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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맛의 비밀

醉月 2012. 4. 11. 13:20

[집중탐구] 라면 맛의 비밀

진한 국물 맛이 핵심, 꼬들꼬들한 면발이 좋으면 이렇게 끓여라

⊙ 1963년 삼양식품이 10원짜리 삼양라면 출시하면서 국내 라면역사 시작
⊙ 국내 라면시장 규모 1조9000억원, 농심이 시장의 70% 점유
⊙ 25년 동안 판매 1위 고수, 신라면 맛의 비결은 얼큰한 맛과 구수한 맛의 황금비율
⊙ 하얀색 국물 라면이 대세지만 신라면 아성 넘어설지는 의문
⊙ 유탕면은 140℃ 정도의 물에 짧은 시간 끓여내야 맛있어
  1970년대 전라도 산골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기자에게 라면은 국수에 섞어 먹던 ‘귀한 음식’이었다. 1980년대 초·중반 읍내 중·고등학교에 다니며 자취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박스째 쌓아 놓고 먹던 주식이었고,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고부터는 야참이자 해장음식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밥 못지않게 즐겨 먹은 음식이 라면이었다. 그만큼 먹었으면 물릴 법도 하건만 지금도 어디선가 라면 끓이는 냄새만 나면 침이 꼴깍 넘어간다.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는 중독성 강한 음식이 라면 아닌가 싶다. 저렴하면서 조리가 간편해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겨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도 라면은 인기다. 지난해 세계라면협회(WIN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소비된 인스턴트 라면은 953억9000만 개(용기면 포함)다. 국가별로 라면 소비가 많은 곳은 중국(423억 개), 인도네시아(144억 개), 일본(52억9000만 개), 베트남(48억2000개), 미국(39억6000만 개) 순이다.
 
  한국은 34억1000만 개로 6위에 올랐으나 인구 대비 1인당 소비량은 세계 최고다. 지난해 남한 인구가 4800여만 명임을 감안할 때 국민 1인당 한 해 70여 개의 라면을 먹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 국민이 5일에 한 번씩 라면을 먹은 격이다.
 
 
  하얀색 국물 라면 돌풍
 
1. 닭고기 육수에 청양고추를 넣어 구수하면서도 칼칼한 맛을 낸 한국야쿠르트의 꼬꼬면.
2. 돼지뼈 사골에 해물과 청양고추를 넣어 시원하고 칼칼하면서도 뒷맛이 고소한 삼양식품의 나가사끼 짬뽕.
3.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에 이어 출시된 또 하나의 하얀색 국물 라면 오뚜기식품의 기스면.
  현재 국내 라면시장은 1조9000억원 규모. 총 250여 개 브랜드가 출시돼 각축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많이 팔린 상위 5개 라면은 신(辛)라면, 안성탕면, 삼양라면, 너구리우동, 짜파게티 등이다. 매출액 기준 업체 순위는 농심(1조3000억원), 삼양식품(2200억원), 오뚜기식품(1700억원), 한국야쿠르트(1600억원) 순이다. 상위 5위 안에 4개의 브랜드가 진입해 있는 농심이 매출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앞서고 있다. 농심의 시장점유율은 70%가 넘는다.
 
  농심은 신라면 브랜드 하나만으로 지난해 5000억원(용기면 포함)의 매출을 올렸다. 1986년 출시 이후 ‘매운 라면’의 대명사가 된 신라면은 20여 년 동안 국내 라면 전체 시장에서 판매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 사이 여러 업체에서 신라면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해 유사한 맛의 라면을 개발해 선보였으나 하나같이 참패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신라면의 아성을 위협할 만한 강력한 라면이 등장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하얀색 국물’과 ‘청양고추의 칼칼한 맛’이 공통점인 한국야쿠르트의 ‘꼬꼬면’과 삼양식품의 ‘나가사끼 짬뽕’이다. ‘라면은 소고기 국물에 빨개야 한다’는 기존 공식을 깨고 등장한 이 두 브랜드는 물량이 달릴 정도로 연일 매진 사례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 7월 말에 출시된 나가사끼 짬뽕은 10월 말 현재 2600만 개(누적)가, 8월 중순에 출시된 꼬꼬면은 10월 말 현재 4000만 개(누적)가 판매됐다. 두 업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봉지면에 이어 용기면을 출시했고, 최근 “폭발적인 판매 증가로 생산라인을 증설했다”고 발표했다.
 
  이 두 브랜드의 인기를 확인하기 위해 11월 초 서울 상암동에 있는 한 대형 마트에 들렀다. 주말인 데다 오후 시간이어서인지 나가사끼 짬뽕과 꼬꼬면 진열장은 텅 비어 있었고, ‘매진’이라는 안내 문구가 부착돼 있었다. 담당 점원은 “두 라면 모두 오전에 이미 매진됐다”고 말했다.
 
