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과 뜸
많은 사람이 침·뜸 치료를 좋아하는 것은 침·뜸(鍼灸)은 약물의 부작용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약을 복용하는 것에 비해 치료가 편하고 효과도 빠르기 때문이다. 침·뜸은 임상에서 응용하기가 아주 좋고 효과적인데 혈자리를 정확히 찾을 수만 있다면 대부분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간단하고 실용적인 천성(天星) 12혈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사람 몸에 12경락(經絡)이 있어 1년 12달에 대응하고 365개의 마디가 있어 1년에 대응하기 때문에 사람의 혈자리(穴道)는 360개가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명(明)나라 때의 유명한 침구서적 ‘침구대성(鍼灸大成)’에서는 인체에 361개의 혈(穴)이 있다고 했다.
사람 몸에 있는 361개의 혈자리는 12개 ‘정경(正經)’과 임독(任督) 두 맥에 분포되어 있다. 그런데 경락에 따라 혈자리의 숫자가 같지는 않아서 가장 많은 방광경(膀胱經)에는 67개의 혈이 있지만 심경(心經), 심포경(心包經)에는 각각 9개에 불과할 뿐이다. 문제는 혈자리가 너무 많기 때문에 임상(臨床)에서는 대체 어떤 혈을 골라 써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이 자리에서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인 12개의 침구 혈자리를 소개한다.
명나라 때 어떤 의사가 사용하기 편리하고 효과가 좋은 12개의 혈자리를 발전시켰는데 ‘침구대성’에서는 이를 ‘마단양천성12혈(馬丹陽天星十二穴)’이라 했다. 이 12개의 혈자리는 모두 ‘12정경’에 속하는데 오수혈(五兪穴 각 경락에서 오행의 속성을 지닌 5개의 혈), 원혈(原穴), 낙혈(絡穴) 혹은 큰 관절에 위치해 임상에서 아주 중요하며 효과적인 혈들이다. 어느 정도로 효과가 있는가 하면 이 12개의 혈만으로도 전신의 거의 모든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침구대성’에는 ‘마단양 천성 12혈로 잡병을 치료하는 노래(馬丹陽天星十二穴治雜病歌)’가 편성되어 수록되어 있다. 먼저 전체 구결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삼리내정혈(三里內庭穴) 곡지합곡접(曲池合谷接)
위중배승산(委中配承山) 태충곤륜혈(太衝崑崙穴)
환도위양릉(環跳爲陽陵) 통리병열결(通里幷列缺)
합담용법담(合擔用法擔) 합절용법절(合截用法截)
삼백육십혈(三百六十穴) 불출십이결(不出十二訣)
치병신여령( 治病如神靈) 혼여탕발설(渾如湯潑雪)
북두강진기(北斗降眞機) 금쇄교개철(金鎖敎開徹)
지인가전수(至人可傳授) 비인막랑설(匪人莫浪說)”
여기서 삼리, 내정, 위중, 승산, 태충, 곤륜, 환도, 양릉천, 통리, 열결은 모두 혈자리 이름이다. 이 노래의 요지는 인체에는 비록 360개의 혈이 있지만 보법(補法)과 사법(瀉法)을 구별해 제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이 12개의 혈만으로도 무슨 병이든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12개의 혈자리는 병을 고치는데 신통한 효과가 있어 마치 눈 위에 뜨거운 물을 뿌리는 것처럼 단번에 녹아버리며 이는 북두칠성의 신이 진기(眞機)를 전수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침을 찌르면 쇠로 된 자물쇠조차 열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내용은 이 노래의 마지막에 지인(至人 근기가 좋고 덕이 있는 사람)은 전수할 수 있지만 비인(匪人 근기가 부족하거나 덕이 없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는 구절이 나온다. 다시 말해 이런 뛰어난 기술은 덕성(德性)이 좋은 제자에게만 전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참고로 이상의 12혈 중 8개는 다리에 있고 4개는 팔에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 12개 혈자리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 삼리혈(三里穴)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의 합혈(合穴)에 속한다. 다리에 위치해 족삼리(足三里)라고도 하는데 침구(鍼灸)에 대해 약간의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혈자리다. 매우 중요한 혈이기 때문에 보양(保養)에도 쓸 수 있고 치료에도 요긴하다. 노래에서는 ‘삼리는 슬안 3치 아래 근육 사이에 있다(三里膝眼下, 三寸兩筋間)’라고 하여 삼리혈의 위치를 말했다. 여기서 슬안(膝眼)이란 독비(犢鼻)라고도 하는데 무릎을 구부릴 때 무릎인대 양쪽에서 움푹 들어가는 곳을 말한다. 그 모양이 마치 송아지 콧구멍처럼 생겼다고 해서 독비라고도 한다. 바깥쪽을 외독비(外犢鼻) 안쪽의 것을 내독비(內犢鼻)라 한다. 족삼리는 외독비 아래로 세 치 정도 떨어져 있으며 경골 능선에서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큼 떨어진 근육 사이에 있다.
이 혈의 주요 기능은 ‘위가 찬 것(胃中寒)’을 치료하는데 가슴과 배가 빵빵해지는 심복창(心腹脹)도 치료할 수 있다. 위 속이 찬 증상은 장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면서 물소리가 나고 아울러 설사한다. ‘사총혈가(四總穴歌)’에는 ‘두복삼리류(肚腹三里留)’라 해서 뱃속(위나 장)에 병이 있으면 모두 삼리혈을 사용하라고 했다.
외과(外科)방면에서는 다리가 붓거나 무릎이나 경골이 시큰거리는 것을 치료할 수 있다. 내과(內科)방면에서는 감기 및 몸이 야위고 마르는 증상, 과로로 몸이 상하는 증상 등에 사용한다. 만성질환을 앓다보면 위장 기능이 많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몸이 야위고 마르는데 이럴 때 사용하면 좋다. 또 ‘기고(氣蠱)’라 하여 소화불량이나 수분대사의 문제로 배설에 문제가 생겨 복부가 북처럼 부풀어 오르는 증상에도 사용할 수 있다.
