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金鰲新話에 나타난 鬼神의 媒介役割과 作中人物의 別世界 指向

醉月 2012. 12. 24. 07:49
金鰲新話에 나타난 鬼神의 媒介役割과
作中人物의 別世界 指向
李 學 周 *

 

목차

Ⅰ. 머리말
Ⅱ. 鬼神과 世界設定의 樣相
Ⅲ. 鬼神의 媒介役割과 別世界 指向
Ⅳ. 맺음말

Ⅰ. 머리말
전기소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작품에 등장하는 鬼와 神의 役割과 機能에 달려있다. 전기소설의 要諦는 奇異, 곧 傳奇의 해명에 있고, 전기소설에서 奇異는 鬼神이 주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귀신에 대한 천착은 우리의 文化現象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귀신에 대한 思惟는 民俗信仰·宗敎·哲學 등과도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귀신은 소설 뿐 아니라, 종교와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이
고 있다. 先人들은 인간이 사는 세계 외에 또 다른 세계를 설정해 놓고 그곳에 사는 인물을 귀신으로 보았다.

 

귀신이 있음으로 해서 死後世界에 대한 思惟도 가능하며,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요인을 전기소설의 작가들은 적절히 활용해서 평상시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을 빙자해서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전기소설은 귀신과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전기소설을 올바로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기소설에 등장하는 귀신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先學들은 梅月堂이 {金鰲新話}를 창작한 배경으로 {剪燈新話}의 영향과 說話 및 羅末麗初의 傳奇文學, 그리고 時代的 狀況 등을 그 요인으로 들고 있다. 물론, 매월당이 {금오신화}를 창작할 당시에는 여러 가지 기반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울러 매월당 자신의 생애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매월당이 {금오신화}에 다양한 鬼神을 등장시켰으며, 귀신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두 세계를 설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先學들은 이와 같은 궁금증을 여러 각도에서 논의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 김시습 의 鬼神觀과 연결시키거나 民俗的인 면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다보니, 作中의 귀신에 대한 존재를 理氣論에 따른 철학적 문제나 전통적 鬼神觀으로 처리하였다. 이는 작품 外的인 면에 치중한 논의로 작품의 內的인 실상과 거리가 있다고 판단된다. 비록 그러한 논의가 소설의 주제와 일치할지라도 소설에 대한 올바른 연구방법일 수가 없다. 가령, {金鰲新話}의 귀신을 거론하면서 {梅月堂集} 소재 論說에서 논거를 찾았던 것이다. 金時習이 거론한 논설과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귀신은 분명히 다르다. [南炎浮洲志]에서 朴生과 閻王의 대화가 {梅月堂集}소재 論說의 내용과 상반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소설이기 때문이다. 김시습이 그의 문집에서 거론한 귀신은 철학적 사유이며, 그와 달리 {금오신화}에서 귀신을 등장시켜 '현세'와 '별세계'를 설정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 것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의 주제는 작가의 철학적 사유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 인간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작가의 철학에 기인하는 것이다. 다만, 순수철학에서 확실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소설이 허구를 통해 이념을 제시 한다면, 철학은 사실적 사유에 바탕을 두고 전개한다는 것이다.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귀신은 작중의 서사장치일 뿐이며, 귀신 자체를 부각시키고자 한 것은 아니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이에 본고에서는 {금오신화}를 중심으로 작중의 귀신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주인공이 귀신과 만난 후 어떤 의식을 갖는가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래서 {금오신화}의 귀신과 세계에 대한 양상을 살펴보고 귀신과 작중주인공의 '별세계'에 대한 지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금오신화}에서 귀신이 왜 들어갔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창작한 배경과 창작목적이 함께 드러날 것이다.

Ⅱ. 鬼神과 世界設定의 樣相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鬼神은 크게 두 가지 양상을 띠고 있다. 하나는 <萬福寺樗蒲記>와 <李生窺墻傳>에 등장하는 女鬼이고, 다른 하나는 <南炎浮洲志>·<醉遊浮碧亭記>·<龍宮赴宴錄>에 등장하는 神的인 존재이다. 여기서 <취유부벽정기>의 箕氏女는 그 성격이 좀 모호한 면이 있으나, 鬼라기보다는 神的인 존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5편의 이야기에는 鬼와 神에 관한 언급은 빠짐없이 나온다. 다만, 그 주인공의 역할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이처럼 나누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류와 구분은 논의의 전개에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것이 鬼냐 神이냐에 따라 세계에 대한 설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뒤에서 자세히 언급될 것이다. 본고에서는 人間과 女鬼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유형을 人鬼交歡類로 보고, 人間과 神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유형을 人神交會類로 부르고자 한다.

 

人鬼交歡類의 경우는 '별세계'의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거나,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一時的으로 그 세계가 주어진다. 마치 {三國遺事}의 <未鄒王竹葉軍>, <桃花女鼻荊郞> 등의 설화와 같은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죽은 未鄒王과 舍輪王이 일정 기간 동안 특정한 시공에 머물면서 산 사람의 일에 관여를 한다. 이때 두 이야기의 차이는 미추왕은 나라를 위한 것이며, 사륜왕은 개인의 욕정을 위한 것일 뿐이다. 이들이 죽어서 머무는 시공은 현실계와 비현실계가 함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민속에서 말하는 죽은 자가 저승으로 가기 전의 잠시 머무는 세계라 할 수 있다. 김시습이 <神鬼說>에서 '强死한 귀신은 거울에 입김이 남아있는 것'처럼 있을 수 있다고 언급한 내용과 같은 것이다.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에서 인간과 여귀가 만나서 애정을 나누는 시공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시공은 주인공의 원망이 충족되면 소멸한다. <취유부벽정기>에서 남주인공 洪生과 여주인공 箕氏女가 달밤에 만나 詩를 주고받는 경우도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시공이므로 이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씨녀는 이미 神的인 존재로 볼 수 있으므로,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의 경우와는 다른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人間界도 神界도 아닌 시공에 나타나서 前生에 만났던 고독한 인간(<만복사저포기>의 남주인공), 이승의 남편(<이생규장전>의 남주인공)과 만나 이승에서의 怨恨을 해소하던가 애정욕구를 성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解寃의 시공은 永遠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양생은 그곳에서 3일을 머물렀다. … 양생에겐 그것들이 인간세상의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으나 여인의 은근한 정에 끌려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흘 후 여인은 양생에게 말했다. "이곳의 사흘은 인간세상의 3년과 같습니다. 도련님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셔서 옛날의 살림살이를 돌보셔야 합니다." (<만복사저포기>)

 

어느덧 두서너 해가 지난 어떤 날 저녁에 여인은 이생에게 말했다. "세 번째나 가약을 맺었습니다마는,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으므로 즐거움도 다하기 전에 슬픈 이별이 갑자기 닥쳤습니다."하고는 마침내 목메어 울었다. (<이생규장전>)

 

