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에서 우연히 얻은 구단금액경
좌자(左慈)는 자가 ‘원방’(元放)이고 동한(東漢) 말기(후한이 망해가고 위·오·촉 삼국이 일어나 천하쟁패를 하던 시기) 여강(廬江) 사람이다. 좌자는 유교경전을 공부한 선비였으며 천문까지 통달하였다.
그는 당시 시대상황이 혼란하고 난잡한 것을 보면서 ‘유’(劉)씨 왕조가 곧 망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이러한 시대상을 보고 “세상은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관리가 된다는 것도 위험하고, 재산이 많아도 생명조차 보존하기 어렵다.
눈앞의 부귀영화를 탐내서는 더욱 안된다.”고 스스로 탄식했다.
그리고 배움의 길을 접어버리고 천주산(天住山)으로 들어가 은거했다.
천주산 속에서 동굴을 발견하여 수련하다가 동굴 속의 작은 석실에서 도가경전인 ‘구단금액경’(九丹金液經) 한 권을 우연히 얻게 되었다.
이 경전을 어느 시대에 누가 남겼는지 내력은 알 수 없었지만 이 책을 스승으로 삼아 깊이 공부하면서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온 정성을 다해 경전의 뜻을 사색하고 탐구하자 차츰 그 내용을 파악하게 되었고 신출귀몰한 도술도 부리게 되었다.
그리고 귀신을 불러서 뜻대로 일을 시킬 수 있는 경지까지 갔다.
위나라 조조, 농어회로 좌자를 시험
좌자의 이러한 여러 가지 신기한 이야기들이 세상에 떠돌게 되자 위나라 조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조조는 이러한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면서 좌자를 눈앞에서 한번 시험해 보기로 뜻을 정했다.
그래서 조조는 어느 날 하루, 잔치를 성대히 준비하고 사람을 시켜서 좌자를 불러오게 했다.
처음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술잔을 세 번 돌렸다.
그때 조조는 짐짓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이 한바탕 웃더니 그 자리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오늘 이 성대한 잔치에 훌륭하신 분들이 좌석을 가득 메웠습니다. 비록 약간의 산해진미를 준비하기는 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송강(松江)의 ‘농어회’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송강의 농어회가 이 자리에 준비되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하면서 아쉬운 듯 말을 마쳤다.
그리고 조조는 일부러 좌자를 한번 쳐다보았다.
세숫대야에서 젓가락으로 농어를 낚아
좌자는 바로 그 자리에서 “송강의 농어회를 구하는 것이 어찌 어렵겠습니까?”하였다.
좌자는 사람을 시켜서 구리로 만든 세숫대야에 맑은 물을 가득 부어서 가져오도록 했다.
또 나무젓가락 하나를 집어 들더니 젓가락 끝에 실을 메달아 낚싯대를 만들었다.
젓가락으로 만든 낚싯대를 세숫대야의 물속에 집어넣어 가볍게 끌어 올리자 그곳에 은빛 비늘이 번쩍이는 싱싱하고 팔딱팔딱 뛰는
송어 한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그 놀라운 광경에 일제히 박수를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좌자의 도술을 시험해 보던 조조도 눈앞에서 벌어진 뜻밖의 일에 대해 그저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농어 한 마리 더 주문
좌자(左慈)가 세숫대야 속에서 농어 한 마리를 낚아 올리는 것을 본 조조는 다시 한마디 했다.
“다만 농어가 한 마리에 불과해서 애석할 뿐이다.
만약 다시 한 마리를 더 구할 수 있으면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농어회를 맛볼 수 있을 텐데!”
이 말을 듣고 좌자는 다시 젓가락으로 만든 낚싯대를 대야 속에 담갔다가 들어 올리자 전번처럼 크기가 비슷한 싱싱한 농어 한마리가 낚싯줄에 매달려 올라왔다. 조조는 직접 두 마리 농어를 잘게 썰어 회로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놓았다.
농어회를 상위에 놓고 조조는 또 다시 좌자를 시험해 보려고 “농어회를 먹을 때는 사천 땅에서 나는 생강이 있어야 제격인데 이 자리에 없어서 농어회의 제 맛이 나지 않을 뿐이구나!”라며 아쉬워했다.
이 말을 듣고 좌자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면 잠시만 기다리신다면 저는 지금 촉나라 땅 사천으로 가서 생강을 바로 구해 오겠습니다.”