한편 삼리는 또 노인에게 아주 좋은 혈자리다. 30대 이상의 사람이 삼리혈에 침이나 뜸을 하면 눈동자가 또렷해지고 사물이 똑똑히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은 40대 이후에 ‘노안(老眼)’이 시작되기 때문에 멀리 있는 사물은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것은 볼 수 없다. 이럴 때 삼리혈을 늘 자극해주면 증상이 좋아진다. 하지만 혈의 위치를 정확히 취해야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이 혈자리에 늘 침이나 뜸을 하면 노인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먼 길을 걷거나 산을 오를 때 보행능력이 좋아진다. 그래서 중국속담에 ‘(나이가 들어)편안하고 싶으면 삼리가 늘 축축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삼리에 늘 쑥뜸을 떠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삼리에 흉터가 있고 늘 진물이 나와 축축할 정도로 뜸을 많이 뜨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삼리는 특히 노인 질환에 효과가 좋은데 예를 들어 고혈압에 뜸을 뜨면 혈액순환이 좋아져 혈압을 조절할 수 있다.
2. 내정혈(內庭穴)
족양명위경의 형혈(滎穴)이다. 위치는 둘째와 셋째 발가락 사이 움푹한 곳의 중간 정도에 있다. 이 혈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사지(四肢)가 찬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조용히 안정하기를 좋아하는 위경열상(胃經熱象), 은진(癮疹 두드러기), 인후통, 하품이 자주 나거나 치통에도 쓸 수 있다. 여기서 잠시 치통에 대해 살펴보면, 한의학에서는 치통을 어떻게 이해할까? 치아는 경락 중에서 양명(陽明)에 해당하는데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아랫니는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에 속하고 윗니는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에 속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치통은 족양명위경에 해당하는 윗니의 통증을 가리킨다. 그 외에 매우 허약해서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때 이 혈을 사용하면 즉시 호전된다.
3. 곡지혈(曲池穴) :
팔꿈치에 위치한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의 합혈(合穴)이다. 이 혈자리를 쉽게 찾는 방법은 팔을 조금 굽혀 손바닥을 자신의 심장에 댄다. 이때 팔의 가장 높은 곳을 지나는 경락이 ‘수양명대장경’이다. 이 경락 중에서 팔꿈치가 굽는 곳의 혈을 ‘곡지혈’이라 한다. ‘마단양천성십이혈가’에서는 ‘곡지공수취(曲池拱手取)’라 하여 두 팔을 읍(揖)하듯이 맞잡고 손가락으로 혈을 찾는다고 했다.
곡지혈의 작용은 ‘팔꿈치 통증을 치료’하고 ‘편풍(偏風)’을 치료한다. 여기서 편풍이란 중풍(中風)으로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된 증상을 말한다. 그 외에도 팔을 구부리거나 펼 수 없는 증상, 신경에 문제가 생겨 활을 쏠 수 없는 등의 증상에 사용한다. ‘마단양천성십이혈가’에서는 ‘편풍수불수(偏風手不收) 만궁개부득(挽弓開不得)’이라 하여 편풍으로 손을 가누지 못하거나 활시위를 당기지 못할 때 쓴다고 했다. 왜냐하면, 활시위를 당길 때 수양명대장경의 근육이 힘을 써야 하는데 이곳에 문제가 있으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양명대장경에 문제가 발생하면 ‘근육이 늘어져 머리를 빗을 수 없는데’ 이럴 때 곡지혈을 찌르면 효과가 있다. 또 후두가 마비되어 숨이 막힐 때, 발열, 전신성 담마진(알레르기의 일종), 두드러기 등에도 효과가 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곡지혈은 인체 면역계통을 개선하는 기능이 있다.
4. 합곡혈(合谷穴) :
합곡혈은 수양명대장경의 원혈(原穴)로 원기(原氣)가 주로 머무는 혈이다. 인체에서 아주 큰 혈이며 위치는 엄지와 식지 중간인 호구(虎口)에서 한 치 위에 있다. 합곡혈은 ‘두통과 여드름’을 치료할 수 있는데 ‘사총혈가’에서는 ‘면구합곡수(面口合谷收)’라 하여 얼굴이나 입 주위의 병은 모두 합곡혈로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합곡은 또 ‘학질로 덥다가 추워지는 것’을 치료할 수 있다. 또 치은염이나 코피가 나는 것을 치료할 수 있다.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합곡을 5푼 깊이로 찌르면 고칠 수 있다. 단 주의해야 할 것은 합곡은 삼음교(三陰交)와 함께 임산부에게는 조심해서 써야 하며 잘못하면 유산(流産)을 시킬 수 있다.
옛날에 한 태자(太子)가 있었는데 의학을 좋아했다. 한번은 한 임산부를 보고 맥을 짚은 뒤 태아(胎兒)가 아들인지 딸인지 아니면 쌍둥이인지 알고 싶어 배를 갈라 보고자 했다. 이때 동행한 서문백(徐文伯)이 배를 가르는 것은 불가하다며 침으로 합곡과 삼음교에 자침(刺針)할 것을 권해 태아가 순산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합곡, 삼음교는 임산부에게 함부로 찌르면 안 되며 조심해야 한다.
5. 위중혈(委中穴):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의 합혈(合穴)이며 무릎 뒤에 있다. 다시 말해 무릎 뒤편 오금에서 가로주름의 한가운데에 해당한다. 이 혈은 요통이나 똑바로 설 수 없는 것, 등이 무거워 견디지 못하거나 근골이 시큰하고 아픈 증상을 치료한다. ‘사총혈가’에서는 ‘허리와 등은 위중으로 치료한다’는 말이 있다. 위중혈은 또 ‘풍비(風痺)’를 치료할 수 있다. 풍비는 한마디로 혈액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이다.
