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황교익의 味食生活_24

醉月 2012. 5. 9. 18:27

‘웰빙 음식’이라지만 밥상에 꿔다 놓은 모습
연잎밥

 

연잎을 벗기면 밥이 나오는 연잎밥이다. 요즘 한국 전통음식 또는 사찰음식인 양 대접받으며 크게 번지고 있다.  

 최근 한정식집과 고깃집을 중심으로 연잎밥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식당에 연잎밥을 납품하는 업체도 있다고 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냉동 연잎밥을 파는 곳도 여럿 봤다.

한반도에서는 연을 그리 많이 재배하지 않았다. 연은 아열대 식물이라 온대인 한반도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그래도 따뜻한 남쪽에는 연이 제법 있었다. 불교의 꽃이라 사찰에서는 주변에 못을 파 심기도 했다. 강화도에서 연을 재배하는 한 스님은 중부지방에선 못을 꽤 깊이 파야 연이 추운 겨울을 견딘다고 했다.

 

최근 연잎밥이 유행하는 것은 텔레비전 영향이 큰 듯하다. 연잎으로 만든 음식을 사찰음식 또는 전통음식으로 자주 소개하면서 퍼져 나간 것이다. 또한 건강음식으로 알려진 것도 연잎밥 유행에 한몫했다. 육식과 과식의 시대에 살면서 채식으로 이뤄진 사찰음식에 ‘웰빙 음식’ 포장을 씌웠고, 불교의 한 상징인 연을 이용한 음식이 특히 주목받으면서 ‘연잎밥은 웰빙 음식’이라는 하나의 관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연잎밥이 한반도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음식인지는 알 길이 없다. 흔하진 않았지만 예부터 연이 있었으니 여기에 곡물을 넣고 찌는 정도의 일은 했을 수도 있다. 연잎밥은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에도 있다. 대체로 중국에서 흔하며, 일본에서도 중국 음식으로 여기는 편이다. 어느 국가의 것이나 찹쌀을 중심으로 여러 곡물을 넣고 찌는 것은 같다. 연잎밥이 한국 외식업계에 처음 등장할 당시에는 중국 음식의 하나로 소개되기도 했다. 1990년대 딤섬이 번질 때 이 연잎밥이 딤섬 안에 있었다. 그러니까 연잎밥은 한국 전통음식이라기보다 근래에 중국에서 건너온 음식일 가능성이 높다.

 

음식문화란 생물과 같아서 여기저기로 이동해 어떤 곳에서는 번창하고, 어떤 곳에서는 죽거나 변형을 일으킨다. 그 근원을 밝히고 아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를 그 지역 문화 안에서 어떻게 소화하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연잎밥이 중국의 하엽반(荷葉飯)에서 비롯한 것이라 해도 이를 한국 음식문화 안에서 녹여내면 한국 음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연잎밥이 한국 밥상에서 한국 음식과 제대로 어울리는지에 대해 평가한다면 아직까지는 부정적이다. 따로 논다는 느낌이 강하다.

연잎밥은 코스식 한정식집이나 고깃집에서 거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연잎밥에 곁들이는 것은 김치와 장아찌, 젓갈, 된장찌개 등 기존 반찬이다. 이들 반찬과 국은 대체로 짜고 맛이 강하다. 한국 음식은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으려면 반찬과 국이 조력해야 하는 형태로, 반찬과 국은 밥과 함께 입안에서 적절한 맛이 나도록 만들어진다. 따라서 한국 밥상엔 심심한 맛의 하얀 쌀밥이 오르는 게 가장 적절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연잎밥은 어떨까. 연잎밥은 찹쌀에 여러 곡물을 섞어 대체로 단맛이 난다. 여기에 단맛 양념이 더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짜고 맛이 강한 한국 반찬과 국에는 달착지근한 연잎밥이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 중국 하엽반은 단독으로 맛이 완성된 음식이다. 한국의 연잎밥도 하엽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잎밥이 한국 밥상에서 제 구실을 하려면 하엽반과 같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중국 하엽반처럼 한국 밥상에서도 연잎밥을 단독 음식으로 내면 어떨까 싶은데, 또 그러면 섭섭해할 한국 전통음식이 있다. 바로 약밥이다. 밥상 하나 차리는 데도 참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뜨끈 든든한 한 끼 ‘국밥’이 최고지!
섭섭한 국밥
조선의 풍속화 ‘주막도’ 속 주막 구조와 똑같은 구조를 가진 경남 의령의 국밥집.  