수 천리 밖 생강을 요구
이 대답에 조조는 마음속으로 ‘촉나라 사천은 이곳에서 수 천리 이상 떨어져 있다.
너는 이곳 근처의 시장에서 생강을 사와 나를 속이려고 하는구나!’하고 생각하고는
“나는 얼마 전에 사천의 채색 비단을 사오라고 사람을 사천으로 파견했다.
그대는 생강을 사올 때 나를 대신해서 그 사람들이 비단 두 필을 사오도록 내 명령을 전해 주시오.”라고 요청했다.
좌자는 그러겠노라고 즉석에서 대답하고 문을 나갔다. 잠시 후 좌자는 사천에서만 나는 특산 생강을 들고 연회장으로 되돌아 왔다.
생강을 건네주며 좌자는 “제가 비단가게 앞에서 당신이 파견한 사자를 우연히 보았는데, 당신의 명령을 전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이 말에 조조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후 사천비단을 사러간 사자들이 되돌아 왔는데 조조의 명령대로 사천비단 두 필을 사왔다.
조조는 사자들에게 “누가 너희들에게 비단 두 필을 사오도록 시키더냐?”라고 물었다.
그들은 “모월 모일에 비단가게 앞에서 우연히 저희들과 마주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당신의 명령을 전달했습니다.
그 사람은 손에 사천에서 나는 생강을 들고 있었습니다.”하며 머리를 숙이고 조아렸다.
조조는 이 말에 묵묵히 듣기만 할 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조조, 질투심에 도인을 감금
이때 조조는 좌자의 도술을 지켜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좌자를 지나치게 칭찬하고 또 좌자가 자신을 농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이를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질투심이 불타올랐다.
특히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어서 더욱 놓아주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조조는 사람을 보내서 좌자를 불러오게 했다.
조조는 이번에는 그를 연회장소로 부르지 않고 커다란 바위 돌로 쌓아올려 만든 방안에다 연금했다.
연금한 후 그에게 갈증을 해소할 만큼 물만 조금씩 넣어주고 음식물은 일체 주지 않았다. 또 병사를 배치해 삼엄하게 지키게 했다.
장기간 밥을 주지 않으면 굶어죽는지 아닌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먹지 않고 1년을 견디다
조조는 좌자의 도술을 직접 보고 나서 자신을 희롱한다는 생각과 함께 시기심이 발동하였다.
그를 돌로 만든 감옥에 가두어 물 이외의 일체 음식물을 주지 않고 굶어죽는지 여부를 시험했다.
물만 감옥에 조금씩 넣어주고는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장장 1년이 지났다. 1년이 지나고 문을 열어 좌자를 석방했다.
굶어서 죽을 줄 알았는데 죽기는커녕 얼굴의 안색과 기력은 처음 감옥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불그스레하게 빛이 났으며
정신은 더욱 맑아진 듯했다.
조조는 이러한 사실에 놀라면서 마음속으로 “세상의 어느 누가 음식을 먹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하고 반문했다.
조조는 “좌자, 이 화상! 반드시 마귀나 요괴 나부랭이 일거야!”하면서 그를 죽여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감옥에서 나온 좌자는 조조의 마음을 이미 간파하고는 그를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제가 산속에 들어가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놓아 주십시오.”라고 요구했다.
조조는 “너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어찌 이렇게 바쁘게 떠나가려고 하는가?”물었다.
좌자는 명쾌하게 “당신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사실 조조는 다른 사람이 자기 마음을 알아맞히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조조는 짐짓 매우 도량 넓은 태도를 나타내면서 “어떻게 당신을 죽일 수 있겠는가? 나는 절대로 그럴 마음이 없다.
그러나 좌자 당신이 산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기왕 세웠으니 나 또한 억지로 당신을 붙잡지는 않겠다.
당신을 위해 내가 송별연을 베풀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한 잔 술을 두 잔으로 만들다
조조는 즉시 명령하여 술과 안주를 마련하게 하고 송별연 자리를 만들었다. 조조는 커다란 잔에 술을 가득 따라 좌자에게 건네주었다.
조조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먼저 술잔을 건네주면 좌자가 사양하면서 조조 자신에게 먼저 술을 마시도록 양보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 좌자는 한 손으로 술잔을 받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머리에 쓴 도관(道冠:도사들이 쓰는 모자)의 비녀를 꺼내들면서 청했다. “이제 장차 멀리 이별하려고 하니 술잔을 나누어 전하와 함께 술을 마시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말을 마친 좌자는 비녀를 들고 술잔 위에 한번 그었다. 그러자 술잔이 두 개로 되고 술은 반으로 나뉘어졌다.
