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外之士

列仙小傳_장도릉[張道陵]

醉月 2009. 8. 18. 08:02

 
ⓒ 삽화/박영철
도교 제 1대 천사 장도릉
도교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은 쉽게 ‘장천사’(張天師)를 떠올린다. 도교도들이 제1대 천사(天師)로 받드는 사람이 바로 장도릉(張道陵, 34-156년)이다. 그는 원래 이름이 ‘릉’(陵)이고 자(字)가 보한(輔漢)이며 동한(東漢) 패국 풍(沛國 豊)사람이다. 현재 지명은 강소성 풍현이다.

역사기록에 따르면 장도릉은 일찍이 태학에 들어갔다. 학문에 힘써 오경(五經)에 통달했다고 한다. 한 명제(漢 明帝)때 사천성 중경의 수령이 되었다. 그 후 관직을 버리고 한 순제(順帝)때 학명산(鶴鳴山)에 들어가 도를 닦았다.

쌀 다섯 말을 바쳐야
영화(永和)6년(141) 도에 관한 책 24편을 지었는데 스스로 ‘태청현원’(太淸玄元)이라 불렀고, 초기 도교의 종교단체를 창립하였다. 무릇 교단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쌀 다섯 말을 바쳐야 했으므로 ‘오두미도’(五斗米道)라고 불렀다.

교인들에게 잘못을 뉘우치고 도를 받들게 하였으며 부적과 주문을 사용하여 병을 치료했다. 전국에 24개의 지부를 건립하고 책임자인 제주(祭酒)를 세워 교도를 이끌었다.

초기 도교에는 이와는 달리 또 다른 파가 있었는데 ‘태평도’(太平道)라고 불렀다. 태평도의 우두머리인 장각(張角) 형제는 태평도를 이용하여 조직을 늘리고 급기야 백성들을 부추겨 후한에 반대하는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다. 황건적의 난이 실패하고 태평도는 와해되었으며 후에 극소수만 남아 비밀활동을 했다.

‘오두미도’(五斗米道)는 태평도와는 달리 제1대 천사인 장도릉이 죽은 후에 아들 장형(張衡)이 이었고, 장형이 죽은 후에는 그 아들 장로(張魯)가 이었다. 서쪽지역 파촉 일대에서 급속히 전파되어 계속 후세로 전해졌다. 천사(天師)라는 이름과 직위는 그 후계자들이 세습하여 이어 받았다.

정일도로 이름을 바꾸다
중국의 위진 남북조시대가 시작되면서 ‘오두미도’는 천사도(天師道)로 불렸고 도교의 정통이 되었다. 역대로 천사(天師)의 자리를 잇는다는 것은 명분에 걸맞게 전국 도교의 영수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금나라 원나라 이래로 북쪽지방에서는 도교의 다른 유파인 ‘전진도’(全眞道)가 출현했다. 이 ‘전진도’가 북방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치자 ‘천사도’는 ‘정일도’(正一道)로 이름을 바꾸고 남방을 중심으로 널리 유행했다.

장도릉이 도교의 정통 교파를 창립하여 도교의 조사로 받들어졌으므로 그에 관한 신화는 자연히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많아졌으며 널리 전해질수록 더욱 신비스럽게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한나라 초기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일등 공신인 유후(留侯) 장량(張良)의 9세 자손이라고 한다. 그의 아버지 장예는 자(字)가 대순(大順)이고 일찍이 아내 임씨와 함께 천목산(天目山)에 머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임씨 꿈속에서 신선 한 분이 북두괴성(북두칠성의 첫째별)으로부터 날아 내려와 그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그 신선이 임씨에게 꽃다발 한 묶음을 주었다.
 
ⓒ 삽화/박영철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아 태어나다
장도릉의 어머니 임씨가 천목산(天目山)에 머물고 있을 때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신선 한 분이 북두칠성에서 내려와 꽃다발 한 묶음을 그녀에게 주면서 한마디 하였다. “나는 원래 방산(方山)에서 살았다. 지금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어 너의 집에 왔다.”

임씨는 이 일이 있고난 후 아이를 임신하였다. 천목산에서 고향인 '퍠국 풍' 땅으로 돌아와 장도릉을 낳았다. 아기가 고고성을 울리면서 세상에 태어나는데 누런 구름이 집을 감싸고 상서로운 구름이 온 뜰 안에 가득했으며 밝은 빛이 비치었다.

그윽한 향기가 며칠이 지나도 흩어지지 않았다. 막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이미 도덕경(道德經)에 정통하였으며 천문지리, 하도(河圖), 낙서(洛書), 참위서 등의 깊은 묘리를 통달하였다. 16 ~ 17 세가 되자 신장이 구척이촌이 되었으며 짙은 눈썹에 넓은 아래턱, 높은 코와 방정한 입 등 그 모양이 기이하면서 괴걸스러웠다.

장공동(張公洞)이라는 동굴에서 공부하다
그는 처음 남쪽지방인 오월(吳越)을 왕래하면서 우연히 진인 위백양(魏伯陽)을 만났다. 양선산(陽羨山) 산으로 들어가 장생의 도를 수련하였다. 양선산에는 '장공동'(張公洞:장도릉이 공부하던 동굴)에 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장공동'(張公洞)은 의흥현 동남 55 리에 있다. 오나라 손권(孫權) 적오(赤烏) 2년 어느 날 밤 비바람이 크게 불고 벼락이 치면서 동굴 문이 열렸다. 높이가 수십 장이고 산기슭 둘레가 오리였으며 동굴 깊이도 수십 장이었다.