  업계 4위 업체인 오뚜기식품도 지난 11월 8일 하얀색 닭 국물 베이스인 ‘기스면’을 출시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지금 ‘하얀색 국물 라면’ 열풍에 휩싸여 있는 듯하다.
 
  신라면 유의 매운 라면에 중독돼 있던 소비자들이 이들 하얀색 국물 라면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또한 출시된 지 30~40년이 되도록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라면 브랜드들의 장수(長壽) 비결은 무엇일까. 국내 라면의 역사와 맛의 비밀을 알아보았다.
 
 
  어원은 중국의 라몐에서 유래
 
  라면은 크게 유탕면(油燙麵)과 생면(生麵)으로 나뉜다. 유탕면은 국수를 스팀에 쪄서 기름에 튀겨낸 것이고, 생면은 국수를 스팀에 찐 후 튀기지 않은 것이다. 라면이라고 하면 보통 유탕면을 일컫는다.
 
  라면의 어원(語源)은 중국 란저우(蘭州)의 전통 국수 요리인 라몐(拉麵)에서 유래한다. 전문가들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1868년) 직후인 1870년대 중국인들이 일본 요코하마(橫濱)로 들어가 살면서 전파한 라몐이 일본식으로 정착하면서 라멘이 되고, 1960년대 한국에 상륙해 라면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라몐은 수타(手打)로 뽑은 생면을 소고기 국물에 말아 먹는 국수 요리였다. 일본에서는 소고기 국물 대신 돼지고기와 닭고기 육수를 사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라몐이 아닌 ‘지나(支那)소바’ 혹은 ‘남경(南京)소바’라 불렀다고 한다.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이 매진된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라면 진열대.
 
  1958년 인스턴트 라면 등장
 
  ‘라멘’이라는 명칭이 일본에 정착한 것은 1958년 인스턴트 라면이 개발되면서부터다.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선보인 이는 일본 닛싱(日淸)식품 창업주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다. 대만 출신의 귀화 일본인이었던 그는 일본에서 ‘라면 왕’으로 추앙받다 2007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업적을 기려 일본 오사카(大阪)에는 인스턴트 라면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그가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하게 된 과정이 소개돼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세계 2차대전 후 식량이 부족했던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밀가루 원조를 받았다. 이 밀가루를 이용해 가정에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는 국수와 빵이었다. 국수는 제조과정이 번거로웠고, 빵은 곡류 섭취에 익숙한 일본인에게 주식이 될 수 없었다.
 
  이 무렵 안도는 몸담고 있던 신용조합이 도산해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아이디어가 많았던 그는 밀가루를 원료로 일본인 입맛에 맞는 음식을 개발하기로 결심, 자택에 실험실을 차리고 연구에 몰입했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생선튀김 과정을 보고 무릎을 쳤다. 생선에 묻힌 밀가루가 펄펄 끓는 기름에 들어가면 부피가 줄어드는데, 뜨거운 국물에 넣으면 원상태로 복원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기면 수분이 증발하면서 수많은 구멍이 생기고 부피가 줄었다가 다시 뜨거운 국물을 부으면 구멍에 물이 스며들면서 원상태로 복원되는 원리를 깨친 것이다. 그는 이 원리를 이용해 뜨거운 물에 넣으면 금방 조리되는 유탕면을 개발했다.
 
  안도는 1958년 가을 닛싱식품을 설립했고, 자신이 개발한 유탕면에 간단한 양념 국물을 가미한 아지스케 면(면 자체에 양념을 가미한 면)을 ‘끓는 물에 2분’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출시했다. 이것이 일본 인스턴트 라면의 시초다.>
 
  몇 년 후 경쟁 업체인 묘조(明星)식품이 치킨 라면을 출시하며 인스턴트 라면 시장에 뛰어들었다. 묘조식품은 시일이 지나면 쉽게 변질되는 아지스케 면의 단점을 보완코자 골몰했다. 그 결과 1961년 분말 스프를 첨가한 라면을 처음으로 출시했다.
 
 
  1963년 삼양라면 출시
 
1963년에 출시된 국내 최초의 라면. 당시 한 봉지 값이 10원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라멘이 국내에 들어온 것은 1960년대 초반. 심각한 식량난을 해소하고자 정부 차원의 혼·분식 장려운동이 펼쳐지고 있을 때였다. 이 무렵 삼양식품 창업주 전중윤(全仲潤) 회장은 서울 남대문 시장을 지나가다 꿀꿀이죽을 먹는 수많은 사람을 보고 식량자급 문제 해결이 시급함을 느꼈다. 일 때문에 일본에 자주 드나들었던 그는 값이 저렴하면서도 쉽게 끓여먹을 수 있는 라면에 마음을 두고 있던 차였다.
 
