙이면서 "선생님의 두터운 恩惠은혜를 입었사옵니다. 이 때문에 저의 아이를 보내 선생님을 맞이하게 하였습니다."한다.
말을 마치고 나서 자기 옆에 서 있는 푸른 옷을 입은 아이 하나를 가리키더니 "앞전에 이 아이 혼자 외출을 하였습니다. 그때 하마터면 목동에게 목숨을 잃을 뻔하였습니다. 손 선생님께서 자신의 옷을 벗어서 목동에게 주어 이 아이가 구출되었습니다."한다.
龍王용왕의 융숭한 접대를 받다 唐 현종이 웅황을 전해주다 한다.
龍용이 餓死아사 상태에 처하다 藥王약왕 사당이 도처에 세워지다
손사막으로부터 救命구명의 은혜를 받은 푸른 옷을 입은 아이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감사를 표시한다. 손사막은 이때서야 비로소 지난날 길에서 작은 뱀을 구한 일이 떠올랐다. 손사막은 진홍색의 옷을 입고 있는 이곳 城主성주인 듯한 사람 옆에 시립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곳이 도대체 어느 곳 입니까?"
질문을 받은 侍者시자는 "이곳이 바로 涇陽水府경양수부 즉 涇陽경양 龍宮용궁입니다!" 한다. 용왕은 손님을 접대하는데 소홀함이 없게 풍성한 술자리를 만들도록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歌妓가기들에게 노래와 음악연주, 춤을 추게 하여 흥을 돋우었다.
손사막은 자신은 지금 수련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파, 마늘, 생강 등 냄새나는 채소를 먹지 않고, 다만 술을 조금 마신다.
용왕은 손사막을 억지로 붙잡아 3일 머무르게 한 후 이별할 때 손사막에게 많은 金銀珠寶금은주보를 하사하고 아주 질이 좋은 채색 비단을 내린다. 손사막은 단호히 거절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
龍宮용궁의 기이한 처방을 얻다
이에 용왕은 더 이상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 문제는 그만두고 이곳 용왕부에는 용궁 奇方기방 30편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의학 처방은 도덕이 있는 사람이 세상을 제도하고 사람을 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데, 이제 선생께 받들어 드릴까 합니다. 바라건대 웃으면서 받아 주십시오."한다. 손사막은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쁜지 "그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라고 하면서 거듭 감사를 표시한다.
용궁의 기이한 처방을 받아서 품속에 집어넣고는 재차 용왕에게 감사를 표시한다. 용왕은 처음에 손사막을 데려온 흰 옷 입은 소년에게 손사막을 말에 태워 집까지 바래다 드리라고 명령을 내린다. 소년의 도움으로 집에 도착한 후 손사막은 바로 용궁의 기이한 처방을 꺼내어 하나씩 검증하면서 體得체득하여 의술의 깊이를 더하였다.
후에 손사막이 이 용궁의 처방을 사용하여 병자를 치료해보니 매우 영험하여 효과가 좋았다. 그래서 千金方천금방을 편찬할 때 이 30편의 용궁기방을 끼워 넣어 편찬했다고 한다.
道, 佛 도, 불 양가에서 다투어 받들다
이러한 고사는 列仙全傳열선전전에 실려 있는데 아마 그를 도교중의 인물로 간주하여 넣은 것으로 여겨진다. 도교에서 유전되는 이러한 천금방의 고사와 같이 酉陽雜俎유양잡조 前集전집에서는 손사막을 불교중의 사람으로 간주하였으며 그 사건의 경위와 전개내용은 자연히 다르다.
손사막이 종남산에 은거하고 있을 때, 宣律선율화상과 마음이 서로 맞아 서로 간에 내왕을 하면서 불교의 깊은 이치를 함께 깨닫기도 하였다. 이 해에 큰 가뭄이 전국을 강타하여 너른 대지가 불타오르듯 메말랐으며, 그 재해 또한 엄중하였다.