삼면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어서 올라 갈 수 없었다. 오직 북쪽에 구멍이 하나 있어 사람이 드나들 수 있었다. 동굴 내부에는 천장에 고드름 같은 종유석이 떨어질 듯 매달려 있고 그 색깔이 푸른 녹색으로 칠을 해놓은 듯 비취색이었으며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랑비가 내리는 듯 했다.

동굴 안에는 선인방(仙人房), 지초밭(芝田), 단약(丹藥) 만드는 부뚜막, 희귀한 화초(瑤草) 등이 있어 기이한 풍경을 연출하였다. 한(漢) 천사(天師) 장도릉이 일찍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므로 '장공동'(張公洞)이라 부른다.

학명산에서 도를 닦다
장도릉은 '장공동'에서 수도한 후 사천지방 촉(蜀) 땅으로 갔다. 촉 땅에는 이름난 산이 많고 백성들이 순박하여 교화하기가 용이하였다. 그를 따르는 일천여 무리를 데리고 촉 땅으로 와 함께 도를 닦으며 도를 널리 전했다.

촉 땅은 시내와 산맥이 깊고 수려하여 장도릉의 마음에 꼭 들었다. 그곳에 학명산(鶴鳴山)이라는 명산이 있었다. 영험하고도 기이한 것으로 이름이 났다. 산꼭대기에는 학(鶴)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 득도한 자가 출현할 때마다 이 '학 바위'가 소리 높여 운다고 한다.

장도릉이 이 산에 은거하여 신인이 남
긴 '상삼황내문'(上三皇內文), ‘황제구정태청단경’(黃帝九鼎太淸丹經)에 따라 생각을 정심히 하고 수련에 힘썼다. 학 바위가 과연 몇 번이나 기쁜 듯이 울면서 살아서 날아갈 듯한 자세를 했다고 한다.

 
ⓒ 삽화/박영철
분신술(分身術) 자유자재
장도릉은 사천지방 학명산(鶴鳴山)에서 도를 닦았다. 한 해 한 해 세월이 나는 듯이 흐르는 동안 육십여 세가 된 장도릉은 용모가 삼십여 세 젊은이로 바뀌었다. 길을 걸으면 그야말로 달리는 말처럼 가볍고 민첩했다. 날듯이 가는 중에도 귀가 열려 멀리서 들리는 가늘고 미세한 소리까지 모두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장도릉이 수련해서 터득한 ‘형체를 나누고 그림자를 흩어 버리는(分形散影)’수법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같은 시각에 한 명의 장도릉이 북쪽 법당에서 경전을 강의하면서 제자들과 앉아서 도를 논하고, 다른 장도릉은 동쪽의 조용한 방에서 도반들과 차를 마시면서 한담하고 있었다.

또 다른 장도릉은 서쪽 산 고개 밑 오솔길을 지팡이 짚고 홀로 거닐면서 시를 읊고 있었다. 그러나 장도릉의 원형본신(原形本身)은 남쪽 연못에서 배를 띄워 놓고 유유자적하게 천지의 기운을 섭취하면서 정신을 기르고(攝氣養神) 있었다.

사악한 호랑이신과 요망한 구렁이를 제압하다
어느 하루 제자들이 장도릉에게 민간에 백호신(白虎神)이 출현했다고 말했다. 서성(西城)과 방릉(房陵)지역 사이에 흉악한 백호신이 가끔 출몰하는데 흡혈귀처럼 사람의 피를 먹기를 좋아해서 매년 그 지역에서는 사람을 죽여서 이 백호신에게 제사지냈다.

이 말을 들은 장도릉이 크게 노하여 즉시 백호신을 불러 들여서 한바탕 훈계하자 그 흉악한 백호신은 그때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또 한 차례 제자들이 민간의 사정을 보고했다. 재주(梓州)지방에 이무기 같은 커다란 구렁이(大蛇)가 있는데 울부짖으면 그 소리가 뇌성벽력과 같아 산과 바위가 흔들렸다. 그리고 큰 구렁이는 종종 독기있는 안개(毒霧)를 뿜어내는데 무릇 이러한 극독한 안개에 쏘인 사람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장도릉은 주문과 부적을 사용하여 사람을 해치는 그 구렁이를 감금하여 다시는 그 구렁이가 밖으로 나와 사람에게 해코지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장도릉이 작은 법술을 사용하여 위 두 가지 일을 잘 해결하자 그 지역 백성들은 손을 이마까지 올리면서 공경해 마지않았으며 장도릉 또한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하늘에서 음악이 울리다
이런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한(漢)나라 순제(順帝) 임오(壬午) 142년 원소절(元宵節 :정월 대보름날)이 되었다. 장도릉이 학명산에서 막 잠에서 깨어나는데 신선의 음악소리가 하늘에서 은은히 전해져 오는 것을 들었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니 자주색 상서로운 구름이 집안에 가득하다. 그 구름 가운데 다섯 마리 흰 색 용이 끄는 하얀 수레가 상서로운 구름을 밟고서 날아 내려오고 있었다. 하얀 수레 주위는 각종 깃발로 둘러싸여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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