그러나 단 한 방울도 밖으로 새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본 조조는 깜짝 놀라면서 그 술을 감히 바로 받아 마시지 못했다.
그러자 좌자는 바로 “청하옵건대 제가 당신 대신 마시겠습니다.”하며 나머지 반으로 나누어진 다른 술마저 다 마셔 버렸다.
술을 다 마시고 그는 두개의 술잔을 합해 하나로 만든 후 돌연 전각 기둥을 향해 집어던졌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술잔
좌자가 머리비녀로 술이 가득한 술잔을 향해 한번 긋자 술잔이 정확하게 두 잔으로 나눠졌다. 그는 술 두 잔을 혼자 다 마신 후,
술잔을 다시 합하여 하나로 만들더니 갑자기 기둥을 향해 집어던졌다.
공중으로 날아간 술잔이 끈으로 매단 듯이 허공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흡사 나는 새가 솟아올랐다 내렸다 하는 모양처럼 술잔이 공중에서 떨어질 듯하다가는 떨어지지 않았다.
좌중에 앉아있던 사람들 모두 머리를 들고 이 신비한 술잔을 응시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더니 술잔이 서서히 떨어져 내려오다가 주연상 위에 멈추더니 빙글빙글 돌았다.
빙글빙글 돌던 술잔이 조조 앞으로 굴러가더니 갑자기 멈추었다.
이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좌자 쪽으로 눈을 돌렸으나 그는 이미 종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조조는 그때서야 비로소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조는 자신이 좌자의 희롱거리가 됐다는 생각에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분노에 떨며 절치부심 이빨을 갈면서 좌자를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조조, 좌자 체포령을 내리다
조조는 그 자리에서 좌자를 잡아들이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포졸들을 사방으로 풀어 그를 체포토록 했다.
포졸들이 여러 날을 탐문한 끝에 그가 시골 초가집에 머물러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포졸들은 이 사실을 확인하고 감히 소홀히 할 수 없어 먼저 초가집 둘레를 단단히 포위하고 동시에 수십 명이 후다닥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좌자가 정좌하여 두 눈을 감고 신을 기르고(閉目養神) 있었다.
그는 이때 평온한 모습으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먼저 말을 꺼냈다. “조공(조조)이 또 나를 청해서 술을 마시자고 하던가?”
말을 마치고 한쪽 눈을 살짝 뜨더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포졸들에게 환한 얼굴로 함께 가자는 의사를 표시했다.
포졸들은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어 그를 행렬 한가운데로 놓고 빙 둘러 싼 채로 삼엄하게 호송했다.
좌자, 양(羊)으로 변신하다
막 산골짜기를 빠져나오는데 한 무리 양떼가 앞 쪽에서 다가왔다. 좌자는 갑자기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양떼 무리 속으로 걸어가 번쩍하면서 사라지는데 그 종적이 묘연했다.
포졸들은 또 다시 대경실색하여 한동안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양떼 주인에게 다가가
“당신의 양은 모두 몇 마리입니까?”라고 물었다. 양떼 주인이 양 숫자를 세어보더니 “한 마리가 많아졌습니다.”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포졸들은 “이 양떼 중에는 좌자가 변신한 양 한마리가 있다.
우리들은 이 양 전부를 데리고 가서 어느 것이 좌자인지 가려낼 방법을 강구하겠다.”라고 하자
양떼를 다 잃게 된 주인이 대경실색하며 하소연했다.
이때 양 한 마리가 걸어 나와 마치 사람이 절하듯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고개를 숙이더니 일어서서 포졸들에게
“나를 알아보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포졸들은 놀라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가 말을 하는 그 양을 포박하려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나머지 다른 양들이 한 마리씩 모두 똑같은 동작을 하면서 “나를 알아보겠습니까?”라며 말하고 일어섰다.
이번에도 포졸들은 이 뜻밖의 사태를 맞아 어찌할 바를 몰랐다.
포졸들은 의기소침한 채로 궁궐로 돌아와 조조에게 사실대로 보고할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좌자가 양(羊)으로 변해 양떼 속에 섞여 보이지 않자 포졸들은 어느 것이 좌자인지 알 수가 없어 사실대로 조조에게 보고하였다.