이때 서역에서 온 스님 한 분이 황제에게 스스로를 추천하여 자신은 가뭄현상을 바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황제는 그 서역스님이 昆明池곤명지에서 단을 쌓아 올려 기우제를 지내도록(結壇祈雨)하였고 관부에 명령을 내려 향과 燈등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 삽화 박영철
龍용이 도움을 청하다
전국적으로 가뭄이 극심하자 조정에서는 서역에서 온 스님에게 비를 내리게 하는 기우제를 지내게 했다. 서역의 스님이 昆明池곤명지에 제단을 마련하여 법술을 펼친 지 이레가 되었으나 비가 오기는커녕 곤명지의 물조차도 점차 말라가는데 가운데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이날 밤에 노인 한 사람이 宣律선율화상 앞에 갑자기 나타나 절을 하면서 자기를 구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弟子제자는 곤명지의 용입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이것은 제자의 책임이 아닙니다. 서역의 스님이 저의 머리를 이용하여 약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천자를 속여서 능히 비를 내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곤명지의 물은 다 말라가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이 못에 사는 저의 목숨도 사라질 것입니다. 화상께서는 法力법력을 펼쳐서 제자를 보호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선율화상은 “이 일은 내가 할 수 없다. 너는 손사막 선생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라.”고 하였다.
龍宮仙方용궁선방 가져 오다
그 노인이 서둘러 손사막이 거주하는 석실로 찾아와 그간 일어난 일의 경위를 한바탕 아뢰었다. 다 듣고 난 손사막이 말했다.
“이 일은 어렵지는 않다. 나는 곤명 용궁에 신묘한 용궁의술인 仙方선방 30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네가 그것을 나에게 전해 주기만 한다면 너를 바로 구해 줄 수 있다.”
“이 신묘한 의서는 옥황상제께서 함부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단지 지금은 일이 화급을 다투고 있으니 저 또한 이러한 것들을 돌아볼 틈이 없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과연 그 노인이 용궁 선방을 가지고 왔다. 손사막이 말했다.
“너는 안심하고 돌아가라. 그 서역스님에 대해서 걱정할 것 없다. 일체 모든 것을 내가 잘 안배해 놓았다.”
그 용이 막 곤명지로 돌아오자마자 곤명지의 물이 빠른 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물이 못을 가득 채우고 인근 논밭까지 적셔주었다.
龍宮용궁 의서가 천금방에 들어가다
그때 서역에서 온 스님은 처음에는 자기의 생각대로 될 것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손사막을 만나 희망이 물거품이 되자 부끄러움과 분노에 몸을 떨면서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더니 곧 황천객이 되고 말았다.
손사막은 千金方천금방을 편찬하면서 이때 얻은 용궁선방을 집어 넣기 위해 천금방의 내용을 조정했다. 천금방을 30권으로 나누고 매 한 권마다 용궁선방 1편을 넣어 편찬하였다.
손사막의 천금방은 매우 영험하여 효과가 좋았다. 후세 사람들은 천금방 중 어느 것이 용궁에서 얻어온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손사막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때때로 손사막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었다. 당나라 玄宗현종이 안록산의 반란을 피해 사천지방으로 피난을 갔다. 어느 날 밤 손사막이 꿈에 나타나 무도라는 지방에서 나는 雄黃웅황이라는 약재를 구해 달라고 하였다. 손사막은 천상에서도 여전히 의약을 주관하였으므로 인간세상의 약재인 웅황이 천상에서 필요하여 현종의 꿈속에 나타난 것이었다.
ⓒ 삽화 박영철
당나라 현종 황제는 太監태감에게 한약재인 雄黃웅황 열 근을 내어 주면서, 꿈속에서 손사막을 보았던 아미산 산정으로 가서 전해 주도록 분부했다. 태감이 웅황을 가지고 아미산 산허리 쯤 올라가고 있는데, 그곳에 칡으로 만든 베옷에 두건을 쓰고 수염이 하얀 노인 한 분과 좌우에는 푸른 옷을 입고 상투를 묶은 동자 두 명이 나타난다.
그 노인은 손가락으로 큰 반석을 가리키면서 태감에게 " 가지고 온 약재는 저기에 놓아라. 반석위에는 황제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으니 빨리 베끼도록 해라."한다.
이 말을 들은 태감이 반석 위를 보니 일백여자 남짓한 편지 글이 붉은 색으로 쓰여 있어 붓을 꺼내 베껴 쓴다. 태감이 편지를 옮겨 적는데, 다 베끼자마자 반석위의 글자가 스르르 사라지고 만다.
그 찰나지간에 한 무더기 흰 구름이 땅 위에 가득 일어나더니 곧 바로 하늘로 향하여 천천히 움직이면서 사라진다. 이와 함께 그 노인도 사라졌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 노인이야말로 바로 손사막이었다.
