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황교익의 味食生活_25

醉月 2012. 6. 7. 06:59

부드럽고 깊은 맛 발효차 한잔 어때요?
발효차
하동에서 난 찻잎으로 만든 발효차다. 단맛이 길고 신맛이 부드러우며 배 향이 난다.  

 

커피는 한국인이 마시는 일상 음료다. 식사 후 거의 커피를 마시는데, 전에는 인스턴트커피였지만 요즘엔 원두커피가 대세다. 도시의 핵심 상권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다 차지했다. 주택가 사정도 비슷해 동네 어귀에 커피 가게가 꼭 있다.

 

한국인 밥상에는 한국 전통 음료가 없다. 수정과와 식혜가 있긴 하지만, 커피처럼 일상에서 수시로 마시는 음료가 없다는 얘기다. 물이 좋아 그 물을 그냥 마셔도 되니 차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또한 숭늉이 일상 음료라는 얘기도 있지만, 숭늉은 음식이지 음료가 아니다. 옛날에는 있었는데 없어졌다는 말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차다. 불교가 융성하던 고려시대까지 차를 흔히 마셨지만 유교국가인 조선에 와서 이 전통이 사라졌다는 주장이다. 옛날이야 어찌했든, 현재 한국에서 일상 음료는 커피다.

 

차가 한국 전통 음료이니 이를 되찾아야 한다며 한때 녹차 붐이 일었다. 전통 찻집에 앉아 다도를 배우는 사람도 많았다. 햇찻잎이 나오는 5월이면 경남 하동과 전남 보성 등지로 차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녹차 붐은 잠시 일다가 말았다. 1990년대 녹차 붐에 맞춰 차나무 재배 농가가 부쩍 늘었는데, 소비는 쥐꼬리여서 최근에는 폐원하는 차밭도 많다. 녹차 붐이 일다가 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녹차에 허세가 붙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 않나 싶다. 일상에서 편하게 마셔야 할 음료에 다도니 다례니 하며 ‘폼’을 잡으니, 대중은 녹차를 몇몇 호사가의 기호음료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만 것이다. 차를 일상 음료로 마시는 일본, 중국, 영국이 차 마시는 일에서 그렇게 도를 찾는지 묻고 싶다. 녹차를 마시는 데 도가 있으면 커피에도 도가 있고 콜라에도 도가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녹차가 과연 한반도의 대표 차가 될 수 있는지 따져봤어야 했다. 찻잎을 어떻게 가공하는지에 따라 차 종류는 다양해진다. 차나무의 어린잎을 덖어 말린 것이 녹차다. 찻잎을 고온에서 덖으면 산화효소의 작용이 정지돼 발효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녹차를 불발효차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찻잎을 적당히 발효시킨 반발효차, 인도와 유럽에서는 완전발효차를 즐긴다. 일본은 불발효차가 주를 이루는데, 증기로 찌는 증제차라는 점이 다르다.

 

차 전문가의 자료를 보면 한반도에는 녹차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발효차 전통이 더 깊다 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가 주고받았다는 그 차도 떡차라는 발효차다. 그럼에도 녹차가 한국 전통차인 것처럼 포장했는데, 차 가공 산업과 관련 업체의 ‘장난’이 아닐까 싶다. 대량 제조가 쉬운 증제차도 녹차라는 이름으로 팔린다는 것이 녹차 전통 만들기가 ‘장난’일 수 있다는 짐작의 근거다.

녹차 붐이 다시 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다도를 들먹이는 사람들의 허세에 질렸을 수도 있고, 대기업의 싸구려 녹차 티백에 입맛을 버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차나무를 다 베어버릴 것은 아니다. 아직 대중화를 시도해보지 않은 아이템이 있다. 바로 발효차다.

 

발효차는 중국과 인도의 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고급 제품이 국내에서도 비싸게 팔린다. 이 시장을 보고 덤비자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발효차 시장을 개발해보자는 의미다. 발효차는 차나무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데, 한반도에서 나는 발효차도 개성이 뚜렷해 새로운 시장을 여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느 홍차류에 비해 발효취가 적고 단맛이 길며 신맛이 부드러운 차가 한국인의 입맛에 더없이 어울릴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전이니 세작이니 하며 어린잎의 차만 최고급품으로 취급하고, 차 등급이 곧 신분 등급이나 되는 듯 얘기하는 호사가들의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발효차는 다 큰 찻잎으로도 훌륭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외면 다 이유 있다
오리고기

왼쪽이 양념오리고기, 가운데가 훈제오리고기, 오른쪽이 생오리고기다. 고기가 맛이 없으면 어떤 양념과 조리법을 쓰든 맛이 없다.