옛날에는 저린 것을 세 가지로 나눴는데 바로 풍비(風痹), 한비(寒痺), 습비(濕痺)가 그것이다. 풍비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아파서 ‘행비(行痺)’라고도 한다. 한비는 통증이 심하므로 ‘통비(痛痺)’라고도 부른다. 습비는 몸이 무겁게 가라앉으며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착비(著痺)’라고도 한다.
풍비가 발생하는 원인은 풍(風) 때문에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아픈 자리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아프다. 그 외에도 무릎을 굽히고 펴기 어려운 증상도 치료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이 혈자리 바로 아래 큰 혈관이 지나기 때문에 쑥뜸은 뜰 수 없다는 점이다.
6. 승산혈(承山穴) :
족태양방광경의 혈로 위치는 장딴지에서 물고기 배처럼 불룩 튀어나온 곳이다. ‘마단양천성십이혈가’에서는 어복(魚腹)이라고 했다. 장딴지 근육 사이에 위치하며 요통과 변비, 치질에 효과가 좋다. 또, 각기(脚氣)나 무릎이 붓는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 그 외 토사곽란으로 근육이 뒤틀리거나 다리에 쥐가 날 때도 이곳에 침을 찌르면 좋아지는 예가 많다.
7. 태충혈(太衝穴):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의 수혈(兪穴)이자 간경의 원혈(原穴)이다. 위치는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의 오목한 곳에서 약 두 치 위에 있다. 이 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의 생사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태충 바로 아래에 동맥이 지나가기 때문에 만약 이 혈이 움직이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것이다. 그 외에도 태충은 ‘경간풍(驚癎風)’을 치료할 수 있다. 여기서 경간(驚癎)이란 어린아이가 놀라서 근육이 수축하고 입에 거품을 토하며 눈이 위로 뒤집히는 현상을 말한다. 한의학에서는 갑자기 근육이 뒤틀리는 병을 풍으로 보기 때문에 경간풍이라 한 것이다.
태충은 또 인후(咽喉)질환과 심장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간(肝)이 근육을 주관하기 때문에 두 발로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증상에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7가지 산기(疝氣)중에서 고환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종추(偏腫墜)’를 치료하는데 좋다. 편종추 증상에 태충혈 외에 쓸 수 있는 혈 중에는 배꼽 아래 양쪽에 ‘삼각구(三角灸)’가 있다. 고환이 왼쪽으로 치우치면 오른쪽 삼각구에 뜸을 뜨고 오른쪽으로 치우치면 왼쪽 삼각구에 뜸을 뜨는데 여기에 태충혈을 더하면 효과가 더욱 좋다.
이외에도 태충혈은 눈이 침침하고 눈앞이 마치 무엇으로 덮인 것처럼 흐릿한 것을 치료한다. 또 요통에도 침을 놓는 순간 신기한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8. 곤륜혈(昆侖穴) :
족태양방광경의 경혈(經穴)이다. ‘마단양천성십이혈’ 중에는 방광경 혈자리가 3개 있는데 바로 위중, 승산, 그리고 곤륜이다. 곤륜혈의 위치는 발 바깥쪽 복사뼈 후방 근육의 중간에 있다. 발목염좌, 허리와 엉덩이가 아픈 것을 치료할 수 있다. 또 갑자기 숨이 차면서 가슴이 뻐근한 증상이나 보행을 하려면 아파서 신음이 나는 증상에 곤륜혈을 고려할 수 있다. 곤륜에 위중을 더하면 허리와 등의 통증을 치료하는 효과가 아주 좋다.
9. 환도혈(環跳穴) :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의 혈로 골반 외측 살이 많은 부위에 있다. 매우 큰 혈자리이며 둔부 근육이 매우 두터워 장침(長針)을 사용해야만 혈위(穴位)에 도달할 수 있다. 때로는 6치(약 18cm)짜리 긴 침을 써야 한다. 혈을 취하는 방법도 비교적 특수해서 옆으로 누워 아래쪽 다리를 굽히고 위쪽 다리는 바로 편다. 환도혈은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픈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 또 풍비, 한비, 습비에 모두 효과가 있다. 이 외에도 사타구니부터 장딴지에 이르는 다리 통증을 치료할 수 있으며 몸을 돌릴 때 무겁고 아픈 증상에도 효과가 있다.
10. 양릉천(陵陵泉) :
족소양담경의 합혈(合穴)이다. 무릎 아래에는 경골(脛骨)과 비골(腓骨) 두 개의 뼈가 있는데 앞에 있는 큰 뼈가 경골이고 뒤에 있는 좀 작은 뼈가 비골이다. 한의학에서는 비골을 보골(輔骨)이라고도 한다. 무릎 아래 바깥쪽에 비골이 툭 불거져나온 곳이 있는데 그 아래에 있는 작은 구멍이 양릉천이다. ‘난경’에서는 소위 ‘팔회혈(八會穴)’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중 ‘근회(筋會)’가 바로 양릉천이다. 근회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혈은 근육이나 건(腱 힘줄)의 질환에 효과가 좋다.
‘마단양천성십이혈’에서는 양릉천이 무릎 아래 외측 한치 위치에 있다고 했다. 또 무릎이 붓거나 뻣뻣하면서 감각이 떨어지거나 시리고 반신불수에도 쓸 수 있다고 했다. 또 발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증상에도 침을 팔 푼 정도 찌르면 효과가 있으니 아주 신묘(神妙)한 혈자리다. 또 발목이나 무릎을 접지르거나 다른 곳을 삐끗했어도 모두 근회인 ‘양릉천’으로 치료할 수 있다.
11. 통리혈(通里穴) :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의 낙혈(絡穴)이며 손목에서 한 치 위에 있다. 다시 말해 신문(神門)에서 한 치 떨어진 곳에 있다. 이 혈은 ‘소리를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는 정신질환에 사용할 수 있다. 가령 환자의 체질은 실(實)한데 오히려 사지가 무겁고 머리나 뺨까지 붉은 정황이거나, 혹은 환자가 허(虛)하여 음식을 먹을 수 없고, 갑자기 말을 할 수 없거나, 얼굴 안색에 광택이 없을 때에도 모두 이 혈을 사용할 수 있다.