오대산에 세워진 수많은 칭송 비석들
천지는 아득하고 사람과 신선사이에는 서로 왕래의 길이 가로막혀 있다. 손사막은 이미 상계의 신선이 되었으므로 보통 인간들로서는 그를 만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사막의 고향인 耀縣요현 동쪽에 있는 五臺山오대산에 대해 아름다운 이름 하나를 더하여 藥王山약왕산이라고 불렀다.
이 약왕산위에는 역대로 세워진 일 백여 개의 비석이 있어 일대 장관을 이룬다. 비석의 내용은 대부분 약왕 손사막을 칭송한 공덕비들이다. 그 비석 중 다섯 개에는 손사막의 의학저술이 새겨져 있다.
산 허리에는 큰 전각이 세워져 있는데 그 산중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웅장한 것으로 건물 안에는 사람 키 높이의 손사막 전신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건물과 함께 꼭 기억해야할 것은, 다름 아니라 큰 건물 뒤편 절벽위에 있는 직경 2미터 둘레의 원형 동굴이다.
龍용이 변신한 사람이 치료받으러 오다
이 동굴과 관련하여 아주 기묘하면서도 재미있는(奇妙有趣) 옛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뇌성이 치고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늦은 밤에 손사막이 千金要方천금요방을 편찬하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돌연 신체가 우람하고 수염이 뒤얽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중 늙은이 한 사람이 얼굴 앞으로 다가와 앉는다.
늙은이는 의기소침하여 풀이 죽은 모습을 하면서 손사막에게 병을 보아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늙은이가 투박하고 거친 팔뚝을 손사막 앞으로 내밀자 손사막은 손가락으로 그 노인의 손목을 눌러가면서 맥을 짚는다.
진맥을 한참 하던 손사막이 손가락을 떼며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면서 "당신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 노인은 이상하다는 듯이 한번 웃더니 "당신,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한다.
손사막이 "맥이 뛸 때는 구름과 안개가 치솟는 듯하고, 떨어질 때에는 강물과 바닷물이 뒤집히는 듯하는데, 당신은 필경 龍용이 아닌가 ?"
ⓒ 삽화 박영철
손사막이 앞에 앉은 노인의 맥을 짚어보고 龍용이라고 하자 그 노인은 "과연 손사막이라는 이름이 헛되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군요!(名不虛傳) 천상의 신선조차도 당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한다. 용이 변신한 노인은 아주 탄복하는 표정을 짓고는 말을 잇는다. "저는 최근 한바탕 괴이한 병을 얻었습니다. 뱃속이 비어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무엇이든 먹는 것들은 바로 가시가 목에 걸린 듯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습니다."한다.
손사막은 "당신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가 하루 동안에 당신에게 줄 약을 준비하면 된다. 당신은 모레 이곳으로 오라. 그러나 당신이 먹어야할 약의 분량이 많으니까 사람의 몸으로 변신하여 오면 안 된다. 원래의 몸인 용으로 이곳에 나타나야 한다."고 말한다.
용과 만나기로 한 그 날이 되자 돌연 뇌성이 울리면서 하늘조차 깜깜해지기 시작한다. 손사막은 이 광경에 '이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구나!'하면서 이 용이란 자가 성미가 몹시 급하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그 전 날 용에게 저녁 늦게 오라고 하지 않은 것이 다소 후회스럽기조차 하다.
손사막은 뇌성벽력과 폭우가 쏟아지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산꼭대기로 서둘러 올라가서 한 무더기 바람에 실려 오는 시커먼 구름을 마주하여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이때 그 용은 시커먼 구름 장막 속에서 머리를 내밀며 몹시 의아해 하면서 무슨 일인지 묻는다. 손사막은 "당신은 이러한 기묘한 모습으로 나타나 조용한 산촌 마을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가? 빨리 산 뒤편 사람이 없는 지역으로 가라!"고 한다.
龍용이 담장에 동굴을 만들다
손사막의 말에 용이 고개를 끄덕인다. 손사막이 막 자기 집 정원으로 돌아 왔을 때 정원 담장에 하나의 큰 동굴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동굴 밖으로 용이 고개를 내밀고 웃으면서 "저의 몸을 모두 산속에 감추었는데, 이것으로는 더 이상 지장이 없지 않습니까?"한다.