두 작품 모두 3년 또는 두서너 해로 만남의 시간을 설정했다. 이 기간동안 여귀는 생전의 恨을 어느 정도 풀게 되고, 남주인공은 고독과 시름을 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시공은 영원히 주어지는 시공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형성되었다가 사라지는 시공이라 할 수 있다. 인간과 여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만남으로 설정한 전기소설은 대부분 일시적 시공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시공은 인간이 사는 世俗時空이나 神들이 기거하는 영원한 神聖時空과는 또 다른 시공이라 할 수 있다. 金昌辰은 이러한 시공을 神聖界(chaos)와 世俗界(cosmos) 사이에 있는 chaomos라는 시공으로 설정하여 논의하였는데, 이러한 시공을 觀念으로만 보았다. 그러나 {금오신화}와 같은 전기소설에서는 귀신이 사는 시공이 관념으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實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전기소설에서 뿐 아니라, 民俗에서도 실재한다고 믿고 있으며, 祭祀나 致誠 및 祈禱를 할 때 설정하는 시간과 공간도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수 있다.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사고에서는 귀신의 실체를 믿을 수 없지만, 종교적 관점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제사나 치성을 하는 처지에서는 제단이나 치성공간에 그 시간만큼은 신성공간으로 믿게 된다. 이것은 전기소설에서 인간과 여귀의 만남 뿐 아니라, 인간과 神的인 대상간의 만남에서도 설정되고 있다. 곧, 祭祀나 致誠 및 祈禱를 할 때 인간의 기원을 神에게 갈구하면서 그 존재를 믿기 때문이다.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은 이와 같은 일시적 시공과 민속에서 원한 맺힌 사람이 죽으면 바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九泉을 떠돌다가 원한을 풀어야 저승으로 갈 수 있다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이때 저승으로 가기 전에 머물러 있는 九泉의 세계는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 존재하는 일시적인 세계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시적 세계의 鬼는 神의 통제를 엄격히 받고 있다. 鬼가 인간과 만나 해후하는 것은 鬼의 자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神의 배려에 의해 주어지고 있다. <만복사저포기>에서 梁生과 女鬼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의 배려에 의해서였으며, 3세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생규장전>에서도 戰亂이 있은 후 李生과 죽은 崔女의 만남은 天帝의 배려와 3세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절에 가서 복을 빌고 부처님 앞에서 향불을 피우면서 한평생의 박명을 스스로 탄식했더니 뜻밖에도 3세의 인연을 만나게 되었으므로 검소하고 부지런한 아낙으로서 고절을 받들어 평생을 모시고자 했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업보는 비낄 수 없어 저승으로 떠나야 하겠습니다. (<만복사저포기>)

 

"그러나 이제 봄바람이 깊은 골짜기에 불어와서 제 幻身이 이승에 되돌아왔습니다. 낭군과 저와는 3세의 깊은 인연이 맺어져 있는 몸, 오랫동안 뵙지 못한 정을 이제 되살려서 결코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이생규장전>)

 

이처럼 鬼는 神의 통제를 엄격히 받으면서, 神의 배려에 의해 인간과 못 다한 인연을 맺어나가고 있다. 이때 여귀는 그 통제를 거역할 수 없다. 이승의 인간이 그들을 더 붙잡아 두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3세의 인연과 神의 배려로 만났으나, 일정기간이 지나면 헤어져야 했다. 이러한 인식은 '현세'와 '별세계'에 대한 秩序意識의 한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같은 시공에서 언제나 함께 할 수 없다는 의식의 일환이다. 당대인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던 세계에 대한 관점이라 할 것이다. 아무리 귀신의 존재를 믿고 있을지라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귀신이 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여귀가 머무는 장소를 여인의 무덤이나 낡은 사찰 등으로 설정한 것이다.

 

여귀의 형상은 살아있는 인간과 흡사한 모습이나 또 다른 모습으로 구별을 시도했다. <만복사저포기>에서 梁生과 여귀가 만나 하룻밤을 즐긴 후 여귀의 집(무덤)으로 갈 때, 마을 사람들은 양생만 보고 여귀는 볼 수 없었고, 여귀의 부모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생규장전>에서는 보인다 안 보인다는 언급이 없으나 이삼년을 같이 살았다 했으니, 인간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애정을 나눌 때는 살아있는 인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고 하였다. 비록 여귀가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과 같을지라도 위의 예문에서 보듯이 일정한 기간이 주어져 있었다. 이것은 인귀교환류 전기소설의 보편적 현상이다.

 

한편, 人神交會로 이루어진 <醉遊浮碧亭記>·<南炎浮洲志>·<龍宮赴宴錄> 같이 영원한 神聖時空으로 설정된 작품은 '별세계'가 분명하게 그려져 있으며, '별세계'의 성격에 따라 그곳을 다스리는 神的인 인물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곧, 天上世界는 天帝, 龍宮世界는 龍王, 地獄世界는 閻羅王, 仙界는 神仙 등으로 분명하게 그 세계와 그 세계를 다스리는 인물이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도 天帝 외에는 모두 그 세계에 따른 역할이 주어져 있으며, 그 세계를 다스리는 인물들도 일종의 自治權과 같이 그에 따른 직책을 수행할 뿐이다. 그러면서 이들 세계의 인물은 절대자인 天帝의 명령을 따르고 있어 세계에 대한 秩序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질서는 인귀교환류에서 보는 질서의식과 다를 바 없으나, 그 성격에서 차이가 난다. 곧, 鬼의 세계는 원한 때문에 일시적으로 머물렀다가 원한을 풀고 또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한 중간의 세계인데 반해, 용궁·지옥·선계 등은 독립된 세계로 존재하며 신적인 인물이기에 귀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원한이 없다. 이들은 각각 자신들이 기거하는 세계에서만 활동할 뿐이며, 다른 세계와는 관련이 없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한다.

 

<취유부벽정기>에서 箕氏女는 箕子의 후손인데 王位를 찬탈 당하자 節槪를 지켜 죽고자 했다. 이에 神人이 된 箕子가 그녀를 이끌어 하늘에 올라가 神仙이 되어 上帝의 香案을 받드는 시녀가 되었다. 箕子는 바다 속의 섬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했는데, 상제가 계신 하늘나라를 자유로이 왕래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신선의 세계와 상제와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신선의 세계도 위계질서가 분명하며, 신선들도 자신이 맡은 직책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아울러 그 세계는 삶이 영원히 지속되는 세계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상제의 명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먼저 신선이 된 선조의 후광으로 자손에게도 그 기회가 주어지고 있어 흥미롭다. 이로 보아 神仙界는 天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인간계와 천계의 중간지점에 위치하나 천계에 예속된 세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신선은 시공을 초월하여 삶을 영위하며, 본인의 의사에 따라 地上과 天上을 왕래할 수 있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기씨녀의 형상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고 기술하였다. 홍생이 부벽정에서 기씨녀를 만났을 때, "여인의 몸가짐은 엄숙했고 의복은 단정했으며 분명히 귀족집 처녀 같았다."고 했으며, 여인 자신도 "나는 꽃과 달의 요정도 아니요, 연꽃 위로 거니는 미희도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홍생과 여인이 마주앉아서 음식을 먹을 때, "곧 시녀를 시켜 술을 권하는데, 차려놓은 음식이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시험삼아 씹어보아도 굳고 단단하여 먹을 수 없으며, 술도 마실 수 없었다."고 했다. 이에 여인은 "속세의 선비가 어찌 선계의 단술이나 용고기 포를 먹어보았겠소"라고 말한다. 이로 보아 기씨녀의 형상은 인간세상의 귀족집 처녀와 다를 바 없지만, 분명히 다른 세상의 사람임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나중에 홍생이 기씨녀가 어떤 사람인가를 묻자, 자신은 기자 조선의 후예이며, 선조의 후광으로 신선이 되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시를 짓고 공중으로 올라가는 장면에서도 보통 인간이 아니라 신선임을 나타내고 있다.