12. 열결혈(列缺穴) :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의 낙혈(絡穴)이다. 식지(食指)를 손목위로 굽힐 때 요골 변두리에 닿는 부분이 이 혈의 위치다. 열결은 편두통과 전신마비에 사용할 수 있고, 가래가 심하거나 이를 가는 증상에도 보사(補瀉)를 적절히 가하면 좋은 효과가 있다. ‘사총혈가’에서는 ‘두항심열결(頭項尋列缺)’이라 하여 머리와 뒷목의 질환에 모두 이 혈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팔회혈(八會穴) |
의서에 나오는 침·뜸 금기혈
‘침구대성(鍼灸大成)’은 명나라의 양계주(楊繼洲)가 편찬한 침구학(鍼灸學) 관련 전문서적으로 침과 뜸에 대한 자료를 풍부하게 수집해놓았다. ‘침구대성’은 ‘황제내경’ ‘난경’뿐만 아니라 명나라 당시 수집할 수 있던 각종 침구 서적을 집대성했으며 여기에 양(楊)씨 가문에서 전해내려 온 것과 자신의 경험을 덧붙였다.
이 책에는 ‘침을 놓을 수 없는 혈(禁針穴歌)’ ‘뜸을 놓을 수 없는 혈(禁灸穴歌)’이라는 두 장이 있다. 여기서 금침혈(禁針穴)이란 침을 놓으면 안 되는 혈을 말하고 금구혈(禁灸穴)은 뜸을 떠서는 안 되는 혈을 말하는데 양계주가 다른 많은 침구학 서적들을 참고해 정리한 것이다. 좀 더 상세히 언급하자면 금침혈이 22개, 금구혈이 45개다.
-침을 놓을 수 없는 혈
침을 놓을 수 없는 혈을 살펴보면 대부분 우리 몸의 급소부위에 위치한다. 예를 들면 머리 위의 뼈 봉합선 중간 부분이나 심장 근처 혹은 비교적 위험한 곳이다. 어떤 곳은 혈을 찌르면 출혈(出血)이 잘 생기는 곳인데 예를 들어 ‘뇌호(腦戶), 신회(顖會), 신정(神庭), 옥침(玉枕), 낙각(絡卻), 승령(承靈), 노식(顱殖), 각손(角孫)’ 등의 혈자리는 모두 머리뼈가 만나는 봉합선 위에 있거나 심지어 몇 개의 봉합선이 만나는 부위에 있다. 이런 혈을 자침(刺針)할 경우 예기치 못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과거에 사용했던 침은 지금보다 훨씬 굵고 길었기 때문에 침을 강하게 자극할 경우 두개골속으로 들어가 뇌경막을 찌르거나 심지어 뇌 실질을 찔러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 외 ‘금침혈가’에는 ‘신도(神道), 영대(靈臺), 전중(膻中)’ 등의 혈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가슴과 심장 부위에 위치한다. 또 ‘수분(水分), 신궐(神闕)’과 같은 혈자리는 배꼽 근처에 있어 깊이 찌를 경우 위험한 곳이다. ‘회음(會陰), 횡골(橫骨), 기충(氣衝)’은 모두 생식기나 사타구니 근처에 있다. 이들 혈은 신체 은밀한 곳에 위치해 예의범절을 중시하던 중국 고대에는 아무리 의사라 해도 함부로 접근하기 힘든 곳이다. 게다가 이들 혈자리 근처에는 또 큰 동맥혈관이 지나기 때문에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다.
이외에도 침을 놓을 수 없는 몇 개의 혈자리가 있는데 이유는 모두 유사하다. 가령 ‘수오리(手五里), 삼양락(三陽絡), 청령(靑靈)’ 등 팔에 있는 혈자리는 모두 아래에 대동맥이 지나가는 곳이라 자침 시 특히 주의해야 한다. 함부로 침을 놓다 출혈이 생기면 문제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방금 언급한 20여 개 혈자리 외에 또 특수한 사람에게만 금기인 혈자리도 있다. 가령 합곡(合谷)이나 삼음교(三陰交)는 일반적으로 널리 상용(常用)되는 곳이지만 임신부는 금기혈이다. 실제로 합곡(合谷)과 삼음교(三陰交) 두 곳에 침을 놓아 임신부(姙娠婦)가 즉시 분만을 하게 된 사례도 있다. 그래서 ‘임신부는 합곡과 삼음교를 찌르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 외 여자들에게 좋지 않은 또 하나의 혈이 있는데 ‘석문(石門)’이다. 이곳은 침은 물론 뜸도 뜨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평생 불임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석문’ 근처에 완전 불임을 유발할 수 있는 혈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절잉(絶孕)’이라 한다.
그 외에 또 ‘운문(雲門), 구미(鳩尾), 결분(缺盆)’ 등 가슴부위에 있는 혈자리는 조심하지 않으면 폐(肺)를 찔러 ‘기흉(氣胸)’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자침(刺針)할 때 주의해야 한다. 이 외에도 오장근처의 혈자리는 모두 조심해서 찔러야 한다. 운이 나쁘면 침을 맞고 사람이 사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견정(肩井)’은 바로 폐의 위쪽에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깊이 찌르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황제내경’에는 심장을 찌르면 하루 만에 사망하고 담을 찌르면 하루 반나절 만에 사망한다는 기록이 있다.