 

한국인의 밥상은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으려고 밥과 반찬 그리고 국을 차린다. 보통의 상차림에서는 밥과 반찬, 국을 제각각 다른 그릇에 차리지만, 사정에 따라 ‘밥+반찬’ ‘밥+국’을 한 그릇에 담기도 한다. 한 번에 많은 사람의 끼니를 챙겨야 할 때, 그릇이 부족하거나 일손이 달릴 때 이 방법은 퍽 요긴하다. 어차피 입안에서 섞일 테니 미리 한 그릇에 담아내도 이를 먹는 사람들이 크게 불만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밥+반찬’ ‘밥+국’은 밥을 주식으로 하던 그 먼 옛날부터 이어져온 음식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밥+반찬’은 비빔밥이다. 최근 이 비빔밥이 한국 음식의 대표가 됐다. 한식 세계화 주자로 비빔밥을 적극 민다. 밥에 이것저것 색색이 올리면 보기 좋고 영양 균형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빔밥이 조선 임금이 먹던 음식이다, 조상의 지혜를 담았다고 하는 것은 과잉 홍보다. 일상의 음식을 때깔 나는 외식 상품으로 개발한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밥+국’은 국밥이다. 그런데 국밥을 세계화하자는 말은 없다. 한국 음식 문화에서 비빔밥과 양립하는 주요 음식인데도 대접이 소홀하다. 비빔밥에 비해 때깔을 내기 어렵고, 먹을 때 품격이 다소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떻든 그 출신은 비슷한데 비빔밥에 비해 대접받지 못하는 국밥은 세상이 섭섭하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빔밥이 웰빙 음식’이니 ‘세계화할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니 해도 한국인은 일상에서 비빔밥보다 국밥을 더 즐겨 먹는다. 설렁탕, 해장국, 소머리국밥, 순대국밥, 돼지국밥, 콩나물국밥 등 한국인에게 국밥만큼 친숙한 음식은 없다. 한식 세계화도 어찌 보면 ‘그들만의 리그’다. 서민의 곁에서 묵묵히 버티는 국밥을 한국인이 더 자랑스럽게 생각할 날이 올 것이다.

 

사실 간편성에서 우위에 있는 국밥을 비빔밥보다 먼저 외식 상품으로 개발했어야 한다. 비빔밥은 장과 김치, 국을 따로 내야 하지만, 국밥은 장과 김치 둘만 내놓아도 된다. 또 밥을 보관하는 문제에서도 국밥은 유리하다. 비빔밥은 밥을 따뜻하게 보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국밥은 식은 밥으로 두었다가 토렴해 내면 된다. 시골 오일장마다 국밥집은 널렸는데 비빔밥집이 드문 것도 다 이런 연유에서다. 조선의 풍속화 ‘주막도’에 나오는 음식도 조리기구와 그릇 등으로 보아 비빔밥이 아니라 국밥일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의 본격적인 외식업은 근대 이후에 형성됐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지만, 조선에서 그 뿌리를 아예 찾지 못할 것은 아니다. 특히 ‘주막도’는 한국 외식업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 주모가 가마솥 앞에 앉아 음식을 내놓는 주막의 구조는 현재 ‘개량된’ 한국적 레스토랑을 기획하는 데 여러 아이디어를 줄 수 있다. 음식을 조리하는 공간과 먹는 공간을 나누지 않는 것이 오래된 한국 전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가정집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사진은 경남 의령의 어느 국밥집이다. 가마솥 앞에 주인이 앉은 구조가 조선 풍속화 속의 그것과 똑같다. 유리문을 열면 바로 바깥 길이다. 옛날에는 이 유리문이 아예 없었다고 들었다. 이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이와 같은 구조의 국밥집이 조선 때부터 아주 흔했을 것이다. 한반도 음식에서 대중성과 역사성을 따져보면 국밥이 비빔밥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공장에서 뚝딱 춘장이 기가 막혀!
짜장면과 춘장