이 말을 듣고 노한 조조는 “삼일 내에 좌자를 살아 있는 채로 잡아오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에게 죄를 묻겠다.”고 한다.
형옥을 담당하는 모든 관리들은 포졸들을 총동원하여 좌자를 체포하기 위해 우왕좌왕하는 데,
마치 뜨거운 가마솥 속의 개미처럼 갈팡질팡하며 허둥댈 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좌자 체포에 동원된 포졸들은 기한인 3일이 되었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마지막 날 저녁 무렵 포졸들은 무리지어 술집으로 들어가 풀이 죽은 채로 술잔을 기울이면서 내일 문책당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울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때 어디선가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포졸들은 일제히 고개를 출입구 쪽으로 돌려 바라보니 왼쪽 눈을 뜨고 오른쪽 눈을 감은 도인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도인은 유쾌한 듯 껄껄 웃으면서 몸을 가볍게 날려 술집 안으로 들어와 술상이 차려진 탁자 앞까지 다가왔다.
탁자 위의 술병을 들더니 꿀꺽꿀꺽 통쾌하게 술을 마신다.
이 광경을 보던 포졸들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으나 금방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십 명의 포졸들이 떼 지어 몰려들어 모두 힘을 합하여
쇠사슬로 이 도인을 묶었다. 이 도인이 바로 3일 동안 찾아 헤맸던 좌자였다.
감방 벽을 통과하고 분신 수십 명을 만들어
감옥에 들어간 좌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태연했다. 형옥의 관리들이 고문을 가하고 전말을 조사하기 위해 감옥 안으로 들어갔는데
감옥 안에 있던 좌자가 홀연 감옥 철문밖에 서 있었다.
감옥 밖으로 쫒아 나왔는데 이번에는 좌자가 감옥 안으로 사라졌다. 조사 나왔던 형옥의 관리들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사실을 보자 머리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워 어찌할 방법이 없어 조조에게 이 일을 보고하였다.
이 보고를 받은 조조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조조는 마음속으로 ‘좌자를 감옥에 다시 가두어 둔다 해도 형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생길 것이니 좌자의 목숨을 빨리 없애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조조는 즉시 다음날 정오에 좌자를 묶어서 저잣거리에서 공개처형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다음날 좌자를 압송하여 저잣거리로 데려가 형틀 위에다 묶었다.
죄인의 목을 베는 망나니가 춤을 추면서 바야흐로 막 사형을 집행하려 하는데 돌연 형틀 위에는 죄인을 묶었던 끈만 달랑 남아있고
좌자는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보고를 받은 조조는 그 자리에서 군사를 풀어 시가지 전체를 봉쇄하고 길마다 가로막아 불심검문을 하여 체포토록 하였다.
그리고 공개 지명수배령을 내리고 좌자의 얼굴을 그려서 거리마다 붙였다.
거리에 방으로 붙은 좌자의 형상은 애꾸눈을 하고 칡으로 만든 푸른 두건을 쓰고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이었다.
좌자에 대한 수배령이 내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거리마다 갈건을 쓰고 애꾸 눈 모습을 한 사람이 무수히 나타났다.
포졸들은 수배령에 그려진 사람과 똑같은 옷차림에 용모를 한 사람 수백 명을 모두 붙잡아 조조 앞으로 데려왔다.
좌자의 머리 사라지고, 달랑 짚단 하나만
조조가 좌자에 대한 공개수배령을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군사들이 좌자와 모양이 똑같은 수백 명을 붙잡아다 조조 앞에 대령했다.
조조는 이러한 사실을 듣고 분기탱천하여 머리 속에서 웅웅 소리가 나는 듯했다.
화가 치밀어 올라 노발대발하면서 명령을 내렸다. “빨리 그들을 모두 쫓아 버려라!” 그리고는 이어서 “오늘 이 시각 이후로 좌자를 보기만 하면 붙잡아서 데려올 필요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처형하라.”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을 내린 며칠 후, 스스로 좌자를 죽여서 머리를 베어 가져왔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좌자의 머리를 조조에게 진상하였다.
조조는 매우 기뻐하면서 몸소 좌자의 머리를 보고자 했다.