-뜸을 뜰 수 없는 혈
‘뜸(灸)’이란 쑥을 뭉쳐 혈자리에 온열(溫熱)자극을 주는 치료법이다. 뜸쑥을 흔히 애융(艾絨)이라 하는데 솜처럼 고운 쑥을 손으로 잘 말아 쌀알 크기 정도로 작게 비빈 후 뜸봉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쑥을 혈자리 위에 놓고 불을 붙인다. ‘침구대성’에는 ‘금구혈가(禁灸穴歌)’라 하여 뜸을 뜰 수 없는 자리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 혈자리들을 분석해보면 우선 얼굴이나 머리에 위치한 혈들이다. 이곳은 함부로 뜸을 뜨면 안 된다. 왜냐하면, 얼굴에 뜸을 뜨면 보기 흉한 흉터가 남기 때문이다. 머리에도 뜸을 뜰 수 없는 몇 개의 혈자리가 있는데 보통 그 아래 혈관이 지나는 곳이다. 이곳에 뜸을 뜨면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문(啞門), 풍부(風府), 천주(天柱), 승광(承光), 임읍(臨泣), 두유(頭維)’ 등의 혈은 모두 머리에 있으며 이런 곳에 뜸을 뜨면 갑자기 혈압이 올라가거나 동맥혈관이 팽창해 견디기 힘들 수 있다.
그 외에 ‘사죽공(絲竹空), 찬죽(攢竹), 정명(睛明), 화료(禾髎), 영향(迎香)’ 등의 혈은 모두 얼굴 특히 눈 근처에 있어 뜸을 잘못 뜨면 눈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침·뜸을 한꺼번에 하는 것은 좋지 않아
‘금구혈가’에는 ‘침과 뜸은 함께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구절이 나온다. 다시 말해 침을 놓고 그 자리에 뜸을 뜨거나 혹은 뜸을 뜬 후 또 침을 놓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말이다. 즉, “뜸을 떴으면 침을 놓지 말고 침을 놓았으면 뜸을 뜨지 말라(灸而勿針, 針勿灸)”는 말이다. 또 ‘침구대성’에서는 “침경(針經)에서도 이를 신신당부하고 있지만, 지금의 용렬한 의사들은 침과 뜸을 함께 사용해 환자에게 포락(炮烙)형을 가한다”라고 했다. 여기서 포락형이란 상(商)나라 말기 폭군 주왕(紂王)이 달기의 청에 따라 시행한 잔인한 불고문을 말하는데 침·뜸을 같이 하면 환자가 포락형을 받는 것처럼 괴롭다는 의미다.
침뜸의 다른 금기
‘황제내경’에도 함부로 침을 놓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여러 곳에서 비교적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첫 번째로 성관계를 한 직후에는 침을 맞지 말아야 하며 또 침을 맞은 후에는 바로 성관계를 갖지 말아야 한다(新內勿刺, 新刺勿內). 또 술에 취한 사람은 침을 맞을 수 없고 침을 맞은 후 바로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화를 낸 직후에는 침을 맞으면 안 되고 침을 맞은 직후에는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그 외에도 막 과도한 노동을 마친 사람은 침을 맞으면 안 되고 침을 맞은 후 바로 심한 노동을 하면 안 된다. 식사 직후에는 침을 맞지 말아야 하고 침을 맞은 후 바로 과식을 해도 안 된다. 배가 몹시 고픈 사람도 침을 맞아선 안 되며 침을 맞은 후 너무 허기져도 안 된다. 갈증이 아주 심할 때는 침을 맞으면 안 되며 침을 맞은 후 너무 목이 말라도 안 된다. 사람이 매우 두려울 때나 놀랐을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정서를 안정시킨 다음에 침을 놓아야 한다.
또 수레를 타고 온 환자는 잠시 누워서 쉬게 한 다음 20-30분 정도 지나서 침을 놓는 것이 좋다. 멀리서 걸어서 찾아온 환자일 경우 앉아서 50-60분 정도 쉬게 한 후 침을 놓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환자의 맥이 어지러워지거나 기가 흩어져 영위(榮衛)의 순환이 거꾸로 되거나 경락의 기운이 부족해질 수 있어 자칫 잘못하면 병이 음(陰)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매우 놀라 기(氣)가 어지러울 때는 침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실력이 없는 의사는 이런 금기들을 무시하고 침을 놓아 환자의 몸에 강한 자극을 준다. 신체가 강한 자극을 많이 받으면 뇌수(腦髓)에 진액이 마르고 심지어 오미(五味)를 잃게 되는데 이것을 가리켜 ‘실기(失氣)’라 한다.
자침 금기를 다룬 ‘자금론(刺禁論)’에도 침·뜸의 금기에 대한 언급이 있다. 가령 ‘부(跗)에 침을 찔러 큰 혈관을 건드리면 피가 멎지 않아 죽는다’는 내용이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부(跗)란 어디를 가리킬까? 바로 발등에서 가장 큰 혈관이 지나는 충양(衝陽)혈을 말한다.
이와 유사한 내용이 ‘침구대성’ ‘금침가’에도 등장하는데 바로 ‘충양에서 출혈이 생기면 유명을 달리한다(衝陽血出投幽冥)’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충양혈을 찔러서 출혈이 심해지면 사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외에 얼굴에는 ‘유맥(溜脈)’이란 혈자리가 있는데 눈과 관련이 있다. 이곳을 찔러 출혈이 생기면 눈에 큰 핏덩이가 생겨 어혈 덩어리를 만들 수 있다. 간혹 시신경을 누르거나 혹은 눈에서 안구 움직임과 관련된 근육을 건드려 재수 없으면 실명(失明)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머리 위의 혈에 침을 놓다 뇌를 찌르면 즉사할 수 있다. 또 혀 아래에 있는 혈관을 너무 깊이 찔러 출혈이 그치지 않으면 벙어리가 될 수 있다. 발아래에 있는 ‘포락(布絡)’은 자색의 작은 혈관이나 모세혈관을 말하는데 이곳을 찔러 출혈이 되면 오히려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혈관을 찔러 피가 나오지 않으면 내출혈(內出血)로 혈종이 생길 수 있다.
