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장어 맛은 ‘굽는 기술’에 달렸다
말린 장어 ‘숙성’의 감칠맛은 어느 생선보다 월등
우리가 먹는 장어는 크게 네 종류다. 갯장어, 붕장어, 뱀장어, 먹장어. 이 이름만 알면 쉬운 일인데, 각각이 별칭이 있어 외워야 할 것이 또 있다. 갯장어는 참장어, 바닷장어, 하모 등으로 불린다. 붕장어는 흔히 아나고라고 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이를 두고 바닷장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뱀장어는 민물장어라고도 하는데 흔히 풍천장어라고 파는 그 장어다. 먹장어는 꼼장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남해 바닷가의 소도시에서 살았다. 그래서 바다에서 나는 장어에는 어릴 때부터 익숙하다. 어시장에 가면 살아 있는 먹장어를 잡아 그 자리에서 구워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먹장어의 껍질을 벗기면 붉은 피가 돋은 살이 드러나는데 이게 꿈틀거리며 석쇠 위에서 구워졌다. 껍질 벗겨진 먹장어가 석쇠를 탈출해 바닥을 기기도 했다. 여자들은 기겁을 했고 남자들은 침을 삼켰다. 굽고 나면 그 고소한 냄새에 여자들도 맛있게 먹었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장어 낚시를 했다. 장어는 야행성이라 밤낚시를 한다. 바늘을 되도록 멀리 던져야 하니 줄낚시를 썼다(그때는 릴 같은 것은 없었다). 줄낚시 끝에는 방울을 달아 장어가 물면 소리가 나게 했다. 미끼는 홍합이었다.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여름의 부둣가에 그렇게 앉아 있으면, 밤바다의 향은 참 달콤했다.
장어가 물면 방울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이때 순식간에 낚싯줄을 채서 올려야 한다. 장어는 자신이 문 홍합 안에 낚싯바늘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면 그 몸을 돌 틈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면 아무리 당겨도 장어는 나오지 않고 낚싯줄은 끊어지고 만다. 장어를 올리고 난 다음에도 또 한판 싸움을 벌여야 한다. 힘이 워낙 좋아 맨손으로는 절대 잡을 수 없다. 수건으로 머리와 몸통을 동시에 감아쥐어야 하는데, 손에서 느껴지는 그 막강한 힘은 그 넓은 바다의 기운을 다 받은 듯했다. 장어를 낚싯줄 위에서 놓치면 요동질에 줄은 엉망이 되고 그 한 마리로 낚시가 끝나고 만다.
그때에 잡았던 바다의 장어는 갯장어와 붕장어였을 것인데, 이 둘이 어떻게 다른지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갯장어는 이빨이 날카롭고 한번 물면 놓지 않으며, 심지어 물고는 몸을 비틀어 상처를 깊게 남기는, 무시무시한 놈이다. 붕장어는 이빨이 잘고 잘 물지도 않아 안전하다. 이 두 장어는 한 바다에서 자라 같이 낚인다.
갯장어와 붕장어는 조리에서도 크게 차이를 두지 않았다. 보통은 탕으로 해서 먹었는데, 푹 끓여 살을 으깨고는 된장, 고추장 풀고 토란대, 고사리 등등에 방아, 초피가루를 넣고 먹었다. 말로는 장어탕이라고 하지만 사실 추어탕처럼 끓였다. 고등어도 이렇게 끓여 먹으면 맛있다. 그다음으로 흔했던 것은 구이와 조림이었다. 장어를 꾸덕하게 말렸다가 양념을 발라 굽거나 조려 반찬으로 썼다. 장어는 말려지면서 숙성이 된다. 숙성의 깊은 감칠맛은 그 어느 생선에서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남해 바닷가 어시장에 가면 말린 장어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수도권의 시장에서는 이를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일본에선 전남 고흥산 갯장어를 최고로 여겨
갯장어를 말리고 있다. 볕에서 말리면 30분이면 족하다. 이렇게 말려 냉장해두고 그때그때 요리하면 된다. ⓒ 황교익 제공
내 고향에서도 뱀장어를 먹기는 했을 텐데 내 기억에는 없다. 서울에 와서 처음 뱀장어를 먹었을 때 그전까지 먹었던 장어와 달리 심심해서 “이걸 왜 먹나” 했다. 바다의 장어에는 갯내가 있는데 민물의 뱀장어에는 그 향이 없기 때문이었다. 밤바다의 그 고운 향이 없는 장어라니! 그러면서도 차츰 뱀장어의 맛에 익숙해져갔는데, 지금은 그 밋밋한 기름 향에 침을 삼키곤 한다.
