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김동률·권태균의 오지 기행_04

醉月 2012. 4. 30. 08:47
버들잎에 부치는 봄의 노래 궁류·대현마을

대현마을 전경.

 

1982년 4월 26일 밤 9시 반 경남 의령군 궁류면 경찰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 순경(당시 27세)은 지서와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 소총 2정과 실탄 144발, 수류탄 8발을 탈취해 주민들에게 무차별 난사했다.

그의 범행은 우발적이었다는 추후 소문과는 달리 믿기지 않으리만치 치밀했다. 먼저 우체국으로 가서 전화교환원부터 살해한다. 지금과 같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 외부와 통하는 유일한 수단이던 전화를 단절하기 위한 조치다. 그리고 불이 켜진 집을 골라 다니며 젖먹이, 노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난사하고 특히 상가(喪家)에 들러서는 돗자리...   

 

‘그리고 한마디 말도 없었네’

 

마을회관에 걸려있는 30년 된 액자들.

그러나 잠시, 봄 거름을 밭에다 져내는 노인의 모습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 노랫말과 이다지도 똑같을 수가 있을까. 쓰러질 것 같은 걸음걸이로 거름을 메고 나르는 노인의 모습에서 생의 버거움을 느끼게 된다.

 

삶의 고달픔을 두고 부피나 면적이 아니라 무게로 표현하는지 이해가 된다. 버겁고, 등이 휠 것 같은 무거운 삶, 너무나 힘들어하는 모습에 감히 말을 붙이지 못했지만 주름진 얼굴에서 생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그렇구나. 한평생 자굴산 기슭에서 늙어간, 봄볕에 그을린 노인의 얼굴에는 한 인간의 신화와 전설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평촌마을을 유명하게 한 것은 우 순경만이 아니다. 이 마을은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망개떡의 고향이다. 그래서 망개떡집 간판이 눈에 띈다. 유년 시절 대처 공원에 나들이 가서 사 먹은 망개 잎에 곱게 싸인 떡, 망개는 청미래나 명감나무를 일컫는 경상도 방언이고 망개나무 덩굴에서 따낸 잎으로 감싸서 만든 멥쌀 떡이 망개떡이다. 망개 잎의 향기와 싱그러움으로 맛깔나는 명품 떡이지만 인스턴트 식품에 떠밀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기억 속의 떡일 뿐이다.

 

지나가다가 불현듯 곤고했던 과거를 추억하고 싶은 사람은 평촌마을회관에 들를 일이다. 콘크리트 슬래브 건물로 한껏 멋을 부린 마을회관은 이제 완전히 폐허다. 부서진 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본 마을의 역사는 1985년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숨통이 끊어졌다. 회관 벽에 붙어 있는 여러 가지 액자를 한번 살펴보라. 역대 이장 명단도 새마을지도자 이름도 1985년을 마지막으로 공란으로 남아 있다. 20여 년간 아무도 찾지 않은 마을회관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하다. 모든 것은 27년 전 1980년대 중반에 멈춰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낡은 책꽂이에 버려진 책들, 삼중당 문고본이다. 사진을 보고 아, 삼중당 문고를 내뱉으며 탄식하는 독자들은 더 이상 젊음이 아니다. 곰팡이에 찌든 채 버려져 있는 하인리히 뵐의 소설 ‘그리고 한마디 말도 없었네’가 눈에 띈다.

 

이 데카당하고 멋들어진 제목은 전혜린이라는 작가가 자신의 에세이집을 같은 제목으로 발간해 한때 이 땅의 청춘을 울리지 않았던가. 그녀의 에세이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1970년대 초반 전혜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에게 잠 못 이루는 밤을 안겨주었던가. 그래서 종로에도 이화여대 앞에도 책 속에 등장하는 독일 소도시 ‘슈바빙’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서너 곳 등장하고 모두가 전혜린처럼 살고 사랑하고 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했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키다리 아저씨’도 보이고 톨스토이의 ‘죄와 벌’도 ‘크로이체르 소나타’도 눈에 띈다. 누가 기증했을까. 아니면 누가 구입해 꽂아놓았을까? 군데군데 밑줄이 그어진 곰팡이 가득한 책에서 세월을 읽어내는 틈입자의 맘이 오히려 서서롭다.

 

지덕체로(知德體勞)가 네잎 클로버에 새겨진 4H 액자가 저 홀로 걸려 있는 외로운 마을회관은 이제 거미줄만 어지럽다. 1914년 농촌을 살리자는 취지로 미국 워싱턴에서 설립된 세계적인 청소년 단체인 4H의 의미는 두뇌(Head·知)·마음(Heart·德)·손(Hand·勞)·건강(Health·體)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청소년들은 이제 흔적조차 없고 건물 안쪽 유리창에 붙어 있는 빛바랜 사진 속에는 낡은 젊음이 흑백으로 웃고 있다.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봄

늘 그랬듯이 봄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가 이내 그리움만 남긴 채 떠나간다. 한 시절 장려했던 버들잎이 아름답던 궁류마을의 봄도 이제 한 굽이를 넘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니만……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저만큼 가고 있다. 그렇다. ‘봄날은 간다’는 옛 노래가 가슴에 절절하게 스며들 때는 인생의 봄날은 이미 아득하게 멀어진 것이다.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의 수양버들이 춤추던 동네, 궁류의 버들은 이제 짙은 초록으로 물들었다. 아,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몇 번의 봄을 더 맞을 것인가.

 

풀무와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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