  전 회장은 이때부터 라면 공장 설립을 꿈꿨다. 이 꿈은 몇 년 후 현실화됐다. 1963년 정부가 국민보건 향상과 식량자원 개발이라는 과제를 맡기며 삼양식품에 자금을 지원한 것. 전 회장은 일본의 묘조식품으로부터 2대의 라면 기계를 구입, 1963년 9월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중량 100g에 주황색 포장지의 이 라면 가격은 10원이었다. 당시 시장에서 팔던 꿀꿀이죽 한 그릇이 5원이었고, 커피 한 잔 값이 35원이었다고 한다.
 
  커피 값의 3분의 1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처음 3년 동안 라면 판매는 부진했다. 곡물 위주의 식문화에 익숙한 당시 한국인들에게 라면은 낯선 ‘물건’이었다. 라면을 섬유나 실의 명칭으로 오인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즉석 국수, 삼양라면’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광고를 해도 시장의 반응이 냉랭하자 삼양식품은 전 국민을 상대로 캠페인 성격의 시식회를 전개했다. 그 결과 출시 3년 만인 1966년 11월에 240만 봉지가 판매됐고, 1969년에는 월 평균 1500만 봉지가 판매되는 등 급격한 신장세를 보였다. 마침내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 시기 여러 업체가 경쟁적으로 라면시장에 진출했다. 1965년 롯데공업(현 농심)이 ‘롯데라면’을 출시한 데 이어 해표라면(동방유량), 대표라면(신한제분), 해랑라면(풍국제분) 등이 시장에 나왔다. 이들 후발주자 중에는 롯데라면만 살아남았다.
 
국내 최초의 라면 회사인 삼양식품의 초기 라면 광고들.
 
  牛脂파동 후 양강 구도 무너져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롯데라면은 시장을 선점한 삼양라면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삼양은 1969년 국내 최초로 베트남에 라면을 수출(150만 달러)하며 라면의 세계화를 선언한 데 이어 1972년 국내 최초의 용기면인 ‘컵라면’을 출시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처럼 견고했던 삼양라면의 아성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롯데가 농심라면을 출시하면서부터다. 롯데는 대대적인 광고 전략으로 농심라면을 홍보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광고 카피도 이때 나왔다. 농심라면이 인기를 끌자 롯데는 1978년 사명을 아예 ‘농심’으로 바꾸었다. 1982년에는 ‘라면 맛은 스프 맛’이라는 개념으로 경기도 안성에 스프 전문 공장까지 세웠다. 이후 출시된 제품이 오늘날까지 장수하고 있는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 등이다. 이들 브랜드 덕분에 만년 2위였던 농심은 1985년 마침내 1위로 올라섰고, 1986년 신라면을 출시하면서 2위 업체인 삼양과의 간극을 벌려 나가기 시작했다.
 
  라면 선도업체였던 삼양은 농심에 1위 자리를 내 준 후 설상가상으로 우지(牛脂)파동이라는 악재까지 만나 정상 탈환의 동력을 상실했다. 1989년 발생한 ‘우지파동’은 삼양이 라면에 비식용(非食用) 우지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7년8개월간의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삼양은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1000여 명의 직원이 퇴사하고 시장점유율이 10% 중후반까지 하락한 뒤였다.
 
  우지파동으로 라면 업계의 양강 구도 체제가 무너지면서 농심은 오늘날까지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농심의 시장점유율이 70%가 넘는 가운데, 나머지 시장을 놓고 삼양식품, 오뚜기 식품, 한국야쿠르트, 빙그레, 풀무원식품, 롯데 등이 경쟁하고 있다.
 
 
  원료뿐 아니라 가공 설비도 중요
 
위) 라면 공장에서 반죽을 롤러에 압연하는 과정.
아래) 분말 스프 투입 후 불량품이 없는지 육안으로 확인 선별하는 과정.
  우리가 흔히 먹는 라면은 수분 함량이 10% 이하(대부분 4~8% 정도)인 유탕면과 국물 양념인 분말 스프로 구성돼 있다. 유탕면의 장점은 수분 함량이 적은 탓에 방부제를 쓰지 않아도 맛이 변하지 않아 유통 기한이 길다는 점이다. 유탕면은 밀가루를 반죽해 뽑은 생면을 스팀으로 찐 후 팜유나 대두유(大豆油)에 튀기는 공정으로 제조된다. 반죽할 때 밀가루 외에 전분을 넣는데, 봉지면은 미끈하고 쫄깃한 식감을 위해 3~5% 정도 넣고, 용기면은 빨리 익게 하기 위해 20% 정도 투입한다.
 
  식품영양학자들에 따르면 녹말가루인 전분은 물에 부어 열을 가하면 입자에 틈이 생겨 밀가루보다 훨씬 빨리 익으며 투명한 색을 띤다. 녹말이 투명하게 익는 과정을 전문 용어로 호화(糊化)라 한다. 전분 함량이 높은 면은 호화가 빠르다. 또한 쫄깃한 식감이 있으나 과할 경우 고무줄처럼 질겨지는 단점이 있다.
 