또 ‘위중(委中 오금 가운데)’의 큰 혈관도 찌르지 말아야 한다. 이곳을 잘못 찌르면 사람이 기절하거나 얼굴이 창백해지며 쓰러질 수 있다. ‘기가(氣街)’ 중맥(中脈)은 서혜부를 가리키는데 이곳을 찔러 혈종이 생긴 것을 ‘서부(鼠仆)’라 한다.
척추뼈 중간인 ‘척간(脊間)’을 잘못 찌르거나 척수(脊髓)를 찌르면 곱사등이가 될 수 있다. 또 유방 근처인 ‘유중(乳中)’이나 ‘유방(乳房)’ 등을 잘못 찌르면 혈종이 생길 수 있다. 손바닥에서 물고기 배처럼 볼록한 어복(魚腹) 아래에 있는 혈관을 찔러 피가 나오지 않으면 아주 위험한데 혈종이 생겨 부풀어난다.
그 외에 또 함부로 자침할 수 없는 부위가 있는데 바로 무릎 양쪽의 ‘슬안(膝眼 슬개골 아래 슬개인대 양쪽으로 움푹 들어가는 곳)’이다. 이곳은 무릎관절과 직접 연결된 곳으로 너무 깊이 찔러 관절액이 새나올 정도가 되면 걸음을 걷지 못할 수 있다. 지금 많은 양의사는 무릎이 부은 사람을 치료할 때 주사기로 관절액 빼내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예후가 불량한 경우가 많다.
‘자금론(刺禁論)’에서는 “심장을 찌르면 하루 만에 죽는데 탄식을 한다. 간을 찌르면 고통을 호소하다 5일 만에 죽는다. 신장을 찌르면 6일 만에 죽는데 재채기를 많이 한다. 폐를 찌르면 3일 만에 죽는데 기침을 한다. 비(脾)를 찌르면 10일 만에 죽는데 자꾸 삼킨다. 담을 찌르면 하루 반나절 만에 죽는데 구역질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고대에 이미 침·뜸에 대해 풍부하고 상세한 임상 관찰이 있었고 매우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임상에 효과적인 혈자리와 취혈법
한의학 임상에는 침·뜸, 한약 등 다양한 치료방법이 있다. 한약 전문가가 아니면 약을 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침·뜸 역시 침뜸 전문가의 일이다. 그렇다면 침·뜸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간단하게 침과 뜸을 쓸 방법은 없을까?
과거 중국에서 간단한 의학교육만 받고 직접 의료현장에 나섰던 ‘맨발의 의사들’이 의학 전문가가 아니었던 것처럼 고대에도 의학지식은 부족하지만, 병을 치료하려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이 침·뜸을 사용하자면 혈자리 찾는 법을 배워야 했지만 당시에 이런 기술을 전수받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대 성인(聖人)들은 간단하면서도 아주 쉽게 혈자리 찾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는 침·뜸의 가장 핵심적인 것을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전문지식이 짧은 일반인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 고대에는 일반인도 의술(醫術)에 흥미만 있다면 스승을 모시고 침·뜸에 대해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고 또 이를 통해 많은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명의(名醫)들의 일도 덜 수 있었다. 이런 기술이 중국 민간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가운데 특수한 방법으로 혈자리를 찾는 방법들도 전수되었다.
일단 이렇게 혈자리를 찾아내면 뜸을 뜨거나 침을 놓거나 또는 맨손으로 안마(按摩)해 많은 병을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었다.
1. 아시혈(阿是穴)
역사적으로 아주 유명하면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혈자리가 있는데 이를 아시혈(阿是穴)이라고 한다. 아시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당나라 때 손사막이 지은 ‘비급천금요방(備急千金要方)’에 남아 있다.
그렇다면 대체 ‘아시혈’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병이 있을 때 병소 근처를 손으로 눌러보면 매우 아픈 지점을 찾아낼 수 있는데 몹시 아픈 이 지점이 바로 아시혈이다. 아시혈이란 말의 어원도 의사가 손으로 그 아픈 곳을 누를 때에 환자가 “아, 아, 거기, 거기예요!”라고 하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 바로 그곳’이라는 뜻에서 ‘아시혈’이라 한 것이다. 이를 또 ‘천응혈(天應穴)’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천응’이란 어떤 병이 있으면 우리 인체의 상응하는 혈에서 반응이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신기하게도 사람에게 병이 생기면 신체에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상응한 혈이 나타난다. 이를 하느님이 주신 것으로 간주해 ‘천응’이라고 한 것이다.
한편, 아시혈 외에도 좀 복잡하긴 하지만 반드시 찾아낼 수 있는 혈이 있다. 여기서는 ‘의학입문(醫學入門)’에 기재된 많은 혈 중에서 사화혈(四花穴), 고황혈(膏肓穴), 기죽마혈(騎竹馬穴), 구로혈(灸勞穴) 등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몇 가지 혈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2. 최씨(崔氏) 사화혈
먼저 해부학적 위치를 말하자면 무릎 뒷편 오금 중간에 ‘위중(委中)’이란 혈이 있다. 이 혈은 누구나 쉽게 잡을 수 있다. 줄을 가져다 엄지발가락에서 발바닥을 지나 발뒤꿈치까지 재고 계속해서 이 줄의 다른 한쪽 끝을 오금까지 당겨서 위중혈까지 잰 다음 바로 이 줄의 길이를 이용한다. 이 줄을 가지고 그것의 중간점을 취해 목구멍과 가슴이 서로 만나는 ‘천돌(天突)’혈에 놓는다. 다시 줄을 신체의 뒤편으로 내려뜨려 머리 뒤쪽에 매달려 있게 하면 두 점이 교차하는 곳이 있다. 펜으로 이 점을 표시한다.
그다음에는 환자의 입 길이를 잰다. 우선 환자를 앉히고 힘을 주지 않고 느슨한 상태에서 입을 가볍게 벌리게 한다. 자나 작은 조각으로 왼쪽 입 끝에서 오른쪽 입까지 길이를 재는데 이 길이만큼 가위로 정사각형 종이를 자른다. 종이 중간에 구멍을 뚫고 이 구멍을 조금 전에 찍은 점의 위치에 대면 종이의 네 모서리가 닿는 위치가 바로 ‘사화혈’이다.