 

한때 오리고기 붐이 일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대체품으로 선택받은 것이다. 오리가 닭을 넘어 소와 돼지 대체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요리 방법 덕분이다. 오리고기는 쇠고기나 돼지고기처럼 살을 발라 불판에 구울 수 있다. 오리는 살코기와 기름이 한 쌍으로 조합돼 있어 돼지고기와 비슷해 보인다. 여기에 오리가 건강에 좋다는 말까지 번졌다. 오리고기 붐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2012년 현재 오리고기는 늪에 빠졌다. 생산은 늘었으나 수요는 오히려 줄어 폭락을 거듭한다. 2010년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이후 오리 가격이 순간적으로 폭등했다. 이때 사육 규모를 집중적으로 늘린 것이 공급 과잉의 한 원인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재고 물량도 상당해 당분간 가격이 회복될 전망이 없다고 본다. 오리고기 수요를 늘리는 것이 대책 가운데 하나일 텐데, 이는 오리고기 하나만 보고 따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오리고기 대체품인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요즘 상황을 보면, 오리고기 가격이 그렇게 내렸는데도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오리고기에 소비자의 불만이 있다는 이야기다. 더 어두운 전망을 내놓자면, 오리 사육 규모가 줄고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뛰어도 오리고기 수요는 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리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은 맛이다. 소비자가 맛있는 오리고기를 만나기 어렵다. 느끼한 기름내에 누린내까지 겹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오리고기가 원래 그런 맛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가끔씩 맛있는 오리고기를 먹을 때도 있다.

 

오리는 한때 살을 발라 숯불에 굽는 생고기 구이가 강세였다. 오리에 기름이 많다 보니 오리구이 집에는 기름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처음엔 오리구이는 원래 그런가 하고 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리고기를 그렇게 먹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생고기를 직화로 굽는 것은 오리고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훈제오리다. 오리고기를 훈연으로 미리 익히고, 이를 다시 불판에 구워 먹는 방법이다.

 

오리고기는 훈제하면 수분도 빠지지만 기름 역시 왕창 빠져 기름양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러니 구워도 기름 타는 묘한 냄새는 안 맡아도 된다. 기름도 빼주니 건강에도 좋을 수 있다. 훈제는 오리고기 유통기간을 늘려주는 데도 큰 구실을 했다. 무엇보다도 훈제오리는 가정에서도 오리고기를 쉽게 먹을 수 있게 해줬다. 팩에 포장된 슬라이스 훈제오리를 구입한 뒤 프라이팬에 올리기만 하면 되니 이 얼마나 간편한 일인가.

 

훈제오리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오리고기에 맛을 첨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훈연향은 오리고기 잡냄새를 완벽에 가깝게 잡아낸다. 훈연향을 강하게 하면 오리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구별하지 못할 정도다. 그러니까 훈제는 맛없는 오리를 먹을 만한 오리로 만들 수도 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이 방법을 놓칠 리 없다. 훈제오리는 순식간에 시장을 점령했다. 인터넷 쇼핑몰과 케이블 홈쇼핑에서 훈제오리는 대박 상품으로 팔렸다. 한때 물량이 없어 못 판다는 말도 들렸다. 그런데 요즘은 오리고기 공급량이 넘치면서 훈제오리는 덤핑 가격에 팔린다.

 

이렇게 오리고기가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게 된 것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소비자에게 맛없는 훈제오리를 너무 많이 먹인 결과로 읽어야 한다. 아무리 강한 훈연향으로 처리한다 해도 오리고기 자체의 맛은 무의식중에 알아차리게 돼 있다. 이런 경험을 두어 번 반복하면 소비자들은 본능적으로 훈제오리를 거부하게 된다.

오리고기 맛은 사육 방법이 결정한다. 오리고기가 맛이 없는 원인에 대해서는 오리고기 생산자들이 더 잘 알 것이므로 여기서는 말하지도 않겠다. 소비자 마음을 되돌리는 일도 그들의 몫이다.

 

양념에 버무리고 왜 또 확 뿌리나
참깨
무침 요리에 잔뜩 뿌린 참깨. 맛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소화가 잘되는 것도 아닌데, 한국음식에 참깨를 참 많이들 뿌려댄다.