  스프는 면에 비해 훨씬 단순한 제조과정을 거친다. 소고기와 채소 등 스프에 들어가는 각종 원료를 고압에서 압축하고 진공 농축시켜 건조한 후 분쇄한다. 이것을 일정한 비율로 혼합하면 된다.
 
  전문가들은 라면 맛은 면도 중요하지만 스프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료가 단순한 면 만들기 공정은 어느 정도 표준화돼 큰 차이가 없지만 스프는 들어가는 재료나 이를 가공하는 노하우와 기술이 업체마다 달라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라면 업계 관계자들도 “라면 맛을 결정하는 핵심은 결국 스프인 것 같다”고 말한다.
 
  농심 연구소와 마케팅 부서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이정근(李貞根) 상무는 “스프의 맛은 어떤 원료로 어떻게 만드느냐가 결정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좋은 맛은 좋은 재료에서 나옵니다. 똑같은 사골 국물이라도 뼈의 품질에 따라 맛이 다를 수 있죠. 잡뼈로 끓인 국물은 맛이 덜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엄선된 재료라 해도 가마솥에 장작불로 끓였느냐, 냄비에 가스불로 끓였느냐에 따라 맛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죠.”
 
  농심은 가마솥에 장작불로 끓인 것 같은 국물 맛을 내기 위해 최첨단 설비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 상무의 설명이다.
 
  “분말 스프는 다양한 재료를 탕으로 끓여 엑기스로 제조한 후 수분을 증발시켜 만듭니다. 이 과정에 원재료가 갖고 있는 특유의 맛과 향이 수분과 함께 날아갈 수 있는데, 저희는 이것을 붙잡는 최첨단 설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재료 본연의 맛을 내는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죠.”
 
  농심이 갖추고 있는 이 첨단 설비는 연 매출 1000억원 미만의 제품에 투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그는 “신라면이 오랫동안 라면시장에서 1위 자리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첨단 설비를 이용해 끊임없이 맛을 업그레이드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흰색 국물 라면이 전체 시장 키워
 
농심의 이정근 상무.
  이정근 상무는 신라면이 출시돼 한창 인기를 끌고 있을 때 입사했다. 라면 연구원이자 마케팅 전문가인 그는 신라면이 롱런한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신라면은 우리나라 식문화에 딱 맞는 맞춤형 맛을 구현한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구수한 맛과 얼큰한 맛을 좋아합니다. 소고기 국물에 대한 향수도 있고요. 신라면은 이 모두를 충족시키는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소고기 국물을 베이스로 구수한 맛과 매운맛을 황금비율로 조합한 것이 성공 포인트 아닌가 싶어요.”
 
  신라면 맛은 2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매워졌고, 그에 따라 구수한 맛도 깊어졌다. 밀가루에 글루텐 함량을 추가해 면의 식감도 부드러우면서 더욱 쫄깃하게 업그레이드했다고 한다.
 
  농심은 이에 그치지 않고 한층 업그레이드된 신라면 맛을 선보이겠다며 신라면 출시 25주년에 맞춰 지난 4월 신라면 블랙을 내놓았다. 하지만 재료 원가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소비자들의 항의와 이를 수렴한 공정위의 철퇴로 출시 4개월 만에 국내 생산을 중단했다. 출시 당시 신라면 블랙의 가격은 신라면(730원)보다 두 배 이상 높은 1600원이었다. 이정근 상무는 신라면 블랙의 패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소비자들은 포장지에 표기된 재료의 원가에만 관심이 있지 그 재료를 가공하기 위해 투자한 설비 원가까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사실 생산자 입장에서는 똑같은 원료를 가지고도 똑같은 맛을 낼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 설비입니다. 저희는 사골 국물 베이스의 신라면 블랙 맛을 내기 위해 연구력과 최신 설비에 3000억원을 투자했지요.”
 
  최첨단 시설의 감가상각비를 소비자에게 부담시킨 것이 무리였고, 직접적인 패인이었다는 것으로 들렸다. 이 상무는 “신라면 블랙은 국내 판매는 중단됐지만 해외 수출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농심이 신라면 블랙의 국내 판매 중단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즈음 하얀색 국물 라면이 출시돼 돌풍을 일으켰다. 일부 전문가들은 라면 업계에 지각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언론에서는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 열풍으로 농심의 심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닐 것’이라는 추정도 했다. 정말 그럴까. 이정근 상무가 껄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꼬꼬면이나 나가사끼 짬뽕이 10년 이상 정체기에 있던 라면시장을 흔들어 놓았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뿐더러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두 브랜드가 매운맛의 영역을 기존의 얼큰함에서 칼칼함까지 확장했고, 침체돼 있던 업계에 활력까지 불어넣고 있으니까요.”
 
