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이 그 맛이면 대접받기 어려워
전국에 전통 된장 제조업체가 2000여 곳 있다고 한다. 대부분 농촌 마을로, 콩 생산자가 직접 담그기도 하고 부녀회 같은 단체가 나서서 이 일을 하기도 한다. 귀농한 사람 중에도 된장 제조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다. 다들 어렵다고 말하는데도 전통 된장 사업을 새롭게 벌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만큼 된장 담그는 일이 쉽기 때문이다.
된장은 손맛이니 전통이니 하지만, 실제 된장 담그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하던 일이다. 또 메주 쑬 때 번거롭기는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아니다. 일단 된장을 담가놓으면 상해서 버리는 일도 거의 없다. 소문만 잘 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전통 된장을 담그는 사람들은 다들 손맛에 대해 자신감이 넘친다. 누구 하나 “대한민국 제일” 아닌 사람이 없다. 그러나 필자가 먹어본 그들의 된장은 그 맛이 비슷비슷하다. 명인 칭호를 듣는 이의 된장이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골 여인네의 된장이나 그게 그거다. 한국인 아무나 붙잡고 “무슨 된장이 제일 맛있나요?” 하고 물어보라. 가장 많은 답은 “우리 어머니 된장” “우리 할머니 된장”일 것이다. 한국인에게 전통 된장 맛이란 그 정도의 것이다.
전통 된장이 공장 된장에 밀려 고전하는 건 소비자가 그 맛을 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맛을 잘 알기에 찾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전통 된장 맛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통 된장 맛의 문제는 솜씨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원인은 한국 자연에 있다.
전통 된장은 콩으로 메주를 쑤고 여기에 소금과 물을 더해 숙성시킨다. 겨울에 담근 이 전통 된장이 맛을 내려면 최소한 여름을 넘겨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여름은 매우 덥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로 한국의 여름 날씨가 열대지방 수준이다. 이런 기온에서는 된장이 과숙성을 한다. 과숙성 된장은 쉰내가 나고 잡맛이 올라온다. 이를 피하려면 소금을 많이 넣어야 한다. 따라서 전통 된장은 ‘짜거나 잡내 나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소비자가 전통 된장을 찾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 두 가지다.
전통 된장의 재료로 꼭 콩만 쓰는 것은 아니다. 콩 외에 보리, 밀, 쌀 등으로 담그는 된장도 있다. 이를 부르는 이름이 지역에 따라 제각각인데 흔히 등겨장, 담뿍장, 즙장, 막장, 보리장, 밀장이라고 부른다. 한반도 남부지역과 동해안에서 흔히 만들어 먹던 장이다. 겨울 날씨가 따뜻하고 습한 지역에선 메주가 잘 뜨지 않으므로 보리 등의 곡물을 넣어 발효시킨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된장은 단맛이 난다. 보리, 밀, 쌀 등의 전분이 당으로 변해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 전분 덕에 3개월 정도면 숙성이 완료돼 깊은 맛을 낸다. 그러니 소금을 조금만 넣어도 돼 짜지 않다. 숙성 기간이 짧으니 여름 무더위를 피해 소량씩 여러 번 생산해 과숙성을 방지할 수 있다. 단기 숙성하면 메주 뜨는 냄새나 곰팡이 냄새도 없다.
한국에서는 전통이라 하면 ‘하나’만 있는 것으로 여긴다. 전통 김치는 배추김치이고 전통 고추장은 찹쌀고추장이며 전통 된장은 콩메주된장이라는 식이다. 이런 관념이 생긴 것은 근래 들어서다. 몇몇 요리연구가가 대중매체를 이용해 이런 관념을 퍼뜨린 것이다. 그리하여 그 다양한 된장이 사라지는 것이다.