 

필자는 갖은 양념에 ‘원한’이 있다. 오래전 모 월간지 편집장 노릇을 할 때였다. 기자들이 요리선생에게서 받아온 조리법을 보면 꼭 이런 구절이 있었다. “갖은 양념을 한다.” 도대체 이 갖은 양념의 정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요리선생에게 묻지 못하고 조리법을 그대로 받아온 애꿎은 기자에게만 닦달을 해댔다. “이 갖은 양념이 대체 무엇이냐. 시장에서 파는 것이냐. 간장과 마늘만 넣어도 갖은 양념이냐. 참기름, 파, 깨소금까지 들어가느냐. 생강에 청주, 사이다가 들어가면 또 뭐라 해야 하느냐”라고 따져 물었다. 그럼 기자는 요리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답을 받아오는데, 그 답이란 게 보통 이랬다. “입맛에 따라 간장,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 파 따위를 적당히 섞은 것이고, 그리 써놓으면 독자들은 자기 입맛에 따라 음식을 만드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짜고 달고 맵고 고소한 양념 몇 가지를 섞어 대충 버무리면 맛이 나니 그리 알라는 뜻이었다.

 

필자는 이 ‘갖은 양념’의 두루뭉술함에 기가 찼다. 간장,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 파, 생강, 깨는 각각의 맛이 강하다. 그중에 하나 또는 둘 또는 셋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에 따른 맛 차이를 무시하라니, 음식을 대충 만들어 먹으라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한국음식 표준화에 대한 필요성을 얘기할 때면 필자는 g 따지고 ℓ 따지고 하는 ‘과학적 계량’보다 한국음식 조리법에 나오는 이 ‘갖은 양념’의 기준을 정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여겼다. 다행히 최근 요리책은 ‘갖은 양념’이라는 표현이 많이 줄었다. 한국음식을 조리하는 일이 조금 섬세해졌다는 증거인데, 다행스러운 일이다.

 

요리책은 요리책이고, 현장에서는 맛의 얼버무림이 여전하다. ‘갖은 양념’ 요리법이 여전하다는 말이다. 한국인은 늘 먹는 음식이라 ‘갖은 양념’ 폐해에 둔감한 편이다. 한국과 조리법이 비슷한 일본인에게 한국음식에 대한 평을 들으면 그 폐해가 곧바로 드러난다. 특히 반찬을 쫙 까는 한정식 상차림이 있으면 그들에게서 틀림없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상에 오르는 음식은 참 다양한데 맛은 다 비슷비슷해요.” 장아찌, 나물 양념, 조림 양념, 김치 양념 비슷비슷…. 재료가 아니라 양념을 기준으로 재배치한다면 수십 종의 한정식 반찬을 서너 종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음식은 유독 손맛을 강조한다. 손으로 ‘조물조물’하는 것이 많다는 뜻으로, 조물조물하는 과정에서 양념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손맛이 좋다’는 것은 ‘양념을 잘한다’는 말과 통한다. 양념을 잘한다는 것은 없다. 양념은 대충 해도 먹을 만한 맛이 생긴다. 주재료의 질이 어떻든, 짜고 달고 맵고 시고 고소한 맛의 양념을 버무리면 맛은 비슷비슷해지게 마련이다.

 

한 예로 막국숫집 양념 같은 것이다. 막국숫집 중에는 주방에서 아예 양념을 하지 않고 내놓는 곳이 흔하다. 식탁에는 설탕, 참기름, 간장, 소금, 식초, 고추장 등등이 놓였다. 손님이 이들 양념으로 대충 버무려 먹으라는 것이다. 식당이 가정집과 다른 것은 주방에 전문 요리사가 있다는 점인데, 막국수를 처음 먹는 손님에게조차 양념을 다 맡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식탁 위 양념으로 막국수를 대충 버무려도 먹을 만하다. ‘갖은 양념’의 신비다. 하지만 그게 과연 맛있는 막국수일까. 먹을 만하게 만든 것이 정말 맛있는 음식일 수 있을까.

 

대충 먹을 만하게 버무리는 음식에는 꼭 참깨를 잔뜩 뿌려놓는다(막국수의 그 참깨를 생각해보라). 혹시 요리사의 이런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 음식재료에 어울리는 요리법을 몰라. 그냥 대강대강 ‘갖은 양념’으로 버무리니 먹을 만은 한데, 요리라고 하기는 좀 그래. 이런 음식 내고 돈 받는 것도 좀 그렇고. 그렇다면 정성이라도 들인 것처럼 보여야 할 텐데…. 아, 여기 참깨가 있네. 참깨는 비싸다고들 생각하겠지. 이거라도 확 뿌려주자.”

요리사님들, 저 참깨는 소화도 안 되고 그냥 다 나와요.

 

먹지 않는 반찬 왜 잔뜩 깔아놓을까
비빔밥과 돈부리

비빔밥과 유사한 일본 돈부리에는 반찬이 따로 나오지 않는다

 

한국인의 밥상은 밥과 반찬, 국으로 구성돼 있다.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으려고 반찬과 국을 차리는 것이다. 그릇이 모자란다든지 할 땐 이 구성에 변화가 생긴다. 한 그릇의 밥 위에 반찬을 올려 먹거나, 한 그릇의 밥을 국에 말아 먹는다. 음식은 비빔밥이고, 뒤 음식은 국밥이다.