  라면 업계에서는 신생 브랜드의 성공 여부를 최소한 1년 이상 관찰한 후 판단한다고 한다. 이 상무는 “하얀색 국물 라면의 인기가 앞으로 1년 이상 지속될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매운 라면의 시장을 잠식하기보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업계 파이를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농심이 이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지 여부 역시 1년 후에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꼬꼬면은 이경규의 승리
 
한국야쿠르트의 최용민 차장.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은 지난 7월과 8월 1주일 사이를 두고 출시됐다. 꼬꼬면은 이미 알려진 대로 코미디언 이경규씨가 KBS <남자의 자격> ‘라면의 달인’ 편에서 선보인 라면을 토대로 개발됐다. ‘남자의 자격’은 지난 3월 3주에 걸쳐 ‘라면의 달인’을 뽑는 TV 라면요리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서 닭 국물을 베이스로 라면을 끓인 이경규씨가 우승했고, 당시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한국야쿠르트의 최용민(崔龍民) F&B마케팅 차장이 제품화에 앞장서면서 시장에 나오게 됐다. 최 차장은 한국야쿠르트 라면 연구원 출신 마케팅 담당자이면서 국내 최대 라면 동호회 사이트인 ‘라면 천국’ 운영자이기도 하다. 그는 심사 당시 “첫맛에 반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저뿐만 아니라 심사위원 전원이 이경규씨가 끓인 라면 맛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특히 닭 국물의 느끼함을 칼칼한 청양고추로 잡았다는 점에서 놀랐지요. 닭 국물과 청양고추의 조화가 환상적이었습니다. 이후 시청자 게시판을 보니 레시피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더군요. 전문가인 심사위원들이 그 맛을 인정했고, 많은 이가 관심을 갖는 라면이라면 시장에서도 승부해 볼 만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한국야쿠르트는 방송 끝난 지 1주일 만인 4월 13일 이경규씨와 정식 계약을 맺고 제품화 준비에 돌입했다. 우선 닭고기 국물에 어울리는 면발 개발이 시급했다. 방송 출연 당시 이경규씨는 농심의 안성탕면을 사용했다고 한다. 한국야쿠르트 라면 연구팀은 안성탕면보다 면발이 부드럽고 탄력 있어야 한다고 판단, 밀가루 반죽에 글루텐을 첨가하고 7단 롤러를 사용해 면을 뽑았다. 기존 라면의 경우 대개 5단 롤러를 사용한다고 한다. 최 차장은 “7단 롤러에서 면을 뽑았다는 것은 반죽을 그만큼 여러 번 치대 탄력성을 높였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닭고기 육수에 청양고추를 썰어 넣은 것은 이경규씨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렇게 개발된 면발을 이경규씨의 레시피에서 거친 맛만 잡아낸 닭고기 육수에 끓여 시연회를 가졌다. 그 결과 이전 것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연회에 참석한 이경규씨와 딸 예림 양도 “이전 것보다 훨씬 맛이 좋다”는 품평을 했다.
 
  꼬꼬면은 8월에 출시되자마자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갔다. 한국야쿠르트 측은 “월 1350만 개씩 생산하는데도 부족해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꼬꼬면 출시 후 3개월 매출이 250억원입니다. 저희 회사 효자 브랜드 중 하나인 ‘일품 해물라면’의 연 매출을 넘어선 상황이죠. 11월 1일에 꼬꼬면 용기면도 출시되었는데, 시장에 나오자마자 100만 개가 완판됐습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꼬꼬면 어디서 살 수 있느냐’는 문의가 폭주해 정신이 없네요.”
 
  한국야쿠르트 직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사실 꼬꼬면은 맛도 맛이지만 인기 연예인을 등에 업은 마케팅으로 성공한 측면이 없지 않다. 최용민 차장은 이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꼬꼬면을 롱런하는 브랜드로 정착시키는 것이 가장 큰 마케팅 과제”라고 말했다. 꼬꼬면은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동시에 TV CF를 내보내는 등 본격적인 홍보 작업에 들어갔다.
 
 
  나가사끼 짬뽕 돈 안 들이고 홍보
 
한국야쿠르트의 꼬꼬면이 제조돼 포장 단계를 거치고 있는 모습.
  다소 요란하게 등장한 꼬꼬면에 비해 나가사끼 짬뽕은 조용히 출시돼 입소문으로 시장을 넓혀 가고 있다. 나가사끼 짬뽕은 지금껏 광고 한 번 한 적이 없다. 출시 1주일 후인 지난 8월 2일 언론을 상대로 ‘하얀 국물 라면, 업계 판도 뒤집는다’는 보도자료를 돌렸을 뿐이다. 이미 화제가 된 꼬꼬면을 나가사끼 짬뽕의 마케팅에 끌어들인 셈이다. 꼬꼬면 측은 “돈 안 들이고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니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평하면서도 “나가사끼 짬뽕은 꼬꼬면의 공급부족 현상 덕을 보고 있는 라면”이라며 은근히 경쟁의식을 드러냈다.
 