손사막은 용이 하고 있는 이 모양을 보고 울지도 웃지도 못할 처지였다. 손사막이 한 통 가득 탕약을 꺼내자 그 용은 냄새를 맡아보다가 "맛이 시고도 고약하구나!"하면서 마시려고 하지 않는다. 손사막은 용과 더 이상 말다툼 하고 싶지 않은 듯, 갑자기 침을 꺼내어 용 머리위에 있는 경혈을 찌른다.
용은 아파서 고함을 지르다가 전신이 마비되는 것을 느끼는 순간 온 몸에 힘이 쑥 빠진다.
"빨리 마셔라, 마시지 않으면 다시 침을 치르겠다."하면서 손사막이 침을 꺼내든다. 용은 손사막이 다시 침을 찌를까 두려워 꿀꺽꿀꺽 한 통의 탕약을 깨끗이 먹어 치운다.
순간 한 바탕 역겨움이 일어나면서 탕약을 토해내는데 그 속에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있다.
"원래 이 뱀이 바로 당신의 식도를 막았다."한다. 용은 갑자기 온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손거사님, 당신은 정말 신묘하십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먹게 한 그 약이 어떤 仙藥선약인지 알려줄 수 있습니까?"한다.
손사막은 웃으면서 " 그 약속에는 무슨 선약이라고 할 것이 들어있지 않다. 다만 식초와 마늘을 찧어서 혼합한 것이다"라고 한다.
▲ 삽화 박영철
손사막의 치료를 받고 병이 나은 龍용은 손사막 의술의 고명함에 탄복을 하고 五體投地오체투지하여 감사를 표명한다. 재삼 감사를 표한 용은 요란하게 날아올라 공중으로 사라진다. 그때 용이 잠시 몸을 숨겼던 산 절벽에는 커다란 동굴이 남겨졌는데 이 동굴 길이는 족히 몇 리가 된다고 한다.
손사막이 藥王山약왕산(일반적으로 五臺山오대산이라고 칭함)으로 들어간 후 약왕 손사막에 대한 이런저런 종적들이 전해져 온다.
약왕산이 보통 민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일반 백성들은 방문하기가 쉽지 않았다. 적지 않은 지방에서는 藥王廟약왕묘를 건립하고 藥王像약왕상을 조각하여 세웠다.
손사막의 초상화가 민간에서 크게 유행했는데 약왕의 모습은 대부분 자비롭고 인자한 모습이며 은발의 머리칼에 긴 수염을 하고 머리에는 巾건을 쓰고 붉은 도포를 입었다.
이와 다른 초상화도 있는데 약왕 손사막의 坐像좌상 옆에 唐朝당조 대장군인 尉遲敬德위지경덕이 시립해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각기 재미있는 고사가 포함되어있다.
어느 때 한번 당태종 李世民이세민의 황후가 중병에 걸려 어의조차 束手無策속수무책이었다. 이때 손사막이 부름을 받아 궁궐로 들어갔다.
당 태종, 약왕이라 호칭하다
황후의 손목을 실로 묶어 진맥을 하고 약 한 첩을 지어준다. 이 약을 먹고 황후의 중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당 태종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칭찬한다. "선생은 과연 약왕이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다."
제왕의 입에서 나온 말은 법과 같아서 그를 '약왕'이라고 호칭하자 바로 제후에 상당하는 封地봉지와 상을 내려야 했다.
이에 손사막은 단지 고향인 山林산림으로 되돌아가기만 희망하였고, 내려진 봉지와 상을 일체 받지 않았다. 재삼 사양을 하다가 마지못해 황제가 친히 내려준 王袍왕포와 王冠왕관만 삼가 받을 뿐이었다. 당 태종은 손사막이 돌아갈 때 사용하도록 수레와 말을 내리게 하여 그가 고향에 돌아가도록 조치하였다.
이러한 소문이 조정에 두루 퍼지게 되어 대장군인 위지경덕의 귀에도 들려왔다. 위지경덕 장군은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산야에 있는 일개 草醫초의로서 뜻밖에 왕으로 봉해졌고 왕관을 쓰고 黃袍황포를 입게 되었다. 나는 장군으로서 大唐대당 강산에 말을 타고 남북을 평정한 南征北伐남정북벌의 용장으로 살아오면서 죽음의 구덩이에 빠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공적을 이렇게 많이 쌓았는데도 다만 公爵공작의 지위에 불과하다. 진실로 이것이 무슨 도리가 있는 일인가! 나는 먼저 손사막의 대 황포를 벗기고 다시 황제에게 가서 이것이 맞는 처사인지를 한번 따져 보겠다."한다.