시체를 덮은 천을 걷어보니 그곳에는 짚단 하나가 달랑 놓여 있었다. 이를 보고 조조는 벌컥 화를 내면서 좌자의 목을 베었다고 자랑하던
그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었다. 사실 조조가 이 일로 화를 내고 있던 바로 그 때에 좌자는 이미 구름을 타고 형주(荊州) 땅에 도착해 있었다.
좌자, 형주 땅 유표에게 가다
이때 형주목사 유표(劉表)는 조조가 좌자를 체포하여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좌자가 이미 형주 땅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자 매우 당황스러웠다.
유표는 조조의 명령을 거스를 수도 없고 또 자신도 좌자에게 희롱당할지 모른다고 우려하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골머리를 앓다가 그럼 내가 먼저 좌자에게 한번 본때를 보여 주리라고 마음먹었다. 기회를 엿보아 이를 실행하기로 했다.
유표는 사람을 보내 좌자를 청했다. 진심을 숨기고 비위를 맞추기로 한 유표는 자기의 군대를 도열시켜 사열하게 했다. 좌자는, 많은 군사를 앞세워 위세를 부리려고 하는 유표의 속내를 다 알고 있었으나 짐짓 모르는 체하고 군대 사열을 마쳤다. 그는 군대 사열을 마치고 돌아와 유표에게 한마디 하였다.
좌자, 유표의 전 군대를 위로하다
“제가 작고도 보잘 것 없는 예물을 준비하였는데 유표장군님의 군대를 위로하고자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유표가 물었다. “도장께서는 몸 하나만 구름처럼 떠돌아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나 나의 군대는 실제로 숫자가 너무 많으니 선생께서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위로하고자 합니까?”
좌자가 가볍게 웃음을 보이면서 “제가 마련한 예물이 비록 부족하다하나 도리어 전체 군대에게 두루 상을 내릴 수 있습니다.”한다. 이 말을 듣던 유표는 내심 ‘좌자가 이번 일을 일부러 호언장담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차라리 이번 기회를 틈타 여차하면 좌자에게 죄를 물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도장의 넓으신 후의와 병사들을 생각하시는 그 마음에 감격할 뿐입니다. 그러나 무슨 물건으로 나의 군대를 위로할지 모르겠군요?”
좌자는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 놓여있던 술 한 단지와 육포 한 묶음을 가리키면서 “바로 이것들입니다.”하였다. 그 말에 유표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이 술과 육포는 단지 10여 명이 겨우 먹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하물며 수천 명 나의 군대를 먹일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형주목사 유표의 군대 사열을 받고난 후 좌자는 겨우 열명 정도가 먹을 술과 육포를 가리키면서 이것으로 전 군대가 먹을 수 있는 술과 고기를 선물하겠다고 했다.
좌자는 의아해하는 유표에게 구구한 설명없이 그 자리에서 실행에 옮겼다. 유표에게 각 부대에 명령을 내려 병사 백 명을 차출하여 술 단지와 고기가 걸려있는 곳으로 집합하도록 했다.
좌자는 품속에서 한 자루 칼을 꺼내더니 고기가 걸려 있는 곳으로 가서 한 덩이씩 잘랐다. 얼마 되지 않아 고기가 작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는 또 직접 국자를 들고 술 단지 앞에 서 있는 병사들에게 술을 퍼주었다.
술을 받으러 오는 술통이 얼마나 되든지 간에 좌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술통 가득 술을 채워주었다. 유표의 만여 명 병졸 모두 개인별로 술 석 잔에 한 덩이 고기를 맛보았는데 빠진 사람 하나없이 충분히 먹고 마셨다.
그리고 병사들뿐만 아니라 유표의 천여 명 손님들조차 모두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배가 부르도록 고기를 먹었다. 그 자리에 있던 손님들이 신기해서 좌자 앞에 놓여있는 술 단지를 살펴보니 그 속에는 처음처럼 술이 하나도 줄지 않고 그대로 있었으며, 그 한 무더기 육포도 그렇게 많이 잘라내었으나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유표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크게 놀라면서 한마디 던진다. “도장이야말로 진짜 신선(眞仙)이십니다!” 그는 좌자를 해치려 했던 그 마음을 완전히 버리고 정성을 다하여 진중에 머물도록 간청한다.
유표의 간절한 성의를 물리치기 어려워 좌자는 형주에서 수일간 머물렀다.
며칠이 지나자 유표에게 이별을 고하고 동쪽지방 오(吳)나라로 갔다.