  나가사끼 짬뽕은 7월 말 출시 이후 8월에 300만 개가 팔리고, 9월에 900만 개, 10월에 1400만 개 등의 판매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삼양식품 측은 “폭발적인 판매증가로 10월 26일부터 생산라인 1기를 추가 설비하여 3개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9월 26일에는 용기면까지 출시해 10월 한 달에만 250만 개의 판매고를 올렸다.
 
  삼양식품 측은 “나가사끼 짬뽕은 꼬꼬면과 달리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라면”이라며 “지난해 인수한 면 요리 전문 프리미엄 레스토랑 호면당(好麵堂)에서 시험판매 후 자신감을 갖고 시장에 내놓은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나가사끼 짬뽕 개발부터 론칭까지 진두지휘한 이는 김정수(金廷修) 사장이다. 오래전부터 돼지뼈 국물의 라면에 관심을 가져 온 김 사장은 지난해 외식업체인 호면당을 인수한 직후 삼양식품 연구소에 나가사끼 짬뽕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개발에 참여한 전영일(全永一) 연구소장은 “사장님의 지시로 호면당에서 판매할 액상 스프를 먼저 개발했다”며 나가사끼 짬뽕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희 연구소는 오래전부터 하얀색 국물 라면 개발에 도전해 왔습니다. 해물 육수로 맛을 낸 바지락칼국수, 1년 전 출시한 황태라면 등이 그 도전의 흔적들이죠. 나가사끼 짬뽕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한 제품입니다. 이 브랜드의 특징은 진한 돼지뼈 육수의 비릿하고 느끼한 맛을 청양고추로 잡은 후 홍합, 새우, 굴, 바지락, 오징어 등의 해물을 넣어 시원한 맛을 더했다는 데 있지요.”
 
  국물을 소고기가 아니라 돼지뼈로 우려냈다는 점, 매운맛을 고추의 추출물인 캡사이신이 아니라 청양고추로 냈다는 점 등이 나가사끼 짬뽕의 차별점이다. 전영일 소장은 “면의 경우 기존 라면보다 굵고 찰기 있으면서 매끄럽게 하기 위해 전분과 글루텐 함량을 높였다”고 말했다. 나가사끼 짬뽕 면에는 전분 함량이 기존 라면(11%)보다 7% 정도 높다고 한다.
 
 
  삼양식품 살린 쌀라면
 
  전영일 소장은 “나가사끼 짬뽕의 주가가 날로 치솟고 있는 요즘 들어 과거 위기에 빠졌던 삼양식품을 구한 쌀라면 생각이 많이 난다”며 그 시절을 회고했다. 1989년 우지파동 직후의 일이다. 당시 전 소장은 익산공장 생산부에서 근무 중이었다고 한다.
 
  “우지파동 후 익산공장의 생산라인은 가동이 전면 중단됐습니다. 생산직 사원의 대다수가 그만두었고, 일부만 남은 상태였는데 딱히 할 일이 없었어요. 심심해하던 어느 날 직원 몇 명이 ‘쌀이 남아돈다니 쌀라면을 만들면 어떨까’라며 심심풀이로 쌀라면을 연구해 만들었습니다. 밀가루에 쌀 30%를 섞어 만든 라면이었죠. 그것을 전중윤 당시 회장께서 맛보시곤 장사가 되겠다 싶었는지 제품화하자고 했습니다. 마침 정부에서도 쌀 소비를 권장하고 있던 터라 쌀라면은 큰 화제가 됐습니다.”
 
  쌀라면은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쌀라면은 우지파동 사건으로 벼랑 끝에 몰린 삼양식품에 회생의 발판을 마련해 줬다. 하지만 쌀라면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 소장은 “쌀을 재료로 한 라면의 한계도 있었지만 품질개발을 소홀히 한 탓도 있다”며 “나가사끼 짬뽕이 쌀라면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 품질개발에 온 신경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의 입맛을 붙들기 위해 출시 후에도 한 달에 한 번씩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시식회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맛의 변화가 없는지, 더 좋은 맛을 위해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등을 체크합니다. 라면 맛의 핵심은 국물이기 때문에 특히 국물 맛에 대한 의견을 많이 경청하고 있지요.”
 
  우지파동 후 만년 2위 업체가 된 삼양식품은 오랜만에 찾아온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나가사끼 짬뽕에 정성을 쏟고 있었다.
 
 
  오뚜기도 흰색 국물 라면 출시
 
오뚜기식품의 김규태 차장.
  나가사끼 짬뽕이 일본식 수제 라면을 한국식 라면으로 개발한 제품이라면 오뚜기식품의 기스면은 중국식 면 요리를 한국 라면으로 개발한 것이다. 오뚜기 측은 지난 11월 8일 기스면을 출시하면서 “3년간의 오랜 개발 기간을 거쳐 오늘 오뚜기 기스면을 야심차게 출시했다”고 밝혔다. 자칫 잘못하면 최근 트렌드에 편승한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배수의 진을 치는 듯했다.
 