 

어느 날 박생은 자기의 거실에서 밤에 등불을 돋우고 글을 읽다가 베개에 기대어 옷을 입은 채 잤는데, 문득 한 나라에 이르니 곧 바다 속의 한 섬이었다. 그 땅에는 전혀 초목이라고는 나지 않았고, 모래와 자갈도 없었다. … 낮에는 피부가 불에 데어 문드러지고 밤에는 추워서 몸이 얼어붙곤 했는데, 사람들은 다만 아침저녁에나 약간 거동하며 웃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다지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 서울에 이르니, 사방 문은 활짝 열려 있는데 연못가에 있는 누각이 한결같이 인간세계의 것과 같았다. … 박생이 엎드려 감히 쳐다보지 못하니 왕은 말했다. "피차 사는 지역이 다른 사이인데, 이치에 통달한 선비를 어찌 위력으로 몸을 굽히게 할 수 있겠소." … "이 섬은 하늘과땅의 남쪽에 있으므로 남쪽 염부주라고 부릅니다." … "… 上帝의 명은 실로 엄합니다. 대개 나라는 백성의 나라이고, 명령은 하늘의 명령입니다." (<남염부주지>)
朴生이 炎浮洲를 꿈에 다녀온 후 실제로 죽어 閻王이 되어 갔다는 이야기이다. 炎浮洲의 형상은 일상적으로 地獄에 다름없지만, 그 위치는 바다 속의 섬으로 되어있다. 마치 <취유부벽정기>에서 仙界를 섬으로 나타낸 것과 같다. 그리고 염부주의 사람들은 인간세상의 사람들에 비해 자연환경이 아주 나쁜 조건이나 괴로워하지도 않고 아침저녁이나마 웃고 얘기하는 것으로 보아 지옥의 형상과는 또 다른 곳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임금이 있는 서울은 인간세상과 같다고 했으나, 인간세상과 염부주의 구별을 분명히 했다. 염부주는 살아있는 인간이 가는 곳이 아니라, 죽어서 가는 곳으로 처리한 것이라던가, 염왕도 죽어가서 일만 년을 넘게 그곳을 통치했다고 묘사한 부분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염부주의 염왕도 다른 작품의 鬼와 神처럼 上帝의 명에 복종하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염부주는 인간세상과는 달리 正道가 실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또 다른 理想鄕을 설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염왕과 박생이 대화를 할 때 곳곳에서 인간세상의 矛盾과 非理에 대해서 개탄하고 있으며, 능력은 있으나 기용되지 못하는 인간세상을 떠나 박생에게 염왕이 되어 염부주를 다스려 줄 것을 종용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이것은 염부주가 인간세상보다 낫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이에 박생은 염부주를 편력한 후 순순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염부주는 인물의 존재여부에 따라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시공이 아니라, 언제나 존재하는 영원한 시공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공이 비록 속악한 자연환경일지라도 그곳을 다스리는 임금의 자질에 의해 질서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 炎州의 지역은 … 火城은 천리를 뻗어있고 쇠로 된 산이 만 겹이나 되는데, 백성의 풍속은 강하고 사나우니, 정직한 사람이 아니면 그들의 간사하고 악독한 짓을 분별할 수 없으며, 地勢는 굴곡이 심해 험준하니, 위엄 있는 분이 아니면 그들을 교화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 선생은 정직하고 사심이 없으며,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으며, 여러 사람을 포용하는 자질을 갖추어 몽매한 사람을 깨우쳐 주실 재주를 가지고 계십니다. … 모든 백성이 영원히 믿고 의지할 분이 선생이 아니고 누구이겠습니까? 마땅히 도덕으로 인도하고 예법으로 정제하여, 백성들을 지극히 착하게 만들어 주시고, 몸소 실천하고 마음으로 깨달아 세상을 태평하게 해주실 일입니다." (<남염부주지>)

 

임금이 갖추어야할 자질에 대해서 명쾌하게 말하고 있다. 이처럼 염부주는 영원히 존재하는 시공이나 俗惡한 환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속악한 환경도 바르게 다스림에 의해 풍족하고 올바르며 질서있는 환경으로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은 염부주가 속악한 환경이지만, 전생의 죄인을 심판하는 단순한 지옥과는 거리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시습이 <남염부주지>를 통하여 보여주고자 했던 주제의식이라 할 것이며, 염부주를 바다 가운데 섬으로 설정한 것도 같은 의도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판단된다. 일반적으로 이상향은 외부세계와 차단되어 있으며, 그 차단은 물이나 바다 또는 깊은 산중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작품에는 일관되게 인간세상의 잘못된 일에 대해서 토론하고 개탄해 하며, 염부주는 정도가 실현되는 곳으로 언급한 것이다.

 

염왕의 형상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작품의 정황으로 미루어 그의 성격은 짐작할 수 있다. 작품에서 염왕이 된 내력을 말하는 부분에서 염왕은 강직한 성품에다가 상당히 합리적인 인식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죽은 지 만년이나 되는 인물이며, 자신의 자리를 박생에게 순순히 물러주는 덕스러운 염부주의 왕임을 알 수 있다.

 

어떤 날 한생은 거처하는 방에서 해가 저물 때까지 편히 쉬고 있었더니 靑衫을 입고  頭를 쓴 관원 두 사람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와서 뜰 밑에 엎드렸다. "박연못의 용왕께서 모셔오란 분부십니다." 한생은 깜짝 놀라 낯빛을 바꾸면서 말했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길이 막혀 있는데 어찌 통할 수 있겠소? 더구나 용궁은 길이 아득하고 물결이 사나우니, 어찌 갈 수 있겠소?" 두 사람은 말했다. "駿馬를 문 밖에 준비시켜 두었습니다. 사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거기에는 과연 총마 한 필이 있는데, 금안장 옥굴레에 누런 비단으로 배대를 둘러놓았는데 날개가 돋혀 있었다. … 말이 공중을 향해 나니 말발굽 아래 구름이 뭉게뭉게 이는 것만 보일 뿐, 땅에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용궁부연록>)

 

龍宮의 위치가 水中이나 海中에 있는 것도 空中에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처리했는데, 먼저 공중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언급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용궁세계의 두 관원이 韓生을 모셔가고자 할 때 공중으로부터 내려와 뜰 밑에 엎드렸고, 용궁으로 갈 때도 날개 달린 말을 타고 공중을 향해 날아가는데 말발굽 아래 구름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용궁에서 나올 때도 "마치 공중으로 올라 날아가는 것 같은데 다만 바람소리와 물소리가 잠깐 동안이라도 끊어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한생이 용궁을 구경할 때 朝元之樓에서 "이 누각의 위층은 구름 위에 솟아 있으므로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곳"이라고 하였고, 우레·번개·바람·비와 같은 일을 용궁에서 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이 같은 정황으로 보아서는 분명 용궁은 水海 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있는 어느 곳으로 볼 수 있다. <용궁부연록>의 용궁행차가 공중으로 날아다닌 사실을 양명학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하면서 김시습의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했다. 이러한 상상력은 김시습 고유의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동양적인 용에 관한 인식을 습용하여 작품을 창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韓生이 두 使者에게 말할 때 '용궁은 길이 아득하고 물결이 사납다'라고 하고, 朴淵에 龍神이 살고 있다고 했으며, 잔치에 초대된 용신들도 祖江神·漢江神·碧瀾神으로 水海와 관련이 있으며, 잔치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郭介士·玄先生 등이나, 한생이 용궁을 나올 때 용왕이 "두 사자에게 명하여 산을 뚫고 물을 헤치는 犀角을 가지고 인도하게 하였다."라는 내용 등으로 볼 때는 水海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용궁의 위치가 이렇게 모호하게 처리되는 것은 龍에 대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河孝吉의 언급에 따르면 先人들은 바다, 강, 연못에도 龍王神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이 용왕 신은 하늘과 물 속을 자유로이 왕래하면서 구름과 비 등을 다루는 그야말로 물의 조화를 일으키는 신으로 상정하고 있다."라고 했다. <東明王篇>에서 解慕漱가 공중에서 내릴 적에 五龍車에 몸을 싣고 내려왔고, 河伯의 딸 柳花를 맞이하고자 海宮에 들어갈 때도 "回報하되 天帝子며 貴門에 請婚하오. 指天하여 龍車불러 海宮으로 들어가다."처럼 용이 끄는 수레를 하늘에서 불러 타고 海宮으로 들어감을 알 수 있다. 또한, {剪燈新話} 소재 작품인 <龍堂靈會錄>에서 주인공 子述이 龍王塘 앞을 지나다가 白龍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民俗에서 용은 조화를 부리며, 水海中에 있다가 昇天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울러 中國의 神話에서도 河伯의 使者가 출동할 때, "그들은 사람으로 둔갑하여 붉은 갈기를 한 백마를 타고서" 다닌다고 하였으며, 하백은 白龍으로 변하기도 하고, 天帝의 통치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였다.