재미있는 것은 예전에 중국에서는 여인의 발을 묶어 작게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경우 앞에서 서술한 방법으로는 혈을 잡을 수 없다. 이 경우 다른 방식을 이용했는데 바로 어깨 쇄골(鎖骨)과 팔 사이에 있는 ‘견우(肩髃)’혈부터 손가락 끝까지 길이를 재서 그 중간점을 취해 앞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취혈한 것이다. 필자가 실험해 본 바로는 이렇게 측정한 두 길이는 서로 같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찾아낸 사화혈은 대체 어디에 쓰는가?
의서에는 ‘오로칠상(五勞七傷), 기허혈약(氣虛血弱), 골증조열(骨蒸潮熱), 해수담천(咳嗽痰喘), 왕리고질(尫鸁痼疾)’ 에 쓸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럼 우선 ‘오로칠상’이란 무엇인가?
오장 중에서 어느 한 장(臟)에 병이 나서 오랫동안 치료하지 못하면 고치기 어려운 만성병이 되는데 이것을 ‘노(勞)’병이라 한다. ‘간(肝), 심(心), 비(脾), 폐(肺), 신(腎)’ 5장이 모두 노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가리켜 ‘오로(五勞)’라 한다.
한편, 사람의 정서가 안정되지 않아도 병이 생길 수 있는데 이것이 너무 지나치면 ‘허손(虛損)’에 이를 수 있어 ‘정(精), 신(神), 혼(魂), 백(魄), 지(智), 의(意), 지(志)’ 등을 손상하게 되는데 이것을 가리켜 ‘칠상(七傷)’이라 한다. 사화혈은 바로 ‘오로칠상’을 치료하는 데 쓴다.
한편 만성적인 노병을 얻으면 기(氣)가 허약해진다. 더욱이 음허(陰虛)한 환자는 오후에 열이 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조열(潮熱)’이라 한다. 마치 바닷물에 밀물과 썰물이 있듯이 하루 중 일정한 시간에 열이 오르고 내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막상 체온계로 재보면 실제 체온은 그리 높지 않지만 환자 스스로는 매우 뜨겁다고 느낀다. 마치 뼛속에서부터 무언가 흩어져 나가는 것처럼 느낀다고 해서 ‘골증(骨蒸)’이라 한다. 사화혈은 이처럼 기가 허하고 혈이 약하며 골증, 조열, 해수(咳嗽 기침), 담천(痰喘 가래가 끓고 숨이 찬 것)의 증상을 치료할 수 있다.
폐병환자가 가장 많았는데 이를 ‘폐로(肺勞)’라 불렀다. 이 병을 앓는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조열과 골증, 해수, 담천의 증상을 동반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주로 폐결핵에 해당한다.
사화혈은 또한 매우 여위고 허약하며 만성병을 앓아 오래 치료해도 잘 낫지 않는 병세를 치료할 수 있는데 이를 ‘왕리고질(尫鸁痼疾)’이라 한다.
이상의 방법으로 측정해서 사화혈을 찾아낸 후 그곳에 뜸을 뜨면 앞에서 언급한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다. 필자의 침구 임상에 비춰보면 ‘사화혈’은 바로 ‘담수(膽兪)’와 ‘격수(膈兪)’에 해당한다. 담수는 열 번째 척추 중앙에서 양쪽으로 한치 반가량 되는 곳에 있고 격수는 일곱 번째 척추 옆에서 한치 반가량 되는 곳에 있는데 모두 합해 네 개다.
3. 고황혈
‘병이 고황에 들어갔다’라는 말은 병이 아주 중해 매우 고치기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서 고황은 혈자리 이름으로 흉추 4번 양옆으로 3치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쉽게 말해 견갑골(날개뼈) 옆이다.
혈자리를 찾는 방법은 환자를 바닥에 앉히고 양발을 구부려 무릎을 가슴 앞에 댄다. 이렇게 손으로 환자 자신의 무릎을 감싸 안으면 견갑골 부위가 양쪽으로 열려 척추를 잘 만질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흉추 4번을 찾은 후 아래로 약간 내려가 5번 흉추에서 위로 약 두 푼 정도 되는 곳을 펜으로 표시한다. 이 점에서 옆으로 약 세 치 가량 떨어진 곳이 바로 ‘고황’혈이다.
이곳을 세게 누르면 환자는 손가락 끝이 매우 아프다고 하는데 이곳이 진정한 혈자리 위치다. 뜸쑥을 쌀알 크기로 만들어 혈자리에 놓은 후 향으로 불을 붙인다. 뜸을 한번 뜰 때마다 ‘한 장(壯)’이라 부르는데 이곳에는 백장에서 많게는 천장까지 많은 양의 뜸을 뜰 수 있다.
고황혈은 가슴 뒤쪽에 있기 때문에 쑥뜸을 뜬 후 간혹 기가 위로 막히는 느낌이 있으면서 불편할 수 있다. 이럴 때는 배꼽 아래 기해(氣海)혈이나 무릎 아래에 있는 족삼리(足三里)혈에 뜸을 뜨면 화기(火氣)가 아래로 내려가 증상이 편해진다.
고황혈은 양기(陽氣)가 극도로 부족한 ‘양기휴약(陽氣虧弱)’ 증상을 치료하는 데에 쓴다. 또한 ‘제풍고냉(諸風痼冷), 몽유상기(夢遺上氣), 애역열격(呃逆噎膈), 발광(發狂)’ 등을 치료할 수 있다. 여기서 ‘제풍고냉’은 바람을 맞아 생긴 각종 고질적인 냉증을 말하고 몽유는 몽정이다. 애역은 딸꾹질이고 열격은 고질적인 위식도 질환을 말한다. 발광은 환자가 미쳐서 날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고대인들은 고황혈에 뜸을 뜬 후에는 절대 욕망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즉, 지나친 성관계를 삼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4. 기죽마혈(騎竹馬穴)
또 다른 특수혈 중에 기죽마혈이 있는데 남좌여우(男左女右)로 사용한다. 이 혈을 잡는 방법은 먼저 얇은 대나무조각을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 손의 손목 횡문 중심에서 가운데 손가락까지 길이를 잰 후 자른다.