짜장면 맛은 춘장 맛이 90%다. 그런데 중국집 대부분에선 공장 춘장을 쓴다. 직접 담근 춘장을 쓰는 곳은 왜 없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장면은 표준어, 짜장면은 비표준어였다. 이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다들 짜장면이라 발음하는데 왜 자장면만 표준어냐는 것이었다. 이 표기법을 문제 삼은 다큐멘터리까지 제작·방송했는데, 중국 사람도 자장면이 아니라 짜장면과 비슷하게 발음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여론을 등에 업고 결국엔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받았다. 국민은 이에 환호했다. 이 환호에 담긴 정서는 이런 것이었다. “몇몇 학자의 기준으로 우리 삶을 통제하려 들지 마라. 우리 삶의 방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라.” ‘짜장면 표준어 사건’은 훗날 집단지성의 시대를 상징하는 사례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짜장면이 표준어가 됐다 해도 우리 앞의 짜장면 맛이 바뀐 것은 아니다. 거무스레한 춘장에 버무린 퉁퉁한 면은 여전히 들척지근하면서도 구수한 맛을 낸다. 중국집 간판에 자장면이라 적었는지, 짜장면이라 적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구성원은 그대로인데 당명 하나 바꾸었다고 새로운 정당이 되지 않는 것과 똑같다.

 

짜장면 재료 중 진작 이름을 바꾸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춘장이다. 춘장은 중국식 된장을 우리식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이 춘장은 별스러운 것이 아니다. 우리 된장과 큰 차이가 없다. 콩과 밀로 담그는 장류로, 우리에게도 이런 전통 된장이 있다. 지금도 많이 먹는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의 막장이 춘장과 흡사하다. 중국 춘장은 색깔이 노란 것도 있고 붉은 것도 있고 검은 것도 있다. 그래서 중국의 짜장면은 색깔이 다양하다. 그런데 한국의 중국집에서는 이런 춘장을 쓰지 않는다. 다들 공장에서 캐러멜 시럽 듬뿍 넣고 만든, 반질반질한 검은색에 들척지근한 맛을 내는 춘장을 사용한다.

 

예전에는 한국의 중국집에서도 춘장을 직접 담가 썼다. 중국인에게 춘장 담그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한국인이 자기 식당에서 쓸 된장을 담그는 일과 같은 것이다. 6·25전쟁 이후 한국의 중국집은 더는 ‘중국인의 집’이 아니었다. 여러 이유로 중국인이 이 땅을 떠나면서 중국집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음식점’으로 변했다. 한국인은 춘장을 담글 줄 모르니 공장에서 만든 춘장이 중국집 주방을 점령하게 된 것이다.

 

원래의 춘장, 그러니까 전통 춘장은 짜고 발효취가 강하다. 한국의 전통 된장이 짜고 향이 강한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 밀을 넣어 떫은맛이 있다. 이 짜고 떫은맛을 순하게 하려고 춘장을 볶아서 썼다. 이때 기름은 돼지기름을 사용했다. 커다란 냄비에 물을 조금 넣고 끓이다가 돼지비계를 넣으면 물은 증발하고 기름만 남는데, 여기에 계속 비계를 더했다. 그러니까 옛날 짜장면은 춘장의 큼큼한 향에 고소한 돼지기름이 뒤섞인, 다소 복잡한 맛이었다.

 

전통 춘장은 2년 정도 발효해야 때깔과 맛이 나는데 공장에서 만드는 춘장은 속성으로 낸다. 발효 기간이 짧아 색깔이 나지 않으니 캐러멜을 넣고, 부족한 맛을 더하려고 화학조미료를 섞기도 한다. 기름도 바꾸었다. 동물성 기름이 몸에 나쁘다는 말이 번지면서 식물성 기름을 주로 쓴다. 돼지기름이 좋다 해도 손을 많이 타니 이를 직접 내리는 일은 없다. 이런 사정으로 짜장면 맛이 흐리멍덩해졌다. 그 흐린 맛을 숨기려 설탕과 화학조미료를 넣는 것이다.

 

한국인은 짜장면을 ‘솔 푸드’로 여길 만큼 좋아한다. 그래서 짜장면이라는 ‘민중의 표기’도 표준어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동의했다. 한국인이 짜장면을 그렇게 좋아하니, 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춘장 좀 바꾸어보자고 외치고 싶다. 된장찌개 전문점은 된장을 담그는 곳이 많은데, 왜 짜장면을 전문으로 하는 수많은 중국집 가운데 춘장 담그는 곳은 찾아보기 어려운지 참 신기한 일이다.

 

통조림 거위 간이 극상의 맛 낸다고?
푸아그라
한국에서는 푸아그라 마카롱도 판다. 비리고 산패한 기름내가 나지만 여느 마카롱보다 2배 비싸다. 신기한 일이다.

 

많은 사람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 “서양 음식에 대한 평가는 거의 하지 않는데, 왜 그런가요?” 내 답은 항상 이렇다. “나는 서양 음식을 평가할 만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지 않습니다.” 이 대답에도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있으면 예를 든다. 김치 같은 것 말이다.