 

中國의 神話 가운데 龍伯國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이 용백국은 분명 용궁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용백국은 天神의 세계로 하늘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天帝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龍과 龍宮은 水海와 관련이 있으며, 하늘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밖에 龍은 君主의 상징으로 비유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三國遺事}의 <處容郞望海寺>條에서는 東海龍의 아들이 인간으로 변신하여 인간세상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용궁부연록>의 용궁은 준마를 타고 가며 공중을 날아 들어가는 것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또한, 용궁은 온갖 寶物이 즐비하고, 용왕은 풍요로운 생활을 일삼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남염부주지>나 <취유부벽정기>에서 볼 수 있는 炎浮洲나 仙界 및 天界의 세계와는 또 다른 곳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신화에서 水神인 河伯이 있는 곳과 흡사하다. 하백이 있는 용궁세계에서도 <용궁부연록>과 같이 온갖 보물이 즐비한 것으로 나와 있으나, <용궁부연록>처럼 正道가 실현되는 곳은 아닌 듯싶다. 인간계와는 거리감이 있어 <용궁부연록>처럼 친근감이 없다. 그러나 屈原의 {楚辭}<河伯>條에는 용신인 河伯은 풍요로운 생활을 하였고, 인간과의 관계가 원만한 것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三國遺事}의 <水路夫人> 이야기에서도 용궁에는 七寶宮殿에 음식 등이 인간의 것과는 다르다고 하였다.

 

<용궁부연록>도 다른 人神交會類의 작품과 같이 天帝의 지배를 받는 인간계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세계이다. 앞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용왕의 使者가 와서 남주인공 韓生에게 朴淵못의 용왕께서 모셔오라고 하자, 한생은 그 세계의 다름을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龍宮旅行을 할 때 한생이 雷公·電母·風伯·雨師의 소재를 묻자, 여행안내를 맡은 자가 "이들은 天帝께서 깊숙한 곳에 가두어 나와 놀지 못하게 하였다가 신왕이 나오시면 이에 집합시킵니다."라고 하였으며, 한생이 凌虛閣의 쓰임을 물으니 使者가 대답하기를 "이 누각은 신왕께서 하늘에 조회하실 때 그 儀仗을 정돈하고 그 의관을 치장하는 곳입니다."라고 했다. 이러한 언급은 용왕도 天帝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용왕의 형상은 "용왕은 切雲冠을 쓰고 칼을 차고 簡을 쥐고 뜰아래로 내려와서 맞이했다."는 언급밖에 없다. 그러나 작품의 서술 정황으로 보아 용왕은 예의를 갖추었으며, 인자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풍류를 즐기는 인물임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용궁에서 찾을 수 없는 문사를 인간계에서 불러 상량문을 짓게 하는 것으로 보아 혜안을 가진 인물로 형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Ⅲ. 鬼神의 媒介役割과 別世界 指向
{금오신화}에는 언제나 兩立한 두 世界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때 인간이 사는 세계를 '현세'라고 한다면, 鬼와 神이 사는 세계를 '별세계'라 할 수 있다. {금오신화}에서 설정한 두 세계 사이에는 相互 對立的인 면은 없고, 互惠的인 관계에서만 존속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세계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설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곧,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귀신의 설정 및 '별세계'에 대한 관점에 따라 달리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작품에 등장하는 귀신의 매개역할과 '별세계'에 대한 指向性을 알아보자.

 

人鬼交歡類에 해당하는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의 여귀는 남주인공의 媒介役割을 맡고 있으며, 남주인공은 여귀의 怨恨을 解消시켜주고 있다. 여귀는 <바리데기>巫歌에서 버려진 바리데기가 그 원한을 씻고 스스로 원혼을 위한 領導者가 될 기능을 쟁취한 것과 같은 입장이며, 巫堂이 내림굿으로 먼저 자신의 원한을 풀고 남을 구원하고자 나서는 것과 같다할 것이다. 이때 바리데기는 버려진 딸의 입장에서 父王으로부터 불림을 받아 원한을 풀게 되며, 죽음에 이른 父王을 구하기 위해 어려움을 자청하고 나섰다. 이후 저승에 있는 生命의 藥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고통을 겪고 난 후 약을 얻어서 父王을 구하고, 스스로 巫神이 되어 남의 원한을 씻어주기 위해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무당이 되기 위한 成巫節次에서도 나타난다. 微賤한 조건에서 身病體驗을 겪고 내림굿을 통해 降神을 한 후 남의 원한을 씻어주기 위해 나서는 과정도 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버려진 바리데기나 降神을 하기 전의 무당은 원한에 젖어있어 보잘것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자신의 원한을 씻고 남의 원한을 씻고자 나선 처지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인간의 존재에서 신적인 존재로 바뀌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바뀌는 데에는 '있는 세계'에서 '있어야할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있어야할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절차가 요구되는데, 그것이 신병체험에 따른 수많은 고통과 죽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역경을 이기고 '있어야할 세계'로 진입한 것은 이미 다른 존재로 바뀌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서 靈的 媒介者로 변신하여, 다른 사람을 구원해 줄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救援者이며 媒介者의 입장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의 여귀는 바리데기나 무당과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이들 작품에서 여귀는 바리데기와 같이 자신의 원한을 완전히 풀고 巫神이 된 상태가 아니다. 아직 원한이 남아 있어 자신의 원한을 풀어야만 하는 상태이다. 그래서 여귀는 자신들의 원한을 남주인공을 통해 풀고, 그 원한을 해소해 준 남주인공을 동시에 구원해 주고, '별세계'로 매개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 자신도 이 과정을 지나고 난 뒤 또 다른 세계로 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금오신화}에서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에 나타나는 여귀는 불행한 인간의 구원자이며, '별세계'로 이끌어주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은 아무 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남주인공이 絶對 孤獨이나 隔絶感에 처했을 때 벗어날 수 있는 突破口로써 주어지는 것이다.