뱀장어는 민물에서 사나 태어나는 곳은 바다다. 민물에서 살다가 태평양 한복판 심해에까지 나아가 알을 낳는다. 어미는 그때 죽고 어린 뱀장어가 다시 어미의 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살아간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자연산 뱀장어는 드물다. 태평양 한복판에서 태어난 실뱀장어가 내륙의 강을 향해 올라올 때 잡아서 양식장에서 키운다. 실뱀장어의 무게는 0.2g 정도 되는데 이를 8개월 정도 키우면 250g에 이르고, 이것을 우리가 먹는다.
뱀장어는 대부분 구워서 먹는다. 소금만 치기도 하고 양념을 바르기도 한다. 뱀장어는 어떻게 굽느냐에 따라 그 맛이 확연히 다르다. 솜씨 있는 사람이 구워야 한다는 말이다. 일본인이 특히 뱀장어구이를 즐기는데, 일본에서는 뱀장어 굽는 일을 전문 요리사에게 맡긴다. 귀한 재료이니 그 요리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뱀장어를 흔히 손님이 굽는다. 곁에서 보고 있으면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다. 너무 바짝 익혀 먹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 구운 후에 약한 불에 올려두고 말리기까지 하니! 그 비싸고 귀한 뱀장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일본인이 뱀장어만큼 귀하게 여기는 장어가 갯장어다. 그 갯장어 중에서도 한국산, 특히 전남 고흥산 갯장어를 최고로 친다. 일본에서는 갯장어를 여름철 별식으로 즐기는데, 여름에 일본 어시장에 가면 ‘고흥산 갯장어’라는 팻말까지 볼 수 있다. 일본에 고흥 갯장어가 소문난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의 일이다. 여름 새벽에 고흥에 가면 포구를 도는 수조차들을 볼 수 있다. 일본에 수출하는 갯장어를 수집하는 것인데, 그들은 한 마리의 무게가 250g 이상인 것만 가져간다. 그 크기 이상이 되어야 맛있다는 것이다.
그 나머지는 국내 시장에 풀린다. 돈 있는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진리’가 여기서도 통하는 것이다. 일본인은 이 갯장어를 가져가서는 자잘한 칼집을 내 회로 먹거나 다시마와 가다랭이포 우린 물에 살짝 데쳐서 먹는다. 살짝 데쳐서 먹는 음식의 이름은 ‘유비끼’인데, 한국에서도 이 음식이 차츰 번지고 있다. 갯장어 먹기로는 이 방식이 ‘갑’이다. 일본에서 온 것이라 해도 따라할 만한 조리법이다.
한국과 일본, 식성에 따라 제철 달라
잘 구워진 뱀장어. 껍질과 살 사이에 기름이 잘 잡혀 있다. 솜씨 없는 일반인이 구워서는 이렇게 되지 않는다. ⓒ 황교익 제공
재미있는 것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식성이 달라 갯장어가 맛있다고 하는 철이 다르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7월을 넘기면 갯장어 먹는 것을 끝낸다.
갯장어가 너무 기름져 맛이 없다고 여긴다. 일본인들의 이런 기호는 다른 장어 요리에서도 나타나는데, 뱀장어구이를 할 때도 되도록 기름을 쪽 빼며, 장어 중 기름기가 가장 많은 붕장어는 아예 즐기지를 않는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름기가 꽉 찬 갯장어를 더 맛있어 한다. 그러니 8월이면 기름이 꽉 찬, 그것도 큼직한, 한국인의 기호에 맞는 갯장어를 다소 싸게 즐길 수 있다.
큼직하고 기름 가득한 갯장어는 꾸덕하게 말려 구우면 아주 맛있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지만 그 기름이 워낙 가벼워 거북하지 않다. 갯장어의 은근한 살 맛을 즐기려면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구이보다는 소금구이가 낫다. 말린 갯장어로 탕을 끓여도 뽀얀 국물이 우러나와 별미다. 고춧가루, 마늘, 파, 설탕 등으로 양념한 간장에 조려도 맛있다. 이건 일본인은 절대 모르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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