그다음 환자를 죽마(竹馬)에 태우듯이 대나무 관을 사타구니에 걸치게 한 후 땅에서 세 치 정도 들어 올린다. 이때 환자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양쪽에서 지탱해주어야 한다. 그 후 앞에서 잘라둔 대나무조각을 가져다 대나무 관에 수직으로 세우는데 환자의 꼬리뼈부터 척추를 따라 위로 올라가 대나무조각이 끝나는 부위에 표시한다. 이 점의 양옆으로 각각 한 치 떨어진 곳이 바로 기죽마혈이며 뜸을 7장씩 뜬다. 한편, ‘침구취영(鍼灸聚英)’이란 침구학 서적에는 양쪽으로 한 치 반 떨어져 있다고 했으며 격수(膈兪)와 간수(肝兪)가 바로 그곳이라고 했다.
마치 아이들이 죽마를 타고 노는 것과 같은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기죽마혈이라 부른다. 이 혈은 주로 각종 피부질환이나 목 부위 림프 결핵 등을 치료할 때 쓴다.
5. 구로(灸勞)혈
마지막으로 구로혈을 소개한다. 여기서 ‘로(勞)’란 오랫동안 시일을 끌면서 낫지 않는 병을 가리키는데 요즘 말로 하면 바로 만성병이다. 구로혈은 손발 바닥에 열이 나고 식은땀(盜汗)이 나며, 정신이 몹시 피곤하고, 뼈마디가 아프며, 기침이 나다가 점차 피가 섞인 가래를 토하며, 몸이 야위고 얼굴이 누렇게 뜨거나, 식욕이 부진하고 무기력한 증상 등을 치료한다.
이 혈의 자리를 찾는 요령은 환자를 똑바로 앉히고 긴 노끈을 가져다 남좌여우로 발의 가운데 발가락 끝부터 발바닥을 지나 위로 ‘위중’ 혈까지 올린 후 끈을 자른다. 이 끈을 코끝부터 뒤로 넘겨 정수리를 지나 척추에 닿는 부분을 펜으로 표시한다. 이번에는 다른 끈을 가지고 ‘입 크기’를 재고 그 길이대로 자른 후 앞에서 찾은 자리에 이 끈의 중심을 위치시키면 양쪽 옆에 두 곳의 자리가 나온다. 이곳이 바로 구로혈이다. 이 혈자리에 쑥뜸을 뜰 때는 환자의 나이만큼 뜸을 뜬다. 예를 들어 30살이면 30장을 쓰면 좋다. 필자가 임상적으로 고증한 바로는 이 혈은 마땅히 ‘심수(心兪)’혈이다. 한의학에서는 심(心)이 혈(血)을 주관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곳에 뜸을 뜨면 효과가 좋다.
고대 동양의학의 지혜는 이처럼 무슨 큰 도리를 따지거나 혹은 복잡한 지식의 틀이 필요하지 않았다. 민간에서 서서히 전파된 것으로 매우 재미있다.
방안상이 침으로 난산을 구한 이야기
고대 중국의 명의(名醫) 중에는 투시능력을 갖춘 능력자가 비일비재했다. 가령 편작, 화타, 손사막, 이시진 같은 사람들은 모두 뛰어난 진단 능력을 지녔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는 송나라 때의 명의 방안상(龐安常)의 경험을 들어 그의 뛰어난 진단과 침구술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한 부인이 임신했는데 이미 출산할 날이 지났다. 그러나 칠일이 지나도 아이가 나오지 않았다. 약도 써보고 부적도 써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더는 방법이 없자 그녀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기도(李幾道)라는 이름의 지방 명의가 있었는데 환자 가족들이 그를 청해 환자를 보게 했다. 그러자 그는 “이 병에는 어떤 약도 쓸모가 없고 오직 침법(針法)으로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저는 능력이 미치지 못해 함부로 침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침 이기도의 스승인 방안상이 집 앞을 지나다 임신부를 보고는 말했다.
“죽지 않을 겁니다.”
방안상은 환자 가족들에게 뜨거운 물로 임신부의 허리와 배를 따뜻하게 하도록 한 후 침을 놓았다. 임신부는 장(腸)이 조금 아픈 듯하더니 곧 바로 신음소리를 내더니 얼마 후 아들을 낳았다. 모자는 모두 건강했고 아무 문제도 없었다. 가족들이 매우 놀라 기뻐하면서 그에게 감사드리고 절을 했는데 마친 신선을 대하듯이 공손했다.
하지만 대체 어떤 치료법을 사용해서 좋아졌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자 방안상이 말했다. “아이는 이미 자궁을 빠져나온 상태였습니다. 단지 한 손으로 모친의 장을 붙잡고는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약을 써도 효과가 없었던 겁니다. 방금 내가 한 치료는 복부를 사이에 두고 밖에서 아이의 손이 있는 곳을 확인한 후 손에 침을 찌른 것입니다. 아이가 아파서 곧 손을 움츠렸고 그래서 밖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실 무슨 대단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태어난 아이의 오른손을 검사해보니 과연 손등에 침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 일화를 통해 방안상의 투시능력과 침술이 진실로 오묘했음을 알 수 있다. 그에게 투시력이 없었다면 태아가 모친의 장을 잡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대의 유명한 의사들은 대부분 도를 닦던 사람들이다. 지금 기공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덕이 높은 수도인(修道人)들에게 일부 초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공의 입장에서 본다면 방안상의 일화를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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