 

<만복사저포기>의 남주인공 梁生은 어려서 부모를 잃은 孤兒에다 노총각으로 萬福寺라는 절 곁에서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사는 인물이다. 每月 달밤이면 배나무 밑을 거닐면서 다음과 같은 詩을 읊었다.
一樹梨花伴寂廖 한 그루 배꽃나무 적적함과 짝하는데
可憐孤負月明宵 가련한 외로운 몸 달밤을 만났구나
靑年獨臥孤窓畔 젊은 몸 홀로 누운 호젓한 들창가로
何處玉人吹鳳簫 어느 집 예쁜 사람 퉁소를 불어주랴
翡翠孤飛不作雙 외로운 저 비취는 짝 없이 날아가고
鴛鴦失侶浴晴江 짝 잃은 원앙새는 맑은 물에 노니는데
誰家有約敲碁子 어느 집과 인연 맺어 바둑알을 두드릴까
夜卜燈花愁倚窓 등불로 점치고는 창가에서 시름하네

 

고독한 노총각의 心事가 限界狀況에 달했음을 볼 수 있다. 인간이 慾求充足을 못하거나 현실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상황이 極에 이르면 새로운 세계를 갈구하게 된다. 절대고독에 처했다는 것은 양생의 의식이 이미 한계상황에 도달했다는 것이며, 현실계가 아닌 비현실계로 접어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詩를 읊자 空唱이 들려왔고 다음 날 부처님을 통해 절간에서 여귀를 만났던 것이다. 여기서 공창과 부처님은 양생과 여귀를 만나게 해주는 媒體며 神的인 媒介者였다.

 

여귀는 倭寇의 亂에 끝까지 貞節을 지키다 죽은 孫閣氏이다. 죽은 지 3년이나 지난 손각씨이다. 손각씨인 여귀의 바람은 현실계에서 이루지 못한 소원을 이루는 것이었다. 여귀가 부처님께 올리는 祝願文에 의하면, 여귀의 소원은 배필을 만나 즐거움을 얻는 것이었다. 처녀의 몸으로 전쟁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외부의 횡포로 인해 정절을 지키다 죽었으니, 여귀의 원한은 한계상황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죽은 지 3년이라는 기간이 지났는데도 혼령이 흩어지지 않고 억울함 때문에 저승으로 갈 수도 없었다. 여성에게 있어 최대의 가치로 알고 있었던 정절에 대한 보상조차 없었던 것이다. 여귀는 현실계의 모순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民俗에서 원한이 맺힌 귀신은 바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九泉을 떠돈다고 한다. <桃花女 鼻荊郞> 설화에서 舍輪王이 생전의 원망을 죽어서까지 충족했던 것은 살아서의 맺힘을 죽어서나마 풀고자 했기 때문이다. 舍輪王이 桃花女를 만나 원망충족을 한 후, 吉達이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인간과 귀신의 만남을 증명하며, 동시에 사후세계의 하나인 구천이 있음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은 사륜왕이 살아있는 도화녀를 만나 생전의 원한을 푼 것은 구천에서 저승으로 가기 위한 절차로 볼 수 있다. 민속에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혼례를 치루어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는 행위나, 虛婚을 통해 살아서의 원한을 씻어주는 풍습은 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아울러 佛敎에서 中陰神으로 있는 亡者의 魂을 49제를 통해 윤회와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도 같은 입장에서 볼 수 있다. 씻김굿이나 오구굿을 통해 저승으로 인도하는 巫굿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행위는 모두 구천을 떠도는 원령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절차라 할 수 있다. <만복사저포기>에서 여귀가 양생을 만나 해원을 하는 과정도 이러한 절차에 다름 아니다.

 

양생은 불행하고 고독한 인물이고, 여귀는 구천을 떠도는 원귀였다. 둘 다 현실계의 모순과 불합리에 대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현실계의 모순과 불합리는 인간과 鬼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부처라는 神에게 의탁해서 해결하고자 했다. 곧, 세속시공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신성시공에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계상황에 처했을 때 평상시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神과의 접촉이 주어졌고, 그것은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염원을 실천하는 장이었다. 부처님께 기원을 했던 것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위였다. 神이 기거하는 곳은 신성공간이며, 일상적 체험을 벗어난 종교적 체험으로 충만한 곳이다. 그러나 이 시공에서는 세속의 인간과 원한 맺힌 여귀가 언제나 기거할 수 없는 곳이다. 부처는 고독하고 불행한 인간과 원한 맺힌 여귀를 만나게 하여, 인간의 고독과 불행을 해소하고 여귀의 원한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뿐이다.

 

양생과 여귀에게 있어 부처가 제공한 배려는 그들의 불행과 원한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계상황에서 느끼는 절대고독과 원한을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가 주어진 것인데, 현실이든 비현실이든 이들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때 양생에게 나타난 여인은 양생의 절대고독과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 줄 구원자였다. 비록 여귀일까 의심이 들었지만, 개의할 문제가 아니었다. 여인의 말대로 배필만 구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여귀의 입장에서는 양생의 입장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양생은 여인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여귀는 양생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일찍이 蓬萊山에서는 약조를 어겼습니다마는, 오늘 이곳에서 옛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하늘이 준 행운이 아니겠습니까? 낭군께서 저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끝내 낭군의 시중을 들까 합니다. 만약 저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영원히 멀리 떠나겠습니다.
양생과 여귀는 전생의 인연으로 만났음을 알 수 있다. 양생이 모르던 전생의 인연을 말하며, 양생에게 접근한 여귀는 의도적이다. 여귀가 양생을 통하여 자신의 원한을 풀며, 동시에 양생의 고독과 불행을 해소하고자 나선 것이다. 여귀는 자신의 원한을 해소하는 동시에 양생의 불행을 해소하는 구원자와 양생을 '별세계'로 인도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자청한 것이다. 그래서 여귀는 양생의 배필이 되었고, 또 다른 세계로 이끌고자 사흘이 지난 후 양생과 여귀가 만난 곳이 인간세상과 다름을 말하며 이별을 고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또한 훗날을 기약하는 말을 남겨 이별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슬픔을 약화시켜주고 있다. 아울러 구천에 있는 여귀들과도 만남을 주선하고 詩會를 가졌다.
詩會의 마지막은 양생이 장식하는데, 이 詩에서 양생은 여귀들이 사는 곳을 仙界로 보고 있다.
今夕何夕 오늘 밤은 어떤 밤인가
見此仙姝 아름다운 선녀들을 만났다
雨尤雲雖未慣 운우의 즐거움은 익숙하지 못하지만
淺斟低唱相怡愉 술 따르고 시 읊으니 서로들 유쾌하네
自喜誤入蓬萊島 기뻐라 이제야 봉래도를 찾아서
對此仙府風流徒 선계에서 풍류도를 마주하네

 

양생이 여귀들을 만나고 느낀 정서를 읊은 것이라 과장은 있지만, 여귀를 만나기 전에 가졌던 고독한 심정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귀는 양생에게 현실계 外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보여 주었고, 또 다른 세계에서는 현실계의 고독과 불행이 해소될 수 있음을 암시해 준 것이다.

 

그러나 양생과 여귀가 만남을 가졌던 세계는 영원한 시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3일(이승의 3년)에 불과한 것으로 한계상황에 달한 고독과 불행을 잠시 해소할 수 있는 아주 짧은 기간일 뿐이었다. 전생의 인연과 天帝 및 부처의 배려에 의해 주어진 일시적 시공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들은 영원한 시공을 갈구하고 있었다.

 

여귀는 자신의 윤회과정을 양생에게 모두 보여주고 있다. 은주발로 여귀의 부모에게 양생과 만났음을 입증하고, 佛齋를 받으며 양생을 통해 원한을 씻는다. 그리고 여귀는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고, 양생에게도 윤회를 벗어나라고 제안한다.
장례를 지낸 후 슬픔을 이기지 못해 토지와 가옥을 다 팔아 연달아 사흘 저녁 동안 재를 올렸더니, 여인이 공중에서 부르며 말했다. "저는 낭군의 은덕을 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유명은 다르지만 은덕에 깊이 감사를 표합니다. 낭군께서도 이제 다시 정업을 닦으시어 저와 함께 윤회를 벗어나십시오." 양생은 그 후 다시는 장가가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살았다고 하는데,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는 아는 이가 없었다.