 

“한국 사람은 김치 맛을 잘 압니다. 한 젓가락만 먹어봐도 김치에 어떤 젓갈을 넣었고 양념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갓 버무린 것인지, 제대로 숙성한 것인지는 때깔만 보고도 압니다. 보관을 잘못해 발효가 된 것도 구별해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는 김치인데 그걸 모를 리 없죠. 만일 외국의 어느 유명한 요리평론가가 한국에 왔다고 칩시다. 그가 어느 식당의 김치를 두고 맛있는 김치니, 맛없는 김치니 평가한다면 어떨까요. 많은 한국인이 이럴 겁니다. ‘자기가 무슨 김치 맛을 안다고 그래.’ 마찬가지로 제가 파스타를 먹으며 토속적인 이탈리아 맛이네, 퓨전한 이탈리아 맛이네 한다면 이탈리아 사람이 뭐라고 할까요. ‘정말 웃기고 있네’라는 말은 듣기 싫습니다.”

 

음식이란 한 종류를 다양하게 많이 먹어봐야 그 맛을 구별하는 능력이 생기고, 그 많은 경험이 바탕이 돼야 음식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다. 이때까지 내 경험에 따르면, 파스타 맛에 대해 한두 마디 보탤 수 있을 정도의 식견을 가지려면 이탈리아에 1년 정도 머물면서 수많은 파스타를 꾸준히 먹고 난 다음에나 가능한 일이다. 외국의 어떤 음식평론가가 한국 김치맛을 품평하려면 그 정도의 기간과 노력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요즘 방송을 보면 요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나이 많은 전문 요리사가 주로 나왔는데, 요즘에는 젊고 잘생긴 요리사가 대부분이다. 외국 요리학교를 나왔거나 외국 식당에서 근무한 것을 경력으로 내세운다. 그들이 만든 요리는 외국 음식인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국적 불명의 글로벌화한 요리로도 보인다. 나라 간 거리가 좁아져 한국의 젊은 요리사 머릿속에 나라별 요리라는 것이 흐릿해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요리하면서 최고의 맛이 나는 것처럼 포장하려고 꼭 넣는 재료가 꼭 있다. 푸아그라, 캐비아, 트러플이다. 한국어로는 거위 간, 철갑상어 알, 송로버섯이다. 이 세 재료는 서양 고급음식의 상징이 됐다. 서양에서도 그런지는 잘 몰라도 한국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방송에 나오는 젊은 요리사들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있는 서양 최고의 음식재료를 요리에 넣음으로써 자신의 요리 솜씨가 최고인 양 ‘술수’를 부리는 것이다. 이 세 음식재료 가운데 푸아그라 이야기 좀 하겠다. 과연 한국에서 쓰는 푸아그라가 서양 최고 요리를 만드는 재료일까.

 

푸아그라는 거위 간이다. 거위 간은 지방이 많아 쉽게 상한다. 그래서 푸아그라가 얼마나 싱싱한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푸아그라가 극상의 맛을 내려면 싱싱한 상태의 것을 적절히 전처리를 해야 한다. 그러니까 서양에서 솜씨 있는 요리사라는 명성을 얻으려면 이 싱싱한 푸아그라를 어찌 다루는지가 중요하다. 한국에는 이 싱싱한 거위 간이 없다.

 

한국 요리사가 쓸 수 있는 푸아그라로는 전처리가 되지 않은 냉동 푸아그라와 전처리된 통조림이 있다. 통조림 푸아그라는 여러 첨가물로 조미했기 때문에 그냥 썰어놓거나 데우기만 해도 된다. 우리가 수입하는 통조림 푸아그라는 다양하다. 오리 간으로 만든 것도 있고, 닭 간이 섞인 것도 있으며, 돼지기름이 들어간 것도 있다. 그 냉동 또는 통조림 푸아그라로 최상의 서양음식을 내는 것처럼 ‘폼’ 잡는 것이다.