  오뚜기 측은 기스면의 특징에 대해 “흰 국물의 담백한 맛을 살리면서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맵고 시원한 맛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닭 육수의 느끼한 맛을 청양고추로 잡고, 해물을 넣어 시원함을 더했다는 점에서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의 장점을 섞어 급조된 제품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기스면 개발에 참여한 오뚜기식품연구소의 김규태(金圭泰) 차장은 “3년 전부터 준비한 제품이지만 회사 내부 사정상 출시일정을 미뤄 오다 유사 라면인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이 나와 출시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18년째 라면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김 차장은 얼마 전 SBS TV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 국물 냄새만으로 라면 브랜드를 100% 맞히는 실력을 선보인 인물이다. 그는 기스면을 개발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얼핏 보면 우동과 비슷한 기스면은 실처럼 가는 국수를 닭고기 국물에 말아 먹는 계사면(鷄絲麵)에서 유래한 요리입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이미 라면으로 출시된 짜장면과 짬뽕 외에 제품화할 만한 다른 중화요리가 없을까 물색하다 기스면을 낙점해 2년여 동안 연구 개발한 끝에 출시하게 됐지요.”
 
  마요네즈와 케첩, 카레 등으로 유명한 오뚜기식품은 1987년 라면 사업에 진출, 대표 브랜드가 된 진라면을 출시했다. 이후 스낵면, 치즈라면, 백세카레면, 라면볶이 등 색다른 재료를 라면에 접목시키는 브랜드 개발로 주목받아 왔다.
 
  기스면의 경우 판매 추이를 두고 봐야 하겠지만 오뚜기식품의 가세로 하얀색 국물 라면 시장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하얀색 국물 라면의 인기가 높기는 하지만 신라면의 아성을 넘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냄비뚜껑 열어 놓고 끓여야 맛있어
 
  라면은 제조법은 물론 어떻게 끓이느냐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인터넷 라면 동호회 사이트나 블로그에는 ‘라면 맛있게 끓이는 방법’이 소개돼 있는데 공통점을 요약하면 ‘적정량의 불을 붓고 최대한 센 불에 짧은 시간 안에 끓일 것, 라면이 끓는 도중 면발이 차가운 공기와 접촉할 수 있도록 젓가락으로 들어올려 줄 것, 신선한 야채나 해물을 추가로 넣어 줄 것’ 등이다.
 
  이 방법이 맞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라면 제조사와 라면 전문점 주인들의 얘기를 들었다.
 
  먼저 농심의 이정근 상무는 “대체로 맞는 것 같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라면을 맛있게 끓인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이라 정답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집에서 끓이는 것보다 분식집에서 끓인 라면이 맛있다고 느끼는 데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선 분식집 가스레인지는 가정에서 쓰는 것보다 화력이 셉니다. 그 때문에 짧은 시간에 라면을 끓여낼 수 있죠. 그렇게 되면 면발이 훨씬 꼬들꼬들합니다. 또한 끓는 물의 온도가 높아 스프의 양념이 맛있게 섞이게 되죠. 찌개를 두세 번 끓이면 더욱 맛있어지는 원리와 같습니다.”
 
  라면 요리 경력 15년의 임형태(林亨泰)씨는 라면을 센 불에 끓이면 더 맛있는 이유를 과학적 근거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1998년부터 서울 강남구 선릉동에서 라면 전문점 황토군토담면오다리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말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유탕면은 보통 140℃ 기름에서 튀겨져 나온 것입니다. 이때 면발에 구멍이 생기는데, 이 구멍에 물이 스며들어 속까지 호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물 온도 역시 140℃ 가까이 올려줘야 합니다.”
 
  임씨에 따르면 라면이 한창 끓고 있을 때 면발을 찬 공기와 접촉해 주면 호화와 노화가 반복적으로 일어나 쉽게 붇지 않고 꼬들꼬들해 더욱 맛있다. 한창 끓는 라면에 국물이 싱거워지지 않을 정도의 얼음물을 끼얹어도 비슷한 효과가 난다. 이는 한창 끓는 소면에 찬물을 끼얹으면 면이 속까지 잘 익고 꼬들꼬들해지는 원리와 같다. 그는 “라면을 끓일 때는 냄비 뚜껑을 열어 놓고 끓여야 더욱 맛있다”고도 했다. 이유는 수중기가 안에 갇혀 있으면 면에 흡수돼 빨리 붇기 때문이란다.
 
  황토군토담면오다리는 프렌차이즈 지점을 8개나 오픈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임씨는 그 노하우를 이렇게 소개했다.
 