 

이처럼 여귀는 자신의 윤회를 空唱을 통해 양생에게 알려주었고, 양생에게도 정업을 닦아 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일러주었다. 이때 여귀가 他國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난 것은 '별세계'로의 귀의를 의미하며, 양생 역시 '入智異山採藥, 不知所終'한 것은 '별세계'로 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생규장전>은 전란이후에 崔女가 죽음으로써 매개자의 역할이 나타나고 있다. 전란이전에는 현실의 문벌에 따른 혼사장애가 주어지나 최녀의 적극적 항거로 혼인을 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한 혼인생활은 전란이라는 외부적 횡포에 의해 파탄을 맞이하게 된다. 행복과 불행이 교차되는 사건이었다.

 

전란이후의 이생과 최녀는 앞서 본 <만복사저포기>의 양상과 흡사하다. 남주인공은 고독과 불행에 처하게 되고, 여주인공은 貞操를 지키려다 죽어 원한이 맺힌 원귀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래의 인용문과 같이 天帝의 배려로 못 다한 인연을 이을 수 있었다.

이생은 전란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왔으나 양가 부모와 아내까지 모두 죽었으며 집마저 타버렸다. 갑자기 불행이 닥쳐와 고독한 신세가 되었다. 이때 죽었던 아내가 밤중에 나타났다. 이생의 입장에서는 死者든 生者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생은 아내가 이미 죽은 줄 알면서도 반갑게 맞이해서 戰後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여귀가 된 최녀는 이생과 마찬가지로 불행하게 되었으며, 그것도 여인에게 있어 최대의 가치로 알고 있는 貞操를 지키려다 적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원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그래서 원귀가 된 여인은 자신의 원한을 씻고자 했을 것이다. 이에 생전에 남편이었던 이생에게 돌아왔다.

 

"해골은 들판에 던져졌고 몸뚱이는 땅에 버려지고 말았으니, 생각하면 그 옛날의 즐거움은 오늘의 이 비운을 위해 주어진 것인가 합니다. 그러나 이제 봄바람이 깊은 골짜기에 불어와서 제 幻身이이승에 돌아왔습니다. 낭군과 저는 전생의 깊은 인연이 맺어져 있습니다. 오랫동안 뵙지 못한 정을 되살려서 결코 옛날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낭군께서 지금도 3세의 인연을 알아주신다면 끝내 모시고자 합니다. 낭군께서는 허락하시겠습니까?" 이생은 기쁘고 고마워서 "진실로 바라던 바요."하고는 서로 즐겁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전쟁으로 인해 갑자기 닥쳐온 불행이었다. 고독과 불행에 처한 이생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여귀는 이생의 고독과 불행을 해소해 줄 구원자였다. 원귀이면서도 구원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생의 남편에게 작폐를 하든가 자신의 원한만을 씻고자 한 것은 아니다. 여귀는 이생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었다. 갑자기 닥친 이생의 불행을 씻어 주고자 했으며, 전쟁 중에 죽어 흩어진 부모의 유골을 거두고, 못 다한 애정을 잇고자 한 데 있었다. 그리고 여귀는 마지막으로 이생 곁을 떠나면서 흩어진 자신의 유골을 거두어 줄 것을 부탁했고, 이생은 그녀의 유골을 거두어 부모의 무덤 곁에 장사를 지내 주었다.

이 과정을 통해 이생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여귀는 자신의 원한을 씻고 저승으로 갈 수 있었다. 이것은 다음의 내용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여인은 대답했다. "冥數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天帝께서 첩과 낭군의 연분이 끊어지지 않고 또 전생에 아무런 죄악도 없었으므로 이 몸을 환신시켜 잠시 낭군을 뵈어 시름을 풀게 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있으면서 산 사람을 유혹할 수는 없습니다.
이생과 여귀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이승의 삶에 대한 보상행위이며, 두 사람의 연분이 끊어지지 않은 데 대한 天帝의 배려에 의해서였다. 여

 

귀를 幻身시킨 궁극적 목적은 이생의 시름을 풀고자 한데 있었다. 곧, 여귀가 환신하여 이생을 만났던 것은 이생의 고독과 불행을 해소하기 위한 구원자며, '별세계'로 이끈 매개자의 역할에 있었던 것이다. 여귀 역시 이를 통해 자신의 원한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둘의 만남은 영원히 주어질 수 없었다. 위의 인용문에 나타났듯이 인간과 귀신, 이승과 저승의 세계가 다르고, 정해진 冥數를 어길 수 없으며, 죽은 자가 산 자와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없다는 幽明間의 秩序意識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여귀는 이생을 남겨두고 '별세계'로 떠나갔다. 이생도 여귀가 떠난 후 "아내를 지극히 생각하다가 병을 얻어 몇 달 후에 죽었다."라고 했다. 이생의 죽음은 부인에 대한 지극한 애정에도 있었지만, 참혹한 전쟁과 슬픈 이별이 없는 '별세계'로의 지향의식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통과의례의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품의 서술 정황으로 보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작품 말미에 여귀가 된 부인이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 전에, 이생은 "차라리 부인과 함께 저승으로 갔으면 하오. 어찌 무료히 홀로 남은 생을 보전하겠소."라는 언급에서도 명확해 진다.

 

한편, 人神交會類에서 <醉遊浮碧亭記>의 箕氏女, <南炎浮洲志>의 閻王, <龍宮赴宴錄>의 龍王은 인간세계의 고독하고 불행한 인간을 구원해준 구원자이며, 모순과 비리로 얼룩진 '현세'에서 모순과 비리가 없는 '별세계'로 향하게 한 매개자라 할 수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미 별계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巫神이 된 바리데기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바리데기가 억울하게 죽은 死者들의 영혼을 他界에 인도하는 역할을 하듯이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신적 존재들도 그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神的 존재들은 현실계에서 불행한 인물들을 '別界旅行'을 시켜, 현실계 외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그들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들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여 준다.

 

그러나 이들도 일방적으로 도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의 인물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듯이, 인신교회류의 인물들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었다. <취유부벽정기>에서 洪生과 箕氏女는 浮碧樓에서 만났을 때 懷古詩를 읊으며 서로 교감을 했다. 이때 홍생은 기씨녀에게 옛날의 회포를 풀게 했고, 기씨녀는 홍생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天帝께 아뢰어 牽牛星 屬官이 되게 했던 것이다. <남염부주지>에서 朴生은 閻王을 통해 '현세'에서는 알아주지 않던 정직함을 인정받아 염부주를 여행하고, 염왕의 부탁을 들어주어 염왕의 뒤를 이었다. <용궁부연록>에서 韓生은 '현세'에서 알아주지 않던 능력을 龍王에게 인정받았고, 그 보답으로 용궁의 上梁文을 써 주었다. 이처럼 이들 인물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었다.