초라한 행색으로 푸대접 받다
이때, 동오(東吳)는 손권이 권력을 잡고 있었다. 오나라는 산천이 수려해 뛰어난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영험한 땅이었다. 오나라에 온 좌자는 날마다 산수간을 한가로이 노닐면서 두루 도가(道家)의 고인들을 방문했다.
어느 날 하루 그는 ‘단도’(丹徒)라는 곳에 갔다. 이곳에는 이름이 ‘서타’(徐墮)라는 은자(隱者)가 있었는데 자못 도술이 있다고 소문이 나 친히 가서 만나보기로 했다. 이날 공교롭게도 서타도인 집에서 모임이 있어 손님 몇 사람이 좌자보다 한 걸음 먼저 도착했다.
그 손님들은 좌자의 얼굴과 행색이 변변치 못한 것을 보고는 무시하는 마음이 일어났는지 ‘서타 도인이 집에 계시지 않으며, 산속에 가셨는데 언제 돌아오실지 알 수 없다’면서 좌자를 속였다.
말을 마친 손님들은 그들이 타고 온 수레와 소를 문밖에 세워놓고 아무렇지 않은 듯 활갯짓하며 성큼성큼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좌자는 그 말을 잠자코 들으며 그들이 좌자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더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갔다.
좌자에게 '서타'(徐墮)도인이 집에 계시지 않다고 속인 후 '서타도인' 집안으로 들어간 손님들은 한참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불안과 초조가 온몸에 엄습해 오는데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그 자리를 떠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 부지불식간에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쩐 일인지 그들이 타고 온 수레를 끌었던 소가 보이지 않는다.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그림자조차 찾을 길이 없다.
그들이 우연히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때 마침 소들이 높다란 백양나무 가지 끝에서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믿을 수 없었으며 이게 무슨 조화인지 놀라면서 서둘러 백양나무 있는 곳으로 다가가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무 위에서는 이상하게 소가 보이지 않았다. 나무에서 내려와 다시 고개를 들고 나무 위를 쳐다보니 그 소들이 나무 위에서 여전히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잘라도 없어지지 않는 가시넝쿨
그들은 몸을 돌려 방금 전에 세워 놓은 수레는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니 수레바퀴 주위가 가시나무로 덮여 있었다. 정차해 놓은 잠깐 사이에 가시가 한자 이상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들은 도끼를 찾아 가시나무를 찍어 잘라 내었다. 쉬지 않고 도끼질을 하고 또 힘껏 잡아 당겨 보았으나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러한 돌발 사태에 겁을 집어 먹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황망히 집안으로 달려 들어가 말을 더듬거리면서 방금 전 밖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자초지종을 여러 사람에게 알렸다.
너나 할 것 없이 이 이야기를 못믿겠다면서 밖으로 나와 눈으로 확인해보니 사실 그대로였다. 모두들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말문이 막혔다.
이때 집주인인 '서타'가 그 사람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추궁하였다. 그 손님들은 방금 전 대문을 지나올 때의 일이 생각났던지 한마디 한다. “아까 애꾸 눈 노인 한 분이 이 집을 방문했는데, 우리들이 그를 하찮은 사람으로 여겨 ‘서타도인’이 집에 없다고 그 노인을 속였습니다.”
그 말에 서타도인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망쳤군! 망쳤어!” 하더니 손님들에 “그 분이 제가 만나 뵙기를 학수고대하던 바로 그 ‘좌자’어른입니다. 당신들이 어떻게 일을 그르칠 수가 있습니까? 서둘러 그 분을 쫓아가 사과합시다!”하였다.
그 자리의 많은 사람들은 일이 잘못 되었음을 눈치 채고 후회막급이었으나 서둘러 좌자 선인의 뒤를 쫓아갔다. 한바탕 달려가 마침내 ‘좌자’선인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손님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잘못을 사과했다. 좌자는 태연히 한번 웃더니 “아무튼 빈도가 한바탕 웃으려고 장난을 한 것이니 아무쪼록 개의치 마시오. 손님 여러분 돌아가시오. 나는 내 갈 길을 가겠소.”한다. ‘서타도인’과 손님들이 집으로 돌아와 수레와 말을 확인해보니 원래 그대로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이 일이 있고난 후 좌자의 종적은 표연히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후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일이 없었다. 신선이 되어 삼청(태청경, 옥청경, 상청경)세계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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