 

1990년대부터 비빔밥은 한국 대표 음식이 됐다. 임금이 먹던 음식이라는 둥 하면서 예부터 고급한 음식인 양 포장한다. 그러나 실상은 밥 위에 반찬 올려 비벼 먹던 것이 비빔밥의 유래다. 한 그릇의 비빔밥에는 고기도 있고 채소도 들었다. 밥-탄수화물, 고기-단백질, 채소-식이섬유의 구성을 보면 이 한 그릇의 비빔밥으로 영양 균형을 맞춰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차려내기도 좋다. 간편식이다. 패스트푸드다.

 

비빔밥을 두고 패스트푸드라 하면 어색해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대체로 패스트푸드는 건강에 안 좋은 음식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건 알 수 없는 음식재료로 만든 패스트푸드를 말하는 것이지, 모든 패스트푸드가 나쁜 것은 아니다. 미리 조리해둔 음식재료로 간편하게 빨리 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이 패스트푸드이니, 미리 만들어놓은 밥과 반찬으로 한 그릇의 비빔밥을 뚝딱 만들면 이도 패스트푸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의 대표적 패스트푸드인 햄버거와 비교해보면 빵-탄수화물, 패티-단백질, 토마토 등 채소-식이섬유의 영양 구성도 비슷하다.

 

일본인의 밥상 구성이 한국인의 밥상 구성과 비슷하다. 밥과 반찬, 국으로 이뤄졌다. 두 나라 밥상을 나란히 놓고 서양인에게 한국 것과 일본 것을 구분해보라 하면 헷갈려 할 정도다. 그러면 일본에도 비빔밥과 국밥이 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그들도 여러 사정에 따라 밥+반찬 또는 밥+국으로 된 한 그릇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겠다 싶은 것이다. 문화란 참 묘한 것이 일본에서는 밥+반찬은 아주 흔한데 밥+국은 (거의) 없다. 일본인은 밥을 국에 말아 먹는 일을 극도로 기피한다. 밥 먹는 예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 문화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그렇다. 그 대신 밥을 차에 말아 먹는 전통은 있다. 이를 오차즈케라 한다. 반면 밥+반찬 구성은 가정식만이 아니라 외식업계에도 널리 퍼졌다. 돈부리다. 한국말로 옮기면 덮밥이다.

 

돈부리는 한 그릇의 밥 위에 대체로 한 종류의 반찬이 오른다. 돼지고기 반찬, 쇠고기 반찬 따위가 밥 위에 오르는 것이다. 이를 먹을 때는 비비지 않는다. 위에서 파내려가듯 밥과 반찬을 한 입씩 먹는다. 음식 때깔이며 먹는 방법이 달라도 밥+반찬이라는 구성에서 비빔밥과 돈부리는 같은 계통의 음식이라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는 돈부리 전문점이 많다. 대체로 도심에 있다. 월급쟁이들의 점심으로 돈부리가 인기다. 값이 싸고 빠른 시간에 간단히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부리 달랑 하나에 맑은 된장국, 채소절임이 조금 나온다. 일본 돈부리가 따로 여러 반찬을 내놓지 않는 것은 ‘밥 위에 올려진 것이 반찬’이라는 관념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 단순한 음식인 듯 보이지만 돈부리 종류가 워낙 많아 끼니마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한국 비빔밥은 밥+반찬으로 한 그릇이 차려진 음식인데도 그 옆에 너댓 종류의 반찬이 또 깔린다. 밥 위에도 반찬이 있고 밥그릇 밖에도 반찬이 있다. 비빔밥을 비벼 밥과 반찬을 한 입에 넣고 나서 또 입에 반찬을 넣는 식으로 음식을 먹는다. 이 중복된 반찬 섭취는 밥 위에 올려진 것이 반찬이라는 관념이 없어서다. 그런데 이 ‘밥 위의 반찬’ 관념이 애초부터 없었느냐 하면, 꼭 그렇지 않다. 가정에서는 비빔밥을 먹을 때 그렇게 반찬을 많이 깔지 않는다. 한국 식당 비빔밥에 반찬이 여럿 나오게 된 까닭은 비빔밥의 유래를 임금님 밥상 같은 데서 찾으면서 생긴 일일 것이다. 비빔밥 옆에 잔뜩 차려지기는 하지만 거의 먹지 않는 반찬들을 보면, 일본 덮밥의 예를 따라 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