 

또한, 이들 인물도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의 인물과 같이 아무 때나 '현세'와 '별세계'를 넘나들고, '별세계'의 神的 인물과 만날 수는 없었다. 현실계 인물이 절대고독이나 불행에 처했을 때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로써 별계여행은 주어진 것이다. 비록 꿈(<남염부주지>와 <용궁부연록>의 경우)이나 非夢似夢(<취유부벽정기>의 경우)간일지라도 작중 주인공의 별계체험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계 밖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신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별계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들의 품속에 있는 信物 또는 神物로 인해서다. 그리고 작품 끝에 주어지는 신이한 행적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이처럼 작중인물이 절대고독이나 불행에 처했을 때 별계여행을 하게 되며, 이들 인물의 별계체험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작중 주인공은 '별세계'를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작중 주인공은 현실계인 이 세상에서는 현실의 모순과 비리 및 불합리한 일들을 풀 수 없다고 본 것이며, 비현실계인 '별세계'에서는 그러한 모순과 비리 및 불합리가 없는 세계임과 아울러 현실의 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작중 주인공들은 '별세계'의 인물과 만난 후 한결같이 '현세'를 떠나 '별세계'로 귀의하고 있었다.

 

작중 주인공이 현실의 문제를 풀기 위해 '별세계'를 지향하게 된 또 다른 계기는 '별세계'에 기거하고 있는 神的 존재들의 매개에 의한 것이다. 마치, 神話의 주인공들이 天上의 문화를 地上에 전파하여, 지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신화의 주인공이 지상에 강림할 때는 지상에서 간절히 기원하거나 지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해결을 필요로 할 때이다. 이때 신화와 전기소설은 매개양식이 다른 뿐, '현세'와 '별세계'라는 시공설정과 매개적 기능은 비슷하다. 이는 신화의 주인공이 天上의 문화를 地上으로 전파하고, 보다 세련된 통치력으로 지상의 인간들을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고 있음에서 그렇다. 이러한 신화의 매개적 요인은 {금오신화}의 창작원리에도 적용되고 있다. {금오신화}가 '현세'와 '별세계'라는 두 시공을 설정한 면이라든가, 鬼와 神을 매개로 작중 주인공을 이끌어서 그 의식세계를 변화시키고, '별세계'로의 지향성을 보이는 것은 {三國遺事} 소재 신화에서 보이는 현상과 일치하고 있다.

 

이를 각각의 작품에 따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醉遊浮碧亭記>의 洪生은 儒生의 신분이었으나 장사꾼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밤중에 작은 배를 저어 浮碧亭가에서 高句麗에 대한 懷古詩를 읊으며 혼자서 춤을 추고 울었던 것으로 보아 홍생은 고독하고 불행한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이때 나타난 것이 神仙이 된 箕氏女였다. 홍생의 절대고독이 비록 비몽사몽간이지만 별계체험을 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되었던 것이다. 기씨녀는 이미 홍생의 詩를 듣고, 홍생의 悲運을 알고 있었다. 이에 기씨녀도 옛날을 회고하는 詩를 읊어 화답을 했다. 기씨녀의 和答詩에는 홍생을 '별세계'로 이끌고 있음을 넌지시 밝히고 있다.

 

君今自是兩塵隔 그대는 지금부터 세속인연 벗었으니

遇我却賭千日歡 나를 만나 오랫동안 즐거움을 볼 걸세
이후 기씨녀는 곳곳에서 인간세상의 허망함을 이야기하며, 홍생을 '별세계'로 이끌고 있다. 이로 인해 홍생은 기씨녀가 떠난 후 병석에 눕게 되었고, 죽어서 '별세계'로 갈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홍생은 꿈을 꾼 후에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이때 홍생은 기씨녀와 만나면서 벌써 '별세계'를 間接體驗한데 따른 것이다. 다음 인용문에서 이를 명확히 해준다.

 

홍생이 하루는 꿈에 엷은 화장을 한 여인이 와서 告하는 것을 보았다. "아씨께서 상제께 아뢰었더니, 그 재주를 아깝게 여겨 견우성 막하에 예속시켜 속관을 삼게 하였습니다. 상제께서 명하신 것이니, 가히 피할 수가 없습니다." 홍생이 놀라 깨어, 집안사람들에게 일러 자기 몸을 깨끗이 목욕시켜 옷을 갈아 입히게 하고, 향을 사르고 땅을 쓸고 뜰에 자리를 펴게 했다. 그는 턱을 괴고 잠시 누웠다가 갑자기 죽었는데, 9월 보름이었다. 죽은 지 며칠이 지나도 안색이 변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신선을 만나 屍解되었다고 했다.
'별세계'에 대한 간접체험이 있었기에, 홍생은 꿈속에서 본 일을 따라 꿈을 깬 후에도 '별세계'로 순순히 향하고 있는 것이다. 牽牛星 屬官이 되어 '별세계'로 향한 것은 기씨녀의 매개에 의한 것이다. 아울러 홍생도 '현세'를 떠나 '별세계'로 가고자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南炎浮洲志>에서 朴生은 능력은 있으나 여러 번 科擧에 떨어져 불쾌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세력에 굴복하지 않는다고 하여 사람들이 오만한 청년이라고 했다. 이로 보아 박생도 불행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과 사귈 때에는 태도가 성실하고 순박해서 칭찬을 듣는 선비였다. 그는 일찍이 一理論이라는 글을 지어 자신을 깨우쳤는데, 그 글은 세상의 이치에 관한 것이었다. 이때 박생은 꿈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間接體驗하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炎浮洲에 사는 閻王이 박생을 부른 것이다. 박생은 염왕을 만나 의문을 풀고, 염왕의 대를 잇도록 부탁을 받는다.

 

그러나 정직하고 사심없는 사람이 아니면, 하루라도 이 땅의 임금이 될 수 없습니다. 과인이 들으니, 그대는 정직하고 뜻이 굳어 세상에 있으면서 굴하지 않았다 하니, 참으로 달인입니다. 그러나 그 뜻을 세상에서 한 번도 펴보지 못했으니, 형산의 옥 덩이가 먼지 이는 벌판에 버려지고, 밝은 달이 깊은 못에 잠긴 것과 같습니다. 재주있는 장인을 만나지 못하면 누가 진짜 보물을 알겠습니까?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 나는 時運이 이미 다해 장차 이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그대도 역시 命數가 이미 다했으니 곧 인간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이 나라를 맡아 다스릴 사람이 그대가 아니면 누구이겠습니까?

 

이처럼 박생은 꿈속에서 別界體驗을 하고, 자신을 알아주는 염왕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염왕으로부터 임금의 자리까지 물려받으라는 언지를 받았다. 이로써 박생은 '현세'의 불행을 '별세계'에 기거하는 염왕을 통해 한번에 풀 수 있었다. 염왕은 박생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으며, 모순과 비리와 불합리가 가득한 인간세상으로부터 박생을 구원해주고, 박생에게 인간세상 외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또 다른 세계는 비록 자연환경이 열악하고, 그곳에 사는 백성들도 전생에 부모나 임금을 죽인 大逆姦凶들이지만, 正道가 실행되는 곳이었다. 正道가 실행된다는 것은 인간세상의 불합리한 면보다는 나은 세상임을 말하는 것이다. 염왕은 이 같은 세계로 오도록 박생을 媒介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보았던 염왕의 禪位文에서도 잘 나타난다.

 

눈을 떠서 보니 서책은 책상 위에 던져져 있고 등잔불은 가물거리고 있었다. 박생은 감격하고 의아해 하다가 장차 죽을 것을 생각하고 날마다 집안 일을 정리하는데 마음을 기울였다. 몇 개월 후 병을 얻었는데 결코 살아나지 못할 줄 알았으므로 의원도 무당도 멀리하고는 죽었다. 그가 죽으려 하던 날 저녁에 이웃집 사람의 꿈에 神人이 나타나서 "네 이웃에 사는 박생은 염라왕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박생은 꿈에서 체험한 일을 순순히 따르고 있다. 비록 꿈이지만 현실의 모순과 비리를 개탄하고 있던 박생에게는 모순과 비리가 없는 염부주가 훨씬 낫다고 여겼을 것이다. 능력은 있으나 알아주지 않던 인간세상과는 달리 염부주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줄 뿐 아니라, 합리적이며 정도가 실행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생은 꿈에서 겪은 일을 꿈을 깨고도 그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박생이 꿈꾸던 세상이었으며, 또한 작가인 金時習이 꿈꾸던 세상이었다.