 

한국에는 거위는 귀하지만 오리는 흔하다. 이 오리 간도 거위 간만 한 맛을 낸다. 냉동이나 통조림 푸아그라로 ‘폼’을 잡을 것이 아니라, 국내의 싱싱한 오리 간으로 요리를 만들어볼 생각은 왜 안 하는 것일까. 그런 음식이 있다면 나는 맛을 보러 갈 테고, 품평도 할 것이다. 그런 요리는 서양에서 요리법을 가져온 것이라 해도 한국에서 난 재료로 한국 요리사가 조리했으니 한국 음식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박집 쉬워요~ 방송만 나가면 돼요
맛집의 진실과 오해

오전 10시를 조금 넘은 어느 음식점 앞 풍경으로 벌써 줄을 섰다. 대부분 이 대박집에 처음 오는 손님들로, 음식점을 나오며 맛있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참 이상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분명한 목적을 지닌다. 식당도 그렇다. 자원봉사의 무료 급식이 아니고서는 음식을 파는 일은 곧 돈을 벌려는 목적 때문이다. 기왕 돈 버는 일, 왕창 벌고 싶은 것이 인간의 당연한 욕심이다. 그래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은 모두 대박을 꿈꾼다.

 

한국에서 영업 중인 외식업체는 대략 50만 곳이나 될 정도로 엄청나다. 이 중 ‘대박집’은 물론 극소수다. 대충 따져봐도 한 지방자치단체에 서너 곳이나 될까 싶다. 그래서 대박집을 로또에 비유한다. 대박집은 되기는 어렵지만 일단 되고 나면 왕창 번다. 로또는 단번에 돈을 받지만 대박집은 잘 관리하면 대를 물릴 수도 있으니, 로또 맞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

 

식당 주인은 대박집 정보에 민감하다. 자신도 대박을 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대박집을 다니며 그 집만의 노하우를 알아내려 한다. 대박집 소개 책자도 사서 읽는다. 외식업 잡지에 실린 기사도 꼼꼼히 챙겨 읽고 방송에서 수시로 나오는 대박집도 눈여겨본다. 그리고 이리저리 흉내도 내지만 대박집에 등극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마침내 대박집이란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외식업계엔 ‘운구일기’란 말이 있는데 운이 9할이고 노력이 1할이라는 뜻이다. 여타 업계가 기껏해야 ‘운칠기삼’인 것에 비하면 대박집은 정말 ‘운빨’이 중요한 셈이다. 대박집의 ‘운빨’은 어찌 오는지 대충 정리해봤다.

 

사람들은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한 입소문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절대 대박집이 될 수 없다. 대박집에 등극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운은 방송에서 온다. 그런데 방송은 식당 주인이 나가고 싶다고 출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물론 돈 주고 방송에 나가는 꼼수도 있지만 그게 다수는 아니다). 제작진이 이런저런 ‘꺼리’를 찾을 때 운 좋게 걸려들어야 한다.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방송이면 운이 정말 좋은 것이다. 출연 연예인이 음식을 먹으면서 “아우아우 정말 맛있어. 이거 대박!” 하고 엄지를 치켜세우면 그 식당은 대박집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방송에 나가면 당장 그날부터 손님이 줄을 선다. 손님 중엔 블로거도 많이 끼어 있다. 그들이 대박집에 오르는 두 번째 운을 안겨준다. 식당 구석구석을 촬영하고 ‘주례사 평’으로 방송 내용을 재확인해준다. 식당 주인이 신경 쓸 일이 있다면, 블로거들이 ‘취재’하는 데 협조하는 것이다. 그들의 악평 하나가 대박집에 오르는 길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웬만큼 소문이 나면 이제 인쇄 매체, 인터넷 매체 기자와 자유기고가 등 이 분야 전문가입네 하는 사람이 거쳐 간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매체에 맛집으로 자세한 정보를 공개한다. 인터넷에서 상호를 검색해 블로그뿐 아니라 뉴스 카테고리에도 등장하면 대박집에 거의 다 오른 것이다. 이 정도에 이르면 운은 저절로 움직인다. 뜸하다 싶으면 방송이 오고, 또 뜸하다 싶으면 신문과 잡지가 오고, 또 뜸하다 싶으면 파워 블로거가 나타난다. 한번 대박집은 영원한 대박집이 되는 것이다.

 

식당 주인은 ‘대박집이니 기본적으로 음식이 맛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맛없다고 말하는 손님의 미각 수준을 의심하지 대박집을 의심하진 않는다. 또한 손님이 그 음식이 맛없다는 것을 깨달아도 크게 문제되진 않는다. 대박집은 한 번 온 손님이 다시 올 확률이 매우 낮다. 손님이 그 대박집을 찾는 이유는 대부분 ‘인증 샷’ 하나 남기려는 것이고, 온 국민이 제각각 그 ‘인증 샷’ 하나 건지기까지는 수십 년,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