피자를 전 세계에 대중화한 것은 미국의 프랜차이즈 업체다. 그들이 만드는 피자는 두툼한 빵과 그 위에 올리는 토핑이 비슷비슷하다. 비유하자면, 업체와 관련 없이 그 맛이 비슷한 한국 된장과 같다. 이에 비해 이탈리아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다 다른 피자를 낸다. 미국 피자는 외식업의 일부지만 이탈리아 피자는 문화로 대접받는 이유가 이 차이 때문이다. 전국에서 똑같은 전통 된장을 낸다면 된장은 문화로서의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활어회 신화는 굳건하다. 이 지면을 통해서도 잘못된 활어회 신화에 대해 지적한 바 있지만 호수에 돌 하나 던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활어회가 왜 맛이 없는지 다시 정리해보자. 아래는 예전 이 칼럼에 썼던 내용이다.
“살아 있는 생선을 잡아 바로 먹으면 그 조직이 질기거나 퍽퍽하다. 차지다는 느낌은 없다. 한국인은 그 질긴 식감을 쫄깃하다고 착각한다. 그 식감 하나로 활어회를 맛있다고 여긴다. 생선은 잡아 살덩이를 발라서 최소한 2시간 이상 냉장 상태에서 숙성해야 차진 식감이 산다. 또 이 숙성 과정에서 단백질이 분해돼 감칠맛을 내게 된다. 큰 광어의 겨우 12시간은 숙성해야 그 진미를 느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루 이상 숙성해 내야 하는 일도 있다. 차진 부드러움에 감칠맛까지 우러나는 생선회가 선어회다.”
필자가 활어회가 맛없다고 하니 사람들은 바다에서 싱싱한 생선을 바로 잡아서 먹지 못해 하는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활어회라면 필자도 어릴 때부터 물리도록 먹었다. 바닷가 도시에서 나고 자랐기에 걸음마 뗄 때부터 바다가 익숙했다. 선친의 취미가 낚시였고, 필자 또한 낚시를 좋아해 바다에서 온갖 생선을 잡았다. 그 잡은 생선을 즉시 회를 쳐 먹었으나 역시 활어회가 맛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숙성회가 훨씬 맛있다.
활어회는 조직감이 차지다고 하는데, 그건 차진 게 아니라 질기거나 단단한 것이다. 입에서 오돌오돌 씹히는 것을 말한다. 한국인은 유독 턱에 힘을 주고 씹는 것을 즐기니, 그 질기고 단단한 활어회가 맛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생선회를 단지 조직감만으로 즐기겠다면 비싼 광어나 도미를 먹을 필요가 없다. 사철 간재미가 싸니 이 질긴 간재미회만 챙겨 먹어도 그 조직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있다. 조직감이 아주 잘 살아 있을 때 바다에서 막 잡은 것인데도 탄탄하면서 차지기까지 한 생선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조직감은 바닷물 온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체로 바닷물이 찰 때, 그러니까 겨울과 이른 봄에 낚시로 올린 생선을 바로 회쳤을 때 조직감이 산다. 그러나 이것도 회를 잘 쳐야 한다. 배 위에서 무딘 칼로 생선을 주무르듯 썰면 조직감은 사라진다. 그러나 겨울과 이른 봄 사이 연안엔 생선이 붙지 않는다. 특히 광어나 도미는 따뜻한 바닷물을 좋아해 수온이 웬만큼 올라야 잡힌다.
6월이면 자연산 광어와 도미가 넘친다. 따뜻한 바닷물에서 사는 이 생선은 살도 따뜻하다. 막 잡은 것이라 해도 살을 발라 먹어보면 물렁하다. 이런 생선을 잡아 수족관에 두면 그 살이 더 무른다. 수족관 물 온도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냉각기를 돌려 온도를 낮추지만 생선이 겨우 살 정도다. 냉각기 돌리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여기에 수족관이 바깥에 나와 있어 햇볕이라도 받으면, 따뜻하게 데운 생선회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백 번 양보해 활어회가 조직감 때문에 맛있다 해도, 여름 활어회는 온도 때문에 맛이 떨어진다. 생선회가 가장 맛있고 차진 조직감이 잘 살며 한국인이 좋아하는 탄탄한 조직감을 살리는 온도는 5℃ 이하여야 한다. 그러니 활어라 해도 잡자마자 먹지 말고 적어도 냉장고에 잠시 넣어 냉기를 쏘인 뒤 먹어야 생선회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흔히 싱싱하면 맛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싱싱해서 좋은 것은 몇몇 채소나 과일 정도다. 음식은 대부분 어느 정도 숙성해야 맛이 산다. 특히 동물성 먹을거리는 숙성 과정에서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데 그 아미노산의 맛, 즉 감칠맛을 인간이 특히 좋아한다. 자연계의 감칠맛으로 부족해 인공으로 제조해 그 감칠맛을 즐길 정도다.