 

김시습은 {梅月堂集} 소재 <神鬼說>에서 强死한 鬼神의 존재를 말하며, "지극히 잘 다스려지는 세상과 지극한 사람의 분수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라고 했다. 현실의 문제를 개탄하는 것이다. 이에 김시습은 <남염부주지>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했으며, 죽어서나마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랐던 심정을 박생을 통해 나타낸 것이다. 김시습이 새로운 세계를 지향했듯이, 작중의 박생은 '별세계'인 염부주를 향해 간 것이다.

 

<龍宮赴宴錄>에서 韓生도 어려서부터 글을 잘 지어 조정에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文士로써 평판이 있었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불행한 선비였다. 비록 文士로써 평판이 있다고 하지만, 그 쓰임을 얻지 못하고 있는 한생에게 '별세계'의 인물인 龍王이 한생의 능력을 알아 불러 준 것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용왕에게 한생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어 보답을 했다. 용왕의 딸을 위해 지은 佳會閣의 상량문을 한생이 지어준 것이다.

 

풍문에 의하면 선생은 재주가 뛰어나 이름이 三韓에 나타났고, 재주가 百家에 으뜸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먼 곳으로부터 모셔온 것입니다. 나를 위해 상량문을 지어주시면 다행스럽겠습니다.
한생은 쓰기를 마치고 용왕께 나아가 바치니, 용왕은 크게 기뻐했다. 이에 세 신에게 보도록 하니, 세 신은 모두 떠들썩하게 감탄하고 칭찬했다.

 

용왕은 이미 한생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용궁으로 모셔갔으며, 깍듯이 대접을 하며, 상량문을 써 준 대가로 잔치를 베풀고, 선물까지 주었던 것이다. 이로 보면 용왕과 한생도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생의 경우도 꿈에서 龍宮旅行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리가 그치어 눈을 떠보니 다만 자기가 거처하는 방에 누워있을 뿐이었다."는 언급은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꿈속에서 '별세계'인 용궁을 체험한 것인데, 한생은 실제로 '별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작품 끝에 "그 후 한생은 세상의 名利에는 뜻을 두지 않고, 명산에 들어갔는데 마친 바를 알 수 없었다."라고 했는데, 이 언급은 <만복사저포기>에서 梁生이 "入智異山採藥, 不知所終"한 것과 같은 입장이다. 한생이 용궁여행 후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고 '현세'를 떠나 '별세계'로 향해 간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용왕은 한생으로 하여금 '현세' 뿐 아니라, '별세계'가 있음을 인식시켜 주었다. 그리고 '별세계'는 능력에 따라 공정한 대우를 받는 곳임을 용궁여행을 통해 알게 해 주었다. 곧, 용왕은 매개자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용왕의 매개로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된 한생은 '현세'에 머물지 않고 '별세계'로 향한 것이다.

 

<용궁부연록> 역시 작가인 김시습의 꿈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이미 많은 先學들에 의해 지적된 바와 같다. {금오신화}가 寓意的 기법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김시습은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으나, 그 능력을 발휘할 세상을 만나지 못했다. 어렸을 때 世宗에게 불려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장성한 후에 크게 쓰리라 언지를 받았던 김시습은 端宗 遜位事件으로 뜻을 펼 수 없게 되자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에 김시습은 <용궁부연록>을 통해 스스로 위로하고, 또 자신을 알아줄 군주를 꿈속에서나마 기다렸던 것이다. 작중에서 한생이 능력은 있으나 쓰임을 얻지 못했던 것은 현실의 모순과 비리를 개탄한 것이며, 꿈을 통해 용궁여행을 하면서 용왕을 만나 자신의 능력을 펼 수 있었던 것은 한생의 소원성취이자, 김시습의 꿈이기도 한 것이다.

 

Ⅳ. 맺음말
지금까지 {금오신화}에 나타난 鬼神의 媒介役割과 작중 인물의 別世界 指向에 대해서 고찰해 보았다. {金鰲新話}에서 '현세'와 '별세계'라는 두 세계가 주어진 것은 전기소설의 서사기법이다. 그리고 神聖時空에 대한 동경은 이미 古代人들이 갖고 있던 것이었으며, 김시습은 이를 받아들여 {금오신화}를 창작했다고 볼 수 있다.

 

{금오신화}에 나타난 귀신의 세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鬼가 머무는 세계와 神들이 기거하는 세계였다. 鬼의 세계는 전쟁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寃鬼들이 원한을 해소하고 또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해 설정된 세계였다. 이러한 세계는 원한을 푸는 동안만 존재하는 일시적 세계로 인간계와 신계의 중간지점에 있는 세계였다. 鬼의 형상은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나 구별을 했으며, 惡鬼가 아니라 善鬼였다. 이들 鬼가 인간과 접촉하는 기간과 인간과 만나서 원혼을 푸는 행위는 부처나 天帝의 배려에 의해서였다.

 

神의 세계는 仙界(天界)·炎浮洲·龍宮으로 나타났으며, 각각의 세계마다 그곳을 다스리는 神들과 세계의 설정을 독특하게 묘사했다. 이 세계는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세계가 아니라, 언제나 존재하는 영원한 세계였다. 그리고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상향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神의 성격은 대체로 관대하며 합리적이었고, 그 모습은 구체적 표현이 없고 일반적인 형상을 나타냈다. 이들의 세계는 각각 독립된 세계이기는 하나 天帝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나름대로 자치권을 행사할 뿐이었다.

 

鬼神의 媒介役割과 別世界 指向에서는 作中 人物의 處地와 관련하여 살펴보았다. 人鬼交歡類의 경우는 女鬼가 남주인공의 媒介役割을 맡고 있으며, 남주인공은 女鬼의 怨恨을 解消시켜주고 있었다. 곧, 女鬼는 인간을 통해 자신의 怨恨을 씻고, 고독하고 불행한 인간들을 구원하고자 나선 救援者이며, '현세'에서 '별세계'로 연결해 주는 媒介者였다. 이때 남주인공들은 여귀와 만난 후 '별세계'로 가고자 하는 지향성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별세계'로 향해 갔다.

 

人神交會類의 작중인물들도 고독하고 불행한 인간들이었다. 이때 '별세계'에 기거하고 있는 神들이 구원의 손길을 뻗친 것이다. 이들 역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었다. 현실의 인물은 別界體驗을 한 후 한결같이 '별세계'로 가던가, 不知所終했다고 해서 '별세계'로 간 것으로 暗示를 하고 있었다. 이때 '현세'는 현실의 모순과 비리와 불합리가 판치는 세계이며, '별세계'는 모순과 비리가 없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세계로 나타났다. 그래서 현실의 인물은 모두 '별세계'에 대한 지향성을 보이고 실천했던 것이다. 이로 보아 '별세계'의 神들은 모두 '현세'의 인물을 '별세계'로 향하게 한 매개자였다.

이처럼 {금오신화}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현세'의 모순과 비리를 벗어나, 鬼神의 救援과 媒介를 통해 '별세계'로 향했다. 이러한 양상은 작가인 金時習의 꿈이었으며, 독자들의 꿈이기도 한 것이다. 현실 밖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을 때, 현실의 고독과 불행은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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