위지경덕 장군은 다혈질의 사나이로서 그 자리에서 말을 타고 손사막의 뒤를 쫒아 추적한다.
ⓒ 삽화 박영철
위지경덕 장군, 손사막을 추적하다
대장군 위지경덕은 한참을 쫓아가서야 손사막을 따라 잡았다. 그러나 위지경덕 장군은 갑자기 두 눈을 둥그레 뜨면서 못 믿어 한다. 손사막이 말위에 혼자 타고 있고 그의 신변에는 아이 하나만 달랑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보아도 손사막은 紅袍홍포인 붉은 도포를 입고 있으며 머리에는 평범한 두건만 쓰고 있다.
위지경덕 장군은 내심으로 "이러한 차림이 무슨 王冠왕관, 王袍왕포를 입은 모습인가? 평범한 복장에 불과하다. 보아하니 사람들이 손사막이 왕의 작위를 받았다고 잘못 전한 것 같다. 그러나 손사막이 藥王약왕으로 불려지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겠다."한다.
위지경덕 장군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손사막을 멈추게 한다. 손사막은 이미 위지경덕의 마음을 간파하고는 위지경덕이 그를 쫓아 오기 전에 제후의 황포를 뒤집어 입었고, 신분을 나타내는 모자의 날개를 떼어버렸다. 손사막은 "이게 누구신가? 위지경덕 장군!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으신지?"한다.
위지경덕 장군은 손사막의 화기로운 얼굴을 대면하자 도리어 난처해지는 기분이다. 머리를 한번 수그리면서 "저의 왼쪽 팔뚝은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여 지금에는 들어 올릴 수조차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저를 치료해 줄 수 있으신지요?"한다.
손사막은 위지장군의 팔뚝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내가 장군에게 침으로 한번 찌르기만 하면 곧 활동이 자유로울 수 있다. 이후에 약을 조금 먹으면 다시 재발은 없을 것이다. "한다.
위지경덕 장군은 '장안에는 그렇게 많은 名醫명의가 있었으나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단지 침 한방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니, 이것은 정말 밝은 날에 터무니없는 엉터리 수작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내기에 진 위지장군, 손사막 수하 되다
위지경덕 장군은 엉겁결에 "당신은 혹시 미치광이가 아닌가!"하면서 입을 잘못 놀렸다.
손사막은 "노부는 말을 하면 종래 책임을 질뿐이다."한다. 위지장군이 "침을 찔러도 상태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한다. 손사막은 "만약 한번 침을 찔러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노부는 장군의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 만약 일 침에 효과가 나타나면 장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위지장군은 "그러면 저는 평생 선생님을 모시고 옆에서 항상 시립하여 보초를 서겠습니다."한다. 손사막은 " 좋다. 大丈夫대장부가 한마디 말을 하면 다시 수습할 수 없다!"
손사막은 위지장군을 살펴보더니 그의 팔뚝위에 침을 깊이 한번 찔러 넣는다. 위지장군에게 통증과 마비되는 감 그리고 화끈거리는 열기가 온 몸을 엄습해온다. 침을 빼내자 위지장군은 그의 왼쪽 팔뚝을 몇 차례 휘둘러보고 또 머리위로 높이 들어 보았으나 아무 이상이 없다.
위지장군은 손사막을 바라보면서 감사와 부끄러움이 교차하는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한다. 손사막은 "아까는 장군과 농담을 한 번 해보았다. 너무 신경 쓸 것 없다. "한다. 위지장군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따라오자 손사막은 "지금은 아직 장군의 힘이 세상에 필요한 때이다. 응당 국가를 위해 힘써 공을 세우고 천하가 태평하거든 그때 가서 나를 위해 봉사를 해도 늦지 않다."한다.
나중에 천하가 태평해지자 위지경덕 장군이 오대산으로 손사막을 찾아와 곁에서 모시면서 보초를 섰다고 한다. 이일로 인해 약왕 손사막의 坐像좌상 옆에는 항상 唐朝당조 대장군 위지경덕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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