동물성 먹을거리 가운데 특히 숙성을 많이 하는 것은 해산물이다. 육상의 동물성 먹을거리에 비해 해산물은 한 번에 많이 잡히고 쉽게 상한다. 해산물을 장기간 보관하려고 숙성한 것이 젓갈이다. 해산물에 소금을 적당히 더하기만 하면 되니 가장 단순하고 손쉬운 장기 저장법이다. 또 젓갈은 인간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감칠맛을 낸다. 새우젓과 멸치젓국을 주요 양념으로 쓰는 것은 이 감칠맛을 음식에 더하기 위해서다.
‘어란’이라는 음식이 있다. 숭어알이나 민어알을 소금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다시 간장에 담근 후 꺼내 말린 것이다. 숭어와 민어가 많이 잡히는 서남해안 일대에서 이 음식을 만든다. 제조 과정이 번잡해 귀한 음식에 든다. 예전에는 조기알로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를 본 적은 없다. 요즘은 민어알도 귀해 숭어알을 주로 사용한다.
어란은 겉이 말라 있어 건어물로 여기지만, 젓갈로 봐야 한다. 생선알을 소금물과 간장에 담갔다가 꺼내 말리는 과정에서 젓갈처럼 숙성한다. 그런데 어란 숙성은 일반 젓갈과는 그 질이 다르다. 물기가 없는 건조숙성이기에 여느 젓갈보다 감칠맛 농도가 높다.
건조숙성에 더해 어란의 감칠맛을 절정으로 이끄는 또 하나가 간장이다. 어란은 간장에 담갔다가 꺼내 숙성을 하는데, 어란 맛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간장은 콩 단백질을 숙성해 얻는 양념으로 그 자체로 감칠맛이다. 여기에 생선알을 담갔다가 숙성시키니 감칠맛이 크게 증폭된다. 그러니까 어란은 바다와 땅의 감칠맛이 결합한, ‘감칠맛의 핵폭발’을 일으킨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말이 나왔으니 바다와 땅의 감칠맛이 결합한 음식, 이제는 정말 귀한 음식이 바로 젓국된장이다. 된장은 메주에 소금물을 더하는 것이 전부인 듯 보이지만, 옛날 바닷가 일부 지방에서는 소금물 대신 젓국을 메주에 넣어 된장을 담갔다. 젓국은 멸치젓국, 까나리젓국, 새우젓국 등 어느 것이든 가능하다. 바다의 감칠맛이 가득한 젓국에 땅의 감칠맛을 증폭시킨 것이 젓국된장이다. 젓국고추장도 있다. 전국에서 똑같은 통일 전통된장을 만들어 파느라 고생하는 분들을 만나면 이 젓국된장 이야기를 꼭 한다. 특화해보라고. 그러나 아직 아무도 만들지 않는다.
자연에서 나는 음식 가운데 어란만큼 강렬한 감칠맛을 내는 것은 없다. 그래서 어란은 얇게 썬 뒤 앞니로 잘게 조금씩 씹어서 맛을 즐겨야 한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입안에 넣으면 감칠맛이 너무 강해 오히려 맛을 느끼지 못한다. 어란 가격이 비싸 조금씩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최근 새로운 한국 음식을 시도하는 이태원의 모 음식점에서 어란을 맛봤다. 주방에서 직접 만든 것이라 했다. 작은 크기의 알이었으나 맛은 깊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전통 맛을 이어가려 노력하는 젊은 요리사 덕에 그 맛이 더 깊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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