  “저희는 신라면, 안성탕면, 진라면 등 시장점유율이 높은 라면에 자체 개발한 양념스프로 맛을 내고 있습니다. 양념에는 유탕면의 기름기를 중화시키는 다시마, 양파, 마늘 등이 들어가죠. 100점짜리 유탕면을 120점짜리 요리로 만들기 위해 정성과 손맛을 들인 이 양념을 쓰고 있습니다.”
 
 
  국물은 60℃일 때 최고
 
  삼양식품의 전영일 소장 역시 “면발의 호화 정도에 따라 식감이 달라진다”며 “꼬들꼬들한 면을 좋아한다면 면을 찬 공기에 접촉시킬 것”을 권한다. 그의 설명이다.
 
  “분식집에서는 보통 양은냄비에 라면을 끓이는데, 양은냄비는 열 전도율이 빠릅니다. 그 때문에 물이 빨리 끓고, 면의 안쪽까지 호화가 빨리 일어나지요. 호화가 덜되면 라면이 설익고, 지나치면 불어 터집니다. 라면이 한창 끓고 있을 때 면발을 찬 공기와 접촉해 주면 호화가 진행되다 멈추게 되죠. 이것을 반복하면 면발이 꼬들꼬들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전 소장에게 “집에서 나가사끼 짬뽕을 더욱 맛있게 끓여 먹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집에 있는 각종 야채와 해물을 넣어 드십시오. 시중에서 사 먹는 고가의 일본식 수제라면 이상의 맛이 날 것입니다.”
 
  한국야쿠르트의 최용민 차장은 “어떤 라면이든 물 조절을 잘못하면 맛이 없다”며 “라면 물은 좀 적지 않을까 싶을 정도가 적당하다”고 코치해 주었다. 그는 꼬꼬면을 맛있게 끓여 먹는 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꼬꼬면의 칼칼하고 담백한 맛은 물 500mL를 부었을 때 가장 잘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라면에 달걀을 풀어 넣는 분이 많은데, 꼬꼬면에는 노른자를 터뜨리지 않고 넣는 것이 더 맛있습니다. 또 숙주를 살짝 데쳐서 얹어 먹으면 베트남 쌀국수 못지않은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오뚜기 식품의 김규태 차장은 “라면 맛은 국물이 핵심”이라며 “국물은 60℃ 정도일 때가 가장 맛있으니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 라면 기계 특허 내
 
수제라면 전문점 ‘라젠’의 강환일 대표.
  라면은 성장기인 청소년들의 간식으로 인기다. 이 때문에 중·고등학교 앞에는 항상 라면 전문 분식점이 두세 군데 있게 마련이다. 최근 한 케이블 채널에서는 이런 라면 전문점을 배경으로 한 성장 드라마 <꽃미남 라면가게>가 방영되고 있어 청소년들 사이에 화제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라면은 소품일 뿐 주요 대상이 아니어서 실망한 이가 많다.
 
  이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 주려는 듯 조만간 <제빵왕 김탁구>처럼 라면 장인을 다룬 드라마가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드라마의 모델은 서울 강서구 목동에서 수제라면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강환일(姜煥一)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젊은 시절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강씨는 라면을 워낙 좋아해 어느 날 ‘인스턴트 라면이 아닌 진짜 라면을 만들어 먹어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라면 기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례가 없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그는 8년 만에 라면 설비를 개발했고, 2007년 국내 최초의 수제라면 전문점 ‘라젠’을 오픈했다. 개발에 성공하기까지 수천만 원을 들인 라면 기계는 특허 등록을 마친 상태다.
 
  “신선한 재료로 매일매일 만든 라면을 먹으면 참 좋겠다는 단순한 희망이 저를 라면에 미치게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래전 그 희망 대로 저희 집에서는 매일매일 밀가루를 반죽해 면을 뽑고 스팀에 쪄서 생면과 유탕면을 만들고 있습니다. 유탕면은 팜유나 대두유보다 좀 더 질이 좋은 카놀라유(유채 기름)에 튀겨 만들고 있죠.”
 
  라면 설비는 가게 주방에 갖춰놓았다. 작은 라면 공장이 주방에 들어와 있는 셈인데, 그는 매일 아침 하루 판매 물량의 라면을 만든다고 한다.
 
  라젠의 라면은 생면과 유탕면이 있고, 사골 육수, 해물 육수, 닭 육수 베이스에 갖가지 야채를 넣은 메뉴 12가지 중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다. 가격은 한 그릇에 7000~1만원까지로 라면 치고는 좀 고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 번 맛을 본 이들은 비싸다는 생각을 지운다고 한다. 이 말에 공감이 갈 정도로 맛이 풍부하고 양 또한 푸짐했다. 기자는 나가사끼 짬뽕을 먹었는데, 구수한 돼지뼈 국물에 야채와 해물의 신선한 맛이 가득 배어 있었다.
 
  강씨에게 “라면 맛의 비밀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신선한 재료와 정성”이라고 말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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